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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스캔들 3부 - 내 여자한테 손대지 마! >

S#1 종로 경찰서 외경(다음날 낮)

근덕이 운전하는 송주의 차가 와서 멈춘다.

고혹적이고도 뇌쇄적인 양장차림의 송주가 차 안에서 내린다.

송주, 종로 경찰서를 바라보며 비웃듯이 피식 한번 웃고는 안으로 향한다.

S#2 종로 경찰서 안(낮)

살인사건 비상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경찰서 안.

송주가 들어선다.

김순사 (수화기에 대고) 사건 현장 주변을 왕래한 인력거꾼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

니까요! (답답한) 아니이, 인력거꾼을 보내달라는 말이 아니라 목격자를,

하는 순간, 경찰서로 들어서는 송주를 발견하고는 홀린 듯 스르르

수화기를 내려놓는 김순사, 뒤이어 역시 멍....한 표정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사들!

강구 (자기 자리에 앉아 만만치 않은 미소로 송주를 읽듯이 바라보고)

송주 (강구를 발견하고 마치 영화배우처럼 우아하게 목례하며 미소 짓는)

마모루 (E) 네? 차송주가 참고인으로 연행 됐다구요?

S#3 총독부 보안과장실(낮)

고관대작들의 전화를 받고 있는 마모루.

마모루 예.예. 제가 종로서에 연락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국장님.

그날 국장님이 차송주와 함께 도박을 했다는 얘기는 절대 말하지 않겠...

(수화기 잠시 뗐다가) 예, 국장님! (수화기 내려놓자마자 바로 울리는 전화)

하이! 우에답니다, 행장님! 방금 저도 소식 들었습니다. 바루 조치하겠습니다.

하하! 제가 보안과장 아닙니까? 당연히 걱정 안 하셔도...(전화 끊긴 듯.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듯 수화기를 쾅 내려놓는 데서)

S#4 종로서 취조실 안(낮)

순사들 멍...한 표정으로 강구가 송주를 취조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반쯤 벌린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침이 떨어질 듯하다.

마치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처럼 고혹적인 포즈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송주. 긴장하는 기색 따윈 전혀 없다.

송주 (고혹적으로 웃으며)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마작을 하고 있었다구.

강구 (아직까지는 여유있게)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야.

송주 글쎄요. 시계를 보질 않아서... (강구 앞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마작이란 게 그렇잖아요?

순사들 (침을 꿀꺽...삼킨다)

송주 콕시무쏘(*마작 용어) 한방에 여러 남자를 동시에 개털 만드는 재미두

쏠쏠하고, 리치(*마작 용어)를 외칠 때의 짜릿한 긴장감도 그렇고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은 쾌감이 들거든요.

순사들 (아아...작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S#5 종로 경찰서 안(낮)

벌컥 문이 열리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오는 코우지와 수현.

텅텅 비어있는 경찰서 안, 김순사 혼자 전화를 받고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 올려붙인다.

코우지 (무섭게 화난 표정으로) 이강구 순사부장 지금 어딨나!

김순사 (얼른 경례 올려붙이고) 지금 살인 사건의 참고인을 취조중이십니다.

코우지 이 새끼가 보고도 없이 단독수사를 해!!! (하며 수현과 함께 취조실로)

S#6 종로서 취조실 안(낮)

강구 같이 마작한 놈들 있지?

송주 물론이죠. 마작이나 사랑이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임이니까.

강구 (담배 꺼내 입에 물며) 그게 누구야.

송주 (비웃듯 피식)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강구 (순간 담배 뽑아 내리며 낮지만 살벌하게) 나랑 놀자는 거야 지금?

송주 어쩌나...이런 일에 이름이 오르내린 걸 아시면 상당히 불쾌해 하실텐데.

(눈빛 변하며) 사람 목숨줄까진 아니어도, 밥줄 정돈 가볍게 끊을 수 있는

분들이거든요, 그 분들이.

강구 (드디어 터지며 살벌하게) 감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지금?!!

송주 (O.L) 법무국장님,

순사들 (헉!)

송주 재무국장님, 식산은행장님, 그리고 또 누가 있었더라...?

아, 동양척식주식회사, (하는 순간)

문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코우지와 수현.

코우지 (강구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고는) 이런 건방진 조센징 새끼!

수현 부하직원들 앞입니다. 장소를 옮겨서 말씀하시죠, 선배님.

코우지 지금 같은 조센징이라고 편드는 건가, 이수현!

송주 ...!! (순간 고개 돌려 수현을 보고는 멍...하니 굳는 위로)

수현 일단 자리를 옮기시...

코우지 (E) (버럭) 시끄럿!

강구 (E) 취조 먼저 마치고 나중에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취조를,

코우지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와! (끌고 나가며) 당장 나와 이 새끼야!

순사들 (말리려고 우르르 몰려 나가고)

송주 (수현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수현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다)

담담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송주를 바라보는 수현.

두 사람의 모습에서 타이틀.

<경성 스캔들> 3회

S#7 명빈관 전경 (낮)

<자막 : 10년 전 여름>

S#8 명빈관 밀실 앞 (낮)

중년남에게 인사하고 밀실에서 나오는 민과 수현.

S#9 명빈관 마당 (낮)

민과 수현, 중간문을 나오는데,

한 남자가 거칠게 문을 밀고 남루한 몰골의 송주를 끌고 들어온다.

송주 (발악을 한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남자 이 년이 근데! 주둥이 안 닥쳐!

송주 이거 놓지 못해! 나는 죽어두 기생은 안 할 꺼야!

죽어두 안 해! 안 한단 말이야! 안 해!!

남자 이년아, 기생을 하든 말든, 그건 니 애비한테 따지란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 남자 앞을 가로막는다.

남자 뭐야?

수현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없는 여자 아이에게 너무 심하신 것 같습니다.

남자 (가소로운 듯) 뭐? 나, 참... 이건 또 뭐야?

송주 !

수현 들어보니 억지로 끌려온 아이같은데,

남자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자식이,

대낮부터 기방이나 들락거리면서 뭐가 어째? 얼른 못비켜!

수현 (버티고 본다)

남자 (한대 칠 듯이) 근데 이 자식이 (뜨거운 맛을...)

관록기생 (중간문에서 나오며) 왜 이리 시끄러운게야!

남자 (조아리고)

수현 (뭐라고 얘기하려는데)

관록기생 학생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야.

남자에게 고갯짓하고 돌아서면,

수현을 기분나쁘게 돌아보곤 송주를 끌고 가는 남자.

어떻게든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송주,

간절한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보지만, 이내 쪽문으로 끌려들어간다.

수현, 착잡한 표정으로 민과 함께 기방을 나선다.

S#10 명빈관 전경(밤)

달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S#11 명빈관 욕실 안 (다른 날/낮)

훈김이 모락모락 나는 나무 욕조 안에 들어가 있는 송주.

비자들이 송주를 씻기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반항 없이

목욕물 위를 떠다니는 꽃잎을 망연히 바라보며 앉아있는 송주....

S#12 관록 기생의 방(낮)

서안 앞에 발을 내려놓고 책을 읽고 앉아있는 관록기생.

비자 한 명이 목욕을 끝낸 송주를 데리고 들어온다.

관록기생 (책을 한편으로 치우며) 거두어 보아라.

비자 (얼른 와서 발을 거둔다)

화전민의 땟국물을 완전히 벗고 본연의 미색을 찾은 송주,

어여쁜 한복을 차려입고 관록기생을 노려보며 서있다.

관록기생 (송주를 보며 흡족한 미소로) 사내 여럿 잡을 홍안이로다.

송주 ...

관록기생 니 이름은 이제부터 연홍이다. 차연홍, 그게 니 이름이야. 알겠느냐?

송주 (무표정한 채로) ....

S#13 명빈관 근처 길(밤)

월광이 드리운 길....경기고보 교복을 입은 민과 수현이 주변을 경계하며

걸어오고 있다. 적당한 곳에 멈춰 서 긴장된 눈빛을 교환하더니 헤어지는

두 사람. 수현은 명빈관 쪽을 향해 간다.

S#14 명빈관 마당(밤)

송주, 마당을 걸어오다가 흠칫 멈춰선다.

중간문을 통해 명빈관으로 들어서는 낯익은 얼굴, 수현이다.

자기도 모르게 수현의 뒤를 따르는 송주.

S#15 명빈관 밀실 앞(밤)

밀실 앞에 서찰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는 수현.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남자가 밖을 내다본다.

안에는 엄숙한 표정의 남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던 듯 둘러앉아 있다.

수현 (목례하고, 서신을 내밀며 작게) 김범우 선생님이 보내신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중년남 (서신을 받아들곤 들어오라는 신호를 준다)

수현이 들어가면, 고개를 내미는 송주.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S#16 명빈관 연못가(밤)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송주.

그때 수현이 밀실쪽에서 나오다가, 송주를 발견한다.

잠시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시간경과)

송주 언젠간 꼭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수현 그 말 하려구 날 기다린거야?

송주 (끄덕인다)

수현 (보는데)

송주 ...밀서를 전달하는 거 봤어요.

수현 (본다)

송주 그런 분이라면 절 도와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수현 도와주다니...?

송주 (어렵게) 절 이곳에서 꺼내주실 수 없나요?

수현 (짠해져서 본다)

송주 그렇게 해주실 수 없다면....(왈칵 눈물 고이지만, 입술 깨물어 참으며)

절 기생으로 팔아넘긴 제 아비를 죽여주세요. 제 아비의 땅을 빼앗아,

노름꾼이 되게 만든 일본순사도 죽여주세요.

수현 !

송주 (간절히 본다)

수현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송주 !

수현 미안하지만, 아직 내겐 그런 힘이 없어.

송주 ... (천천히 뒤돌아 간다)

수현 (그런 송주 지켜보다가, 불쑥) 그래도 살아.

송주 (멈칫 돌아본다)

수현 (짐짓 연못의 수면만을 바라보며) 식민지 조선에서, 그래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 모두들 그럼에도’ 살아가는 거지.

송주 (보며) ...

수현 그러니까 너두 살아. 살아가면서 니가 품은 분노를 풀 데를 찾아.

세상을 이 따위루 만든 적들을 찾아 복수해. 그게 세상과 너를

변화시키는 힘이야. 그게 유일한 복수야.

송주 ...

수현 (그제서야 보며) 죽지 마. 절대루 살아. 너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란 사실을 보여 줘, 세상한테.

송주 (울컥 마음이 동요된다) ....

수현 (웃으며) 나는 이수현. 너는?

송주 (눈가 붉어져서) 차송주...

S#17 명빈관 전경(낮)

S#18 관록기생의 방 (낮)

관록기생 앞에 앉아있는 송주.

관록기생 듣자하니, 네가 화초머리도 올리지 않고 버텨온 이유가,

그 경성고보 학생 때문이라던데, 사실이냐?

송주 ...

관록기생 사실이라면, 이젠 마음을 접도록 해라. 그 학생, 지난달에 이미

동경으로 떠났다.

송주 !

관록기생 내 그동안 아무말 않고 있었다만, 오늘도 손님께 폐를 끼친다면,

더는 가만 두지 않을게야.

송주 ...

관록기생 오늘 니가 모셔야 될 손님은 총독부에까지 그 세력이 뻗어있는 세도가이니라.

그런 분이 널 지목하셨다. 영광으로 알고 절대 거부할 생각 말아라.

송주 (외로움과 배신감에 마음이 아픈...)

S#19 명빈관 방(밤)

곱게 단장한 송주, 슬픈 표정을 감추며 방으로 들어선다.

술을 마시다가 비열하고 끈적끈적한 눈으로 송주를 바라보는 친일파 지주.

송주, 소름끼치는 기분을 애써 감추며 다소곳이 절을 올리며,

송주 차연홍입니다. 나으리를 모시게 되어...

절을 끝마치기도 전에 송주의 팔을 거칠게 확 끌어당기는 지주.

송주 비명을 지른다.

S#20 명빈관 전경(밤)

명빈관 위로 펼쳐진 밤하늘. 구름이 달을 가리며 무심히 흘러가고...

송주의 비명소리가 이어진다.

S#21 명빈관 일각(밤)

달빛 속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

그 나뭇가지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하얀 명주천.

그 끝을 잡고 서있는 송주. 남자에게 농락당한 상처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무를 노려보다가 어느 순간 천을 목에 두르려는 송주인데,

수현 (E) 죽지 마.

송주 (멈칫)

수현 (E) 절대루 살아. 너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란

사실을 보여줘, 세상한테.

송주 (어느 순간 눈빛이 매섭게 변한다)

S#22 명빈관 방(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송주를 바라보고 있는 지주.

두 손은 예의 그 명주천으로 묶여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다.

경멸과 분노가 뒤섞인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송주.

수현 (E) 세상을 이 따위루 만든 적들을 찾아 복수해.

그게 세상과 너를 변화시키는 힘이야. 그게 유일한 복수야.

지주의 얼굴을 향해 화병을 치켜드는 송주의 얼굴에서 스틸.

수현 (성인 수현의 목소리) (E) 당신이 죽였습니까?

S#23 종로경찰서 취조실(현재/낮)

송주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다가 퍼뜩 보는)

수현 (가만히 송주를 보고 있는)

송주 ... (표정 가다듬고 애써 미소로) 취조자가...바뀐 건가요?

수현 질문에 대답부터 하시죠.

송주 (여유 있는 미소로) 죄송해요. 질문이 뭐였죠?

수현 고리대금업자 민환식, 당신이 죽였습니까?

송주 꽤나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이군요.

아니라면, 믿으시겠어요?

수현 얘기를 들어 보구, 믿어볼 만하면 믿어보죠.

송주 그렇다면 저두 같은 방법으루 대답해 드리죠.

(눈빛 변하며 정색) 아니요, 안 죽였어요.

수현 (읽듯이 보고)

송주 (시선 피하지 않고 보는)

강구 (E) 한번만 믿고 맡겨주십시오!

S#24 종로 경찰서 안(낮)

강구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내고 있는 코우지와 둘의 대립을 보며

긴장해있는 순사들의 모습.

강구 (강하게) 제 육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코우지 (짜증으로 버럭) 또 그놈의 육감 타령인가?

이러니까 조센징들을 미개하다고 하는 거 아냐!

조선남 (소심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모습 위로)

(* 남자는 30대 중반의 한복을 입은 평범한 조선인 남자다.

이하 조선남으로 표기)

강구 (E) 일선에서 뛰는 사람은 접니다!

이 정도의 수사권한도 없이 무슨 수사를 어떻게 진행합니까!

코우지 (E) 너 계속 이따위루 건방지게 굴꺼야? 순사복 벗구 싶어?

강구 (내친김에) 아 글쎄, 순사복을 벗구 안 벗구는 이 사건을 해결한 다음에,

코우지 (O.L) (열 확 오르며) 뭐야, 이 새끼가!

퍽! 강구에게 주먹을 날리는 코우지.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나가 떨어지는 강구.

어어어...하며 말리는 순사들, 건방진 조셍진 새끼! 일어나! 다시 강구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코우지 등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조선남 (소심하게 김순사를 건드리며) 저...

김순사 (싸움 말리며) 지금 바쁘니까 잠깐 저기 찌그러져 있어요.

조선남 저...그게 아니라 제가 살인자를....

김순사 (못 듣고, 강구를 패는 코우지에게) 참으세요 나으리, 참으세요!

조선남 아니, 제가요...

김순사 (못 듣고 이순사에게) 아, 뭐해! 얼른 순사부장님 일으키지 않고!!!

조선남 (안 되겠다, 버럭 큰소리로) 제가 살인자를 목격한 거 같거든요!!!!

순간, 모든 소음과 동작 정지되며 일제히 남자에게 쏠리는 시선!

S#25 종로 경찰서 취조실 안(낮)

송주 ....! (듣고, 바깥쪽을 보며 표정이 굳는)

수현 (팔짱을 낀 자세로 앉아 그런 송주를 보며 미소로) 긴장하시는 겁니까?

송주 ... (수현을 보다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백을 챙겨 들고 나가는)

수현 차송주씨. (따라 나가는)

S#26 종로 경찰서 안(낮)

동작 그만 상태로 조선남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 침묵을 뚫고 걸어와 조선남 앞에 와서 딱 멈춰서는 송주.

뒤 따라오다 함께 멈추는 수현.

송주 (목격자를 보며) 당신이 목격한 살인자가, 전가요?

일동 (일제히 시선 집중되는)

송주 (긴장을 감추고 꼿꼿한 자세로 당당하게 보는)

조선남 ...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순사들 (웬지 휴우우우...안심하는)

송주 (수현을 쳐다보며 미소로) 아니라네요.

수현 (보고)

송주 (순사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취조하느라 고생들 하셨어요.

언제 한 번 명빈관에 오세요. 친절히 모실께요. 그럼...(목례하고 나가는)

코우지 (강구에게 비식) 이게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육감이라는 건가?

강구 (머리 확 쓸어 넘기며, 두 눈 질끈 감고)

S#27 종로 경찰서 앞(낮)

고고한 미소를 지으며 나오던 송주,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도도하던 걸음도 서서히 느려진다. 그리움과 씁쓸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종로서를 돌아보는 송주,

창문가에 기대서서 송주를 바라보고 있는 수현과 시선이 부딪힌다.

송주 (그런 수현을 보며 혼잣말처럼) 조선 총독부 보안과....?

(쓰게 피식 웃으며) 정말 대단한 반전이네요...

하고는 홱 돌아서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오르는 송주.

S#28 종로경찰서 안(낮)

모두들 취조실로 가고 텅 빈 경찰서 안.

창문가에 기대서서 송주의 모습을 보고 있는 수현.

송주의 차가 출발하자, 이내 담담하던 수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리움과 씁쓸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송주의 차를

바라보며 서있는 수현. 그 모습 위로,

조선남 (E) 살인자가 틀림없습니다.

S#29 종로경찰서 취조실(밤)

목격자를 취조중인 강구와 코우지이고 지켜보고 있는 순사들.

조선남 제가 그날 상가 집에 밤샐 요량으로 갔다가, 아무래도 혼자 남은 어머니가

걱정이 돼서 그냥 집으로 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책상을 탕!치며) 탕!

코우지 총소리를 들었나?

조선남 (조심스럽게 끄덕끄덕)

강구 (매서운 눈빛으로) 모두 몇 발이었지?

조선남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 손가락 세 개를 쫙 펴 보이는)

일동 !!! (제대로다!)

코우지 (급해진다) 용의자는, 도주하는 용의자를 봤나?

조선남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코우지 여자였나, 남자였나? 모두 몇 명이었지?

조선남 목이 좀 마른데...

강구 (열 불나서 책상을 발로 탁 치며) 죽고 싶어?

쥐똥 싸듯이 찔끔찔끔 흘리지 말고 한 줄에 내놓으란 말이야!!!

조선남 (O.L) (겁먹고 얼른) 남자아이였어요. 틀림없이 그 녀석이었어요.

그 녀석이 굉장히 빠른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걸 봤어요.

강구 (순간 눈빛 번뜩) 그...녀석? 아는 놈이었나?

조선남 (얼른 끄덕끄덕) 아마 순사님도 아실 거예요.

강구 (눈빛 더 매서워지며) 그게 누구야.

조선남 (잠시 망설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향숙이...

김순사 향숙이? (고개 갸웃) 남자라며.

조선남 (멍한 표정으로) 그럼 향철이....?

김순사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새끼야! 제대루 본 거 맞아?

강구 (터지며) 이 새끼가, 입을 확 찢어놓기 전에 제대루 말 못해!

조선남 (무서워서 얼른 책상 밑으로 숨으며) 집으로 갈래요. 보내주세요.

하는데, 문이 열리고 수현이 들어온다.

순간, 책상 밑에 숨었던 조선남,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수현쪽을 가리킨다! 순간 일제히 수현에게

쏠리는 시선! 수현은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보고 있다.

조선남 (수현쪽을 가리킨 손가락 끝이 떨리며) 순사 아저씨...

이순사 (수현 앞에 서 있다가 당황해서) 나?

조선남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모자 한번 써 봐도 돼요?

이순사 (짜증) 아 쟤 뭐야아.

김순사 미친 놈 같습니다.

강구 (이런 씨...벌떡 일어나서 발로 밟아 패기 시작하고)

코우지 (신경질적으로 머리 확 넘기고는 버럭) 뭐해! 당장 내 보내지 않고!

수현 (포커페이스)

S#30 한적한 거리 (밤)

아아아아아으으으----!! 술에 취한 강구가 제 분에 못 이겨

성난 고함을 지르며 발에 채이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있다.

망치 (말리며) 고정 하세요 나으리!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시고,

강구 (망치를 확 뿌리치며) 입 닥쳐!!!!

망치 (움찔하고)

강구 미친놈이지만, 그 새끼 분명히 뭔가를 봤어! 분명히 뭔가를 봤다구!!!

조금만 더 밟아놓으면 다 불 판인데, 멍청한 쪽바리 새끼!!!

망치 그만 잊으세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놈을 팬다구 제 정신으로

돌아오겠습니까?

강구 (눈빛 번뜩이며 이 악물고) 반드시 잡는다. 내 손으루 반드시

그 살인자를 잡아내서, 그 새끼 면상에다 갖다 던져줄꺼라구!

S#31 깔패디엠(밤)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송주, 마치 강구의 말을 다 듣기라도 한 냥,

커피를 마시며 피식 웃는데, 안으로 들어서던 탁구, 송주를 발견하고는

헉! 얼른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다가온다.

탁구 오,오,오랜만입니다 송주씨.

송주 아, 오랜만이에요 배구씨.

탁구 (실망해서) 배구가 아니라 탁굽니다. 김탁구.

송주 미안해요. 같은 구기종목이라 자꾸 혼동하네요.

탁구 (섭섭해서) 아니, 공 싸이즈가 다르고, 게임의 룰이 다른데,

송주 (이미 혼자 생각에 빠져 피식 웃으며) 배구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스릴 있는 게임이 뭔지 아세요?

탁구 (또 배구!) 저기, 배구가 아니라,

송주 맞아요. 배구가 아니라, 나 잡아봐라죠.

탁구 네?

송주 (혼자 생각에 독백처럼 쓰게) 나를 잡아볼테면 한 번 잡아봐라.

가장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게임이죠. 잡혀줄 듯 안 잡혀주면서,

애간장을 태우는 재미가 아주 근사하거든요.

탁구 ...? (보다가, 오바해서 호응) 아아아...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과연 송주씹니다! 그거, 정말 스릴 넘치는 게임이죠.

말 나온 김에 우리도 한 판,

송주 (혼자 생각 끝내고 일어나며 여급에게) (O.L) 미스 다이아나,

VIP룸에 누가 있지? 나 노래 한 곡 부르구 싶은데.

탁구 (쩝...실망하는) ...

S#32 VIP룸(밤)

잔잔한 스윙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는 실내. 부유한 모던 무리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고, 한 쪽 테이블에 완과 세기,

왕골의 모습이 보인다.

완 (기막히고 분해서) 나 참 기가 막혀서, 요조숙녀인 척은 독판 다 하면서,

걸핏하면 주먹질에, 발길질에, 칼 하나 쥐어주면 아주 망나니처럼 멱 딴다구

덤비겠드라.

세기 (키득키득 웃으며) 연애에는 말이다 완아, 과정이라는 게 없어요.

처음과 시작만이 있을 뿐이지.

완 (째리며) 길다 서론이. 본론 들어가지 그만?

세기 시작과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야.

첫끗발이 개끗발인데, 설마 이 내기가 성공할 거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

왕골 무슨 소리! (완의 손을 와락 잡으며) 절대 포기하면 안 돼 완아.

(안내하듯 한 손을 쫙 펼쳐 실내를 훑어 보이며) 봐. 너 하나만을 바라보며

오늘도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 저 투자자들을!

하고 보면, 완을 향해 지폐다발을 흔들어 보이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응원을 보내는 모던무리들.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애써 주먹을 들어 파이팅을 해 보이는 완인데,

순간 실내에 불이 확! 꺼지더니, 핀 조명 아래 짠! 하고 나타나는 송주.

송주 (차분하게) 아름다운 밤이에요 여러분. 청춘의 특권이 허락되지 않는

척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위해, 그럼에도 살아가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불러요.

완 (파이팅 자세 그대로 벙쪄서) 쟤 무슨 약 팔러 왔냐? 웬 사설이 저리 길어?

탁구 (언제 왔는지 흐믓한 미소로 보며) 이쁘니까 용서해주자.

세사람 ! (흠칫! 놀라 탁구를 보는데)

반주가 흘러나온다. 송주, 서글프게 희망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하 S#39 초반까지 몽타쥬의 느낌으로)

S#33 명빈관 앞 거리(밤)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는 수현.

문득 걸음을 멈추고 보면 명빈관 앞이다.

이곳에 오려던 것이 아니었던 듯 이내 발걸음을 돌리는 수현,

그러다 우뚝 멈춰 서서 다시 명빈관을 바라보는 표정....

S#34 VIP룸(밤)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송주...

S#35 명빈관 연못가(밤)

연못가를 향해 걸어오는 수현...

어린 송주가 연못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수현 쪽을 돌아본다.

어린 송주를 바라보며 미소가 생기는 수현....

S#36 VIP룸(밤)

노래 부르는 송주, 미소 짓는 눈가가 붉어지는....

처음 보는 송주 모습에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완이 일행.

S#37 명빈관 연못가(밤)

어린 송주 옆에 나란히 앉은 수현.

연못 수면에 떠오른 달빛에 일렁이는 두 사람....

수현을 보며 미소를 짓는 어린 송주...

어린 송주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수현...

S#38 VIP룸(밤)

노래를 부르며 미소 짓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송주...

심상치 않은 눈으로 송주를 바라보는 완....

송주가 부르는 희망가 위로 겹쳐지는 아이들의 합창...

S#39 해화당 서점 안(밤)

네댓 명의 야학 아이들(7,8세 정도의)에게 개사한 희망가(*별첨자료)를

가르쳐주고 있는 여경. 열심히 희망가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

여경 (합창 끝나자 짝짝짝 박수 쳐주며) 너무너무 잘했어요.

어때? 희망가를 부르구 나니까 희망이 마구 샘솟는 거 같지 않니?

필성 (손 번쩍 들고) 선생님!

여경 어, 필성이 왜.

필성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게 왜 희망이에요?

여경 아주 좋은 질문이야. 여기서 겨울은 아주 힘든 시기, 그러니까 춥고,

배고프고, 나라를 잃어 서러운 지금 같은 때를 말하는 거야.

경일 그럼 봄이 오면 춥지도 않고, 배도 안 고프고, 나라도 찾을 수 있나요?

여경 그렇지. 하지만 노력 없이는 안 돼. 계절은 때가 되면 언제나 찾아오지만,

여기서 말하는 봄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야만 찾아오는 거거든.

필성 우리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 아버지처럼 열심히 일하면 찾아오나요?

여경 (찡해져서 웃으며) 물론이지.

경일 (뜬금없이) 근데 봄도 다 갔는데 인호형은 왜 안 돌아와요?

여경 (애매한 미소로 보며 마음 아픈) ....

S#40 명빈관 앞 거리(밤)

함께 걸어오고 있는 완과 송주.

걸으며 한번 씩 힐끔 송주의 표정을 살피는 완.

송주 (걷는 채로) 왜 자꾸 힐끔거려. 신경 쓰이게.

완 무슨 노래를 그렇게 청승맞게 부르냐.

동냥그릇 들구 나가면 만땅 채우겠더라.

송주 (피식)

완 무슨 일 있었냐, 오늘?

송주 (짐짓 가볍게) 첫사랑을 다시 만났는데, 개차반으로 변했더군.

완 저런. 어쩌다 개차반이 됐냐고 물어보지 그랬어.

송주 날 모른 척 하던데?

완 최악이네. 왜.

송주 (피식) 글쎄. 자기 과거를 아는 내가 부담스러웠나?

아니면, 변해버린 내가 실망스러웠나.

완 천하의 차송주를 누가.

송주 (자조적으로 비식) 천하는 무슨. 그래봤자 기생인데.

완 (걸음 멈추고 송주를 보며 진지하게) 선우완의 영원한 디바를

무시하는 그 개자식이 누구야. 내가 가서 패줄게.

송주 (고마운 미소로)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지금?

완 (미소로) 걸면 넘어 올래?

송주 그대는 지금 아주 중요한 내기 중일텐데. 잊었어?

완 잊을 리가 있나.

송주 잘해. 나두 쌀 열섬이나 걸었으니까.

완 어디에 걸었는데?

송주 그대가 독립투사가 되는 데에.

완 저런. 성공하면 어쩌려구.

송주 (가며) 성공에 걸었어.

완 뭐? (쫓아가며) 독립투사에 걸었다며. 그건 실패했을 때의 벌칙이야.

송주 성공해두 웬지 독립투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완 너 불길한 소리 할래 자꾸?

송주 (웃는)

S#41 해화당 서점 앞(밤)

문 앞에서 야학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는 여경.

여경 조심해서 가! 필성이는 숙제 꼭 해오구!

아이들 대답하며 흩어지고,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여경.

S#42 해화당 서점 안 (밤)

들어와 어지럽혀진 책상 위를 정리하는 여경.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면, 열려진 문틈으로 바람소리....

무심히 문을 닫으려다가 문가에 떨어진 편지 한통을 발견하는 여경.

주워들고 보면 발신인이 없는 벙어리 편지. 어떤 느낌에 편지를 놔두고

후다닥 밖으로 나가보는 여경.

S#43 해화당 서점 앞(밤)

달려 나와 주변을 둘레둘레 살펴보는 여경.

길가며, 골목 까지 달려 나가 살펴본다. 이내 실망하는 표정의 여경.

여경 (E) (편지를 읽는 소리) 선생님의 강직함과 애국심을 존경하며

항상 멀리서 지켜봐 온 사람입니다.

S#44 해화당 서점 안(밤)

긴장된 표정으로 편지를 읽고 있는 여경.

여경 (E) 조국해방과 민중세상 건설을 위해 선생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조만간 저희 쪽에서 사람을 한 명 보내겠습니다.

S#45 해화당 서점 근처 골목(밤)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 한명이 골목에 몸을 숨긴 채

커튼이 내려진 해화당 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근덕입니다)

여경 (E)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선생님의 제자는 저희가 잘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S#46 해화당 서점 안(밤)

편지를 태우고 있는 여경.

불빛에 일렁이는 여경의 비장한 표정에서 F.O

S#47 해화당 앞 (이른 아침)

아직 채 안개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빗자루를 든 여경이 안에서 나온다.

서점 앞을 비질하던 여경, 문득 벽 뒤에 숨듯이 서있는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한다.

여경 (E) 조만간 저희 쪽에서 사람을 한 명 보내겠습니다.

여경 ....!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남자를 향해 다가가는 여경.

저...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순간 시집을 읽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는 남자, 완이다!

여경 !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완 (놀랐다는 듯이) 아니, 이런 우연이 있나. 여기가 마자씨 서점이었어?

여경 여,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완 아침 산책길에, 우연히 감수성을 자극하는 서점을 하나 발견해서 개점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야. (하고는 서점 쪽으로 가며) 개점을 했나...?

어, 했네. (하고는 서점으로 향하며) 시집이나 두어 권 사볼까?

여경 (미치겠는 표정으로 따라간다)

S#48 해화당 서점 안(낮)

마치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처럼 햇살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감정을 잡아 시(임화 암흑의 정신’)를 읽고 있는 완.

완 너는 두려워하느냐? 사는 것을... 너는 아파하느냐? 청년인 우리들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도포인 나이가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여경 저기요, 벌써 세 시간 째거든요?

완 쉿! 이 부분이 좋아. 영리한 새여, 아직도 양심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조그만 심장이여! 불룩 내민 그 귀여운 가슴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소리쳐라!

여경 (버럭 소리치는) 사실거예요, 안 사실거예요!

완 (분위기 확 깨져서) 아, 진짜.

여경 저 점심 준비하러 가야되거든요? 조금 있다 저희 어머니가 오실테니까

사실꺼면 어머니한테 말씀하세요. (홱 나가고)

완 (짜증스럽게 보면서) 우연도 안 통해, 시도 안 통해, 재 뭐야 진짜.

S#49 시장 골목(낮)

난전이나 가게가 밀집한 시장 골목.

장바구니를 들고 야채를 고르고 있는 여경인데,

수현 (E) 또 뵙는군요.

여경 ? (돌아보고는) 어? 그때 그 고구마....

수현 (피식 웃고는) 점심 준빕니까?

여경 (웃으며) 네. 근데 여긴 어쩐 일로...(하다가) 설마 직접 장 보러 나오셨어요?

수현 (웃으며) 안 됩니까?

여경 (당황해서)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좀 의외여서요.

수현 하숙집 밥이 좀 질려서요. 점심시간 이용해서 어렵게 나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하네요.

여경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수현 도와주시겠습니까?

여경 (웃으며 끄덕이는데서)

S#50 몽타쥬

- 수현과 함께 시장을 보는 여경

- 싱싱한 야채를 고르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는 여경.

- 열심히 메모를 하며 듣고 있는 수현.

- 엿장수나 약장수의 쇼를 구경하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 등...

S#51 빙수집(낮)

반쯤 비운 빙수 그릇 앞에 두고 앉아 요리 강의를 하고 있는 여경.

수현은 여전히 열심히 메모 중.

여경 그런 다음 갖은 양념을 해서 무치면 돼요.

아, 시금치를 삶을 때 소금을 약간 넣어주면 좋아요.

색깔도 선명해지구 아삭거리는 맛이 살아나거든요.

수현 (메모를 마치고는) 감사합니다. 이제 굶어죽진 않겠는데요.

여경 그런 말씀 하면 안 되죠. 솔가지나 칡뿌리로 허기를 달래는 이들두 있는데.

수현 실수했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여경 (웃으며) 저한테 죄송할 건 없구요.

하며 웃다가 수현의 수첩에 적힌 필체를 보고는 멈칫, 굳는 여경.

수현의 필체 위로 떠오르는,

(F.C) 편지에 적혀있던, '조만간 저희 쪽에서 사람을 한 명 보내겠습니다'

여경 ! (설마해서 수현을 보고)

수현 ? (보고) 왜 그러십니까?

여경 (다시 수첩을 보면 필체가 긴가민가해서 혼란스러운데)

수현 ? (수첩을 다시 보며) 제가 뭘 틀리게 적었습니까?

여경 (그제서야 퍼뜩) 네? (얼른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아, 아니예요.

수첩에 필기하시는 거 보니까 학생 때 공부를 아주 잘했을꺼 같은데요?

수현 (수첩을 접어 뒷주머니에 넣으며 웃는)역시 선생님 눈에는 모든 사람이

학생으로 보이는군요.

여경 어? 제가 선생님인거 어떻게 아셨어요? 말씀드린 적 없는 거 같은데.

수현 (잠깐 표 안 나게 멈칫했다가, 이내 웃으며) 오늘 저한테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정말 선생님이었군요.

여경 아아....(웃으며) 정식은 아니구, 야학을 하거든요.

수현 네에....

여경 (그제서야 슬쩍) 근데.... 손님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

수현 직업 말입니까?

여경 실례가 되나요?

수현 실례라기 보단 들으면 실망하실 텐데요.

여경 직업에 귀천이 있나요 뭐. 일본 경찰만 아니면 되죠.

수현 (피식 웃으며) 좀 더 친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경 (관찰하듯 보며) ...

S#52 여경의 집 앞(낮)

장바구니를 들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는 여경.

여경 (혼잣말처럼) 좀 더 친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그쪽에서 보낸 사람이 아닌가....?

아니면, 아직은 때가 아니란 말인가...?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여경인데,

문득 집안에서 들리는 남자의 웃음소리.

(E) 하하하하하!

여경 ? (집 쪽을 보는데서)

S#53 여경의 집 마루(낮)

안으로 들어서던 여경, 그대로 경악하고 만다.

최학희 앞에 양팔을 쫙 벌리고 서서 한복 칫수를 재고 있는 완!

최학희 (종이에 치수 적으며) 체격이 좋아서 한복도 아주 잘 어울리겠어요.

완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뭐 하지만...

실은 제가 혼마찌(명동)에서 일명 패션계의 소화제로 통합니다.

최학희 어머, 소화제요? (웃으며) 세상에 말을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할까.

완 말씀마다 웃어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여경 (째리는데)

완 (느끼고 돌아보고는 무척 놀라는 척) 아니 이런, 이런 우연이 있나!

여경 정말 왜 이러세요 도대체. 여긴 또 어떻게 알구 왔어요.

완 (별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듯) 아니 나는 한복 명인에게 한복을 맞추러

왔을 뿐인데 왜 이러시냐고 물으시면, 한복을 맞추러 왔다고 말할 수밖에....

최학희 ? (두 사람을 보다가) 우리 애를....알아요?

완 우리 애라면... 설마 따님...? (정말 놀랍다는 듯이) 세상에 이런 인연이....

최학희 (영문을 몰라) 아니 두 사람이 어떻게 아는 사인지....

완 이거 참, 말씀 드리기가 좀 곤란한데...(하고는 전혀 곤란하지 않은 말투로)

혹시 명빈관이라고 아실런지,

여경 (순간 헉! 달려들어 얼른 완의 입을 막고는) 손님, 한복이 완성 되면

인편으로 댁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잡아끌며) 안녕히 가세요.

최학희 (평소 딸답지 않은 행동에 좀 엄하게) 손님한테 무슨 버릇이야 얘가.

아직 치수도 다 안 재셨는데.

여경 어머니, 그게....

최학희 (완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치수 다 재구, 점심 먹구 가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가 청년한테 밥 한 번 해주구 싶어 그러니까.

여경 (놀라서) 어머니....!

S#54 여경의 집 마루(낮)

소박하지만 푸짐하고 따뜻한 밥상을 놓고 앉아있는 세 사람.

사내답게 푹푹 떠서 맛있게 먹고 있는 완이고,

마치 아들을 대하듯 반찬을 완이 앞에 놓아주는 최학희.

최학희 많이 먹어요. 간이 맞나 모르겠네.

완 너무 맛있습니다.

최학희 (따뜻하게 웃으며) 돌아가신 어머니 솜씨만은 못하겠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이려니 하고 많이 먹어요.

가끔 생각나면 들러서 먹기두 하구.

완 (왠지 정말로 짠해져서) 고맙습니다....

최학희 (웃고는) 찬이 없어 흉보겠네. 우린 그냥 이렇게 먹구 살아요.

완 (웃으며) 너무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여경 (두 사람을 보며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고)

S#55 여경의 집 앞 (낮)

안에서 나오는 여경과 완.

앞서 걷다가, 도무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홱 돌아서서 완 앞에 와서 서는 여경. 포만감에 배를 쓰다듬고 있다가

흠칫 보는 완.

여경 정체가 뭐예요 도대체?

완 (여유 있게 피식 웃으며) 이제야 나에게 관심이 생기는 건가?

여경 솔직히 말해요. 정말 우연이에요? 그것도 두 번 씩이나?

완 문학을 사랑하고, 우리 옷을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되나?

여경 조국에 터럭만큼의 도움도 안 되는 모던보이가 우리 옷을

좋아하고, 임화 시인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완 아주 이상한 편견을 가지구 있군. 뭘 좋아하든 그건 내 자유 아닌가?

여경 무슨 수작이에요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죠, 어디까지가 진실이구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에요,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거냐구요 도대체!

완 (귀 따가워서 눈 질끈 감고 있는 위로) (E)아 얘 말 많네 진짜,

왜는 왜야, 빌어먹을 내기 때문이지. (그러나 속마음과는 달리 말은 젠틀하게)

그렇게 짖어댔으니 목이 마르겠군, (여경 손을 잡으며) 까페에서

깔피스나 한 잔 하면서 나에 대해 천천히,

여경 (그 손을 확 뿌리치며) 됐다고 봅니다. (씩씩대며 가고)

완 (짜증나서) 아 진짜, 나 이거 계속 해야 돼?

S#56 해화당 서점 앞 거리(낮)

빠른 걸음으로 해화당을 향하고 있는 여경.

완 (뒤에서) 조마자씨. 조마자양? 마자씨!

여경 (홱 돌아보며 꽥) 그만 하세요 제발!!!

하는데, 아아앙앙----울면서 서점 앞을 지나가는 필성.

여경 (놀라서) 필성아!

필성 (울면서 돌아보고) 선...생...니임?

완 ? (보는)

여경 (얼른 달려가 필성의 얼굴을 살피며) 너 왜 그래? 어디 다쳤어?

필성 (울음 참느라 끅끅거리며) 그게...아니고요오...내일이 엄마 생일인데요...

엄마는 고무신이 없어요...그런데요...백화점에서 경품 행사를 하는데에,

거기서 고무신을 주거든요. 그런데에...애들은 안된대요. 아아아앙--

여경 ...(안쓰럽게 보다가, 문득 아래를 보면)

얼마나 신었는지 너덜너덜해져서 발가락이 다 보이는 필성의 고무신.

여경, 마음이 아프다.

여경 (눈물 닦아주며 따뜻하게) 엄마한테 고무신을 선물하고 싶었구나?

착하기도 해라, 필성이 고무신도 이렇게 낡았는데, 엄마 생각부터 하구.

완 (처음으로 보는 친절한 여경 모습에) ...

필성 (아직 울음기 남아서) 나는 그래두 고무신이 있지만, 엄만 아직 한번도

고무신을 신어본 적이 없거든요.

여경 염려마. 선생님이 필성이 대신 행사에 참가해서,

필성 여자는 안 돼요. 근데에....(슬쩍 완을 보며) 남자 어른은 돼요.

여경 (필성을 따라 슬쩍 완을 보며) 남자 어른은 된다네요.

완 (두 사람의 시선에 황당해서) ...나?

S#57 소학교 운동장 정도의 (낮)

여경과 필성의 손에 끌려온 완, 헉! 기겁한다!

오케이 백화점 창립 기념 씨름대회!’ 플랭카드 걸려 있고,

샅바를 맨 덩치들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 대기하고 있는 씨름판!

참가자 접수를 받고 있는 사회자.

사회자 참가자 또 없습니까? 없으면 접수를 마감하겠습니다.

완 (홱 돌아서려는 순간)

여경 (큰 소리로) 있어요! 있어요! (하며, 완을 씨름판으로 확 떠밀고)

모래 위에 철푸덕 넘어지는 완. 얼른 일어나 빠져나오려는데

그 얼굴 위로 휙 던져지는 빨간색 샅바!

S#58 경품행사장 일각(낮)

백화점 창립 기념행사를 취재하러 나온 탁구,세기,왕골.

엿을 오도독 오도독 씹으며, 어슬렁어슬렁 주변을 살피며 걸어오고 있다.

왕골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백화점 창립 기념행사 수준이

뭐 이렇게 조악해? 볼 거 하나 없네.

세기 (탁구 보며) 접구 가자 형. 유명 기생이 싸인회라도 하면 모를까,

이거 뭐 기사 되겠어? 소학교 운동회도 아니고.

탁구 (머리 벅벅 긁으며) 아 씨... 이번에 특종 하나 건져야 되는데...

그때 와 와! 씨름판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함성에 돌아보는 지라시팀.

성난 황소처럼 씨름판을 휩쓰는 남자의 모습!

왕골 어떤 자식이 저렇게 완이랑 닮았어.

세기 (왕골 시선 따라가 봤다가) 그르게. 완전 완이 자식이랑 판박이네.

탁구 그러고 보면 세상에 비슷한 사람 참 많어. 쟨 딱 조마자구만.

세기 그르게. 딱 조마자 판박이, (하다가 물고 있던 엿을 그대로 툭 떨어뜨리며)가

아니라, 조마자다!

순간 띵!한 표정으로 정열적으로 완을 응원하는 여경과,

필사 항전의 각오로 시합에 임하고 있는 완을 번갈아 쳐다보는 세 사람.

그러다 서로를 바라보는 세 사람. 특.종.예.감....!!!

순간 카메라를 들고 우다다다 씨름판으로 달려가는 세 사람에서.

S#59 씨름판(낮)

모래 위의 완, 거뜬히 상대선수를 넘겨버리고.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점점 승부근성이 발동돼서, 한판 휩쓸 때마다 마치 강호동처럼

주먹을 치켜 올려 보이며 오버하고 있는 완이고.

여경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와아아! 이번 판만 이기면 결승이다 결승!

(돌아보며) 필성아, 너두 좋지? (하고는 다시 씨름판 보며 환호)

필성 ... (웬일인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는)

필성의 시선이 머문 그 곳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

1등 푯말과 함께 화환을 쓴 황소 한 마리 묶여 있고(또는 황소사진),

그 뒤로 2등 솥단지 3종 세트, 3등 콩기름, 4등이 고무신인데,

사회자 홍 샅바 승! 결승전 진출입니다! 과연 황소는 누구 품으로 돌아갈까요?

필성 (입술이 삐질삐질 거리기 시작하고)

예상치 못한 쾌거에 아오오오! 소리까지 지르며 모래판을 달리며

세레모니를 하는 완. 좀 전에 싸웠던 것도 잊고, 좋아서 함께 팔짝팔짝

뛰는 완과 여경. 키득키득 웃으며 몰래 사진을 찍고 있는 지라시팀.

팡!핑!팡! 플래쉬 터지며, 완의 오버하는 모습이 컷컷컷으로

사진이 되어 박힌다. 그 사진 위로 박히는 기사 타이틀.

<남자는 힘! 사랑과 정열을 N양에게>

S#60 행사장 일각(저녁 무렵)

모든 경기를 끝내고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완,여경,필성.

여경 .... (솥단지 3종 세트를 품에 안고 걸으며 미안한 표정으로 필성을 보고)

필성 ....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다)

여경 미안하다, 필성아... 4등을 했어야 되는데, 아저씨가 흥분하는 바람에 그만

2등을 해버렸네....

완 ! (승리에 기쁨에 약간 들떠서 걷고 있다가, 기막혀서 보며)

아니, 결승 진출했다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한 게 누군데?

여경 이왕 결승 진출한 거 황소라도 타든가요 그럼.

완 (억울해서) 황소만한 사내들을 하루 종일 다섯 명이나 들었다 놨다 했는데,

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필성 그만들 좀 싸우세욧! 고무신 하나도 못 탔으면서!

하고는 에이씨, 먼저 홱 가버리는 필성. 그러다 잊을 뻔 했다는 듯

다시 돌아와 여경의 품에서 솥단지를 홱! 뺏어들고는 다시 가는 필성.

뻘쭘해지는 두 사람....

S#61 해화당 앞 거리(석양)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완과 여경.

완 ... (혼자 툴툴대며 걷고 있고)

여경 ... (문득 그런 완을 보다가 피식 웃는)

완 왜 웃어. 기분 나쁘게.

여경 (웃으며 진심으로) 오늘 고마웠어요.

완 병 주구 약 주십니까 지금?

여경 고무신 하나가 세상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예요.

그만큼 순수하고, 또 그만큼 가난해요.

완 ... (보는 위로)

여경 (E) 그런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여경 (완을 보며) 오늘 당신은 그 아이한테 세상 전부를 갖게 해주셨어요.

완 (어쩐지 쑥스러워서) 고무신이 아니고 솥단진데 세상은 무슨.

여경 (웃으며) 필성이 그 녀석, 분명 오늘 안에 그 솥단지 팔아 고무신으로

바꿀껄요? 말솜씨가 좋아서 십 분이면 팔아치울 수 있을꺼예요.

완 (픽 웃으며) 하긴 날 씨름판으로 끌어들이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더라.

여경 (웃고는, 서점 앞에서 멈춰서며)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럼.

완 .... (보다가 왠지 아쉬운) 말로만?

여경 ? (본다)

완 음료수 한 잔 사. (여경의 손을 잡아끌며) 너 땜에 땀을 한 바가지 쏟았더니,

갈증 나 죽겠다.

여경 !!! (완에게 잡힌 손을 보며 당황, 주변 시선 신경 쓰며 민망)

저, 저기요. 이 손은 좀 놓고....

완 (상관 않고 끌고 가며 혼자 피식 웃는다)

S#62 깔패디엠(밤)

깔피스를 놓고 앉아있는 완과 여경.

완을 향해 대단하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보이는 모던 보이들. 이 정도쯤이야 뭐....몹시 거만한 포즈로 한 손 들어

답례하는 완. 여경, 어쩐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홱 뒤를 돌아보면

시침 뚝 떼고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던 보이들.

완 (시선 붙잡으려고 얼른) 뭐해. 얼른 마시지 않고.

여경 ... (말없이 자신의 음료를 완이 앞에 밀어준다)

완 왜 맛이 없어?

여경 한 끼 식사를 못해 풀죽을 끓여먹는 사람이 조선 땅에 한 둘이 아니고,

완 (아 씨...또 시작이다, 짜증스러운 위로)

여경 (E) 고무신 하나가 없어, 거친 흙 땅을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지천인데,

여경 이런 허여멀건한 양 음료 하나에 아까운 돈을 쓸 순 없어요.

완 내가 사면되잖아 내가.

여경 이 돈이면 고무신이 다섯 켤레,

완 (O.L) 열 켤레 사줄게 내가, 열 켤레

여경 (테이블을 쾅!치며)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흠칫! 놀라는 손님들! 일제히 완과 여경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여경 (벌떡 일어나) 나는 도무지 여기 모인 사람들의 가치관이 이해가 안가요.

당신들처럼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인텔리들이 조금만 힘써주면 조국이,

완 (짜증나서) 편견의 벽이 아주 만리장성이구만.

여경 편견이라구요?

완 어떻게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하나. 겉으룬 우리 옷을 입고, 우리 것을

사랑하는 척 면서 천황페하 만세를 외치는 사람이 지천이야.

독립투사의 탈을 뒤집어쓰고 변절하고, 밀고하고, 필요하면 또

애국지사인척 하는 사람이 지천이라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

여경 당신의 궤변이야 말로 만리장성이네요. 더 길어지기 전에 가겠어요.

홱 돌아서 나가는 여경. 화난 표정으로 불끈 일어나 따라가는 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아아아...안타까운 표정이 되는 모던 보이들.

S#63 깔패디엠 앞(밤)

화난 표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나오는 여경이고,

뒤이어 까페에서 나와 여경을 쫓아가려는 완인데,

끼이이익---! 완의 앞에 와서 멈춰서는 차 한 대.

차문 벌컥 열리더니, 화사한 기모노차림으로 나오는 사치코.

사치코 (환하게) 선우 상!

완 아....오랜만입니다. 근데 제가 지금 바빠서,(가려는데)

사치코 (완의 양복 자락을 붙잡으며) 잠깐.

완 (가려다가 휙! 딸려온다) 저기 제가 지금,

사치코 선우상을 위해 총독부 보안과에 책상 하나 들여놓으라고 했어요.

완 ! (보고)

여경 ! (가다가 홱 돌아본다)

사치코 책상 디자인은 내가 직접 했어요. 디자인 특성상 오동나무를 쓰려고 했는데,

그건 관짝 짜는 데 쓰는 나무라더군요. 불길해서 장미나무로 했어요. 괜찮죠?

완 (정색하고) 고맙지만 사양,

사치코 (눈썹 꿈틀) 장미나무는 사양하겠다? 역시 대단한 심미안이군요.

알았어요, 다시 오동나무로 바꾸죠.

완 책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치코 (눈썹 꿈틀) 설마 의자를 안 맞췄을까봐?

완 그게 아니라 저는 총독부에 갈, (생각이 없습니다)

사치코 방법을 모르는군요. 염려 말아요. 우리 기사를 보낼테니까.

완 그런 뜻이 아니라,

사치코 총독부에 들어가 일본제국의 선진 정치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죠?

소원대로 천황폐하와 일본제국을 위해 온몸 바쳐 일해 봐요.

완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제 어머니 생각,

사치코 조만간 내 환영파티가 있을꺼예요. 거기서 난다긴다하는 일본 관리들을

내가 전부, 몽땅, 싸그리 다, 소개 시켜드리죠.

완 마담 저는,

사치코 대신 나하고 춤 한번 춰줘요. (기사에게) 가지.

사치코의 차가 휭떠나고 나면,

완 아우 씨, 왜 남의 말을 딱딱 잘라먹고 난리,(하는데)

여경 (완 앞에 다가와서 피식 웃더니) 편견의 벽이 만리장성이라구?

완 뭔가 오해를 했나 본데 아까 그 여자는,

여경 (완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완 (놀라운 순발력으로 그 손을 턱 잡는다)

여경 (다른 주먹을 날린다)

완 (그 손 역시 잡는다)

여경 (완의 머리에 헤딩을 한다)

완 악!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는다)

여경 어머, 총독부 관리가 되실 분한테 제가 너무 버릇없이 굴었군요.

잠시나마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라고 오해했던 저를 용서하세요.

아울러 앞으로 다시 내 눈에 띄시면 오동나무 책상이 그대로 관짝이

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주세요. (하고는 홱 돌아서 간다)

완 (박치기 당한 머리 문지르며) 아우 진짜....

S#64 선우관의 집 앞(밤)

걸어와 집 앞에 멈춰서는 선우 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집을 노려보는 표정에서.

S#65 선우 관의 거실(밤)

저녁식사 중인 허영화와 선우관.

허영화 보안과장 전화 받으셨죠?

선우관 음.

허영화 왜 보자는 거예요?

선우관 또 돈 얘기겠지.

허영화 이제는 친일만이 대세인거 알죠? 만나면 덜컥 돈만 넘겨주지 말구,

흑인지 백인지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세요.

난세일수룩 사람이 줄을 잘 서야 살아 남어요.

선우관 (듣기 싫다) 완이는, 만나 봤어?

허영화 저번에 양복 한 벌 맞춰 주구 왔어요.

선우관 잘했어.

허영화 간 김에 보안과장 사모한테 인사도 시키구.

선우관 (표정 확 변하며) 당신.

허영화 아껴둬서 뭐해요. 이럴 때나 쓰지.

선우관 그렇다고 사내놈을 여자 앞에 볼모루 내놔!

허영화 이이가 근데, 볼모는 무슨, 다 저 잘되라고, (하다가) 아우, 관둬요,

말 해 뭐해 내 입만 아프지. 나 혼자 발바닥에 땀 나두룩 뛰면

뭐하냐구요 글쎄, 남자들이 협조를 해줘야 말이지.

선우관 그러지 말고 신경 좀 써. 정 붙일 곳이 있어야 집에 붙어있을 꺼 아냐.

허영화 그게 왜 내 잘못이에요. 당신 잘못이지. 어릴 때부터 그저어 민이, 우리 민이,

선우관 (표정 굳는 위로)

허영화 (E) 그저어 수현이, 우리 수현이.

선우관 (수저 탕! 내려놓으며) 계속할꺼야!!!!

허영화 (무서워서 움찔)

S#66 선우관의 거실(밤)

언제 왔는지 주방 문가 벽에 기대서서 듣고 있는 완.

입가에 피식 쓴 미소가 생기는데, 노한 표정으로 주방에서

나오던 선우관, 완을 발견하고는 멈칫 선다.

선우관 언제... 들어왔냐.

완 (피식 웃으며) 내일 또 총독부 들어가세요?

선우관 (대답 피하듯) 아직 저녁 전이면 들어가 한 술 떠라. (가려는데)

완 가시기 전에 청심환 하나 드시구 가세요 (짐짓 가볍게 피식 웃으며)

아버지까지 잃구 싶진 않으니까.

선우관 ? (보고)

허영화 (듣고 나오며) 무슨 소리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두 아니구,

갑자기 청심환은 또 뭐야.

완 (나가며) 챙겨드리세요 꼭. 젊은 나이에 든든한 돈줄 잃기 싫으시면.

허영화 (열 올라서) 저게, 말끝마다, (하다가 움찔 선우관을 보면)

선우관 (어떤 불길한 느낌에) ...

S#67 총독부 외경(낮)

마모루 (E) (반색하는)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S#68 총독부 보안과장실(낮)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관을 맞이하고 있는 마모루.

마모루 어서 오십시오. (자리로 안내하며) 이 쪽으루 앉으세요, 이쪽으루.

선우관 (앉으며) 그 동안 격조했습니다. 나랏일 돌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마모루 아이구, 말도 마세요. 요즘 경성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총독부를 상대로 도발을 해오질 않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지 않나,

민족성이 어찌나 냄비처럼 들끓는지, 조선인들 다루기가 아주 힘들어요.

선우관 (씁쓸한 표정으로 애써) 예...

마모루 사장님은 어떻습니까, (눈빛 매서워지며) 소작인들이나 공장 노동자들이

쟁의를 일으키진 않습니까?

선우관 다들 먹고살기가 힘들어 그러는 것이니,

되도록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마모루 하하하. 이렇게 물러서야. (은근한 압박) 조심하세요. 사회주의니 계급타파니

뭐니 해서 세상을 갈아엎겠다는 불온한 움직임들이 많습니다.

낌새가 보이면 바루 말씀하세요. 언제든 경찰력을 투입해드릴테니까.

선우관 주시하겠습니다. 헌데 요즘 경무국 사정은 어떻습니까.

마모루 (기다렸다는 듯, 짐짓 한숨을 내쉬며) 안 좋습니다. 한강 교량 건설에도

막대한 자금이 들어 간데다, 수력 발전소 기공이니 뭐니 해서 자금 사정이

아주 어려워요. 나라를 걱정하는 여러 유지들이 조금씩 보태고는

있습니다만,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들어가는 돈이 워낙 많다보니...

선우관 부족하나마 제가 총독부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마모루 하하하.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저희로선 한시름 더는 거지요.

(하고는 웃음기 싹 거두고) 근데 얼마나....?

S#69 보안과장실 앞 복도(낮)

보고할 서류를 넘겨보며 보안과장실로 향하고 있는 수현.

마모루 (문 열고 나오며) 그럼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선우관 (씁쓸하게) 예 그럼...

목례하고 돌아서다가 수현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리는 선우관!

수현 ...!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애써 누르며 담담하게 목례하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어르신.

마모루 오, 자네 어르신을 알고 있었나?

수현 부친께서....어르신 댁의 소작농이셨습니다.

선우관 (부들부들 떨리는 심정을 간신히 누르며 보는)

마모루 오, 그런 인연이 있었군. 그럼 혹시 자네를 후원해주셨다던 독지가분이...

수현 어르신이 맞습니다. (선우관을 향해 일본인처럼 절도 있게 목례하며)

감사드립니다 어르신. 덕분에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황국신민의 자질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모루 오오오, 훌륭하십니다. 역시 인재를 발견해내는 안목이 탁월하시군요. 하하하!

선우관 (꾹 눌러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수현 (목례 한 자세 그대로 눈을 감으며 괴로운) ...

S#70 달리는 선우관의 차 안(낮)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선우관.

노여움으로 가득 찬 눈가가 점점 붉어진다.

운전사 어디루 모실까요 어르신.

선우관 ... (가라앉은 목소리로) 완이 놈 일하는 데가 어디야.

S#71 지라시 사무실 내 암실(낮)

시합에서 오바하고 있는 완의 사진들이 현상되어 빨래처럼 쭈욱 걸려있고,

그 앞에 나란히 서있는 탁구, 왕골, 세기.

타이틀 사진 선정을 위해 꽤나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있다.

세기, 음흐....음흐흐....음흐흐흐...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어느 순간 음흐흐흐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지는 세 사람. 아예 데굴데굴 구른다.

세기 (배를 잡고 웃으며) 아이고 배야. 미치겠다 진짜, 완이 쟤 왜 저랬대니?

왕골 (거의 울고 있다) 누가 아니래냐. 특히 마지막 사진 저거 어쩔꺼야.

세기 형이 뽑아라. 나는 도오저히 웃겨서 타이틀 사진 못 뽑겠다.

탁구 (흐느끼고 있다) 니들, 특별호 기사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비밀 철저히

지켜야 된다. 완이 알면 특종이고 뭐고 다 날아가는 거야.

세기 (눈물 닦으며) 타이틀 제목은 뭘루 해. <남자는 힘!>으로 그냥 가?

탁구 아니, 좀 더 자극적으로, <S군 다 벗었다!>

왕,세 에이, 그건 사기다.

탁구 끝에 물음표 하나 찍어.

왕,세 S군 다 벗었다?

탁구 알고 보니 시합 중에 샅바(글러브) 벗었다!

왕골 (감탄하며) 오오....물음표 하나면 다 해결되는구만.

탁구 그게 바로 지라시의 생존전략이지.

세사람 (오오...감탄하다가 다시 완이 사진을 보며 하하하 웃는)

S#72 지라시 사무실 안(낮)

특종예감에 들떠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암실에서 나오는 세 사람.

언제 왔는지 긴 의자 위에 누워 얼굴에 책을 덮고 자고 있는 완을

발견하고는 헉! 놀라 벽에 붙어버린다.

세기 와....와...완이 너....어...어...어...언제 왔냐?

완 (누워있는 채로) 왜 그렇게 더듬어. 뭔 죄졌어?

세기 더...더....더...더듬긴 누가 더...더....듬었다...고 그래!

탁구 더듬어 너 지금, 심하게. (하다가 문가로 들어서는 선우관을

보고는 헉! 다시 놀라서) 어....어....어....어르신.

완 (짜증나서 얼굴을 덮고 있던 책을 치우고 일어나며) 아 거 참,

되게 더듬, (하다가 아버지를 발견하고 멈칫) 어쩐 일이세요 여긴.

선우관 ... 나가서 얘기 좀 하자. (먼저 나가고)

완 (수현을 만났음을 알겠다, 무거운 한숨)...

S#73 다방(낮)

완 (차를 마시려다가 멈칫 굳은 표정으로 본다) 방금 뭐라구 하셨어요.

절더러...누굴 만나라구요?

선우관 (찻잔 끝만 바라보는 채로 멍하니) 수현이. 이수현이 그 눔.

완 (찻잔 탁 내려놓으며) 아버지!

선우관 (보며) 니가 만나서 직접 물어봐 한 번. 아무리 생각해도 수현이 그 놈이

그럴 놈이 아니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

완 (O.L) 사정이 있었으면요. 사정이 있었으면 그 자식이 용서가 돼요?

죽은 형이 살아 돌아와요!!!

선우관 (O.L) 그 자식 입으루 인정한 건 아니지 않니. 그저 소문이었잖니.

한 번쯤은 자신에게 확인해주길 바랬을지도 모를 일 아니냐.

완 총독부 직원이예요, 아버지! 무슨 확인이 얼마나 더 필요해요!

그 자리 꿰 차려면 어떤 공을 얼마나 세워야 되는지, 아버지 정말 몰라서

하시는 소리예요?

선우관 ...

완 확인하시려거든, 아버지가 직접 하세요.

나는 죽어두 그 자식 용서 못하니까! (확 나가버린다)

선우관 (찢어지는 심정으로 앉아있다) ....

S#74 총독부 회의실 정도(낮)

쓰리고 아픈 표정으로 앉아있는 수현....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얼른 표정 가다듬고 본다.

코우지 (들어오며) 자네 종로서로 좀 가봐.

수현 사건입니까?

코우지 사건이 아니라, 없는 사건도 만들어내는, 그 잘난 조센진 새끼 좀

감시하란 뜻이야. 출세에 눈 먼 조센진들이 사건을 조작해서

공을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참 희안한 민족성이야.

수현 (피식 웃으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군요. 그건 민족성의 차이가 아니라,

인성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코우지 (눈빛 매서워지며) 조센진들은 하극상이 미덕인가?

수현 (서류 챙겨들며) 가보겠습니다. (나가는데)

코우지 (짐짓 혼잣말처럼 일본어로) 멍청한 조센진들.

수현 (비웃듯이 피식 웃으며 나가는)

S#75 고리대금 업자 암살 현장(낮)

매서운 눈빛으로 암살현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강구.

그 모습 위로 1부의 사건이 환영처럼 다시 보여지는,

(F.C) 끼이익--흙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서는 바이크.

(F.C) 탕탕탕! 고리대금업자들을 향해 총을 쏘는 혁명전사.

(F.C) 총을 쥔 손을 축 늘어뜨린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골목 안에서 나오는 인호. 그 모습 위로,

조선남 (E) 남자 아이였어요. 틀림없이 그 녀석이었어요.

그 녀석이 굉장히 빠른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걸 봤어요.

강구 (뭔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집요한 눈길로 현장을 바라보는 위로)

(F.C) 퍽! 강구의 발길질에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인호.

쌀가마니와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던 자전거.(1부 13씬의)

(F.C)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리대금업자를 노려보며.

사실이잖아!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실컷 부려먹고는 죽게 만들었잖아!

내 동생을 북간도에 팔아넘긴 것도 당신이잖아! 소리치던 인호.

강구 (눈빛 매섭게 번뜩이는데서)

S#76 종로 경찰서 안(낮)

강구 (벌컥 문을 열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서며 순사들을 향해)

지금 당장 강인호 수배 내리고, 탐인현상광고 만들어서 붙여!

김순사 (벙쪄서) 예?

강구 (상관없이) 총기가 사용된 점으로 봐서 절대 그 자식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배후세력이 있는지 조사하고, (아직 대사 남아있는데)

김순사 저기 부장님, 보안과에 보고는 올리셨는지,

강구 (O.L)(와락 김순사의 멱살을 움켜쥐며 광기로) 너 이 새끼,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김순사 (공포에 질려) 무,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나중에 추궁을 받으실까봐,

강구 (멱살을 확 풀어주고는) 지금부터 강인호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조사해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놈이 있으면 전부 잡아들여 고문 수사한다, 알았나!

S#77 쌀가게 앞 거리 (낮)

자전거 뒷좌석에 책꾸러미를 실고 상점가를 달려오고 있는 여경.

상점가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며 지나가는 여경인데,

쌀가게 주인, 쌀을 옮기다가 여경을 발견하고는,

쌀주인 나 선생, 나선생!

여경 (자전거 끼익 멈추고는 돌아본다)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쌀주인 (달려오더니 주변을 살피고는 작게) 인호 이 녀석, 뭔 일 저질렀어?

여경 (흠칫하지만) 이....인호가 왜요?

쌀주인 방금 전에 순사가 한 명 왔다 갔어. 여기 관둔지 오래라구 하니까는,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반드시 신고하라대.

여경 시...신고요?

쌀주인 (끄덕이고는) 살인용의자라나 뭐라나.

여경 !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S#78 해화당 서점 안(낮)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서던 여경, 그대로 굳어버린다.

검열하듯 여유 있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는 강구.

읽고 있던 책을 탁! 덮고는 여경을 보며 비열하게 피식 웃는다.

강구 오랜만입니다. 나여경 선생.

S#79 종로경찰서(낮)

인호의 초상화(몽타쥬)를 그리고 있는 이순사와 지켜보는 순사들인데,

들어서는 수현. 순간 작업 중이던 초상화를 후다닥 감추고는 일어나

(*강구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수사이므로) 경례를 올려붙이는 순사들.

김순사 (당황해서) 오....오셨습니까?

수현, 문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뭉치를 발견하고 펴서 본다.

인호의 초상화를 보고는, 의미를 알 수 없게 피식 웃는 수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에 오히려 더 긴장하는 순사들.

김순사 아...안 그래도, 지....지금 막 보안과에 막 보고를 올리려고....

수현 (담담한 표정으로) 이강구 순사부장 지금 어디 있나.

S#80 해화당 안(낮)

마치 쥐를 잡아다놓은 고양이처럼 여유 만만한 태도로, 괜히 서점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괜히 이것저것 건드려 보며 질문을 하는 강구.

그럴 때마다 강구의 손에서 물건을 빼앗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대답을 하는 여경.

강구 강인호가 여기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야.

여경 한 달두 넘었다고 했잖아요.

강구 (무시하고) 그 자식 살인사건이 있던 날 밤 여기 왔었지?

여경 몇 번을 말해요! 한 달 전부터 야학에 나오지 않았다구.

강구 (무시하고) 어디로 빼돌렸어 그 자식.

여경 그건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예요!

강구 (매섭게 보며) 뭐야?

여경 그 아이에게 도둑 누명을 씌웠다면서요! 경성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죽지 않을 만큼 때렸다면서요! 당신이라면 그런 도둑누명을 쓰고 계속

이곳에 살고 싶겠어요? 그 애를 떠나게 만든 건 당신이잖아요!

강구 (와락 여경의 멱살을 움켜쥐며) 여전히 기고만장이군.

(살벌하게 위협적으로) 끌고 가서 고문이라도 해야 불겠어!!!

수현 (E) 그 손 놓고 얘기하지.

강구 누구얏! (돌아보는 순간 표정 싸늘하게 굳고)

여경 ! (수현을 발견하고는 표정 환해지는)

수현 감정이 섞인 수사는 위험하다고 분명히 경고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비식) 역시 흥미 내지는 관심입니까?

수현 하극상을 보이는 부하직원에 대한 경고라고 해두지.

여경 ? (부하직원? 경고? 뭔가 이상한데)

수현 나여경씨.

여경 네....

수현 총독부 보안과에서 나온 이수현입니다. 살인사건의 참고인으로 종로서까지

임의동행 부탁드립니다.

여경 ! (충격으로 멍해지는데서)

S#81 명빈관 외경(낮)

아아아아악----완의 비명소리.

S#82 명빈관 완의 방(낮)

엎드려 누워있는 완의 등에 올라타 안마를 해주고 있는 근덕.

근덕이 팔을 꺾을 때마다 죽겠다고 비명 지르는 완이고.

근덕 아니 도대체 무슨 시합을 어떻게 하셨길래,

근육이 이렇게 돌뎅이처럼 꽝꽝 뭉쳤습니까?

완 감정 실지 마 너. 감정 실지, (하다가 다시) 아아아아아악----!

근덕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도련님이 이 정도 목숨을 걸었으면,

상품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뭐, 집 한 채 정도 됩니까?

완 그 정도에 목숨을 걸었겠냐 내가.

근덕 (힉! 놀라서) 집 한 채보다 더 한 상품이 도대체 뭔데요?

완 고무신.

근덕 (김빠져서) 농담도 참, (완의 팔 꺾고) 잘 하십니다.(꺾는)

완 아아아아악----! (벌떡 일어나며) 죽을래 진짜? (하는데)

송주 (문 벌컥 열고 나타나며) 그만 좀 해. 누가 들으면 독립투사 잡아다

고문하는 줄 알겠어. 일등도 아니고 꼴랑 이등해놓고는 엄살은.

(문 탁 닫고 가고)

근덕 (한심한 표정으로) 꼴랑 이등하셨어요?

완 (자존심 상해서 팍 일어나 나가며) 저 여인이 진짜!

S#83 명빈관 마당(낮)

방에서 나오는 완, 송주를 따라가며,

완 도대체 누구냐. 니 돈 받구 내 뒷조사하는 인간이.

송주 착각도 지나치셔라. 그딴 일에 피같은 내 돈을 왜 써.

가만 앉아 있어두 저절루 귀에 들어오는 정보를.

완 (방 쪽을 향해) 근덕이 너 아냐?

근덕 (이불 들고 나와 털며) 생사람 잡지 마세요. 기껏 안마해줬더니만.

완 그럼 영랑이냐? (하는데)

영랑 (문 벌컥 열고 들어서며) 언니! 송주 언니! 소문 들었어요?

완 (허! 거보라는 듯) 영랑이 맞구만?

영랑 조마자 언니가 경찰서에 연행돼 갔대요.

완 ! (본다)

송주 또 생사람 하나 잡는군. 무슨 혐의로 잡아들인거래 또.

영랑 그게 뭐 중요해요. 개강구한테 잡혀갔다는 게 중요한 거지.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사람이잖아요.

송주 (완에게) 가봐야 되는 거 아냐?

완 내가 왜?

송주 친일파 아버지 뒀다 언제 써? 이럴 때 실력 좀 발휘해봐.

완 글쎄 내가 왜.

송주 그새 내기를 잊었어? 지금만큼 절호의 찬스가 어딨어.

한방에 백마 탄 왕자가 될 수 있는 기회잖아.

완 됐다고 본다. (방으로 가려는데)

영랑 개강구한테 끌려갔으니 팔 하나 정도는 못 쓰게 되지 않을까요?

완 (흠칫!)

근덕 남은 평생을 누워 지낼 수도 있지.

완 (섬뜩!)

송주 아깝네. 이쁜 아가씨였는데.

완 (조용히 대문가로 향한다)

송주 어디 가?

완 사무실에 간다 왜! (하고는 나간다)

송주 (완 쪽을 보며) 종로서로 간다에 쌀 한 섬 걸겠어.

근덕 (완 쪽을 보며) 쌀 한 섬 받고, 한 섬 더.

S#84 종로서 취조실(낮)

꼿꼿한 자세로 자신을 취조하는 수현을 노려보고 있는 여경이고,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취조를 지켜보고 있는 강구.

수현 강인호 학생이 평소 민환식에 대한 분노나 원망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여경 (피식 웃으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던 말, 취소해도 되겠습니까?

수현 사건이 있던 당일 날 그 학생이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여경 (고개 외로 홱 틀며) 아니오. 누구처럼 겉과 속이 다르질 않아서,

옳은 말만하고 바른 행동만 했던 아이였습니다.

수현 나여경씨!

강구 (옆에서 보다가 열불 터져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로 해선 들을

계집이 아닙니다! (여경을 와락 잡아 일으켜 세우며) 죽지 않을 만큼

밟아놔야,

수현 (벌떡 일어나며) 그 손,

하는 것과 동시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여경을 움켜쥔 강구의 손을

확 잡아채서 뒤로 꺾어버리는 완.

수현 ! (보고)

여경 ! (보고)

완 (시선은 수현을 보며, 낮지만 위협적으로) 내 여자한테 손대지 마.

- <경성스캔들> 3부 끝 -

.경성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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