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 16
 (미주)  갑자기 나한테 밥을 왜 해 먹여요?
 (선겸)  오미주 씨 잘 때도 많이 했는데
 한 번을 같이 못 먹었네요?
 음, 그땐 그랬었지
 기선겸 씨는 해 떠 있을 때가 낮인데
 난 달 떠 있을 때가 낮이라서
 오, 그래도 우리 이제  밤낮이 같아졌어요
 고마워요
 뭐가요? 존재 자체가?
 어, 그것도 그렇고
 우리 누나요
 (선겸)  우리 누나 얘기 들어 주고  어루만져 줘서
 그거는 내가 못 하는 거거든요
 (미주)  [헛기침하며]  못 하시는구나, 음
 먹어 볼게요
 [미주가 입바람을 후후 분다]
 응? 음, 맛있는데?
 [미주의 놀란 신음]
 뭐지? 이거 거의  리비에라에서 먹었던 클래스인데?
 맛집이에요?
 으음, 나 원래
 작업 하나 마치면  여행 가고 싶어지거든요?
 씁, 언제였더라?
 그, 내가 작업하던 영화 배경지가
 이탈리아 휴양지였어요
 (미주)  사용 언어는 영어였고
 근데 그 작업 하는 내내
 마치 내가 거기 사는  외국인인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도시 자체도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뭐  결국 페이 몽땅 털어 가지고
 여행 갔지, 뭐
 거기 사는 외국인 기분 내러
 - 음, 혼자요?  - (미주) 응
 (미주)  나 원래 혼자 잘 다니거든요
 핸드폰으로 지도도 안 보고
 그냥 이정표만 보면서 따라다니는
 그런 자발적으로  혼자인 시간이 좋아 가지고
 (선겸)  얘기 더 해 줘요
 더 듣고 싶어요
 (미주)  음…
 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웬 독일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기내 자막이 꽤 괜찮았던 거 같고
 응, 꽤 괜찮았고
 뭐, 식당을 가도 그렇고  카페를 가도 그렇고
 (미주)  다 외국인들뿐이니까
 내가 웬만한 영어는 다 들리거든요?
 근데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영어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답답했어요?
 아니요
 그 외국어의  정확하게 닿지 않는 지점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저는
 딱 필요한 말만 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말 안 해도 되고
 예를 들면요?
 뭐,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이거 얼마예요'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거?
 말하다 보니까 다시 가고 싶네
 언제 다시 갈 건데요?
 글쎄요
 다음엔 나랑 같이 가요
 (선겸)  아, 나도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같이 가게 해 준다, 내가
 (미주)  같이 가요, 갑시다
 짐 싸요
 어? 지금요? 아…
 나 내일 출근해야 돼서
 아유, 아쉽지만 같이 못 가겠네요
 [미주의 웃음]
 (미주)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잖아요
 누가 지금 당장 같이 가재?
 (선겸)  음, 아쉽다
 [심전도계 비프음]
 [명민이 훌쩍인다]
 [명민이 흐느낀다]
 (태웅)  누나
 [단아의 거친 숨소리]  [문이 쓱 닫힌다]
 우리 단아도 왔구나
 [헛웃음]
 (단아)  회장님이 잘 숨기신 덕분에  이제야 왔네요, 제가
 저 패륜아 만드시게요, 진짜?
 너처럼 예쁜 패륜아가 어디 있어
 (명필)  그래도
 다들 보니
 좋구나
 [단아의 한숨]
 [명필의 한숨]
 사랑했다
 어쩌라는 거예요
 그랬다고
 [잔잔한 음악]  [피식 웃는다]
 좀 주무세요
 아버지
 [심전도계 경고음]
 [심전도계 정지음]
 [엘리베이터 조작음]  야, 서명민
 나중에, 나 바빠
 눈 감으신 지 5분도 안 지났어
 애도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버지 생전에 효도한 건 나야
 [단아의 헛웃음]  (명민)  네가 아니고
 그래
 알겠으니까
 품위 지키라고, 아버지한테
 넌 여유 있나 보다?
 (명민)  그래, 너는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살아
 [엘리베이터 도착음]  어차피 승진은 내가 할 거니까
 [통화 연결음]
 어, 차 대기시켜 놨지?
 어
 [무거운 음악]
 [영화의 한숨]
 성에 사는 사람이었지, 참
 [코를 드르릉 곤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현진)  의원님, 급한 일입니다
 (정도)  아
 아휴…
 -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  - (현진) 대외비입니다만
 서명필 회장 임종했답니다
 [어두운 음악]
 뭐?
 뭐라고?
 [헛웃음]
 결혼은 어떡하고
 (정도)  육 배우는
 스케줄 맞춰 봤어?
 조만간 휴차가 이틀 있는데  미국 간답니다
 (현진)  할리우드 영화 최종 미팅인데  거의 픽스 단계랍니다
 아, 그리고
 기 프로 스캔들 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결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노근성이 지지율이라도  계속 깎아내려야지, 둬
 두라니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리하기로  은비랑 약속하신 거 아닙니까
 아유! 쓸모없는 새끼
 아들이라고 낳아 주고  키워 주고 그랬더니
 쓸데라고는 없고
 - 의원님  - (정도) 야!
 너는 대체 언제 쓸모 있어질 거야
 (정도)  나하고 계속 같이 가려면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꺼! 쯧
 - (단아) 오랜만이네  - (영화) 싫어요
 뭐가
 - 뭐든  - (단아) 무슨 일이었는진
 - 안 물어봐?  - (영화) 물으면
 - 말해 주긴 할 거고?  - (단아) 응
 회장님 돌아가셨어  장례는 아직이고
 [잔잔한 음악]  [한숨]
 (영화)  괜찮아요?
 애도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과정 준비하느라 바빠서
 모르겠네
 그런 건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
 (단아)  어떨 때 보면
 꼭 얼른 돌아가시길  기다리는 사람 같을 때가 많았어
 패륜아처럼
 근데 그건 회장님…
 아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셨어
 (단아)  회장님으로 부른 날이 더 많았고
 거의 그 이름으로만 받아들여졌으니까
 회장님 이렇게 되시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르겠구나'
 창창한 이영화가
 자기 시간 알차게 썼으면 좋겠는데
 그게 나는 아닌 거 같고
 그래서요
 어차피 결말
 정해져 있는 거 알고 만났잖아
 결말이 어떻게 될지 내가 어떻게 알아
 - (영화) 나 봐야 알지  - 네 해피 엔딩 못 해 준단 소리야
 (단아)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더 위로 올라가야 해서
 [떨리는 숨소리]
 나 집에 갈래
 나 따라오지 마요
 나 따라오면
 나 진짜 죽어 버릴 거예요
 나한테 협박을 한다  너를 담보로?
 협박이 될 걸 아니까
 [잔잔한 음악]  [헛웃음]
 그건 그러네
 (단아)  미안해
 내가 네 세계로 들어가면 됐는데
 너를 내 세계로 끌어들여서
 너는 결승선을 향해 가는데
 나는 반환점을 향해 가서
 미안해
 [영화의 옅은 숨소리]
 안 자고 뭐 해요
 아까워서
 (단아)  잡아 두려고, 시간
 대표님이
 미안하기로 결정했으면
 난 최대한 미뤄 볼 거야
 미뤄 보려고
 [한숨]
 [현진의 한숨]
 (현진)  요샌 여기서 지내는 거야?
 (선겸)  네, 호텔보다 편해요
 보좌관님은요?
 그냥 어렸을 때처럼 불러  아저씨라고
 사표 냈거든
 사표를 냈다고요?
 아버지 지금 경선 한창이실 텐데
 똥 묻은 개로 오래 살아서 그런가
 (현진)  원래 그랬었는지
 똥통에 빠진 건지 헷갈리더라
 요즘엔 특히나
 [한숨]
 은비 스캔들
 의원님이 터뜨리신 거야
 노근성 의원 깎아내리고
 그걸 아름답게 수습해서
 이미지 챙기는 것까지가 목적이고
 은비 일 안 덮고 두시길래
 좀 캐 봤더니 그렇더라
 근데 그걸 굳이 저한테  말씀해 주시는 이유가…
 나는
 너랑 은비 참 예뻐했거든
 (현진)  너희 위해서 한 말들이 많았는데
 상처였다면 미안했다
 너무 눈이 멀었어, 내가  의원님한테
 [한숨]
 아저씨 처음 봤을 때 생각나네요
 처음 만났을 때?
 (현진)  지금보다 젊고 잘생겼었나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선겸)  그게 참 멋졌거든요  어린 마음에, 저한테는
 [현진의 한숨]
 말씀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가실 길도 응원할게요
 (현진)  두 분…
 이혼 얘기 나오는 건 알고 있니?
 [어두운 음악]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못 하겠냐
 이혼 아마 안 될 거야
 의원님이
 육 배우 관련해서  준비해 둔 게 없을 리 없잖아
 간다
 [선겸의 한숨]
 [한숨]
 [통화 연결음]
 어, 통화 가능해요?
 아, 집이에요?
 배고파서요
 최선은 다해 봤는데
 맛은 장담 못 하겠네요
 - (선겸) 잘 먹겠습니다  - (미주) 네
 어때요?
 [미주의 한숨]
 아니, 레시피대로 음식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야
 그러면 그 레시피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음식을 하는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요, 아니요, 맛있기만 한데요?  되게 맛있는데
 (미주)  헐
 상냥해
 딴 반찬들도 먹어요
 네
 (선겸)  근데
 나 위로해 주는 거예요?
 내가 왜 위로를 해 줘요?
 내가 지금 위로받고 있는데
 왜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선겸)  우리 누나요
 우리 누나는
 나보다 훨씬 더  아버지한테 사랑도 받고
 또 그만큼 정신적 학대도  많이 받았어요
 근데 아버지는 그것도 다  사랑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받고 자랐는지  모를 때가 더 많았거든요
 [숨을 들이켠다]
 내가 오늘
 누나에 관해서
 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는데
 누나가 그걸 모른 채 있으면  바보 되는 기분이라서
 내가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근데 그걸 말하면 상처받을 거고
 그 상처 바라보기도 어려울 거 같고
 기선겸 씨는, 음
 원래 생각한 건 바로 행동하고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죠
 근데 이번엔 왜 망설였어요?
 (미주)  왜 여기 있을까?
 본인도 상처받았기 때문이죠
 그 불편한 사실에
 [잔잔한 음악]
 [한숨]
 몰랐네
 아직도 모르는 거 너무 많네
 누나가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우리끼리 이렇게 추측하지 말고
 음, 그냥 말을
 마음을 잘 전달해 봐요
 누나가 상처받으시면  이렇게 안아 드리고
 그런 게 가족 아닌가?
 그런 게 가족이구나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선겸)  고마워요
 [선겸의 한숨]
 (은비)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
 네가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돌아 버린 거라고 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내가…
 이걸 알아서 뭐가 달라져?
 (은비)  세상에 널리 알려?
 막 사실을 밝히기라도 해?
 그것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한숨]
 밝힌다 쳐
 아버지 인생은?
 그럼 그런 식으로 자식 이용한  아버지 인생은?
 그리고 누나 인생은?  그 묻은 얼룩은?
 라이언이 내 말 믿어 줬어
 (은비)  난 그거면 돼
 나머지는…
 시간 지나면 묻히겠지
 누나가 왜 그래야 되는데
 가족이잖아, 우리
 지금 가족이라 그랬다, 누나 입으로
 그게 뭐
 (선겸)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가족인데
 내가 이 방법까진 안 쓰려 그랬는데
 (은비)  어쩌게
 엄마한테 이르게
 (은비)  와, 너무 예상 밖인데 신박하다
 근데 너무 애새끼 같지 않니?
 애새끼일 때 못 해 봤으니까  지금이라도 해 보려고
 보통 아빠가 잘못하면  엄마한테 이르고 그러는 거래
 [은비의 웃음]
 (은비)  너 친구 많이 생겼나 보다?  [통화 연결음]
 네, 엄마, 바쁘세요?
 [무거운 음악]
 [한숨]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매니저)  누나, 공항 패션 이 중에 고르실게요
 이야, 영어 공부 해 두길 잘했네요
 - (매니저) 할리우드라니  - 나 미국 못 가겠다
 (매니저)  예? 오늘 출국인데
 스케줄 제가 공지 안 해 드렸나?
 누나 저번에 영상 오디션 보신 거  최종 미팅이라…
 그러니까
 - 나 오늘 못 가겠다고  - (매니저) 아, 누나, 누나, 누나
 왜 이런 장난을 쳐요, 안 웃겨요
 웃기려고 한 거 아닌데?
 (매니저)  이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에요
 저 대표님한테 죽어요, 누나
 한 대표가 너 죽이기 전에  내가 걔 처리해 줄게
 (지우)  현기야, 누나 믿지?
 지금은 못 믿겠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갑자기!
 할리우드 진출?
 그거 앞으로도 할 수 있어  내가 연기하는 한
 근데 내 자식이 상처받는 건
 [한숨]
 내가 애들 내팽개치고  얻은 영광이 몇 개인데
 내일 할게, 배우
 아니, 누나, 누나!
 김현진이 이 새끼 전화도 안 받고
 [헛웃음]
 사직서만 내면 다야?
 (정도)  어?
 당신 오늘 출국…  [문이 탁 닫힌다]
 [지우의 힘주는 신음]  [정도의 신음]
 [긴장되는 음악]  (지우)  야, 기정도
 너 아주 갈 데까지 갔구나?
 어떻게 애들 갖다가
 네 부성애를 전시해?
 [당황한 숨소리]
 [한숨]
 장인어른도 아셔?
 [어이없는 숨소리]
 난 적어도
 네가 날 사랑해서 결혼한 줄 알았어
 (지우)  근데 여기서 걱정되는 게
 처갓집 돈줄 끊기는 거네?
 애들은 내가 데려갈 테니까
 불만 있으면 소송 걸어
 위자료 세게 받아 줄게
 (정도)  육지우
 너 지금
 네 멋대로 이혼을 지껄여?
 난 왜 이혼을 내 마음대로  못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내 인생인데
 지우야, 왜 그래
 (정도)  오빠가 잘못했어
 정도 오빠, 경선 준비
 혼자서 잘해 보시고
 (지우)  질척거리면 나도 확
 우리 아빠한테 이른다? 어?
 [문이 탁 열린다]  [성난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아이씨!  [수화기를 쾅 내리친다]
 다 자기 멋대로야! 씨
 [함께 감탄한다]
 너무 맛있겠다, 웬일이야
 우리 이거 좀만 더 익으면  김치찌개 해 먹자
 (매이)  엄마도 참…
 김장 좀 그만하라니까
 이렇게 매번 김치를
 (미주)  언니네 가족은 참 화목한 거 같은데
 (매이)  화목하지, 화목은 한데
 - 소통이 잘 안돼  - (미주) 응?
 - 내 이름 봐라  - (미주) 맞네
 아니, 언니네 어머니가 매희라고 한 걸
 아버지가 매이로 알아듣고  출생 신고 하신 거잖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도 계속 헷갈렸잖아
 엄마는 '매희야', 아빠는 '매이야'
 내가 매희인지 매이인지
 환장하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매이를 매희라 부르지 않아도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가 따로 없네, 아주?
 사랑해, 여보
 원래 가족은 모이면 싸우고
 흩어지면 애틋하더라
 그냥 언니네 가족이  애틋하고 화목한 거지, 뭐
 (미주)  나는 내 인생에  나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닐 때가 더 많은 거 같아
 언니가 내 가족은 아니지만
 꼭 호적에 나란히 올라야 가족이냐?
 (매이)  같은 피 섞여야 가족이야?
 우리 엄마는 계속 너  막내딸이라고 하던데
 이 불효막심한
 맞네
 우리 여보를 낳아 주신 분한테 내가
 불효를 저질렀네
 우리 어머니 뵈러 언제 가지?
 그러게, 안 간 지 꽤 됐네
 언니, 우리 내년에는, 어?
 이 동네 자취인들 모아 가지고  김장 한번 크게 할까?
 - (매이) 오…  - 어머니 좀 보내 드리고?
 [매이의 놀란 신음]
 너나 많이 해
 난 원래 사 먹는 주의야
 하자, 하자, 어? 어? 어?
 [잔잔한 음악]
 [건타카 작동음]
 [작동음]
 [건타카 작동음]
 [째깍거리는 효과음]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탁 닫힌다]
 (지현)  [헛기침하며]  대표님
 (단아)  네
 회의 시간 아직이지 않나?
 이영화 씨 왔습니다
 - 들어오라고 해요  - (지현) 네
 [문이 탁 닫힌다]
 (단아)  죽어 버린다더니
 네 발로 찾아왔다?
 대표님 시간 뺏기 싫어서
 (영화)  대표님한텐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
 나한텐 대표님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런 대표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내가 마음을 빨리 정리하는 거더라고
 안 받아요?
 대표님 그림
 (단아)  이걸 이렇게 받네
 나한테 주기 전까진 네 거라며
 그거 네 마음이잖아
 내 마음은 이미
 마음대로 다 가져가 놓고
 (단아)  어떻게
 돌려줄까?
 계속 갖고 있어요
 대표님 안에서 다 없어질 때까지
 잘 갖고 있다가
 분리수거만 잘해 줘요
 그거 중요하다면서
 [슬픈 음악]
 하…
 너 진짜…
 [단아가 훌쩍인다]
 [흐느낀다]
 나는요
 아직도 똑같아요
 (영화)  대표님이 무슨 짓을 해도
 싫어지지가 않고
 계속 좋아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것도 내 자유잖아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또?
 아니
 (단아)  너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오래 살아요
 아프지 말고
 나의 첫사랑
 대답해야죠
 (영화)  응?
 오래 살게
 안 아플게
 "단 에이전시"
 [청소기 작동음]
 어, 왔어요?
 [청소기 작동이 뚝 멈춘다]
 선겸이 형
 형
 [잔잔한 음악]  (단아)  영화야
 목표는 내가 이뤄 줬고
 넌 꿈이 뭐니?
 대표님이랑 안 헤어지는 거
 (영화)  난 그 꿈 이뤄 보려고
 형
 [흐느낀다]
 안 이뤄지는 거 맞았어
 (영화)  안 이뤄지는 거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텐더)  아, 갈아 줄게요, 얼음 다 녹았네
 [단아의 한숨]
 아유, 땅 꺼지겠어요, 아까부터
 무슨 일인데
 일은 늘 있죠
 일이 늘 많아서
 [바텐더가 얼음을 잘그락거린다]
 걔를 포기했네
 그때 그, 관심 주던 사람?
 내가 관심을 꽤 일찍부터 줬나 보네?
 (단아)  이제 안 주려고요
 (바텐더)  누구나 자신만 열어 보고 싶은  보석함이 있대요
 뭐, 그 안에 담긴 게  꼭 보석이란 얘긴 아니고
 음, 바닷가에서 주운  씨 글라스일 수도 있고
 조개껍질일 수도
 아, 누군가의 교복 단추일 수도 있지
 추억을 간직하는 거니까
 자, 나만이 열어 볼 수 있는  보석함 속의
 반짝이는 추억이 되는 거
 그 시절을
 앞으로 영원히 없을 순간을
 소장하게 되는
 그런 거죠
 보석함에 넣기엔 애가 크긴 하던데
 보석함을
 크게 만들면 되지
 [함께 웃는다]
 (단아)  그건 그러네
 사장님은 뭐 넣어 놨어요?
 (바텐더)  난 보석함 작은 거
 처음에 샀던 집 열쇠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다가오는 발걸음]
 - 아, 어서 오세요  - (미주) 안녕하세요
 (미주)  아니, 왜 안 찾아와서  내가 찾아오게 만들어요?
 뭐, 왜 찾아오는데?
 실장님이 부탁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친한 줄 아나 봐
 무슨 일 있어요?
 (미주)  아, 대답하지 마요, 안 궁금하니까
 나 술 마시러 왔으니까
 여기 보드카 마티니 한 잔만 주세요
 젓지 말고 흔들어서
 이름이 어떻게 되죠?
 본드, 제임스 본드  [입바람을 후 분다]
 (단아)  아, 느끼해
 (미주)  아
 (바텐더)  빈 잔 치워 드릴까요?
 아, 아니요, 아니요  제가 소주 마실 때도
 병을 잘 안 치우는 편이라
 아, 그런 장르
 배려하겠습니다
 음…
 (단아)  나…
 알고 있었어요
 [잔잔한 음악]
 알면서 계속 만났어
 그랬으면서
 나는 또 걔가 끝내지 않길 바랐어
 내가 선 그어도
 계속 쫓아오길 바란 거지
 내가 어디에 있든 볼 수 있게
 영화 씨가 무슨 천리안도 아니고
 [단아가 피식 웃는다]
 나 이 엔딩 잘 알거든요
 좋아했던 건
 다 미련으로 남았으니까
 (미주)  미련 남기기 싫어서라도  안 좋아할 뻔했겠네
 그러려고 했죠
 근데 마음이
 마음대로 잘 안됐네, 내가
 [한숨]
 (미주)  아…
 여기 이거 술 대표님이 사는 거죠?
 메뉴 보니까 전반적으로 좀 비싸던데
 내가 재벌인데 얻어먹을까, 설마  서민한테
 오늘은 서민 소리가 나쁘진 않네
 (단아)  나도 서민 하고 싶다
 (미주)  음, 바꿀래요?
 (단아)  아니요  [미주가 풋 웃는다]
 (영화)  대학생 한 장요
 (직원)  학생 할인 필요하세요?
 아, 네, 잠시만요
 아, 맞는다, 잃어버렸지
 (영화)  다녀왔습니다, 형
 형, 뭐 해요?
 (선겸)  음
 (영화)  뭐예요, 이게?
 (선겸)  선물
 (영화)  선물?
 갑자기?
 헐
 - (영화) 형  - 부탄가스도 넉넉하게 사서
 저 안에 넣어 놨어요
 (영화)  형, 저요
 전시 보러 갔는데
 학생증이 없어서 할인 못 받았어요
 그래서 안 봤어요
 나는요
 아프면 아픈 대로 둘 거예요
 안 아파지면
 그때 안 아파하면 되니까
 [잔잔한 음악]
 이게 피상적으론  새드 엔딩일 수 있겠지만
 전 대표님을 만난 덕에
 앞으로 다가올 감정들을  배우고 성장하겠죠?
 그래서 대표님이 학생이라고 불렀나 봐
 좀 배우라고
 기초 공사를 하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대표님이랑 미래를 꿈꿀 수는 없어도
 대표님이 없었으면  다가올 관계들을 미성숙하게 해냈을
 뭐, 그런 거
 언젠가는 뭐
 '그 사람이 누구였지?' 하고  희미해질 수 있겠지만
 괜찮아요
 (영화)  여기에 다 남아 있으니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감독)  암만 출품을 해도
 영화제 측에서 초청을 안 해 줘서  못 가 봤었는데
 번역을 잘해 주신 거 같습니다
 덕분에 초청받아서 저
 두바이 영화제에 갑니다  [미주의 놀란 신음]
 (미주)  어머머, 웬일이야, 너무 잘됐다
 와, 진짜…
 와, 너무 축하드려요
 아, 내가 자막을 여러 번  수정한 보람이 있네
 여러 번 수정…
 그렇죠, 제가 진짜  더럽게 많이 괴롭혔죠
 영어도 쥐뿔도 모르면서
 아유, 뭐, 감독님 입장에서는
 직접 쓰신 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거니까 이해해요
 덕분에 번역가님도 저 많이 괴롭혔죠
 (감독)  나 진짜 아차 싶더라
 내가 버튼 누른 거 같아서  [함께 웃는다]
 하, 참, 여전히 말씀을 참  아름답게 하시네요
 하, 저한테 진짜 화도 많이 내셨는데
 참 엊그제 같은데
 번역 구하신다고 커뮤니티에 올라온 거  콘택트했을 때
 하, 불리하시면 꼭 그렇게  말 돌리시곤 하셨는데
 그때도 잡과 잡 사이에서  우연히 본 거였는데
 참 어쩐지 끌리더라고요
 영화는 착한데  넌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많이 하시고
 아유, 진짜
 (미주)  아니, 지금 다 지난 일이라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아, 좀
 번역가님이 인볼브해 주신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이제 와서요?
 뭐, 이제라도  포장에 일조해 보자는 거죠
 아름답게
 [함께 웃는다]
 (미주)  아, 진짜
 아유, 잘됐네요
 (감독)  고마워요, 진짜
 뭐야?
 왜 이렇게 근사하게 하고 왔어요?
 나 취직했어요, 에이전트로
 (미주)  어머! 어떡해, 아유, 너무 잘됐다  [밝은 음악]
 아유, 축하해요  어떡해, 기특해서, 어?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다 사 줄게요
 뭐 갖고 싶은 것도 있나?
 저기 저 하늘의 저거 별 갖고 싶어요?
 말만 해요, 다 따 주려니까
 괜찮아요, 안 필요해요
 다행이다
 별은 못 따 줘요, 어차피
 밥은 내가 사고 싶어요  나 취직했으니까
 - 배고플 때 탕?  - (선겸) 배고프니까
 날 추우니까 감자탕
 (미주)  아…
 참 이젠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다 말하고
 아유, 기특해, 아유, 다 컸어, 아이고
 (선겸)  또 애 취급, 나도 해야지
 오, 다 컸어
 그럼 졸업을 하시든가요, 예?
 헐!
 (미주)  우리 이제 말 완전 잘 통하지 않아요?
 웬일이야, 진짜?
 (미주)  직업이 뭔데요
 뭐, 존 윅이세요?
 그게 뭔데요?
 - 아, 몰라요?  - (선겸) 몰라요
 아, 예
 근데 그게 왜 변태예요?
 - 제가요?  - (미주) 아니…
 제가요
 - 변태예요?  - (미주) 아니…
 와, 진짜 그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원래도 말 잘 통했는데
 그동안 누구랑 잘 통한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총은 요즘 안 들고 다녀요?
 못 본 지 꽤 된 거 같은데
 음…
 아무도 못 찾을 만한 데에다가  잘 모셔 놨어요
 우리 예전 얘기 하니까 생각난 건데
 진짜 변태 아니에요?
 - (미주) 야  - 우리 이제 말 막 놓는 건가?
 - 그럴까?  - (선겸) 아니
 (미주)  그래
 [함께 웃는다]
 (미주)  가자
 - 내일 바쁘니?  - (태웅) 내일?
 내일…
 형이 어디 오라 그래서  거기 가야 되는데
 음, 나도 가, 주주 총회
 [태웅이 잔을 잘그락 내려놓는다]  (단아)  내일
 내 동생 해
 [섭섭한 숨소리]
 내일만?  [단아의 헛웃음]
 네가 내 동생이 아닌 적이 있었어?
 앞으로도 쭉 계속 그렇게 해
 [밝은 음악]
 (태웅)  누나!
 치대진 말고
 [지우의 힘주는 탄성]
 (은비)  짜잔!
 (지우)  어머
 이게 뭐야? 엄마 딸
 이혼 축하해요, 육지우 여사
 (은비)  우리 엄마 육지우 석 자로  제일 유명한데
 어디 가서 누구 아내 하시고  누구 엄마 하시느라 고생하셨어
 이제 누구 엄마도 하지 말란 거야?
 언제는 했어요?
 나도 이럴 때나 엄마 따라왔는데
 (지우)  아유, 엄마 딸
 잘 컸어, 엄만 해 준 것도 없는데
 아, 해 준 게 뭘 없어
 너 아기 때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케어해 주고  따라다녀 주는데
 못 해 줬잖아, 내가
 걔네가 다 똑같이 엄마라고 부르니까
 (은비)  난 엄마는 다 같은 줄 알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엄마 덕에
 이름은 같아도 역할은 다 다르다는 걸  좀 일찍 배웠네
 촬영해야 되죠?
 저도 가 볼게요, 이제
 우리 딸은 어디로 가니?
 [은비가 숨을 깊게 내뱉는다]
 (은비)  이젠 진짜 하늘 좀 보고 살까 해요
 여차하면 바다 좀 보고
 평범하고 평화롭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문이 탁 닫힌다]
 (단아)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아웃해 주시고
 [포스 단말기 작동음]
 미안해요
 네?
 그때 내가 했던 짓거리가 좀
 무례했던 거 같아서
 (단아)  남의 감정을 막 그렇게  묻고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커피 머신 작동음]
 (단아)  좋아해요?
 저거 그린 학생
 좋아해요
 [잔잔한 음악]  물어 준 사람이 처음이라
 사실 대답하고 싶었어요, 그때
 말 한마디면 되는 건데
 (단아)  나 사실
 결혼하기 싫어서
 집에다가 가짜 커밍아웃 했어요
 누군가에겐 일생일대의 굴레였을 텐데
 나는 그거 핑계로 삼았어서
 미안합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컵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뭐야
 (영화)  우리 집에 청소기가 있었나?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영화)  네
 어, 왔어?
 어유, 씨, 야, 무슨…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뭐야, 뭐가 이상한데
 뭐지?
 뭐가 이상하지?
 음…
 - 술 먹었어, 또?  - (예준) 아니
 오늘은 맨정신
 밤에 맨정신으로 온 적이 드문데
 나 너희 대표님 만났다?
 뭐?
 (영화)  어디서? 왜?
 나한테 사과하더라
 너한테 사과를 왜 해
 (영화)  왜 너한테만 해?
 나한텐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는데
 너한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
 (예준)  헤어진 거 맞냐, 너?
 계속 짝사랑 중이다, 왜
 에이씨, 너 누구 편이야
 너 내 첫사랑이야
 [잔잔한 음악]
 뭐야, 뭐라는 거야
 다 됐다 싶어서
 이게
 내 짝사랑의 완성
 완성되는 순간은 어떻게 알아?
 - (예준) 알긴 알아?  - 다 됐다 싶을 때?
 내가 완성해야
 끝나는 거잖아
 [떨리는 숨소리]
 그게 뭐가 완성이야
 마주 봐야 완성이지
 야, 네가 왜 우냐?  나도 안 우는데
 몰라, 이 새끼야
 [예준의 한숨]
 난 진짜 너한테 안 되나 보다
 (예준)  아유, 속 시원하다
 예행연습 해 보길 잘했네
 (동경)  그렇게 진행하면 될 거 같아요
 - (선겸) 안녕하세요  - (동경) 어, 왔어요?
 여기 제 선수 김우식 선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우식이라고 합니다
 김우식 선수 말씀 많이 들었어요
 - 환영합니다  - (동경) 반가워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네
 [휴대전화 진동음]
 (태웅)  나 오늘 1위 했다
 기뻐서 울었어
 팬들이 내 눈물은 진주래
 갖다 팔든가
 옆엔 누군데
 [휴대전화 진동음]  (태웅)  옆엔 나랑 같이 유닛한 루시안
 리더야
 도청하나?
 [잔잔한 음악]
 (TV 속 앵커)  오늘 치러진 행복자유당 당내 경선으로
 차기 대권 후보가 가려졌습니다
 유력한 후보였던 기정도 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노근성 의원에게 밀려  낙선한 가운데
 경선 결과 발표 후  정계 은퇴를 시사했습니다
 한편 노근성 의원은 얼마 전 제기된  불륜설에 대해
 오해로 생긴 해프닝이며
 자신의 불찰로  기은비 선수에게 피해를 줘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도의 한숨]
 [문이 탁 열린다]
 [영화가 흥얼거린다]  [문이 탁 닫힌다]
 [노트북 전원음]  (영화)  어? 형, 노트북 샀어요?
 아, 뭐야  맨날 내 거 빌려 쓰더니, 응?
 아, 이젠 내 거가 필요할 거 같아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의미로  한번 사 봤어요
 좋은 걸로 샀어요?
 아, 기계 이런 거 잘 몰라서  그냥 최신형으로 샀어요
 우아, 색감 되게 고급지다
 형이랑 분위기 되게 잘 어울려요
 새 출발 응원해요
 나도 새 학기 응원할게요
 (영화)  형, 저 드로잉 과제 때문에 그러는데
 시간 되실 때 모델 좀 돼 주세요
 (선겸)  시간이 없는데
 (영화)  아…
 전 아까 형 응원했는데
 형도 저 응원한다면서요
 역동적인 모델  그릴 기회가 없어서 그래요
 형이 선수여서 딱인데
 (선겸)  내가 운동 그만둔 지가 언젠데
 그러지 말고 지금 시간 있어요?
 그럼 따라와요  내가 진짜 운동 보여 줄게요
 [거친 숨소리]
 (선겸)  몸에 열 좀 냈어?
 - (우식) 어?  - (선겸) 일로 와요
 - (영화) 아  - (우식) 안녕하세요
 (선겸)  여기가 김우식 선수예요
 이 친구 뛰는 게 진짜 운동이지
 아, 안녕하세요, 이영화라고 해요
 이름이 영화예요?
 와, 아, 진짜 멋지세요
 저 영화 진짜 좋아하거든요
 - (영화) 아, 진짜요?  - (우식) 네
 (영화)  그런 얘기 좀 많이 들어요
 이 친구가  오늘 너 뛰는 것 좀 그리고 싶대
 - 화가세요?  - (영화) 아유, 아니에요
 아직은 학생이에요
 그건…
 졸업 이후가 되겠네요
 저 화가랑 처음 말해 봐요
 다음에 나는 대안 학교 벽화 그려 줘요
 제가 왜요
 내가 운동선수 소개시켜 줬잖아요  재능 기부로 갚아요
 그래요, 벽이 얼마나 큰데요?
 너무 크면 저 혼자 다 못 그려요
 육상부 애들이랑요
 (선겸)  아, 너무 운동만 하니까
 다른 방향으로 좀  환기 좀 시켜 주고 싶어서 그래요
 - (영화) 그래요  - (우식) 어? 어, 선배님!
 - (우식) 안녕하세요  - (영일) 잘 있었어?
 (선겸)  너
 팀에서는 훈련 안 해?
 넌 말투만 다정하냐, 맨날
 - (영일) 누구시지?  - (영화) 아!
 안녕하세요, 이영화라고 합니다
 선겸이 형 룸메이트예요
 [익살스러운 음악]  (영일)  얘랑 같이 산다고요?
 어떻게?
 잘?
 아
 권영일이라고 합니다
 그, 얘 친구예요
 형 친구라고요?
 어떻게?
 (영일)  아…
 그만들 해요, 둘이
 와…
 어? 선배님 오늘 헬멧이 없네요?
 차에 두고 오셨어요?
 바이크 팔았어
 오늘 온 거는
 이것 때문에
 '신랑 권영일'?
 (영화)  어? 결혼하세요?
 이야, 축하드립니다, 예?
 (영일)  아, 감사합니다
 제가 두 장밖에 안 가져와 가지고
 아유, 전 괜찮아요
 (우식)  드디어 하시는구나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영일)  고마워  [우식의 웃음]
 (영일)  왜, 뭐
 (우식)  원래 둘이 잘 싸워요
 - (영화) 아, 그래요?  - 어,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
 [영화와 우식이 대화한다]
 10년 만났어
 10년
 [영일의 한숨]
 (예찬)  오늘 엄마 그냥 진짜 캠핑 온 걸까?
 (예준)  너 수능 때문에 계속 못 왔던 거니까
 (예찬)  둘이는 몇 번 왔었는데  오늘은 네가 있으니까 그러지
 (예준)  어, 나 없이
 [다가오는 발걸음]
 (동경)  고예찬 성인 됐으니까 와인 한잔해
 (예찬)  와! 나 술 처음 먹어 봐
 예준이가 동생 한 잔 줘
 (동경)  네가 여덟 살 때인가?
 나한테 그러더라
 '엄마는 나 낳은 거 후회해?'
 난 기억 안 나는데
 (예준)  대답은 뭐였는데?
 못 했어
 (동경)  스물한 살 때 너 처음 가졌을 때
 후회한 순간을 들킨 거 같아서
 그 죄책감을  모성애로 치환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됐네, 그마저도
 [잔잔한 음악]
 (예준)  엄마가 죄책감을 왜 가져
 남의 자식 신경 쓰느라
 내가 네 옆에 못 있어 줘서
 (동경)  내가
 너무 빨리 이혼을 해서
 그냥
 사람은 다 다르잖아
 그렇지
 (예준)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잖아
 (동경)  그렇지
 다 컸네, 고예준
 (큐레이터)  전시 기간은 2주가량 될 거 같아요
 (영화)  네
 (큐레이터)  느낌은 오는데
 정확히 뭐예요?
 (선겸)
 [노크 소리가 들린다]
 - (미주) 기선겸 씨, 나 왔어요  - 네
 얼른 와서 몸 좀 녹여요
 [밝은 음악]  (선겸)  아이고, 왜 그래, 또, 갑자기
 - (선겸) 무슨 일 있어요?  - 응, 나 진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응?
 나 전에 그
 한국 단편 영화 자막 작업 했던 거  얘기한 적 있잖아요
 어, 그 영화, 그, 오미주 씨가  엄청 좋다고 했던 그 영화?
 응, 근데 그게 국내에선  반응이 별로였는데
 해외에서 반응이 좋대요
 (미주)  감독님이 지금
 영화제 초청돼 가지고
 외국 나가 계시거든요?  이거 봐 봐요
 (선겸)  어?
 '오미주'
 '당신도 오늘 여기 함께 왔다'?
 (미주)  나 진짜 이런 거는 처음 받아 봐요
 나 앞으로도 작든 크든
 진짜 열심히 해 보려고요
 내가 또 하면  완전 잘하잖아요, 그렇죠?
 (선겸)  아유, 그럼요, 완전 잘하죠
 이 영화의 메시지가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
 (미주)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나 이제 알겠어요
 오미주 씨가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 이제 와서?  - (선겸) 응
 아, 맞는다  나 온 김에 할 일 있는데
 일기장 좀 갖고 와 봐요
 (선겸)  일기는 혼자 써서  혼자 보는 거라면서요
 안 볼게요, 안 볼게  갖고 와 봐요, 빨리
 (선겸)  이거기는 한데…
 [미주의 웃음]
 (미주)  안 볼게요, 진짜
 맹세, 안 봐요
 걱정을 하고 그래
 진짜 안 볼 거예요
 [미주의 헛기침]
 (미주)  자
 (선겸)  '참 잘했어요'? 이게 뭐예요?
 - 참 잘했어요  - (선겸) 응
 (미주)  도장 찍은 거예요, 이렇게
 - (선겸) 어  - 선생님들이 일기 검사할 때
 이렇게 보통 해 주지 않나?
 아휴, 나 또 애예요?
 참 잘했어요, 기선겸 어린이
 (미주)  역시 '참 잘했어요'는  어린이죠, 그렇죠?
 - (선겸) 맞아요  - 뿌듯하죠?
 (선겸)  아이, 뿌듯해
 [흥미진진한 음악]
 축하드립니다, 부사장님
 '최연소' 붙여 주세요
 비현실적이라 더 짜릿하니까
 우리가 해냈어요, 실장님
 그 판타지 같은 일을
 우리라서 해낸 거죠
 그건 그러네
 이번 신인 작가전 퀄리티  정말 괜찮아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에 들어서 뭐 해요
 전시 보러 오시는 분들  마음에 들어야지
 (단아)  아, 일 보세요
 시간 뺏으러 온 거 아니니까
 (큐레이터)  네
 [감성적인 음악]
 나도
 나도 보고 싶어
 [부드러운 음악]
 잘 어울리네요
 둘 다
 네가 뒤에 있으니까
 (영화)  오늘은 없어요?
 그림 감상평
 (단아)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그려요?
 대체 뭘 먹고 뭘 보면
 학생 안이 어떻게 돼 있으면  그림을 그따위로 그리나 싶던데
 (영화)  음…
 밥버거 많이 먹어요
 그리고 전시나 영화도 많이 보고요
 그리고 제 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들어갔다 나와 본 게 아니라서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진 몰라도  그림엔 아주 시꺼멓던데, 끈적거리고
 (단아)  내가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까
 아주 반짝이더라
 오늘로 하자
 내 진짜 생일
 생일 축하해요
 대표님
 (미주)  우리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선겸)  아, 우리 좀 뛰다가 쉬어요
 (미주)  아, 여기서, 여기서 쉴 건데
 [미주의 거친 신음]  (선겸)  우리 이제 뛰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 못 하겠죠?
 응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호응한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서로 다른 세계를  나란히 둬도 되지 않을까? 그렇죠?
 (미주)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이해 못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맙시다
 그건 불가해한 일이고
 우리는 우리여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면 되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던가요?
 지금인 것 같아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사랑해요
 [부드러운 음악]
 (선겸)  쉬는 시간 끝
 (미주)  뭐야
 뭐야, 사랑한다면서요
 좀 있다가 내 영화 보러 갈래요?
 그럼 영화 보는 나를 봐요
 나는 좋아하잖아
 (선겸)  [웃으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 안 해도 이젠 알아요
 사랑하니까
 (미주)  아, 이럴 땐 뭐  아무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진짜 해피 엔딩 같았는데 왜 흥을 깨
 (미주)  해피 엔딩이 대체 뭔데, 응?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막 온갖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 봐, 어?
 (선겸)  그게 뭔데요?
 (미주)  음악 시간에 필수로  틀어 주는 거 있잖아요, 음악 영화
 (영화)  저 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는데
 요즘에는 '라라랜드' 틀어 주겠죠?
 (미주)  내가 진짜 온갖 콘텐츠를  다 보고 사는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그 해피 엔딩이라는 게 결국에는
 문명이 만들어 낸 환상이고 허상이야
 [영화의 탄식]  애초에 존재를 안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
 (영화)  그건 너무 염세적이다
 (미주)  아유…
 (단아)  애초에 정의가 뭔데?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다 갑니다?
 (미주)  음…
 [선겸이 캔 맥주를 쉭 딴다]  그래, 뭐, 혼자 태어나서  혼자 가는 세상
 뭐, 죽을 때까지 함께라 쳐요
 근데 결국 죽는 그 순간부턴  이별인 거잖아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 자체가  허상인 거야
 (영화)  아니, 죽어서도  천국에서 만날 수도 있죠
 (미주)  죽어서 만날 수 있는 건  키아누 리브스밖에 없어요
 그게 누군데요?
 - 존 윅요, 존 윅  - (선겸) 존 윅?
 (선겸)  존 윅은…
 음, 천국 못 갈 거 같은데  킬러잖아요
 [헛웃음]
 애초에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
 근데 천국 가는 키아누 리브스는  '콘스탄틴' 아닌가?
 [놀라며]  어, 맞네?  내가 순간 헷갈렸나 보다, 맞네
 응? 근데 존 윅이 킬러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 (선겸) 검색해 봤어요  - (미주) 아, 검색해 봤어요?
 (영화)  저는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토끼 같은 자식 낳고 잘 살면
 그게 해피라고 봐요
 네가 토끼를 왜 낳아
 과학이 발전하면 제가 낳을 수도 있죠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오래 살아, 학생  토끼 낳을 수 있을 때까지
 대표님은요?
 해피 엔딩 기준 뭐예요?  저랑 같으면 안 돼요?
 우리 영원히 사랑할 건데
 난 결혼 싫어서  집에다가 가짜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이런 의미 없는 대화에  시간 쓰는 거 아깝지 않아요?
 술이나 마십시다
 그러니까, 나도 영화에는  너무 문외한이라서
 - (선겸) 우리 건배라도 할까요?  - (영화) 좋아요
 건배도 뭐, 위할 게 있어야 하지
 뭘 위하지?
 (미주)  아, 나 이번에 완주한 거, 응?
 그거 위해서 건배합시다
 (영화)  어,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 (미주) 그렇지, 그렇지?  - (영화) 네, 네
 - (미주) 자, 완주를  - (영화) 완주를
 - (미주) 좀 같이 좀 하죠?  - (영화) 아, 대표님
 (단아)  어떻게 위하는 건데
 - (미주) 그냥 부딪치기만 하면 돼요  - (선겸) 이렇게
 (미주)  하나, 둘, 셋
 - (미주) 완주를 위하여!  - (영화) 완주를 위하여!
 [밝은 음악]
 [청소기 작동음]
 [지우의 놀란 신음]
 (지우)  [작은 소리로]  어서 와
 [지우의 한숨]
 [발랄한 음악]
 (영화)  [작은 소리로]  형, 누나
.런 온↲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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