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전설 8
[몽환적인 음악] (정훈) 지구상에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인간은 없어
네가 사랑한다는 그 남자도 마찬가지야
[물소리가 들린다]
(정훈)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들키지 마
오지 마, 허준재!
너!
[잔잔한 음악] 거기서 뭐 해?
보지 말라고, 저리 가라고!
(준재) 어, 알았, 알았어, 알았어 안 봐, 안 봐, 안 봐
아니, 근데 얘가 사람을 뭘로 보고...
돌아서라고!
- (준재) 야 - (심청) 돌아보지 마
안 본다고
(준재) 야, 너 내가 청소하고 있으랬지 누가 물에 들어가 놀래?
아, 얘가 진짜...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준재) 아이, 문만 닫으려고 그래, 문만!
무, 문 닫지 마 문 닫지 마, 문 닫지 마
아, 어쩌라고!
(심청)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준재의 탄식]
[답답한 한숨]
- (준재) 하나만 묻자 - (심청) 묻지도 마
이제 됐어
아이, 되긴 뭐가 돼
한 가지 묻는다는 게 뭐야?
(준재) 어?
아, 그게...
[익살스러운 음악] 너...
남자들 이렇게 우글거리는 집에서 막 그렇게 부주의하게
그러고 있으면 되겠어, 안 되겠어?
난 네가 이렇게 갑자기 들어올 줄 몰랐지
너야말로 나갔다가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면 되겠어, 안 되겠어?
내 집이야
(준재) 내가 갑자기 나갔다가 갑자기 들어오고
그러라고 있는 집이야, 여기가
아, 조심을 네가 해야겠어, 내가 해야겠어?
- (심청) 네가 - (준재) 아니지, 네가 해야지
(준재) 야, 막말로 나니까 천만다행이지
너, 다른 놈들 있을 때 이런 일 있었어 봐
어쩔 뻔했냐고
너는 왜 천만다행인데?
나는...
너 지금 나랑 100분 토론 하니?
빨리 가서 옷이나 제대로 갈아입어
네가 나가야 입지
[익살스러운 음악] 아, 그렇지?
미안해
[준재의 헛기침]
[안도의 한숨] [현관문이 달칵 닫힌다]
[숨을 후 내뱉는다]
[깊은 한숨]
(남두) 아, 뭐 하다 이제 와?
- (준재) 어? - (남두) 핸드폰은 챙겼어?
- (준재) 그냥 가지, 뭐 - (남두) 그냥 간다고?
(준재) 괜찮아, 그냥 가
[흥미진진한 음악]
아, 그리고 잠깐, 잠깐, 잠깐
이, 공지사항이 하나 있는데
(준재) 앞으로 다들 집에 들어갈 때 초인종 한 번씩 누르고 들어가
왜 그래야 되는데?
나도 그럴 거야, 나도
그러니까 다들 초인종 누르고 들어가
(준재) 그, 인기척도 크게 한 번씩 하고
아, 그러니까 왜 그래야 되냐고
(준재) 집주인이 그러라 그러면 그러는 거지, 뭐 말이 많아
[남두의 한숨] (준재) 그리고 태오, 너
소리 없이 문 따고 들어가고 그러지 마
주의하란 얘기야
뭐래
(준재) 주의해라, 너
아, 날이 왜 이렇게 덥지?
- (남두) 덥다고? - (준재) 덥지 않아?
영하라는데
아휴, 이상하게 덥네
(남두) 그러게, 너 얼굴 빨개
(정훈) 들킬 뻔했다고?
큰일 날 뻔했네, 너 조심하랬지
(정훈) 그 녀석 입장에선
네가 수상하니까 자꾸 이것저것 캐물을 거라고
비밀 털어놓으라면서
(심청) 지금도 그래
'스페인에서 무슨 일 있었냐'
'왜 나는 기억 안 나냐 말 안 할 거면 나가라'
거기 넘어가서 얘기하면 안 돼
인밍아웃, 절대 안 돼!
응, 절대 안 해, 인밍아웃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니
여긴 거짓말이라는 게 있어서
우리 동네 같았어 봐, 되니, 그게?
(정훈) 무슨 마음을 먹는 순간
반경 10km 이내에 있는 애들은 다 알잖아, 내 속을
(심청) 맞아
그나마 여긴 이제 서로의 마음을 못 들으니까
거짓말로 진짜 마음을 가릴 수 있잖아
근데 사람들이 거짓말을 그렇게 많이 해?
많이 정도가 아니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그렇게 알면 돼
너 한글은 뗐니?
응
그럼 저기 뭐라고 쓰여 있어?
(심청) '공짜 폰 100% 사장님이 미쳤어요'
저게 과연 사장님이 진짜 미쳤다는 뜻일까?
그 뜻이 아니야?
아이, 아니지
'우린 어떡해서든 본전을 뽑을 거니까'
'넌 와서 돈이나 써라' 이런 뜻이야
아, 저게 그 뜻이야?
(정훈) 백화점 가면 직원들이 무슨 옷을 입든
'어머, 너무 잘 어울려요 이거 딱 손님 옷이에요' 이러거든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예쁘다는 거 아니야?
에이, '내가 이 정도 립 서비스 했으니까'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인간적으로 하나 사라'
이런 뜻이야 [심청의 탄성]
(정훈)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여기선 사랑한다는 말이 굉장히 흔해
근데 그 말에 절대 속으면 안 돼
진짜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거든
볼래?
[통화 연결음]
(직원) 사랑합니다, 고객님
(정훈) 죄송합니다
[휴대 전화 조작음] [익살스러운 음악]
누가 사랑한다고 했다고 '그럼 나랑 사귈래요?' 이러면 큰일 나
쇠고랑 차
(심청) 아휴, 어렵다
근데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어?
(정훈) 쉽지 않아
근데 뭐, 내가 지금까지 찾은 방법 중의 하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일단 눈을 못 마주치거나
말을 더듬거나 귀를 만져
입술을 만지거나 이렇게 팔짱을 끼면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호응하는 신음]
(준재) 뭔 소리야 내가 무슨 청이를 신경을 써
(남두) 아니야? 요즘 부쩍 신경 쓰던데
하, 전혀 아닌데
(남두) 난 솔직히 네가 여자한테 그러는 거 처음 봤다
무슨 옷을 단속하질 않나
아이, 내가 형 옷도 단속했잖아
그리고 나 태오 옷도 신경 써
너 요새 왜 이렇게 얇게 입고 다니냐
파카 하나 사 줄까?
(태오) 치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기는
- (준재) 아, 저 앞에 세워 줘 - (남두) 아, 왜? 같이 안 가?
갤러리 사전 답사 같이 가기로 했잖아
아, 그런 건 이제 둘이 다녀도 되잖아
쯧, 난 따로 볼일 있어
(남두) 왜, 시아 만나게?
(시아) 전화도 없이, 놀랐어 무슨 일이야?
지난번에 네가 그랬잖아
양양 앞바다에서 몇백 년 된 난파선이 발견됐다고
흘려듣는 줄 알았더니 기억하고 있었네
어제 남두 형이 그러던데
그 배 목간이 발견됐다고
응, 그래서 우리 연구실 난리 났잖아, 지금
그 물건 주인 이름이...
김담령
흡곡 현령이었던 김담령이라는 사람이야
[몽환적인 음악]
(시아) 이거야
목간에 발견된 절대 연대만 봐도 분명 조선 중기 때 물건인데
이것 봐, 이 남자가 입은 옷
(시아) 꼭 요즘 옷 같잖아
마치 미래를 보고 그린 그림처럼
(시아) 게다가 인어라니, 너무 신비롭지 않아?
그러네
[텔레파시가 들려온다]
요새 계속 이상했거든요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것도 그렇고
그 화병 속 그림을 보는데
[허탈한 웃음]
아니, 진짜 미친 소리 같으시겠지만
그 그림 속 남자가 꼭 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뭐가 기억이 나는 것도 아니고
(준재) 저도 순간 최면으로 기억 상실시키는 건
[잔잔한 음악] 임상 실험도 많이 해 보곤 했는데, 이건 달라요
(준재)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
어떤 특정 기억 회로 하나만 삭제된 것 같아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요, 교수님?
글쎄, 그 해리 현상이라는 게 결국 분리의 문제니까
아주 불가능하다고 할 순 없지
체계성 기억상실도 간간이 있는 일이니까
[손가락을 딱 튕긴다]
(교수) 자, 이제 그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으로 들어가 보자
[어두운 음악]
[칼이 챙 부딪친다]
[준재의 가쁜 숨소리]
[의미심장한 음악] (교수) 괜찮니, 준재야?
뭘 봤니? 기억이 나?
하, 교수님
(교수) 그래, 준재야
네가 본 거 다 얘기해 봐
교수님이 예전에 그러셨잖아요
최면이란 게 진짜 무의식 속을 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든 허상의 세계를 보는 걸 수도 있다고
그랬지
(준재) 이건 그거 같아요
허상
그게 아니라면...
하, 말도 안 돼
[준재의 떨리는 숨소리]
(남두) 야, 네가 전국 1등이야? [문이 달칵 열린다]
길드가 아니라 아예 전국에서?
[의미심장한 효과음]
허준재
너 어디 가?
- (심청) 어, 나... - (준재) 아니다
내가 알 필요는 없지
- (준재) 다녀와 - (심청) 알았어
(준재) 근데
오늘부터 우리 통금 있어
(남두) 우리 통금 있어?
응, 생겼어, 오늘부터
(태오) 몇 시?
[준재의 생각하는 신음]
8시
8시까진 들어와
넘으면 문 안 열어 준다
(남두) 야, 지금 7시 반이다
(준재) 그러니까 8시까지 오라고
(남두) 아니, 서울 시내 어디를 30분 만에
가지 말라는 소리지
[어이없는 웃음] 누가 가지 말래?
(준재) 어? 가, 난 몰라
청이 얘가 누구 만나러 가는지
하여튼 그 남자를...
아니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난 모르지
(준재) 아무튼 누군지 모를 그 미지의 사람을 만나고
8시까지는 돌아오라 이거야
(준재) 싫으면 계속 나가 있든가
[남두의 힘주는 신음]
(남두) 아, 근데 이건 도대체 누구 거야? 7급 공무원
[준재의 당황한 신음] [남두의 약 올리는 신음]
[밝은 음악] (남두) 하, 야, 너 공무원 되게?
(준재) 돌았어? 아이, 그냥 일할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요새 사람들은 어떤 공부를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어?
(준재) 트렌드 분석 차원에서
너 나갈 거야?
아니야, 안 나갈래
내일 나갈래
[준재의 옅은 웃음]
그래?
그러든가, 그럼
[남두가 숨을 씁 들이켠다]
(남두) 쟤 이상해, 정말, 응?
아, 그런데 우리 청이는 이 시간에 어디 가려고 그랬어?
응, 돈 벌러
돈 벌러? 알바?
(심청) 아니
이거 돈이랑 바꾸려고
바꿔서 허준재 다 주려고
(남두) 아니, 이게 뭔데?
(남두) 아니, 이...
[반짝이는 효과음] [밝은 음악]
이거 어디서 났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었어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심청이 흐느낀다]
[심청이 연신 흐느낀다]
[심청이 흐느낀다]
[TV 속 배우의 외침이 흘러나온다]
[심청이 흐느낀다] [슬픈 음악이 흘러나온다]
(남두) 아니, 어떤 일을 하면 이런 고급 진주를 만들지?
와, 우리 청이 갈수록 미스터리야
'그것이 알고 싶다' 나가야겠어
나 이거 하나 주면 안 돼?
안 돼
알았어, 알았어 보기만 할게, 보기만 할게
와, 이거 진짜 좋은 거네
[밥솥 안내 음성] 맛있는 백미 밥을 완성하였습니다
정말이야?
정말 완료했어?
(심청) 수고했다, 진짜 [익살스러운 음악]
[남두의 웃음]
아, 밥청, 밥청
(남두) [살짝 웃으며] 심청이 아니라 밥청이다, 밥청
[남두의 웃음]
[심장 박동 효과음] [정훈의 아파하는 신음]
[정훈의 괴로운 신음]
어디 아파?
[아픈 숨을 내뱉는다]
[심호흡]
너, 내가 왜
이 추운데 수상 안전 요원 하고 있는지 알아?
잘 데가 없어?
야, 나 오목교역에 30평짜리 아파트 전세 살아
먹고살 만해
침대 사이즈도 킹, 큰 거
근데 내가 왜 여기 있는 줄 아냐고
왜?
내 심장은 이제 거의 다 됐거든
[쓸쓸한 음악]
(정훈) 하루 몇 시간은 물에 있어야 돼
그래야 그 하루를 버틸 수 있어
물론 이것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럼 어떻게 해? 다른 방법은 없어?
있지
그 여자가 나한테 다시 돌아오는 거
근데 안 돼
그 여자 다른 남자랑 결혼했거든
그럼 지금이라도 빨리 바다로 돌아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야, 너야말로 왜 이러고 있는데?
그 남자 구해 주다가 정체를 들켰으면
그래서 그 기억을 지웠으면
아, 그냥 '그래, 좋은 추억이다' 하고서
네가 사는 바다로 다시 돌아가면 될 것이지
혼자 알고 있는 약속 지키면 누가 고마워한대?
여기까지 왜...
아니, 뭐 하러 와?
뭐 하러 와서 그 의심, 천대 구박 다 받아 가면서
'언제 날 사랑해 주지' 이러고 있냐?
너나 빨리 돌아가, 기회 있을 때
넌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나도 여기서 이렇게 죽어 가고 있는 거야
돌아가 봐야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 아니까
여기서 죽나 거기서 죽는 것처럼 사나
똑같을 거 잘 아니까
깜봉
어
[부스럭거린다]
[심청이 흐느낀다]
[정훈의 한숨]
(정훈) 연어가 고향 찾아가는 귀소본능이나
인어가 사랑하는 사람 찾아 뭍으로 올라오는 순정 본능이나
누가 좀 없애 줬으면 좋겠다
(정훈) 난 다음 세상에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주 그냥, 이 여자, 저 여자, 그냥 난잡하게 살 거야
한 사람한테만 뛰는 심장, 이건 너무해
얼마나 버틸 수 있어, 내 심장?
글쎄
그 여자가 나 떠난 지 두 달 됐으니까
내가 언제까지 버틸지 보면 알지 않을까?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지 마
이게 네 미래야
깜봉
[울음 섞인 한숨]
[훌쩍인다]
(장 형사) 아휴, 얼마 전에 그 난리를 쳤는데 여기를 또 오겠어요?
이 새끼가 진짜, 씨
[장 형사의 한숨] (동표) 그 자식 또 와
이쪽에서 뭔가 찾는 눈치였어 올 거야, 또
(장 형사) 무슨 바보도 아니고 여길 왜 또 와, 아휴
[쿵 부딪힌다]
[어두운 음악] (동표) 뭐야, 이거, 아, 놀라라
[숨을 하 내뱉는다]
[휴대 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휴대 전화 조작음] (준재) 아저씨, 저 준재예요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네요
연락 주세요
[행인의 한숨] [담배꽁초가 툭 떨어진다]
(대영) 주으세요
나?
(대영) 담배꽁초 이렇게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되잖아요
네가 뭔 상관이냐, 어?
[음산한 음악] [행인의 짜증 내는 숨소리]
주워
[휴대 전화 메시지 수신음]
[대영의 한숨]
[어두운 음악]
[휴대 전화 조작음]
입력
[잔잔한 음악]
(심청) 얼마나 버틸 수 있어, 내 심장?
글쎄
그 여자가 나 떠난 지 두 달 됐으니까
내가 언제까지 버틸지 보면 알지 않을까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지 마
이게 네 미래야
[휴대 전화 메시지 수신음]
(남 부장) 어딜 좀 다녀왔다, 혹시 시간 되니?
아버지 일로 상의할 게 있다
(준재) 네, 내일 저녁 시간 될 거 같아요
근데 아저씨, 요새 별일 없으시죠?
(남 부장) 별일 없지, 뭐, 그래, 내일 보자
장소 잡아서 다시 연락하마
(준재) 다행이네
[노크 소리가 들린다]
(심청) 허준재, 자?
왜?
- (심청) 나 내려가도 돼? - (준재) 아니
[준재의 짜증 내는 신음]
(준재) 왜?
(심청) 나 좀 급하게 궁금한 게 있는데
(준재) 뭔데?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될 거 같아?
뭐?
어,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
근데 혹시 앞으로의 그...
[옅은 한숨]
- (준재) 계획? - (심청) 어, 맞아, 계획
그런 거 있어? 날 사랑할 계획
없는데
- (심청) 없다고? - (준재) 어, 없어
아니, 그렇게 막 바로바로 대답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야지
정말 없어?
[준재의 생각하는 신음]
[잔잔한 음악]
(준재)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이름을 잘 짓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너 이 정도로 멍청이였냐?
다시 대답해 줄게, 잘 들어
난 너 사랑할 계획, 예정 이런 거 전혀 없어
네가 대답하기 힘든 거 같으니까...
안 들렸나?
(준재) 내가 방금 아주 쉽게 했는데, 대답을
내가 좀 시간을 줄게
아니, 뭐, 네가 주면 내가 받아야 되니?
너 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시간 좀 준다고 그렇게 며칠 만에 뚝딱
그렇게 쉽냐?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야
왜?
왜냐면
잘 들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사람이 사람한테 실망하는 일이야
겉만 보고 좋아하는 마음 생겼다가도
금방 실망하게 되는 게 사람이야
실망을 이기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야
아니던데
뭐가 아니야?
난 사랑하는 일이 가장 쉽던데
안 하려고, 안 하려고 해도
사랑하게 되던데
실망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하게 되던데
사랑이 다 이기던데
앞으로 날 좋아할 계획이 생기면 꼭 알려줘, 허준재
[한숨]
(진주) 네, 어머니 [진주가 살짝 웃는다]
아니요, 이번에요, 제가
압구정 백화점 문화 센터에서 도마를 만들었거든요
(진주)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나온 최고급 원목으로 만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님 주방 클래스에 너무 맞을 것 같아서요
네, 제가 주말에 꼭 가지고 갈게요
네
어머니, 굿밤 되세요
네
[진주의 웃음] [통화 종료음]
(시아) 참, 언니 대단해요
나도 우리 엄마 성격 맞추기 힘든데 그 비위를 다 맞춰 가면서
내가
팁 하나 줄까요, 아가씨?
남자 휘어잡는 법
(진주) 남자는요, 자기 엄마한테 잘하는 여자한테는
꼼짝도 못 해요
[코웃음 치며] 그게 뭐예요
오빠 봐 봐
그렇게 실컷 놀다가 결국 자기 엄마한테 제일 잘하는
나랑 결혼했잖아
그러니까 아가씨가 반찬 갖다 바치는 그 남자
그 남자를 잡고 싶으면
그 남자의 엄마를 잡아야 된다 그 말이라니까
아니, 근데...
[시아의 헛기침]
자기 가족 얘기를 잘 안 해요
(시아) 엄마 얘기도 한 번도 한 적도 없고
그 엄마, 어디 사신대요?
강남이면 내가 어느 사우나 다니는지까지
싹 다 알아볼 수가 있는데
살짝 한번 물어볼까
(진주) 술을 먹여 가지고 살살 꼬셔 가지고 한번 물어봐요
[못마땅한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시아) 이거 원래 저 먹는 커피 아니죠?
(유란) 아, 그게 다 떨어져서...
(시아) 난 공정 무역 거래 커피 아니면 안 마신댔죠?
(유란) [한숨 쉬며] 네, 그거로 사다 놓을게요
그런데요
(유란) 먼 나라 커피 농장 농민들 위하는 마음도 좋지만
같은 집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난
아주머니, 저 지금 가르치세요?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뭔가 배웠다면 다행이고요
[시아의 어이없는 탄성]
(시아) 언니, 저 아줌마 왜 저래요?
[작은 목소리로] 원래 저래, 원래
(진주) 아, 그냥 신경 꺼요 [시아의 헛웃음]
아가씨, 어떡하면 그 남자 엄마를 알아내서 친해질까
그거 연구해 봐요, 그게 키라니까
(남두) 준재 어머니?
오빠는 좀 알 거 아니야
준재가 자기 가족 얘기를 너무 안 하니까
에이, 내가 너한테 이런 얘기까지 한 거 알면
걔한테 나 진짜 혼나
이럴 거야?
오케이, 오케이
- (남두) 너부터 말해 봐 - (시아) 뭘?
얼마 전에 준재가 너 찾아갔지 박물관에?
응
뭐 물어보지 않았어?
목간 발견됐냐고, 오빠가 얘기했다며
- (남두) 그리고, 또 - (시아) 또?
내가 이거 보여줬지 [휴대 전화 조작음]
[흥미로운 음악]
(남두) 이야, 이거 뭐야?
인어 공주야, 뭐야?
(남두) 이 그림이 희한하네
이거 주인도 담령이라는 거지?
(시아) 응
이야, 이거 뭐지?
"김담령"
이게 뭔가 분명히 있긴 있는데
그냥 우연이 아닌데
[시아가 책상을 탁탁 친다]
나 얘기했으니까 이제 준재 어머니 얘기나 해 줘
(남두) 아, 나도 잘 몰라
뭐, 10살 때 헤어졌는데 여태 준재가 찾고 있다는 것밖에는
헤어졌다고?
어, 뭐, 어디 꽁꽁 숨어 계신지
쯧, 전혀 흔적을 안 남기고 다니셔서 찾을 수가 없다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찾아 주고 싶다
어디 계신 거야, 어머니?
내가 진짜 잘해 줄 자신 있는데, 하
[아련한 음악]
[옅은 한숨]
[휴대 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 이 변호사, 저녁에 나 좀 볼까?
아, 유언
공증을 좀 하려고
상속받을 당사자 없어도
주민등록등본 있으면 되는 거지?
[불길한 음악] 네, 가능합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회장님
[휴대 전화 조작음]
(이 변호사) 오늘 저녁에 유언 공증을 하시겠다는데요
아마도 허준재 군 앞으로 주요 자산을 상속하시겠다는
공정 증서를 작성하시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숨]
뭐가 그렇게 급하신지
(심청) 차시아, 너 나랑 얘기 좀 해
[시아의 헛웃음] (남두) 어, 두 분 얘기 나누세요
나는 볼일이 있어서
무슨 얘기?
내가 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여기선 남자가 여자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경쾌한 음악] (심청) 알잖아, 넌 알아
허준재 앞에만 있으면 머리카락 이렇게
물 마실 때 손가락 이렇게
(심청) 다 봤는데
뭘 또 어떻게 하면 돼? 말해 줘
지금 나한테 뭘 물어보는 거니?
아니면 뭐 오늘도 한판 싸우자는 거니?
(심청) 물어보는 거야, 내가 좀 급해서 그래
뭐가 급한데?
허준재가 날 좀 빨리 좋아했으면 해서
시간이 없거든, 내가
아, 그래?
[시아의 한숨]
준재, 쉬워
- (심청) 쉬워? - (시아) 그럼
준재는... [생각하는 신음]
사람이 눈앞에 안 보이는 걸 좋아해
(시아) 그래야 더 애틋해지나 봐
이렇게 한집에서 맨날 눈앞에 걸리적거리고 그러면 역효과 날 거야
오히려 더 질려 하고 싫어할 거라는 얘기지
아, 그래?
그렇다니까
[연신 콧방귀를 뀐다]
[어이없는 웃음]
거짓말
(시아) 뭐?
너 말할 때 내 눈 안 보고 귀 만지고 머리 만지고
나 다 알아 여기 사람들 입만 열면 거짓말인 거
너랑 대화하는 법을 알았어, 차시아
네가 말한 반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심청) 차시아, 너 이제 가
난 허준재 눈앞에 계속 걸리적거리면서
옆에 딱 붙어 있을 거니까
[기막힌 숨소리]
[문이 쾅 닫힌다]
와, 나 뭐 저런 백여시가 다 있어?
순진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아, 짜증 나
[밝은 음악]
- (준재) 뭐 하냐? - (심청) 어디 가, 허준재?
(준재) 나 도서관
도서관이 뭐야?
공부하는 데야
(준재) 아, 비켜
왜 이래, 얘가 오늘따라
걸리적거리게
[게임 효과음이 흘러나온다]
(심청) [속삭이며] 계획 생겼어? 날 좋아할 계획?
야, 무슨 계획이...
하루 만에 생기냐
아직이구나
그래, 알았어, 내가 시간을 좀 더 줄게
대신 도서관 좀 같이 가
아, 귀찮아, 그냥 집에 있어
(준재) 아, 얘가...
- (준재) 남두 형은? - (심청) 아까 나갔어
그래? 나갔어?
태오 너는 어디 안 나가?
(태오) 안 나가, 오늘은 집에서 쉴 거야
아, 그래
집에서...
[게임기 버튼을 탁탁 두드린다]
하긴, 야, 우리들 중에서
가장 도서관을 가야 될 사람은 너긴 하지
- (심청) 그래? - (준재) 응
아무래도 네가 배움이 많이 부족하니까
응, 완전, 엄청 부족해
할 수 없네, 같이 가자, 도서관
좋아!
(준재) 아, 하지 마, 좀
[준재의 짜증 내는 신음]
(준재) 야, 옷이나 갈아입어,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가게
(준재) 아, 여기 있을게
[헛기침]
(준재) 어, 여기
[작은 목소리로] 여기서 책 좀 골라서 읽고 있어
나는 고문서 쪽에 뭐 좀 찾아볼 게 있어
[큰 목소리로] 허준재
(준재) 쉿!
[속삭이며] 여기선 조용히 해야 돼
[작은 목소리로] 왜?
다들 공부하잖아
나 도서관 좋아
왜?
너랑 이렇게 귓속말하잖아
나 귓속말 좋아
[준재의 수줍은 웃음]
[경쾌한 음악]
[준재의 헛기침]
(준재) 뭐야
도서관에만 오면 이놈의 쪽지들, 참
(여자) 죄송한데 너무 시끄러워서
나가서 떠들거나 자리를 옮겨 주세요 [종이를 바스락 구긴다]
왜, 뭐래?
내가 마음에 든대
잘생겼대, 내가
[고양이 포효 효과음]
[깨갱거리는 효과음] (준재) 야, 야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준재의 난처한 신음]
- (준재) 쉿! - (심청) 알았어
(준재) 김담령
[의미심장한 음악] 조선 선조 5년 임신년
1572년 9월 22일생
이조판서 성찬의 여식 성경선과 혼인하였으나
이듬해 부인은 폐부에 병이 생겨 사망
그 후로 재취하지 않았음
선조 31년 무술년 봄
강원도 흡곡현의 현령으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섣달 열하룻날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사망?
[놀란 숨소리]
[담령의 가쁜 숨소리]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담령) 요즘에 계속 그렇다네
하, 잠들기가 무서울 정도야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생시인지
분간하기가 어렵군
기가 허해지신 모양입니다
그런 걸까
[의미심장한 음악]
선조 31년 무술년 봄
강원도 흡곡현의 현령으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에 섣달 열하룻날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사망?
이보게, 섣달 보름이 얼마나 남았지?
[의원의 생각하는 신음]
(의원) 오늘로 딱 스무 날 남았지요
스무 날이라
[몽환적인 음악]
스무 날
나리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나
(의원) 이 여인의 맥을 짚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소인인 저도 알겠습니다
사람들의 말대로 이 여인이 인어가 맞다면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해선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담령)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의원)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돌려보내시는 게
남은 목숨을 보존시키는 일이라 판단되옵니다
[신비로운 효과음]
(준재) 너 왜 이렇게 일찍 죽었어?
내 나이잖아
[아이의 놀라는 신음]
[반짝이는 효과음]
엄마, 나 이거 주웠어
(심청) 인어 공주는 다시 한번 희미해져 가는 눈으로
왕자를 바라보고는
바다로 몸을 던졌어요
그리고 자기 몸이 거품으로 변해 가는 걸 느꼈어요
[심전도계 작동음] (치현) 너무 염려 마세요
남 부장님 곧 일어나실 거예요
고마워요
근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남 부장님이 술 드시고 운전하실 분이 아닌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블랙박스는 복원이 안 되나요?
네, 안 된다 그러네요
핸드폰도 못 찾으셨고요?
아, 근데
전화기가 제 명의로 돼 있어서
일단 내역서를 뽑아 보긴 했는데
사고 당시까지 특별한 건 없더라고요
이거 제가 가져도 될까요?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그래 주실래요?
제 친구 중에 형사나 검사들이 있거든요
한번 물어볼게요
아, 정말 고맙습니다
아유, 나는 사모님이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라고 하셔서
[의미심장한 음악] 어디서 물어볼 데도 없고 그래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흐느끼며] 감사합니다
[휴대 전화 메시지 수신음]
(남 부장) 준재야, 이따 7시에 연흥동 29-21번지에서 보자
기다리마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아니야, 난 친구 만나고 갈게
누구, 그 공무원?
너, 통금 시간 잊지 마
빨리빨리 들어가라고
안 그러면 확 쫓아내 버릴 테니까, 쯧
(준재) 8시다, 너, 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 (서희) 여보 - (일중) 어, 여보
[문이 달칵 닫힌다] (일중) 갑자기 웬일이야?
(서희) 아, 요 근처에 일 있어서 들렀다가
당신 약속 없으면 같이 밥 먹으려고 왔죠
아, 그래?
아이고, 어쩌나, 내가 선약이 있는데
아, 그래요? 어떤?
아니, 뭐, 송년회지, 뭐
[서희의 어색한 웃음]
그렇구나
아이, 괜찮아요 내가 뭐, 약속하고 온 것도 아닌데, 뭐 [휴대 전화 진동음]
(일중) 아, 잠깐만
어, 나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야
(이 변호사) 아,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집에 아주 급한 일이 생겨서요
[어두운 음악] 혹시 날을 다시 잡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할 수 없지, 뭐
어, 그래
저녁 같이해도 되겠는데
약속 취소됐네
어머나, 잘됐다
여보, 우리 치현이도 불러서 오붓하게 셋이서 먹어요
- 응, 그러지, 뭐 - (서희) 응?
(안전 요원) 누구세요?
유정훈 없어요? 내 친군데
혹시 김혜진 씨?
아니요, 내 이름은 심청인데
아, 그러세요
왜요, 오늘은 없어요?
사실은 그 친구가 며칠 전 새벽에
한강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나서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구조대 병원으로 이송됐을 땐 이미 사망한 후였어요
[애잔한 음악]
[혜진의 다급한 숨소리]
저기요, 혹시 저한테 전화 주신 분인가요?
제가 김혜진인데요
아, 네, 제가 전화드렸습니다
그 사람,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죽었다고요?
죄송합니다
(안전 요원) 이 녀석이 자기한테 무슨 일 생길 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물함에 이걸 남겼더라고요
김혜진 씨 연락처하고요
(심청) 핑크빛? 너무 좋을 때 울면 나오는 그거?
그렇지
(정훈) 근데 그게 여기 있다 보면 그렇게 너무 좋아서 울만큼 기쁜 일이
자주 생기거나 그러진 않아
나도 그런 눈물은 딱 한 번 흘렸어
여기 살면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 난 게
딱 한 번 있었다고 했어요
김혜진 씨 때문에 행복해서 울었다고 했어요
(심청) 그렇게 좋았던 시간을 여기에 남기고 싶었나 봐요
(혜진) 그 사람한테 이런 걸 다 얘기하는 친구분이 있는 줄 몰랐네요
나한텐 늘 비밀투성이였는데
비밀이 싫어서 떠난 거예요?
비밀은 서로 다르니까 만들어져요
다른 걸 들키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서 그 비밀이 결국 서로한테 상처를 내요
숨긴 사람도 속은 사람도
다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서로 다르면
결코 같이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르면 같이 못 가요?
어차피 상대방한테 계속 상처 줄 걸 아는데
같이 갈 수 있겠어요?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훈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애틋한 음악]
한 사람한테만 뛰는 심장이라
이제 굳어져서 결국 죽게 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여기 온 거
진짜 모습을 들켰을 때 왜 그 기억을 지우지 않았냐고 하니까
기억을 지우기엔 너무 좋은 시간들이 많았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기억이 오래오래 남아서
힘이 돼 주길 바란다고 했어요
(혜진) 저 그만 가 볼게요
[흐느낀다]
[혜진이 흐느낀다]
[혜진이 연신 흐느낀다]
[심장 박동 효과음]
[통화 연결음]
[불길한 음악]
[타이어 마찰음]
(준재) 아, 또 어떤 놈이야
[자동차 가속음]
(준재) 당신 뭐야?
무전기도 없고
당신 경찰 맞아?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끊긴다]
[통화 연결음]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통화 연결음]
[긴장되는 음악]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휴대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안도의 한숨]
[휴대 전화 벨 소리] 아, 깜짝...
어, 나야
(심청) 어, 허준재
뭐야? 목소리 왜 그래? 어디 아파?
(심청) 어, 나 좀 아픈 거 같아
(준재) 어디가?
[음산한 음악] 청이 너 어디야, 집이야?
거긴 또 왜 가 있어?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휴대 전화 조작음]
당신이야?
(준재) 얼마 전에 내 뒤 미행하고 집 앞에서 경찰 행세했던 게?
아저씨 어디 있어?
아저씨 전화기를 왜 당신이 갖고 있어?
(대영) 질문이 너무 많네
(준재) 왜 많겠어?
빨리 질문하고 빨리 답 듣고 가려고 그러지
(준재) 내가 지금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얼른 가 봐야 되거든
(대영) 지금 못 가
[대영의 기합]
[가스총 발사음] [대영의 괴로운 신음]
[준재가 라이터를 퐁 연다] [대영의 괴로운 신음]
[대영의 괴로운 신음]
[대영의 괴로운 신음]
[준재의 놀란 숨소리]
[대영의 기합]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대영의 기합]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준재와 대영의 기합]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대영의 기합]
[자동차 경적이 연신 울린다]
[긴박한 음악] [준재의 힘주는 신음]
[자동차 경적이 연신 울린다]
[대영의 힘주는 신음]
[준재의 힘주는 신음]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준재의 힘겨운 신음]
[준재의 힘겨운 신음]
[준재의 가쁜 숨소리]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준재) 어, 여기 주소가 연흥동 29-21번지 미분양 건물이야
태오랑 30분 안에 못 오지?
아니,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해서
경찰 불러 줘?
어, 해, 나도 같이 잡혀가게
(남두) 야, 그렇게 이상하면 들어가질 마
주변에 총알택시나 몇 대 불러 줘 한강까지 따따블로
그게 경찰차보다 더 빠를 수 있다
와서 클랙슨 시원하게 울려 주시라고 하는 거 잊지 말고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준재의 힘겨운 신음]
나오세요들
요금 받아 가셔야죠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준재의 힘겨운 신음]
(준재) 한강까지 제일 빨리 가실 수 있는 분
내가 10배 드릴게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택시 기사) 이, 이 차 타시죠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준재의 힘겨운 숨소리]
(준재) 아저씨
좀만 빨리 가 주세요, 빨리
(택시 기사) 네 [휴대 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얘는 꼭 이렇게 충전을 안 해 놔 [휴대 전화를 달그락 내려놓는다]
조금만 빨리 가 주세요
애가 아픈데 혼자 있어서 그래요
손님이 더 아프신 거 아니에요?
하, 빨리 좀
어차피 상대방한테 계속 상처 줄 걸 아는데
같이 갈 수 있겠어요?
진짜 같이 못 가나
[준재의 힘겨운 신음]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아, 어디 간 거야, 날도 추운데
[준재의 아파하는 신음]
너나 빨리 돌아가, 기회 있을 때
넌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심청) 가야 하나
[잔잔한 음악]
(준재) 가긴 어딜 가
[힘겨운 숨소리]
(심청) 허준재
너 괜찮아?
너는? 넌 어디가 아픈데?
너 또 안 보고 막 길 건너다가 다친 거 아니야?
허준재
너 왜 다쳤어, 어?
묻잖아, 넌 왜 아프냐고, 어?
허준재
난 너한테 아무것도 말해 줄 수가 없어
난 비밀투성이야
그렇지만 내 비밀 때문에
네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상처받거나 그러는 거 싫어
결국은 너를 슬프게 만드는 것도 난 싫어
싫으면?
나 돌아갈게
내가 원래 있었던 데로
더 늦기 전에
혹시
너 좋아할 계획 생기면 얘기해 달라 그랬지
생겼어, 계획
그러니까
가지 마
괜찮으냐?
저는 이제 바다로 돌아가겠습니다
[몽환적인 음악]
그게 서로가 사는 길임을 잘 알겠습니다
처음 헤어졌을 때처럼
나에게만 추억이 있고 나리에겐 없는 채로
그렇게 서로의 세상을 살아갔어야 했는데...
이젠 다시 오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나리도 다 잊고...
하나만 묻자
처음 헤어졌을 때
어찌하여 내 기억을 지웠느냐?
지우지 않았으면
내내 아파하셨을 것을 알았으니까요
지우지 않았다면
내내 그리워할 수 있었겠지
이번엔
지우지 말거라
지우면 안 된다
이 기억은, 이 추억은
아파도 끝까지 가지고 갈
나의 것이다
[애잔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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