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3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밝은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희도) 김민채!
[민채를 탁탁 치며] 일어나, 어?
김민채, 일어나!
김민채
김민채, 일어나, 응?
일어나
아직도 자면 어떡해 11시가 다 됐는데, 어?
일어나! [말소리가 울린다]
[희도의 웃음]
김민채, 안 일어나?
(중년 희도) 아직도 자면 어떡해 11시가 다 됐는데
아, 뭐야
(중년 희도) 빨리 안 일어나?
오늘 도수 치료 받으러 가는 날인 거 잊었어?
(민채) [한숨 쉬며] 발레 안 할 거라고
치료 이제 안 받아도 된다고
(중년 희도)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입에 달고 살면서
뭘 안 받아도 돼!
발레는 때려치워도 걸어는 다녀야 할 거 아니야
빨리 준비하고 나와
[한숨]
열여덟의 나희도라니
나 너무 과몰입인데?
[중년 희도의 한숨]
(중년 희도) 짐도 제대로 못 싸는 게 가출은, 염병
아니, 외할머니 집에 숨는 게 가출이 성립은 돼?
아, 빨리 안 일어나!
(재경) 민채 발레 너무 오래 쉬는 거 아니야?
저러다 몸 굳으면 어떡해?
나 펜싱 할 땐 그만두게 하려고 안달이더니
민채는 아주 그만둘까 걱정이네, 아주
민채는 잘하잖아
[기가 찬 숨소리]
나는 못했네
못해서 아주 한국 펜싱 역사를 썼네, 아주
(재경) 세상이 시끄럽다, 어?
[재경의 한숨]
[민채의 아파하는 신음]
(치료사) 어유, 전보다 많이 긴장된 거 같은데요?
뭐 스트레스받는 일 있었어요?
(중년 희도) 아무도 스트레스 안 주는데
자기가 사서 받아요
[치료사의 웃음]
(치료사) 나희도 선수께서 재활 쪽으론 워낙 전문가라
케어 잘되고 있었는데
(중년 희도) 나희도 선수 말고 민채 엄마라고 불러 줘요
그것도 스트레스래요
[중년 희도와 치료사의 웃음] (민채) 아, 저 그만할래요
(치료사) 에이 다 끝나 가요, 좀만 참아요
(중년 희도) 복에 겨워 가지고
나 때는 이런 게 어디 있냐?
(민채) 아, '나 때는' 좀 그만해
[뿌드득] [아파하는 신음]
(중년 희도) [한숨 쉬며] 저 입은 못 고치나?
좀만 참아
끝나고 너 좋아하는 샐러드 가게 가
(민채) 좋아하는 샐러드는 무슨
아, 샐러드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햄버거 먹을 거야
감튀 포함 라지 세트로
콜라도 제로 말고 오리지널로 마실 거야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중년 희도) 김민채 너 진짜 발레 때려치울 거야?
[한숨]
엄만 왜 안 때려치웠는데?
펜싱, 엄만 심지어 못했잖아
(중년 희도) 네 할머니가 그래? 나 못했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중년 희도의 민망한 웃음]
(민채) 아니, 뭐, 그런 거 같아서
왜 안 그만뒀어?
좋았으니까
(중년 희도) 칼 들고 피스트 위에 서면
심장이 뛰었으니까
[밝은 음악] [민채의 한숨]
(민채) 어? 비밀번호 뭐지?
(이진) 문제 바뀌었네
[다가오는 발걸음]
[의미심장한 효과음]
1710, 1710
1710, 1710, 1710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이진) 1710
화장실 비밀번호 바뀜
어제 행복했던 값
[신문을 툭 놓는다]
[가쁜 숨소리]
[이진의 휘파람]
[가쁜 숨을 고른다]
안녕하세요
(이진) 안녕하세요
[강조되는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예?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뭐야? [힘주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 티 뭐예요?
(이진) 아, 이거?
그, 고등학교 때 동기들끼리 맞춘 티예요
나도 그 학교 나왔거든
[흥미로운 음악]
(승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TYBS 24기 프로듀서 지승완입니다
[흥미로운 음악]
몇 기라고?
24기입니다
[한숨]
(이진) 반갑다
나 20기 아나운서 백이진
네? 백이진이요?
백이진 선배님이세요?
집 잘산댔는데?
[멀리서 개가 짖는다]
과거형이야
망하셨어요? [흥미로운 음악]
[당황한 숨소리]
(승완) 죄송합니다
(이진) 야, 너 지금 등교하는 거면
나 15분 안 기다리고 샤워해도 되지?
(승완) 당연하죠!
앞으로 그냥 하고 싶으실 때 막 다 하셔도 됩니다
그럼 안 되지
물 부족 국가인데
[한숨 쉬며] 세입자가
(이진) 어?
눈치를 보면서 써야지
잘 가고
[절망 섞인 한숨]
(찬미) 조혜원 선수가 부상 때문에 대표 팀에서 빠진다며?
어디 부상이고?
(유림) 무릎 연골판이 찢어졌대요
아이고야, 그, 1년짜리네
그러면 대표 팀 한 명 빈자리는 9등이 그냥 올라가나?
(유림) 아니요, 다음 달에 국가 대표 평가전 열어서
충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시합을 열겠다?
(찬미) 시합을 열겠다?
그러면은 전체 랭킹 1등부터 8등까지가 국가 대표고
9등부터 16명까지가
평가전 나갈 수 있다 이 말이네, 지금, 그자?
그럼 몇 등이고?
24등까지입니다
(찬미) 24등
뭐, 24등이면은 뭐…
느그 중에는 뭐 해당 사항이 없다, 그자?
[부원들의 한숨]
나희도
니는 전체 51등 중에 몇 등이고?
26등입니다
(찬미) 26등?
카, 아깝다
[발을 탁 구르며] 꼴랑 2등밖에 차이가 못 나나?
우짜겠노, 하, 쯧
그래도 뭐
여기서 고유림 다음으로 니가 제일 잘한다
오늘은 수업 일수 채워야 되는 날이니까
오전에 각자 교실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밥 묵고 일로 다시 모인다이
(부원들) 네
(찬미) 그래
대답 소리!
(부원들) 네!
[수업 종이 울린다] [학생들이 시끌시끌하다]
[희도가 지퍼를 직 연다]
[희도가 필통을 탁 내려놓는다]
[희도가 지퍼를 직 닫는다]
(학생1) 유림, 사인 좀 해 줄래?
[유림이 살짝 웃는다]
[유림이 펜을 달칵 누른다]
- (유림) 이름으로 해 줘? - (학생1) 어
뭐야, 같은 반이네
(지웅) 나희도
[흥미로운 음악]
고유림이랑은 좀 친해졌어?
좋아하는 선수랑 같이 훈련하면 행복하겠다
[희도의 한숨]
1교시 뭐야?
[문이 스르륵 열린다]
(지웅) 국사네
(교사) 종 쳤는데 서 있는 놈들 뭐야?
얼른 안 앉아?
아, 내년이면은 고3인 놈들이 말이야
아직도 뭐가 뭔지 현실 파악 못 하지? 어?
쯧, 자, 책 펴!
75쪽
교과서 없는 놈들은 뭐야?
고유림, 아무리 펜싱부라도
수업 들어올 때는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너 칼 없이 경기 나가?
죄송합니다
(교사) 펜싱부라고 예외 없어
복도 나가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어
또 교과서 없는 놈 있어? [문이 스르륵 열린다]
[희도의 한숨]
(지웅) 죄송합니다
[흥미로운 음악]
[문이 스르륵 닫힌다]
참 나
(교사) 자, 오늘 통일 신라 사회
통치 구조…
(지웅) 나 기억하지?
(유림) 어
(지웅) 내 이름도 기억해?
(유림) 뭐였지?
7반 이쁜이밖에 기억 안 나
문지웅
아, 문지웅
어, 유림아, 왜?
[피식 웃는다]
[함께 웃는다]
(지웅) 금메달 따면 무슨 기분이야?
(유림) 같이 무릎 꿇고 손 들고 앉아 있으면서
뭐 그런 질문을 해?
(지웅) 그럼 내 기분도 물어 줘
금메달리스트랑 같이 무릎 꿇고 손 들고 앉아 있는 기분
[유림이 피식 웃는다]
무슨 기분인데?
(지웅) 째져 [함께 웃는다]
[발랄한 음악]
[유림의 아파하는 숨소리]
왜, 불편해?
아, 나 지금 발목 부상이 살짝 있어 가지고
(지웅) 선생님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유림 선수가
이 발목 부상 때문에
꿇어앉는 자세는 조금의 무리가 간다는데요
선생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서 손 들고 있으면 안 됩니까?
[작은 목소리로] 야
(지웅) 괜찮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아
선생님?
(교사) 아주 그냥 편하게 하세요, 예?
[학생들이 킥킥거린다]
[희도의 어이없는 숨소리]
[지웅의 휘파람] [유림이 피식 웃는다]
[발랄한 음악]
(유림) 고마워
(지웅) 맞지?
7반 예쁜이
하는 짓이 예쁘다고
(유림) [피식 웃으며] 치
근데 넌 왜 교과서가 없어?
(지웅) 진짜 중요한 건 교과서에 없어, 복도에 있지
[지웅이 피식 웃는다]
[글씨를 탁탁 적는다]
(희도) 국가 대표 되고 싶다
[희도의 한숨]
[한숨]
펴 봐 [승완이 살짝 웃는다]
(승완)
- (유림 모) 오랜만에 왔네? - (승완) 네
[학생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유림 모) 많이 먹어
우리 전교 1등
(승완) 감사합니다
[멀어지는 발걸음]
너 전교 1등이야?
아, 재능이야 [물소리가 솨 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네가 펜싱 잘하는 거랑 비슷해
[어이없는 숨소리]
넌 늘 대단한 걸 별거 아닌 듯이 말한다?
진짜 대단한 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진짜 대단한 게 뭔데?
모르지
근데 그게 뭐든 난 대단한 걸 할 거야
진짜 재밌고 진짜 위대한 거
[기대하는 숨소리]
기대된다
나도 기대돼, 내가 뭘 할지
일단 얼른 먹어, 여기 맛있어
(희도) 여기 맛있지
(승완) 와 봤어?
(희도) 응 [탁탁 써는 소리]
토요일마다 왔었어
[잔잔한 음악] (유림) 다녀왔습니다
(유림 모) 어, 우리 딸 왔어? [유림의 웃음]
오늘도 고생했네
(유림) 뭐 도와줄까? 설거지하면 돼?
(유림 모) 아니야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
토요일은 딴 애들처럼
훈련 좀 일찍 끝내고 쉬면 오죽 좋아?
우리 엄마도 토요일은 일찍 끝내고 쉬면 참 좋겠다
(유림 모와 학생2) - 아유, 얼른 들어가 -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 (유림) 내가 할게 - (유림 모) 너 피곤해, 들어가
[모녀가 아웅다웅한다] (학생3) 못 들은 거야? 못 들은 척하는 거야?
(유림 모) 다음에, 다음에 [유림의 웃음]
- (유림) 가위바위보 하자 - (유림 모) 무슨 가위바위보…
- (유림) 내가 지면 시켜 줄게 - (유림 모) 알았어
(유림 모와 유림) 가위바위보
[모녀가 화기애애하다] 단무지는 셀프
(희도) 저기 적힌 거 안 보여?
(유림) 밥은?
(유림과 유림 모) - 밥, 밥해 줘, 내가… - 너 쉬어, 들어가서 쉬어, 진짜
(유림) 아, 나 진짜 안 피곤해
(유림 모) 너 왜 그러니? 진짜 엄마 말 들어
(유림) 어어?
[한숨]
(승완) 그…
내가 왜 점심 같이 먹자고 했냐면
너 백이진 선배랑 아는 사이라 그랬지?
(희도) 응
그 선배랑 무슨 사이야?
글쎄?
행복을 추구하는 사이?
친구라는 소리잖아
(승완) 잘됐다
내가 우리 집 셋방 사는 사람한테
몇 번 지적질을 좀 했거든?
근데 그 사람이 우리 방송부 20기 백이진 선배였어
뭐?
네가 백이진 집주인 딸이란 얘기야?
야, 나 그 동네 살아
- 아, 진짜? - (희도) 어
(승완) 나 원래 학교 근처 살다가 그 동네 이사 갔는데
[탄성]
[헛기침하며] 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방송실 왔을 때
우리 방송부의 유구한 꼰대 문화 직접 봤지?
(희도) 응
(승완) 군기가 열라 세단 말이야?
한 학년 선배도 무서워 죽겠는데
심지어 눈도 못 마주치는 졸배
졸업 선배한테 개긴 거야, 내가
나 어떡해?
에이, 걱정하지 마
백이진 잔소리가 많아서 그렇지 착해
꼰대 성격 전혀 아니야
[웃음]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진) 나는 스페셜불고기버거, 넌?
(이현) 나는
나한테 딱 어울리는 IMF버거
[부스럭거리며] 야 메뉴 통일 안 해?
아, 꼰대
(이현) 왜 물어봤어?
(이진) 저희 이거 스페셜불고기버거
세트로 두 개 주세요
[포스 조작음] (종업원1) 네
야, 나오면 갖고 와
[돈통 열리는 소리] [힘주는 숨소리]
[동전이 잘랑거린다]
- (종업원1) 잔돈이요 - (이현) 네
씁, 키가 좀 컸나?
(종업원2) [쟁반을 탁 놓으며] 주문하신 버거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학생4) 어? 백이현
여기 웬일이냐?
[학생4의 비웃음]
IMF버거 먹으러 왔냐?
[학생들의 웃음]
(학생5) 이 새끼 스페셜버거 시켰어
돈도 없는 게
[학생들의 웃음] (학생4) 와, 진짜네
오늘은 그냥 가라 나 쪽팔리기 싫다
(학생4) 와, 씨, 무섭다, 어?
- (학생5) 누구한테 쪽팔리는데? - (이현) 아, 가라고
(학생6) 어디서 깝쳐!
(이진) 야, 뭐야?
[이진의 한숨]
너희들이구나
내 동생 이마에 상처 낸 새끼들이
(학생4) 아, 도, 동생이요?
(이진) [헛웃음 치며] 왜, 왜?
왜, 왜, 뭐, 이현이한테 형 있는 줄 몰랐어?
있고 없고가 차이가 있나 보지?
왜 차이가 있을까?
부모님은 안 무서운데 형은 왜 무서울까?
일로 와 봐
어?
너희들도 아는 거야
형은 화나면 즉시 너희들을 팰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맞아
한 번만 더 내 동생 몸에 상처 보이면
최원환, 김종찬
[명찰을 탁 떼며] 황형석
난 너희 담임 쌤이나 부모님한테 이르는 거 없어
그냥 내가 직접 죽인다, 너희
(학생4) 네
[한숨]
(이진) 일로 와
- (이진) 일로 와 봐 - 네?
일로 와 봐
(이진) 이것도 이현이한테 돌려주고
너 얼굴 까매서 안 어울린다
(학생4) 네, 죄송합니다
똑바로 사과해
(학생4) [한숨 쉬며] 죄송합니다
(이진) 가, 빨리
(학생6) 죄송합니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진의 답답한 숨소리]
(이진) 아니, 그러면 뭐
형이 뭘 어, 어떻게 했어야 되는데?
[한숨]
그냥 둬? 네가 어떻게 되든 말든?
애들 상대로 그러고 싶어?
(이진) 야, 애들이고 나발이고 죽여 버리고 싶었어
네 얼굴 여기 상처 낸 거 생각하면
진짜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저기요
[한숨 쉬며] 저 사춘기입니다
이렇게 막 집착이 심하시면은, 막
열라 싫어요
알았어
아휴, 형이 잘못했어
근데 다시 한번 걔네들이…
[못마땅한 소리]
(이진) 알았다고
[이현이 콜록거린다]
[이진이 입소리를 쩝 낸다] [이현의 한숨]
[한숨]
뭐, 요새 별일 없어?
별일?
있지
뭔데?
(이현) 그냥
[한숨]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쓸쓸한 음악]
어쩌겠어
[희도와 예지의 가쁜 숨소리] [탁탁 치는 소리]
(예지) 언닌 아쉬울 거 같아요
2등만 높았어도
국가 대표 평가전 나갈 수 있었잖아요
[버저가 삐 울린다]
저랑은 아무 상관 없는 얘기지만
나랑도 아무 상관 없는 얘기야
그래서 너랑 나랑 같아
[희도의 웃음]
[버저가 삐 울린다] (예지) 치, 언닌 저랑 클래스가 다르죠
경기해 보면 알아요
[달려가는 발걸음]
[탁 치는 소리]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가쁜 숨소리]
예지야
넌 국가 대표 되고 싶어?
사실 잘 모르겠어요 되고 싶은지도 [탁탁 치는 소리]
될 수 있는지도
[버저가 삐 울린다]
언니는요?
난
꼭 될 거야
지금은 못 하지만
언젠가는 꼭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버저가 삐 울린다]
야
[버저가 삐 울린다]
근데 저 선배 말이야
(희도) 왜 야간 훈련 못 하게 해?
전에 야간 훈련 하는데 엄청 지랄하더라
자기들보다 잘하는 꼴
열심히 하는 꼴 보기 싫어서 그래요
단지 그 이유야?
그냥 남 잘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희도) 코치 쌤한테 말하면 안 돼?
(예지) 전에 한 번 그랬다 전체 집합 걸렸어요
밤 11시까지 기합받았어요
(희도) 와, 진짜 어이없다
[한숨]
[한솔의 가쁜 숨소리] (한솔) 빅뉴스예요, 빅뉴스!
오늘 '풀하우스' 12권 풀린대요!
[유림의 놀란 숨소리]
- (예지) 진짜? - (희도) 진짜?
[경계하는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유림의 다급한 탄성]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한숨]
(유림) 엄마!
이진 오빠 일하는 데 전화번호 받아 놓은 거 있지?
어, 있지 [유림의 가쁜 숨소리]
(유림 모) 근데 너 오늘
야간 훈련까지 한다 그러지 않았어?
전화번호 빨리 줘 봐
[버스 엔진음]
[버스 문이 쉭 닫힌다]
[달려가는 발걸음]
[강조되는 효과음] [남자1의 신음]
(희도) 아유, 죄송합니다!
[강조되는 효과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흥미진진한 효과음] [희도의 가쁜 숨소리]
'풀하우스' 12권
아, 어…
나왔는데 다 나갔어
[당황한 숨을 들이켠다]
[입소리를 쩝 낸다]
12권이 나왔는데 [탁탁 치는 소리]
[가쁜 숨을 내쉬며] 내가 올 줄 몰랐어?
우리 사이가 이 정도밖에 안 됐어?
미안해
반납되면 바로 빼놓을게
[한숨]
(이진) 그, 대신 '드래곤 라자' 볼래?
요즘 인기 되게 많아
[허탈한 숨소리]
그래, 알았어, 어디 있어?
기다려, 내가 갖다줄게
[한숨]
[레이더 작동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강조되는 효과음]
[싸늘한 효과음]
[긴장되는 효과음]
(이진) '드래곤 라자'가…
동작 그만
(희도) 나 지금 피가 식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체험하고 있거든?
[긴장되는 음악] 설명해
[입소리를 쩝 낸다]
아니, 그게…
[한숨]
[유림의 가쁜 숨소리]
(유림) 오빠, 내 12권!
[긴장되는 효과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가쁜 숨소리]
[멀리서 개가 짖는다] [출입문이 삐걱거린다]
뭐야?
너야?
네가 빼 달라고 한 거야?
(희도) 백이진, 똑바로 얘기해
쟤가 빼 달라고 한 거야?
(유림) 둘이 아는 사이야? [희도의 한숨]
무슨 사이인데?
(희도) 보면 몰라?
책 대여점 직원하고 단골손님 사이잖아
근데 지금 그 직원이 단골손님 물 먹이고
딴 동네 사람한테 인맥 장사 한 거고!
얘들아, 진정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희도의 답답한 숨소리] (유림) 설명할 게 뭐 있어?
내가 먼저 전화해서 예약했잖아
책 대여점에 예약이 어디 있어?
무조건 선착순이지!
[희도가 씩씩거린다] (이진) 야, 그렇게 치면
너도 '풀하우스' 11권 내가 직권 남용 해서 빌려준 거야
(희도) [버럭 하며] 직권 뭐?
알아듣게 얘기해
(유림) 아, 그냥 오빠가 선택해
누구 빌려줄 거야?
나야? 얘야?
(희도) 아니, 선택하지 마
무슨 권리로?
이건 누가 봐도 내가 가져가는 게 맞지!
(이진) 아, 그만! 진짜 너희 자꾸 그러면
내가 그냥 이거 다 찢어 버린다!
- (유림) 아, 미쳤어? - (희도) 미쳤어?
얘, 얘들아, 이거, 진정… [유림의 한숨]
(이진) 이거, 야 꾸겨지면 안 된다, 이거
야, 야, 야, 힘 빼 봐
아이, 진짜, 야, 얘들아
야, 야, 진짜 부탁할게, 미안해
[희도가 씩씩거린다] [유림의 한숨]
아이고, 아이고, 참
[한숨]
그, 우선 내가 원칙을 어긴 거는 인정할게
[심장 박동 효과음] 두 사람한테 이런 결과를 만든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아, 근데 유림아
[심장 박동 효과음]
미안한데 이 가게는 [무거운 효과음]
어쩔 수 없이 회원제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심장 박동 효과음] 이 '풀하우스'는…
[무거운 효과음]
나희도한테 빌려줘야 될 거 같아
[발랄한 음악]
(희도) 나이스!
그래야지
내가 여기 쓴 돈이 얼마인데, 응?
[희도가 책장을 사락거린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미안해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넌 경쟁업체 회원이잖아
[희도의 놀란 탄성]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이진) '드래곤 라자' 볼래? [유림의 한숨]
요즘 인기 되게 많아
(유림) 아, 진짜!
(이진) 아, 예, 여보세요 '풀하우스' 12권이요?
[한숨] 예, 바, 방금 나갔는데, 예
[풀벌레 울음]
[이진의 헛기침] [멀리서 개가 짖는다]
(이진) 버스 타면 한 20분 정도 걸리나?
(유림) 나희도랑 얼마나 친해?
되게 친해 보이던데
그냥 미안한 일이 있었어
고마운 일도 있었고
걔 우리 학교 펜싱부로 전학 온 것도 알아?
알지
그 전학 가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도 알고
(유림) 나 걔 싫어, 불길해
그러니까 오빠도 걔랑 친하게 지내지 마
(이진) 그건 좀 유치한데?
오빠 내 첫사랑이었어
그러니까 그 정도는 해 줘
'첫사랑이었어'?
[이진의 헛웃음]
과거형이야? 지금은 왜 아닌데?
어떤 면이 싫어진 건데? 우리 집 망해서?
야
너 중3 때 얘기하는 거지?
(이진) 네 첫사랑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줄까?
[강렬한 음악]
[자동차 경적] [자동차 엔진음이 요란하다]
(이진) 유림아, 연습 가지?
타, 태워 줄게
네 첫사랑은 내가 아니라
내 스포츠카였어
(이진) 그 차 타기 전까지
나 동네 한량 보듯 한심하게 봤잖아
아니야!
(이진) 맞아
[잔잔한 음악] (유림) 맞아
이씨, 짜증 나
그럼 내 첫사랑이 사람이 아니라는 거잖아
[이진이 피식 웃는다]
(이진) 야, 뭐가 짜증 나? 어?
네 첫사랑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건데
설레는 일 아니야?
그런가?
[이진이 피식 웃는다]
[희도의 웃음]
[웃음] [전화벨이 울린다]
[힘주는 신음]
[전화기 조작음]
여보세요
(찬미) 나희도?
네, 맞는데 누구세요?
(찬미) 나 양찬미
[힘주는 신음]
쌤
저 26등인데, 왜 그러세요?
다음 달 국가 대표 평가전에 나갈 선수가
우리 팀에서도 생깄다
나희도
네?
니다
(희도) 제가 왜요?
(찬미) 니 등수 앞으로 두 명
결원이 생기 뿠다
IMF로 어중간한 펜싱부들 폐지되면서 그만둔 선수 한 명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만둔 선수 한 명
그래 갖고 26등인 니가 나가게 돼 뿠다
니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와 뿠네
축하한다
(예지) 축하해, 언니 [희도의 얼떨떨한 숨소리]
[예지의 웃음]
시대가 니를 돕는다
나희도
[감성적인 음악]
[유림의 한숨]
[풀벌레 울음]
(코치)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시대가 니를 돕는다
나희도
[다가오는 자전거 바퀴 소리]
[자전거 경적]
[희도의 놀란 탄성]
[멀리서 개가 짖는다]
[가쁜 숨소리]
나희도, 몸조심해
너 국가 대표 평가전 나가는 몸이야
[가쁜 숨을 고른다]
[씩씩거린다]
(남자2) 20대 청년이고요
이름이 백이진인데
여기 사는 게 맞습니까?
(승완 모) 어, 저기 셋방 사는 청년 찾아오셨나 보다
그런 이름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일 가고 집에 없어요
(남자2) 아…
저, 일하는 데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승완 모) 어, 저기…
저기 역으로 가는 길에 책방이 하나 있는데
[놀란 숨소리] 이렇게 돌아서 가시면…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희도) 백이진, 빨리 숨어
왜, 무슨 일인데?
너희 집 앞에 빚쟁이 아저씨 찾아왔는데
주인집 아줌마가 너 여기서 일한다고 말했어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희도) 카운터 내가 볼 테니까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 [이진이 당황한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희도)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서 오세요'
[희도의 긴장한 숨소리]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어서 오세요!
아,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판타지물은 이쪽 하이틴 로맨스물은 이쪽
요즘 '풀하우스'가 인기인데 그건 보셨어요?
저, 혹시 여기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이 있다던데…
청년이요?
여기 직원은 저 하나뿐인데
'풀하우스' 빌려드릴까요?
아니요
예, 알겠습니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문이 덜컥 닫힌다]
갔어, 백이진, 이제 나와도 돼
[문이 달칵 열린다]
[헛기침]
뭐 물어봤어?
[잔잔한 음악]
(희도) [웃으며] 그래서 내가
그 아저씨한테 대뜸 '풀하우스' 추천했거든?
그러니까 그냥 가더라
[희도의 웃음]
얽히면 더럽게 얽히겠다 싶은 거지
아마 내 눈의 광기를 읽었을 거야
약간 센티해 보이네, 백이진 군?
(이진) [한숨 쉬며] 그냥
나는 이제 정말 어른이다 싶어서
(희도) 왜?
갑자기 보호자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도 내 동생한텐 꼭 돼 줄 거야
보호자
슬러시 먹으러 갈까?
나 아직 갚을 돈 2천 원 남았잖아
갚은 걸로 해
오늘 도와줬잖아
에이, 돈은 돈으로 갚는 거고
마음은 마음으로 갚는 거야
(희도) 내가 지금 마음으로 갚을 기회를 줄게
[한숨]
축하해 줘
나
운 좋게 국가 대표 평가전에 참가하게 됐어
진짜?
[목을 가다듬는다]
(이진) 축하해, 잘됐다
(희도) 국가 대표 되는 건 아니지만
평가전에 나간다는 거만으로도
[벅찬 숨을 내쉬며] 좀 설레
나 처음 나가 보거든
넌 좀 뻔해
뭐가?
잘할 게 보여
넌 모르겠지만
어, 전혀 모르겠어
[희도의 들뜬 숨소리]
(희도) 꼴등만 안 했으면 좋겠어
두고 봐
[이진이 피식 웃는다]
[쪽지를 바스락거린다]
[떨리는 숨소리]
[달려가는 발걸음]
(희도) 응?
(이진 부) 얼굴 보고 가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구나
[잔잔한 음악]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다음에 다시 들를 테니 그때까지 건강해라
보고 싶구나, 아빠가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희도의 가쁜 숨소리]
[초조한 숨소리]
[안내 방송 알림음]
(안내 방송 속 직원1) 승객 여러분
군산행 버스가 출발 예정입니다
(이진) 저, 저, 저기 군, 군산 가는 버스 어디서 타요?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직원2와 이진) - 16번 승차구로 가시면 돼요 - 16…
[이진의 다급한 숨소리]
[가쁜 숨소리]
(이진) 아씨…
[가쁜 숨을 고른다]
[다가오는 버스 엔진음]
[가쁜 숨소리]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 아빠
잠…
잠시만요!
잠…
[힘겨운 숨소리] 아!
[가쁜 숨을 몰아쉰다]
[벅찬 숨소리]
아, 아빠
[가쁜 숨소리]
[이진 부가 훌쩍인다] [이진의 떨리는 숨소리]
[이진 부의 울컥하는 숨소리]
[떨리는 목소리로] 죄, 죄송해요
- 아까 - (이진 부) 응?
책 대여점에서 아빠 아닌 줄 알고 숨어 있었어요
그간 누군가 찾아왔던 모양이구나?
[한숨]
그런 건 다 괜찮아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어, 없어
얼굴 봐서 참 좋다, 이진아
저도요
(이진 부) 응, 그래
[훌쩍인다]
(버스 기사) 이제 출발해야 됩니다 아저씨
그래, 가야겠다
- 끼니 거르지 말고 - (이진) 네
그리고 주눅 들지 말고
(이진 부) [이진을 톡톡 치며] 그래, 갈게
(이진) [이진 부를 탁 잡으며] 아, 아빠
제가 다시 찾을게요, 우리 가족
[잔잔한 음악]
다시 모을게요
(이진 부) [울먹이며] 그래
응, 미안하다, 이진아, 응?
응? [이진의 떨리는 숨소리]
[이진이 훌쩍인다]
[이진 부가 토닥인다]
갈게
가
들어가
[훌쩍인다]
[울먹이는 숨소리]
[숨을 들이켠다]
[한숨]
[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이진의 한숨]
[버저가 삐 울린다] 저, 기사님, 문 좀 열어 주세요
[희도의 가쁜 숨소리]
[희도의 놀란 숨소리]
[희도와 이진의 가쁜 숨소리]
(이진) 다칠 뻔했잖아
넘어져서 발목이라도 나가면 어떡할 뻔했어?
미안해
너 지금 제정신이야?
얼마나 뛰어다녔길래 이 동네까지 와서 이러고 있어!
(이진) 뛰어다닐 거면 운동화라도 신든가!
위험하게 슬리퍼 신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미안해, 정말
[한숨]
안 미안해도 돼
[울먹인다]
아빠 만났어
[떨리는 숨소리]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안도하는 숨소리]
[한숨]
[희도가 흐느낀다]
[풀벌레 울음]
(희도) [살짝 웃으며] 고마워
[이진의 한숨]
(이진) 넌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찾아?
[희도가 가쁜 숨을 고른다]
우리 아빠가 이 동네를 배회하고 있을 리 없잖아
(희도)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잖아
[희도의 가쁜 숨소리]
어디서 찾았어?
(이진) 터미널
[희도의 허탈한 한숨]
(희도) 넌 되게
똑똑하구나
공부 잘했다더니 정말이야
그래
넌 참 예상대로 무식하다
(희도) 아, 맞다
이거
아까 떨어트린 거
[쪽지를 부스럭 건네받는다]
[잔잔한 음악]
나 때문에 아빠랑 못 만났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다시는 네 얼굴 못 볼 거 같았어
그게
너무 무서웠어
그럼 '풀하우스' 빌리러도 못 갈 거고
[이진의 헛웃음]
또 다른 대여점 찾아야 하고
[이진의 헛웃음]
어디 다친 덴 없어?
너 두 시간이나 뛰어다녔어
[웃으며] 두 시간이나 지났구나
[희도가 피식 웃는다]
(희도) [피식 웃으며] 웃긴다
(이진) 웃기냐?
[희도의 웃음]
압정도 없고, 집에 어떻게 가지?
[헛웃음]
(이진) 뭐 똑똑한 내가 해결해야지
넌 끽해야 비닐봉지 신고 가는 생각밖에 못 할 거잖아
(희도) 어떻게 알았지?
[이진의 힘주는 숨소리]
[발랄한 음악]
[희도가 피식 웃는다]
(이진) 가방에 넣어
(희도) 그러니까
[희도가 지퍼를 직 연다]
(이진) [힘주며] 왼발, 왼발, 왼발 [희도의 힘주는 숨소리]
- (이진) 아, 왼발, 왼발, 왼발 - (희도) 아니, 아니, 이게 왜…
- (이진) 야, 왼, 왼발이라고! - (희도) 아니, 왼발을…
[이진의 한숨]
(희도) 아 나한테 왼발인 줄 알았지!
(이진) 너 지금 나, 나한테 짜증 낸 거야?
둘이 있을 때 행복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희도) 짜증 낸 게 아니라 항의한 거거든!
[희도가 씩씩거린다]
그리고 나 지금 겨드랑이 찢어질 거 같아
(이진) 집에 안 갈 거야?
(희도) 갈 거야
(이진) 가자, 자 [희도의 힘주는 숨소리]
자, 왼발
- 오른발, 오른발, 오른발 - (이진) 왼발, 왼발
- (이진)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 (희도) 오른발, 오른발
- (희도) [웃으며] 오른발 - (이진) 그렇지!
(희도) [웃으며] 이상한 하루였어 [키보드 조작음]
꿈같은 일이 생겼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일도 생겼어
[희도가 피식 웃는다]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좀 행복하거든
넌 진짜 나를 잘 아는 거 같아
[채팅 알림음]
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키보드 조작음]
(희도)
(희도) 혹은 한 번쯤 스친 적 있지 않을까?
[피식 웃는다]
맞아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뭐를 하고 싶다고?
오전, 오후 훈련 외에 새벽, 주말 훈련도 하고 싶습니다
(찬미) 해라
[게임기 조작음]
(희도) 저 혼자 하면 별로 안 늘 거 같아서요
쌤이 따로 좀 봐 주시면 안 돼요?
야 봐라, 야
지금 내보고 주말하고 휴일을 니 코치하는 데 반납하라꼬?
저 훈련 열심히 할 자신 있어요, 쌤
내가 자신 없그든?
힘들다
[게임기 조작음] 도와주세요, 쌤
(찬미) 아휴
니 목표가 뭔데?
1등 하고 싶습니다
국가 대표가 되고 싶단 얘기가?
네 [찬미의 웃음]
(찬미) 야 봐라, 야 [게임기를 툭 던진다]
꿈꿀 줄 아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죠
아니
꿈꿀 줄 모르는 아들이 태반이다
근데 닌 꿀 줄 안다고
[찬미가 부스럭거린다]
(찬미) 새벽에 훈련하면 몇 시부터 할 긴데?
(희도) 오전 훈련이 9시니까
적어도 6시 반에는…
뭐? 6시 반?
그럼 내가 최소한 지금 6시에 일나라 이 말이가?
(찬미) 야, 내 30분 더 잘라고 학교 앞으로 이사 온 사람이다
전세금 올려가 대출까지 끼고
근데 니가 나한테 우째 이럴 수 있노!
죄송합니다
[한숨]
[입소리를 쩝 낸다]
아…
니 진짜 내 훈련 따라올 수 있겠나?
네!
자신 있습니다!
(찬미) 내가 시키는 거 무조건 다 할 수 있겠나?
하겠습니다
정말 하고 싶습니다
느그 집에서 이 동네까지 걸어오는 데 얼마나 걸리데?
한 시간 정도?
오케이
잘 들어라
[경쾌한 음악] 첫째
(찬미) 매일 아침 몸에 5kg, 다리에 3kg, 팔에 2kg [희도의 힘주는 신음]
[희도가 숨을 고른다] 도합 10kg의 모래주머니를 딱 차고
느그 집에서 우리 집까지 뛰어온다
그라고 내를 깨운다
[가쁜 숨소리]
(희도) 쌤, 쌤!
일어나세요!
[희도의 지친 숨소리]
[희도가 콜록거린다]
쌤, 일어나세요
[찬미가 구시렁거린다]
뭐 하노, 가서 팡트 천 개
[희도의 가쁜 숨소리]
(찬미) 둘째, 하루에 팡트 동작 천 개를 실시한다
새벽에 3백 개 오전에 3백 개, 야간에 4백 개
다리
다리 흔들리잖아
[당황한 숨소리]
니 집중 안 하나!
[가쁜 숨소리]
[희도의 가쁜 숨소리] (찬미) 셋째
주말마다 물통 두 개를 들고 뒷산을 오른다
정상에 있는 약수터에 가 갖고 약수를 받아가
우리 집으로 배달한다
제한 시간은 두 시간
내려올 때 시간 걸리니까 올라갈 때는 뛰어올라 가야겠제?
[희도의 가쁜 숨소리] 혹시나 수돗물로 채워가 속일 생각 하지 마
- 됐어, 됐어, 됐어 - (희도) 예
(찬미) 내 5년째 그 약수만 묵는다
묵어 보믄 마, 딱 알아
[찬미의 시원한 숨소리] [물이 철퍽 떨어진다]
(희도) 아이고, 아까워라
- 줄래? - (희도) 네
[강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찬미) 넷째
내가 지정해 주는 노래의 안무를 외아가 검사받는다
(희도) 에이씨!
[버튼 조작음]
[힘겨운 신음]
열라 어렵네
아, 대체 이걸 왜 해야 되는 거야!
[가쁜 숨소리]
제일 중요한 다섯째
다섯째
(찬미) 내가 시키는 모든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유를 묻지 않는다
왜냐?
니는 말해 줘 봤자 모르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켠다]
그래, 나는 말해 줘 봤자 몰라
시키는 대로 하자
[결연한 숨소리]
[힘겨운 신음]
[탁]
(찬미) 뒷다리 붙이고
어깨 힘 빼고
[가쁜 숨소리] 그렇지
앙 가르드
롱프르
팡트, 그렇지
[찬미가 지도한다] (다슬) 그깟 평가전 좀 나간다고 유세를 떠네
(지수) 누가 보면 팀 코치가 아니라
일대일 코치인 줄 알겠다
[다슬의 헛웃음]
우린 저렇게 안 해 주지 않았냐?
(다슬) 내 말이
[문이 덜컥 열린다]
[문이 덜컥 닫힌다]
(찬미) 어, 유림아
밥 맛있게 묵어라
(유림) 저, 선생님
(찬미) 응?
나희도 평가전 때문에 단독 훈련 시키시는 거예요?
아인데
지가 해 달라고 쫄라 가지고 해 주는 긴데?
나희도가 부탁했다고요?
(찬미) 응 평가전 1등 하고 싶다꼬
유림아, 있잖아
학생이 지도를 요청을 하면은
그 요청에 응하는 게 코치로서의 의무다
그라고 그게 내한테는 참 기쁨이고
근데
'선생님, 저 한 시간만 더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저 팡트 자세 괜찮아요?'
이, 물어보는 게 쉽거든?
씁, 아들이 이게 쪽팔려서 그라나
그런 말을 하는 아들이 아무도 없다
아무도
아휴, 자슥이
[풀벌레 울음] (다슬) 아, 힘들어
(지수) 아, 죽겠다, 야
(다슬) 아, 진짜 짜증 나
[지수가 말한다]
(예지) 선배님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한솔) 안녕히 가세요! - (다슬) 어
[예지가 긴장한 숨을 내뱉는다]
- (예지) 선배님은 안 가세요? - (다슬) 겜방 고?
어, 먼저 가
(예지) 예
[멀어지는 발걸음]
[가쁜 숨소리]
[힘겨운 신음]
[희도가 숨을 후 고른다]
[발소리가 탁탁 울린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찬미의 힘주는 숨소리]
[게임 소리가 흘러나온다] [탁탁 소리가 요란하다]
(찬미) 스타 할 거예요
(종업원3) 아, 죄송합니다 지금 만석이에요
(찬미) 예?
하, 한 자리도 없어요?
- (종업원3) 네 - (찬미) 아, 진짜
아씨
이래 자리 많은…
[흥미로운 음악]
10번 자리 뺄게요
(종업원3) 네?
저 10번 자리 뺀다꼬
[탁탁 소리가 요란하다]
멀티 몬 했네?
(다슬) 뭐야?
쌤
[어색하게 웃으며] 쌔, 쌤이 여기 어떻게…
후배들은 야간 훈련도 마다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니는 여기서 야간 훈련 특별히 하고 있네
우째, 여기 승부가 더 쉽나?
(다슬) 아닙니다 지금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 (찬미) 그래 - (다슬) 죄송합니다
(찬미) 들가라
[찬미가 피식 웃는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아저씨, 10번 컵라면 하나 끓이 주소이
(종업원3) 예
(찬미) 앗싸
[힘겨운 숨소리]
[희도의 가쁜 숨소리]
[숨을 후 내뱉는다]
[헛웃음]
[성난 숨소리]
너희 처돌았냐!
[희도와 유림의 가쁜 숨소리] (다슬) 하, 진짜, 씨
[다슬의 한숨] [긴장되는 음악]
[칼을 드르륵 끈다]
야
내가 허락 없이 야간 훈련 하지 말랬지?
선배 등신 만들면서까지 그렇게 잘하고 싶냐?
(유림) [한숨 쉬며] 죄송합니다
(다슬) 쟤는 뭘 모르니까 그렇다 치고
[헛웃음 치며] 넌 뭔데?
[유림을 툭툭 치며] 금메달 하나 따니까
선배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게 없냐?
다 네 들러리 같지!
[긴장되는 효과음]
[헛웃음]
너 뭐 하냐, 지금?
(희도) 안 그래도 온몸이 멍투성이인데
애 아프잖아요
(다슬) 하, 씨
[칼이 달그락 떨어진다]
야, 너 미쳤냐?
그리고 왜 연습하는 걸로 혼나야 돼요?
열심히 하는 걸로 왜 눈치 봐야 하냐고요
얘도 저도 절박한 게 있으니까 남아서 연습하는 거잖아요!
- 이게, 씨 - (유림) 죄송합니다, 언니
(유림)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야, 고유림, 뭐가 죄송한데?
닥쳐
[다슬의 헛웃음]
(다슬) 와
아주 꼬라지 잘들 돌아간다
지금 바로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다슬) 아니, 가지 마
체육관 바닥 광날 때까지 닦아 놓고 가
너희 훈련 좋아하잖아
이만한 근력 훈련 또 있어?
검사는 내일 아침에
먼지 한 톨 보이기만 해
[못마땅한 숨소리]
[다슬이 가방을 탁 집는다]
[유림의 한숨]
(희도) 왜 우리가 사과해야 되는데?
[한숨]
[희도의 한숨]
너, 너 늘 이런 식이었지?
[유림의 한숨] [칼이 달그락거린다]
말이 안 통하긴 너나 저 언니나 마찬가지네
(유림) '죄송하다' 한마디면 금방 끝날 일이었어
너처럼 입바른 소리 해 봐야
잔소리만 길어지고 괴롭힘은 더 심해지고
잠깐 물러서면 생활이 더 편해지는 거 몰라?
그게 편해지는 거야?
눈치 보고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연습 경기라도 붙으면 일부러 져 줘야 되고
그게 진짜 경기까지 가는 거잖아
그게 정말 편해?
그건 너처럼 실력이 어중간할 때 해당되는 얘기지
난 아니야
(유림) 독보적으로 잘해 봐
다들 밀어주고 싶어 안달이지
어중간한 선수들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입 닥쳐라?
[한숨]
내가 버틴 시간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
[무거운 음악]
그래, 금메달리스트가 버틴 시간은
나같이 어중간한 선수들이 버틴 시간보다 훨씬 값어치 있겠지
[한숨]
야
노력에도 급이 있는 거 같다
버티는 건 다 똑같은데
내가, 있잖아
너 진짜
[떨리는 숨소리]
좋아하고 동경했거든?
딱 그만큼
이제 미워할 수 있을 거 같아
바닥 청소는 너 혼자 해라
난 잘못한 게 없어서 못 하겠다
[잔잔한 음악]
[한숨]
[문이 쾅 닫힌다]
[버스 문이 쉭 닫힌다]
[멀어지는 버스 엔진음]
(TV 속 캐스터) 고유림 선수 금메달입니다!
고유림 선수가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 줍니다! [TV 속 유림의 벅찬 숨소리]
멋있다
[가쁜 숨소리]
[탁 치는 소리]
(유림) 고마워, 잘 쓸게!
[웃음]
(희도) '고마워, 잘 쓸게'
[희도의 웃음]
[풀벌레 울음]
갈게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이진) 줄 거 있어
나 때문에 망가졌잖아
왜, 무슨 일인데?
응?
둘이 있을 때 행복하자며
그게 일방적인 거면 별로인데?
그럼 나한테
앞뒤 상관없이 딱 한마디만 해 줄 수 있어?
무슨 말?
[목멘 소리로] '고유림이 잘못했네'
[한숨]
안 되는구나?
(이진) 아니, 무슨 상황인지도…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잔잔한 음악]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문이 탁 닫힌다]
나희도!
야, 나희도
야, 뭐 이렇게 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 오늘 진짜 거지 같은 날이었다고
그냥 빈말이라도 그게 그렇게 어려워?
[한숨]
난 항상 네 편이었던 거 같은데
고유림이 잘못했네
이 한마디가 네 기분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
[한숨]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펜싱을 왜 못하는지 지금 깨달았어
[한숨]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
지금 내가 그걸 못 하네
[한숨]
너무 많이 기대했다
고유림한테든
너한테든
[허탈한 숨소리]
[한숨]
[스위치 조작음]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스크랩북을 탁 집는다]
[스크랩북을 탁 덮는다]
[떨리는 숨소리]
(희도)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
거리 조절에 실패했어
나
그 애를 더 이상 좋아하지 못할 것 같아
[채팅 알림음]
[채팅 알림음]
[훌쩍인다] [키보드 조작음]
오늘 그 말이 진짜 듣고 싶었는데
니가 해 주네
그래도 너랑의 거리 조절은 성공인가 보다 [키보드 조작음]
(인절미) 우리 사이는 거리가 없어
그래서 조절할 필요도 없지
[키보드 조작음]
[채팅 알림음]
(희도) 고마워 니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인절미) 잊지 마 나는 언제나 니 편이야
[의미심장한 효과음]
[잔잔한 음악]
[힘찬 음악]
안녕?
(이진) 내가 오늘 나희도 때문에 열받는 일이 생겼는데
(희도) 그냥 서로 못 본 척 적당히 지나가자 [이진이 피식 웃는다]
(희도) 참 나
(지웅) 자, 그럼 이제 거래를 시작하자
[발걸음이 탁탁 울린다] (찬미) 생각해 놓은 수는 있고?
(희도) 치욕스러웠어
(지웅) 유림아, 난 네 팬 아니다
(유림) 너 나 싫어하기로 하지 않았니?
나 그만 좋아해
(승완) 이건 무슨 구성이야?
[자동차 엔진음이 요란하다]
(희도) 너랑 내 앞에 놓인 길엔
희극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기대
.스물다섯 스물하나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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