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18
[주제곡]
[긴장한 숨소리]
[채경의 겁먹은 숨소리]
게, 게 누구 없느냐?
[애잔한 음악]
(역) 채경아
나 왔어
[안도하는 숨소리]
많이 기다렸지?
[울먹이는 숨소리]
벌써 내 손길은 잊은 것이냐
[채경의 울음이 터진다]
[채경이 흐느낀다]
[역의 한숨]
보고 싶었다
한데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울먹이며]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채경이 흐느낀다]
미안하다
다리는요?
다 나았다
참말입니까?
어마마마께서 미리 조치를 취해주셔서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혹 일어나시지도 걷지도 못하실까
(채경) 식사는 어찌하시나 뒷간은 어찌 가시나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채경이 울먹이며] 미리 말씀해주셨어야죠
걸을 수 있을 거다, 큰일 아니다
미리 말씀해주셨어야죠
그것도 미안하다
[역의 미안한 숨소리]
계속 미안하단 말만 해서
그것도 미안하다, 채경아
진성대군께서 방금 궁에 들어가셨소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원종) 궁에 계신 가족들 안전부터 확보하신 후에
작전에 합류하신다 하셨소
반란군이 이제 곧 한양에 입성한다고 하오
진성대군부터 먼저 모시고 나와야 되는 것 아니오?
(원종) 우리도 어서 오위부 군사들을 소집합시다
한데 채경아
무슨 말씀하실지 압니다
(채경) 대군께서 다시 궁에 들어오실 때는
이미 뭔가를 각오하고 결심하고
준비하고 오신 거겠지요
너를 우리를
우리 가족을
(역) 그리고 더 나아가
조선의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결정이라 말한다면
믿어주겠느냐?
(채경) 송구하오나
그 대답은 지금 드릴 수 없을 듯하옵니다
하시는 일을 잘 마무리 지으시고
그 후에
지금 대군마마의 뜻을 실천으로 옮겨주십시오
(채경) 저와 제 가족 모두
안전하게 지켜주시면
자연히 믿고 지지하게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래
그래
혹, 저희 부모님은 만나보셨습니까?
(역) 장인어른
(수근) 금상의 신하이자
가족으로서 대신 사죄드립니다
(역) 지금 장인께서 잘못을 비실 때가 아닙니다
왕에게 간언하고 왕을 꾸짖고
그러고도 안 되면 버릴 때입니다
세상의 어느 신하가
주군을 버릴 생각부터 하겠습니까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난 후에
그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주군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이
신하의 운명입니다
하면 채경이는요?
딸을 버리실 겁니까?
(역) 좌상의 주군이
지금 채경이를 볼모로 삼아 궁에 가둬놓고 있습니다
한데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채경이는 대군께서 지키셔야지요
대군의 아내가 아닙니까
(수근) 이제
저와 채경이의 인연은 끝났습니다
(수근) 하니, 대군께서도
저와 제 식구들에 대해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만나보았다
부탁하네
네, 대군마마
(역) 채경이는 제 아내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채경) 혹, 저희 부모님은 만나보셨습니까?
만나보았다 [잔잔한 음악]
그래서 말인데
너는 이 길로 궁을 빠져나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도록 해
어쨌든 거사가 진행되면
왕의 측근 신하들이나
외척들이 제일 위험해지는 법이니까
내가 갈 곳은 찾아놓았다
(채경) 이젠 선택을 해야 한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부부인 마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송 내관) 간단한 짐만 싸시고
알겠네
(김 내관) 주상 전하 납시오
참으로 맛있는 포도가 진상돼서
(융) 너도 맛을 보라 들고 왔느니라
황공하옵니다
저녁은 먹었느냐?
입맛이 없습니다
(융)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네 맘대로 할 수 없다 하였다
하니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은
어명을 거역하는 것이야
진정 벌을 받아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송구하옵니다
혹, 궁이 답답한 게라면
과인과 함께
밤 사냥이라도 나가겠느냐?
지켜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이다 [조용한 음악]
사냥요?
궁 밖으로 나가신단 말씀이시옵니까?
(채경) 대군마마께서는요? 어찌할 계획이십니까?
반란군이 도성에 침입했단 소식을 들으면
왕이 제일 먼저 병조의 병력을 내보낼 것이다
하면 궁에는 내금위 병사들만 남아있을 것이야
그때 나는
왕과 담판을 지을 것이다
반란군들은 언제 옵니까?
반나절 정도 걸릴 것이야
함께 가겠느냐?
저를 위한 것이라면
사냥 말고 더 하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
들어주실 수 있나이까?
[피식 웃는다]
그래, 무엇이냐?
달이 보고 싶사옵니다
달이 보고 싶다?
저번에 아버지께서 서찰을 보내셨을 때
경회루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참 곱다
그립다 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융) 그래, 사냥보단
달맞이하기에 더 어울리는 날씨구나
황공하옵니다
제 겉옷만 챙겨서 나가겠나이다
[문이 스르륵 닫힌다]
내가 임금님을 궁에 붙들어놓고 시간을 벌 것이네
하나 위험하시옵니다
안 그러면 대군마마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네
그럼 모두가 위험해져
하니
자네는 부디 우리 부모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게
(채경) 부탁하네
예
(원종) 임금의 신하로 죽겠습니까?
아니면
딸의 아비로 살겠습니까?
하면 채경이는요?
딸을 버리실 겁니까?
[우르르 들어오는 거친 말걸음]
[긴장되는 음악]
[사람들의 거친 발소리]
(수근) 웬 놈들이냐?
(명혜의 수하2) 부총관께서 보내셨습니다
좌상 대감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부총관이 나를 지키라?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기어코 반란이 일어났나 보오
[권씨의 좌절하는 한숨]
(융) 그간 많이 갑갑했던 것이냐?
왜 자꾸 뒤를 돌아보느냐?
아닙니다
말하거라
무장한 사람들이 계속 저를 뒤따라오니
익숙지 않아서요
(채경) 당장에라도 저를 죽일 것 같은 기분이 드옵니다
(채경) 아마 그때
고초를 겪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 듯하옵니다
(내관1) 반란군이 쳐들어왔대
[궁녀1의 다급한 숨소리]
(궁녀2) 아, 우렁각시들이 쳐들어왔대
- (내관2) 빨리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내관3) 우리까지 위험해
- (내관4) 빨리 짐이라도 챙기세 - (내관5) 어유
[풀벌레 울음]
(채경) 오늘
임금님의 세상은 끝이 날 것이옵니다
왜 우는 것이냐?
가족을 생각했사옵니다
가족? [잔잔한 음악]
(융) 좌상과 정경부인이
보고픈 게로구나
아닙니다
하면?
아니다
대답할 필요 없다
무사님을 생각했사옵니다
(채경) 지난날
아우와 싸우고
속이 상해서 차가운 물에 열을 식히던
(융) 누구냐?
(채경) 그분을 생각했사옵니다
혼자 가기 어렵다고
(채경) 가족이 돼 달라던 어린 소녀의 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주막으로 가 주셨던
그분을 생각했사옵니다
(채경) 혼자 도망치지 그랬냐고
어쩜 그리 어리석었냐고
[어린 채경의 걱정하는 숨소리]
(어린 채경) 왜 안 깨노? 어, 무사님
(채경) 약방에 누워 있던 소녀를 걱정해주며
자기가 옥황상제도 아이면서
(채경) 다음에 만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던
다정한 그분을 생각했사옵니다
홀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던 외롭던 분을
아우에 대한 죄책감으로 눈물 흘리던 분을
(채경) 빗속에 쓰러진 저를 부축해주던 그분을
떠올렸사옵니다
매번 매시간 만날 때마다
저에게만큼은 다정하고 따뜻했던 그분을
저에게 있어선
그저 외롭고 아픈 한 사람이었던 그분을 떠올렸사옵니다
그분이 보고 싶어서 울었사옵니다
이미 죽은 게지
사라진 게지
없어진 게야
[한숨 쉬며] 예
그래서 울었사옵니다
(채경) 다신 볼 수 없어서요
왜 죽이셨습니까?
(채경) 충분히 살리실 수 있었사옵니다
지킬 수 있었사옵니다
(채경) 그분도
그리고 아우도
벗도 가족도
한데 전하께서 하시지 않았사옵니다
(채경) 전하께선
충분히 운명을 바로잡고 고치고
개선할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지녔지만
하지 않으셨사옵니다
(채경) 전하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사람의 인생과 목숨을 다스리려 하십니까?
[융의 코웃음]
[융이 코웃음 친다]
[융의 계속되는 코웃음]
(융) 참으로 애쓰는구나
참으로 애를 써
일부러 과인을 자극하면서
시간을 끄는 게
뭘 위한 것이냐?
갑자기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내금위장)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내금위장) 반란군이 성문을 뚫고 진격했다 하옵니다
반란군이라니?
지방에 유배되거나 좌천된 인사들이
(내금위장) 군사를 일으켰다 하옵니다
[긴장되는 음악]
(융) 이것 때문이더냐?
역이가 돌아올 때까지
과인을 붙잡아두려고?
[분노의 숨소리]
[겁먹은 숨소리]
(융) 내 이미 경고하지 않았더냐
언제든 너를 죽일 수 있다
죽여서라도 가질 것이다
(융) 왕은 가질 수 없는 게 없어야 한다고
차라리 같이 죽어요, 우리
(채경) 저는 감히 전하의 마음을 받은 죄로
전하는
조선을 버린 죄로
[역의 분노하는 숨소리]
(채경) 하면 우리 두 사람은 죽겠지만
대신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것이옵니다
[역이 씩씩댄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옵니다
(채경) 지방에서부터 반란군이 올라오고 있고
대군마마를 옹립하는 반정 세력들이
궁궐을 에워쌌습니다
(채경) 궐내에는
전하를 지켜줄 병력이 없사옵니다
무어라?
(채경) 모두가 전하를 버리고 도망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모두의 민심과 천심, 그리고
대소신료들의 지지까지 모두 잃으셨기 때문이옵니다
[역의 당황하는 숨소리]
죽여버릴 것이야
(융) 애초에 너를 죽였어야 하였다
가질 수 없는 거라면 죽여서라도
너를 가졌어야 했어
[칼을 챙 쳐든다] [채경의 겁먹은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융이 씩씩댄다]
[북이 둥 울린다]
[북이 둥 울린다]
[긴장되는 음악]
주상
[채경의 떨리는 숨소리]
(융) 역도들이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숨통을 끊어버릴 자들이다
역도라니요?
(자순대비) 역이의 손발을 잘라놓고도
아직도 의심을 하십니까?
역이가 멀쩡한 걸
(융) 내 모를 줄 아십니까?
것도 모자라
(융) 반란군을 몰고 오고 있다고요?
반란군이라니요?
이게 대체 다 무슨 말입니까?
채경이가 도우니까요
역이가 아니고서야
채경이가 감히 과인을 배신하고
다른 누굴 도울 리가 없지 않습니까
[자순대비의 쓰러지는 숨소리]
어마마마
(융) 이 방을 철저히 지켜라
나가는 자도 들어오는 자도
절대 없어야 할 것이야
(내금위장과 병사들) 예
어마마마, 괜찮으십니까?
[문이 드르륵 닫힌다]
[박진감 넘치는 음악] 병조참판 유자광에게
병조 병력 전권을 일임한다
역도의 무리를 모조리 잡아 없애시오
(자광) 명 받잡겠사옵니다
혹
역도의 세력에 가담하는 자들이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잡아 죽이시오
알겠소?
(내금위장) 앞으로 이곳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가도록 하라
(내금위 병사들) 예
(자광) 병조의 병사 모두를 우문 앞으로 집결시키거라
다 소집되는 대로
바로 성문으로 진격할 것이다
(병조의 장수들] 예, 대감
오랜만이오
병판 대감
대군마마
[긴장감 도는 음악]
(역) 공이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면 공은
성 밖에 주둔하고 있는 반란군과
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오위도총부의 병력을 상대로
앞뒤로 싸워야 할 것이오
이길 확률이 상당히 낮지요
(역) 그렇다고 안 나가면 공은
어명을 거역한 죄로
또 목이 달아나겠지
반란군의 손에 죽겠소?
(역) 아니면 임금의 손에 죽겠소?
나를 도와
반정의 일등공신이 되겠소?
전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자순대비) 역아
[걱정하는 숨소리]
역아
괜찮습니다, 어마마마
걱정 마시옵소서
[채경의 떨리는 숨소리]
무슨 일이냐?
놔두거라
우리 사람이니라
예?
역이가 이미 [기침을 쿨럭쿨럭한다]
우리 사람으로
무슨 일이오?
(내관6) 주상 전하께서 병사를 움직이셨다 하옵니다
도성 입구에 주둔하고 있는
반란군을 막으려고요
하면 대군의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인가?
예, 병조의 병력들이 모두 궁을 빠져나가면
우리 쪽 병력들이 궁에 들어가
왕의 호위무사들을 막아줄 것이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옵소서, 어마마마
얼마 남지 않았사옵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
(자광) 전군 조준!
[군사들이 기합을 지르며 달려간다]
(우렁각시) 후퇴하라!
[병조의 장수가 웃는다]
(장수)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군요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소
[명혜가 가쁜 숨을 쉰다]
(명혜) 오라버니
이제 오라버니한테 달렸어
(자광) 명심하시오
성문이 절대로 뚫려서는 아니 되오
예
(사홍) 놈들이 도망간 자리에는
변변한 무기 하나 없었다고 하옵니다
(사홍) 낫, 갈퀴, 호미 같은 농기구들만
잔뜩 있었다고요
(사홍) 진성대군도 어지간히 급했나 봅니다
농사나 짓는 무지렁이들을 끌고 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코웃음]
(녹수) 불쌍하기도 해라
그래도
방비는 제대로 하셔야지요
안 그래도 병판이 도성으로 들어오는 성문마다
(사홍) 병력을 배치했다고 하네
(역) 오위도청부의 병력은
성 대감과 함께 궁문 앞을 지키고
병조의 병력으로 위장한 우렁각시들은
날 따라 대전으로 간다
(우렁각시들) 예
(원종) 전 남은 병력들을 이끌고
버러지들을 처단하러 가겠습니다
왕의 측근들부터 제거해야
소란이 없을 겁니다
(역) 알겠소
(역) 자, 이제 움직이자
(함께) 예
[긴장되는 음악]
(역) 병조 판서시다, 길을 열어라
(관군들) 예
(내금위장) 멈추시오
병조판서 유자광이다
(자광) 길을 열어라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전하께 급히 보고 드릴 것이 있다
그럼
군사들은 두고 가시오
(자광) 자네만 같이 간다
(자광) 내금위 군사들하고 이곳을 지켜라
(우렁각시들) 예
(사홍) 아이고, 유 대감 [웃음]
고생 많소이다
아닙니다
(자광) 전하께 직접 보고할 것이 있어
입궐했습니다
(사홍) 아, 예예
손자병법의 제일은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더니
오늘 유 대감이 그걸 해내지 않았소
[자광과 사홍이 웃는다]
이걸 '무혈입성'
아니, 아니
'무혈승전'이라고 해야 하나
[사홍과 자광이 웃는다]
(자광)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요
(자광) 저는 그럼
(사홍) 아, 예예, 그래요, 그래요 [웃음]
그래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승리했다지?
(자광) 예, 전하
상대할 가치도 없는 무지렁이들이었습니다
[융이 피식 웃는다]
역이는?
역이는 나타났던가?
진성대군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
역이 그 녀석도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나 보군
(융) 반드시 역이를 잡아들이시오
반역의 뿌리인 역이 그 녀석만 잡아들이면
역도 놈들은 죄다 흩어질 테니
[역이 비웃는다]
(역) 과연 그렇겠습니까?
(역) 왕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긴장되는 음악]
(역) 하늘의 마음
천심이 곧 민심인데
(역) 진성대군을 죽인다 한들
하늘이 인정하지 않는 왕을
백성들이 하늘이
용서하겠냔 말입니다
무어라?
[긴박해지는 음악]
[융이 칼을 챙 뺀다]
(융) 웬 놈이냐?
감히 어전에서 망발을 지껄이다니
[투구의 끈을 달그락 푼다]
[융의 놀란 숨소리]
아니, 네가 어찌
이제 그만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겠습니다
(사홍) 병력을 증원하였는가?
(내금위장) 아닙니다, 저 병력들은
병판 대감이 데려온 병조의 병력들입니다
병조의 병력들은
[사홍이 허허 웃는다]
(사홍) 아, 그렇구먼, 수고들 하게
(내금위장) 네
[멀어지는 발걸음]
(녹수) 아휴, 영감
병조의 병력들은 모두 성문에 배치됐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무혈입성이네
(사홍) 병조의 병력들은 도성 밖에 묶어두고
반역 무리들과 같이 입성한 것이야
그 말은
유자광이
배신한 것 같으이
[녹수의 놀라는 숨소리]
이미 늦었네
(사홍) 지금 군의 병력으론 저들을 막을 수가 없어
전하도 이미...
대감은
대감이 섬기는 것을 찾아가십시오
(녹수) 저는
제가 섬기는 이를 찾아가겠습니다
[녹수의 발걸음이 멀어진다]
으이, 쯧쯧쯧쯧
(역) 형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저도 형님께 기회를 드리겠사옵니다
무어라?
우리 형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피식한다]
[융의 어이없는 웃음]
[날카로운 칼날의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융의 기합]
[내관과 궁녀들의 비명]
무슨 일이냐?
(내금위장) 무슨 일이냐?
(내금위장) 무슨 일입니까?
(자광) 뭣들 하느냐?
[너도나도 칼을 챙 빼 든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광오) 서두르십시오, 대군마마
[칼이 챙 부딪힌다]
[융과 역의 기합]
[문이 드르륵 열린다]
(내관6) 방금 병판 대감과 대군께서
편전에 들었다 하옵니다
편전에?
이제 마지막 고비를 맞고 계실 것이옵니다
[빨리 감기 효과음]
[칼로 쓱 벤다] [융의 아파하는 신음]
(융) 대체 왜 태어난 것이냐?
(역) 태어나서 죄송하옵니다
하나 이왕 태어난 이상
그 몫과 책임을 다해야겠습니다
(역) 하니 그만 가십시오
(융) 기어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나겠구나
[채경의 다급한 발걸음]
대군마마! 전하!
(역) 채경아
[융의 기합]
[융의 힘주는 기합]
[역의 기합]
(융) 오라고!
(채경) 그렇게 두 형제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반정파 대신들이 이끄는 병사들과
왕의 직속부대 내금위군 병사들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대치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소란스럽다]
(채경) 궁궐 안팎은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람들의 아우성]
[겁에 질린 아우성이 계속된다]
[융의 기합과 아파하는 신음]
[융의 기합]
[역의 기합] [융의 아파하는 신음]
[융의 아파하는 신음]
[칼을 챙 갖다 댄다]
(채경) 대군마마!
어서 베거라
(융) 네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아니냐
[떨리는 숨소리]
(채경) 대군마마, 안 됩니다
무엇하느냐?
(융) 날 죽일 배짱도 없이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역이 기합을 내지른다]
[역의 씩씩대는 숨소리]
[역이 계속 씩씩댄다]
[역이 울분 섞인 고함을 지른다]
(채경) 대군마마!
[역이 씩씩댄다]
[채경이 칼을 챙그랑 떨군다]
좋다
좋은 일이다
(융) 드디어
역이 네가 왕이 되었구나
(융) 기어코 네가 왕이 되었어
덕분에
내 복수가 완성되었다
[잔잔한 음악]
[융이 웃는다]
[융이 연신 웃는다]
내 네가
왕좌 마저 버리고
채경이 손을 잡고
행복을 찾아 떠나겠다던 그 순간부터
너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다
(융) 어떡하면 더 처절하게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
해서 고작 얻은 답이 이겁니까?
이렇게
처참하게 몰락하는 겁니까?
(융) 아니
너를
왕으로 만드는 것이다
너를 왕으로 만들어
그간 내가 왕으로 살며 겪은 고통을
모조리 대물림해주마
(융) 똑같이 겪게 해주마
결심했던 게다
(융) 역아
내 아우야
이 길에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형님
기대해도 좋다
[실성한 듯 웃는다]
[융이 연신 웃는다]
[융이 실성한 듯 계속 웃어댄다]
[융이 계속 웃는다]
이제 다 끝난 겁니까?
그래
이제 다 끝났다
이제
우리 행복할 수 있습니까?
그럼
이제 우리
행복할 수 있어
[상궁과 궁녀들의 놀란 숨소리]
[다급한 발걸음]
(내관7) 어, 뭐야?
(융) 웃어라
과인을 위해 울지 않겠거든
차라리 웃어라
마음껏 웃으란 말이다
[모두 겁먹은 비명을 지른다]
[융의 껄껄대고 웃는다]
부인
[권씨가 코를 훌쩍인다] (수근) 미안하오
말려도
[코를 훌쩍인다]
가실 거지요?
내 전하께
아비가 되어드리겠다고
가족이 되어드리겠다고 해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소
아마
이번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듯싶소
[구슬픈 음악]
(권씨) 알겠습니다
제가 가시는 길을
배웅해드리겠습니다
(권씨) 먼 길이 될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찌 대감을 혼자 보내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 입으신 지 꽤 되셔서
이게 꼬깃꼬깃합니다
(권씨) 금세 다립니다
[권씨가 코를 훌쩍인다]
이번엔
전하의 신하로 가는 것이 아니오
(수근) 전하의
가족으로서 가는 것이오
일각도
[울먹이며] 못 기다려주십니까?
[흐느끼며] 우리 채경이는요, 대감
우리 채경이는 괜찮은 거지요, 대감?
[권씨가 목놓아 운다]
다 내 잘못이오
(수근) 미안하오, 부인
[울음을 삼키며] 미안하오, 부인
(권씨) 대감
[권씨가 크게 흐느낀다]
[칼을 챙 빼 든다]
물러서거라
(명혜의 수하2) 움직이면 막으란 엄명이 있으셨소
[문이 우당탕거린다] [신하들의 당황한 숨소리]
(신하) 어떻게 된 거야? 늦었어
[상궁과 궁녀들이 비명을 지른다]
[보석들이 달그락거린다]
(원종) 도승지
[모두 칼을 챙 빼 든다]
[사홍이 담담하게 웃는다]
기어코 여기까지 오셨구려
(사홍) 대단하오
참으로 대단하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폐장은 목숨을 내놔야 하지 않겠소이까
[혀를 쯧쯧 찬다]
좌상하고 부총관은 어찌 그리들 꽉 막히셨소
(사홍) 난 항상
목숨을 구명할 길은 꼭 열어둔다오
도승지가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는 길은
없는 듯하오만
[사홍의 웃음]
부총관이
내게 길을 열어주라 하시게 될 것이오
[작게] 지난날 우렁각시를 밀고한 사람이
부총관임을 알게 되면 [의미심장한 음악]
(사홍) 저들이 부총관을 가만둘 것 같소?
내 한 번 부총관 살길을 열어줬으니
이젠 부총관이
내게 길을 열어줄 차례인 듯싶소만
[사홍이 웃는다]
새 시대가 열렸다고
모두 새것으로만 채울 수 있겠소
(사홍) 내 앞으로도 새 전하와 부총관을 위해
힘써보리다
[고조되는 음악]
(석희) 어떻게 합니까?
부총관님
(석희)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날 꼭 죽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사홍) 난 많은 도움이 될 사람이오
그 재물들은
내 대감께 드리는 첫 선물이오
보내드려라
부총관님
[사홍의 비열한 웃음]
[사홍이 계속 웃는다] [석희의 분한 숨소리]
(석희) 부총관님!
[석희의 황당한 숨소리]
(사홍) 길을 잘못 들었지 않느냐
여기가 아니라
(두목) 이 길이 맞습니다, 영감
이놈
이 뭐하는 짓이냐?
대감을 마지막까지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뭐라?
[칼을 챙 빼 든다]
[사홍을 칼로 푹 찌른다]
[사홍의 아파하는 신음]
네 이놈 [아파하는 신음]
[칼을 쑥 뽑는다] [사홍의 신음]
(사홍) 이놈
[고통스러운 신음]
[칼을 쓱 넣는다] [사홍의 죽는 신음]
[음산한 음악]
(명혜) 약조대로
네 가족들은 살려줄 것이다
(명혜) 또 약조대로
이름 없는 산골짜기의 촌부로 살게 해주마
감사합니다
너도 남은 값을 치러야지
[칼을 챙 잡는다]
[칼로 다리를 쑥 찌른다]
[고통스러운 비명]
[두목의 아파하는 신음]
몸은 불구가 되겠지만
[두목의 고통에 찬 신음]
이제야 비로소 사람처럼 살게 될 것이다
[두목의 아파하는 신음]
(녹수) 비켜라
잡혀갈 때 가더라도
주군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녹수구나
[문이 탕 닫힌다]
전하
지금이라도 도망치거라
(융) 목숨을 부지해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
신첩
주군 없이 무엇을 하오리까?
꽃이
어디 오래 피는 법이 있사옵니까
꽃은 짧디짧게
한철이나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는 법이옵니다
(녹수) 신첩 [코를 훌쩍인다]
이생에서는
전하의 꽃으로 살다 간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애잔한 음악]
전하의 손으로
죽여주시옵소서
[융이 녹수의 목을 푹 찌른다]
[녹수가 손을 툭 떨군다]
[융이 흐느낀다]
[문이 드륵 열린다]
[문이 드륵 닫힌다]
[부드러운 음악]
(채경) 이 스산한 마음의 정체가 뭔지 몰라서
어떤 마음으로 서방님을 봐야 할지 몰라서
차라리 눈을 감습니다
(역) 분명 뜻대로 되었는데도
마음이 왜 이리 스산한 것이냐
(원종) 대비마마를 뵙사옵니다
간밤에 큰일이 벌어져
나도 심려가 컸소이다
(자순대비) 하나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천우신조라 하겠소
(순정) 그러하옵니다, 대비마마
(희안) 하여 대비마마께 허락을 구하고자
신들이 이리 찾아뵈었나이다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진성대군이 과연
그 크고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희안) 충분히 잘해내실 거라 믿사옵니다
네
대군께서 서둘러 움직이신 덕분에
(순정) 큰 유혈 사태 없이
폐주를 잡아들일 수 있었고
(순정) 반란군과 정규군의 내전도 막았사옵니다
신들이 기다렸던 왕제이시옵니다
그리 하시오
[슬픈 음악]
(세자) 아바마마, 어마마마
(신비) 세자
[세자가 울먹인다]
할마마마
(원종) '지금 위에서 임금의 도리를 잃어'
'민생은 도탄에서 고생하며'
'종사가 위태로우니'
'자나 깨나 근심이었다'
'하여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종사의 계책을 삼고자 하니'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이 뜻을 따르라'
(원종) '이에 폐주 이융은 군으로 강봉한 후'
'강화 교동에 유배한다'
'폐비 신씨는 정청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폐세자 이황은 정선에'
'창녕대군 이성은 수완에'
'양평군 이인은 제천에 유배한다'
(역) 채경아
괜찮은 것이냐?
나를 좀 보거라
(상궁과 내관들) 중전마마를 뵙사옵니다
[잔잔한 음악]
(송 내관) 중전마마, 중전마마
[송 내관의 다급한 숨소리]
송구하옵니다
(송 내관) 좌상 대감과 정경부인께서
돌아가셨사옵니다
[떨리는 숨소리] [잔잔한 음악]
[다급한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
물러서거라
(명혜의 수하2) 움직이면 막으란 엄명이 있으셨소
내게 엄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주상 전하뿐이시다
비켜라!
[칼로 챙 벤다] [수근의 비명]
(권씨) 대감! 대감! [흐느낀다]
대감!
(권씨) 대감!
[칼로 쓱 벤다] [권씨가 털썩 쓰러진다]
(수근) 부인
우리 죽어서는
한마음으로
채경이만 지킵니다
온전히 아비로서 살지도 못하고
충신으로 죽지도 못해서
미안하오
아, 아버지
[울먹이며] 아버지
[울음 섞인 숨소리를 연신 토한다]
아버지
[채경이 울먹인다]
엄마, 어머니
어, 어머니
안 돼요
아버지
어머니
(원종) 폐주는 동궁으로 옮겼으니
이제 대군마마
아, 아니
전하께서 대전으로 자리하시지요
(원종) 곧 즉위식이 진행될 터이니
준비하셔야 하옵니다
알겠소
(역) 어마마마, 옥체는 무탈하시옵니까?
괜찮다
오늘 일로 싹 다 나았느니라
한데 네 표정은 왜 그러느냐?
소자
큰 고비는 넘겼으나
기쁘지가 않사옵니다
(역) 잃은 게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게
너무 두렵고요
그동안 늘 죽음에 쫓기고
너무 가슴 졸이고 살아서
행복을 누리는 법을
까먹은 것일 게다
이제 행복만 있을 게야
(역) 하면
제 아내한테 가보겠사옵니다
그래
폐주를 잡는 일에 기여가 컸다 하더라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왜?
무슨 일이야?
[부드러운 음악]
(채경) 어머니
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이러고 주무시기만 할 겁니까?
(채경) 저 밥도 해주시고
잔소리도 해주시고
등짝도 때려주셔야죠
[채경이 흐느낀다]
(채경)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
[채경이 코를 훌쩍인다]
아버지, 그때 제가 화내서 죄송해요
(채경) 아버지의 입장 다 아는데
제가 괜히 원망했어요
아버지
멋있는 아버지 아니어도 되니까
훌륭한 신하 이런 거 아니어도 되니까
제발
제발 살아만 계시면 안 됩니까
아버지, 제발요
[문이 덜컥 열린다]
[다급한 발걸음]
장인어른
(역) 장모...
[역의 안타까운 신음]
[역의 놀란 숨소리] [채경이 흐느낀다]
대체 왜, 왜...
(역) 왜...
[역의 울먹이는 숨소리]
[채경이 흐느끼는 숨소리]
[채경의 기절하는 신음]
(역) 채경아! 채경아!
채경아, 정신 차려, 채경아!
[잔잔한 음악]
(수근) 제 사위로만
채경이의 부군으로만
전하의 아우로만 살아주십시오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난 후에 그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주군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이
신하의 운명입니다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사옵니까
왜?
왜!
(유모) 아씨
(유모) 아씨 [채경이 울먹인다]
(채경) 유모
살아있었어?
무사해? 다친 덴 없고?
예, 아씨
살아있는 거 맞지?
괜찮은 거 맞지?
예, 살아있심니더
유모, 나 아무래도 악몽을 꾼 거 같아
내가 뭘 봤냐면
(채경) 뭘 봤냐면, 유모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채경) 근데 그럴 리 없잖아
악몽 맞지, 그렇지?
유모, 우리 부모님 뵈러 가자 지금 빨리, 어?
아씨, 아씨
아씨
(유모) 아씨...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부부인은 걱정 안 하셔도 되옵니다
아마 스스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내려올 것이옵니다
유모
예, 저 여기 있심니더
나 경대 좀 갖다 줘
예?
예
[경대를 쓱 민다]
여봐라
(상궁1) 예, 마마
(채경) 내 전하를 뵈러 갈 생각이네
한데
이 꼴로 갈 순 없지 않은가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각별히 신경 좀 써주라 전하시게
[의미심장한 음악]
채경아
[역의 애절한 숨소리]
[채경의 떨리는 숨소리]
[채경이 숨을 탁 내쉰다]
[채경의 속상한 숨소리]
(역) 여기가 심장이야
그래야 죽어
[역의 아파하는 신음]
[놀란 숨소리]
[애절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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