그 해 우리는 5
(웅) 너도
알고 있었냐고
(도율) 작가님, 무슨 일이시죠?
(웅) 이번 프로젝트
누아 작가도 같이 하는 거 알고 있었습니까?
국연수 팀장님
그게 무슨…
(도율) 작가님
그건 나중에 저랑 다시 얘기하시죠
거봐
날 망치는 건
늘 너야
(지웅) 그러니까
아마 처음 시작은
[학생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지웅) 꽤 오래전에
(학생1) 야, 너 맞지? 너희 아빠 웅이 분식이지? [학생2가 인사한다]
(학생3) 와, 좋겠다
너 맨날맨날 떡볶이 공짜로 먹을 수 있어?
(학생4) 야, 나 한 번만 데려가 주면 안 돼?
(학생3) 나도 한 번만 데려가 줘라, 어?
(지웅) 고작 이름 때문이었어요
- (학생1) 내가 먼저 알았다고 - 나 아닌데? [학생들이 의아해한다]
그거 나 아니고
(어린 웅) 쟨데?
[학생들의 탄성]
(학생1) '김지웅'?
아, 네가 웅이 분식이야?
(학생3) 맞네, 얘인가 봐
(학생4) 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학생들이 저마다 조른다]
(어린 지웅) 야, 최웅!
(지웅) 하필이면 동네 왕자님이랑 이름이 비슷했던
(학생4) 나 떡볶이 사 줘
[차분한 음악] (지웅) '왕자와 거지' 이야기 같았달까
- (손님1) 언니, 잘 먹었어요 - (연옥) 그래
[연옥의 웃음] [손님들이 대화한다]
[손님2가 웅에게 알은척한다] (지웅) 사실 어렸을 땐 그게 뭐가 부러웠겠어요?
(손님3) 얘, 넌 좋겠다
태어날 때부터 네 이름으로 된 가게도 있고 말이야
[손님3의 웃음] (손님2) 그러게 말이야
너도 커서 아버지 가게 물려받을 거니?
(손님3) 아이, 그럼
이름이 자기 이름인데 안 물려받겠어?
[손님들의 탄성]
(지웅) 어른들이나 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
[손님들의 웃음]
(어린 지웅) 야
너 한 번만 더 아까처럼 거짓말해 봐
응, 미안
여기서 뭐 해?
(어린 웅) 앉아 있는데?
왜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만 앉아 있어?
엄마가 '여기서만 놀아라' 했어
왜?
위험하다고
(지웅) 그리고 왕자라기엔 좀
어딘가 불쌍해 보이기도
[잔잔한 음악]
[웃으며] 웃기죠?
내가 누굴 불쌍해하다니
[어린 지웅이 신발을 탁 벗는다]
어쩌면 불쌍함보다
[새가 지저귄다]
외로움이었나?
[어린 지웅이 발을 쓱쓱 움직인다]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해 줄까?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린 지웅) 매일 밤 12시에 종이 세 번 울리면
[잔잔한 음악]
(지웅) 그냥 그렇게 친구가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친구가 생겼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어린 지웅이 부스럭거린다]
나 밥
또 밥 먹으러 가냐?
네가 강아지야? [어린 웅이 쓱 일어난다]
(어린 웅) 잘 놀았어, 내일 봐!
[어린 지웅의 한숨]
(지웅) 어차피 결국
혼자가 되니까요
[다가오는 발걸음]
근데 너희 엄만 언제 오셔?
(어린 지웅) 늦게 와
왜?
(어린 지웅) 일하러 가셨으니까
그럼 아빠는?
나 아빠 없어
그럼 너 밥은 누구랑 먹어?
(연옥) 자
많이 먹어, 지웅아
감사합니다, 아줌마, 아저씨
(호) [웃으며] 아이고 똘똘하네, 어?
야, 우리 웅이랑 이름도 비슷한데
아주 똘망똘망하네, 어?
하나, 둘, 셋 [연옥의 탄성]
- (호) 짜잔, 와 - (연옥) 와
[연옥의 웃음] (호) 아이, 뜨거워, 어유
(연옥) 자주 놀러 와서 밥 먹어
웅이랑 사이좋게 지내 줘서 고마워
우리 웅이는 뭐 줄까? 달걀?
달걀 줄까?
어디 보자, 어
[잔잔한 음악] 지웅이는 뭐 줄까?
(호와 연옥) -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 그래, 고기, 고기, 고기
- (연옥) 고기 슝 - (호) 고기
[연옥의 웃음] (호) 자, 나, 나는?
- (연옥) 알아서 드세요 - (호) 어 [연옥의 웃음]
(지웅)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부러웠던 건
(호) 먹어, 먹어 [연옥의 탄성]
(연옥) 음, 나는 마늘종
[호와 연옥의 웃음]
[연옥의 탄성]
(지웅) 난 절대 가질 수 없는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연옥) 웅이도, 뭐?
(호) 봐 봐
[새가 지저귄다] (교사1) 갈까요? 앞에 줄 서세요
[교사1이 말한다] (지웅) 그런데
[학생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학생5) 야, 나 오늘 엄마가 소시지김밥 싸 줬다
- (학생5) 같이 나눠 먹을래? - (학생6) 그래
[학생5가 말한다]
(어린 웅) 이거 네 거
(지웅) 최웅은 아니었나 봐요
(연옥) 다 먹었네?
잘 먹었습니다
(연옥) 아유 어쩜 이렇게 싹싹할까?
[어린 지웅과 연옥의 웃음]
얼른 먹어
지웅이랑 자전거 타러 갈 거라며?
(직원) 사모님
여기 간 좀 봐 주세요
(연옥) 네
얼른 먹어, 바나나도 먹고
[연옥의 웃음] (어린 지웅) 네
한 숟갈만 먹어 줘
[밝은 음악]
(지웅) 최웅은 당연하다는 듯 모든 걸 저와 나눴어요
[웅과 지웅이 대화한다]
[웅과 지웅의 웃음]
시간도
(웅) 야, 씨, 너 반칙이야
(지웅) 야 넌 나한테 안 된다니까, 어?
어, 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호) 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지웅과 호) - 아, 제가 도와드릴게요 - 아니야, 지웅아, 됐어, 아니야
- (지웅) 아이, 제가… - (호) 아이, 무거워, 놔둬
(호) 야, 최웅
넌 뭐 하냐? 안 돕고
아, 김지웅 힘세요
(호) 어이구, 저거, 저거
(지웅) 일상도
(호) 야, 그럼 지웅아
(지웅)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 효과음]
(웅) 야, 너도 와
- (호) 어, 그래, 저기 - (연옥) 그래, 지웅아
[호가 남자를 부른다] - (연옥) 이리 와서 같이 찍자 - (호) 아유, 감사합니다
(호) 일로 와, 지웅이 일로 와
자
아저씨, 우리 두 아들들 잘 나오게, 멋지게 좀, 좀, 예
(지웅) [피식 웃으며] 가족까지도
(남자) 자, 웃으세요
- (호) 지웅아, 웃어, 웃어 - (남자) 하나
(남자) 둘, 셋!
[카메라 셔터 효과음] (지웅) 덕분에 내 인생도
남의 인생에 기대어 행복을 흉내 낼 순 있었어요
[떠들썩하다]
[잔잔한 음악]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는
꼭 누군가가 등장하더라고요
[의미심장한 효과음]
뻔하죠
너무나 뻔한데
필요해 보여서
이거
돌려줘야 돼?
그럴 리가
고마워
[잔잔한 음악]
(지웅) 말도 안 되게 예쁜 거죠
[학생들의 박수]
(교사2) 다음은 교장 선생님께서…
(교장) 봄이 찾아오는 것을 시샘하듯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이 말한다]
(지웅) 근데 그건
내 눈에만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꼭 그런 식이죠
그런데, 뭐
문제는 없어요
[잔잔한 음악]
저는 그냥
한 걸음 빠져 있으면 돼요
[문이 덜컥 열린다] (지웅)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거 같으니까요
[문이 덜컥 닫힌다]
어, 오늘 정리할게요
(지웅) 좀 부탁드려요
[연수의 한숨]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졌네요
[한숨]
장도율 팀장님
네, 국연수 씨
방금 그게 무슨 말이죠?
이번 프로젝트에 누아 작가가 같이 한다는 말
말 그대로죠
제가 분명히 표절 의혹 아니라는 자료도 보내 드리지 않았나요?
- (연수) 근데도 그런… - (도율) 잠깐만요
(통역사) [프랑스어] 실례합니다
(도율) [한국어] 지금 저희한테 가장 필요한 게 뭐죠?
이슈
[긴장되는 음악]
지금 이 시점에 가장 확실한 방법인 거 같…
그렇지만 이건 명백히 계약 위반이고
아티스트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도율) 글쎄요
계약서는 이미 제가 한번 확인해 봤는데
큰 문제는 없는 거 같던데
'무례하다'라…
씁, 유난히 감정적이시네요?
어쩌면 두 작가분들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뭐가 문제인 거죠, 국연수 씨?
[도율의 한숨]
실망이네요
(도율) 그래도 국연수 씨는
나랑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공과 사를 구분을 못 하는 사람이었나?
아무튼 오늘 일은 다시 한번 회의를 해 보죠
사과하셔야 할 겁니다
네?
작가님께 반드시
사과하셔야 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팀장님
국연수 씨
(연수) 감정적인 게 아니라 공감입니다
[무거운 음악] 공감 능력 없이 지적 능력으로만 일 잘하는 건
자랑이 아니죠
공감 능력도 곧 지능입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님에 대한
예술에 대한 존중이 없으셨어요, 팀장님
오늘 일은 작가님을 만나 사과드리는 게
팀장님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주 진행 사항은 담당자인 제가 해야 할 일이고요
다시는 이런 깜짝이벤트는 없었으면 합니다
제가 장도율 팀장님이랑 같은 사람으로 평가된다니
제 지난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네요
[이훈의 탄성] (지운) [속삭이며] 제가 가 볼까요?
(이훈) 가지 마, 끝났어
[명호의 웃음]
(지웅) 최웅은 늘 이런 식이었어요
괜찮냐?
(웅) 응
(지웅) 평소엔 아무런 동요 없이 고요하다
국연수만 나타나면
모든 게 흔들리고 무너져 버리는
적어도 내가 알던 최웅은
[떠들썩하다]
(지웅) 원래 뭐든 흔들릴 게 없었어요
- (학생7) 슛! - (학생8) 잠깐, 잠깐
(지웅) 오케이 [학생9의 탄성]
아, 좀 쉬자
[학생들의 가쁜 숨소리]
야, 최웅
너도 그거 그만 좀 그리고 한 게임 뛰어
어?
(지웅) 걘 별로 세상에 흥미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지웅의 한숨]
(학생10) 야, 야, 국연수다
(학생11) 누구? [잔잔한 음악]
(학생10) 왜, 있잖아 이번에 1등으로 입학한 애
겁나 이쁜데 좀 싸가지 없다는
(지웅) 국연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웅이 찰바당 설거지한다]
[한숨]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최웅도 나처럼 딱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문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
[웅의 가쁜 숨소리]
모든 게 바뀌더라고요
나 여자 친구 생겼어
[잔잔한 음악]
(지웅) 또 헤어졌다고?
(지웅) 국연수라면
아주 작은 거 하나에도 모든 게 흔들리는 [술을 조르르 따른다]
[한숨]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지웅) 벌써 몇 번째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하, 매번 슬퍼하는 건 좀 오버 아니냐?
너 앞으론 두 번에 한 번씩만 슬퍼해
(지웅) 감정을 주체 못 하는 유치한 놈이 되어 버린 건
[피식 웃는다]
(지웅) 너
아니다, 다음에
[자동차 엔진 작동음]
(연수) 나 왔어
(자경) 잉?
아이, 늦는다더니만 어쩐 일이여? [연수가 신발을 달그락 벗는다]
(연수) 늦는다고 했으면 방에 들어가 있지
왜 또 나와 있어?
[자경의 웃음]
(자경) 내 새끼 들어오는 건 보고 자야지
[자경의 웃음]
아이고, 야
그래 입으니까 참 이쁘다, 내 새끼
할머니 손주 아무거나 입어도 예뻤거든요?
[웃음]
(연수) 아이고, 뭐 하고 있었어?
(자경) 잉, 그냥 있었지, 뭐
[연수의 한숨]
아이, 그랴
그, 파티인가 뭔가 그건 워뗘?
다들 어디서 배우기라도 한 건지
어쩜 그렇게 다들 여유롭고 멋있더라
[피식 웃는다]
[무거운 음악]
[탁 소리가 울린다]
할머니는 계속 혼자 있었어?
(자경) 응?
응, 뭐, 그렇지, 뭐
[연수의 의아한 숨소리]
왜 요새 통 지나 할머니가 안 놀러 오실까?
뭐, 바쁜가 보지, 뭐
할머니 또 싸웠지?
아이, 싸우긴 뭘 싸워?
아, 그 할망구가 하도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서 그냥
(자경) 내가 그냥 바른 소리 좀 했지, 뭐
싸우긴, 뭘
(연수) 싸웠네, 싸웠어, 어?
또 미운 말 골라 해 가지고
지나 할머니 마음 상하게 하셨어, 그렇지?
(자경) 아, 아니라니께?
아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씻고 자
[자경의 헛기침] (연수) 어쩜 할머니랑 나랑 이렇게 닮았을까?
그거 좀 참고 사이좋게 지낼 수 없어?
아, 내일 지나 할머니 찾아가 봐
아이고, 됐어
(연수) 그럼 내가 모셔 온다
아, 됐다니께
아, 안 올라고 할걸?
[잔잔한 음악] [연수가 피식 웃는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고집 피우지 말고 먼저 사과하시죠?
[웅의 헛기침]
고집 피우지 말고 먼저 사과하지?
뭐가?
씁, 지금쯤이면 본인이 잘못한 거 다 알고 있을 텐데?
(웅) 또 자존심 때문에 먼저 연락은 못 하겠고
또 먼저 찾아오지도 못하겠고
어떻게 해야 되나
머리를 계속 굴리고 있을 게 뻔한데
내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찾아왔으니까
기회 줄게, 해 봐
[흥미로운 음악]
미안하다는 말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
잘 안 해 봐서 못해
(웅) 그럼 앞으로 많이 해 보도록 해
그럼 다들 얕보고 무시한다고
지고 싶지 않아
[한숨]
갈게, 그럼
[연수의 다급한 숨소리]
[속삭이며] 미안
내가 잘못했어
(웅) [속삭이며] 뭐라고? 잘 안 들려
아, 내가 미안!
(연수) 하다고
[웅이 피식 웃는다]
[감성적인 음악]
멍청아
(웅) 나한텐 그래도 돼
내가 계속 이렇게 찾아올 테니까
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돼
어차피 항상 지는 건 나야
[웃음]
[한숨]
(연수) 화가 많이 났겠죠?
그 성격에 또 혼자 참고 있을 텐데
[약통을 탁 내려놓는다]
[한숨]
[쿵 소리가 난다]
(채란) 어디 나가시나 봐요?
(연수) 아, 그… [연수의 웃음]
해결해야 될 일이 있어서
잠깐 최웅 좀 만나려고요
아, 어제 좀 일이 있었는데
사과를 좀 하러…
아, 그렇다고, 뭐 제가 잘못했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작은 오해가 있었는데
어, 최웅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 나빴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좀 먼저 가서 얘기를 좀 해 보려고요
(연수) 어 집으로 가면 있겠죠, 뭐
(채란) 연락은 하셨어요?
(연수) 어…
어제 하기는 했는데
일찍 잠들었나 봐요
다시 해 보죠, 뭐
[통화 연결음]
아이, 근데 이거는 제가 진짜 먼저 잘못한 게 아니거든요
얘가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오해한 거지
참, 아이, 웃겨
얘는 내가 진짜 그런 짓 할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아이, 근데 그렇다고
내가 뭐,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둥
그런 얘기는 할 필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어?
내가 뭐, 자기 인생을 얼마나 대단하게 망쳤는데?
[연수의 한숨]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흥미로운 음악]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근데 그러면
내가 굳이 먼저 찾아갈 이유가 없지 않나?
응? 나중에 일은 정리해서 연락하면 되는 건데
그렇죠?
마음 바뀌었어요, 안 갈래요
(솔이) 어이!
국연수!
지금 이상한 건
[한숨]
이 혼자 사는 집이 이렇게 조용한 게 당연한 건데
(웅) 제가 지금 그걸
굉장히 어색하다 느끼는 거예요
[문이 덜컥 열린다] (은호) 형!
제가 벌써 저거에 익숙해진 거죠
[문이 탁 닫힌다]
[한숨]
(은호) [가쁜 목소리로] 어, 형 안녕?
형
어제 있었던 일 다 들었어
빨리도 알았다 [은호의 한숨]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쯧, 그러니까
나도 그래서 지금 어이없는 중이야
나만 빼고 파티를 가?
[은호가 씩씩댄다]
(은호)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날 두고 가?
내가 어제 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TV 보고 있었던 걸 뻔히 봤으면서
그렇게 족제비처럼 차려입고
혼자 몰래 파티를 가?
(웅)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은호의 못마땅한 신음] 넌 그리고 어저께 그 일을 알았으면
나한테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 뭐, 뭐가? - (웅) 뭐가 뭐긴 뭐야?
누아 붙여서 나 뒤통수친 거
(은호) 아, 그거?
그거 뭐, 사실 괜찮지 않나?
아니, 둘이 그렇게 드로잉 쇼 하면은
형이 그 누아 자식 바로 빡 밟아 줄 수 있는 거고
표절 의혹 싹 없애고
우리한테 나쁠 거 없지
(웅과 은호) - 뭐? - 물론 이건 내가 생각만 한 거고
그쪽에다 내가 아주 지랄을 해 놨지
(은호) '아니, 어떻게 갑자기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칠 수 있냐'
'우리가 아주 어렵게 결정한 건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아주 곤란하다'
이걸 아주 차갑고 냉정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말해 놨지
오
제가 일을 이렇게나 꽤나 잘하는
유능한 매니저입니다
[웃음]
(웅) 내 카메라다
아무튼 그건 더 생각해 보자
(은호) 아이, 형이 본업에서는 얼마나 끝내주는데
그까짓 피라미 한 마리쯤이야 바로 공개 망신 줄 수 있지
저, 근데 형
이, 뭔가 좀
아티스트적인 그런 그림이 좀 부족한 거 아니야?
(웅) 어?
아니, 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은호) 이 영상 나가면
형 맨날 먹고 놀고 자고 그런 것만 나갈 거 아니야
형 좀 뭔가 이렇게
프로페셔널한 그런 모습 좀 찍어 둬야 되지 않겠어?
야, 야, 야
난 인위적이고 막 꾸며 내는 거 그거 딱, 딱 싫어
(웅)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나가야 그게 다큐지
저거 괜히 촬영한다고
괜히 안 하던 짓 하고 막 그러는 거 난 진짜 질색이다
야
너 행여나 나한테 그런 가식적인 모습 기대하지 마
[익살스러운 음악]
저는 주로 시간이 나면
(웅) 이렇게 틈틈이 그림을 보러 와요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 것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좀 중요하잖아요?
[웅이 입소리를 쩝 낸다]
아마 10년 전 영상에선
제 이런 모습이 담기지 않았을 거예요
음, 그땐, 뭐랄까
이 한국식 교육 특유의 철저한 주입식 [카메라가 툭 꺼진다]
획일화된 교육 방향으로 제 재능을 펼치기엔
좀 좁았다고나 할까?
[웅이 피식 웃는다]
아마 이런 모습이
제 원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 (지웅) 끝났어 - (웅) 응?
(지웅) 아, 미안하다 이거 배터리 나갔었다
뭐, 안 찍힌 거야?
(지웅) 어, 배터리 갈아야겠다
야
(웅) 이렇게 중요한 걸 찍어야지
너 아침부터 괜히 이상한 것만 찍고…
(은호) 카메라도 찍기 싫나 보지, 뭐
어유, 얘 토한 거 아니야? 괜찮아?
[익살스러운 음악] 죽을래?
(지웅) 나 차에 갔다 올게
(은호) 아, 아니야, 차 키 줘 내가 갔다 올게
뭐, 배터리 갖고 오면 되지?
(지웅) 응, 생큐
(은호) 갔다 올게
[휴대전화 진동음] [지웅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지웅) 물론
이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
(지웅) 너 연수한테 연락 없어?
왜?
뭐, 어제 일도 있고
아무튼 뭐, 만나서 풀든가 해야지
[헛웃음]
내가 알아서 해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이왕이면
카메라 앞에서 해 달라고
[못마땅한 숨소리]
은근히 알차게 뽑아 먹는다?
됐어
[지웅의 한숨]
(지웅) 더 끼어드는 게 아닌데
너 괜히 미안해서 피하는 거잖아
- 뭐? - (지웅) 어제 그 일
별로 상관없었잖아
(지웅) 너 그런 걸로 화내고 그런 애 아니잖아, 너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애초에 일하고는 상관없이 화낸 거잖아
연수가 그 일을 알고 계획했을 애가
(지웅)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괜히 연수한테 그동안의 화풀이 한 거잖아
(지웅) 하지 않아도 될 말인데
미련 때문인 거
보인다고, 다
(지웅)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요?
[무거운 음악]
너 갑자기 관심이 좀 지나치다?
(웅) 촬영 때문은 아닐 테고
(지웅) 글쎄, 갑자기는 아닐 텐데
네가 뭘 아는데?
(지웅) 내가 뭘 모를 이유도 없지
(지웅) 뭘 확인하고 싶은 걸까요?
[휴대전화 진동음]
(솔이) 야호
[연수의 한숨] 마침 잘됐지 뭐야?
오늘 저녁에 단체 예약이 있어 가지고
준비할 게 많았거든
그러게 사람 좀 쓰라니까
(연수) 이거 어떻게 혼자 다 해?
야, 사람 쓰면 월급은 누가 주냐?
[칼을 덜그럭거리며]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오늘 쉰다며
모처럼 쉬는 날 꼭 부려 먹어야겠어?
(연수) 그리고 나 지금 저기, 촬영하고 있잖아
(솔이) 이런 그림도 너무 좋지 않나요?
너무나 일상적이잖아요
어차피 계속 연수 찍으시는 거잖아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연수) 언니가 뭘 찍는지 뭘 알아?
근데 이거 뭐야?
대박
산낙지야?
오늘 새벽에 목포에서 올라온 놈들이야
(솔이) 이따 손님들 거 빼놓고
탕탕이 한 접시 콜?
[숨을 씁 들이켠다] [봉지를 탁 내려놓는다]
뭐 하면 되는데?
[흥미로운 음악] 연수하고는 한 10년 됐죠
[연수가 부스럭거린다] 대학에서 만났거든요
(솔이) 다들 아시다시피
얘가 성격이 좀 [음 소거 효과음] *랄맞잖아요
그래서 한바탕 화끈하게 싸우고 친해졌죠
제가 원래 이런
[음 소거 효과음] *랄견들하고 성격이 잘 맞아요 [개가 짖는 효과음]
(연수) PD님, 왜 계속 이 언니 찍고 있는 거예요?
(솔이) 저도 그 영상 엄청 팬이었는데
저 댓글도 엄청 달았어요
닉네임 이작가야
그게 바로 저예요
제가 원래 드라마 작가였거든요
(연수) PD님, 저 찍으라니까요, 저
(솔이) '전지적 사이코 시점' 이라는 드라마를 아세요?
그걸 제가 썼잖아요
그걸로 번 돈을 합쳐서 이렇게 작은 술집을 차렸어요
사실 원래 동업자가 있었어요
그때 당시 사귀었던 남자 친구였는데 [연수가 양파 껍질을 쓱쓱 깐다]
PD님이 안 물어보고 있잖아
권리금 넣던 날 그 새끼가 바람피운 걸 들켰지 뭐예요?
멍청한 놈, 들키긴 왜 들켜?
그래서 바로 자르고
무리해서 저 혼자 이렇게 열었어요
(연수) [한숨 쉬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야
(솔이) 그 새끼도 지금 이거 보고 있을까요?
진섭아
보고 있냐?
나 오늘 예약 손님 열 명 예약받았다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그럼 솔이 씨도 최웅을 잘 아시나요?
(솔이) 그럼요, 너무 잘 알죠
둘이 대학 다닐 때…
(연수) 여기 왜 이렇게 양파가 많은 거야, 인간적으로다가 [솔이의 옅은 웃음]
뭐, 중국집이야?
PD님, 둘이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세요
제가 인터뷰해 드릴게요
대신에 저희 가게 이름만 쪼끔 잘 나… [연수가 말한다]
(은호) 형, 배터리
(지웅) 어
(은호) 근데 웅이 형은?
[지웅이 지퍼를 직 잠근다]
(지웅) 아이고 일 생겼다고 먼저 갔어
(은호) 어?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 있나?
아, 근데 나 버려두고?
(지웅) 나도 버려진 거 안 보이냐?
(은호) 와, 웅이 형 요새 그냥 막 나가네?
아, 안 되겠다
내가 매니저로서 한번 엄중하게 타이를게
[지웅이 피식 웃는다]
근데 형은 어디로 가?
[휴대전화 진동음] (지웅) 나야, 뭐…
- 어? 잠깐만 - (은호) 응?
[휴대전화 조작음]
예, 선배, 웬일이에요?
지금요?
오늘?
(지웅) 아니, 그걸 무슨 한 시간 전에 얘기해요?
아, 그냥 조연출 보내요
[한숨 쉬며] 아니 채란인 안 되고…
[지웅이 혀를 쯧 찬다]
하, 알겠어요, 내가 갈게요
아, 아, 형 그, 촬영 팀 붙여 주는 거죠?
네
(은호) 뭐야? 형도 무슨 일 생겼어?
(지웅) 어, 야, 나 먼저 간다, 어
(은호) 아이, 저…
형, 그,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에 나 내려다 줄 수 있지 않을까?
(치성) 우리 그, 다큐 영상 찍기로 했잖아
PD님이셔 [문이 달칵 닫힌다]
(지웅) 안녕하세요
- (지웅) 전달드려 - (태훈) 네
(지웅) 예, 저희가 이번에 700회 특집으로
스페셜 영상을 촬영하는데요
축하 메시지 그리고 시청자분들께 간단하게
인사말 정도 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엔제이) 여기 PD님 바뀌셨어요?
(지웅) 아, 아니요 오늘은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
(지웅) 저희는 준비됐으니까요
준비되시면 촬영하겠습니다
(엔제이) 저, PD님
우리 알지 않아요?
(지웅) 예?
(엔제이) 저 몰라요?
전 국민이 알 텐데요
[웃으며] 아니, 아니
나 4년 전에 이거 찍고 있을 때
조연출로 계셨던 그 PD님 아닌가?
아, 예, 맞습니다
맞죠?
(엔제이) 아, 근데 왜 초면인 척하세요?
그것도 되게 차갑게
(지웅) 아, 꽤 오래돼서 기억 못 하실 줄 알았어요
[웃음]
제가 좀 뜻밖에 기억력이 있거든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엔제이) 제가 그때 진짜 어렸을 때라
[웃으며] 엄청 얼타고 있었는데
구석에서 얼타고 있는 PD님 보면서
참 위로 아닌 위로가 됐거든요
(지웅) 아,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상 리뷰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엔제이 씨
그때 저 사실 기억이 거의 없어요
촬영 스케줄이 워낙 많기도 했고
날 찍고 있는 카메라가 너무 많아 가지고
어디서 온 건지 구분도 못 했거든요
아, 생각났다
(엔제이) 아, PD님 저 그때 명상하는 거 찍고 있을 때
PD님이 구석에서 주전자 들고 있다가 졸아 가지고
떨어트려서 엄청 혼났었잖아요 [흥미로운 음악]
[태훈이 풉 웃는다] 그때 저 사실 졸고 있었거든요
너무 졸려 가지고 명상한다고 거짓말한 거예요 [지웅이 살짝 웃는다]
아, 그때 그 주전자 소리에 잠이 확 깼었는데
(지웅) 아…
주전자 얘기 말고 다른 얘기 해 볼까요?
그때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셨네요, PD님?
그럼 요즘 무슨 프로그램 찍고 계세요?
이제 직접 촬영도 하시는 거 같은데
예, 뭐
그냥 특집 하나 하고 있어요
오, 특집?
무슨 특집이요?
국연수 닮은 산낙지
(연수) 생각해 보니까
노동의 대가치곤 너무 초라한 거 같다
(솔이) 많이 먹어
소주 한 병 갖다줄까?
(연수) 응 [전화벨이 울린다]
[솔이의 놀란 숨소리] [솔이와 연수의 힘주는 신음]
(솔이) 잠시만요
[한숨] [수화기를 달칵 들며] 네 이작가야입니다
네, 6시 반, 열 분
성함이?
네
취소요?
[흥미로운 음악] [힘없는 목소리로] 네
어쩔 수 없죠
네
(연수) 이거는 내가 계산하고 먹을게
[솔이의 한숨]
(솔이) 아주 망해 가는 술집에다가 불을 지르네!
아유!
이럴 거면 왜 낙지를 시켜, 낙지를?
저기, 혹시 그, PD님, 그
이걸 찍어서 혹시, 그
보, 그거 뭐야?
고발하는 프로그램에도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스트레스받아
저걸 다 어떡하냐?
오늘은
낙지탕탕이로 유도를 하자
손님들 오면 낙지탕탕이만 한다고 해
우리 집에 손님 오는 거 봤냐?
뭐, 한 두 명?
한두 명?
뭐, 어쩌겠냐?
많이 먹어
(솔이) PD님도 진짜 그냥 같이 와서 드세요
[솔이의 한숨]
뭐, 부를 사람 없냐?
내가? 있겠어?
너 왜 친구 나밖에 없어?
그러는 언니는?
(솔이) 나
전 남친은 많아
근데 넌 전 남친도 하나밖에 없잖아
(채란) 저기…
부를 사람 있는데
[흥미로운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어, 촬영 잘하고 있어?
(지웅) 어
응
어, 잘됐네
나 촬영 끝나고 갈게
응
인턴, 너 그때 걔 맞지?
네, 임태훈입니다
들어가, 오늘은 여긴 내가 마무리할게 [지웅이 종이를 부스럭거린다]
- 아니, 저… - (지웅) 두 번 말 안 해, 들어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솔이가 낙지를 탕탕 내려친다]
(솔이) PD님, 진짜 센스쟁이
진짜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제가 오시는 분들 계산은 진짜 딱 낙짓값만 받을게요
술은 프리, 공짜
(연수) PD님 일로 와서 같이 한잔해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 밥 한 번도 제대로 같이 못 먹었잖아요
(채란) 아, 괜찮습니다
에이, 잠깐 끄고 와요
(연수) 이거, 이거
혹시 낙지 좋아하세요?
아이고 [낙지가 찰팍 떨어진다]
(솔이) 아, 저 계집애, 진짜
그러니까 왜 다 큰 어른을 먹여 준다 그래 가지고 [문이 달칵 열린다]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
[문이 달칵 닫힌다] 어서…
어?
(웅) 어?
[연수의 힘주는 숨소리]
(솔이) 너, 너 오랜만이다?
[감성적인 음악]
(연수) 갑자기 이렇게 만나는 건
계획에 없던 건데요
(연수) 뭐야? 네가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추가 촬영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은호) 난 낙지탕탕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은호) 웅이 형을 처음 만난 건
제가 웅이 형네 아버지 가게에서 알바 뛸 때였죠
그때 허구한 날 평상에 늘어져 있는
백수 나부랭이가 하나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 나부랭이가 그 집 도련님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은밀하게 접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웅) 다 들린다
[잔을 탁 놓으며] 근데 저 형이
가끔 종이 쪼가리에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손가락을 딱 튀기며] 내가 '아, 이거다' 하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챘죠
'이거는 되는 사업이다'
'이거 된다'
그래서 제가 본격적으로 형 그림 그릴 때
매니저 일 다 봐줬죠
(은호) 제가 원래 뭐 하나를 해도 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거든요
(웅) 아무도 안 물어본 거 같은데
뭐, 아무튼 제가 웅이 형 옆에 제일 오래 붙어 있으니까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다 저한테 물어보시면 돼요
언제가 궁금해요? 뭐가 궁금해요?
하는 일? 연애사?
(은호) 잠시만요
근데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개수작 부리지 말아요
(은호) [웃으며] 아, 예 죄송합니다
(솔이) 맛있게 먹어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웅의 한숨]
(연수) 아무래도 제가 먼저 사과를 해야겠죠?
그렇죠
조금이라도 더 어른스러운 제가 잘 이야기해 봐야죠
야, 최웅, 어제는…
(웅) 미안
어제 괜히 쓸데없는 말 한 거
못 들은 걸로 해
그 순간 화가 나서 나도 아무 말이나 뱉은 거니까
(연수) 어
아이, 그래도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미안…
(웅) 네 잘못 아닌 거 알아
그러니까 괜찮아
[웅이 술병을 탁 잡는다] [무거운 음악]
(연수) 어
[연수의 어색한 웃음]
그, 우리 쪽에서도 소앤 쪽에서도
공식적으로 너한테 사과할 거야
그리고 내가 이거 프로젝트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테니까…
할 거야, 나
어?
그거 누아 작가랑 한다고
뭐?
그거 왜?
딱히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이, 그건 그렇지만…
(웅) 그리고 사과 안 해도 돼
이미 만나고 왔으니까
- 누굴? - (웅) 장도율 팀장
그 사람을 만났어? 언제?
아까 연락 와서
만나서 뭐라고 했는데?
너한테 사과했어? 미안하다고?
(연수) 너는? 너는 뭐라고 했는데?
너 또 그냥 어물쩍 넘어간 거 아니야?
불쾌한 건 불쾌하다고 말하고 제대로 사과받아야…
(웅)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무거운 음악]
(연수) 그런데
오늘 최웅은 왜
낯선 느낌인 걸까요?
(연수) 어
그래
아무튼
오픈일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까
(웅) 제대로 준비해서 잘 협조할게
그동안 유치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연수) 물론
이제야 다 제대로 되고 있는 건데
(웅) 이거 촬영 한 달
하기로 한 거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 다할게
별일 없이 잘 마무리하자
(연수) 무슨 기분이죠? 이게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연수) 왜 뭔가 비틀어진 기분일까요?
[마우스 클릭음]
[음산한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뭐 해요? [마우스 클릭음]
[익살스러운 음악]
놀라는 척이라도 좀 해 줘라 이 재미없는 놈아
[동일이 휴대전화를 탁 놓는다]
아, 왜 또 주말인데 나오셨대?
[혀를 쯧 찬다] (지웅) 뭐야?
머리 잘랐네요?
소개팅은? 까였어요?
머리가 가발 같대
(지웅과 동일) - 아… - 넌 이 시간에 왜 들어와 있냐?
오늘 찍어 둔 거 백업 좀 해 두고 가려고요
[키보드 조작음]
(동일) 야
오태진이가 너한테 땜빵시켰다며?
그거 채란이 시키지, 왜?
걔도 지금 현장 나가 있어요
(지웅) 아, 그리고
팀원 좀 넣어 달라니까 인턴을 보내요?
아유, 그래서 네가 다시 돌려보냈잖아
그냥 다시 보내요
(지웅) 다른 팀 뺑뺑이 돌리지 말고
그냥 우리 팀만 나오게 해요
(동일) 새끼
아이, 은근 정 많은 놈이라니까?
어? 에이
어때, 이건? 좀 잘돼 가냐?
아, 무슨 통 소식이 없어
너는 왜 너 혼자 다 해 처먹으려 그래?
잘되지도 잘 안되지도 않습니다
(동일) 아, 나 걔들 궁금한데
야, 현장 한번 놀러 갈까?
어때, 너는? 재밌어?
[입소리를 쩝 낸다]
글쎄요, 뭐
[한숨 쉬며] 괜히 한다고 했나?
[매미 울음] (지웅) 아저씨, 그거 재밌어요?
응? 뭐, 뭐가?
카메라 뒤에서 사람 찍는 거요
(동일) 아, 아, 이거?
재밌지
원래, 그
남의 인생 들여다보는 게 제일 재밌어
세상의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고 보고 겪다 보면
별게 없는 내 인생이 고마워질 때가 있거든
왜?
정말 별거 없는 내 인생이 고마워질 때가 와요?
[잔잔한 음악]
(지웅) 왜요?
그렇다고 재미없진 않으니까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시죠?
내 눈 원래 이래
야, 그리고 좀만 기다려 봐
곧 재밌어질 거야
(동일) 그럼 내가 왜 너한테 이 일을 맡겼는지 알게 될 거고
(지웅) 그냥 짬 처리 시킨 거 아닙니까?
(동일) 이 새끼가 말을 해도…
넌 인마, 선배의 바다같이 깊은 마음도 모르고
너 인마, 알아내 봐, 그거 숙제야
알았어? 나 간다
(지웅) 선배님, 술 먹었어요?
[한숨]
(솔이) 야
이거 서비스 [웅의 탄성]
이거 바지락 싱싱한 건데 간단하게 술찜 했어
너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주는 서비스야 [웅이 피식 웃는다]
너 얼굴 좋아졌다?
이게 얼마 만이지?
너희 둘이 헤어지고…
[솔이의 어색한 웃음] 그러니까 그…
아, 졸업하고 한 번도 안 봤으니까
아무튼 꽤 됐다, 그렇지?
[젓가락을 달그락 내려놓으며] 그러게, 꽤 오래됐네?
(솔이) 그래서?
너 꽤나 성공했다며?
[웅이 피식 웃는다] (은호) 아유 '꽤나'가 아니라 '엄청'이죠
우리 형이 얼마나 잘나가는데, 그렇지?
(솔이) 그, 너 그림 그리지 않았었나?
그걸로 성공한 거야?
(은호) 아, 그림으로 또 씹어 먹고 있죠
아니, 연수 누나도
우리 형이랑 같이 일하려고 먼저 찾아온 것만 봐도 [웅이 피식 웃는다]
말 다 했죠, 뭐
[흥미로운 음악] 아니, 그러니까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알 수가 없어요, 그렇죠?
아니, 누나랑 형이랑
요렇게 헤어지고 나서
이게 이렇게 바뀌게 될 줄 누가 알았…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솔이) 나오세요
은호 씨, 그, 담배 피워요?
(은호) 아니 안 피우는데 나가려고…
(솔이) 나도 안 피우는데 일단 나오세요 [은호가 호응한다]
[솔이와 은호가 대화한다] [문이 달칵 열린다]
[웅의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아주 저것들이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가네
[웅의 한숨]
(연수) 아까부터 계속 왜 이러는 거죠?
(웅) 또 무슨 질문 하셨죠?
(연수) 아직 화가 나 있는 걸까요?
아니면…
(채란) 영상으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두 사람이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된 거잖아요
기분은 어떠셨나요?
(웅) 시간이 꽤나 오래 지나서
잊고 지내던 부분도 많았는데
뭐, 다시 만나니까 의외로 꽤 반갑기도 하고
물론 영상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살가운 사이는 아니라서
[차분한 음악]
(연수)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요?
(채란) 연수 씨
연수 씨
(연수) 네
(채란) 연수 씨는요?
아…
저도 뭐, 비슷했어요
반갑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고
[옅은 한숨]
[웅의 한숨]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 (명호) 어, 오셨어요? - (예인) 오셨어요, 팀장님
(명호) 아, 팀장님
오늘 아침 고오 작가 쪽에서
이번 컬래버 작품 콘셉트안 보내 주셨습니다
드라이브에 공유해 드렸으니까 확인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연수) 예
아, 맞다, 누아 작가는 아직…
알겠습니다, 확인해 보고 바로 팀 회의 진행하죠 [마우스 클릭음]
- (명호) 예, 알겠습니다 - 네
"드로잉 쇼 콘셉트"
'100시간'?
(예인) 이 작가님
정말 100시간 동안 작업하신다는 거예요?
(명호) 그러니까 말이야 [명호의 힘주는 숨소리]
그동안 작업하던 방식을 처음으로 보여 주시는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100시간 동안 작업하는 걸
그대로 영상에 기록하시겠대
(예인) 5일 동안 그게 가능해요?
[놀라며] 어머나
(명호) 5일 동안 작업하고 남은 시간은
오픈식 당일 날 관객들 앞에서 그리겠다는 건데
야, 아니 이게 사람이 가능한 건가?
(지운) 그럼
하루에 열아홉 시간씩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그림만 그리신다는 거네요?
(명호) 뭐, 그런 거지 [예인의 탄성]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작가님이시네?
[감성적인 음악]
[연수가 말한다]
(연수) 어, 현장 세팅 준비 하나하나 꼭 확인해 주시고요
아, 명호 씨는 장 팀장님 마크 부탁드리고요
(연수) 행사 개요는 오프닝 세리머니, 오프닝
라이브 드로잉 쇼 그다음에 클로징 및…
다음으로는 행사 세부 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리모컨 조작음]
오프닝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한 다음에
기념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은호가 통화한다]
(은호) 카메라도 위에다가 하나
그리고 옆에다가 하나 이렇게 해서 준비 다 되는 대로…
네, 네, 네, 네
[버튼 조작음]
[달그락거린다]
아, 제가 좀 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호) 예, 여기 인제 보시면, 인제
'감자탕', 예, 그렇습니다
감자탕은 뭐, 사실, 이거 장사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창식) 형, 오늘 저녁에 감자탕이나 먹자 [호가 인사한다]
(호와 창식) - 그냥 가족들이 맛있게 먹던 건데 - 아유, 씨
(호) 닭발도 한번 가시죠, 닭발
(창식) 닭발은 무슨…
(호) 해물탕, 해물탕
- (창식) 아유, 저 형 신났네 - (호) 어, 어, 어
[가게 안이 떠들썩하다]
[놀라며] 어서 오세요!
(손님4)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요
(솔이) 네, 퇴근하고 오신 거예요? [손님4가 호응한다]
편하게 보시고 얘기해 주세요
(손님4) 네
(손님5) 감사해요 너무 잘 먹었어요
[솔이와 손님6이 대화한다]
[감성적인 음악]
[버튼 조작음] [웅의 피곤한 신음]
[피곤한 숨소리]
[웅의 한숨]
[한숨]
[버튼 조작음]
[한숨]
[신발을 달그락 벗는다]
할머니, 나 왔어
(자경) 피곤하지?
[웃으며] 쉬어
[한숨]
(연수) 아유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연수가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연수의 한숨]
[잔잔한 음악]
(도율) 노출 빈도 높일 수 있게 잘 좀 확인해 주시고요
(연수) 네
(도율) 보도할 곳으로
국연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수) 이쪽 공간 다 나올 수 있도록
보도 자료 내겠습니다
- 예, 그럼 다음 보시죠 - (연수) 네
[그릇이 달그락거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예인) 팀장님
팀장님
[예인이 살짝 웃는다] 아, 예인 씨
팀장님도 얼른 퇴근하세요 내일 중요한 날인데
예인 씨도 오늘 고생 많았어요
들어가서 푹 쉬세요
(예인) 아, 근데
작가님은 얼마나 작업했을까요?
진짜 성공하셨을까요?
뭐…
잘했을 거예요
(예인) 음…
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드셨겠다
아휴
예술이란 진짜 어려운 거네요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성적인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숨을 씁 들이켠다]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통화 연결음]
(지웅) 어, 무슨 일이야?
아, 지웅아
웅이는 어때? 그…
괜찮아?
(지웅) 어 아까 내가 보고 왔을 때까진
아직까지 살아 있었어
아, 그래?
(지웅) [피식 웃으며] 걱정되면 전화해 봐, 괜찮아
[웃으며] 아니야, 아니
그, 은호가 웅이랑 같이 있는 거지?
아니, 아까 나 나올 때 같이 나왔지
(지웅) 뭐 마무리는 혼자 하고 싶대
그래도 괜찮나?
(지웅) 안 죽어
아, 너 잘 모르겠구나?
걔 원래 작업할 때 그래
아…
알았어
아, 너도 내일 오지?
응, 내일 보자, 그럼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한숨]
[한숨]
[펜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한숨] [컵을 탁 내려놓는다]
[버튼 조작음]
[힘주는 숨소리]
[힘겨운 숨소리]
내일 행사를 위해서 확인 전화 해 보는 건
당연한 거잖아, 응
생사 확인
[한숨]
[흥미로운 음악] 아, 아니야
또 그 예민한 성격에
[휴대전화를 탁 접으며] 난리 칠 수도 있어
아니, 그러니까, 어? 사람 걱정 좀 안 하게
자기가 먼저 진행 사항 같은 거 보고하면
어디가 덧나나? 치
하여간 답답해 가지고
(연수) 아휴, 씨
내가 뭔 상관이냐?
신경 끄련다
[한숨]
[풀벌레 울음]
(연수) 그러니까
제가 왜 여기 서 있는 걸까요?
[한숨]
아니죠 [흥미로운 음악]
이건 어디까지나
내일 행사에 가장 중요한 작가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죠
작가가 최웅이 아니었어도
저는 충분히 이렇게 행동했을 거예요 [초인종이 울린다]
아니, 오히려 더 잘 챙겨 줬겠죠
그렇죠, 이건 어디까지나 일을 위한 호의일 뿐이에요
[초인종이 울린다]
[연수가 발을 탁 구른다]
[노크한다]
(연수) 어…
벨 눌렀는데 답 없길래 전화했는데
아, 나 방해하러 온 거 아니고
내일 행사 최종적으로 확인하다가 너
[발랄한 음악] 아니
작가님도 확인하는 게 내 일이기도 하니까
회사에서 시켜서, 응
이거 대추차
너 예민할 때 잠 못 자니까
이것도 회사에서 시켜서
이거 먹고 푹 자라고
95시간
(연수) 응?
방금 95시간 다 채웠다고
나머지는 내일 사람들 앞에서 그릴 거야
진짜?
(연수) 그거 다 작업했어?
[웃으며] 야, 진짜 너 멋있…
암튼
이거 먹고 푹 자, 얼른
[숨을 내뱉는다] (연수)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았어요
(연수) 나 갈게
(연수)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했어요
그런데
자고 갈래?
[감성적인 음악]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컵을 탁 내려놓는다]
하겠습니다
누아랑 하든 누구랑 하든 상관없이
생각보다 더 현명하신 분이네요, 작가님
그럼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도율) 그날 일은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 뭐
저도 그날은 날이 서 있었으니까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니라 국연수 씨에게만 그러셨죠
(웅) 그…
개인적인 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뭐
작가님이라면, 말씀하시죠
아닙니다
[헛기침]
참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네요, 작가님
작가님이 국연수 씨를 바라볼 땐
끝난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닌 거 같던데요?
그게 무슨…
(도율) 작가님 빼곤 모두가 알 텐데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망치지만 않는다면, 뭐
전 뭐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국연수 씨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고요
국연수가요?
아까 하려던 질문에 대한 답은
(도율) 국연수 씨
많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요
물론 좋은 파트너로서요
생각하시는 그런 쪽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감성적인 음악] (연수) 아, 너도 내일 오지?
내일 보자, 그럼
그래
[지웅의 한숨]
"비활성화"
[마우스 클릭음]
(연수) 어제 일을 꺼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웅) 이제야
국연수를 제대로 보는 거 같아요
(누아) 옆방에선
또 다른 작가님의 드로잉이 진행이 될 텐데
아마 빠져나가기가 쉽진 않을 거예요
(연수) 내가 오늘 최웅이 그림 그릴 때 눈을 봤는데
걔 눈에는 영혼이 가득한 거 같더라고
(엔제이)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지웅) 너 아직 최웅 좋아하냐?
.그 해 우리는↲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