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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불시착 3

 

 누구냐고 묻지 않습니까?  [세리의 겁먹은 숨소리]

 

 [여자1의 놀라는 숨소리]

 

 (월숙)  아, 입 없습니까?

 

 왜 우리 대위 동지 김치움에  응큼하게 숨어 있었던 겁니까?

 

 (철강)  두시오  [대원1이 총으로 탁 민다]

 

 보위부에 가면 입이 없는 자라도  다 말을 하게 돼 있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긴장되는 음악]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월숙)  [놀라며]  어, 저거이

 

 [사람들이 연신 웅성거린다]

 

 [긴장한 숨소리]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제 약혼녀에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남자1)  약혼녀?

 

 (철강)  방금 뭐라 했소, 대위?

 

 제 약혼녀에게 겨눈 총을  거둬 주시면 고맙갔습니다, 소좌 동지

 

 약혼녀가 있었소?

 

 실례했소

 

 (세리)  아, 뭐...

 

 (철강)  대위 동무의 약혼녀라면

 

 평양에서 왔소?

 

 절차상 필요한 일이니 협조 부탁하오

 

 평양 시민증과  전방 지역 특별 통행증을 제시하시오

 

 [긴박해지는 음악]

 

 [주먹의 답답한 신음]

 

 아무 일 없갔디요?

 

 (광범)  대위 동지가 잘 도착하기만 했다면

 

 어케든 일을 해결하시갔지

 

 아이고, 그 요령 없는 인간이?

 

 사실대로 술술 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야

 

 (철강)  시민증과 통행증

 

 설마 없소?

 

 [긴장되는 음악]  (정혁)  소좌 동지

 

 제 약혼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남조선?

 

 [사람들이 연신 웅성거린다]

 

 (철강)  그게 무슨 소리요?

 

 제 약혼녀는 11과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놀란다]  (여자1)  11과?

 

 (월숙)  아, 기러믄

 

 중앙당에서  영웅 메달을 받았다는 소리입니까?

 

 이야, 대체 남조선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셨길래...

 

 (정혁)  다들 아시다시피

 

 11과 대상의 정보는  중앙당에서 관리하는 1급 기밀이라

 

 이 자리에서 상세히 말하기 곤란합니다

 

 (주먹)  암튼 우리 대위 동지

 

 사람이 너무 올곧으셔서 걱정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 따위는 못 하시니

 

 너무 정직해

 

 기러게나 말입니다

 

 아, 그, 사람이 후라이를 깔 땐  적절히 까 줘야 하는데, 이, 씨

 

 (정혁)  제 약혼녀가 조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적응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만 들어가 봐도 되갔습니까?

 

 이 밤에 한집으로 단둘이...

 

 워낙 피곤해해서

 

 [세리의 피곤한 숨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피곤한 숨소리]

 

 [감성적인 음악]

 

 [산새 울음]

 

 [세리의 피곤한 신음]

 

 [세리가 연신 피곤한 숨소리를 낸다]

 

 [세리의 피곤한 숨소리]

 

 보는 사람 없으니 그만해도 되갔소

 

 아니...

 

 갑자기 약혼녀라고 하니까

 

 하, 너무 몰입했네, 나도 모르게

 

 [세리의 헛기침]

 

 다른 방도가 없어서...

 

 그래요

 

 순간적인 애드리브치고  나쁘지 않았어요

 

 아까 그 눈 똥그란 아줌마도  되게 놀란 눈치더라고

 

 우리가 너무 어울리니까  막 자기네들끼리도...

 

 근데 그게 뭐예요? 11과?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세리)  아니, 근데

 

 11과라고 하니까 왜 사람들이  찍소리를 못 하죠?

 

 그게 여기서 많이 높은 건가?

 

 [주전자를 탁 내려놓는다]

 

 (정혁)  마시오, 진정하고

 

 숙박 검열을 가끔 하지만

 

 그게 오늘일 거라곤 미처 예상 못 했소  미안하오

 

 아니, 뭐...

 

 그쪽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래도 타이밍 딱 맞춰서 와 줬잖아요

 

 [세리가 물을 호로록 마신다]

 

 어디 다친 데는... 없소?

 

 (세리)  응  [살짝 웃는다]

 

 괜찮아요

 

 [세리가 물을 호로록 마신다]  11과 대상은...

 

 맞는다, 그게 뭐예요?

 

 남조선에서 활동한 특수 공작원이나  그 가족을 가리키는 말이오

 

 특수 뭐요?

 

 설마 간첩 같은 그런 거?

 

 그들의 신상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일단 기케 둘러댄 거요

 

 아니, 암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간첩이라고...

 

 말이 돼요, 지금?

 

 당신의 행색, 말투  달리 어케 설명할 수 있갔소, 그럼

 

 아이, 그래도...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요?

 

 [작은 소리로]  아닌 거 들키면?

 

 어차피 당신은 내일 밤이면  여길 떠날 거니까

 

 (정혁)  하루만 조용히 버티면 되갔지

 

 [한숨]

 

 그래도 간첩은 싫은데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옥금)  대위 동지!

 

 대위 동지 안에 계십니까?

 

 [대문을 쾅쾅 두드리며]  대위...

 

 - (옥금) 없는 거 아닙니까?  - (월숙) 아이고, 참

 

 (월숙)  안에 있다니까  그 약혼녀인지 뭔지 하는 여자랑...

 

 (세리)  지금 조용히 버티는 게 가능해요?  [월숙이 계속 말한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옥금)  대위 동지!  [세리의 한숨]

 

 [대문이 끼익 열린다]

 

 (옥금)  아, 아유, 참

 

 밤늦게 미안합니다

 

 예, 무슨 일로...

 

 전초선 근무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뭐 먹을 게 있갔소?

 

 (영애)  내가 이 동네 어른으로서  진작에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늦었구먼기래  [옥금과 영애의 웃음]

 

 [난감한 숨을 내쉬며]  일없습니다

 

 (영애)  아유, 자, 사양 말고 받으라요

 

 이거 내가 직접 담근 알밤주야

 

 (옥금)  이거는 감자빈대떡이야요  [옥금의 웃음]

 

 (월숙)  여기 찐 옥수수도 있습니다  아주 뜨끈뜨끈합니다

 

 [함께 웃는다]  [영애의 머뭇거리는 숨소리]

 

 아이고, 우리 대위 동지 손이  모자라갔구나, 어?  [옥금이 호응한다]

 

 (월숙)  아, 기러믄 우리 다 같이 들어가서  놓고 오자요

 

 - (옥금) 기럴까요?  - (정혁) 아

 

 (정혁)  손 모자라지 않습니다

 

 - (옥금) 모, 모자란 거 같은...  - (영애) 아...

 

 [익살스러운 음악]

 

 (영애)  아, 우리 인민반장에게 소식 들었소

 

 대위 동지의 약혼녀라고?

 

 (세리)  아, 네

 

 반갑구먼

 

 아, 예

 

 (영애)  11과 대상이라고 들었는데

 

 어데서 어떤 임무를 수행했었는지

 

 어디서 어떤 임무를 수행했었는지  [긴장되는 음악]

 

 (세리)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 것이  저희 원칙이라서요

 

 모든 건 철저히 기밀에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할까?

 

 잘 아실 텐데

 

 (영애)  아이고

 

 아, 기렇지, 참

 

 [웃으며]  내가 참 한심한 질문을 했네 기래

 

 [함께 웃는다]

 

 (정혁)  기럼

 

 - 그럼  - (영애) 반갑구먼

 

 [영애의 옅은 웃음]

 

 [대문이 쾅 닫힌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잠금장치가 달칵 잠긴다]

 

 (옥금)  기렇게까지 이쁘진 않습네다

 

 [요란한 발걸음]

 

 (월숙)  집안끼리 약조가 된 거갔디요?

 

 우리 대위 동지는  전혀 마음이 있어 보이지 않더구먼요  [익살스러운 음악]

 

 (영애)  암만해도 기케 보이지?

 

 (월숙)  아까 보시라요

 

 둘이 같이 있는데  우리 대위 동지 얼굴에

 

 아주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얼마나 싫으셨으면  [향이네의 헛웃음]

 

 (향이네)  머리 꼬라지 봤습니까?

 

 산발도 그런 산발이 없습니다  [향이네의 못마땅한 신음]

 

 [세리의 어이없는 숨소리]  (여자2)  난 처녀 귀신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대위 동지 너무 안됐습니다

 

 다음에 보면 뒤에 꼬리 달렸는지  꼭 확인해 보라

 

 [헛웃음]

 

 (세리)  치  [못마땅한 숨소리]

 

 뭐, 좋아요

 

 [정혁의 한숨]

 

 간첩, 약혼녀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앞으로 어쩔 거예요?

 

 뭘 말이오?

 

 아니, 나 간 다음에  물어볼 거 아니에요

 

 특히 아까 그 눈 똥그란 아줌마가

 

 '둘이 왜 깨졌냐'

 

 물어보지 않을 거요

 

 물어보겠던데, 백번 물어보겠던데

 

 아주 쑥덕쑥덕 장난 아니겠던데?

 

 아무도 내 개인의 문제를  쉽게 물어볼 순 없소

 

 쉽게 막 물어보겠던데?

 

 아까 보니까

 

 막 목소리 그렇게 깔고  무게 잡을 위치가 아니던데

 

 아니, 얼마나 개무시했으면  문 막 까고 들어오고

 

 완전 쫄따구던데

 

 쪼, 쫄따구 아닙...

 

 (세리)  리정혁 씨

 

 [숨을 들이켜며]  남녀 사이에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왜 깨졌냐, 누가 찬 거냐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뭐, 누가 봐도  유추 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세리)  보다 명확하게 했으면 해요

 

 왜 깨졌냐 누가 물어보면  그쪽이 차인 걸로

 

 왜 기딴 게 중요한지 모르갔지만  기캅시다

 

 (세리)  음, 차인 이유는?

 

 쯧, 뭐, 무난하게 성격 차이 가시죠

 

 - 기캅시다  - (세리) 6개월로 해요

 

 (세리)  나 떠난 다음에  딴 여자 안 만나는 기간

 

 뭐, 일종의 파혼 애도 기간이랄까?

 

 [한숨]

 

 [손으로 탁자를 탁 치며]  그렇지

 

 (세리)  땅이 꺼져라 한숨 쉬고

 

 잘 먹지도 않고 잘 웃지도 않고  왜 그런 거 있잖아

 

 사람이 막 핼쑥해 보이고  처져 보여 가지고

 

 누가 보도 '아, 쟤 엄청 매달리다  되게 비참하게 차였구나'

 

 그런 게 딱 느껴지게

 

 [헛웃음]

 

 (세리)  웃어?

 

 '기캅시다' 안 해요?

 

 나 확 안 가는 수가 있어

 

 [사발을 탁 내려놓으며]  기캅시다

 

 [못마땅한 숨소리]

 

 나 안 가는 건 또 되게 무서운가 보네

 

 [정혁의 한숨]  - (세리) 아휴  - 쉬시오

 

 아, 가려고요?

 

 (세리)  아니, 사람들이 또 쫄따구 집이라고  막 문 까고 들어오고

 

 막 그러면 난 어떡해요

 

 오늘은 여기 계세요

 

 쩝, 내가 안방을 쓸 테니까  마루를 쓰시고

 

 (세리)  어머

 

 [한숨]

 

 아주 야박하고 좋네요

 

 [발랄한 음악]  세상에

 

 바닥 딱딱한 거 봐

 

 평생 극진한 대접만 받다가  이런 홀대 신선하다

 

 고마워요, 정말

 

 (정혁)  쓰잘데기없는 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오

 

 (세리)  나도 자고 싶죠

 

 근데 내가 지금 잠이 오겠어요?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졌지

 

 눈 떠 보니 북한이지

 

 총 맞을 뻔했지

 

 또 맞을 뻔했지

 

 오늘은 약혼도 했지

 

 어휴, 내가 너무 업이 돼서  잠을 잘 수가 없네?

 

 [한숨]

 

 근데요, 스위스 간 적 있어요?

 

 아니, 내가 보려고 본 건 아니고

 

 아까 잠깐 책장을 좀 봤거든요?

 

 그, 보통 이렇게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뭐, 성품, 인격, 취향

 

 뭐, 이런 게 두루두루 다 보이잖아요

 

 근데 쩝, 그쪽 같은 경우엔 책이 좀  어두운 게 많더라

 

 (세리)  씁, 아, 그리고

 

 그, 굉장히 안 어울리는 게  있더라고요?

 

 피아노 악보집

 

 그리고 공연 브로셔도 있고

 

 그, 그, 뭐더라?  스, 스위스 바젤 음악원?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

 

 "신청서"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서류들을 쓱 넣는다]

 

 (세리)  뭐, 나도 피아노라면  어디 가서 빠지진 않아요

 

 '엘리제를 위하여'까진  내가 악보도 안 보고 친다고

 

 [입소리를 쩝 낸다]

 

 혹시 그쪽도 피아노 쳤어요?

 

 아니면 뭐

 

 피아노 치는 여친이라도 있나요?

 

 뭐야?

 

 진짜 있는 거 아니야?

 

 [한숨]  [비행기 엔진음]

 

 [흥미진진한 음악]

 

 (승준)  이야, 남남북녀가  그냥 있는 말은 아니었네

 

 그 쓸데없는 언행 삼가시라요

 

 (천 사장)  그러다 누가 눈치라도 채면 어캅니까?

 

 (승준)  천 사장님, 우리 계약서 다시 씁시다

 

 만 달러 더 드릴게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요

 

 대신 잔소리하면  당신이 나한테 만 달러 주는 거야

 

 아, 그...

 

 (천 사장)  어디 갑니까, 이쪽입니다

 

 요쪽?

 

 이야, 우리 단이

 

 러시아에서  공부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네?

 

 얼굴이 반쪽 됐구나, 야

 

 저 요즘 살 까는 중입니다

 

 (명석)  야, 야, 네가 깔 살이 어디 있다고

 

 고만 까라, 야

 

 [명석의 웃음]

 

 (남자2)  [놀라며]  튀라, 튀라, 튀라!

 

 (명석)  저런, 저, 저...

 

 - 꺼내라  - (운전기사1) 예!  [가방 지퍼를 찍 연다]

 

 (명석)  도둑놈들 욕할 일이 아니야

 

 돈 되는 걸 간수 못 한 놈이  한심한 거이디

 

 긴데 외삼촌

 

 - 왜 그 차가 아닙니까?  - (명석) 아...

 

 그 차는 잠깐 누가 빌려 갔어

 

 기러케 막 빌려줘도 되는 차입니까  그 차가?

 

 아니, 감히 누가 그 차를 빌려 갑니까?

 

 저, 정혁이가

 

 아, 많이 급하다 기래서

 

 기래요? 기럼 어쩔 생각입니까?

 

 - (명석) 응?  - 그이가 차를 갖다주러 온답니까?

 

 아니면 돌려받으러 가야 하는 겁니까?

 

 아, 기거야

 

 내가 누구 시켜서  가지러 가라 그러믄...

 

 - 알갔습니다  - (명석) 어? 뭘 알갔디?

 

 내가 가서 가지고 오갔다 그 말입니다

 

 내일 귀국 연주회 끝나는 대로

 

 네가?

 

 정혁 동무도 내가 온 걸 빤히 알 텐데

 

 내가 가지 않는 것도 우습고

 

 저, 정혁이가 알아?

 

 모릅니까?

 

 나는 말을 안 했거든

 

 (명석)  아니, 묻질 않더라고

 

 네 얘긴 아예 안 물어보니까  내 말할 틈이 없었디  [자동차 시동음]

 

 [못마땅한 숨소리]

 

 긴데 너 정혁이 얼굴 알아는 보갔니?

 

 하도 오랜만이라  [차 문이 탁 여닫힌다]

 

 저 결혼할 남자 얼굴 못 알아보는  여자도 있습니까?  [차 문이 탁 열린다]

 

 (명석)  이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 에미나이 성깔머리는  어째 변하질 않네

 

 [차 문이 탁 열린다]  [멋쩍은 웃음]

 

 [흥미진진한 음악]

 

 [다급한 숨소리]

 

 (천 사장)  가자  [승준이 차 문을 탁 닫는다]

 

 북한 좋아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승준)  음, 평양의 하늘도  환영의 박수를 치는구나

 

 [삐거덕 소리가 난다]

 

 [익살스러운 음악]

 

 [삐거덕 소리가 연신 난다]

 

 [끼익끼익 한다]

 

 (승준)  뭐야, 지금?

 

 아, 차에 와이퍼가 없는 거야?

 

 아, 내가 준 돈이 얼마인데  이따위 차를 끌고 나와

 

 (운전기사2)  아, 그게 아니라  급하게 모시러 오느라

 

 요 빗물닦개 떼 놓고 가는 걸  깜빡했더니만

 

 도둑놈들이 가져간 모양입니다

 

 (승준)  아, 어떡할 거야  지금 하나도 안 보이잖아!

 

 아, 보입니다

 

 (승준)  아, 지금도 보인다고?

 

 아, 예, 예, 다 보입니다, 예

 

 투시하나? 초능력 있어?

 

 (천 사장)  거, 일없습니다

 

 우린 이런 일이 흔히 있기 때문에

 

 그, 단련이 잘되어 있어  쌩쌩 갈 수 있습니다

 

 - (운전기사2) 예  - 장난해?

 

 지금 속도 10이야!

 

 (승준)  아, 정말

 

 아, 천 사장님 그, 계약서 쓰실 때는  신뢰를 그렇게 챙기시더니

 

 와이퍼는 못 챙기셨어, 아주 그냥

 

 (운전기사2)  걱정 말라요

 

 내래 또 이런 액티비티한 운전에  자신 있지 않갔습니까?

 

 (승준)  10년 동안 액티비티하고 싶어요?

 

 앞만 보세요, 앞만

 

 [승준의 한숨]

 

 [긴장되는 음악]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문이 철컹 열린다]

 

 [문이 철컹 닫힌다]

 

 (철강)  다들 수고가 많구먼기래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소좌 동지, 어쩐 일로 여기까지...

 

 리무혁이 동생이 전초선에 와 있어

 

 [어두운 음악]

 

 5중대장 리정혁이 말이야

 

 (철강)  그자가 리무혁이 동생이었어

 

 (만복)  예? 뭘 알고서 온 겁니까?

 

 기거는 나한테 묻지 말고  당신이 알아내야디

 

 그자가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기야

 

 지향성 마이크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만복)  기거라믄 집 안에 설치하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에서 집 안의  대화 내용까지 다 도청이 됩니다

 

 - 설치하라  - (만복) 예

 

 지금 그 집에 여자가 하나 있어

 

 - 여자요?  - (철강) 행색도 묘하고

 

 리정혁이 말로는 11과 대상이라는데

 

 내 감으론 뭔가 있어  주의 깊게 살피라

 

 (만복)  예

 

 높은 데 있는 놈들일수록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자빠뜨리기 쉽디

 

 잘만 엮으면 그 여자 하나로

 

 리정혁이뿐만 아니라 그 집안 전체를  풍비박산 낼 수도 있다 이 말이야

 

 [만복의 긴장한 숨소리]

 

 동무도 인차

 

 귀때기 신세 면하고  밝은 데서 일할 때도 되지 않았어?

 

 (철강)  공부 잘하는 아들내미

 

 평양 고급 살림집서  대학 공부 시켜야디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자동차 시동음]

 

 [자동차 엔진음]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만복)  방금 두 번째 초소 검문 통과했습니다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목표 차량 봉덕 굽인돌이 쪽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덜컹 소리가 난다]  방지턱 9회째 통과합니다

 

 [긴장한 숨소리]

 

 (무혁)  내 동생이 말이지

 

 스위스에 유학을 가 있어

 

 (무혁 부하)  아, 기렇습니까?

 

 (무혁)  그 녀석이 피아노 천재거든

 

 이, 장학금 받고 공부하고 있어

 

 얼마 전에 연주회가 있었는데  전체 기립 박수를 받았다지 뭐이가

 

 [산새 울음]

 

 나한테 전화만 오믄 미안하다는 거야

 

 우리 둘 중의 누구 하난  이, 아바지 따라 군인이 됐어야 하는데

 

 지가 피아노 치는 바람에  내가 군인 된 거라고

 

 그럼 중대장 동지도  피아노 치고 싶으셨습니까?

 

 (무혁)  음...

 

 나도 좋아는 했지만

 

 우리 정혁이 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

 

 우리 정혁이가 나를 위해  곡을 하나 만들었대

 

 [차분한 음악]  조국에 돌아오면 연주해 준다는구먼

 

 [살짝 웃으며]  좋으십니까?

 

 [웃음]

 

 좋아

 

 나는 그 녀석 생각을 하면...

 

 [그리운 숨소리]

 

 기분이 아주 좋아

 

 [덜컹 소리가 난다]  [놀라는 신음]

 

 마지막 방지턱 통과합니다

 

 5초 후 목표 지점 도착

 

 [트럭 가속음]  [긴장되는 효과음]

 

 [쿵 박는다]

 

 [놀란 신음]  [떨리는 숨소리]

 

 [만복의 거친 숨소리]

 

 [연기가 치익 난다]

 

 [트럭 엔진음]

 

 [트럭 가속음]

 

 [쿵 소리가 난다]  [놀란 신음]

 

 [흐느낀다]

 

 [오열한다]

 

 [헤드폰을 탁 내려놓는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숨을 씁 들이켠다]

 

 [한숨]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닭 울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남자3)  앞에, 앞에 범이 그려져 있어

 

 이야, 이 검은색 차 멋있다, 야  [흥미진진한 음악]

 

 - (월숙) 이야, 반짝반짝 빛난다  - (남자3) 본새 나네, 이거

 

 (남자3)  이야, 이거 무슨...

 

 (남자4)  살다 살다 이런 차는 처음 봅니다

 

 - (남자3) 그러니까  - (여자3) 우리 동네에 이런 차가...  [소 울음]

 

 (소달구지꾼)  이야, 이거이 뭐이니? 응?

 

 (월숙)  이거이 여기 사는 대위 동지가  지난 밤에 평양 갔다 끌고 온 차입니다

 

 (소달구지꾼)  이야,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본다, 이런 차, 응?

 

 이봐라, 만지지 말라, 만지지 말라  [소달구지꾼의 탄성]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 뭐 하고 있소?  - (세리) 오, 깜짝이야

 

 (세리)  아니, 어디서 무슨 차를 끌고 왔길래

 

 저걸 사람들이 다 모여서  구경하고 난리야?

 

 그냥 세단이구먼

 

 괜히 밖에 나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시오

 

 잠깐만요

 

 같이 나가요, 배웅해 줄게요  집 앞까지만

 

 일없소

 

 [대문이 쾅 닫힌다]

 

 어제 아줌마들이 너무 깜깜해서

 

 내 얼굴을  제대로 못 본 거 같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게 대체 왜 중요한 거요?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인데

 

 한 번 보고 말 거니까 더 중요하죠

 

 한 번 박힌 그 이미지 평생 갈 텐데

 

 [대문이 삐거덕거린다]

 

 왜요?

 

 - 응?  - (정혁) 묶으시오

 

 - 뭘?  - (정혁) 산발

 

 산발?

 

 [세리의 어이없는 웃음]

 

 이렇게, 이렇게 비싼 산발 봤어요?

 

 여기선 이런 산발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딱 두 부류요

 

 외국인 아니면 미친 여자

 

 그래요?

 

 그럼 미친 여자 하지, 뭐

 

 [대문이 철커덩거린다]

 

 (세리)  응?

 

 [정혁의 한숨]

 

 [밝은 음악]

 

 아, 참

 

 [정혁이 대문을 철컹 연다]

 

 [여자4의 당황한 신음]

 

 [세리가 살짝 웃는다]

 

 (세리)  어머, 아기같이, 뭐 묻었어

 

 [세리의 웃음]

 

 [당황한 숨소리]  뭐 안 묻었소

 

 [작은 소리로]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누가 잡아먹어?

 

 [세리의 웃음]

 

 [발랄한 음악]  (세리)  알았어요, 그럼

 

 내 머리 잠깐 만져 봐요

 

 - 뭐요?  - (세리) 머리 만져 보라고

 

 다정하게 쓰담쓰담 할 줄 모를까요?

 

 전혀 모르오

 

 그래서 안 만져?

 

 나 여기 남는다

 

 확 눌어붙는다, 아주

 

 (세리)  약혼도 했겠다

 

 확 할래, 결혼을?

 

 얘기했지? 내 타입이라고

 

 [세리의 웃음]

 

 [한숨]

 

 [소달구지꾼의 콧바람]

 

 [애교 섞인 말투로]  몰라

 

 [세리의 애교 섞인 신음]

 

 [세리의 애교 섞인 신음]

 

 다녀오갔소

 

 손 흔들고

 

 [대문이 철컥 여닫힌다]

 

 [서로 인사한다]

 

 [소달구지꾼의 헛기침]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관상은 과학이라 기랬습니다

 

 (옥금)  어케 기러케 생긴 대로 노는지

 

 (명순)  보기 드문 미인이던데 뭘 기럽니까?

 

 (옥금)  동무는 눈치를  배추랑 같이 쌈 싸 먹었네?

 

 [영애의 한숨]

 

 미안합니다

 

 [배춧속을 탁 내려놓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월숙)  소금독 안에 넣어 둔 고기도

 

 고년이 다 처먹은 거 아닌지  모르갔습니다

 

 죽을 쒀서 개나 줬으면 아깝지나 않디

 

 아, 약혼을 했다지 않아

 

 (영애)  뭐, 우리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닌데  어카갔어

 

 아니, 기런데!

 

 아, 정작 데리고 살 사람은  왜 일손을 보태질 않지?

 

 우리 오늘 온 마을 여자들이 모여서  김장 전투 중인데

 

 [놀란 숨소리]

 

 김장할 때도 전투를 하나요?

 

 [세리의 탄성]

 

 아니, 마, 말이 기렇다는 기야

 

 전투를 하듯이  열심히 김장을 담가 보자, 기런 뜻에서

 

 기걸 뭘 지금 설명을 하고 있니?

 

 [익살스러운 음악]  와서 손을 좀 보태라요

 

 아니요, 전 보태지 않겠습니다, 그럼

 

 어머

 

 이 집은 올겨울 동안  김치를 안 먹을 거가?

 

 예, 안 먹어요, 김치 안 좋아해서

 

 (세리)  여기 손가락 좀

 

 그럼

 

 [세리가 잠금장치를 달칵 잠근다]

 

 (부중대장)  중대 차렷!

 

 중대장 동지!

 

 5중대는 오전 훈련 받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부중대장 중위 황영범!

 

 쉬어

 

 (부중대장)  쉬어!

 

 - 상사 표치수  - (치수) 예!

 

 - 하사 박광범  - (광범) 예!

 

 - (정혁) 중급 병사 김주먹  - (주먹) 예!

 

 - 초급 병사 금은동  - (은동) 옛!

 

 (정혁)  이상 네 사람 제외 중대 전원  사격 훈련장으로!

 

 (부중대장)  알겠습니다!

 

 중대 차렷!

 

 중대! 중대 앞으로가!

 

 (중대원들)  ♪ 동트는 이른 새벽 ♪

 

 ♪ 대오는 떠난다 ♪

 

 ♪ 가야 할 행군길은 멀고도 험해라 ♪

 

 ♪ 금별의 위훈도 ♪

 

 기래서 대관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치수)  아니, 어케 숙박 검열에서  기케 딱 걸렸는데

 

 응? 빠져나가신 겁니까?

 

 (정혁)  기냥 뭐...

 

 소개를 했더니  '아, 그러냐, 실례가 많았다'

 

 뭐, 상대가 기케 사과를 해서

 

 '나는 피곤하니까 이만 쉬갔다'  이렇게 뭐, 자, 잘 마무리를...

 

 (치수)  기러니까 뭐라고  소개를 했냔 말입니다!

 

 (정혁)  표 상사 동무 지금 내게 성을 낸 거가?

 

 미안합니다  [치수의 멋쩍은 헛기침]

 

 (치수)  답답해서 그럽니다

 

 아니, 뭐라고 소개를 하셨길래...

 

 약혼녀라고  [흥미진진한 음악]

 

 (치수)  지, 진짜입니까?

 

 다른 방도가 없어서...

 

 (정혁)  일종의 위장 전술이라 할 수 있갔디

 

 (치수)  이야, 우린 다 괜한 걱정 했습니다

 

 이케 후라이 잘 까시는 분인지 모르고

 

 잘 까는 것까진 아니고

 

 남조선 드라마에도  이런 장면 많이 나옵니다

 

 누가 따라붙거나 숨어 있다가  들킬 급박한 상황이 되믄

 

 되믄?

 

 남자, 여자가 별안간 막 끌어안든지  입을 막 맞춥니다

 

 왜 기러는 건데?

 

 그거이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는  남조선만의 방법이디요

 

 기러믄 그 위기를 넘긴 다음엔  어케 됩니까?

 

 이야...

 

 (주먹)  이 드라마가 한층 더 재밌어지디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밤을 함께 보내거든

 

 [주먹의 웃음]

 

 (광범)  아, 기래서 대위 동지가 어젯밤에  부대로 돌아오지 않으시고 집에서

 

 함께...

 

 아, 거, 함께 보낸 거이 아니고

 

 나는 방에서 그 여성은 마루에서  정확히 따로따로...

 

 (주먹)  원래가 그러다가 사랑에 빠집니다  백이면 백

 

 안 빠지는 드라마는

 

 없었습니다

 

 동무

 

 (정혁)  지금 중대장 앞에서 남조선 드라마  많이 봤다고 자랑하는 거가?

 

 미안합니다

 

 [정혁이 발을 탁 구른다]

 

 [책상을 쾅 친다]

 

 [한숨]

 

 오늘 밤이면 모든 일이 다 끝난다

 

 (정혁)  마지막까지  준비에 소홀함 없도록 해 주고

 

 [긴장되는 음악]  공해상까지 이동할 배는 준비됐디?

 

 예, 기런데 2만 원짜리  전화 카드 하나 달랍니다

 

 - 2만 원이나?  - (은동) 세구나, 야

 

 삼촌 배와 만날 시간, 장소  확실히 얘기했고?

 

 예, 밤 11시에서 딱 5분 기다렸다  출발한답니다

 

 동무들은 내 집으로 가서  어제 하던 공사 마저 마무리하라우

 

 (정혁)  지금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있는  여성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니

 

 잘 차단해 주길 바라고

 

 중대장 동지는...  [정혁이 입소리를 쩝 낸다]

 

 나는 따로 할 일이 좀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눈다]

 

 - (여자5) 고생들 하시라요  - (치수) 예, 예, 예

 

 (치수)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개가 짖는다]

 

 [어두운 음악]  [중대원들이 대화한다]

 

 (인부)  5중대원들 중대장 집으로 들어갑니다

 

 [대문이 철컥 열린다]

 

 지금 감도 어떻습니까?

 

 잘 들리십니까?

 

 (세리)  어?

 

 [세리의 웃음]  (은동)  안녕하십니까

 

 (세리)  웰컴, 어서들 와요

 

 나 너무 심심했어

 

 밥들은 먹었나?

 

 (치수)  에미나이 왜 처웃고 지랄이네?

 

 (세리)  우리 치수  또 아무 말 대잔치 하는구나?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렴

 

 응, 감도 좋다, 거기 설치하라

 

 (인부)  알갔습니다

 

 [중대원들이 대화한다]

 

 (주먹)  동무, 긴히 토의할 얘기가 있습니다

 

 (세리)  나랑?

 

 [발걸음을 옮긴다]

 

 (주먹)  그거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막판에 권상우랑 최지우가 잘되는 거는

 

 하...

 

 예, 좋습니다

 

 [삽질하는 소리가 난다]  근데 왜 애먼 신현준이가  죽어야 합니까?

 

 야, 천국의 계단

 

 너는 몇 년 전 일을 갖고  자꾸 사람을 귀찮게 하니?

 

 (세리)  내가 보기엔  [주목의 속상한 숨소리]

 

 그 시점에서 신현준이가 죽는 게 맞아

 

 (주먹)  [발끈하며]  아이, 뭐...

 

 뭐, 뭐가 맞습니까?

 

 평생을 최지우만 바라봤던  신현준이가 도대체 왜

 

 (세리)  계속 살았어 봐라, 어?  [노트에 쓱쓱 적는다]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가  딴 남자랑 잘 사는 꼴밖에 더 보겠니?

 

 [익살스러운 음악]  그걸 생각해야지

 

 [세리의 답답한 숨소리]  (주먹)  그래도 난...

 

 죽이는 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리)  내가 죽였니? 내가 죽였어?

 

 넌 다 지난 일을 갖고 와서  나한테 이러니

 

 (만복)  본인이 죽인 게 아니라고 주장

 

 (세리)  너 이건 집착이야  여자들이 되게 싫어해

 

 (만복)  다 지난 일, 집착...  [세리의 한숨]

 

 (세리)  답답하다, 답답해, 쯧

 

 [세리의 한숨]  이거이 뭔 말이야?

 

 [자동차 시동이 뚝 꺼진다]  차량 통행증 검열하갔습니다

 

 (정혁)  민경대대 5중대장 전속 차량이오

 

 초소장 있소?

 

 (초소장)  예, 16일 밤 23시경에

 

 카마즈 트럭 석 대가  이쪽으로 통과했습니다

 

 (정혁)  이쪽으로 오가는 길은  10호 초소가 유일한 거 맞소?

 

 예, 맞습니다

 

 뭐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그, 10톤 이상을 적재할 수 있는  대형 트럭이

 

 석 대씩이나 빈 차로  왕복 운행 하는 일은 드뭅니다

 

 [긴장되는 음악]  (초소장)  그, 비싼 기름 버려 가며

 

 그럴 이유가 없디요

 

 (초소장)  처음엔 빈 차로 초소를 통과하길래

 

 물동량을 실으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긴데 나갈 때도 적재함이 비었더구먼요

 

 차량 통행증 검사하겠습니다

 

 확실히 공병총국 사람들이었소?

 

 (초소장)  거까진 확인을 못 했습니다

 

 이, 기렇지만 공병총국  소속 차량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날 죽은 여성의 신원은 밝혀졌소?

 

 (초소장)  아, 그 여성은 그, 신의주 사람으로

 

 이 근처를 오가면서  달리기 장사를 했답니다

 

 이 근처에서 차잡이 간판이  발견된 걸로 봐서는

 

 이, 개성 가는 차를 얻어 타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 같습니다

 

 밤엔 이 주변이 깜깜하니까 뭐

 

 아니면 목격자일 수도 있고

 

 그, 어두워서 정확하게 본 건 아니지만

 

 (초소장)  그, 트럭들 앞에 붙은 장갑들 말입니다

 

 일반적인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이, 특수 금속 재질 같았는데

 

 처음 보는 것들이었습니다

 

 거기 충돌하면  살아날 차가 없어 보였디요

 

 기런 건 평상시에  달고 다닐 순 없을 거 같고

 

 이, 필요할 때만  장착하는 거 아니갔습니까?

 

 그, 정비소에 한번 가 보시는 것도...

 

 (정혁)  혹시라도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서 묻거든

 

 모른다고 말하는 게 좋갔소

 

 초소장 동무 난처해지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는 거요

 

 예, 알갔습니다

 

 (경비대원)  출입문 열라우

 

 [출입문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소

 

 나 조철강이오

 

 [승준의 한숨]

 

 [승준이 한숨을 푹 내쉰다]

 

 [철강의 힘주는 숨소리]

 

 [새가 짹짹 지저귄다]

 

 한국에 말이지

 

 나 잡아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  아주 많다고

 

 근데 내가 그거 미친 듯이  다 피해서 여기까지 잘 왔는데

 

 그런 내가 어젯밤에 비 내리는  북한의 어느 고속 도로에서

 

 속도 10으로 오다가 죽을 뻔한 거  어떻게 생각해요?

 

 그 망할 놈의 와이퍼가 없어 가지고

 

 (승준)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그 돈을 처들였을까?

 

 당신들 나 호구로 봤지?

 

 이보오, 구승준 동무

 

 동무는, 이, 씨

 

 내가 왜 당신 동무야  우리한테 무슨 우정이 있다고

 

 난 군복 입은 장사치요

 

 (철강)  돈을 받고 손님을 지키기도 하지만

 

 수틀리면 계약 까부수는 것쯤은  두렵지 않소

 

 (승준)  아니, 장사꾼이라며

 

 돈 안 벌어도 되나 봐?

 

 남조선에 당신 잡아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 많다면서  [어두운 음악]

 

 (철강)  그자들한테 당신 데려다주면  돈 벌 수 있지 않갔소?

 

 난 모로 가도 평양만 가면 돼

 

 아니, 우리 동무라며

 

 (승준)  아, 동무한테 그런 심한 농담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동무

 

 (세형)  그 자식 필리핀에 없어?

 

 하, 잘 찾아본 거 맞냐?

 

 떴다고? 언제?

 

 홍콩, 마카오로 가

 

 내 촉 알지? 마카오다

 

 [통화 종료음]  마카오 아닌 거 같은데

 

 - 뭐?  - (상아) 왜 뒤에서 쫓아가?

 

 앞에서 기다려야지

 

 (세형)  나랑 뭐, 지금 뭐  스무고개 하자는 거야?

 

 [헛웃음 치며]  하고 싶은 말을 해, 그냥

 

 그 사람 최측근인 오 과장

 

 중국 통이잖아

 

 난 또 뭔 얘기라고, 씨

 

 북경, 상하이, 연변, 심양

 

 (세형)  중국이 내 구역인 걸  구승준 그 자식이 모를까?

 

 자기가 죽으려고 거길 기어들어 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구승준이 몰랐을까?

 

 [차 문이 탁 여닫힌다]

 

 (상아)  당신이 가장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로 거길 갔을 거야, 구승준은

 

 [상아가 안전띠를 달칵 푼다]  [차 문이 탁 열린다]

 

 [통화 연결음]  [차 문이 탁 닫힌다]

 

 [한숨]

 

 야, 마카오 가지 마  심양으로 가

 

 왜 뒤에서 쫓아가?  앞에서 기다려야지

 

 내가 가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길 갔을 거라고, 그 자식은

 

 회사를 위해서 냉정해져야 한다고  현실적으로 조언해 드려

 

 주총이 코앞이야

 

 (세형)  알아, 주총 코앞인 거

 

 근데 어쩌라고

 

 나 차남이야

 

 이런 상황은  태생적으로 내가 불리하다고

 

 당신은 가진 패를 잘 활용해야지

 

 (상아)  당신 형한텐 없고 당신만 가진 거

 

 내가 그런 게 있어?

 

 나

 

 (상아)  당신한텐 내가 있잖아

 

 (세형)  아버지, 지금 주총이...

 

 (세준)  코앞이에요

 

 냉정해지셔야 될 때입니다

 

 [세준이 숨을 들이켠다]

 

 (세형)  만약에 세리가 후계자로 내정됐다가  실종됐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진짜 큰일 아닙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그럼 주가 폭락은 불 보듯 뻔한 거고요

 

 (세준)  그냥 퀸즈그룹에서 거의 내놓다시피 한  막내딸이 실종된 거랑

 

 퀸즈그룹의 후계자가 실종된 거랑은

 

 신문 1면 톱기사냐, 5면 박스 기사냐

 

 이 차이라고 보시면 되거든요

 

 5면 박스 기사요?  막으려면 막아요

 

 1면 톱은요, 못 막습니다

 

 못 막아요

 

 요샌 대통령이 와도 못 막아

 

 절대로요

 

 (세준)  물론 세리 일은  저도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혜지)  진짜예요, 아버님

 

 요새 이이 밤에 잠도 한숨도 못 잤고요

 

 밥도 겨우 넘기는 둥 마는 둥

 

 어제도 그 좋아하는 도미머리조림을  그냥 쪼끔 먹다 말더라고요

 

 [웃음]

 

 [상아의 헛기침]

 

 [세형의 비웃음]

 

 [세준의 헛기침]

 

 여기 슬프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요

 

 - (혜지) 예  -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아버지, 이런 위기일수록  결국 정공법...

 

 맞습니다

 

 (세형)  위기엔 정공법이죠  [흥미진진한 음악]

 

 그런데 창업 이래  가장 커다랗게 닥친 이 위기

 

 저희끼리 극복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  헤쳐 나가는 게 맞을까요?

 

 저랑 이 사람 결혼할 때

 

 우리 주식 연속 사흘  상한가 쳤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왜?

 

 퀸즈의 아들인 제가  삼복그룹의 사위가 됐으니깐

 

 저를 선택하시면 퀸즈의 위기는  삼복이 함께 책임져 줄 겁니다

 

 주총 때

 

 새로운

 

 후계자 발표하시면

 

 세리 사건이야 뭐  조용히 묻힐 겁니다

 

 [세준의 아파하는 신음]

 

 (세준)  아, 너

 

 어, 너, 그, 천억 사기당한 거  그거 어떻게 메꿀 건데?

 

 주주들이 널 받아들일 거 같아?

 

 (상아)  그래서 말씀인데요, 아버님

 

 세리스초이스  빨리 정리하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쪽 부족한 자금 막는 데  활용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어차피

 

 주인 사라진 회사니까

 

 [증평의 고민스러운 한숨]

 

 "세리스초이스"

 

 (창식)  이렇게까지 못 찾는 거 보면  가망 없는 거겠지?

 

 (구매팀장)  직원들도 자꾸 물어보는데  언제까지 숨겨야 되냐

 

 (창식)  그러게, 숨긴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구매팀장이 호응한다]

 

 (수찬)  누가 죽었대!

 

 (구매팀장)  누구...

 

 (창식)  어...

 

 아, 내 친구, 대표님 보험 담당자야

 

 백억...  [놀라는 신음]

 

 너 여기까지 왜 또

 

 내가 진짜  엄청 중요한 자료를 찾아냈어

 

 [흥미진진한 음악]

 

 이분이 누군지 알아?

 

 [숨을 들이켜며]  에바 비스니어스카 씨야

 

 에바 뭐?

 

 대표님과 비슷한 사고에서  살아 돌아오신 분이지

 

 아, 수찬아, 이건 에바다

 

 2007년 호주에서 패러글라이딩 비행 중

 

 갑작스러운 폭풍에 휘말렸던 사건인데

 

 이번 용오름보다 더 규모가 컸다고  이것 좀 볼래?

 

 아니야, 안 볼래

 

 에바 비스니어스카 씨는  3만 피트 상공까지 빨려 올라가서

 

 무려 한 시간을  영하 40도 대기권에 갇혀 있다가

 

 약 60km가량 떨어진 인적 드문 곳에  불시착 후 구조됐어, 알겠니? 응!

 

 구조됐다고!

 

 야, 그럼 그 에바  그분도 우리 대표님처럼

 

 며칠 동안 소식 없다 구조됐니?

 

 - 물론 그건 아니지만  - (창식) 거봐!

 

 (수찬)  그렇지만 에바 비스니어스카 씨와  우리 대표님이

 

 같은 기체를 이용했었다는 점은  매우 희망적이지

 

 재해 상황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최고급 명품 기체라서

 

 그 정도 풍속에서도  선 줄이 망가질 가능성이 낮다고

 

 그렇다면 대표님도  지금 어딘가 불시착하셔서

 

 우리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

 

 [한숨]

 

 [울먹인다]

 

 아직 포기는 일러

 

 아니? 포기 못 해!

 

 (창식)  가족도 반은 포기했어  네가 뭔데 포기를 못 해!

 

 수색도 할 만큼 했고

 

 수색 범위를 더 확장해야지

 

 그래, 어디 떨어졌다 치자

 

 근데 왜 연락이 안 오냐

 

 대한민국 핸드폰 안 되는 데가  어디 있다고!

 

 - 무인도인 거지  - (창식) 미친놈이네, 진짜

 

 (수찬)  이번 용오름은 시속 40m의  북서쪽 방향이었어

 

 - 이것 좀 볼래?  - (창식) 아니야, 안 볼래

 

 (수찬)  서해엔 무인도가 정말 많다고

 

 당남리섬, 덜거머리섬

 

 - (수찬) 매박섬, 위새리섬  - 그래, 그래, 알았어

 

 [수찬이 계속 말한다]  (창식)  아휴, 알아, 아니, 나 알아, 다

 

 아휴, 좀 알았어

 

 (세리)  감자 갖다줄까?

 

 - (은동) 오, 예, 예  - (세리) 기다려 봐  [주목의 웃음]

 

 [탁탁 소리가 난다]

 

 [광범이 말한다]  (세리)  어?

 

 [긴장되는 음악]

 

 저기...

 

 (치수)  야, 야, 야, 줄타기다!

 

 - (치수) 어! 은동아!  - (세리) 뭐?

 

 줄타기가 뭔데?

 

 [여자들의 놀란 탄성]

 

 (치수)  야, 잡아라!

 

 너 꽃제비 거기 안 서네!

 

 (치수)  아이, 씨

 

 [치수의 거친 신음]

 

 [꽃제비의 힘주는 신음]

 

 [중대원들의 가쁜 숨소리]

 

 (치수)  이야...  [세리의 가쁜 숨소리]

 

 요, 요

 

 암만 도덕 없는 꽃제비라도 그렇지

 

 어디 겁도 없이 군관 사택 마을에  기어들어 와 줄타기를 하네, 씨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꽃제비가 울먹인다]  [치수의 헛웃음]

 

 [꽃제비의 떨리는 숨소리]

 

 너 이거 뭐야?

 

 이건 훔친 거 아닙니다

 

 장마당에서 주운 겁니다

 

 진짜입니다

 

 [꽃제비의 떨리는 숨소리]

 

 (꽃제비)  우리 동생 줄 겁니다

 

 우리 동생이 사흘을 굶어서  눈을 잘 못 뜹니다

 

 [꽃제비의 긴장한 숨소리]

 

 [세리의 분주한 숨소리]

 

 (치수)  누가 보면  니가 집주인인 줄 알겄다, 야

 

 기거이 다 니 거네?

 

 아이, 꽃제비 하나 먹이갔다고

 

 우리 중대장 동지 식량 창고를 아주  탈탈 터는구나

 

 너 저런 꽃제비들이 한둘인 줄 아네?

 

 물정도 모르면 빠지라

 

 [문이 드르륵 열린다]  내 말이 가다 넘어졌니?

 

 내 말이 들리질 않아?

 

 너 저 꽃제비한테 속고 있는 거야, 너

 

 중대장 동지, 내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런 꽃제비들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건 훔치고 거짓말하고

 

 [헛웃음 치며]  야, 동생이 굶고 있어?

 

 다 동정심 사려고  개나발 부는 기야, 씨

 

 (꽃제비)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우리 동생 죽을까 봐  밥 먹이려고 한 겁니다

 

 - 닥치라우!  - (세리) 아, 너나 닥쳐

 

 이 인정머리 없는 인간아

 

 [치수의 어이없는 웃음]

 

 이 에미나이 알지도 못하면서, 씨

 

 중대장 동지

 

 공사 끝났으면 펌프질 좀 해 보라우

 

 - (광범) 예!  - (은동) 예!

 

 얼굴이랑 손 씻으라

 

 (정혁)  깨끗한 손으로 먹어야 병 걸리디 않아

 

 뭐 하고 있소? 줄 거 주시오  [펌프질 소리가 난다]

 

 우리도 떠날 준비 해야 하니

 

 [물소리가 난다]

 

 (치수)  하, 중대장 동지

 

 [따뜻한 음악]  [물이 콸콸 쏟아진다]

 

 [시끌벅적하다]

 

 [펑 터진다]

 

 [기분 좋은 숨소리]

 

 (꽃제비)  많이 기다렸어?

 

 [꽃제비의 힘주는 숨소리]

 

 오라버니가 맛있는 거 많이 가져왔어

 

 [꽃제비의 힘주는 숨소리]

 

 어서 먹어라

 

 [새가 지저귄다]

 

 (세리)  자, 다들 모였나요?

 

 자, 지금부터 상장 수여식을 할까 해

 

 [치수의 코웃음]  (주먹)  사, 상장?

 

 (치수)  아, 니가 장군님이니?

 

 니가 뭔데 상장을 수여하고 말고...

 

 (세리)  먼저 1등 상이에요

 

 (주먹)  이야,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니? 응?  [주먹의 웃음]

 

 [주목의 탄성]  (세리)  금은동!

 

 - (은동) 저 말입니까?  - (세리) 응, 네가 1등이야

 

 [은동의 탄성]

 

 (세리)  너는 친절상이지

 

 '위 군인 금은동은'

 

 '본인을 가장 편하고  순수하게 잘 대해 주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밝은 음악]

 

 상품은 고를 수 있어

 

 상품도 있습니까?

 

 (세리)  상장은 상품 주려고 있는 거지

 

 통일 버전과 즉시 수령 버전이 있는데

 

 통일 버전은

 

 1억이야

 

 [은동의 의아한 숨소리]

 

 1억이 뭡니까?

 

 1억 원

 

 나중에 통일되고 난 뒤에

 

 (세리)  이 상장 갖고 나 찾아오면  내가 1억 줄게

 

 그리고, 음...

 

 즉시 수령 버전은

 

 옥수수 한 말이야

 

 (은동)  아...

 

 (주먹)  1억, 1억

 

 강냉이 한 말 하갔습니다

 

 (세리)  음, 그래, 1억보다 강냉이구나

 

 자

 

 뒷마당 식량 창고에서 꺼내 가렴

 

 (치수)  내 이럴 줄 알았디, 제 것도 아니면서

 

 중대장 동지, 보시라요

 

 저 도덕 없는 에미나이  하는 꼬라지 말입니다

 

 자, 다음은 2등 상

 

 김주먹!  [주먹의 놀란 탄성]

 

 - (주먹)  지, 진짜입니까?  - (세리) 어

 

 (세리)  네가 2등이야

 

 너는 한류 사랑상이야

 

 '위 군인 김주먹은  한류의 불모지인 이곳에서'

 

 'K드라마를 사랑해 준 게  개인적으로 기특해서'

 

 '이 상을 수여함'

 

 통일 버전 상품은  지우 히메와의 점심 한 끼야

 

 [흥미진진한 음악]

 

 그리고 즉시 수령 버전은

 

 여기 텔레비전

 

 이거 보시오

 

 있어 봐요

 

 최지우 동무와  점심 한 끼 선택하갔습니다

 

 저거 봐요, 쟨 저런다니까?

 

 (주목)  [들뜬 신음]  꼭 약속 지키시라요

 

 당연하지

 

 (세리)  축하드려요

 

 [주먹의 기뻐하는 숨소리]

 

 (세리)  그리고 3등은

 

 정말 중요한 상이에요

 

 박

 

 광범

 

 (은동)  [탄성]  축하합니다

 

 인류의 보배상이야

 

 (세리)  이 상은 여기 있는 군인들 중에

 

 가장 잘생겨서 드립니다

 

 [주먹과 은동의 탄성]  [치수의 어이없는 웃음]

 

 (치수)  아니, 그, 잘생긴 기준이 대체 뭐네?  [세리의 웃음]

 

 (세리)  그 어떤 기준이라도 넌 아니야

 

 [치수의 어이없는 웃음]

 

 (치수)  아니, 어케...

 

 아, 아니, 중대장 동지

 

 [치수의 어이없는 웃음]

 

 (세리)  통일 버전 상품은  미스 코리아랑 소개팅이고

 

 즉시 수령 버전은  나랑 굿바이 허그 하기

 

 (광범)  둘 다 뭔지 모르갔지만  하지 않갔습니다

 

 아, 역시 시크해

 

 (세리)  씁, 암튼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잘생긴 사람들은 시크해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암튼 상장은 받아요

 

 자, 그럼 이것으로 시상식은...

 

 야!

 

 왜! 너도 받고 싶냐?

 

 (세리)  아휴, 이거 내가 몇 번 안 쓴 건데

 

 좀 씻고 살길 바라는 의미에서  주는 상이야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린다]

 

 [경쾌한 음악]

 

 (치수)  '샴푸, 린스', 이거 다 뭐야?

 

 머리 감는 데 쓰는 거야

 

 (치수)  '보디 워시'

 

 중대장 동지  이거 다 사다 주신 겁니까?

 

 아이, 거, 꼭 필요하다고 해서

 

 (치수)  아니, 샴푸, 린스, 보디 워...

 

 머리 한번 빠는데  이게 다 왜 필요합니까?

 

 오해가 있나 본데

 

 보디 워시는 머리 감는 데  쓰는 게 아니오

 

 그래, 그거 몸 씻을 때 쓰는 거거든?

 

 아, 기래?

 

 (세리)  자, 그럼 이것으로  상장 수여식은 모두 다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왜요?

 

 아니오

 

 (세리)  응?

 

 [문이 달칵 열린다]

 

 (정혁)  아, 왜 이러시오

 

 - (세리) 아, 일로 와 봐요  - 어허, 이거 놓으라고

 

 [세리의 웃음]

 

 (세리)  자

 

 이건 스페셜 생큐 상

 

 아까 누가 왔더라고요

 

 왜, 그, 문 똑똑 두드리고 와서  별거별거 다 파는 그런 사람

 

 - 똑똑이 장사?  - (세리) 어, 맞아, 맞아

 

 그 똑똑이 장사가 왔더라고요

 

 쩝, 근데 물건들이 다 조악한데

 

 그나마 토마토 묘목이 있길래

 

 (세리)  여기 마당 너무 썰렁하기도 하고

 

 아휴, 근데 내가 무슨 돈이 있어

 

 감자 반 포대랑 바꿨어요

 

 많이 밑지는 거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소?

 

 그렇죠?

 

 아, 아저씨 바가지, 쯧

 

 (세리)  근데 오늘은 또 마지막 날이고

 

 내가 그쪽한테 많이 고마우니까  그냥 시원하게 질렀어요

 

 왜 나한테 많이 고마운 마음을

 

 내 감자 반 포대로 표현했는진  의문이오만

 

 치...

 

 [혀를 굴리며]  나중에 내 덕분에 '토마토' 먹게 될 때  후회하지나 마셔

 

 (세리)  고맙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땐 내가 옆에 없을 거니까

 

 (정혁)  첫째

 

 난 도마도를 좋아하지 않소

 

 둘째, 난 식물 재배엔 관심도  잘 키울 자신도 없소

 

 (세리)  으음

 

 애완 풀이다 생각하고  사랑으로 키워 봐요

 

 그, 양파도 예쁜 말만 해 준 애들은  완전 쑥쑥 잘 크고

 

 욕만 먹은 애들은  막 말라 죽고 그런다잖아

 

 내가 다 신문에서 보고 하는 말이라고

 

 - 무슨 말도 안 되는...  - (세리) 알았죠?

 

 물 잘 주고  하루에 열 개씩 예쁜 단어 들려주기

 

 양파가 욕을 처먹으면 뒤져?

 

 [전화벨이 울린다]

 

 아, 예, 소좌 동지

 

 아, 그, 리정혁 중대장의 약혼녀는

 

 씁, 정신 상태가  기케 말짱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뭐, 기렇다고 수상한 행적이나  낌새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 오늘 밤에  평양으로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예!

 

 [산새 울음]  [잔잔한 음악]

 

 [주먹의 한숨]

 

 우여곡절 끝에 가긴 가누먼요

 

 [치수가 입소리를 쩝 낸다]

 

 속이 다 후련하다

 

 (은동)  난 조금 섭섭도 합니다

 

 야, 뭐가 섭섭하네? 쯧

 

 (치수)  꿈에 또 볼까 두렵다

 

 기래도 그 여성

 

 사람 보는 안목 하나는  정확한 여성이었는데

 

 (광범)  출발을 하셨으려나?

 

 [산새 울음]

 

 [대문이 철컹 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풀벌레 울음]

 

 [세리의 착잡한 숨소리]

 

 [차분한 음악]

 

 (세리)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건 진심

 

 다신 못 보겠죠?

 

 아마도

 

 [세리의 한숨]

 

 아프리카도 가고 남극도 가는데

 

 (세리)  당신은 참...

 

 하필 여기 사네요

 

 [숨을 크게 들이켠다]

 

 당신이 하필 거기 사는 거갔지

 

 [옅은 웃음]

 

 [한숨]

 

 전화 카드 가져왔소?

 

 - 이 여성 동무요?  - (정혁) 그렇소

 

 (선장)  혼자?

 

 둘이오

 

 [긴장되는 음악]  (선장)  동무도 가시오?

 

 큰 배 타는 걸 보고 돌아올 거요

 

 (선장)  기카면 카드 한 장으로는 안 되지

 

 서두르시오

 

 약속 장소에서 5분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했으니

 

 타시오

 

 며칠 만에 돌아가는 건데

 

 꼭 무슨 몇 년은 된 거 같아요

 

 당신 기다리는 사람들도 기랬을 거요

 

 (정혁)  가족의 생사를 모를 땐  분초도 영원처럼 긴 법이니까

 

 쯧, 글쎄요, 아닐걸?

 

 [잔잔한 음악]

 

 (세리)  뭐, 가 보면 알겠죠

 

 내가 살아 돌아온 걸  기뻐하는지 당황하는지

 

 [어색한 웃음]

 

 (세리)  내가 별 얘길 다 하네

 

 다신 못 볼 사람이라서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다신 못 볼 거니깐 나도 한마디 하갔소

 

 '엘리제를 위하여'쯤 악보 없이 친다고

 

 피아노 실력이 출중하단 말은 망언이오

 

 (정혁)  어디 딴 데 가서 기딴 말 마시오

 

 [헛기침]

 

 [헛웃음]

 

 뭐, 나도 다신 못 볼 거니까  말해 주는 건데

 

 내 이름은 윤세리예요

 

 리정혁이오

 

 참, 나 해주 윤씨예요  해주가 북한에 있는 거 맞죠?

 

 난 전주 리씨요

 

 (세리)  [웃으며]  뭐야, 이 아이러니는

 

 [세리가 웃는다]

 

 [사이렌이 울린다]  [조명이 탁 켜진다]

 

 (남자5)  뜨랄선 천사호, 뜨랄선 천사호  [긴장되는 음악]

 

 서라, 서라

 

 당장 기관을 멈추라

 

 [사이렌이 연신 울린다]

 

 저것들이 갑자기 왜 지랄이야

 

 그, 들어가 있으시오  내가 어케 해 볼 테니

 

 (남자5)  뜨랄선 천사호, 뜨랄선 천사호

 

 서라, 서라!

 

 즉시 기관을 멈추라!

 

 (선장)  아니, 무슨 일입니까?

 

 (경비정장)  어이, 뜨랄호

 

 거, 해상 통제 명령 떨어졌단 연락  받지 못했소?

 

 아니, 그게 무슨...  난 연락 못 받았습니다

 

 (선장)  갑자기 왜 통제 명령입니까?

 

 요새 빠다치기로 몰래 외국에 나가는  놈들이 많아져서 그런 거갔디

 

 (선장)  아이, 누가 기딴 짓을 합니까?

 

 암튼 수고하시라요  나는 배 돌리갔습니다

 

 (경비정장)  이 선창 좀 봅시다

 

 예? 아, 선창은 왜...

 

 정상적인 무역인지

 

 밀수인지 빠다치기인지  확인을 해야 되지 않갔소?

 

 정장 동지

 

 그, 새로 오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선장)  내 이전 경비정장 동지하고는  막역했시다

 

 (경비정장)  그 막역했던 경비정장은

 

 뇌물을 많이 먹어 잘렸소만

 

 (경비정장)  열라  [불안한 숨소리]

 

 어떡해요?

 

 (세리)  아, 뭐라도 해 봐요

 

 군인이라면

 

 그 어떤 역경, 고난

 

 이런 것도  다 잘 뚫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거를 못 뚫고  이렇게 망연자실하고 있으면 어떡해

 

 [세리의 떨리는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남조선 드라마에 보면

 

 예?

 

 이 와중에 무슨 드라마

 

 누군가 쫓아오거나  위기 상황일 때 쓰는

 

 굉장한 방법 있다던데

 

 뭔데요?

 

 알 텐데

 

 백이면 백 다 그런다던데

 

 아, 몰라요, 뭔데  뭔데 백이면 백 다 그러는데?

 

 어, 처음에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게 말이 되나 싶고

 

 또 어케 기칼 수 있나 기랬는데

 

 (정혁)  막상 또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또 이 방법밖에  방법이 없구나 싶기도 하고

 

 (세리)  저기요!  그만 좀 말하고 뭐라도 좀 해 보라고

 

 (경비정장)  열라

 

 뭐 하네? 열라

 

 [쿵 소리가 난다]

 

 [세리의 긴장한 숨소리]  지금부터 뭐라도 하갔소

 

 (정혁)  부디 놀라지 말고

 

 [세리의 놀란 숨소리]  나만 보시오

 

 [감성적인 음악]

 

 양파가 욕을 처먹으면 뒤져?

 

 [전화벨이 울린다]

 

 아, 예, 소좌 동지

 

 아, 그, 리정혁 중대장의 약혼녀는

 

 씁, 정신 상태가  기케 말짱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뭐, 기렇다고 수상한 행적이나  낌새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 오늘 밤에  평양으로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예!

 

 (정혁)  바다

 

 (만복)  어?

 

 아, 잠시만 기다리시라요, 소좌 동지

 

 리정혁이가 뭔가 말을 합니다

 

 (정혁)  햇빛, 진달래

 

 이슬, 양털 구름

 

 삼색 고양이

 

 (철강)  이거이 뭐라고 하는 거네?

 

 어, 글쎄요

 

 그, 무슨 비밀 암호 같긴 한데

 

 (정혁)  솔개

 

 이건 아닌가?

 

 솔개는 취소

 

 [정혁의 고민하는 숨소리]

 

 음...

 

 [감성적인 음악]

 

 장미

 

 산들바람

 

 첫눈

 

 피아노

 

 (세리)  리정혁 너무 쫄따구야

 

 (주먹)  빨리 와서 좀 지키고 있으라 했구먼요

 

 (세리)  아, 내가 어린애야?

 

 (치수)  감시하라는 거지, 우리더러

 

 걔 좀 오버쟁이지?

 

 (치수)  중대장 동지가 뭐

 

 약혼녀가 따로 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도덕 없는 사내도 아니고 말이지요

 

 (명은)  코를 납작하게 깔아

 

 (단)  기 정도는  아무케나 하고 가도 할 수 있다

 

 (철강)  그 여성이 진짜 11과 대상인지  확인을 좀 해 봐야갔어

 

 [무전기가 지지직거린다]  여기는 세리 1호

 

 (대원2)  방금 자남산 일대에서  수상한 전파가 감지됐습니다

 

 (세리)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뭐 하려고, 지금?

 


.사랑의 불시착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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