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 11
"사직소"
(지운) 강녕하십시오, 저하
외롭지 마시고요
[애절한 음악]
[시끌시끌하다]
(소은) 도련님!
[소은의 다급한 숨소리]
도성을 떠나신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예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소은) [울먹이며] 참으로 무심한 분이십니다
'또 보고 싶다', '기대된다' 그리 말씀드렸는데
이리 훌쩍 떠나시다니요?
낭자…
[다급한 숨소리]
[소은이 지운의 손을 탁 잡는다]
가지 마십시오
[애잔한 음악]
[흐느끼며] 이제 막 도련님이 좋아졌는데
(소은) 이제 막 제 마음을 알아 버렸는데
어찌 이리 무심히 가 버리려 하십니까?
(지운) 미안합니다
그 마음
내가 몰랐습니다
[애절한 숨소리]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낭자 역시
제게는요
[속상한 숨소리]
[어두운 음악]
(원산군) 그게 정말이십니까?
(창운군) 어
아주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더라니까 [풀벌레 울음]
참으로 당돌하기도 하지
세자빈이 되고자 하는 여인이
심중에 외간 사내를 품고 있으니 말이야
[피식 웃는다]
그런 이야기를 이 술자리의 안주 정도로만 치부하고
지나갈 것은 아니시겠지요?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아, 그게, 그게 무슨 말인가?
전하께서 상헌군 대감을 견제하려 이판과 손을 잡으려 한다지요
(원산군) 이미 세자께서도 이판의 여식을 만났다 들었는데
[의미심장한 음악]
아니, 뭐야?
그럼 완전히 세자빈이 될 사람이다 이 말인가?
그야 이제는 숙부님께 달린 문제지요 [원산군이 술을 조르르 따른다]
(원산군) 병판의 여식을
세자빈으로 올리고 싶은 상헌군 대감에겐
그 얘기가 제법 구미를 당길 것도 같은데
아니 그렇습니까?
[헛웃음]
이야
(기재) 그러니까 이판의 여식이
심중에 다른 사내를 품고 있다?
예, 그, 뭐, 말씀만 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대비전에 가 이를 고해 드릴 수도 있사온데
증인이 필요하면 찾아 올 수도 있고 말입니다
[어두운 음악]
(기재)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예?
아, 원하는 것이요?
(기재) 이 일만 잘 해결되면
내 군대감께 진 빚은 톡톡히 갚도록 하지요
[피식거린다]
[헛기침]
[피식 웃는다]
[웃음]
(대비) 장차 이 나라의 국모가 될 사람입니다
다른 사내를
그것도 세자의 스승인 자를 마음에 품은 여인이 아닙니까
하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간택 단자에서 [한숨]
그 아이의 이름을 빼놓으라 명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발걸음]
(기재) 그것만으로는 아니 될 일이지요
[긴장되는 음악]
대비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왕실을 능욕한 괘씸한 자가 아닙니까
국운이 걸린 중대한 일을 그르치게 되었으니
간택 단자에서 이름을 빼는 것만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혜종) 이판의 여식이 낙마하면
상헌군의 뜻대로 세자빈을 정할 수 있을 것인데
더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자식의 비밀을 숨기고 처녀 단자를 올린 이조 판서 역시
응당 그 죄를 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숨]
"상소"
[어두운 음악] (영수) 처녀 단자를 올리지 말아 달라 부탁한
제 여식의 의견을 무시하고
제가 혼자 진행한 일입니다
딸아이의 심중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살피지 못한
못난 아비의 불찰을 꾸짖어 주시옵소서
어찌 그것이 그대의 잘못이겠소
나의 욕심으로 귀중한 신료를 잃게 되었으니
(혜종) 원망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니겠소
전하와 저하
그리고 조정 대신들께
이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새가 지저귄다] [풀벌레 울음]
(영수) 처녀 단자를 올리지 말아 달라 부탁한
제 여식의 의견을 무시하고
제가 혼자 진행한 일입니다
딸아이의 심중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살피지 못한
못난 아비의 불찰을 꾸짖어 주시옵소서
(잔이) [흐느끼며] 군대감 어른 왜 이러십니까?
- (창운군) 빨리 와! - (잔이) 이러지 마십시오
(잔이) 저 빨리 가 봐야 합니다
우리 아씨께서 기다리실 거라고요!
(창운군) 아유! 이, 아유 [잔이의 겁먹은 신음]
여기서 소리쳐 봐야 이제 널 도와줄 사람이 없어
[흐느낀다] 네 주인도 낙향하는 마당에
끈 떨어진 너를 대체 누가 도와줄 것 같으냐?
빨리 가자, 어?
빨리 와, 빨리 [잔이가 흐느낀다]
뭐야, 너?
아, 왜 이렇게 멋있게 서 있어? 씨
비켜
[다가오는 발걸음]
(휘) 대낮에 도성 한복판에서 이 무슨 저열한 짓입니까, 숙부님
[못마땅한 신음]
(창운군) 참 한가하신가 봅니다
간택 일로 바쁘신 줄 알았는데
안치형의 기간이 썩 짧았나 봅니다
원하신다면 이번엔
집 안에서 영영 나오지 못하게도 해 드릴 수 있는데
[어이없는 신음]
덕분에 편히 쉬었지요
아주 좀이 쑤셔
죽을 만큼
한데 이제 그리되진 않을 겁니다
저도 이제 저하의 그 동아줄에 같이 올라타게 됐지 뭡니까
[창운군의 웃음]
이판의 일을 대비전에 고한 사람이
숙부님이셨습니까?
[탄성] [가슴을 탁 친다]
참 속상하셨겠습니다
(창운군) 저하의 스승이라던 자와 세자빈이 될 뻔한 여인이
막, 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아, 지금도 어디선가 통정을 하는 건 아닌가 모르지요
그리고 잘 모르시나 본데 [겁먹은 신음]
저하를 능욕한 집안의 계집입니다
그러니까 저하께선 이만 쭉
갈 길 가시지요
내 이 아이에게 지난번 못다 한 볼일이 좀 남아 말입니다
가자, 응? [겁먹은 신음]
[창운군의 웃음] [무거운 음악]
그 손 놓으시지요
(휘) 그렇지 않으면
내 이 자리에서 국법의 지엄함을 보여 드릴 터이니
지금 이따위 계집 하나 때문에
종친인 저를 겁박하시는 겁니까!
(휘) 이 아인 귀한 내 백성입니다
내 눈앞에서 이 나라의 백성을 해하려는 일은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당황한 신음]
(창운군) 예, 뭐
[창운군의 웃음]
예
[장엄한 음악] [창운군의 못마땅한 숨소리]
(휘) 괜찮으냐? [떨리는 숨소리]
(잔이) 예, 저하
마침 이판 대감께 가던 길이었으니 함께 가자꾸나
[분한 숨소리]
(창운군) 아참!
그거 아십니까?
이판을 낙마시킨 공으로 상헌군 대감께서 내게!
그, 한자리 주겠다 약속하셨는데
(휘) 그만 가자
[새가 지저귄다]
(소은) 저희 집 아이를 구해 주셨다 들었습니다
어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곧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라 들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저하
(소은) 저하께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한숨]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날
내게 솔직한 마음을 보여 줘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런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잔잔한 음악]
(휘) 이런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사내와 여인의 우정이야 가능하지 않으니
부디
건강하고
무탈하길 바라겠습니다
(소은) 아버님께서 곧 오실 터인데…
[한숨]
소저께서 이판 대감께 대신 안부 전하여 주시지요
(휘) 다시 볼 날을 기다리겠다고요
[옅은 한숨]
[옅은 한숨]
[비명이 들린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린다]
[놀란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당황한 신음]
(소은) 잔이야
[흐느끼며] 잔이야
잔이야
잔이야, 잔이야
잔이야!
어떡해
[극적인 음악] 잔이야!
잔이야
어떡해
(창운군)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아, 지금도 어디선가 통정을 하는 건 아닌가 모르지요
[의미심장한 효과음]
[소은이 오열한다]
잔이야!
[밝은 효과음]
[창운군의 다급한 숨소리]
[창운군의 짜증 섞인 신음]
[창운군의 다급한 숨소리]
[창운군의 놀란 신음]
[성난 숨소리]
[창운군의 당황한 신음]
아유, 저하께서 예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의미심장한 음악]
[휘의 성난 숨소리] [창운군의 힘겨운 신음]
무슨 짓입니까?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냐고?
사람이 죽었다
아무 죄 없는 아이가 죽었단 말이다!
[힘겨운 신음]
왜 죽였느냐?
죄 없는 그 아이를 왜!
잠깐만, 이거 잠깐만, 잠깐만 놓고…
[창운군의 힘겨운 신음]
[창운군이 콜록거린다]
아무리 저하라고 하나
위아래도 없이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입니까!
(휘) 내 이번 만큼은
숙부의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분한 숨소리]
(창운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내 그 시각에 거길 지나긴 했는데 죽인 적은 없다니까요
[판윤의 한숨]
내가 미쳤다고 백주 대낮에 노비 계집을 죽여?
그럴 가치도 없는 목숨에 내가 왜 힘을 빼겠습니까?
[웃으며] 예? 아주 지나가던 개가 웃지, 씨
안 그렇습니까? 예?
(휘) 하면 얼굴에 난 그 상처와
떨어진 이 옥관자는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아, 이거?
[아파하는 신음]
아, 씨
이것도 그 계집애가
(창운군) 멋대로 날 할퀴어서 이리된 거라지 않습니까, 씨
제 주인을 닮아 앙칼진 게
감히 왕친인 내 몸에 상처까지 내고 말이야
어, 보입니까? 예?
보입니까?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계집이란 말입니다! 씨
쯧, 죽으면 다야?
아씨, 재수 없게, 씨
(휘) 죽은 아이가 자상을 입었소
검시관을 보내어 흉기를 특정하고
살인자의 거처를 샅샅이 뒤져 봐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음악]
[한숨]
[시끌시끌하다] (백성1) 잘 들고 있어 선상님 치료받아야 하니께
(백성2) 아무 걱정 말아, 응?
(아낙1) 아이고, 줄을 서시오
우리 의원께서 제일로다 싫어하는 것이 새치기여!
아니, 여기가 그, 한양에서 온 침술가 양반네 맞지?
예, 맞게 찾아오셨구먼
아유, 그 침술가 실력이
아주 그냥 신내림 수준이라고 하더구먼?
응, 그려그려 신내림이니까 얼른 가서 줄 서
[아낙1이 재촉한다] (아낙2) 아, 줄이 왜 이렇게 길어?
(아낙1) 줄 서, 줄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백성3) 새치기하지 마요 아유, 진짜
(백성4) 줄을 서야지
(아낙2) 줄이 어디까지 가야 돼?
(백성5) 아, 요 뒤로 서시오, 뒤로
할아버지 내가 뭐 먹지 말라 그랬어?
뭐? 부지깽이?
음식, 그, 먹으면 안 되는 거
음식물?
음식물
육고기, 응?
달달한 거 드시지 마시라고
(노인) 물고기?
[익살스러운 음악] [지운의 한숨]
유, 육고기
(지운) 응? 달달한 거!
(노인) [웃으며] 아, 알았어, 알았어 [지운의 웃음]
[지운의 한숨]
(지운) 아이고, 어유, 어유
[닭 울음]
[사람들의 웃음]
(노인) 임자
육고기랑 달달한 거 많이 먹으래
[아낙1의 당황한 숨소리]
- (지운) 아니, 아니, 그… - (아낙1) 아이고
드시지, 드시지 마시라고!
[지운의 살피는 신음]
[지운의 헛기침] [아이의 웃음]
[지운이 숨을 씁 들이켠다]
[지운의 웃음]
(지운) 잠깐만 여기 있어, 응?
아이고
미지근한 물에 이 약초를 달여서
소양증이 생긴 부위를 씻어 내 주세요
아, 그, 절대 긁지 못하게 하시고요
진짜 가려울 때마다
합!
[지운의 힘주는 신음]
다섯까지만 세, 알았지?
(아이) 네
네 [웃음]
[지운이 작두질을 탁탁 한다]
(아이) 고맙습니다
[웃으며] 고맙습니다
(지운) 잠깐 옆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 네 - (지운) 응
[웃음]
[지운이 작두질을 탁탁 한다]
(아낙1) 어어, 아이고, 선비님 [아낙1의 웃음]
줄을 서셔야 되는구먼유
현아
[피식 웃으며] 정지운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운) 마침 잘 왔다, 야, 응?
어젯밤 꿈자리에, 어?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에 쓱 기어들어 오더니 [흥미로운 음악]
귀인이 올 징조였나 보네
일로 와 봐
앉아 봐 [지운의 힘주는 신음]
응
[익살스러운 효과음] [힘주는 신음]
잘할 수 있지?
믿는다, 응?
다음 분 들어오시오!
아유, 뭐야? [흥미로운 음악]
삼촌 [작두질을 탁탁 한다]
아, 삼촌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
또 어디서 그런 겨?
일로 와 봐 [피식 웃는다]
[풀벌레 울음]
(지운) 자, 이, 이, 하나 해라
[함께 피식 웃는다]
[지운의 웃음]
[지운의 헛기침]
[지운의 시원한 숨소리]
[지운이 사발을 탁 내려놓는다]
[지운의 개운한 한숨]
(현) 대체 이 구석까진 어찌 들어온 겐가?
골목만 몇 번을 돌았는지
내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아, 그만 좀 구시렁대십시오 군대감, 어?
기왕 낙향한 벗을 도우러 왔으면서 뭔 말이 이리 많으실까?
돕긴, 인사나 하려고 들렀더니
이리 외진 곳인 줄 알았으면
진작 다른 곳에서 보았을 것을 말이야
(지운) [한숨 쉬며] 아
꽃나무가 이쁘잖아
시름시름 앓던 이들도
낯빛까지 화사해져 돌아간다 이거야
[피식 웃는다]
지낼 만한가 보다
그럼, 좋지
(지운) 물 좋지 공기 좋지, 사람 좋지
이리 좋은 줄 알았으면 진즉 왔을 걸 그랬다
다행이다
잘 지내 보여서 말이야
[피식 웃는다]
[지운이 숨을 들이켠다]
[지운의 한숨]
저하께선 잘 지내시지?
별일은 없고?
궐은 걱정 마
(현) 아, 너희 어머니께서
가는 길에 꼭 좀 전해 주라 하셨는데
어머니께서?
우리 어머니께서 또 무슨 엉뚱한…
[잔잔한 음악]
뭐야, 이게?
(현) 용한 보살께서 써 줬다고
사용법은 알 거라 하시던데?
아유, 참
아유, 그놈의 청룡산 보살
우리 어머니 또 당하셨네, 쯧쯧
[숨을 씁 들이켠다]
네가 할래, 현아?
(지운) 이거 속곳에 달고 다니는 거야
이거 네가 해, 내가 채워 줄게
치워라
(지운) 아유, 치우긴 뭘 치우십니까, 군대감
나랏일 하시는 분이 건강하셔야지요!
자식이… [현의 당황한 신음]
[지운의 아파하는 신음] (현) 야, 그 손 안 치워?
(지운) 아, 아, 너!
너, 씨, 일로 안 와?
속곳에 달고…
달아 드리겠습니다, 군대감!
[웃으며] 이리 와 보세요 [현의 다급한 신음]
[한숨]
[숨을 들이켠다]
[아련한 음악]
[한숨]
[풀벌레 울음]
[거리가 시끌시끌하다]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한숨]
(휘) 예조의 일은 잘 끝내고 오셨습니까?
(현) 예, 마침 정 사서가 자리 잡은 곳이
그 근방이라 잠시 만나고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잘 지내는 거 같았습니다
(현) 건강히, 바쁘게요
[옅은 웃음]
다행이네요
(현) 저하께선 괜찮으십니까?
뭘 말씀이십니까?
두 분 꽤 막역히 지내셨지 않습니까
마음이 헛헛하실까 해서요
[어색한 웃음]
헛헛은요
[잔잔한 음악]
[풀벌레 울음] [새가 지저귄다]
[풍경이 땡땡 울린다]
[바람이 살랑거린다]
(지운) 풍경이요?
(휘) 그 소리를 들으면
그립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거든요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던
아주 어릴 적
어느 순간으로 말이지요
[쨍]
이 소리와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하께서 좋아하시는 그 풍경 소리 말입니다
[지운의 웃음] [피식 웃는다]
(지운) 자, 자, 다들 짠 한 번 더 하시겠습니까?
[지운의 웃음]
짠!
[사람들의 웃음]
[풍경이 땡땡 울린다]
[새가 지저귄다]
(석조) 병조 정랑이 변을 당한 곳이
병조 관청 내였다 합니다
관청에서 살인이 났는데
어찌 이리 조용하단 말이냐?
아무래도 내금위장이 명을 내린 거 같습니다
주상께서 사건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으신다?
이와 관련해 대감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석조)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운암을 비롯해
죽은 함경도 관찰사 권세겸과 이번 병조 정랑까지
모두 10년 전 익선의 추국 당시
결정적 증언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면 10년 전 익선의 일로
누군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뜻인가?
(석조) 아무래도 대감께서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청지기) 자, 자, 물렀거라
[시끌시끌하다]
자, 물렀거라
자, 자, 물렀거라
자, 물렀거라
[긴장되는 음악]
[석조의 힘주는 신음]
[사람들의 놀란 신음]
[긴박한 음악] (기재) 무슨 일이냐?
(석조) 자객입니다
대감을 모시거라, 어서!
[박진감 넘치는 음악] [칼집이 툭 떨어진다]
[석조의 힘주는 신음]
[서로 힘주며 싸운다]
[가온의 힘겨운 신음]
[가온의 거친 숨소리]
[가온의 기합]
[서로 힘주며 싸운다]
[가온의 힘겨운 신음] [석조의 힘주는 신음]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가온의 힘겨운 숨소리]
(형설) 무슨 일이냐!
[거친 숨소리]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석조) 좌상 대감을 노리는 수상한 자가 있었습니다
말씀은 나중에 드리죠
수상한 자라니?
[석조의 거친 숨소리]
(형설) 이곳은 아무도 없지 않나
[긴장되는 음악]
(석조) 내금위장이야말로
왜 하필 이 시간에 여기 계시는 겁니까?
내 궐 밖 순시를 좀 돌고 있었네
(석조)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내금위장이 직접 이곳을 순시하다니
수상한 자가 있으면 내가 잡아들일 터이니
자넨 그만 돌아가 보게
[어두운 음악]
김가온, 그자는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래
수고하였다
(형설) 한데 그자를 계속 궐에 두실 생각이십니까?
전하께서도 위험하실지 모릅니다
내 다시 말할 때까지
그 아이를 잘 지켜보거라
(혜종) 더 이상
누구도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가 지저귄다]
(현) 뭘 그리 보십니까?
조카가 숙부님 댁에 인사를 온 것 가지고요
(창운군) 현이 네가 이유 없이 날 찾을 리는 없을 테고
보자, 어?
세자가 시켰지? 응?
'잔이라는 그 계집 일에 대해서 뭐라도 알아내라' 말이다
[창운군의 웃음]
숙부님답지 않게 제법 눈치가 좋아지셨습니다
(현) 그래서 말인데
대체 왜 죽이신 겁니까?
어차피 상헌군 대감께서 뒤를 봐주고 계시니
알려 주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창운군의 한숨]
[창운군의 시원한 숨소리]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진정 알고 싶으냐?
내가 왜 그랬는지
[어두운 음악]
[웃으며] 화가 나서 그랬어
(창운군) 화가 나서!
꼴 같지 않게 나대는 세자를 보자니
내가 이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아, 근데
씁, 쯧, 내가 뭐, 이게 죽이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왕족인 내 몸에 손을 댄 그년 잘못이지, 응
[창운군의 웃음]
[힘겨운 신음]
아유, 써
아유, 써
[창운군의 웃음]
아씨, 야, 음식 다시 가져와!
어, 먹어, 어?
먹어, 먹어
[웃음]
[의미심장한 음악]
[장이 달칵 열린다]
[장이 달칵 닫힌다]
[함이 달칵 여닫힌다]
에이씨
[긴장되는 음악] [창운군의 거친 숨소리]
[못마땅한 신음]
(창운군) 이씨
[창운군의 다급한 숨소리]
[안도하는 웃음]
(창운군) 아, 놀라라, 씨
[함이 달칵달칵 닫힌다]
[창운군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효과음]
[당황한 숨소리]
(휘) 덕분에
찾았습니다, 숙부님
[긴장되는 음악] [당황한 숨소리]
(창운군) 에이씨!
[창운군의 다급한 숨소리]
[창운군의 놀란 신음]
[창운군의 힘겨운 신음]
[아파하는 신음]
(창운군) 아, 아파
뭐 해? 빨리 나 지켜, 지켜
세자 저하시다, 칼을 거두거라
에이, 진짜! 씨
[창운군의 분한 신음]
(휘) 물증을 찾았으니
제 외조부도 더는 숙부를 비호해 주진 못하겠군요
[헛웃음]
[창운군의 한숨]
[창운군의 힘주는 신음]
내 이판 댁 재산을 축내었으니
그에 따른 값을 치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자는 참형에 처한다
[어이없는 숨소리]
(휘) 죽은 그 아이 역시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니 마땅히 살인의 죄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인죄라니?
설마 그깟 노비 년의 목숨 따위로
저하의 숙부인 제 목숨을 내놓으란 건
아니시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세상 만물엔 경중이란 게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휘) 숙부의 목숨은 무겁고
죽은 여노비의 목숨은 가볍다 말하시는 겁니까?
아, 그야, 그게 그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창운군) 저는 왕족이고
게다가 앞에 계신 저하의 어? 숙부인데
하면
(휘) 왕족인 숙부의 목숨보다
세자인 제 목숨은 훨씬 더 중한 것이겠군요
그런데도 세자인 내게 해를 가하였다?
그게, 그게 무슨…
강무장에서 한 번
탕욕장에서 또 한 번
[당황한 숨소리]
(창운군) 감히 왕족인 제 몸에 해를 가한 계집입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단 말입니다!
[헛웃음]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긴장되는 음악]
(휘) 숙부 역시 여기서 죽어도 될 목숨이겠지요
[겁먹은 숨소리]
(창운군) 저, 저, 저, 잠깐만…
설마하니
'조카가 숙부를 정말로 죽일까?' 하는
한가한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창운군의 겁먹은 신음]
[창운군의 떨리는 숨소리]
자, 잠깐만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예?
(창운군) 저하
살려 주십시오, 저하,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예
목숨을 구걸하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죽은 그 아이에게 하십시오
(휘) 그 아이의 무덤을 찾아가
속죄의 절을 올리십시오
하면 내 지금 당장 여기서 목숨을 거두는 대신
순순히 금부로 넘겨 드릴 것이니
아니, 아니
지금 노비의 무덤에 절을 하란 말씀이십니까?
(휘) 왜? [창운군의 겁먹은 신음]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합니다, 하겠습니다
예, 하겠습니다, 예
[겁먹은 숨을 내뱉는다]
[새가 지저귄다] [풀벌레 울음]
[어두운 음악]
[분한 숨소리]
[창운군의 분한 숨소리]
(대비) 무릎을 꿇다니요!
(대비) 왕실의 종친을
한낱 노비의 무덤 앞에 무릎 꿇게 하다니요?
어찌 그런 무모한 일을 저지르신 것입니까!
숙부는 왕친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죄 없는 이의 목숨을 앗았습니다
(휘) 그러니 최소한
그에 따른 사죄는 해야 한다 생각하였습니다
창운군의 행실이야 어디 어제오늘의 일입니까?
참으셨어야지요
(대비) 누구보다 나서 강상의 도를 지켜야 할 세자께서
어찌하여 그런 실수를 하신 겝니까?
(휘) 실수가
아닙니다
[어두운 음악]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백성을 섬기라는 아바마마의 말씀을 따랐고
왕실의 권위를 지키라는 할마마마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하여 저는
제 행동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사옵니다
세자
(혜종)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정리할 터이니
넌 그만 나가 보거라
[무거운 음악]
성군이 되고자 하셨습니까?
(기재) 저하께서 하신 그 행동이
종친과 사대부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찌 하지 못하신 것입니까?
이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귀천의 질서가 문란하지 않다는 명분
그 때문입니다
왕이 되실 분이라면 적어도 하찮은 목숨 하나로
질서를 깨트리는 일 따위는 하지 마셨어야지요
[어두운 음악]
하찮은 목숨이라 하셨습니까?
(기재) 천한 계집아이의 죽음에
저하께서 나선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하찮은 목숨이란 없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죽어야 할 목숨도 없고 말이지요
(휘) 그 누구도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할 순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요
[새가 지저귄다] 세자 저하께서요?
[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아낙1) 아, 그렇다니께
지금 도성 바닥이 그냥 아주 이 얘기로 난리들이래잖여
숙부를 욕보인 세자라고 말이여
강상죄네 뭐네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디
아, 그건 양반들 말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속이 시원하니
아이고, 나라님이 이리 좋을 때가 없구먼
[아낙1의 웃음]
아, 그래서 어찌 되셨답니까?
그래도 왕실 종친을 건드렸으니
저하께서도 꽤 곤란을 겪으실 거 같은데
[의아한 숨소리]
도성 일엔 영 관심이 없는 거 같더만
세자 저하 일엔 귀가 쫑긋허네?
아니, 뭐…
[멋쩍은 숨소리]
[애잔한 음악] [풀벌레 울음]
괜찮으신 거지요?
저하
왜 또 잠에 들지 않고 나오셨습니까?
(지운) 저는 여기까지 와서도
계속 저하 생각뿐입니다
걱정되고
보고 싶고
[휘가 숨을 씁 들이켠다]
(휘) 그래서 이 집으로 온 겁니까?
이리 구석에 있는 곳까지요?
곁에 있고 싶습니다
(지운) 안고 싶고
이리 마주 서 이야기 나누고 싶고
함께 있고 싶습니다
[한숨]
[계곡물이 쏴 흐른다]
[나무꾼의 힘주는 신음]
[나무꾼의 비명]
[나무꾼의 겁먹은 신음]
(나무꾼) 어, 저, 저…
이, 이봐, 이봐요
[호미를 툭 내려놓으며] 예? 이봐요
[나무꾼의 놀란 신음]
[나무꾼의 비명]
[의미심장한 음악]
[창천군의 가쁜 숨소리]
(원산군) 오셨습니까, 대감
[가쁜 숨을 고른다]
(창천군) 이런 곳으로 날 부른 연유가 무엇이오?
그야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그저 함께 사냥이나 하자고 불렀지요
(창천군) 난 사냥에 취미가 없소
특히 종친들과 함께하는 사냥은 더더욱 말이지요
[창천군의 가쁜 숨소리] (원산군) 물론 그러시겠지요
전하께서 제현 대군을 귀애하시니
굳이 사냥감을 찾아다닐 이유가 있으시겠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눈앞에 잘 차려놓은 밥상도
겁 많은 늑대에겐 그림의 떡일 뿐 아니겠습니까
뭐, 뭐요?
[한숨]
"유서"
창운군 대감께서 남긴 유서입니다
(창천군) 유…
저하께 당한 치욕을 못 이기고 목숨을 끊으셨다더군요
어찌 이, 이런 일이…
(원산군) 숙부님의 죽음에 상심한 사람이
비단 저 혼자라 생각지 않습니다
이는 강상의 도가 무너진 일이지요
양반이 노비에게 무릎을 꿇고
숙부가 조카에게 조롱을 당해 목숨까지 끊어 버렸으니
이 조선의 사대부들이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의미심장한 음악]
참
부원군의 조카께서
성균관의 장의를 맡고 있다 들었습니다
나라의 중대사엔 언제나 유생들이 앞장서 왔지요
숙부님이 남기신 그 서찰을 조카님께 전해 주시지요
분명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유생) 세자 저하의 명으로
유교의 질서를 무너뜨린 창운군이 [어두운 음악]
그 욕됨을 자결함으로써 한탄하였습니다
백성의 섬김을 받아야 할 세자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유교의 질서를 무너뜨린 일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온 나라가 놀라 인심이 술렁이고 소란스럽습니다
더구나 숙부를 욕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패륜의 죄가 하늘에 미치니
조선의 만백성이
그 모든 죄를 지게 될까 염려되는 바입니다
만일 전하께서도 나라의 질서를 세우고
유교의 법도를 공경하신다면
세자의 직첩을 거두어
폐세자를 명하심이 옳을 것입니다!
유교의 근간을 뒤흔든 세자 저하를 엄벌하여 주시옵소서!
(유생들) 엄벌하여 주시옵소서!
(혜종) 누굽니까?
(창천군) 예?
유생들을 규합해 움직인 것이
그게, 글쎄…
(창천군) 소신도 지금 너무나 황망하고 기가 막혀서…
(혜종) 이리하면 제현 대군이
세자의 자리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옵니까, 전하
(창천군) 진실로 소신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혜종) 부원군의 조카가
성균관 장의인 걸 모두가 알고 있소
정녕 끝까지 날 기만할 생각입니까?
소신의 조카가 장의인 건 사실이오나
반상의 법도를 거스르지 말라
(창천군) 권당을 결의하는 유생들의 움직임까지
소신이 어찌 막을 수 있겠사옵니까, 전하
[긴장되는 음악]
[문이 달칵 닫힌다]
[창천군의 힘겨운 신음]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기재) 부원군께서 책임지고 저들을 모두 물리십시오
지금 당장!
어찌 이런…
(기재) 군사들을 푸시지요
궐을 장악하고 세자 저하를 욕보이는 저들을
역모죄로 엄히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역모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오
(혜종) 이 사안은 내가 결정할 것이니
상헌군은 그만 물러가시오!
(기재) 주모자들을 잡아들이고 그 목을 내어 거십시오
필요하다면 제가 군사들을 움직이지요
세자의 폐위를 입에 올리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그 입을 찢고 혀를 뽑아 버릴 것입니다
[기재의 성난 숨소리]
[달려오는 발걸음]
[현의 다급한 숨소리] [풀벌레 울음]
(현) 이게 다 무엇입니까?
세자 저하를 폐하라는 유생들의 상소가
왜 형님 방에 있는 것입니까?
보았으니 알 것이 아니냐
이번 일은 저하께서 섣불렀다
아주 큰 실수를 하신 게지
하면 창천군 대감을 만난 것도 모두 그 때문입니까?
(현) 어찌 형님께서 이러실 수 있습니까?
왜 이런 일에 형님께서 앞장서고 계시냐는 말입니다
너야말로 대체 언제까지 세자의 편만 들고 있으려 하느냐?
(원산군) 그만 현실을 직시하거라
네 숙부가 죽었다
이제 세자는 끝났다는 말이니라
[긴장되는 음악] 형님
거긴 원래 내 자리였다
궐은 세자이신 아버지
원손이었던 나
그리고 어린 너와
우리 어머니가 지내던 곳이었단 말이다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멈추십시오, 제발
안타깝지만 그럴 순 없구나
이제 그들의 의지를 나도 더는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한숨]
(유생) 세자의 직첩을 거두어 폐세자로 명하시옵소서!
(유생들) 명하시옵소서!
(유생) 유교의 근간을 뒤흔든 세자 저하를 엄벌하여 주시옵소서! [복동의 한숨]
배운 분들이 어찌 저리 모진 말들을 하시는지 [유생들이 간청한다]
(유생) 숙부를 욕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복동의 다급한 신음]
패륜의 죄를 물으시옵소서!
[문고리를 탁 잡는다] (유생들) 물으시옵소서!
[다가오는 발걸음]
두 눈 딱 감고 대전으로 가
잘못했다고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복동) 이러다 진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너희도 내가 심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아니라
(복동) 지금까지 잘 참아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이번만은 어찌하여…
나도 참으려 하였다
참을 수도 있었겠지
한데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휘) 신분이 천해서 죽어야 했던 그 아이와
계집이어서 죽어야 했던 내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
[무거운 음악]
저, 저하…
이번에도 이리 또 모른 척해 버린다면
앞으로 10년
아니
어쩌면 영영
(휘) 내 삶은
목숨만 연명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겨우 이 자리 하나 지키자고
눈 감고 귀 막고 살아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지금의 저들을 보니
이곳은 아직도
내가 태어나던 그때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구나
잘하셨습니다
빈궁마마께서도
저하의 삶이 그리되는 것은 원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김 상궁) 마마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분명
'옳았다'
'잘하였노라'
그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시옵소서
저도 홍 내관도 끝까지
저하의 뜻을 따를 것이니 말입니다
"자선당"
[풀벌레 울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휘) 형님
(현) 아직 침수에 들지 않으셨던 겁니까?
밖에 저리 소란인데 쉬이 잠들 수 있겠습니까
(휘) [멋쩍게 웃으며] 부끄럽네요
형님껜 왜 늘 이런 모습만 보이게 되는지, 원
저하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14살이던 무렵에
저하를 처음 뵈었습니다
(현) 두 눈은 너무 깊어 끝도 모를 정도로 맑았으나
그곳을 가득 채운 건
이유 모를 경계심이었지요
피붙이 같던 세손마마의 눈빛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얼굴도 목소리도
걸음걸이까지 모두 똑같았지만
저하께선
분명 제가 아는 세손이 아니셨습니다
[무거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휘) 모두
알고 계셨던 것입니까?
(현) 그 사실이 처음엔 혼란스러웠고
그 후엔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저하를 뵈었을 땐
지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밤새도록 손이 터지면서 활을 쏘던 그 아이를
넘어져 뼈가 깨져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던 그 아이를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픈 세상에
홀로 우뚝 남겨진 그 아이를
제가 지켜 주겠다 다짐했습니다
형님
폐세자가 되면
저하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현) 아니, 운 좋게 폐세자가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어찌 버티실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여인의 몸으로 버텨 왔으나
앞으론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비밀이 탄로 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애잔한 음악]
제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현) 저하께서 더 가지 못하고 멈추었던 그 길 끝에
바다가 있다던 제 말을 기억하십니까?
그곳에 돛이 아주 큰 배가 있다고요
그 배를 타고 떠나시지요
저하께서 원하는 곳이 그 어디든
제가 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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