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바이, 마마 15
(유리) 12월 19일
(유리)
[잔잔한 음악]
[놀란 숨소리]
[웃음]
우리 열무 발 차기 했어?
(유리) 오늘도 발 차기를 수십 번씩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축구 선수가 태어나려나 봐
운동선수는 힘들 텐데
아니다, 열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잘 자라 준 열무야
엄마가 우리 열무 세상에 나오면
세상을 다 누릴 수 있게 해 줄게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뭐든 다 꿈꿀 수 있게 해 줄 거야
곧 보자, 나의 아가
[고민하는 신음]
널 만날 수 있는 날이 다가오니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다려져
뭐, 뭐라고?
나
살면 안 돼?
[무거운 음악]
살고 싶어
나 살고 싶어, 미동댁
(유리)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다 왜...
내가 잘못했어?
나도 살고 싶었고
살고 싶어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서우랑 엄마랑 아빠랑
더 오래오래 보고 싶단 말이야
[한숨]
[울먹이는 숨소리]
뭐라고?
유리가...
죽어?
[한숨]
유리가 왜 죽어
[떨리는 숨소리]
유리가 다시 왜 죽어!
[한숨]
[강화가 가방을 툭 떨어트린다]
(강화) 누나
(근상) 조강화, 잠깐만
누나,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유리가...
유리가 그냥 살아난 게 아니었어?
[떨리는 숨소리]
말해
누나가 알고 있는 거 다 말해
[한숨]
(현정) 그래
유리가
49일 뒤에 죽어
그것도
며칠 안 남았어
(강화) 왜
유...
유리가 왜 죽어
왜 죽어, 유리가!
49일 동안
(현정) 자기 자리 찾으라고 보냈대
그럼 살 수 있다고
(근상) 자기 자리라니
[떨리는 숨소리]
조강화 아내 자리
서우
엄마 자리
(현정) 그러면 살 수 있는데
근데 안 살겠대
너랑 민정 씨한테 미안해서 자긴 안 살겠대
자긴 어차피 죽은 사람이니까
그냥...
그냥 가겠대
[흐느낀다]
[현정이 계속 흐느낀다]
[떨리는 숨소리]
[강화의 한숨]
(강화) 그걸 왜 이제 말해
그걸 왜 이제 말해, 그걸 왜...
[차분한 음악]
(유리) 혹시
포상 휴가!
뭐, 그런 거 보내 준 거 아닐까?
한 49일 정도?
49일만, 어
딱 49일만 혼자 놔둬 줘라
난 널 망치러 온 게 아니야
미안해
내가 오는 게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힘겨운 숨소리]
[가방을 툭 떨어트린다]
[미동댁의 난처한 숨소리]
[옅은 한숨]
(미동댁) 유리야
[한숨]
[당황한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한숨]
'살고 싶다'라...
내가 말했잖아, 그럴 거라고
(퇴마사) 아무리 모든 걸 내려놔 본 귀신이라도
그걸 다시 잡을 수 있는데 욕심이 안 날까?
그럼 이제 난 쟤 딸한테 가 봐도 되겠지?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나한테
[떨리는 숨소리]
왜 그래? 나한테
조강화
그냥
그렇게 49일 보내고
다시 죽으려고 그랬어?
[놀란 숨소리]
너 어떻게 알았어?
진짜구나
보고 싶어서
여기가...
(강화) 여기가 너무 아파서 심장을 파 버리고 싶을 때는 없더니
한 번...
제발 단 한 번만 다시 만져 볼 수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을 땐 대답도 없더니
갑자기 와선 이젠 다시
죽겠다고?
그렇게 가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아?
[떨리는 숨소리]
[가슴을 탁탁 치며] 혼자 다 결정하고 혼자 그렇게 가 버리면 나는
두 번이나 널 그렇게 보내 버리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아!
말을 했어야지!
'시간이 없다'
'왜 재혼했냐, 내 자리 다시 내놔라'
말을 했어야지, 말을!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널...
너를 잃으라고?
나더러?
말을 했어야지, 유리야!
내가 그 말을 어떻게 해?
내 자린 이미 없잖아
[애잔한 음악]
그러니까 네가 잘 살았어야지
너만 잘 살았으면 이런 일 없잖아!
[유리의 거친 숨소리]
(유리) [울먹이며] 바보같이 사는 거 꼴도 보기 싫어서
너만 재혼하면 나도 가려고 그랬어
나도 이승에 미련 다 버리고
올라가 다시 태어나 보려 그랬단 말이야!
근데
네가 나 안 놔줬잖아
나 끝까지 붙들고 널 괴롭혔잖아!
내가 미안해서 가지도 못하게 네가 나 안 놔줬잖아!
네가 나 못 가게 했잖아
[유리가 엉엉 운다]
어
내가 너 붙잡았어
일부러 더 붙잡았어
[울먹이며] 하루를 버티니까
하루가 살아지고
또 하루를 버티니까
하루가 또 살아지고
그런 내가 싫고
(강화) 미안하고
근데 계속 살아지니까
미안하고
네 자리 다시 되찾으면
살 수 있어?
너 정말 살 수 있어?
내가 살면 어쩔 건데?
(유리) 네 사람 어쩔 건데?
놓을 거야?
살 수 있어, 없어 그것만 얘기해
너...
진짜로 살 수 있어?
그럼 살아
죽긴 왜 죽어
[현정의 신난 신음] [문이 철컥 열린다]
(현정) 어머니, 안녕하세요! [문이 철컥 닫힌다]
"연안 차씨"
[흐느낀다]
[훌쩍인다]
[흐느낀다]
어, 괜찮아, 엄마 안 울어, 괜찮아
[새가 지저귄다] [풍경 소리가 들린다]
"고 서봉연"
[픽 웃는다]
암만 봐도 아빠 얼굴에서 나 같은 얼굴이 나올 수가 없는데
"고 장대춘, 고 서봉연"
와, 코피 빡 도플갱어
(필승) 진짜 닮았네?
씁, 근데 이 아줌마 안 보이네, 요즘
[혜진의 한숨]
[미자가 혀를 찬다]
(미자) 자기 엄마, 아버지 속수무책으로 잡혀 올라갔는데
알까 몰라, 에이그 [귀순의 놀란 숨소리]
[혜진의 한숨] [미자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음악]
[귀신들이 웅성거린다] [귀신들의 놀란 탄성]
(퇴마사) 이봐들
숨는다고
내가 안 데려가?
이 잡귀들처럼 잡혀 올라가기 싫으면 가자
[신비로운 효과음] [혜진의 비명]
[귀순과 미자의 놀란 숨소리]
[혜진의 거친 숨소리]
잡았다
네가 일빠였는데
애먼 잡귀들 좀 먼저 보내느라
시간은 좀 있었잖아
[혜진의 겁먹은 숨소리]
(필승) 야!
[혜진의 놀란 숨소리]
[신비로운 효과음] [혜진의 비명]
[혜진의 겁먹은 신음]
- (필승) 너 뭐야? - (퇴마사) 뭐, 뭐야 [익살스러운 음악]
(퇴마사) 이거, 이거 안 놔? 놔
(필승) 울 엄마, 아빠한테 잡귀? [퇴마사의 당황한 신음]
이게 어디, 거지 같은 게 울 엄마, 아빠한테
[퇴마사가 콜록거린다] 이건 뭐야?
네가 솔리드야? [퇴마사가 씩씩거린다]
이 밤의 끝을 한번 잡아 봐? [퇴마사의 당황한 신음]
(퇴마사) 잠깐, 놔, 놔, 너 뭐야 야, 잠깐, 잠깐만요
[퇴마사가 콜록거린다] 잠깐...
[퇴마사의 힘겨운 신음] (필승) 뭐, 뭐, 뭐
어디 신성한 납골당에서 헛짓거리야
(퇴마사) [당황해하며] 잠깐만, 잠깐만요
[금재의 웃음] (만석) 훠이, 훠이!
[퇴마사의 힘겨운 신음]
[딸랑딸랑 울린다]
[한숨]
[신발 지퍼를 직 올린다]
이봐요
[당황한 신음]
저, 저요?
(은숙) 내가 전에는 실례가 많았어요
그 이상한 무당이 하도 기막힌 얘기를 하니까
(미동댁) 아, 아유, 아니요, 아니요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막 막말한 것도 있고
그런데
우리 유리랑은 언제부터 알았어요? 친구라던데
아, 차유리
씁, 그, 글쎄, 저, 하, 한...
5, 6년 됐나?
- 5, 6년? - (미동댁) 예
그럼 사고 전일 테니
그쪽도 다 알고 있는 거네 우리 유리 일
예, 뭐, 그렇죠
아, 씁
근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진 저도 잘 모르고
그래요?
아무튼 미안했어요, 그때 화낸 건
- 아이, 아니에요 - (은숙) 그럼 또 봐요
아, 예, 예
[한숨]
[유리가 흐느낀다]
[커피 머신 작동음]
(강화) 이미 민정이한테 다 말했어
너 차유리인 거
뭐?
아, 왜 말했어
아, 왜 말했어!
넌 엄마라고 나서지도 못하고 계속 미안해만 하고 있고
민정인 또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더 이상 보기 힘들어서
(유리) 아, 어떡해
아, 어떡해
[한숨]
미안
내가 말했어, 강화한테
[살짝 웃는다]
예상했어
아는 사람 언니밖에 없으니까
강화는 뭐래?
[컵을 탁 내려놓는다]
살래
언니도 나랑 같은 생각 하지?
오민정
어떡하지?
(현정) 아니, 이게 맞아
일단 살아야지
너 또 그렇게 가면
강화 제정신에 못 살아
그렇지?
(현정) 죄책감을 넘어서
버틸 수 없을 거야, 걔
(유리) 그래
그럴 거야, 조강화
유리야
너 나한테 다 말하고
자리 안 찾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
'5년 동안'
'우리 옆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으면서'
'습관처럼 포기를 배웠구나'
[잔잔한 음악]
(현정) 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
강화한테 미안해서
민정 씨한테 미안해서 포기하지 마
잡아
네 인생이잖아
언니
(유리) 난 포기가 아니었어
인정이었어
내 삶이 끝났다는 거
5년 동안
인정했을 뿐이야
유리야
네 자리 찾을 거지?
그렇지?
[강화의 한숨]
[옅은 한숨]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강화) 민정아
아직
난 아무것도 정리가 안 됐어
나 좀 기다려 줘요
[한숨]
[키보드를 탁탁 치는 소리가 난다]
[마우스 조작음]
[마우스 휠 조작음]
[의미심장한 음악]
(근상) 자살이 아니면 왜 죽은 건데요?
[상봉의 한숨]
[상봉이 중얼거린다]
[미동댁의 놀란 숨소리] 뭐?
제일 친한 친구 놈이 죽였대
승부 조작 그거 덮어씌우려고 자살로 위장해서
나쁜 새...
그럼 그놈은? 잡아야지
그러고 걔도
괴로워 자살해서 뭐...
그러고 걔도 괴로워 죽어 버렸대
아, 근데 유서도 나왔다던데
그건
(상봉) 승부 조작 연루된 거 사과문 쓰래서 쓴 건데
떠나겠다는 게
세상이 아니라 은퇴
지쳐서 은퇴하려고 했지
[미동댁의 안쓰러운 숨소리] 근데 하필 그때...
(미동댁) 아휴, 쯧
승부 조작 사과문이었대
그거 쓰고 있는데 죽은 거고
[한숨]
딴거 다 필요 없고
우리 엄마
엄마한테만
나 엄마 때문에 죽은 거 아니라고
- (미동댁) 엄마? - (근상) 엄마?
엄마는 왜?
울 엄마
자기 때문에 내가 죽은 줄 알아
[무거운 음악] [마우스 조작음]
[옅은 한숨]
(민정) 눈, 코, 입
이렇게 다 너무 똑같은데
왜 몰랐지?
진짜 바보다
미안
미안해요
뭐가 그렇게 미안해요?
(민정) 살아 돌아온 거?
나 속인 거?
다
미안해요
자꾸 그렇게 나한테 미안해하면
어떡해요, 난?
왜 속였냐고
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은데
(민정) 자꾸 그렇게 미안하다고 하면
어떡해, 난
차라리 오빠도 서우도 그쪽 거라고
달라고 하지
왜 자꾸 미안하대
사람 아무것도 못 하게
고마워서 그랬어요
[잔잔한 음악]
그냥 다 고마워서
그래서 난 그냥
조용히 우리 서우만 보고
그러고 말려 그랬는데
[유리의 한숨]
서우만 보고 말려 그랬다?
그게 가능해요?
그걸로 돼요?
나한텐
그거만이라도 감사한 일이니까
좀만
못됐었으면 좋았겠다
그걸로 핑계 삼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살짝 웃는다]
나도 그랬었는데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열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 민정아 - (민정) 내가
오빠 버릴래
오빠 수술 못 하는 거
수전증 아니잖아
(민정)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했어
혹시 죽은 사람
내가 질투하게 될까 봐
근데 이제 죽은 사람 아니네
다 원래 그 사람 거였잖아
오빠도 우리 서우도
원래 다 내 거 아니었잖아
[떨리는 숨소리]
내가
오빠 버려 줄게
[떨리는 숨소리]
미안해
[차분한 음악]
[강화의 한숨]
[울먹이는 숨소리]
[훌쩍인다]
[한숨]
[옅은 한숨]
[은숙이 노크한다]
(은숙) 유리야
어, 어, 엄마
엄마하고 동네 산책 나갈까?
어, 갈게
[유리가 부스럭거린다]
(은숙) 아, 이제 날이 따뜻해졌네
(유리) 어, 벌써 꽃도 많이 폈어
그러게
우리 딸이랑 꽃놀이도 가고 그래야 되는데
(은숙) 유리야
(유리) 응?
(은숙) 안 서운해?
뭐가?
불과 5년밖에 안 지났는데
네 거가 하나도 없잖아
엄마 있잖아
내 거
(유리) 영원히 내 거
태어날 때부터 살았을 때도 죽었을 때도
엄만 내 거 아니었던 적이 없잖아
그렇지
우리 딸도 영원히 내 거지?
(은숙) 네 아빠랑 연지도 끼워 줄까?
그럴까?
[함께 웃는다]
강화가 많이 아팠었어
그래서 엄마가 많이 빌었다?
이놈아, 빨리 새장가 가라고
진짜?
서우 때문도 강화 때문도 아니라
내 딸 때문에
혹시 내 딸이 이걸 보고 있으면 어떨까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잘했어
엄마 잘한 거 맞아?
(유리) 응, 너무 잘했어
역시 내 마음 아는 건 엄마밖에 없다
(은숙) 우리 잠깐 앉을까?
(유리) 응, 엄마
(은숙) 여기가 엄마 단골 자리다?
그리고 저기가
강화 처 단골 자리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여기서 서우가 나와 놀고 있길래
지나가는 척하면서 여기 와 앉아 봤거든?
[잔잔한 음악]
[서우의 신난 신음] [서우의 웃음]
(민정) 넘어져, 조심해
(민정) 서우야 우리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갈까?
(서우) 응
(은숙) 그날부터 이상하게
그 시간만 되면 서우가 와서 놀고 있는 거야
(은숙)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가 했는데
희한하게 내가 여기 앉아 있을 때마다 오데
그리고
내가 갈 때까지 자리도 안 뜨고 마냥
그러다가 눈치챘어
'아'
'내가 누군지 아는구나'
'직감으로 알았구나' 하고
물어보지 그랬어
사람 관계라는 게 다 좁힌다고 좋은 거는 아니잖아
(은숙) 딱 거기까지가 좋았어
고마운 사람
거기까지
그래야 더 욕심 안 부리지, 엄마가
[한숨]
[한숨]
[문이 탁 열린다]
[물소리가 뚝 멈춘다] [문이 탁 닫힌다]
맥주 한 잔 줄래요?
[고무장갑을 쓱쓱 벗는다]
[기계 작동음]
[기계에서 술이 졸졸 나온다]
아, 맞는다
(민정) 나...
이제 여기 오면 안 되죠?
미안해요
미안
[잔을 탁 내려놓는다] [거친 숨소리]
왜 다...
나한테 미안해요?
(민정) 왜 자꾸 나한테 미안해?
자꾸 미안하면
난 어떡하라고
[흐느끼며] 난 어쩌라고
[차분한 음악]
[민정이 엉엉 운다]
조강화 마음 굳혔네
그래, 유리부터 살리고 봐야지
나라도 그래
민정 씨한테
구구절절 얘기 안 한 거 같아
뭐, 그거까지 알아서 좋을 게 뭐 있어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텐데
(근상) 차라리 그냥 개새끼, 소 새끼 시원하게 욕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래
아휴, 나도 모르겠다
(근상) 깜짝이야
왜 던져, 갑자기
너 요즘 왜 그러냐? 아무것도 아닌 거에 깜짝깜짝 놀라고
누나
(근상) 아니야
그냥 그럴 일이 있어, 내가
뭔 일?
팔로워 수 줄었어?
이 누나가 진짜!
(근상) 남편을 뭘로 보는 거야!
지금 내가
일생일대의 엄청난...
일을 당하고 있어, 알아? 누나가 알아?
왜 이래?
누나, 나 귀신 붙었어
(현정) 어?
나 귀신 붙었어, 무서워
(근상) 누나가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지금도
여기 어딘가에선
우리를 보며, 아, 무서워
아, 무서워
그래, 해 주면 되잖아
내가 해 주면 되잖아
진짜? [익살스러운 음악]
내가 이거 진짜 해 주면 진짜 갈 거예요?
이거 해 주면 떨어진다고
어? 안 들려?
떨어진다고, 내가 갈게
약속 지켜야 돼, 진짜
안 그러면 내가 우리 이모 부를 거야 [노크 소리가 들린다]
(근상) 우리 이모...
뭐 하세요, 계 쌤?
- (간호사) 혼자 - 아, 이모를 불러야 되나?
(근상) 이모부를 불러야 되나?
아, 다음 주에 어머니 생신인데
이모가 결혼을 안 했으니까 이모만 불러야 되겠다
[상봉의 헛웃음]
- 왜, 왜요? - (간호사) 들어오세요
어서 오세요
(상봉) 엄마?
[문이 쓱 닫힌다]
(상봉 모) 안녕하세요
강상봉 엄마예요
부르셨다 그래서
무슨 일로...
네, 어머니
어...
그...
저기, 이거
(상봉 모) 이게 뭔가요?
아드님 진료 기록서인데요
(근상) 어머니가 꼭 좀 보셔야 될 거 같아서
네?
[파일을 탁 든다]
혹시 인터뷰랑 다르게
(상봉 모) 어디 아픈 데가 많았나요?
아, 아니요, 아니요
아...
어머니, 일단 보시겠어요?
[한숨]
이게...
뭔가요?
(근상) 강빈 씨 죽기 전의 심리 상태예요
진짜인가요?
[상봉 모의 떨리는 숨소리]
[울먹이며] 마지막까지
날 많이 미워하다 간 게 아니었어요?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가
자기 때문에 내가 자살했다고 자책을 해요
(상봉) 대학 때 처음으로 가족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무거운 음악]
난 너무 어렵게 말했는데
부모님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아닐 거라고
아니야, 아니야
(상봉 모) 아니야, 아니어야 돼
아닐 거야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어?
[상봉 모가 흐느낀다]
(상봉) 그때 그게 너무 서운했어요
나 자체를 부정하는 거 같아서
[상봉이 짐을 탁 내려놓는다]
[상봉이 짐을 탁 든다]
그래서 입단하자마자 독립해서 [짐을 탁 내려놓는다]
연락도 다 피하고
[짐을 탁 든다]
집도 잘 안 가고
- 그랬죠 - (미동댁) 아이고
(상봉) 그러다 보니까 진짜
연락을 못 하게 되고
정작 풀려고 마음먹었을 땐
너무 늦었다 싶었지
그때 이 쌤한테 진료받을 때
실은
'가족이랑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그거 때문에 상담한 거
그리고 그날
큰마음 먹고 찾아가려고
엄마 선물
아빠 선물
[직원1과 상봉이 대화한다] 다 사서 준비했는데
(직원1) 안녕히 가세요
(상봉) 그날 밤에 죽어 버렸어요
너무 늦은 거지
[잔잔한 음악]
근데 죽고 나니까
[상봉 모가 흐느낀다]
엄마가 그때 그래서
내가 죽었다고
자꾸 자책하는 거야
(미동댁) 그럴 수 있지, 어
그럴 수 있어
죽고 나서 알았어요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엄마는
나를 부정한 게 아니라
그냥 안타까워서
그랬었던 거
너무 놀라서 그랬었던 거
너무 늦게 알았어요
[상봉의 한숨]
엄마한테
내가 원망하지 않는다는 거
알려 주고 싶어서
[흐느낀다]
어머니
가족들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었고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런가요?
(상봉 모) 그래요?
미안해, 엄마
내가 후회가 많이 늦었다
[숨을 후 내뱉는다]
[옅은 한숨]
[노크 소리가 들린다]
(연지) 뭐 해, 언니?
[살짝 웃는다]
내 방 구경
[연지가 살짝 웃는다] - (유리) 여긴 다 있다? - 응? 뭐가?
(유리) 내 10대, 20대, 30대
지금까지 다
그렇지, 20년 넘게 이사도 한 번 안 갔으니까
[살짝 웃는다]
(연지) 언니 가고
형부랑 살던 집에 있던 물건들도
엄마가 다 가져다 여기다 뒀으니까
그러게
(연지) 언니, 유리 공예 다시 하는 거 어때?
아니, 상도 많이 받고 전시도 많이 했었잖아
또 언니 꿈이기도 했고
[살짝 웃는다]
이젠 꿈 아니야
바뀌었어
아, 하고 싶은 거 생겼어? 뭐로 바뀌었는데?
서우
[살짝 웃는다]
(무풍) 유리야! 나와 봐!
[연지의 의아한 신음] [유리가 문을 달칵 연다]
(은숙) 자네가 왜 왔어? 또 서우 맡기게?
아니요, 유리 좀...
어디 갈 데가 있어서요
[문소리가 철컹 난다] 우리 유리랑? 어디?
(유리) 서우야
(강화) 옷 갈아입고 나와, 가자
어디를 가?
(강화) 그냥 바람 쐬러, 서우랑 같이
(은숙) 저기...
[서우의 다가오는 발걸음]
[서우가 유리의 손을 탁 잡는다]
[유리의 놀란 숨소리]
(무풍) 조 서방이 갑자기 왜 저러지?
뭔 일 있나?
저럴 사람이 아닌데
바람 쐬러 어디 가게?
(강화) 어?
아...
글쎄
서우야, 어디 갈까? 서우 어디 가고 싶어?
놀이동산
(직원2) 반갑습니다, 표 좀 보여 주세요 [부드러운 음악]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입장권 보여 주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유리) 인사해, 곰돌이
[유리의 웃음]
안녕
우아, 공주님 같아
서우야, 거울 한번 볼래? 봐 봐
짜잔!
예쁘다, 그렇지?
[유리의 탄성]
[사람들의 비명]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서우의 웃음]
(유리) 우아, 피에로다 [강화의 탄성]
서우 피에로 알아?
(강화) 아...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작동음]
(유리) 아, 감사합니다
- (유리) 서우야, '안녕' 해야지 - (강화) '안녕' 해야지
(강화) 오랜만에 나와서 피곤했나 보다
(유리) 응
예뻐라
그거 알아?
서우 잘 때 주기적으로 입을 오물오물거린다?
[유리의 웃음]
너잖아
잘 때 입 오물거리는 거
아, 그러네
내 버릇이었네
이럴 때였어
문득문득
서우를 통해서 네가 떠오를 때
[차분한 음악]
(강화) 조금씩 커 가는 서우 얼굴에서
점점 네 모습이 겹쳐 보일 때
내가 널 붙든 게 아니라
붙잡을 수밖에 없게끔
너무 큰 걸 심어 놓고 갔잖아
그래도 난
(유리) 시간을 되돌려도
그때 서우를 살렸을 거야
[은숙의 한숨]
나 누군지 알죠?
어떻게 그렇게 직감으로 알았는지
사람 마음 감추려고 해도 참 쉽지가 않네
[은숙의 한숨]
그랬네, 역시
이상하다 했더니 그랬어
(은숙) 말했나 보네
서우 엄마
뭘 놀라, 서우 엄마잖아
그쪽이 서우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나도 내 딸에 대해서 제일 잘 알거든요?
그래서 내가 말해 줄 수 있는데
지금 서우 엄마가 걱정하고 있는 일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떨리는 숨소리]
고마워요, 나한테도 마음 써 줘서
[잔잔한 음악]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네, 내가
서우야, 오늘 재밌었어?
(서우) 응
[웃음]
나도 엄청 재밌었어
(유리) 같이 놀아 줘서 고마워, 오늘
고마워
- (서우) 엄마! - (유리) 서우야
(강화) 서우야
죄송합니다 [여자의 당황한 웃음]
서우야
[풀벌레 울음]
[귀순의 걱정하는 숨소리]
아니, 아니...
(귀순) 저러다가 미동댁 오늘 무릎 나가는 거 아니여?
(혜진) 아침부터 물도 안 먹고 저러고 있는데
왜 저러는 거지?
유리
대체 왜 유리만 저렇게 보내신 건지
(미자) 알아내겠다고 저래
[거친 숨소리]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을 탁 닫는다]
유리야
어린이집도 이제 관두자
(강화) 일단 서우 엄마 자리부터 되찾고
하나씩 되돌려 놓자
그, 병원에는 며칠 쉰다고 얘기해 놨으니까
내일부턴 계속 서우랑 같이 있어
그만해, 강화야
(유리) 그만하면 됐어
충분해
어?
나
자리 안 찾아
아니, 못 찾아
(강화)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자리를 못 찾는다니?
[한숨]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나 자신보다 사랑해 본 적이 없거든?
(유리) 처음이었어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내 딸
우리 서우
그게, 그게 왜, 서우가 왜
내가 살면
우리 서우
평생 귀신 보며 살아야 해
[어두운 음악]
귀...
귀신 안 볼 수 있다며
고, 곧, 곧 안 보게 된다며, 어?
(유리) 살고 싶어
나 살고 싶어, 미동댁
[한숨]
[유리의 울먹이는 숨소리]
그 속내가 왜 안 튀어나오나 했네
오래도 참았어
[흐느낀다]
살아, 살아도 돼
근데 네가 안 올라가면
네 딸 귀신 안 볼 수 있다는
그 약속은 내가 못 지켜
[당황한 신음]
그게 무슨 소리야?
(미동댁) 네가 살면
네 딸 평생 귀신 봐
뭐, 뭐?
이승에 네 육신은 이미 없잖아
넌 지금 사람도 귀신도 아니니까 [유리의 놀란 숨소리]
아, 잠깐만
[당황한 숨소리]
그럼 혹시...
나 때문에 계속 본 거였어?
[한숨 쉬며] 나도 최근에 알았다
말도 안 돼
[헛웃음]
아니, 그럼 나 왜 살린 거야?
(유리) 심판이다 뭐다 자리 찾으라고 왜 그런 거야?
우리 서우 귀신 보며 살게 하고
나보고 살라고?
- 아이고 - (유리) 하, 그게 무슨...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래
내가 이승에 있는 한
계속 본대
평생
나 때문에 시작된 일 내가 끝내야 돼
난 우리 서우가
뭐든 꿈꿀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어
[잔잔한 음악]
근데 나 살자고
우리 서우 귀신 보며 살게 할 순 없어
잠깐만
어...
어...
고, 고칠, 고칠 수도 있잖아, 어?
방법,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 유리야
서우가 나한테 오고
내 인생의 내일은 항상 서우였거든?
'내일은 걸을까, 내일은 뛸까'
'내일은 얼마나 더 자랄까'
(유리) 근데 내가 그 내일을
망칠 순 없어
나 때문에 우리 서우 무섭고 괴롭게 만들 순 없어
내가 그걸 어떻게 보며 살아
이제 겨우 여섯 살이잖아
내 딸
[거친 숨소리]
[다급한 신음]
[긴장되는 효과음]
[어두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유리) 아유, 괜찮다고, 엄마
안 죽어, 안 죽어
[유리의 웃음]
네, 네
신속하게 일 마치고 집으로 복귀할게요, 응
[통화 종료음]
[휴대전화를 가방에 툭 넣는다]
[숨을 작게 내뱉는다]
씁, 열무야
우리 그냥 가지 말까?
그럴까?
[한숨]
[긴장되는 효과음]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경적]
[쾅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비명] [놀란 숨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남자) 아유, 괜찮으세요?
아유, 119, 119, 119!
(강화) 만약 너의 삶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내일을 살아 냈을까?
[부드러운 음악] [아기 서우의 울음]
(유리) 아, 서우야, 조금만 기다려
다 했어, 다 했어
오, 아빠 간다, 잘 흔들어, 어, 빨리
어, 서우야, 금방 갈게, 어
어, 배고프지?
[강화가 말한다] 아이고, 아이고, 그랬어?
[아기 서우의 울음] (유리) 어, 서우야, 괜찮아, 괜찮아
어, 어, 어, 울지 마
조강화! 뭐 해!
- (강화) 어, 나가 - (유리) 아, 서우 울잖아 [아기 서우의 울음]
[유리가 아기 서우를 달랜다] (강화) 서우야, 서우야, 아빠 간다
(유리) 어, 괜찮아 [강화가 아기 서우를 달랜다]
[유리의 웃음]
(강화) [아기 서우를 달래며] 울지 마, 울지 마
그랬어?
[힘주며] 어, 일로 와
자, 자, 우리 서우, 우리 서우 [유리의 웃음]
[강화가 입바람을 후 분다]
[유리가 말한다]
[강화가 아기 서우와 놀아 준다]
(유리) 아이고, 아이고, 우리 서우 섰다 [강화의 놀란 신음]
- (강화) 아빠한테, 어, 어, 어 - (유리) 어머머, 어머, 와!
[강화의 탄성] (유리) 어머, 신기해!
- (유리) 우리 서우 천재인가 봐 - (강화) 서우야
(무풍) 중국도 가고! [은숙이 말한다]
미국도 가고!
- (연지) 아이, 잘한다, 아이, 잘한다 - (무풍) 일본도 가고!
(유리) 아빠, 그렇게 담 오는 거 아니지?
- (무풍) 아이고, 아이고 - (연지) 그러니까
(유리) 아이, 진짜
(유리) 내 인생의 내일은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당신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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