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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모 4


  (나졸) 열세 대요!


  [질금과 영지의 괴로운 신음]


  열넷이오!   [질금이 울부짖는다]


  열다섯이오!


  (지운) [흐느끼며] 영지야, 영지야


  (나졸) 열여섯이오!


  - (지운) 안 돼, 질금아, 영지야   - (나졸) 열입곱이오!


  [영지와 질금의 괴로운 신음]


  (나졸) 열여덟이오!


  (지운) 나리!


  - (나졸) 열아홉이오!   - 저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 (지운) 다 제가 시킨 것입니다   - (나졸) 스물이오!


  - (감찰) 끌어내!   - (지운) 아, 안 됩니다!


  나리, 제발! 안 돼, 질금아   [나졸들이 연신 곤장질한다]


  안 됩니다! 나리, 제발 그만…


  [지운이 연신 흐느낀다]


  영지야!


  저 아이들한테 가 봐야 합니다


  놔라! 놔주시오


  안 됩니…


  [무거운 음악]


  (지운) 군사들을 보낸 것이   아버지셨습니까?


  (석조) 그래, 내가 보냈다


  [분한 숨소리]


  저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풀어 주십시오


  다 제가 시킨 것입니다


  그랬겠지


  삼개방 의원이   너라 하였으니 말이다


  하면


  다 알고도   이러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대체 왜…


  (석조) 내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뿐이다


  네가 출사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허탈한 숨소리]


  이제부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그리하면 저 아이들은   무사할 것이니라


  [바람이 쏴 분다]


  (내관) 세자 저하 드시옵니다


  [한숨]


  [피식 웃는다]


  (휘) 칭찬이 자자한   훌륭한 인재라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놀란 숨소리]


  [아름다운 음악]


  오늘부터 저하의 서연을 맡게 된   사서 정지운이라 합니다


  [당황한 신음]


  네가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냐?


  (지운) 이리 저하를   다시 만나 뵙게 되다니


  참으로 광영이옵니다


  다시 내 눈에 띄면   용서치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잊었던 것이더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하오나 신하 된 자가   왕명을 거역할 순 없는 법


  (지운) 소신 전하의 교첩을 받고


  저하의 시강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그날의 실수는 부디   용서해 주시지요


  [어이없는 숨소리]


  하면 '시경'을 펼치시지요


  (혜종) 새로 온 사서의 임명을   취소해 달라?


  (휘) 예


  사서 정지운은 양반의 신분으로   삼개방이라는 곳을 운영하며


  사특한 침술로 반가의 여인들과   사대부가 사내들을


  유린하였다 들었사옵니다


  또한 재물을 탐하며


  때로는 은밀히 궐에까지 들어와   궁녀들과 친분을 맺는 등


  그 행실이 문란하다 하니


  어찌 그런 자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단 말입니까


  부디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아바마마   [긴장되는 음악]


  (혜종) 그자는   좌상이 직접 추천한 자다


  네 말에 증좌가 있느냐?


  대전 별감 구춘생과   수방 나인들을 심문해 주십시오


  [밝은 효과음]


  (춘생) 대전을 지키라는   명을 받은 제가


  어찌 사사로이   낯선 이를 궐이 들이겠습니까


  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전하


  (궁녀1) 기가 허해   내의녀에게 부탁해


  침을 맞은 적은 있사오나


  삼개방 의원이라니   금시초문이옵니다


  게, 게다가   삼개방의 의원이란 자는


  한성부 옥사에 갇혀 있다 들었는데


  그, 그런 자가   어찌 시강원에 있겠습니까


  모두 나가 보거라


  (휘) 모두 거짓이옵니다, 아바마마   [문이 달칵 닫힌다]


  정지운 그자를 불러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홍월루라는 곳에서   분명 저를 만났다 할 것이옵니다


  (혜종) 홍월루?


  기루에 갔단 말이더냐?


  [어두운 음악]


  잠행 중 우연히 들렀을 뿐입니다


  한 나라의 세자란 자가


  허락도 없이   궐 밖에 나간 것도 모자라


  기루나 어슬렁거렸다?


  참으로 답답하고 어리석구나


  종무가 바쁘다, 그만 물러가라


  하오나…


  예, 아바마마


  (만달) 지금까지   왕실 가계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습니다


  "세자 저하"


  자, 다음은


  이 시강원에 처음 오신   신입 서연관님들께만 드리는


  고급 비밀 정보


  들어는 보셨습니까?


  '동빙고'


  [의아한 숨소리]


  세자 저하의 별호입니다


  사시사철 얼음 창고처럼   서늘한 분이라 하여


  '동빙고마마'


  오 보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하여


  '오 보 저하'라고 불리지요


  [흥미로운 신음]


  (지운) 근데 옆에 있는   짐승들 그림은 또 뭔가?


  이건 종친 서열도입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의아한 숨소리]


  서열도?


  (만달) 이 또한 알아 두시면   유용할 것 같아


  위험을 무릅쓰고   준비해 보았습니다


  [피식 웃는다]


  에, 먼저 이 호랑이는


  용맹과 기개   힘을 나타내는 의미로


  주상 전하의 형님이자   [호랑이 울음 효과음]


  돌아가신 도현 세자 댁의 장자이신


  종부시 제조…


  원산군 대감


  "원산군"


  [멋쩍게 웃으며] 어찌 아셨습니까?


  아, 이 옆에 있는 매는


  모두에게 필요한   고마운 동물이지요   [매 울음 효과음]


  - (만달) 예조 참판…   - (지운) 자은군 대감


  [만달의 멋쩍은 신음]


  "자은군"


  제법 준비를 하고 오셨나 봅니다?


  [피식 웃는다]


  씁, 하면 저 토끼는 누구인가?


  아, 이 토끼로 말할 것 같으면


  [흥미로운 음악]   (만달) 순하게 생겼으나   뒷배가 든든한 토끼는


  [토끼 울음 효과음]   현 중전마마의 소생이자   영상 대감의 외손


  왕위 계승 2순위   제현 대군을 뜻합니다


  "제현 대군"


  [만달이 숨을 후 내쉰다]


  [옅은 탄성]


  [흥미로운 효과음]


  그럼 저 들쥐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흥미로운 음악]


  [쥐 울음 효과음]   (만달) 창운군 대감께서   들으십니다


  [숨을 씁 들이켠다]


  전하의 이복동생이자   이 왕실의 골칫덩어리


  뭐, 굳이 따로 설명   안 드려도 아시겠죠?


  [문이 달칵 여닫힌다]   [헛기침]


  [범두의 답답한 신음]


  (범두) 또 그 설명인가?


  [범두의 한숨]


  자네도 참 정성이네


  [웃음]


  [범두가 책을 탁 내려놓는다]


  [코를 드르렁 곤다]


  문학께선   늘 저리 잠이 부족하십니다


  [어색한 웃음]


  [문수의 헛기침]


  (만달) 오셨습니까, 보덕 어른


  (문수) 응, 어, 그래그래


  야, 오늘따라   시강원이 환하네, 응


  일어나!


  [익살스러운 음악]


  [문수의 웃음]


  어, 어


  자, 자, 자, 그, 오랜만에   우리 새 식구도 왔으니까


  어떻게, 어? 한잔해야지   [웃음]


  (범두) 아, 어제 마셨는데   뭘 또 마셔요


  어? 좋지?


  [만달의 어색한 웃음]   (문수) 어, 좋지? 어


  (지운) 그게…


  제가 오늘은 어디   가 볼 데가 조금 있어서


  [풀벌레 울음]   [다가가는 발걸음]


  [힘겨운 숨소리]


  [지운의 한숨]   [무거운 음악]


  [한숨]


  [질금의 놀란 신음]


  혀, 형님?


  [질금의 다급한 숨소리]


  (질금) 형님


  아이, 여긴 왜 왔소?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살짝 웃으며] 괜찮긴


  하도 맞았더니   똥 눌 때 힘도 못 주겠어


  미안하다, 나만 이렇게…


  여, 영지는?


  한성부에 있긴 있댔는데


  잘 모르겠어


  조금만 참아


  내가 꼭 구해 줄 테니까


  (질금) 형님


  우리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말아


  영지나 나나 우리 남매


  어차피 형님 안 만났으면   애초에 죽은 목숨들인걸


  이제 와 어떻게 되든   형님 원망 안 해


  [웃음]


  (복동) 아무래도 정 사서와   삼개방에 대해서는


  더는 조사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정석조 그자가   이미 다 손을 쓴 모양입니다


  [한숨]


  본인의 아들을   서연관으로 올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겠지


  (김 상궁) 괜찮으시겠습니까?


  서연관은 매일 저하와   독대를 해야 할 정도로


  가까운 자리입니다


  혹여라도 저하에 대해   눈치라도 챈다면은…


  (휘)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 전에 제 발로   궐을 나가게 될 것이니까


  [김 상궁의 당황한 신음]   (복동) 저, 아니, 무슨 수로…


  서연관 하나쯤 떼어 내는 거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아니겠느냐?


  [흥미진진한 음악]


  [한숨]


  [새가 지저귄다]


  (지운) 이것이 다 무엇이옵니까?


  (휘) 저의 식견이 짧아   혼자서는 독해가 불가하니


  스승님께서 일일이 주석을   좀 달아 주십사 해서 말입니다


  예?


  이, 이걸 다 말입니까?


  왜, 못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탄성]   (서리) 힘도 좋네


  [책을 탁 내려놓는다]   [힘겨운 신음]


  [가쁜 숨소리]


  (만달) 아니, 그새 저하께   찍히셨습니까, 그래?


  찍히다니?


  [탄식]


  (문수) 아이고, 정 사서


  마음을 단단히 먹게, 응?


  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니


  [익살스러운 음악]


  (문수) 처음이야 뭐   이렇게 가볍게, 응?


  경전 필사부터 시작하겠지만


  갈수록 강도가 심해질 걸세


  [문수가 혀를 쯧쯧 찬다]   [만달과 범두의 한숨]


  [닭 울음 효과음]


  [효과음 음성] 참 거시기허네잉


  [풀벌레 울음]


  새로 온 스승께   속수를 올리는 대신


  소박한 술자리를 마련하였으니


  [휘가 술병을 탁 집는다]


  받아 주시지요


  [살짝 웃는다]


  [술잔을 탁 집는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하


  [술을 조르르 따른다]


  (문수) 조심해


  취중의 실수를 노리시는 걸세


  그러니 저하 앞에서는   절대 취해선 아니 되네


  절대


  [코를 드르렁 곤다]   [만달의 힘겨운 신음]


  [휘가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휘) 그럼 쭉 들이키시지요


  예


  [흥미로운 음악]


  [시원한 숨소리]


  [지운의 어색한 웃음]


  (휘) 자고로 잔도   더 큰 것이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탄성]


  [지운의 시원한 숨소리]


  [복동의 괴로운 신음]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지운) 이건 국그릇이 아닌가


  [웃음]


  [지운의 시원한 숨소리]


  [복동의 힘겨운 신음]   [김 상궁의 놀란 숨소리]


  (복동) 한 잔 드시겠습니까?


  김 상궁


  [복동의 웃음]   (휘) 홍 내관 치우게


  [복동의 술 취한 신음]


  (김 상궁) 송구합니다


  [복동을 탁탁 치며] 일어나시게


  [새가 지저귄다]   [밝은 음악]


  [지운의 힘주는 신음]


  [지운의 탄식]


  [지운의 힘주는 신음]


  [지운의 웃음]


  (지운) 와, 찾았습니다


  아, 있습니다


  어어! 안 돼, 안 돼


  [허탈한 숨소리]


  [물을 찰싹 치며] 아유, 도대체   이런 걸 왜 시키시는 거랍니까!


  그건 말이지


  그, 그냥 뭐   자네가 싫은가 보지, 뭐


  - (문수)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 (만달) 예!


  (범두) 추어탕 어떠십니까?


  [지운의 개운한 숨소리]


  [지운의 당황한 신음]


  [못마땅한 신음]


  아이, 씻어도 이 비린내가 진짜…


  [분한 숨소리]


  내 당장 돌아가 사직소를 그냥!


  (석조) 보름 뒤   명나라에서 사신단이 들어온다   [잔잔한 음악]


  그때까지만이라도   저하의 곁을 잘 지킨다면


  그땐 저 아이들을 풀어 주마


  [숨을 후 내쉰다]


  (휘) 제법이군


  지금쯤이면   떨어져 나갈 거라 여겼는데


  [헛웃음]


  송구하오나 소신


  산전


  (지운)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자라 말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휘) 이게 다 무엇이냐?


  지난번 정 사서에게 시키신   필사본이라 하옵니다


  (복동) 세상에   이걸 진짜로 다 했네


  [김 상궁이 숨을 씁 들이켠다]


  [한숨]


  [아련한 음악]


  (어린 지운) 받거라, 이거


  "춘추좌씨전"


  [피식 웃는다]


  무엇 하느냐, 어서 치우지 않고   [책을 탁 내려놓는다]


  (김 상궁) 예


  [풀벌레 울음]


  [밤새 울음]   (현) 이 밤에 나를 찾아온 이라니?


  (천복) 하, 그것이…


  둘도 없는 정인이라 말하면   아실 거라고


  (현) [피식 웃으며] 뭐?


  (천복) 어라?


  아, 분명 여기서   군대감 어른을 찾으셨는데


  웬 이상한 치가   네게 장난을 친 모양이구나


  [의아한 숨소리]


  (지운) 오랜만입니다, 군대감


  나다, 네 정인


  [웃음]   [부드러운 음악]


  정지운, 네가 어떻게…


  [피식 웃는다]


  (현) 사서?


  새로 온 서연관이   자네였단 말이야?


  명에선 대체 언제 온 건가?


  [지운의 시원한 숨소리]


  (지운) 한 1년 됐나?


  도성에 온 지는 서너 달 안 됐고


  어찌 그리 바람처럼 떠돌아다녀?


  (현) 아무리 그래도   궐에 왔으면 나부터 찾아왔어야지


  [지운의 분한 숨소리]


  (지운) 보이는가?


  이 고운 손에 굳은살 박힌 거


  거, 아무리 동빙고라지만, 쯧


  아, 저하께선 원래 그리   성정이 고약하신가?


  내 이제 이리 미끈하게   생긴 것들은, 어?


  꿈에도 보기 싫다니까, 쯧


  (현) 천하의 정지운이   아주 된통 당한 모양이구먼


  어떻게, 내가 저하께   잘 좀 봐 달라 얘기해 줘?


  [피식 웃는다]


  그럴래?


  (지운) 우리가 아주 진한 사이니까


  제발 잘 좀 봐달라고   네가 말이라도 해 주면


  좀 먹히려나?


  불같이 싫다고 화낼 줄 알았더니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지운) 쯧, 있지


  많았지, 아주


  지금도 많고 말이다


  (현) 대체 뭔데 그래?


  혹시 아버지 일이야?


  [무거운 음악]


  아버지 때문에라도   궐엔 안 들어올 거라더니


  말하자면 길다


  술이나 마시자, 오늘은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자선당"


  [새가 지저귄다]   (현) 새로 온 서연관은   어떠셨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휘) 뺀질하고 능글맞은 것이


  능력보다는 말로만   해결하려는 자로 보이더군요


  오래 볼 자는 아닐 듯하였습니다


  (현) 능력이 아주   출중한 자라 들었는데


  문무에도 뛰어나고 인품 역시 좋아


  훌륭한 벗들도 많다 들었습니다


  [휘의 코웃음]


  그게 다 외조부님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꾸며 낸 허풍이겠지요


  아,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그런 자를 벗으로 둔 이라면   안 봐도 뻔하지요


  [익살스러운 음악]


  [헛기침]


  [멋쩍게 웃으며] 뭐 그렇게까지…


  [문이 달칵 열린다]


  (복동) 저하   곧 서연에 들 시간이시옵니다


  알겠다! 쯧


  (복동) 닫거라


  [문이 달칵 닫힌다]


  [잔을 탁 내려놓는다]   [입소리를 쯧 낸다]


  [지운의 한숨]


  [의아한 숨소리]


  [새가 지저귄다]


  (복동) 정말로 주강에   들지 않으실 겁니까?


  세자 책봉을 받으신 후부터는


  단 한 번도 시강원 수업을   빠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


  안 들어간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복동) 그, 참, 아유


  (지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를 피하시는 이유, 아니


  쫓아내시려는 이유 말입니다


  (휘) 그건 정 사서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아닙니까?


  저하께서 내신 과제는   모두 통과한 걸로 아는데요


  (지운) 저는 저하의 스승입니다


  학문과 도의를 알려 드릴   임무를 다하고자 하니


  저하께서도 이제 그만   서연에 임해 주시지요


  [화살이 휭 날아간다]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휘) 학문과


  도의라


  [휘의 헛웃음]


  우습군요


  학문은 모르겠으나 도의라는 것은


  정 사서께 배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숨]


  삼개방이라는 곳을   운영했다 들었습니다


  저를 만난 곳도 기방이었지요?


  [헛기침]


  그런 곳에서 침이나 놓는   한량 같은 자가


  제 아비의 뒷배로   서연관 자리에 오른 것이


  [코웃음 치며] 부끄러울 법도 한데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하면


  앞으로도 저를   계속 피하실 생각이십니까?


  가능하면 그럴 겁니다


  정 사서께서   양심껏 그만두실 때까지


  (지운) 송구하지만   그리는 못 하겠다면요?


  [어두운 음악]


  참으로 철면피군


  (휘) 하긴


  세자의 스승이라는 자리가   탐날 만도 하겠지


  네 아비처럼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는 자로구나


  (지운)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저와 내기를 하는 겁니다


  만약 이 내기에서 제가 지게 되면


  저하의 뜻대로 제가 물러나지요


  단


  [무거운 음악]   제가 이기면 저하께선


  저와의 서연에   다시 나오시는 겁니다


  내기?


  이번 회강에서   저를 포함한 모든 서연관에게


  통자생을 받으십시오


  (지운) 전하와 대소신료   모두가 모이는 회강이니


  저 역시 함부로 불자생을 드렸다간   도리어 큰 벌을 받겠지요


  어떠십니까?


  [헛웃음]


  내가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난 내기 따위는 할 생각이 없는데


  (지운)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제안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글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뭐


  네 목숨이라도 걸면 모르겠지만


  [무거운 음악]   [코웃음]


  [장엄한 음악]


  무슨 짓이냐, 이게?


  걸겠습니다


  제 목숨


  [헛웃음]


  [새가 지저귄다]


  [관원의 다급한 숨소리]


  (관원) 군대감 어른   군대감 어른!


  [관원의 가쁜 숨소리]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저하께서   새로 온 사서께 활을 겨누고


  난리도 아니라 합니다


  뭐?


  [긴장되는 음악]


  [지운의 결연한 숨소리]


  (김 상궁) [놀라며] 저하


  (복동) [울먹이며] 아이고


  [김 상궁의 다급한 숨소리]


  저, 저하,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제발 활을 내려 주세요


  죽는 것이 소원이라니   그리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김 상궁의 난처한 신음]   (복동) 아이고, 아이고


  [대신들의 당황한 신음]


  (현) 저하!   [현의 다급한 숨소리]


  [활이 휭 날아간다]   [사람들의 놀란 신음]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신하들의 겁먹은 신음]   (복동) 아유


  [긴장한 숨을 내뱉는다]


  [안도하는 한숨]


  [거친 숨소리]


  [한숨]


  [한숨]   [어두운 음악]


  네 배포에 한 번은 수락하지


  그 내기


  [떨리는 숨소리]


  [한숨]


  (복동) [놀라며] 아이고


  [안도하는 한숨]


  [한숨]


  삼개방이라니?


  [한숨]


  나한텐 목숨보다   중요한 아이들이야


  (지운)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다, 난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한숨]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데?


  [한숨 쉬며] 모르겠다, 나도


  일단 뭐라도 해 봐야지


  [한숨]


  [지운의 한숨]


  (지운) 한데 상헌군 대감이   저하의 외조부라더니


  사이는 별로 안 좋은가 봐?


  [무거운 음악]


  (문수) 아휴, 저런, 저런


  [문수가 혀를 쯧쯧 찬다]


  아니, 저하야   원래 그런 성정이라지만


  자네도 참, 어찌 그리 겁도 없이…


  [문수의 못마땅한 신음]


  (현) 아버지인 전하와


  외조부인 상헌군 사이에서   곤란하신 거지


  두 분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니 말이야


  그래서 나를 그렇게…


  (문수)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나?


  (지운) 아, 아, 아닙니다


  아니, 아닙니다, 어르신


  (문수) 이런, 쯧쯧쯧


  자, 이거 저하께 갖다드리면   좋아할 걸세


  가서 눈도장 찍고 오게


  잘못했다고 용서도 빌고


  아, 어서!


  [기재의 한숨]


  백주 대낮에   스승에게 활을 겨누다니


  (기재) 어찌 그리 무모하셨습니까?


  세자인 저를 우습게 여기기에   본을 보였을 뿐입니다


  (기재) 발톱을   드러내는 것은 괜찮으나


  저하의 상대는 그자가 아닙니다


  하니 다시는


  오늘 같은 소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정지운


  그자를 왜 저의 스승으로   추천하셨습니까?


  행실이 좋지 않다 들었습니다


  외조부님의 측근인 정석조


  그자의 아들이기 때문입니까?


  [어두운 음악]


  지학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젊은 인재입니다


  곁에 두신다면   언젠가 큰 힘이 되실 겁니다


  (기재) 설령 저의 사람이면   어떻겠습니까


  궐은 진흙탕 같은 곳입니다


  어차피 내 사람이 아니면   다른 이가 틈을 엿보겠지요


  하니 그런 일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홀로 고고할 필요는 없단 뜻입니다


  하오나…


  (기재) 나의 사람이   곧 저하의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소신의 이 뜻을   잘 새기셔야 할 것입니다


  예, 외조부님


  [복동의 한숨]


  [못마땅한 신음]


  [복동의 헛기침]


  (복동) 정 사서께서 또 어쩐 일로?


  아, 보덕 어른께서   책을 좀 가져다드리라 하여


  - 여기 있네   - (복동) 예


  하면 일들 보시게


  (지운) 이번 회강에   출제할 문제이자


  저하께 드리는 과제입니다


  (휘) 과제?


  (지운) 그것의 싹을 틔워


  무슨 씨앗인지 알아내   학습하고 오셔야만


  회강 때 제 질문에   답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단


  혹시라도 다른 이들을 시켜


  알아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이 문제는 오직 저하께서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의미심장한 음악]


  [씨앗이 달그락거린다]


  [한숨]


  [책장을 사르륵 넘긴다]


  [한숨]


  (대감) [술 취한 목소리로] 하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이놈들아?


  [대감의 웃음]


  나로 말할 거 같으면


  [대감의 힘겨운 신음]


  아, 가마를 멈춰라, 가마를


  (가마꾼) 예   [대감의 힘겨운 신음]


  [긴장되는 음악]


  (대감) [소변을 졸졸 누며]   사람은 말이야


  줄을 잘 서야 돼, 줄을


  [웃음]


  날 봐, 날


  [말을 더듬으며] 웨, 웬 놈이냐!


  아니, 넌…


  넌! 너, 너, 너, 너…


  [대감이 풍덩 빠진다]


  [새가 지저귄다]


  (복동) 이거 연씨 아닙니까?   연자육


  (휘) 아니다


  [복동이 씨앗을 퉤 뱉는다]


  (복동) 맞는데


  (휘) 이리 쉬운 문제에   목숨까지 걸었겠느냐


  분명 다른 뜻이 있는 거다


  (궁녀2) 어유, 멋있어, 어떡해   [궁녀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누구냐, 저자는?


  글쎄요, 처음 보는 자인데


  (복동) 동궁전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알아보고   어서 내보내거라


  [궁녀들이 연신 감탄한다]


  (김 상궁) 저하


  [궁녀들의 놀란 신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오늘부터 저하의 호위를 맡게 된   김가온이라 합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획자) 관중이오!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혜종) 호위 무사라니요?


  진정 어마마마께서   명하신 일이옵니까?


  내 일전에 주상께   여쭙지 않았습니까


  지난번 강무장의 일도 그렇고


  걱정이 돼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대비) 마침 병조에   믿을 만한 이가 있다 하여


  추천을 받았으니


  그리 알고 계세요


  (혜종) 동궁전의 일은   제가 신경 쓰면 될 일입니다   [어두운 음악]


  [한숨]


  그럼 진작에 신경을 쓰셨어야지요


  (대비) 주상은 어찌 그리   세자에게 무심하답니까?


  중전과 금실이 좋은 것까지야   뭐라 할 순 없겠지만


  이 나라 세자는   제현 대군이 아닙니다


  세자의 권위도 생각을 하셔야지요


  그래, 소속이 어디였나?


  의흥위 갑사였소


  (복동) 어…


  내가 자네   뭐, 이렇게 따로 보자고 한 건


  자네도 이제 동궁전 소속이니


  규칙 몇 가지는 숙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네


  첫째


  저하의 곁을 따를 때는


  최소 뒤로   오 보 물러서서 따라야 하네


  날 보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강조되는 효과음]


  [복동의 가쁜 숨소리]


  [큰 목소리로] 자네 자린 여기라네


  그리고 둘째


  저하께 보고할 모든 문제는


  나와 김 상궁마마님을   거쳐야 하네


  [복동의 가쁜 숨소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나!


  [밝은 음악]


  [궁녀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복동) 오 보, 오 보 유지…


  이보게, 오 보 유지, 오 보 유지


  (김 상궁) 이보게, 뒤로 좀 오시게


  (복동) 어허   그 사람 참, 뒤로 좀 오시게


  오 보, 오 보


  (궁녀3) 이 정도면 대비전에 가서


  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궁녀4) 내 말이, 너무 멋있어


  (궁녀5) 호위 무사면   밤에 저하 곁을 지키시겠지?


  (궁녀4) 그러겠지


  (궁녀5) 오늘부터 밤에 서는 번은   내가 다 맡을게


  [궁녀들의 들뜬 신음]


  (궁녀6) 그럼 깨어 있어도   꿈속이려나?


  [궁녀6의 탄성]


  (궁녀7) 어쩜 저리   뒤태도 멋있으실까?   [복동이 다그친다]


  (복동) 오 보 유지, 오 보 유지!   [궁녀들이 연신 감탄한다]


  [긴장되는 효과음]


  [복동의 놀란 신음]


  [궁녀들의 놀란 비명]


  [소란스럽다]


  (휘) 오 보, 오 보!


  오 보 뒤로 물러서서 따르라는   내 말을 잊었더냐!


  [복동의 힘겨운 신음]


  그렇지 않아도 회강 준비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판에


  [한숨]


  넌 오 보 뒤로 물러나라는 내 말이   안 들리는 것이냐?


  오 보


  내 곁에서   오 보 이상 물러나라 했다


  더, 더 뒤로 가거라, 더!


  저하의 곁을 지키라는   어명이 있었습니다


  어명이라


  그렇다면 넌


  대전의 사람이냐?


  아니구나


  (휘) 할마마마께서 추천하였으니


  대비전의 사람이겠구나


  그것도 아니면


  외조부의 사람이거나


  모두 아닙니다


  (가온) 저는 그저 저하를 지키라는   명을 따를 뿐입니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이제부턴 동궁전의 사람입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궁녀들의 탄성]


  [궁녀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복동의 기가 찬 숨소리]


  [한숨]


  (복동) 뒤에, 뒤에, 좀


  [한숨]


  [휘의 한숨]


  (지운) 이 문제는 오직


  저하께서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이야?


  "춘추좌씨전"


  [아련한 음악]


  [한숨]


  [밝은 효과음]


  "연선"


  (어린 지운) 연꽃에게서   널 선물받았으니


  이 이름이 너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연선'


  설마…


  (현) 저하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함을 달그락 닫는다]


  (휘) 아, 혀, 형님


  [휘의 당황한 숨소리]


  뭘 그리 놀라십니까


  (현) 좀 도와드릴까요?


  (휘) 아니, 아닙니다


  그, 이번 사신단의 영접을   형님께서 책임지신다 들었습니다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저하도 신경 쓰실 일이   많을 터인데


  궐 밖에 가실 때   함께 나가고 싶어 그러지요


  눈치도 없으시긴


  [어색한 웃음]


  (현) 하면 회강연 먼저 끝내고   이야기하시지요


  저하께 중요한 일이 아닙니까


  아, 예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겠지요


  [어색한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문수의 헛기침]


  (문수) 다음은 시강원 사서


  정가 지운의 진강 차례입니다


  (지운) 지난 서연에서 제가 저하께   과제를 하나 드렸지요?


  (휘) 예, 스승님께서 제게


  심어 싹을 틔우라   씨앗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씨앗인지   알아내셨습니까?


  연꽃 씨앗입니다


  제대로 맞히셨습니다


  (지운) 하면 제가 어떤 연유에서   그 연씨를 드렸는지는


  읽으셨습니까?


  [긴장한 숨소리]


  '종경록'에 따르면


  사람은 스스로   마음이 있는 자리를 알지 못하나


  (휘) 심장이 연꽃의 형상과   같다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마음에 연꽃을 피우면


  득과 이가 상응한다 하였지요


  또한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아니하고


  그 향기를 간직하니


  고결한 연의 뜻을 본받아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정신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겠지요


  송구하오나…


  (휘) 하나


  경서에나 나올 법한 철학을   되풀이하고자


  이런 문제를 내진 않으셨겠지요


  연은 본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지요


  잎사귀, 뿌리, 과방   암술, 씨앗까지


  전부 백성들에게   귀한 먹거리와 약재로 쓰입니다


  군자라 일컫는 선비들이   연에서 고결함을 보려 할 때


  백성들은 생사를 보았을 것입니다


  [못마땅한 한숨]


  하여


  그저 애민을   마음먹은 군주가 아니라


  백성의 그늘진 삶까지   굽어살필 수 있는


  맑은 눈의 성군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훌륭한 답변이십니다


  (지운) 하나 제가 바라던 답은   아니옵니다, 저하


  아니라고요?


  (지운) 군주라고 어찌 항상   타인만을 생각하겠습니까


  자애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민을   베풀 수 있는 법이지요


  [헛웃음]


  그것이 내게 주었던 연씨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누군가 궐은


  진흙탕 같은 곳이라 말하더군요   [의미심장한 음악]


  (기재) 궐은 진흙탕 같은 곳입니다


  어차피 내 사람이 아니면


  다른 이가 틈을 엿보겠지요


  (지운)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나


  주변을 맑게 하고


  꽃잎에 더러운 물이 닿더라도   그대로 떨쳐 낼 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주변의 부조리한 환경에   물들지 아니하고


  홀로 고결하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저하 역시 굳건한 군주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연씨를 드렸던 것입니다


  대의를 운운하며 무고한 이들을   함부로 하는 자들이 있다지요


  하나 그 어떤 대의도


  백성들의 목숨보다   가치 있을 순 없습니다


  하여 부디 저하께서도   이러한 연의 모습을 본받아


  진흙탕 속에서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스스로 판별하고 다잡을 수 있는


  고고함을 잃지 마시옵소서


  (기재) 홀로 고고할 필요는   없단 뜻입니다


  앞으로도 소신의 이 뜻을


  잘 새기시길 바랍니다


  (지운) 하여 소신   이번 회강에선 저하께


  [강조되는 효과음]


  불자생을 드리겠나이다   [어두운 음악]


  [신하들이 웅성거린다]


  [학수의 헛기침]


  [웃음]


  뛰어난 통찰력이다


  난 그 대답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혜종의 웃음]


  썩히기 아까운 능력이라더니


  상헌군 그대의 말대로   아주 뛰어난 인재예요


  [장엄한 음악]


  [사람들이 시끌시끌하다]


  (문수) 아이, 이보게, 이보게


  여기, 여기를 좀, 좀 따라드려


  자, 만달이가 그럼 한잔 올리고


  (만달)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 (지운) 편히, 편히 앉게   - (만달) 아유, 아닙니다


  (만달) [술을 조르르 따르며]   저는 너무 영광입니다, 오


  (범두) 어떻게 이런 인재가   시강원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까?


  10년 전 제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   [사람들의 웃음]


  (문수) 아유


  (만달)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문수) 질투하는 거 같은데?


  [사람들의 웃음]


  (범두) 질투는 무슨


  (문수) 그거 넘기고


  - (지운) 아, 예, 아유, 저…   - (문수) 한잔 쭉


  [잔잔한 음악]   (지운) 술을 잘 못해서


  - (문수) [웃으며] 그래?   - (지운) 아, 예


  [시끌시끌하다]


  (문수) 즐겁지요?


  [사람들의 웃음]


  [풀벌레 울음]


  [헛기침]


  (지운) 여기 계셨습니까, 저하


  (휘) 모두 들었던 겁니까?


  외조부께서 내게 한 말들을요


  송구합니다


  일부러 들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제 대답이 많이 불편하셨습니까?


  인상적이었습니다


  (휘) 이 궐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이었으니까


  하나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궐은 정 사서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지요


  (지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궐이 위험한 곳이라는 걸


  그리 만든 이들 중에


  저희 아버지도


  저하의 외조부이신


  상헌군 대감도   포함되어 있으시겠죠


  실은 모두 제 얘기였습니다


  회강에서 했던 말들 말입니다


  하여 설령 이 일로   위험에 처한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두려운 건


  진창뿐인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질까 봐


  그런 모습을 닮아 갈까 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지요


  [잔잔한 음악]


  [멋쩍은 숨소리]


  한데 제가 드린 씨앗의 싹은   어디 있습니까?


  [헛기침]


  연의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받은 날 바로   이 못에다 던져 두었지요


  (지운) 하면 보자마자 그것이   무슨 씨앗인지 아셨단 말입니까?


  저하껜 어려운 문제라 여겼는데


  연자육은 본디 수라상의 반찬으로   자주 오르는 것인데


  그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제가 수라상은 본 적이 없어서


  하면 이제 그 연씨도   곧 꽃을 피우겠네요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저하


  (만달) 사서 나리!


  여기 보덕 어른께서   술에 취해서 드러누우셨습니다


  얼른 좀 와 보세요!


  (범두) 정 사서!


  [문수의 술 취한 고성]   [범두의 놀란 신음]


  (지운) 예, 갑니다


  가시지요, 저하


  오늘은 아무 생각 마시고   함께 한잔하고 푸십시오


  그게 뭐든 말이지요


  저 먼저 가겠습니다


  [시끌시끌하다]


  가시지요, 저하   하루가 짧을 것입니다


  예, 형님


  [휘의 한숨]


  [문수의 아파하는 신음]


  [아파하는 신음]


  보덕 어른, 팔은 왜 그러십니까?


  (문수) 아니, 이   회강연 때 술 먹고


  고다음 날 일어나 보니   이 손이 이, 이, 이 모양이지 뭔가


  어? 몸은 다 젖어 있고


  아, 이, 기억이 안 나, 술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


  어휴, 자네도 취했었구먼


  내 손이 이래서 말인데


  이, 이것 좀 나 대신 좀   어? 이, 후딱 써서


  어, 궐에다 좀   갖다주지 않겠나? 어?


  지금 제게   대필을 부탁하시는 겁니까?


  대필이라니


  이, 저하께서 부탁하신 자료인데


  누가, 누가 쓰는 게   그, 뭐가 중요한가?


  (문수) 거참   사람 말을 해도, 대…


  아, 됐네!


  내, 내, 뭐, 내가 이, 뭐


  이런 거 대필, 대필   대필시킬 사람으로 보이나? 그…


  [아파하는 신음]


  [잔잔한 음악]


  [시끌시끌하다]


  [경쾌한 음악이 들려온다]


  [경쾌한 음악이 연주된다]


  (휘) 그만 나가시지요


  [여인1의 힘겨운 신음]   [복동의 놀란 신음]


  (몸종) 어머, 아기씨


  아기씨, 괜찮으세요?


  아, 조심 좀 하지


  괜찮으시오?


  [밝은 효과음]


  [잔잔한 음악]


  [휘의 헛기침]


  (몸종) 아기씨, 안 다치셨어요?


  (현) 이건 어떻습니까, 저하?


  (휘) 예?


  아…


  아, 아, 그것보단   저게 더 나은 것 같은데


  [한숨]


  [한숨]


  [여인들이 소란스럽다]


  (여인2) 밀지 마, 밀지 마   아유, 정말


  [여인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여인3) 왜 이렇게 예뻐?


  [휘의 헛기침]


  [소란스럽다]


  (현) 저하, 뒤쪽에 문이 있습니다


  - 가시지요   - (휘) 예?


  [감미로운 음악]


  (복동) 아유   어디 가시는 게야? 아니…


  [소란스럽다]   (복동) 아, 잠깐 비키시게


  저리 비키, 비키시오


  비키시게, 좀, 나와 보시게, 좀!


  (휘) 아니…


  [휘의 당황한 신음]


  [함께 웃는다]


  [가온의 다급한 숨소리]


  [복동의 가쁜 숨소리]


  (복동) 아유, 이, 아휴


  [복동이 소리친다]


  [복동의 가쁜 숨소리]


  (복동) 이보게, 놓치지 말게


  (복동) 이보게


  [복동의 가쁜 숨소리]


  [휘의 힘겨운 신음]


  (휘) [가쁜 숨을 내쉬며] 아니


  어찌 이러십니까, 형님?


  재밌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함께하던   술래잡기 놀이처럼요


  [헛웃음]


  [웃으며] 아이, 참


  [휘의 가쁜 숨소리]


  이게 무엇입니까?


  저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살짝 웃는다]


  [잔잔한 음악]


  어찌 저에게 이런 것을…


  나중에 정인이 생기시면 주십시오


  은애하는 여인이 생기면 그때


  [어색한 웃음]


  [지친 숨소리]


  괜찮으십니까, 저하?


  [잔잔한 음악]


  [당황한 숨소리]


  아유, 형님…


  (현) 송구합니다, 저하


  더러운 물이 튈까 저어되어…


  (상인) 아유, 이를 어째?


  귀하신 분 옷에다   이런 짓을 했으니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상인) 죄송합니다


  [상인의 다급한 숨소리]


  [휘와 현의 옅은 웃음]


  [휘의 걱정스러운 신음]


  (휘) 옷이 젖어 어찌합니까?


  저 때문에 저하의 갓이 상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얼른 새것으로 구해 오겠습니다


  아니, 난 괜찮…


  [여인들이 키득거린다]


  [한숨]


  (지운) 일단 제 것이라도   쓰시지요, 저하


  (휘) 정 사서


  도포의 완성은 요 갓입니다


  (휘) 아, 저, 이, 이게 무슨…


  (지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저하의 품위를 지켜 드리는 것   또한 신하 된 도리니


  소신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어, 제, 제가…


  그, 제가 하지요


  예


  (지운) 직접 묶어 보신 적   없으시지 않습니까


  잠시만 그대로 계십시오


  [애절한 음악]   [바람이 살랑거린다]


  (휘) 두 분이 아는 사이셨습니까?


  (김 상궁) 표정이 밝아 보이십니다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창운군) 밀회를 즐기는 벗이라


  [시끌시끌하다]   세자가 남색인가?


  (질금) 세자 저하가   여자처럼 느껴진다니!


  (지운) 강무장에서 본 궁녀하고   닮은 거 같다고


  (휘) 무슨 짓입니까?   가까이 다가오지 마십시오


  (지운) 사람들과 너무   거리 두려 하지 마십시오   [지운의 힘겨운 신음]


  저하께서 더 외로워지십니다


  (휘)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것   [지운의 힘겨운 신음]


  [떨리는 숨소리]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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