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직원이 영어로] 미스터 고, 오랜만입니다
다시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영] 절 기억하시나요?
[직원] 그럼요, 미스터 고
[달그락 소리]
일행분이 여기 카드 키를 맡기셨습니다
방 호수는 3300입니다
- [영] 감사합니다 - [직원] 감사합니다
[카드 인식음]
[달칵 문 닫히는 소리]
[탁 내던지는 소리]
"호텔 리모델링 후 첫 번째 신혼부부입니다"
"특별한 허니문을 축하드립니다"
[영이 한국어로] 우와
허니문이라고 쓰니까 샴페인을 주는구나
[나른한 숨소리] 살 것 같다
야, 씻고 누워
아, 좀
[규호] 이불 위에만 누워 있을게
[툭 소리]
너도 일로 와
잠시만 같이 누워 있자
[바스락 소리]
[영, 규호의 옅은 웃음]
그러게 누가 그렇게 퍼마시래?
저녁에 수영장 갈 수 있겠어?
[규호] 응, 공짜 술이잖아 비행깃값이 얼만데 다 마셔야지
[규호의 힘겨운 숨소리] 가서 커튼 치고 와
바보야
특급 호텔에서 누가 커튼을 손으로 치냐?
- 응? 그럼? - [딸깍 버튼 소리]
[커튼 작동음]
[규호] 미쳤다, 개좋네?
- [영] 어? - [딸깍 버튼음]
[영의 한숨]
[규호] 왜?
[영] 아이, 이상해 고장 난 거 같아
응, 그냥 자자
[영] 아, 이런데 어떻게 자
- [카메라 셔터음] - 규호야 [옅은 웃음]
여기 굉장한 거 있다
응? 뭐?
크리스털 자지
[규호] 응?
[웃음]
크고 대단하네
[피곤한 숨소리]
[전화 버튼음]
[통화 연결음]
[영이 영어로] 여보세요?
자동 커튼이 끝까지 안 닫혀요
[직원]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룸 업그레이드를 해 드렸어요
[달칵 문 닫히는 소리]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파크 스위트 킹 룸'입니다
[영] 감사합니다
[직원] 별말씀을요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 [태국어로] 감사합니다 - [영] 감사합니다
- [직원의 웃음] - [멀어지는 발걸음]
[달칵 문 열리는 소리]
[달칵 문 닫히는 소리]
[영, 규호의 신난 탄성]
- [규호의 탄성] - [영의 웃음]
[규호가 한국어로] 아이, 씨, 개놀랜
와
아까 그 사람이 뭐래?
[영] 아, 미안하다고 '파크 스위트 킹 룸'으로 업그레이드해 줬대
[규호] 무슨 게임 끝판왕 이름 같네
[영] 그러게
- [규호] 초콜릿 - [영] 야, 그거 돈 내야 돼!
[규호] 지, 진짜?
- [영] 뻥인데 - [규호] 아, 씨
[규호] 시티 뷰
[도시 소음]
[영의 탄성]
여기서는 안 보여, 크리스털 자지
[영] 그러네 이쪽에서는 안 보이네
[규호] 아까 볼걸, 아쉽다
[달칵 문 열리는 소리]
[달칵 문 닫히는 소리]
[자동차 경적]
"저녁을 포함한 회의가 계속 잡혀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관광을 하고 돌아다니세요"
"상황을 보고 다시 연락할게요 하비비"
[지잉 커튼 작동음]
[영 내레이션] 서울과 방콕
두 도시 중 어느 쪽에서든 혼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여행지의 생경함은 외로움을 더 선명하게 할 뿐이었다
이젠 외로움도 지겹고 지겨움도 지겹다
[시끌벅적한 소리]
[휴대 전화 진동음]
[휴대 전화 조작음]
"저녁에 시간이 납니다 6시에 마하칸 요새에서 만나죠"
[메시지 조작음]
[메시지 발신음]
[직원이 영어로]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 끔뻑끔뻑, 데구루루 - [영의 놀란 소리]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점원의 태국어 말소리]
[영이 영어로] 그러니까 이 도수에 맞는 건 이거밖에 없다는 거죠?
[점원] 네, 네
[웃음]
[한국어] 니 시력에 맞는 거 이거 하나밖에 없대
어?
[영어] 진짜? 진짜로요?
[점원] 네, 이것밖에 없어요
[규호의 한숨]
[오토바이 엔진음]
[오토바이 경적]
[규호가 한국어로] 아, 젠장할! 졸라 덥네!
[영의 힘주는 소리]
[규호의 멋쩍은 소리]
아, 더워
[규호의 힘주는 소리]
[새어 나오는 웃음]
[숨죽여 웃는 소리]
[놀란 숨소리]
[규호] 아, 그만 웃으라고, 진짜
아, 아, 아, 미안, 미안 알겠어, 이제 진짜 안 웃을게, 어?
- [영의 웃음] - 아, 웃지 말라고
[영] 아, 너도 솔직히 웃기잖아
너 그거 같다, 명탐정 우사미 짱
[규호] 그럼 너는 쿠마키치다 변태 곰
[영의 웃음]
- [규호] 나는야 우사미 짱! - [영] 나도 우사미 짱!
[규호] 아니야, 너는 쿠마키치야!
[영이 장난스럽게] 내가 우사미 짱
[규호] 나는 눈이 파래요!
[영] 야, 나 우사미다!
[규호] 아니야 내가 우사미 짱이야!
[호각 소리]
[자동차 경적]
- [호각 소리] - [영] '코쿤캅'
[영어로] HIV 항바이러스제 있나요?
[약사] 네, 잠시만요
[딸랑 울리는 소리]
- [자동차 경적] - [호각 소리]
[자동차 경적]
[호각 소리]
이건 항바이러스제 복제약이에요
[툭 내려놓는 소리]
[약사] 약의 효능과 복용법도 동일합니다
섹스하기 전 두 알을 먹으세요
이후 24시간마다 두 번씩 한 알을 먹으면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어요
구매하실 겁니까?
[호각 소리]
[영] 네, 얼마인가요?
[호각 소리]
[자동차 경적]
[규호가 한국어로] 뚱고 아니, 쿠마키치 군
- [영] 어? - 우리 이제 뭐 할 거?
[영] 글쎄, 일단 호텔?
[사람들 말소리]
[규호] 우리 바다 보러 갈까?
[영] 바다는 엄청 멀어
[규호] 왜? 태국이잖아 사방이 바다 아니야?
[영] 푸껫이나 코사무이 같은 섬이나 그렇지
여기는 방콕이야
바다 가려면 한참 가야 돼
[규호] 아, 방콕도 육지구나
[영의 웃음]
- 왜 웃으맨? - [영의 웃는 숨소리]
너가 그랬잖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육지 보는 게 니 소원이었다고
[규호의 헛웃음] 그게 웃김?
[영] 우리 바다 대신 강 보러 갈래? 짜오프라야강
콜!
[시끌벅적한 소리]
[영] 아! 아!
[감성적인 음악]
- [영의 힘주는 소리] - [규호의 놀란 소리]
[규호] 짜오짱, 짜오프라야강!
[영 내레이션] 카일리는 소리 없이 언제나
내 삶을 차지하고 있었다
9년 전의 내가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금과 많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 인생은 어떤 형태일까?
더 나을까, 더 나쁠까?
아니면 지금과 별다를 바 없을까?
카일리와 함께한 지 벌써 9년이 지났지만
카일리의 존재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조차도 낯선 카일리의 존재를
규호는 항상 당연하게 받아들여 줬다
나는 그것에 대해 미안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잦아드는 음악]
[오토바이 엔진음]
[툭툭 발로 치는 소리]
[호각 소리]
[하비비가 영어로] 이봐요, 핵폭탄
[영의 웃음]
[영] 미안해요
내 얼굴을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사람과 방콕에 가나요?
[영] 그럴 수도 있죠, 뭐
[영의 웃음]
[하비비] 어떤 하루였어요?
[영] 음, 노래하며 춤추는 거인의 눈을 보았어요
끔뻑끔뻑, 데구루루 끔뻑끔뻑, 데구루루
[영의 웃음]
[하비비] 아주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네요
당신은요?
지루했죠, 언제나처럼
그래도 오늘 저녁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거예요
나 덕분에요?
[하비비] 아뇨
오늘 밤 방콕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거든요
[영의 웃음]
[흘러나오는 분위기 있는 음악]
[씁 들이켜는 숨소리]
전부
[직원] 알겠습니다
[헛웃음]
- [직원] 이 술은… - [영] 잠시만요
말해 주지 마세요, 모르고 싶어요
[태국어로] 감사합니다
[영이 영어로] 한 번쯤 이렇게 시켜 보고 싶었어요
돈이라는 것은 참 좋네요
돈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어요
당신 꽤 바보군요? 그걸 몰랐다니
[영, 하비비의 웃음]
[영의 씁 들이켜는 숨소리]
[영의 똑 입소리]
[영] 와, 맛있다 그건 무슨 맛이에요?
[생각하는 소리]
멜론, 말리부, 레몬
[하비비의 쩝 입소리] 그리고 바나나
무난한 준 벅이네요
[탁 내려놓으며] 당신 것은 무슨 맛인가요?
내 약지손가락 맛?
네?
당신의 약지손가락 맛이 난다고요?
네, 한번 드셔 보실래요?
아니, 어떻게 정말 약지손가락에서 같은 맛이 나네요?
그렇죠?
- [웃음] - [리드미컬한 음악]
[영, 하비비의 웃음]
[하비비, 영의 캑캑대는 소리]
[탄성]
[영의 신난 탄성]
[영] 바나나?
[하비비] 이건 어때? 이건 어때?
[영의 개운한 탄성]
- 건배! - [하비비] 건배!
건배
[영] 괜찮아요?
- 전혀요, 전혀 - [영의 웃음]
- [놀란 탄성] - [하비비의 웃음]
[잦아드는 음악]
[영] 이젠 더 이상 맛도 느껴지지 않아요
혀가 마비되었나 봐요
[하비비] 괜찮아요
애초에 맛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직원의 태국어 말소리]
[후드득 빗소리]
[천둥소리]
[한국어] 왜 비 와? 건기라며
[영] 늦은 우기야
[규호] 그게 건기인 거 아니야?
늦은 우기도 우기인 건가 봐
그래서 비행깃값이 쌌구나
[규호의 거친 숨소리]
[영] 야, 그만 뛰어 어차피 다 젖었어
아! 천천히 가자고
[규호의 한숨]
뭐 해?
[규호] 뭐 하긴 힘드니까 누워 있지
아, 그러니까 왜 길바닥에 누워 있냐고
[규호] 나 어렸을 때 서귀포 살 때 자주 이랬어
[영] 차도에 누워 있었다고?
[규호] 어
바닷가 옆 도로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
[고영] 아, 미쳤네?
안 죽은 게 용하다 위험하게 왜 그랬어?
[규호] 그냥 이러고 있는 게 좋아서
시원하고, 편하고
눈을 뜨면 하늘이 바로 보이는 게 하늘을 덮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너 시 쓰니?
[영] 아, 빨리 일어나 아, 일어나!
[영의 놀란 숨소리]
[차분한 음악]
너도 여기 누워
[규호, 영의 하 내뱉는 숨소리]
[규호] 영아
나 지금 너무 좋아
팬티까지 다 젖었는데 좋긴 뭐가 좋아
그냥
너랑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거
[규호] 그게 좋아
[잦아드는 음악]
[무거운 음악]
[하비비 내레이션이 일본어로] 어느 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문자 그대로 어둠이요
[탁 소리]
- 앞이 캄캄해져서 - [달칵 문 닫히는 소리]
병원에 가 봤더니 원인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름 동안을 호텔에만 박혀 지냈습니다
[힘주는 숨소리]
[조르르 술 따르는 소리]
[탁 내려놓는 소리]
[하비비 내레이션]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오로지 기억나는 건
캄캄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호텔 천장이었습니다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그날부터 새로운 호텔에 가게 되면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셔터음]
여러 종류의 조명들
샹들리에 그리고 실링팬
그저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들
[잦아드는 음악]
[멀어지는 발걸음]
- [우당탕 소리] - [물소리]
[탁 수도꼭지 잠그는 소리]
[물 빨려 들어가는 소리]
"더 이상 사는 의미를 모르겠어"
"가족 모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돌아와"
"당신 딸이 불쌍하지도 않아?"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규탄해라
규탄해라
[하수구에 물 내려가는 소리]
[영이 영어로] 스탠더드 룸을 달라고요
[빗소리]
[사장] 디럭스 룸을 하셔야 해요
[영] 우린 딱 3시간만 있을 겁니다
[사장] 1,000바트예요
[규호] 300바트
1,000바트예요
[규호가 한국어로] 하, 진짜 여긴 대실도 없나
[영이 한숨 쉬며] 어쩌겠어
그냥 1,000바트 내고 쉬다 가자
[영어] 1,000바트요
[규호의 헛웃음]
[영의 헛웃음]
[규호가 한국어로] 아, 이딴 방을 1,000바트나 받는다고?
실화야?
[쟁그랑 울리는 소리]
- [영] 이것도 다 추억이야 - [드르륵 소리]
아, 지저분해, 내려놔
- [규호의 쩝 입소리] - [달그락 내려놓는 소리]
[돌아가는 실링팬 소리]
[영 내레이션] 규호는 콘돔을 끼면 자꾸만 죽어 버렸고
나는 카일리 때문에 콘돔 없이 섹스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규호와 나의 관계 빈도에 카일리는 큰 영향을 주었다
[규호, 영의 거친 숨소리]
우리는 카일리에게도 휴가를 주기로 했다
콘돔 없이 하는 규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섹스였다
방콕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섹스는 짜고 축축했다
- [쪽 소리] - [영, 규호의 거친 숨소리]
[영] 저게 떨어지면
우린 다진 고기처럼 될 거야 그치?
[규호] 같이 햄버거 패티가 되자
[영, 규호의 웃음]
- [영이 웃으며] 아, 뭐래 - [규호의 웃음]
[규호가 툭 치며] 아, 왜
- [영] 아, 진짜 왜 저래 - 아, 줘 봐, 줘 봐
[영] 야, 야, 야, 떨어져, 떨어져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일로 와
- [영의 웃음] - [규호] 아, 아, 아 [웃음]
- [웃으며] 하지, 하지 마 - [찰싹 때리는 소리]
[규호, 영의 웃음]
[규호] 아, 팬티 아직 덜 마른 거 같애
[영] 아, 나도 찝찝하다
[규호] 선물
- [영의 놀란 소리와 웃음] - [규호의 웃음]
[영] 도둑놈의 새끼 이딴 걸 왜 훔쳐 와?
[규호] 아, 그 후진 방이 1,000바트라니, 괘씸하잖아
게다가 우리와 카일리의 허니문 기념?
[영의 질색하는 소리]
[영] 너 갈수록 이상해지는 거 같애
- 너한테 옮은 거거든! - [영의 웃음] 그런가?
[규호] 아무튼 선물이니까 잘 챙겨 둬
[영] 너 들고 다니기 걸리적거려서 주는 거 맞지?
[규호가 익살스럽게] 아
- [규호의 놀란 탄성] - [활기찬 음악]
[개 짖는 소리]
"인디 마켓"
- [잦아드는 음악] -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
[사람들의 신난 탄성]
[점점 잔잔한 음악으로 변조]
[잦아드는 음악]
[다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
근데
우리 돌아가서 또 싸우면 어떡해?
[규호] 뭐라고?
우리 또 싸우면 어떡하냐고!
[규호] 화해하면 돼!
[영] 또 싸우면?
[규호] 화해해
[영] 또 싸우면?
[규호] 화해해
[영] 또 싸우면?
[규호] 화해하면 된다고!
[영이 웃으며] 또 싸우면?
[규호] 화해하자니까!
- [영] 또 싸우면? - [규호] 화해해!
- [영] 또 싸우면? - [규호] 화해할 거야!
- [영] 또 싸우면? - [규호] 화해하자고!
[잦아드는 클럽 음악]
[영 내레이션] 불꽃놀이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깜빡 잠든 사이에 모든 게 지나가 버린 듯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희미해져 버렸다
[잔잔한 음악]
[영] 하비비
피로한 당신의 얼굴을 볼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위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발걸음 소리]
하지만 곧 그런 감정은 사랑이 아닌
그저 동질감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달칵 문 닫히는 소리]
[영] 당신과의 방콕에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온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그 가치를 몰랐습니다
하비비
저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신도 부디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당신의 뉴클리어 웨폰
[잦아드는 음악]
[영의 기침]
[영] 와, 나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았지?
[은수] 평소에 좀 닦지 그랬어
야, 이거 어떡할까?
[영] 어쩌긴, 다 버려야지
[은수] 응
[부스럭 소리]
[은수의 코 훌쩍이는 소리]
[은수의 옅은 숨소리]
마지막으로 힘 좀 쓰자
너 거기 잡아 봐
아, 빨리
[영의 힘주는 소리]
[감성적인 음악]
잠시만
[칙칙]
[달칵 소리]
[달그락 내려놓는 소리]
[새소리]
- [힘주는 소리] - [은수] 나밖에 없지?
[애교스럽게] 은수밖에 없지
[은수] 말은 잘한다 나 뭐 사 줄 거야?
아이스크림?
- [은수] 아이, 씨 - [놀란 탄성]
- [은수의 웃음] - [신음]
뭐라고? 아, 야, 잠시만
[영의 힘주는 소리]
[은수의 웃음]
발 조심
[은수의 힘주는 소리]
오케이
[영의 힘주는 소리]
[힘겨운 숨소리]
[자동차 문 여는 소리]
[자동차 문 닫히는 소리]
[자동차 시동음]
[빵 자동차 경적]
[달칵 자동차 문 여는 소리]
[은수] 자
- 가 보자고 - [철컥 안전벨트 매는 소리]
[기어 조작음]
[덜컹거리는 소리]
[잦아드는 음악]
[은수의 힘겨운 소리] 다 버리고 와서 옮길 것도 없네
[영] 그러게
어머님 집에서는 이거 하나?
[영] 영 나랑 취향에 안 맞아서
가져올 게 하나도 없더라
뭐, 이제 하나씩 새로 사는 재미로 살어
[영] 그래, 그래야겠다
애들은 언제 온대?
[부스럭]
[은수] 둘 다 오고 있대
[덜컹거리는 소리]
[한숨]
어머님 진짜 대단하시다
[은수] 공로상을 몇 개나 받으신 거야?
우리 술이나 마실래?
[은수가 씁 숨을 들이켜며] 그럼 레드?
고기도 댓장 구워야 되나?
오, 좋은데? 옥상에서 구워 먹자
[은수] 옥상 문 열려 있어?
[씁 들이켜는 숨소리]
아마도?
[씁 들이켜는 숨소리] 그러고 보니까
오늘 밤에 불꽃놀이 한댔는데?
- 아, 진짜? - [은수] 응
[영, 은수가 소리를 길게] 굿!
[은수] 슝
- [은수] 자, 우리 잔 든 김에 -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
[지태] 공주 모임을 위하여!
- [영, 친구들] 프린세스! - [챙 잔 부딪는 소리]
- [호민의 탄성] - [영] 아, 딱이다
- [은수] 기가 막히는구먼 - [호민의 한숨]
[은수] 존나 예쁘다, 진짜
[호민] 아, 그러니까, 이런 건 애인이랑 봐야 되는 거 아니냐?
[지태] 마늘을 먹어도 쓸 데가 없고
[영, 은수의 웃음]
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 넷 다 솔로다
[은수의 코 훌쩍이는 소리]
[계속되는 지글지글 소리]
왜, 왜?
진짜네? [웃음]
- 진짜네 - [은수] 아이
[호민] 아, 푼수
[영] 아이, 괜찮아, 왜 그래
- [은수의 개운한 탄성] - [호민] 고기 먹어, 고기 먹어
- [호민] '아' - [은수] '아', 음, 맛있다
야, 근데 10년 동안 이런 적 처음이지 않냐?
나한텐 니들밖에 없는 거 알지?
- [지태] 응, 자기 - [은수] 너도 일로 와
[호민] 아! [웃음]
[지태] 야, 니들 핸드폰 꺼내 봐
남자랑 연락하고 있으면 손모가지다
- [푸 호민의 술 내뿜는 소리] - 어디 있어? 내놔 봐
- [호민의 캑캑대는 소리] - [지태] 저년 있어
- [은수] 어? 이것 봐라? - [지태] 너 있어
- [지태] 이번엔 누구야? - [호민] 아니야
- [지태] 이년 봐라 - [은수] 굉장히 수상한데?
- [호민] 아니야, 진짜 아니야 - [은수] 왜 그러는 거지?
아니야, 진짜 아니야 진짜, 진짜, 잠시만
- [펑 폭죽 소리] - [지태] 어? 야!
- 어? 야, 불꽃놀이다 - [은수의 탄성]
[친구들의 탄성]
[지태] 불꽃놀이다, 와!
- [옅은 웃음] - [지태, 호민의 탄성]
[지태] 이제 말해 누구야, 도대체? 어?
- [호민의 비명] 야 - [은수] 던져, 던져
[영] 던져!
[영 내레이션] 지난 연애들을 소설로 다시 쓰며
온전한 사랑으로 남겨 두었다
[영,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소리]
하지만 현실의 나의 연애는
[은수의 웃음]
모두 실패로 끝나 버렸다
- [호민의 다급한 소리] - [지태의 웃음]
실패한 사랑을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떠난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소설을 쓰며 유일하게 알게 된 건
여전히 내가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 뿐이었다
- [친구들의 탄성과 웃음] - [부드러운 음악]
- [영의 장난치는 소리] - [규호의 웃음]
[규호] 뭐 하는 거야, 쿠마키치 너 일로 와
[영의 웃음]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규호] 아, 자, 잠깐 [놀란 소리]
- [규호] 하지 말라고 - [영] 조심해, 조심해
- [규호가 웃으며] 아, 진짜 - [영의 웃음]
[행인1] 우와
[여자] 풍등에 소원을 적으면 붙여서 날려 드립니다
[규호가 작게] 중국분이신가 봐
[여자] 중국에서 새해 첫날 풍등에 소원을 적어 날리는
풍습이 있어요
[행인2의 웃음]
[부스럭거리는 소리]
[영] 해 보자
[쓱쓱 글자 적는 소리]
[규호, 영의 웃음]
가 볼까?
- [영] 천천히 - 어, 조심해
- [규호] 하나, 둘, 셋 - 둘, 셋
- [영의 환호] - [규호, 사람들의 탄성]
와, 저기 간다, 우리 거, 우리 거
[영, 규호의 탄성]
[규호가 웃으며] 아, 미쳤어, 미쳤어
[영, 사람들의 탄성]
너무 예쁘다
[영] 와, 진짜
- [사람들의 탄성] - [영의 벅찬 숨소리]
[사람들] 어?
[행인3] 야, 저거 떨어지는 거 같은데?
- [행인4] 잠깐만 - [행인3] 안 올라가잖아
- [규호] 저거 우리 풍등 아니야? - [영] 어?
[행인5] 어, 저기 내려간다 내려간다, 내려간다
[영] 아, 어떡해? 우리 거 활활 탄다
[행인6] 오, 떨어진다
[영, 사람들의 탄식]
[여자] 풍등에 구멍 나 버렸나 봐요
- [행인7] 아, 그래요? - [사람들의 탄식]
- [사람들 말소리] - [영] 어떡해
[규호] 괜찮아, 괜찮아
[영 내레이션] 나는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썼다
그런데 뭔가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지워 버렸는데
아마도 그러는 사이 구멍이 나 버린 것이겠지
[계속되는 음악]
[옅은 웃음] 가자
[옅은 웃음]
[영 내레이션] 결국 내가 풍등에 남긴 소원 두 글자는
[펑 불꽃놀이 소리]
- 사랑 - [친구들의 신난 탄성]
그게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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