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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모 3


  이쯤이었는데


  [다가오는 발걸음]


  - 여, 여, 영지야   - (질금) 영지야!   [칼 뽑는 소리가 챙 울린다]


  (소은) 오늘 안으로 구해 오시오


  아니면 여기 이 삼개방은 물론이고


  저 아이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을 테니


  [산새 울음]   [거친 숨소리]


  (지운) 어


  [한숨]


  [숨을 후 내뱉는다]


  [비밀스러운 음악]


  [바스락 소리가 난다]


  [긴장되는 효과음]


  [놀란 숨소리]


  [긴장한 숨소리]


  그, 아니, 난…


  (지운) 난 아무것도 못 봤소


  그, 약초를 캐려고 왔다가 그만…


  [어두운 음악]


  음, 난 진짜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그, 하던 일 쭉 하시지요, 예


  [풍물 소리가 요란하다]   [몰이꾼들의 함성]


  거기 있으면 많이 위험하오


  저 소리 들리지요?


  임금님께서 친림하여   강무 중이라 하오


  그, 그러고 있다간


  짐승으로 오인받아   이, 활이라도 맞기 십상이니


  갑시다


  내가 내려가는 길을 알려 주겠소


  [휘의 헛기침]


  필요 없으니 가시오


  에헤, 거


  그러지 말고   거, 어서 좀 옷부터 좀 입으시구려


  [의미심장한 음악]


  [지운의 헛기침]


  [긴장되는 음악]


  [지운의 긴장한 숨소리]


  입기 싫으면 안 입어도 되고


  [지운의 어색한 웃음]


  혹


  도망친 거요?


  (지운) 궁녀?


  아, 아니면…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휘의 당황한 신음]


  (지운) 여인치곤 제법인 솜씨였소


  한데


  이 칼이 제법 날카로운 거라서


  [피식 웃는다]


  [말 울음]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창운군) 아   분명 이쪽으로 갔는데


  아이씨


  [말 울음]


  (창운군) 워워


  [말의 투레질]


  [웃으며] 오늘따라 활이   왜 이렇게 잘 드는 거야? 씨


  설마 내 얼굴을 본 건 아니겠지?


  아이


  [말의 투레질이 들린다]   [한숨]


  어? 저거…


  [긴장되는 음악]


  [휘와 지운의 당황한 숨소리]


  (지운) 따라오시오


  이대로 잡히면 끝장이라고


  그쪽도 나도


  (창운군) 뭐야?


  아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씨


  (지운) 이쪽


  (익위사1) 웬 놈들이냐!


  [긴박한 음악]   [지운의 당황한 신음]


  잡아라!   [군사들이 대답한다]


  [휘와 지운의 놀란 숨소리]


  [말 울음이 요란하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원산군) 이랴


  [말 울음이 요란하다]


  [지운의 놀란 신음]


  [지운과 휘의 당황한 숨소리]


  (익위사2) 저쪽이다!


  (지운) 이제 어쩝니까?


  [휘의 다급한 숨소리]


  - 뛰어   - (지운) 뭐?


  [무거운 음악]


  [장엄한 음악]


  [밝은 효과음]


  [시끌시끌하다]


  [아름다운 음악]


  (관리) 아까부터 뭘 그리 애지중지


  꼭 정인 껴안듯 보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관리) 그러지 마시고


  좋은 건 같이 좀 나눠 봅시다   군대감, 예?


  이건 그냥 붓 아닙니까?


  초필이라기에는 축이 굵고


  중봉보다는 또 얇고


  (현) 이리 주시게   귀한 분께 드릴 선물이네


  아무래도 붓을 만드는 필공이   영 잘못 만든 거 같습니다


  아, 웬만한 사내들이 쓰기에는   너무 어정쩡한 것이


  (현) 이제 도착했나 보군


  저하께서 사라지시다니


  (익위사3) 갑자기   계곡 근방 숲으로 달려가시더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말 울음]


  (김 상궁) 아니   그, 그게 대체 무슨…   [복동의 울먹이는 신음]


  (형설) 내가   직접 전하께 고하기 전까진


  각자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거라


  (익위사3) 예


  [김 상궁의 떨리는 숨소리]   [복동의 한숨]


  저하께서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시는 건 아니겠죠?


  저하를 그리도 모르는가


  저하께선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지실 분이 아니네


  [초조한 숨소리]


  (김 상궁) 이건 분명 사고인 게야


  그도 아니면 저하께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거나


  [울먹이며] 아이고


  (형설) 자네, 자넨 날 따라오게


  (복동) 예


  - (김 상궁) 잠깐   - (복동) 예?


  아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유


  [다급한 숨소리]


  혹시 모르니 가져가게


  (김 상궁) 반드시


  다른 사람이 찾기 전에   저하를 찾아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마마님


  (현) 왜들 이리 소란인가?   [복동의 놀란 신음]


  (복동) 자은군 대감


  예조의 일로   목천에 가셨다 들었습니다


  한데 어찌…


  (현) 아,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네


  한데 무슨 일이 있는가?


  저하께서는 왜 안 보이시고?


  (복동) 아, 그것이…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따가,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복동의 다급한 신음]


  [콜록거린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죽었나?   [어두운 음악]


  [풀벌레 울음]


  [다급한 숨소리]


  [화기애애하다]


  [애잔한 음악]


  (어린 제현 대군) 아바마마!   [혜종의 반가운 신음]


  [혜종의 힘주는 신음]


  [혜종의 웃음]


  [화기애애하다]


  (담이) 내가 태어나던 날


  아바마마께서는 뭐라 하셨나?


  (혜종) 와, 이게 뭐냐? 볼까?


  (담이) 아바마마께서도


  날 죽이라는 데 동의하셨는가?


  계집아이는 필요치 않다고


  그러니 죽여야 한다고


  그리 말씀하셨는가?


  (김 상궁) 어명이었습니다


  전하께선 선대왕의 어명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활시위가 빠드득거린다]


  [긴장되는 음악]


  [활이 휭 날아온다]


  [휘의 놀란 숨소리]   (현) 괜찮으십니까, 저하?


  형님


  [긴박한 음악]


  [화살이 휭 날아온다]


  [다급한 숨소리]   (형설) 저하


  (현) 내금위장께서 쫓아가셨으니   곧 붙잡을 겁니다


  (휘) 하지만…


  괜찮으신 겁니까?


  다치신 덴 없으신 거지요?


  아, 저…


  형님께선   어찌 여기에 계신 겁니까?


  (현) 여긴 안전하지 않으니   일단 가시지요


  군사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휘) 아…


  잠시만요, 형님


  그러고 보니 저하의 옷이 왜…


  [헛기침]


  (복동) 저하!


  저하, 저하!


  [복동의 가쁜 숨소리]


  괜찮으신 겁니까?


  저기, 일단 오,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박진감 넘치는 음악]


  [화살을 탁 맞는다]


  [거친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말 울음]


  (혜종) 자객이라니?


  진정 자객이   세자를 공격하였다 그 말이냐?


  (현) 예


  내금위장께서 뒤를 쫓고 있으니


  곧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학수) 뭣들 하느냐!   당장 가 자객을 잡아들이지 않고


  (군사들) 예!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정말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한숨]


  (중전) 그만 궐로   돌아가시지요, 전하


  아무래도 여긴   위험한 것 같사옵니다


  제가 어가를   준비시키라 이를 테니…


  (기재) 아무도   강무장을 떠날 수 없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좌상?


  (기재)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강무장입니다


  내부에 조력자가 없었다면


  자객이 어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창천군) 지금 그 말은


  우리가 자객을 보내기라도 했다   이 말이오?


  (학수) 세자 저하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면


  득을 볼 분들이 이곳에 계시기는


  [헛기침하며] 하지요


  [버럭 하며] 뭐요?


  전하…


  모두 말을 삼가시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기재) 그러니   밝혀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산을 모조리 불태워서라도


  저하를 시해하려 한 자의 정체를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겁니다


  [말 울음]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군사의 기합]


  (군사) 삼일봉 인근에서


  자객으로 추정되는 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하옵니다


  [형설의 다급한 숨소리]


  [형설의 힘주는 신음]


  [형설의 거친 숨소리]


  시신을 옮기거라


  (군사들) 예!


  [까마귀 울음]


  [의미심장한 음악]


  [말 울음]   (학수) 아니, 이자는   의흥위의 군사가 아닌가?


  (혜종) 이자가 세자를 노린   자객이 확실한가?


  (형설) 이자가 평소 좌상대감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술을 먹으면 좌상 대감은 물론


  외손이신 세자 저하까지   모두 시해할 것이다


  그리 떠드는 것을 들은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합니다


  (창천군) 범인이 밝혀졌으니


  이만 환궁하시지요, 전하


  또 다른 배후가 있지 않은지   철저히 조사하게


  [어두운 음악]


  (학수) 저런, 저, 저, 저, 저…


  [학수의 분한 숨소리]


  이건 명백한 음모입니다, 음모!


  이게 다 중전 측에서 꾸민 일인지   알게 뭐란 말입니까


  전하께서 날로   저리 중전의 치마폭에 싸여 계시니


  이러다 정말 제현 대군이


  저하의 자리까지   노릴 판국이 아닙니까


  (호판) 병판 대감!


  (학수) 아, 아, 아니, 저는


  절대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의, 의미로…


  [질금의 힘주는 신음]


  (질금) 어, 영지야, 영지야!


  [질금의 애절한 숨소리]   영지야!


  [울먹이며] 영지야   영지야, 영지야


  [문이 달칵 열린다]


  [놀란 신음]


  (소은) 삼개방 의원이란 자는   아직인가?


  예


  [소은의 한숨]


  (소은) 세간의 소문만 듣고


  천박한 의원 따위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소은의 한숨]


  (영지) 꼭 오실 겁니다


  의원님은 약조한 걸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실력도 출중하신 분이고요


  [소은의 헛웃음]


  (소은) 그 믿음이 가상하구나


  [어두운 음악]


  [질금의 힘주는 신음]


  이제 보니 꽤 예쁘게 생겼네


  죽이지는 말고 자자를 새겨 볼까?


  [달려오는 발걸음]


  (지운) 그 손!


  [가쁜 숨소리]


  거, 그 손 놓지?


  - 오라버니   - (질금) 형님!


  [숨을 후 내뱉는다]


  (지운) 약속한 대로 가져왔소


  [망태기를 툭 던지며] 약초


  (소은) 도망이라도   갔을 줄 알았더니


  (지운) 난 도망 따윈 안 가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면 더더욱


  (소은) 한데


  이걸 바르면 나아진다는 건   어찌 믿지?


  [피식 웃는다]


  기대가 없었다면   이리 날 기다리지도 않았겠지


  아니 그렇소?


  [잔잔한 음악]


  (지운) 괜찮아? 열은?


  고생 많았다, 나 때문에


  가자, 집에 가자


  (영지) 오라버니는 괜찮으셨어요?


  아니, 묶여 있는 애가 내 걱정은…


  (지운) 네 걱정부터 먼저 해라


  그래도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요


  [새가 지저귄다]


  (대비) 내 강무장의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리 세자의 얼굴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중전) 하늘이 도왔습니다


  우리 제현 대군께서   형님 걱정을 어찌나 하였던지


  (제현 대군) 범인이 잡히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형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대비) 듣자 하니


  중전께서도   강무장엘 따르셨다던데


  아, 예


  그것이 전하께서…


  (대비) 빈계지신이라 하였습니다


  나설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요


  명심하겠사옵니다, 대비마마


  (대비) 세자는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할 국본이십니다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해요


  이 할미 말 아시겠지요?


  예, 할마마마


  [새가 지저귄다]


  (중전) 새삼 느끼는 거지만


  동궁전 궁인들은 참으로 체계가   잘 잡힌 것 같습니다


  항상 보면 어찌 저리도   오 보 간격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어떨 땐 신기할 정도니 말입니다


  [한숨]


  장차 나라를 다스릴 자라면


  작은 것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지요


  동궁전의 체계를 잡는 일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제현 대군) 역시   또 한 번 배웠습니다, 형님


  [어두운 음악]


  [기가 찬 숨소리]


  하나뿐인 아우에게   어찌 저리도 매몰찬지


  저러니 산중에서   자객에게 쫓기기나 하는 게지


  (제현 대군) 어머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먼저 태어난 게 뭐가 유세라고


  [한숨]


  (복동) 잘하셨습니다


  아주 제 속이 다 시원한 게…   [김 상궁이 복동을 탁 친다]


  (김 상궁) 중전마마와 척을 져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척을 졌더냐?


  중전마마의 눈에   내가 눈엣가시인 게지


  정말로 중궁전에서   자객을 보낸 건 아니겠죠?


  (김 상궁) 쓰읍!


  궐 안에선 항상   입조심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가?


  자네 입은   어찌 그리 들어가는 것도 많고


  나오는 것도 많은가 그래


  (복동)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김 상궁) 늘 지나친 건 자네야   [밝은 음악]


  [복동의 한숨]   [김 상궁의 헛기침]


  [문이 달칵 닫힌다]


  [김 상궁이 옥대를 달그락거린다]


  (김 상궁) 한데


  강무장에서 보았다는 그 사내는


  어찌하여 그냥 살려 두신 겁니까?


  저하를 노린 자객과   한패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련한 음악]


  약초를 캐러 왔다고   하는 걸로 봐선


  인근의 약초꾼이나 의원일 거다


  (휘) 그도 아니면   사렵을 하려던 자겠지


  궐에 들어올 리 만무한 자니


  굳이 일을   키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예


  [한숨]


  [풀벌레 울음]   (궁녀1) 야, 빨리 가자


  [궁녀들의 들뜬 숨소리]


  [문이 달칵 닫힌다]   [화롯불이 지글거린다]


  (궁녀2) 강무장에 간 궁녀?


  (지운) 그러니까   뽀얗고 조막만 한 얼굴에


  머리는 흑갈색이고


  눈은…


  어, 요, 요, 요   요 비취 정도 크기


  [익살스러운 음악]   그, 눈동자가 또렷한 게


  어찌 보면 또 차가워 보이고


  또 어찌 보면 강단 있어 보이는   그런 인상이었는데


  (궁녀3) 차가운 인상이면   지밀의 홍심이 아니야?


  지밀의 홍심이?


  (궁녀4) 음, 아니야   강단 있다잖아


  수라간 은영이 같은데?


  그, 그 친구인가?


  (궁녀5) 딱 들어 보니까   동궁전의 연옥이 같은데, 뭐


  - (궁녀4) 아, 연옥이는 무슨   - 홍심이, 연옥이…   [궁녀들이 저마다 주장한다]


  - (궁녀3) 아니, 연옥이는 아니다   - (궁녀2) 그럼 단심이네


  (지운) 아, 아, 쉿


  그 많은 이들이 다 따라갔다고?


  (궁녀2) [헛웃음 치며]   얘들만 갔게요?


  여기서 기십 명은 더 갔을걸요


  [한숨]


  그럼 그중에


  혹시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이는 없나?


  그, 물에 빠져 생사를 모른다든가


  [궁녀들의 놀란 숨소리]


  (궁녀2)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근데 그건 왜 물어요?


  아, 아니, 뭐


  그냥, 어


  (궁녀2) 그냥?


  [한숨]


  [긴장되는 음악]


  [떨리는 숨소리]


  [긴장되는 효과음]


  [휘의 놀란 숨소리]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휘의 겁먹은 숨소리]


  [휘가 중얼거린다]


  [긴장되는 효과음]   [휘의 놀란 숨소리]


  [당황하며] 외조부님


  (기재) 너는 세손이 아니다


  죽어야 하는 것은 너였다


  [휘의 겁먹은 숨소리]


  [휘의 힘겨운 신음]   네가 죽었어야


  했느니라!   [휘가 캑캑거린다]


  [휘의 놀란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음악]


  [풀벌레 울음]


  [복동의 가쁜 숨소리]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복동) 저하


  침소에 계신다더니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계신 겁니까?


  꿈자리가 시끄러워 나왔다


  (휘)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들어가거라


  [화살이 과녁에 탁 꽂힌다]


  또 그 꿈을 꾸신 겁니까?


  (복동) 한동안 괜찮으시더니


  [복동의 한숨]


  약방에 말해 청심원이라도   가져오라 이르겠습니다


  그만 처소로 들어가시지요


  [한숨]


  (휘) [놀라며] 쉿


  [복동의 힘겨운 신음]


  [복동이 힘겨운 숨을 내뱉는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자다


  예? 그자라니요?


  [의미심장한 음악]


  (휘) 저자가 어떻게 궐에…


  어쩌시려고요?


  (휘) 넌 여기서 기다리거라


  (복동) 예?


  저, 저, 저하


  [복동의 난처한 신음]


  [풀벌레 울음]


  [놀란 신음]


  [멀리서 개가 짖는다]


  (춘생) [작은 목소리로]   숙여, 숙여, 숙여, 숙여


  (지운) [작은 목소리로]   아유, 씨, 놀랐잖아


  [지운을 흉내 내며] '놀랐잖아'


  [춘생의 웃음]   [지운의 못마땅한 숨소리]


  (춘생) [지운을 툭 치며] 아, 그려   저기, 확인은 해 봤어?


  강무장에서 봤던 그 궁녀 말이여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고 싶댔잖여


  하, 몰라


  이제 보니 궁녀가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대체 뭔 일인데 생전 안 오겠다던   궐까지 다 들어오고 말이여


  (지운) 받아, 받아


  [지운의 헛기침]   [춘생의 웃음]


  아파


  (춘생) 뭐, 이런 걸 다


  [지운이 혀를 쯧 찬다]


  [지운의 한숨]   저기, 내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여


  자네 요렇게 번 걸 죄다   빈촌에다 갖다준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이여?


  누가 그래, 응?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앞장이나 서


  그려, 가자고


  저기 수문장 바뀌기 전에   나가야 되니께


  [익살스러운 음악]


  (지운) 저, 저, 저기


  (춘생) [놀라며] 어디 가   어디 가, 어디 가?


  [춘생의 놀란 숨소리]   [긴장되는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춘생) 아니, 아휴   야밤에 고생들이 많아


  (금군) 아니, 대전 별감 아니시오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 어쩐 일은, 저쩐 일이지


  [춘생의 웃음]


  [초조한 숨소리]


  [다가오는 발걸음]


  [한숨]


  (춘생) 아유, 어떻게 뭐   집안에 별고는 없고?


  - (금군) 뭐, 별고는…   - (춘생) 아유


  [춘생이 말한다]


  [무거운 음악]


  [장엄한 음악]


  [궁녀6의 겁먹은 숨소리]


  (궁녀6) [울먹이며] 살려 주십시오


  전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궁녀6)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궁녀6의 겁먹은 숨소리]


  [칼집이 달그락거린다]


  (빈궁) 한 번에 끝내거라


  그래야 고통이 없느니라


  [놀란 숨소리]


  전


  전 못 하겠습니다


  [궁녀6의 다급한 숨소리]   (휘) 못 합니다, 전


  네가 못 하면


  모두가 죽는다


  [궁녀6의 겁먹은 숨소리]   [어두운 음악]


  네가 해야 하는 거다


  (빈궁) 앞으로도 늘


  네가 해내야 하는 일이다


  [떨리는 숨소리]


  하지만 전…


  [궁녀6의 다급한 숨소리]


  평생 모른 척 살아가겠습니다


  (궁녀6)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세손마마가 여인이라는 사실은   절대 누구에게도…


  [빈궁이 칼로 푹 찌른다]   [궁녀6과 담이의 놀란 숨소리]


  [궁녀6의 힘겨운 신음]


  [칼을 쓱 뽑는다]   [궁녀6의 옅은 신음]


  [빈궁의 거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문이 삐걱 열린다]


  [긴장되는 효과음]


  [지운의 놀란 숨소리]


  [놀란 숨소리]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놀란 숨소리]


  [춘생의 다급한 숨소리]


  (춘생) 여기서 뭐 하는 거…


  이, 이건 뭐여?


  얼굴에 그거 피 아니여?


  저, 저기서 날아왔어


  (춘생) 이, 이, 이거 사달 났구먼


  일단 여길 나가자고


  어여, 어여, 어여, 어?


  [무거운 음악]


  (휘) 저 입구를 아는 건


  나와 그 아이밖엔 없는데


  저자가 어떻게…


  [풀벌레 울음]


  - (영지) 오라버니   - (질금) 형님


  안 자고 왜들 나와 있어?


  아, 그, 그게 있지


  (영지) 우린 나가 있을게요


  (질금) 어


  여긴 어찌 알고 오신 겁니까?


  집에 다녀갔다 들었다


  도성엔 언제 돌아온 것이냐?


  어머니를 뵈러 갔다 온 것입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지요


  (석조) 배움을 구한다 하여   명나라까지 보냈더니


  천한 기술 따위나   배우고 돌아온 것이더냐?


  (지운) 천한 기술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귀한 기술입니다


  아버지로 인해   죽어 가던 사람들의 목숨도


  어쩌면 살렸을지 모를


  그런 것이지요


  (석조) 대체 언제까지


  그날의 일로   네 인생을 허비하며 살 것이냐?


  대체 언제까지!


  나와 네 어미를   실망시킬 생각이란 말이더냐?


  [허탈한 숨소리]


  언제까지냐고 하신 겁니까?


  [무거운 음악]


  아마 평생을 떠올리며 살 것입니다


  (지운) 죄 없는 아이를 베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앞으로도 평생


  저를 괴롭히겠지요


  다 지난 일이다


  털어 버리거라


  털어 버리라?


  그래도 한땐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아버지를 닮고 싶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불의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 말이죠


  불의라 하였느냐?


  청백리라 불리던 네 조부의 삶이


  나에겐 더없는 불의였다


  (석조) 가족의 목숨은   지키지도 못하면서


  선비의 꿋꿋한 기개만을   외치며 사는 것이 정의라면


  평생 불의에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라


  (지운) 저는


  저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처럼도


  할아버지처럼도요


  그러니 더는 제 삶에   간섭하지 마십시오


  더는 이곳에   찾아오지도 마시고 말입니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이월의 힘겨운 신음]


  [이월의 놀란 숨소리]


  (어린 지운) 안 돼!


  [어린 지운의 떨리는 숨소리]


  [풀벌레 울음]   [시끌시끌하다]


  삼개방?


  (복동) 예, 어제 그자를 데려간   구 별감이라는 자가


  그 삼개방 의원을


  한 번씩 궁녀들에게   소개를 해 줬답니다


  근데 꼭 이렇게   직접 움직이셔야 하는 겁니까?


  그냥 저 혼자 다녀와도 되는데


  [한숨 쉬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거다


  그자가 정말 정석조의 아들이면요?


  죽일 거다


  지, 진심이십니까?


  그래도 한때는 좋아했던 분인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나를 본 자가   정말로 정석조의 아들이라면


  죽여야지


  누구보다 위험한 자라는 뜻이니까


  맞습니다


  [휘의 한숨]


  (질금) 아, 오늘은   우리 의원님께서


  아주 급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셔 가지고


  "삼개방"


  아, 다들 그만   돌아가셔야 될 거 같…


  [여인들이 투덜거린다]   다음에 꼭 오오, 응


  아이고, 미안해, 미안해


  돌 조심하시고   돌, 돌, 돌, 아이고


  아, 다음에 오면은   내가 곱절로 잘해 드리라고


  내가 우리 의원님한테   꼭 말씀드릴게


  (여인) 얘기 좀 잘해 줘요


  (질금) 아, 걱정 말고   들어들 가시게, 응


  아휴, 쯧


  씁, 혹시


  그때 예약 주신 동산골 선비님?


  (복동) 예, 그…


  [복동의 당황한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아, 예, 그렇소만


  아이고, 이걸 어쩌나?


  많이 기다리셨죠?


  (질금) 아, 우리 의원님께서


  하필 오늘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셔 가지고


  [질금이 살짝 웃는다]


  아, 먼 데서 오셨을 텐데   이 산골이면은, 아휴


  [작은 목소리로]   얼른 따라오십시오


  홍월루에 가면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복동) 홍월루?


  아, 기, 기, 기루 말이오?


  (질금) 쉿


  아, 주, 주막을 찾으시는구나   우리 선비님께서


  아, 내 잘 아는 주막이 있는데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쪽으로


  (복동) 다, 다음에 봬도   될 거 같은데


  (질금) 아이, 이쪽으로 오시지요


  에이, 얼른 갑시다


  (복동) 아니…   [질금의 웃음]


  (질금) 괜찮다니까 그러네


  어, 여기, 여기


  [복동의 간절한 숨소리]   아유, 빨리빨리


  갑시다, 이쪽, 갑시다


  [질금이 재촉한다]


  (질금) 어, 조심하시고, 조심…   [기녀들이 저마다 반긴다]


  아이고, 아이고


  이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동산골에서   아주 잘나가는 선비님이시네


  [익살스러운 효과음]


  [시끌시끌하다]


  [흥미로운 음악]


  [못마땅한 한숨]


  [사람들의 웃음]


  (선비1) 아이고, 요것아   내가 너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 (기녀1) 나리   - (선비2) 아이고, 귀여운 것


  [기루 안이 시끌시끌하다]


  - (기녀1) 나리   - (선비2) 아이고, 귀여운 것


  [사람들의 웃음]


  (선비2) 자, 들어가자, 들어가자


  (기녀2) 넘어져요, 몰라, 몰라


  [선비3이 술주정한다]


  (선비4) [술 취한 목소리로]   매향아, 어디로 갈까?


  [사람들의 웃음]   (창운군) 드시지요, 예


  [사람들의 시원한 숨소리]


  보니까   우리 곱디고운 세자 저하께서


  뭐, 말 못 할 약점 같은 게   있는 것 같던데


  [필선의 난처한 웃음]


  (필선) 약, 약점이라니요


  (창운군) 그러니까   세자가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아, 내가 도통 그걸   알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필선의 난처한 숨소리]


  필선께선 세자의 스승이시니   뭘 좀 아실 것 아닙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 제가 뭘 안다고…


  (창운군) 에헤, 쯧쯧


  아니


  내 강무장에서   세자의 머리가 이렇게 쫙 풀렸는데


  이게 완전히 그냥 보기에   이런 계집이더라니까


  응? 계집, 어?


  [웃으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어?


  스승님은 못 보셨습니까? 예?


  아, 전에는 왜


  '세자한테서 묘하게   여인의 정취 같은 게 느껴진다'


  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필선)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 그, 그거야, 그


  저, 저, 저하의   무, 무, 문책을 빗댄 말이었죠


  워낙에 선이 곱고 유려하시니   칭찬 삼아 드린…


  (창운군) 아이! 쯧


  [창운군의 한숨]


  자꾸 이렇게 모른 척   잡아떼실 겁니까? 예?


  (선비5)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 저, 그만하시죠, 군대감


  아, 행여나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자꾸 그런 말씀을…


  이거, 술이 좀   과하신 모양입니다, 예


  뭐?


  술이 과해?


  [한숨]


  [기녀들의 비명]   [선비5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음악]


  (창운군) 너 일로 와


  (선비5) 아, 예, 예, 예


  (창운군) 네 눈깔에는


  내가 술에 취해서   헛소리하는 놈으로 보이나 보지?


  아, 저, 오해이십니다   저는 그저…


  (창운군) 오해? 어?


  허, 그렇지, 뭐


  오해일 수 있어   어, 오해일 수 있어


  [창운군의 웃음]


  아, 왕친인 나를   아주 우습게 아는 거지, 어?


  [웃으며] 아니 그렇소?


  내가 왕친인데, 어?


  [웃음]


  내가 우스워? 이씨, 내가!   [사람들의 놀란 신음]


  [기녀들의 비명]   [선비5의 힘겨운 신음]


  어? 내가 우스워? 어?


  야, 내가 우스워?   [기녀들의 비명]


  내가 오해일 수 있어   오해일 수 있어!   [선비5의 힘겨운 신음]


  아씨


  야


  [선비5를 툭툭 치며] 일어나 봐


  어, 괜찮아, 괜찮아   [선비5의 겁먹은 신음]


  일어나, 자, 보자, 어


  씁, 보자


  [갓이 툭 떨어진다]   자, 어?


  이게   [기녀들의 비명]


  네가!


  뭔데!


  야! 이 새끼가


  다시 한번 말해 봐, 응?


  [선비5의 힘겨운 신음]   다시 한번 말해 봐


  [버럭 하며] 어?


  [창운군의 힘주는 신음]


  [사람들의 비명]


  뭐야?


  [소란스럽다]


  - (창운군) 뭐? 왜? 어?   - (필선) 아이고


  (창운군) 뭐, 너희도   같이 놀고 싶니? 어?


  [버럭 하며] 구경났어? 씨   [사람들이 겁먹은 신음]


  (필선) 아유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창운군) 이거 놔


  (필선) 그쯤 하면 됐으니…


  (창운군) 아, 이거 놓으라고! 이씨


  아유! 씨


  [휘의 힘겨운 숨소리]


  (지운) 쉿


  [잔잔한 음악]


  [산새 울음]


  [바스락 소리가 난다]


  (지운) 다…


  당, 당신은…


  [휘의 거친 숨소리]


  이게 무슨 짓이냐


  [당황한 신음]


  혹시


  나 본 적 없소?


  아니, 왜, 강무장에서


  강무장?


  어, 그러니까 그땐 분명히


  (지운) 여인이었는데


  아, 잠깐, 잠깐


  지금 나가면 위험하오


  거, 구해 줬더니만, 참, 쯧


  (휘) 누가 누굴   구했다는 거냐, 지금?


  [한숨]


  밖에 아직 소문 못 들었소?


  (지운) 이 구역 미친놈


  그, 똥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요


  [한숨]


  [지운의 놀란 숨소리]


  아, 이보, 이보, 이보시오


  (창운군) [힘주며] 그렇지   우리 마저 놀아야지, 어?   [선비5의 힘겨운 숨소리]


  자, 놀러 가자


  [문이 쾅 열린다]   놀러 가자


  (휘) 여기서 뵙습니다


  [선비5가 털썩 쓰러진다]   숙부님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창운군) 아, 저하께서   어찌 이런 곳엘 다…   [긴장되는 음악]


  (필선) 세, 세, 세자 저하


  [필선의 다급한 숨소리]


  (휘) 필선께서도 계셨군요


  [작은 목소리로] 세자?


  (휘) 시강원 스승님께서


  종친과 함께 대낮부터 술자리라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아, 아니, 저   그, 그, 그, 그게 아니오라…


  [흐느낀다]


  [혀를 쯧 찬다]


  그 성격은 여전하십니다


  (휘) 전하께서


  종친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함부로 사람을 때리지 말라


  주의까지 주셨던 걸로 아는데


  예?


  (창운군) 아, 함부로 때리다니요


  왕실을 기만하니!


  내 훈계를 좀 한 것을 가지고


  [창운군의 웃음]   [휘의 코웃음]


  훈계?


  전하께는 비밀로 해 드리지요


  한참 벼르고 계시거든요


  (휘) 물론 대비전도 마찬가지고요


  [헛웃음]


  한데 저하께서   이런 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창운군) 궐에 차고 넘치는 게   여인들일 텐데


  [창운군의 웃음]


  제가 숙부님과 같겠습니까?


  전 그저


  벗을 좀 만나러 왔을 뿐입니다


  벗?


  [흥미로운 음악]


  (휘) 술맛도 떨어졌는데 그만 가지


  참


  [한숨]


  활 솜씨가 제법


  느셨던데


  예?


  [흥미진진한 음악]


  자객의 배후가 되어   목이 잘려 나가고 싶거든


  계속 그리 까부시든가


  [당황한 숨소리]


  [헛웃음]


  [아름다운 음악]   [코웃음]


  (휘) 가지


  [창운군의 헛웃음]


  [창운군의 어이없는 한숨]


  [창운군의 분한 신음]


  (창운군) [벽을 쾅 차며] 아유!


  [창운군의 아파하는 신음]


  [시끌시끌하다]


  (기녀들) 의원님!


  (기녀3) 어머   의원님 오랜만이에요   [지운의 다급한 신음]


  [기녀들이 저마다 반긴다]


  [지운의 난처한 신음]


  [저마다 묻는다]


  (지운) 아, 잠깐만, 잠깐만


  빨리 가, 지금은 아니니까


  (휘) 그래   아까 하려는 말이 뭔가?


  예?


  (휘) 강무장이라니?


  군사나 종친이 아닌 자가   강무장에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고


  아, 물, 물, 물론입니다


  거길 들어가다니요


  [어색하게 웃으며] 목숨이   두 개가 아니고서야


  그 누가 감히…


  [새 울음 효과음]


  [바람이 살랑거린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정지운이라 하옵니다


  [잔잔한 음악]


  (휘) 명나라에선   언제 돌아온 것이냐?


  저를 기억하십니까?


  그래


  이제 보니   기억이 나는 듯도 하구나


  오래전 나를 찾아와   인사를 전하였지


  [벅찬 숨소리]


  (지운) 아, 망극하옵니다, 저하


  전 정말 세자 저하이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좋다, 용서하마


  감사합니다, 저하


  (지운) 역시 예나 지금이나   아량도 넓으시고


  인품도 훌륭하신 것이


  여전히 멋진 분이십니다


  하나


  다시 한번 내 눈에 띄게 되면


  그땐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휘) 내 말 명심하거라


  (지운) 예


  예, 저하


  (복동) 어, 어, 저, 저하!


  아이고, 참


  저하, 저, 아유


  [복동의 다급한 신음]


  저, 저자입니까? 예?


  [복동의 가쁜 숨소리]


  (지운) 따라오시오


  (지운) 쉿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머뭇거리는 신음]


  김 상궁마마님께서   저하의 침소를 살피라 하여…


  난 괜찮으니 그만 가 쉬거라


  예


  [한숨]


  [머뭇거리는 신음]


  [한숨]


  그리 그냥 두어도 되겠습니까?


  (복동) 정석조의 아들이면


  말씀하신 대로   누구보다 위험한 자인데


  게다가 저하를   알고 있는 자이옵니다


  행여 눈치라도 챈다면…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한숨 쉬며] 너도 보지 않았느냐


  참으로 시답지 않고


  한심한 인물이 되었더구나


  하오나 세손마마를   직접 죽인 이의 아들이옵니다


  그러니 더욱


  일을 키울 수 없지 않느냐


  만에 하나 다시 나를 본다 해도


  그자라면 결코 나를   의심치 못할 것이다


  어째서 말입니까?


  담이를 아는 이라면


  세자가 계집일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못할 테니까


  [아련한 음악]


  [한숨]


  [문이 달칵 여닫힌다]


  [풀벌레 울음]


  부르셨습니까, 대감


  앉게


  정지운이란 자가 자네 아들인가?


  침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


  명나라에서 예부시랑을   구한 적이 있다 들었네


  명나라에 유학했던 건 사실이나


  예부시랑 일은 알지 못합니다


  (기재) 곧 명나라 사신단이   방문할 것이네


  그때 예부시랑께서도   함께 오신다더군


  이런 때에 자네 아들이


  세자 저하를 보필하면   큰 힘이 될 것 같네만


  [한숨]


  [새가 지저귄다]   [엽전이 잘그랑거린다]


  (소은) 지난번의 실례는 용서하게


  내가 무례했네


  사과는 내게 할 것이 아니라


  자자를 새기려고 협박했던


  그 아이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은) 정이 깊은 아이인가?


  그저 허드렛일이나   돕는 정도라 여겼는데


  그래서


  험히 다뤄도 된다 생각한 것이오?


  (지운) 죄 없는 이의 얼굴에


  자자를 새길 만큼


  [한숨]


  알겠네


  내 그 아이에게도   사과하면 될 것이 아닌가


  (소은) 여기까지 왔는데 괜찮다면


  차라도 한잔하고 가겠는가?


  [한숨]


  [놀라며] 이게 무슨…


  내 얼굴은 기억하였으니


  (지운) 약속은 꼭   지킬 거라 믿겠소


  [잔잔한 음악]


  [지운이 탁자를 탁탁 친다]


  [떨리는 숨소리]


  [다급한 신음]


  [휘파람]


  [소은의 다급한 숨소리]


  (소은) 잠깐만


  (지운) 왜   내게 더 할 말이 남았소?


  [소은의 망설이는 숨소리]


  소은이라 하네


  신소은


  기억해 두시게나


  [엽전이 잘그랑거린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인들의 비명]


  [긴장되는 음악]   (질금) 아, 왜, 왜, 왜 이러세요!


  왜 이러세요, 왜 이러세요!


  [감찰1의 짜증 섞인 신음]


  어? 아, 이게 얼마짜리인데!


  [삼개방이 소란스럽다]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지운) 이보시오!


  - (영지) 오라버니!   - (감찰2) 나와!   [질금의 비명]


  [질금의 아파하는 신음]


  - (영지) 오라버니, 오라버니!   - (질금) 영지야!


  (영지) 오라버니!


  (지운) 지, 지금 이게 다   무슨 짓이란 말이오?


  (질금) 형님!


  뭔가 착오가 있는 거 같으니   당장 저 아이들을…


  (감찰2) 당장 포박해!


  (지운) 그게 무슨, 무슨 말이오?


  - (지운) 무슨 말이오, 그게!   - (질금) [울먹이며] 형님


  - (감찰2) 다 끌고 나와!   - (지운) 질금아, 영지야!


  - (감찰2) 다 끌고 나와!   - (질금) 형님!


  (지운) 어떤 연유인지   얘기를 해 주셔야 할 거 아니오!   [질금의 아파하는 신음]


  (질금) 왜 이러는 겁니까, 진짜!


  - (지운) 질금아!   - (질금) 형님!   [감찰들의 힘주는 신음]


  (감찰3) 가만있어!


  [부드러운 음악]


  정지운이라 하옵니다


  [다가오는 발걸음]


  (현) 뭘 그리 놀라십니까


  써 보시지요


  손에 꼭 맞으실 겁니다


  [피식 웃는다]


  정말입니까?


  [휘가 숨을 가다듬는다]


  (현) 제가 말씀드렸지요?


  저하께 꼭 맞는 건   저하보다 제가 더 잘 알아본다고요


  (복동) 저하


  이제 곧 서연에 드실 시간이십니다


  (휘) 어, 벌써 그리되었느냐?


  [휘의 한숨]


  어쩌죠?


  저는 이만 나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오늘부터 새로운 서연관이   오신다 하여서요


  필선께서 사직을 하셨다고요


  (현) 시강원의 서연관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거 같아   걱정입니다


  [한숨]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정에 어찌 그리   인물들이 없는지, 원


  [한숨]


  아, 그럼


  [필통이 달그락거린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새가 지저귄다]


  (휘) 그래, 이번에   새로 온 서연관은 어떤 자라더냐?


  (복동) 예, 상헌군께서   일찍이 점찍은


  젊은 인재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이번엔 얼마나 버티나 봐야겠구나


  (내관) 세자 저하 드시옵니다


  [한숨]


  [피식 웃는다]


  (휘) 칭찬이 자자한   훌륭한 인재라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놀란 숨소리]


  [잔잔한 음악]


  오늘부터 저하의 서연을 맡게 된   사서 정지운이라 합니다


  아니, 너는…


  (김 상궁)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여라도 저하에 대해   눈치라도 챈다면은…


  (휘)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서연관 하나쯤 떼어 내는 거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아니겠느냐?   [지운의 힘주는 신음]


  [지운이 놀란다]   (지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운의 절규]   저를 쫓아내시려는 이유 말입니다


  (현) 삼개방이라니?


  (지운) 나한텐   목숨보다 중요한 아이들이야   [영지와 질금의 괴로운 신음]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다


  (휘) 내기?


  (지운) 이번 회강에서   저를 포함한 모든 서연관에게


  통자생을 받으십시오


  (휘) 내가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네 목숨이라도 걸면 모르겠지만


  (지운) 걸겠습니다


  제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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