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5
[풀벌레 울음] [멀리서 개가 짖는다]
(이진) 잘 자고
내일 잘 가고
잘하고
그리고 아까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아까 말 많이 했잖아
그중에 무슨 말을 잊지 말까?
너한테 제일 와닿는 말?
[탁 소리가 울린다] [버저가 삐 울린다]
[감성적인 음악]
넌 왜 나를 응원해?
우리 엄마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데
기대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
[옅은 웃음]
나도 잘해 내고 싶은 욕심
[코를 훌쩍인다]
(희도) 나의 어디가?
(이진) 모르겠어,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져
너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이진이 숨을 들이켠다]
내 응원은 그런 너에게 보내는 찬사야
그러니까 마음껏 가져
네 응원
다 가질게
(희도) 그리고 우리 같이 훌륭해지자
[잔잔한 음악]
[피식 웃는다]
너 같은 앤
어디에도 없을 거야
(이진) [숨을 들이켜며] 들어가, 나 갈게
(희도) 응
- (희도) 아, 맞다, 잠깐만 - 응?
[희도가 지퍼를 직 연다]
(희도) 선물, 아까 네가 잡았던 칼
[당황한 숨소리]
밤길 조심하라고
나쁜 놈들 만나면 물리쳐
[망설이는 숨소리]
나 이거 받아도 되는 거야?
칼 선물하는 거 처음이니까 너도 잊지 마
안 잊을게
들어가, 나 갈게
잘 가, 백이진
[대문이 탁 닫힌다] (희도) 엄마! 깜짝…
[놀란 숨을 몰아쉬며] 아씨 아, 놀라라
(재경) 아주 배웅이 기네, 어?
헤어지기 아쉬운 사이인가 봐?
[당황한 숨소리]
엿들은 거야?
(재경) 그럼 뭐 어떻게 했어야 됐는데?
자리 비켜 줘?
[희도가 지퍼를 직 잠근다]
칼 선물할 정도면 보통 사이는 아닌가 보네
[희도가 지퍼를 직 잠근다]
누군데?
엄마도 안 해 주는 응원 생판 남인데도 해 주는 사람
(재경) 어떻게 응원이 되겠어?
펜싱 열심히 하겠대서 전학까지 보내 놨더니
남자나 만나고 돌아다니는데
엄만 정말 나를 안 믿는구나?
믿게 해 줘야 믿지
이런 꼴들만 보여 주는데 네가 엄마라면 널 믿겠니? 어?
나 내일 국가 대표 평가전 하러 화성에 가
네가 그 경기에 왜 나가?
난 내일 최선을 다할 거야
근데 내가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 엄마는 없어
나는 날 위해서만 최선을 다할 거야
내 노력은
나만 아니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쾅 닫힌다]
"파이팅, 나희도"
(민채) 어릴 때 엄마는 내 자랑이었다
[잔잔한 음악] [사람들이 속닥거린다]
[사람들의 박수]
[사람들이 감탄한다] (여자) 아, 너무 반가워요
아, 너무 예쁘시다, 너무 반가워요
(어린 민채) 엄마!
[카메라 셔터음] (중년 희도) 어, 민채야
[웃음]
(여자) 이렇게 뵙게 돼서 진짜 영광이에요
어쩜 예전 모습 그대로세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 거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중년 희도의 웃음] (민채) 그리고 엄마는 내 질투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늘 화려했고 그게 당연해 보였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처럼
그런데
[밝은 음악] [매미 울음]
엄마의 일기장의 모든 페이지 밑엔
그날그날 연습에 관한 기록과 반성들로 채워져 있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충격받은 건 엄마의 로맨스가 아니다
엄마의 노력이다
엄마만 아는 엄마의 노력들
엄마의 화려함 말고 노력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찬미) 나희도 니가 여기까지 온 건 운이었다
근데 여기를 나갈 때는 니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될 기다
자신 있제?
쌤
저 오늘
한 번도 안 져요
[학생1이 구시렁거린다]
[학생2의 힘주는 신음] (학생3) 에이
(학생1) 어, 어이, 어이 자, 야, 여기 던져, 여기, 어?
여기, 오케이
[학생3의 한숨]
(이현) 뭐냐?
아, 고의 아니다
[학생1의 난처한 숨소리]
(이현) 어제 우리 형이 묻더라 너희 잘 지내냐고
(학생1) 아,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학생3) 아, 미안해
가자, 씨
[전화벨이 울린다]
(이진) 여보세요
(이현) 어, 형, 나야
야, 아침부터 웬일이야?
혹시 무슨 일 있어?
(이현) 아니, 학교 가는데 그냥
그, 공중전화에 50원 남은 거 발견해서
한번 걸어 봤어
아침부터 횡재했네
(이현) 완전 운수 대통이야
형도 오늘 하루 운수 대통 해
알았어, 얼른 학교 가
그래, 어
[이진의 힘주는 숨소리]
[옅은 웃음]
너도 운수 대통 해라
[긴장되는 음악] (안내 방송 속 진행자) 에 곧 여자 펜싱 국가 대표 평가전
16강 시작하겠습니다
[버저가 삐삐 울린다]
[발소리가 요란하다] [탁탁 치는 소리]
[숨을 후 고른다]
[전선을 탁 꽂는다]
(희도) 여기 있는 모든 선수 중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 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내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오늘 국가 대표가 된다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신호등 알림음]
(남자1) 백이현 알아?
어, 학생, 혹시 백이현이라고 알아?
(학생4) 네, 아는데요
(학생5) 저기, 저기요
(남자1) 어?
어, 저기 횡단보도에 서 있는 애?
(학생4) 아, 네, 맞아요
(남자1) 어, 고마워
[신호등 알림음이 울린다]
[탁 치는 소리] [버저가 삐 울린다]
[가쁜 숨소리]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긴장되는 효과음]
(남자1) 네 아버지 지금 어디 있어? 어?
야, 네 아비 지금 어디 있어?
야, 빨리 얘기 안 해?
(남자2) [힘주며] 이 자식이 [이현의 신음]
- (남자2) 야 - (남자1) 야
[남자2가 위협한다] (남자1) 도망갈래? 어?
정신을 못 차리고…
(교사) 왜 이러세요!
(남자1) 아버지랑 똑같은 놈이네, 이거
어딜 도망가, 이 자식아! 어?
(교사와 남자1) - 놓고, 놓고 말로 하세요 - 야, 네 아버지 어디 있어?
[남자들이 말한다] (교사) 이러지 마세요
(남자2) 아버지 어디 있냐고, 어?
아버지 어디 있냐고, 말 안 해? [교사가 말린다]
(남자1) 야, 빨리 말해, 어? [남자2가 재촉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이진) 여보세요
네
[힘찬 음악]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박수 소리가 들린다] [찬미가 응원한다]
(심판2) 앙 가르드
프레, 알레
[강조되는 효과음]
[이진의 가쁜 숨소리]
(심판2) 알레 [발소리가 요란하다]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와 선수1의 환호]
알트
아타크, 농 코렉트
아타크, 투슈, 포인트
아니야
농 코렉트, 농 코렉트
[희도의 가쁜 숨소리]
앙 가르드
프레, 알레
[자동차 경적이 요란하다]
[이진의 가쁜 숨소리]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남자2의 신음] [버저가 삐 울린다]
[선수2의 가쁜 숨소리] (심판1) 알트
아타크, 투슈, 포인트
[희도의 가쁜 숨소리]
[박수 소리가 들린다]
(희도) 원 포인트!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아타크, 투슈, 포인트 [박수 소리가 들린다]
[환호]
(찬미) 잘했다!
(심판1) 자, 중앙으로
설루트
[박수 소리가 들린다]
[찬미가 희도를 탁 친다]
[희도가 장비를 툭 놓는다]
[버저가 삐삐 울린다]
[사무실이 분주하다] (중혁) 취재를 그만큼이나 해 놓고 순서가 엉망이잖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네 의견 줄이고 팩트로 채워
사실이 아닌데 어떻게…
(재경) 국장님 이거 '박찬호 시즌 15승'
네 번째 꼭지로 올릴게요
(학규) 알았어
(재경) 어, 그리고
'맥과이어 70호 홈런'도 바로 붙일게요
(학규) 아이고, 웬일로?
언제는 한국에 중요한 일에 스포츠밖에 없냐더니 [전화벨이 울린다]
[학규가 피식 웃는다] [중혁이 수화기를 달칵 집는다]
(중혁) 나희도?
나희도가 누구인데?
알았어 [중혁이 수화기를 달칵 놓는다]
김정현이랑 나희도가 결승전 올라갔다는데?
(기자) 그래요?
(학규) 아니, 김정현은 국대 출신이고
나희도는 누구야?
- 고등학생이래요 - (학규) 어?
(중혁) 그, 펜싱 협회 전화해서 내 이름 대고 나희도 사진 구해 놔
인적 사항 받아 놓고
(기자) 네
(중혁) 근데 국장님
저 언제까지 펜싱 커버 칩니까?
스포츠국 떠난 지가 언제인데 [학규가 피식 웃는다]
(학규) 네가 어디에 있든 네 고향은 여기다, 인마
(찬미) 김정현 선수는 올해 빼놓고는
단 한 번도 국가 대표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무려 8년 동안
스피드 좋고 집중력도 탁월하고 경기 운영도 잘한다
펜싱 경력은 니 두 배가 넘고
(희도) 저 겁주시는 거예요?
(찬미) 아니
저런 선수한테는 니 같은 하룻강아지가
제일 까다로운 상대다 이 말이다
니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잖아
그러니까 니 딱 올라가서 니 펜싱만 보여 주면 된다이
대신 딱 하나
자는 니를 흥분시킬라고 최선을 다할 기다
절대로 흥분하지 마라 [안내 방송 알림음]
[스피커가 삐 울린다] 네
(안내 방송 속 진행자) 아, 아 [안내 방송 속 진행자의 헛기침]
이제 여자 국가 대표 평가전 결승전을 시작합니다
(찬미) 가자, 나희도
[긴장되는 음악]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알트
아타크, 투슈, 포인트
[버저가 삐 울린다]
[버저가 삐 울린다]
[발소리가 요란하다]
[버저가 삐 울린다]
[버저가 삐 울린다]
(심판1) 알트 [박수 소리가 들린다]
아타크, 투슈, 포인트 [찬미가 응원한다]
[희도의 가쁜 숨소리]
[버저가 삐 울린다]
나희도
니 설마…
[가쁜 숨소리]
(희도) 파악은 끝났다
[선수3의 가쁜 숨소리]
자
이제 내 펜싱을 보여 줄게
[긴장되는 효과음]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힘찬 음악]
[버저가 삐 울린다]
[피식 웃는다]
저거 미친놈 아이가
(심판1) 프레, 알레
[버저가 삐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찬미가 응원한다]
[버저가 삐 울린다]
(찬미) 예스, 잘했다! [희도의 환호]
[버저가 삐 울린다] [박수 소리가 들린다]
됐다, 됐다, 됐다
[버저가 삐 울린다] [선수3의 환호]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버저가 삐 울린다] [선수3의 환호]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찬미) 예스!
야, 파이팅!
[강조되는 효과음]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환호]
(심판1) 포인트
(선수4) 나희도 미쳤네
(선수5) 와, 나 작년에 쟤랑 붙은 적 있거든?
근데 그때의 그 나희도가 아닌 거 같아
아, 유림아 너 쟤랑 같은 학교라 그랬나?
네
(선수5) 와, 기량이 확 늘었네
너 때문인가?
[어색한 웃음]
(심판1) 앙 가르드
- (심판1) 프레 - (선수3) 알트
(선수3) 칼 테스트 좀 해 볼게요
(심판1) 해 봐
[흥미로운 음악]
누가 봐도 지 몸에 맞았구먼 어디 가드에 맞았다 하노?
아유, 배우네, 배우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선수3) 알트, 머리 풀렸어요
(심판1) 머리 다시 묶으세요
[한숨]
[한숨]
[찬미의 한숨]
[한숨]
(선수3) 쌤 뭐가 묻어 있어 가지고…
[한숨]
흥분하지 마라, 나희도
[희도가 전선을 탁 꽂는다]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선수3의 환호]
알트
아타크, 투슈, 포인트 [긴장되는 음악]
[희도의 가쁜 숨소리]
앙 가르드
프레
(선수3) 알트
쌤, 저 신발 끈이 풀려 가지고 신발 좀… [희도의 짜증 섞인 탄성]
쌤, 경고 안 주세요?
경기 흐름 방해하는데 경고 주셔야죠
(심판1) 알았어
- (심판1) 자제해 - (선수3) 네
[희도의 한숨]
저 땀 좀 닦고 올게요
[희도의 가쁜 숨소리]
(찬미) 야, 나희도 니 흥분하지 말랬지? [희도가 마스크를 툭 던진다]
(희도) 일부러 저러는데 심판은 경고도 안 주잖아요
저것도 경기 운영이잖아 알면서 왜 말려드노?
니 야간 훈련 못 하게 하는 선배들한테 우쨌노?
[뚜껑을 달칵 닫는다]
무슨 수로 이겨 먹었냐고
그냥 그 선배가 뭐라든 제가 준비해 간 대로 했어요
그래, 그게 운영에 응하지 않는 방법이다
[밝은 음악] (찬미) 운영을 잘하는 선수한테는
운영에 응하지 않는 선수가 제일 당황스럽다, 알겠나?
(심판1) 올라오세요
잘 들어라
(찬미) 자가 뭐라든지 간에 니는 니가 준비한 것만 한다
할 수 있제?
야, 나희도!
니 자신을 못 믿겠으면 니를 선택한 내를 믿어라
니 안 진다
나는 원래 지는 선수 안 뽑는다
오케이?
네
[버저가 삐 울린다]
[강조되는 효과음] (희도) 그래
나는 아직 나를 못 믿어
[긴장이 고조되는 효과음] 그런데 나를 알아봐 준 당신을 믿어
(심판1) 앙 가르드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힘찬 음악]
(찬미) 가자, 됐다, 됐다! [박수 소리가 들린다]
(심판1)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와 찬미의 환호]
- (심판1) 아타크, 투슈, 포인트 - (찬미) 됐다! 됐다
(이진) 넌 좀 뻔해
잘할 게 보여
넌 모르겠지만
천천히 올라가서
원하는 걸 가져
[희도의 가쁜 숨소리]
원 포인트!
(희도) 그리고
[희도가 전선을 탁 꽂는다] 나를 믿는 너를 믿어
나는 당신들을 믿고 간다
(심판1) 프레, 알레
[날렵한 효과음]
[강조되는 효과음]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 아타크! [경쾌한 음악]
[찬미와 희도의 환호]
[박수 소리가 들린다]
[희도의 환호]
[희도와 찬미의 환호]
[희도의 벅찬 숨소리] [사람들의 박수]
(심판1) 자, 모여, 모여
설루트
[벅찬 숨소리]
(찬미) 어서 온나
국가 대표 나희도!
[희도의 웃음]
[웃음]
야, 니 오늘 마, 찢어 뿠다
- (찬미) 니 이제 시작이다이! - 아, 쌤
(찬미) 세상을 씹어 먹어 보자!
[함께 환호한다]
[버저가 삐 울린다]
(앵커) 스포츠 단신입니다
펜싱 여자 국가 대표 평가전에서
나희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며
대표 팀에 합류했습니다
나희도 선수는 결승전에서
전 국가 대표 김정현 선수를
15 대 12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 저 꼬라지, 저…
(앵커) 경기 초반 나희도 선수는
(TV 속 앵커) 5점을 먼저 내주며
(지웅) 와! [TV 속 앵커가 계속 말한다]
와, 말도 안 돼
와, 진짜 됐어, 국가 대표
나희도 진짜 해냈어
와
쟤도 진짜 엽기다
(승완 모) 쟤가 누구인데 그래? 너희 학교야?
(지웅) 전에 여기서 같이 미꾸라지 잡았던 애잖아, 이모
기억 안 나? 그 냉장고?
아, 그 전학 왔다는?
엄마, 설마 걔 옆에 있던 애 누구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그 옆의 누구?
펜싱부라던 그 쪼끄만 여자애?
(지웅) 와, 이모
그냥 쪼끄만 여자애가 아니라
무슨 일개 고등학교 펜싱부가 아니라
세계 대회 금메달리스트 고유림이잖아
어머, 고유림?
걔가 고유림이었어? 그 펜싱 금메달?
(지웅) 그래!
(승완 모) 어, 세상에, 세상에
그럼 지금 국가 대표가 둘이나 우리 집에서
[소리치며] 미꾸라지를 잡았다는 거야?
어, 어쩐지
어쩐지 내가 그 추어탕 먹고 관절이 안 아프더라 [지웅의 한숨]
관절이 다 나았어, 관절이
어머, 웬일이야!
이걸, 그걸 왜 지금 얘기하니, 너는?
(찬미) 와, 오늘 마 끝장내 뿠다, 마, 오늘!
[희도의 신난 탄성] [찬미의 웃음]
야, 오늘 같은 날 춤 안 추면 니 언제 출래?
한번 춰 봐라
에이, 빨리 춰 봐라
[희도의 웃음]
아, 고 부분, 고 부분?
- (찬미) 아, 여기, 따따따, 아! - (희도) 따따따, 아!
(찬미) 이거지, 바로 그거야
- (찬미) 아싸라, 아싸라비아 - (희도) 아, 쌤, 아, 쌤
[찬미의 웃음]
(희도) 쌤, 먼저 들어가세요
저 전화 한 통 하고 들어갈게요
알려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찬미) 엄마?
(희도) 아니요
(찬미) 치 땐땐한 모녀지간 여전하네
빨리 들어온나
(희도) 예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동전이 짤랑거린다]
[동전을 잘그랑 집어넣는다]
[통화 대기음]
나 삐삐 번호를 모르네?
엄청 안 친하네, 우리?
[한숨]
내일 봐
제일 먼저 달려갈게
[수화기를 탁 놓는다] [동전이 잘그랑 떨어진다]
[동전을 잘그락 집는다]
[동전이 짤랑거린다] [희도가 흥얼거린다]
(찬미) 나희도를
(찬미와 희도) 위하여!
[가게 안이 시끌시끌하다]
[찬미와 희도의 시원한 숨소리] (찬미) 우리 국가 대표
자, 마이 드시이소
(희도와 찬미) - 오, 쌤, 하던 대로 하세요 - 어? 힘 떨어질라
(희도) 이러시는 거 부담스러워요
(찬미) 야 봐라, 야
니 벌써부터 국가 대표 됐다고 니 선생한테 선 긋는 기가?
'아'!
말해 봐
니 국가 대표 누구 때문에 된 기야?
(희도) 쌤 옛날에도 이런 식으로 생색내시다가
뇌물까지 받으신 거예요?
- 뭐라꼬? 이기 마, 확 마! - (희도) [웃으며] 농담입니다
봐주세요, 국가 대표잖아요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코치) 선배님
(찬미) 어, 코치
(코치) 안녕하십니까
(선수4)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마다 인사한다]
(찬미) 안녕, 안녕
- (찬미) 마이 묵으래이 - (코치) 많이 드십시오
(선수4) 맛있게 드세요
(선수5)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저마다 인사한다]
(찬미) 어, 유림아
(유림) 식사 맛있게 하세요
- (찬미) 그래, 마이 묵으라 - (유림) 네
뭐 하노, 밥 묵자 [희도의 힘주는 신음]
밥순이 밥을 마이 묵어야지
[희도의 익살스러운 소리] [찬미의 웃음]
[변기 물이 솨 내려간다] [물소리가 솨 난다]
[물소리가 뚝 멈춘다]
[물소리가 솨 난다]
(유림) 꿈 이룬 거 축하해
[물소리가 뚝 멈춘다]
국가 대표가 이런 거구나
고유림이 먼저 말 걸어 주는 거
축하해 주는 사람한테 비아냥거리지 말지?
비아냥댄 거 아니고 진심으로 놀란 건데?
네가 내 말 씹을 때마다 나 맨날 거울 봤잖아
투명 인간인 줄 알고
(희도) 그리고 한 가지
내 꿈은 국가 대표가 아니야
내 꿈은
네 라이벌
축하는 그때 받을게
그 축하는 진심이었으면 좋겠다
[경쾌한 음악]
[버스 문이 쉭 열린다]
(희도) 감사합니다!
[버스 문이 쉭 닫힌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희도) 백이진!
사장님, 백이진 오늘 쉬는 날이에요?
그만뒀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그만둬요?
(대여점 주인) 모르지
취직이라도 됐는지 급한 사정이 생겼다는데
[입소리를 쯧 낸다]
[탁탁 정리하는 소리]
[희도의 가쁜 숨소리]
[초인종이 울린다]
백이진! 집에 없어?
[다가오는 발걸음] (지웅) 야, 국가 대표
(승완) 축하한다, 나희도!
(지웅) 너 학교 앞에 현수막 걸렸어
와, TV에도 막 나오고 진짜 더럽게 부럽다
축하해
(희도) 고마워
근데 백이진 만나러 왔는데 대답이 없어
책 대여점도 그만뒀다 그러고
(승완) 그만뒀다고?
(승완) 선배님
[문이 덜컥 닫힌다]
- (지웅) 뭐야? - (승완) 뭐지? [무거운 음악]
(승완) 방 뺀다는 소리 못 들었는데?
- (지웅) 이모한테 물어봐 - (승완) 어
(승완) 유림이한테 뭐 들은 거 없어?
걔는 알 수도 있잖아
(지웅) 유림이한텐 내가 연락해 볼게
[풀벌레 울음]
[초인종이 울린다]
[대문이 철컹 열린다]
(지웅) 유림아
[문이 덜컥 열린다]
[문이 덜컥 닫힌다] [유림의 가쁜 숨소리]
(유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인데?
승완이 어머니는 아실 거 아니야
[한숨]
(승완) 선배님
혹시 20기 백이진 선배님이랑 요즘도 연락하시나요?
[문이 달칵 열린다] 아…
[문이 탁 닫힌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림의 가쁜 숨소리]
[승완이 수화기를 달칵 놓는다]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인데?
울 엄마는 지금 연락 안 되고
나는 어제 아침에 등교하다가 마주쳤어
(승완) 평소대로 인사했고 이상한 점은 없었어
[한숨]
나희도, 네 삐삐는 확인해 봤어?
연락 온 거 없어
[유림의 한숨]
(유림) 어머니 언제 오셔?
[한숨 쉬며] 오실 때 됐어
(지웅) 다 큰 어른이 사라졌으면 사정이 있겠지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호들갑들이냐?
조용히 해, 문지웅
(지웅) 그게 맞겠지?
[문이 달칵 여닫힌다]
[지웅의 힘주는 신음]
(승완) 아, 엄마 전화 왜 안 받아!
(승완 모) 휴대폰 그거 전화 몇 통 했다고
배터리가 금세 나갔어 빌어먹을 거
[놀라며] 아이고, 이게 누구야?
국가 대표 세트 아니야?
(희도와 유림) 안녕하세요
(승완) 엄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숨 쉬며] 이진 선배
아니, 셋방 총각 어디 갔어? 방 뺀 거야?
어,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겼다 그러면서 아침에 방 뺐어
방을 뺐다고요?
(승완)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
(승완 모) 아, 난들 알아?
쯧, 요즘 같은 시대에 사연 없는 집구석이 어디 있니?
아휴, 전에도 낯선 사람들이
그 총각 여기 사냐고 막 찾아오고 그랬어, 야
그러니 그 말간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아이고, 우리 금메달리스트 고유림
여긴 또 이번에 국가 대표 된 나희도
엄마, 그만해
(승완) [작은 목소리로] 우리 그럴 기분 아니야
[작은 목소리로] 왜?
(희도) 고유림
너 백이진 삐삐 번호 알지?
나 좀 알려 줘라
연락해 봤어, 답 없어
그래도
좀 알려 줘라
미안
[쓱쓱 적는 소리]
연락되면
나한테도 알려 줘
[쓸쓸한 음악]
[바람이 쏴 분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만약에 칠하게 된다면 넌 무슨 색으로 하고 싶어?
난
파란색이 좋아
[피식 웃는다]
[당황한 숨소리]
진짜 간 거네
(남자3) 아이고
아이고, 멀다 멀어
[남자3의 헛기침]
이제 한 30분 후면은 포항 도착입니다
[웃으며] 아이고 많이 피곤했나 보네
동생분은 잠드셨네
[남자3이 피식 웃는다]
(이진) 하루가 길었을 거예요
(남자3) 예
씁, 근데 그, 이삿짐도 제대로 안 싸 놓으셨던데
이사를 아주 급하게 가신 모양이네요이?
네
형 노릇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무거운 음악] [무전기 작동음]
(경찰) 어, 그러니까 2년 전에 아버님 백성학 씨가
그, 동생분 명의로 회사를 세웠어요
빚쟁이들이 그걸 듣고서
이제 동생분 학교에 찾아가서 그 난리를 친 거고요
근데 동생분 이름으로 된 이 회사가 잡힌 수익이 없네요
뭐, 세워만 놓고 뭘 못 했네
뭐, 씁, 요즘 이런 회사가 한두 군데겠냐마는
근데 아버님도 엄연히 경제 사범인 거 알고 계시죠?
[숨을 들이켠다]
예, 알고 있습니다
(이현) 형, 어디 가?
[한숨]
학교 아직 안 끝난 거 아는데
나 내일 갈게, 오늘 못 가 [이진이 부스럭거린다]
아까 애들이 다 봤단 말이야, 쪽팔려
(이진) 너 삐삐 줘 봐
(이현) 왜?
(이진) 줘
백이현, 잘 들어
[잔잔한 음악]
앞으로 누구랑도 연락하지 마
어떤 연락도 받지 말고
형도 그렇게 할 거야
(이현) 아니 그래도 학교 애들이랑
연락은 해야 될 거 아니야
야, 그 학교에 다시는 너 안 보내
(이진) 학원도 가지 마 아무 데도 안 돼
아, 근데 형이
그, 뭐, 적어도 하나는 약속할게
다시는
정말 다시는 네가 이런 일 겪지 않게 할게
미안해, 이현아
근데
할 수 있는 형 노릇이
도망뿐이네요
[풀벌레 울음] [파도가 철썩인다]
(이현) 엄마
[놀란 탄성]
(이진 모) [울먹이며] 얘들아
얘들아!
[이진 모가 흐느낀다]
나
너희들 아빠 보고 싶어
[이진 모가 연신 흐느낀다]
아, 너무 보고 싶어!
토닥 해 드려
(이진 모) 여보!
(이진 외삼촌) 아따 그놈의 사랑 타령 또 시작했네
- (이현) 안녕하세요 - 오야
(이진) 안녕하셨어요, 외삼촌
(이진 외삼촌) 그래 너 온다고 고생했제?
들어가자, 언능 들어가, 들어가
[이진 모가 흐느낀다] [이진 외삼촌이 말한다]
[힘주며] 자, 자
[이진 외삼촌의 힘주는 신음]
[흥미로운 음악] (이진 외삼촌) 식기 전에 얼른 묵어라
- (이현) 잘 먹겠습니다 - (이진) 잘 먹겠습니다
(이진 모) 이진이 넌 아빠 얼굴 봤다고 그랬지?
어땠어?
많이 늙었어?
이미 전화로 수십 번 얘기해 드렸잖아요
(이진 모) 보고 싶으니까 그러지
그래도 넌 네 아빠 얼굴 봤잖아
아들들이나 그래 살뜰히 좀 챙겨 보소
(이현) [멋쩍게 웃으며] 괜찮아요, 외삼촌, 익숙해요
(이진 모) 자식새끼들이야 낳아 놨으면
알아서 제 앞가림 하며 사는 거지
남편이 자식이랑 같아?
치
아…
[헛웃음 치며] 네가 사랑을 뭘 알겠니
그러니까 여태 노총각 신세지
미안
이 누부야가 진짜로 오늘 마…
[이진의 헛기침] [이진이 수저를 탁 놓는다]
(이진) 저, 우선 제 의견을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오야, 그래
[한숨 쉬며] 어…
외삼촌만 허락하신다면
이현이는 여기서 중학교를 마쳤으면 합니다
뭔 소리야? 그건 아니지
내가 이 촌 동네에서 학교를 어떻게 다녀?
다녀
너도 충분히 촌스러워
저, 그리고 저도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여기서 좀 지냈으면 합니다
외삼촌 일 도우면서 부담 안 가도록 노력할게요
가족끼리 부담이 어디 있어
잘 왔고 고생 많았다
[이진 모가 흐느낀다]
뭐, 왜 또, 뭐?
[훌쩍거린다]
우리 이진이 어른 다 된 것 봐
고생해서 그래
여보
[흐느낀다]
[흥미로운 음악]
(이진 외삼촌) 아이고 이 누부야 참…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의자가 드르륵거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승완) 나희도 너 선수촌 들어간 거 아니었어?
응, 내일 들어가
저기, 나 그…
백이진 방송 녹음본 좀 빌려줄 수 있어?
(승완) 이 정도면 돼?
(희도) 어, 고마워
근데 이건 뭐 하게?
(희도) 선수촌에서 힘들 때마다 들으려고
응원이 필요할 거 같아서
너 이진 선배랑 많이 친했잖아 [희도가 달그락거린다]
말없이 사라진 거 화도 안 나냐?
응, 안 나
돌아올 거라고 믿는구나?
돌아올 거라고 믿는 건 아니고
[잔잔한 음악] [숨을 들이켠다]
백이진의 선택을 믿어
분명 더 나은 곳으로 갔을 거야
(희도) 좀 덜 힘든 곳
덜 상처받는 곳
[한숨]
이제
내가 해 줘야지, 응원
[희도가 지퍼를 직 닫는다]
갈게
그래
잘 가라
[희도의 웃음]
(사진사) 자, 찍습니다
(사진사) 하나, 둘
[버튼 조작음] [카메라 셔터음]
(재경) 아, 표정 밝게 못 해?
[입술을 부르르 튕긴다] 응?
(사진사) 아, 어머니가 TV 나오는 분이라
보는 눈이 높으시네요
(재경) [웃으며] 아닙니다
(사진사) 자, 우리 따님
이 어머니 기운 받아서 다시 한번 가 봅시다
턱 좀 당기시고 어깨는 펴고
미소는 살짝
[버튼 조작음] [카메라 셔터음]
됐습니다
[사진사의 웃음] - (재경) 수고하셨습니다 - (사진사) 예
- (재경) 잘 부탁드려요, 네 - (사진사) 예
(희도) 바빠 죽겠는데 사진은 왜 찍자고 해 가지고
(재경) 아나, 진짜
뉴스에 나간 네 사진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증명사진도 아니고
아니, 어디서 그런 호랑말코 같은 사진을
전 국민이 보는 뉴스에…
방송 부적격이야
당장 협회 가서 사진부터 다시 등록해, 어?
뭘 그렇게 쳐다봐?
(희도) 엄마는 참 대단해
국가 대표가 됐는데도 어떡해서든 흠을 잡잖아
축하한단 얘긴 솔직히 바라지도 않았는데
이 와중에 욕을 먹을 줄은 몰랐네
대단해, 정말
난 너 축하해 주는 사람 아니야
축하받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지
글쎄, 공감이 안 가네
아나, 이게 정말…
[재경의 어색한 웃음]
(사진사) 두 분 서비스로다 함께 한 컷 찍어 드릴까요?
(함께) 아니요
[밝은 음악]
[매미 울음]
(희도) 안녕하세요 나희도라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수들의 박수]
(코치) 오늘은 가서 짐 풀고 주변 정리해
어, 유림이 룸메이트가 빠졌으니까 그 방 쓰면 되고
궁금한 건 유림이한테 물어봐
너무 귀찮게는 하지 말고
(희도) 예
(코치) 유림이 컨디션에 방해 안 되게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코치) 아, 가는 길에 사무실에서 옷 받아 가고
(희도) 예
(코치) 자, 운동 계속한다 [코치가 손뼉을 짝짝 친다]
(선수들) 네
(선수들)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구령 소리가 연신 들린다] [희도의 벅찬 숨소리]
[힘주는 숨소리]
[피식 웃는다]
나 진짜 국가 대표구나
[문이 탁 닫힌다]
(유림) 아침 6시 전 종목 운동장에 집합해서 몸풀기
7시 아침 식사, 9시 반 오전 운동
12시 점심 식사 2시 반부터 오후 운동
6시 저녁 식사
식당은 숙소 나가서 오른쪽 1층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물어
(희도) 그…
국가 대표 펜싱복은 따로 맞춰 줘?
뒤에 KOR 쓰여 있는 거
[어이없는 숨소리]
왜, 탐나?
궁금한 거 물어보라며
[한숨]
맞춤복은 엔트리 안에 든 선수한테만 주는 거야
국가 대표가 8명이나 되는데
8명이 전부 출전하는 국제 대회는
월드컵이랑 그랑프리밖에 없잖아?
(유림) 제일 중요한 세계 선수권 그리고 상위 대회는
4명만 나가니까 펜싱복 맞춤 제작은 4명까지
그 안에 들려면 [희도가 부스럭거린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모든 경기에서 잘해야겠지?
알려 줘서 고마워
[희도가 부스럭거린다]
[한숨]
나도 질문 하나 하자
너 코 고니?
피곤하면 가끔?
나 잠귀 예민하니까 알아서 조심해 줘
[유림이 코를 드르렁 곤다] [풀벌레 울음]
[익살스러운 음악]
[희도의 괴로운 숨소리]
[스위치 조작음]
[희도의 거친 숨소리]
[유림이 컥컥거린다]
[씩씩거린다]
[유림이 코를 드르렁 곤다]
[유림이 연신 코를 드르렁 곤다]
[어이없는 숨소리]
[작은 소리로] 뭐? 잠귀가 예민해?
[카세트 플레이어 작동음]
[스위치 조작음]
(녹음 속 이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힘내, 할 수 있어' [잔잔한 음악]
그런데 우린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뱃고동이 울린다] [갈매기 울음]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녹음 속 이진) 할 수 있다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을
(상인1) 이름이 뭐꼬? 니가 이진이가?
(녹음 속 이진) 우린 아직 배운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상인들이 대화한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봅시다
최선은 다해 봅시다
(녹음 속 이진) 다만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기를
[스위치 조작음]
(희도) 맞아, 백이진
그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야
그러니 우리 힘들 때는 마음껏 좌절하자
실컷 슬퍼하자
[파도가 철썩인다]
그리고 함께 일어나자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 일어나자
내가 너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이 될게
꼭 그렇게 만들게
[동전이 잘그랑 떨어진다]
[매미 울음] [문이 드르륵 닫힌다]
- (이현) 아, 형, 잠깐만 - (이진) 어?
(이현) 잠깐만
왜? [문이 드르륵 열린다]
[한숨]
[문이 드르륵 닫힌다]
[다가오는 발걸음]
(이진) 뭐, 생선 냄새 나?
[냄새를 킁킁 맡는다]
[향수를 칙칙 뿌리며] 아, 이게 빨래를 해도 잘 안 가시네, 응
[향수를 달칵 닫는다]
가자
아, 나 그리고 ADSL 깔아 준다는 약속 꼭 지켜라
나 그거 아니었으면 전학 안 왔어
알았어
- (이현) 가 - 어
- (이현) 가 - 알았어
[학생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흥미로운 음악]
문지웅
너 나 봤는데?
(지웅) 나도 한번 해 봤어
인사하는 사람 무시하고 지나가는 기분이 뭔지
[흥미로운 음악]
내 취향은 아니네
무슨 말이야?
기억 안 나면 됐다
(지웅) 유림아
(유림) 같이 들어
[유림의 멋쩍은 숨소리]
미안, 이진 오빠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지웅) 그 형이랑은 되게 각별한가 봐?
나 이진 오빠 때문에 펜싱 할 수 있었어
우리 집 가난해서 펜싱 그만둘 뻔했는데
이진 오빠네 회사에서 후원해 주셔서 계속하게 된 거거든
[살짝 웃는다]
(유림) 누구한테 처음 말해 보네 이런 사정
미안, 말하기 싫은 거 말하게 해서
나 국민학교 1학년 때 교실에서 오줌 싼 적 있어
[밝은 음악] (지웅) 중학교 1학년 땐
나 같은 반 여자애랑 싸웠는데 내가 졌어
엄청 맞았어, 어
그, 또…
나 작년에 길 가다가 삥 뜯긴 적 있는데
걔네 알고 보니까 중학생이었어
[지웅의 멋쩍은 웃음]
뭐 하는 거야?
나도 말하기 싫은 거 말했어
이제 쌤쌤이야
(지웅) 가자, 1교시 체육이야
(유림) 아니, 잠깐만 근데 중학생한테 삥을 뜯겼다고?
(지웅) 학교는 왜 왔어?
아, 수업 일수 채우러 왔겠구나
(유림) 중학생인 거 어떻게 알았는데?
(지웅) 농구 좀 잘해? 나랑 농구하자
- (유림) 걔네한테도 맞았어? - (지웅) 아이고 [공이 탁탁 튄다]
(선수5)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희도)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버저가 삐 울린다]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가쁜 숨소리]
[버저가 삐 울린다]
[희도의 힘겨운 신음]
[희도의 힘겨운 숨소리]
(선수4) 야, 괜찮아?
[가쁜 숨소리] [마스크가 툭 떨어진다]
예, 괜찮아요
(선수4) 야, 너 안색이 안 좋아
[코치의 한숨]
(코치) 야, 의사가 뭐래?
[힘주는 신음]
야, 누워 있어
(희도) 감기 몸살 같다고…
(코치) 아유
훈련은 언제 복귀할 거야?
[힘겨운 숨소리]
내일은 복귀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코치) 너 감기 걸린 거면 당분간 다른 방 써
유림이한테 옮기지 말고
알았어?
쉬어 [코치가 커튼을 쓱 친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갈매기 울음]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이진의 힘주는 숨소리]
(이진) 안녕하세요
백이현! 백이…
(학생6) 맛있어
[무거운 음악]
(학생7) 뭐 하노?
(이현) 아…
다 먹었어? 난 다 먹었는데
가자
학교 앞도 맛있는데 뭘 여기까지 오냐?
(학생6) 야, 여기가 백 배는 맛있거든?
뭘 모르네, 서울 촌놈 [이현이 살짝 웃는다]
(학생8) 니 근데 진짜 서울에서 압구정 살았나?
(이현과 학생8) - 아… - 거기 H.O.T. 사는 데 아이가?
(이현) 아, 아니 압구정은 아니고…
(학생7) 이현이네 억수로 부자다
느그 형 스포츠카 타고 다닌다매? 맞제?
- 어 - (학생6) 맞나?
(학생6) [웃으며] 와, 쥑이네
야, 우리도 한번 태워 달라 카면 안 되나?
- (학생8) 응 - (학생7) 좋다, 좋다, 좋다
(이현) 형한테 한번 물어볼게
(학생7) 야, 니도 대학 가면 부모님이 스포츠카 사 주나?
글쎄
[어색한 웃음] (학생7) 아, 맞나?
(이현) 몰라
빨리 먹고 가자
(이현) 갈까? 빨리 가자 [학생7의 추워하는 숨소리]
(학생들) 안녕히 계세요
(상인2) 또 와, 더 맛있게 해 줄게 [학생들이 대답한다]
(학생6) 야, 우리 비디오 보면서 쥐포 묵자
쥐포 맛있겠다
(이현) 그냥 가자
(학생7) 지혜랑 내가 떡볶이 샀으니까
이현이 니가 쥐포 사라
(학생6) 아, 먹자 [학생8이 호응한다]
이거 쥐포 얼마예요?
[무거운 음악] [고무장갑을 빠드득 벗는다]
세 마리 천 원
처, 천 원 치 주세요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린다]
(학생들) 안녕히 계세요
[파도가 철썩인다]
[다가오는 발걸음]
(이진) 백이현
(이현) 어?
아까 뭐였냐?
(이진) 너 내가 쪽팔리냐?
스포츠카 타는 형이 아니고
생선 박스 나르는 형이라?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왜 난 네 친구들한테
아직까지 스포츠카 타는 형인데?
(이진) 너 그런 거짓말 하면서 친구 사귀어?
친구 사귀려고 그랬어
(이현) 집 망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
옛날처럼 애들이 나 괴롭힐까 봐
[어이없는 숨소리]
핑계 대지 마
[잔잔한 음악]
야, 내가 화나는 게 뭔지 알아?
(이진) 네가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애라는 거
가난을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애라는 거
그따위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으니까
친구들한테 거짓말도 나오고
오늘 같은 일도 생기는 거잖아
- 아니야? - (이현) 그래
난 솔직히 스포츠카 타던 형이 좋고
좋은 대학 다니던 형이 멋있었어
(이현) 나한테 형은 늘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멋있어
사실 쪽팔려
난 형이 그렇게 냄새나는 생선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싫고
힘든 일 하는 것도 싫어
[떨리는 숨소리]
[한숨]
일이 힘든 게 아니야
이런 게 힘든 거야
둘도 없는 동생한테 이런 취급 받는 거
네가 상처 없이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진) 난 다 포기하고 내려왔어
나한텐 그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제발 나 때문이라고 하지 마!
(이현)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나는 서울 떠나자고 한 적도 없고
전학시켜 달라고 한 적도 없어
난 형이 그냥 연락하지 말라 그래서
서울 친구들도 다 잃었어
그나마 친했던 애들까지 다!
형 마음대로 결정하고 내려와 놓고
나 때문이라고 하지 말라고
형이야말로 내 핑계 대지 마
비겁하게
(이진) 날 추워
내가 나갈 테니까 너 여기 있어
[이진이 라이터를 탁탁거린다]
(이진 외삼촌) 진아
뭐 하노, 안 들가고
[멋쩍은 숨소리]
(이진 외삼촌) 됐다, 한 손만 받아
[물소리가 솨 난다]
와 싸웠드노?
[달그락거리는 소리]
열다섯 살 묵은 놈하고 싸움이 되던갑지?
담배는 은제 배웠노?
여기 내려와가 배웠나?
(이진) 예
[한숨 쉬며] 보자
니 벌써 여기 내려와 가지고 일한 지가 석 달째가?
[술잔이 쨍 부딪는다]
일은 마이 힘들더나?
일이 힘든 건 아닌 거 같아요
[이진 외삼촌이 쓴 숨을 내뱉는다]
(이진) 아까
[이진이 숨을 들이켠다]
이현이가 그러더라고요
여기 온 거 자기 핑계 대지 말라고
[이진의 쓴웃음]
맞는 말 같아요
[한숨 쉬며] 뭐 면접은 계속 떨어지고
[잔잔한 음악] 실패가 반복되니까
도망치고 싶었어요
도망치고 싶은 건
나였으면서
이현이 핑계 댄 거 같아요
[한숨]
제가 너무 별로예요, 삼촌
[떨리는 숨소리]
[버튼 조작음]
[안내 음성] 삐삐 호출은 1번
음성 녹음은 2번
가입자 서비스…
[버튼 조작음]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삐 소리가 흘러나온다]
(녹음 속 희도) 백이진 나야, 희도
네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원망하진 않아
네가 이유 없이 나를 응원했듯이
내가 너를 응원할 차례가 된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삐 소리가 흘러나온다]
[안내 음성] 다시 들으시려면 1번
[버튼 조작음]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동전이 잘그랑 떨어진다]
(녹음 속 희도) 백이진 나야, 희도
네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원망하진 않아
네가 이유 없이 나를 응원했듯이
내가 너를 응원할 차례가 된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안내 음성] 다시 들으시려면 1번
[부스럭거리는 소리]
[희도가 지퍼를 직 닫는다]
[칼이 달그락거린다] [희도의 힘주는 숨소리]
[잔잔한 음악]
(희도) '국가 대표 나희도'
[노크 소리가 들린다]
(선수4) 곧 경기장으로 출발한대
얼른 나와
예
[문이 탁 닫힌다]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이진)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이진 외삼촌) 예, 여기 있습니다 아유, 고맙습니다! [손님들이 소란스럽다]
얼마나 하실 건데예?
[손님들이 저마다 말한다]
어? 2만 5천 원
쪄 줄까예?
살아 있는 거는…
[이진 외삼촌이 말한다]
[이진이 탁탁 칼질한다]
(이진) 네, 여기 있습니다
- (이진) 네, 감사합니다, 예 - (손님1) 네
(손님2) 이거, 홍게 좀…
- (이진) 홍게 드릴까요? - (손님2) 예
(이진) 몇 마리 드릴까요?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TV 속 앵커) 다음은 펜싱 소식입니다
오늘 열린 대통령 배 남녀 펜싱 대회에서
고유림 선수가 이변 없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고유림 선수는 결승전에서 만난 이상언 선수를 제치며
1위에 올랐고
2위는 이상언 선수
3위는 얼마 전 국가 대표로 발탁된
나희도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희도)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옅은 웃음]
[희도의 비명]
[희도의 웃음]
[신난 탄성]
[희도의 웃음]
[물소리가 콸콸 난다]
[반짝이는 효과음]
[강조되는 효과음]
[물소리가 콸콸 난다]
[물소리가 콸콸 난다]
축하해
나희도
(경비원) 거기 뭐 하는 겁니까!
(희도) 죄송합니다
[수도꼭지가 끼릭끼릭 돌아간다]
[강조되는 효과음] [감성적인 음악]
[이진과 희도의 가쁜 숨소리]
(녹음 속 이진) 보고 싶었어
[강조되는 효과음]
(녹음 속 이진) 근데 봤어
네가 보여 줘서
그래서 오늘은 웃었어
[눈물이 톡 떨어진다]
'풀하우스' 14권은 나왔어?
[울먹이며] 나왔어
(녹음 속 이진) 15권 나오기 전에 나타날게
기다려, 희도야
[안내 음성] 다시 들으시려면 1번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삐 소리가 흘러나온다]
(녹음 속 이진) 보고 싶었어
[동전이 잘그랑 떨어진다]
근데 봤어
네가 보여 줘서
그래서 오늘은 웃었어
(이진) '풀하우스' 14권은 나왔어?
15권 나오기 전에 나타날게
기다려, 희도야
[힘찬 음악]
(승완) 나희도
너 3학년 되고 학교 처음 오잖아
- (지웅) 안녕 - (유림) 또 같은 반이야?
(희도) 아시안 게임도 잘 부탁해
칼 준 사람도 잘 좀 부탁해
[관중들의 환호] [카메라 셔터음]
(찬미) 같은 팀 동료로 지내다가 결승에서 적이 되는 거
불편하고 재밌죠
(희도) 내가 금메달 딸까 봐 아주 전전긍긍이던데?
(유림) 엿들었니?
(코치) 너 거기서 금메달 못 따면 [희도의 환호]
네 명성 싹 다 무너지는 거라고
[사람들이 구호를 외친다]
(희도) 백이진
(이진) 도망은 여기까지예요
.스물다섯 스물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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