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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남녀의 사랑법 15

 

 뭐야

 

 아니, 무슨

 

 이런 인터뷰 하는데  이런 데까지 빌렸어?

 

 [쑥스럽게 웃으며]  아, 아니, 뭐, 나는

 

 키스 좋아하니까

 

 (은오)  미쳤었나 봐

 

 (재원)  뭘, 뭘, 뭘, 왜, 왜, 왜 미쳐?

 

 내가 왜 그랬을까?

 

 (재원)  어, 야, 뭘 왜 그래?  [은오의 한숨]

 

 - (은오) 후회해  - (재원) 야, 후…

 

 (재원)  야, 너 지금 뭐라고  후회, 후회한다 그랬어?

 

 얘 지금 뭐라고 했어? 후회?

 

 야, 나 미치겠…

 

 야, 너 지금 뭐  야, 너 지금 후회한다 그랬어?

 

 너 진짜 후회해?

 

 잠깐!

 

 너 있잖아  진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얘기해

 

 네가 만약에 여기서 후회한다고 하면

 

 나 진짜 미칠 거 같아, 이거 진짜야

 

 [한숨]

 

 - 후회해  - (재원) 아이씨

 

 [흥미진진한 음악]  (재원)  아…

 

 야, 야, 네가 먼저 했잖아

 

 매번 네가 먼저잖아!

 

 (재원)  양양에서도 네가 먼저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미쳤나 보다

 

 뭐가 미쳐, 뭐가 미쳐  너 미친 거 아니야

 

 너는 나를 좋아하는 거야

 

 야, 너, 야, 잠깐만

 

 [반지가 잘그락거린다]  (재원)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내가 청계천에서 버린  그 반지잖아

 

 근데 이게 여기 있다는 건

 

 얘가 청계천  이 추운 날 청계천에 들어가서

 

 이 반지를 주워 왔다는 거잖아, 이거는

 

 나는 절대로 이렇게 못 해, 이건

 

 사랑이야

 

 그래, 그땐 그랬어

 

 네가 이 반지 청계천에 버리는데  진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은오)  그래서 그 추운 날에  물에 들어가서 반지 찾아 왔어

 

 (재원)  그래, 그래, 그랬잖아  근데, 어? 근데 지금은?

 

 (은오)  근데 지금은 후회해  [재원의 답답한 한숨]

 

 반지 찾은 것도 후회하고  키스한 것도 후회해

 

 (재원)  와, 이씨

 

 얘 좀 봐, 세상 사람들아

 

 얘 좀 봐, 어?

 

 얘 좀 봐, 다 좀 봐, 다!

 

 야, 그리고 남자들아  얘, 얘 얼굴 똑똑히 보고

 

 지금 자기가 먼저 나한테 키스해 놓고  지금 여기서 나한테 후회…

 

 와, 나 지금 마음이 막 찢어질 거 같…

 

 야, 나 그냥 얘  성추행으로 고소해 버릴까?

 

 (은오)  무슨 고소를 해?  두 번째 건 자기가 해 놓고

 

 (재원)  그래, 그래, 그래!  내가 했다, 내가 했다, 왜?

 

 나는 너 좋아해서 했고 후회도 안 해

 

 나도 좋아해, 나도 좋아서 했고…

 

 - (은오) 그렇지만 후회는 해  - (재원) 하, 씨

 

 (재원)  아…

 

 (은오)  좋아해  [재원의 한숨]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근데 나는 지금 다른 게 더 중요해

 

 그래, 좋아하는 건 맞는데

 

 야, 그래, 얘기라도 좀 들어 보자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너한테?

 

 경준이한테 얘기 다 들었을 거 아니야

 

 (은오)  옛날에 이은오가 얼마나 바보 같고  답답한 사람이었는지

 

 [한숨]

 

 (재원)  뭐, 다른 남자랑  결혼하려고 했었던 거?

 

 그게 뭐?

 

 그게 뭐?

 

 나는 그거 하나도 신경 안 쓰여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야, 그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래, 너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는 중요해

 

 영원히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그냥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걸

 

 그걸 네가 알게 돼서  난 진짜 너무 비참하다고

 

 야, 너만 비참해? 나는!

 

 나를 봐

 

 (재원)  나 지금 이렇게 미친놈처럼  너한테만 매달리고 있잖아

 

 나는 있잖아  나는 그냥 미친놈이야, 지금!

 

 그만하자  지금 사람들 다 보고 있잖아

 

 (재원)  아, 몰라, 몰라!  그냥 다 보라 그래, 다 봐, 다 봐!

 

 나는 미친놈이야  그냥 다 봐, 다 봐, 다 보라 그래

 

 나는 괜찮아  어차피 나는 미친놈이야, 다 보라 그래  [은오의 한숨]

 

 [재원의 한숨]

 

 [재원의 한숨]

 

 야, 넌 있잖아

 

 넌 진짜 이기적이야, 알아?

 

 [흥미로운 음악]

 

 (은오)  그래, 나 이기적이야

 

 나는 내가 제일 안됐고  소중하고 애틋해

 

 난 나만 생각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어  [한숨]

 

 바보 같고  답답하다는 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쁜 년 소리 듣는 게 훨씬 나으니까

 

 너도 그랬잖아, 나 답답하다고

 

 우리는 이미 양양에서  서로 사랑만 하던 그런 사이가 아니야

 

 이렇게 서로 바닥까지 다 본 마당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해서  잘될 수 있을 거 같아?

 

 [재원이 소리친다]

 

 (재원)  아! 아, 야, 약간 멘탈, 와…

 

 어유, 야, 미치겠다, 아씨

 

 야, 나 어떻게 해야 될까?  누가 말 좀 해 줘 봐

 

 나 어떻게 할까?  나 시키는 대로 진짜 다 할게

 

 아니, 잠깐만, 나 있잖아, 윤선아

 

 아니, 아니  [재원의 짜증 섞인 신음]

 

 이은오, 이은오한테

 

 복수할 거야, 진짜야, 복수할 거야

 

 그, 이은오, 어?

 

 그, 눈물 흘리게 할 방법 없어?

 

 나 걔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만들  뭐, 그런 방법 없냐고

 

 얘기 좀 해 봐, 어?

 

 뭐? 딴 여자를 만나라고?

 

 야, 이씨, 아유, 진짜  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야, 내가 지금 이은오를 좋아하는데

 

 그럼 딴 여자는  그, 무슨 죄냐고! 아휴!

 

 야, 내가 지금  이 마음으로 누굴 만난들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미친놈인데!

 

 아, 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

 

 나 이거 있잖아  나 이거 절대로 못 참아

 

 내가, 야, 보여 줄게

 

 죽었다, 너는, 씨

 

 [헛웃음]  [휴대전화 조작음]

 

 그래, 오케이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  여보세요

 

 (재원)  야, 너 지금 잠이 오냐?

 

 [은오의 한숨]

 

 [통화 종료음]  뭐야

 

 (재원)  끊었어?  [헛웃음]

 

 [기가 찬 웃음]  진짜, 어이가 없네?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의 한숨]

 

 - 왜  - (재원) 너 지금 잠이 오냐고!

 

 (은오)  온다, 왜  [재원의 한숨]

 

 [흥미로운 음악]  (재원)  '온다', 하

 

 야, 넌 진짜로  이, 못돼 처먹었어, 아주 그냥, 이씨

 

 (은오)  알아

 

 야, 이…

 

 나쁜 놈아, 씨

 

 (은오)  맞아

 

 [성난 숨소리]  [통화 종료음]

 

 여, 여보세…

 

 (재원)  이게 진짜 미…

 

 와, 이게 미쳤네, 진짜, 또 끊어?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은오의 한숨]

 

 [한숨]

 

 야, 너 진짜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전화, 진짜, 제발 전화 좀 끊지 마

 

 (재원)  너 그리고

 

 너 지금 자지 마

 

 너 지금 자잖아?

 

 나 정말 진짜 미쳐서  나 진짜 죽을 거 같아

 

 [피식 웃는다]

 

 [한숨]

 

 알았어, 안 잘게

 

 [차분한 음악]  (재원)  그래, 너

 

 그냥 그러고 그대로 있어

 

 그래, 그럴게

 

 [깊은 한숨]

 

 근데

 

 내가 나쁜 놈이면 너는 뭔데?

 

 (재원)  나는

 

 나는 미친놈

 

 [피식한다]

 

 - 너 네가 미친 거 알아?  - (재원) 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재원의 한숨]

 

 야, 근데 너 있잖아

 

 너 진짜

 

 나 만난 거 후회해?

 

 후회는 안 해

 

 나도 그래

 

 나는 너 만나고 나서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난 진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너 만나서

 

 난 되게 좋았어

 

 (은오)  안 해 보던 짓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그리고

 

 네가 나 좋아해 줘서

 

 그게 너무 고마웠어

 

 그때 나한테는 그게 필요했거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 보고 싶었고

 

 누군가한테 사랑받고 싶었어

 

 [재원의 한숨]

 

 [애잔한 음악]

 

 너는

 

 양양에서의 네가  진짜 네가 아니라고 생각해?

 

 어…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달라진 이은오인지

 

 아니면 윤선아의  흉내를 내고 있는 이은오인지

 

 (은오)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처럼 안 살려고

 

 노력하고 맨날 다짐하는데

 

 어떨 때는 그 노력까지도  가짜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한숨]

 

 그거였구나

 

 나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던 거

 

 (은오)  응, 맞아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싶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옛날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미안해,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근데

 

 근데 나는 나를 아는 게 더 중요해

 

 재원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지금은

 

 나 자신이 더 중요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재원)  차 키

 

 [아련한 음악]

 

 [자동차 경적]

 

 (직원)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어요?

 

 (재원)  아, 예, 지금 이게 사이드 미러가  떨어져서 왔거든요

 

 (은오)  갖고 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

 

 (재원)  그래

 

 네 마음이 편한 게 좋으니까

 

 이거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 놓고 갔더라

 

 네가 네 자신을 찾는다고 했으니까

 

 잘 찾아 봐

 

 (은오)  응

 

 (재원)  뭐, '잘 지내', 뭐, 이런 말 안 해?

 

 (은오)  일하면서 또 볼 건데, 뭐

 

 (재원)  그래, 알았어, 갈게

 

 [재원이 카메라 가방을 탁 놓는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린이)  어

 

 [입바람을 후 분다]

 

 됐다

 

 [탄성]

 

 [숨을 카 내뱉는다]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린이의 옅은 신음]

 

 [린이가 중얼거린다]

 

 (경준)  포크 본드로 붙였지?

 

 [카메라 셔터음]

 

 [발랄한 음악]

 

 (경준)  그럴 줄 알았어  [휴대전화 조작음]

 

 자전거 하나 사 줄까?

 

 (린이)  그건 됐고, 다른 거

 

 [경준의 의아한 신음]  (린이)  뽀뽀 백 번

 

 사랑한다 말해 주기 백 번  안아 주기 백 번

 

 (경준)  그럼…

 

 오늘 밤?

 

 (린이)  오늘은  [커피 머신 조작음]

 

 안 돼

 

 (린이)  나 지금 이불 빨래 중

 

 오늘 은오네서 자는 날

 

 이불을 그냥 한 채 더 사, 좀  제발, 좀!

 

 좀 사라, 좀!

 

 [짜증 섞인 한숨]

 

 [짜증 섞인 한숨]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선영)

 

 (건)  어디 갔어?

 

 [휴대전화 조작음]

 

 얘는 누구 집 앞에  서 있다는 거야, 참

 

 [건의 한숨]

 

 [통화 연결음]

 

 (건)  아, 추운데, 진짜

 

 [가쁜 숨소리]

 

 (여자)  [술 취한 말투로]  아씨, 뭐야

 

 (건)  죄송합니다

 

 [건이 숨을 후 내뱉는다]

 

 (선영)  차렷, 열중쉬어

 

 차렷

 

 이 자식들 봐라? 차렷 안 해!

 

 허, 너 짝다리 짚었냐?

 

 똑바로 안 해?  [학생의 아파하는 신음]

 

 - (학생) 지금 폭력 쓰셨죠?  - (선영) 어, 폭력 썼어요

 

 (선영)  뭐 어쩔까요? 경찰서 갈까요?

 

 교육청 갈까요? 뭐, 어디 갈까요?  골라 봐요, 어디 갈까요?

 

 이게 담배 피우는 놈들도  문제지만, 어?

 

 야, 너희들처럼 이렇게 담배 피워 놓고

 

 아무 데나 이렇게  함부로 버리는 놈들이 더 문제야

 

 지금부터 너희들이 버린 담배꽁초  직접 수거한다, 실시

 

 [건이 피식한다]

 

 실시!

 

 [흥미진진한 음악]

 

 빨리빨리, 빨리빨리  빨리,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야, 휴지 뭐냐? 너 코 풀었냐?  아나, 빨리빨리, 빨리빨리

 

 (건)  어이, 이거…  [선영이 말한다]

 

 주워야지

 

 (학생)  아저씨, 그냥 가던 길이나 가지?

 

 (건)  키 크네

 

 아, 이, 말 짧은 거 보세요?

 

 너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학생)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되는데, 지금

 

 아, 진짜 짜증 나게, 씨

 

 (선영)  짜증이 나?

 

 이게 얻다 대고  지금 교육 중에 시비야?

 

 정신 안 차려?

 

 그리고 이 남자 내 남친이야

 

 건들지 마라, 잘생긴 얼굴 금 간다

 

 (건)  그래

 

 내가 이분 남친이시다

 

 [소리치며]  알았어?

 

 (건)  그런 애들 보면 좀 그냥 지나가라니까

 

 [술을 조르르 따르며]  너 요즘 애들이 얼마나 센지 모르지?

 

 (선영)  괜찮아, 내가 더 세

 

 (건)  어, 그건 뭐, 사실이다  [잔이 딱 부딪는다]

 

 [선영의 옅은 웃음]

 

 너 왜 우리 집 앞이라 그랬냐?

 

 도무지 못 찾겠어서  실험 한번 해 봤어  [건이 잔을 탁 내려놓는다]

 

 (선영)  그렇게 문자 보내면  네가 나 찾나 못 찾나

 

 [헛웃음]

 

 아직도 엄마가 보고 싶어?

 

 [건이 술을 조르르 따른다]

 

 (선영)  응

 

 어, 술 마실 때도 보고 싶고

 

 술병 나서  방바닥 기어 다닐 때도 보고 싶고

 

 밤늦게 돌아다닐 때도 보고 싶고

 

 지각해서 교장 선생님한테  깨질 때도 보고 싶어

 

 넌 어쩜 그렇게

 

 (건)  너희 어머니 화병 나실 거 같은  상황에서만 엄마가 보고 싶냐?

 

 그러면 엄마가 와 줄 것 같아서

 

 [감성적인 음악]

 

 나 다혈질인 거  우리 엄마 닮은 거거든

 

 '야!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정신 차려!'

 

 [선영의 웃음]

 

 꿈에라도

 

 이렇게 나 혼내러 와 줄 거 같아서

 

 엄마 만나면  무슨 얘기 하고 싶은데?

 

 [선영의 생각하는 신음]

 

 (선영)  어떤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난다고

 

 그냥 엄청 둔하고 완전 못생기고

 

 똥 멍청한 어떤 남자

 

 그런 남자를 왜 찾냐

 

 (선영)  그때 왜 나 안 잡았냐?

 

 네가 잡는다고 잡히는 여자냐

 

 (선영)  나 너 기다렸는데?

 

 잡아 줄 줄 알았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나한테 매달려 줬으면 했어

 

 그래서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 너

 

 그냥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툭 털어 버리고 말 텐데

 

 아휴, 그게 너라서  그냥 그렇게 열이 받고 짜증이 나고

 

 [옅은 웃음]

 

 슬펐어

 

 [한숨]

 

 너 나한테  되게 특별한 사람인 거 알아?

 

 내가 엄마 보고 싶다고 하면  다들 나한테 그랬었거든

 

 '힘내라'

 

 '네 마음 이해한다'

 

 '나라도 너 같을 거 같다'

 

 근데 넌 달랐잖아

 

 '엄마 보고 싶으면 나 찾아와'

 

 그렇게 말해 준 사람 너밖에 없었거든

 

 지금도 봐

 

 뭐, 억지로 위로하려고 안 하잖아

 

 대신 내가 실컷  엄마 얘기 하게 놔두잖아

 

 그래서 나도

 

 나도 너한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봐

 

 너 이은오 좋아하지?

 

 (건)  아니

 

 [옅은 웃음]

 

 처음이다, 아니라고 한 거

 

 이은오, 서린이

 

 걔네들 여자로 생각 안 하고

 

 (건)  걔네들 여자에 포함한다고 해도

 

 내 눈엔 네가 제일 예쁘고

 

 네가 제일 섹시해

 

 [피식한다]

 

 (선영)  [웃으며]  뭐야

 

 (건)  늦게 말해 줘서 미안

 

 (선영)  왜 진작 그렇게 말 안 했는데?

 

 네가 나랑 헤어질 이유를 찾는다고  생각했나 봐

 

 네가 내가 싫어져서

 

 나랑 헤어지려고

 

 (선영)  나는 왜 한 사람이랑 오래 못 갈까?

 

 (건)  너 오래는 못 가도

 

 뜨겁게 사랑하잖아

 

 한순간이라도 진심으로

 

 [옅은 웃음]

 

 나 이제 엄마 보고 싶어도  너한테 안 올 거야

 

 (선영)  혼자 버틸 거야

 

 [차분한 음악]

 

 너랑 완전히, 진짜로 헤어지려고

 

 이 말 하러 왔어

 

 너만 만나면 눈이 오더라

 

 (건)  금방 그친댔어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야

 

 그…

 

 그 골목길에서 걔네들 또 만나면  그냥 내 남친이라고 해

 

 (선영)  보니까 너 언젠가 한 대는 맞겠더라

 

 [피식한다]

 

 [건의 깊은 한숨]

 

 (건)  야

 

 너는 진짜 나를 뭘로 아냐?

 

 [바코드 인식음]  (건)  너 취직 안 하냐? 맨날 알바만 할래?

 

 지갑이나 꺼내세요, 백수야

 

 내가 왜 백수야, 나 소설가야

 

 어, 소설가 폐업한 지 3년이나 된 게

 

 내가 며칠 전에도  출판사 편집자 미팅…

 

 얼마나 소설을 안 쓰면  미팅만 3년째냐

 

 (건)  너는 친구 아픈 데를 그렇게  쿡쿡, 쿡쿡, 쿡쿡, 쿡쿡, 쿡쿡, 쿡

 

 아휴, 계산이나 해라

 

 (린이)  야, 근데 오늘 맥주 마시냐, 우리?  [포스 작동음]

 

 (건)  아니, 나 오늘 촛불 켜는 날  [포스 조작음]

 

 (린이)  왜, 무슨 일 있어?

 

 (건)  싫어, 이따 얘기할래

 

 - (건) 너 오늘 몇 시에 끝나?  - (린이) 나 10시

 

 근데 나 오늘 어차피 너희 집 가야 돼

 

 이불 빨았거든

 

 되게 신났네

 

 그, 이불 빨 때마다 오는 거  안 귀찮냐?

 

 아, 이불을 한 채 사지, 그냥

 

 낭비야, 낭비, 한 채면 충분해

 

 (린이)  가, 빨리

 

 네가 담아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은오)  나 오늘 촛불 켠다

 

 할 말 있어, 우리 집에서 10시에 봐

 

 아, 안 되는데

 

 오늘 내가 촛불 켜는 날인데

 

 (경준)  촛불 켜는 날?

 

 걔네 셋이 유치원 때부터 쭉 친구잖아

 

 한 명이 촛불을 켜면  두 명은 받아 주고

 

 뭐, 그런 날이래

 

 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 갔으니까

 

 완전히 걔들 친구는 아닌 거지, 뭐

 

 린이 때문에 다시 만난 거니까

 

 (은오)  너희 기억나?

 

 1년 전에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그날

 

 [은오의 한숨]

 

 (은오)  춥겠다, 우리 집

 

 [도어 록 작동음]

 

 [트렁크를 탁 놓는다]

 

 [은오가 문을 끼익 닫는다]

 

 [도어 록 작동음]

 

 뭐야?

 

 왜 불이 다 켜져 있지?

 

 왜 이렇게 따뜻해?

 

 [세탁기 작동음이 들린다]

 

 [은오의 놀란 숨소리]  [건이 덜그럭거린다]

 

 (은오)  아, 깜짝이야

 

 너 뭐야?  네가 왜 우리 집에 와 있어?

 

 (건)  아니

 

 너

 

 돌아오면 추울까 봐

 

 [잔잔한 음악]

 

 그, 내가 이불 빨래 좀 해 놓고

 

 겨울 이불 꺼내 놨다

 

 (은오)  전기고 수도고  다 끊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 내가 처리했는데

 

 (건)  밖에 춥지?

 

 (은오)  응

 

 아, 되게 춥다

 

 (건)  아, 너 린이 한국 들어온 거 알아?

 

 - 언제?  - (건) 너 사라졌단 말 듣고

 

 야, 린이가 너 찾으려고  부산까지 갔었어

 

 [한숨]

 

 짐 정리하고 나와, 밥 먹자

 

 (건)  린이한테 전화부터 해

 

 [건이 달그락거린다]

 

 (건)  린이가 계속 왔다 갔다 했나 봐

 

 대문 앞에 붙어 있길래  너 오면 보라고

 

 (린이)  은오야, 나 린이

 

 청소하다가 쌀벌레 발견해서  쌀 버리고 새로 사 놨어

 

 공짜 아니다, 돌아오면 다 갚아야 돼

 

 냉장고에 카레 넣어 놨어

 

 얼른 네가 와서 먹었으면 좋겠다

 

 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너 집에 오면 나랑 대판 싸울 줄 알아

 

 얼른 와, 은오야, 보고 싶어

 

 (은오)  그때  [훌쩍인다]

 

 따뜻하게 우리 집 데워 놓고  [헛기침]

 

 그렇게 둘 다 나 기다려 줘서 고마워

 

 다 지난 일인데 뭘 새삼스럽게

 

 나한테 묻고 싶은 거, 듣고 싶은 거

 

 많았을 텐데

 

 나 배려해서 안 물어본 것도 알고

 

 (은오)  나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어

 

 너희 배려에 기대서 도망쳤어

 

 미안해

 

 미안하고 고마워

 

 음…

 

 [한숨]

 

 그러니까

 

 [목을 가다듬는다]

 

 [은오의 한숨]

 

 어…

 

 [옅은 웃음]

 

 그러니까…

 

 [목을 가다듬는다]

 

 [한숨]

 

 말하기 힘들면 다음에 해도 돼

 

 응, 그래, 은오야  꼭 오늘 말할 필요는 없어

 

 (건)  우리가 뭐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은오)  아니야

 

 나 또 도망가면 안 돼

 

 너희한테 또 숨기고 미안해하고

 

 다신 그러고 싶지 않아

 

 나

 

 [심호흡]

 

 내가

 

 내가

 

 윤선아야

 

 내가 박재원 카메라 도둑이야

 

 [은오의 한숨]

 

 솔직해지는 거 진짜 어렵다

 

 [흐느낀다]

 

 [차분한 음악]

 

 [은오가 연신 흐느낀다]

 

 (은오)  진짜

 

 나는 아직도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  그대로야

 

 (린이)  왜 네가 바보 같다 생각해

 

 그때는 그냥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생긴 일 같았어

 

 그게 왜 네 탓이야  강민수가 나쁜 새끼지

 

 (린이)  취직 취소된 것도 그래

 

 그 회사 잘못이지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은오)  나는, 나는 박재원이

 

 내 원래 모습이  그렇게 바보 같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진짜 너무 싫었어

 

 박재원이 양양에서 만난 내가  다 가짜라는 게, 그리고

 

 내가 왜 양양까지 가게 됐는지  알게 되는 것도 진짜 너무 싫었고

 

 그리고 너희가 알게 되는 게  진짜 너무 부끄럽고 싫었어

 

 [훌쩍이며]  나 너한테 엄청 서운해

 

 나도

 

 (린이)  친구끼리 그런 말도 안 하면  우리가 왜 친구냐?

 

 (은오)  미안해

 

 근데 너희가  친구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 혼자

 

 이 세상의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린이의 한숨]

 

 (린이)  은오야

 

 내가 꼭 너한테 해 줄 말이 있는데

 

 옛날에 너 바보 아니었어

 

 (건)  맞아

 

 너 되게 착하고

 

 따뜻한 애였어

 

 (린이)  옛날의 이은오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건)  나도  [린이가 훌쩍인다]

 

 [린이의 한숨]

 

 (린이)  난 지금의 이은오도 좋아

 

 지금처럼 잘 울고 잘 웃고

 

 잘 화도 막 냈다가  [건이 피식한다]

 

 또 금방 풀어져서 장난치고

 

 [훌쩍이며]  그런 이은오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흐느끼는 신음]

 

 옛날의 너도 지금의 너도  넌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그러니까 너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린이가 훌쩍인다]

 

 야, 넌 왜 울어

 

 (린이)  네가 우니까 눈물 나잖아

 

 (은오)  야, 울지 마, 린아  [린이가 흐느낀다]

 

 (린이)  은오야

 

 [함께 흐느낀다]

 

 - (린이) 아, 울지 마, 뭐가 미안해  - (은오) 미안해

 

 - (린이) 아이고, 우리 은오  - (건) 아이고

 

 (선영)  외롭네

 

 [한숨 쉬며]  왜 이렇게 외롭지

 

 [은오가 펜 뚜껑을 딱 뽑는다]

 

 [은오가 펜을 탁 내려놓는다]

 

 [은오의 힘주는 신음]

 

 [한숨]

 

 (재원)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 놓고 갔더라

 

 (재원)  네가 네 자신을 찾겠다고 했으니까

 

 잘 찾아 봐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련한 음악]

 

 이게 뭐야?

 

 [반지를 잘그락거린다]

 

 (린이)  맞아, 너 촛불 켠다며

 

 (건)  아, 나?

 

 (은오)  왜, 너 무슨 일인데?

 

 (건)  나…

 

 선영이랑 헤어졌다

 

 아까 마트 가기 전에

 

 (린이)  너희 3년 전에 헤어졌잖아

 

 또 헤어졌어

 

 (건)  아까 걔가 무슨 말을 하는데  내 마음이 너무…

 

 [린이가 입바람을 후 분다]

 

 (린이)  촛불 켜는 날 끝, 나 씻는다

 

 [멀어지는 발걸음]

 

 [문이 달칵 열린다]

 

 (은오)  야, 그래도  [문이 탁 닫힌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겠다

 

 너도 일하러 가야 되지?

 

 응, 조금

 

 [입소리를 쩝 낸다]

 

 아휴, 가라, 가, 다 가  다 가, 빨리,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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