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11
씬1 슈퍼 앞 길(새벽, 회상-전회 연결)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던 소년 태성이 12년 전 노인을 돌아본다.
태성(슬픈 눈빛으로) 아뇨. 제 이름은 승하예요, 할아버지.
씬2 슈퍼 앞(밤, 현재)
준표(자기 귀를 의심하듯 굳어져서) 지금...이름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씬3 승하 거실(밤)
반지를 내려놓는 승하, 오르골 상자 밑에 숨겨둔 사진 두 장 중에
위에 놓인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본다. 소년태성과 소년승하가 (10회
씬12) 꽃집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승하의 눈빛이
무척 슬퍼 보인다. (사진은 소년오수를 찍었던 사진기로 찍은 것이고
사진에 스크래치는 없습니다)
씬4 준표 오피스텔 앞 복도(늦은 밤, 전회연결)
오수(다가가서) 핸드폰은 왜 안 받으십니까?
준표(생각이 많은 얼굴로 가만히 본다)
오수(마음이 급하다) 최근에 택배 받은 적 있으시죠?
준표그 전에 강형사님이 아셔야 할 얘기가 있는데..
오수(본다)..?
준표(의미 있는 미소로 본다)
오수(다구치 듯) 얘기해요. 뭡니까?
준표(비죽거리듯) 지금 벌어지고 있는사건의 배후조종인물은 당신이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겁니다.
오수(굳어지며 본다)..!
준표왜냐하면...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오수그게..무슨 말입니까?
씬5 승하 거실(밤)
소년승하와 태성이 함께 찍은 사진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승하,
사진 속 승하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승하...보고 싶다, 승하야.
타이틀 뜬다. 마왕 제 11회.
씬6 준표 오피스텔 복도(늦은 밤)
준표(여유 있는 미소로)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건 이미 승부가
난 게임이란 얘깁니다.
오수(무섭게 노려보며 O.L.) 당신하고 말장난 할 시간 없습니다. 숨기는 게
있다면 전부 말하는 게 성기자님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준표(여유 있게)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있긴 하죠.
오수(본다)
준표(똑바로 보며) 훌륭하신 강동현의원의 아들 강오수가 살인자란 명백한
사실.
오수(그 말에 순식간에 흔들리는 눈빛)
준표그리고 죽은 정태훈의 영혼이 강오수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
오수(흔들리지 않으려는 듯 입 꽉 다물고 노려본다)
준표(이죽거리듯) 강형사님이 그 입장이라면 어땠겠어요? 죽은 것도 억울한데
피의자는 정당방위로 풀려나고 어머니와 동생까지 줄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오수(주먹을 꽉 쥔 채 보는)..
준표나라도 편하게 눈을 못 감았을 겁니다. (의미있는 미소로) 어쩌면
무덤에서라도 다시 살아나왔을지도 모르죠.
오수(마음 꽉 다잡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죠. 최근에 택배 받았죠?
준표(대답을 궁리하듯 보며)..그런데요?
오수택배로 받은 타로카드 지금 갖고 있습니까?
준표(아무렇지 않게) 타로카드라뇨?
오수택배로 타로카드 받았잖습니까?!
준표그런 거 받은 적 없습니다.
오수(의아한) 뭐라구요?
준표받은 적 없다구요.
오수(긴가민가해서 보는데)
<플래시 컷-10회 씬41>
--빨간 봉투에서 <달> 타로카드 꺼내들어 보곤 다시 봉투에 넣는
검은 장갑을 낀 남자(영철)의 손. 그 위로.
해인(E) 강형사님이 받으신 타로카드와 같은 카드였어요.
오수(확신을 갖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타로카드를 받았어요.
준표(웃으며) 믿든 안 믿든 난 받은 적 없습니다.
오수왜 이러는 겁니까? 당신이 택배를 받았다는 걸 확인하고 온 겁니다.
준표택배는 받았다니까요. 하지만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수(황당해서) 빈 상자가 왔다는 얘기예요?
준표맞아요, 빈 상자.
오수(O.L.) 이유가 뭡니까?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구요?
준표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불신하는 모양이죠?
오수(굳어져서 본다)
준표혹시 12년 전에 내가 진실을 알고도 당신한테 아니 강동현한테 유리한
기사를 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오수....
준표그건 어디까지나 실수였어요. 당신하고 난 다르단 애깁니다. 얘기 끝났으면
그만 돌아가시죠. (가려는데)
오수(막아서며, 다급한) 타로카드는 살인을 전제로 보내진 겁니다. 성기자님
목숨이 달린 문제란 말입니다!
준표(여유 있는) 내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타로카드는 안받았어요.
오수(O.L.) 이것 봐요!
준표(O.L.) 당신 같은 사람이 형사가돼서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 안 해?
오수(일그러진다)
준표(비웃듯) 그리고 난 당신한테 보호받고 싶은생각 없어. 강오수란 사람이
더 무섭거든.
오수(끌어 오르는 것을 참으려고 주먹을 꽉 쥔다)
준표사람을 한 번 죽인 사람이 두 번이라고 못하리란 법 있냐구? (하는 순간)
-오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준표의 얼굴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려
버린다. 바닥으로 나뒹구는 준표.
오수, 준표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뒤엉켜 일그러진 채 준표를 노려본다.
준표(얼굴 싸잡고 비죽 웃으며) 본성은 어쩔 수 없군. (일어서며) 피는 물보다
진하단 말도 불변의 진리구.
오수얼마든지 비웃어도 좋아. 얼마든지 경멸하고 얼마든지 욕해. 당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지만 난 당신을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지금 난..형사니까. 그게 내 일이니까. (돌아서는데)
준표아버지한테 전해.
오수(멈추고 보면)
준표사람은 반드시 뿌린 데로 거두는 거라구.
오수(무섭게 노려보다가 휙 돌아서 간다)
씬7 준표 오피스텔 건물 앞(늦은 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오수, 준표의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준표(E) 강오수가 살인자라는 명백한 사실.
-오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듯 머리를 흔든다.
<플래시 컷-10회 씬37>
영철(말은 더듬지만 오수를 똑바로보며)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넌 여전히
나쁜 놈이야.
-오수, 가슴을 조여 오는 괴로움을어쩌지 못하고 얼굴을 쓸어내린다.
씬8 승하의 거실(늦은 밤)
승하, 사진을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서 있다. 그 위로.
해인(안타까운 심정으로 E) 그 사람도 어두운 터널에 갇혀있으니까요.
<플래시 컷-8회 22씬>
해인변호사님이 주신 동화책 속에 오빠가 어두운 터널에 갇혀서 동생을
기다리듯이 그 사람도 누군가 자신을 어두운 터널에서 탈출시켜주길
바라는 거예요.
-승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꿈틀거리듯 눈빛이 흔들린다.
마음을 다 잡으려는 듯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는 승하,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사진을 오르골 상자에넣고 흔들리는 마음을 차단하려는
듯 뚜껑을 탁 닫아버리곤 겉옷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간다.
씬9 달리는 차 안(늦은 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라도 하려는 듯 입 꽉 다물고 앞만 보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승하.
씬10 포장마차(늦은 밤)
오수, 혼자 앉아서 소주잔을 비워내고 있다.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술로라도 풀어보려는 듯 잔을 연거푸 비워내곤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본다.
동현(E) 여러 소리 말고 아버지가시키는 대로 해!
씬11 동현의 서재(밤, 회상)
소년오수가 외면하고 서 있는 동현 앞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다.
오수(각오하듯) 사실 대로 말 할 거예요.
동현(노한 얼굴로 휙 돌아본다)
오수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구..사고였다고 말할 거라구요.
동현나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는 거냐?
오수(절망하듯) 사실이에요.
동현(O.L.) 니 친구들이 모두 봤어!
오수(울 것 같은 눈으로) 정말 사고였어요, 아버지. 저 때문에 시작된
일이지만..정말 사고였다구요.
동현(믿지 못한 채, 경멸에 찬) 한심한 놈.
오수(무너지듯 보는)
동현(외면하며) 사고든 아니든 내 아들이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어차피 다 정리됐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오수제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에요.
동현(버럭 O.L.) 니가 원하는 게 뭐야 그럼!
오수(흔들리는 눈동자..보는)
동현애비 얼굴에 먹칠하고 평생 낙오자로 사는 게 니가 원하는 거냐?
오수(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할 말을 잃고 보는)..
동현이건 니 문제만이 아니야! 나가 봐! (돌아서 버린다)
오수(아버지의 등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씬12 한강다리(밤, 회상)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소년오수의 발.
오수, 절망적인 얼굴로 밑을 내려다본다.
깊이를 알 수 없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어두운 강물..
죽겠다는 각오로 이곳까지 왔지만 어두운강물 앞에 서 있는 소년오수의
얼굴엔 무서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괴로움에 찬 오수의 눈엔 눈물이 그렁하게 차 온다.
마음을 다 잡고 눈을 꾹 감는 소년오수, 뛰어내리려고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가 엄습해 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는 소년오수, 텅 빈 눈으로 그렇게 멍하니 있다. 그 얼굴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무릎이 꺾이듯 털썩 주저앉는소년 오수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듯 소리 내어 아이처럼 울며..
오수..미안해. 미안해..미안해 태훈아. 미안해..(엉엉 운다)
씬13 포장마차(늦은 밤, 현재)
슬픈 눈으로 멍하니 후우~긴 숨을 내 쉬곤 술잔을 마저 비워내는 오수,
빈 잔에 소주를 따르려는데 병이 비었다. 힘없이 술병을 내려놓는 오수.
씬14 해인의 집 앞(늦은 밤)
오수, 터덜터덜 걸어와서 보면 해인의 집이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번호를 누르려다가 손길을 멈춘다. 스스로를 비웃듯
조소를 날리는 오수의 얼굴엔 회한과 아픔이 가득하다..
씬15 12년 전 사고 장소(늦은 밤)
승하, 홀로 그 자리에 서서 태훈이 쓰러졌던 장소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서 있다. 그 위로.
태훈(힘차고 밝은, E) 태성아!
승하(마치 그 목소리가 들리듯 돌아본다)
씬16 어느 거리(낮, 회상)
중학교 3학년 교복차림의 소년태성이 돌아보면 교복차림의 태훈이
학교에서 끝나 태성을 향해 웃는 얼굴로 달려와 선다.
태훈많이 기다렸지?
태성(밝은 얼굴로) 아니. 엄마 생일선물 생각해 봤어?
태훈역시 반지가 좋겠어.
태성반지?
태훈(태성의 어깨를 감싸고 걸으며) 엄마 반지가 하나도 없잖아. 생신선물로
딱이야.
태성난 오르골이 더 좋은데.
태훈(웃으며) 둘 다 사면되지 뭐.
태성돈이 모자라잖아.
태훈형이 아르바이트 했잖아. 은반지 사서 오르골 안에 넣으면 되겠다.
태성형이 힘들 게 모은 건데..괜찮아?
태훈엄마선물 사려고 모은 건데 뭘. 박하사탕은 내일 내가 살게.
태성그건 뭐 하러?
태훈엄마가 박하사탕 안 드시면 소화가 안 된다잖아.
태성(속상하다) 그럼 병원엘 가야지..(혼잣말 하듯) 병원비가 얼마나
된다구.
태훈(동생의 마음을 알기에 다독이는 미소로) 형이 엄마모시고 병원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태성차라리 돈으로 그냥 드릴까? 병원에 가시라구?
태훈(훗 웃으며) 선물은 선물이야.
태성..그런가.
태훈걱정하지 마. 형이 꼭 모시고 갈 거야.
태성(웃으며) 응.
태훈(웃는 얼굴로 동생을 보곤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태성, 멈추고 형을 보면 태훈이 레코드 가게 앞에 서서 무언가에 홀린 듯
서 있다. 오버 더 레인 보우가 흘러나오고 있다.
태성왜?
태훈이 노래..형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태성(음악을 들으려고 귀를 세운다..그리곤 태훈을보면)
태훈(음악에 심취한 듯 듣고 서 있다)
태성내가 테잎 사 줄까?
태훈비싸 관둬.
태성사 줄게. (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태훈(팔 잡아 세우며 미소로) 괜찮아. 이렇게 듣는 게 더 좋아. (하더니
다시 앞을 보며 음악을 듣는다)
태성(태훈을 본다)
-태훈, 입가에 미소를띤 채 음악을 듣고 있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태성, 형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그곳에 있다.
씬17 12년 전 사고 장소(밤, 현재)
승하, 그 때처럼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마치 음악이 들려오듯
눈을 감는다. 하지만 검은 밤하늘 아래 서 있는 승하의 모습은 마치
지옥과 같은 장소에 서 있는 사자처럼 보인다.
씬18 병원(낮, 회상)
교복차림의 소년태성이 정신없이 주위를 돌아보며 복도를 달려와 응급실
푯말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씬19 응급실 안(낮, 회상)
소년태성 안으로 들어와서 보면 하얀 시트가 목까지덮어진 태훈의
시신 앞에 태성모가 넋을 잃고 서는 뒷모습이 보인다.
그 옆엔 광두의 동료형사인 유형사(광두의 동료형사, 12년 전 모습)가
딱한 표정으로 말없이 보고 있다.
태성, 현실감이 전혀 없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창백한 태훈의 얼굴을 현실감 없는 표정으로 보는 태성.
(이때 태성모의 손엔은반지가 없습니다)
태성(믿기지 않는다)...엄마.
태성모(돌아본다. 넋이 나간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태성(가슴이 턱 막혀서)...어떻게 된 거야? (흐느끼듯) 형이..왜 여?어?
태성모(눈물이 주루룩 흐르더니 애써유지하고 있던 평정이 깨지듯 태성을
붙들고 통곡해 버린다) 태성아..어떡하면 좋아. 우리 태훈이 어떡하니..
우리 태훈이 어떡하면 좋아, 태성아.
태성(눈물이 흘러내린다)..엄마.
태성모(제정신이 아니다) 우리 착한 태훈이..우리 착한 태훈이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태성(엄마의 어깨를 꽉 잡아주며) 엄마.
태성모(몸부림치듯)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우리 태훈이가
왜 죽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바닥으로 쓰러지며 명치끝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며 운다)
태성엄마! (엄마를 꽉 끌어안고 울며) 엄마, 정신 차려! 엄마! 엄마 제발
이러지 마. 엄마..엄마..
씬20 12년 전 사고현장(늦은 밤, 현재)
눈을 감고 하늘을 보고 있던 승하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승하의 꽉 쥔 두 주먹에 떨림이 일고 있다.
씬21 법원 앞거리(낮, 회상)
소년태성, 넋이 나간 태성모의 어깨를 감싸 쥐고 걸어 나온다.
태성은 분노를 안으로 삭이듯 이를 꽉 물고 있다.
태성모(넋이 나가서) 이건 말도 안 돼...(허탈한 웃음으로) 허..정당방위 허.
태성다시..다시 재심청구하면 된다고 했어. 재심청구해요 엄마.
태성모(이미 포기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야, 태성아.
태성(울 것 같은 얼굴로) 포기하면 안 돼, 엄마. 잘못 됐으면
바로 잡으면 돼. 재심하면 분명히 진실이 밝혀질 거야.
태성모(모든 끈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고개만 가로젓고 있다)
태성(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억지로 누르고 모친을바라본다)
씬22 어느 산 속(낮, 회상. 7회 씬11과 동일한 장소)
화창한 봄 날. 태훈의 유골이 안치된 소나무 앞.
푸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지는 봄의 찬란한 햇빛.
그 사이에 태성모가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넋을 놓고 앉아 손가락에 끼고 있는 은반지를 슬픈 눈으로 본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주섬주섬 일어선다.
술기운이 있는 듯 비틀거린다. 발길을 돌려가려다가 다시 한 번
슬픈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듯 소나무를 바라본다.
씬23 태성의 집 근처 거리(늦은 밤, 회상)
어두운 밤거리를 소년태성이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뛰어온다.
모친을 찾아 나선 길인 듯 불안한 표정의 소년태성, 미친 듯이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쪽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건널목에
맥 놓고 서 있는 모친을 발견하곤 소년태성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민다.
태성, 시선은 모친에게 못 박힌 채 건널목을 향해 뛰듯이 걸어간다.
저만치 병원응급차 한 대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다.
태성, 건널목 앞에 서서 불안한 얼굴로 엄마! 하고 부르지만 사이렌
소리에 묻혀 버린다.
태성모의 모습도 병원 응급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태성, 엄습해오는 불길한 예감으로 보면 응급차가 사라지고 건널목엔
태성모가 자신을 슬픈 미소로 바라보고 서 있다.
태성, 모친을 향해 회답하듯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미소가 서글프다.
태성을 바라보며 건널목을 건너려고 한 발 내딛는 태성모, 술기운에
잠시 휘청한다. 태성, 마치 자신이 옆에 있기라도 한 듯 잡아주려다
멈추고는 건널목을 건너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태성모는 이미 건널목으로
내려섰다.
그 순간 태성모 앞으로 눈부시게 비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태성모, 망연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자동차를 본다. 그리곤
현실감 없는 판단정지의 상태인 듯한 표정으로 태성을 본다.
얼어붙은 소년태성의 얼굴위로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
씬24 어느 산 속(낮, 회상. 씬22와 동일한 장소)
아무도 없이 소년태성 혼자 모친의 재를 소나무 근처에 뿌린다.
너무나도 쓸쓸하게 모친을 보내고 있는 소년태성..
태성,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있지만 다문 입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오고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러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묻고 그제야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시간경과>
소년태성,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소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소년의 순수했던 얼굴은 이미 사라지고 소년태성의 얼굴엔 무서운
각오만이 서려있다.
씬25 달리는 차 안(밤, 현재)
12년 전 그날처럼 무서운 각오가서린 얼굴로 차가운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승하.
씬26 해인의 집 앞(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벽에 기대 서 있는 오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수의 눈빛엔 슬픔과 고통이 가득하다.
씬27 어느 후미진 곳(늦은 밤)
어두운 곳에 동현의 승용차가 멈춰있고 밖엔 석진이 서 있다.
그 앞으로 다른 승용차 한 대가 와 서더니 차 안에서 견사장(40대 초반,
남자)이 밖으로 나와서 동현의 승용차 앞으로 가더니 뒷좌석에 앉아있는
동현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석진이 앞문을 열어주면 견사장이 승용차에 오른다.
석진, 동현이 견사장을 찾은 의중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듯 불안한
기색으로 안을 슬쩍 살핀다.
씬28 동현의 차 안(늦은 밤)
동현, 뒷좌석에 앉아서 견사장에게 일별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견사장, 앞자리에 앉아 동현의 지시를 기다리듯 힐끔뒷자리를 본다.
동현성가신 일이 좀 생겼어.
견사장..말씀하시지요.
동현뭐 그리 신경 쓸 만한 작자는 아니지만 원래 큰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예방해서 나쁠 건 없다 싶어.
견사장...네, 의원님.
동현(옆에 봉투 하나를 집어서 준다)
견사장(두 손으로 봉투를 받는다)
동현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 작자 움직임을 파악하도록 해. 그리고 난
평화주의자야. 섣불리 건드려서 무리 일으키는일은 용납 못해.
견사장명심하겠습니다.
동현(끄덕이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견사장(밖으로 나간다)
동현(동요 없이 담담한)...
씬29 도서관 앞(아침)
해인, 밝은 걸음으로 걸어오는데 오수가 계단에 앉아 졸고 있다.
해인(놀라서 다가와 선다) 강형사님?
오수(퍼뜩 잠에서 깨서 본다)
해인설마 여기서 주무신 건 아니죠?
오수(머리를 흔들어 잠을 깨며 일어선다) 아닙니다. 금방 왔어요.
해인(걱정스레) 혹시 타로카드가 또왔나요?
오수그게 아니라 (하다 불쑥) 어제 전화했었는데..
해인(미안한 미소로) 오변호사님한테 얘기 들었는데 제가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오수(그 말에 더 섭섭해진다)...그럴 수도 있죠 뭐.
해인안 그래도 강형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오수무슨 얘긴데요?
해인타로카드가 들어있던 단테의 신곡에서 다른 잔상을 읽었어요.
오수(긴장해서) 다른 잔상이라뇨?
해인타로카드에서 보였던 편의점이 아닌 다른 편의점이보였어요.
오수다른 편의점이요?
해인..네.
<플래시 컷-10회 씬59>
--편의점 앞 도로에 세워 진 ‘공사 중’ 간판.
--나희와 희수가 함께 찍은 사진을 빨간 봉투에 넣는 누군가(영철)의 손.
--택배 상자를 누군가에게 건네받는 남자의 손, 그 손목에 채워진
굵은 은팔찌.
--편의점으로 향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고 공사 인부용 안전모를 쓰고 있다.
씬30 도서관 밖 한 곳(아침)
해인과 오수 걸어오면서.
오수그럼 이번엔 택배를 동시에 두 군데로 보냈다는 얘긴가요?
해인그런 것 같애요. 도서관 책에 타로카드는 택배를 부탁한 사람이 직접
놓고 간 거구요. 그래서 책과 타로카드에서 그 사람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수그렇다면 성준표가 타로카드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해인(의아한) 성준표라면 저번에 말씀하셨던..
오수(O.L.) 맞아요. 타로카드에서 읽었던 편의점을 찾았는데 택배 수취인이
성준표였어요.
해인(긴장해서 본다)
오수근데 성준표는 빈 상자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해인(의아해서 본다)
<플래시 컷-10회 씬41>
--빨간 봉투에서 <달> 타로카드를 꺼내들어 보곤 다시 봉투에 넣는
검은 장갑을 낀 남자의 손.
해인타로카드에선 분명히 강형사님이 받았던 것과 같은 타로카드가 보였어요.
책에선 사진이 보였구요.
오수(긴장해서) 사진이요?
해인..네.
오수어떤 사진입니까?
해인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에요. 남자하고 여자요.
오수사진 속 인물은 모르는 사람이었구요?
해인네.
오수(갈수록 혼란스러운 얼굴)
해인(자신도 마찬가지다) 제가 본 잔상이 정확하다고 할 순 없어요.
오수하지만 성준표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빈 상자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구요.
해인(끄덕인다)
오수일단 사진을 받은 사람을 찾아야겠어요. 성준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 사람을 찾아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해인..네.
오수근데...어젠 어디에 있었어요?
해인(무슨 말인가 해서 본다)
오수(실은 제일 궁금했었던 일이다) 오변호사 말엔...해인씨가 잠이 들었다고
하든데..(말끝을 흐린다)
해인(민망한 미소로) 아...그게.
오수(궁금해 죽겠지만) 아니 뭐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되구요.
해인병원에 있었어요.
오수(놀라서 목소리가 저절로 커진다) 병원은 왜요? 어디 아픕니까? 혹시
쓰러진 거예요? 무리하면 쓰러지기도 한다면서요? 그런 겁니까?
해인(미소를 지으며) 하룻밤만 자고나면 괜찮아져요. 보세요. 멀쩡하잖아요.
오수(걱정가득) 멀쩡한 사람이 왜 쓰러져요?
해인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오수(O.L.) 어떻게 걱정을안 합니까?
해인(좀 당황스럽게 본다)
오수(걱정과 미안함으로) 지금부턴 사건도 타로카드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쉬어요. 끝나면 집에 곧장 가서 밥 먹고 잠자고 그것만 해요.
내 말 알아들었죠?
해인(웃는 낯으로) 그건 안 되죠. 출근도 해야 하고 TV도 봐야하고 엄마하고
수다도 떨어야하고 저 할 일 많아요.
오수해인씨?
해인(O.L.) 조심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수(할 말 없어 보다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내민다) 자요.
해인(보면 호신용 호루라기다. 뜨악해서 본다)
오수(멋쩍게) 보기보단 호신용으로 꽤쓸 만합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갖고 다녀요. 자요.
해인(자신을 생각해주는 오수의 맘이 고마운 듯 미소로 받으며)..고맙습니다.
(시계보곤 급해지듯) 저 들어가 봐야겠어요.
오수그래요. 어서 가요.
해인네. (하곤 오수의 대답도 듣기 전에 돌아서서 급하게 간다)
오수(걱정스럽고 아쉽게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는데)
(E)호루라기 소리.
오수(휙 돌아본다)
해인(장난스럽게 웃으며) 성능 좋네요.
오수(멋쩍게 웃는다)
해인전화 주세요. (돌아서서 간다)
-오수, 웃는 얼굴로 해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그 웃음이 사그라지더니
급하게 발 길 돌려서 뛰듯이 간다.
씬31 강력5팀 복도(아침)
반팀장, 오수, 재민, 민재.
반(의혹에 찬) 성준표가 왜 빈 상자를 받았다고 하는 거지?
재민진짜 빈 상자를 받았을 수도 있죠.
오수거짓말일 확률이 훨씬 높아. 팀장님, 저하고 이형사는 다른 택배가
보내진 편의점을 찾아보겠습니다.
반그래. 신형사는 김형사하고 같이 성준표를 따라붙어.
재민..네.
반근데 편의점을 무작정 어떻게 찾아?
오수서울시내 구청 토목과에 전화해서 관할 내 공사 있는 장소를 전부
팩스로 받았습니다.
민재(놀라서) 벌써?
오수가자. (반팀장에게) 다녀오겠습니다. (나가고)
민재(급하게 따라 나가면서) 다녀오겠습니다!
반(자리에 앉으려는 재민에게) 뭐해? 성준표 따라붙으라니까!
재민김형사님이 아직.
반내가 김형사까지 찾아줘!
재민(바짝 군기 들어서) 아닙니다. (후다닥 급하게나가고)
반(후우...답답한 듯 숨을 들이쉬며 서성거린다)
씬32 00중학교 도서관(낮)
태성이 다녔던 중학교.
준표와 서무과 직원이 졸업앨범을 모아둔 곳으로 걸어온다.
직원졸업연도가 1995년이라고 하셨죠?
준표..네.
직원(서가에 꽂혀있는 앨범을 살피더니 앨범 하나를 집어 들며) 여?네요.
준표(받아서 들고) 고맙습니다. (바로 앨범을 펼쳐 찾기 시작한다) 3학년 3반
정태성...
-준표, 한곳에 시선이멈춘다. 분명 3학년 3반 33번 정태성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진은 없다.
준표(놀라서 직원에게) 사진이 왜 없습니까?
직원없어요?
준표정태성만 사진이 없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직원(앨범 들여다보며) 글쎄요. 졸업사진을 안 찍었나?
준표정태성 담임선생님이셨던 분 아직 이 학교에 계시나요?
직원..아뇨.
준표(실망해서..불현듯 생각난 듯) 생활기록부에 사진이 있죠?
직원있긴 하지만 본인과 가족 외에는 열람이 안 됩니다.
준표(사람 좋은 얼굴로 부드럽게) 정태성은 오래전에 사망했고 가족도
없어요. 미국에 있는 지인 말로는 정태성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조카
같다고 하셔서 제가 확인을 하러 온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직원(망설이는) 그래도 가족동의도 없고..
준표동의해 줄 가족이 없다니까요. 제 신분도 밝혔고 이유도 들으셨잖아요.
사진만 확인하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직원(망설이다가) 그럼 사진만 확인할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준표(환해지며) 고맙습니다.
씬33 승하 사무실 복도(낮)
택배상자를 든 택배회사 직원이 복도를 걸어간다.
씬34 승하 사무실(낮)
승하, 나가려고 가방 챙겨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노크소리.
승하네.
여직원(택배상자를 들고 들어오며) 택배 왔는데요.
승하(일순 표정에 변화가 일다가 이내 담담하게) 이리 주세요.
여직원(상자를 건네고 나간다)
-승하, 택배상자를 가만히 본다. 지금까지 보내졌던 택배처럼 발신인이
없다. 차분한 손길로 택배상자를 여는 승하.
상자 안에는 짙은 노란색 봉투가 들어있다.
승하..짙은 노란색이라...
-별 다른 동요 없이 봉투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예상했던 대로
타로카드다. 승하, 카드를 뒤집어서 확인해 보면 <탑 XVI Tower>카드다.
승하, 자신이 바라던 바와 다른 결과인 듯 허탈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머리를 가로젓는다. 그리곤 정 위치로 돼 있던 <탑> 타로카드를
역 위치로 돌려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승하의 눈빛이 무섭도록 싸늘하다.
씬35 중학교 서무과 앞 복도(낮)
준표(황당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생활기록부에도 사진이 없다구요?
직원(의아해서) 없을 이유가 없는데..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준표(기막혀서 허 웃으며 혼잣말 하듯) 철저하군.
직원네?
준표(비죽 웃으며)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가는)
직원(멍하니 보는)..
씬36 도서관서가 한 곳(낮)
해인, 책 배열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선다. 해인, 움찔해서
돌아보면 승하가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해인(순간 가슴이 뛰는 느낌으로)..오셨어요?
승하몸은 괜찮아요?
해인그럼요. 책 보러 오셨어요?
승하(대답대신) 점심 먹었습니까?
해인(본다)
승하해인씨하고 밥 먹으려고 왔어요. 나하고 밥 먹기로 한 약속 잊지 않았죠?
해인(순간 당황해서 보다가...어색한 미소로) 어제 병원비도 내 주셨으니까
밥은 제가 살게요.
승하계산이 정확한 사람이네요.
해인(훗 웃고 만다)
씬37 식당(낮)
소박한 식당 안.
승하와 해인 앞에 여러 가지 큰 양푼 대접에 비빔밥 재료로 보이는 야채가
들어있고 밥공기와 된장찌개가 놓여있다.
해인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에요.
승하그래요?
해인일단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하곤 양푼대접에 밥공기에 밥을
퍽 엎고는 찌개 국물까지 넣고 쓱쓱 밥을 비비기 시작한다)
승하(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해인(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으려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승하 시선과
마주친다)
승하(얼른 시선을 피하고는 그제야 수저를 들어 밥을 뜨려는데)
해인그게 아니구요. (하더니 승하의 밥을 양푼에 퍽 엎어주며) 이렇게 밥을
넣어서 찌개 국물을 몇 숟가락 넣은 담에요.
승하(표정은 뚝뚝하지만 해인이 시키는대로 찌게국물을 밥에 넣는다)
해인됐어요. 더 넣으면 짜요.
승하(착한 아이처럼 숟가락을 멈춘다)
해인이제 비벼서 드시면 되요.
승하(밥을 비빈다)
해인(재밌는 듯 웃으며) 보기보단 말을 잘 들으시네요?
승하(민망한 듯 해인의 시선 피한 채 대꾸도 않고 밥을 먹는다)
해인(빙긋 웃곤 밥을 먹는)
승하(입에 밥을 넣고 우물우물..그러다 슬쩍 해인을 본다)
해인(맛있게 밥을 먹고 있다)
승하(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지만 눈빛은 서글퍼 보인다)
해인(무심코 고개 들어 승하를 보면)
승하(시선을 돌린 채 밥을 먹고 있다)
씬38 도서관 밖 한곳(낮)
승하와 해인이 나란히 걸어온다. 두 사람 어색한 침묵.
승하, 해인의 손을 본다. 해인은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걷고 있다. 승하의 두 눈엔 그 손을 잡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해인(걸음을 멈추고) 도서관으로 들어가실 거예요?
승하(시선을 피하며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아뇨.
해인그럼 여기서 가시는 게 편해요. 주차장이 가깝거든요.
승하(끄덕인다)
해인조심해서 가세요. (가려는데)
승하(불쑥) 고마워요.
해인(돌아본다)
승하...맛있는 밥은 어떻게 먹는 건지 기억하게해 줘서...
해인(민망한 웃음으로) 맛있는 집 이 근처에 많아요. 또 밥 드시러 오세요.
승하(서글픈 눈빛으로)...이젠 해인씨랑같이 밥 안 먹을 겁니다.
해인(당황스럽게 본다)
승하..또 봐요. (말 끝나자마자돌아서서 간다)
-해인, 도무지 승하가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어 어리둥절한
채 바라보고 서 있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승하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다. 하지만 승하의 두 주먹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힘겹게 꽉 쥐어져 있다.
씬39 도서관 복도(낮)
생각에 잠겨서 걸어오는 해인, 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본다.
승하가 한 말이 어쩐지 좀 섭섭하고 허전한 기분인 듯 낮게 숨을 토해낸다.
씬40 희수 사무실(낮)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희수위로 밖에서 들리는 순기의 목소리.
순기(E) 아 왜 그래? 형님한테 인사 좀 드리겠다는데.
-희수,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어보면 곧 문이 열리고 순기가
의기양양하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 뒤로 난처한 표정으로 석진이
따라 들어온다.
순기(넉살좋게) 저 왔습니다, 형님.
희수(반갑지 않게) 무슨 일이야?
순기(소파에 털썩 앉으며) 꼭 일이 있어야 오나요?
희수지금 할 일 많아. 용건 없으면 나비서하고 차라도 마시고 가.
석진(순기의 팔 잡아 일으키려고 하며) 나가자.
순기(뿌리치며) 바쁘신 거 압니다. 온 김에 인사나 드리려고 온 거지.
석진(O.L.) 순기야?
순기(O.L.) 일어날 거야, 임마. (일어서며) 그럼 가보겠습니다.
희수(서류만 보며) 어.
순기(돌아서는 듯하다가) 근데 형수님은언제쯤 소개시켜 주실 겁니까?
석진(놀라서 순기를 본다)
희수(서류만 보며) 기회가 있겠지.
순기동생이 형수님 얼굴도 모른다는 건 예의가 아니죠. 오늘
밤이라도 찾아뵐까요?
석진(다급한 O.L.) 너 왜 이래?
순기(빙글거리며) 형수님께 인사드리겠다는데 뭐 잘못됐어? 넌 형수님하고
친할 거 아냐?
석진(철렁하듯 본다)
희수(서류에서 시선 떼고 순기 보며) 갑자기 집사람한테 인사는 왜 하겠다는
거야?
순기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닌 가해서요.
석진(창백하게 식어 내리며 순기를본다)...!
희수그게 무슨 소리야?
순기(석진이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을 즐기듯) 왜 있잖아요. 저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직감이랄까.
석진(얼어붙어 있다)
희수(어이없다는 듯 허 웃으며) 싱거운 소리 그만 하고 가봐.
순기(히죽거리며) 안 그래도 간장을좀 치려구요. 가보겠습니다. (석진에게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내곤 나간다)
석진(얼어붙은 채 서서)..
희수? 왜 그러고 있어?
석진(퍼뜩 정신 차리며 엉겁결에) 죄송합니다.
희수뭐가?
석진(당황스럽게)..순기일로 자꾸 신경 쓰시게 해서..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급히 순기를 따라 나간다)
-희수, 석진을 보다가서류를 툭 놓고는 복잡한눈빛으로 한 곳을 본다.
씬41 호텔 한 곳(낮)
석진, 정신없이 뛰어와 순기를 찾듯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머리속이 뒤엉킨 듯 서 있는데.
순기(E) 나 찾아?
석진(휙 돌아본다)
순기(비죽 웃으며) 내가 이번에 나석진을 다시 봤어. 샌님인 줄만 알았드니
할 짓은 다 하두만.
석진(창백해지는)
씬42 호텔 구석진 곳(낮)
석진(침착하려 애쓰며)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
순기(빙글거리며) 몰라? 그럼 증거라도보여줘?
석진무슨 증거?
순기너하고 오수형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란 증거가 나한테 있거든.
석진(무섭게 굳어져서 노려본다)...
순기내가 불의를 보면 못 참잖냐.
석진(O.L.) 너였어?
순기(본다)
석진(무섭게 노려보며) 사진을 보내고택배를 보낸 게 전부 다 니가 한
짓이었어?
순기(여유 있는 웃음으로) 맘대로 생각해.
석진(순기의 팔 잡아채서 낮지만 무섭게)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대식이를 죽게 할 수가 있어!
순기(어이없다는 듯 허 웃는다)
석진정말 배후조종자가 너야? 전부 니가 한 짓이야? 도대체 왜? 뭐 때문에?
순기(팔을 뿌리치며) 맘대로 생각하라니까.
석진(O.L.) 나쁜 놈.
순기(O.L. 무섭게) 나쁜 놈은 너야, 이 자식아!
석진(움찔해서 본다)
순기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일 친한 친구형수랑..이거 진짜 말 안 되는 거 알지?
석진(말문이 막혀서 본다)
순기(능청스럽게) 사랑 좋지. 솔직히 난 불륜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친구형수는 아니지. 오수가 알면 참 볼만하겠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석진(막아서며) 니가 원하는 게 뭐야?
순기(빙글거리며 본다)
석진(초조하고 불안한) 이러는 이유가있을 거 아냐!
순기제주도 카지노.
석진(어이가 없다) 뭐?
순기그거 내가 맡을 수 있도록 힘 좀 써줘라.
석진나한테 그런 힘이 어딨어?
순기겸손 떨 거 없어. 오수아버지 오른팔이 너란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석진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순기너 머리 좋잖아? 시간을 좀 줄 테니까 방법을 생각해 봐.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
석진(말문이 막혀서 본다)
순기(어깨 툭 쳐주며) 갈게. (껄렁거리며 간다)
-석진, 어이없는 얼굴로 보다가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씬43 어느 거리(낮)
상하수도 파이프 교체 공사 중인 듯 공사 중 푯말이 서 있고 인부
는 하수도 안에 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오수(주위를 둘러보며) 여긴 아니야. 편의점이 없어.
민재이러다간 일주일도 더 걸리겠네. 진짜 과학수사 좀 하고 싶다.
오수이게 진짜 과학수사야. 오감을 총동원하고 있잖냐.
민재(피식 웃는데)
(E)오수 핸드폰.
오수(받으며) 나야.
석진(F, 다급한) 오수야, 저기.
오수(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화면분할>
석진(호텔 한 곳, 불안하게 서성거리며)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오수말 해.
석진(망설이다가)...전화로 할 얘긴 아니구 만나서얘기하자.
오수무슨 일인데?
<화면 오수에게 온다>
석진(F) 만나서 얘기해.
오수..알았어. 이따 전화할게. (끊고, 어쩐지 이상하다 싶은)
민재무슨 전환데 그래?
오수(털어내듯) 다음 장소 어디야?
씬44 동현 거실(낮)
나희, 차를 마시면서 여성지를 보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나희(반갑게) 당신이 집으로 전화를다 하고 어쩐 일이에요?
희순(F) 내가 전화를 그렇게 안 했었나?
나희(웃으며) 그런 얘긴 아니구. 근데 무슨 일이에요?
<화면 분할>
희수(사무실에서 창밖을 보며 통화중이다. 담담한 얼굴) 오늘 밖에서 저녁
먹을까? 당신 좋아하는 해산물 요리 잘하는 집 아는데.
나희(의아해서) 당신 저녁에 약속 있다고 했잖아요?
희수취소했어. 예약해 놓을 테니까 시간 맞춰서 호텔로 와.
나희알았어요. (끊는)
씬45 희수 사무실(낮)
핸드폰 끊는 희수, 창밖을 바라보는 얼굴에 그림자가 깔린다.
씬46 편의점 앞거리(오후)
오수, 한 곳을 바라보고 서 있다. 민재, 그 시선을 따라서 보면.
인부 두 명이 막 상하수도 파이프 교체 공사를 끝냈는지 공사 중
푯말을 거둬들이고 있다.
오수, 인부들을 바라보고 편의점을 확인한다.
<플래시 컷-10회 씬59/사이코메트리 영상이 아닌 보통화면>
--편의점 앞 도로에 세워 진 ‘공사 중’ 간판.
--편의점으로 향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고 공사 인부용 안전모를 쓰고 있다. 그 위로 해인의 목소리.
해인(E) 편의점 앞에 공사중이라는 푯말이 있었어요. 그리고
주황색 안전조끼와 안전모를 착용한 사람이 택배상자를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 사람이 택배를 보낸 것 같애요.
-오수, 해인이 말한 잔상과 일치함을 확인한 듯 빠르게 인부들에게
다가간다. 민재도 쫓아가고.
오수(인부에게 경찰증 보여주며)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인부들(두 명, 긴장하는)
오수공사는 언제부터 한 겁니까?
인부1며칠 됐는데..왜 그러세요?
오수(인부1의 손목을 본다. 그 손에 채워져 있는 굵은 은팔찌)
<플래시 컷-10회 씬59>
--택배 상자를 누군가에게 건네받는 남자의 손, 그 손목에 채워진
굵은 은팔찌. 그 위로.
해인(E) 택배를 부탁받은 사람은 손목에 굵은 은팔찌를 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가한테 택배상자를 건네받았어요.
오수(인부1에게) 택배 보내달란 부탁 받았었죠?
인부1(얼떨떨한 얼굴로 보는)
씬47 편의점 안(오후)
오수, 펼쳐진 택배영수증을 굳은 표정으로 뚫어지게 보고있다.
영수증엔 발신인은 없고 수신인엔 김순기라고 적혀있다.
유리문 밖으론 민재가 인부1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수(이해가 안 되는 듯한 얼굴로) 이 택배, 수신인이 아직 못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까?
직원서울이라서 늦어도 그저께쯤 받았을 거예요.
오수(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으로 영수증을 보는 위로)
순기(E) 그 미친놈이 보내는 게 타로카드라고 했지? 사진이 아니라.
<플래시 컷-10회 23씬>
오수(긴장 O.L.) 타로카드가 왔어?
순기(얼른) 아니 그게 아니구. (둘러대듯) 그냥 뭘 좀 알아낸 게 있나 궁금해서.
-오수, 아무리 생각해도 순기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고 마음에 걸린다.
민재(안으로 들어와서) 택배를 부탁한건 역시 같은 놈이야. 선글라스에
흰머리 가발.
오수(영수증만 보며 끄덕인다)
민재(영수증을 본다. 김순기란 이름에 긴장해서) 이 사람 강선배 친구 아냐?
오수(자기 의문에 싸인 채 끄덕이곤 이내 민재보며) 성준표는?
씬48 멈춰진 차 안(오후)
준표의 오피스텔 건물 앞 승용차 안.
재민과 다른형사가 준표의 오피스텔 앞을 지켜보고 있다.
재민(오수와 통화중) 어제 밤늦게 집을 나갔다고하는데 아직까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시선을 창밖을 보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피자배달원
<견사장의 수하1>을 무심히 보면서) 성준표가 위치추적을 생각해선지
핸드폰도 받지 않고 사용도 전혀 안하고 있어요.
씬49 준표의 오피스텔 건물 앞(낮)
피자배달원 차림의 수하1이 피자배달용 가죽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조금 떨어져서 깔끔한 양복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남자(견사장의
수하2)가 유유히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재민이 타고 있는 승용차 뒤로 다른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선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있는 견사장의 모습이 차창 안으로 보인다.
씬50 준표 오피스텔 앞 복도(오후)
피자배달원 수하1, 막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른다. 안에서 대답이 없다.
수하2가 주변을 살피며 걸어와 선다. 수하1 수하2에게 눈짓을 보내면
수하2 고개를 끄덕인다.
수하1, 피자배달용 가죽가방에서 전기충격기(자세히 보여주면 모방범죄가
생길 수가 있으니 유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를 슬쩍 꺼내든다.
수하2, 망을 보듯 주위를 살핀다.
씬51 파출소 안(오후)
광두가 파출소 곽팀장(10회 씬67에 나왔던) 앞에 앉아있다.
광두(놀라 굳어져서) 성준표기자라구요?
팀장예에.
광두그 사람이 뭘 묻던가요?
팀장뺑소니 사고를 당한 학생이 자기가 조사하는 사건의 피해가족이라면서
사고 경위를 물었어요.
광두...네에.
씬52 강력5팀(오후)
광두가 반팀장을 찾아왔다.
반아무래도 성준표가 12년 전 사건을 기사화 할 생각인 것 같애.
광두이번 사건과 연관 지어서 터트릴 생각이겠죠. 그래야 강동현의원한테
치명적일 테니까요.
반(심난한) 그걸 노리는 거지. 뭣보다 그 일이 알려지면 사실여부를
떠나서 오수는 경찰 옷 벗어야 할지도 몰라.
광두...그렇겠네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반확실한 증거라도 찾은담에 보고할 생각인데, 그 전에 터질까봐
걱정이야. 그나저나 정태훈동생도 참 가엾게 세상을 떴군 그래.
광두(착잡한) 그러게 말입니다. 내일쯤 유골을 뿌렸다는 장소에 가볼
생각입니다. 정태훈하고 모친이 묻힌 곳은 알 수가 없으니까 거기라도
(하는데)
민재(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 (광두를 보곤 고개 인사를 한다)
광두(인사를 받고)
반어떻게 됐어?
민재(광두가 있어서 보고하길 망설이는데)
광두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반어, 그래. 고맙다, 여러 가지루.
광두아닙니다. (일어나서 민재에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나간다)
반(급한 마음에) 말해.
민재택배를 받은 사람이 김순깁니다.
반강형사 친구?
민재네.
반그럼 김순기 성준표두 사람한테 동시에 택배를보냈다는 건가?
민재네. 택배가 보내진 날짜가 같아요. 강선배 말대로 범인한테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의문에 찬) 근데 김순기는 오수한테 택배 받았다는 연락을 왜
안 한 거야? 오수가 부탁까지 했다면서?
씬53 타로카페(밤)
오수, 의문에 찬 표정으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있다.
주희(음료수 가져다주며) 해인이 만나러오신 거예요?
오수아뇨.
-출입문 소리에 보면 불안한 표정의석진이 들어선다.
오수여기야.
석진(마음을 가다듬는 듯 잠시 오수를 보곤 자리로 와서 앉는다)
주희어서 오세요. 차는 뭘 드시겠어요?
오수(미안한 듯) 나중에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좀 있어서요.
주희(눈치 빠르게) 말씀 나누세요, 그럼. (가고)
오수할 얘기란 게 뭐야?
석진(좀 망설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배후조종자라는 놈..순기가 맞는 거 같애.
오수(순기에 대한 의구심에 차 있던 터라 더욱 긴장해서) 저번에 말한 거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는 거야?
석진..그건 아니지만..
오수(답답해서 O.L.) 니가 그렇게 확신을하는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석진(자신의 얘기를 할 수도 없기에 자신 없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느낌이야.
오수느낌만으로 친구를 범인으로 확신한다는 거야, 지금? (하는데)
순기(문 열고 들어오며) 둘 다 있었네.
석진(순기를 확인하곤 놀라 굳어져서) 어떻게 된 거야?
오수내가 오라고 했어. 물어볼 게 있어서.
석진(난처하다)
순기(자리로 오면서 둘러보며) 인테리어 참 요상하네. (자리에 앉으며)
뭐 이런데서 만나자고 하냐? 분위기도 별루구만.
오수(그렇게 말하는 순기를 살피듯보며) 타로카페야.
순기아아...(신기한 듯 둘러보며) 이런 데도 장사가 되나?
오수(순기가 이곳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는 듯)
순기근데 할 얘기가 뭐야?
오수(단도직입) 너 택배 받았지?
순기(순간 당황) 아..니
오수(의구심에 차서) 안 받았다구?
순기어. 안 받았어.
오수(무섭게 눌러보며) 너 왜 거짓말 해?
석진(의아해서 오수를 본다)
순기(어리둥절하다는 듯) 거짓말이라니?
오수(O.L. 목소리가 커진다) 너한테 택배가 왔다는 거 확인하고 왔어!
순기(당황한다)
석진(상황파악이 안 되는)..
오수넌 분명히 택배를 받았어! 근데 안 받았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순기(얼른 능청스럽게) 아..그거? 내가 깜빡했네. 택배를 받긴 받았다.
오수(무섭게 보며) 내가 분명히 말했지. 택배를 받으면 바로 연락하라구.
순기그게.
오수(O.L.) 받아놓고 안 받았다고 한 이유,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설명해.
순기아 자식 성질하군. 택배를 받긴 받았는데 별 게 없더라고 그래서
깜빡했다니까.
오수(O.L.) 택배로 온 게 뭐였는데?
순기(석진을 슬쩍 보며) 사진.
석진(놀라서 보고)
오수어떤 사진?
순기(빙글거리며) 그냥 남자랑 여자랑찍은 사진.
오수(O.L.) 그 사진 지금 어딨어?
순기버렸어.
오수(그 말에 와락 순기의 멱살을 잡으며 버럭)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순기이거 못 놔!
-주희, 큰 소리에 놀라서 저만치서 보며 안절부절.
오수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사진을 버렸다구? 납득할 수가 없어. 분명히
넌 뭔가 숨기고 있어. 그게 뭔지 사실대로 말해, 어서!
순기(비죽거리며) 내가 숨기는 거? (석진을 보며 빈정거리듯) 그거 불면 여러
사람 다칠 텐데.
석진(얼어붙어서 보는)
오수(O.L.) 말 돌리지 말고 사실대로말해.
석진(오수를 말리는) 오수야, 이거 놓고 얘기해.
오수(꿈쩍도 않고 O.L) 말 해, 어서!
순기난 분명히 봤어.
석진(창백해져서 말리듯O.L) 순기야?
순기(상관 않고) 강오수가 정태훈한테 칼 꽂는 거.
오수(이를 악 문다)
석진(자신의 얘기가 나오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순기니가 아무리 사고라고 주장해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
오수(이 악물고 멱살 더 틀어잡으며) 한 가지만 대답해! 너 이번 사건에
관계있어? 없어?
순기이거나 놓고 얘기하시죠, 강형사님.
오수(놓지 않고 O.L.) 대답해.
순기헛다리 집지 마. 난 아니야.
오수(순기의 눈을 똑바로 보며)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순기(확 뿌리치며)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택배 받았고 별 거 아닌 사진
이라서 버렸어! 그게 뭘 어쨌다고 이 난리냐구?
오수(혼란스러움과 의심으로 보는)
순기너 경고하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멱살 잡고 흔들면 친구고 뭐고
확 불어버려. 12년이면 살인사건 공소시효도 안 지났어, 임마!
오수(낮지만 무섭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안 말려.
순기(노려보며) 너 뒤통수 조심해.
오수(본다)
순기(석진을 흘낏 보며) 원래 뒤통수는 나 같은 놈이 아니라 믿는 놈이 치는
거야, 이 자식아! (하곤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석진(미치겠는 심정으로 오수를 본다)
오수(혼란과 의심에 차서 카페를 나가는 순기를본다)..
씬54 타로카페 밖(밤)
순기(씩씩거리고 밖으로 나온다) 세상 꼴 참 잘 돌아간다. (가는)
-앞으로 걸어오던 해인, 순기와 스치듯 지나친다.
해인, 순간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순기가 무심히 카페를 다시
돌아보는 순간.
<플래시 컷-8회 씬39>
--양복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슬쩍 안의 돈을 확인하고 만족한 듯
웃음기를 흘리는 순기의 얼굴.
-해인, 놀라서 굳어 있다가 빠르게순기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씬55 타로카페 안(밤)
오수(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생각에 빠져있다)
석진(심정이 복잡하다)..순기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잖아.
오수아냐. (혼잣말 하듯) 도대체 무슨 사진이었을까? 너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어?
석진(자신 없이)...없어. 넌 순기가 배후조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수정황상 순기일 확률은 거의 없어. 이 카페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구.
석진그래서 일부러 이 카페에서 만나자고 한 거야?
오수..어. 하지만 순기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석진(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난감하기만 하다)..
(E)오수 핸드폰.
오수(보면 집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받으며) 네.
동현(F) 할 얘기가 있으니까 집으로 와.
오수사건이 있어서 곤란합니다(하는데)
동현(말 자르며 F) 니가 맡은 사건과 관련된 일이니까 잔말말고 와!
오수(긴장하는)..
씬56 출판사 건물 앞(밤)
영철, 예의 그 자신 없는 모습으로 건물에서 나와 걸어가는데
그 앞을 누군가 막고 선다. 영철, 움찔 놀라서 보면 순기가 서 있다.
영철(흠칫 놀라서 본다)
순기(빙글거리며) 너 찾기 되게 힘들더라. 동창회 명부에도 없고 겨우겨우
알아냈어. 오수한테 물어보면 금방 알겠지만그건 또 좀 걸리구.
영철(노려본다)
-저만치서 순기와 영철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해인.
영철의 얼굴을 확인하곤 긴장해서 살펴보고 있다.
순기따식이 넌 하나도 안 변했다. 길가다 만나도 금방 알아보겠는데?
영철무..무슨 일이야?
순기(대뜸) 진짜 니가 한 짓이냐?
영철(영문을 모르겠는 얼굴로 보며) 무..뭐가?
순기택배 보내서 장난치는 거 진짜 따식이 니 짓이냐구?
영철...무..무슨 소리야?
순기(역시 그렇지 싶은 웃음으로) 그치? 너 아니지?
영철가..가봐야 돼. 비켜.
순기(막고 서서 빈정거리는) 혹시나 했는데, 허긴 너한테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지.
영철(무섭게 노려보며 용기를 내듯) 비켜. 너 같은 놈하고 할 말 없어.
순기나 같은 놈?
영철(겁먹은 얼굴로 용기를 내서) 그..그래. 너 같은 놈.
순기(O.L.) 너 내가 모르는지 알지?
영철(본다)
순기옛날에 니가 왜 우릴 꼰지르지 않았는지 그 이유, 난 그거 알거든.
영철(약점을 들킨 듯 철렁하고 내려앉아 본다)...!!
순기오수는 아마 모를 거야. 근데 난 알어. 우리 엄마가 니네 엄마하고
좀 친했잖냐. 그러니까 너 혼자 괜히 피해자인 척 하지 마. 너나 나나
똑같으니까.
영철(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순기언제 느이집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갈게. (가고)
영철(이 악물고 순기의 뒷모습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서 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인,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오수에게
전화를 건다.
씬57 동현의 집 앞(밤)
오수, 승용차에서 내려 집 앞으로 가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오수(받으며) 나예요.
해인(F, 긴장된) 잔상에서 봤던 남자를 갈란투스 앞에서 봤어요.
오수(굳어지며) 타로카페 앞에서요?
<화면분할>
해인(출판사 앞거리) 네. 그 남자를 쫓아왔는데
오수(걱정으로, 말 자르며) 그 사람을 쫓아갔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합니까?
해인(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어요.
오수해인씨?
해인(O.L.) 그 사람이 김영철씨하고 만나는 걸 봤어요.
오수(놀라서) 영철이요?
해인네에.
오수(불안한 예감으로) 혹시 타로카페에서 봤다는 남자, 마른 체격에 머리를
뒤로 묶었습니까?
해인네에, 맞아요. 아시는 분인가요?
오수(갈수록 혼란스러운 기분으로)...내 친굽니다.
해인(놀라는)
오수두 사람이 하는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해인네. 제가 보기엔 약속하고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남자가 김영철씨를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구..
오수협박이요?
해인네에.
<화면 오수에게 오며>
오수(자꾸만 더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으로) 해인씬 지금 당장 택시타고
집으로 가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오수, 핸드폰 끊는다. 정말 순기일수도 있는 것일까..그럴 리는 없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불안하게 서성거리는 오수.
씬58 승하 사무실(밤)
승하,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광두가 들어온다.
광두퇴근 안하세요?
승하(돌아보며) 가야죠.
광두조동섭 공판기일 얼마 안 남았는데 잊지 않으셨죠?
승하네. 아무래도 그날 결심이 될 것 같은데 변론요지서까지 미리
준비를 해야겠네요.
광두그러시죠. 저기 성준표가 12년 전 사건을 쫓고 있는 거 같애요.
승하(본다)
광두정태훈 동생 사망원인이라도 알고 싶어서 옛 동료를 찾아갔었는데
제가 다녀간 뒤에 누군가 그 친굴 찾아왔답니다.
승하(담담하고 차분한) 그게 성준표란말씀이시군요.
광두...네.
승하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광두(보면)
승하성준표가 해인씨를 미행하고 있는 걸 제가 우연히 발견했거든요.
광두(놀라서) 혹시 그 자가 해인이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까?
승하(의아한 얼굴로) 비밀이라뇨?
광두(순간 실수했다 싶어 당황한)
승하해인씨한테 비밀이 있는 모양이죠?
광두(난처한 얼굴로) 비밀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변호사님께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승하(웃는 낯으로) 전 사무장님이 이래서 좋습니다.
광두(본다)
승하원래 비밀이란 건 가까운 사람을 통해 새나가게 돼 있는데 우리
사무장님이라면 그럴 일이 전혀 없거든요.
광두(훗 웃으며) 변호사님도 비밀이 있습니까?
승하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습니다.
광두(웃는 얼굴로) 그건 그렇죠.
승하정태훈 동생 사망원인은 알아내셨나요?
광두(착잡해지듯) 뺑소니사고였어요. 성준표가 사고신고를 받았던 파출소까지
찾아가서 일일이 확인하고 갔더라구요.
승하(눈빛이 차가워지며)...그랬군요.
씬59 동현의 서재(밤)
오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동현이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오수(잠시 그 등을 보다가 뚝뚝하게) 저 왔습니다.
동현도무지 너란 놈은 믿을 수가 없어.
오수(본다)
동현(돌아보며) 그런 일이 있었으면처음부터 나한테 얘길 했어야지.
왜 일이 터지고 나서야 내가 알게 만들어?
오수....
동현넌 이 사건에서 손 떼고 형사도 그만 둬.
오수저 때문에 생긴 사건입니다.
동현그러니까 손 떼라는 거야! 니가 계속 파고들면 들수록 일만 더 커져.
당장 그만 두고 당분간 니 엄마한테 가 있도록 해.
오수(흔들리지 않는) 그렇게 도망갈순 없습니다.
동현(굳어서 본다)
오수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라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동현(O.L.)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오수그렇다면 절 믿고 지켜봐 주세요.
동현(O.L.) 널 어떻게 믿어?!
오수(굳어져서 보는)
동현애초부터 니가 잘 했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어.
오수(괴롭게 본다)
동현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어떻게든 이 일이 밖으로 새지 못하도록
막는 게 급선무야.
오수(쓸쓸한 얼굴로) 그게..걱정이신 거군요.
동현여러 소리 할 거 없어. 넌 애비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아.
오수제가 그만 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동현(굳어서 본다)
오수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여기서 도망칠 순
없습니다. (진심으로)..죄송합니다, 아버지. (말 끝나자마자 나간다)
동현(아프게 보는)..
씬60 승하 거실(밤)
평상복차림의 승하, 창밖을 보며 수곤에게 핸드폰을 하고있다.
승하이번 주말에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좀 미뤄야겠어...귀찮은
일이 좀 생겨서...가능하면 빨리 가도록 할게.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형.
씬61 수곤의 작은 방(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방인 듯 작은 책상과 오래된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과 바닥에도 오래된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져 있고 쌀자루와
잡동사니들을 쌓아둔 방.
수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들을 정리하고 있던 중에 전화를 받은
모습이다.
수곤(통화) 고맙긴 임마. 안 그래도 소라가 쓸 방에 도배도 해야 하고 장판도
새로 깔아야 돼서 시간이 좀 필요했어...그래. 밥 잘 챙겨 먹구, 어, 그날
보자.
-수곤, 핸드폰 끊고는바닥에 쌓여져 있는 책을 한꺼번에 들어서
밖으로 가져가려다가 와장창 바닥으로 놓쳐버린다.
수곤아~참.
-수곤, 주섬주섬 책을집어 드는데 문득 바닥에 떨어진 책 사이에
무언가 비죽 나와 있는 게 보인다. 수곤, 꺼내서 보면 승하에게
가져다주었던 소년수곤과 소년승하가 함께 찍은 사진(2회 씬59)이다.
수곤(반가워서) 이거 한 장 더 있었네?
-웃는 얼굴로 사진에먼지를 손으로 닦아내는 수곤, 기분 좋은 얼굴로
사진을 바라보곤 한쪽에 잘 모셔놓고 책을 정리한다.
씬62 승하 거실(밤)
생각에 잠겨 자신에게 온 <탑> 타로카드를 바라보고 있는 승하.
승하(혼잣말하는)...기회를 줬는데..결국 이걸 선택했군.
-타로카드를 바라보는 승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잡힌다.
하지만 그 눈은 어쩐지 슬프게만 보인다.
타로카드를 툭 던져놓고는 불현듯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승하...오승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씬63어느 술 집(밤)
승하, 평상복 차림으로 안으로 들어와서 보면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오수, 이미 취한 상태다.
탁자위엔 빈 소주병이 세 병이나 놓여있다.
승하,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다가와 선다.
승하강형사님?
오수(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눈빛이 술기운에 흐릿하다)...앉으세요.
승하(자리에 앉으며 빈 술병들을 본다)
오수(술 병 들며) 한 잔 받으시죠.
승하(소주잔은 그대로 둔 채 담담하게 오수를 본다)
오수(승하 빈 잔에 따라주면서) 오늘은 변호사님도 반갑네. 혼자 마시려니까
되게 맛없었는데. (단번에 잔을 비우고 또 잔을 채운다)
승하(건조한 말투, 차가운 눈빛) 많이 취하신 것 같네요.
오수내가요? (후 웃곤 또 잔을 비워내곤 또 채우며) 대식이 놈이 소주는
진짜 맛있게 먹었는데..(또 잔을 비운다)
승하무슨 일 있었습니까?
오수(잔을 채우며 대뜸) 변호사님은 나 별로 안 좋아하죠?
승하(본다)
오수(자조 섞인) 저 놈 나쁜 놈인데 나쁜 놈이 나쁜 놈 잡는다고 설치고
다니니까 좀 우습죠?
승하(무표정한 얼굴로 보는)
오수(허한 미소로) 허긴 뭐 내가 생각해도 말 안 되는 거 같으니까.
(잔을 비워내고 또 채운다)
승하왜 수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까?
오수(흐린 눈으로 본다)
승하(차가운 눈빛으로) 수사를 포기하는 편이 자신을 위해선 오히려 편하지
않겠습니까?
오수..그럴 수가 없습니다, 난.
승하왜요?
오수그 놈 얼굴이 보고 싶으니까.
승하(본다)
오수그 놈을 만나서 꼭 해야 할 말이 있거든요, 내가.
승하(애써 담담한 얼굴로)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데요?
오수...난요. 사람은 원래 착하다고생각합니다. 그 놈도 원래는 착한
놈이었을 거예요.
승하(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며 본다)
오수근데 나 때문에 나쁜 놈이 됐는데..(허탈한 웃음으로) 아닙니다.
(술잔을 비워내더니) 어쨌든 난 끝까지 그 놈을 잡을 겁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반드시 내 손으로 잡아서 법정에 세울 겁니다.
나한테 자격이 있든 말든 이젠 상관없습니다. (술잔을 또 비운다)
승하역시 인간은 자신의 단점 때문이 아니라 때론 타고난 장점 때문에
더 큰 불행 속으로 뛰어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오이디푸스 왕처럼.
오수(술 취한 눈으로 보며) 뭐요?
승하만약 오이디푸스 왕이 조금만 의지가 약했더라면 더 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지금 강형사님처럼.
오수(피식 웃으며) 또 철학하시네.
승하(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하지만 전 강형사님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듭니다. 강형사님은 끈질긴 승부욕이 장점이거든요.
오수(그저 허하게 웃곤 술잔을 비워낸다)
승하((어쩐지 복잡해지는 심정으로 그 모습을 보는)...
씬64 술 집 앞(밤)
오수, 술기운에 몸을 못 가누며 비틀거리고 술집을 나선다.
그 뒤로 담담한 표정으로 나오는 승하.
오수한 잔 더 합시다.
승하내일 공판이 있습니다.
오수그래요? 그럼 할 수 없지. 또 봅시다. (하고 돌아서려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 아 참,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하셨지. 말씀해 보세요.
승하(복잡한 눈으로 보며)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내일 얘기하죠.
오수(비틀거리면서도) 안 취했으니까 말씀하세요.
승하내일 경찰서로 가겠습니다. 그때 얘기하죠.
오수뭐..그러시든가, 그럼. 갑니다.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간다)
승하(오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비틀거리며 가는 오수의 뒷모습이 너무도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승하의 두 눈에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혼란스러움이
일렁인다. 그 순간 오수가 돌아보더니 승하를 향해 잘 가라는 듯 지친
얼굴에 흐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승하, 순간 움찔하는 기분으로 바라본다.
오수,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마음을 다 잡으려는 듯 입을 꽉 다물고 오수의 모습을 바라보던 승하,
흔들리는 마음을 돌려세우기라도 하듯 차갑게 돌아서서 간다.
씬65 해인의 거실(밤)
해인, 급하게 방에서 나온다.
해인모(의아해서, 수화) 어디 가려구?
해인집 앞에 누가 좀 와서요.
해인모(수화) 또 그 사람이니? 강형사말야.
해인네에.
해인모(수화) 나가지 마. 지금이 몇신 줄 알아?
해인금방 들어올게요. (나간다)
해인모(걱정되고 못마땅하고)..
씬66 해인의 집 앞(밤)
해인, 급하게 나와서 보면 오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서 있다.
해인(놀라 다가가서) 강형사님?
오수(고개 들어 흐릿하게 웃는다)
해인술..드셨어요?
오수(끄덕인다)
해인(걱정스레) 무슨 일 있으셨어요?
오수...내가..변해가고 있는 거 같애요.
해인(움찔해서 본다)
오수(시선 피한 채로 고통스럽게) 아무도 믿을 수 없고..친구들도 믿지
못하겠어요. 모두..적으로만 보이고..전부 날 속이고 있는 것 같고..갈수록
범인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올라요. 그 놈이 왜 그러는지 다 알면서도
그 놈이 너무 밉고 나 역시 그 놈처럼 변해가고 있어요.
해인(아프게 본다)...
오수(허하게 웃는데 그 눈은 울고 있다) 아니다. 변한 게 아니에요. 어쩌면
이게 내 본모습인 거 같애요. 난 처음부터 나쁜 놈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가짜로 산거니까..
해인....
오수그래도 난...하느님이 딱 한번은 용서해 주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봐 준 척 하신건가 봐요. 이렇게..나중에 뒤통수치시려고 봐 준
척 하신건가 봐요.
해인...자책하지 마세요.
오수(슬픈 눈으로) 난..내가 무서워요. 내가 무슨 짓을 할지..나도 잘
모르겠어요.
해인(손을 뻗어 오수의 손을 잡아준다) 강형사님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자신을 지키세요, 강형사님.
오수..자신이 없어요.
해인(가슴이 철렁하듯 본다)
오수(울 것 같은 눈으로) 나한테..정말 내가 지켜야 할 모습이 있기는 한 건지..
원래부터 나쁜 놈인 건지..그걸 알 수가 없어요. 갈수록 그걸 모르겠어요.
내가 누군지..어떤 놈인지..그걸...(해인의 어깨에 머리를 떨구듯 기댄다)
-해인, 위로해 주고 싶어 뭔가 말하려다 그냥그대로 서 있다.
오수의 어깨가 떨리고 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만 같다.
해인,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아프게 보는...
씬67 승하 욕실(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서 있는 승하. 마음속에 혼란을 다 잡으려는
듯 입을 꽉 다물고 서 있다. 뿌옇게 안개가 서신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내면 그 안에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승하의 눈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가 꿈틀거린다. 마치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지우려는 듯
손으로 거울 속 얼굴을 짚고 서서 물줄기를 맞는 승하..그 위로 현관
초인종 소리. 승하, 그대로 서 있다. 또 다시 울리는 초인종.
승하,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본다...
씬68 승하 거실(밤)
승하, 머리가 젖은 채 현관문을 열고 보면 준표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승하를 바라본다.
승하(예의 그 담담한 얼굴로) 성기자님이 이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준표(여유 있는 웃음을 흘리며)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 들렀습니다.
아무래도 통성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정태성변호사님.
-승하, 이미 예상하고있었던 듯 동요 없는 얼굴에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눈빛으로 차갑게 미소를 짓는다.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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