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13
[주제곡]
[긴장되는 음악]
[채경의 놀란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유모) 아씨 [문을 드르륵 연다]
요, 요, 각시님들이 또 한 건 했다 아인교?
[유모의 감탄하는 신음] 굶어 죽는 백성들 쌀만 나눠주는 줄 알았더니만
비리 대신까지 딱 잡아주고 마
[유모의 통쾌한 웃음]
이 일이 다 임금님이 해야 되는 일인디, 이거, 이거
아이고, 미쳤다, 미쳤어
설마...
[놀란 숨소리]
(융) 역이가 어떤 의지를 갖는 순간 그것은 역심이며
역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역모에 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채경) [떨리는 목소리로] 설마 대군마마...
[채경의 떨리는 숨소리]
[석희의 깊은 한숨]
[명혜의 깊은 한숨]
[긴장되는 음악]
(석희) 뭐야, 이거 왜 이래?
- (석희) 이거 왜 이래? - (광오) 들어가 봐
[석희의 당황한 숨소리]
(광오) 없어지거나 침입한 흔적이 있나 찾아보자
[광오와 석희가 분주히 뒤진다]
(역) 무슨 일이야?
(광오) 어, 출입문 자물쇠가 뜯겨 있었어 밀실 문도 열려 있었고
왜?
아니야
- 누구냐? - (광오) 뭐야?
(석희) 잡아!
[광오와 석희의 다급한 발소리]
[의미심장한 음악]
"전당"
[떨리는 숨소리]
[고조되는 음악]
[슬픈 숨소리]
[가림막을 쫙 친다]
(채경) 전하, 정녕 이걸 다 아시고 저한테 첩자가 되라 하신 겁니까?
왜요?
정녕 제 손으로 대군마마를 죽이게 하시려고요?
[구슬픈 숨소리] 해서 이 혼인을 시키신 겁니까?
[종이 딸랑 울린다]
(석희) 아이, 대체 어떤 자식이야?
- (석희) 역아 - (광오) 역아
아무래도 좀도둑이었던 것 같다
(역) 도승지 쪽 사람들이었으면
벌써 관군을 끌고 왔을 텐데 이렇게 조용한 걸 보니
(역) 뒤탈 없이 수습 잘해라
[종이 딸랑 울린다] 안색이 왜 저래? 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서노 아버지 그리되시고 밀실도 노출되고 낯빛이 괜찮겠냐?
(석희) 아휴, 하긴
아, 뭐냐, 이게? 하다 하다 좀도둑까지 설치고, 쯧
전 대비전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종이 딸랑 울린다]
- (광오) 서노야 - (석희) 서노야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서노) 일해야죠, 손님들 올 시간입니다
아니, 그래도 너는 좀 쉬는 게....
동적전 마을에 있는 할머니 산소 옆에 아버지 무덤을 이장할 겁니다
그러려면 그 전에 왕을 몰아내야 합니다
한가하게 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나지막한 한숨]
[의미심장한 음악]
[새소리]
(유모) 오마야! 오마야, 아이고, 식겁이야
[유모의 칭얼대는 신음]
채경이는 어디 있는가?
같이 계셨던 것 아닙니까요?
어, 그러면 어디 가셨지?
(대신1)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억울하옵니다, 전하
경이 우렁각시의 벽서를 보고 유자광의 탄핵을 추진했다지?
- 한데 억울하오? - 그러하옵니다
[불안한 음악]
과인에게 충심을 바쳐 일을 해야 할 경들이
감히 과인을 비난하는 익명서를 넣고도 억울하다?
(대신1) 소신, 전하와 이 나라 조선의 종묘사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리... [융이 칼로 휙 벤다]
[대신1의 외마디 신음] [대신2의 기겁하는 신음]
[놀란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대신2가 벌벌 떤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군
경도 억울하오?
(대신2) [벌벌 떨며] 아니옵니다, 전하
(융) 잘됐구려 하면 죗값을 치르시오
[융이 칼로 휙 벤다] [대신2의 외마디 신음]
[놀란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사홍) 치워라
[떨리는 숨을 몰아쉰다]
(채경) 연모하는 이의 배신을 깨달은 후
비로소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짜 세상과 마주한다
[백성들의 비명과 신음]
(채경) 내가 오랜 시간 지지하던 임금님은
"금"
횡포함으로 권신들을 다스리는 주군이 돼 있었다
나는 참으로 미련하고 우둔한 계집이었다
채경아
[고조되는 음악]
채경아!
(융) 채경이가 잠긴 전당포 문을 뜯고 들어갔다는 것이냐?
네, 전당포 문고리를 둔기로 몇 차례 내리쳤다고 합니다
드디어 시작됐구나 의심과 균열 그리고 감시가
채경이가 곧 과인에게 보고하러 올 것이다
그때 증좌를 잡아서 움직일 것이니
그때까지 전당포 감시를 더 철저히 하거라
네
[무거운 음악]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정녕 이게 그 사관의 몸에서 나왔단 말이냐?
예, 장례를 치르면서 혹시 몰라 서노 아비의 유품을 뒤졌사온데
서노 아비가 옷자락에 꿰매 숨겨둔 걸 제가 찾았나이다
여인의 몸이라
밀지가 여인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선왕 전하의 궁녀나 비빈들을 살펴보라 이르겠습니다
[자순대비가 책상을 탁 두드린다]
역이에게 왕위를 선위하라는 밀지를 새길 정도면
우리 역이를 도울 사람일 게다
(자순대비) 선왕의 후궁일 리는 없지
다 제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싶은 계집들인데
뭣 하러 진성대군을 옹립하는 것을 돕겠느냐?
[자순대비의 고민하는 신음] 여인의 몸에 문신으로 새겼다?
(녹수) 대비전에서 밀지의 여인에 대해 얘기 중이라고 합니다
그 여인이 누군지는 알아냈다는가?
(녹수) 아직은 아닌 듯싶습니다
[사홍의 깊은 한숨]
밀지의 여인을 찾게 되면 그다음은 어찌하실 겁니까?
대비전에서 움직임이 보이는 즉시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할 것이야
그 여인이 누가 됐든
적어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진 않을 텐데요
호의적이건 말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린 그 계집의 몸뚱이만 보면 되는 게 아닌가?
거기 새겨진 문신
(사홍) 수하들이 죽여서라도 데려오면
몸을 살피는 거야 자네 눈이 하겠지
예, 그렇게 하죠
[놀란 외마디 숨소리]
[채경이 숨을 몰아쉰다]
(역) 이리 주게, 내가 할 터이니
(유모) 단디 먹이셔야 합니더
[애잔한 음악]
(채경) 아무리 생각해도 대군마마가 죽는 걸 두 번 볼 수 없습니다
내 손으로 대군마마를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역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대군마마의 역심이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그전에 제가 대군마마 마음을 돌려놓을 겁니다
(역) 내가 이기적이었다
이리 너를 아프게 할 줄 알면서도 너를 욕심 냈다
[고조되는 음악]
(융) 그걸 알아내는 즉시 입궐하여 비서사 서고로 오너라
[나지막한 한숨]
(융) 병조참판 유자광의 유배를 취소하고 병조판서로 승진시키겠소
전하
(희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죄인들을 벌을 주진 못할망정 더 높은 벼슬을 제소하신다니요?
(원종) 전하, 이미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안들이옵니다
한데 이대로 이들의 죄들을 묻어버리시면...
(융) 응당, 벽서에 써진 것이 거짓이고 과인의 결정이 진실이라 믿게 되겠지
백성들이 과인보다 그 우렁각시인지 뭔지 하는
쥐새끼 같은 놈들 말을 더 믿는 게 아니라면 말이오
혹 우렁각시의 말을 믿고 과인 결정에 토를 다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곧 능상이고 반역이겠지 아니 그렇소?
[긴장되는 음악]
(융) 부총관
예, 전하
경이 과인에게 불만이 꽤 많은 듯하오?
아니옵니다, 전하
아니다?
한데 어쩌나
과인은 경에게 불만이 많소
(융) 분명 궁에서 오위의 입직과 행선을 점검해야 할 시각에
웬 뒷골목 전당포에서 여가를 즐기고 다녔지 않소?
일을 하기 싫은 모양이오?
송구하옵니다, 전하 그것이 아니오라...
오위부 부총관 박원종에게 근신령을 내리겠으니
(융) 앞으로 달포 간 입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원종) 전하!
만약 궁에서 얼굴을 보이는 날에는
어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알고 능상죄로 다스리겠소
명을 받들겠나이다
[긴장되는 음악]
아이고, 날씨 좋다
[석희가 숨을 내쉰다]
[목을 가다듬는다] 아, 아이고
아이고
[석희가 목을 가다듬는다]
아이, 저 화상들 아직도 감시 중이네
좀 가지
[목을 가다듬는다]
아이고,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자, 오랜만에 오셨네? 이쪽으로
- (사내) 정말로 쌀을 줍니까? - (석희) 아이, 그럼요
(명혜) 병참 대감에 대해 탄핵 상소를 넣은 대신들의 목이 달아났답니다
(광오) 상소문 하나 잘못 써서 죽었단 말입니까?
외숙부님께서도 갑자기 근신 명령을 받으셨고
유자광 대감은 복권되고 심지어 더 높은 벼슬을 제소받았어요
[기가 찬 숨소리] 왕이 드디어 미쳤군요
눈 가리고 아웅이지, 어떻게...
금상 본인이 아니라
진성대군이 막후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드셨을 게다
문제는 이런 식이면 벽서도 소용없게 될 것 같단 겁니다
(명혜) 이제 사람들은 웬만한 배짱으로는 벽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을 거예요
(서노) 그렇다고 하던 일을 그만둘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왕의 행보까지 걱정하면서 숨죽이고 있기에는
조정 곳곳에 썩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요
하루빨리 도려내야 조선이 제대로 굴러갈 것 같습니다
아니, 근데 대군께선 어디 계시느냐?
부부인 마님께서 편찮으시다고 같이 계셔야겠다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랑방 댓돌 아래 죽간을 묻어두기로 했고요
[긴장되는 음악]
[원종의 옅은 숨소리]
[풀벌레 소리]
(서노) 하루빨리 왕이 되십시오
[애절한 음악]
왕이 되시면...
[훌쩍인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지킬 수 있습니다
[숨죽여 흐느낀다]
[흐느낀다]
(나인1) 부부인 마님 나오셨습니까?
(나인2) 마님, 쾌차하셨습니까?
(채경) 다 감시자들이다
(유모) 아유, 아씨, 인제 좀 살 만한 겨?
며칠 앓았으면 이제 일어나야지
[코웃음] 직방이네
아씨 열 떨어뜨린다고 대군마마께서 고생 좀 했십니더
(유모) 아유, 저러다 덩달아 쓰러지시겠다 싶더니만
안타깝게도 마, 멀쩡하데예
[유모의 옅은 웃음]
내가 유모 때문에 웃네
(유모) 웃겼으면 됐십니더
아이고 호랑이도 제 말 하니까 옵니더
(역) [걱정스러운 숨소리] 왜 나와 있느냐?
아직 몸이 성치 않을 터인데
[어두운 음악]
(상궁) 대군마마와 부부인 마님을 뵙사옵니다
(채경) 절대 이들에게 들켜선 안 돼
요 며칠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다 들었습니다
아니, 고생은...
(채경) 우선 들어가시지요
왜?
여긴 죄다 궁인들뿐이니 유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저 저들이 윗전에 어떻게 보고를 할지
혹,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을지 미리 경계하는 것뿐입니다
참 안 어울리게...
너는 그런 거 안 어울린다, 채경아
[잔잔한 음악] 너는 네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굽히지 않고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게 매력이거늘
제가요?
[채경의 옅은 웃음]
이제 그럴 수 없습니다
혼인을 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마냥 순수하기만 해서 어찌 가족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여...
나를 지키겠다는 것이냐?
혼인을 약조할 때 이미 그 마음까지 약조한 것입니다
대군마마께서도 아니, 서방님께서도
저를, 우리를 지켜주실 거잖아요
[고조되는 음악]
열은 다 내렸구나
온전히 우리만 있고 싶다
- 나가거라 - 대군마마
행랑채로 가서 자거라!
오늘 우리는 합방할 터이니
[더듬대며] 하, 합방요?
어서!
- 아, 깜짝이야 - 딱 걸렸데이
그거 뭡니까? 내놔 보이소
(유모) 확 쌔리 마 잡아 찢어 불꼬?
확, 확
- (송 내관) 자꾸 왜 이러십니까? - (유모) 확, 내, 저...
으이고, 너! [유모의 아파하는 신음]
[멋쩍게 웃으며] 생각해 보거라
갓 혼인한 신혼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있겠느냐?
궁궐에선 흔하디흔한 일 아닙니까?
여기가 궁궐이 아니니까 문제지
우리는 평범한 백성이지 않느냐?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새어 나오고 한 이불 덮고 자고
[잔잔한 음악] 또 그 이불 속에서 벗어나기 싫어하고
뭐 [입소리를 쩝 낸다]
아무튼 신혼부부란 그런 것이 아니더냐?
제가 아는 신혼부부란
부인이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세숫물 떠다 주고
기일로 어깨가 뭉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같이 장 보러 가면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잠들기 전까지 꼭 안아주는 그런 게 신혼...
잠들기 전까지 꼭 안아줄 터이니 오늘은 여기 있거라
[고조되는 음악]
전하, 벌써 자시가 넘었사옵니다 처소로 드시지요
[옅은 한숨] 오늘도 오지 않는다?
[허탈한 웃음]
[깊은 한숨]
(융) 어찌 두 분이 같이 계신 것이오?
[당황한 숨소리]
소신, 전하께 올릴 상소문이 있어서 오던 길에
마침 대비마마를 뵙고 인사를 여쭙던 차였사옵니다
(자순대비) 나는 중궁전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한데 주상 지금까지 약주를 하신 겝니까?
두 분이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되셨습니다
(융) 채경이와 역이가 혼인해서 이제 두 분도 가족이 되셨지요?
[무거운 음악] 좌상의 가족애가 애틋한 건 조선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고
어마마마의 아들 사랑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김 내관의 놀란 신음] (수근) 전하
경도 알고 있었던 것이오?
경도 결국은 진성대군의 편에 설 것이오?
(융) 과인을 밀어내고자 하는 역심을 품고 있느냔 말이오?
[떨리는 숨소리] 전하
주상, 역심이라뇨?
그게 아니면!
채경이가 어찌 이리 조용히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융) 가족이라 하였소
내 마음이 다칠까 봐 함께 벌을 나눠 받겠다던 아이였소
한데...
한데 그 아인...
이제 눈이 멀었소
- (신비) 전하 - (수근) 전하
(신비) 괜찮으시옵니까?
중전
[신비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중전, 좌상을, 채경이를 꼭 붙들어주시오
전하
(융) 중전도 세자도 좌상도 채경이도
과인의 가족이고 과인의 사람이오
다 내 사람이란 말이오
(신비) 예, 모두가 전하의 사람입니다
일어나시지요
(자순대비) 아이들이 혼인을 하니
좌상과 내가 이렇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일도 생기는군요
[자순대비의 옅은 웃음]
그나저나 주상의 의심이 날로 깊어지니 걱정입니다
자고로 의심은 군주의 덕목 중 하나라 하였사옵니다
대군께서 진실하시다면 의심으로 끝날 일이옵니다
설마 좌상께서도 진성대군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난처한 웃음] 그간의 행보가 다소...
그렇게 못 미더워 직접 조사하시는 겁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라...
[긴장되는 음악]
소신이 뭘 조사한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소신이 요즘 하는 조사는 우렁각시에 대한 것뿐인데
대비마마께서 왜 그 일에 대해 마음을 두시는지요?
소신이 조사하고 있는 것과 진성대군이 무슨 관련이 있사옵니까?
내 좌상이 무엇을 조사하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냥 무심코 한 말입니다
대비마마, 소신 간곡히 청하옵니다 [자순대비가 잔을 내려놓는다]
부모로서 그 아이들의 행복만 생각해 주시옵소서
내가 두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라도 한단 말씀이시오?
대비마마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채경이와 진성대군은 운명이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왕께서도 두 아이를 맺어주려 하셨었지요
(수근) 그런 걸 보면 두 아이의 운명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입니다
[고조되는 음악]
(수근) 운명은 옆에서 누가 굳이 거들지 않아도
정해진 대로 흘러가니까 운명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우린 두 아이들이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지켜만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자순대비) 역이에게 왕위를 선위하라는 밀지를 새길 정도면
우리 역이를 도울 사람일 게다
[의미심장한 음악]
[성종의 너털웃음]
(수근) 선왕께서도 두 아이를 맺어주려 하셨었지요
내가 왜 그 일을 잊고 있었던고?
[책상을 탁 두드린다]
[함을 덜그럭 꺼낸다]
[비장한 음악]
(융)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그때 네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노라
이보게, 송 내관을 불러주시게
네, 부부인 마님
[유모의 옅은 숨소리]
(유모) 아이고, 오셨습니까?
아, 저, 아씨께서는 방금 전에 출타했십니더
출타라니?
그 몸으로 어딜 갔단 말인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하이튼...
[걱정스러운 숨소리]
아, 저, 궁에 가신다 하데예
궁? [고조되는 음악]
(유모) 예, 전하를 뵙고 온다 했십니더
그 송 내관인지 뭐인지 하는 궁 사람도 함께 갔고예
(역) 이거, 이거 달여서 부부인께 올리게
전하께 아뢰고 오겠사옵니다
[잔을 탁 내려놓는다]
(김 내관) 전하, 편전 회의까지 한 시진 정도가 남았사옵니다
상전
과인이 오늘 그 노인네들 잔소리나 받아쳐 줄 기분이 영 아니거늘
상전이 나 대신 참석하는 게 어떻겠나?
이참에 옥새도 찍어보고 어좌에도 한번 앉아 보시게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송 내관) 전하, 송 내관이옵니다
채경이가 왔나 보구나 [다급한 숨소리]
[융의 다급한 발소리]
[문이 덜컥 닫힌다]
경도 억울하오?
(대신2) [벌벌 떨며] 아니옵니다, 전하
하면 죗값을 치르시오
[융이 칼로 휙 벤다] [대신2의 외마디 신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감격한 숨소리]
드디어 왔구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사옵니까?
찾으실 일이 있으시면 연통을 넣으시지요
- 언제부터 저를 기다... - 언제부터라...
여기 이 자리에 온 걸 묻는 것이냐 아니면...
너를 기다린 시간을 묻는 것이냐?
오래...
오래되었느니라
[애잔한 음악]
전하
전하께서 전당포에 대해 알아오라 하셨지요?
그래, 거기서 무얼 보았느냐?
무얼 보진 않았사옵니다
그저 그런 어명을 받들기 전에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전하께 더 여쭙고 들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요
무엇을 알고 싶다는 것이냐?
대군마마를 언제부터 의심하셨습니까?
그놈이 돌아왔을 때부터
어째서요?
내게 복수를 하고
왕좌를 차지하러 돌아온 것일 테니까
(융) 그 녀석은 내가 저를 죽이려 했다고 믿고 있다
(상궁) 대군마마
형님께선 어디 계시느냐?
정녕 전하께서 대군마마를 죽이라 명하신 겁니까?
그래, 내가 죽였다
직접 내 손으로 죽이진 않았어도
매일 밤, 꿈속에서 그놈 가슴에 칼을 꽂아댔지
제발 누구라도 나 대신 녀석을 죽여주길 바랐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전하께서 죽이신 건 아닙니다
아니
지금이라도 명분과 기회만 있다면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
이제라도 형제간의 은원을 푸시고
화해하시면 안 됩니까?
이번이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하면, 너도 그럴 것이 아니냐?
내가 녀석과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면
너 역시 녀석을 용서하고 다시 잘 지낼 것이 아니냐?
전하
이제 겨우 네 마음에도 의심이 한줄기 깃들었는데
이제야 너희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깊은숨을 내쉬며] 과인은 너희가 다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불안한 음악]
전하, 그게 무슨...
(융) 모르겠느냐?
이젠 나에게는 역이 그 녀석과의 화해보다
너와 역이가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며 갈라지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그래야...
그래야...
[답답한 숨소리]
[애잔한 음악]
[옅은 한숨]
(채경) 전하, 제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시겠다 약조를 하셨사옵니다
기억하십니까?
일전에 제가 쓰려고 하자 저를 위해 쓰라며 못 쓰게 하셨지요
이번엔 오롯이 저를 위한 소원이옵니다
(송 내관) 대군마마
[난처한 숨소리]
(채경) 제가 대군마마와 함께
낙향하여 살 수 있도록 윤허해주시옵소서
낙향?
(채경) 조선의 대군이 도성을 떠나서 산다는 것은
국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여 이렇게 부탁드리옵니다
저희 부부, 도성에서 최대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해서 평범하게 살아가겠나이다
이것만이 전하의 의심을 거두고
우리 모두 편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 사료되옵니다
역이와 약조된 것이냐?
예
(융) 그럴 리가 그 녀석이 낙향을 한다고?
천만에, 혼례식 날까지만 해도 밀지를 찾아 헤매던 녀석이?
[더듬대며] 미, 밀지라니요?
(융) 진성대군이 성인이 되면 왕좌를 물려주라는
아바마마의 윤음이 적힌 밀지
대체 그 밀지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실성한 듯한 웃음]
선왕께서 여인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놓았다는구나?
[의미심장한 음악]
[낙담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융이 칼을 챙 빼 든다]
(융) 이젠 네가 대답할 차례다
전당포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반역의 증거를 찾은 것이냐?
[떨리는 목소리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융) 그게 아니면 왜 네가 전당포에서
그토록 넋이 빠진 표정으로 나왔단 말이냐?
[더듬대며] 저, 저를 그동안 감, 감시하셨단 말입니까?
[겁에 질린 숨소리]
말하거라
(역) 제가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고조되는 음악]
[칼날이 역의 손에 파고든다]
이 녀석이!
[칼로 휙 벤다]
[채경의 아파하는 숨소리]
[당황한 숨소리]
[칼이 덜커덕 떨어진다]
[의미심장한 음악]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감히!
제 아내입니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애잔한 음악]
앞으로 혼자 형님을 뵈러 오지 마라
위험하지 않느냐?
지금 저한테 더 위험한 건 대군마마 아니십니까?
계속 이렇게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꽉 잡으면 되지 않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놓지 말고, 꽉
[고조되는 음악]
[칼이 덜커덕 떨어진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감히!
제 아내입니다!
(녹수) 전하
(융) 무슨 일이냐?
춘추전에 여인들을 불러놓았습니다 친히 살피시겠사옵니까?
네가 알아서 보거라
(녹수) 예
아니다
내 부르고 싶은 계집이 있느니라
[음험한 음악] 대비전에 자주 드나드는...
역이의 계집
부총관의 조카딸 말씀이시옵니까?
아바마마와는 사돈지간이니
그 계집도 넓은 의미에서는 선왕의 여인이지 않느냐?
예, 입궐하라 연통하겠나이다
(유모) 아씨!
[유모의 놀란 숨소리] 아이고, 아이고, 세상에
이게 뭔 일입니까?
아이고, 내, 세상에!
옆에서 뭐 하셨습니까?
유모
[유모의 당황한 신음] 속상해서 그러지예
송구합니다
(유모) 얼른 들어가입시더, 어이구야
[유모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유모) 세상에,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고, 내 속이야
참말로
새신랑은 새신부가 하라는 건 안 하고 뭘 하고 돌아댕기시는지
제가 제명에는 못 죽을 것 같십니더
인자 됐십니더 [유모가 약병을 정리한다]
좀 쉬소 마
[문이 탁 닫힌다]
[의미심장한 음악]
[꼬마 채경의 울음]
(채경) 그 밀지라는 게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신수"
[무거운 음악] (여인) 정말 제 지아비께는 비밀입니다
(명혜) 주상 전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박 부총관 영감의 외조카 윤가라고 해주십시오
(김 내관) 전하, 부총관의 외조카 윤 규수가 왔사옵니다
들라 하라
(녹수) 나오너라
[문이 드르륵 닫힌다]
[융이 칼을 챙 빼 든다]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오늘, 너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역이 그 녀석 때문에 채경이가 다쳤다
하니, 녀석을 살린 네년이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융이 칼을 휙 휘두른다] [명혜의 외마디 신음]
[어두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지금부터 묻는 말에 하나씩 답하거라
[긴장되는 음악]
(융) 대답하지 못할 시에는
네가 입고 있는 옷이 하나씩 이 칼에 베여나갈 것이다
옷이 다 베여나간 후에는 네 살갗이, 그다음에는...
목숨이겠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
우렁각시의 수장이 누구더냐?
우렁각시라니요?
[융이 칼을 휙 휘두른다] [명혜의 놀란 숨소리]
[날카로운 효과음]
[명혜의 놀란 숨소리]
(융) 우렁각시의 수장이 누구냐 물었다
진성대군인 것이냐?
모르옵니다
[융이 칼을 휙 휘두른다] [명혜의 놀란 숨소리]
(융) 내 너의 나체 따위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만
계속 이런 식이면 어쩔 수가 없겠구나?
내 오늘 너와 상당히 가까워지겠어 아니 그러냐?
[고조되는 음악]
과인이 왜, 여태 역이를 안 죽이고 있는지 아느냐?
재미있어서다
(융) 언제 죽을지 몰라 벌벌 떨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가면을 쓰고 과인 앞에서 연극을 하는 그 녀석이
참으로 웃겨서 말이다
언제 또 이런 재미난 구경을 하겠느냐?
과인을 즐겁게 해줬으니 죽을 때도 그만한 예우를 해줄 것이다
고문을 하고 단근질을 했다가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성문 밖에다 마치 짐승 밥처럼 널어놓을 것이다
[명혜의 겁에 질린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명혜가 두려워 떤다]
(융) 과인이 왜, 여태 역이를 안 죽이고 있는지 아느냐?
재미있어서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가면을 쓰고 과인 앞에서 연극을 하는 그 녀석이
참으로 웃겨서 말이다
언제 또 이런 재미난 구경을 하겠느냐?
(자순대비) 역이에게 왕위를 선위하라는 밀지를 새길 정도면
우리 역이를 도울 사람일 게다
[풀벌레 소리]
[의미심장한 음악]
저게 사람들이 부르는 신수라는 곳인가?
예, 악귀를 쫓아주고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입죠
(가마꾼) 200년이 넘었습니다요
이전 임금님께서 하사한 비석도 있구먼요
(채경) 왜 저한테 이런 무거운 임무를 맡기셨습니까?
어떻게 제 손에서 왕좌를 하늘을 선택하라 하십니까?
[채경이 분주히 땅을 판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한낱 여인일 뿐인 것을요
아뢰거라
(상궁) 예
(상궁) 대비마마 납셨사옵니다
대비마마 오셨사옵니까?
데려오너라!
[명혜의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음악]
(자순대비) 대체 집 안팎에 경계를 어찌하는 것이냐?
웬 계집이 아까부터 집을 훔쳐보고 있는데
아무도 저지를 안 해?
억울하옵니다
소녀, 친척 집을 찾다가 헤매었을 뿐 다른 불순한 의도는 없사옵니다
(명혜) 저같이 비빌 언덕 없는 미천한 계집의 삶이
원래 뻔하답니다
(자순대비) 수상한 계집이다 관아에 데려가서 매우 쳐라
(채경) 아, 멈추십시오
제가 아는 아이입니다
이 계집 말이냐?
예, 제가 거창에 살 때 데리고 있던 아이예요
제가 불렀습니다
(자순대비) 하면, 내가 오해를 했구나
요즈음 하도 도성 안팎에 뒤숭숭한 일이 많으니
(자순대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지
아씨
집을 찾느라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채경) 유모
하온데, 아침부터 예까지 어인 일이시옵니까?
합방일을 잡으러 왔다
예?
(자순대비) 들어오너라
[유모의 헛기침]
앉으세요
우리 아씨랑 옥에서 만난 사이라고요?
예, 기억해주시니 얼마나 다행인 줄 모릅니다
[못마땅한 웃음]
우리 아씨가 기억력이 좋을 데는 안 좋고
꼭 이럴 때만 좋다 카이, 좋네요
한데 이 댁에선 새경 대신 숙식하며 일할 수 있습니까?
제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옥에 들락날락거린 사람을 어떻게 집에 들여?
마음 잡고 살고 싶어서 그러니 좀 도와주십시오
우리 아씨 마음 약한 건 우째 알고 이런 여시 같은 것이 찾아왔지?
아유, 혼잣말한 깁니다, 혼잣말
[머쓱한 숨소리]
그사이 제법 몸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하니
이제 합방을 준비해도 되겠구나?
예?
[어두운 음악]
길일도 받아왔느니라
(융) 진성대군이 성인이 되면 왕좌를 물려주라는
아바마마의 윤음이 적힌 밀지
지금쯤 대비전에서는 그걸 찾느라 혈안이 돼 있을 테고
(채경) 혹시 알고 계신 것입니까?
역이가 보이지 않는구나?
예, 아침 일찍 급한 일이 있다 나가셨습니다
(자순대비) 그래?
대군이 벗들을 너무 좋아하여 밖으로만 도는 탓에
네가 마음고생이 심하다 들었다
그래도 자식이 생기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질 것 아니더냐?
(자순대비) 네가 애 좀 써주거라
나도 역이를 닮은 손주도 보고 싶고
예, 대비마마
어허, 이제 너와 나도 한 가족이니
호칭 정리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 어마마마
[긴장되는 음악]
(유모) 일자리 구하러 왔다 하데예 진짜 그 계집, 몸종으로 쓰실 긴교?
[의미심장한 음악]
(채경) 대체 어떻게...
[의미심장한 음악] (명혜) 아씨!
[명혜의 떨리는 숨소리] 아씨, 저 이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씨를 모시고 싶습니다
(채경) 내게서 밀지를 찾기 위해 모두가 나를 속이기 시작했다
[가쁜 숨소리]
(역) 채경아
[긴장되는 음악]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고조되는 음악]
[애잔한 음악]
(역) 채경아,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채경) 왜 왕이 되려 하십니까? 꼭 왕이 되셔야 하는 겁니까?
(역) 저는 귀신이 돼서라도 채경이와 함께할 테니까요
(녹수) 갑자기 합방을 허한 건
합방을 통해 확인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수근) 또 무슨 수작을 부리신 게요? [사홍의 비열한 웃음]
(명혜) 여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누군가가 강제로 확인하려고 한다면
(융) 밀지를 없애면 과인의 자리가 안전해지겠지
[칼을 휙 휘두른다] [군관의 외마디 신음]
(융) 이놈이 [융이 책상을 내리친다]
(역) 우리 떠나자, 채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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