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달빛 아래서 1
[음산한 음악]
[긴장감 고조되는 음악]
(성균) 나의 아버지는 정원사였다
(성균) 보름에 한 번씩
(성균)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알려진 마을의 어느 저택을 찾아가
(성균) 정원을 손질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성균) 사람들은 귀신에게 홀렸다고도 했고
(성균) 미쳐버린 살인범이라고도 했다
(성균) 그 집 정원에서는
(성균) 유난히 들꽃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성균) 이상하게도
(성균) 아버지가 그 집 정원을 손질하러 갈수록
(성균) 무덤가에 자주 핀다는 들꽃들이
(성균) 더욱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음산한 음악]
(성균) 그 집 정원에서 나던 죽음의 냄새를 다시 맡은 건
(성균) 내가 성인이 된 후 대학에 입학해서였다
들꽃 냄새가...
[고양이 울음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긴장감 있는 음악]
강우야
응?
야! [쯧]
[문 세게 닫히는 소리]
[한숨]
기차표 예약 완료!
(선길) [웃음]
이번 주 스케치 여행 장소는
물향기수목원이고 그리고...
그리고 간만에 회식이 있으시겠습니다!
강우가 쏠 거야 강우가 분명히 쏠 거야
그림은 아주 발로 그리는 것들이...
- (수진) 꼭 저래요 - (선길) 에이
나도 끼워 줘
[어이없다는 웃음]
정식 가입절차 없이 멤버 받은 역사가 없는데
전공 시간에도 안 나타나던 새끼가, 제멋대로
(선길) 아니 근데 반말이야, 아이씨
아, 갑자기 기분 다크해지네
가뜩이나 계집애들 취미 같다고 남자 멤버 안 붙는데 왜 그래
(수진) 가입절차가 뭐 따로 있어? [책상 두드리는 소리]
지금 하면 되는 거지
시간은 30분 석고상은 원하는 대로
후달리면 그냥 원기둥 그리든가
야, 갑자기 이런 걸 시키면 어떡해
그냥 다음에...
(성균) 제일 좋아하는 석고상이 뭐야?
어?
카파, 비너스
(선미) 쟤 이번 연도 신입생 한성균이지?
(선미) 완전 분위기는 다크해가지고
(선미) 맨날 혼자 다녀서 이상한 애로 유명하잖아
(가람) 수업시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가람) 리포트랑 시험 성적은 올 A+이라서
(가람) 완전 미스터리로 통해요
(가람) 근데 별명이 ‘미대 저승사자’예요
(가람) 쟤 심기 건드리면 반드시 복수한대요
(가람) 오, 소름 끼쳐
(선미) 여자한테 실연당해서 저렇게 됐다는 소문도 있던데
(선미) 오,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성균) 그럼 됐지? 앞으로는 귀찮게 하지 마
(선길) 저 새끼가 진짜...
석고상은 보지도 않고 그렸어
(수진) 그 짧은 순간에
빛의 방향을 외운 거야
대단해
동아리 멤버 된 거 축하해
(강우) 뭘 그렇게 봐
아, 이번에 우리 동아리 들어온 거야?
반갑다, 나 알지?
서양화과 과대!
미대 프린스 이강우 후배님 모르면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지
(선길) 근데 강우야 얘, 아웃사이더니까 신경 꺼
[평화로운 피아노 음악]
(월하) 저거 껴안고 자면 잠 잘 오겠다
(강우) 사줄까? 이거 얼마예요?
(노점상) 3만 원입니다
됐어, 3만 원이면 일주일 점심값이야
(강우) 그러면, 훔칠까?
뭐?
저...
- (강우) 뛰어! - (월하) 야, 아악!
[가쁜 숨]
- 자, 오늘부터 잠 잘 자야 돼 - (월하) [한숨]
야, 이강우! 너 지금 도둑질했어?
누가 훔친 거 가지고 싶대?
아니, 네가 만 원 넘는 거 사면, 안 받아 주잖아
[한숨]
(강우) 구두쇠 아가씨 저를 받아 주세요
뿌루삐 삐삐삐삥
(강우) 자
(강우) 아이구, 아이구
[음산한 음악]
가시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들어가세요 저 버스 타고 갈게요
가자
허 참, 하하하
[평화로운 음악 전주]
[‘검은 달빛 아래서 파트 1’ 재생 중]
정리 다 했어, 이제 갈까?
이강우랑 헤어져
너한테서 들꽃 냄새가 나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이강우한테서 떨어져
죽기 싫으면
[새 울음소리]
방금 여기 있던 사람 한성균 아니었어?
어, 그림 보여 주더라고
아
(월하) 정리 다 됐으니까 이제 가자
- (부원) 뭐야! - (선길) 왔어?
(선길) 잘 그렸어?
(부원) 뭐 하는 거야
어우, 지친다
야, 그러면 이제 우리 대망의 회식 장소로
이동합시다!
- (부원1) 오늘 얘 취할 것 같아 - (부원2) 아싸!
(부원1) 앗싸! 신난다
(부원) 같이 한잔해
(부원) 원샷해, 원샷해
(부원) 원샷! 원샷!
[환호성]
아...
아니 근데
(가람) 제가 입학할 때부터 너무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가람) 그... 우리끼리는 강우 오빠를
‘인간 로또’라고 부르거든요
(수진) 야, 너 또 뭐라니?
술이나 마셔
아니, 아니
(가람) 사실 우리 강우 오빠가 잘생겼지
(가람) 집안도 좋지
그리고 성격도 완전 좋으니까
(가람) 근데 그 로또를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월하 언니가 딱!
(가람) 맞았잖아요
(가람) 도대체 월하 언니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수진) 야, 너 배고프지?
너는 말이 너무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을 거야, 그렇지?
자, 먹어, 먹어
수진 언니!
야, 그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이강우의 어떤 점이 좋았어?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야, 너 진짜 소문대로 여자 한 번 물면 안 놓는 싸이코냐?
- (선길) 입 안 닥쳐? - (수진) 야!
궁금할 수도 있는 거지 너야말로 왜 오버야?
이 새끼들이 진짜
(부원들) 그만, 그만...
그만들 해
왜인지는 몰라 분명한 건...
우리가 사랑한다는 거야
곧 평생 함께할 사이가 될 만큼
뭐야, 깜짝 프러포즈?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야?
(선미) 와!
어머니도 아시는 거야?
어디야?
회사지
(강우) 오늘 학교 안 가고 경영 수업 나가는 날인 거 알잖아
그 회사 나쁜 회사네
(월하) 생일날도 퇴근 시간 지나도록 일 시키고
그러게 누구네 회사인지 말이야
(월하) 애인이 회사 앞까지 찾아와도
(월하) 계속 일 시킬 만큼 나쁜 회사는 아니지?
[긴박한 음악]
어, 송월하!
[음산한 음악]
오, 내 아들
엄마, 집에서 보자니까 기다리신 거예요?
그럼, 누구 아들인데
- (강우 모) 가자 - (강우) 가시죠
[‘Maybe’ 연주 중]
축하해
엄마가 너무 욕심부린 건 아니니?
뭐가?
5학년 때 네 생일이었나?
(강우 모) 엄마가 너 낳느라고
고생했던 얘기를 이모랑 한창 하고 있었는데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네가 갑자기 그러더라
‘엄마 미안해요’
‘이제부터 제 생일은 전부 엄마 거 하세요’
딱 스무 살 때까지만 너하고 생일 같이하고
다음에는 네 친구한테 널 양보하려고 다짐했었는데
그러면
다시 서른 살까지로 바꿔
[휴대전화 문자 소리]
[긴장감 도는 음악]
그 아가씨 속상하겠다
[음산한 음악]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 멋진 아들한테
아직 애인이 없으면 이상하지
집에는 왜 안 데리고 오니?
[긴장감 도는 음악]
(수진) 그 선물은 왜 자기 주인을 못 만나고
눈치 없이 거기 그러고 있냐?
짠, 한잔할래?
[한숨]
(수진) 넌 강우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강우네 집에 대해 아는 게 없단 말이야?
뭐, 신문에 나오는 내용 정도?
(월하) 강우 어머니가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의
존경받는 여성 CEO고
(월하) 강우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는
어머니 혼자 강우 키우시면서
회사도 일으키셨다는 거?
그럼 진짜 월하 너같이 가난한 고학생은 눈에 차지도 않겠다
그런 뜻이 아니라...
괜찮아
난 다 이해해
우리 엄마도 날 혼자 키워서
유난히 애틋하시니까
(강우 모) 집에는 왜 안 데리고 오니?
[긴장감 도는 음악]
금방 갔다 올게요, 딱 1시간
엄마 깨기 전에는 돌아올게요
(강우 모) [발소리]
(강우 모) 어떡하지? 엄마가 벌써 깼는데
날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안 돼,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렴
아니
가야겠어
강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엄마, 이건 엄마가 아픈 거하고 다른 문제야!
(강우 모) 이번이 벌써 7번째 수술이야
아직 졸업도 안 한 너를 경영에 참여시키면서까지
내가 죽기 전에 널 위해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내 한평생을 바쳤어
네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세상에 많지만
엄마는
단 하나란다
엄마, 나 엄마랑 월하 중에
(강우) 선택하고 싶지 않아
(강우) 두 사람 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두 사람
다라고 했니?
(강우 모) [거칠어지는 숨]
상자를 준비해야 되겠구나
엄마...
왜 왔어
내일이면 어차피 학교에서 보는데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선물 받으러 왔지
나 깜빡하고 안 가지고 나왔는데
[‘검은 달빛 아래서 파트 2’ 재생 중]
(강우) 보고 싶었어
나한테 있어서
진짜 선물은 너야
내가 해 줄게
(강우) 네 이름처럼 예쁜 달이야
항상 내 옆에서
(강우) 나를 밝혀줘서
고마워 우리...
함께하자, 영원히
(강우) 너한테 없는 건 내가 다 채울게
(강우) 난...
너만 있으면 돼
강우야
[‘검은 달빛 아래서 파트 2’ 재생 중]
(수진) 평생 한 번뿐인 프러포즈니까
다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 (수진) 알았지? - (부원들) 네!
강우 오빠 오늘 진짜 프린스네
근데 5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월하가 왜 이렇게 늦지?
(전화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월하 전화기가 꺼져 있어
마지막으로 연락한 사람이 누구야?
[긴장되는 음악]
(선길) 야, 이 새끼야! 지금 어딜 밟는 거야!
(선길) 아, 진짜...
월하가
죽었어
(강우)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수진) 놔, 놔
그게 무슨 말이야?
월하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어
[울음소리]
[울음소리]
월하야, 월하야...
경찰에서는
우리 월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월하가 입었던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이야
[헉]
[훌쩍임]
교통사고 아니지, 응?
이거는 흙구덩이에 파묻혔던 것 같잖아
이 피 좀 봐, 우리 딸이
살려 달라고 엄마 살려 달라고
울부짖잖아!
(수진) 진정하세요
(월하 모) 월하야
(주혜) 안녕하세요, 이번에 서양학과에 새로 편입한 진주혜라고 합니다
(강우) 월하야
쟤 송월하 아니야?
아니야, 나도 월하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어
하지만 월하가 아니야
월하가 아니라고?
저 애가 챙겨온 물건들하고 신분증, 가족사진까지
(수진) 전부 몰래 뒤져봤어
월하가 아니야
저 애 수첩에 있던 거야
그래, 닮았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이야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한테 일어나는 거지?
이강우, 괜찮은 거지?
(수진) 강우야
똑똑, 들어가도 됩니까?
(주혜) 이미 반은 들어왔지만
(가람) 진짜네? 수진 언니 말이?
(가람) 도플갱어도 아니고 뭐야?
완전 섬뜩해!
아!
아니에요, 들어와요
[경쾌한 음악]
화실 다닌 적 없나 봐요?
네, 형편없죠?
(주혜) 아, 쪽팔려
미술학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주혜) 실기 성적 대신
영어 성적으로 편입할 수 있는 이 학교 지원한 거고
그래서 제가 데생 동아리부터 찾은 거라니까요
(선미) 근데
왜 식품영양을 전공하다가
서양화과로 편입했어요?
아빠가 캐나다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하시다가 한국 들어오셨어요
식품영양, 영어 다 아빠 영향이잖아요
난 물감 냄새가 좋아요
(월하) 강우야, 난 있지
(월하) 이 물감 냄새가 너무 좋아[웃음]
아니야, 절대 아니야
월하는 죽었는데
월하는 죽었어, 죽었다고!
(강우) [울음소리]
(선길) 가슴 속에 월하만 품고 살던 녀석이
분명히 월하가 아닌데
월하처럼 자꾸 마음에 들어오니까 괴로운 거야
혼란스럽고
(강우) [오열하는 소리]
죽었는데, 죽었는데...
일어나
(강우) [울음소리]
너무 자책하지 마
어쩌면 우리한테는 선물인지도 몰라
작별 인사조차 할 기회 없이
그렇게 준비 없이 월하를 떠나보낸 우리한테
하늘이 주는 선물
어?
혹시 이거 저 그리신 거예요?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잠깐 동아리에서 봤었는데
서양화과 과대시죠?
초면에 이거 모델료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바이올린 음악]
(월하) 그거 내 물통인데
안녕, 나 같은 과 동기 송월하야
벌써 네 옆에서 이젤 쓴 지 3주째 되어가는데
나란 애가 있는지도 몰랐지?
내일 수업 끝나고 뭐 하세요?
네?
(강우) 모델료 달라면서요
같이 밥 먹을래요?
[경쾌한 음악]
- (강우) 저렇게... - (주혜) 더 무섭게?
(주혜) 이러면 안 되는데...
왜 그래? 뭔데?
이번 주에 데생 여행 가기로 했던 야외 미술관이
내부 사정으로 휴관 된다는데?
어떡하지?
이번 여행은 동아리 창설 기념으로
1박하고 놀러 가기로 했잖아요
아, 안돼!
(수진) 당일치기라면 모를까
당장 1박할 장소를 어디에서 구하냐?
(수진) 큰일이네
아, 강우야
왜, 별장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렸을 때 살았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 살아서 비어 있다는
(선미) 와! 1박 하기 딱이네
집이니까 숙소 따로 안 잡아도 되고
실컷 마시고 떠들어도
(선미)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그래
[환호]
[음산한 음악]
(선길) 선미 왜 이렇게 늦어?
(가람) 저기 온다! 언니 빨리 와!
[가쁜 숨소리]
미안, 미안, 미안해
다 왔지? 총 6명인가?
(선길) 오케이! 그럼 출발하자
아니, 한 명 더 올 거야
[긴장감 도는 음악]
(가람) 어, 저거 아니야?
(가람) 크긴 크다
(선미) 어마어마하다
(가람) 부잣집 같긴 한데...
꼭 ‘헨젤과 그레텔’에 나올 것 같은 집이다
으스스해요
동아리 창설 기념 스케치 여행인데
이 정도 유니크함은 되어야지
야, 가자, 가자 빨리 가자, 덥다, 빨리 가자
[음산한 음악]
(선길) 자! 대충 둘러봤으면
해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각자 원하는 위치에서 스케치하고
2시간 후에 여기 거실에서 만나자, 오케이?
- (선미) 오케이! - (가람) 네, 오빠
잠깐만, 잠깐만
나랑 같이 있어
나 데생 여행 처음인데, 나도 다른 애들처럼 혼자 그려 볼래
[음산한 소리]
[음산한 음악]
(성균) 거기는 창고야
(성균) 화장실은 2층 왼쪽 끝에 있어
뭐야, 꼭 자기 집인 것처럼 말하네
[액체 흐르는 소리]
[가쁜 숨]
[비명]
[심장 박동 소리]
[액체 튀는 소리]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