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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불시착 6

 

 

 아니면

 

 (세리)  우리 같이 한 장 찍는 건?

 

 아니, 나 가고 나면

 

 다신 볼 일 없을 텐데 기념으로

 

 기념할 이유도 기억할 이유도

 

 없을 거 같은데

 

 [멋쩍게 웃으며]  그러네, 정말

 

 나도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사진사)  여권 사진은 다섯 장 나옵니다  오천 원입니다

 

 [지폐를 바스락 꺼낸다]

 

 혹시 모르니 한 장 더...

 

 여권이랑 이력서에 붙일 사진

 

 출입국 관리국과 고려민항에 보낼 사진

 

 (사진사)  이, 기카고 해외 파견 시  여유 사진 한 장까지 포함해서

 

 다섯 장입니다

 

 아, 그거면 충분할 겁니다

 

 기래도 한 장만 더...

 

 [흥미진진한 음악]

 

 (승준)  그럴게요, 전할게요, 안부

 

 조만간 그럴 수 있을 것 같네

 

 [통화 종료음]

 

 맞지, 윤세리?

 

 [세리의 놀라는 신음]  (승준)  잠시만

 

 [세리의 당황하는 신음]

 

 [긴장되는 음악]  - (승준) 이야  - (세리) 무슨...

 

 누구신지?

 

 (세리)  그...

 

 [세리의 놀라는 신음]  (승준)  잠깐! 잠깐...

 

 [승준의 아파하는 신음]  (세리)  아...

 

 (승준)  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세리 씨, 아, 근데 이분 누구...

 

 (세리)  아는 사람이에요

 

 (승준)  예, 아는 사람입니다

 

 저 세리 씨 아는 사람이에요

 

 [승준이 숨을 하 내뱉는다]

 

 [승준의 아파하는 신음]

 

 이쪽은 습관성 탈골이 있어요

 

 [승준의 힘겨운 신음]

 

 [승준의 힘겨운 숨소리]

 

 (정혁)  성명, 구승준  [승준의 아파하는 신음]

 

 - 영국 시민권자요?  - (승준) 예

 

 [승준의 아파하는 신음]  아, 이거 놓고

 

 (정혁)  조선엔 무슨 일로 입국했소?

 

 비즈니스, 비즈니스

 

 (승준)  아, 내가 이걸 왜 말하고 있는 거야

 

 (승준)  아, 세리 씨, 이것 좀 어떻게 해 봐요

 

 당신 누구야? 뭐, 뭐, 경찰?

 

 아, 선생님

 

 (세리)  아, 경찰은 아니고

 

 내 보디가드

 

 (승준)  어?  [익살스러운 음악]

 

 풀어 줘요, 미스터 리

 

 (세리)  이제 그만 풀어 주라니까?

 

 (승준)  풀어 달라잖아, 미스터 리

 

 (세리)  내 보디가드가 한번 화가 나면  잘 풀리질 않아

 

 어허, 미스터 리

 

 그만 진정하고 팔 풀래도, 씁

 

 [승준의 힘겨운 신음]

 

 (승준)  아, 어깨 빠질 뻔했네

 

 [엘리베이터 문이 탁 닫힌다]

 

 [어색한 웃음]  [헛기침]

 

 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도쿄나 뉴욕 한복판에서 만나도  놀라 자빠질 판에

 

 평양이라니

 

 [승준의 웃음]

 

 [멋쩍은 헛기침]

 

 아, 말해 봐

 

 도대체 여길 어떻게 온 거야, 윤세리?

 

 아, 그게...

 

 혹시 누구한테 내 소식 들은 적 없어?

 

 (세형)  왜 없긴? 죽었으니까 없지

 

 (승준)  응, 없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게...  [다가오는 발걸음]

 

 아,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좀 있어서

 

 (승준)  좀 있다가 저녁 7시에

 

 여기 로비 커피숍에서 볼 수 있을까?  내가 기다릴게

 

 - 그래  - (승준) 응

 

 (승준)  수고했어요, 미스터 리

 

 아이

 

 괜찮아, 괜찮아

 

 우리 미스터 리가 일을 되게 잘하시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만 하시면 돼요  [엘리베이터 문이 쓱 열린다]

 

 [아파하는 신음]

 

 (정혁)  이거 보시오

 

 아, 나중에 보시죠  지금 좀 바빠 가지고

 

 (승준)  거, 암튼 진짜 신기해  어떻게 여기서...

 

 우리 어쩌면 운명인가 봐, 응

 

 [웃음]

 

 [한숨]

 

 [세리의 멋쩍은 웃음]  보디가드?

 

 그럼 뭐라 그래요?

 

 북한 와서 약혼했다 그래?

 

 그리고 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지

 

 (세리)  리정혁 씨 지금 나 보호하고 있잖아요

 

 보호가 아니라 관리 감독

 

 그거나 그거나

 

 엄연히 다르지

 

 내가 그쪽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지켜 주는 사람도 아니고

 

 [관광객들이 소란스럽다]  [밝은 음악]

 

 (정혁)  말했지만 나는 그쪽을  엄중히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오

 

 말하자면 상하 관계

 

 어디 사람을 자기 보디가드라고

 

 기러는 거 아니오

 

 [정혁의 힘주는 신음]

 

 (아이)  고맙습니다

 

 리정혁 씨

 

 이게 보디가드예요

 

 [감성적인 음악]

 

 [엘리베이터 도착음]

 

 식사하러 가세요?

 

 북한도 3인 1개 조인가?

 

 [긴박한 음악]  [경호원들의 다급한 신음]

 

 (승준)  야! 개도 주인은 안 물어, 어?

 

 오늘 그냥 팔뚝 하나 나가는 거야  내가, 응?

 

 주짓수 브라... 어, 브라운 벨트  [경호원들의 다급한 신음]

 

 (승준)  야! 오해하지 마라, 어?

 

 주짓수는 생각해 보니까  주짓수는 일 대 일 경기야

 

 [승준의 다급한 신음]  [문이 탁 열린다]

 

 [승준의 가쁜 숨소리]

 

 어? 뭐야, 이씨

 

 [문이 탁 닫힌다]

 

 [경호원들의 짜증 섞인 숨소리]

 

 아이, 자식들

 

 [가쁜 숨소리]

 

 무지하게 빠르네, 거

 

 아, 무슨 달리기 선수들도 아니고, 씨

 

 [가쁜 숨을 내뱉는다]  [엘리베이터 도착음]

 

 [엘리베이터 문이 쓱 열린다]

 

 [승준의 당황한 신음]  [긴장되는 음악]

 

 항복

 

 [정혁이 찻잔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정혁)  어떤 사이였소, 아까 그자와?

 

 [세리의 한숨]

 

 (세리)  그거 설명하려면  가족사를 얘기해야 되는데

 

 내가 재벌 딸인 건 혹시 얘기를 했나?

 

 [한숨]

 

 누누이, 여러 번, 외울 정도로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가족은 좀 다른 의미예요

 

 뭐랄까?

 

 효도도 사업이고

 

 아버지가 아침밥 누구랑 먹었냐

 

 (세리)  뭐, 그런 것도 다 비즈니스라고

 

 기렇소?

 

 (세리)  그렇다니까요

 

 내가 잘하는 건 안 중요해

 

 오빠들보다 잘해야 돼

 

 오빠들도 나보다 잘해야 되고

 

 그러니 무슨 우애가 생기겠어

 

 난 그자와 어떤 관계였나 물었는데

 

 쩝, 들어 봐요

 

 (세리)  사람이 경쟁하다 힘에 부치면

 

 그 경쟁자가 좀 사라졌으면 싶잖아요?

 

 우리 오빠들이 그랬던 거지

 

 그래서 날 결혼시키기로 결심한 거고

 

 아까 그 사람한테

 

 그 사람이 교포였거든요

 

 그러니까 오빠들은

 

 날 출가 말고 출국시키고 싶었던 거지

 

 멀리멀리 보내서 안 보고 살게

 

 자기들 거 안 뺏기고 살게

 

 근데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했지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아마 지금쯤  우리 오빠들은 아주 설렐 거야

 

 나 죽은 줄 알고

 

 못난 생각을 하는구먼

 

 [잔잔한 음악]  사람이, 가족이 죽고 사는 문제요?

 

 (정혁)  그저 사이가 좋지 않아

 

 더 큰 몫을 차지하고 싶어  다툼이 있었다 해서

 

 어케 그런 무자비한 말을 하시오?

 

 걱정하고 있을 거요

 

 잘 지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을 거고

 

 기다리고 있을 거요

 

 당신이 돌아오길

 

 [여자1의 놀라는 숨소리]

 

 (여자1)  어머머, 저, 저, 저게 뭐이네?

 

 엄마야

 

 [통화 연결음]

 

 어, 여보시오? 단이가?

 

 야, 리정혁 동무

 

 평양 호텔에서  어떤 여자랑 같이 있는데

 

 (여자1)  너 알고는 있네?

 

 알고 있지, 그럼, 오늘 평양 오는 거

 

 같이 있는 여성 동무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고

 

 이따 다 같이 만나기로 했어

 

 걱정 고맙다

 

 응, 나중에 보자

 

 [통화 종료음]  [무거운 음악]

 

 (단)  원장 동지, 나 이거 풀어 달라요

 

 어디 좀 가야 합니다

 

 (원장)  예

 

 (명은)  어딜 가는데?

 

 약속이 생겼어요, 정혁 동무랑

 

 기래?

 

 정혁이가 또 평양에 온 거이야?

 

 (단)  응

 

 기래서 말인데, 엄마

 

 오늘 밤에 정혁 동무 부모님하고  같이 저녁 식사할까?

 

 오, 댓츠 굿 아이디어구나, 야

 

 기럼 엄마가 전화해 보라요

 

 저녁 7시

 

 평양 호텔 음식점에서 보자고

 

 어, 기래, 기래

 

 그, 약속은 내가 정할 테니까  염려 말라

 

 기러면 나 먼저 가서  정혁 동무 만나고 있을게

 

 기래

 

 (명은)  단풍 고운데  어디 산보라도 같이 하고

 

 - 원장 동지  - (원장) 예

 

 나 오늘 좀 화려하자요

 

 [흥미진진한 음악]

 

 (원장)  기러면 고랑을 좀 파 볼까요?

 

 혁명적으로 한번 파 보라요!

 

 [승준의 신음]

 

 [승준의 만류하는 신음]

 

 항복, 항복, 항복

 

 (승준)  아, 무릎 꿇었어, 무릎 꿇었어, 항복

 

 (승준)  그만...

 

 총까지?

 

 형님, 제가 정말 죄송하게 됐고요

 

 말도 못 하게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됐고

 

 넌 재고의 여지가 없는 놈이야

 

 (승준)  그래도 재고 좀 해 주십시오

 

 (승준)  제가 대신에

 

 형님에게 어마어마한 굿 뉴스  전해 드리겠습니다

 

 (세형)  이 자식 또 사기 치려 그러네?

 

 통화 좀...

 

 [웃으며]  예

 

 그, 형님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세리가 살아 있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너 방금 뭐라고?

 

 세리요, 살아 있다고요

 

 이 새끼가, 씨

 

 거짓말하지 마

 

 진짜예요

 

 제가 봤어요

 

 어디서 봤는데, 세리를, 응?

 

 걔 지금 어디 있어?

 

 (세리)  어느 쪽이 내 방이에요?

 

 [키 오류음]

 

 [키 인식음]  [도어 록 작동음]

 

 [의미심장한 음악]  [정혁이 문을 딸깍 연다]

 

 [정혁이 키를 탁 내려놓는다]

 

 [문이 탁 닫힌다]

 

 [삐삐 소리가 난다]

 

 [등을 달그락 돌린다]

 

 [삐삐 소리가 난다]

 

 [정혁이 받침대를 탁 내려놓는다]

 

 [세리의 놀라는 숨소리]

 

 이게 다 도청 장치...

 

 [탁 소리가 난다]

 

 [세면대 물이 쏴 나온다]

 

 [수도를 탁 잠근다]

 

 [지직 소리가 난다]  [세리의 놀라는 신음]

 

 대박

 

 [세리의 놀라는 숨소리]

 

 이제 말해도 좋소

 

 이게 다 도청 장치예요?

 

 이곳 호텔방엔 이런 장치들이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어서

 

 다 있다고?

 

 아마도

 

 다 없앤 거 맞아요? 괜히 찜찜해

 

 내 방은 바로 옆이니까  혹시 문제 생기면...

 

 어, 바로 부를게요

 

 (정혁)  아니, 아주 큰 문제 아니면  부르지 말고 참으라고

 

 (세리)  아

 

 나 사진은 언제 받아요?

 

 (정혁)  내일 오전

 

 그럼 여권도 내일 받아요?

 

 려권은 출국 직전 선수단에게  일괄적으로 나눠 줄 거요

 

 쩝, 그렇구나

 

 근데 나 안 들키고 잘할 수 있을까요?

 

 [한숨]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할 거요  말도 아끼고

 

 아니, 난

 

 그냥 숨만 쉬어도 눈에 띄고 돋보이고

 

 (세리)  군계일학이고 그런 편인데

 

 [한숨 쉬며]  걱정이네

 

 한숨 자는 게 어떨까?

 

 (정혁)  정신이 많이 없어 보이는데

 

 응? 아닌데

 

 아, 차라리

 

 구승준 만나서 이따 부탁해 볼까요?

 

 뭘?

 

 아니, 사업차 왔다잖아

 

 왔다는 건 간다는 거고

 

 (세리)  그 가는 편에 묻어갈 수 있으면  제일 좋고

 

 뭐, 그게 안 되면

 

 우리 가족들한테 은밀하게  내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자를 뭘 믿고?

 

 쩝,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구승준 말마따나

 

 이런 데서 다시 만난 건  보통 운명은 아닐 수도 있죠

 

 [정혁의 헛웃음]

 

 아, 운명이 그케 쉬운 거요?

 

 아니, 거기서 결혼할 뻔한 사람을

 

 여기서 다시 만난 건  쉬운 케이스는 아니지

 

 아니, 그러믄 예를 들어

 

 아, 물론 이건 예지만  [흥미진진한 음악]

 

 (정혁)  그쪽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내가 딱 받아 준 거는?

 

 또 죽어라 도망갔는데  우리 집 앞에서 딱 마주친 거는?

 

 그거야 우연히...

 

 와... 아니지  우연은 아까 그게 우연이지!

 

 아니...

 

 [당황하는 숨소리]

 

 뭐 이런 거로 갑자기  승부욕을 발휘하고 그러지?

 

 아, 나는 그런 게 아니고

 

 (정혁)  그냥 뭐, 단지 우연과 운명  그 단순한 용어 정리 차원에서...

 

 뭐야?

 

 우리 리정혁 씨  나랑 운명이고 싶은 거야?

 

 그런 거 아니오

 

 그래, 그래, 운명이라고 쳐요

 

 칩시다, 그래

 

 치지 않아도 되오

 

 하긴 우린 국경을 넘은 만남이잖아?

 

 쳐 준다니까

 

 아, 쳐 주지 말라고!

 

 (단)  투숙객 중에 리정혁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몇 호인지 알려 달라요

 

 미안합니다만  그거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있을걸?

 

 [전화 거는 소리]

 

 [통화 연결음]

 

 응, 나야

 

 (단)  나 지금 동무네 호텔에 잠깐 왔어

 

 뭐 알아볼 게 있는데  살짝 협조 좀 받자요

 

 [난감한 한숨]

 

 예

 

 예! 예, 알갔습니다

 

 이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라요

 

 리정혁  [호텔 직원1이 자판을 탁탁 두드린다]

 

 [어두운 음악]  아, 그 동무는 방을 두 개 잡으셨는데

 

 두 개 다 알려 달라요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세리)  키 놓고 갔어...

 

 [문이 탁 닫힌다]

 

 이런 상황이 두 번째면  기분 나빠야 하는 게 맞지요?

 

 (세리)  맞는 것 같긴 해, 난

 

 (단)  누가 정혁 동무를 여기서 봤대서  와 봤습니다

 

 내가 이 방에 있는 건 어케 알고...

 

 (단)  이 호텔 사장 아들이

 

 러시아 유학 할 때부터  날 따라다녔지요

 

 (세리)  그, 충분히 오해할 상황인 거는 아는데

 

 참고로 저희는 방이 따로따로예요  모든 걸 따로따로...

 

 안 궁금했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아, 안 궁금하셨구나

 

 그럼

 

 두 분이서 말씀 나누시고  [정혁의 한숨]

 

 전 이만

 

 (단)  나 여기 계속 세워 놓을 겁니까?

 

 [키 인식음]  [도어 록 작동음]

 

 [어색한 웃음]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걱정스러운 숨소리]

 

 죽이는 건 아니겠지?

 

 (정혁)  미리 연락을 주지 그랬소?

 

 동무야말로  미리 연락을 주지 그랬습니까?

 

 '동무를 평양 호텔에서 봤다'

 

 '여자와 함께 있더라'

 

 (단)  이런 소식 전해 들은 내 입장이  어땠을지는 짐작해 봤습니까?

 

 미안하오, 곤란하게 했소

 

 기래서 나도 동무를 곤란하게 했습니다

 

 (단)  오늘 저녁 약속 있습니까?

 

 있어도 없어야 할 겁니다  [차분한 음악]

 

 양가 어른들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으니

 

 왜요? 많이 곤란합니까?

 

 아니, 그렇지 않소

 

 (정혁)  그때 약속하지 않았소?

 

 마땅히 해야 할 일들  빠짐없이 할 수 있게 협조하갔다고

 

 내 협조하지

 

 내가 더 해야 할 게 남았소?

 

 말하시오, 하갔소

 

 아닙니다

 

 7시에 이곳 호텔 음식점에서 보자요

 

 [문이 달칵 여닫힌다]

 

 (세형)  나 너 못 믿어

 

 하, 저도 이해합니다, 형님

 

 저라도 못 믿죠

 

 (세형)  그래서 어디 있냐고, 세리가

 

 (승준)  아니, 그걸 제가 벌써 알려 드리면...

 

 저도 카드 한 장은 쥐고  협상을 해야죠, 형님?

 

 (세형)  너 진짜 거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싶냐?

 

 형님, 제가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잖아요?

 

 그럼 형님 돈이 어디 있는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돼요

 

 괜찮으시겠어요?

 

 [흥미진진한 음악]

 

 (세형)  하, 그래서...

 

 그래서 어쩌자고?

 

 (승준)  절반으로 협상하시죠

 

 뭐?

 

 (승준)  아, 절반은 돌려드릴게요

 

 나머지는 형님 개인 돈으로  메꿔 보세요

 

 형님 돈 많으시잖아요

 

 이 자식이 진짜, 씨

 

 형님의 하나뿐인 귀한 동생

 

 그것도 죽었다고 생각했던 동생의  안부와 행방입니다

 

 그 정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문이 삐걱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여기서 딱 지켜라

 

 또 어디서 튈지 모르는 인간이니

 

 (경호원)  예

 

 [문이 탁 여닫힌다]

 

 [차분한 음악]

 

 [문이 탁 닫힌다]

 

 [한숨]

 

 혹시

 

 (단)  떨어지려고 거기 있는 거라면

 

 저기 앞에 있는 건물이 더 높습니다

 

 그쪽으로 가라요

 

 (승준)  나 모릅니까?

 

 알 텐데

 

 걱정 말라요, 동무

 

 (승준)  가는 데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갔습니다

 

 고맙습니다

 

 - (단) 아...  - 이제 기억이 났습니까?

 

 아, 이거 반갑습니다

 

 [웃음]

 

 아, 이것도 그만해야겠다

 

 사실은 나 그, 영국 국적이에요

 

 (승준)  여긴 비즈니스 때문에 와 있는 거고

 

 그래서 말투가 이런 거니까  막 섣부르게 신고하고 그러지 말기

 

 관심 없습니다, 남의 말투 따위

 

 관심 있는 남자가 속 썩이는구나?

 

 (승준)  원래 옥상이 그럴 때 오는 데잖아요

 

 약혼자가 딴 여자랑 호텔에 왔습니다

 

 어, 어, 어? 센데?

 

 아, 그래서 현장은 잡았고?

 

 글쎄

 

 남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요

 

 (승준)  너무 힘들어하면 그 남자는 멀어져

 

 왜?

 

 남자는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 옆에 있고 싶어 하지 않거든

 

 기럼 어캅니까?

 

 그냥 무시해요

 

 (승준)  지금 무시해야  나중에 무시 안 당한다고

 

 남녀 관계는  초기 포지셔닝이 평생 간다니까?

 

 [잔잔한 음악]

 

 그케 똑똑한 동무는  뭐가 답답해 옥상에 왔습니까?

 

 (승준)  나?

 

 아, 아  [살짝 웃는다]

 

 아이, 난 돈이 답답하지

 

 내가 돈을 엄청 사랑하거든

 

 근데 올듯 올듯 아주 오진 않네

 

 이렇게 상처만 주고

 

 사람과 돈과의 관계도  초기 포지셔닝 중요합니다

 

 어떻게?

 

 (단)  돈도 적당히 무시를 해 주고  막 대해 줘야 붙지

 

 너무 목매고 쫓아다니고 아쉬워하면

 

 '나 잡아 봐라' 하고  평생을 도망만 다니지요

 

 우린 서로 가르쳐 줄 게  좀 있는 사람들 같네요

 

 아, 내가 지금 꼴이 이래 가지고

 

 구승준이라고 해요

 

 서단입니다

 

 그래도 멀쩡하네요?

 

 멀쩡하지 않으면?

 

 어, 난 총 맞는 거 아닌가 했지

 

 아까 그분 눈에서  레이저가 막 나오길래

 

 정말 함께 있지 않아도 일없갔소?

 

 괜찮다고요

 

 원래 알던 사람이기도 하고

 

 (세리)  [살짝 웃으며]  뭐, 되게 좋은 사람까진 아니지만

 

 또 그렇게 나쁜 사람도 못 돼요

 

 구운 게도 집게다리 떼고 먹으랬소

 

 구운 게를 뭐 어쩌라고요?

 

 당신처럼 허술한 사람은  만사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지

 

 (정혁)  원래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이  뒤통수 제일 먼저 치는 법이고

 

 어? 위험한데, 그거

 

 뭐가?

 

 지금 그거 나 걱정해 주는 멜로 눈깔

 

 [익살스러운 음악]  뭐, 뭔 깔?

 

 리정혁 씨, 나한테 반하지 마요  나 곤란해

 

 [세리의 놀란 신음]

 

 열은 없는데

 

 스킨십 자꾸 해

 

 진짜 나한테 반하지 마요  나 책임 못 진다

 

 열도 없이 왜 자꾸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갔구먼

 

 [세리가 살짝 웃는다]

 

 (승준)  어, 세리 씨

 

 오, 구승준

 

 (세리)  오, 여기서 보니까 또 훤칠하네, 씁

 

 '훤칠'이 남쪽에선 다른 뜻이오?

 

 리정혁 씨도 얼른 가 봐요  나도 갈게요

 

 (정혁)  그러려고 했소, 나도

 

 방금 뭐...

 

 (승준)  딱 맞춰서 왔네?

 

 안녕, 미스터 리

 

 아, 아니, 엄마

 

 [문이 탁 닫힌다]  얼굴이 왜 이래요?

 

 [익살스러운 음악]  음, 너는 젊은 애가  유행을 몰라 어카니?

 

 (명은)  이거이 요즘 대유행 중인  고랑 화장이야

 

 요 봐라, 요 콧날 오뚝한 거

 

 턱선도 여간 날렵해 뵈지 않간?

 

 날렵은 무슨, 무서워 죽갔네

 

 기래

 

 내가 오늘 무서우라고  작정하고 고랑을 팠다

 

 왜?

 

 리씨 집안 것들  오늘도 어물쩡거리기만 해

 

 이판사판 끝판을 보고 말 거야

 

 과부 딸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엄마

 

 지가 암만 총정치국장이라도

 

 나는 평양 시내 달러를  싹쓸이하는 여자야

 

 (명은)  사돈 맺자 할 땐  돈줄 아쉬우니 그러자 해 놓고

 

 몇 년을 질질 끌고 있는 거이야

 

 (승준)  동무

 

 여보라

 

 (호텔 직원2)  네

 

 (명은)  단아!

 

 어

 

 그래서 사업을 한다고, 여기서?

 

 정확하게는 아직 시장 조사 중이야

 

 무슨?

 

 짐 로저스 알지?  세계 3대 투자가 중 한 분

 

 (승준)  나랑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고

 

 후라이 그만 까고

 

 [흥미진진한 음악]

 

 암튼, 그분이 그랬어

 

 자기는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승준)  왜? 여기 팜랜드  어마어마하게 저평가돼 있거든

 

 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블루 오션이랄까?

 

 아, 그러니까 미리  자료 조사 및 물밑 작업을 해 놔야

 

 이 기회가 왔을 때 잡지

 

 그래서 땅을 보러 왔다고, 여기?

 

 어, 그리고 영국 아일랜드 쪽에

 

 내가 사 놓은 탄광들이  요즘 수익이 저조해서

 

 단가가 너무 높잖아

 

 [세리의 한숨]  (승준)  아, 그래 가지고

 

 아오지랑 몇몇 군데 둘러보기도 하고

 

 아오지 같은 소리 작작 하고

 

 작은오빠 돈 사기 친 건?

 

 사기라니

 

 세리 씨가 여기 오래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승준)  우리 사이에는 작은 오해가 있었고  이미 해결했어

 

 거짓말

 

 아, 통화를 한번 해 볼래?

 

 아, 여긴 한국이랑 통화가 안 되는구나

 

 (승준)  아, 암튼 진짜야

 

 [카메라 셔터음]

 

 [정혁의 한숨]

 

 (윤희)  두 사람은 벌써 한 번 봤다고 하더군요

 

 (명은)  예

 

 우리 리 서방이 어찌나 진중하고  성격이 느긋한지

 

 성질 급한 우리 딸이  거기를 냅다 내려갔던 모양입니다

 

 엄마?

 

 와 기래?

 

 칭찬이야, 칭찬

 

 뭐, 사내가 진중하고 느긋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

 

 [옅은 헛기침]

 

 (윤희)  [살짝 웃으며]  예, 기렇지요

 

 그나저나 단이는 어찌 저리 곱습니까?

 

 (명은)  곱지요?

 

 (윤희)  예

 

 (명은)  어제는 더 고왔답니다

 

 [흥미로운 음악]

 

 하루하루, 데이 바이 데이 늙습니다

 

 어제 얘 몸에 있던 세포가  오늘은 없고요

 

 오늘 있던 것들이  내일은 사라진다 이 말이지요

 

 예?

 

 아, 이, 이쁜 청춘 남녀가  눈에 띄게 시들어 가니

 

 국가적인 낭비가 아닌가

 

 기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어색한 웃음]

 

 예

 

 그간 저희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명은)  아, 생각해 보시라요

 

 애초에 결혼이 미루어진 것은

 

 그 댁 큰아드님 사고 때문인데

 

 이건 그 옛날 부모상이라도  3년이면 끝날 일을

 

 벌써 7년이나 지났으니...

 

 엄마

 

 [충렬의 옅은 헛기침]

 

 (충렬)  내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식 올리는 거로 하지요

 

 (명은)  예?

 

 [얼떨떨해하며]  아니, 기러면야 좋지마는...

 

 (충렬)  조만간 정혁이 근무지를  평양 근처로 옮기갔습니다

 

 그쪽에 고층 살림집 하나  얻어 주면 될 것이고

 

 간단한 살림살이는 채워 넣을 테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라요

 

 어, 어, 기래도

 

 [흥미로운 음악]  어케 그럽니까?

 

 남들 다 하는 오장육기는 해야 하고

 

 오장육기요?

 

 오우, 사부인

 

 너무 최신 유행어를 모르십니다

 

 오장은 찬장, 이불장  옷장, 책장, 신발장

 

 (명은)  육기는 냉동기, 세탁기  녹음기, 전화기, 사진기, 선풍기

 

 [명은의 웃음]

 

 아, 예

 

 (명은)  어, 거기다가 그 로봇 청소기며

 

 말하는 밥가마며 거위 털 이불이며

 

 오장육기가 아니라  구장십기를 해도 모자라지요

 

 정혁이 네 생각은 어떠니?

 

 (윤희)  너무 서두르는 거 같으믄...

 

 오래된 약속 아닙니까? 지켜야지요

 

 [명은이 살짝 웃는다]

 

 (명은)  오늘 샴팡 한번 터트려야겠구먼요

 

 봉사원 동무!

 

 응, 여기서  가장 비싼 샴팡 한 병 갖다 달라요

 

 우리 오늘 가열차게  치어스 할 일이 있으니까

 

 (호텔 직원3)  알갔습니다

 

 [명은이 살짝 웃는다]

 

 [세면대 물이 뚝 멈춘다]  [세리의 옅은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멋쩍은 신음]

 

 (단)  두 사람 함께하는 일이  꽤 바쁜 일인가 봅니다

 

 평양까지 쫓아 올라온 거 보믄

 

 쫓아 올라오진 않았고요  같이 왔어요

 

 호텔 가는 남자 따로  커피 마시는 남자 따로

 

 동무는 사교성이 참 좋습니다

 

 (단)  아니면 헤픈 건가?

 

 [살짝 웃는다]

 

 (세리)  [휴지를 탁 뽑으며]  왜요?

 

 호텔 같이 온 남자랑도 커피 마셨는데  아까 낮에

 

 기렇습니까?

 

 [화장품 뚜껑을 딸깍 닫는다]

 

 난 그 남자랑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조금 전에

 

 [익살스러운 음악]

 

 내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우리 결혼합니다

 

 아, 그래요?

 

 (세리)  어, 그렇구나, 축하해요

 

 음,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은데

 

 그때쯤엔 내가 여기 없을 거라서...

 

 (단)  걱정 마시라요

 

 여기 없어 주는 게  가장 큰 결혼 선물이니까

 

 [단이 지퍼를 직 닫는다]

 

 [문이 탁 닫힌다]

 

 웃으면서 사람 엿먹이는 건 내 건데  선수 치고 있어

 

 [분한 숨소리]

 

 [한숨]

 

 아니, 세리야

 

 (세리)  아, 넌 태어나서 내내 이쁘다가

 

 하필 이 순간에 촌년 같고 그래

 

 아, 이게 '어서 오세요' 머리를  했었어야지

 

 '어서 가세요' 머리를 해 가지고

 

 사진 받으셨습니까, 형님?

 

 거봐요, 제 말이 맞잖아요

 

 아니에요  닮은 애 아니고 확실하다니까

 

 (승준)  아니, 세리 닮은 애를 어디서 찾는다고

 

 잠깐만요, 끊지 마세요

 

 (세리)  우리 나가서 좀 걸을까?

 

 [긴장되는 음악]

 

 (세리)  평양도 가을 되니까

 

 낙엽 지고 예뻐지고 서울이랑 비슷하네

 

 (승준)  어, 이제 내 얘긴 다 했으니까  세리 씨 얘기 좀 하자

 

 (세리)  내 얘기 뭐?

 

 (승준)  어떻게 온 거야, 여긴?

 

 사고가 좀 있었어

 

 무슨 사고?

 

 지금은 말하기 곤란해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게

 

 확실한 건 곧 돌아갈 거야, 서울로

 

 (세리)  승준 씨도 사업차 왔으면 금방 가겠네?

 

 (승준)  그렇지, 뭐

 

 그럼

 

 나 부탁 좀 할게

 

 (세리)  우리 아버지한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줘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 밀고 나가시라고

 

 (세리)  반드시 주총 전에 전해야 돼, 반드시

 

 어, 그래, 꼭 전할게, 걱정 마

 

 고마워

 

 [차 문이 탁 닫힌다]

 

 [놀라며]  아, 깜짝...

 

 (명석)  아니, 얼굴에 대체 뭔 짓을...

 

 야, 이 짓 해서  오늘 단이 날 받은 줄이나 알라

 

 [명은의 웃음]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하긴 저 얼굴이믄  못 받을 것이 없갔구나

 

 (명석)  단이는 좋갔다, 날 받아서

 

 (단)  날 받아서 나만 좋은 겁니까?

 

 너만 좋갔니, 어디?

 

 너희 엄마도 좋갔디

 

 (명석)  두 모녀가 아주 소원 성취했구나

 

 [명석의 웃음]

 

 (단)  정혁 동무, 조만간 연락하갔습니다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와 저러지?

 

 정혁아, 나 간다

 

 [차 문이 탁 열린다]  [어두운 음악]

 

 (명석)  참, 정혁아

 

 일전에 네가 부탁했던 거 말이야

 

 [긴장이 고조되는 효과음]

 

 [무거운 음악]

 

 [승준의 웃음]

 

 (규찰대원1)  동무, 여기 동무!

 

 치마가 왜 그케 짧습니까?

 

 (세리)  뭐야?

 

 (규찰대원1)  머리는 또 왜 이케 길고?

 

 무슨 70년대처럼  복장 단속, 머리 단속이라니  [여자2가 사정한다]

 

 (세리)  웬일이야, 치  [승준의 웃음]

 

 [규찰대원2가 막대를 딱 휘두르며]  이름!

 

 (규찰대원2)  두 사람 초상 휘장을  왜 모시지 않고 있습니까?

 

 조선말 할 줄 모릅니까?

 

 초상 휘장을 왜 모시지 않고 있냐  묻고 있디 않습니까?

 

 [승준의 탄성]

 

 (승준)  [영어]  나는 영국에서 온 외교관이다

 

 [영어] 우린 오늘 평양에 왔고  너희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영어] 뭘 원하는 거냐?

 

 [헛기침하며 영어]  당신 뭐...

 

 (규찰대원2) [영어]  좋아, 좋아

 

 [한국어]  뭐, 가라우

 

 [영어]  뭐라고?

 

 [한국어]  뭐라고 이, 샬라샬라하는 거야?

 

 [어눌한 말투로]  샬라샬라?

 

 [규찰대원2의 헛기침]

 

 (세리)  오, 영어 무서워하는 건  남북한이 똑같아

 

 [승준과 세리의 웃음]

 

 리정혁 씨

 

 이분은 아직도 퇴근을 안 하신 거야?

 

 여기서 뭐 해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갑시다

 

 승준 씨, 나 여기서부턴  이 사람이랑 갈게

 

 급하게 연락할 일 있으면  아까 준 번호로 꼭 연락하고

 

 (승준)  그래, 조만간 또 봐

 

 수고해요, 미스터 리

 

 [못마땅한 숨소리]

 

 (정혁)  아까 준 번호라는 건  누구 번호를 말하는 거요?

 

 (세리)  아, 리정혁 씨 핸드폰 번호 줬는데?

 

 내 손전화 번호를?

 

 누구 허락 받고?

 

 아니, 구승준이 우리 아버지한테  내 소식 전해 주기로 했거든요

 

 (세리)  근데 왜 자꾸 아까부터 화를 내지?

 

 보디가드라며? 경호하라며?

 

 안 보이는데 어케 경호를 하란 말이오?

 

 그래서 화가 났다고?

 

 내가 안 보여서?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는 데만 있으면 될 일이지

 

 보이는 데 있으면 뭐...

 

 안전할 거요  [차분한 음악]

 

 내 눈에 보이는 데만 있으믄

 

 (세리)  쳇, 자기가 무슨 어벤져스도 아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렇게 장담을...

 

 자긴 뭐, 다 이기나?

 

 살면서 그케 져 본 기억은 없어서

 

 그, 여기까지 왔는데

 

 뭐, 평양냉면은 못 먹어 보더라도

 

 대동강에서 맥주는 먹어 보고 싶은데  어디 아는 데 있어요?

 

 [시끌벅적하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세리의 감격하는 숨소리]

 

 얼마 만에 영접하는 치느님이야, 이게

 

 나 사실 딴거 다 필요 없고

 

 서울서 가끔 먹던  바삭바삭한 치킨에 맥주

 

 요게 제일 당겼었거든?

 

 여기도 닭고기 튀기가 제법 맛있소

 

 시켜 보시오

 

 아, 나는

 

 제일 비싼 1번 생맥주에

 

 단맛 닭고기 튀기

 

 (정혁)  1번 맥주 반 리터 두 잔에  단맛 닭고기 주시오

 

 (술집 직원)  알갔습니다

 

 [구성진 음악이 흘러나온다]

 

 누가 쫓아오지 않을 텐데

 

 [세리가 숨을 카 내뱉는다]

 

 [세리가 숨을 하 내뱉는다]

 

 내가 그동안  스트레스가 좀 많았어야죠

 

 오늘은 좀 마십시다

 

 평소에도 안 마시지 않았던 것 같은데

 

 쩝, 그래도 오늘은 감회가 남다르지

 

 여권 사진도 찍었고

 

 곧 떠나니까

 

 [전등이 탁 꺼진다]

 

 (세리)  뭐예요, 이 상황?

 

 (정혁)  정전

 

 (세리)  하, 평양도 정전이 되는구나

 

 (정혁)  곧 돌아올 거요

 

 (세리)  사람들이 놀라지도 않아

 

 (세리)  응?

 

 [잔잔한 음악]  눈 와요

 

 보고 있소

 

 이거 첫눈 아닌가?

 

 (세리)  일 났네, 일 났어

 

 첫눈 같이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잖아

 

 그런 얘기 못 들어 봤어요?

 

 난생처음 듣는데

 

 (세리)  [속삭이며]  서울은 첫눈 오면

 

 통신망 다운되고 난리 난다고요

 

 썸 타는 애들끼리 막 약속 잡느라고

 

 왜?

 

 첫눈 같이 보면 사랑이 이루어지니까

 

 기렇소?

 

 그렇다니까요

 

 근데 우린 이뤄지면 안 되잖아?

 

 난리 나지

 

 [정혁의 멋쩍은 숨소리]

 

 그렇지, 큰일이군

 

 큰일이라고?

 

 왜? 뭐?

 

 진짜 약혼녀랑 같이 있어야 되는데  나랑 있어서?

 

 뭐, 그래서 큰일인 건가?

 

 미안하지만 혹시 병이 있소?

 

 그, 기쁨슬픔증 같은...

 

 기쁨슬픔증이 뭐예요?

 

 아, 뭐, 그 조울증 같은 거?

 

 이랬다저랬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뭔 줄 모르갔으니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떻게 알겠어요?

 

 [숨을 들이켠다]

 

 나 자꾸 기뻤다 슬펐다 하는 게

 

 술버릇이니까

 

 우리 그냥 찧읍시다

 

 [술잔을 쨍 부딪는다]

 

 [세리의 취한 신음]

 

 (세리)  응?

 

 무거워요?

 

 (정혁)  꽤

 

 아니, 요 쪼끄마한 게 무거울 거면

 

 (세리)  이거

 

 이, 이 넓은 거 이거 왜 달고 다녀?

 

 근육 떼 버려

 

 (세리)  좀만 참아요

 

 내가 지금 머리가 무거운 건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생각이 많을 게 뭐 있소?  곧 돌아가는데

 

 좋아하기만 하면 되지

 

 좋아서

 

 [부드러운 음악]

 

 좋아서 생각이 많은 거예요

 

 좋아서

 

 [세리의 한숨]

 

 [세리의 한숨]

 

 뭘 알지도 못하면서

 

 [시끌벅적하다]

 

 [살짝 웃는다]

 

 [살짝 웃는다]

 

 (치킨집 직원)  주문하신 치킨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창식)  예, 고맙습니다

 

 야, 큰일 했다  우리 진짜 큰일 한 거야

 

 이제 경찰에서 성문 분석도 하고  위치 추적도 해서

 

 대표님 꼭 찾아 줄 거야  [웃음]

 

 (수찬)  그때 그분들한테도 카피본 보냈지?

 

 대표님 오빠 내외

 

 응, 그 저, 비서실 통해서

 

 이제 우리 말 믿어 주겠지?

 

 (수찬)  야, 한잔하자

 

 우리 대표님, 세리 1호의  빠른 무사 귀환을 위하여...

 

 (창식)  [놀라며]  아니야, 아니야

 

 어, 잠깐만, 아

 

 [창식의 헛기침]

 

 물론 무사 귀환 하셔야지

 

 근데 꼭 '빠른'이어야만 할까?

 

 뭐?

 

 친구야, 내가 전제를 깔게, 대전제야  [익살스러운 음악]

 

 (창식)  난 정말 대표님이 살아 계셔서  기쁘고 날아갈 것 같고

 

 아이고, 이제 됐다 싶고

 

 이번 주엔 꼭 교회를 가야지 싶고 그래  진짜야

 

 뭐, 근데?

 

 근데 막상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급할 거 없잖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야

 

 내 삶의 이 정도 쉼표는  괜찮은 거 아닌가 싶어서

 

 난 요새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

 

 (수찬)  야, 재벌이 꼈잖아

 

 대표님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은  가족들이

 

 하이고, 뭐 가만히 있겠니?

 

 (세형)  내 동생 윤세리가  거긴 왜 가 있을까요?

 

 (오 과장)  예, 예, 그러게요

 

 아, 저도 그 얘기 듣고  너무 황당해 가지고요

 

 거긴 대체 왜 가셨을까요?

 

 오 과장님, 일 하나 합시다

 

 아, 예, 예

 

 내 동생 좀 잘...

 

 아, 그럼요, 잘 모시고 나와야죠

 

 저희가 또 그런 거는 전문입니다

 

 (오 과장)  예, 동생분  무사히 귀환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제가...

 

 - (세형) 아니, 아니  - (오 과장) 예?

 

 그냥 잘 있게 하라고, 거기

 

 [오 과장의 난감한 신음]  [의미심장한 음악]

 

 (오 과장)  아니, 잘 모시고 나오는 게 아니고...

 

 - 아니고  - 예, 아니고

 

 거기 있게 하라고, 쭉

 

 이해가 안 되나?

 

 오 과장님이라고 하셨죠?

 

 예, 예

 

 (상아)  내일 댁으로 사람이 한 명 갈 거예요

 

 신분증이랑 통장 사본 준비해 주시고

 

 서약서에 사인하면 바로 입금될 거예요

 

 입, 입금요?

 

 (상아)  잘 들어요

 

 심플해

 

 우린 윤세리가 거기 계속 있길 원해요

 

 절대 여기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요

 

 (상아)  그것만 해 줘요

 

 그럼 평생 돈 걱정 않고  살게 해 줄 테니까

 

 (천 사장)  '남조선으로 못 돌아오게만 하라'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마라'  그거죠

 

 그렇게만 하면

 

 동무가 사기 친 그 건도  잘 처리해 주갔답니다

 

 일석이조

 

 대단한 집안이네

 

 피도 눈물도 없네, 진짜

 

 (천 사장)  우리는 우리 챙길 것만  야무지게 챙기면 됩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우리 그 사람부터  만나야 될 것 같은데?

 

 이 구역 최고의 공권력 조철강 선수

 

 지금 어디 계시나?

 

 (감찰국장)  이야, 이거, 이거

 

 이 자리에서 밥 한 그릇  다 때려먹는 놈 처음 본다, 야

 

 동무 깡이 대단하구먼기래

 

 [철강이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철강이 숨을 카 내뱉는다]

 

 눈물은 내려가도  이 숟가락은 올라간댔습니다

 

 (철강)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들인데

 

 밥까지 못 먹으면서 할 걱정이  뭐가 있갔습니까?

 

 이거, 이거, 이거 아직  분위기 파악 못 했구먼기래

 

 (감찰국장)  이 사안이 심각해

 

 이 통화 기록을 보니까니

 

 이번 사건하고 혐의가 짙은

 

 공병 부대 쪽하고  통화를 참 많이 했더구먼

 

 기래요?

 

 뭐, 전화 통화 할 일이 있었나 보지요

 

 그거이 증거가 됩니까?

 

 증거?

 

 (감찰국장)  야, 이 쌍간나새끼야

 

 같은 보위국 식구라고  봐주면서 할 것 같니?

 

 사람 넷이 죽었어

 

 그중 셋은 당신 지시받고  도굴했던 도굴꾼들이었고!

 

 당신이 공병 부대 트럭 동원해 가지고

 

 그 사람들 입 막이 하려고  벌인 짓 아니가?

 

 황태용 감찰국장 동지

 

 너 이 새끼...

 

 내 이름 어케 알아?

 

 이래 봬도 우리 인연이  깊은 사이입니다

 

 인연?

 

 무슨 인연?

 

 (감찰국장)  나 당신 처음 보는데?

 

 여기 조사원들 내보내고  말씀드리면 안 되갔습니까?

 

 시건방 떨다 어디 하나 뿌러지지 말고

 

 묻는 말에 답이나 하라!

 

 정 그러시다믄, 뭐

 

 국장 동지

 

 (철강)  대내 감찰국 오시기 전에  따님 시집보내셨지요?

 

 [긴장되는 음악]

 

 신혼집이 보통강 구역에  새로 지은 아파트였던가?

 

 10만 달러짜리 30층 아파트

 

 [문이 탁 닫힌다]

 

 당신 뭐이가?

 

 그걸 어케 알아?

 

 따님 신혼집 마련하느라

 

 제가 갖다 판 골동품이  수십 개입니다

 

 궁금하믄 말씀하시라요

 

 (철강)  날짜, 시간, 증거 사진까지

 

 내래 잘 갖고 있시오

 

 감찰국장 동지만이 아닙니다

 

 수사국장 동지

 

 국가 보위상 동지의  그 위의 위의 분들까지

 

 내 돈 먹지 않은 분들은 드물지요

 

 가족이 뭐, 별거입니까?

 

 같이 노나 먹었으면 그거이 가족이지

 

 같이 좀 살자요

 

 가족끼리

 

 [웃음]

 

 [한숨]

 

 (대좌)  아니, 뭐라 기랬길래  이케 풀어 주는 거야?

 

 씁, 원래 여기가  이런 데가 아닌 거로 아는데

 

 공짜로 잘 먹고

 

 무탈하게 끝나는 행복한 일은  세상엔 없지요

 

 (철강)  기래서 공짜 밥이  가장 비싼 거 아니갔습니까?

 

 동무, 내가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

 

 (대좌)  왜 도로 내게 묻는 거야, 건방지게

 

 뭐, 공짜 밥 먹었으니 밥값 하라  뭐, 기런 얘기가 하고 싶어?

 

 대좌 동지

 

 천하의 고아에 꽃제비 출신  이 조철강이

 

 부모가 있습니까, 형제가 있습니까?

 

 절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대좌 동지는

 

 제 가족입니다

 

 뭐, 기런가?

 

 충성을 다하갔습니다

 

 (철강)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같이 가는 거 아입니까?

 

 쩝  [한숨]

 

 그 뭐, 같이 가자는 말을  왜 저렇게 섬뜩하게 하고 지랄이네

 

 저승사자네, 뭐네?

 

 (철강)  얘기 들어 보니까 나 없는 동안에  일들이 많았더구먼요

 

 (천 사장)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승준)  나 말고 한 사람 더  키핑할 생각 있어요?

 

 한 사람을 더?

 

 [긴장되는 음악]

 

 이 사람을 압니까?

 

 그러는 그쪽은?

 

 그 여자를 알아요?

 

 내 말에 먼저 답하시오

 

 뉘기요, 이 여자?

 

 (영애)  삼숙 동무

 

 아니, 리정혁 동지를 여기 두고  어딜 떠난다 말이야?

 

 (옥금)  그 에미나이 때문이네? 그 백여우?  [정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개싸가지?

 

 (금순)  재수꽃다발?

 

 네, 맞아요, 그 왕재수

 

 쩝,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영애)  이야, 평양 가서  아주 세게 당하고 왔나 보구먼

 

 왜? 머리끄댕이라도 뜯겼나?

 

 어머, 여기도 머리를 뜯나요?

 

 아니, 그럼 싸울 때 머리를 뜯지  어딜 뜯나?

 

 - (명순) 머리를 안 뜯니?  - (향이네) 기럼

 

 - (금순) 뜯어야지  - (향이네) 머리를 뜯어야지

 

 [여자들이 의아해한다]  (세리)  음, 역시 우린 한민족이 맞네요

 

 근데 머리는 안 뜯었고요

 

 어, 뜯긴 건 더더욱 아니에요

 

 그저 그 사람 힘든 건 제가 싫어서

 

 아이, 암만 기래도 그렇지

 

 아, 진짜로 그,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져 살갔다는 거야?

 

 같이 살아야 사랑인가요?

 

 (세리)  가수 최삼숙도 그랬잖아요

 

 심장에 새긴 사랑이라고

 

 진짜 사랑이란

 

 심장에 새기는 것 아니겠어요?

 

 (영애)  삼숙 동무

 

 사랑은 이 심장에 새기지 말고  머리에 새기라

 

 여기 새기믄 아파서 못 살아

 

 기억이야, 뭐  세월 가면 지워지는 거니까

 

 [영애가 훌쩍인다]

 

 (옥금)  잘 살라요, 보란 듯이

 

 더 잘나가는 남성 동무 만나서

 

 [영애의 한숨]

 

 (명순)  섭섭해서 어카니?

 

 늘 몸 건강하라요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이리 오라요, 쯧

 

 (월숙)  잘됐어, 잘됐어

 

 어차피 둘이 깨졌을 거야

 

 깨질 거믄  나중보다는 지금이 백배 낫디

 

 잘했어, 잘했어, 응, 응

 

 아니, 왜 깨졌을 거라고  그렇게 단정을 하세요?

 

 잘 살았을 수도 있죠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왜요?

 

 일단 둘이 성격이 안 맞고

 

 (월숙)  그리고 삼숙 동무가

 

 어른들이 좋아하는  그런 여성상이 아니잖아?

 

 기러니까 이제 고부 갈등이  장난이 아니었을 거란 말이지

 

 이혼하는 거보다는 이게 낫디

 

 모르시는 말씀이네요

 

 제가 어른들한테 얼마나 웃으면서  나긋나긋 잘하는 스타일인데

 

 [세리가 살짝 웃는다]

 

 (월숙)  삼숙 동무, 기거 모르디?

 

 동무가 이렇게 반달눈 뜨고 웃으면서  [익살스러운 음악]

 

 입으로는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면 말이디

 

 고조 내래 한 대 확  쥐어박아 주고 싶단 말이디

 

 나니까 참았디

 

 참지 말지 그러셨어요?

 

 이거 보라우, 이거 보라우!

 

 (월숙)  어른이 얘기를 하믄

 

 '아하, 내가 기렇구나'

 

 '참 그것은 내가 좀 고쳐야갔구나'  이런 법이 없고!

 

 동무하고 얘기를 하고 있으믄

 

 자꾸 내가 여기 혈압이 상승해!

 

 어머, 저도 그래요

 

 그럼 서로의 혈관 건강을 위해서  그만 일어나시죠

 

 그러자우! 잘 가라우!

 

 (세리)  네, 잘 있으시죠, 난 가니까!

 

 (월숙)  그러자요, 나도 가갔어

 

 (옥금)  어머나, 어머나

 

 - (월숙) 비키라우  - (세리) 비키세요

 

 (월숙)  기거 내 신발이네!

 

 (철강)  누군지 알간?

 

 하긴 그동안 목소리만 들어 왔으니

 

 얼굴은 알 수가 없갔지

 

 그 여성이야  리정혁 동무 집에 머물고 있는

 

 [놀라는 숨소리]

 

 오늘 이 여성을 키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

 

 예?

 

 이 사람을 압니까?

 

 그러는 그쪽은, 그 여자를 알아요?

 

 내 말에 먼저 답하시오

 

 (철강)  뉘기요, 이 여자?

 

 내 친구입니다

 

 (철강)  남조선에서 이 여자는  어떤 신분이었소?

 

 (승준)  그냥 뭐, 잘사는 집에서 귀하게 자랐다

 

 그 정도만 아시면 될 것 같고

 

 이제 내 질문에 답해 봐요

 

 그쪽은 그 여자를 어떻게 알아요?

 

 [한숨]

 

 군관 사택 마을에서 지내고 있소

 

 알아요

 

 이번 주 목요일에  이곳을 떠나는 것도 아오?

 

 떠난다고?

 

 항공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고 들었소

 

 막아 줘요

 

 [긴장되는 음악]

 

 그거부터 막아

 

 막아 달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갔어?

 

 (철강)  찜찜하던 것도 해결하고  돈까지 들어오고

 

 어케 하실 작정입네까?

 

 (철강)  동무 덕분에 필요한 정보는  이미 다 알고 있어

 

 그날 대표 선수단 타는  비행 편도 파악됐고

 

 순환 비행장 가는 길이야 하나니까, 뭐

 

 [긴장감 고조되는 효과음]

 

 [세리가 그릇을 땅땅 두드린다]

 

 어텐션 플리즈

 

 (세리)  얘기 들어서 알겠지만

 

 나 이번에 진짜로 돌아가게 됐어요

 

 기러거나 말거나, 흠

 

 (주먹)  또 무슨 선물 줍니까?

 

 내가 산타클로스니?

 

 내 수중에 돈 백 원이 없는데  무슨 선물을 또 줘?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산타클? 그거이 뭡니까?

 

 [주먹의 헛기침]  [주먹의 우쭐대는 신음]

 

 이 산타클로스는, 응?

 

 (주먹)  일 년에 한 번씩 남의 집 굴뚝을  타고 들어가는 할바이인데...

 

 도적입니까?

 

 아니디

 

 도적이라기엔 오히려  선물을 두고 가거든

 

 아, 기러면 의적입니까?

 

 [주먹의 한숨]  (세리)  자, 자, 의적 같은 소리 그만하고

 

 어쨌든 내가 이번에  진짜로 돌아가게 됐으니까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념하는 차원에서

 

 소풍을 가면 어떨까  뭐, 그런 의견이 나왔어요

 

 누구네? 누가 기딴 의견을 냈네?

 

 나다

 

 [한숨]

 

 중대장 동지  따끔하게 한마디 하십시오

 

 (치수)  자꾸 오냐오냐하니까  현실성 없는 헛소리만 하지 않습니까?

 

 (정혁)  내일모레가 휴식일이니  그때 가 보도록 할까?

 

 네 사람은 따로  외출 허가 내 놓을 테니

 

 [은동의 웃음]

 

 [한숨]

 

 휴식일엔 모표도 닦아야지

 

 (치수)  금속 단추도 닦아야지

 

 목달개도 빨아서 다려야지  할 일이 태산인데

 

 팔자 좋게 소풍을 어케 갑니까?

 

 난 반대입니다

 

 [웅장한 음악]

 

 근데 소풍 가는데  무슨 삽자루에 도끼에

 

 너희 진짜  나 어디 묻어 버리려 그러니?

 

 (치수)  기러지 못하고 곱게 보내는 거이  천추의 한이다

 

 [세리가 혀를 쯧 찬다]

 

 근데 리정혁 씨랑 은동이는  왜 안 보여?

 

 (주먹)  은동이는 미리 가서 불 피우고 있고

 

 정혁 동지는 어딜 갔습니다

 

 어디?

 

 그거는 저도 잘...

 

 [주먹의 멋쩍은 웃음]

 

 결혼식 준비라도 하러 가셨나

 

 (세리)  내가 생각했던 소풍과는  다른 그림이긴 하지만

 

 좋네, 나름

 

 음, 낭만적이야

 

 [돼지 울음]

 

 어? 아기 돼지

 

 [세리의 기분 좋은 신음]  (치수)  자, 자

 

 준비됐으면 인차 목부터 따라우

 

 (세리)  뭘 따?

 

 (은동)  세리 동무 마지막인데  기냥 보낼 수 없어서

 

 아끼던 놈인데 오늘 따기로 했습니다

 

 아니, 따긴 뭘 따? 와인이니?

 

 우리의 시작은 총질이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 되지 않갔습니까?

 

 끝에 돼지 목을 따는 게  어떻게 유종의 미야?

 

 아, 우리는 원래 냉장 보관, 냉동 보관  이런 게 잘 안되기 때문에

 

 (주먹)  원족 올 때 돼지를 끌고 와서

 

 통돼지 구이를 해 먹고 그럽니다

 

 아, 난 못 먹어

 

 (세리)  아니, 내가 지금 쟤랑  눈을 몇 번을 마주쳤는데 어떻게 먹어?

 

 [어이없는 신음]

 

 (치수)  언제는 삼시 세끼 고기만 먹는다고  개구라를 치더니

 

 이젠 또 뭐, 착한 척이네?

 

 아, 그래,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안면 튼 애를 먹은 적은 없어

 

 안 돼, 쟤는 못 먹어

 

 (세리)  안 돼

 

 (은동)  기러면 우리는 뭘 먹습니까?

 

 [부드러운 음악]

 

 [옅은 웃음]  (은동)  저기 있습니다

 

 여기, 여기, 여기, 어, 여기, 저쪽!

 

 [주먹과 광범이 소리친다]

 

 [웃음]  [중대원들이 소란스럽다]

 

 (치수)  아이, 놓쳤잖네!

 

 [주먹과 치수가 실랑이한다]

 

 [주먹이 소리친다]

 

 [웃음]  [중대원들이 소란스럽다]

 

 [함께 환호한다]

 

 (치수)  야, 야, 야, 야, 야

 

 (주먹)  아이, 고기 한 마리 잡았다!  [은동의 웃음]

 

 [광범이 말한다]  [치수의 놀라는 신음]

 

 (치수)  두 마리다!  [주먹의 환호]

 

 [치수의 감격하는 신음]

 

 [중대원들이 연신 소란스럽다]

 

 [주먹의 웃음]

 

 [서로 대화한다]

 

 [주먹과 광범의 웃음]

 

 [은동의 힘주는 신음]  [치수의 놀라는 신음]

 

 (은동)  잡았습니다

 

 [치수의 웃음]  그거 주시지요

 

 (주먹)  두 마리 잡은 거 같습니다

 

 [함께 웃는다]

 

 [광범이 중얼거린다]

 

 (치수)  야, 야, 조심하라

 

 [중대원들의 환호]

 

 [주먹의 박수]

 

 - (세리) 맛있겠다  - 많이 드리갔습니다

 

 (치수)  맛있디?

 

 [치수의 웃음]

 

 [놀라는 신음]

 

 - 허, 너무 맛있어!  - (은동) 맛있습니까?

 

 [세리의 감격하는 신음]  [주먹의 웃음]

 

 (치수)  이런 참게를 이, 잡는 법을  어디서 배운 거네?

 

 난 이런 크랩은 처음 먹어 봐  [은동이 숨을 카 내뱉는다]

 

 (치수)  남조선은 이런 것도 못 먹...  [만족스러운 신음]

 

 (은동)  이 게 전부 다 제가 잡은 겁니다

 

 (세리)  너무 달아

 

 [주먹의 탄성]  [세리의 만족스러운 신음]

 

 (주먹)  오늘이 세리 동무 마지막 날이라

 

 저희가 환송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래?

 

 음, 올 게 왔군, 어디 있어?

 

 뭐...

 

 (은동)  뭐가 와...

 

 (세리)  선물 준다는 거 아니야?

 

 나도 저번에 줬잖아

 

 [피식하며]  그거는 아니고

 

 (주먹)  표치수 동지가 환송 시를 썼습니다

 

 어, 괜찮은데, 진짜 괜찮은...

 

 (치수)  에, 에

 

 [치수가 목을 가다듬는다]

 

 (세리)  읊어 주게?

 

 아, 됐어, 뭐, 그냥 줘

 

 나중에 봐서 읽든가 말든가 하게

 

 에, 에미나이를 위한 환송 시

 

 (치수)  못도 망치를 만나면 쑥 들어가고

 

 단감도 바람이 불면 똑 떨어지건만

 

 (주먹)  오!  [주먹의 웃음]

 

 (세리)  '오'는 무슨

 

 (치수)  이놈의 에미나이는  뭐든 지 마음대로 지 멋대로

 

 총을 쏴도 죽질 않고  욕을 해도 먹질 않네

 

 아, 아, 아, 세상 골칫거리

 

 야, 그만 듣자

 

 기래도 떠나는 마당이니

 

 내 소원만은 들어 달라

 

 (치수)  잘 가라, 다치지 말고

 

 [잔잔한 음악]  잘 살아라

 

 [치수의 헛기침]

 

 우리 잊지 말고

 

 - 쳇  - (치수) 만에 하나 들키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불디 말라, 내 이름만은

 

 네 이름 제일 먼저 불 거야, 두고 봐

 

 (은동)  인차 세리 동무 가면 다신 못 볼 텐데

 

 [한숨]

 

 노래 한번 해 주면 안 됩니까?

 

 [살짝 웃는다]

 

 쩝, 너희 내가 노래까지 하고 가면

 

 하, 나 절대 못 잊을 텐데  어떡하려 그러니?

 

 (세리)  쩝, 진짜 걱정이다

 

 (세리)  ♪ 찬 바람이 불면 ♪

 

 ♪ 내가 떠난 줄 아세요 ♪

 

 ♪ 스쳐 가는 바람 위로 ♪

 

 ♪ 그리움만 남긴 채 ♪

 

 ♪ 낙엽이 지면 ♪

 

 ♪ 내가 떠난 줄 아세요 ♪

 

 ♪ 떨어지는 낙엽 위엔 ♪

 

 ♪ 추억만이 남아 있겠죠 ♪

 

 ♪ 찬 바람이 불면 ♪

 

 ♪ 그댄 외로워지겠죠 ♪

 

 ♪ 그렇지만 이젠 다시 ♪

 

 ♪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

 

 [아련한 음악]

 

 ♪ 한때는 내 어린 마음 ♪

 

 ♪ 흔들어 주던 ♪

 

 ♪ 그대의 ♪

 

 ♪ 따뜻한 눈빛이 ♪

 

 진짜 안 데려다준다고?

 

 (세리)  그래도 난 공항까진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헤어집시다

 

 몸조심해서 가고

 

 리정혁 씨는 아니겠지만

 

 난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잔잔한 음악]

 

 생각날 것 같아, 가끔

 

 (세리)  아니

 

 사실은 자주

 

 근데 우리는  서로 안부도 묻질 못하잖아

 

 그게 좀 속상하네

 

 여길 떠나는 순간

 

 여기도 잊고 나도 잊고 다 잊고

 

 [한숨]

 

 (정혁)  원래 당신의 세상에서  건강하게 잘 살길 바라오

 

 잠깐 나쁜 꿈 꿨다 생각하고

 

 [한숨]

 

 악수 말고

 

 한번 안아 주지

 

 마지막인데

 

 [달칵 소리가 난다]

 

 [괴로운 숨소리]

 

 [갈등하는 숨소리]

 

 [만복이 훌쩍인다]  [만복의 거친 숨소리]

 

 [통화 연결음]  출발했습니다

 

 [떨리는 숨소리]

 

 [만복이 흐느낀다]

 

 저것들 뭐이지?

 

 (세리)  속도가 너, 너무 빠른데?

 

 [세리의 놀라는 신음]

 

 [세리의 신음]  [차 끼익한다]

 

 광범 씨, 괘, 괜찮아?

 

 [겁먹은 숨소리]

 

 [놀라는 신음]

 

 [세리의 놀라는 신음]

 

 어떡해

 

 [세리의 떨리는 숨소리]

 

 [세리의 놀라는 신음]

 

 [총성이 요란하다]

 

 [세리 신음]

 

 [긴박한 음악]

 

 [총성이 요란하다]

 

 [놀라는 신음]

 

 [총성이 요란하다]

 

 [놀라는 신음]

 

 [쾅 부딪는 소리가 난다]  [세리의 놀라는 신음]

 

 [타이어 마찰음]

 

 [급정거하는 소리]

 

 [세리의 겁먹은 신음]

 

 [세리의 힘겨운 신음]

 

 (광범)  빨리 내리셔야 합니다

 

 [세리의 겁먹은 숨소리]

 

 (세리)  광범 씨...

 

 [세리의 다급한 숨소리]

 

 [거친 숨소리]

 

 [무거운 음악]

 

 [총성이 요란하다]

 

 [굉음]

 

 [놀란 신음]

 

 [가쁜 숨소리]

 

 [놀라는 신음]

 

 [거친 숨소리]

 

 [가쁜 숨소리]

 

 다친 데는?

 

 없어요, 리정혁 씨는?

 

 [힘겨운 숨소리]

 

 [총성이 탕 울린다]  [정혁의 신음]

 

 [총성이 탕 울린다]  [광범의 신음]

 

 [세리의 놀라는 신음]

 

 [정혁 둔탁한 소리 내며 쓰러진다]  [세리 놀라는 신음]

 

 (세리)  리정혁 씨!

 

 [광범의 힘겨운 신음]

 

 [세리의 놀라는 숨소리]  [광범의 힘겨운 신음]

 

 [총 겨누는 소리]  [세리의 놀라는 신음]

 

 [총성이 탕 울린다]

 

 [세리의 놀라는 신음]

 

 [세리가 울먹인다]

 

 리정혁 씨

 

 [세리의 놀라는 신음]

 

 [세리의 떨리는 숨소리]  안 돼, 정신 차려 봐

 

 [세리가 흐느낀다]

 

 [세리의 다급한 신음]

 

 내일 세리 동무 데려다주는 차는  동무가 운전해야 되갔어

 

 중대장 동지는요?

 

 난 비밀리에 따라가려고 한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  [차분한 음악]

 

 이중 엄호입니까?

 

 먼저 원족 가 있으라  난 준비할 게 좀 있다

 

 [기계음 소리가 요란하다]

 

 [연장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이 정도 스프링을 어디에 쓰시려고

 

 (정비 군관)  뭐, 산악 경주라도 나갈 셈입니까?

 

 [정혁이 달그락거린다]

 

 (정혁)  권총 소음기 하나 더

 

 (무기고 군관)  예

 

 (정혁)  이건 9밀리 자동 권총으로 바꾸고  유탄 발사기도 함께

 

 (무기고 군관)  예

 

 [총을 철컥 장전한다]

 

 [무기를 달그락 넣는다]

 

 (무기고 군관)  중대장 동지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시죠?

 

 없길 바라야지

 

 [감성적인 음악]  [오토바이 엔진음]

 

 (정혁)  약속했거든

 

 내 눈에 보이는 동안엔 반드시

 

 지켜 줄 거라고

 

 (세리)  리정혁 씨!

 

 (부하 군인)  아무래도 총격전을 벌인 게  그자가 확실해 보입니다

 

 (광범)  일단은 공항부터 가고  그다음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알아서 하다가 저 사람 죽으면!

 

 (철강)  아직까지 부대 복귀를 못 한 거 보믄

 

 십중팔구 부상이다

 

 (승준)  진짜 뭔 일 난 거 아니야?

 

 (단)  11과 대상 아니고

 

 남조선에서 무단으로 우리 공화국에  침투한 사람

 

 (승준)  신고하면 당신 남자도 다쳐요

 

 (단)  난 그이가 다쳐도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승준)  사람이 설레는 건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를 때거든

 

.사랑의 불시착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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