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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스캔들 2회

S#1 명빈관 앞 거리(1부 83씬)

필사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 여경.

뒤에서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불을 밝히고 있는 명빈관을 발견하는 여경.

명빈관 안으로 들어간다.

S#2 명빈관 내 완의 방(1부 84씬)

잠들어 있는 완. 숙취로 목이 타는지 두통이 이는 머리를

짚고 일어나 앉아 자리끼를 따라 마시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여경이 튀어 들어온다.

완 (놀라서) 뭐야?

여경 (빈방인줄 알았다가 사람 소리에 헉! 놀란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고 놀라는 두 사람.

완 (알아보고) 너....! (하는 순간)

황급히 달려들어 한 손으로 완의 입을 틀어막는 여경.

그 기세에 밀려 뒤로 넘어가는 완.

그 바람에 함께 완의 위로 넘어지게 되는 여경.

완의 눈과 여경의 눈이 어둠 속에서 가까이 부딪힌다.

완 ... (입이 막힌 채로 누워서 여경을 보고)

여경 ... (입을 막은 채로 위에서 완을 본다)

완 (어느 순간 완력으로 입을 막고 있는 여경의 손을 떼어내고는)

너, 이제 보니 완전 내숭,

하는 순간 딸깍! 소리와 함께 완의 머리에 겨눠지는 총!!

여경 (살벌하게) 좋은 말로 할 때 입 닥치십시오.

완 !! (헉! 놀라서 눈만 돌려 총을 보는 표정에서)

S#3 명빈관 마당(밤)

덜컹! 소리도 요란하게 대문으로 들어서는 수현과 순사 일행.

수현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철저히 수색해!

예! 하며 수현의 지시에 따라 흩어지는 순사들.

몇몇은 후원 쪽으로 달려가고, 몇몇은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소리에 후다닥 달려 나오는 근덕.

근덕 (막아서며) 아이구, 왜 이러십니까? 아직 영업 중입니다.

주무시는 손님도 계신데 이러면 안 되시죠.

수현 손님들께는 정중히 양해를 구할 테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가고)

영랑 (자다가 놀라서 뛰어나오며) 근덕 오빠, 이게 무슨 일이야?

근덕 낸들 아냐? (하다가 순사들을 향해 기겁해서) 아앗! 그 방은 안 돼요.

그 분 얼굴 보면 순사님들 감당 못 한다니까아! (달려가고)

여기저기서 불의의 습격에 놀란 소리 들려오고.

자다 깬 기생들도 몇 명 나와서 웅성거리고...

S#4 명빈관 내 완의 방(밤)

여경, 완의 입을 막은 채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바깥의 기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순간 총을 겨눈 여경의 손목을 확! 틀어쥠과

동시에 몸을 뒤집어 완력으로 여경을 눕혀버리는 완!

좀 전과는 반대로 완이 위에, 여경이 아래에 깔린 상황!

여경 ! (빠져나가려 몸을 뒤틀며) 왜, 왜 이래요.

완 (O.L) (여경의 입을 막으며 표정 없이 낮은 목소리로) 옷 벗어.

여경 ! (입이 막힌 채로 눈만 크게 뜨며 놀라는데)

완 우리말 못 알아들어? (차갑게) 옷 벗으라구.

여경 (겁에 질린 표정되는데)

똑똑 노크소리.

긴장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는 여경.

S#5 명빈관 내 완의 방/복도(밤)

김순사 (완의 방문을 노크하며) 종로서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협조 부탁,

하는 순간 방문 드르륵 열리며, 셔츠 앞자락 풀어헤쳐진 채로 나오는 완.

불쾌한 표정으로 한 팔을 문에 기댄 채 방문을 가로막듯이 해서 선다.

완 뭐야?

김순사 늦은 밤에 죄송...(하다가 완을 알아보고 앗!) 아, 안녕하십니까?

완 (그제야 알아보고) 아니 이게 누구야, 김순사 아니야? 뭐야 이 밤중에?

김순사 아 예...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완 (귀찮듯) 그런데?

김순사 (버벅) 수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완 (턱짓으로 방쪽을 가리키며) 보다시피 우리 숙녀분이

곤히 잠들어 있어서 말야.

김순사 죄송하지만 협조를 좀... (하면서 들어가려는데)

완 (작게) 어렵게 꼬신 여잔데 이런 망신을 시켜야겠냐, 내가?

대충 하고 가라 쫌.

김순사 그냥 용의자가 아니라 살인자라니까요!

완, 다 듣지도 않고 문을 닫는다. 난감한 김순사.

복도를 지나던 수현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 거칠게 노크를 한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짜증난 완이 나온다.

완 아, 나 참! (하다가 수현을 발견하곤 표정이 굳는) 너...

수현 (깍듯이 인사하며) 조선 총독부 보안과에서 나왔습니다.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완 총독부? 보안과?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순간 멍해진다)

두 남자의 모습에서 타이틀.

<경성 스캔들> 2회

S#6 경성시내(낮)

<자막 : 10년 전 여름>

경기고보의 교복을 입은 두 소년이 달려오고 있다.

뭔가에 늦은 듯 사력을 다해 달리는 두 사람.

그들의 이름표에 선우완과 이수현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수현 (죽기 살기로 달리며) 야 선우 완. 기차 놓치면 이건 완전 니 탓이다.

완 (천하태평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다) 오늘 못가면 내일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임마.

수현 솔직히 말해 너, 하숙집 딸이랑 이상한 짓 하다 늦은 거 아냐?

완 (천하태평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다) 뽀뽀가 이상한 짓이냐?

방학 동안 못 볼 텐데, 이별은 제대루 하구 가야짐마!

수현 (완의 머리를 푹 누르며) 어이구.

완 어쭈, 이게 형님한테. (수현의 등을 찍어 내리며 아예 올라탄다)

달리는 와중에 낄낄대며 장난치느라 정신없는 두 사람.

저만치 전차가 도착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헉!해서 달려간다.

두 사람이 도착함과 동시에 출발하는 전차.

잠깐만요!!! 하며 이미 출발한 전차와 경주를 시작하는 두 사람.

가까스로 전차 꽁무니에 매달리고는 마치 야생마를 잡아 탄

카우보이들처럼 교모를 벗어 우우우--! 환호하며

경성 사람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그들의 객기와 청량함.

S#7 경성역 앞(낮)

함께 기차표를 확인하며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완과 수현.

여학생 (E)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수현, 완 ? (골목사이에서 들려온 소리에 멈추고 본다)

일본 남학생 서너명이 조선의 여학생을 둘러싸고 희롱하고 있다.

일본남학생1,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은 여학생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긴다.

여학생이 돌아보면 얼른 딴청 피우며 모른 채 한다.

꾸욱 참고 빠져나가려는데 막아서는 일본남학생들.

여학생 (겁에 질려) 뭐...뭐하는 짓이냐고 묻지 않습니까.

일본남학2 (비식 웃으며 일어로) 조선 여자들은 배가 고프면, 어떤 남자든 가리지 않고

치마를 걷어 올린다며?

여학생 뭐라구요!

그때 뒤에 있던 일본남학생1, 여학생의 치마를 휙! 발로 걷어 올린다.

여학생, 소리를 지르며 얼른 치마를 잡아 내리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일본남학1 (일본 남학생2에게 일어로) 뭐야 별거 없잖아. 난 또 치마 속에

대단한 걸 숨겨놓은 줄 알았지. 하하하. (웃으며 패거리들과 돌아서는데)

수현과 완이 그 앞을 막아선다.

일본남학1 (표정 험악해지며, 일어) 뭐야!

수현 (점잖게) 사과하십시오.

일본남학2 (일어) 농담하지마.

수현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일본남학1 (일어) 이게 무슨 냄새야? (코를 잡으며) 빌어먹을, 마늘냄새잖아. 하하하!

하며 수현 밀치고 나가려는데, 가슴팍을 걷어차 넘어뜨리는 완.

일본 남학생1, 확 열 받은 표정으로 완을 노려본다.

완 (비식 웃으며 놀리듯 일어로) 일본에는 예의라는 게 없나보지?

일본남학1 (확 열 받아서 일어로) 이런 건방진 조셍진 새끼들!!!

일본남학생1, 완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완, 잽싸게 피하며 먼저 선방을 날린다.

꺄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여학생.

열 받은 일본남학생들, 수현과 완을 향해 달려든다.

수현과 완, 일본 남학생들을 상대로 난투극을 벌인다.

일본 남학생2,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뛰어가 소리를 지른다.

일본남학2 (일어로) 싸움이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패고 있다!!!

일본 학생들과 조선 학생들의 뒤엉킨 난투극이 벌어진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순사 한 명이 호루라기를 불며 싸움을 말려

보지만, 이미 민족 감정 대립으로 번진 싸움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S#8 종로 경찰서(낮)

피투성이에 만신창이가 된 조선 학생들이 연행되어 와있다.

일본 학생들은 없고, 주동자격인 일본남학생 패거리들만이

잡혀와 수현과 완을 노려보며 앉아있다.

서장 (막 누군가와 통화를 끝내고는 일어로) 선우 완, 이수현이 누구야?

완,수현 (영문을 몰라 일어선다)

서장 (일어) 나가. 훈방이다.

순간 일본 남학생들 일어로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서장.

S#9 종로 경찰서 앞(낮)

경찰서에서 나오는 완과 수현, 선우관의 차를 발견하고 멈칫 선다.

반쯤 내린 차 창문으로 앞 만 바라보고 있는 선우관의 얼굴이 보인다.

면목이 없어 고개 숙이는 완과 수현.

그 와중에도 수현에게 씽긋 윙크해 보이는 완. 수현도 피식...

S#10 선우관의 옛집 앞(낮)

선우관의 재력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고풍스러운 한옥집이다.

흙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머슴 복 차림의 남루한 수현부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선우관의 차가 와서 멈춘다.

수현부, 달려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다.

수현부 (머리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선우관 됐네. 주먹자랑하자고 벌인 싸움도 아니고, 젊은 혈기에 울분을

못 참아 벌인 일이니, 자네도 너무 혼내지 말게. (들어가고)

수현부 (수현 머리를 꽁 쥐어박으며) 이 녀석아, 어르신이 쌈질이나 하고

다니라고 너한테 그 비싼 학비를 대주시는 줄 알어?

완 제가 먼저 시작한 거예요 아저씨, 수현인 아무 잘못 없어요.

수현 완이 너는 가만히 있어.

수현부 (당황해서) 아, 아니 이 녀석이, 어디 도련님 이름을 함부루 불러!

수현 (입 다물고)

완 (한숨 쉬고)

S#11 야외 풍경 좋은 곳(다른 날/석양)

하늘 아래...석양에 물든 논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 넓은 땅을 바라보며 수현이 앉아있다. 옆에는 책 한권이 놓여있다.

그 책을 누군가 집어 든다. 수현, 인기척에 돌아보면 완이 있다.

(*<조선 혁명 선언>이나 <조선 사회 경제사> 정도의)

완 (책을 넘겨보며) 이거 꽤 위험한 책인데?

수현 (뺏으려며) 주세요, 도련님.

완 (안 뺏기고 계속 보며) 너 우리 형한테 민족주의는 뭐고, 사회주의는

또 뭐냐고 물었다며.

수현 (멈칫한다)

완 (책 옆으로 툭 던져놓고 팔베개하고 누우며)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니,

그딴 게 뭔지 몰라도 그거 때문에 친구랑 멀어지는 게 싫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게 싫어.

수현 ..,. (보다가) 그게 바로 민족주의야.

완 ? (누운 채로 눈만 뜨고 본다)

수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열정을 품고 행동하는 거...

그게 민족주의고 사회주의라구.

완 (벌떡 일어나 앉으며 짐짓 눈빛 반짝) 그거 연애랑 꽤 비슷하네.

수현 (어이없어 본다)

완 그럼 사랑은 혁명의 가장 위대한 각성제, 연애는 가장 위대한

혁명 전술이 되는 건가?

수현 (머리를 팍 누르며)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완 (장난스럽게 눈썹 씰룩이며) 그런 의미로다가, 이 엉아가 위대한 혁명전서를

한 권 선물하지.

하며, 뒷주머니에 둘둘 말아 꽂아놓은 성인잡지를 짠! 꺼내드는데.

뒤에서 그 책을 휙 뺏어가더니 수현과 완의 머리를 쿵 부딪히게 하는 민.

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아직 형님도 못 본 책을 읽어?

수현,완 (돌아보고는 억울해서) 형! (항의하는데서)

S#12 몽타쥬

- 햇살이 좋은 여름. 완, 수현, 민, 망을 던져 낚시를 하고 있다.

바지를 걷어 부치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몰아가는 신난 세 사람.

- 한쪽에 솥을 걸어놓고 매운탕을 끓이고 있는 완과 수현.

매운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하면서도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이다.

- 주전에 막걸리를 받아다 놓고 앉아, 매운탕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세 사람. 몰래 먹는 술이라 맛있다.

- 숟가락을 들고 엉터리 춤과 함께 노래를 선보이고 있는 완.

바라보는 민과 수현, 웃겨죽는다. 결국 두 사람에게도 엉터리 춤을

가르쳐주는 완. 숟가락을 들고 함께 노래 부르며 춤추는 세 사람의 모습...

그렇게 그들의 우정이, 그들의 여름방학이 깊어가고....

S#13 선우관의 옛집 대청마루 (다른 날/ 낮)

수현과 수현부 선우관 앞에 불려와 앉아있다.

선우관 고보를 2년 만에 졸업하다니 대단하구나.

수현부 (조아리며) 이게 다 어르신 덕분입니다.

선우관 (미리 준비해뒀던 돈 봉투를 내놓는다)

수현 ? (의중을 몰라 본다)

선우관 양행비다. 이번에 민이 녀석이랑 같이 동경으루 가서, 배우구 싶은 만큼

욕심껏 배우고 오너라.

수현 (짠해진다) 어르신...

수현부 (머리 조아려 눈물 흘리며) 아이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S#14 사진관 (다른 날/낮)

완, 수현, 민, 거울을 보며 단장이 한창이다.

수현과 민은 단정하게 보이는데 주력하고, 완은 튀기 위해 주력한다.

완 (빗질하며) 자식. 뭐가 급하다고 일 년이나 먼저 졸업하냐.

수현 (교복 단추 단정히 잠그며)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해 임마.

완 (터프하게 교복 단추를 풀어보며) 부럽긴 쥐뿔이 부럽냐? 먼저 가서

기다려라. 이 엉아는 고보시절을 맘껏 누린 후에 곧 따라 갈테니까.

민 (애써 빗은 완의 머리 헝클어뜨리며) 으이구, 말이나 못하면.

사진기 앞에 선 세 사람. 사진사가 하나,둘,셋을 외친다.

펑! 플래쉬 불빛. 세 사람의 밝게 웃는 모습이 그대로

세피아 톤의 사진이 된다. 그 사진이 마치 페이드 아웃되듯

천천히...흐려지는 모습 위로,

(E) 전화벨 소리....

(처음엔 작게 들리다가 불안한 충격음처럼, 점점 커지는데서)

S#15 완의 하숙방 마루 정도의 (다른 날/낮)

멍한...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는 완.

완 (충격으로 입술이 떨리는) 아버지 방금....뭐라고 하셨어요....?

형이....(눈가 붉어지며) 죽어요....?

S#16 고향 길(낮)

완,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듯이 이를 악 물며 달려오고 있다.

S#17 선우관의 옛방(낮)

흰 보자기에 쌓인 민의 유골함을 사이에 두고

선우관과 민의 친구가 마주 앉아있다.

민친구 민이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계셨죠?

선우관 (유골함을 보는 채로 가만히....고개를 끄덕인다)

민친구 수현이도 함께 했었다는 거...알고 계셨습니까?

선우관 (천천히...끄덕인다)

S#18 선우관의 방 창가(낮)

창 밑에 서서 듣고 있는 완. 두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완은 충격을 받는다.

S#19 선우 관의 옛방(낮)

민친구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저희는, (하다가) 그러니까 민이랑 수현이랑 저는,

고보 시절에 독서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일본에서도 함께 활동했었는데...

선우관 (여전히 유골함을 보는 채로) 그 놈이냐?

민친구 (본다)

선우관 (눈가 붉어지며) 우리 민이를 밀고한 놈이, 이수현 그 놈이냔 말이다.

민친구 그렇....습니다.

S#20 선우관의 방 창가(낮)

창 밑에 서있는 완...애써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 주욱--흘러내린다.

눈물을 감추듯 교모를 푹 눌러쓰는 완, 배신감에 흐윽...흐윽...눈물이

새어나온다. 어느 순간 홱 뒤돌아 뛰어나가는 완.

S#21 고향 길(낮)

달리고 있는 완. 교모가 바람에 날아간다. 완은 줏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달리고 있다. 그 모습 위로,

허영화 (E) 사람들에겐 사고사로 알려요.

S#22 절 (다른 날/낮)

불단 위에 민의 위패가 놓여있고, 그 위로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영결식이 끝난 뒤의 쓸쓸한 풍경... 검은 상복을 입은 완이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가만히 형의 위패를 바라보고 있다.

밖에서는 허영화와 선우관이 영결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매우 슬픈 듯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허영화의 모습.

그런 허영화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완.

허영화 (E) 독립운동하다 객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신 한테두, 장래가 창창한

완이 한테두 이로울 게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사고사로 해두자구요.

S#23 고향 길(낮/ 21씬과 연결)

완, 슬픔과 배신감과 경멸감에서 벗어나려는 듯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F.C) 전차 꽁무니에 매달려 환호성을 지르던 완과 수현.

달리고 있는 완. 세상 끝까지 달릴 기세다. 달리고 있는 완, 어느새

성인으로 변한다.

수현 (성인 수현의 목소리)(E) 어이, 선우 완!

완, 우뚝 멈춘다. 뒤를 확 돌아보는 완.

그 곳엔 성인이 된 수현이 완을 바라보며 서있다.

수현 (E) 총독부 보안과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를 추적중입니다.

S#24 명빈관 내 완의 방(현재/밤)

완, 무섭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고 있다.

수현 (앞 대사에 연결)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완 뭘 어떻게 협조해 드릴까요 (짐짓 강조) 총독부 나으리?

수현 혹시 수상한 자가 숨어들거나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완 글쎄요. (여경 쪽을 턱짓하며) 지난밤에 워낙 공사가 다망했던 지라.

둘 다 곯아떨어진 지 꽤 되거든요. (몸을 수현 쪽으로 내밀어 수현의

귀에 대고 짐짓 작고 은밀한 소리로) 둘 다 너무 지쳐서요.

수현 안을 좀 수색해 봐도 되겠습니까?

완 (O.L) 그건 안 되겠는데요.

수현 (본다)

완 (피식 웃으며) 워낙 고귀한 가문의 영애라서 말입니다.

남자랑 기생집에 들락거리는 걸 들키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수현 (열려진 문틈으로 시선 준다)

열린 문 사이로 벗은 어깨가 살짝 드러나게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여자(여경)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불 안에서 비죽이 튀어나와있던

검정 치마 자락과 한쪽에 벗어놓은 흰 저고리.

완 (막아서듯 등 뒤로 문을 닫으며 여유 있는 미소) 신사라면 숙녀의

명예 정도는 지켜주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강조) 총독부 나으리?

수현 (담담히 보다가) 협조 감사드립니다. 그럼. (하며 돌아서는데)

완 (O.L) 신수가 훤해졌다?

수현 (멈추고 돌아본다)

완 (비식) 조선 총독부 보안과? 줄 한 번 제대루 섰군 그래. (살벌하게 보며)

대단한 변신이야. 아니, 대단한 변절인가?

김순사 ? (아는 사이야? 두 사람 둘레둘레 보고)

수현 (피식) 아버지 권세를 등에 업고 겁 없이 날뛰는 건 여전하구나.

완 (피식) 총독부를 등에 업은 너만 하겠어?

수현 그거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군. 오늘은 못 들은 걸로 해두지. (돌아서고)

완 (수현이 돌아서는 순간 표정 차갑게 내려앉는다)

S#25 명빈관 내 완의 방(밤)

벗어놓은 저고리를 집으려다 완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이불을 더욱 확 끌어당겨 눕는 여경.

여경이 벗어놓은 저고리 위로 털썩 앉는 완.

여경 (얼굴을 덮었던 이불 빼꼼이 내려서 완쪽을 보면)

완 (바닥을 살벌하게 노려보며) 개자식....

여경 (완의 엉덩이 밑에 깔린 저고리를 보고는) ...!

S#26 명빈관 문 앞(밤)

근덕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서는 수현 일행.

근덕 아이구, 수고하셨습니다. 바쁘신 분들만 아니면 잠시 쉬었다 가시면

좋을 텐데. 언제 한번 다시 꼭 찾아주십시오. 술이 아주 제대루 익었거든요.

자, 자 안녕히들 가십시오네, 네~

하다가, 일행들이 사라지자 돌아서며,

근덕 (짜증내며) 에이, 오늘 재수에 옴 붙었네. (들어서며)

영랑아! 밖에 소금 좀 갖다 뿌려라.

S#27 명빈관 근처 길 (밤)

순사들과 함께 걸어나오는 수현.

수현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주변을 철저히 수색해!

넵! 대답하고 수색을 위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순사들.

홀로 골목에 남는 수현, 돌아서는 순간 표정이 어두워진다.

S#28 명빈관 근처 길 + 송주의 인력거 안(밤)

달빛만이 환한 인적 없는 텅 빈 경성의 길.

인력거를 타고 명빈관으로 향하고 있는 송주,

인력거 장막 너머로 환히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수현과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르는 밤이다)

망치 (인력거 끌며) 오늘도 마작하다 가십니까?

송주 (달을 올려다보는 채로 감상 어린) 마작으로 시작해서 화투로 마무리했어요.

망치 많이 따셨어요?

송주 그냥 저냥요. (달을 올려다보며 감상 어린) 달이 참...이쁘네요.

장막을 걷고 인력거 자리에 몸을 묻고 눈을 감는 송주.

그때 송주가 탄 인력거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현.

송주 어떤 느낌에 감고 있던 눈을 가만히 뜬다.

인력거의 장막을 걷어내고 밖을 내다보는 송주.

수현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송주.

어느 순간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수현.

송주 ...! (본다)

어린 수현(17세)이 미소를 지으며 송주를 바라보며 서있다.

송주 (멍한 채로 보고)

수현 (송주를 향한 시선에)

어린 송주(15세)가 수줍은 듯 인력거의 장막을 살짝 거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현 ... (감정 숨기고 담담한 표정으로 보고)

송주 ... (충격과 설렘으로 멍하니 보고)

수현 ... (시선 거두고 뒤 돌아 가고)

송주 ...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S#29 명빈관 내 완의 방(밤)

완 (수현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

여경 (완이 깔고 앉은 저고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빠지질 않는다) 저기...

완 (못 들었다. 눈 감으며 괴롭다)

여경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저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줘서 잡아당겨 본다. 안 빠진다. 안타깝다) 저기....

완 (또 못 들었다. 한숨 토해내며 허공을 향해 한 번 비식 웃는다)

여경 ... (있는 힘껏 저고리를 확 잡아당긴다. 저고리가 부욱 찢어진다. 기겁한다) !

완 ? (그제서야 기척에 돌아본다)

여경 ! (저고리를 얼른 이불 안으로 감춘다)

완 (성가신 표정으로 보다가 일어나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여경 ! (이불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뭐...뭐하시는 겁니까 지금!

완 (돌아누운 채로 눈 감으며) 볼일 끝났으면 나가. 잠 좀 자게.

여경 다...당장 이불 속에서 나가주십시오. 아무리 삼강오륜이 바닥에

떨어진 시대라지만, 어디까지나 남녀가 유별하고,

완 (O.L)(담담하게) 유별한 남자 방에 튀어 들어온 건 너야.

그러니까 나가야 될 사람은 너지 내가 아니라구.

여경 ... (백번 옳은 말이다)

이불 안에 감춰뒀던 저고리를 꺼내 보는 여경,

소매가 덜렁거리는 저고리를 보며 심난해진다.

어쩔 수 없이 완의 쪽을 향해 돌아누우며,

여경 저기.... (하는 순간)

완이 홱 돌아눕는다.

여경의 얼굴 앞에 완의 얼굴이 바싹 다가와 있다.

여경 (흠칫! 얼어붙는다)

완 (기척에 눈을 뜨고는 코앞에 와 있는 여경의 얼굴을 보며) 아직 안 갔냐 너.

여경 ....

완 그만큼 도와줬으면 됐잖아. 내가 옷까지 입혀줘야 돼?

여경 (이불 속에서 슬쩍 권총이 나온다)

완 ! (턱 밑에 와있는 총을 보며 놀란다) 뭐, 뭐야.

여경 (말투는 어디까지나 정중하다) 옷 좀 벗으세요.

완 (헉!)

S#30 명빈관 마당 (밤)

수현 생각에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송주인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영랑, 소홍, 난향, 월선,

송주를 발견하고 쪼로로 달려온다.

영랑 언니 왜 이제 와요. 난리 났었단 말이에요.

송주 (얼른 표정 관리하며 본래 모습으로) 난리? 무슨 난리?

난향 순사들이 와서 살인자를 찾는 다구 손님들 방을 죄 열어보구,

송주 (흠칫, 멈추며) 살인자?

월선 네에, 왜 그 사람 있잖아요, 우리 집에도 가끔 와서 애들 못살게 굴던,

소홍 (얼른 끼어들며) 민환식이요. 악덕 고리대금업자. 그 사람이 죽었대요!

송주 (피식 웃으며) 귀신은 뭐하나 했더니, 얻어먹은 젯밥 값은 하구 있었네.

(방 쪽으로 움직이며) 그래서 손님들은?

영랑 고관대작들 방은 근덕 오라버니가 알아서 처리했는데요,

완이 오라버니가 좀 수상하게 굴어서 조마조마했어요.

송주 완이가 왜?

영랑 자기 방엔 생전 여자를 안들이던 사람이 오늘은 여자를 들였더라구요.

고귀한 가문의 영애라는데, (하는 순간)

여경 (E) 옷 벗으세요!

완 (E) 싫어! 안 벗어! 절대 못 벗어!

동기들 !! (완의 방 쪽을 보며 헉!)

여경 (E) 좋은 말로 할 때 벗으세요!

완 (E) 이게 미쳤나 진짜. 안 벗는다잖아!!!

동기들 (키득키득)

송주 (흥미로운 미소 생기는)

S#31 명빈관 내 완의 방(밤)

뜯어진 저고리나마 입고 앉아 총을 들고 사정하고 있는 여경이고,

와이셔츠 자락을 움켜쥐고 짜증내고 있는 완.

완 그만큼 도와줬으면 됐지 내가 옷까지 벗어줘야 돼?

여경 (총은 왜 들고 있는지 완이 보다 더 저자세다) 아직 혼례도 안 올린 아녀자가

이 모양으로 나갈 순 없잖아요. 이왕 도와주신 거 남자답게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완 (짜증스럽게 보다가) 에이 진짜! (와이셔츠 벗어서 휙 던져준다)

여경 ! (완의 벗은 몸에서 얼른 시선 피하고 더듬더듬 와이셔츠 집어 들며)

뒤로 돌아주십시오.

완 요구사항도 드럽게 많네. (돌아앉으며) 안 봐! 보고 싶지도 않아!

여경 (총 내려놓고 옷 갈아입으며) 오늘은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양심이라곤 한 푼어치도 없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무뇌아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당신도 조선인이었군요.

완 (기막혀서) 너 혹시 지금 그걸 감사의 말이라고 하는 거냐?

여경 (상관 않고 혼자 진지한) 저는 오늘 조선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조선 청년의 패기를

보게 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 당신은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완 (혼잣말) 얼씨구.

여경 (다 입고 돌아앉으며)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통성명이나 하지요.

완 (귀찮아서) 아 거 참, (하다가 진지한 여경을 보고 마지못해)

나는 선우완이다. 너는?

여경 (미소로) 저는, (하다가 퍼뜩) 설마.. 당신이 월간 지라시의 선우완 기자?

완 제대로 알고 있구만 뭘. 모르는 척 내숭은.

여경 (불끈! 다시 총을 꺼내 완의 이마에 겨눈다)

완 (이제 짜증난다) 아 왜 또오!

여경 독립투사의 이름을 팔아 저질책자를 운반하더니, 이젠 남의 불행을 기사로

써서 제 돈벌이에 이용해? 그 뻔뻔함에 치가 떨려 당장에라도 머리에

총구멍을 내고 싶지만, (하는 순간)

똑똑 노크소리!

헉! 놀라서 문 쪽을 바라보는 완과 여경.

송주 (문을 활짝 열더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와우, 너무 멋진 장면이네요!

완,여경 !!! (헉! 총을 들켰다)

S#32 명빈관 외경(밤)

늦은 밤. 달이 떠있다.

어디선가 동네개가 아오오오오~하며 울어 댄다.

S#33 송주의 방(밤)

송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손틀을 내놓고 앉아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남자의 바지를 줄이고 있다.

완의 와이셔츠를 입고 앉아 그런 송주를 보고 있는 여경.

송주 (신났다) 도피를 하려면 변장을 해야죠 변장을.

여경 (부담스럽다) 저기...

송주 (눈빛 반짝 반짝) 와우, 간만에 흥분 되네요. 쫀 크로포드가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아요? 무전취식했던 손님이 돈 대신 놔두고

간 옷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네요.

여경 (송주 캐릭터가 절대 적응 안 된다) 저기...저는 이 저고리 소매만

꿰매주시면 되는데....

송주 어머, 무슨 소리예요. 아가씨가 입고 있는 옷을 한번 봐요.

그 옷 입고 나갔다간 제대로 의심받지 않겠어요?

여경 (문득 자신의 옷차림을 보면 흙투성이에 찢어져 엉망이 된)...

송주 (신나서) 근데 정말 아가씨가 죽였어요?

여경 (얼른) 아닙니다. 그것만은 믿어주세요.

송주 (흐음 실망) 아니구나아. 그럼...그 총은 어디서 난 거예요?

여경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말아 주세요.

그 총은, 절대 무고한 자를 해치거나 악한 일에 쓰인 물건이

아닙니다. 그건, 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송주 다 됐다! (완성된 옷을 펼쳐들고) 와우, 펄픽(퍼펙트)! 음, 와이셔츠는...

(여경이 입고 있는 완의 와이셔츠를 보며) 오케이! 그걸루 되겠네요.

여경 (불안하다) 저기요 오늘 일,

송주 (O.L) 내가 기생이라는 건 알고 있죠?

여경 ? (뜬금없다) 네....

송주 우린 애국지사에서부터 총독부의 고위관리까지, 여러 손님들을 모셔요.

입이 근질거릴 때 마다 함부로 놀렸다면, 나는 벌써 총 맞아 죽었거나

소리 소문 없이 암매장 당했을 걸요?

여경 (보고)

송주 (웃으며) 걱정하지 말아요. 말 안 해요. 나도 아가씨처럼 조선 사람이니까.

여경 (미소 생긴다)

S#34 명빈관 마당(밤)

여경에게 와이셔츠를 뺏긴 완,

빨랫줄에 걸려있는 근덕의 와이셔츠를 하나 골라 입는다.

완 아이 씨... 촌발 날리는 거 봐라 진짜.

이때 송주 방에서 소년 차림으로 나오는 여경.

(칠부 멜빵바지에, 모자, 구두/모던 보이의 소년 버전으로)

완 (기막혀 입 벌어지며) 아주 신이 나셨구만 신이.

여경 (어색한 차림이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송주 이 아가씨 좀 집까지 에스코트 해드려.

완 (허, 기가 막혀서) 내가 왜?

송주 당신만한 방패막이가 어딨어. 친일파 아버지 덕 좀 보자고.

완 아 글쎄, 언제 내 머리에 총구멍 낼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내가 왜!

송주 염려 마. 안 죽이셨대. 살인자는 따로 있어.

완 어쨌든 난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가,

송주 (O.L) (웃으며 여경에게) 총 좀 빌려줘 봐요. 확 쏴버리게.

완 이봐, 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여경 (송주 말리며) 됐어요. 나 혼자 가겠어요.

완 거봐. 혼자 가겠다잖아. 가다가 잡히건 말건 내가 무슨 상관,

송주 (O.L) (웃으며 여경에게) 총 좀 빌려줘 봐요.

완 (에이 씨...)

S#35 경성 일각(밤)

인적이 끊긴 늦은 밤의 경성 거리.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여경과 완.

완 (귀찮은 표정으로 퉁) 집이 어디야?

여경 됐으니까 그만 가세요.

완 정말 니가 안 죽였어?

여경 전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완 그거야 말로 거짓말이네. 경찰서에서 내 가방을 니 가방이라고 우겼었잖아.

여경 그건, (잠시 말해도 될까 망설이다) 조국을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완 (비죽이듯 피식) 독립투사냐 너?

여경 ...

완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대답을 안 하시겠다? 그것도 일종의 대답인데?

여경 아직은 아니지만, 그 분들한테 힘이 된다면...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완 햇병아리 독립투사군 그러니까.

여경 (걸음 우뚝 멈춘다)

완 왜. 또 총 꺼내게?

여경 여기서 부터 혼자 가도 되니까, 이제 그만 가세요.

완 집에 권총 말고 뭐 또 이상한 거 숨겨놨구만.

여경 (흠칫!)

완 거짓말 진짜 못하네. 그래서 독립투사 될 수 있겠어?

여경 (꾸벅 인사하며) 오늘 고마웠습니다. (하며 가는)

완 ... (보다가 뒤돌아 걸으며 혼잣말처럼 비식) 개나 소나 다 독립투사군....

그러다 어쩐지 쓸쓸한 표정이 되는 완.

S#36 해화당 앞 (밤)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여경.

S#37 해화당(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경.

문을 닫아걸고는 한 번 더 밖의 동정을 확인한 뒤 돌아보며,

여경 인호야... 선생님이 너무 늦었지? 미안,(해)

하는데 인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여경, 탁자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한다.

여경 .... ! (서둘러 편지를 읽어보는 모습 위로)

인호 (E) 선생님, 당분간 지방에 있는 먼 친척집에 가 있을까 해요.

저 때문에 선생님까지 피해를 입게 할 순 없어요.

S#38 경성 일각(밤)

주변을 살피며 긴장된 표정으로 도주하고 있는 인호.

인호 (E) 제 걱정은 마세요. 당분간 숨어 지내다가 동생을 찾으러 북간도로

갈 생각이에요.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오면, 꼭 돌아올게요.

도주하는 인호의 앞을 막아서는 누군가의 그림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호의 얼굴에서.

S#39 여경의 집 앞 마당(밤)

긴장된 표정으로 마당의 흙을 삽으로 파고 있는 여경.

인호 (E)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어디서든 배움은 포기하지 않을게요.

구덩이 속에 천으로 싼 총을 묻고, 흙을 덮은 다음 풀이나 짚 따위로

위장을 하는 여경.

S#40 명빈관 마당(밤)

마루에 걸터앉아 달을 바라보고 있는 완.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면 송주가 들어선다.

완 야밤에 어디 갔다 오냐?

송주 잠이 안 와서 산책 좀 하고 왔어. (옆에 털썩 앉으며) 그대는?

완 그 소동극을 겪었는데 잠이 오겠냐, 너 같으면.

송주 (살피며) 표정 한 번 복잡 하네.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뜻?

완 너 기생 관두구 작두 타라.

송주 왜. 또 여자한테 맞았어?

완 아, 쫌!

송주 나도 오늘 머릿속이 터진 만두 속인데. 오픈 마인드나 해볼까 우리?

완 내 평생 사는 동안....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놈을 만났거든 오늘.

송주 난 오늘.... 내 평생 사는 동안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완 차송주한테 그런 사람이 다 있었어?

송주 첫사랑... 그대는?

완 친구...(하다가)...였었지.

송주 술이나 한 잔 할까?

완 그럴까. 너와 나의 그놈을 추억하고 욕해주면서?

송주 청구서는 지라시 사무실로 보내면 되지?

완 (허, 웃어버리고)

송주 (웃고는 달을 바라보는)

S#41 수현의 하숙방(밤)

창가에 서서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있는 수현.

책상 위에 놓여있는 낡은 사진 한 장...

16씬에서 찍은 어린 완과 수현과 민의 사진.

달을 바라보는 수현의 쓸쓸한 표정에서...F.O

S#42 명빈관 앞 (아침)

차가 와서 한 대 와서 서고, 안에서 내리는 허영화.

한심한 표정으로 명빈관을 한 번 바라본다.

S#43 명빈관 내 완의 방(아침)

잠들어 있는 완.

영랑 (E) (조심스러운 말투로) 오라버니. 완이 오라버니.

완 (괴로운 표정으로 돌아눕는)

영랑 (E) 오라버니, 잠깐 나와 보세요.

완 (에잇 진짜, 이불 확 젖히고 일어나는)

S#44 명빈관 마당(아침)

완 (문 벌컥 열고나오며) 오라버니 잠 좀 자자. 잠 좀, (하다가 멈칫한다)

허영화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영랑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다가 슬쩍 빠진다)

완 (성가신 표정으로 고개 돌린다)

S#45 릿샤 앞 거리(낮)

앞서 걷고 있는 허영화이고, 마지못해 따르고 있는 완.

허영화 (걸으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꺼야?

내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와, 잠이.

완 (놀랍다는 듯) 어우, 지금 제 걱정 해주시는 거예요? 감사해라.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요.

허영화 (심정 상해서 딱 멈추고 보며) 그렇게 빈정대면 재밌어?

완 (피식) 재미루 하나요 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쌍해서

뒤 늦은 후회 좀 하는 거죠.

허영화 (노려보며) 이해가 안가 증말. 집안, 재력, 인물 다 받쳐주는데 뭐가

아쉬워 삼류잡지 기자에, 기생집이야? 여자가 필요하면 좀 그럴 듯한

데서 제대루 된 물건을 물든가.

완 안타까워만 말구 한 수 가르쳐 주세요 그럼.

나도 어머니처럼 월척 한 번 낚아보게.

허영화 무슨 뜻이야, 그거?

완 우리 아버지 정도면 대어급이잖아요. 설마 성에 안 차세요?

허영화 너랑은 참 안 맞는다 진짜. (가고)

완 (싫증나서 보며) 어디 가는 거냐구요 글쎄.

S#46 릿샤 안(낮)

안으로 들어서는 허영화와 성가신 표정으로 뒤따르는데 완인데,

귀빈용 쇼파에 고고한 자세로 앉아 잡지를 넘겨보고 있는 사치코.

허영화 (얼른 완의 팔짱을 끼며) 어머, 이게 누구세요. 보안과장님 사모님 아니세요?

완 (그제서야 간파하고 피식 웃는다)

사치코 (고고하게 시선 들고) 아, 에이카상....(완을 보며) 옆에 신사분은 누구...

허영화 제 아들이에요 사모님. (완의 어깨를 털어주며) 양복 하나 해 입히려구요.

사치코 (흑심 가득한 눈으로 보며) 꽤 미남이군요. 뭘 하시는 분일까....?

허영화 (완이 대답하기 전에 얼른) 고등 문관 시험 준비 중이에요.

총독부에 들어가 일본제국의 선진 정치를 배워보고 싶다네요.

완 (앙큼 떠는 계모를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고)

사치코 (거만하게 박수 치며) 브라보! 아주 훌륭한 황국신민의 자세군요.

아드님 같은 분이 많아져야 내선일체가 앞 당겨질텐데....

디자이너 (화려한 드레스 여러 벌 들고 나오며) 준비 됐습니다 사모님. 입어보시죠.

사치코 (거울 앞에서 옷을 갖다대보다가) 가만, 이건 그때 그 옷이 아닌데?

디자이너 비슷한 거예요 사모님.

사치코 누가 비슷한 거 달랬어? (싸가지 없이 바닥에 휙 던지며) 전에 그거 가져와.

디자이너 (비위 맞추려 애쓰며) 아우, 그건 벌써 나갔죠 사모님. 그런 고급 하꾸라이는

진열할 새도 없이 금방 나가요.

사치코 누가 채갔어.

디자이너 경무국장님 사모님이요.

사치코 (허! 기막혀서) 그 뚱땡이한테 그 옷이 가당키나 하겠어?

당장 도루 가져와. 임자 따루 있다구.

디나이너 (식은 땀 삐질 삐질) 아우, 사모님, 그러지 마시고,

완 (젠틀하게) 실례가 안 된다면, 남자의 입장에서 제가 조언을 좀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허영화 (그런 완을 불안하게 본다)

사치코 (흥미로운 미소로) 남자의 입장이라....그거 좋군요.

완 (사치코 옆에 나란히 서서 거울 속 사치코를 보며) 화려하기만 한 드레스는

오히려 마담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 씸플하고 엘레강트한 스타일이 마담의

미모를 한층 돋보이게 할 겁니다.

사치코 (찬사에 기분 좋은) 정확한 지적이군요.

완 (여러 벌의 의상을 하나, 하나 사치코의 몸에 대보며) 사막의 오아시스,

모래 속의 장미, 진흙 속의 진주... 베일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한 유혹이죠. (마지막 의상을 대보며) 굿 초이스! 그 어떤 파격도

모두 소화해내는 마담께는 찬사가 절로 나오는군요.

사치코 (이 청년이 매우 흡족하다) 청년의 눈썰미도 보통이 아니군요.

허영화 (저게 보통이 아니군...피식 웃는)

S#47 릿샤 앞(낮)

가당치도 않게 안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안에서 나오는 사치코이고,

뒤 따르는 완과 허영화인데. 느닷없이 완을 향해 한 손을 흐느적 내미는

사치코. 무슨 의민가 싶어 보는 허영화. 간파하고 그 손을 가볍게 잡고

대기하고 있는 차까지 사치코를 에스코트해주는 완. 혀를 내두르며

웃어버리는 허영화.

사치코 (기사가 열어주는 차문 앞에 서서) 오늘 고마웠어요. 미스터 선우....

완 완입니다. 완전할 완자를 씁니다.

사치코 기억해두겠어요. 총독부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요.

완 (모자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걸로 매력적인 인사를)

허영화 (출발하는 사치코를 향해 인사 올리고는 완에게) 보통이 아닌데?

완 만족스러우세요 이제?

허영화 (흡족한 미소로) 수고 했어. 가자. 내가 스테이크 사줄게.

완 그거 먹고 뭘 또 얼마나 뱉어내라구요. 꿈 깨세요.

저, 총독부 직원은 죽어도 안 해요. (가고)

허영화 (짜증나서 본다)

S#48 조선 총독부 외경(낮)

수현 (E) 일주일 전 종로서로 보내진 살인 예고장과,

현장에 남겨진 경고장의 필적을 조사해본 결과,

S#49 조선 총독부 회의실 정도의(낮)

수현, 마모루와 코우지 앞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살인 예고장과 현장에 남긴 칠필살’ 무명천이 놓여있다.

수현 두 개의 필적은 동일한 것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계획살인이 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마모루 (경청하고 있다)

수현 (탄흔 자국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을 들어 보이며) 이것이 사체에 남은

탄흔입니다. 기존에 독립운동 조직에서 사용하던 사제 총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코우지 (수현을 경계하듯이 듣고 있다)

수현 단 한 발로 심장을 관통한 점, 일말의 단서도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

그 외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더라도 개인의 범행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비밀 결사 조직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모루 신생 조직이라...문제가 커지겠군. 그래서 앞으로의 수사 방향은?

수현 현재 전문가에게 감식을 의뢰해 놓았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총기반입 루트를

추적 수사할 예정입니다. 유사 조직의 움직임도 파악 중입니다.

코우지 하지만 청부살인의 경우를 고려할 때, 원한 살인도 배제할 수만은 없습니다.

마모루 청부 살인?

코우지 살해된 민환식은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평소 주변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분명 살의를 품은 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모루 틀린 얘기는 아니구만. 수사방향은?

코우지 일단 원한관계를 위주로 주변인물을 탐문수사하고, 범인의 도주경로와

목격자를 확보하라고 지시해놓은 상황입니다.

하는데 똑똑 노크소리.

마모루 들어와.

보안과 직원 한명이 들어온다. 절도있게 경례를 하고는 마모루에게

다가오는 직원, 마모루 귀에 대고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언한다.

마모루 (표정 급격하게 변하며 경악) 뭐야? 사치코가!! (하다가 얼른 수현과

코우지를 의식해 다시 엄한 자세로)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지.

각자 알아서 수사 하라구. (하고는 허둥지둥 자리를 뜬다)

S#50 총독부 보안과장실(낮)

들어서는 마모루, 예의 그 드레스를 입고 보안과장 자리에 앉아있는

사치코를 보고 기겁한다.

마모루 사...사치코! 여긴 웬일이야? 그 옷은 또,

사치코 (*이하 사치코는 마모루의 모든 대사를 잘라먹는다) 맘에 드는 청년이

있어요. 보안과에 자리 하나 비워놔요. (마모루의 책상을 톡톡 치며)

이 자리가 좋겠네.

마모루 그건 내 자리야! 그리구 총독부 관리 임용은 시험을 거쳐야,

사치코 무능한 남자. 아버지께 전화를 걸겠어요. 총독 각하께 말씀드려

달래서(하며 수화기를 집는데)

마모루 (얼른 수화기 잡아 내리며) 생각해볼게. 생각해볼 테니까 일단 집에,

사치코 환영파티를 열어줘요. 심심해. 경성에 온 지 한 달이 되도록

쌈빡한 일이 하나도 없어.

마모루 이봐, 살인사건 때문에 비상이라구. 파티나 하고 있을 때가,

사치코 (순간 눈빛 반짝) 살인사건? (의자 쾅 밀치고 일어나며) 그거 재밌겠네요.

내가 해결해 보겠어요.

마모루 (미치겠다) 당신이 뭘 어떻게 해결,

사치코 소심한 남자. 탐정소설을 읽어보면 다 나와요. 간단해요. 언제나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는 법. 따라서 범인은, (방 안을 빙 둘러보다가 김전일 처럼

손가락 착 내밀며) 총독부 안에 있어!

직원 (흠칫 놀라 들고 오던 찻잔 떨어뜨리거나 휘청 하고)

마모루 (울고 싶다) 사치코....

S#51 총독부 회의실 정도의 (낮)

빈 공간에 홀로 앉아 여경의 주민 동향서를 읽고 있는 수현.

(F.C) 명빈관 완의 방에 누워있던 여자의 뒷모습.

이불 안에서 비죽이 튀어나와있던 검정 치마 자락과

한쪽에 벗어놓았던 흰 저고리.

뭔가 생각해보는 표정이 되는 수현.

S#52 여경의 방(낮)

어제의 긴장과 소동극으로 지쳐버린 여경, 푹 잠들어있다.

끄응... 피곤한 몸을 뒤척이는 여경인데,

완 (E) 벗어.

여경 (움찔)

완 (E) 옷 벗으라고.

여경 (눈 번쩍)

여경의 코앞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완의 모습!

한 팔을 세워 머리를 괸 채 여경을 느끼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완 (느물느물하게) 잘 잤어? 나의 귀여운 뻐꾸기?

여경 (헉! 해서 이불을 가슴에 모아 쥐며) 안 돼. (눈을 꾹 감고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최학희 (E) 여경아...?

여경 ? (반대편을 돌아보면)

최학희 (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프니?

여경 ! (꿈이다! 얼른 일어나 앉으며) 아...아니에요. (헝크러진 머리

쓰다듬어 내리며 민망한) 안 좋은 꿈을 꿔서...

최학희 (웃으며) 원 애두. 다 큰 처녀가 무슨 꿈을 그렇게 험하게 꿔.

여경 (민망해서 웃으며) 그러게요...

최학희 이제 그만 일어나. 배고프겠다. (일어나 나가고)

여경 네...(하고는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부들부들 머리 흔드는)

S#53 여경의 집 마당(낮)

안채에서 나오는 여경. 햇살이 좋다. 팔을 쫘악 펴서 심호흡을 하는데,

어제 총을 묻었던 자리에 장독대가 생긴 것을 보고 멈칫한다.

빨래 줄에는 완의 와이셔츠와 송주에게 빌린 옷들이 깨끗이 세탁된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최학희 (다가와서) 새 흙이 생길 때 까지는 당분간 저기를 장독대로 쓰자.

갑자기 붉은 생흙이 드러나 있으면 이상하잖니.

여경 알고...계셨어요?

최학희 너 잠들어 있는 동안, 그 녀석 편지 읽었다. 똑똑한 녀석이니 알아서

잘 처신할 거야. 그러니 너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여경 죄송해요...걱정하실까봐 말씀 못 드렸어요.

최학희 (웃고는 빨래 걷기 시작하며) 이건 돌려주구 와야지. 꽤 비싼 옷 같아

보이는데. (어느새 와 거들고 있는 딸을 보며) 누군지 모르지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두 꼭 하구.

여경 네. 근데요 어머니, (짐짓 울상으로 장독 쪽을 보며) 올해 장맛은 별루겠어요.

최학희 (웃고)

여경, 웃으며 마지막 빨래 걷는데, 완의 와이셔츠다.

전해줄 일이 심난해지는 여경.

S#54 지라시 사무실 앞(낮)

앞 감정 이어 씁쓸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향해 걸어오고 있던 완,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사무실 앞에서 완의 시보레에 지라시 스티커를

이리저리 대보고 있는 탁구, 왕골, 세기를 보곤 기겁한 표정으로 달려든다.

완 무슨 짓이야!

왕골 (스티커 붙이던 자세 그대로 돌아보며) 어, 왔냐?

완 (스티커 확 빼앗아가며) 누구 맘대로 이런 걸 붙여? 이게 내 차지 회사 차야?

탁구 금방 회사차 될 텐데 뭘 흥분하구 그래.

완 누구 마음대로.

세기 글쎄....? (생각하는 척 얄밉게) 조마자씨 마음에 따라 이 차의 운명이

결정될 테니까...굳이 따지자면, 조마자씨 마음대로?

완 조마자? 조마자가 누군데!

왕골 허! 이 자식 봐라 이거, 정말 필름 끊겼었나보네? 너 어제 일 생각 안나?

완 아, 어제 일 뭐! (하다가 퍼뜩! 떠오르는)

S#55 경성 사교클럽(1부 75씬의 변형)

몹시 거만한 포즈로 다리 꼬고 앉은 완.

완 10분! 왼 경성의 여자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단 십분!

해화당 서점의 조마자? (몹시 재수 없게 피식 웃으며) 오케이 콜!

차 한 대 걸지. (검지 손가락 하나 재수 없게 세워 보이며) 만약에 실패하면

조선의 해방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독립투사가 (스타카토로) 되.줄.께!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웃음소리 메아리쳐 울려 퍼지는)

S#56 지라시 건물 앞(낮)

완 ! (두 눈 질끈 감으며 괴로운데)

어느새 차에 기대서서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

세기 난 뭐 그래 형, 마음은 아프지만 친구가 독립투사가 되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잖아. 저 자식이 또 한다면 하거든.

탁구 내 마음도 착잡하다. 나도 결국은 식민지 조선의 아들 아니냐.

왕골 어떡하겠어. 보내주자. 대신 저 차를 볼 때마다 우리, 완이를 생각하자.

완 (승부근성 발동) 이 사람들이 진짜! 실패한다고 누가 그래!

걔 이름이 뭐라고? 해화당 서점의 조마자?

세기 (놀랍다는 듯이) 설마...하게? 그냥 조국을 위해 싸우지?

탁구 완아, 그냥 편하게 살다가 가. 인생 뭐 있냐?

왕골 그래 완아. 차 없다고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겠냐?

완 시꺼! 선우완 연애사전에 불가능이란 없어. (하며 비장하게 걸어가고)

탁구 (뒤에 대고 작게) 있어 완아...사전 잘 찾아봐....

세사람 (키득키득 웃으며 작게) 걸려 들었으!

S#57 해화당 앞(낮)

완, 문밖에서 서점 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한복감에 수를 놓고 있는 최학희의 모습이 보인다.

완 (어떻게든 웃어보려 애쓰며) 설마....아니겠지...어머니 같은 분인데...

불길함이 충만한 마음을 안고 해화당으로 들어가는 하는 완.

S#58 해화당 안(낮)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완.

최학희 (인기척에 바느질감 놓고 일어나며) 어서 오세요.

완 저...혹시 해화당 서점의 안주인....

최학희 (웃으며) 네. 제가 해화당 서점의 안주인인데요....

완 ! (얼굴 돌리고 눈 질끈 감으며 작게) 이눔의 자식들을 그냥....

S#59 명빈관 마당(낮)

한 손에 돌려줄 옷 봉투를 들고 명빈관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여경.

수수하지만 고운 빛깔이 들어간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영랑 (난향과 외출 길에서 돌아오다 발견하고는) 어머 또 오셨네?

여경 ! (민망해서 얼른 옷 봉투 뒤로 하며) 자...잘 지냈어요?

난향 (여경 옷차림 보고) 어? 오늘은 조마자가 아니네? (하다가 영랑에게 꼬집히고)

아 왜에? (하고는 눈치 없이) 이제 흰 저고리 검정치마 안 입어요?

여경 실은 그 옷을 찾으려고,(했다가 앗차! 입 다물고) 차,차송주씨 안에 계신가요?

S#60 송주의 방문 앞(낮)

방문에 붙어서 안에서 들리는 대화를 들으려 애쓰고 있는 영랑.

S#61 송주의 방(낮)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송주, 깔끔하게 세탁되어 다림질된 옷들을

펼쳐보며 감탄하고 있다.

송주 어머 세상에, 세탁에 다림질까지... 요즘 보기 드문 요조숙녀군요 여경씬.

여경 저기...그때 두고 간 제 옷은...

송주 (여전히 감탄의 눈으로 세탁물을 보는 채로) 다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진

옷은 찾아서 뭐하게요. 지금 그 옷이 훨씬 좋은데요. (하다가 완의 와이셔츠를

보고는) 어머, 이 와이셔츠는 제 것이 아니네요.

여경 아... 제 대신 그분께 좀 전해주시면,

송주 (웃으며) 기생이 함부루 사내의 집을 찾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여경 글쎄요.

송주 (표정 살벌해지며) 칼부림 나요.

여경 (섬뜩!) 그...그럼 잡지사로 찾아가서 전해주시면,

송주 (웃으며) 기생이 남자 직장을 함부로 들락거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여경 카...칼부림 나나요?

송주 아니요. 직장에서 짤리고, 부인한테 쫓겨나고,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거렁뱅이가 돼서 시궁창을 떠돌다 결국 들쥐들의 밥이 되고 말아요.

여경 (섬뜩! 역시 송주 캐릭터 적응 안 된다)

송주 (와이셔츠 내밀며) 빌린 당사자가 직접 전해주는 게 예의 아닐까요?

여경 (심난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네요. 여러 가지로 폐가 많았습니다. 그럼...

송주 (나가는 여경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

S#62 송주의 방문 앞(낮)

방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 얼른 옆으로 붙어서는 영랑.

괜히 손가락으로 벽을 긁으며 딴청 부리고 있다가, 여경이 사라지자

후다닥 송주의 방으로.

S#63 송주의 방(낮)

서안 위에 책을 펼쳐놓고 독서모드에 돌입한 송주.

영랑 (뛰어 들어와 호기심 반짝) 언니, 아까 그 옷, 완이 오라버니 옷 맞죠?

완이 오라버니 방에 놔두면 될 걸 왜 다시 돌려보냈어요?

송주 (영랑 입술에 검지 갖다 대며) 쉿! 이번 내기에 쌀 열섬이나 걸었단 말이야.

영랑 내기요? 무슨 내기요?

송주 그런 게 있어. (웃으며 혼잣말) 내기 하나로 돈도 벌고 재미도 보고,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지.

S#64 지라시 사무실(낮)

탁자 앞에 마주앉아있는 왕골과 세기.

세기 절대 성공할 리 없어! (모자 속에 숨겨놓았던 비장의 지폐뭉치를 툭 던지며)

조마자에게 만원 걸지.

왕골 (양말 속에서 비장의 지폐뭉치 툭 던지며) 경성 황태자에게 만원 걸겠어.

세기 조마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쉽게 꺾일 촌발이 아니야.

왕골 선우완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군. 미두와 황금광산 개발에 피박 쓴 경성

사람들이 모두 완이에게 돈을 걸고 있어. 투자자들의 눈은 정확한 법이야.

세기 역시, 미두로 졸부가 된 집안의 장남답군.

왕골 시꺼. 옷 벗을 준비나 해두는 게 좋을껄?

하는데 라라라라....콧노래 흥얼거리는 소리.

그러고 보니 책상 앞에 앉아 부쩍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탁구.

세기 형은 어디에 걸꺼야?

탁구 (원고지에 뭔가를 열심히 적으며) 응? 뭐 나는 어느 쪽도 상관 없지이.

완이가 성공하면 누드화보집이 생기고, 완이가 실패해도 특종 기획기사가

생기고. 뭐가 되든 특종은 따논 당상 아니냐.

왕골 특종 기획기사라니?

탁구 (쓰고 있던 기획안 원고를 짠 펼쳐 보이며) 짜잔!

경성 최고의 스캔들, <N양 모던껄 만들기!> 어떠냐, 특종의 냄새가 팍팍

나지 않냐? 우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데)

여경 (E) 저....

탁구 (노래하듯이) 누구쎄~요?

하다가 보면 문 앞에 서있는 사람, 여경이다!

순간 헉!해서 벌떡 일어나는 탁구,왕골,세기!

탁구 어....어...어떻게 오셨는지....

여경 저....선우완 기자님께 전해드릴게 있어서...(하며 옷 봉투를 내미는)

아 예...하며 얼껄에 받아들고 안을 확인해 보는 세 사람.

완의 와이셔츠다! 서로를 쳐다보며 뻥....해지는 세사람.

여경 저 그럼.... (인사하고 가려는데)

왕골 (E) 잠까아안----만요!

여경 ? (돌아보면)

왕골 (여경에게 도로 옷봉투 돌려주며) 일단 이거 받으시고요,

세기 (여경을 사무실로 밀어 넣으며) 잠깐 사무실 좀 봐주세요.

하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는 세 사람.

여경 (얼떨결에 혼자 남겨져서) 아, 아니 저기...

S#65 지라시 사무실 건물 앞(낮)

허둥지둥 밖으로 나오는 세 사람, 공포심으로 사무실을 바라본다.

왕골 봤냐? 저 수줍은 듯한 표정, 다소곳한 말투!

세기 벌써 모던 걸의 세계로 한 발자국 들어선 듯한 저 자태!

왕골 게다가 벌써 옷까지 벗어놓고 오는 사이?

탁구 버...벌써 성공한 거야 그럼? 언제 작업 들어간 거야 이 자식...?

세기 (고개 절레절레) 사람이 아니야. 선우완...이 무서운 새끼...

완 (E) 하하하하하!

S#66 해화당 안(낮)

호탕하게 웃고 있는 완과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는 최학희.

최학희 참 재미있는 청년이네. 어쩜 말을 그렇게 재미있게 해요.

완 조여사님이 워낙 재밌게 들어주시니까 저도 모르게 흥이 나네요.

최학희 (문득 시계를 보고는) 어머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아직 책 못 고르셨죠?

완 아닙니다. 책은 필요 없습니다.

최학희 책을 사러 오신 게...아닌가요?

완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며) 실은...요 앞을 지나던 길에 수를 놓고 계신

조여사님의 고운 자태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습니다.

최학희 (당황) 네?

완 십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나서....(갑자기 울컥 목 메이는 척)

제 어머니두 조여사님 처럼 참 곱고 단아한 분이셨거든요.

최학희 (안쓰러워서) 저런....

완 조여사님을 어머님처럼 여기고 가끔씩 들러도 될까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이젠...(쓸쓸하게) 없어서요.

최학희 (모성애로) 그럼요. 언제든지 놀러와요.

완 감사합니다, 조여사님.

최학희 그런데 왜 아까부터 조여사님이라고...나는 최간데...

완 그럼 최마자....

최학희 네?

완 아, 아닙니다.

S#67 지라시 사무실 안(낮)

혼자 남아 시계를 보며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경, 난처하다.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은지, 책상에서 연필과 종이를 가져와 뭔가 메모를

적기 시작한다.

S#68 지라시 사무실 건물 앞(낮)

건물 앞에 맥없이 무너져 있는 탁구 일행,

기분 좋은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걸어오는 완을 발견하고는,

자동인형처럼 발딱 일어난다.

왕골 와...완아....

완 (잘난 체하며 다가온다) 뭐야. 너무 쉽잖아.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모르나?

왕골 (완의 손을 와락 감싸 잡으며) 완아, 오늘부터 널 존경해도 될까?

완 (거드름) 생각 좀 해볼게.

왕골 (존경의 눈으로 완을 보며) 얼른 들어가 봐. 조마자씨가 와 계셔.

완 뭐? (뭔가 이상하지만 느껴지는 시선에 거드름) 아 나 참,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들어가려다 말고) 야 근데 조마자가 아니라

최마자드라. 짜식들이 그딴 거 하나 딱딱 체크 못하고. 하마터면

작업 중에 큰 실수 할 뻔했잖아. (하고는 휘파람 불며 들어가고)

세기 (고개 갸웃하며) 최마자는 또 누구야?

S#69 지라시 사무실 안(낮)

여경 (메모를 적고 있다)

완 (들어서다가 여경을 발견하고, 휙! 도로 나간다)

여경 ? (인기척에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완 (헉! 사무실 문 뒤에 넙치처럼 납작 붙어 숨어있는 모습 위로)

완 (E) (흥분) 쟤가 조마자였어?!!!

S#70 지라시 사무실 건물 앞(낮)

세 사람을 향해 흥분하고 있는 완.

완 이것들이 진짜. 상대를 골라줘도 어디서....안 해, 못 해! 절대 싫어!

세기 (완전히 여유를 되찾고 하드보일드 영화에 나오는 탐정처럼 건들건들)

상대를 착각하고 말았으니, 내기는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인 건가?

탁구 그러지 말고 천천히 사귀어보지 그래? 서로 통성명부터 하면서,

완 (O.L) 내 앞에서 통성명에 통!자도 꺼내지 마. 내가 쟤랑 통성명 한 번

하는데 목숨을 몇 번 걸었는지 알아? 처음엔 이름조차 말할 수 없었고!

(F.C) 보아하니 아가씨도 선수인거 같은데 우리 서로 통성명이나....

하고 보면 없는 여경. (1부 8씬)

완 두 번 짼 겨우 성은 말할 수 있었는데!

(F.C) 나는 선우...’ 하며 완이 내민 손을 야무치게 찰싹 쳐내고는

퍽! 주먹을 날리던 여경. (1부 28씬)

완 내가 이름을 다 말했을 땐!

(F.C.) 나는 선우완, 너는’ 하는 순간,

완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여경. (2부 31씬)

완 하마터면 머리에 총구멍, (하다가 앗차! 입 다물고) 어쨌든! 이 내기는 무효야.

세기 못하겠어?

완 (단호한) 못하겠어. 아니, 안하겠어.

세기 진정?

완 진정.

탁구 붙여라.

하면, 월간 지라시 스티커를 차에 붙이려는 왕골.

완 당장 그만 못 둬!!! (소리치는데서)

S#71 지라시 사무실 안(낮)

아직도 메모 중인 여경. 어제 일은 고맙....’ 썼다가 지우고,

어제 일은 잊어주...’ 썼다가 지우고...결국 다 지워버리고 그냥

옷 놔두고 갑니다.’ 라는 메시지 남기고 일어서는 여경.

문 쪽으로 향하다가 흠칫! 놀라 선다. 문에 비스듬히 기대선 멋진 포즈로

서 있던 완, 여경이 갑자기 돌아보자 흠칫 놀라 잠시 휘청한다.

완 (얼른 멋진 자세로 고쳐 잡고) 오, 오랜만이다?

여경 .... (민망해서 시선 피한다)

완 (무심히) 아, 오랜만이 아니구나 참. 어젯밤에 우리 명빈관에서,

여경 ! (얼른 말 막 듯이, 갑자기 벽 쪽을 가리키며) 어? 저기!

완 ? (반사적으로 쳐다보면)

여경 (그 사이에 얼른 사무실을 후다닥 빠져나간다)

완 꼴에 별거 다 하네 진짜....(성가신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쫓아나간다)

S#72 경성 거리 일각(낮)

여경,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더듬더듬 가방에서 책을 꺼내든다.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걸어가는 여경.

완 (뒤 따라오며) 조마자씨!

여경 !!! (얼굴 확 구겨지지만 참고 걸음 더 빨리한다)

완 (못 들었나 싶어 크게 또박또박) 조! 마! 자! 씨이!

여경 (결국 못 참고 홱 돌아본다)

완 (다가와서) 조마자씨. 이왕 나온 거, 커피나 한잔 같이 하지.

여경 (꾹 참으며 정중하게) 저를 조마자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상당히 불쾌하니까.

완 (벙쪄서) 아니, 그럼 조마자를 조마자라고 부르지, 마고자로 불러야 하나?

여경 (놀리는 거라 생각하고 얼굴 굳어간다)

완 아니면 뭘 원해 도대체. 마자 씨? 마자 양? 그것도 아님, 마자 조? (순간)

여경 (완의 정강이를 퍽! 걷어차고는 간다)

완 (아악! 다리를 감싸 쥐고) 저게 걸핏하면 폭력이야!

S#73 해화당 서점 앞(낮)

여경, 책 속에 얼굴을 푹 파묻고 씩씩대며 걸어오고 있다.

수현, 먼발치서 그런 여경을 바라보고 있다.

여경,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힌다. 얼른 꾸벅 인사고는 다시 책을

집어들고 얼굴을 가리고는 서점 안으로 들어가는 여경.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수현인데 어떤 느낌에 돌아보면,

어느새 강구가 와서 서있다.

수현 이런 데서 만나다니 재미있군.

강구 (경계의 눈빛으로 보며) 바쁘실텐데 여기는 어쩐 일루 오셨습니까?

수현 수사의 일환이라고 해두지.

강구 (비죽) 수사라니요. 여기서 뭘 어떤 식으루 수사를 한단 말입니까?

수현 그런 자네는 여기에 어쩐 일인가.

강구 보시다시피 (해화당쪽을 턱짓하며) 요주의 인물을 감시중입니다.

수현 (피식 웃으며)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수사는 상당히 위험할텐데?

강구 (민감하게 본다) 개인감정이라니요?

수현 나여경과 자네, 두 사람이 동향출신이더군.

강구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수현 십년 전, 자네 고향에서 대규모 폭동이 한 번 있었더군.

뭐, 밀고자의 고발로 실패로 끝났지만 말야.

강구 (한순간에 굳는 표정)

수현 모의했던 청년들은 투옥되고, 배후자였던 나여경의 부친은 만주로 넘어갔지.

그런데 말야, 끝내 그 밀고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의미 심장하게 웃으며) 흥미롭지 않나?

강구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수현 그 밀고자는 누구였을까? 그 밀고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야망? 돈? 그것도 아니면 보상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복수?

강구 (이를 갈듯이) 나으리야 말로 나여경을 단독 주시하는 이유가 뭡니까,

(강조) 아무. 이유, 없이.

수현 (피식 웃으며) 그저 흥미, 내지는 관심이라고 해두지.

(강구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간다)

강구 (살벌하게 수현을 노려보는 모습 위로)

강구 (E) 건방진 새끼!

S#74 망치의 움막(밤)

하층민의 삶이 역력한 허접한 살림들이 놓인 망치의 움막 안.

양철 주전자에 탁주를 받아놓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망치와 강구.

강구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머리에 그깟 먹물 좀 적셨다고 나를 무시해?

이런 식으로 나를 수사에서 제외시키겠다 이거지.

망치 무시하세요. 솔직히 그 인간들, 머리에 먹물 든 거 말고 나리보다 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무시하시고 단독으로 수사 진행하세요.

강구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한 잔 쭈욱 들이켜고, 잔 건네는)

망치 (받으며) 저도 그 새끼 한번 봤는데 생긴 것도 재수 없드라구요.

강구 (무심히) 니가 그 자식을 어떻게 봤어.

망치 (크! 마시고는) 사건 날 밤, 제가 차송주를 태우고 명빈관까지 인력거를

끌었잖아요. 그때 그 자식이 명빈관에서 막 수색을 끝내고 나오드라구요.

강구 (뭔가 육감에 번뜩) 차송주가 그 시각에 명빈관을 비웠어?

망치 예, 마작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던가...

강구 (뭔가 머릿속으로 조합해보는) 도망친 용의자는 명빈관으로 뛰어들고,

차송주는 그 시각에 자리에 없었다....? (눈빛이 매섭게 빛나더니)

그걸 왜 이제 말해 이 새끼야! (벌떡 일어나 나간다)

S#75 명빈관 앞(밤)

회합을 마친 고관대작들이 명빈관을 나서고 있고,

맵시 있게 한복을 차려입은 송주와 기생들이 그들을 배웅하고 있다.

고관대작들을 태운 차를 향해 단아하게 절을 올리는 기생들.

차가 사라지고 나면 명빈관을 향해 돌아서는 송주인데,

그 앞을 강구가 막아선다.

강구 차송주. 참고인으로 자격으로 잠깐 서까지 동행 좀 해줘야겠는데?

송주 (전혀 기죽지 않는 오묘한 미소) 어머, 그거 재미있겠네요.

근데 어쩌나... 보시다시피 지금은 한참 바쁠 때라....

강구 (요거 봐라? 뭔가 수상하고)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건가?

송주 어머, 설마 그럴 리가요. 제가 내일 직접 종로서로 출두하죠.

강구 (보며) ....

송주 (여유 있게 웃으며) 염려 마세요. 도망가지 않을테니까...

뭐 또 도망 간다구 못 잡아낼 순사님도 아니잖아요?

강구 (읽듯이 보고)....

오묘한 미소로 화답하는 송주.

목례하고 돌아서는 순간 표정 싸늘하게 변하는 송주의 모습에서.

-<경성스캔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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