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의 사랑법 15
뭐야
아니, 무슨
이런 인터뷰 하는데 이런 데까지 빌렸어?
[쑥스럽게 웃으며] 아, 아니, 뭐, 나는
키스 좋아하니까
(은오) 미쳤었나 봐
(재원) 뭘, 뭘, 뭘, 왜, 왜, 왜 미쳐?
내가 왜 그랬을까?
(재원) 어, 야, 뭘 왜 그래? [은오의 한숨]
- (은오) 후회해 - (재원) 야, 후…
(재원) 야, 너 지금 뭐라고 후회, 후회한다 그랬어?
얘 지금 뭐라고 했어? 후회?
야, 나 미치겠…
야, 너 지금 뭐 야, 너 지금 후회한다 그랬어?
너 진짜 후회해?
잠깐!
너 있잖아 진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얘기해
네가 만약에 여기서 후회한다고 하면
나 진짜 미칠 거 같아, 이거 진짜야
[한숨]
- 후회해 - (재원) 아이씨
[흥미진진한 음악] (재원) 아…
야, 야, 네가 먼저 했잖아
매번 네가 먼저잖아!
(재원) 양양에서도 네가 먼저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미쳤나 보다
뭐가 미쳐, 뭐가 미쳐 너 미친 거 아니야
너는 나를 좋아하는 거야
야, 너, 야, 잠깐만
[반지가 잘그락거린다] (재원)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내가 청계천에서 버린 그 반지잖아
근데 이게 여기 있다는 건
얘가 청계천 이 추운 날 청계천에 들어가서
이 반지를 주워 왔다는 거잖아, 이거는
나는 절대로 이렇게 못 해, 이건
사랑이야
그래, 그땐 그랬어
네가 이 반지 청계천에 버리는데 진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은오) 그래서 그 추운 날에 물에 들어가서 반지 찾아 왔어
(재원) 그래, 그래, 그랬잖아 근데, 어? 근데 지금은?
(은오) 근데 지금은 후회해 [재원의 답답한 한숨]
반지 찾은 것도 후회하고 키스한 것도 후회해
(재원) 와, 이씨
얘 좀 봐, 세상 사람들아
얘 좀 봐, 어?
얘 좀 봐, 다 좀 봐, 다!
야, 그리고 남자들아 얘, 얘 얼굴 똑똑히 보고
지금 자기가 먼저 나한테 키스해 놓고 지금 여기서 나한테 후회…
와, 나 지금 마음이 막 찢어질 거 같…
야, 나 그냥 얘 성추행으로 고소해 버릴까?
(은오) 무슨 고소를 해? 두 번째 건 자기가 해 놓고
(재원) 그래, 그래, 그래! 내가 했다, 내가 했다, 왜?
나는 너 좋아해서 했고 후회도 안 해
나도 좋아해, 나도 좋아서 했고…
- (은오) 그렇지만 후회는 해 - (재원) 하, 씨
(재원) 아…
(은오) 좋아해 [재원의 한숨]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근데 나는 지금 다른 게 더 중요해
그래, 좋아하는 건 맞는데
야, 그래, 얘기라도 좀 들어 보자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너한테?
경준이한테 얘기 다 들었을 거 아니야
(은오) 옛날에 이은오가 얼마나 바보 같고 답답한 사람이었는지
[한숨]
(재원) 뭐, 다른 남자랑 결혼하려고 했었던 거?
그게 뭐?
그게 뭐?
나는 그거 하나도 신경 안 쓰여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야, 그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래, 너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는 중요해
영원히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그냥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걸
그걸 네가 알게 돼서 난 진짜 너무 비참하다고
야, 너만 비참해? 나는!
나를 봐
(재원) 나 지금 이렇게 미친놈처럼 너한테만 매달리고 있잖아
나는 있잖아 나는 그냥 미친놈이야, 지금!
그만하자 지금 사람들 다 보고 있잖아
(재원) 아, 몰라, 몰라! 그냥 다 보라 그래, 다 봐, 다 봐!
나는 미친놈이야 그냥 다 봐, 다 봐, 다 보라 그래
나는 괜찮아 어차피 나는 미친놈이야, 다 보라 그래 [은오의 한숨]
[재원의 한숨]
[재원의 한숨]
야, 넌 있잖아
넌 진짜 이기적이야, 알아?
[흥미로운 음악]
(은오) 그래, 나 이기적이야
나는 내가 제일 안됐고 소중하고 애틋해
난 나만 생각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어 [한숨]
바보 같고 답답하다는 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쁜 년 소리 듣는 게 훨씬 나으니까
너도 그랬잖아, 나 답답하다고
우리는 이미 양양에서 서로 사랑만 하던 그런 사이가 아니야
이렇게 서로 바닥까지 다 본 마당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해서 잘될 수 있을 거 같아?
[재원이 소리친다]
(재원) 아! 아, 야, 약간 멘탈, 와…
어유, 야, 미치겠다, 아씨
야, 나 어떻게 해야 될까? 누가 말 좀 해 줘 봐
나 어떻게 할까? 나 시키는 대로 진짜 다 할게
아니, 잠깐만, 나 있잖아, 윤선아
아니, 아니 [재원의 짜증 섞인 신음]
이은오, 이은오한테
복수할 거야, 진짜야, 복수할 거야
그, 이은오, 어?
그, 눈물 흘리게 할 방법 없어?
나 걔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만들 뭐, 그런 방법 없냐고
얘기 좀 해 봐, 어?
뭐? 딴 여자를 만나라고?
야, 이씨, 아유, 진짜 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야, 내가 지금 이은오를 좋아하는데
그럼 딴 여자는 그, 무슨 죄냐고! 아휴!
야, 내가 지금 이 마음으로 누굴 만난들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미친놈인데!
아, 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
나 이거 있잖아 나 이거 절대로 못 참아
내가, 야, 보여 줄게
죽었다, 너는, 씨
[헛웃음] [휴대전화 조작음]
그래, 오케이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 여보세요
(재원) 야, 너 지금 잠이 오냐?
[은오의 한숨]
[통화 종료음] 뭐야
(재원) 끊었어? [헛웃음]
[기가 찬 웃음] 진짜, 어이가 없네?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의 한숨]
- 왜 - (재원) 너 지금 잠이 오냐고!
(은오) 온다, 왜 [재원의 한숨]
[흥미로운 음악] (재원) '온다', 하
야, 넌 진짜로 이, 못돼 처먹었어, 아주 그냥, 이씨
(은오) 알아
야, 이…
나쁜 놈아, 씨
(은오) 맞아
[성난 숨소리] [통화 종료음]
여, 여보세…
(재원) 이게 진짜 미…
와, 이게 미쳤네, 진짜, 또 끊어?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의 한숨]
[한숨]
야, 너 진짜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전화, 진짜, 제발 전화 좀 끊지 마
(재원) 너 그리고
너 지금 자지 마
너 지금 자잖아?
나 정말 진짜 미쳐서 나 진짜 죽을 거 같아
[피식 웃는다]
[한숨]
알았어, 안 잘게
[차분한 음악] (재원) 그래, 너
그냥 그러고 그대로 있어
그래, 그럴게
[깊은 한숨]
근데
내가 나쁜 놈이면 너는 뭔데?
(재원) 나는
나는 미친놈
[피식한다]
- 너 네가 미친 거 알아? - (재원) 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재원의 한숨]
야, 근데 너 있잖아
너 진짜
나 만난 거 후회해?
후회는 안 해
나도 그래
나는 너 만나고 나서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난 진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너 만나서
난 되게 좋았어
(은오) 안 해 보던 짓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그리고
네가 나 좋아해 줘서
그게 너무 고마웠어
그때 나한테는 그게 필요했거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 보고 싶었고
누군가한테 사랑받고 싶었어
[재원의 한숨]
[애잔한 음악]
너는
양양에서의 네가 진짜 네가 아니라고 생각해?
어…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달라진 이은오인지
아니면 윤선아의 흉내를 내고 있는 이은오인지
(은오)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처럼 안 살려고
노력하고 맨날 다짐하는데
어떨 때는 그 노력까지도 가짜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한숨]
그거였구나
나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던 거
(은오) 응, 맞아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싶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옛날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미안해,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근데
근데 나는 나를 아는 게 더 중요해
재원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지금은
나 자신이 더 중요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재원) 차 키
[아련한 음악]
[자동차 경적]
(직원)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어요?
(재원) 아, 예, 지금 이게 사이드 미러가 떨어져서 왔거든요
(은오) 갖고 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
(재원) 그래
네 마음이 편한 게 좋으니까
이거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 놓고 갔더라
네가 네 자신을 찾는다고 했으니까
잘 찾아 봐
(은오) 응
(재원) 뭐, '잘 지내', 뭐, 이런 말 안 해?
(은오) 일하면서 또 볼 건데, 뭐
(재원) 그래, 알았어, 갈게
[재원이 카메라 가방을 탁 놓는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린이) 어
[입바람을 후 분다]
됐다
[탄성]
[숨을 카 내뱉는다]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린이의 옅은 신음]
[린이가 중얼거린다]
(경준) 포크 본드로 붙였지?
[카메라 셔터음]
[발랄한 음악]
(경준) 그럴 줄 알았어 [휴대전화 조작음]
자전거 하나 사 줄까?
(린이) 그건 됐고, 다른 거
[경준의 의아한 신음] (린이) 뽀뽀 백 번
사랑한다 말해 주기 백 번 안아 주기 백 번
(경준) 그럼…
오늘 밤?
(린이) 오늘은 [커피 머신 조작음]
안 돼
(린이) 나 지금 이불 빨래 중
오늘 은오네서 자는 날
이불을 그냥 한 채 더 사, 좀 제발, 좀!
좀 사라, 좀!
[짜증 섞인 한숨]
[짜증 섞인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선영)
(건) 어디 갔어?
[휴대전화 조작음]
얘는 누구 집 앞에 서 있다는 거야, 참
[건의 한숨]
[통화 연결음]
(건) 아, 추운데, 진짜
[가쁜 숨소리]
(여자) [술 취한 말투로] 아씨, 뭐야
(건) 죄송합니다
[건이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 차렷, 열중쉬어
차렷
이 자식들 봐라? 차렷 안 해!
허, 너 짝다리 짚었냐?
똑바로 안 해? [학생의 아파하는 신음]
- (학생) 지금 폭력 쓰셨죠? - (선영) 어, 폭력 썼어요
(선영) 뭐 어쩔까요? 경찰서 갈까요?
교육청 갈까요? 뭐, 어디 갈까요? 골라 봐요, 어디 갈까요?
이게 담배 피우는 놈들도 문제지만, 어?
야, 너희들처럼 이렇게 담배 피워 놓고
아무 데나 이렇게 함부로 버리는 놈들이 더 문제야
지금부터 너희들이 버린 담배꽁초 직접 수거한다, 실시
[건이 피식한다]
실시!
[흥미진진한 음악]
빨리빨리, 빨리빨리 빨리,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야, 휴지 뭐냐? 너 코 풀었냐? 아나, 빨리빨리, 빨리빨리
(건) 어이, 이거… [선영이 말한다]
주워야지
(학생) 아저씨, 그냥 가던 길이나 가지?
(건) 키 크네
아, 이, 말 짧은 거 보세요?
너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학생)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되는데, 지금
아, 진짜 짜증 나게, 씨
(선영) 짜증이 나?
이게 얻다 대고 지금 교육 중에 시비야?
정신 안 차려?
그리고 이 남자 내 남친이야
건들지 마라, 잘생긴 얼굴 금 간다
(건) 그래
내가 이분 남친이시다
[소리치며] 알았어?
(건) 그런 애들 보면 좀 그냥 지나가라니까
[술을 조르르 따르며] 너 요즘 애들이 얼마나 센지 모르지?
(선영) 괜찮아, 내가 더 세
(건) 어, 그건 뭐, 사실이다 [잔이 딱 부딪는다]
[선영의 옅은 웃음]
너 왜 우리 집 앞이라 그랬냐?
도무지 못 찾겠어서 실험 한번 해 봤어 [건이 잔을 탁 내려놓는다]
(선영) 그렇게 문자 보내면 네가 나 찾나 못 찾나
[헛웃음]
아직도 엄마가 보고 싶어?
[건이 술을 조르르 따른다]
(선영) 응
어, 술 마실 때도 보고 싶고
술병 나서 방바닥 기어 다닐 때도 보고 싶고
밤늦게 돌아다닐 때도 보고 싶고
지각해서 교장 선생님한테 깨질 때도 보고 싶어
넌 어쩜 그렇게
(건) 너희 어머니 화병 나실 거 같은 상황에서만 엄마가 보고 싶냐?
그러면 엄마가 와 줄 것 같아서
[감성적인 음악]
나 다혈질인 거 우리 엄마 닮은 거거든
'야!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정신 차려!'
[선영의 웃음]
꿈에라도
이렇게 나 혼내러 와 줄 거 같아서
엄마 만나면 무슨 얘기 하고 싶은데?
[선영의 생각하는 신음]
(선영) 어떤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난다고
그냥 엄청 둔하고 완전 못생기고
똥 멍청한 어떤 남자
그런 남자를 왜 찾냐
(선영) 그때 왜 나 안 잡았냐?
네가 잡는다고 잡히는 여자냐
(선영) 나 너 기다렸는데?
잡아 줄 줄 알았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나한테 매달려 줬으면 했어
그래서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 너
그냥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툭 털어 버리고 말 텐데
아휴, 그게 너라서 그냥 그렇게 열이 받고 짜증이 나고
[옅은 웃음]
슬펐어
[한숨]
너 나한테 되게 특별한 사람인 거 알아?
내가 엄마 보고 싶다고 하면 다들 나한테 그랬었거든
'힘내라'
'네 마음 이해한다'
'나라도 너 같을 거 같다'
근데 넌 달랐잖아
'엄마 보고 싶으면 나 찾아와'
그렇게 말해 준 사람 너밖에 없었거든
지금도 봐
뭐, 억지로 위로하려고 안 하잖아
대신 내가 실컷 엄마 얘기 하게 놔두잖아
그래서 나도
나도 너한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봐
너 이은오 좋아하지?
(건) 아니
[옅은 웃음]
처음이다, 아니라고 한 거
이은오, 서린이
걔네들 여자로 생각 안 하고
(건) 걔네들 여자에 포함한다고 해도
내 눈엔 네가 제일 예쁘고
네가 제일 섹시해
[피식한다]
(선영) [웃으며] 뭐야
(건) 늦게 말해 줘서 미안
(선영) 왜 진작 그렇게 말 안 했는데?
네가 나랑 헤어질 이유를 찾는다고 생각했나 봐
네가 내가 싫어져서
나랑 헤어지려고
(선영) 나는 왜 한 사람이랑 오래 못 갈까?
(건) 너 오래는 못 가도
뜨겁게 사랑하잖아
한순간이라도 진심으로
[옅은 웃음]
나 이제 엄마 보고 싶어도 너한테 안 올 거야
(선영) 혼자 버틸 거야
[차분한 음악]
너랑 완전히, 진짜로 헤어지려고
이 말 하러 왔어
너만 만나면 눈이 오더라
(건) 금방 그친댔어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야
그…
그 골목길에서 걔네들 또 만나면 그냥 내 남친이라고 해
(선영) 보니까 너 언젠가 한 대는 맞겠더라
[피식한다]
[건의 깊은 한숨]
(건) 야
너는 진짜 나를 뭘로 아냐?
[바코드 인식음] (건) 너 취직 안 하냐? 맨날 알바만 할래?
지갑이나 꺼내세요, 백수야
내가 왜 백수야, 나 소설가야
어, 소설가 폐업한 지 3년이나 된 게
내가 며칠 전에도 출판사 편집자 미팅…
얼마나 소설을 안 쓰면 미팅만 3년째냐
(건) 너는 친구 아픈 데를 그렇게 쿡쿡, 쿡쿡, 쿡쿡, 쿡쿡, 쿡쿡, 쿡
아휴, 계산이나 해라
(린이) 야, 근데 오늘 맥주 마시냐, 우리? [포스 작동음]
(건) 아니, 나 오늘 촛불 켜는 날 [포스 조작음]
(린이) 왜, 무슨 일 있어?
(건) 싫어, 이따 얘기할래
- (건) 너 오늘 몇 시에 끝나? - (린이) 나 10시
근데 나 오늘 어차피 너희 집 가야 돼
이불 빨았거든
되게 신났네
그, 이불 빨 때마다 오는 거 안 귀찮냐?
아, 이불을 한 채 사지, 그냥
낭비야, 낭비, 한 채면 충분해
(린이) 가, 빨리
네가 담아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은오) 나 오늘 촛불 켠다
할 말 있어, 우리 집에서 10시에 봐
아, 안 되는데
오늘 내가 촛불 켜는 날인데
(경준) 촛불 켜는 날?
걔네 셋이 유치원 때부터 쭉 친구잖아
한 명이 촛불을 켜면 두 명은 받아 주고
뭐, 그런 날이래
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 갔으니까
완전히 걔들 친구는 아닌 거지, 뭐
린이 때문에 다시 만난 거니까
(은오) 너희 기억나?
1년 전에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그날
[은오의 한숨]
(은오) 춥겠다, 우리 집
[도어 록 작동음]
[트렁크를 탁 놓는다]
[은오가 문을 끼익 닫는다]
[도어 록 작동음]
뭐야?
왜 불이 다 켜져 있지?
왜 이렇게 따뜻해?
[세탁기 작동음이 들린다]
[은오의 놀란 숨소리] [건이 덜그럭거린다]
(은오) 아, 깜짝이야
너 뭐야? 네가 왜 우리 집에 와 있어?
(건) 아니
너
돌아오면 추울까 봐
[잔잔한 음악]
그, 내가 이불 빨래 좀 해 놓고
겨울 이불 꺼내 놨다
(은오) 전기고 수도고 다 끊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 내가 처리했는데
(건) 밖에 춥지?
(은오) 응
아, 되게 춥다
(건) 아, 너 린이 한국 들어온 거 알아?
- 언제? - (건) 너 사라졌단 말 듣고
야, 린이가 너 찾으려고 부산까지 갔었어
[한숨]
짐 정리하고 나와, 밥 먹자
(건) 린이한테 전화부터 해
[건이 달그락거린다]
(건) 린이가 계속 왔다 갔다 했나 봐
대문 앞에 붙어 있길래 너 오면 보라고
(린이) 은오야, 나 린이
청소하다가 쌀벌레 발견해서 쌀 버리고 새로 사 놨어
공짜 아니다, 돌아오면 다 갚아야 돼
냉장고에 카레 넣어 놨어
얼른 네가 와서 먹었으면 좋겠다
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너 집에 오면 나랑 대판 싸울 줄 알아
얼른 와, 은오야, 보고 싶어
(은오) 그때 [훌쩍인다]
따뜻하게 우리 집 데워 놓고 [헛기침]
그렇게 둘 다 나 기다려 줘서 고마워
다 지난 일인데 뭘 새삼스럽게
나한테 묻고 싶은 거, 듣고 싶은 거
많았을 텐데
나 배려해서 안 물어본 것도 알고
(은오) 나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어
너희 배려에 기대서 도망쳤어
미안해
미안하고 고마워
음…
[한숨]
그러니까
[목을 가다듬는다]
[은오의 한숨]
어…
[옅은 웃음]
그러니까…
[목을 가다듬는다]
[한숨]
말하기 힘들면 다음에 해도 돼
응, 그래, 은오야 꼭 오늘 말할 필요는 없어
(건) 우리가 뭐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은오) 아니야
나 또 도망가면 안 돼
너희한테 또 숨기고 미안해하고
다신 그러고 싶지 않아
나
[심호흡]
내가
내가
윤선아야
내가 박재원 카메라 도둑이야
[은오의 한숨]
솔직해지는 거 진짜 어렵다
[흐느낀다]
[차분한 음악]
[은오가 연신 흐느낀다]
(은오) 진짜
나는 아직도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 그대로야
(린이) 왜 네가 바보 같다 생각해
그때는 그냥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생긴 일 같았어
그게 왜 네 탓이야 강민수가 나쁜 새끼지
(린이) 취직 취소된 것도 그래
그 회사 잘못이지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은오) 나는, 나는 박재원이
내 원래 모습이 그렇게 바보 같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진짜 너무 싫었어
박재원이 양양에서 만난 내가 다 가짜라는 게, 그리고
내가 왜 양양까지 가게 됐는지 알게 되는 것도 진짜 너무 싫었고
그리고 너희가 알게 되는 게 진짜 너무 부끄럽고 싫었어
[훌쩍이며] 나 너한테 엄청 서운해
나도
(린이) 친구끼리 그런 말도 안 하면 우리가 왜 친구냐?
(은오) 미안해
근데 너희가 친구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 혼자
이 세상의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린이의 한숨]
(린이) 은오야
내가 꼭 너한테 해 줄 말이 있는데
옛날에 너 바보 아니었어
(건) 맞아
너 되게 착하고
따뜻한 애였어
(린이) 옛날의 이은오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건) 나도 [린이가 훌쩍인다]
[린이의 한숨]
(린이) 난 지금의 이은오도 좋아
지금처럼 잘 울고 잘 웃고
잘 화도 막 냈다가 [건이 피식한다]
또 금방 풀어져서 장난치고
[훌쩍이며] 그런 이은오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흐느끼는 신음]
옛날의 너도 지금의 너도 넌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그러니까 너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린이가 훌쩍인다]
야, 넌 왜 울어
(린이) 네가 우니까 눈물 나잖아
(은오) 야, 울지 마, 린아 [린이가 흐느낀다]
(린이) 은오야
[함께 흐느낀다]
- (린이) 아, 울지 마, 뭐가 미안해 - (은오) 미안해
- (린이) 아이고, 우리 은오 - (건) 아이고
(선영) 외롭네
[한숨 쉬며] 왜 이렇게 외롭지
[은오가 펜 뚜껑을 딱 뽑는다]
[은오가 펜을 탁 내려놓는다]
[은오의 힘주는 신음]
[한숨]
(재원)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 놓고 갔더라
(재원) 네가 네 자신을 찾겠다고 했으니까
잘 찾아 봐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련한 음악]
이게 뭐야?
[반지를 잘그락거린다]
(린이) 맞아, 너 촛불 켠다며
(건) 아, 나?
(은오) 왜, 너 무슨 일인데?
(건) 나…
선영이랑 헤어졌다
아까 마트 가기 전에
(린이) 너희 3년 전에 헤어졌잖아
또 헤어졌어
(건) 아까 걔가 무슨 말을 하는데 내 마음이 너무…
[린이가 입바람을 후 분다]
(린이) 촛불 켜는 날 끝, 나 씻는다
[멀어지는 발걸음]
[문이 달칵 열린다]
(은오) 야, 그래도 [문이 탁 닫힌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겠다
너도 일하러 가야 되지?
응, 조금
[입소리를 쩝 낸다]
아휴, 가라, 가, 다 가 다 가, 빨리, 야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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