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9
[주제곡]
누구냐?
누구냐 물었다
이역
[의미심장한 음악]
(역) 형님, 접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장내가 술렁인다]
강녕하셨습니까?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역의 나지막한 웃음]
(융) 어서 내의원으로 옮겨라
[권씨의 안타까운 신음]
[권씨의 걱정스러운 신음]
(융) 죽은 줄 알았던 내 아우가 살아 돌아왔소
뭣들 하시오!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대신들)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역) 이야, 여전하시구먼, 응?
아이고, 대감, 아이고, 대감 그새 승진하셨습니까?
예, 대군마마
감축드리오, 예?
(역) 이거 5년 만인데도 하나도 안 늙으셨습니다
대군마마, 황공하옵니다
(역) 그때 명나라에서 받았던 약 정말 감사했습니다
- 그걸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 - (역) 아, 그럼요
자, 자, 자, 다들 일어나시오, 응? 이게 얼마 만입니까, 예?
(신비) 어서 어의를 불러오시게
(상궁) 예, 마마
[권씨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역) 하니, 저와 신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시옵소서
[긴장되는 음악]
배가 기운다고 사람을 버리려 한
내섬시 관원들의 행태를 그저 두고만 볼 수 없지 않사옵니까?
[사홍의 나지막한 웃음]
내섬시의 관원들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을 리가요
(사홍) 증좌 없이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하면, 뚜렷한 증좌 없이 신씨를 죄인으로 몰아 옥에 가두고
그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전가시킨 것은...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사홍의 못마땅한 숨소리]
진짜 도적놈은...
여기 대신들 중에 있사옵니다
[자광의 언짢은 헛기침]
(자광) 도적이라니요, 마마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니옵니까?
(역) 요기, 요기, 여기까지는
이번에 삼남에서 바치기로 한 진상품 목록에 쓰여 있는 것들입니다
[장내가 술렁인다]
(역) 한데 요거, 요거, 요거부터
쉬이 요기까지는 대체 주인을 알 수 없지 뭐요?
와, 이 금실로 수놓은 복건, 쾌자, 사계삼
요런 것들은 돌잔치 때나 쓰는 거 아니오?
우리 높으신 분들 중에
이번에 손주나 늦둥이 아들 돌잔치 하신 분 계십니까?
감히 어명을 이용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사익을 도모한 자가 진짜 도둑 아니겠소?
[난처한 웃음]
(사홍) 어명을 이용해 사익을 도모할 자가 어찌 여기 있겠습니까?
운송 과정 중에 지방 관리들이 농간을 부린 것이겠지요
반드시 색출하여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역) 그놈들이
누굴 믿고 그랬을까요?
그것도 조사해보겠습니다
(자광) 하면 대신들의 곳간은 대군마마 아니십니까?
곳간이오?
(역) 원통해할 것 없소, 왕도 털렸으니
[호쾌한 웃음]
(역) 하다 하다
하긴 어명도 사칭하는 놈이 이깟 대군 따위가 뭐가 무섭겠소?
이놈, 이놈이 아주 나라를 쥐고 뒤흔들고 있구먼, 응?
[책상을 탁 친다] 들으시오
진성대군이 뜻밖에 진상품 도적놈이라는 누명을 썼고
그로 인해 좌상의 영애 신씨가 덩달아 고초를 겪었소
진성대군과 신씨의 죄가 없음을 세상에 알리어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이 일로 고초를 겪은 신씨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도록 하시오
또한 진성대군을 사칭한 그 도적놈에 대해서는
도승지가 책임지고 형조와 공조하여 반드시 추포하도록 하시오
명 받잡겠사옵니다
[차분한 음악]
(순정) 일어나시오, 좌상 금상께서 사면을 명하셨소
(원종) 대군마마
그쪽으로 가면 내의원 방향이고 대비전은 이쪽이옵니다
[융이 활시위를 당긴다]
[화살이 슝 날아가 박힌다]
(사홍) 전하, 편전에서 진성대군이 한 말은 모두 거짓이옵니다
우연이라니요?
그냥 의협심에 한 일이라니요?
진성대군은 절대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옵...
[긴장되는 음악]
[사홍의 놀란 숨소리]
[사홍의 관모가 탁 떨어진다]
경은 방금 죽었소, 무슨 죄요?
[겁에 질려 더듬대며] 신하들 앞에서 주상 전하의 체면을
깎았사옵... [사홍의 놀란 숨소리]
경은 또 죽었소, 무슨 죄요?
어명을 어기고 진성대군을 해쳤사옵...
[화살이 탁 꽂힌다] [사홍의 놀란 숨소리]
경은 또 죽었소
[고조되는 음악]
진성대군을 살아서 돌아오게 만든 죄이옵니다
하니, 이제 죽은 듯이 사시오 더 이상 나대지 말고
[활이 탁 떨어진다]
전하!
[칼을 챙 빼 든다]
[칼을 휘두른다] [사홍의 놀란 숨소리]
[사홍의 나지막한 신음]
정녕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소?
전하, 소신 이대로 죽을 순 없사옵니다
소신이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지 않사옵니까?
소신 말고는 아무도 못 하는 일이옵니다
전하, 소신을 버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사홍) 전하!
(자순대비) 기어코 이 어미를 거역할 셈이냐?
고작 그 아이 하나를 구하자고 네가 이렇게 쉽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 어미가 이 악물고 견뎌 온 세월이 한스럽구나
어마마마
그래, 너도 어디 할 말 있으면 하려무나
난 당최....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됩니까?
[아련한 음악]
아니면 소자가 안아드리겠사옵니다
[역의 낮은 숨소리]
[역의 옅은 한숨]
보십시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게 되니 좋지 않습니까?
[훌쩍인다]
앞으로 좋은 일이 더 많을 것이옵니다
소자가...
[역의 옅은 한숨] 꼭 그리 만들어 드리겠사옵니다
(역) [살짝 웃으며] 울지 마십시오
(원종) 그래도 너무 무모한 선택을 하셨사옵니다
꼭 채경이 때문만은 아니옵니다
형님께서 제 정체를 눈치챘습니다
도망치고 숨어만 있다간 제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더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 판단했습니다
절 끌어내기 위해서 형님과 도승지가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요
하나 이제 대놓고 견제가 심해질 터인데
무슨 방도가 있는 겁니까?
형님의 사람들을 이용할 것이옵니다
[비밀스러운 음악] 세작을 붙이자?
예, 단 한 번 확실한 증좌를 잡았을 때
비로소 확실히 진성대군을 없앨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자면 첩자만 한 게 없지요
마침 적당한 사람이 있사옵니다
누구냐?
좌상의 영애 신채경이옵니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대군마마
채경이와 혼인하겠사옵니다
(권씨) 채경아
정신이 좀 드느냐?
네, 정녕...
대군마마께서 돌아오신 겁니까?
[옅은 숨소리]
아버지 오실 때까진 여기 얌전히 있거라
[복받친 숨소리] 꼭 할 말이 있느니라
[긴장되는 음악]
어마마마께서도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형님께서 가장 신뢰하는 신하의 사위가 되면
형님의 견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요
하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역) 예, 달라졌지요
좌상의 권세가 그때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왕의 신임도 더 두터워졌을 뿐이 아니라
병권을 가진 대신들과도 막역한 사이지요
하여, 채경이와 혼인하여
좌상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옵니다
(역) 혹시 압니까?
좌상이 누이가 아니라 딸의 편에 서게 될지
불가하다
채경이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순 없다
아니면 다른 대신들의 자녀들 중에
진성대군과 혼인할 만한 규수를 찾아볼 수도 있사옵니다
하나, 주상께옵서 그들을 좌상만큼 믿을 수 있으시온지요?
대비전에 보낼 선물은 준비되었느냐?
(김 내관) 예, 전하
[어두운 음악]
우선 대비전에 축하 인사부터 드려야겠지
(명혜) 대군께선 그저
신채경 그 아이를 지키고 싶으신 겁니다
지키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건 밀지를 찾는 것이다
어마마마
(상궁) 대...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 모두 선왕 전하의 유지를 받들 테니까요
하니 지금이라도 그 잠적한 사관을 찾아서
밀지에 대해 알아내는 게 더 현명할 것이옵니다
(명혜) 심지어 그 사관은 서노의 아비 아니옵니까?
서노가 제 아비가 있는 곳만 알아내서 알려줘도...
쉿
[고조되는 음악]
[나지막한 웃음] 형님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융) 과인이 혹 좋은 시간을 방해한 거 아니오?
(원종)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 대비마마와 대군마마께 인사만 여쭙고
이제 막 가려던 길이었사옵니다
경의 조카딸이라지?
윤가 명혜라 하옵니다
하면 말씀 나누시옵소서
[긴장되는 음악]
[문이 드르륵 닫힌다]
[원종의 낮은 헛기침]
(원종) 주상께서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겠구나
대군께서 죽을 고비를 넘기신 후부터 작은 인기척에도 빨리 반응하십니다
왕이 복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원종의 나지막한 숨소리]
신씨 계집과 혼인이라니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게 생겼구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저일 테니까요
그래, 이미 왕과 대군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뭐든 참거라
예, 하나 마냥 참기만 할 수는 없지요
우리가 반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외숙부님
그래야 성공한 후에 우리가 당당히 지분을 요구할 수 있지요
그래
하면 이제 내가 슬슬 전면에 나서야겠구나
(김 내관) '지난 기미년, 죄인을 탈옥시킨 죄로 함길도 유배형을 받았던'
'진성대군 이역의 죄를 모두 사하고'
'그의 작위와 권리를 모두 복권하도록 하라'
[의미심장한 음악]
(역)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 기쁘시옵니까?
[후련한 숨소리] 기쁘다마다요
다 주상 덕분입니다 고마워요, 주상
별말씀을요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시지요?
[자순대비의 당황한 숨소리]
예, 대군이 죽었을 땐
주상의 전정에 누가 될까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마음 숨기느라 힘들었지요
한데, 이제 이리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내 이번만큼은 아끼지 않고 마음껏 기뻐할 작정이에요
[가벼운 웃음] 그러셔야지요
여봐라
[문이 드르륵 열린다]
소자가 역이와 어마마마께 드리는 선물이옵니다
[기쁜 웃음]
참으로 세심도 하십니다
(자순대비) 언제 이것들을 다 준비하신 겝니까?
(역) [흡족하게 웃으며] 이게 다 뭡니까? 형님
참으로 황공하옵니다
이야, 이제야 비로소
전하의 아우로 태어난 보람이 있는 듯하옵니다
[하사품을 뒤적이며] 아, 아니, 그, 죽었다 살아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대군, 그 무슨 해괴망측한 언사더냐?
그래
앞으로는 그동안 못 누린 것을 다 누리면서 살거라
이 형이 그리 해주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술 한잔하겠느냐?
술요?
[역의 옅은 숨소리]
좋지요
내 편전에만 들렀다 바로 갈 것이니 취로당에서 기다리거라
예
[멀어지는 발소리]
다시는 밀지 얘기 꺼내지 마십시오
[의미심장한 음악]
형님이 그 밀지 하나 때문에
그토록 저를 오래 의심하고 경계하고
심지어 저를 죽이려 한 걸 잊으셨사옵니까?
역아
그따위 밀지 하나에 소자의 운명을 걸기 싫사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힘으로 왕좌를 찾겠습니다
하여, 꼭 그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냐?
예
그걸 기억하겠느냐?
예
꺼내서 읽어보거라
어릴 때 널 거창에 꽁꽁 숨겨두었던 이유이니라
[어두운 음악]
[강조하는 효과음]
대군께서 살아 오신 이상
더 늦기 전에 너에게 말해야겠다 싶었다
(권씨) 채경아
이젠 너 스스로 이 악운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찌 되었는가?
한 번에 될 일은 아니지요
일단은 댁에 돌아가 계세요
곧 부름이 있으실 겁니다
[깊은 한숨]
대감
대군까지 돌아오신 마당에
공과 내가 서로 책임을 운운하며 반목하는 것이
어심을 어지럽히고 진노케 할까 저어되어
내 이번 한 번은 모른 척 넘어가 주리다
하니, 지금 공의 목숨은 덤으로 얻은 거라 여기시고
앞으로는 부디 성상께 누가 되는 일 없게
충심을 다해 보필해주시오
[코웃음 친다]
참으로 어이가 없소이다
(사홍) 애초에 분란을 만들고 다닌 건 좌상의 영애이거늘
어찌 이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시외까?
[답답한 한숨]
[긴장되는 음악]
상전
도승지에게
맡고 있던 진제청 일을 모두 좌상에게 위임하고
좌상을 보조하라 이르게
예, 전하
그리고 명하신 대로 취로당에 주안상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융이 옥새를 쾅 찍는다]
아이, 술상 봐놓은 게 벌써 한 시진 전이옵니다
안 되겠습니다
제가 가서 대군마마께 전하께서 좀 늦으신다고...
씁, 이 사람이 거, 쯧
그렇게 눈치가 없어 갖고 대관 생활 어떻게 하나?
내가 눈치를 튕겨보니 주상께서 대군마마를 길들이는 거네
길들여요?
아이고, 다른 걸 다 떠나서
왕이 기다리라고 했으면 신하는 기다리는 게 도리지
한 시간이 아니라 한나절이라도, 쯧
[의미심장한 음악]
[술병을 탁 놓는다]
(융) 내가 주마
[잔을 탁 놓는다]
(역) 전하
[역의 개운한 신음] [잔을 탁 놓는다]
(역) 그때 주막에서 뵀을 때 저 들키는 줄 알고 아주 식겁했습니다
씁, 이러고 아닌 척 시치미 뚝 떼고 있었는데
- 깜빡 속으셨죠? - 속았지
그 해맑고 귀엽던 녀석이
이렇게 징그러워졌을 줄 상상이나 했겠느냐?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내 그토록 네가 어른이 되지 않길 바랐건만
(역) 제가 어른이 되면 왕위를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네 생각에
널 죽이려 한 자가 누군 듯싶으냐?
[융이 술을 졸졸 따른다]
그야 당연히... [융이 술병을 탁 놓는다]
산적이지요
(역) 달리 누구겠습니까?
사람이 한 번 죽었다 살아나니
이 세상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습니다
절 그렇게 만든 놈들을 잡아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싶다가도
어렵게 되찾은 인생이니 그런 원망과 분노 따위에
소중한 시간을 좀먹히지 말자 싶기도 하고
[숨을 들이쉬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마음이 바뀝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더냐? [융이 잔을 탁 내려놓는다]
사람이 너무 괴로우면 그런 생각을 한다더구나
했지요
[역이 나지막이 웃으며] 했습니다
[숨을 들이쉬며] 그러다 최근에서야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름 소박한 꿈까지 생겼고요 [술을 졸졸 따른다]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꿈이라?
예, 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자
하여, 그 꿈을 이루었느냐?
아직 멀었지요
이제 겨우 제 이름 하나 되찾았는걸요
대군이라는 이름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터인데
[나지막이 웃으며] 그렇지요
제 형님이 조선의 임금님이신데
아, 아까 다 해주시겠다는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융의 가벼운 웃음]
[융의 개운한 신음]
그래,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냐?
신채경
[긴장되는 음악]
채경이를 갖고 싶사옵니다
왜 하필 채경이냐?
채경이가 좋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있고 싶사옵니다
[고조되는 음악]
[못마땅한 숨소리]
벌써 가십니까?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을 마셔 취기가 금세 오르는구나
[김 내관의 놀란 숨소리]
[잔을 탁 내려놓는다]
[옅은 한숨]
(석희) 야, 서노야, 뭐 하냐? 한잔해, 야
야...
(명혜) 기껏 한다는 게
나 따돌리고 우리 상단까지 쫓아가 진상품 되찾아 오는 것이었습니까?
(명혜) 기껏 선택한 방식이
세상에 진성대군 살아있다 까발리는 거고요?
[가슴을 탁탁 치며] 우리도 말렸는데...
[쾅]
(광오) '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역이 말에 동조를 했소
덕분에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들도 구했지요
(서노) 상황이 바뀌면
방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광오와 석희가 감탄한다] [명혜가 술병을 쾅 내려놓는다]
그 방식이 기껏 혼인이니?
그건 저도 싫습니다 채경 아기씨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 하면... - 하나, 반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어차피 두 분은 정략혼인이 될 수 없으니까요
두 분은 서로를 진심으로 은애하게 되실 테니까요
아니면, 어떡할래?
어떡할 필요 없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됩니다
[무거운 음악]
(스님) 채경이가 왕실 사람과 만나면
조정과 왕실에 피바람이 불 거란 제 예언을 잊지 마십시오
말도 안 돼
[채경이 기가 찬 듯 웃는다]
[역의 옅은 한숨]
[긴장한 숨소리]
이리 오너라
(유모) 어, 누고?
[역의 옅은 헛기침]
[작은 소리로] 채경아
[의아한 신음]
유모, 나 잔다고 해 아직 몸이 덜 나아서 못 만난다고
(채경) 아무도 못 들어오게 지키고 서 있어, 유모
(유모) 아이고, 어려운 걸 내를 시키노?
아이고, 내 거짓말 못 하는데 [문을 덜컥 연다]
[문이 쾅 닫힌다]
[잔잔한 음악]
[채경의 옅은 한숨]
(역) 쉿
소리 안 지른다고 약속해
하면 놓아주마
(역) 쉿
유모!
[극적인 효과음]
다 나았나 보구나 잔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가십시오
내가 반갑지 않은 것이냐?
예
어찌하여?
- 채경아 - 믿을 수 없으니까요
대군께서 하시는 말씀 죄다 거짓이지 않습니까?
처음 만난 주막에서도 전당포에서도 무덤에서도
그리고 동굴에서도...
[옅은 한숨]
하니 이제 안 보고 싶습니다, 가십시오
[어이 없는 숨소리]
그래, 처음 주막에서 전당포에서
그리고 무덤에서 동굴에서도 다 거짓말이었다
[채경의 놀란 숨소리]
그중 가장 큰 거짓말은 네가 보고 싶지 않았다는 거고
[애잔한 음악]
보고 싶었다
많이
정말 많이
우리 사이에 남은 약조는 없다고
징표까지 돌려주고 가셔 놓고 왜 이제야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체 왜 돌아오신 겁니까?
왜 돌아오긴
그다음에 내가 한 말은 기억 못 하는 것이냐?
남은 약조가 없다고 한 이유 반지를 돌려준 이유
그건 다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곧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역) 약조를 했으면 징표가 있어야 한댔지?
이제 우리 사이에 남은 약조는 없는 거다
돌아오겠다는 약조도
곧 지킬 것이니
[옅은 한숨]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는데 장하다고 칭찬 좀 해 주면 안 되느냐?
이제 약조는 다 지키셨습니다
하니, 이젠 진짜 오지 마십시오
채경아
신채경
(역)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는데 장하다고 칭찬 좀 해 주면 안 되느냐?
[말발굽 소리]
(채경) 이제 약조는 다 지키셨습니다 하니, 이젠 진짜 오지 마십시오
(유모) 아기씨
대군마마셔?
전하
역이를 기다린 것이냐?
아니요, 아닙니다
(융) 이리 나와도 되는 것이냐?
(채경) 예, 어의가 틈틈이 걸으라 하였사옵니다
제가 전하께 빚을 졌사옵니다
전하가 아니었다면 저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옵니다
빚이라니, 너 역시 내 목숨을 구한 적이 있지 않더냐?
[옅은 한숨] 그게 어디 구한 건가요
(채경) 송구하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주상 전하를 속이게 돼서
[옅은 한숨] [잔잔한 음악]
그래,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실은 많이 서운하였다
과인을 믿지 못한 것이냐?
아니옵니다, 오해하지 마시옵소서
(채경) 그런 게 아니오라
저로 인해 다른 사람의 인생이 어긋나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사옵니다
[옅은 한숨]
앞으로는 절대
전하를 속이는 일 없을 것이옵니다
죄송해요
[옅은 한숨]
그래, 약조한 거다
예
[융의 나지막한 웃음]
[융이 흐뭇하게 웃는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앞으로는 다시는 전하를 속이는 일 없을 것이옵니다
[역이 취한 듯 흥얼댄다]
[긴장되는 음악]
"주"
(취객) 자, 한 잔 받으시게, 한 잔 받아
(역) 어이
자, 술값이오 친한 척 좀 합시다, 응?
술 사면 친구 아니오?
(취객) 주모, 우리 술이 없네?
[역의 취한 신음]
뒷간 좀 다녀오겠네, 아이
[고조되는 음악]
[헛간 문이 삐걱댄다]
(역) 어, 다 모여있었구나?
(우렁각시들) 형님
오셨습니까, 대군마마
부총관
[원종의 나지막한 웃음]
대군마마 흉내 좀 내보았습니다
대군께서 말도 없이 궁에 나타나셨으니
저도 말도 없이 여기 나타난 게지요
꾸중할 게 더 남아서 오신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오?
이제 대군께서 세상에 정체를 드러낸 이상
거사를 앞장서서 이끌 지도자가 따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지금 부총관께서 하시겠다는 겁니까?
우렁각시들 진두지휘를요?
대군께서 좌상의 영애와 혼인하기 위해 애쓰시는 동안에도
우렁각시와 대명상단 그 외 거사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할 테니까요
[당황한 신음]
[무거운 음악]
[원종이 나직이 감탄한다]
(원종) 제법입니다
쌀자루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줄 알았더니
저도 대군마마께 선물이 있사옵니다
(반정파)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야심 찬 음악]
(원종) 대군을 도와 이 나라를 바꾸겠다 맹세한 자들입니다
이 중에는 지난 사화 때 가족들을 잃은 사람도 있사옵고
간신들의 꾐에 빠져 누명을 쓰고 재산을 몰수당한 거부도 있사옵고
현왕의 사치와 폭정에 불만을 품은 선비들
더 나은 조선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하는
무사들도 있사옵니다
부디 하늘과 백성들이 감복할 성군이 되어주시옵소서
잘 부탁하오
진성대군 이역이오
(반정파) 성군이 되어주시옵소서!
[어두운 음악] (권씨) 진성대군이 태어났을 때
대군과 우리 채경이가 천생연분이라면서
축복을 빌어주시던 그 스님이
갑자기 왜 선왕 전하를 믿지 말라면서 그런 끔찍한 예언을 남기신 걸까요?
그때 선왕 전하와 주지승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싶소
스님께서 살수들의 습격을 받았던 일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오
설마, 스님을 해친 사람이 선왕 전하란 말씀이십니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스님이 선왕을 배신하고 우리한테 그런 예언까지 했을 때는
그 정도 일은 있었을 거라 봐야겠지
[근심 어린 숨소리]
다만 대체 왜 선왕께서 스님을 죽이려고 했는지
그게 우리 채경이의 운명과 무슨 상관인 건지 그건 알 수 없소
그저 삼가고 조심할밖에
[의미심장한 음악] (채경) 지금 이걸 저더러 믿으라고요?
진성대군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선왕 성종께서 너를 보자 하셨다
그 자리엔 국사를 담당하는 묘적사 주지승도 함께 있었지
[성종의 너털웃음]
대군과 경의 여식을 맺어주는 게 어떻겠소?
두 아이가 서로를 지켜줄 운명으로 태어났사옵니다
[흡족한 신음]
광영이옵니다, 전하
(스님) 소승이 오늘의 약조를 기억할 겸
채경이의 무탈와 홍복을 기리는 부적을 문신으로 새겨드리겠나이다
그리하거라
[성종의 너털웃음]
[꼬마 채경의 울음]
(수근) 그 부적을 새기고 나서 신기하게도 잔병치레가 많던 네가
몇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신수"
한데 어느 날
(수근) 스님!
주지승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는지
[수근이 '스님'을 외친다] 피투성이가 돼서 이 아비를 찾아왔지
선왕을 믿지 마십시오
채경이가 왕실과 연을 맺으면
조정과 왕실에 피바람이...
[떨리는 숨소리]
(스님) 불 것입니다
하면, 그동안 대군마마께 닥친 모든 안 좋은 일들 다...
이 예언 때문이라고요?
저 때문이라고요?
(권씨) 네 탓이라는 게 아니다
다만, 만나선 안 될 인연이 있단 걸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게다
"신수"
[옅은 한숨]
이건 부적이 아니라 저주잖아요
[휘파람 소리]
[발랄한 음악] [역이 휘파람을 분다]
채경, 채경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분다]
[역이 휘파람을 분다] [픽 웃는다]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네 마음을 얻으러 가는 중이다
- 드릴 마음 없습니다 - 난 있다
[종이 딸랑 울린다]
(역) 자, 여기 앉거라
앉으래도
내가 그동안 너한테 한 못된 짓들과 거짓말들
사과해야 할 것들을 비롯해서
[밝은 음악] 너한테 설명 혹은 해명해야 할 것들을 쭉 써보았다
[새침하게 혀를 찬다] 물어볼 것도 궁금한 것도 없습니다
- 일단, 처음 주막에서.... - 됐습니다
[종이를 사락 넘긴다]
하면, 무덤에서...
그 또한 됐습니다
[역의 옅은 한숨]
씁, 하면...
내가 어찌 살아났는지 궁금하겠지?
유배를 가다가
살수들의 습격을 받고 거운산쯤에서 굴렀는데
때마침 원행을 다녀오던 대명상단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다
그 대명상단이 여기 전당포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동업자다
[채경의 쌀쌀맞은 헛기침]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사서 그 정보를 대명상단에 팔아
하면 상단에서는 정보를 이용해
양반들과 장사를 하고 거래를 트는 거지
아, 그래서 정보 주면 쌀 주고 그랬던 거네요?
그렇지, 이제 궁금한 게 생겼느냐?
아니요
[새침한 헛기침]
[부드러운 음악]
보자, 우리 전당포의 정보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하냐면...
[서책을 뒤적이며] 여기 어디 너에 대해서도 있었는데....
네?
신채경, 북촌 사는 신채경
(채경) 줘봐요, 직접 봐야겠어요
씁, 못 주지, 안 주지
아, 달라니까 [역의 힘주는 신음]
좌상의 여식 신채경이 박색해 혼기가 꽉 차도록 시집도 못 가고, 허
박색? 누가 그딴 헛소릴...
줘봐요
진성대군 기일만 되면 술을 퍼마시고 고주망태가 돼서
(채경) 아, 달라니까
진성대군 닮은 사람만 보면 '귀신입니까' 하면서...
(채경) 아, 대군마마! [역의 장난스러운 웃음]
[역의 감탄하는 신음] [채경의 답답한 한숨]
이렇게나 내가 보고 싶었던 걸
누가요?
이제 와서 궁금한 게 없다니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빨리 그거나 줘요
자 [헛웃음]
[가슴 속 서책을 탁탁 친다]
허, 참
[역의 당황한 신음]
[채경의 통쾌한 숨소리]
여인이라고 얕보셨다간...
[아련한 음악] [서책이 툭 떨어진다]
[덜그럭 부딪친다]
하나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때...
많이 다치셨습니까?
혹시...
[슬픈 숨소리]
지금도 아프십니까?
다 나았다
한번 봐도 됩니까?
뭐 하는 것이냐?
그냥 눈 감고 만져보기만 하겠습니다
[울먹이며] 잘 아물었는지 이제 진짜 아프지 않은지요
[애잔한 음악]
[훌쩍이며] 여기 느껴집니다, 상처 자국요
여기도...
[채경이 흐느낀다]
안 아프십니까?
괜찮다
[훌쩍인다]
[안타까운 한숨]
[채경이 흐느낀다]
그렇게 앳되고 고왔던 도령이
[훌쩍인다] 어쩌다 이렇게...
[채경이 훌쩍인다]
나 지금 못나게 컸다고 놀리는 것이냐?
못나긴요
이렇게 대견하고 씩씩하고 강하게 크셨는걸요
[채경의 복받친 숨소리]
고맙습니다
[흐느낀다]
살아 와줘서 고마워요, 대군마마
[채경이 흐느낀다]
(녹수) 진성대군이 계속 미행을 따돌리고 사라지신다 하옵니다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사온데
진성대군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이렇게 몰라서야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올는지요?
[옅은 한숨] 그렇다고...
꼭 채경이 그 아이여야 할 이유가 있느냐?
예
연심이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정인의 눈은 속이기가 쉽지 않고
정인의 마음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옵니다
(녹수) 하니 첩자로 그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코웃음 친다] 하면 더더욱 안 되겠구나
더더욱 채경이를 역이의 첩자로 쓸 수가 없겠어
연심이라니, 사랑이라니? 그 아이 둘이?
그저 연민이고 죄책감일 뿐이다
어른이 돼서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몇 번이나 봤다고 벌써 연심 같은 게 싹텄겠느냐?
그런 게 사랑이라면
채경이는 삼라만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아이다
그중에서도 진성대군이 특별한 거겠지요
(채경) 참, 아까 전당포에서요
분명 '우리는, 우리 전당포는'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거기 대군마마 말고도 식구가 많습니까?
제가 저번에 두 분은 뵌 거 같은데
한 분은 얼굴이 길쭉하고 한 분은 좀 동그란...
아
조 도령, 백 도령
다 내 벗들이다
그리고 한 명이 더 있다
혹...
서노
[발랄한 음악] [놀라 더듬대며] 서노, 서노요?
아, 제 친구 서노요?
서노가 왜 네 친구냐? 내 친구... 아니, 우리 친구지
어떻게 서노랑 같이 있습니까?
[숨을 들이쉬며] 몸을 회복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갔었어
아까 같이 부르지 그랬어요? 같이 보면 좋은데
내일 당장 서노 우리 집으로 불러줘요, 인사하게
지금 들었어요?
서노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보고 싶었느냐?
[어이없는 한숨] 아, 그야 당연히...
- 서노요 - 거짓말하고 있네
참말입니다, 지금은 서노입니다
대군마마 얼굴은 뚫어져라 이렇게 질리도록 보고 있으니까요
누가 지금을 물었느냐? 예전을 물었지
지금이 더 중요한 겁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고요
그러니 대군마마께서도 제 얼굴 많이 봐두십시오
앞으로는 다신 못 보니까
그게 지금 무슨 말이냐?
[말발굽 소리]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나온 겁니다
[애잔한 음악]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싫어!
[강조하는 효과음]
(녹수) 시간이 무에 중요하겠사옵니까?
오고 가는 눈빛 한 번 바람결에 실려 오는 숨결 하나
마주치는 손끝 사이에서도 사랑은 곧잘 싹트는 법이옵니다
[고조되는 음악]
(융) 채경이와 혼인하려는 진짜 이유를 말하거라
(역) 제 이유는 오직 채경이뿐이옵니다
잠잘 때가 제일 예뻐, 우리 채경이
(명혜) 그냥 혼인 아닙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지
(원종) 지금은 왕이 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하면 됩니다
(융) 만일 진성대군이 반역을 꾀한다면 경은 누구 편에 설 것이오?
(채경) 대군마마가 너무 소중해서 그 예언이 겁나는 겁니다
(융) 왕은 가질 수 없는 게 없어야 한다
(역) 기대하십시오
이제 채경이부터 하나씩 다 되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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