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2
[주제곡]
[물이 잔잔히 흐른다]
[긴장되는 음악]
(어린 역)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는 알아야겠습니다
(융) 과인이 널 못 죽일 이유는 또 뭐란 말이냐
[채찍을 짝 휘두른다]
(어린 역) 형님의
주상 전하의 동생입니다
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융) 네가 죽어야 될 첫 번째 이유지
네 형이라고 다를 줄 아느냐?
친형제도 아닌데
(융) 도승지 신수근의 사위가 돼라
그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거창 시골에서 조용히 살거라
왜 그래야 합니까?
저는 형님을 믿습니다
[어린 채경이 숨가쁘게] 도령!
(어린 채경) [애타게] 도령!
[긴장한 신음]
(어린 채경) [목청껏] 도령!
(어린 채경) 읍!
[어린 채경의 당황한 신음]
[어린 채경의 허둥대는 신음]
[가쁜 숨을 몰아쉰다]
누구냐? [활기찬 음악]
그 눈빛의 의미를 내가 좀 알아도 될까?
[숨을 캑캑거린다]
[참은 숨을 몰아쉰다]
[놀라는 숨소리]
[어색한 웃음]
[민망한 듯] 여가 아닌가?
[크게 들이쉰다]
(융) 또 들어갔다간
고뿔 들 텐데
[난감한 숨소리]
(어린 채경) 감사합니다
저보다 몸도 좋으신 분이
[더듬으며] 제, 제 몸 걱정도 해주시고
그럼 좋은 구경 되십시오
[어이없는] 좋은 구경?
(어린 채경) 저 혹시...
제 형님이 돼주십시오!
[풀벌레 울음]
이짝으로, 이짝
조기요, 조기
보이시죠?
주막 불빛
(융) 그래, 보이긴 한다만
제가 아직 어려서
혼자 들어가면 방을 안 내줄 거 같아서요
무사님께서 형님이라고 해주시면
묵게 해줄 것 같은데예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느냐?
아, 무사님 쫓아오는 바람에 성문이 닫혔다 아입니까
아, 그라고 또
이게 왜 내 책임이냐?
와...
아, 무사님은 집에 가족이나 동생도 없는교?
그, 그캐도
불쌍한 사람 돕는 건 인지상정이다 아입니까
사람탈을 쓴 늑대나 여우가 아니고서야
겁이 없구나
[헛기침]
어, 겁이 없으면 뭐 한다꼬 이런 부탁을 하겠는교
걍 마 여서 노숙하지
[옅은 한숨]
가보자
[융이 저벅저벅 걷는다]
[어린 채경의 기쁜 웃음]
(어린 채경) 아, 역시
요렇게 생긴 사람치고 매정한 사람은 없다카이 [맑게 웃는다]
못 들었소? [익살스러운 음악]
얘 가출했소
날 밝는 대로 포청에 넘기시오
[기막혀 하며] 어, 어, 형님! 왜 거짓말하요?
주모
우리 형님이요
먹기살기 힘들다고
지금 내를 버릴라 카는 깁니더
(어린 채경) 아, 좀 말려주이소
내가 네 형님이란 증거가 어딨느냐?
형님 배꼽 옆에 상처 있다 아입니까
후딱 옷 벗어 보이소
- 그건 아까... - (주모) 가족 싸움은
들어가서 하시고
저기 이 방이유, 이 방
배꼽 옆 말고 딴 데도 함 말해볼까요?
[황당한 숨소리]
"주"
[젓가락을 달그락 떨군다]
[쩝쩝 먹는다]
[후루룩]
크아!
아, 그때
그 양아치 놈이 내 비단 주머니를 훔쳐간 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찾겠다고 하루종일 그러고 있었느냐
돈이 얼마나 들었길래?
[속상한 한숨]
돈도 돈이지만
그 비단 주머니에 중요한 서찰이 들어있는데
그게 있어야
[수저가 달그락 밀린다] '왜 왔냐?'
라고 물으시면
'이거 드리러 왔다'
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거든요
부모님 집에 가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냐?
[상이 끼익 밀린다]
오지 말라 카셨거든요
[씁쓸한 한숨]
환영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게로구나
[헛기침]
아, 그러는 무사님은 왜 야밤에 홀딱
어, 그러고 계시는 건데요?
[크게 한숨]
온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 [숨을 들이켠다]
열을 식히는 중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자꾸 아우와 나를 두고 시험을 하시는구나
[옅은 숨소리]
얼마 전 우리 동네 서당에서요
달리기 경주를 했어요
1등으로 들어오는 사람한테 먹을 걸 준다 카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악착같이 달려서 도착을 했는데예
아, 훈장님께서 갑자기 또 달리라 카데예
아, 우얍니까 다시 달렸지요
근데 또, 또다시 달리래요
몇 번이나
[피식]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훈도 한 명이
동무들한테 같이 가자고 했어요
그래가 다들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달려갔대요
그제야 훈장님께서 웃으면서 먹을 것을 좋다 카데예
[피식]
다 같이 함께라...
무사님도 동생이랑 함께하면 안 되는교?
[씁쓸히 웃는다]
안타깝게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길한 음악]
[어린 채경이 픽 쓰러진다]
[아파하는 신음]
[고통의 신음]
[상을 탁 친다] [성난 숨소리]
[상을 탁, 탁 내려친다]
[아파하는 신음]
[기절하는 신음]
[문갑을 드르륵 연다]
"주"
[무서운 음악]
[놀라는 신음]
[안간힘 쓰는 신음]
[놀라는 신음]
[어린 채경의 애타는 신음]
[다급한 숨소리]
[힘주는 신음]
[힘주는 신음]
[힘쓰는 신음]
[힘쓰는 신음]
[극적인 효과음]
[기겁하는 신음]
[떨리는 숨소리]
[힘주는 신음]
[힘쓰는 신음]
[힘껏 힘주는 신음] [줄이 툭 끊어진다]
[다급한 숨소리]
[깨진 조각이 달그락거린다]
[숨을 크게 몰아쉰다]
[벽에 턱 부딪힌다] [다급한 숨소리]
[두려움에 허둥대는 숨소리]
[걱정스런 숨소리]
[울먹이는 숨소리]
[다급한 숨소리]
어우, 무사님!
[다급히 힘주는 신음]
[초조한 신음]
어, 안 죽었는데? 왜 안 깨노?
[다급하게] 어, 무사님, 무사님!
[어린 채경의 다급한 신음]
[울먹이며] 어머니, 아버지
우야노 [흐느낀다]
[어린 채경이 연신 흐느낀다]
[수레가 덜컹거린다]
[불안한 음악]
[풀벌레 울음]
[어린 채경이 연신 흐느낀다]
[울먹이며] 어머니
아버지
[연신 흐느낀다]
[흐느낀다]
[가볍게 웃는다]
[옅은 한숨] [부드러운 음악]
[수레가 끼익끼익 굴러간다]
[어린 채경이 휘파람을 분다]
살았다 [안도의 한숨]
[풀벌레 울음]
[수레가 덜거덕 굴러간다]
[숨을 헐떡인다]
(군관) 웬 놈이냐?
[기운 빠진 신음]
[어린 채경의 가쁜 숨소리]
(어린 채경) 문 좀 열어주세요
의원 집에 가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맥을 놓는 신음]
[융의 힘주는 신음]
[안타까운 숨소리]
(융) 성문을 열어라
아직 파루가 치기 전이오 기다리시오
어명이다!
[문이 삐그덕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정신이 좀 드느냐?
무사님, 괜찮아요?
참으로 겁도 없는 녀석이로구나
혼자 도망쳤어야지
어찌 나까지 살리겠다고 그 고생을 했느냐
가족을 두고 우예 혼자 갑니꺼
[어린 채경의 옅은 신음]
무사님이 제 형님이 돼주셨다 아입니까
가족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요
참, 거기 주막은 우예
주막에 사람이 죽어 있었는데
포청에 알렸으니 걱정할 것 없다
많이 놀랐을 터이니 좀 더 눈을 붙이거라
어제 일은 잊고
[숨을 내쉬며 훌쩍인다]
집에 갈랍니더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내가 미쳤다카이 [훌쩍인다]
혼자 그냥 가만히 집구석에 있을걸 뭐 한다꼬
[훌쩍이며]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저승 갈 뻔했잖아요
참말로
[어린 채경이 훌쩍이며 운다]
[어린 채경이 연신 훌쩍인다]
가자
(기룡)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앞으론 더 가까이서 모시겠습니다
그리 하거라, 죽고 싶으면
[긴장되는 음악] (내관) 주상 전하 입시오
(융) 대체 경들은
도성 안팎의 치안을 어찌하고 있는 것이오?
무도한 족속들이
주막 주인 행세를 하며 오가는 길손들을 해치고 있었소
도성에서 겨우 5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오
(대신들) 송구하옵니다, 전하
[가짜 주모의 두려움에 떠는 신음]
한성부 판윤과
우포청 포도대장을 당장 삭직시키겠소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칼을 챙 들이민다]
경들에게도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오
(대신들) 예
(김 내관) 어젯밤부터 쭉 저러고 계셨사옵니다
[김 내관의 헛기침]
[놀라는 신음]
(어린 역) [조심스레] 전하
어제 일은
(융) 과인의 뜻은 변함이 없다
신수근의 사위가 돼라
그럼 너도 [숨을 들이켠다]
한결 편해질 것이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어린 역의 당황한 신음]
[힘주는 신음]
[깊게 한숨을 뱉는다]
(어린 채경) 이제 집에 무슨 핑계로 가노
[손이 방바닥을 쓱 스친다]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융)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그때 네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노라
[피식]
자기가 옥황상제도 아니믄서
쩝
(어린 역) 꺼져
(어린 채경) 아까 훔치간 거 내놓고 가라
놓으라고, 이씨! [아파하는 신음]
[화난 숨소리]
내 소원은
그 반반 도령 잡는 깁니더 [씩씩댄다]
[유쾌한 음악]
[말이 투레질한다]
누구지?
하늘이 내를 도왔네
손님들 있을 땐 안 혼낼 거 아이가
[익살스러운 효과음]
[찻잔을 탁 놓는다]
내 친히 경의 집까지 온 이유를 짐작하시겠소?
소신, 전혀 짐작치 못하겠나이다
진성대군의 가례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은 경도 들었겠지요
(자순대비) 매파를 보내기보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 진심을 전하겠다 싶어서요
[밝은 음악]
[새들이 지저귄다]
(유모) 아기씨!
- 제가 아기씨 쫒아오느라꼬, 아유 - 유모!
[어린 채경이 울먹인다] (유모) 아이고, 이게
괜찮십니꺼, 오 [어린 채경의 속상한 신음]
[놀란 신음]
(자순대비) 경의 여식을
내 며느리로 삼고 싶어요
[난감한 한숨]
(수근) 하오나 제 여식은 [어린 역의 한숨]
대군마마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사옵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권씨) 예, 대비마마
우리 채경이는 대군마마의 짝으로 너무 부족합니다
(어린 채경) 어머니
(권씨)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시골에서 키웠고
병이 또 언제 재발할지 모릅니다
(어린 채경) 저 건강해요, 어머니
(권씨) 아프다는 핑계로 공부도 게을리하고
또 따로 가르친 것도 없어서
[숨을 들이쉬며] 언문도 겨우겨우 읽는 정도지요
[어색한 한숨]
(수근) 예절이니 법도니 그런 건 하나도 모르고
노복들 틈에서 자라 행실도 천박합니다
(자순대비) 예절이니 법도니 하는 것들은
익히면 되지요
건강은 뛰어난 의원이 궁에 다 있으니
경의 여식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고요
(수근) [더듬대며] 하, 하오나 제 여식은
가문과 조정에 큰 누가 될 것이옵니다
(어린 채경) [속상해 하며] 어머니, 아버지
왜 소녀를 그리도 못난이로 만드십니까
저는 어마마마와 생각이 다릅니다, 도승지
대군!
저는 도승지의 영애와 혼인할 생각이 전혀... [문이 달칵거린다]
[기함하는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또 보네, 새똥!
[놀란 신음]
[황당한 신음]
[어린 채경의 아파하는 신음]
[놀라서] 너!
여길 어떻게!
[권씨의 황당한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수근과 권씨) 채경아!
[민망한 숨소리]
어머니, 아버지
[숨을 가다듬는다]
[다소곳한 신음]
[황당한 신음]
저렇게 반가우실까 [흐뭇한 웃음]
[기가 막힌 헛웃음]
방금 들은 것과는 아주 다르군요, 도승지
[난감한 숨소리]
아버님 말씀이 틀리지 않사오나
그 부족한 바를 채우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사옵니다 대비마마
[어린 역의 코웃음]
[흐뭇하게 웃는다]
겸양까지
[자순대비의 흐뭇한 웃음]
[황당한 한숨] 전 도승지 영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음악] (어린 융)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요
(자순대비) 대군, 그게 무슨 말이냐?
구구절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이옵니다, 어마마마
하오나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 올릴 수 있사옵니다
소자
이 아이와 절대 혼인하지 않겠사옵니다
[다급히] 어, 아닙니다
소녀는
혼인하겠습니다
[경쾌한 음악]
[황당한 숨소리]
[어린 채경이 숨을 헉헉댄다]
아, 이유가 뭔데요?
너야말로 이유가 뭐야?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
하다 하다 이제 성별까지 바꾸고 등장하냐 [어이없는 한숨]
[어린 채경의 기쓰는 신음]
내가 나타난 게 문제인교? 내가 여자인 게 문제인교?
그날 내가 너 때문에 무슨 꼴을 당했는 줄 알아?
너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한데 너랑 혼인하라고?
이 집안에 목숨을 구걸하라고?
그냥 도승지의 딸이라도 싫은 판국에
새똥 너랑?
아이, 말에서 떨어져서요?
늦게 도착해서!
주상 전하 칼에 죽을 뻔했다고!
아, 우리 임금님께서 도령을 와 죽이는데요?
[답답한 한숨]
그럼 넌 왜 한대?
정1품 부부인 자리 탐나서?
아, 예?
너네 식구들 벼슬 좋아하잖아
네 고모 중전마마 이 나라 국모시고
조정의 실세로 군림 중인 도승지 신수근
네 아버지! 병권 쥐고 있는 네 숙부!
이제 너까지 나랑 혼인해 부부인이 되면
너네 가족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도를 부리겠지 [어린 채경의 한숨]
아, 뭐라카노, 진짜!
그런 게 아니면 왜?
아, 나도 할 수 있단 거 보여 줄라꼬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렇게 제멋대로인 아이라...
진성대군도 만만치 않아요
(자순대비)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죠
[익살스러운 음악] [성난 숨소리]
아, 내가
신씨 집안에 애물단지도 아이고 미운 오리 새끼도 아이고
대군마마한테 정도는
충분히 시집갈 수 있단 거 보여 줄라꼬요
아, 딱 깨 놓고
대군마마보다 내가 더 아깝잖아요?
[강조 효과음]
[기막혀] 뭐? 아깝?
[숨을 들이쉬며] 여자는 원래
좀 기운다 싶은 집안에 시집가야 잘 산대요
[어이없는 웃음] 너 진짜 웃긴다
[코웃음] 웃겼으면 됐어요
주머니나 돌려주세요
주머니?
아, 서찰이랑 돈이랑 들어있는 비단 주머니요
어디서 털리고 나한테 난리야?
아무튼, 촌티는
잠시 한눈팔면 혼도 털어가는 게 한양이야
어!
- 또 뭐? - 아, 증명하세요, 도둑 아인 거
진짜 소매치기 잡아달라고요
그 전까진 대군마마가 범인이에요
와...
너 말문 막히게 하는 재주 있다
감탄은 아껴두이소 앞으로 두고두고 놀랄 테니까
내가 왜 너 같은 걸 또 보...
(어린 역) 네가 무슨 수로?
나 임금님 조카거든
(어린 역) 난 임금님 동생인데?
[달관한 한숨]
(어린 역) 내일 사시 동적전 마을 정자 앞으로 와라
[더듬으며] 왜, 왜요?
도둑 잡아달라며!
대신
혼인은 없던 걸로 하는 거다 [문이 탁 열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잊지 마, 사시
동적전 마을 정자 앞이야
그리고 하나 더
새똥 네 말투 진짜 이상했거든
그냥 쭉 사투리 써라
확 씨!
[익살스러운 효과음]
[기가 찬 헛웃음]
애초 이러려고 순순히 따라온 것이냐
이렇게 무례하게 혼인을 거부하려고?
행선지도 밝히시지 않고 예까지 데려온 건
어마마마십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꿍하게 있을 것이냐
[속상한 숨소리]
[상을 탁 놓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밥뚜껑을 달그락 놓는다]
밥부터 먹거라
[긴장한 숨소리]
[더듬대며] 호, 혼부터 내이소
먹다가 체할 일 있습니꺼
너 이 녀석! [어린 채경의 비명]
(권씨) 아까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아느냐!
(어린 채경) 아, 어무이, 어무이
거창 집에 그냥 있으라 그랬지, 어!
어미가 내려간다 그랬지, 어우
아우, 허리야, 어우
아, 언제요? 저 시집간 후에 오시게요
아니, 근데 이 녀석이 뭘 잘했다고 너 이리와!
[겁먹은 신음] [문이 덜컹 열린다]
(수근) 해서
네가 지금 잘했다는 것이냐
혼자 무작정 가출해서 한양까지 온 걸로도 모자라
대비마마 안전에서 무례를 저질렀다
영감
쯧, 내일 당장
거창으로 내려가거라
진성대군과의 혼담도 없던 일로 할 것이니
[서운한 숨소리]
왜요? [울먹이는 신음]
제가 대군마마와 혼인할 자격이 안 돼서요?
제가
왕실에 시집가면 우리 집안에 누를 끼칠까 봐서요?
(권씨) 채경아!
(어린 채경) 그 도령이
대군마마가 저보다 훨씬 별로예요
[울먹이며] 여자 알몸이나 훔쳐보고
남의 주머니 터는 악질에다 다짜고짜 화만 내는 양아...
[호통치며] 너 이 녀석!
어디서 그런 방자한 말을 입에 담느냐!
아무리 법도도 예절도 모르고 네 멋대로 자랐기로서니
[울먹이는 숨소리]
안 가르쳐주셨잖아요
[부드러운 음악] 부끄러워서
촌구석에 꽁꽁 숨겨만 두셨잖아요
[연신 울먹인다]
[서럽게 울먹인다]
사랑받고 인정받을 기회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그런 기회 한번 주신 적 없잖아요
지금 그 기회를 주마
내일 당장
얌전히
거창 집으로 돌아가거라
[문이 여닫힌다]
[풀벌레 울음]
이유라도
말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실 사람과 가까이해선 안 된다는 예언 따위를
저 아이가 믿을 듯싶소?
그저
저를 거창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우리가 지어낸 말이라 믿을 것이오
[터벅터벅 걷는다]
(어린 채경) 우리 임금님께서 도령을 와 죽이는데요? [피식]
그러게
지금 몇 시쯤 됐느냐?
(상궁) 곧 해시이옵니다
(군관) 관중이오!
(어린 채경) 가족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하는 거잖아요
[의미심장한 음악]
(어린 역) 왜 그래야 합니까?
저는 형님을 믿습니다
(군관) 관중이오!
(어린 역) 제 가장 든든한 뒷배는 형님이시옵니다
[고조되는 음악]
(상궁) 아이고!
(융) 과인을 기다린 것이냐?
대답을 드리러 왔사옵니다
세상 누구라도
백정의 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
도승지 신수근의 딸하곤 혼인 안 할 겁니다
[잔잔한 음악] 형님을 의심해서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으니까요
과인이
두렵지 않느냐?
방금 전에도 널 죽일 수 있었다
안 그러실 겁니다
하나
제가 마냥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압니다
하여 소제
평생 혼인 같은 거 안 하고 총각으로 늙어도 좋습니다
명하신다면 평생 어른도 되지 않겠사옵니다
저는
형님 동생으로만 살겠습니다
[얕은 한숨]
과인이 또 [숨을 들이킨다]
며칠째 잠을 못 잤다
많이 피곤하구나
비파를
켜주겠느냐?
미치게 졸리는 네 연주 솜씨가
불면증엔 특효약일 듯싶구나
[융이 저벅저벅 걸어간다]
[비파 연주]
(융) 평생 과인의 아우로만 살겠다 하였느냐
죽을 힘을 다해 네 말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널 죽이지 않기 위해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비파 연주] [풀벌레 울음]
(수근) 내일 당장 거창 집으로 돌아가거라
꼬실 거다
아우, 깜짝이야
꼬셔요?
응, 우쨔든동!
그 대군인지 도령인지랑
혼인해서 여기 눌러앉을 끼다
엄마 아부지 옆에 있을 거라고
하지만
우째?
[씨익 웃는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아까 그 양아치 대군이랑 약속을 했지
내일 아침에 동...
어, 동동동 마을에서 만나기로
[유모의 한숨] [어린 채경의 뿌듯한 신음]
저기, 아기씨... [어린 채경의 신난 숨소리]
제일 고운 옷, 제일 예쁜 신발
제일 화려한 가마 준비해도!
내일 내가 제대로 매력 발산 좀 해볼라카이
저기, 그러니까 저기
옷이랑 신발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어떤 한계가...
유모! 내 못 믿나? 내가 부끄럽나?
아휴, 아이 그게 아이고요 그, 저...
저, 안 나오면 우짭니까
약속을 안 지키믄요
헉!
[답답한 한숨]
쓰읍, 흐음 [익살스러운 음악]
(유모) 절대 성질부리지 말고
최대한 마, 소녀소녀스럽게 하이소
[밝은 음악]
[다급히] 어, 아저씨, 내려주이소, 아저씨
아저씨, 내려주이소, 아저씨
뭐꼬?
아침인데 굴뚝에 연기 나는 집도 없고
동네가 와 이리 휑하노
"동적전"
[환한 웃음] [새들이 지저귄다]
(어린 역) 내일 사시 동적전 마을 정자 앞으로 와라
[헛기침] [숨을 들이쉰다]
(어린 역) 그래, 소매치기만 찾아주자
두고 봐라, 새똥
오늘 부로 너랑 인연 쫑이다, 쫑! 씨! [나뭇가지를 우지끈 밟는다]
뭐야?
- (아낙2) 어여 와! - (아낙1) 내가 아니라니까!
아유, 가보면 알 거 아녀!
아니, 충주댁 내가 아니라니까
- (아낙2) 본 사람이 있다는디 - (아낙1) 아, 뭐 잘못 알고 있다니까
[촌민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촌장) 꿇어 앉혀, 꿇어 앉혀!
다 꿇어 앉혀! [촌민들이 술렁거린다]
알 만한 분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임금님께 바칠 진상미에 손을 댄단 말이오
[촌민들이 술렁거린다] (아낙1) 아유!
(촌장) 가족들이랑 우리 마을 전체에
- 불똥 튀기 전에 자수를 해요 - (아낙1) 아유, 아유
촌장님, 저 아닙니다요
(촌민1) 이보게, 나도 아니야, 아니야
그럼 아침엔 무슨 쌀로 밥을 지어 먹었어?
(촌장) 아침부터 연기 난 집 중
범인이 있는 게 분명해요
(촌민2) 내가 안성댁네에서 연기나는 거 봤다, 내가
[촌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의미심장한 음악]
(자순대비) 어쩌자고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한 것이냐?
남들 이목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아무것도 보지 말라, 듣지 말라
네, 알고 있사옵니다
(아낙1) 아이고, 3일을 굶었습니다요
(아낙1) 아이고 [촌장이 추궁한다]
(촌부1) 아, 며칠째 굶고 있는지 몰라, 나도
(촌부3) 이, 이 어린놈까지?
(촌장) 너 이놈아!
(촌민4) 자, 자, 자, 자 진상미를 훔쳤다가 붙들리면은
그대로 모가지가 날라가는데 이 사람들이
- 목이 달아난다고? - 그냥 이실직고를 하겠어요?
- 그냥 관아로 끌고 가자고요 - 왔냐, 새똥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가자
어데요? 죽는다 카는데
임금님께 올릴 진상미를 훔쳤으니까
아, 그게 죽을죄예요?
판단은 판관이 하겠지
아, 눈이 삐었어요? 저 밭 안 보여요?
완전 망했다 아인교
[한숨 쉬며] 가뭄 땜에 밭이 저 모양이니
이 동네 사람들 진상미가 문제가 아이라
자기들 입에 풀칠도 못 했을 게 뻔한데
진상미 못 내게 했다고 사람을 죽여요?
[안타까운 숨소리]
[복화술로] 그것도 저런 얼라를?
가뭄이 내 탓이냐? 신경 꺼
사과하라 캐도 안 한다 양보하라 캐도 안 한다
[기가 찬 신음] 아이 그래
아무것도 안 할라카믄 대체 왜 태어났는교, 으이?
아는 사람도 아니잖아
게다가 저 녀석 네 봇짐 털었던 도둑놈이라고!
아, 그럼 모르는 사람도 아니네여
(촌장) 아, 뭣들 해요 관아로 끌고 갑시다
[소란스럽게 실랑이한다]
- (촌민2) 어? 뭐야 저거? - (촌장) 잠깐만!
(촌장) 야, 이놈아! 너!
이 약재, 무슨 돈으로 샀냐?
- (촌민3) 야가 범인이고마는, 어 - (촌민4) 에라, 이놈아
[술렁거리며 소란스럽다]
(어린 서노) 놔요! [촌민들의 거친 말이 오간다]
- (어린 채경) 왜 이라노, 와 - (촌민2) 뭐야? 비키라! [털썩 넘어진다]
[촌민들이 계속 술렁거린다]
내가 범인을 안다!
[어린 채경의 놀란 신음]
대군마마, 우얄라꼬
[촌민들이 웅성거린다]
(촌민1) 대군마마? 응?
(촌장) 대군? 아, 참말로 대군마마십니까요?
[어린 역의 헛기침]
[더듬대며] 그, 그렇다 내가 진성대군이다
[촌민들이 놀라 술렁인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촌장)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아이, 됐고
어, 저기 쌀 창고
저기서 창고지기 눈을 피해 쌀을 훔치려면
저기 밭을 가로질러야 돼
비가 안 와 거름만 잔뜩 부어댄 탓에
밭이 지금 엄청 찐득찐득하니
신발에 흙 묻은 사람이 범인이다
해서, 내가 범인이다
[촌민들이 웅성거린다]
(촌장) 아니, 뭐가 아쉬워서 쌀을 훔쳐요
그게 말이 돼?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못 믿겠으면, 어
이 근처에 말라 비틀어진 복숭아 나뭇가지 하나 있을 게다
찾아봐
- 내가 쌀 훔치다 모르고 떨어뜨렸어 - (촌장) 아, 뭐해
아, 뭐 하고 있어? 어서 가서 찾아봐
(아낙1) 예, 아이고 예, 아이고 예, 예
- 조기, 조기! 고, 고기, 어 - (아낙1) 예, 예
아이고, 아이고 찾았습니다요 아이고
아이고, 찾았습니다요 [밝은 음악]
아이고, 여기 있습니다요 여기, 여기
(촌부1) 아니, 이게 진짜 복숭아 마른 가지여?
- (아낙1) 네 - (촌부1) 아이고!
내 알기로 노비가 상전을 고변하는 법이 없듯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고변할 때에는
절차가 꽤나 복잡하다 들었다
역모죄가 아니고서야 되려 신분 질서를 어지럽혔다며
강상죄로 처벌받기도 하지
강상죄? [촌민들이 웅성거린다]
[어린 역의 헛기침]
나를 고발하겠느냐?
아님 쌀을 변상받고 끝내겠느냐?
[촌민들이 웅성거린다] (촌장) 아이고, 아이고
소인들이 어찌 대군마마님을 고변하겠습니까요
저흰 다만 쌀만 메꿔 주신다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요
(촌민들) 예, 예, 예
쌀만 주면 된다는데?
[어린 채경의 어색한 웃음]
(어린 채경) 갑자기 요래 던진다 이거지예?
(어린 역) 어디 한번 해결해보시지
그게...
어! 저걸 팝시다!
[가마꾼들이 황당해 술렁인다]
[멋쩍은 웃음]
(촌민들) 아이고, 고맙습니다
어여 오세요, 어여
(아낙1) 대군마마, 참말로 고맙습니다요
대군마마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촌민1도 한마디 한다]
(촌민1) 아이고, 아, 이대로 관아를 갔으면 그대로 장틀에서
황천길을 갈 뻔했구먼요 감사합니다요
[함께 감사 인사를 한다]
- 쌀 - (촌민2) 예, 아이고 예
[촌민들]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평화로운 음악]
(어린 채경) 창고에 채운 쌀 말고도 더 있으니까요
오늘은 꼭 쌀밥 드세요
아, 돈 많은 대군마마께서 주시는 거니까
사양 안 하셔도 돼요
아, 우리 마을도
가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다 함께 기우제도 지내고 그러는데
하늘의 마음을 달래는 게 어디 쉽나요?
억수로...
[민망한 웃음] 무척 어렵죠?
[촌민들의 밝은 웃음]
[즐거운 웃음]
[무거운 음악]
(노신1) 폐비의 아들이 아니옵니까? 이대로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나라에 큰 환난이 닥칠 것이옵니다
(노신2) 전하, 유지를 남기시옵소서
(노신3) 진성대군을 세자로 삼으시옵소서
[불안한 음악]
(신씨) 쇤네의 딸을
잊지 마시옵소서, 전하
[절규하며] 전하의 어미옵니다!
조선은 전하로 인해 망할 것이오!
(어린 융) 덕담 고맙소
내 필히 성군이 되어 주겠소
[고조되는 음악]
[칼로 슥슥 벤다]
[사람들의 불분명한 아우성]
[종이 울리는 효과음]
[잔이 달그락 떨어진다]
[놀라는 숨소리]
[극적으로 고조되는 음악]
[사람들의 불분명한 아우성]
상전!
[불안한 숨소리] [버럭] 상전!
[거친 신음] 태워라
[불안한 듯]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겠다
예, 전하 새로 지어 올리겠나이다
[융의 불안에 떠는 숨소리]
[새들이 지저귄다]
[편안한 음악]
[난감한 숨소리]
[놀라는 신음]
어, 망했다!
소녀소녀는 무슨 [속상한 한숨]
어휴
(어린 역)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려?
[더듬대며] 아니, 뭐...
[어린 채경의 낮은 헛기침]
한데, 어찌 마음을 바꾸셨사옵니까
그럼
왜 태어났냔 말까지 듣고 가만있을 사람이 어딨냐?
아, 그건 걍 욱해서
[목을 가다듭는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났음 태어난 몫을 해야지 않사옵니까?
더구나 대군께선 억수로 높은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더 귀하고 뜻깊은 일을 하실 걸요
내가?
예
방금도 보세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셨잖아요
(어린 역) 그래 봤자 뭐가 달라져
그 겁쟁이 녀석은 자길 살려줬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여덟, 아홉! [어린 서노의 신음]
[아파하는 신음]
- 마지막 - (무뢰배) 열! [힘든 신음]
[어린 서노의 신음] [무뢰배의 숨찬 신음]
[기침을 쿨룩한다] [무뢰배의 기가 찬 신음]
(무뢰배) 무식한 새끼 이거, 씨이 [어린 서노의 기침]
- (무뢰배) 가자 - 줘 [힘주는 신음]
10대 맞으면 돌려준댔잖아!
(어린 역) 근데
걔가 범인인 거 어떻게 알았어?
그러는 대군마마는요?
[한숨 쉬며] 그날 봤어
내가 이 동네에 자주 와서 웬만한 애들 얼굴 다 알거든
동네 무뢰배들한테 겁박당해서
그렇게 갖다 바치는 애들 많아
[잔잔한 음악]
왜?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대군마마 의외로 사람들한테 관심 많네요?
아, 근데 왜 평소에는 안 그런 척하고 있어요?
아!
혹시 시집살이 중이신가?
- 뭐? - 아니, 봐봐요
못 본 척, 안 들리는 척
입도 딱 다물고
여자들이 시집가면 석 삼 년은 그캐야 살아남는다 카는데
아, 지금 대군마마 하는 꼴이 탁 그짝 아인교?
[허탈하게 웃는다]
맞아
그래야 살아남는대, 나도
[어린 서노가 숨을 고른다]
(어린 서노)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린 서노) 돌려드릴게요
(어린 채경) 어? [편안한 음악]
[안도의 한숨]
[기쁨의 숨소리]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지긴요 요래 달라지는데?
치!
겁쟁인 줄 알았더니
제법 양심은 있구나?
이거 찾아오느라 이 모양이냐?
[어린 채경의 걱정스러운 신음]
맞나?
대군마마께는 드릴 게 없으니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대군마마를 위해 죽겠습니다
(어린 역) [놀라는] 오호
야, 뭔 그런 걸로 목숨까지 바쳐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군마마! 감사합니다, 아기씨!
(어린 역) 어우, 어우 [피식 웃음]
몰라, 네 맘대로 해
흠
그럼 목숨 헌납 말고
동무할까요?
누구?
애랑
너랑 나랑?
에헤이...
농담이 세다, 새똥
아니, 뭐 동무하면 좋잖아요
대군마마는 이 머슴애 보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우실 끼고
쟤는 쟤대로 오늘 일 반성하면서 나쁜 짓 안 하게 될 끼고
내도 한양에 동무 생기면
그 핑계로 놀러라도 올 수 있을 끼고 [어린 역이 피식 웃는다]
뭐 그런 이유로 친구를 하재 격 떨어지게
너 도승지 영감 딸 맞냐?
중전마마 조카 맞아?
거기서 제 족보는 왜 들먹이는데요?
아니면 어쩔 낀교! [울먹인다]
맞습니더
저요, 다들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는 미운 오리 새끼입니더
[어린 채경이 울먹인다] 아기씨
거창 가서 훈장님 팔촌 조카한테 시집이나 가지 뭐
[어린 채경이 훌쩍인다] [부드러운 음악]
안녕히 계세요 저 오늘 한양 마지막 날입니더
한양에 동무라도 생기면
그 핑계로 놀러라도 올랬더니 글렀네
하긴
대군마마도 내랑 친구 먹기 부끄럽겠지
저 진성대군 이역, 신채경
서, 서노입니더
저 이역, 신채경, 서노
세 사람은 오늘부로 벗이 되기로
하늘에 맹세합니다
[신난 숨소리]
뭐 해? 안 해?
[즐거운 숨소리]
맹세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신의 있는 벗이 되겠습니다!
뭐 하냐? 빨리 안 하고
맹세합니다
[어린 역의 헛기침]
근데 이렇게 말로만 해도 돼요?
의식 같은 거 안 하고?
아이, 여자들끼리 있을 땐 비밀 하나씩 털어놓기 하고 그러는데
아, 그카면 엄청 빨리 친해지더라고요
아, 됐어
[어두운 음악]
(녹수) 내관이나 지밀상궁에게 말해
주무실 때도 이 향초가 꺼지지 않게 하겠사옵니다
꿈을 꾸지 않게 도와줄 거예요
[문이 드르륵 여닫힌다]
아직도 못 찾은 것이오?
송구하옵니다, 전하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옵소서
밀지를 찾아 없애야 과인이 마음 편히 잠을 잘 거 아니오!
[융의 한숨]
이따위 향초 말고 제대로 된 방책은 없는 게요?
[융의 거친 숨소리]
[어린 채경이 휘파람을 분다]
차라리 그때처럼
기절이라도 하고 싶군
(어린 서노) 여기예요, 우리 집
아버진 할머니 모시고 의원 집에 침 맞으러 가셨어요
아이 씨!
[방문을 덜컹 연다]
(유모) 마 안 되겠다 싶으믄 마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말고
마 깔끔하게 오시소 마
뭐 마, 뭐 친구로라도 지내자 뭐 어쩌자
마 이래 자존심도 없이 매달리고 그러면 참말로 마마
마 추접시럽습니데이, 알았지요?
[속상한 숨소리]
지금 내가 냉골방, 온돌방 가릴 때가
[흥미진진한 음악]
[얕은 한숨]
새똥 너, 친구 없지?
딴 애들이 이런 거 하니까 부러워서
벼르고 벼르다 지금 하는 거지?
[발끈하며] 뭐라카노? 많이 해봤거든요
치!
그래, 뭐 속아줄게 동무 된 기념으로!
우쒸!
나는
쯧
[탁] 이거!
[놀란 신음] 이, 이거
그...
그... [당황한 숨소리]
어우, 야 [익살스러운 음악]
[어린 채경의 놀란 신음]
[어린 역이 피식 웃는다]
이래 봬도 이건 맹자라고
유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서책이다
내가 이렇게 춘화집처럼 만든 건
- 뻔하지요 - 뻔하지요
조정 신료들과 종친들이 내가
공부하는 걸 안 바라서야
- 핑계는 - 설마요
주상 전하보다 내가 경전을 더 많이 읽었거든
(어린 채경과 서노) 오오오...
[어린 역의 헛기침]
근데 왜 대군마마는 공부하면 안 되는데요?
똑똑하면 좋지
그야...
잠깐
[긴장감 도는 음악]
[어린 역의 다급한 숨소리]
[다급히] 오!
[어린 역의 역한 신음]
[헉]
무서워서 그라나 냄시 나서 그라나?
둘 다!
무서우면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게요
코는 금방 적응될 깁미더
[난감한 한숨]
진짜지?
아휴, 후딱 들어가서 자연의 신호에 충실하라카이 [어린 역의 당황한 신음]
[난감한 숨소리]
[어린 역의 괴로운 신음] [뒷간 나무판이 달그락거린다]
[휘파람을 분다]
새똥 너냐?
[잔잔한 음악]
[옅은 웃음]
그럼 누구겠는교?
지는요, 겁날 때 요래 휘파람을 불어요
그라믄 마음이 좀 진정되거든요
[어린 채경이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따라 분다]
[어린 채경이 계속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따라 분다]
[옅은 웃음]
와...
이게 뭐라고 의지가 되냐
아휴
[의미심장한 음악]
[문이 드르륵 열린다]
[무릎을 탁 꿇는다]
드디어 찾았사옵니다, 전하
선왕 전하 임종 시
대전에서 숙직하던 사관 말이옵니다
동대문 외곽 동적전 마을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었사옵니다
눈은 붙여두었는가?
예
은밀히 지켜보라 명을 내렸사옵니다
기우제를 지낸 후에
과인 앞에 데려다놓게
내 친히
만나볼 터이니
(사홍) 예
한데
대비전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어제 오후만 해도
대비마마께서 진성대군과 함께
궁 밖을 나갔다 오셨사옵니다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요
[비웃음]
과인에게서
금쪽같은 아들을 지키려고 방도를 찾고 계시겠지
가장 확실한 방도는
밀지겠지요
[북소리 효과음]
선왕 전하께서 남기신 유언
[고조되는 음악]
무슨 뜻이냐?
대비전에서도 밀지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요?
그래서 우리처럼 사관을 찾아 밀지를 확보하려 한다면요?
하니 찾아야지
최대한 빨리 찾아서 없애야 한다
밀지만요?
밀지만 없앤다고 끝나겠습니까?
[어린 채경의 휘파람 소리]
[뒷간 문이 덜컹 열린다]
[어린 채경의 휘파람 소리]
[부드러운 음악]
[어린 채경의 휘파람 소리]
(어린 역) 뜯어 보면 볼수록 신기한 아이다
(어린 채경) 사과하라 캐도 안 한다 양보하라 캐도 안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할라카믄 대체 왜 태어났는교?
그래도 세상에 태어났음 태어난 몫을 해야 하지 않사옵니까
그럼 목숨 헌납 말고
동무할까요?
맹세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신의 있는 벗이 되겠습니다 [어린 채경의 휘파람 소리]
[어린 채경의 휘파람 소리]
[민망한 듯] 아...
그게...
[다짐하는 숨소리]
많이 생각해봤는데예
아무리 생각해도 지는 대군마마랑 혼인해야겠어요
[맑은 웃음]
[발랄한 음악]
(융) 역이가 왜 왜 거기 있단 말이야
도대체 왜!
[어린 채경이 숨이 차] 우리 왜 도망치는교?
(융) 만의 하나라도 네가 알고 있다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야!
(어린 역) 괜찮아, 겁먹지 마
(어린 역) 너, 내가 좋구나?
(어린 채경) 대군마마도 제가 좋아졌는갑제?
(자순대비)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주상
[어린 채경이 울먹이며] 안 가면 안 돼요?
(채경) 미안해요, 너무 그리워서 [울먹인다]
(역) 제가 형님의 세상을 다 갈기갈기 찢어놓을 겁니다
형님의 왕좌도 제가 가질 겁니다
[발랄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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