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9
1. 반 지하 방 / 밤
8부 엔딩 연결로.....
선우;(가쁜 숨 헉헉).....장일이냐?
태주;나는 니 아버지다.
선우; !
태주;내가 니 인생을 바꿔줄거야.
태주에게 멱살 잡혀있는 선우. 강렬하게 선우를 보고 있는 태주. 선우, 피식피식 웃기 시작한다.
태주;..........
쿤;.............
선우;누구야, 너.
태주;...........
선우;난 니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니가 날 죽여도 널 지옥에서 찾을 수
없단 말이야. (피 묻은 손으로 태주의 목을 무섭게 조르는데)
태주, 선우를 밀쳐낸다. 선우 사냥개처럼 다시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선우;이 피 냄새로 널 찾을거야. 너 누가 보냈어? 진노식이 보냈나.
아님 이장일이야?
쿤, 선우를 뒤에서 감싸 안다 시피해 떼어놓는다.
태주;경필이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너를 부탁한다고. 편지를 받고 전화했 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 내 전화를 받은 게 너였지?
선우;.......
플래쉬 백 -- 3부. 선우 방 + 태국 현장.
선우;여보세요?
태주(F);김경필씨 계십니까?
태주;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선우;제가 아들입니다.
태주;저는 김경필씨 선배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좀 바꿔주시겠어요.
선우;아버지 돌아가셨는데요.
반 지하 방.
선우;당신 누구야.
태주;경필이는 내 오랜 친구이자 후배야. 진노식 회장 밑에서 우린 함께 일했었다. 우리 셋은 창업멤버였어.
선우;..........
태주;경필이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놈이 있다고, 아들과 헤어지기 싫어서라도 반드시
살겠다고 했어.
선우;아버진 암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야.
태주;그럼?
선우;..........
태주;넌 언제부터 눈이 먼 거야.
선우;진노식이 날 떠보라고 보냈나.
태주;그렇다면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지?
선우;아버지를 죽인 게 당신 맞냐고.
태주;나도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 온 거다.
선우;............
태주;나와 함께 가자. 니가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을 내가 보여 줄거야.
선우;꺼져.
태주;난 널 데려갈거야. 경필이의 유언이니까.
선우;내가 당신을 왜 믿어야 하지. 돌아 가.
태주;경필이가 너 만큼만 의심하고 똑똑했어도 좋았을 걸....
쿤;(손과 발의 피를 보며) Hey. You‘re still bleeding.
(선우의 피 나는 다리를 만지는데)
선우, 쿤을 거칠게 밀쳐내는데 쿤, 우악스럽게 선우의 팔을 꺾어 제압한다. 선우, 숨이 턱 막히는 느낌.
태주;10초 만에 니 뼈를 다 동강 내버릴 수 있어. 널 죽이러 온 거면
여기서 죽인다. 쓰레기 같은 이 방에서.
쿤;(선우 잡은 팔을 풀고 피에 젖은 양말을 벗긴다)
선우;(아파서)윽.........
태주;너도 정리할 게 있겠지. 24시간을 주겠다. 24시간 후에 넌 우리와 함께 가는 거야.
선우;그렇게 못하겠다면?
태주;경필이는 자살한 게 되는 거지.
태주, 나가버린다.
2. 수미 방 / 밤
수미, 이불 덮고 누워있다. 우울하고 아픈 수미. 입술이 마르고 식은땀에 젖은 이마.
플래쉬 백 - 8부 장일 방. 침대에 누워있는 두 사람.
장일;지원씨.....
수미, 생각하기 싫다는 듯 돌아눕는다. 눈을 감는데 광춘, 문을 연다.
광춘;자냐?
수미;응.
광춘;잠깐 나갔다 올게.
수미;응.
광춘;어디 아퍼? 얼굴이 퀭한데.
수미;아냐. 다녀와.
광춘;(문 닫고 나가려다)너 서울 가서 그 놈 만났지?
수미;(발끈. 벌떡 일어나)그 놈 누구. 안 만났어.
광춘;..........(빤히 보는)
수미;그림만 열심히 그리다 왔어. 1등 할 거니까 두고 봐. 1등 해서 유학 갈거야.
광춘;유학 가서는 고생 안하게 해줄게.
수미;난 내가 알아서 해.
광춘;입고 싶은 옷 한 벌 생각해 둬. 너 깔보던 기집애들 죽었다 깨도
못 사 입는 그런 옷으로 생각해 놔.
광춘, 호기롭게 문 탕 닫고.
3. 으슥한 거리 일각 / 밤
운전석에 앉아있는 차 실장. 덩치 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 다가와 꾸벅 인사하고는 조수석에 탄다. 차 실장, 돈 봉투를 건네며 조근조근 얘기하는.
4. 허름한 상가 / 밤
어두침침한 복도. 모자 쓰고 마스크를 쓴 광춘,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며 걸어간다. 긴장과 기대감.
빈 화장실. ‘고장’ 이라 붙어있는 칸. 자물쇠를 따는 광춘. 문을 열어보면 까만색 이민용 가방이 놓여있다. (만 원권으로 1억이면 구권의 경우 사과박스를 꽉 채울 정도의 부피) 광춘, 마스크로 가린 얼굴, 눈웃음이 번진다.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기대감으로 손바닥 싹싹 비비며 다가와 가방에 지퍼를 조심스레 여는데 지퍼 벌어지며 순간 복면을 쓴 남자가 가방에서 일어서 광춘을 망치로 내려친다. 광춘, 놀라 피하는 데 어깨를 제대로 맞았다.
광춘;윽!
광춘, 비틀하며 화장실 벽에 부딪히는데 남자의 망치 광춘이 기댄 거울을 박살낸다. 광춘, 달아난다.
5. 허름한 상가 복도 / 밤
광춘, 아픈 어깨를 잡으며 도망간다. 남자, 따라온다. 광춘, 복도 한 쪽에 놓인
소화기를 집어던진다. 남자, 피한다. 광춘, 다시 나무 의자를 집어 던진다. 남자의 팔에 맞아 부서지는 의자. 남자, 망치를 놓친다. 팔을 다친 듯. 광춘, 달아난다.
6. 으슥한 골목 / 밤
도망치는 광춘. 따라가는 남자(망치 없음). 광춘, 마스크 쓴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
광춘;(죽을 힘껏 달리는)헉.... 헉......
남자, 무섭게 바짝 추격해 온다. 남자, 뒤에서 광춘을 덮친다. 두 사람 길바닥에서 엎치락뒤치락. 남자, 마스크 쓴 광춘의 입을 막아 숨이 막히게 누른다. 광춘, 버둥거리며 남자의 복면을 반쯤 걷어 올리는데 낯선 얼굴.
광춘;?
남자, 광춘을 깔고 앉아 목을 누르는데 광춘 가까스로 손을 뻗어 잡초가 말라 죽어있는 화분을 집어 든다. 남자 머리를 내려친다. 남자, 머리를 감싸며 구르는데 광춘, 일어나 죽어라 다시 달아난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
으슥한 골목 일각. 광춘, 숨을 고른다.
광춘;헉.... 헉..... 헉...... 날 죽일려구..... 어림없지. 이 최광춘이를.....
광춘, 어깨가 아픈 듯 잡으며 ‘으으.....’
7. 거리 일각 / 밤
화난 표정으로 전화 받는 차실장.
차실장;근처 병원 다 뒤져 봐! 어깨뼈 금간 놈, 부러진 놈 다 찾아내라고
해. 당장!
8. 도 로 / 밤
달리는 택시 안. 광춘,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다.
기사;괜찮으세요? 저 앞 사거리 병원에서 내려드릴까요?
광춘;아니라니까요. 한참 더 갑시다. 마산까지 갑시다. 계속 갑시다.
기사;(백미러로 이상하다는 듯 보면)
광춘;바람 피다 들켰어요. 멀리 갑시다.
달려가는 택시.
9. 수미 집 앞 / 밤
사다리 놓고 간판 내리는 인부 두 사람. 광춘 얼굴은 검은 락카로 지워져 있다.
군시렁거리며 ‘에이 쯧....’ 혀를 차며 못마땅한 투로 간판 내리고 있다. 수미, 아픈 얼굴로 부스스하게 나와서
수미;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이 시간에 제 정신이세요?
인부;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요. 지금 당장 얼굴 지우고 간판 내리지
않으면 급살을 맞는대나. 전화를 수십 통 울려대는 바람에 우리도
자다 깨서 나왔어요.
수미;.........?
10. 반 지하 방 / 새벽
난장판이 된 방안. 새벽 푸른빛이 창으로 새 들어온다. 선우, 꼼짝 않고 앉아있다.
태주(E); 24시간을 주겠다. 24시간 후에 넌 우리와 함께 가는 거야.
선우(E);그렇게 못하겠다면?
태주(E);경필이는 자살한 게 되는 거지.
선우;...................
11. 복지관 음반도서실 / 낮
선우, 점자책을 펴놓고 앉아있다. 책 사이엔 지원의 사진. 선우, 조심스레 만져 본다.
선우(E);기적처럼 눈을 뜬다 해도 난 거리에서 헤밍씨를 알아볼 수 없어 요.
지원(E);내가 알아보면 되죠. 선우씬 그냥 그 자리에 서있으면 돼요.
실장, 들어오다 선우를 보고 반갑게
실장;(반갑게)어머 선우씨 오랜만이네요.
선우;(얼른 책 덮어 사진 숨기고)안녕하셨어요.
실장;그새 좀 핼쓱해진 것 같다? 다이어트 했어요?
선우;(머쓱하게 웃는데)
실장;참, 인사해요 선우씨. 새로 오신 봉사자세요.
남자 대학생, 인사한다.
남학생;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실장;한지원씨가 이제 못나온다고 해서요, 앞으론 우리 박군이 도와
드릴 거예요.
선우;.........
12. 복지관 일각 / 낮
선우, 멍하니 서 있다. 점자선생 다가온다.
선생;선우씨. 거기 있나.
선우;예.
선생;지금 실습 나갈 수 있어?
선우;오늘은 곤란한데요.
선생;어쩌지 그럼. 선우씨한테 받았던 사람인데 또 해줄 수 있냐고 물어 서....
선우;..........(긴장)
공중전화. 선우, 통화 중.
선우;금줄! 내가 두 시간 후에 너한테 연락 안하면 날 좀 찾아 봐.
금줄(F);야 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선우;나 지금 서울호텔로 간다.
13. 호텔 복도 / 낮
선우, 지팡이를 쓸며 천천히 걸어간다. 긴장감 어린 얼굴.
14. 호텔 방 / 낮
인사를 꾸벅하는 선우.
선우;안녕하십니까. 실습생입니다.
지원, 선우를 말없이 보고 서 있다. 침대로 가 앉는다. 선우, 침대 시트가 눌리고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선우;........(대답이 없는 게 이상하다)전에 받으셨던 분이라고 들었는데....
지원;네, 맞아요.
선우;..........!
선우, 이슬비를 맞듯 고요하게 멈춰 있다.
지원;이렇게 라도 안하면 선우씨를 만날 수 없으니까.
태주(E);24시간 후에 넌 우리와 함께 가는거야.
선우;(한 두걸음 앞으로 다가온다)나한테 무슨 할 말 이라도 있는 거예요?
지원;........
선우;.........지압 때문에 부르신 게 아니면 가보겠습니다.
지원;(선우의 팔을 잡는다)
선우;(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지원;가지 말아요, 선우씨.
선우;............
지원;내 앞에선 자존심 같은 거 내려두면 안돼요?
선우;(잡힌 손을 뺀다)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지원;내가 도와줄게요. 공부도 계속 하고, 대학도 가요.
선우;내 옆에 있으면서 위로 받고 싶은 겁니까. 이런 사람도 산다, 난
행복한거다, 감사해야지.
지원;못 나게 굴지 마요. 일부러 이러는 거 다 보여.
선우;위로가 필요하면 다른 데 가서 찾아요.
지원;내 얼굴은 못 봐도, 내 마음은 보이죠?
선우;호텔 방에다 불러놓고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지원;얘기하고 싶었다니.......(까요)
선우, 지원이 말 끝내기도 전에 거칠게 떠밀어 침대에 눕힌다.
선우;내가 앞을 볼 수 있는 남자라면 함부로 이럴 수 있었겠어?
지원;..........
선우;말해 봐.
지원;앞을 못 보는 게 죄는 아니잖아. 왜 그렇게 숨고 도망가요?
선우;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지원;선우씨를 많이 좋아해요.
선우;그래서?
지원;.........
선우;(웃는)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헤밍씨 이렇게 촌스러운 여자였나?
지원;..........
선우;(일어선다)난 욕심 많고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그런 여자가
좋아요. 그런 여자들은 현실과 봉사활동을 구분해.
지원;선우씨 같은 조건을 일부러 찾아서 좋아할 순 없어요, 나도.
돈 많고 근사한 남자친구가 나야말로 필요해. 그런데 다른 사람은
안 보여. 나도 이상해, 내가 왜 이러는 지.....
선우, 와락 지원을 안고 싶은 마음....
선우(E);기다려 줄 수 있어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될 진..... 나도 알 수 없어.
지원;이런 게 사랑 아닌가요?
선우;동정이고 우월감이야.
지원, 눈물이 핑글.
선우;다른 데 가서 알아 봐요. 나 말고도 눈 감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선우, 문 쪽으로 돌아서는 지원 뒤에서 달려가 허리를 껴안는다. 선우, 순간 흔들림! 지원을 매몰차게 밀어내며
선우;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부르면 복지관에 얘기하겠습니다.
선우, 문 옆에 세워놓은 지팡이를 짚고 문을 닫고 나간다. 지원, 털썩 무너진다.
15. 호텔 복도 / 낮
한 손은 벽을 스치고, 한 손으론 지팡이로 바닥을 쓸며 걸어가는 선우. 눈물이
흐른다.
15-1. 반지하 방 / 낮
선우, 펜으로 글씨 쓴다. 눈 안 보이는 채로 쓰는 글씨. 살짝 몇 자가 겹치기도 하고.....
선우(E);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원하는 건 바로 나라 고. 내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다려 줘요.
기다려 주세요. 당신 곁으로 다시 돌아올게요. 언제가 되든 꼭 돌 아옵니다.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는 편지.
16. 반 지하 방 / 밤
선우, 가방을 하나 놓고 앉아있다. 태주와 쿤 들어온다.
태주;도망 갔을 꺼 라고 생각 안했다. 짐은 이게 다야?
선우;혹시 내가 빠뜨린 편지나 아버지 사진이 있나 봐줘요. 책들 사이에 뭐 끼어있는 게 없는지.
쿤과 태주, 둘러본다. 자잘한 종이와 복지관 안내문들 소식지....
그 사이에 선우가 쓴 손글씨의 메모, 책상에 있다. 태주, 들어서 읽어본다. 선우를 한번 바라본다.
태주;...........
태주, 책상 한 가운데 잘 보이게 놓는다.
태주;없다. 가자.
선우;어디로 가는 겁니까.
태주;일단은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여권부터 비자... 준비해야 할 게
많아.
선우;난 언제 돌아올 수 있습니까?
태주;그건 나도 알 수 없지.
선우;...........
선우, 일어선다. 쿤, 가방을 든다.
17. 반 지하 방 / 밤
걸어 나오는 선우 태주 쿤. 걸어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
금줄;(숨 찬)선우야!
금줄, 숨차게 헐레벌떡 달려온다.
선우;금줄. 여긴 웬일이야.
금줄;헉헉..... 아까 너한테 전화가 안 오길래 걱정돼서 올라온 거야.
선우;.....(찡한).....
금줄;너 지금 어디가. 이 사람들 누구야.
선우, 금줄을 껴안는다.
선우;아버지 친구들이야. 나 잠깐 다녀올게.
금줄;어딜 가는데.
선우;(포옹을 풀고) 돌아와서 얘기할게.
금줄;야 임마. 아버지 친구들 누군데? 어디 가는지 말하고 가.
선우;근사한 금줄 목걸이 하나 사다줄게. 잘 지내고 있어.
금줄;야 임마....
선우;오늘 날 봤단 소리는 하지 말고! 약속해 줄 수 있지?
금줄;...........그래.
선우, 돌아선다. 태주와 쿤 함께 걸어간다.
금줄;선우야...... (목이 메는)
도로 가에 세워진 고급 세단. 쿤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 태주와 선우가 탄다.
운전석에 쿤이 앉고. 차, 출발한다.
18. 도 로 / 낮
달리는 차 안. 운전하는 차 실장. 뒷좌석엔 노식.
차실장;어깨 뼈를 다쳐 온 사람이 셋이었는데 술 마시고 싸우다, 공사장에 서, 또 한 사람은 주부였습니다.
노식;병원에 안 가고 숨었군.
차실장;범위를 확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머리가 없는 놈은 아닌지
여기서 먼 다른 병원으로 간 것 갔습니다.
노식;꼭 찾아 내.
19. 광춘네 거실 / 낮
큼지막한 점퍼를 우스꽝스럽게 입고 들어오는 광춘. 수미, 화구통 들고 나오다 시선.
수미;뭐야 그 꼴은.
광춘, 점퍼를 신경질적으로 확 벗어던진다. 어깨와 목에 걸쳐 붕대를 감고 있다.
광춘;술 마시고 사뿐하게 굴렀다.
수미;그래서 간판 내리라고 난리 친거야?
광춘;그래서 이나마 몸 성한거다.
수미;어깨뼈 부러졌어?
광춘;쉿! 너 십년 동안 어디 가서 어깨의 어자도 꺼내지 마.
수미;또 뭔 짓을 저지르고 온 거야.
광춘;너 선우 서울 주소 알아?
수미;주소는 왜.
광춘;불쌍한 놈 어떻게 지내나 내가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
꿈자리 뒤숭숭한 게.
수미;놔둬요. 가서 또 무슨 소릴 할려구.
광춘;법대 간 놈은 그 집에 드나드니.
수미;안 드나들 걸. 선우 여자 친구도 있는데.
광춘;여자친구? 아 그 자식 능력있네. 주소나 알려줘. 장아찌라도 보내게.
수미;........(빤히 보다가)그날 일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
광춘;미쳤나 내가 하게.
수미;(수첩에서 주소 적힌 메모지 빼서 준다)나 화실가요. 늦게 올 거야. (나가는)
고요한 집 안. 광춘, 밥상 위에 편지지를 놓고 앉아있다. 편지봉투 2개 놓여있다.
하나는 김선우 앞, 다른 하나는 진노식 회장님 앞.
광춘;(손에 비닐장갑 끼면서)선우야.... 니가 눈은 감았지만 귀는 뚫렸지. 너한테도 보내는 이유가 그거다. 누군가 너한테 읽어줄 게 아니냐.
일타쌍피.
광춘, 펜을 잡는다.
광춘(E);김선우씨. 당신 아버지는 이장일 아버지가 죽였습니다.
진노식 회장도 연관돼 있습니다.
20. 진승원 서재 / 밤
편지 읽고 있는 노식.
광춘(E);당신은 큰 실수를 했소. 영원히 덮힐 거란 생각은 하지 마시오.
나무에 매달리며 버둥거리던 그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좋은 때를 기다려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노식;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다니..... 그럼 그땐 살아있었나......
노식, 의심의 표정에서. 편지를 열쇠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근다.
21. 법학 서점 / 낮
41회 사법고시 1차 합격자 명단 붙어있다. 학생들, 고시생 우르르 서서 보고 있는.
장일, 열심히 찾고 있는. 이장일 이름 보이지 않는다.
장일;.........
장일, 전화 받는다.
장일;여보세요.
용배(F);어떻게 됐냐. 1차 발표 났지? 근데 여태 연락이 없어.
장일;이번 시험은 그냥 경험삼아 본 거 잖아요.
용배(F);시험에 경험이 어딨냐. 이제부턴 정신 차리고 공부에 매진해.
밥은 잘 먹고? 그 여자는 안 만나고 있는거지? 난 내 아들
믿는....(다...)
장일;(말 끝나기 전에 전화기를 내린다)
22. 강의실 / 낮
빈 강의실. 혼자 앉아있는 지원.
선우(E);다른 데 가서 알아 봐. 나 말고도 눈 감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지원;(생각하기 싫다는 듯 도리도리)
여학생 한명, 들어온다.
지원;현주야, 어제 노트 필기 한 것 좀 보여줄래.
여학생,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찾고 지원은 여학생 쪽으로 가는데 빈 책상에 대충
펼쳐져 있는 학보가 눈에 들어온다. 지원, 무심코 보다 깜짝 놀라.
23. 캠퍼스 일각 / 낮
캠퍼스 일각. 카메라로 사진 찍고 있는 학생 기자. 사진 찍는 친구에게 뛰어오는 지원.
지원;이 사진 뭐야 언제 찍은거야?
친구;월요일날 찍은 건데.... 왜?
사진, ‘봄날의 교정’ 이라 표제 붙어있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 하는 학생들 사진. 옆으로 지팡이를 놓고 앉아있는 선우 모습이 보인다.
학교 숲길. 지원, 혼자 서 있다. 벤치가 비어있다. 선우 보이지 않는다. 지원, 달리기 시작한다.
24. 선우 지하 방 / 낮
빈 생수통과 쓰레기들 나뒹구는 빈 방. 지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깨진 벽거울을 바라본다. 책상에 놓여져 있는 선우의 펜글씨 편지. 지원, 집어 들어 본다.
선우(E);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원하는 건 바로 나라 고. 내 옆에 영원히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다려 줘요. 기다려 주세요. 당신 곁으로 다시 돌아올게요.
지원;..........(눈물이 핑글)
방바닥에 널 부러진 점자책 몇 권. 그 중 지원이 스티커를 붙여준 책, 보인다.
지원, 물끄러미 보고 서 있다.
플래쉬 백 7부 --- 점자책 읽어 주는 선우. 스티커 붙여주는 지원.
선우;니 옆에 있는 게 행복하고, 니 옆에 있는 게 두려운 나는,
널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엉망인 된 방. 지원, 책을 집어 든다. 후줄근한 쇼핑백에 스티커 붙은 점자책과
구겨져 팽개쳐져 있는 선우 셔츠(지원이 골라 준), 시각장애인 복지관 도서 대출 카드, 노인과 바다 책등을 챙기는데 밖에서 우편배달부 오토바이 소리. 반 지하 방으로 편지를 넣는다.
집배원;김선우씨 편지요.
방으로 툭 내던지는 편지 봉투. 지원, 본다. 보내는 사람은 비어있고 받는 사람엔 ‘서울 강동구 장미마을 14-3 지하 방. 김선우’ . 지원, 편지도 쇼핑백 안에 넣고 집을 나선다.
25. 복지관 / 낮
스티커 붙은 점자책을 점자 선생에게 내미는 지원. 옆엔 쇼핑백.
지원;선생님, 저 이 책 좀 읽어주실 수 있어요?
점자선생;(책을 만져본다)
지원;........(앞장을 펼쳐준다)
점자선생;.........(손으로 짚으며 읽기 시작한다)경혈과 경락. 지압의 기초 혈점의 이해.
지원;......(의아)?? 선생님 잠깐만요. (다시 표지를 보면 자신이 붙여준
스티커. 몇 장을 더 넘겨 선생에게)여기서부터 읽어주세요.
선생;(점자 짚어)근육의 조직과 이해. 제 1장.
지원;이거 무슨 책이예요?
점자선생;(표지 제목을 짚어본다)쉽게 배우는 안마와 지압.
복지관에서 기본적으로 배포되는 책인데요.
지원;........(눈물이 핑글).......
26. 거리 / 어스름
지원, 눈물 흘리며 걸어간다. 후줄근한 쇼핑백 들고.
선우(E);깊은 터널에 갇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너와 함께 터널의 끝 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둘만 아는 길, 우리 둘만
아는 시간.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말해줘. 난 길을 떠날거 야. 넌 여기 남아도 난 너를 새겨서 가는 길이 외롭진 않을 것이 다.
27. 캠퍼스 숲길 / 어스름
선우가 앉았던 벤치에 앉아있는 지원. 장일, 걸어가다 지원을 본다. 지원, 고개를 숙이고 힘든 듯 앉아있다.
장일;지원씨....
지원, 고개를 든다. 눈물이 주르르.
장일;.....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지원;그 사람이 사라졌어요.
장일;.......사라지다뇨.
지원;어디론가 떠난 것 같아요.
장일;그게 그렇게 울 일 입니까.
지원;........(빤히 본다)
장일;부모 형제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요. 연애하다 깨진 게 그렇게 울 일 이예요. 한지원씨 그만큼 한가합니까?
지원;장일씨는 자기만 알고 자기만 힘든 사람이예요.
장일;뭘 안다고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원;검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훌륭한 검사가 되려면 따뜻한 마음부터
배우세요. (가는데)
장일;지원씨!
장일, 거칠게 지원의 팔을 잡는데 지원이 들고 있던 쇼핑백이 툭 떨어진다. 편지와 점자책이 삐져나온다. 김선우 앞으로 온 편지를 보는 장일.
장일;뭡니까 이건.
지원;(다시 백에 담으며)그 사람 다시 만나면 줄 거예요.
장일;.........
지원;우리는 친구로서도 지낼 수가 없겠네요. (돌아서 간다)
장일;(주먹을 불끈 쥔다)
장일(E);민법 751조 1항을 보면
28. 스터디 룸 / 밤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장일. 1,2,3,4 학년 모두 섞여있는 토론회. 칠판엔 ‘민법 스터디 8차’ 라 적혀있다.
장일;(페이퍼 들고)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이외의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806조 2항에도 역시
민법책 후르륵 찾고 줄치는 학생들.
장일;'정신상 고통' 에 대해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정신상 고통'이란 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너무 불명확한 개념이라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률요건으로서 얼마나
제대로 기능하는 건지는 의문이 듭니다.
29. 도서관 / 밤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고 줄을 치는 장일. 도서관 점점 비어간다. 장일, 꼼짝 않고 앉아 책만 넘긴다.
30. 호텔 스위트 룸 / 낮
넓고 크고 근사한 스위트 룸. 창가에 앉아있는 선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노트북 2대 켜져 있고 쿤은 상기된 얼굴로 한쪽에서 통화중. 태주는 자료 읽고 바쁘다.
쿤;(다가와)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개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태주;(주먹을 불끈)
한쪽에선 룸서비스 식사 테이블에 차리고 있다. 샴페인 잔에 샴페인을 따르는 직원.
기포가 보글보글 보기 좋게 올라온다. 술잔 속으로 보이는 창가의 선우. 태주, 샴페인 잔을 들고 온다. 선우 손앞에 놔주며
태주;한잔 하자.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 생겼다.
선우;.........(창밖만 보며 무심)축하드립니다.
태주;이번이 제일 큰 껀이 될거다. (선우 잔에 챙 부딪힌다)느낌이 좋아.
선우, 성의 없이 느낌 없이 샴페인을 원샷한다.
31. 레코드 가게 / 낮
(대형서점 음반코너도 좋고) 수미, 헤드폰 쓰고 CD를 고르고 있다. 한 여자의 손, 진열장을 더듬거린다. 수미, 보면 흰 지팡이를 짚고 선글래스를 쓴 여자. 여자 진열장에 ‘클래식’ 이라 점자와 함께 찍힌 글씨를 만져본다. 더듬어 가더니 ‘바흐 Bach’라 쓰인 점자를 만진다.
수미;(관심 있게 주시하는데)
32. 수미 방 / 밤
점자패턴으로 스케치 한 것들, 수채물감으로 그려본 그림들 널브러져 있다. (점자를 그대로 나열하거나 점자 형태로 물방울을 떨어뜨려 번지게 하거나.....)수미, 침대에 기대 앉아 큰 관심 없는 듯 점자표를 놓고 글씨를 만들어 본다.
수미;가..... 나...... 이렇게 글씨가 되는 거였네....
수미, 스케치를 놓고 점자표 보는. 자신이 무슨 글자를 그렸나 맞춰본다.
수미;내....가... (갸우뚱) 본.... ?
수미, 점점 표정이 굳는다. 벌떡 일어나 책상에 놓인 선우가 찍은 점자종이를 가져와 본다.
수미;.........
선우(E);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이장일이다. 장일이의 겁먹고 외로운 표정 을 마지막으로 세상의 빛이 나갔다.
수미;(겁나는)선우야...... 너.... 이게 무슨 소리야....
점자들이 조합돼 한글로 변환된다.
선우(E);장일이가 날 죽이려 한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에 내가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미;선우 너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수미, 편지를 계속 읽다가 두려운 듯 편지를 두 손으로 구긴다. 온 몸이 떨리는.
33. 지원 방 / 밤
예쁘고 깊이가 있는 두꺼운 종이 상자에 선우의 셔츠와 점자책을 넣는 지원. 마지막으로 편지도 넣고 상자 뚜껑을 닫는다.
34. 화실 / 낮
그림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수미. 전화벨 울린다. 전화 받는 수미.
수미;네, 제가 최수민데요.......네 맞습니다. ..... 네....(놀라)제가요?
35. 캠퍼스 일각 / 낮
장일, 헌법 책 들고 고개 숙인 채 걸어가는데 앞에 보이는 빨간 구두. (화려하고
튀는 빛깔의 구두나 샌들이면 좋겠음. 빨강 매니큐어) 장일, 고개 들어보면 수미.
수미,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서 있다.
장일;........(안 반갑고)
수미;그날 일 책임지라고 온 거 아냐 안심해.
장일;미안하다... 그날 일은 실수였어. 사과하고 싶다.
수미;그날 일 묻자고 온 거 아니라니까.
자판기 커피 들고 서 있는 두 사람.
수미;나 유학 가게 됐어. 시카고로 갈거야.
장일;잘됐네..... 축하한다.
수미;가서 좀 더 공부해 보고 결정할 거지만, 극사실주의 회화를 전공할까
해.
장일;꼭 성공해라.
수미;할거야. 걱정 마.
장일;(시선 피하고 커피 마시는데)
수미;선우는 증발했더라.
장일;.........
수미;집이 온통 난장판이고 사람은 없어. 주인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벌써 없어진 지 일주일 넘었대. 어느 날 밤에 울고 소리치는 소리가 난 후로 사람이 안 보인대.
장일;너한테도 연락 없었구?
수미;없어. 괴로워서 어디로 숨어버린 것 같아. 너 선우가 사랑했던
사람 있었던 거 알지?
장일;........
수미;그 사람도 선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선우 너무 안됐어.
선우가 그때...(그 사람 때문에)......
장일;(듣기 싫어 말 끊는)넌 언제 떠나니.
수미;다음 달에.
장일;잘 가라. (가는데)
수미;나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장일;..........
수미;내가 다시 돌아올 때는, 니가 그렇게 함부로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아닐 거야.
수미, 커피 잔 던지고 먼저 돌아서 걸어간다.
36. 도서관 / 낮
장일, 열심히 책장을 넘기고 줄치다 못 견디겠다는 듯 벌떡 일어난다.
37. 반 지하 방 / 낮
엉망이 된 채 비어있는 방. 깨져있는 벽거울. 장일, 이상하다는 듯 보며 서 있다.
장일, 핸드폰 꺼내 전화 건다.
장일;(핸드폰으로 통화중)금줄, 너 선우 어디 갔는지 몰라? 너 있는 데
갔니?
금줄(F);아니 나도 몰라. 어디로 갔는지.
장일;정말 몰라? 너한테 연락 없었어?
금줄(F);없었어.
장일;............
38. 서강대교 위 / 노을
장일, 걸어간다.
어린 선우(E);장일아 너 서울로 대학 가라. 학비는 내가 벌어서 부쳐줄게.
걸어가다 뒤 한번 돌아본다.
어린 장일(E);선우야, 나 성공할 거다. 성공해서 내가 너 도와줄거야.
눈물이 핑글 도는 장일. 걸어간다. 장일 머리 위론 붉게 물든 노을 비행기가 떠간다.
39. 기 내 / 밤
퍼스트 클래스. 늘씬한 몸매의 젊은 외국여성 스튜어디스 걸어간다. 쿤 앞에 위스키 온더락 잔을 놓아주는
쿤;(윙크하며)Thank you.
쿤과 통로를 사이에 놓고 앉아있는 선우와 문태주. 선우는 무표정 하게 앉아있다. 태주는 샴페인 마시며 여유 있는.
태주;지금까지의 김선우는 잊어라. 죽었다고 생각해.
이제부터 넌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선우, 굳은 표정으로 미동 없이 앉아있다. 날아가는 비행기. F.O.
40. 서울 중앙지검 앞 / 낮
‘자막 13년 후’. 중앙지검 앞마당으로 달려오는 차 들. 차 여러 대 와서 서고 자료박스를 든 수사관들 내려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간다. 사진 기자들 달려들어 카메라 후렛쉬 터트리고. 맨 마지막에 차에서 내리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이장일. 기자들 장일에게 달려들어 더 적극적으로 사진 찍는다.
기자1;결정적 물증을 확보 하셨다는 데, 사실입니까?
기자2;물증은 녹취록입니까?
기자1;김회장도 구속하실 겁니까.
장일, 자신 있는 표정과 미소. 대꾸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41. 중앙지검 복도 / 낮
당찬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장일. (특수1부 ->)라 복도 벽에 붙은 안내판 쪽으로 걸어간다. 장일, 어느 방 문 열고 들어간다. 703호 문 <이장일 검사 / 고순태 수사관/ 황백구 수사관 / 차소영 실무관> 이라 붙은 팻말.
42. 검사 사무실 / 낮
산더미처럼 자료 쌓아놓고 상자에서 노트북과 하드디스크 CD등을 꺼내는 수사관들.
장일;하드는 지금 당장 디지털 분석실로 보내시구요. 참고인 소환일 다시
확인해 주세요. (쌓인 자료들 팡 치며)이것들 다 보려면 일주일은
밤새야겠는데요. 갈아입을 속옷은 넉넉히 있으시죠?
고순;검사님 주무실 특급 호텔도 잡아 놨습니다. (두 손으로 가리키며)
구석에 접이식 얄팍한 침대 놓여있다.
고순(E);별이 다섯 개!
장일;아주 훌륭하네요. 두 분은?
황백;저희는 모텔. (두툼한 침낭 두 개를 가리킨다)꼴은 이래도 오리털
입니다.
장일;계장님 두 분 의지하고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장일, 자료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아 바쁘게 펼치는데
차소영;대변인실에서 계속 찾으시는데요.
장일;저를요?
차소;검찰 홍보 광고 모델로 검사님이 뽑히셨대요.
황백;우와! 그거 모델료 있음 소주 한잔 사세요.
장일;저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참, 증인 신청은 어떻게 됐습니까.
문 벌컥 열리고 자료를 든 신준호 검사 들어온다. 일하다 온 듯 셔츠 소매 걷어 올라가 있고 넥타이 느슨하게 푼 상태.
준호;야, 모델 니가 한다며. 난 내가 될 줄 알았는데.
순태;신준호 검사님이 하기엔 근육량이 좀 많아버리지 않습니까.
준호;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니까요. 검찰하면 다들 까칠한 이미 지만 생각하잖아요. 내가 해야 그런 이미지를 바꿀텐데.
장일;야, 시끄럽구. 너 지난 번 장용출 회장 수사 때 그 회사 고문도 조사
했었지.
준호;어, 왜 그 사람 소환하게?
장일;아직은 아니고. 니 정보원 중에 미끼 좀 던질 사람 있냐?
준호;맨 입으론 어렵고. 이것 좀 봐줄래? 너 지난 번 수사 때 사전 구속영 장 기각된 적 있었잖아. 그땐 이런 증거 없었지?
장일과 준호, 진지하고 은밀하게 소곤소곤.
43. 중앙지검 브리핑 실 / 낮
브리핑 중인 부장 검사. 장일은 한 쪽에 서 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한손에 발표 자료를 들고 있다. (장일의 성공과 수미의 시카고 작업이 교차 편집 되어도 좋을 듯한데.... 알아서 결정해 주세요)
부장검사(E); 대황그룹 김봉우 회장과 친인척등 모두 7명을 구속 기소하 고, 임직원 다섯 명을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수사 검사가 직접 발표하겠습니다.
장일, 브리핑 대에 선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
장일;특수1부 이장일 검사입니다. 작년 10월부터 대황그룹 김봉우 회장의
횡령과 배임등 각종 비리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하였 습니다. 범행 수법이 워낙 치밀하여 어려움이 많았지만, 계좌추적팀, 회계분석팀과 디지탈수사팀까지 투입하여 8개월 간의 수사끝에 회장 일가가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불법 외화 밀반출, 그리고 직원들을
부당해고하거나, 협박과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44. 시카고 작업실 / 낮
금발의 미녀 모델들, 흰 막 앞에서 포즈 취하고 있다. 꽃을 머리에 달고, 긴 치마를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쓰고, 색색깔의 막대사탕을 들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게도 하고. 수미가 거꾸로 매달려 찍기도 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딱 붙는 민소매 티셔츠 입은 수미, 카메라로 촬영한다. 조명위치를 바꾸고 미친 듯 밝게 그림자 지게 하면서 또 찍고.
머리 질끈 묶고 그림에 비쳐있는 수미,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완성해 간다. 수미의 그림은 사진과 같은 모습이면서 색감이나 음영에서 독특한 느낌이다. 없는 소품을 배경에 더 넣기도 하고. 배경색을 특이한 색과 무늬로 칠하기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델, 두 손에 권총을 들고 포즈를 취한다. 트라이포드를 놓고
사진 찍는 수미. 사진 찍다 맘에 안 드는 듯 모델에게 가 권총을 뺏어 포즈를 보여준다. 한 손으로 권총을 잡고 카메라를 향해 겨누는 수미. (편집으로 장일에게 총을 겨누는 것처럼 보여줘도 좋을 듯)
45. 서울 도심 거리 / 밤
대형화면에 비추는 장일의 얼굴. 아이들과 걸어오는 모습. 환하게 웃는 모습.
장일, 카메라 정면을 향해 말한다.
장일;바르고 공정하게. 한 치의 억울함도 없도록!
장일의 대사 화면 자막으로 흘러간다. 거리 어느 한 곳, 멈춰 서서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 용배. 감격해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표정으로 보고 서 있는 용배.
용배;.....그려... 내 아들.....이장일 검사....
학생들과 함께 오색 풍선을 하늘 위로 날리는 장일의 모습.
장일;대한민국 검찰은 국민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46. 외국 펜트하우스 / 낮
천정이 높고 커다란 창이 있는 공간. (배트맨의 거처 같은, 현실에 없는 공간 같은 느낌) 진공관이 큰 오디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천장 높은 공간에서 울리는 음악 사운드 그래도) 창을 향해 세워둔 턱걸이 대. 바닥엔 메트로놈 놓여있다. 4/4박자 정도로 똑깍똑깍 움직이는 메트로놈. 반팔셔츠 차림의 선우, 턱걸이 하는 뒷모습. 단단한 팔 근육. 셔츠 등 부분에 땀이 배어나와 젖어있다. 팔에는 칼이 스친 것 같은 상처가 여러 개. 셔츠가 올라가 보이는 허리 쪽 맨살에도 흉터가 보인다. 선우, 햇빛이 비치는 창문 쪽을 향해 눈을 감은 채 턱걸이 하고 있다.
47. 고급 일식집 / 밤
별도의 룸. 진노식, 마희정 앉아있다.
희정;뭐 이래... 10분 지나도록 안 오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노식;(못 마땅한 표정)
밖에서 거들먹거리는 소리 들리며 (안내해주는 종업원들에게 ‘어 그려 고마워
수고 하네 자네들....’) 용배, 들어온다. 어깨를 펴고 당당함이 생겼다.
용배;아이구 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노식;잘 지냈습니까 용배씨.
용배;회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이번에 또 계열사 상장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희정;얼굴 좋아지셨네요. 검사님 아들 두시더니 신수가 훤해 지셨어요.
용배;사모님도 여전히 고우십니다. 무슨 유명한 전시회 한다는 소식, 신문 에서 봤습니다.
희정;네,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 어렵게 모셔다 전시회 해요. 이 검사랑 보러 오세요.
용배;예예.
상 가득 차려져 있고, 용배에게 술을 권하는 노식.
노식;한 잔 받아요.
용배;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노식;먼저 받으세요. 자....
용배;(술을 받아 살짝 뒤돌아 마신다)한잔 올리겠습니다.
용배, 노식에게 술 따라준다.
노식;우리 장일군, 아니 이검사도 같이 봤으면 했는데....
용배;아이구 저도 지금 사흘 째 얼굴을 못보고 있습니다.
노식;이 검사 골프 합니까? 언제 같이 한번 나가면 좋을텐.....데.
용배;(말 끊어)골프고 나발이고 집에 올 시간도 없는걸요.
노식;.... (기분 상하지만)짬을 내서라도 해야지. 인맥 넓히는 데 골프만한 게 어딨다고.
용배;뭐 얘기는 건네 보겠습니다만.....(열을 올려 잘난 척)우리나라 국민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말썽 일으키는 사람은 어쩌다 하나예요. 대부 분의 검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 머리 그 실력으로 왜 그 돈을 받고 일하겠습니까. 소신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 훌륭한 사람들 입니다.
노식;(같잖다는 듯 보면서도)그래요, 용배씨 말이 맞아요.
희정;이검사, 여기저기 선도 많이 들어오겠어요.
용배;예, 전화는 엄청 오는데 아직은 결혼에 관심이 없나 봅니다.
희정;아직이 뭐야. 할 나이 됐죠. 저희도 윤주 때문에 걱정입니다.
이 검사 동료들 중에 괜찮은 남자있으면 소개 좀 부탁해요.
용배;일러 놓겠습니다.
노식;혹시 부산고법 판사 한 분이랑 이검사가 줄을 좀 놔줄 수 있을까요.
48. 장일 아파트 / 밤
(13년 전 장일 아파트와 다른 곳) 장일, 피곤한 듯 들어온다.
용배;어서 와라, 아들. 저녁은 어떻게 했냐.
장일;사무실에서 먹었어요.
용배;출출하면 멸치 국수 한 그릇 어때? 아버지 표 멸치 국수.
장일;(미소)그럴까요?
국수 먹고 있는 장일. 거실 한 쪽에 소리 작게 켜져 있는 TV. ‘문화 산책’ 같은 프로. 수미의 시카고 작업 화면이 나오고 수미 인터뷰 하는 모습도.
수미(E);한국엔 13년 만에 처음 갑니다. 기대되고 설레요.
장일과 용배는 보지 못한다.
용배;겉저리도 먹고. 저녁에 무친 거다.
장일;네.
용배;오늘 오랜만에 진회장님 만났다. 비싼 식당에서 저녁 사시더라.
장일;...... 웬일로 연락을 하셨대요?
용배;니가 텔레비전에도 나가고 하니까 생각 났겠지. 진회장님 사업도
나날이 번창하고 있더라니까.
장일;잘됐네요.
용배;너 혹시 부장판사 한분이랑 진회장님 소개해 줄 수 있냐? 아까 회장 님이........
장일;(신경질 적으로 젓가락 탁 놓는)그런 부탁하려고 부르셨군요.
용배;아니 꼭 그것 때문은 아니고....
장일;아버지, 전 남들한테 존경받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
용배;지금도 벌써 존경 받는 검사지 너는.
장일;진회장한테 이상한 부탁 같은 거 받지 마세요.
용배;내가 무슨 부탁을 받았다고 그래.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건데.
장일;제가 제일 기뻤을 때가 언젠 지 아세요? 초임 검사 때, 8백만 원
사기로 고소당했던 이발소 아저씨 누명 벗겨준 거였어요. 가게를 날 릴 뻔 했다고 제 손 잡고 울면서 고맙다고 하실 때, 아 내가 꿈을 이룬 거구나 정말 기뻤어요. 저는 검사로 사는 게 너무 좋아요.
이상한 오해에 얽혀서 억울하게 옷 벗는 선배도 많이 봤어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용배;그럼 그럼. 니 말 무슨 뜻인지 내가 알지.
장일;검찰 총장도 청문회를 거쳐 뽑는 세상이예요. 오해 살 일은 눈꼽만큼 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용배; (아들의 야심에) !! 그래 내 아들 정도면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도 갈 수 있지. 진회장 사모님이 너한테 좋은 규수자리도
소개해 주고 싶.....(어 하던데).....
장일;(말 끊어)제가 같이 살 사람도 제가 골라요.
용배;내 며느린데 내 맘에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장일;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아버지한테 꼭 보여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용배;그래 내 아들. 고맙다. 국수 불겠다. 어여 먹어.
장일, 맛있게 먹는. 용배, 대견하게 보고.
장일;아버지나 재혼 하시면 어때요?
용배;이 나이에 무슨 재혼이여 재혼이.
장일;그러면서 왜 얼굴 빨개지세요?
용배;국수나 어여 먹어.
용배, 웃고. 장일도 미소. 행복하고 편안한 父子의 밤. 과거의 일은 모두 잊고 묻혔다. 구원 받았다. 좋은 일 하면서 빛나게 사는 일만 남았다. TV속의 수미도 환하게 웃고 있다.
49. 특급호텔 / 낮
바쁘게 걸어가는 하이힐. 딱 붙는 치마, 실크 블라우스, 진주귀걸이. 품위 있게
꾸민 한지원, 바쁘게 걸어간다. 귀에는 이어폰.
지원;대연회장으로 오세요. 세팅 확인할 게 있습니다.
대 연회장. 좌석 배치도를 보며 테이블 한 곳을 살핀다. 여직원 1,2와 요리사 복장의 남자 함께 서 있다.
지원;프랑스 문화부 차관은 채식주의자예요. 이 분 메인 디쉬는 스테이크 아닙니다. 그리고 독일 영화협회장은 왼손잡이세요. (한 곳 나이프와
포크를 바꿔놓는다)신경 써 주세요.
엘리베이터로 바삐 가는 지원.
지원:(이어폰 마이크에)네 실장님 지금 갑니다.
50. 특급호텔 스위트 룸 / 낮
실장, 지원 , 여직원 1,2 모여 서 있다.
실장;초특급 VIP가 오십니다. 성함은 데이빗 김. 60대 중반의 교포 사업 가신데 서울에서 장기 체류할 호텔을 찾고 계시단 정보를 입수해서
우리가 물밑작업을 했어요.
지원, 방에 비치된 와인 잔 투명도를 살피고 캡슐 커피를 비치하고 커피 잔도 빌레로이 보흐 흰색라인이나 로얄 코펜하겐 커피잔 2인용 세트를 놓는다.
팀장(E);그 쪽에서 원한 건 투자 설명회나 비즈니스 미팅 시 한 사람의 매니저가 전담해서 일을 준비해 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
한지원 과장이 맡아주세요.
지원;저는 이번 달에 행사도 많고 VIP웨딩도 잡혀있고 일이 많은데요.
영자 신문들과 프랑스 독일 신문, 잡지도 갖춰놓는다. 꽃도 한 송이 꽃병에 바로 해놓고.
팀장(E);과장급 매니저 다섯 명의 인적 사항을 보내드렸고, 그 중에 한지 원씨를 선택했습니다. 지원씨가 스펙은 제일 딸리는 데 말이죠.
호텔 창문의 커텐을 닫는 지원.
51. 기내 / 낮
퍼스트 클래스. 점자를 짚고 있는 손가락. 수면용 안대를 하고 의자를 살짝 뒤로 젖힌 채 점자로 책을 읽고 있는 선우. 선우, 안대 풀지 않고 조심스레 손으로 테이블을 더듬어 와인 잔을 든다. 와인 한 모금 마신다.
52. 대학로극단 소극장 / 낮
객석에서 자는 듯 누워있다 놀라 벌떡 일어나는 광춘.
광춘;이게 무슨 꿈이고. (놀라)아이고 가슴이야.
마른 대걸레로 무대 닦고 있는 청년 소리친다.
청년;낮잠만 주무시지 말고 무대 닦는 것 좀 도와주세요.
광춘;내가 지금 낮잠을 잔 게 아니고,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다 시범을
보인 거 아냐. 너 그리고 나한테 고문님 소리 왜 안 붙여.
청년;이제 나머지는 고문님이 닦아주세요. (대걸레 놓고 들어간다)
광춘;저저 싸가지..... 내가 너한테는 굿 연기 가르쳐 주나 봐라. 넌 헐리웃 나갈 꿈도 꾸지 마.
수미, 출입구로 들어온다.
광춘;이게 무슨 꿈일까.... 선우 이놈이 살아있긴 살아있나.
수미;최 고문님.
광춘;흣! 깜짝이야. (돌아본다)
수미;고마워, 약속 지켜줘서.
광춘, 눈물이 날 듯. 수미를 안는다.
광춘;왜 왔어. 더 넓은 땅에서 출세하고 잘난 척 하면서 살지, 여긴 뭐 볼 게 있다고 기어들어와.
수미;다시 갈까.
광춘;지랄한다 가지 마라.
수미;저녁에 우리 술 한 잔 해야지.
광춘;좋지!
53. 갤러리 / 낮
텅 비어있는 갤러리. 둘러보고 서 있는 수미. 윤주, 바쁘게 걸어온다.
윤주;최수미 작가님?
수미;(거만하게 돌아보는)
윤주;박윤주 실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악수 청하는데)
수미;(악수 무시하고)관장님과 약속했는데요.
윤주;관장님 곧 오실 겁니다. 차부터 한잔 하시죠.
수미, 윤주 머그 잔 놓고 앉아있다.
윤주;2년 동안 문 닫고 새로 공사를 했어요. 최작가님이 리오프닝
(reopening)전시를 하시는 겁니다. 저희로서도 기쁘게 생각하구요.
수미;축하드려요.
윤주;네?
수미;제 작품으로 오픈 하시는 걸 축하 드린다구요.
윤주;아.... 예.... 감사합니다... (하면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싶은 표정)
마희정, 분주하게 걸어온다.
희정;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마희정 관장입니다.
수미;안녕하세요.
희정;도착하신 날은 쉬실 줄 알았는데. 그 열정 존경합니다. (머그 잔 보 고) 어머! 찻잔 세트 제대로 된 거 다시 내 와.
포트와 우유 설탕 그릇에 은쟁반 까지 갖춰진 세트 놓여있다. 포스터엔 수미의 사진같은 그림과 함께 ‘극사실주의 화가 최수미 귀국展’
희정;포스터도 마음에 드시죠? 시카고에서 작품보고 제가 한 눈에
반했어요. 한국에선 꼭 저희가 처음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수미;안목이 뛰어나시군요. 감사합니다.
윤주;혹시 초대하고 싶은 분 명단 있으심 주시죠. 저희가 초대장 발송해
드릴겠습니다.
수미;아뇨,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하겠습니다.
54. 호텔식 레지던스방 / 밤
커다란 트렁크 여러개 놓여있고 ‘최수미 귀국 전시회’ 초대티켓 여러장 놓여있다. 빈 봉투도 여러 장. 수미, 봉투에 이름을 적고 있다. ‘서울 중앙지검 특수부 이장일 검사님 앞’ 딱 한 장 쓰곤 일어선다. 나머지 빈 봉투와 초대장, 필요 없다는 듯 옆으로 쓱 밀어버린다.
55. 화훼 비닐하우스 / 낮
(용배는 분재나 난초 농원을 하는 설정)
용배, 난 화분에 흙을 정성껏 채워넣고 있다. 사각모 쓴 장일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 걸려있다. 핸드폰 벨이 울린다. 번호가 뜨지 않는. 용배, 갸우뚱 하며 전화 받는다.
용배;여보세요?
선우(F);여보세요.
용배;예, 말씀 하십쇼.
선우(F);이장일 검사 아버님 되십니까?
용배;예, 제가 그렇습니다만.
선우(F);안녕하셨어요.
용배;..........중매업체 분이신가요?
선우(F);저 선웁니다. 김선우.
용배; ! 선..... 우?
56. 장일 아파트 / 밤
거실에 마주 앉아있는 장일과 용배. 장일, 표정 굳어 있다.
장일;선우가요?
용배;그래....
장일;(너무 황당해 말문이 막히는).... 선우가 왜요? 왜 우릴 갑자기 보고 싶데요? 아니.... 그동안 어디서 뭐하고 살았대요. 목소리가 선우 맞 아요?
용배;맞는 것도 같고....
장일;절 왜 만나재요?
용배;너무 오래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하다구 꼭 한번 보고 싶대.
장일;.........다른 애긴 없구요?
용배;없구. 어디서 뭘하고 지냈냐 물어봐도 만나 뵙고 얘기하고 싶대.
장일;.........아버지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대요?
용배;회장님 별장 관리실에 물어봤대. 아들 친구라고.
장일;그렇게 까지 연락을 한 이유가 뭐지.
용배;너 시간 없다고 계속 잡아뗄까.
장일;아뇨. 봐요.
57. 카 페 / 낮
창 가 자리, 선글래스 쓴 선우 앉아있다. 미동 없이 조용히 앉아있다.
선우;............
내키지 않는 표정의 장일과 용배, 들어선다. 입구에서 두리번 거리는 용배.
용배;...... 아직 안 왔나......
장일;왔네요.
장일의 시선이 닿는 곳, 창가 옆 테이블 자리에 맹인 선우가 앉아있다. 13년 만에
보는 선우. 장일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본다.
용배;저기.... 색안경 쓴 사람 맞지?
장일과 용배, 다가온다.
용배;선우구나.
선우, 선글래스를 벗으며 일어난다. 장일과 용배가 서 있는 방향과 살짝 비낀 곳을 보고 서서
선우;(반갑게)오셨어요.
장일;오랜만이다.
선우;(웃으며)장일이구나!
선우, 비낀 방향으로 손을 내민다.
장일;.........
장일, 비낀 방향에 맞춰 손을 잡고 덥썩 안아준다.
장일;반갑다 선우야.
선우;(웃으며)그래. 반갑다, 잘 지냈어?
두 사람 잡은 손. 악수. 세 사람 앉아있다. 초점 안 맞은 채 대충 내리 깐 눈동자. 선우와 마주 앉는 장일과 용배. 어색하다. 선우, 미소 짓고 있다. 시선은 아래로 떨구고 있거나 장일과 용배의 어깨정도를 바라본다.
장일;이게 얼마만이냐.... 십년 넘었지.
선우;한 13년 됐을 걸.
용배;선우 넌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어.
선우;저야 뭐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별거 없죠 뭐. 지압도 하고
점자도 가르치고 뭐 되는대로 살았어요.
장일, 선우를 찬찬히 본다. 프라다 풍의 흰색 셔츠부터 말끔한 구두까지. 걷어입은 셔츠소매 아래로 탄탄하게 근육이 붙은 팔뚝.
장일;선우 너 얼굴 좋아 보인다.
선우;넌 좀 피곤해 보인다. 며칠 밤 샌 사람 같아.
용배;(웃으며)잘도 때려 맞추는 구나.
장일;.........(선우를 빤히 보는데)
선우;(더 맹인처럼 눈 뜨며)장일아, 나 이제 안마랑 지압 아주 잘한다.
어깨 아플 때 말해. 아저씨도 얘기하세요. 출장 안마 해드릴게요.
용배;넌 요즘 어떻게 사냐. 결혼은 했구?
선우;(푹 웃으며)제가 무슨 결혼이예요. 장일이 넌?
장일;나도 안했어.
선우;넌 왜? 만나자고 줄 서는 여자들이 넘쳐 날 텐데....
장일;바쁘기도 하고....
선우;바쁘다고 결혼을 안해? 그건 니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 안 그래?
장일, 귀찮다는 듯 용배를 본다. 장일, 손목시계를 본다. 손가락으로 시계를
가리키며 빨리 가야 한다는 표정. 용배, 잠깐만 있으란 손짓 눈짓. 장일, 짜증난다는 표정 계속. 선우, 멍하니 앉아있다. 커피, 온다.
선우;아저씨, 커피에 설탕 많이 넣어 드셨죠? 제가 넣어드릴게요.
용배;내가 할게 괜찮다.
선우;제가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오랜만에 뵙는데.....
선우, 더듬더듬. 설탕 그릇을 찾는다. 뚜껑을 열고 스푼으로 설탕을 떠 잔에 넣으려다 물잔을 쳐 넘어뜨린다. 테이블로 쏟아져 장일 바지에 떨어진다.
선우;어? 내가 물 쏟았냐?
선우, 더듬어 냅킨을 왕창 빼 테이블을 닦는다. 잔들을 더 달각거리며 치고 냅킨 한 쪽이 커피 잔에 살짝 빠지기도 한다.
장일;괜찮아, 내가 할게.
선우;아냐, 나도 할 수 있어.
장일;(날 선)내가 한다니까!
선우;...........(주춤)..........
장일;(신경질 적으로 옷에 묻은 물을 닦아낸다)선우야.
선우;응....
장일;우릴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선우;이유? 특별히 없는데......
장일;이유가 없어?
선우;난 그냥.....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못해서 니가 날 걱정하지 않을 까.... 그래서 보자고 한거야.
장일;나두 너 궁금하고 걱정했다. 무사히 잘 살고 있었다니 다행이고.
선우;넌 그동안 나 한 번도 안 찾아봤니.
장일;선우야 미안한데 내가 지금 좀 바쁘다. 차장검사님이 소집한 회의가 있는데 너 볼려구 잠깐 나온 거거든.
선우;아, 그래? 그럼 빨리 가봐야지. 장일아, 오늘 나와 줘서 고맙다.
장일;미안하다, 먼저 일어날게. 아버진 더 계시다 오세요.
선우;아냐 아냐. 아저씨도 바쁘실텐데.... 다음에 또 뵈요. 저도 가야
돼요.
용배;....그러자 그럼.
장일;넌 누가 데려다 줬냐.
선우;이젠 나 혼자서도 잘 찾아다녀. 걱정 마.
장일;그래 그럼 또 보자.
선우;또 만나주면 영광이고. 장일아 오늘 반가웠다.
장일;그래, 간다.
장일, 용배 걸어 나간다. 선우, 가만히 앉아있다. 장일, 용배 카페 밖으로 나간다.
창밖으로 두 사람 보인다. 장일, 창 밖에서 선우를 바라본다. 멍하니 창 밖을 향해 가만히 앉아있는 선우. 장일과 용배, 걸어간다. 멀어진다.
선우;..............
선우, 창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다. 초점 없는 멍한 눈동자. 점점점 돌아오면서
초점이 딱 맞는 그 순간! 깊은 칼날 같은 눈빛!... 멀어지고 있는 장일 용배의 뒷
모습을 쏘아본다. 걸어가던 장일, 뭔가를 느낀 듯 걸음 느려지며 돌아보려다 다시 걸어간다. 선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 (또는 문자 확인이나) 일어선다.
58. 카페 앞 거리 / 낮
카페에서 나와 햇빛 쏟아지는 거리로 나서는 걸어가는 눈빛 또렷한 선우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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