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6
자고 갈래?
(연수) 우리가
헤어져야 했던 이유
[떠들썩하다]
(지연) 연수, 매점 가자
아, 미안, 나 별로 생각 없어
아, 왜? 내가 바나나우유 쏠게, 응?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다른 애들이랑 갔다 와
- (지연) 그래 - (영지) 야, 지연!
(영지) 빨리 와, 매점 가자
(지연) 간다
(영지) 빨리 와
쟤 또 안 간다지?
뭐 하러 매번 물어봐?
- (지연) 들려 - (영지) 아, 상관없어
(영지) 걔 좀 그만 챙겨 [매미 울음]
걘 우리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자기만 생각하잖아
(혜수) 그래
국연수 걔가 언제 한 번이라도 뭐 사 준 적 있냐? [잔잔한 음악]
매번 받아먹기만 하지
(지연) 에이, 그래도 걔가 사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
(영지) 그래도 그게 계속 반복되면
염치가 없는 거지
지난번에도, 어?
너는 걔 생일 선물 다 챙겨 줬는데
(연수) 가난이 너무 싫은 건 [영지가 말한다]
남에게 무언가 베풀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특히 날 때부터 따라다닌 가난은
(영지) 내가 했겠냐? [영지의 웃음]
(혜수) 아유, 나도 안 했는데
(영지) 아, 몰라 하지 마, 하지 마
(연수) 점점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꺼리게 만들더라고요
[풀벌레 울음]
물론 어린 마음에 꽤나 큰 상처였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문이 철컥 열린다]
(연수) 할머니
(자경) 어유, 또 나와 있지, 또
오지 말라니께
(연수) 혼자 있기 심심해서 나왔거든요?
(자경) 아휴
(연수) 저한텐 지켜야 할 소중한 게 있었으니까요
(연수) 손 차가운 거 봐
(자경) 저녁은?
(연수) 오늘도 할 일 많았어?
(자경) 아니, 별로 없었어
(학생1) 교복 봐라
전교 1등 티 내는 거야?
(학생2) 신발 봐
우리 엄마도 저런 건 안 신겠다
(연수) 그래서 그런 것들에 관심 없는 척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어요
(교장) 봄이 찾아오는 것을 시샘하듯
(연수) 그편이 차라리 나으니까요
(교장)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축하와 격려를 해 주기 위해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교장이 계속 말한다] (연수) 야
뭘 봐?
(연수) 최웅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감성적인 음악] (연수) 우리 사귀…
우리 사귀는 거
애들한테 말하면 죽어
그리고 막 사귄다고 귀찮게 구는 것도 안 돼
나는 무조건 공부가 1순위야
그리고 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대학 가야지
넌 뭐 할 말 없어?
(웅) 내일 뭐 해?
(연수) 잠깐 현실을 눈감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최웅은
잘 잤어?
(연수) 응
오래 기다렸어?
아니, 아니, 방금 왔어
(연수) 어
공통점은 '각자 상징의 의미를 가짐'
- (웅) 응 - (연수) 그리고 차이점은…
(연수) '공업화에 따라서 촌락의 인구가'…
[웅의 졸린 숨소리]
(웅) 아, 왜 이러지, 오늘?
[웅의 피곤한 숨소리]
(연수) '1960년대 이후'
(웅) 응
'급속한 공업화에'…
(연수) '따라'
[마우스 클릭음]
[연수의 놀란 숨소리]
[연수의 벅찬 숨소리]
[지루한 숨소리]
[한숨]
[웅의 한숨]
[감성적인 음악]
(웅) 연수야 [문이 탁 닫힌다]
뭐야?
뭐야, 뭐 먹고 있어?
김밥
아, 씨
도시락 싸 왔는데
[웅의 웃음]
(웅) 김치볶음밥
[뚜껑을 달그락 내려놓으며] 이거는 토마토
진짜 이거 네가 했어?
그럼
(웅) 만드는 거 되게 쉬워
맛없어?
맛있네
나도
[웅의 웃음]
[웅이 숟가락을 달그락거린다]
(웅) 갑자기 무슨 졸업 얘기야?
[웅과 연수의 당황한 신음]
내가 신이 언제 났다고
(연수) 어? 옆에서 애들이 '오빠, 오빠' 하니까
아주 신이 나셨더구먼, 어?
선배라고 부르라고 해, 선배, 쯧
(웅) 아이, 그러니까
(연수) 당연히 시간을 쓸데없이 쓴 게 화가 난 거지
(웅) 미안해
(연수) 가끔은
눈감은 현실이 너무 편안하고 간절해서
[키보드 조작음]
진짜 현실을 잊어버리기도 하더라고요
[피곤한 신음]
(웅) 다 했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씁 아니
(연수) 아직 몇 개 더 남았어
꼭 바로 취업해야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웅) 아니
그냥 직장인 되는 거보다 좀 더 공부해서
더 좋은 직업 가질 수 있지 않나 해서
공부를 더 할 시간이 어디 있어?
회사 빨리 취직해서 얼른 정규직 전환 기다려야지
그래서 그다음엔?
뭐…
월급 꼬박꼬박 저축해서
할머니 일 더 안 하게 해 드릴 거야
- 그게 다야? - (연수) 뭐?
(웅) 아니
생활비 벌면서 장학금도 안 놓치고
죽어라 공부하고 열심히 산 거 내가 다 봤으니까
좀 더 큰 성공에 대한 꿈이 있을 줄 알았지
[잔잔한 음악]
(연수) 평범하게 남들만큼만 사는 거
그게 내 꿈이라 생각해 왔는데
그게 나한텐 성공이야
(연수) 어쩌면
이건 내가 원한 꿈이 아니라
너는?
넌 앞으로 뭐 하고 살 건데?
나?
난 별로 생각 없는데?
그림에 재능 있고 좋아하니까
그거 직업으로 삼을 거 아니야?
그림은 그냥 취미로 할래
(웅) 알잖아
낮에는 햇빛 아래 누워 있고
밤에는 등불 아래 누워 있는 게 내 꿈
인생 피곤하게 사는 거 딱 싫다
(연수) 처음부터 주어진
선택지 없는 시험지였을까?
(웅)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딱 좋아
가족이랑 네 옆에서
(연수) 그리고 애써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땐
현실의 악몽은
더 잔인하게 자라나 있더라고요
(연수) [떨리는 목소리로] 대체
우리가 왜 갚아야 되는 건데?
삼촌이라는 사람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자경) 연수야
아가
[울먹이며] 나는 제발
(연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난했으면 좋겠어
[감성적인 음악] [멀리서 개가 짖는다]
[직원1이 안전띠를 달칵 채운다]
[자동차 시동음]
(연수) 그동안의 헛된 꿈을 비웃듯
(연수) 여보세요?
(직원2) 연수 씨!
(연수) 지난한 현실은
[의료 기기 작동음]
[자경의 옅은 신음]
어느새
턱 끝에서 찰랑이고 있었어요
(웅) 안 가겠습니다
(교수) 다른 학생들은 간절히 바라는 기회라는 거 알지?
씁, 재능 있다는 거 본인도 알지 않나?
지난번에 6개월 다녀왔을 때도
확실히 달라진 게 눈에 띌 정도로 늘어서 왔는데
그땐 6개월이었으니까요
거기서 몇 년 사는 거랑은 좀 다르잖아요
(웅) 그리고 그렇게까지 혼자 가긴 싫고요
(교수) 고작 그게 이유라고?
[어이없는 숨소리]
그렇게 좋아하는 건물들을 직접 보고 그릴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의아한 숨소리]
최웅 자네는 욕심이 없나 봐?
네
딱히 아등바등거리면서 사는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
(웅) 저보다 더 간절한 학생한테 주세요, 그 기회는
(교수) 나 참
[휴대전화 진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문이 달칵 열린다]
어? 뭐야?
(웅) [문을 달칵 닫으며] 언제 왔어?
웬일이래?
네가 내 수업을 다 기다리고
점심 먹을까?
뭐 먹을래?
나가서 먹을까?
[차분한 음악]
(연수)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웅) 우리가 왜 헤어져?
(연수) 너와 나의 현실이 같지 않아서
넌 꼭 힘들 때 나부터 버리더라?
(연수) 아니
사실 내 현실이 딱해서
(웅) 내가 그렇게 제일 버리기 쉬운 거냐?
네가 가진 것 중에
아니
내가 버릴 수 있는 거
너밖에 없어
이유가 뭔데?
(연수) 아니, 사실
지금은
내 현실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서
(웅) 이유가 뭔데!
(연수) 아니, 사실은
(웅)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연수) 정말 사실은
더 있다간
내 지독한 열등감을
너한테 들킬 것만 같아서
[새가 지저귄다]
[피곤한 숨소리]
(웅) 분명 작업실에 있었는데?
[피곤한 신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은호와 웅의 놀란 신음]
깜짝이야, 씨, 놀라라
아, 소리 좀 내고 다녀
너 언제 왔어?
좀 전에
형 또 못 자고 그러고 있을까 봐 일찍 와 봤지
(은호) 아이, 더 자 못 잤을 거 아니야
[웅의 의아한 숨소리] (웅) 야, 나 몇 시에 잤냐?
(은호) 아이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웅의 의아한 숨소리]
아유
씁, 나 왜 이렇게 잘 잤지?
엄청 푹 잔 거 같은데
보니까 스톱워치는 어젯밤 10시 쪼끔 넘어서 멈춘 거 같던데?
(은호) 바로 잤나 보네?
[은호가 주전자를 탁 내려놓는다] 그런가?
(은호) 형 또 약 먹고 잤어?
(웅) 응
[은호의 한숨]
아, 그리고 멀쩡한 침대 놔두고 왜 또 소파에서 잤대?
[잔잔한 음악]
(은호) 씁, 저건 뭐지?
[풀벌레 울음]
아…
[흥미로운 음악] 형
(은호) 결국 95시간 채웠더라?
카, 역시 이게 본업발인가?
오늘따라 좀 멋지다잉?
(웅) 야, 너 몇 시에 왔다고?
(은호) 나?
나 한 7시 반쯤?
그때 나 혼자 있었어?
- (은호) [웃으며] 아니 - 그럼?
그때만 아니라 늘 혼자 있었지
아이씨
(은호) 아, 맞다
형, 좀 있다가 지웅이 형 와 가지고
작업 영상 편집해 주기로 했어
아, 그리고 오늘 드로잉 쇼 하는 것도 일부분도
그거 다큐에 담기로 했으니까
형 본업에서 얼마나 멋있는지
아주 제대로 보여 주자고, 오늘
그동안 찌질했던 최웅은 가고…
[은호가 탁자를 똑똑 두드린다]
듣고 있어?
야, 이렇게 푹 잔 게 얼마 만이지?
푹 잤어? 중간에 안 깨고?
- (웅) 응 - (은호) 오, 잘했네
됐다, 오늘 컨디션 괜찮겠다
[한숨]
(웅)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뭐죠?
(자경) 아유, 주말인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디야?
(연수) 나 오늘 그동안 준비했던 곳
오픈식 있는 날이라니까?
그려? 그게 오늘이여?
- (연수) 얼른 앉아요 - (자경) 응
(자경) 어이구 시간 참 빠르네, 응
(연수) 이따가 심심하면 지나 할머니랑 구경 오시든가
(자경) 아이고, 됐어 너 정신만 없지
[수저를 달그락거리며] 그렇게 고생했는디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역시 내 맘 알아주는 거 할머니밖에 없네
[자경의 옅은 헛기침] (자경) 저기, 저
아, 인자 그…
[헛기침]
거기, 저, 그, 복지관에서
그, 일자리 주는 거 신청받는다던디
그거 한번 해 볼라고
아니
무슨 갑자기 일은 무슨 일이야, 할머니?
안 돼, 몸도 안 좋으면서
아, 심심해서 해 볼라는 겨 심심해서
(자경) 아유, 이렇게 계속 방구석에만 있다가는, 그냥
갑갑해서 먼저 뒤지겄어
아이, 그러니까 경로당 그런 데도 가서 좀 놀고 그러시라니까?
아유, 거그는 가면 맨날 하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어
싹 다 골골대는 노인네들뿐이고
할머니가 맨날 싸우니까 친구가 없어서 그렇지
뭐, 뭐, 뭐, 뭐, 뭐
(자경) 이 할미가 뭐, 뭐, 싸움닭이여? 쯧
암튼 그거 한번 해 볼랑께 그렇게 알어
진짜
(연수) 그러다가 할머니 쓰러지면 나…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깜빡깜빡할까 봐 그려
그, 노인네들 걸리는 거 그거 뭐여, 그거, 어?
치맨가 그거
[잔잔한 음악]
아이, 말이 그렇다는 겨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자경) 아유, 나처럼 나이 먹고
정신 또렷한 인간이 어디 있어, 어?
그런 인간 있으면 아이, 나와 보라 그랴
응,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어여 밥 먹어
나 걱정 안 하거든?
근디 왜 이렇게 자꾸 쳐다보는 겨?
남사스럽게
속상해서 그런다, 속상해서, 어?
평생 일할 거 다 당겨다가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면 안 돼?
아유, 이거보다 더 편하게 어떻게 쉬냐, 어?
손녀가 해 주는 밥 얻어먹으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는디
아이고, 난, 난 이거
무슨 복인가 싶어, 응?
(자경) 아이고, 아이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여 밥 먹어
[입소리를 쯧 낸다]
암튼 그러면
힘든 일은 절대 안 돼
잠깐잠깐 콧바람 쐬는 정도는 생각해 볼게
[웃으며] 아이고, 참, 지랄도, 어?
어이구
아유, 이제 아주 그냥
니가 내 어미 노릇이여?
당연하지
내가 이제 할머니 보호자인데?
할머니 이제 나한테 잘하셔야 될 텐데?
[자경의 웃음]
(자경) 아이고
- 아, 여보, 여보, 잠깐만 - (호) 왜, 왜?
- (창식) 형! - (호) 어?
(창식) 아, 이게 뭐 하는 꼬라지여? [연옥의 웃음]
(호) 어, 창식아, 봐 봐 어때, 어때?
(연옥) 아, 당신 넥타이 바꿔, 안 되겠다
[호가 의아해한다] 아까 그 빨간색이 아무래도 낫겠어
(지웅) 어, 이 집 사장님 부부 못 보셨나요?
(지웅과 연옥) - 어, 마음씨 고우신 분들인데 - 지웅아!
[연옥의 웃음] (호) 너 잘 왔다, 봐 봐
어떠냐, 네가 보기에 우리가 전체적으로다가?
전체적으로다가 뭔가
굉장히 청담동 느낌인데? 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 돌려줘요
[호와 연옥의 웃음]
아, 오늘 이따가 우리 웅이가 무슨 쇼를 한다며?
[연옥과 호의 웃음]
애가 생쇼 하는 거는 평소에도 노냥 보는 일인데
뭘 새삼스럽게 차려입고 본대?
(호) 참, 생쇼가 아니라 이 무식한 창식아 [연옥의 못마땅한 신음]
오늘 우리 웅이가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연옥) 지난번에 은호가 와서 얘기해 줬어 [호의 웃음]
이번에 꼭 보러 오라고
아유, 웅이 걔는 한 번을 그런 걸 보러 오라고 안 하더니 [호의 웃음]
[연옥의 웃음] 시간 꽤 남았는데 벌써 가시려고?
- (호) 어유 - 미리 가서 맨 앞줄 맡아 놔야지
[호와 연옥의 웃음] (연옥) 아유, 아이고, 아이고 웅이 아빠
떡 한 거 찾아가야지!
(호) 아이고, 맞다, 맞다, 맞다
[연옥의 웃음] 가서 떡도 돌리고 뭐 하려면 시간 없겠다
(지웅) 아, 떡은
동네 사람들한테만 돌려야 될 거 같은데?
애 기절하는 거 안 보려면
(연옥) 그래도, 그런 데는 뭐라도 돌리는 게 예의지
[호가 호응한다] 우리 애 보러 힘들게 와 준다는데
(호) 그럼, 그럼 [연옥의 웃음]
거기 있는 사람들
최웅한테 그림 좀 그려 달라고 사정해서 모셔 간 거예요
(지웅) 가면 다 차려져 있고
한껏 대접해 준다고, 최웅을
어, 정말이니? [경쾌한 음악]
(연옥) [웃으며] 어머, 여보! [호의 웃음]
어머, 어머
(호) 들었어, 창식이? 어?
사람들이 우리 웅이한테 사정사정해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거야, 우리 웅이가?
아버지 아들 그만큼 잘나가요
(연옥) 아유, 어떡해 [호와 창식의 웃음]
- (창식) 아이고 - 아무튼 천천히 가셔도 되니까
이따가 천천히 오세요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소앤샵 그랜드 오프닝"
(명호) 야, 오늘이 드디어
장기 프로젝트 대망의 마지막 날이네요
[손가락을 딱 튀기며] 아, 아 맞다
이따가 사람들 몰리기 전에
우리 뭐라도 좀 챙겨 먹어야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인)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연수) 아니요 오늘 다들 정신없으니까
같이 점심 먹으면서 마지막 회의 진행하죠
(예인) 아, 그럼 제가 주문을 하겠습니다
(연수) 제가 할게요, 응
- (연수) 샌드위치 괜찮죠? - (명호) 좋습니다 [지운이 대답한다]
(연수) 뭐… [흥미로운 음악]
다 똑같은 걸로 주문하면 되나요?
[명호가 중얼거린다] (예인) 그, 저는 다이어트 중이라
빵은 위트빵
그리고 로스트 치킨에 소스는 올리브 앤드 후추
(명호) 저는 스테이크 치즈에 야채는 피클을 빼 주셔야 돼요
저 피클을 못 먹어요
- (예인) 응 - (지운) 어, 저는, 그
선배님, 그때 먹었던 소스 조합 뭐였죠?
(지운) 아, 적어 놨었는데
(예인) 아, 제가 주문하겠습니다 [연수의 어색한 웃음]
팀장님 건 늘 드시던 대로 하면 되죠?
(연수) 네
(예인) 팀장님,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연수가 살짝 웃는다]
괜찮아요
(예인) 말씀하신 대로 기자 간담회 시간은
누아 작가와 고오 작가 따로 잡아 뒀고요
장 페라 님은 입국하시는 대로 오시면
아마 드로잉 쇼가 끝난 후에 참여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네, 수고했어요
(예인) 고오 작가님 도착 시간은 공유받으셨나요?
(웅) 자고 갈래?
[잔잔한 음악] [풀벌레 울음]
(예인) 팀장님?
(연수) [어색하게 웃으며] 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휴대전화 진동음] (예인) 네
어, 그리고 장도율 팀장님은 지금 1층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네
안 가 보셔도 되나요?
어, 이따 시작하면 뵙죠, 뭐
(연수) 다들 천천히 먹고 한 30분 뒤에 1층 정문에서 봐요
전 2층 한번 둘러보고 내려가겠습니다
- (명호) 알겠습니다 - (예인) 네, 알겠습니다 [지운이 대답한다]
[카메라가 덜그럭 고정된다]
(지웅) 오늘은 작가로서의 최웅의 삶을 그대로 담을 거니까
일에 대한 너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일에 대한 생각 뭐?
(지웅) 그림에 담긴 너의 생각이라든가
뭐, 작가로서 최웅의 삶이라든가
다음 계획이라든가, 목표라든가 그런 거?
[웅이 숨을 들이켠다]
그런 거 없는데
야, 우리 그냥 다른 질문 하면 안 돼?
(지웅) 뭐, 그럼 일단, 어
그림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그런 거 없는데?
[흥미로운 음악]
(지웅) 그래, 그럼, 그렇게 대답해
(은호) 아니, 형, 그럼 저 형 너무 생각 없어 보이잖아
(지웅) 그게 사실인데, 뭐
꾸며 낼 필요 없고 그렇게 대답해
아, 돌릴게요
"녹화 중"
[은호가 숨을 후 내뱉는다]
(은호) 거의 다 왔다, 이제
형, 긴장 안 돼?
(웅) 응?
아니, 어떻게 보면 오늘이 진짜 데뷔하는 날이기도 하잖아
(은호) 두둥
[웅의 한숨] 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날이니까
안 떨리냐고
떨린다 그러면 지금 취소해 줄 거야?
(은호) 그럴 리가요, 참으세요
아유, 우리 형 긴장 풀어 주는 데 또 이만한 노래가 없지
[버튼 조작음] [기계 작동음]
엔제이 '아일랜드' 틀어 줘
[기계 작동음]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그래도 난 좋다
형이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내가 어디 뭐, 갇혀 있었냐?
아이, 뭐 갇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아, 사실 연수 누나 다시 나타나고 나서부터
형 또 막 잠 못 자고 불안해지고 그러는 거 아닌가
내가 엄청 걱정했었는데
(은호) 뭐, 결과적으로 보면
이렇게 프로젝트 하게 된 것도 다 누나 덕분인 거지
내가 하자 그랬으면 죽어도 안 했을 텐데 말이야, 쯧
암튼 난 앞으로도 형이 이렇게
세상이랑 소통하고 그러면서 작업했으면 좋겠다
그럼 형이 더 유명해지고 일도 많아지고
돈도 많이 벌고
[은호의 웃음]
그런 의미에서
매니저 월급 인상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어?
부정적인 의견이지, 뭐
음, 그렇구나
(은호) 그렇다면 그 문제는 앞으로 더 천천히 토론해 보도록 하자
- (웅) 어어? - (은호) 자, 다 왔다
형 먼저 내려서 2층 올라가 있어
가면 대기실 있을 거야
난 요 앞에 주차하고 짐 챙겨서 올라갈게
월급도 월급인데 [자동차 경적]
(웅) 너한테 복지 비용이 얼마나 들었…
어유, 뒤의 차 빵빵거린다
(은호) 얼른 내리세요, 작가님
[은호의 힘주는 신음] [웅의 한숨]
- (웅) 이따 봐 - 어, 올라가 있어 [리드미컬한 음악]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라이브 드로잉 쇼"
[문소리가 들린다]
(예인) 이거 팀장님한테 확인해 봐야 될 거 같은데
지운 씨
팀장님 못 봤어?
[지운이 말한다]
[예인이 말한다]
[감성적인 음악]
[피식 웃는다]
(웅) 날 볼 땐 늘 잔뜩 화가 나 있는 얼굴이면서
이제야
국연수를 제대로 보는 거 같아요
(지웅) 아까 최웅 인터뷰는 땄으니까
국연수 인터뷰만 따면 돼
전체적으론 러프하게만 찍고
쇼 시작되면은 최웅만 포커스해
인턴
넌 채란이한테 붙어 있고
(태훈) 네, 꼭 붙어 있겠습니다
(채란) 국연수 씨 인터뷰는 제가 할까요?
(지웅) 아니야, 내가 할게
이따 회사에서 작가 미팅 있으니까
얼른 마무리하고 들어가자
(채란) 네, 알겠습니다
[문이 달칵 닫힌다]
[헛기침] (연수) 어?
어…
여기가 대기실인가?
(연수) 최웅이
(연수) 어
(연수) 언제 나타난 거죠? [당황한 숨소리]
[숨을 씁 들이켠다]
[웅이 가방을 탁 내려놓는다]
[한숨]
[웅의 한숨]
(연수) 어제 일을 꺼내면
뭐라 말해야 될까요?
(웅) 어제 말이야
[잔잔한 음악]
우리 집에 왔었어?
(연수) 역시
기억을 못 하나 봐요
어, 그
뭐 좀 줄 것도 있고 해서 갔었어
(웅) 으응
그럼 혹시 내가… [휴대전화 진동음]
(연수) 아…
미안, 나 준비해야 돼 가지고
그, 쇼 관련해서는 관계자들이 자세히 설명해 줄 거야
(연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피할 이유는 없는데
(연수) 그…
잘해
(웅) 응
[문이 달칵 닫힌다]
[은호의 힘주는 숨소리]
[은호의 탄성]
(은호) 안 도망가고 잘 찾아왔네? [문이 탁 닫힌다]
좀 있다가 쉬고 리허설하면 된대
이거 관객 배치도랑 순서
[은호가 서류를 뒤적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예인) 팀장님
고오 작가 영상은 확인했나요?
(예인) 네, 확인 마쳤고 문제없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틀어 두세요
음악도 작가님이 요청하신 리스트로 틀어 놓고요
(예인) 네
[한숨]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연수) 최웅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나요?
(예인) 팀장님
팀장님
[속삭이며] 팀장님
팀장님
[감성적인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은호) 형, 이제 나가야 돼
형, 자?
아, 많이 긴장돼?
청심환 하나 더 줄까?
(웅) 왜
잘 잤을까, 어제?
(은호) 아유 이젠 잘 자도 문제냐?
아직도 그 생각 중이야?
저기, 나중에 자막으로는
'그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 [한숨]
요렇게 좀 부탁드릴게요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 (연옥) 아니야 - (호) 아이고, 들어가
(연옥과 호) - 아니야, 이거야 - 이거 아니야? 알았어, 가, 가
(연옥) 아유, 진짜
- (호) 안 보여 - (연옥) 아유, 좀 앉아
(연옥) 앉아
- (호) 아, 저기… - (연옥) 아유
(연옥) 아유… [관객1이 말한다]
[관객들의 환호]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예, 여러분, 반갑습니다
(누아) 평소에 참 많은 영감을 받아 온
우리 장 페라 님의 건축물을 제 펜으로 담을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고요
아마 아시겠지만
옆방에선 또 다른 작가님의 드로잉이 진행이 될 텐데
뭐, 궁금하시면 가서 보셔도 됩니다
[관객들의 웃음]
근데 여기 먼저 발을 들인 이상
아마 빠져나가기가 쉽진 않을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을 뺏기지 않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누아입니다
[관객들의 박수]
[연옥의 감격한 숨소리] (호) 아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관객들이 웅성거린다]
[긴장한 숨소리]
[버튼 조작음]
[감성적인 음악]
(지웅) 처음 보지?
(연수) 어, 어
내가 모르는 모습도 있었네?
[피식 웃으며] 낯설다, 최웅
[지웅의 옅은 웃음]
(지웅) 나도 처음 제대로 봤을 땐 뭔가 최웅 아닌 거 같더라
그러게
(지웅) 아, 너도 고생했겠다
여기 와서 보니까 엄청 크던데
이거 준비하느라 힘들었겠네
(연수) 아니야, 뭐, 일인데
근데 넌 일 안 하고 이렇게 나랑 노닥거리고 있어도 돼?
(지웅) 그러니까
그래서 출연자 데리러 왔지
그래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연수) 전교 꼴등 하던 애랑 같이 일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당연히 모든 게 불편하죠
아시잖아요
저랑 최웅이랑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 맞는 거
아이, 걔가 되게 답답한 스타일이거든요
이걸 진행할 때도 진행 사항을 공유를 해 줘야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을 할 수가 있는데
아, 답답하게 말을 안 해요, 말을
맨날 자기 혼자만 생각해
걔 옛날에도 그랬거든요
내가 무슨 생각 하냐고 그러면
'몰라', '글쎄' '아무 생각 없는데?'
이 셋 중의 하나야
아니, 생각해 보니까 또 열받네?
없는데요?
뭐…
저렇게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 보니까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감성적인 음악]
아, 옛날에도 그림을 그리긴 했었는데
저렇게 진지하게 그리는 건 처음 보거든요
뭔 바람이 불었는지
저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는 거 보니까
좀 달라 보이는 거 같기도 해요
아, 근데
쟤 옛날에도 그림에 있어서 진지하긴 했어요
옛날 영상 보면, 5화인가?
[웃으며] 거기서 제가 그림을 한 번 망친 적이 있었는데
아주 난리 난리 생난리를 피웠었거든요
솔직히 그때 좀 미안하긴 했는데
그래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거 보니까
좀 재밌기도 하고
아, 걔가 원래 화 그렇게 잘 안 내는 스타일이잖아요
사실 그거에 맛 들어 가지고
좀 더 놀린 적도 있기도 한데
[웃음]
최웅 진짜 웃겼었는데
아
저런 모습은 솔직히 좀 낯설어요
뭔가
좀 변한 거 같기도 하고
최웅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나, 나 지금 쓸데없는 말 너무 많이 했지?
이거 자르자
그럼 다음 질문
(연수) 응
(연수) 그…
좀 쉬었다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은호) 아유, 형 한번 작업하면은 저 정도 기본이야
(연수) 그래도 사람도 많고 몇 배로 긴장될 텐데
(은호) 그러면 내가 한번 확인해 보고 올게
(연수) 아…
(연옥) 어머
연수 아니니? [연수의 웃음]
안녕하셨어요?
(호) 야, 연수 너 진짜 오랜만이다, 야 [연옥의 웃음]
[호의 웃음] 같이 촬영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네, 잘 지내셨죠?
우리야 뭐, 늘 똑같이 지내지
(연옥) 아유, 어쩜
넌 하나도 변한 게 없네
[호의 웃음] [웃으며] 두 분도 변함없으세요
- (연옥) 에이 - 아, 야, 옷 이게, 아이씨
[호와 연옥의 웃음] 오늘 웅이 보러 오신 거예요?
- (연옥) 응 - (호) 어, 그럼, 그럼, 그럼
근데 왜 벌써 가세요?
아, 좀 길긴 하죠?
- (연옥) [살짝 웃으며] 아니, 뭐 - (호) 으음
(연옥) 혼자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마음이 좋지가 않네
웅이 어렸을 적 생각도 나고
매일 혼자 저러고 있었을 거 생각하면…
(호) 이제 고만해, 가자고
(연옥) 예 [연옥의 웃음]
(호) 야, 넌 밥 한번 먹으러 오라니까
왜 이렇게 안 오냐, 어?
[연수의 당황한 웃음] 야,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놀러 오라니까?
돈 안 받아, 너한테
[연수와 호의 웃음]
(연옥) 그래, 와서 밥 먹고 가
- (호) 가자고, 어 - (연옥) 맛있는 거 해 줄게
- (연옥) 어, 가 계세요 - 그럴게요
[연수의 웃음] (연옥) 응
[연수와 연옥의 웃음]
웅이가
많이 힘들어했어
[잔잔한 음악]
너도 많이 힘들었지?
밥 먹고 가라는 거
빈말 아니니까 꼭 와, 알았지?
네, 그럴게요
그래, 수고해
[연옥의 웃음]
(호) 얼른 와
(연옥) 어, 그래그래
먼저 가
[호가 말한다]
[한숨]
[물병을 탁 집는다]
[잔잔한 음악]
[물병을 탁 놓는다]
(채란) 선배
인터뷰는 다 따셨어요?
어, 촬영은?
(채란) 아, 뭐 찍을 만한 게 없어요
자세고 동작이고 똑같이 저러고 몇 시간째 있으니까요
너 인턴 먼저 챙겨서
어, 정리하고 회사 들어가 있어 회의 준비하고
여긴 내가 마무리해서 들어갈게
[감성적인 음악] (연옥) 웅이가
많이 힘들어했어
(웅) 자고 갈래?
너 혹시
어디 아파?
(연수) 약을 얼마나 먹은 거야?
자주 먹은 거야?
어?
언제부터 먹었는데?
언제부터 잠 못 잤는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연수) 네
(예인) 어? 여기 계셨네요, 팀장님
누아 작가님 쪽은 거의 끝나 가고 있다고 하셔서요
아, 누아 작가 끝나는 대로
1층에서 기자들과 대면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고오 작가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숨]
[버튼 조작음]
(웅) 시간이 좀 남았네요
[관객들이 웅성거린다]
반갑습니다
작가 고오입니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관객들의 환호]
[은호의 환호]
[관객들의 환호]
(관객2) 좋아, 좋아!
(엔제이) 축하해요, 작가님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웅) 아…
(명호) 어, 씨, 엔제이… [관객들이 술렁인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지운의 탄성]
(은호) 형, 형, 형… [잔잔한 음악]
[은호의 탄성]
아니, 엔, 저…
형, 형
[은호의 다급한 신음]
엔제이 님
(명호) 와, 씨, 엔제이
(명호) 어, 팀장님, 오셨어요?
[명호의 힘주는 숨소리] (예인)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오늘 고생 많았어요
이따가 뒤풀이 있다고 하니까 참석하실 분들은 참석하면 되고
어, 마무리는 제가 할 테니까 얼른 가 봐요
(예인) 정말요?
저희도 같이 마무리해도 되는데
아, 괜찮아요
오늘 주말인데 나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연수) 가요, 얼른
팀장님도 이따가 뒤풀이 나오실 거죠?
끝나는 거 봐서요
(연수와 예인) - 가세요 - 그럼 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명호) 이따 뵐게요
이따가 꼭 오세요, 팀장님
[지친 숨소리]
[잔잔한 음악]
[한숨]
[한숨]
(웅) 아, 이 자식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씨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은호) 형, 여기
(웅) 야, 너 왜 전화를 안 받…
(엔제이) 작가님
인터뷰 끝났어요?
아니, 아직 안 가셨어요?
(엔제이) 아, 그거 되게 서운한 말투야, 지금
(은호) 하하, 아, 이게 무슨 배은망덕한 말이야, 어?
귀한 시간 쪼개고 쪼개서 와 주신 분한테
(웅) 아, 아유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 진짜 오실 줄 모르고…
저도 초대 못 받고 스스로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죠
(엔제이) 스케줄 때문에 뒤늦게 잠깐 들어가서 봤어요
정말 새로운 모습이던데요?
(은호) 제가 다음에는 꼭 미리 초대해 드리겠습니다
[은호의 옅은 웃음] (엔제이) 아참
그리고 계속 실검에 이름 올라가 있어서
당황스러울 거 같아서 미리 말해 두는데
작가님과 저는 서로를 응원하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라고 잘 말해 뒀으니까
별다른 걱정 안 해도 돼요
[발랄한 음악] 친구요?
친구 아니에요, 우리?
아니…
(웅) 아, 예, 친구 맞죠
[웃으며] 아, 친구 해 주신다니까 영광스러워서
(엔제이) [웃으며] 참…
친구 하자니까 좋아하는 남자는 처음이네, 또
(웅) 네?
(엔제이) 아니에요
집에 가세요? 태워다 드릴까요?
(웅) 아니요 저희도 인제 차 갖고 와서…
오케이, 그럼 잘 가요
(웅) 예? 아니
그 말 하시려고 계속 기다린 거예요?
말했잖아요
나 되게 바쁜데 안 바쁘다고
[자동차 시동음] - (엔제이) 갈게요 - (은호) 조심히 들어가세요
(은호) 드, 드, 드, 들어가세요!
아니, 형
아, 어떻게 태워 준다는 걸 거절할 수가 있어?
시끄러워, 피곤해
아무튼 형
진짜 큰일 났어
- 왜? - (은호) 최웅
나만 알고 싶은 작가에서
모두가 알고 싶은 작가로 바뀌는 날이야, 오늘!
[밝은 음악] 뭐래, 씨
야, 가서 빨리 차나 빼 와
그런 의미에서
매니저 월급 인상 안건은 통과하는 거다
아, 진짜
야, 빨리 안 가?
이거 엔제이 님이 준 거지?
(은호) [향을 씁 맡으며] 아 냄새부터 달라
[웃음] [은호의 탄성]
[웅의 피곤한 신음] 고오 작가 데뷔했다!
[은호의 신난 탄성]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숨소리]
달다
(솔이) 궁상이다, 진짜
이 좋은 날 왜 여기 혼자 와서
[음 소거 효과음] *랄이야, *랄은?
뭐가? 언니 심심할까 봐 와 준 거지
[기가 찬 숨소리]
나 장사 안되는 거
(솔이) 네년 탓인 거 같다 아무래도
아니, 뒤풀이 가서, 어?
프로젝트 잘 끝난 거 축하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해야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고
이게 더 편해
이게 궁상이지, 뭐야?
(솔이) 너 안 신나?
그 개고생한 거 끝냈는데?
(연수) 하, 뭐, 딱히?
일인데, 뭐
끝냈으니까 또 새로운 거 시작하겠지
[솔이의 의아한 신음]
(솔이) 일하는 거 많이 힘드냐?
아니
옛날에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니지
그냥
그럭저럭 괜찮아
[연수가 잔을 탁 내려놓는다]
그럼 뭐가 문제야?
[생각하는 숨소리]
그냥 딱히 힘들지도 않고
딱히 즐겁지도 않고
그냥 딱 그 정도
[연수가 잔을 탁 내려놓는다]
(솔이) 한잔해라
[솔이가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솔이의 한숨]
[연수가 입소리를 쩝 낸다]
언니가 그랬지?
나 눈알에 영혼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껍데기 같다고
응, 지금도
(솔이) 저기 주방에 있는 동태 눈깔이
너보다 더 소울이 있어
근데
내가 오늘 최웅이 그림 그릴 때 눈을 봤는데
걔 눈에는 영혼이 가득한 거 같더라고
걔가?
(연수) 응
[잔잔한 음악]
뭐에 미친 놈처럼 그림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솔직히 좀 부러웠어
[어이없는 숨소리]
그런 애를 왜 부러워해, 네가?
[웃음]
나 좀 한심해?
[연수의 웃음]
나 한심한 거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는데
(연수) 그냥 걔가 그렇게 변할 동안
나는
먹고살 궁리만 하면서 계속 여기 머물러 있는 게
그게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더라고
아유, 지랄도…
거기 머무르긴 뭘 머물러?
(솔이) 네가 갚아 낸 빚이 얼마야?
너 세상 열심히 사는 거 내가 다 봤는데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거면 성공한 거지, 이년아
[피식 웃는다]
오늘 프로젝트 끝낸 기념 기분이다, 어?
내가 다 팔아 줄게 여기 소주 쭉 줄 세워 봐 봐
(솔이) 이미 너 들어올 때 소주 아홉 병 찍어 놨어
[문이 달칵 열린다] (연수) 아, 그래?
덤터기도 씌울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문이 달칵 닫힌다] [다가오는 발걸음]
어, 어머, 어서 오세요!
(손님1) 어, 안녕하세요
- (손님2) 네, 네 - (손님1) 이쪽으로 앉아요
[손님들이 의자를 덜그럭거린다] [한숨]
[솔이와 손님2가 대화한다]
[웅의 지친 신음]
(은호) 형, 오늘 고생 많았어
나 간다, 오늘 좀 푹 쉬어
(웅) 응
[은호의 힘주는 숨소리]
야
갈 때 저 밝은 불은 끄고 가라
(은호) 알았어, 갈게
(웅) 응
[웅의 피곤한 신음]
[스위치 조작음]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피곤한 신음]
[문이 탁 닫힌다]
[휴대전화 진동음]
[잔잔한 음악]
[손님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문이 달칵 열린다] (솔이)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손님3) 예, 맛있겠다
(솔이) 네, 빈 병 치워 드릴게요
(손님3) 네 [문이 달칵 닫힌다]
어, 왔어?
갑자기 불러서 미안
(솔이) 알다시피 얘 친구가 나 하나인데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 가지고
[병을 툭 놓으며] 얘를 치울 방법이 없네?
그렇다고 내가 얘를 경찰에 넘길 수도 없잖아
[쓱쓱 젓는다]
얘 깨면 지랄하겠지만 어쩌겠냐?
오늘만 좀 부탁할게
빨리 치워
[주방 도구를 탁 놓으며] 네!
잠시만요
웅이야?
어, 차, 아, 차가워
(연수) 아…
(지웅) 좀 깼냐?
(연수) 으응
[연수의 피곤한 신음]
[연수의 하품] 잠을 못 잔 거야?
[지웅이 캔을 쉭 딴다] (연수) 어
피곤한데 술까지 먹었더니 훅 취했나 봐
(지웅) 마셔
(연수) 오, 센스
[캔을 탁 내려놓는다]
(연수) 미안 늦은 시간에 귀찮았겠다
별로
재미없는 술자리에 있었거든
너도 술 마셨어?
조금?
너 술 못 먹잖아
그걸 기억해?
(연수) 당연하지
어울리지 않게 아기 주량이었던 거 기억하지
[헛웃음]
'아기'는 심했다
[숨을 씁 들이켠다]
근데
영상은 괜찮게 나오고 있어?
뭐, 그럭저럭
아무래도 괜히 찍는다고 한 거 같단 말이지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풋풋해서 귀엽기라도 했지
(연수) 지금은, 뭐 맨날 일하는 것만 찍고 있는데
재미가 있겠냐?
[입소리를 쩝 낸다]
아무래도 너 이번 거 망한 거 같다
망하길 바라는 건 아니고?
어, 내가 사람들 아무도 못 보게 할 거야
(연수) 너 나 홍보 기가 막힌 거 알지?
내가 루머 퍼트릴 거야
[지웅의 웃음]
나 먼저 미리 보기로 보여 주면
생각 좀 해 보고
미리 보기?
(연수) 나 얼굴 이상하게 나온 거나
뭐, 습관적으로 욕하는 거 찍혀 있으면 어떡해
그리고 최웅이 분명히 내 욕 하고 있을 게 뻔한데
암튼
좀 궁금하긴 해
[연수의 옅은 신음]
근데
최웅이 나보고 뭐
별말 안 해?
아니, 그
욕이라든가, 막…
너
아직 최웅 좋아하냐?
[잔잔한 음악]
[멀리서 개가 짖는다]
(지웅) 너
아직 최웅 좋아하냐?
(연수)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연수) 그럴 리가 없는데
최웅?
네가 여기 어떻게…
들었어
너 여기로 다시 이사 왔다는 거
그래서 그렇게 자주 마주친 거였나?
아, 그래?
술 마셨어?
어?
(연수) 아…
[헛기침하며] 응
근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이 시간에
그러게
(웅) 막상 와 보니까 너무 늦어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긴 했어
뭐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얘기할래?
나 지금 너무 피곤해 가지고
[부드러운 음악]
[탁 소리가 울린다]
또 국연수야
또 꿈이지?
[한숨]
안 속아
연수야
나 너무 힘들어
(연수) 또
떠올라 버렸어요
괜찮냐?
술 많이 취했나 봐?
아니야, 나 괜찮아
(웅) 그…
어젯밤에
그…
집에 보온병 있던데
네가 두고 간 거야?
(연수) 최웅이 기억을 못 해서 다행이에요
(연수) 어
너 정신없는 거 같아서 내가 두고 갔어
아, 그래?
(연수) 응
너 약 먹었잖아, 몽롱해 보이더라
그럼 너 가고 나 잠든 거야?
그럴걸?
아…
(웅) 그렇구나
그거 물어보려고 여기 온 거야?
(연수) [어색하게 웃으며] 전화로 하지
(연수) 그 모습은 저만 기억하고
나 들어갈게
잘 가
(연수) 그렇게 묻어 두면 돼요
(웅) 그럼
내일은 네가 기억 안 나는 척해
꿈 아니잖아
왜 꿈인 척해?
왜 거짓말해?
연수야
[감성적인 음악]
연수야
우리 이거 맞아?
우리 지금 이러고 있는 거 맞냐고
다른 사람 아니고 우리잖아
그저 그런 사랑 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 한 거 아니잖아, 우리
다시 만났으면
잘 지냈냐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힘들진 않았냐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우리
(연수) 우리가 헤어진 건
어떻게 지냈어?
(연수) 다 내 오만이었어
(웅) 말해 봐
어떻게 지냈어, 너?
(연수) 너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오만
그림은 그냥 취미로 할래
(웅) 알잖아
낮에는 햇빛 아래 누워 있고
밤에는 등불 아래 누워 있는 게 내 꿈
인생 피곤하게 사는 거 딱 싫다
나 잠깐만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너무 한심해 보였으려나?
[키보드 조작음] [한숨]
[키보드 조작음]
[감성적인 음악]
[문이 철컥 잠긴다]
[한숨]
[한숨]
[쓱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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