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솔솔라라솔 3
[흥미로운 음악]
[라라가 드르릉 코를 곤다]
[당황하는 신음]
[강조되는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라라의 비명]
[라라의 비명]
(준) 오해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라라의 비명]
(라라) 으, 빨리 옷이나 입어!
[문이 쾅 열린다]
[하영의 비명]
[라라의 비명]
[은석의 비명]
(하영) 둘, 둘이 지금 뭐 하는 거야!
- (라라) 난 그냥 자려고 - 씻었는데?
- (하영) 뭐? - (준) 왜?
(하영) 자려고 씻어?
- 피해 - (하영) 오빠!
(하영) [문을 달그락 흔들며] 오빠 어디 가? 아, 오빠!
[당황하는 숨소리]
(라라) 선생님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설마 저 찾아오신 거예요?
(은석) 아니요, 저는 그냥, 그…
이 사람이 좀 의심스러워서
[발랄한 음악] (하영) 아니, 누가 누굴 보고 의심스럽대?
여기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 아저씨거든요?
네, 우리 가게 왜 훔쳐봤는데요?
(은석) 아니야, 그런 거
[은석의 한숨]
아니,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진짜 아닌데
뭐라는 거야?
굳이 뭐, 내 입장을 밝히자면
라라 씨가 걱정돼서 여기까지 왔다고 해 두지
(준) 얘 걱정을 왜 선생님이 하는데요?
뭐, 그야
(은석) 내 환자니까, 어 [은석의 어색한 웃음]
[라라의 멋쩍은 웃음]
(하영) [손뼉을 짝 치며] 자, 자, 됐고
우리 이쯤에서 교통정리 한번 가죠
여기 이쪽은 이 가게에 사는 준이 오빠
뭐, 이 언니는 이 가게 하숙생
그리고 아저씨는 하숙생의 주치의
그럼 넌?
(하영) 나? 나야, 뭐
우리 준이 오빠랑 결혼할 사람
(준) 야 [흥미로운 음악]
(라라) 아, 남친 걱정돼서 왔어?
누가 남친이야
(라라)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오늘만 자고 내일 나갈 생각이었어
어? 라라 씨, 어디 갈 데 있어요?
[라라의 고민하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내일 찾아보려고요
(준) 살 데 찾을 때까진 여기 있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하영) 언니!
우리 집에서 하숙해
[TV에서 무거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숙경) 아유, 저거 도망갈 거 같은데
(TV 속 배우1) 노양심 환자분, 괜찮으시죠?
이제 마취 들어갑니다
저, 잠깐만요
(TV 속 배우1) 왜요? 어디 불편하세요?
화장실 좀
[TV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냥 마취하지, 화장실을 왜 보내
(TV 속 배우2) 어머!
(숙경) 저거 봐, 저거 봐, 저거 봐! 아휴, 도망갔잖아
아유, 진짜 [TV에서 드라마가 계속된다]
딸
엄마, 맥주 원 모어
하영아
(숙경) 하영아
아니, 얘가 어딜 간 거야?
[흥미로운 음악] 이리 내놔, 내가 할 거야
됐어, 내 거니까 내가 끌게
- (준) 줘, 무거워 - (하영) 아
씁, 줘
내가 데려다줄게
(하영) 씨, 나 오빠가 이 언니 거 들어 주는 꼴은 죽어도 못 봐
[하영이 투덜거린다]
[준의 한숨]
(은석) 아, 저, 저기
저랑 잠시 얘기 좀 할까요?
(라라) 너 준이 좋아하는구나?
나 엄청, 엄청, 엄청 많이 좋아하니까
오빠한테 관심 1도 주지 마요
참, 지금 내 코가 석 자라 남한테 관심 줄 여유 1도 없거든?
그래요? 그럼 오빠한테 꾼 돈도 빨리 갚고요
아, 얼른 사라지면 더 좋고
알겠으니까 구박 좀 그만하지?
치
(은석) 저
쓸데없는 오해로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근데
이 동네에 산 지 오래됐습니까?
(하영) 뭐, 한 달 조금 넘었나?
[밝은 음악] 원래 거기가 김 씨 할아버지 꽃집이었는데
한동안 비어 있었어
(라라) 그 할아버지랑 준이랑은 무슨 사인데?
그 할아버지가 길에서 사고가 나 가지고 죽게 생긴 걸
(하영) 우리 준이 오빠가 살렸대
병원에도 업고 가고 의식 없던 할아버지 병원비도 내 주고
원래 측은지심 그런 게 많은 스타일이구나
뭐?
뭔 심?
측은지심, 몰라? 측은지심
아, 몰라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팩트는
80이 다 되신 김 씨 할아버지랑 언니랑 동급이라고
원래 우리 준이 오빠가
그런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게 취미야, 취미, 오케이?
뭔데?
그럼 뭐, 설마 우리 준이 오빠가 언니한테 관심 있어서 도와줬겠어?
아니, 뭐, 그런 게 아니라
- 우린 전에 본 적도 있고… - (하영) 뭐?
원래 준이 오빠랑 알던 사이였어?
라라 결혼식 날 봤습니다
부케 배달을 갔었거든요
(은석) 아!
아, 그래서
(은석) 도와줄 수밖에 없었던 거군 [잔잔한 음악]
라라 씨 사정을 알고 있었어
(준) 뭐가요?
(은석) 아닙니다
네, 그럼
라라 씨 병원 잘 챙겨서 보내 주세요
[한숨]
(숙경) 아유, 싫어! 무조건 안 돼!
하숙이 누구 집 애 이름인 줄 알아?
한밤중에 소리 없이 기어 나가더니
왜 준이네 멀쩡히 있던 노숙자를 데려오고 난리야, 진짜!
(라라) 노숙자?
얘기가 다르잖아, 나 갈래
(하영) 아, 언니, 언니, 잠깐만
아, 엄마!
이 언니가 하루에 2만 원씩 내겠대
아, 저기 노는 창고 방 빌려주고
한 달에 60만 원씩 따박따박 받으면 [익살스러운 효과음]
완전 남는 장사지, 엄마
[익살스러운 음악] [라라의 옅은 헛기침]
[헛기침]
(숙경) 아가씨, 하숙비 낼 돈 있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 당장은 없는데
(라라) 나으면 곧 벌 거예요
[웃음]
(숙경) 뭐 해서 벌 건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라라)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부터 생각해 볼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숙경) 돈도 안 내고 여기서 먹고 자고 얹혀살겠다?
이건 하숙생이 아니라 기생충이지, 기생충!
기생충! [숙경의 말이 울린다]
[무거운 효과음]
기, 기생충요?
(라라) 지금 나한테 기생충이라고 한 거예요?
그게 뭐? 기생충!
아줌마!
[애절한 음악] (라라) 저 이제까지 살면서
배 속에 기생충 같은 거 있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기생충은
너무 이상하게 생겼어요
[울먹인다]
[도어 록 작동음] (하영) 아, 언니…
(숙경) 아, 아까는 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갑자기 왜 이래?
(하영) 아, 그거는
아, 저 언니가 우리 준이 오빠네서 살 줄 몰랐을 때 얘기지!
아휴, 이게 남자에 눈이 멀어 가지고
(숙경) 아주 이성을 잃었나, 아휴, 정말! [하영의 아파하는 신음]
- (하영) 아, 왜 때려! - (숙경) 일로 와! 아유
[문이 탁 여닫힌다] 아휴, 정말, 누굴 닮아 가지고
(하영) 어? 준이 오빠
라라 언니 여기 안 왔어?
너희 집에 있어야 될 사람을 왜 여기서 찾아?
그럼 여기도 안 왔으면
그냥 알아서 사라진 건가?
(은석) 아, 저, 뭐, 무슨 일 있었어요?
(하영) 네?
아니, 뭐
그냥 우리 엄마가 라라 언니한테 기생충 같다고 했거든요?
아, 근데 언니가 기생충은 못생겼다면서 집을 나가잖아요
완전 어이없어, 어휴
[잔잔한 음악]
[준의 가쁜 숨소리]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
아이,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은석의 한숨]
아휴
(라라) 배터리까지 나가고
아, 진짜 어딘지도 모르겠고
폰도 안 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진짜
아빠
[신비로운 효과음]
아빠 [훌쩍인다]
[감성적인 음악]
어? 준아!
[준이 자전거를 달칵 세운다]
여기서 뭐 해?
(라라) [울먹이며] 준아
고마워
진짜 너무 고마워, 나 찾으러 와 줘서
내가 왜 이러지?
내 돈도 안 갚고 튈 생각이었어?
(라라) 그럴 리가
난 너에게서 도망갈 수 없어
왜?
지금 나한테
[심장 박동 효과음]
돈 뀌어줄 사람이 너밖에 없거든
[익살스러운 효과음] (라라) 거기다가 나
앞으로 꿔야 할 돈이 너무 많아 [웃음]
[헛웃음 치며] 치
(라라) 아, 너희 집 찾아가려다가 길을 잃은 것뿐이야, 너무 깜깜해서
핸드폰은 왜 꺼 놨어?
내가 꺼 놨을 리가 있겠니? 밥이 없어서 자기 스스로 꺼진 거지
그래서
(준) 이렇게 춥고 위험한데 가방 깔고 앉아서
밤이라도 새울 작정이었어?
(라라) 해 뜨고 날이 밝아지면 너희 집에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았거든
[라라의 웃음] 으이그, 이 바보야
나와
(라라) 응?
나 업고 가라고 하면 화낼 거야?
당연하지
[따뜻한 음악]
(라라) 이따 내 가방 꼭 가져다줘야 돼
알겠어
그냥 우리 집으로 갈까?
(라라) 아니
원장님한테 보증이나 잘 서 줘
불편하다며?
너희 집에 방만 두 개였어도 너한테 눌러 붙었어
어?
내가 가면 네가 잘 데가 없잖아
흥,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뭐
(준) 내가 같이 자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 뭐? 야! - (준) 아, 야! [라라의 놀란 신음]
아이, 농담이야, 농담
제가 책임질게요
(준) 라라가 하숙비를 지급 못 하면
제가 우선적으로 대출해 주는 걸로 하겠습니다
[숙경의 한숨]
준이 총각이 보증을 서겠다는 거야?
아, 오빠가 왜?
(준) 아, 저는 어차피 받을 돈이 좀 있어서
금액만 추가하면 되거든요
아, 진짜 짜증 나!
(하영) 아, 오빠가 통장이야, 은행이야, 뭐야?
왜? 그럼 나도 빌려줘, 나도… [숙경의 성난 신음]
별걸 다 질투하네
(숙경)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한숨 쉬며] 그래서, 짐이 많나?
(숙경) 여기야
아, 저, 그만들 나가 줄래요?
(라라) 오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혼자 있고 싶어요
사실
[흥미로운 음악] 제가 예술을 하던 사람이라 좀 예민해요
[숙경이 풉 웃는다]
- (숙경) 그래, 그럼 - (하영) 무슨 예술?
(숙경) 그냥 나가, 좀, 아이
[문이 달칵 닫힌다]
[숙경의 피곤한 신음]
[하영의 놀란 신음]
(하영) 이 언니 찐으로 부자였나 보네
[입김을 하 분다]
[놀라며] 명품 숍에 고급 레스토랑
[뽀드득 소리가 난다]
씁, 뭔가 클래스가 남다른데?
어? 엄마
이거 그랜드 피아노 아니야?
[놀라며] 진짜 피아니스트인가?
(숙경) 다 뻥일 수도 있지
요즘 별그램 사기꾼 엄청 많다며
아침 프로에서 봤는데
돈 한 푼 없어도 협찬받아서 이런 거 올리고 사업할 수 있다더라
아, 막말로 손이…
손이, 손이 저 모양인데 피아니스트인지 백수인지 알 게 뭐야
쯧, 그래도
[발랄한 음악] 당장 쓸 돈이 없는데 어쩌지?
(하영) 저 언니 돈을 너무 당당하게 빌려
그래서 좀 더 믿음이 간달까
(숙경) 예끼 [숙경이 혀를 쯧 찬다]
사기꾼들이 원래 저런 거야
낯짝이 아주 그냥 아스팔트처럼 두껍다고
그렇지?
내 말 어떻게 생각해?
우리보다 며칠 더 겪어 봐 가지고 잘 알 거 아니야?
씁, 글쎄요
사기꾼이라 하기엔 사고방식이 좀
단순하달까
(숙경) 어, 단순하구나 [하영이 풉 웃는다]
[하영이 키득거린다]
아, 엄마
아, 저 언니 뇌가 얼마나 청순하면 우리 오빠가 이래 [하영의 웃음]
- (숙경) 웃음이 나오냐? - (하영) 아! [준이 피식 웃는다]
아니, 근데 왜 저렇게 조용해?
잠깐 만난 캐릭터로 볼 때 저러고 있을 인간이 아닌데
[긴장되는 음악]
혹시
얘 나쁜 생각 하고 여기서 일 벌인 거 아니야?
(준) 네?
이러다가 기생충이 아니라
송장 치는 거 아니냐고!
(하영)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숙경의 겁먹은 신음]
[라라의 놀란 신음]
[준의 한숨]
[놀라며] 예, 무슨 일이에요?
(하영) 어?
아, 아니야, 미안, 어, 계속 자
그냥 자
응
[라라의 피곤한 신음] [발랄한 음악]
(숙경) 저기
- (숙경) 아, 아가씨? - (라라) 예?
이 상황에 잠이 와?
아, 예
제가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 가지고
준이 돈도 갚고 하숙비도 내야 되는데
뭘 해서 돈을 버나 고민이 돼 가지고
[피식 웃는다]
[라라가 코를 드르릉 곤다]
(숙경) 나가, 자, 주무세요
[피식 웃는다]
[라라가 코를 드르릉 곤다]
[준의 헛웃음] [숙경의 한숨]
(숙경) 기가 막혀서 정말…
스트레스가 밀려오는데 어쩜 저렇게 꿀잠을 자
저 언니 좀 내 스타일인데?
저래서 어느 세월에 사람 구실 하고 돈을 벌겠냐?
(숙경) 가, 얼른
[숙경의 한숨]
[피식 웃는다]
[코를 드르릉 곤다]
[잠꼬대를 한다]
[메트로놈이 째깍거린다] [어린 라라의 리드미컬한 피아노 연주]
(라라) 그 시절 난
세상에서 바흐가 제일 무서웠다
음악의 아버지라던 바흐는
아빠와 다르게 너무도 엄격해서
(미숙) 오늘은 바흐다
[빨라지는 피아노 연주] (라라) 그 이름만 들어도 공포가 밀려왔다
왼손과 오른손이 대화하듯 이어지는 단조로운 멜로디
그 지루함
(미숙) 서두르지 마 손가락 하나하나 정확하게
(라라)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성을 받아먹고 자라는 음악
그게 바흐였다
[건반이 꽝 울린다] [메트로놈이 연신 째깍거린다]
[잔잔한 음악] [째깍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라라야
힘들지?
하지만 이겨 내야 돼
(미숙) 지금 이런 인내의 시간들이
나중에 너한테 큰 선물이 될 거야
잊지 마
네
[어린 라라의 리드미컬한 피아노 연주]
(라라) 그래, 선생님
나 피아노 선생님 하면 잘할 거 같아
[리드미컬한 음악]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달칵 열린다]
(숙경) 일어나, 밥 먹어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힘주는 신음]
[라라의 놀란 신음] (숙경) 빨리 나와
지금 안 나오면 밥 없당
밥, 밥? 밥! [신난 신음]
[흥미로운 음악]
[라라의 당황하는 신음]
[난감한 신음]
[라라의 짜증 섞인 신음] [숙경의 헛기침]
[라라의 불편한 신음]
[힘주는 신음]
[한숨 쉬며] 진짜 가지가지 하네
[하영을 툭 치며] 얘, 쟤 머리 좀 빗겨
[젓가락을 탁 내려놓는다]
[라라의 비명] [흥미진진한 음악]
살살… 요
(숙경)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쪽으로
[라라의 아파하는 신음] 이쪽 결, 왼쪽 결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탄성]
너 솜씨 좋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아니야, 손재주가 남다른 게
(라라) 너 재능 있는 거 같아
[밝은 음악] [라라의 탄성]
뭐, 리본도 하나 꽂아 줘? [날카로운 효과음]
(라라) 어
[라라의 신난 신음]
- (하영) 여기? - 아니, 좀만 더 위에
[익살스러운 효과음] - (하영) 여기? - (라라) 아니, 좀만 위로
- 여기? - 아니야, 좀만 옆으로
- 어, 1cm만 더 - (숙경) 웃기고 앉았네
- (하영) 여기? - (라라) 어
(라라) 어, 완전 센스 있어
[강조되는 효과음] 굿, 굿, 굿!
뭐, 내일도 해 줄까?
(라라) 그럼 나야 좋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숙경) 빨리 밥이나 먹어
[의아한 신음]
눈으로 먹어? 밥상머리에서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라라) 아…
늘 먹던 아침이랑 좀 달라서요
[헛웃음] [흥미로운 음악]
(숙경) 그래?
어디 그 잘난 왕년 아침 메뉴나 들어 보자
뭐, 늘 뭘 먹었는데?
(라라) 음
케일, 시금치, 사과를 간 주스
아보카도스프레드를 바른 글루텐 프리 퀴노아빵
코코넛정크와 청포도, 블루베리 그래놀라를 넣은 요거트
레몬비네그레트드레싱을 곁들인 치커리, 적근대, 라디치오, 로메인에
블랙올리브와 브리치즈를 얹은 샐러드 정도?
[익살스러운 효과음]
영어 쓰지 마, 쯧
지금 랩 한 거야, 언니?
(숙경) 그냥 굶어 [라라의 놀란 신음]
음, 굿, 굿, 굿! [강조되는 효과음]
(라라) 아줌마, 밥을 너무 잘하시는데요? 음
[밝은 효과음] 이 윤기, 찰기, 식감
저희 집에서 20년 동안 일하셨던 김 집사님 밥보다 더 맛있어요
[밝은 음악] 그래?
네
김 집사님은 무려 중식, 양식, 한식 자격증이 네 개나 있으셨는데
그분보다 밥이 훨씬 맛있어요
굿, 굿, 굿!
[헛기침]
(숙경) 어떻게, 저, 밥 좀 더 해 놓고 가?
(라라) 정말요?
그럼 저야 너무 고맙죠
돈이 없으니까 이상하게 배만 더 고프더라고요
(숙경) 응, 고기도 더 먹고
[숙경의 옅은 웃음]
너만 먹지 말고 좀 챙겨
[숙경이 흥얼거린다] 언니
엄마 일도 해야 되는데 밥 정도는 언니가 좀 하지?
당연하지
(라라) 이거 풀면 내가 다 할 거야
그러니까 이거 다 나을 때까지 쪼끔만 봐줘
[새가 지저귄다]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설픈 피아노 연주]
(학원장) 서한대 피아노 전공이라고요?
예
강사 경험은 있으세요?
아, 아니요
(라라) 얘, 메트로놈 켜 [아이가 연주를 멈춘다]
박자가 엉망이다, 응
어
[메트로놈이 째깍거린다] (학원장) 열정이 남다른 스타일인가 보네요
[피아노 연주가 계속된다] [멋쩍은 웃음]
아, 동네 학원이라 보수는 많이 못 드려요
예? 저 지금 합격한 거예요?
아, 예
(학원장) 근데 손이…
(라라) 이거 곧 풀 거예요, 걱정 마세요
(학원장) 어, 그럼
손 컨디션 회복하고 피아노 제대로 치실 수 있을 때 봬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라의 웃음]
[신난 신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아, 얘는 왜 전화를 안 받아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은데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안내 음성] 삐 소리 후 소리샘 퀵보이스로 연결됩니다
[휴대전화 종료음] [신난 신음]
[문이 쾅 열린다] (라라) 아줌마, 아줌마!
나 피아노 선생님으로 취직했어요 [들뜬 신음]
[라라의 웃음]
진, 진짜?
(라라) 아줌마가 뭐 하고 돈 벌 거냐고 막 구박해서 스트레스 장난 아니었는데
[냉장고 문을 달칵 열며]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에요
[신난 신음]
(숙경) 어? 야!
얘, 얘, 얘
남의 걸, 어머, 얘
[작은 소리로] 내 거야, 돈 내고 먹어
(승기 모) 저기
그 아가씬 누구야?
(예서 모) '후 아 유'?
(승기 모) 어, 어 [승기 모가 손가락을 딱 튀긴다]
정리를 해 보자
그러니까, 라라코즈메틱이 아가씨네 회사였는데
결혼식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쫄딱 망했다
이거야?
네
(승기 모) 문 비서라는 아저씨가 상속 정리해 주고 돈도 줬는데
그걸 또 홀랑 사기당하고?
- (라라) 네 - (예서 모) '오 마이 갓' [승기 모의 놀란 신음]
(예서 모) 아, 진짜 이런 일이 다 있네 완전 드라마야, 드라마
(숙경) 아, 잠깐만, 저기
내가, 아이, 듣다 보니까
요즘 그, 7번에서 하는 '위대한 배신자'
그거랑 내용이 비슷하지 않아?
- (예서 모) 맞네, 맞아 - (승기 모) 거기!
(승기 모) 비서가, 비서가 배신자였잖아
(숙경) '오 마이 갓'!
라라야, 문 비서 어디 있어? 연락은 돼?
[의미심장한 음악]
아, 아니에요
(라라) 문 비서 아저씨 진짜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가진 돈 다 털어서 저 주시고 지금 고향 내려가셨어요
[의미심장한 음악]
[개운한 탄성]
(선장) 사장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10분만 더 있다 출발하지
네, 알겠습니다
[옅은 한숨]
[함께 의아해한다] (예서 모) 씁, 그런다고?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한번 확인해 봐
(예서 모) 옛말에도 있지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숙경) 그럼
[승기 모가 킁 소리를 낸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겠지
'마이 미스테이크, 쏘리'
(승기 모) 예서는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면서
엄마는 어쩜 이렇게 말하는 족족 '미스테이크'만 하실까?
(예서 모) 그러는 승기는!
어유, 세상 똑똑한 엄마를 둬서 성적이 그렇구나
하영이랑 뒤에서 맨날 1, 2등을 다툰다면서요?
(승기 모) [웅얼거리며] 야, 3등이야, 뒤에서 3등
뒤에서 3등이면 수재네
(숙경) 아이, 그만들 해
남의 딸 등수는 왜 까고 난리야?
'쏘리' [예서 모의 헛기침]
(예서 모) 그럼 가족은?
남은 가족은 없어?
동생이 있는데
[익살스러운 음악] 지금 병원에 있어요
(승기 모) [놀라며] 왜?
어디 아파? [예서 모가 혀를 쯧쯧 찬다]
저기, 라라야, 너 동생이 있었어?
네, 미미라고 [멍멍 짖는 효과음]
곧 퇴원할 거예요
[승기 모의 웃음]
라라에 미미에 [예서 모의 웃음]
(예서 모) 아버님 작명 센스가 아주 '그레이트'하시네
(라라) 그렇죠? [함께 웃는다]
(숙경) 저기 한 명 더 들어오면은
하숙비도 늘어나는 거 알지?
그만 가 보겠습니다
(숙경) 얘
(예서 모) '바이'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문이 쾅 닫힌다]
(예서 모) 저 아가씨를 옆 가게 준이 총각이 데리고 왔다고?
그 뭐, 그, 그거, 어, 그
채권 채무? 뭐, 뭐, 그런 관계래
[승기 모의 의아한 신음]
사채놀이를 하나?
(승기 모) 저기, 나, 예전부터 궁금해 죽겠는 게 있는데
준이 총각 뭐 하던 사람이야?
몰라, 그, 워낙에 입이 무거운 애라 자기 얘기 절대로 안 하더라고
아니, 나 처음에 봤을 때 말 못 하는 사람인 줄 알았잖아
(예서 모) 어떡해
(승기 모) 완전 더 궁금해
'텔 미, 플리즈'
[승기 모의 들뜬 신음]
(윤실) 뭐, 뭐, 뭐라고요?
지, 지, 지금, 지금 뭐라 그랬어요?
아무래도 서울에 없는 거 같습니다
[어두운 음악] 아니, 서…
(윤실) 서울에 없으면 어디에 있는데?
폰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이 강남 고속터미널인 걸로 봐서
(민수) 거기서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간 게 아닐까
뭐,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 [윤실의 성난 신음]
추정만 하지 말고 좀 빨리 좀 찾아내라고, 좀!
원장님 들어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저희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냥 콱!
일주일 안에 뭐라도 안 나오면 그냥 업체를 그냥 콱 바꿔 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에이씨!
매번 말 끊어 먹는 꼬라지 보니
도망간 놈이 확
이해가 되려고 그러네
[한숨]
근데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흥미로운 음악]
[의아한 신음]
[탄성]
[놀란 신음]
뭐야?
(라라) 이게 숫자야, 외계어야?
어?
옛날 사진인가?
귀엽네
[다가오는 발걸음]
[놀란 신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봐!
어, 미안
아니, 노트 넘기다가 그냥 사진이 있길래…
[준이 서랍을 탁 닫는다]
[떨리는 숨소리]
[잔잔한 음악]
화내서 미안
아이, 아니야 [어색한 웃음]
[한숨]
취직됐다면서?
(라라) 응
[밝은 음악] 완전 잘됐지? 기뻐 죽겠지?
하, 그럼, 드디어 내 돈 갚게 생겼는데
아휴, 내가 하도 너한테 미안해하니까
하나님이 불쌍해서 선물을 주신 거 같아
미안하단 사람 자세가 참…
(라라) 참, 준아, 마실 거 없니?
[라라의 놀란 신음]
다채롭게 좀 채워 놔 봐
난 특히 생과일주스 좋아하는 거 알지?
(준) 여기 있으려면 있든지
어? 어디 가?
(준) 돈 벌러 가야지, 네 보증도 섰는데
어, 나도 갈 데 있다, 뭐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주) 어, 음
아줌마 건강은 어때? 요즘에도 약 드셔?
(시아) 응
충격이 워낙 컸잖아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거 같기도 하고
하긴
[한숨 쉬며]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언니는 이혼하고 메이크업이 바뀌었네?
(영주) 그래? 나 더 이뻐졌지?
아유, 나 그 꼴 보기 싫은 면상 안 보니까
내 얼굴이 막 피더라고 [함께 웃는다]
(시아) 근데 형부는 왜 갑자기 이혼을 하자고 한 거야?
진짜 몸만 나간 거 맞아?
자기가 '무소유' 법정 스님도 아니고
(영주) 아, 그 나이에 중2병이 왔을 리도 없고
한마디로 미친 거지, 뭐
혹시 여자가 있었던 거 아닐까?
(영주) 얘
내 촉 무시해? 여자 문제는 확실히 아니야
그랬으면
내가 순순히 놔줬겠어?
[헛웃음 치며] 하긴
아, 무슨 번아웃인지 커피번인지
아,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는데
아휴, 몰라, 몰라
(영주) 쯧, 알 게 뭐야
재산도 다 버리고 나간 거면
설마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한숨]
[의미심장한 음악]
[한숨]
[약통을 달칵 내려놓는다]
[놀란 신음] (김 간호사) 환자 들여보낼까요?
근데 선생님은 매일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드세요?
[목을 가다듬는다] [컵을 탁 내려놓는다]
비타민이에요, 비타민
[한숨]
(준) 안녕하세요, 이용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린티 수분 크림입니다
드릴까요?
(라라) 저도 주세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준) 네
[발랄한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준) 야, 너 벌써 세 번째야
또 줘
나 크림 다 써 간단 말이야
갈 데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그게 여기야?
[한숨]
집에 가서 누워 있어 이러고 있으면 나…
너 피곤해, 너
아, 혼자 집에 있으면 잡생각만 더 난단 말이야
더 힘들어
나 근처에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일해, 응?
[한숨]
[문이 탁 열린다] (하영) 준이 오빠!
(라라) 하영아!
뭐야?
- (하영) 언니가 왜 여기 있어? - (승기) 아는 사람이야?
(라라) 어, 하영이 친구니?
- 저녁 먹으러 왔구나? - (승기) 네
아, 언니 여기서 뭐 하냐고
뭐 하긴, 그냥 있었지 준이 얼굴 보면서
(하영) 설마 지금
우리 준이 오빠랑 하루 종일 붙어 다닌 거야?
아니, 내가 따라다녔는데?
(하영) 아이씨, 아, 진짜 짜증 나!
나도 내일부터 학교 안 나가고
우리 준이 오빠 하루 종일 따라다닐 거야
야, 미쳤냐?
(라라) [피식 웃으며] 흥분하긴
걱정 마, 나 오늘 취업도 했고
바빠져서 조만간 쟤 따라다닐 일 없을 거야
- 진짜지? - (라라) 그럼
배고파, 빨리 주문이나 하자
그래, 그럼 난 햄 많이
난 치킨, 아보카도 추가
제가 사는 거예요?
(라라) [피식하며] 하영이한테 얘기 못 들었구나
내가 아직 돈이 없거든
다음에 월급 받으면 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사 와
[승기의 못마땅한 신음] - (라라) 아보카도 맛있지? - (하영) 맛있어
[의아한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씁
아, 삥 뜯을 관상은 아닌데
[흥미로운 음악]
[준이 잘그락거린다]
(승기) 저 형은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대?
(하영) 글쎄다, 뭔가 말은 안 하는데 왠지 어문 계열 같아
내가 저번에 주문받는 거 봤거든
근데 영어 겁나 잘하더라
야, 중국어도 잘해
[탄성] 준이 외국어도 잘해?
난 수학과
오늘 서랍에서 뭔 소린지도 모르겠는 수학 노트 봤어
(승기) 아, 운동도 열라 잘하던데
같이 농구해 봤는데 탄력 완전 대박!
[탁자를 탁 치며] 난 저 형 사체과에 500원
(매니저) 야, 준아
야, 저기
야, 막 '우아!'
팬클럽이냐? [매니저의 어이없는 웃음]
아이, 내가 쟤네 둘은 내가 자주 봐서 알겠는데
저 깁스한 여자는 뉴 페이스다
어쨌든 시간 됐으니까 야, 쟤들 데리고 빨리 퇴근해, 가자
네
너희 이제 그만 올 때도 되지 않았냐?
(승기) 아, 씨, 나야 그러고 싶지
얘 때문에 안 돼
(하영) 준이 오빠, 나 질문 있는데, 오빠…
(라라) 너 전공이 뭐였어?
나 중졸이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발랄한 음악]
(하영) 아이씨, 쯧 [문이 달칵 여닫힌다]
결혼하려면 엄마가 반대 좀 하겠네
중졸이면 군대 면제겠네
(하영) 야, 비켜
(승기) 아, 같이 가
[문이 달칵 여닫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나?
아, 나도 같이 가
(하영) 오빤 영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 거야? 나도 좀 알려 줘
[하영이 계속 말한다] - (승기) 근데 누나 - (라라) 응?
(승기) 누난 이름이 뭐예요?
라라, 구라라
[승기가 픽 웃는다]
되게 거짓말 같네요
(승기) 구라
(라라) 치, 넌 뒤에서 3등이지?
아이씨, 하영이가 벌써 불었어요?
아니, 미용실에서 들었는데
(승기) 아니, 엄만 자기 얘기나 할 것이지
왜 자꾸 내 얘기를 하고 그래 아이, 진짜
그래도 뒤에서 2등보다 3등이 더 좋은 거 아닌가?
(승기) 아, 뭐, 그렇긴 한데
(하영) 오빠가 초졸이든 중졸이든 다 좋아
- (승기) 그런데 누나 - 어?
[하영이 계속 조잘댄다] 형이랑 무슨 사이예요?
(준) 시끄러워, 좀, 진짜 [휴대전화 진동음]
(라라) 음
(준) 잠깐, 전화 왔어
내가 돈 꾸는 사람이야
- (준) 여보세요? - (승기) 네?
(준) 미미 퇴원해도 된다는데?
진짜?
[익살스러운 음악]
(숙경) 이, 미미가
저, 그러니까 저 병원에 있다던 동생이 이 개였어?
네
(숙경) 안 돼, 절대, '네버'
여기서 살 수 없어 [재채기를 한다]
봤지? 나 개 알레르기 있다고 [숙경이 재채기를 한다]
(하영) 아, 뭐야? 아, 엄마가 마스크 쓰면 되잖아
이렇게 귀여운데
- (숙경) 아휴, 이게 진짜 - (하영) 아!
너 엄마가 중요해, 오늘 처음 본 저 미미인지 뭔지 하는 개가 중요해?
(라라) 저는
미미랑 떨어져서는 못 살아요
(라라) 어? [미미가 낑낑거린다]
(준) 아, 미미는 일단 내가 데려갈게
[난감한 신음]
[준의 한숨]
(준) 쉬세요, 네
늦었는데 얼른 자
[난감한 신음]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라라) 미미야
미미야!
[문이 달칵 닫힌다]
(하영) 아, 진짜 짜증 나
왜 엄만 하필 개 알레르기가 있고 난리야
[하영을 탁 때리며] 에이, 뭐야?
너 불효녀야, 어디 좀 맞자!
[하영의 아파하는 신음] (숙경) 이리 와, 이리 와, 아, 이리 와!
(준) 내가 잘 돌볼 테니까 걱정 마
(라라) 집까지만 바래다줄게
미미야, 언니 왔다 [라라의 웃음]
언니가 바래다줄게
(준) 아이고, 참
[밝은 음악]
[라라의 신난 신음]
(라라) 미미야, 밤공기가 좋다, 그렇지?
응?
(라라) 미미야 [미미가 헥헥거린다]
언니가 내일 아침에 해 뜨자마자 데리러 올게, 알았지?
[걱정스러운 한숨]
안 되겠다
집까지 바래다줄게
너 혼자 늦게 다니고 이러면 안 된다
알았어
들어가
(라라) 응, 잘 자
(준) 응
[라라의 다급한 신음]
(라라) 미미야
- 왜 또? - 미미가 보고 싶어서
(라라) 미미야, 언니가 집 앞까지만 바래다줄게
(준) 안 돼, 안 돼
왔다 갔다, 이러다 밤새워
너희 집에 방만 두 개 있었어도 좋았겠다
그렇지, 미미야?
너희 집에 방만 두 개였어도 너한테 눌러 붙었어
너희 집에 방만 두 개 있었어도 좋았겠다 [부드러운 음악]
[한숨]
[은석의 한숨]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숨]
[피곤한 신음]
[피곤한 신음]
오늘도 실패
[휴대전화 알림음]
[피식 웃는다]
(라라) 풀어 주세요, 얼른
아유, 급하기도 하지
인사도 하기 전에 손부터 올라오네
[살짝 웃는다]
(라라) 아, 왜 이러지?
너무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가
씁, 자
[라라의 아파하는 신음]
오랜만에 써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어
쌤, 제 손 괜찮은 거죠?
100% 다 낫는 거 맞죠?
[손뼉을 짝 친다] 씁, 자
회복될 때까지 물리 치료 꾸준히 받아야 돼요
(은석) 절대 무리해서 쓰지 말고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저기, 라라 씨
(은석) 그, 깁스를 푼 기념으로 뭐, 저녁 대접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세요?
저랑 저녁을요?
왜요?
(은석) 그, 부담스러운 제안이면 내가 취소할게요
(라라) 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요, 다만
오늘은 안 돼요
(라라) [들뜬 목소리로] 준아! 나 깁스 풀었어!
풀…
[미미가 낑낑거린다]
[한숨]
[익살스러운 음악]
(라라) 어머
미미야,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아, 저, 환경이 바뀌어서 불안했나?
[작은 목소리로] 미미야, 너 언니한테 혼날래? 이러면 어떡해!
[한숨]
(라라) 우와, 이런 데도 있구나 [라라의 탄성]
오, 냄새 좋다
(준) 세제 냄새
(라라) 음, 누가 모를까 봐?
[냄새를 킁킁 맡는다]
[세탁기 작동음]
[세탁기 작동음]
(라라) 음, 메트로놈 60, 아다지오
저 세탁기 소리, 메트로놈 소리 같아
아다지오 정도의 빠르기랄까?
어
예전엔
[잔잔한 음악] 그냥 피아노가 옆에 있어서 쳤던 거 같아
(라라) 아빠도 선생님도 치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치기만 했어
[피식하며] 근데 참 신기하지
막상 피아노가 사라지니까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못 치게 되니까 막 피아노가 엄청 그리운 거 있지?
[라라가 살짝 웃는다]
몇 살 때부터 쳤는데?
(라라) 네 살?
20년 동안 피아노가 네 옆에 있었어
(준) 그걸 어떻게 잊어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시간이야
그 시간이 곧 너니까
(라라) 어, 저, 건, 건조기 이제 돌려야 되나?
빨리 가자 그, 하영이랑 아줌마가 기다리겠네
야, 그거 아직 건조기 넣으면 안 돼
[밝은 음악]
[라라의 힘주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하영의 신음]
[하영의 짜증 섞인 신음] (라라) 어?
아, 언니 일부러 그랬지?
미안, 내가 가위질을 안 해 봐서 괜찮아?
(숙경) 뭔들 해 봤겠냐
아, 고기도 좀 그만 뒤집어 육즙 다 빠지겠어
(준) [한숨 쉬며] 줘, 내가 할게
(하영) 뭐야, 오빠?
지금 언니 도와주는 거야?
(준) 그냥 내 일 하는 거야 알바로 많이 해 봤으니까
뭐야, 아, 이리 줘 내가 할 거야, 빨리
(숙경) 아, 좀 조용히 해 고기 굽는데 왜 이렇게 말들이 많아?
[숙경이 입소리를 쯧 낸다]
(하영) 언니
이제 깁스도 풀었으니까 증명 좀 해 봐 봐
뭘?
(하영) 언니 피아니스트인 거
콜!
(숙경) 박수
- (라라) 여기서 피아노 치라고? - (숙경) 응
(라라) 이런 데서는 처음이긴 한데…
[숙경이 재촉한다]
[숨을 후 내뱉는다]
[발랄한 피아노 연주]
(숙경) 속았네, 완전히 속았어
저, 저, 저, 저, 저, 저 피아노 사기꾼한테 옴팡 뒤집어썼어
[한숨 쉬며] 정말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풉 뿜는다]
- (하영) 엄마! 괜찮아? - (숙경) 아, 뜨거워
(숙경) 아휴, 대체 사람 놀라게
너 지금 피아노로 복수하는 거야?
음악은 복수가 아니라 사랑입니당
(숙경) 얘!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라라) 아파, 불편해
[한숨] 오늘 약속 있다고 했는데
(은석) 아이, 무리하면 안 되는데, 저
(준) 그만
[부드러운 음악] 서두르지 마
(라라) 응
[라라의 힘주는 신음]
(라라) 준아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를 달칵 집는다]
(라라)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코를 훌쩍인다]
[휴대전화 진동음]
(준)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 진동음]
(라라)
(준)
(준)
삐졌나?
(준) 너희 주인 스트레스가 밀려와서 또 폭풍 잠 자나 보다
[낑낑거린다]
[코를 드르릉 곤다]
(라라)
[밝은 피아노 연주]
(라라) 문득 바흐를 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답답해도 지루해도 서두르지 않고
한 음, 한 음을 알아 가던 수고 그 태도
[밝은 음악]
(은석) 라라 씨?
요즘에 무리하는 거 아니죠?
아이, 그럼요
조금씩 천천히 하고 있어요
[밝은 피아노 연주]
[부드러운 음악]
[잘그락 소리가 난다]
(준) 89만 원
많이 모자라네
밤마다 위험한데
[준이 스위치를 달칵 끈다]
[자동차 엔진음]
[휴대전화 진동음]
- 네, 여보세요? - (점장) 준이 씨, 어떡해
(점장) 물건이 지금 들어온대
미안한데 재고 정리하고 새 상품 분류 좀 해 주고 가면 안 될까?
[한숨]
[무거운 피아노 연주]
[무거운 피아노 연주가 들려온다]
[긴장되는 효과음]
(라라) 설마, TV에서 보던 연쇄 살인범
그런 거 아니겠지?
(만복) 아가씨! 아가씨
잠깐만!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라라) '소녀의 기도'
(만복) 저, 미안하지만
이 곡 좀 쳐 줄 수 있겠소?
아
돈은 줄 테니까
아, 그, 내가 실례를 했나 보네
(라라) 잠깐만요!
[살짝 웃는다]
저 돈 받고 피아노 치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
뭐, 할아버지가 정 원하시면 제가 받을 수도 있어요
[라라의 멋쩍은 신음]
할아버지
나쁜 사람 아니죠?
아휴
(라라) 거기, 그, 그대로 계셔야 돼요
그대로
[긴장한 신음]
[숨을 후 내뱉는다]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
할아버지?
[잔잔한 음악]
설마 지금 우신 거예요, 제 연주 듣고?
[멋쩍은 신음]
[라라의 놀란 숨소리]
처음이에요, 제 연주 듣고 운 사람
[울먹이며] 고마워요,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라라) 하, 할아버지는 막 우시는데 이상하게 저는 막 힘이 나요
미쳤나 봐
할아버지, 돈 안 주셔도 돼요
이거 제 선물이에요
고마워
제가 더 고맙습니다
(라라) 안녕히 계세요
[라라의 벅찬 신음]
안녕히 계세요
[가쁜 숨소리]
[스위치를 달칵 켠다] [힘주는 신음]
[힘주는 신음]
[시원한 숨을 내뱉는다] [문이 달칵 열린다]
좋다
[문이 탁 닫힌다]
[밝은 음악]
내 거라고 먹지 말랬지?
제가 나중에 열 박스 사다 놓을게요
장부에 달아 놔요
(숙경) 그놈의 장부는 다 채워 가는데
입만 살아서는
(라라) 정리라도 예쁘게 해야지
(하영) 언니
요즘 밤마다 어딜 그렇게 쏘다녀?
설마 우리 준이 오빠 만나고 다니는 거 아니지?
그럼, 그냥
(라라) 힘들어도 묵묵히 피아노를 치던 그 태도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발랄한 음악] 내 맘속의 종교 활동, 그런 거 다녔어
(숙경) 얘! 너 이상한 사이비 뭐, 이런 데 빠진 거 아니지?
아니에요
이제 기도 마치고 자신감 회복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영이도
(숙경) 얘야, 저, 씻고 자야지?
(라라)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 씻을게요
[문이 쾅 닫힌다] 그, 지지야!
(하영) 나도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부터 공부해야겠다
(숙경) 야! 야, 야, 고3이 내일이 어디 있어?
[쿵 소리가 난다] [아파하는 신음]
[문이 쾅 닫힌다] 아니, 씻고 자
[휴대전화 진동음]
[반가운 신음]
준아
(준) 어디야? 집에 들어갔어?
(라라) 시간이 몇 신데 당연히 집이지
[옅은 한숨]
[안도의 한숨]
(라라) 넌?
(준) 나 퇴근하는 중
- (준) 뭐 해? - 네 생각
(준) 내 생각…
내 생각 하지 말아 줄래?
왜?
나 너한테 자랑할 거 있어서 그런 거거든?
(준) 무슨 자랑?
(라라) 오늘 어떤 할아버지가 내 연주 듣고 우셨어
[부드러운 음악] (라라) 너 '소녀의 기도' 알지?
그, 학교 종소리로 나오는 음악 있잖아
(라라) 그 흔한 '소녀의 기도'를 듣고는 감동하셔서
막 눈물을 흘리시는 거 있지
(준) 진짜?
난 못 믿겠다
(라라) 치, 너 누구 연주 듣고 운 적 없지?
[잔잔한 음악]
어, 당연히 없지
아유, 그러니까 이해를 못 하지
뿌듯해
(라라) 나 혹시 이제까지 숨어 있던 재능 있었던 거 아닐까?
그럴 리가
(라라) 너 딱 기다려
언젠가 내 연주 듣고 눈물 줄줄 흘리게 해 줄 거야
기대할게
너 내일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보여 줄 거 있는데
뭐?
(준) 직접 와서 봐
어, 괜히 궁금하게
늦었어, 얼른 자
나 별 보다 잘래, 잘 가고 또 잘 자
어
[통화 종료음]
[피식 웃는다]
[기분 좋은 한숨]
['작은 별 변주곡'을 흥얼거린다]
(준) 20년 동안 피아노가 네 옆에 있었어
그걸 어떻게 잊어
(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시간이야
그 시간이 곧 너니까
(라라) 준이의 말처럼
그 시간 속에 정말 내가 있었다
[피식 웃는다]
[무거운 음악]
[음산한 음악]
[경쾌한 음악]
(라라) '오 마이 갓'
(라라) 준아, 네가 내 방 만들어 준 거야?
준아, 고마워, 정말정말 고마워!
- (숙경) 라라 랜드? - (하영) 라라 랜드?
(라라) 라라 피아노 랜드요
(하영) 근데 피아노 한 대로 학원을 하려고?
(준) 레슨비
내가 네 첫 번째 수강생 해 줄게
(은석) 라라 씨는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은석) '도도솔솔라라솔'이라는 닉네임의 주인이
이미 만난 사람 중에 있다는 생각 안 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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