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 16
(미주) 갑자기 나한테 밥을 왜 해 먹여요?
(선겸) 오미주 씨 잘 때도 많이 했는데
한 번을 같이 못 먹었네요?
음, 그땐 그랬었지
기선겸 씨는 해 떠 있을 때가 낮인데
난 달 떠 있을 때가 낮이라서
오, 그래도 우리 이제 밤낮이 같아졌어요
고마워요
뭐가요? 존재 자체가?
어, 그것도 그렇고
우리 누나요
(선겸) 우리 누나 얘기 들어 주고 어루만져 줘서
그거는 내가 못 하는 거거든요
(미주) [헛기침하며] 못 하시는구나, 음
먹어 볼게요
[미주가 입바람을 후후 분다]
응? 음, 맛있는데?
[미주의 놀란 신음]
뭐지? 이거 거의 리비에라에서 먹었던 클래스인데?
맛집이에요?
으음, 나 원래
작업 하나 마치면 여행 가고 싶어지거든요?
씁, 언제였더라?
그, 내가 작업하던 영화 배경지가
이탈리아 휴양지였어요
(미주) 사용 언어는 영어였고
근데 그 작업 하는 내내
마치 내가 거기 사는 외국인인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도시 자체도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뭐 결국 페이 몽땅 털어 가지고
여행 갔지, 뭐
거기 사는 외국인 기분 내러
- 음, 혼자요? - (미주) 응
(미주) 나 원래 혼자 잘 다니거든요
핸드폰으로 지도도 안 보고
그냥 이정표만 보면서 따라다니는
그런 자발적으로 혼자인 시간이 좋아 가지고
(선겸) 얘기 더 해 줘요
더 듣고 싶어요
(미주) 음…
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웬 독일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기내 자막이 꽤 괜찮았던 거 같고
응, 꽤 괜찮았고
뭐, 식당을 가도 그렇고 카페를 가도 그렇고
(미주) 다 외국인들뿐이니까
내가 웬만한 영어는 다 들리거든요?
근데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영어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답답했어요?
아니요
그 외국어의 정확하게 닿지 않는 지점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저는
딱 필요한 말만 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말 안 해도 되고
예를 들면요?
뭐,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이거 얼마예요'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거?
말하다 보니까 다시 가고 싶네
언제 다시 갈 건데요?
글쎄요
다음엔 나랑 같이 가요
(선겸) 아, 나도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같이 가게 해 준다, 내가
(미주) 같이 가요, 갑시다
짐 싸요
어? 지금요? 아…
나 내일 출근해야 돼서
아유, 아쉽지만 같이 못 가겠네요
[미주의 웃음]
(미주)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잖아요
누가 지금 당장 같이 가재?
(선겸) 음, 아쉽다
[심전도계 비프음]
[명민이 훌쩍인다]
[명민이 흐느낀다]
(태웅) 누나
[단아의 거친 숨소리] [문이 쓱 닫힌다]
우리 단아도 왔구나
[헛웃음]
(단아) 회장님이 잘 숨기신 덕분에 이제야 왔네요, 제가
저 패륜아 만드시게요, 진짜?
너처럼 예쁜 패륜아가 어디 있어
(명필) 그래도
다들 보니
좋구나
[단아의 한숨]
[명필의 한숨]
사랑했다
어쩌라는 거예요
그랬다고
[잔잔한 음악] [피식 웃는다]
좀 주무세요
아버지
[심전도계 경고음]
[심전도계 정지음]
[엘리베이터 조작음] 야, 서명민
나중에, 나 바빠
눈 감으신 지 5분도 안 지났어
애도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버지 생전에 효도한 건 나야
[단아의 헛웃음] (명민) 네가 아니고
그래
알겠으니까
품위 지키라고, 아버지한테
넌 여유 있나 보다?
(명민) 그래, 너는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살아
[엘리베이터 도착음] 어차피 승진은 내가 할 거니까
[통화 연결음]
어, 차 대기시켜 놨지?
어
[무거운 음악]
[영화의 한숨]
성에 사는 사람이었지, 참
[코를 드르릉 곤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현진) 의원님, 급한 일입니다
(정도) 아
아휴…
-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 - (현진) 대외비입니다만
서명필 회장 임종했답니다
[어두운 음악]
뭐?
뭐라고?
[헛웃음]
결혼은 어떡하고
(정도) 육 배우는
스케줄 맞춰 봤어?
조만간 휴차가 이틀 있는데 미국 간답니다
(현진) 할리우드 영화 최종 미팅인데 거의 픽스 단계랍니다
아, 그리고
기 프로 스캔들 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결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노근성이 지지율이라도 계속 깎아내려야지, 둬
두라니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리하기로 은비랑 약속하신 거 아닙니까
아유! 쓸모없는 새끼
아들이라고 낳아 주고 키워 주고 그랬더니
쓸데라고는 없고
- 의원님 - (정도) 야!
너는 대체 언제 쓸모 있어질 거야
(정도) 나하고 계속 같이 가려면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꺼! 쯧
- (단아) 오랜만이네 - (영화) 싫어요
뭐가
- 뭐든 - (단아) 무슨 일이었는진
- 안 물어봐? - (영화) 물으면
- 말해 주긴 할 거고? - (단아) 응
회장님 돌아가셨어 장례는 아직이고
[잔잔한 음악] [한숨]
(영화) 괜찮아요?
애도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과정 준비하느라 바빠서
모르겠네
그런 건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
(단아) 어떨 때 보면
꼭 얼른 돌아가시길 기다리는 사람 같을 때가 많았어
패륜아처럼
근데 그건 회장님…
아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셨어
(단아) 회장님으로 부른 날이 더 많았고
거의 그 이름으로만 받아들여졌으니까
회장님 이렇게 되시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르겠구나'
창창한 이영화가
자기 시간 알차게 썼으면 좋겠는데
그게 나는 아닌 거 같고
그래서요
어차피 결말
정해져 있는 거 알고 만났잖아
결말이 어떻게 될지 내가 어떻게 알아
- (영화) 나 봐야 알지 - 네 해피 엔딩 못 해 준단 소리야
(단아)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더 위로 올라가야 해서
[떨리는 숨소리]
나 집에 갈래
나 따라오지 마요
나 따라오면
나 진짜 죽어 버릴 거예요
나한테 협박을 한다 너를 담보로?
협박이 될 걸 아니까
[잔잔한 음악] [헛웃음]
그건 그러네
(단아) 미안해
내가 네 세계로 들어가면 됐는데
너를 내 세계로 끌어들여서
너는 결승선을 향해 가는데
나는 반환점을 향해 가서
미안해
[영화의 옅은 숨소리]
안 자고 뭐 해요
아까워서
(단아) 잡아 두려고, 시간
대표님이
미안하기로 결정했으면
난 최대한 미뤄 볼 거야
미뤄 보려고
[한숨]
[현진의 한숨]
(현진) 요샌 여기서 지내는 거야?
(선겸) 네, 호텔보다 편해요
보좌관님은요?
그냥 어렸을 때처럼 불러 아저씨라고
사표 냈거든
사표를 냈다고요?
아버지 지금 경선 한창이실 텐데
똥 묻은 개로 오래 살아서 그런가
(현진) 원래 그랬었는지
똥통에 빠진 건지 헷갈리더라
요즘엔 특히나
[한숨]
은비 스캔들
의원님이 터뜨리신 거야
노근성 의원 깎아내리고
그걸 아름답게 수습해서
이미지 챙기는 것까지가 목적이고
은비 일 안 덮고 두시길래
좀 캐 봤더니 그렇더라
근데 그걸 굳이 저한테 말씀해 주시는 이유가…
나는
너랑 은비 참 예뻐했거든
(현진) 너희 위해서 한 말들이 많았는데
상처였다면 미안했다
너무 눈이 멀었어, 내가 의원님한테
[한숨]
아저씨 처음 봤을 때 생각나네요
처음 만났을 때?
(현진) 지금보다 젊고 잘생겼었나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선겸) 그게 참 멋졌거든요 어린 마음에, 저한테는
[현진의 한숨]
말씀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가실 길도 응원할게요
(현진) 두 분…
이혼 얘기 나오는 건 알고 있니?
[어두운 음악]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못 하겠냐
이혼 아마 안 될 거야
의원님이
육 배우 관련해서 준비해 둔 게 없을 리 없잖아
간다
[선겸의 한숨]
[한숨]
[통화 연결음]
어, 통화 가능해요?
아, 집이에요?
배고파서요
최선은 다해 봤는데
맛은 장담 못 하겠네요
- (선겸) 잘 먹겠습니다 - (미주) 네
어때요?
[미주의 한숨]
아니, 레시피대로 음식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야
그러면 그 레시피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음식을 하는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요, 아니요, 맛있기만 한데요? 되게 맛있는데
(미주) 헐
상냥해
딴 반찬들도 먹어요
네
(선겸) 근데
나 위로해 주는 거예요?
내가 왜 위로를 해 줘요?
내가 지금 위로받고 있는데
왜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선겸) 우리 누나요
우리 누나는
나보다 훨씬 더 아버지한테 사랑도 받고
또 그만큼 정신적 학대도 많이 받았어요
근데 아버지는 그것도 다 사랑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받고 자랐는지 모를 때가 더 많았거든요
[숨을 들이켠다]
내가 오늘
누나에 관해서
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는데
누나가 그걸 모른 채 있으면 바보 되는 기분이라서
내가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근데 그걸 말하면 상처받을 거고
그 상처 바라보기도 어려울 거 같고
기선겸 씨는, 음
원래 생각한 건 바로 행동하고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죠
근데 이번엔 왜 망설였어요?
(미주) 왜 여기 있을까?
본인도 상처받았기 때문이죠
그 불편한 사실에
[잔잔한 음악]
[한숨]
몰랐네
아직도 모르는 거 너무 많네
누나가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우리끼리 이렇게 추측하지 말고
음, 그냥 말을
마음을 잘 전달해 봐요
누나가 상처받으시면 이렇게 안아 드리고
그런 게 가족 아닌가?
그런 게 가족이구나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선겸) 고마워요
[선겸의 한숨]
(은비)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
네가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돌아 버린 거라고 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내가…
이걸 알아서 뭐가 달라져?
(은비) 세상에 널리 알려?
막 사실을 밝히기라도 해?
그것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한숨]
밝힌다 쳐
아버지 인생은?
그럼 그런 식으로 자식 이용한 아버지 인생은?
그리고 누나 인생은? 그 묻은 얼룩은?
라이언이 내 말 믿어 줬어
(은비) 난 그거면 돼
나머지는…
시간 지나면 묻히겠지
누나가 왜 그래야 되는데
가족이잖아, 우리
지금 가족이라 그랬다, 누나 입으로
그게 뭐
(선겸)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가족인데
내가 이 방법까진 안 쓰려 그랬는데
(은비) 어쩌게
엄마한테 이르게
(은비) 와, 너무 예상 밖인데 신박하다
근데 너무 애새끼 같지 않니?
애새끼일 때 못 해 봤으니까 지금이라도 해 보려고
보통 아빠가 잘못하면 엄마한테 이르고 그러는 거래
[은비의 웃음]
(은비) 너 친구 많이 생겼나 보다? [통화 연결음]
네, 엄마, 바쁘세요?
[무거운 음악]
[한숨]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매니저) 누나, 공항 패션 이 중에 고르실게요
이야, 영어 공부 해 두길 잘했네요
- (매니저) 할리우드라니 - 나 미국 못 가겠다
(매니저) 예? 오늘 출국인데
스케줄 제가 공지 안 해 드렸나?
누나 저번에 영상 오디션 보신 거 최종 미팅이라…
그러니까
- 나 오늘 못 가겠다고 - (매니저) 아, 누나, 누나, 누나
왜 이런 장난을 쳐요, 안 웃겨요
웃기려고 한 거 아닌데?
(매니저) 이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에요
저 대표님한테 죽어요, 누나
한 대표가 너 죽이기 전에 내가 걔 처리해 줄게
(지우) 현기야, 누나 믿지?
지금은 못 믿겠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갑자기!
할리우드 진출?
그거 앞으로도 할 수 있어 내가 연기하는 한
근데 내 자식이 상처받는 건
[한숨]
내가 애들 내팽개치고 얻은 영광이 몇 개인데
내일 할게, 배우
아니, 누나, 누나!
김현진이 이 새끼 전화도 안 받고
[헛웃음]
사직서만 내면 다야?
(정도) 어?
당신 오늘 출국… [문이 탁 닫힌다]
[지우의 힘주는 신음] [정도의 신음]
[긴장되는 음악] (지우) 야, 기정도
너 아주 갈 데까지 갔구나?
어떻게 애들 갖다가
네 부성애를 전시해?
[당황한 숨소리]
[한숨]
장인어른도 아셔?
[어이없는 숨소리]
난 적어도
네가 날 사랑해서 결혼한 줄 알았어
(지우) 근데 여기서 걱정되는 게
처갓집 돈줄 끊기는 거네?
애들은 내가 데려갈 테니까
불만 있으면 소송 걸어
위자료 세게 받아 줄게
(정도) 육지우
너 지금
네 멋대로 이혼을 지껄여?
난 왜 이혼을 내 마음대로 못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내 인생인데
지우야, 왜 그래
(정도) 오빠가 잘못했어
정도 오빠, 경선 준비
혼자서 잘해 보시고
(지우) 질척거리면 나도 확
우리 아빠한테 이른다? 어?
[문이 탁 열린다] [성난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아이씨! [수화기를 쾅 내리친다]
다 자기 멋대로야! 씨
[함께 감탄한다]
너무 맛있겠다, 웬일이야
우리 이거 좀만 더 익으면 김치찌개 해 먹자
(매이) 엄마도 참…
김장 좀 그만하라니까
이렇게 매번 김치를
(미주) 언니네 가족은 참 화목한 거 같은데
(매이) 화목하지, 화목은 한데
- 소통이 잘 안돼 - (미주) 응?
- 내 이름 봐라 - (미주) 맞네
아니, 언니네 어머니가 매희라고 한 걸
아버지가 매이로 알아듣고 출생 신고 하신 거잖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도 계속 헷갈렸잖아
엄마는 '매희야', 아빠는 '매이야'
내가 매희인지 매이인지
환장하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매이를 매희라 부르지 않아도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가 따로 없네, 아주?
사랑해, 여보
원래 가족은 모이면 싸우고
흩어지면 애틋하더라
그냥 언니네 가족이 애틋하고 화목한 거지, 뭐
(미주) 나는 내 인생에 나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닐 때가 더 많은 거 같아
언니가 내 가족은 아니지만
꼭 호적에 나란히 올라야 가족이냐?
(매이) 같은 피 섞여야 가족이야?
우리 엄마는 계속 너 막내딸이라고 하던데
이 불효막심한
맞네
우리 여보를 낳아 주신 분한테 내가
불효를 저질렀네
우리 어머니 뵈러 언제 가지?
그러게, 안 간 지 꽤 됐네
언니, 우리 내년에는, 어?
이 동네 자취인들 모아 가지고 김장 한번 크게 할까?
- (매이) 오… - 어머니 좀 보내 드리고?
[매이의 놀란 신음]
너나 많이 해
난 원래 사 먹는 주의야
하자, 하자, 어? 어? 어?
[잔잔한 음악]
[건타카 작동음]
[작동음]
[건타카 작동음]
[째깍거리는 효과음]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탁 닫힌다]
(지현) [헛기침하며] 대표님
(단아) 네
회의 시간 아직이지 않나?
이영화 씨 왔습니다
- 들어오라고 해요 - (지현) 네
[문이 탁 닫힌다]
(단아) 죽어 버린다더니
네 발로 찾아왔다?
대표님 시간 뺏기 싫어서
(영화) 대표님한텐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
나한텐 대표님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런 대표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내가 마음을 빨리 정리하는 거더라고
안 받아요?
대표님 그림
(단아) 이걸 이렇게 받네
나한테 주기 전까진 네 거라며
그거 네 마음이잖아
내 마음은 이미
마음대로 다 가져가 놓고
(단아) 어떻게
돌려줄까?
계속 갖고 있어요
대표님 안에서 다 없어질 때까지
잘 갖고 있다가
분리수거만 잘해 줘요
그거 중요하다면서
[슬픈 음악]
하…
너 진짜…
[단아가 훌쩍인다]
[흐느낀다]
나는요
아직도 똑같아요
(영화) 대표님이 무슨 짓을 해도
싫어지지가 않고
계속 좋아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것도 내 자유잖아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또?
아니
(단아) 너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오래 살아요
아프지 말고
나의 첫사랑
대답해야죠
(영화) 응?
오래 살게
안 아플게
"단 에이전시"
[청소기 작동음]
어, 왔어요?
[청소기 작동이 뚝 멈춘다]
선겸이 형
형
[잔잔한 음악] (단아) 영화야
목표는 내가 이뤄 줬고
넌 꿈이 뭐니?
대표님이랑 안 헤어지는 거
(영화) 난 그 꿈 이뤄 보려고
형
[흐느낀다]
안 이뤄지는 거 맞았어
(영화) 안 이뤄지는 거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텐더) 아, 갈아 줄게요, 얼음 다 녹았네
[단아의 한숨]
아유, 땅 꺼지겠어요, 아까부터
무슨 일인데
일은 늘 있죠
일이 늘 많아서
[바텐더가 얼음을 잘그락거린다]
걔를 포기했네
그때 그, 관심 주던 사람?
내가 관심을 꽤 일찍부터 줬나 보네?
(단아) 이제 안 주려고요
(바텐더) 누구나 자신만 열어 보고 싶은 보석함이 있대요
뭐, 그 안에 담긴 게 꼭 보석이란 얘긴 아니고
음, 바닷가에서 주운 씨 글라스일 수도 있고
조개껍질일 수도
아, 누군가의 교복 단추일 수도 있지
추억을 간직하는 거니까
자, 나만이 열어 볼 수 있는 보석함 속의
반짝이는 추억이 되는 거
그 시절을
앞으로 영원히 없을 순간을
소장하게 되는
그런 거죠
보석함에 넣기엔 애가 크긴 하던데
보석함을
크게 만들면 되지
[함께 웃는다]
(단아) 그건 그러네
사장님은 뭐 넣어 놨어요?
(바텐더) 난 보석함 작은 거
처음에 샀던 집 열쇠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다가오는 발걸음]
- 아, 어서 오세요 - (미주) 안녕하세요
(미주) 아니, 왜 안 찾아와서 내가 찾아오게 만들어요?
뭐, 왜 찾아오는데?
실장님이 부탁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친한 줄 아나 봐
무슨 일 있어요?
(미주) 아, 대답하지 마요, 안 궁금하니까
나 술 마시러 왔으니까
여기 보드카 마티니 한 잔만 주세요
젓지 말고 흔들어서
이름이 어떻게 되죠?
본드, 제임스 본드 [입바람을 후 분다]
(단아) 아, 느끼해
(미주) 아
(바텐더) 빈 잔 치워 드릴까요?
아, 아니요, 아니요 제가 소주 마실 때도
병을 잘 안 치우는 편이라
아, 그런 장르
배려하겠습니다
음…
(단아) 나…
알고 있었어요
[잔잔한 음악]
알면서 계속 만났어
그랬으면서
나는 또 걔가 끝내지 않길 바랐어
내가 선 그어도
계속 쫓아오길 바란 거지
내가 어디에 있든 볼 수 있게
영화 씨가 무슨 천리안도 아니고
[단아가 피식 웃는다]
나 이 엔딩 잘 알거든요
좋아했던 건
다 미련으로 남았으니까
(미주) 미련 남기기 싫어서라도 안 좋아할 뻔했겠네
그러려고 했죠
근데 마음이
마음대로 잘 안됐네, 내가
[한숨]
(미주) 아…
여기 이거 술 대표님이 사는 거죠?
메뉴 보니까 전반적으로 좀 비싸던데
내가 재벌인데 얻어먹을까, 설마 서민한테
오늘은 서민 소리가 나쁘진 않네
(단아) 나도 서민 하고 싶다
(미주) 음, 바꿀래요?
(단아) 아니요 [미주가 풋 웃는다]
(영화) 대학생 한 장요
(직원) 학생 할인 필요하세요?
아, 네, 잠시만요
아, 맞는다, 잃어버렸지
(영화) 다녀왔습니다, 형
형, 뭐 해요?
(선겸) 음
(영화) 뭐예요, 이게?
(선겸) 선물
(영화) 선물?
갑자기?
헐
- (영화) 형 - 부탄가스도 넉넉하게 사서
저 안에 넣어 놨어요
(영화) 형, 저요
전시 보러 갔는데
학생증이 없어서 할인 못 받았어요
그래서 안 봤어요
나는요
아프면 아픈 대로 둘 거예요
안 아파지면
그때 안 아파하면 되니까
[잔잔한 음악]
이게 피상적으론 새드 엔딩일 수 있겠지만
전 대표님을 만난 덕에
앞으로 다가올 감정들을 배우고 성장하겠죠?
그래서 대표님이 학생이라고 불렀나 봐
좀 배우라고
기초 공사를 하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대표님이랑 미래를 꿈꿀 수는 없어도
대표님이 없었으면 다가올 관계들을 미성숙하게 해냈을
뭐, 그런 거
언젠가는 뭐
'그 사람이 누구였지?' 하고 희미해질 수 있겠지만
괜찮아요
(영화) 여기에 다 남아 있으니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감독) 암만 출품을 해도
영화제 측에서 초청을 안 해 줘서 못 가 봤었는데
번역을 잘해 주신 거 같습니다
덕분에 초청받아서 저
두바이 영화제에 갑니다 [미주의 놀란 신음]
(미주) 어머머, 웬일이야, 너무 잘됐다
와, 진짜…
와, 너무 축하드려요
아, 내가 자막을 여러 번 수정한 보람이 있네
여러 번 수정…
그렇죠, 제가 진짜 더럽게 많이 괴롭혔죠
영어도 쥐뿔도 모르면서
아유, 뭐, 감독님 입장에서는
직접 쓰신 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거니까 이해해요
덕분에 번역가님도 저 많이 괴롭혔죠
(감독) 나 진짜 아차 싶더라
내가 버튼 누른 거 같아서 [함께 웃는다]
하, 참, 여전히 말씀을 참 아름답게 하시네요
하, 저한테 진짜 화도 많이 내셨는데
참 엊그제 같은데
번역 구하신다고 커뮤니티에 올라온 거 콘택트했을 때
하, 불리하시면 꼭 그렇게 말 돌리시곤 하셨는데
그때도 잡과 잡 사이에서 우연히 본 거였는데
참 어쩐지 끌리더라고요
영화는 착한데 넌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많이 하시고
아유, 진짜
(미주) 아니, 지금 다 지난 일이라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아, 좀
번역가님이 인볼브해 주신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이제 와서요?
뭐, 이제라도 포장에 일조해 보자는 거죠
아름답게
[함께 웃는다]
(미주) 아, 진짜
아유, 잘됐네요
(감독) 고마워요, 진짜
뭐야?
왜 이렇게 근사하게 하고 왔어요?
나 취직했어요, 에이전트로
(미주) 어머! 어떡해, 아유, 너무 잘됐다 [밝은 음악]
아유, 축하해요 어떡해, 기특해서, 어?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다 사 줄게요
뭐 갖고 싶은 것도 있나?
저기 저 하늘의 저거 별 갖고 싶어요?
말만 해요, 다 따 주려니까
괜찮아요, 안 필요해요
다행이다
별은 못 따 줘요, 어차피
밥은 내가 사고 싶어요 나 취직했으니까
- 배고플 때 탕? - (선겸) 배고프니까
날 추우니까 감자탕
(미주) 아…
참 이젠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다 말하고
아유, 기특해, 아유, 다 컸어, 아이고
(선겸) 또 애 취급, 나도 해야지
오, 다 컸어
그럼 졸업을 하시든가요, 예?
헐!
(미주) 우리 이제 말 완전 잘 통하지 않아요?
웬일이야, 진짜?
(미주) 직업이 뭔데요
뭐, 존 윅이세요?
그게 뭔데요?
- 아, 몰라요? - (선겸) 몰라요
아, 예
근데 그게 왜 변태예요?
- 제가요? - (미주) 아니…
제가요
- 변태예요? - (미주) 아니…
와, 진짜 그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원래도 말 잘 통했는데
그동안 누구랑 잘 통한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총은 요즘 안 들고 다녀요?
못 본 지 꽤 된 거 같은데
음…
아무도 못 찾을 만한 데에다가 잘 모셔 놨어요
우리 예전 얘기 하니까 생각난 건데
진짜 변태 아니에요?
- (미주) 야 - 우리 이제 말 막 놓는 건가?
- 그럴까? - (선겸) 아니
(미주) 그래
[함께 웃는다]
(미주) 가자
- 내일 바쁘니? - (태웅) 내일?
내일…
형이 어디 오라 그래서 거기 가야 되는데
음, 나도 가, 주주 총회
[태웅이 잔을 잘그락 내려놓는다] (단아) 내일
내 동생 해
[섭섭한 숨소리]
내일만? [단아의 헛웃음]
네가 내 동생이 아닌 적이 있었어?
앞으로도 쭉 계속 그렇게 해
[밝은 음악]
(태웅) 누나!
치대진 말고
[지우의 힘주는 탄성]
(은비) 짜잔!
(지우) 어머
이게 뭐야? 엄마 딸
이혼 축하해요, 육지우 여사
(은비) 우리 엄마 육지우 석 자로 제일 유명한데
어디 가서 누구 아내 하시고 누구 엄마 하시느라 고생하셨어
이제 누구 엄마도 하지 말란 거야?
언제는 했어요?
나도 이럴 때나 엄마 따라왔는데
(지우) 아유, 엄마 딸
잘 컸어, 엄만 해 준 것도 없는데
아, 해 준 게 뭘 없어
너 아기 때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케어해 주고 따라다녀 주는데
못 해 줬잖아, 내가
걔네가 다 똑같이 엄마라고 부르니까
(은비) 난 엄마는 다 같은 줄 알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엄마 덕에
이름은 같아도 역할은 다 다르다는 걸 좀 일찍 배웠네
촬영해야 되죠?
저도 가 볼게요, 이제
우리 딸은 어디로 가니?
[은비가 숨을 깊게 내뱉는다]
(은비) 이젠 진짜 하늘 좀 보고 살까 해요
여차하면 바다 좀 보고
평범하고 평화롭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문이 탁 닫힌다]
(단아)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아웃해 주시고
[포스 단말기 작동음]
미안해요
네?
그때 내가 했던 짓거리가 좀
무례했던 거 같아서
(단아) 남의 감정을 막 그렇게 묻고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커피 머신 작동음]
(단아) 좋아해요?
저거 그린 학생
좋아해요
[잔잔한 음악] 물어 준 사람이 처음이라
사실 대답하고 싶었어요, 그때
말 한마디면 되는 건데
(단아) 나 사실
결혼하기 싫어서
집에다가 가짜 커밍아웃 했어요
누군가에겐 일생일대의 굴레였을 텐데
나는 그거 핑계로 삼았어서
미안합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컵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뭐야
(영화) 우리 집에 청소기가 있었나?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영화) 네
어, 왔어?
어유, 씨, 야, 무슨…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뭐야, 뭐가 이상한데
뭐지?
뭐가 이상하지?
음…
- 술 먹었어, 또? - (예준) 아니
오늘은 맨정신
밤에 맨정신으로 온 적이 드문데
나 너희 대표님 만났다?
뭐?
(영화) 어디서? 왜?
나한테 사과하더라
너한테 사과를 왜 해
(영화) 왜 너한테만 해?
나한텐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는데
너한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
(예준) 헤어진 거 맞냐, 너?
계속 짝사랑 중이다, 왜
에이씨, 너 누구 편이야
너 내 첫사랑이야
[잔잔한 음악]
뭐야, 뭐라는 거야
다 됐다 싶어서
이게
내 짝사랑의 완성
완성되는 순간은 어떻게 알아?
- (예준) 알긴 알아? - 다 됐다 싶을 때?
내가 완성해야
끝나는 거잖아
[떨리는 숨소리]
그게 뭐가 완성이야
마주 봐야 완성이지
야, 네가 왜 우냐? 나도 안 우는데
몰라, 이 새끼야
[예준의 한숨]
난 진짜 너한테 안 되나 보다
(예준) 아유, 속 시원하다
예행연습 해 보길 잘했네
(동경) 그렇게 진행하면 될 거 같아요
- (선겸) 안녕하세요 - (동경) 어, 왔어요?
여기 제 선수 김우식 선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우식이라고 합니다
김우식 선수 말씀 많이 들었어요
- 환영합니다 - (동경) 반가워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네
[휴대전화 진동음]
(태웅) 나 오늘 1위 했다
기뻐서 울었어
팬들이 내 눈물은 진주래
갖다 팔든가
옆엔 누군데
[휴대전화 진동음] (태웅) 옆엔 나랑 같이 유닛한 루시안
리더야
도청하나?
[잔잔한 음악]
(TV 속 앵커) 오늘 치러진 행복자유당 당내 경선으로
차기 대권 후보가 가려졌습니다
유력한 후보였던 기정도 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노근성 의원에게 밀려 낙선한 가운데
경선 결과 발표 후 정계 은퇴를 시사했습니다
한편 노근성 의원은 얼마 전 제기된 불륜설에 대해
오해로 생긴 해프닝이며
자신의 불찰로 기은비 선수에게 피해를 줘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도의 한숨]
[문이 탁 열린다]
[영화가 흥얼거린다] [문이 탁 닫힌다]
[노트북 전원음] (영화) 어? 형, 노트북 샀어요?
아, 뭐야 맨날 내 거 빌려 쓰더니, 응?
아, 이젠 내 거가 필요할 거 같아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의미로 한번 사 봤어요
좋은 걸로 샀어요?
아, 기계 이런 거 잘 몰라서 그냥 최신형으로 샀어요
우아, 색감 되게 고급지다
형이랑 분위기 되게 잘 어울려요
새 출발 응원해요
나도 새 학기 응원할게요
(영화) 형, 저 드로잉 과제 때문에 그러는데
시간 되실 때 모델 좀 돼 주세요
(선겸) 시간이 없는데
(영화) 아…
전 아까 형 응원했는데
형도 저 응원한다면서요
역동적인 모델 그릴 기회가 없어서 그래요
형이 선수여서 딱인데
(선겸) 내가 운동 그만둔 지가 언젠데
그러지 말고 지금 시간 있어요?
그럼 따라와요 내가 진짜 운동 보여 줄게요
[거친 숨소리]
(선겸) 몸에 열 좀 냈어?
- (우식) 어? - (선겸) 일로 와요
- (영화) 아 - (우식) 안녕하세요
(선겸) 여기가 김우식 선수예요
이 친구 뛰는 게 진짜 운동이지
아, 안녕하세요, 이영화라고 해요
이름이 영화예요?
와, 아, 진짜 멋지세요
저 영화 진짜 좋아하거든요
- (영화) 아, 진짜요? - (우식) 네
(영화) 그런 얘기 좀 많이 들어요
이 친구가 오늘 너 뛰는 것 좀 그리고 싶대
- 화가세요? - (영화) 아유, 아니에요
아직은 학생이에요
그건…
졸업 이후가 되겠네요
저 화가랑 처음 말해 봐요
다음에 나는 대안 학교 벽화 그려 줘요
제가 왜요
내가 운동선수 소개시켜 줬잖아요 재능 기부로 갚아요
그래요, 벽이 얼마나 큰데요?
너무 크면 저 혼자 다 못 그려요
육상부 애들이랑요
(선겸) 아, 너무 운동만 하니까
다른 방향으로 좀 환기 좀 시켜 주고 싶어서 그래요
- (영화) 그래요 - (우식) 어? 어, 선배님!
- (우식) 안녕하세요 - (영일) 잘 있었어?
(선겸) 너
팀에서는 훈련 안 해?
넌 말투만 다정하냐, 맨날
- (영일) 누구시지? - (영화) 아!
안녕하세요, 이영화라고 합니다
선겸이 형 룸메이트예요
[익살스러운 음악] (영일) 얘랑 같이 산다고요?
어떻게?
잘?
아
권영일이라고 합니다
그, 얘 친구예요
형 친구라고요?
어떻게?
(영일) 아…
그만들 해요, 둘이
와…
어? 선배님 오늘 헬멧이 없네요?
차에 두고 오셨어요?
바이크 팔았어
오늘 온 거는
이것 때문에
'신랑 권영일'?
(영화) 어? 결혼하세요?
이야, 축하드립니다, 예?
(영일) 아, 감사합니다
제가 두 장밖에 안 가져와 가지고
아유, 전 괜찮아요
(우식) 드디어 하시는구나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영일) 고마워 [우식의 웃음]
(영일) 왜, 뭐
(우식) 원래 둘이 잘 싸워요
- (영화) 아, 그래요? - 어,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
[영화와 우식이 대화한다]
10년 만났어
10년
[영일의 한숨]
(예찬) 오늘 엄마 그냥 진짜 캠핑 온 걸까?
(예준) 너 수능 때문에 계속 못 왔던 거니까
(예찬) 둘이는 몇 번 왔었는데 오늘은 네가 있으니까 그러지
(예준) 어, 나 없이
[다가오는 발걸음]
(동경) 고예찬 성인 됐으니까 와인 한잔해
(예찬) 와! 나 술 처음 먹어 봐
예준이가 동생 한 잔 줘
(동경) 네가 여덟 살 때인가?
나한테 그러더라
'엄마는 나 낳은 거 후회해?'
난 기억 안 나는데
(예준) 대답은 뭐였는데?
못 했어
(동경) 스물한 살 때 너 처음 가졌을 때
후회한 순간을 들킨 거 같아서
그 죄책감을 모성애로 치환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됐네, 그마저도
[잔잔한 음악]
(예준) 엄마가 죄책감을 왜 가져
남의 자식 신경 쓰느라
내가 네 옆에 못 있어 줘서
(동경) 내가
너무 빨리 이혼을 해서
그냥
사람은 다 다르잖아
그렇지
(예준)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잖아
(동경) 그렇지
다 컸네, 고예준
(큐레이터) 전시 기간은 2주가량 될 거 같아요
(영화) 네
(큐레이터) 느낌은 오는데
정확히 뭐예요?
(선겸)
[노크 소리가 들린다]
- (미주) 기선겸 씨, 나 왔어요 - 네
얼른 와서 몸 좀 녹여요
[밝은 음악] (선겸) 아이고, 왜 그래, 또, 갑자기
- (선겸) 무슨 일 있어요? - 응, 나 진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응?
나 전에 그
한국 단편 영화 자막 작업 했던 거 얘기한 적 있잖아요
어, 그 영화, 그, 오미주 씨가 엄청 좋다고 했던 그 영화?
응, 근데 그게 국내에선 반응이 별로였는데
해외에서 반응이 좋대요
(미주) 감독님이 지금
영화제 초청돼 가지고
외국 나가 계시거든요? 이거 봐 봐요
(선겸) 어?
'오미주'
'당신도 오늘 여기 함께 왔다'?
(미주) 나 진짜 이런 거는 처음 받아 봐요
나 앞으로도 작든 크든
진짜 열심히 해 보려고요
내가 또 하면 완전 잘하잖아요, 그렇죠?
(선겸) 아유, 그럼요, 완전 잘하죠
이 영화의 메시지가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
(미주)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나 이제 알겠어요
오미주 씨가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 이제 와서? - (선겸) 응
아, 맞는다 나 온 김에 할 일 있는데
일기장 좀 갖고 와 봐요
(선겸) 일기는 혼자 써서 혼자 보는 거라면서요
안 볼게요, 안 볼게 갖고 와 봐요, 빨리
(선겸) 이거기는 한데…
[미주의 웃음]
(미주) 안 볼게요, 진짜
맹세, 안 봐요
걱정을 하고 그래
진짜 안 볼 거예요
[미주의 헛기침]
(미주) 자
(선겸) '참 잘했어요'? 이게 뭐예요?
- 참 잘했어요 - (선겸) 응
(미주) 도장 찍은 거예요, 이렇게
- (선겸) 어 - 선생님들이 일기 검사할 때
이렇게 보통 해 주지 않나?
아휴, 나 또 애예요?
참 잘했어요, 기선겸 어린이
(미주) 역시 '참 잘했어요'는 어린이죠, 그렇죠?
- (선겸) 맞아요 - 뿌듯하죠?
(선겸) 아이, 뿌듯해
[흥미진진한 음악]
축하드립니다, 부사장님
'최연소' 붙여 주세요
비현실적이라 더 짜릿하니까
우리가 해냈어요, 실장님
그 판타지 같은 일을
우리라서 해낸 거죠
그건 그러네
이번 신인 작가전 퀄리티 정말 괜찮아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에 들어서 뭐 해요
전시 보러 오시는 분들 마음에 들어야지
(단아) 아, 일 보세요
시간 뺏으러 온 거 아니니까
(큐레이터) 네
[감성적인 음악]
나도
나도 보고 싶어
[부드러운 음악]
잘 어울리네요
둘 다
네가 뒤에 있으니까
(영화) 오늘은 없어요?
그림 감상평
(단아)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그려요?
대체 뭘 먹고 뭘 보면
학생 안이 어떻게 돼 있으면 그림을 그따위로 그리나 싶던데
(영화) 음…
밥버거 많이 먹어요
그리고 전시나 영화도 많이 보고요
그리고 제 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들어갔다 나와 본 게 아니라서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진 몰라도 그림엔 아주 시꺼멓던데, 끈적거리고
(단아) 내가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까
아주 반짝이더라
오늘로 하자
내 진짜 생일
생일 축하해요
대표님
(미주) 우리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선겸) 아, 우리 좀 뛰다가 쉬어요
(미주) 아, 여기서, 여기서 쉴 건데
[미주의 거친 신음] (선겸) 우리 이제 뛰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 못 하겠죠?
응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호응한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서로 다른 세계를 나란히 둬도 되지 않을까? 그렇죠?
(미주)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이해 못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맙시다
그건 불가해한 일이고
우리는 우리여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면 되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던가요?
지금인 것 같아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사랑해요
[부드러운 음악]
(선겸) 쉬는 시간 끝
(미주) 뭐야
뭐야, 사랑한다면서요
좀 있다가 내 영화 보러 갈래요?
그럼 영화 보는 나를 봐요
나는 좋아하잖아
(선겸) [웃으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 안 해도 이젠 알아요
사랑하니까
(미주) 아, 이럴 땐 뭐 아무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진짜 해피 엔딩 같았는데 왜 흥을 깨
(미주) 해피 엔딩이 대체 뭔데, 응?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막 온갖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 봐, 어?
(선겸) 그게 뭔데요?
(미주) 음악 시간에 필수로 틀어 주는 거 있잖아요, 음악 영화
(영화) 저 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는데
요즘에는 '라라랜드' 틀어 주겠죠?
(미주) 내가 진짜 온갖 콘텐츠를 다 보고 사는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그 해피 엔딩이라는 게 결국에는
문명이 만들어 낸 환상이고 허상이야
[영화의 탄식] 애초에 존재를 안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
(영화) 그건 너무 염세적이다
(미주) 아유…
(단아) 애초에 정의가 뭔데?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다 갑니다?
(미주) 음…
[선겸이 캔 맥주를 쉭 딴다] 그래, 뭐, 혼자 태어나서 혼자 가는 세상
뭐, 죽을 때까지 함께라 쳐요
근데 결국 죽는 그 순간부턴 이별인 거잖아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 자체가 허상인 거야
(영화) 아니, 죽어서도 천국에서 만날 수도 있죠
(미주) 죽어서 만날 수 있는 건 키아누 리브스밖에 없어요
그게 누군데요?
- 존 윅요, 존 윅 - (선겸) 존 윅?
(선겸) 존 윅은…
음, 천국 못 갈 거 같은데 킬러잖아요
[헛웃음]
애초에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
근데 천국 가는 키아누 리브스는 '콘스탄틴' 아닌가?
[놀라며] 어, 맞네? 내가 순간 헷갈렸나 보다, 맞네
응? 근데 존 윅이 킬러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 (선겸) 검색해 봤어요 - (미주) 아, 검색해 봤어요?
(영화) 저는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토끼 같은 자식 낳고 잘 살면
그게 해피라고 봐요
네가 토끼를 왜 낳아
과학이 발전하면 제가 낳을 수도 있죠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오래 살아, 학생 토끼 낳을 수 있을 때까지
대표님은요?
해피 엔딩 기준 뭐예요? 저랑 같으면 안 돼요?
우리 영원히 사랑할 건데
난 결혼 싫어서 집에다가 가짜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이런 의미 없는 대화에 시간 쓰는 거 아깝지 않아요?
술이나 마십시다
그러니까, 나도 영화에는 너무 문외한이라서
- (선겸) 우리 건배라도 할까요? - (영화) 좋아요
건배도 뭐, 위할 게 있어야 하지
뭘 위하지?
(미주) 아, 나 이번에 완주한 거, 응?
그거 위해서 건배합시다
(영화) 어,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 (미주) 그렇지, 그렇지? - (영화) 네, 네
- (미주) 자, 완주를 - (영화) 완주를
- (미주) 좀 같이 좀 하죠? - (영화) 아, 대표님
(단아) 어떻게 위하는 건데
- (미주) 그냥 부딪치기만 하면 돼요 - (선겸) 이렇게
(미주) 하나, 둘, 셋
- (미주) 완주를 위하여! - (영화) 완주를 위하여!
[밝은 음악]
[청소기 작동음]
[지우의 놀란 신음]
(지우) [작은 소리로] 어서 와
[지우의 한숨]
[발랄한 음악]
(영화) [작은 소리로] 형, 누나
.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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