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 9
(지운) 하, 늦었다
[다급한 신음]
[아련한 음악]
[김 상궁이 옥대를 달그락거린다]
(김 상궁) 저하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몇 번을 여쭈어도 통 모르시고
(휘) 아…
늦겠구나
다 되었으면 가자
(복동) 어제 술자리는 즐거우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저를 빼시고 저자를 데려가시다니 [문이 달칵 닫힌다]
진짜 섭섭합니다, 저하
섭섭하긴
(휘) 내 다음엔 너도 꼭 끼워 주마
(복동) 고맙습니다, 저하
(휘) 오늘 조강은 누구라더냐?
(복동) 정 사서라 하였는데…
[복동의 놀란 신음]
[궁녀들의 비명]
[복동의 멋쩍은 신음]
어찌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다
[밝은 음악] [복동이 다그친다]
[밝은 효과음]
[새가 지저귄다] [한숨]
(지운) 하, 내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술이 원수지
술이 원수야
(복동) 안 들어가고 뭐 하십니까? [놀란 숨소리]
아, 그…
(지운) 날이 참 맑고
꽃이 참 이뻐서 이렇게…
(복동) 저하, 정 사서 왔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긴장한 숨소리]
어제는…
(지운) 죽여 주십시오, 저하!
그, 어제는 제가 술이 너무 과해서 그만
저하께 망측한 짓을 하였사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하
아…
예, 이해합니다
예?
뭐, 그, 술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술자리에서 실수 한 번 하지 않는 이는 없는 법이니
(휘)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저 웃고 넘기면 될 일이니
아…
[안도하는 웃음]
역시
역시 저하께선 진정 주도를 아시는 대장부십니다
[발랄한 음악] (지운) 제가 원래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온데
어젠 갑자기 왜 그랬는지
달빛에 비친 저, 저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그만…
[새 울음 효과음]
아…
아, 그, 아유, 아… [당황한 숨소리]
아, 그것이 아니오라, 그…
[한숨]
(휘) 그…
내 정 사서께 줄 것이 있습니다
[함을 탁 집는다]
정과입니다
달달한 것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요
제게 왜 이걸…
사신단 일로 고생이 많지 않았습니까
내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아 준비해 보았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요
[밝은 음악]
[지운이 흥얼거린다]
[냄새를 킁킁 맡는다]
[흥얼거린다]
[들뜬 숨소리]
[입바람을 후 분다]
[웃음]
[숨을 씁 들이켠다]
(만달) 어, 그 오, 오셨습니까, 사서 나리
[웃음]
[숨을 씁 들이켠다]
(문수) 받았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문수의 헛기침]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운) 어?
- (문수) 어, 어 - (범두) 어, 받았네 [사람들의 웃음]
(문수) 어, 자네도 받았군
이걸 딱 내밀면서 저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사신단 일로 고생이 많지 않으셨습니까'
'내 항상 보덕께 도움만 받는 거 같아'
'준비해 보았습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이렇게 자애롭게 말이야
[웃음]
(만달)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하며 보시던 그 따뜻한 눈빛 [만달의 웃음]
(범두) 더불어 달달한 게 입맛에 맞을까 걱정하시던
그 세심한 배려까지
[만달의 탄성]
20년 만이야
(문수) 어, 이렇게 저하께 인정받는 것이 20년 만이야
[문수의 웃음] (만달) 나리께서 목청 높여 칭송하시던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고 말이지요
[만달의 웃음]
(문수) 안 달아, 딱 좋아
(범두) 제 건 쓴데 이거 도라지입니까?
[쓴웃음]
[풀벌레 울음]
[멀리서 개가 짖는다]
[창천군의 초조한 숨소리]
가솔들은 모두 물렀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의미심장한 음악]
[비장한 숨소리]
(창천군) 어찌 이곳까지 납시었사옵니까, 전하?
(혜종) 국구
(창천군) 예
(혜종) 지난번 명나라 사신을 이용해서
상헌군이 여연의 개발권을 얻었소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그것이 무슨…
(혜종) 여연은 오랑캐가 출몰하는 지역이오 [어두운 음악]
곧 국경 수비의 명목으로 군사들을 키우려 할 것입니다
하면…
(혜종) 사병을 기르세요
상헌군에게 대적할 만한
내가
국구를 지원할 것입니다
전하
[풀벌레 울음]
[질금의 탄성]
(질금) 영지야, 먹어, 먹어, 먹어
[질금과 영지의 탄성]
아까부터 왜 자꾸 넋 빠진 사람처럼 [지운의 놀란 신음]
아, 진짜 안 먹을 거야?
우리가 이거 다 먹는다
[입소리를 쯧 낸다]
어, 먹어
(영지) 아, 그러지 마시고 같이 좀 드세요
세자 저하께서 내리신 거라면서요
이리 귀한 걸, 미안하게
그래, 먹어 봐, 응?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지운) 그게…
하, 아니다
(질금) 아, 뭔데!
방귀를 뀌었으면 똥을 내보내야지 찝찝하게, 진짜!
아유, 저…
[머뭇거리는 숨소리]
[지운의 거친 숨소리]
아, 그러니까 그게
[흥미로운 음악]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옆에 있는 사람 볼에다가 입을 맞췄는데
(지운) 입맞춤을 당한 사람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더래
근데 입맞춤을 한 사람은
그게 묘하게 섭섭한 거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그 사람 반응이
또 나한테만 베푸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다 똑같이 베푸는 것도, 그…
어, 그, 섭섭하고
그, 그게 왜, 왜 그런 걸까?
(질금) 뭐야?
그, 지금 누구 얘길 하는 거야?
형님이 그랬단 말이야? 아는 사람이 그랬단 말이야?
내, 내가 아는 사람 얘기라니까
(영지) 혹시 그분
그 사람 좋아한대요?
(지운) 어?
(영지) 좋아하면 그렇지 않나?
그 사람이 나만 봐 줬으면 좋겠고
내 맘 몰라주면 좀 야속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자꾸 섭섭해지는 거죠
에이
그, 서, 설마
[아름다운 음악]
[까마귀 울음 효과음]
[놀란 숨소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놀란 숨소리]
[심장이 두근거린다]
[당황한 숨소리]
[한숨]
[새가 지저귄다]
(기재) 어젯밤
전하께서 궐 밖을 나가
파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셨다던데
[한숨]
상선께선 전하의 수족과 다름없으니
잘 아시겠구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선) 전하께선 어젯밤 일찍 침수에 드시어
대전 밖을 한 발짝도 벗어난 적 없으셨습니다
이번에도 모르시겠다?
제게 어찌 자꾸 이러는 것입니까?
저는 전하를 모시는 대전의 사람입니다
[기재의 한숨]
(기재) 10년 전 죽어 가던 아내를 구해 달라
울며 매달리던 일을 벌써 잊으신 모양이오?
내 그 빚은 그때 충분히 갚았다 생각합니다만
(기재) 물론 차고 넘치게 갚았지요
상선께서 그때
익선의 집에 서찰을 숨겨 주지 않았다면
내 어찌 전하의 수족들을 모두 잘라 낼 수 있었겠소
[어두운 음악] 그 일을 전하께서 아신다면
상선의 그 충심에 아주 감복하실 거 같은데
차라리 이 비루한 목숨을 내놓으라 하시지요
하면 백 번, 천 번이고 내놓을 테니
[피식 웃는다]
그 목숨
전하를 위해서라도 잘 간직하셔야지요
[넋 나간 숨소리]
[심장이 두근거린다]
[놀란 숨소리] [가슴을 탁 잡는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가쁜 숨소리]
[심호흡]
(문수) 자네 [놀란 신음]
[지운의 당황한 신음] 아니, 어, 어, 어디 뭐, 모, 몸이 안 좋은가?
아니, 아니
[가슴을 탁탁 치며] 하,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 아닌 게 아닌데
(문수) 어, 어, 얼굴이 영 안 좋은데
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 얘기를 해 봐
어디 아파?
[울먹이는 숨소리]
그, 그러니까 그게…
[익살스러운 효과음]
자꾸만
여기가 꽉 막힌 것 같고
그, 하루 종일 시, 심장이 [흥미로운 음악]
몇 번씩 두근두근 뛰다가
또 그, 아득하니 그,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게…
(범두) 어? 그거
내 전에 책에서 봤던 증상 같은데
(문수) 어, 그 무슨, 무슨 증상인가?
얘기를 해 보게, 어 [범두의 한숨]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가
(범두) 갑자기 기분이 널뛰듯 좋아졌다가
또 널뛰듯 슬퍼지지 않는가?
가끔 환각도 보이고 환청도 들리는 게
아마도 꿈에서는 어떤 특정인이 자꾸만 나타나는 걸세
마, 마, 맞아요
[지운의 손을 탁 잡으며] 역시 맞았어!
(문수) 그게 뭔가?
상사병이야!
[흥미진진한 음악]
예? 예?
(범두) 누군가?
자네를 이토록 애달게 만드는 그 여인이
그…
여인, 여인이라니!
아, 아유, 아닙니다! 그런 거
(범두) 에이 뭘 그리 부끄러워하나
우리한테만 살짝 얘기해…
아, 그…
그, 서고에 잠시 갔다 온다는 것을 깜빡했네
- (지운) 다녀오겠습니다 - (범두) 정 사…
(범두) 저, 정 사서!
- (문수) 정 사서! 아유 - (범두) 정 사서!
(범두) 씁, 맞네, 맞아
누굴까?
누굴까요?
[떨리는 숨을 고른다]
(춘생) 정 사서 [지운의 놀란 신음]
아니, 쌍판때기가 왜 이래? 뭔 일 있어?
아, 아니야, 그…
별일 없, 별일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별일 없어
별일 없어
(춘생) [웃으며] 뭣이 아니여? 참 나
저기 봐라, 응?
이번에 연회에 온 무희들인디
궁을 아주 피바다로 만들고 있어
[밝은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사람들의 놀란 숨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아니야! [춘생의 놀란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운) 아니야
[웃으며] 그럴 리 없어
아, 아니야
(춘생) 뭐, 뭐가…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지운) 아니야
(춘생) 뭣이 아니여?
[가쁜 숨소리]
[숨을 후 내쉰다]
(지운) 그래
평화
책을 좀 읽어 보자
[심호흡]
그래, 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당황한 숨소리] [흥미로운 음악]
[한숨]
아, 자꾸 왜…
[한숨]
[지운의 비명] [흥미진진한 음악]
뭐야?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지운) 가
가라고
가, 가
(휘) 뭐 잘못 먹었습니까?
(지운) 지, 진짜 저하십니까?
[어이없는 숨소리]
여길 어찌…
그야 책을 찾으러 왔습니다만
[책을 탁 뒤집는다]
(지운) 아…
아, 예
(휘) 참
일전에 드린 정과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예, 예, 저…
맛있었습니다 [어색한 웃음]
[살짝 웃는다]
다행이네요
[아름다운 음악]
[심장 박동 효과음]
[가슴을 탁 쓴다]
[떨리는 숨을 고른다]
(지운) 아, 그, 그…
아, 그, 소, 송구합니다, 저하
오늘은 제가 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만…
[지운이 중얼거린다]
[지운과 복동의 비명]
[지운의 당황한 숨소리]
(복동) 아, 예 머, 머, 먼저 가시지요, 예
[지운의 다급한 숨소리]
[복동이 놀란 숨을 고른다]
왜 저러는 겁니까?
책은 여기 있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밝은 효과음]
[새가 지저귄다]
[살짝 웃는다]
[함께 웃는다]
(학수) 이렇게 예쁘게 꾸미고
어딜 가시려고 하나? 우리 따님께서
예뻐, 아버지?
난 또 우리 딸이 아니라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줄 알았네
아, 뭐야, 아버지도 참 [학수의 웃음]
[숨을 씁 들이켠다]
그러고 보니 좀 비슷한 것도 같고?
[함께 웃는다]
[다가오는 발걸음]
(하경 몸종) 아기씨
소원 아씨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들뜬 숨소리]
[달려오는 발걸음]
(학수) 그, 천천히…
(하경) 소은아 [소은의 웃음]
[하경의 들뜬 숨소리]
[하경의 놀란 신음]
(학수) 저, 저, 괘, 괜찮니?
[함께 웃는다]
내가 너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소은의 안도하는 한숨]
[학수의 한숨]
(하경) 빨리 왔네?
준비 다 했어?
(하경) 응
(학수) 대체 어딜 가는데 이리 난리야?
아버님 심부름으로 궐에 가는데
하경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요
궐에?
갔다 올게, 아버지
[소은의 기가 찬 숨소리] [하경의 웃음]
(학수)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소은이 꼭 따라다녀라, 알겠지!
[하경의 감탄한 숨소리]
(하경) 와, 너무 멋지다
이런 곳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
[소은의 웃음]
(소은) 아, 너 여기서 잠깐만 기다릴래?
나 아버지께 금방 이것만 전해 드리고 올 테니까
응, 걱정 말고 다녀와
저 아이들은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아, 이조 판서 신영수 대감의 여식과
(상궁) 병조 판서 노학수 대감의 여식인 듯하옵니다
[차분한 음악]
[다가오는 발걸음]
[궁녀들이 시끌시끌하다]
[하경의 당황한 신음]
[밝은 효과음]
(휘) 반가의 여인 같은데 왜 홀로 궐을 돌아다니는 거요?
어, 저는 그저 꽃향기가 나서…
여긴 아무것도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시오
(김 상궁) 저하
대비전에서 찾으십니다
대비전에서?
예
저하?
저하라고?
[아름다운 음악]
[벅찬 숨소리]
말도 안 돼
(혜종) 간택이라니요?
(혜종) 그 얘긴 이미 끝나지 않았습니까
제 뜻은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세자가 아직 미령하니 잠시만 미루어 두시지요
대체 언제까지 국본의 자리를 불안하게 둘 생각이십니까?
(대비) 하루바삐 국혼을 진행시켜 후사를 이어야지요
더는 늦출 수 없습니다, 주상
[어두운 음악]
(상선) 내금위장과 함께 부원군을 만나러 간다 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나도 알지 못합니다
(혜종) 세자의 뜻은 어떠한가?
가례를 올리고 싶은가?
(휘) 사신단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또다시 국혼이라는 큰 행사를 치른다면
백성들의 부담이 너무 클 것입니다
부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려
국혼 일정을 조금만 뒤로 미루어 주십시오
(혜종) 세자빈의 간택에 관해서는
제가 따로 말씀을 올릴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기재) 정녕
[긴장되는 음악]
제현 대군께 저하의 자리를 넘겨주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리 번번이
저하의 국혼을 나서 막으시는 것입니까?
(혜종) 상헌군, 말을 삼가시오
(기재) 전하께선 세자 저하의 나이에
이미 국혼을 치르고
저하를 낳으셨습니다
진정 백성들을 위하신다면
하루라도 빨리
왕실의 종사를 이을 세자빈을 맞으셔야지요
백성들과 조정의 대신들 모두
저하의 가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숨]
(대비) 됐습니다
어차피 세자빈의 간택은 내명부의 소관이었으니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하지요
[무거운 음악]
"자경전"
[김 상궁의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혜종) 대전으로 돌아가자
[문이 달칵 닫힌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형설) 어찌 그러십니까?
아니다
[한숨]
[한숨]
(김 상궁) 어떡합니까, 저하?
대비마마께서 강경히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복동) [한숨 쉬며] 괜찮습니다, 저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연습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아시잖아요
세자빈 되실 분 손을
이리 딱 잡으시고
'은애하오' 이리만 하시면…
[한숨 쉬며] 혼자 있고 싶구나
그만 나가 다오
(김 상궁) 예
[복동의 멋쩍은 신음]
(복동) 이, 이게 이렇게 바로 넘어오는데…
[복동과 김 상궁의 한숨]
[어두운 음악]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새가 지저귄다] [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소은) 저하께서?
(하경) 그렇다니까
이렇게 날 감싸 안으신 그분의 모습은 어찌나 멋지던지
이런 게 운명이라는 걸까?
[소은의 헛웃음]
나 목표가 생겼어
반드시 세자빈이 되고야 말 테야
꼭
[결연한 숨소리]
[웃음]
어, 잔이야
[잔이의 웃음]
나 먼저 갈게
정신 팔려서 딴 데로 새지 말고
(소은)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세자빈마마
세자빈마마?
[소은의 웃음] (하경) 야
[하경을 탁 치며] 갈게
(잔이) 아씨! [잔이의 웃음]
[아이들이 시끌시끌하다]
[잔이의 당황한 신음]
[잔이의 비명]
[소은의 놀란 숨소리] [어두운 음악]
(잔이) 아, 이를 어째?
[못마땅한 신음] [잔이의 다급한 숨소리]
송구합니다, 나리, 괜찮으세요?
(창운군) 아, 이게 뭐야?
(잔이) 아, 소, 소, 송구합니다
제가 깨끗이 닦아 드릴게요
(창운군) 아, 아유, 씨 아, 더러워
야, 야, 씨
얻다 그 손을 대고 있어, 씨 [잔이의 힘겨운 신음]
[사람들의 놀란 신음]
[놀란 숨소리]
[소은의 다급한 숨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소은) 잔이야, 괜찮아?
(잔이) 아씨… [창운군의 못마땅한 신음]
(소은)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 '무슨 짓'?
'짓'?
(창운군) 야, 이거 오늘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하, 씨
[한숨]
[아련한 음악]
[살짝 웃는다]
다행이네요
[떨리는 숨소리]
[심장이 두근거린다]
[숨을 후 내쉰다]
[헛기침]
[심호흡]
(소은) 송구합니다
저희 집 아이가 실수를 하였습니다
제가 대신 사죄드릴 터이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버린 옷값은 충분히 치러 드리겠습니다
(창운군) 하, 씨 누굴 거지로 아나, 씨
그래?
그럼 값은 어떻게 치를 건데? 어?
요 반반한 상판대기로 치를 건가? 어?
[소은의 성난 숨소리] [창운군의 아파하는 신음]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아씨, 진짜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씨
- (창운군) 미친 것이! - (잔이) 아씨! [사람들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음악]
뭐야, 넌?
도련님
[창운군의 당황한 신음]
(창운군) 아, 이, 이거 안 놔?
놔
[창운군의 어이없는 숨소리]
(지운) 보는 눈이 많습니다 군대감 어른
자중하시지요
[헛웃음]
야, 이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어?
(창운군) 아
이제 보니 이거 세자의 스승님이시구먼, 어?
왜, 세자랑 붙어 다니더니
네가 막 뭐라도 된 줄 아는 것이냐?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자중하라 마라야, 이씨
네가 정녕 오늘 죽고 싶은 게지? 어?
그럼 죽어야지, 어
[창운군이 지운을 툭 친다]
어
야, 이씨! [사람들의 놀란 신음]
안치형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으셨습니까
(지운) 이리 소란을 일으키면 군대감만 곤란해지실 겁니다
[헛웃음]
(창운군) 야, 이거 하, 이 새끼, 이거
야, 멋있다, 어?
또 까불어 봐, 어?
또 까불어 봐, 어?
(원산군) 그쯤 하시지요
무엄하구나
감히 왕실의 종친을 막아서다니
(창운군) 이야
[지운을 탁 치며] 이거 아주 명일이로구먼, 어?
하, 참
숙부님 역시 왕실의 종친으로 품위를 지켜 주시지요
그 말 한번 잘했네
하여 내 반상의 법도가 뭔지
(창운군) 이 천한 것들에게
제대로 한번 알려 줘 볼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오늘 나 말리지 마라, 어?
[긴장되는 음악]
일로 와
[긴장되는 효과음]
[창운군의 힘겨운 신음]
(원산군) 제가 분명 그만하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창운군의 분한 신음]
[창운군의 거친 숨소리]
(창운군) 아, 야, 진짜!
뭘 봐? 뭘 봐, 이 새끼들!
[창운군의 고함] [사람들의 놀란 신음]
그만 모시고 가 보거라
조카님, 오늘 실수하신 거야
저런 놈들 버르장머리는 고쳐 주진 못할망정
사람들 앞에서 날 막아서고 말이야
실수는 숙부님께서 하실 뻔하였지요
이판 대감 댁 여식입니다
함부로 건드려 좋을 게 있겠습니까
뭐?
(창운군) 에이씨
저것들은 뭔데 저렇게 붙어 다니고 지랄이야?
혼담이라도 오간 사이야? 뭐야? 씨
[새가 지저귄다] [풀벌레 울음]
[한숨]
[잔잔한 음악]
위험할 뻔했습니다
어찌 그리 나서셨는지요
[살짝 웃는다]
위험할 뻔하였으니 당연히 나서야지요
볼 때마다 새로운 분이십니다 도련님께서는요
(소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소은의 한숨]
고맙단 말로도 이제 부족할 거 같습니다
잔이 제겐 친동생만큼이나 소중한 아이거든요
(지운) 오늘 많이 놀라셨을 터인데 이제 그만 들어가 쉬시지요
자네도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그만 들어가 쉬게
[숨을 들이켠다]
[풀벌레 울음]
(현) 낮에 대비전에 다녀오셨다고요
[휘의 한숨]
(휘) 세자의 자리란 참으로 무상한 것 같습니다
나라의 일이라는 이유로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해야만 하다니
씁, 어떻게
형님께서 힘 좀 써 주시겠습니까?
아우를 위해 가례를 좀 미뤄 달라 청해 주시지요
이참에 저도 형님 덕 좀 보고 싶은데
저하
[피식 웃는다]
아이, 농담입니다, 농담
(휘) 농으로 던진 말에 그리 진지하게 구시니, 원
형님께는 농담도 제대로 못 하겠습니다
[휘가 피식 웃는다]
[한숨]
(현)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하께선 혹
마음에 담으신 분은 없으셨습니까?
예?
아, 형님도 참
곧 새신랑이 될 사람에게
짓궂으십니다
그러니 여쭙는 겁니다
(현) 살아오며 마음을 주었던 정인은 없으셨는지
한 번도 말씀한 적 없지 않습니까
[애잔한 음악]
[한숨]
저라고 어찌 없었겠습니까
[휘의 한숨]
(휘) 아주 어릴 적이었는데
궐에 온 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함께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헤엄을 치지 못하는 그 아이를
제가 구해 주었지요
[어린 지운과 담이의 놀란 신음]
(담이) '연선'?
(어린 지운) 담이란 이름도 예쁘지만
어쩐지 좀 더 특별한 이름으로 널 부르고 싶어서
[살짝 웃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직도 제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휘) 어쩌면 그것이
저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결연한 숨소리]
[문이 달칵 닫힌다]
정 사서
[휘의 당황한 신음]
(휘) 아니, 이리 이른 시간에 어찌 궐을 든 겁니까?
부탁이 있습니다, 저하
한 번만
안아 주십시오
무슨…
(복동) 아이, 정 사서 어디 아프십니까?
(지운) 네, 아픕니다, 제가
제가 많이 힘듭니다
그러니 제발
단 한 번만요
(복동) 아유, 이, 지금 많이 안 좋으신데
아니, 뭐, 저하께 그런 부탁을…
제가 한 번 안아 드리겠습니다
[복동이 숨을 후 내쉰다] [애절한 음악]
힘내십시오
정 사서
이제 됐습니까?
(휘) 그만 가자
[복동의 서두르는 숨소리]
[풀벌레 울음] [새가 지저귄다]
[복동의 가쁜 숨소리]
(복동) 아니, 대체 어찌 그러신 겁니까? 예?
아, 어쩌자고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지나가는 궁인들 다 봤습니다
(휘) 아프다지 않느냐, 힘들다고
(복동) 그러니깐요
아프다고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그런 부탁을 들어주시는 분이나
두 분 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좋아해서 그랬다, 좋아해서
아니,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한숨]
아유
예?
[한숨]
곧 혼례도 올릴 테니
마지막으로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나도
저하!
(휘) [한숨 쉬며] 걱정 말거라
곧 정리할 마음이니
[잔잔한 음악]
[탁]
(범두) 곧 세자빈 간택을 한다는 거 들으셨습니까?
(만달) 이야, 간택이라니
[사람들의 웃음]
(문수) 아니, 드디어 우리 저하께서도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시는 건가? 응? [사람들의 웃음]
(만달) 세자빈 간택을 시작하면 또 바빠지시겠네요?
(문수) 그렇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운) 간택이라니요?
저하께서 혼인을 하신단 말입니까?
(만달)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하도 사내인데 혼기가 찼으면 장가를 드셔야지요
- (문수) 그럼 - (범두) 응
(문수) 또 한바탕 뭇 여인들 가슴이 설레겠구먼
[사람들의 웃음]
세자 저하께서 성정은 차가우시지만
(범두) 미남자시지 않습니까
(문수) 아, 미남자시지, 나 같은 [사람들의 웃음]
(범두) 보덕 어른은 광대 상이십니다
(문수) 기생오라비!
(만달) [웃으며] '기생오라비'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까?
(휘) 힘들면 오늘 서연은…
(지운) 가례를 올리신다고요?
(휘) 아…
[멋쩍게 웃으며] 예
[한숨]
진작에 올렸어야 하는 건데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하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네요
[쓴웃음]
고맙습니다, 정 사서
혹시라도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여인들에 관해서라면 저만큼 아는 자가 드물 테니
그리하지요
[한숨 쉬며] 가례가 시작되면
정 사서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잔잔한 음악]
[쓴웃음]
[한숨]
그래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을
[바람이 살랑거린다]
남자고
세자고
곧 혼례도 올리실 분을 좋아해서 어쩌자고
[지운이 숨을 들이켠다]
(지운) 정신 차리자, 정지운 정신 차려
정신 차리자
(현) 혼자 뭘 그리 심각하게 앉아 있어?
(지운) 왔냐?
가례 준비로 바쁜 건 좀 어때?
전에 말한 네 외사랑 말이다
고백은 왜 안 한 거냐?
돌려받지 못할 마음이라 생각했다
(현) 그 말이 짐이 돼서
그 사람과 멀어질까 걱정도 됐고
그래도 해 보지 그랬어
(지운) 사람 마음 모르는 건데
[현의 한숨]
(현) 그래 볼 걸 그랬나?
[헛웃음]
아니다
내가 품은 마음 그 사람도 함께 품어 주는 게
흔한 일은 아닐 테니
혼자서 간직하려고
부담 주지 않고
미련 두지 말고
그렇게 말이다
[피식 웃는다]
[지운이 입소리를 쯧 낸다]
(지운) 간지럽습니다, 군대감
(현) 뭐? 기껏 고민 들어 줬더니 [지운이 피식 웃는다]
형님한테! [지운의 힘겨운 신음]
(지운) 야, 너…
어어!
[지운의 다급한 신음]
아, 아, 물이라면 질색하는 거 알면서 치사하게
그래, 그만하자, 그만
(지운) 하, 참
너 어릴 때
궐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했었나?
(지운) 말했잖아, 수도 없이
공신연 때 담이 처음 만난 날
걔가 구해 줘서 겨우 살았다고
[감성적인 음악]
(휘) 궐에 온 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함께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헤엄을 치지 못하는 그 아이를 제가 구해 주었지요
그 아이 사라진 게 언제쯤이었다고?
갑자기 그건 왜?
연고도 없이 절에서 자라 궐에 든 아이라 했지?
(현) 나 먼저 좀 가 봐야겠다
(지운) 혀…
현아
어디 갔지?
[풀벌레 울음]
(지운) 아
[입바람을 후 분다]
[의아한 숨소리]
[바람이 살랑거린다] [잔잔한 음악]
꿈이
아니었다
[지운의 놀란 숨소리]
[지운의 당황한 숨소리]
아니, 그게…
(지운) 그…
제, 그, 제가 갑자기 취, 취기가 올라와서 그만…
그, 그, 소, 송구합니다, 저하
송구합니다
[당황한 숨소리]
됐습니다
정 사서에게 내가 너무 막역해졌나 봅니다
아, 아, 그것이 그것이 아니오라…
[난처한 숨소리]
[숨을 후 내쉰다]
[윤목이 달그락거린다]
그거 말입니다
예?
나도 한번 만져 봐도 됩니까?
아…
[지운의 떨리는 숨소리]
[다급한 숨소리]
[술병을 탁 집는다]
[부드러운 음악]
"그리워하다, 아니하다"
(담이) 너를 만나게 되면 전해 달라 하더구나
힘들 때
의지가 되어 줄 것이라 했다
(담이) 그 아이에게도
그랬다더구나
[옅은 웃음]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지운의 가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꿈인 줄 알았습니다
(지운) 저하를 향한 제 불경한 마음이
꿈이 되어 나타났다고 말이지요
한데
꿈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흔들린 거라고 하신다면
그렇다 믿어 드리겠습니다
하나
저는 아닙니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애절한 음악]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떨리는 숨소리]
(김 상궁) 저하께서 궐에 안 계시다니
오후에 대비전에 들기로 한 걸 잊을 리 없으실 것 아닌가
(기재) 전하께옵서 드디어 간택을 진행시키라 허하셨다고요?
(대비) 이판의 여식 소은이라 했느냐?
(지운) 감당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게 뭐라고 하든 전부 제가 감당할 것입니다
(휘)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지운) 떠나라 명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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