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19
[주제곡]
[웅장한 음악] (내관) 주상 전하 입시요!
(대신들)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역) 이제까지 임금이 그 도리를 잃어
정치와 형벌이 번거롭고 가혹해졌으며
민심이 궁하고 어려워도 구제할 바를 알지 못하였는데
다행히도 대신들이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중책을 생각하여
나에게 즉위할 것을 권하므로 사양하여도 되지 않아
왕좌의 자리에 앉노라!
(대신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역) 사사로이 이익을 챙겼던 간신들과
백성을 수탈한 자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
죄 없이 잡아 들인 백성들과 대신들에게
마땅히 은사를 베풀어
그 뜻을 모두 알게 할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살피고 철거된 집들의 방안을 살필 것이다
[백성들의 감격스러운 환호성]
[잔잔한 음악]
네 뜻대로 낙천 오라버니가 드디어 왕이 되셨다
한데, 네 뜻대로 낙천 오라버니가
신씨 그 여인과 행복하게 백년해로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융) 드디어 역이 네가 왕이 되었구나
[융의 실성한 듯한 웃음] 덕분에 내 복수가 완성되었다
너를 왕으로 만들어
그간 내가 왕으로 살며 겪은 고통을 모조리 대물림해주마
[의미심장한 음악]
채경아
[안타까운 숨소리]
[흐느낀다]
[분노에 찬 숨소리]
[채경이 흐느낀다]
여기가 심장이야
그래야 죽어
[채경의 놀란 숨소리]
[곤룡포가 찢어진다]
[채경의 힘주는 신음] [역의 나지막한 신음]
서방님이 그리 명하신 겁니까?
누가 그런 짓을 했든 간에
날 옹립하는 과정에서 필시 나를 위해 움직인 사람이 한 짓이야
하니 내 책임이다
내가 약조를 못 지킨 것이야
복수를 하려거든 날 죽여다오
[역의 괴로운 숨소리]
[고통스럽게 운다]
채경아
[역이 목 놓아 운다]
[역이 훌쩍인다]
[채경이 숨죽여 운다]
[역이 목 놓아 운다]
[구슬프게 운다]
(송 내관) 찾으셨나이까?
자네가 날 좀 도와줬으면 하네
(송 내관) 아니, 이게...
[더듬대며] 전, 전하
[아련한 음악]
(역) 내일 제대로 청혼 선물 준비해서 다시 올게
전 이거면 됐습니다
(유모) 아씨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유모
주상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 셨사옵니다
(송 내관) 주상 전하께서 좌상 대감 내외를
폐주의 가족이나 역적이 아니라 중전마마의 가족이자 공신으로 삼아
예를 다하라 하셨사옵니다
하니 중전마마께서는 부모님이 그립거나 보고 싶을 경우
언제든 이곳에 오셔서 마음을 기대시라 하셨사옵니다
(수근) 더 이상 너에게 아비로서 해줄 것이 없는 듯하니
부디 앞으로는 진성대군의 뜻을 좇아 그의 아내로만 살거라
어머니, 아버지
[떨리는 숨소리] 사위가 두 분께 너무 죄송한가 봐요
[울먹이며] 어떻게든 사죄드리고 싶어서
어떻게든 제 마음 풀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애를 쓰네요
[슬픈 숨을 내쉰다]
(송 내관) 전하, 중전마마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왔느냐?
들어오너라
[쟁반을 내려놓는다]
좀 보겠습니다
[애잔한 음악]
[약그릇을 덜그럭댄다]
숨 쉬십시오
어
아버지께서 쥐고 계셨사옵니다
필시 또 누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이런 표식을 두고 간 거겠지요
[속상한 한숨]
왜 우리는...
매번 이렇게 다른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 일로 서로 아파하고 의심하고 원망해야 합니까?
(채경) 부부라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있으라고 맺어준 관계일 터인데
어찌 우리는 항상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어야 합니까?
[답답한 한숨] 내가 못난 신랑이라서 그래
내가 못난 사내라서
내가 왕이라서
예, 왕이십니다
이제 모든 걸 할 수 있는 왕이 되셨사옵니다
하니...
앞으로는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더는 눈물 흘릴 일 없게 하십시오
저도 이제 더 이상은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일국의 군주가 된 전하의 곁을 보필하고
(채경) 그 곁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를 흔들려고 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가 될 거니까요
하니, 반드시 강직한 군주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
(송 내관) 백가 석희를 내금위장으로 임명하여
대전의 호위와 금군의 관리를 맡게 한다
또한 조가 광오는
승정원 우부승지로 임명하여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다
- (광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석희) 망극하옵니다
일어나게
아이고, 괜찮사옵니다, 전하 거두어 주시옵소서
[석희의 아파하는 신음] 일어나라니까
[뿌듯한 숨소리]
[입소리를 쩝 낸다]
두 사람에게 왕으로서가 아니라 벗으로서 부탁이 하나 있네
- (광오) 하명하시옵소서 - (석희) 하명하시옵소서!
[입소리를 쩝 낸다]
지금 한성부 관원들이 폐주가 설치한 금표를 철거하고 있네
특히, 사냥터로 이용되고 있는 동적전 마을부터
금표를 철거하라 명했다
이야, 잘하셨사옵니다, 전하 [석희의 통쾌한 웃음]
[석희의 멋쩍은 신음]
지금 야산에 만들어놓은 서노와 서노 아비의 무덤을
동적전 옛 집터로 이장해주게
서노의 간절한 바람 중 하나였으니
[감동적인 음악]
그리고 그 무덤에 술 한 잔 올려주게
(역) 낙천이란 놈이 왕이 되어서
조선에 남은 수많은 서노들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소식도 꼭 좀 전해주게
- (광오) 명 받잡겠사옵니다! - (석희) 명 받잡겠사옵니다!
(송 내관) 중전 신씨의 유모 엄씨를 정5품 지밀상궁에 봉하고
해마다 녹봉 쌀 열 섬 면포 세 필을 하사하라
차후 중궁전의 궁인들은
엄씨가 중전의 보필과 궁 생활에 어려움이 없게끔 각별히 신경 쓸지어다
아이고 마
(유모)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두게, 챙겨갈 것 없네 [문이 드르륵 닫힌다]
(김 내관) 아, 예
[잔잔한 음악]
- (채경) 전하, 소신이 여러... - (수근) 여러 달무리를 보았으나
그중 가장 으뜸은 경회루에서 올려다보는 달무리였습니다
여기에 내 것은 이것뿐이다
예, 전하
(원종) 전하, 소신 연통을 받고 황급히 입궐하는 길이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기신 것이옵니까?
혹여 논공행상을 함에 있어
빠졌거나 과하거나 부족한 게 없는지 살펴보라 불렀소
벌써 정리를 다 마치신 것이옵니까?
(역) 읽어보시오
예
(원종) 반정 과정에서 공이 있는 신하들을 4등으로 나누어
정국공신으로 서훈하나니
1등 공신에는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유자광 등이며
박원종은 우의정 평성 부원군으로 유순정을 청천 부원군으로
성희안을 이조판서 창산군으로 유자광을 무령 부원군으로 제소한다
다만 박원종은...
계속 읽으시오
[긴장되는 음악]
반정 과정에서 과인의 명을 어기고 독단적인 행동과 결정을 내려
군율은 물론 어명의 지엄함을 해쳤으므로....
(원종) 전하
공신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자격을 박탈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이옵니다
좌상이 그대로 입궐을 했다면 우리 작전은 실패할 수도 있었사옵니다
이미 판도는 기울었고
장인어른께서 입궐을 하셨다 한들 궁문은 폐쇄된 후!
왕을 만날 수도 없었을 상황이오
한데도!
경은 장인어른 내외를 시해하였소
과잉 진압에 어명을 거역하고 [역이 책상을 탁 내려친다]
월권까지 행사한 셈이오
죽어 마땅한 죄가 아니오?
전하
설마 전하까지 폐주와 같은 길을 걸으시려는 것이옵니까?
공신을 이렇게 내치시는 법은 없사옵니다
홀로 조정을 이끌어 나가실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물론 잘 아오
하여, 이건 편전에서 공표하지 않을 생각이오
대신 오늘 경은 죽어야 할 목숨을 건졌으니
공신에게 하사되는 사면권을 미리 쓴 셈이오
하니
[역이 책상을 두드린다] 앞으로 경에게 두 번 자비란 없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원종) 당의와 봉황 비녀가 아주 잘 어울리시옵니다
어서 정식 책봉 교지가 내려와야 될 텐데요
순리에 맞게 진행되겠지요
순리라?
참, 폐비와 폐주 가족이 오늘 유배지로 떠난다고 하옵니다
알고 계셨사옵니까?
물론입니다, 이제 제가 왕실의 안주인이 되었는데
궁궐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라서 되겠습니까?
하면 부부인...
[긴장되는 음악] [원종의 옅은 웃음]
아니, 중전마마께서
계속 주상 전하 곁에 이렇게 버티고 계시면
장차 조정과 왕실에 어떤 일이 발생할는지도
잘 알고 계시겠네요
적어도 제가 여기 있으면
가장 껄끄러워할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여, 그 사람이 이 나라 조선에 꼭 필요한 인재이고
주상 전하의 곁을 든든히 보좌할 충신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그 사람을 두고 볼 수가 있을 테니까요
폐주를 끝까지 보필했던
중전마마의 아비 정도의 충신이면 되겠사옵니까?
내 아버지를 모독하지 마시오
모독이라니요? 충신이라 존경하는 것을
부총관!
이제 곧 우의정이 됩니다
[나지막한 웃음] 그럼...
[고조되는 음악]
(송 내관) 전하, 중전마마 드셨사옵니다
들라 하라
(역) 채경아
약 드셔야지요 그래야 상처가 빨리 낫습니다
[역의 옅은 웃음]
[입바람을 후 분다]
[역의 개운한 신음]
[역이 입소리를 쩝 낸다]
오늘 형님과 가족이 유배지로 떠난다는구나
각별히 신경 쓰라 명할 것이다
너무 심려치 말거라
[처연한 음악]
[신비의 다급한 발소리]
(신비) 전하!
[신비가 흐느낀다]
(신비)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이제 막 궁을 떠나셨습니다
고모님께선 괜찮으셔?
예, 오늘까지 정청궁에 계시다가 내일 사저를 나가실 거라 합니더
(원종) 아니 되옵니다
부부인 신씨를 중전에 삼으시다니요?
역도의 가족을 국모로 섬길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자광) 그러하옵니다, 전하 폐주의 전례를 보시옵소서
지난 갑자년의 참사가 왜 있었겠사옵니까?
[장내가 술렁인다]
[역이 책을 휙 내던진다]
내 대군 시절 닳고 닳도록 읽었던 서책 중의 하나요
(희안) 친히 필사를 하신 게로군요 주역의 서괘전 내용이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의미심장한 음악]
남편과 아내가 있은 뒤에 부모와 자식이 있고
부모와 자식이 있은 뒤에 임금과 신하가 있다고 하였소
즉, 부부는 인륜의 근본이고 통치의 근원이란 뜻이오!
(역) 바른 통치를 하기 위해 과인은
내 가정과 부부의 화목부터 바로 세우려고 하니
경들은 과인의 뜻을 존중하여 받드시오
이의 있소?
(희안) 없사옵니다
하면, 오늘 바로 부부인 신씨를 중전에 책봉하는 교지를 내리고
조만간 길일을 택해 책봉식을 진행할 터이니
그리 알고들 준비하시오
(희안) 명을 받들겠나이다
[원종의 못마땅한 숨소리]
"교지"
(역) 어마마마께서도 채경이한테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사옵니다
여기 궁궐 사방이 다 채경이 적이지 않사옵니까?
[교지를 탁 내려놓는다]
(자순대비) 그러니까 말입니다
모든 신하들이 그 아이를 반대하는데
왜 신하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그 아이를 지키려 합니까?
채경이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가족을 잃어가면서까지 소자를 지켰사옵니다
(역) 한데 그 마음에 보답도 못 할 것이라면
소자가 왕이 된 의미가 없지 않사옵니까?
[깊은 한숨]
[잔잔한 음악]
그래도 그 방에 있는 것보다 나오니까 좀 낫지 않습니까?
그러네
다 지나갈 겝니더 세월 금방 아닙니까?
눈 몇 번 깜빡하면 주름살 자글자글해지고
막 뱃살도 축축 처지고 마 저 보이소 마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 요동치던 것도 잔잔해질 겝니더
정말 그렇게 되겠지?
하모요,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십니까?
[나지막한 웃음]
못 봤어
(나인1) 아직 정식 책봉 교지도 받기 전인데 중전마마는 무슨
쳇, 듣기로는 대신들이 반대하고 난리래
(나인2) 막말로 아들 앞세워서 폐주처럼 복수할지도 모르잖아
(나인1) 아이, 설마
(나인2) 설마는 무슨 설마...
[나인들의 놀란 숨소리]
(유모) 확, 주둥이를 확, 틀어 불까, 씨
확 그냥, 씨 [나인2의 놀란 숨소리]
아유, 우짜노
(송 내관) 주상 전하 납시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채경) 전하, 연통도 없이 어인 일이시옵니까?
부인의 왕비 책봉 교지를 친히 들고 왔소이다
왕비 책봉 교지요?
[잔잔한 음악]
신씨는 받드시오
신씨는 성인이 되어 나의 배우자로
이날까지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데 조금도 허물이 없었다
(역) 이제 내가 외람되게 한 나라 신민의 주군이 되었으니
그대 이미 나와 짝을 이룬 몸이라
그 명의를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없어 왕비로 책봉하니
(역) 그 덕을 잊지 말고
한 집안에서나 한 나라에서 본받도록 하기 바라니
공경하라
(채경)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송 내관) [더듬대며] 전, 전하
[놀란 숨소리] 전하!
중전
내 곁에 있어 줘서 참으로 고맙소
(송 내관) 감축드리옵니다, 중전마마
(유모) 감축드리옵니다, 중전마마
(나인들) 감축드리옵니다, 중전마마
(역) 전 좌상 신수근을 공신의 예로 대하고 신씨를 중전으로 책봉할 것이오
[책상을 탁 내려친다] [원종의 못마땅한 숨소리]
(명혜) 다녀왔습니다
또 서노 그놈 무덤에 갔다 온 게로구나
지금 네가 그 응답할 길도 없는 뒤늦은 마음에
휘둘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오늘 주상 전하께서 신씨한테 책봉 교지를 내리셨다
정식 책봉 날은 며칠 후에 있을 예정이고
예
지금 이대로 중전 자리를 포기할 참이냐?
오라버니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걸 들켰습니다
가문을 일으키는 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듯합니다
지금 가문이 문제더냐!
네 목이 달아나게 생겼는데?
[무거운 음악] 목이 달아나다니요?
이대로 신씨가 중전이 되고 원자라도 낳아 보거라
그럼 그년이 권력의 핵심이 될 것인데
그때 제 아비를 죽이고 친인척들을 몰살시킨 너와 나를
그냥 살려둘 것 같으냐?
힘을 갖자마자 제일 먼저 우리부터 제거하려 들 것이야
하니 당하기 싫으면 우리가 먼저 칠 수밖에 없느니라
[깊은 한숨]
(명혜) 서노야, 난 봐줄 수가 없어
나도 살아야 하니까
(김 내관) 전하, 김 내관이옵니다
[문이 끼익 열린다]
전하, 물이라도 좀 드시옵소서 이러다 쓰러지시옵니다
상전
예, 전하
고맙소
중전과 아이들은?
모두들 유배지를 향하고 계실 것이옵니다
[깊은 한숨] 좌상은 어찌 되었소?
그것이...
(김 내관) 전하, 좌상 대감께서는 초하룻날 밤에 이미 피살되셨사옵니다
[긴장이 고조되는 음악]
지금 뭐라 하였소?
(김 내관) 좌상 대감, 정경부인 두 분 모두 돌아가셨나이다
좌상이 왜, 왜 죽었단 말이냐?
내 혹시 몰라 일부러 내게서 멀리 떼어놓았거늘
내 몇 번이고 다시 불러들이고 싶은 것을
참고 또 참았거늘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역이 짓이냐?
반란군들이 죽인 것이야?
송구하옵니다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분노한 숨소리]
채경이는? 채경이는 무사한 것이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벌써 폐비 논의가 나온다 하옵니다
[낙담한 숨소리]
[허탈한 숨소리]
(관군1) 왜 그래, 뭐가 있어?
(관군2) 아니야
[관군2의 외마디 신음]
[긴장되는 음악] [칼을 챙 빼 든다]
[다급한 숨소리]
[문이 덜컥 열린다]
[칼을 챙 빼 든다]
누가 시킨 것이냐?
(자객1) 억울해 마시오 혼자 가는 것도 아니니
역이가 시킨 것이냐?
(자객1) 전하 먼저 보내드리고
폐비 신씨와 나머지 가족들도 다 같이 보내드리겠습니다
[융의 힘주는 신음]
[자객들의 외마디 신음]
[칼에 푹 찔린다]
[융의 고통스러운 신음] [융의 힘주는 신음]
[자객2의 기합 소리]
[융의 힘주는 신음]
[융의 아파하는 신음]
(자객1) 흩어져, 빨리!
(자객2) 놓치면 안 돼, 빨리! 놓치면 안 돼!
(자객1) 저쪽이다. 잡아라!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융의 아파하는 신음]
(자객1) 전하 먼저 보내드리고
폐비 신씨와 나머지 가족들도 다 같이 보내드리겠소
감히 또 누굴 죽인단 말이냐?
좌상으로도 모자라 또 누굴!
[문이 드르륵 열린다]
(채경) 전하, 오셨사옵니까?
제가 수라상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감탄한다]
역시 [흡족한 웃음]
궁궐이 다르긴 다르오
수라간 나인들이 아침부터 무척 분주했겠소이다
수라간 나인들 내보내고 손수 제가 새벽부터 준비한 것이옵니다
중전께서 직접이오?
예, 유모가 좀 도와주긴 했지만요
(기미 상궁) 전하, 중전마마 송구하오나 기미를 해야 하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옵소서
중전
- 예, 전하 - 아, 참
오늘 사가에 가는 날이라 하지 않았소?
예, 입관은 어제 마쳤고
오늘 저는 가서 뒷정리나 좀 하고 오려고요
나도 같이 가봐야 하는 것인데
마음만 같이 가시면 됩니다
[옅은 한숨]
하면, 궁궐 입구까지라도 바래다주겠소
[옅은 한숨]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아... [역의 머쓱한 웃음]
(기미 상궁) 반찬을 순서 없이 옮기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곳 궁에서는 재미있게 살기는 글렀사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그러게 말이다
[언짢은 숨소리]
- (나인1) 중전마마를 뵈옵니다 - (나인2)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옷이라도 갈아입고 오시지 그러셨사옵니까?
이렇게 용포를 입고 다니시면 궁인들이 부담스러워하옵니다
일부러 입고 나온 것이다
예?
내가 이제 이 나라 조선의 임금이다
여기 옆에 있는 여인이 이 나라 중전이며 나의 아내다
하니, 각별히 신경 쓰거라
[잔잔한 음악]
(역) 이렇게 세상에 널리 널리 알리려고 말이다
이렇게 고운 색시를 궁궐 모든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서
전하
왜 이렇게 애쓰시는 겁니까?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데
비로소 왕이 되셨는데
(채경) 늘 죽음의 불안에 떨어야 했던 대군 시절보다
어찌 더 초조한 표정으로 저를 보시는 겁니까?
[멋쩍은 숨소리] 내가 그랬느냐?
제가 불안하십니까?
제가 아직도 전하를 원망하고 있을까 봐
해서 언젠가 전하를 떠나기라도 할까 봐
그도 아니면...
제가 지금 하는 말, 짓는 표정 모두 거짓일까 봐 두려우십니까?
채경이 네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네 뜻대로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내가 이렇게 초조했나 보구나
[속상한 숨소리]
제가 지금 마음이 편하다고 거짓말은 못 하겠습니다
하나...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전하밖에 없사옵니다
전 여기 있겠사옵니다
그래
내가 이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제야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긴장되는 음악]
[융의 거친 숨소리]
[슬픈 음악]
(수근) 소신, 소신의 여식 채경이를 믿고 아끼듯이
전하 역시 믿사옵니다 [융의 허탈한 숨소리]
전하께서 심려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신다면
소신, 성심을 다해 그 일을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옵니다
[융이 칼을 쓱 잡아당긴다]
(융) 경이 과인을 속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아 생긴 일이니
경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어명을 받잡겠나이다
- (머슴1) 채경 아씨 오신다고? - (머슴2) 아, 예
[다급한 숨소리]
중전마마 진짜 혼자 괜찮겠습니까?
응, 별로 정리할 것도 없는데 뭐
금방이면 돼
유모는 장지에 가서 나 대신 무덤을 살펴봐 줘
그러면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채경의 옅은 한숨]
[아련한 음악]
(권씨) 네가 웬일이냐?
(채경) 웬일이긴요 제가 뭐 못 올 데 왔습니까?
(권씨) 대군 진지는 잘 챙겨드리는 것이냐?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는 것이냐?
없습니다, 어머니
그냥 입맛이 없을 때는 어미가 챙겨준 그 꿀물이라도 먹지 그랬느냐, 어?
아유, 다 식는다 안 먹고 뭐 하는 것이냐?
부인 질문에 답하느라 못 먹고 있는 걸 지금 누구 탓을 하시오?
[권씨의 머쓱한 웃음] 그랬습니까?
아니, 그럼 어쩝니까? 그냥 물어도 물어도 궁금한걸요
자
[긴장되는 음악]
[거친 숨소리]
전, 전하!
무사한 것이냐?
내 너에게 경고하지 않았더냐?
역이가 왕이 되면 너는...
[융의 괴로운 신음] 너는 불행해질 것이야
[융의 고통스러운 신음]
(채경) 전하!
[융의 아파하는 신음]
(송 내관) 전하, 내금위장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석희의 떨리는 숨소리]
전하, 폐주 연산군이 유배 가던 길에 탈주를 했다 하옵니다
[긴장되는 음악]
그게 무슨 소리야, 탈주라니?
(원종)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거든 썩 비키거라!
어찌 이렇게 무작정 도망치신 것이옵니까?
유배길에 탈주를 하는 것은 중죄이옵니다
죽을죄란 말이옵니다
습격을 받았다, 날 죽이려 했어
그놈들이 내 가족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
죽이다뇨? 누가 말입니까?
누구긴, 뻔하지 않느냐?
역이 그 녀석과 그 측근들이겠지
날 제거해야만 발 뻗고 잘 수 있는 놈들
나뿐인 줄 아느냐?
너도 중전도 내 아이들도 모두 죽이겠다 협박을 하였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허탈한 웃음] [분주한 기척이 들린다]
함정이다
(원종) 역모 죄인들이 이곳에 숨어있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 샅샅이 뒤져라! - (사병들) 예!
(원종) 따라와
[다급한 숨소리]
[가쁜 숨소리]
좌상이 죽었단 소식을 듣는 순간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융) 이성을 잃었어
하여, 이런 뻔한 덫에 걸리고 말았구나
이미 폐비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들었다
날 죽이고 너까지 몰아내야 멈출 것이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들이다
[융의 떨리는 숨소리] (원종) 분명히 이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 (원종) 샅샅이 뒤져라! - (사병들) 예!
뒷문 밖으로 나가시면 말이 있습니다
도망치십시오 유배지로 돌아가세요
너는? 너는 어찌할 것이냐?
전하께서 무사히 빠져나가시는 게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심란한 숨소리]
(채경) 이게 무슨 짓이오?
(원종) 중전마마, 폐주 연산군이 유배지에서 관군들을 모조리 죽이고
도망을 쳤다 합니다
이곳으로 도망친 것을 본 자가 있다 하여 수색 중이오니
협조하여 주시옵소서
이 집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소
역도를 숨겨주다 걸리면 중전마마께서도 공범이 되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뭣들 하느냐?
(채경) 멈춰라!
이곳은 고인의 빈소다 더 이상은 못 들어온다
(원종) 뒤져라!
[긴장되는 음악]
[칼로 푹 찌른다] [사병의 외마디 신음]
[칼을 챙 빼낸다]
(융) 물러서라 중전을 살리고 싶으면 다들 물러서!
(원종) 물러서지 마라
폐주와 중전이 한패다
중전이 폐주를 숨겨준 것이야! [채경의 놀란 숨소리]
중전의 목이 떨어져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봅시다, 부총관
(원종) 열어!
- 함께 가자 - 안 됩니다
지금 부총관은 내가 아니라 너를 죽이려는 것이다
이건 널 죽이려는 함정이란 말이야
[기척이 들린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저를 함부로 못 죽일 겁니다 얼른 가십시오
(채경) 어서요!
[융의 말몰이 소리] [말 울음소리]
(원종) 죄인이 도망간다, 쏴라!
쏴라! [화살이 쌩쌩 날아간다]
(원종) 쫓아라!
(사병 수장) 폐주가 분명 이곳에 있다 샅샅이 뒤져라!
(사병들) 예!
[고통스러운 신음]
[융의 괴로운 신음]
[채경의 가쁜 숨소리] [문을 덜그럭 잠근다]
곧 궁으로 압송될 것이옵니다
기어코 우리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킬 생각입니까?
주상 전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하나 우리가 그 정도 계산도 없이 움직였겠습니까?
부인이 별궁에 유폐되어 있는 동안
폐주가 웬만한 후궁들 침소보다도 별궁에 가는 걸 더 즐기셨다지요?
그 내용을 우렁각시들이 벽서에 써서 세상에 퍼트릴 겁니다
[긴장되는 음악] [떨리는 숨소리]
중전과 폐주가 사통한 관계라
[혀를 끌끌 찬다]
그것도 고모부와 처조카 사이가 아닙니까?
닥치시오!
그따위 헛소문을 누가 믿을성싶소?
헛소문인지 진실인지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는
소문을 퍼트려보면 알겠지요
대체 왜, 어찌! 이렇게까지 저열하게 구는 것이오!
만약 자복을 하신다면 굳이 소문까지 퍼트리지 않고
역도를 탈주시킨 죄 정도로만 끝내드리지요
그게 금상을 위해서도 더 좋지 않겠습니까?
즉위 초부터 자기 아내와 폐주가 된 형님 사이에
그런 더러운 추문에 휩싸이지 않고 말입니다
(원종) 안 그렇습니까?
[멀어지는 발소리]
(대신들)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폐주는 어디 있소?
(원종) 놓쳤사옵니다
하오나 그 근처에 군사들을 풀어서 수색하고 있사오니
머지않아 잡아 올 것이옵니다
하면 폐주를 잡아 오시오 중전은 그저 피해자일 뿐이오
그렇다 한들
일단은 중전마마를 편전에 모시고 와서
(원종) 많은 대신들 앞에서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지금 중전...
중전을 공개적으로 신문이라도 하자는 것이오?
[나지막한 웃음]
무고하다면
(원종) 더더욱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무고함을 밝혀야
모든 의혹을 해소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대신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탈주라니?
폐주가 정녕 도망을 쳤단 말이냐?
예, 대비마마
심지어 중전마마께서 폐주의 탈주를 돕다가 방금
우상의 사병들에게 붙잡혀 왔사옵니다
[망연자실한 숨소리]
(상궁) 아이고, 대비마마!
기어코 그 아이가 일을 치는구나, 기어코!
(융) 지금 부총관은 내가 아니라 널 죽이려는 것이야
이건 널 죽이려는 함정이란 말이야
[긴장되는 음악]
중전
전하
(원종) 중전마마
소신, 외람된 질문을 하나 드리겠사옵니다
폐주 연산군이 유배 가는 길에
관군들을 따돌리고 탈주한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그렇소
하면 폐주의 탈주를 도운 건 누구이겠사옵니까?
혹시 중전마마이시옵니까?
중전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사가에 간 것뿐이오
폐주의 탈주를 어찌 알고 움직였겠소?
(원종) 하면, 마침 중전마마가 사가에 나간 그 시각에
마침 폐주가 좌상의 집에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만난 것이 모두 우연이란 말씀이시옵니까?
심지어 방 안에는 중전마마께서 친히 다친 폐주를 치료해주셨는지
피 묻은 붕대와 약초가 남아있었사옵니다
[장내가 술렁인다]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오?
(원종)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단순히 소신의 상상이 아니옵니다
폐주와 중전마마와 관련된 불경한 소문들은
이미 궁궐 안팎에 파다하옵니다
소문이라니?
중전께서 지난 갑자년부터 궁궐에 볼모로 계시는 동안...
(역) 그 입 닥치시오!
[떨리는 숨소리]
[칼을 챙 빼 든다]
경이 정녕 죽고 싶은 게요?
(대신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우상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전하
[장내가 술렁인다]
제가 폐주의 탈주를 도왔사옵니다
[아련한 음악]
채경아, 위험하다, 어서 피해라
[역의 떨리는 숨소리]
중전, 그게 무슨 말이오?
하면...
제가 제 부모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줄 아셨습니까?
이대로 원수를 용서하고 죽은 듯이 살 줄 아셨습니까?
[채경의 슬픈 웃음] 여차하면 폐비시키면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전하께서 제 마음을 잘 구슬릴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당황한 숨소리]
하나 틀리셨습니다
[채경의 냉정한 숨소리] 전하께서 제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려고 애쓰셔도
소용이 없었사옵니다
오히려 제 분노와 증오만 더 깊어졌사옵니다
아, 제가 늘 이렇게 전하 앞에선
쉽게 무너지고 쉽게 속는 어리석은 계집이라서
(채경) 이렇게 만만한 계집이라서 [역의 당혹한 숨소리]
제 부모를 죽이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겠구나
비참함만 더해갔습니다
(역) 채경아, 위험하다, 그만해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겠다
당신들이 함부로 죽인 사람이 누군지 알려줘야겠다
예, 그래서 제가...
폐주를 도망시켰사옵니다
그만, 그만하거라
(채경) 아니오, 이젠 꼬인 매듭을 끊어내야 할 때이옵니다
[역의 떨리는 숨소리]
[채경이 울먹인다]
제 부모에게, 저에게...
주군은 한 분뿐이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전하를 주군으로 모시겠다 맹세한 적...
없사옵니다
네 이년!
주상, 뭐 하십니까?
이 계집의 입에서 이토록 무모한 말이 나오는데
두고 보실 겁니까?
어마마마
스스로 역도임을 시인하였습니다
(자순대비) 더 이상 조정과 왕실을 기만하고
주상을 능멸하는 이 계집의 말을 듣고 있을 수 없습니다
감히 폐주를 도망시켜 복권을 꾀하려 하다니요?
[더듬대며] 앞서 나가지 마십시오 그런 거 아닙니다
여봐라! 중전 신씨를 지금 당장...
(자순대비) 안 됩니다, 주상!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계집을 본보기로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무너진 왕실의 위엄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참형에 처하세요
어마마마!
(대신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자광) 폐주의 탈주를 돕다니요? 명백한 역신이옵니다
(대신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자광) 후환을 제거하여 종묘사직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대신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채경) 우린 여기까지입니다, 전하
[답답한 한숨]
[애잔한 음악]
(원종) 조정과 왕실을 위해 중전마마를 폐하셔야 하옵니다
(채경) 함께 있지 않는 것으로
서로 은애하는 마음을 지켜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역) 정녕 내가 이렇게 가길 바라느냐?
(채경) 서방님, 대군마마! 서방님...
(융) 이 말을 꼭 전해야 한다
(역) 누가, 왜!
과인을 능멸하는 처사로 여겨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로 다스릴 것이야!
(채경) 애초 만나선 안 될 운명이었던 걸 아셨지요?
이왕 만나서 사랑했다면 죽음으로 그 사랑을 지키고자 합니다
.7일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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