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백서 11
[문이 달칵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덜컹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자기 엄마가 아프다는데 연락 한 통 없고
가문의 원수한테도 이거보단 관대하겠다
아휴, 아들놈은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
(미숙) 아유, 얘 좀
[미숙의 한숨]
아유, 세상에, 어머, 어머
어머머, 웬일이니, 아유, 정말
[미숙의 깊은 한숨]
아휴, 아유, 진짜
아유, 정말, 아유
[잡지를 사락 넘기며] 이걸
이거 왜 다 버렸어?
[잔잔한 음악]
(준형) 그래서 엄마가 원하는 게 뭐야?
결국 이 결혼이 깨졌으면 좋겠어?
[잡지가 사락거린다] [한숨]
[한숨]
그만하자
우리
죄송해요
지금 뭐 하는 거야?
[나은이 팔을 탁 뿌리친다]
더는 못 하겠어
아, 그러니까 뭘 못 하겠는데?
왜 못 하겠는데!
나은아
[떨리는 숨소리]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해서 되는 말이 있고 안 되는 말이 있어
(준형) 넌 어떻게 그렇게 헤어지자는 말을!
화나서 하는 말 아니야
그럼 어쩌자고?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자고?
진짜 이렇게 끝내자고?
어
[멀어지는 발걸음]
[한숨]
[떨리는 숨소리]
[한숨]
[상자 뚜껑을 달그락 놓는다]
[물건을 탁 넣는다]
[액자를 달그락 넣는다]
[차분한 음악]
[울컥하는 숨소리]
[흐느끼는 숨소리]
(나은) 무서웠다
[흐느낀다]
점점 끝이 보이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내가 먼저 질렀다
조금이라도 덜 상처 주고 싶었으니까
아니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싶었으니까
[나은이 연신 흐느낀다]
[한숨]
(준형) 그럼 어쩌자고?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자고?
진짜 이렇게 끝내자고?
어
헤어지자는 얘기가 쉽게도 나오네
결혼이 장난도 아니고
그래, 좋아
나도 못 해 먹겠다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미숙) 어
왔어?
[준형의 한숨]
[문이 잘칵 열린다] [한숨]
[한숨]
[스위치 조작음]
(미숙) 그러고 가서 연락도 없더니
엄마 보고 인사도 안 하냐?
넌 엄마에 대한 예의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왔어?
할 말 있어서 온 거니까 일어나 앉아 봐
아휴, 좀
아유, 좀 일어나 봐
엄마 참다 참다 못 참아서 왔어
내일모레 결혼식인데
이렇게 가타부타 말이 없으면 어떡하니?
(나은) 더는 못 하겠어
그만하자
우리
[한숨]
서준형!
(미숙) 아, 진짜
"KE 그룹"
(수연) 몸이 안 좋아서 연차요?
[사무실이 분주하다] [흥미진진한 음악]
나은 선배가 우리한테 말도 없이 연차를 냈다?
그것도
웨딩 촬영 한 직후에?
[사무실이 분주하다]
[깊은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희선) 준형 씨 오늘 출근했어요?
(민우) 출근은 했는데 상태는 안 좋네요
아, 뭐, 무슨 일 있어요?
(희선) 나은이가 연차 쓰고 출근을 안 했어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건지
[한숨] 준형 씨한테 물어봐 줄 수 있어요?
[민우의 한숨]
[한숨]
(민우) [작게] 저…
[한숨]
왜?
(민우) 어?
아
아이씨, 뭔 일 있나 해서
네가 그거 알아서 뭐 하게?
아니
나은 씨 오늘 출근 안 했다길래
출근을 안 했다고?
[감성적인 음악]
[새가 지저귄다]
[휴대전화 진동음]
(플래너) 청첩장 나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스튜디오 촬영분은 어떻게 할까요?
예식장 계약 진행은 어떻게 할까요?
[한숨]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한숨]
어서 오…
아이고
- 아유 - (수찬) 아이
[살짝 웃는다]
(달영) 자, 드세요
(미숙) 감사합니다
[수찬이 호응한다]
아, 사무실 분위기가 정겹고 참 좋은데요? [달영의 힘주는 소리]
[수찬의 웃음] (수찬) 아유, 감사합니다
아, 커피 맛은 괜찮으세요?
아, 네, 맛있는데요
[어색한 웃음]
아…
근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아, 저, 애들 문제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뵀어요
아, 저, 송구스럽습니다마는
(수찬) 안사돈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한 말씀 먼저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수찬) 그, 이번에, 그 애들 신혼집 구하러 다니면서
저희 집사람이 좀 실례를 한 거 같은데
[익살스러운 음악] 그 부분에 대해서 먼저
사과를 좀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이, 사돈어른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했어야 됐는데 [수찬이 숨을 씁 들이켠다]
좋은 집을 보고 이 사람이 그냥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실례를 하게 됐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좀 이해를 해 주십시오
아휴, 아니에요
사실 저도 그날 잘한 건 없죠
(미숙) 아이, 부동산은 안사돈 전문 분야이신데
제가 무턱대고 반대만 한 거 같아서
집에 가서 후회 많이 했어요
(수찬) 아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뭐, 안사돈께서 걱정하시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 큰돈 들이는 일인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따져 보는 게 맞죠
그날 바깥사돈어른도 함께 가셨으면 참 좋았을…
[수찬의 웃음]
(수찬) 제가 그게 태어나서 두 번째로 후회되는 일입니다
[수찬의 웃음]
첫 번째는요?
[수찬의 어색한 웃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왜 날 봐?
[웃음] [수찬이 커피를 후루룩 마신다]
왜 웃으세요?
(미숙) 아, 아
[헛기침]
아, 제가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뵌 이유는요
혹시 나은이가 무슨 얘기 안 했나 싶어서요
무슨 얘기요?
우리 준형이가 요새 저렇게 힘들어하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둘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수찬의 의아한 숨소리]
아, 별소리 없었는데
당신은?
아, 나은이 요새 나 피해 다녀서 얼굴도 못 봐
아니, 근데 둘 사이의 문제라면?
상황이 좀 많이 심각한 거 같아요
심각…
아니, 얘들이 심각하면 어떻게 해 결혼식이 내일모레인데?
아, 심각하게 만든 게 누군데 그래?
범인은 이 안에 있어
[흥미진진한 음악]
아니, 나는…
아이, 아이, 저, 가타부타 핑계 댈 생각 하지 말고
(수찬) 책임지고 수습할 생각을 해, 알았어?
아, 네
(수찬) 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멋쩍어한다]
[희선의 한숨] 뭐야?
(희선) 뭔데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연차 쓰고
어? 여기 와서 이렇게 분위기 잡고 있어?
남친분이랑 싸웠어요?
[한숨]
아니
(희선) 그럼?
헤어졌어
[희선의 한숨]
헤어졌어, 우리
[헛웃음]
웃기지 마, 너희가 어떻게 헤어져?
(수연) 농담이죠?
그냥 남친분이랑 잠깐 싸운 거죠?
[피식 웃는다]
[잔잔한 음악]
진짜로 헤어지게?
(수연) 왜요?
뭐, 웨딩 촬영 때 남친분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냥
그냥 더는 못 하겠어서 [한숨]
(나은) 싸우고 사과하고
어쩔 수 없이 넘어가고
이러는 거 더는 못 하겠어서
내가 그만하자고 했어
저, 그래도요, 선배님
결혼 준비 하는 내내 이러는데
우리가 결혼하면 어떨지
답이 너무 뻔해
(희선) 그래, 잘했어
[희선의 한숨]
(수연) 아이, 그…
아, 선배님까지 왜 그러세요?
아니다 싶으면 빨리 헤어지는 게 나아
(희선) 결혼하고 헤어지려고 해 봐 그게 더 힘들어
그래, 이혼보단 파혼이 낫지
잘했어, 김나은
야, 우리 나은이 꿀꿀한데 노래나 부르자
- (수연) 아, 그러지 좀… - (희선) 빨리 나와
- (희선) 야, 아, 빨리 와 - (수연) 그래도…
(수연) 아이참 [버튼 조작음]
[강렬한 반주가 흘러나온다]
[한숨]
[기계 작동음]
(수연) 선배, 오른쪽
아, 좀 더 오, 오른쪽으로 선배님, 오른쪽
(나은) 기다려 봐, 얘야! [나은이 버튼을 탁 누른다]
(수연) 오! [나은의 안타까운 탄성]
(나은) [술 취한 말투로] 아 이거 너무하잖아, 이거
[수연의 한숨] 씨, 사기 아니야?
야, 정신 차려
(희선) 야, 정신은 네가 차려야 될 거 같은데?
(나은) 아, 진짜
어? 돈이 없네
- (나은) 수연아 - (수연) 네?
돈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깨닫는 숨소리]
(수연) 다녀오겠습니다!
그냥 하나 사자, 어?
그게 더 싸게 먹힐 거 같다
(나은) 아, 언니 수연이 손 아프겠다
[수연이 아픈 척한다]
(희선) 아휴, 아유, 이 원수들 [가방을 뒤적거린다]
아유 [수연의 탄성]
- (나은) 자, 자, 자 - (수연) 자
- (수연) 나온다, 나온다 - (희선) 자
[수연의 웃음] (수연) 감사합니다, 선배님
다녀오겠습니다, 선배님
(나은) 얼른 갔다 오세요, 후배님
(수연) 네
[나은의 한숨] 그만하시죠, 후배님
안 돼
얘 꼭 뽑아야 돼
(희선) 이거 뽑아서 뭐 하려고?
이별 기념으로 하나 챙길 거야
[한숨]
[희선의 한숨] [스틱 조작음]
(나은) 아, 돈이 없네 [나은이 버튼을 탁탁 누른다]
진짜, 씨, 돈이 없잖아
돈 바꾸러 어디까지 간 거야?
빨리빨리 와야지!
[나은이 숨을 후 내뱉는다]
너 이러지 말고 빨리 준형 씨한테 전화해
안 돼
그런 청승 안 떨 거야
이건 청승 아니고?
너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 끌다 진짜 헤어진다 [스틱 조작음]
언니는 내 얘기 뭘로 들은 거야?
우리 헤어졌다니까
너희가 말 한마디로 헤어질 사이니?
그럼?
마음이 끝나야 진짜 끝난 거지
(희선) 너 마음 정리 할 자신 있어?
준형 씨 다신 안 볼 자신 있냐고
[편안한 음악]
잘 생각해
준형 씨가 싫은 건지 이 상황이 싫은 건지
준형 씨가 싫어진 거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상황이 싫은 거면
준형 씨랑 같이 답을 찾아봐
헤어지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같이 답을 찾는 건 지금 아니면 못 해
[한숨]
(희선) 잘 생각해
준형 씨가 싫은 건지 이 상황이 싫은 건지
(나은)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해지는 사람을 만나'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매일을 함께하자 약속하려 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경청하고'
'서로의 일을 누구보다 응원하는'
'사랑 가득한 가족이 되겠습니다'
'예쁜 사랑이 결실을 맺는 날'
'아름다운 여정의 시작을 함께 축복해 주신다면'
'더없는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어때?
(준형) 음…
감동이다
[나은의 웃음]
(준형) 진짜 잘 썼다
(나은) 괜찮아?
그래, 그럼 이걸로 하자
[준형의 웃음]
[청첩장을 탁 내려놓는다]
[준형의 한숨]
[도어 록 조작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미숙) 어머
[도어 록 작동음] 어머
집에 있네?
엄마
[살짝 웃는다] 저녁은?
[달그락거리는 소리]
(미숙) 너
나은이랑 문제 생긴 거야?
찌개 맛있네
아, 결혼이 이제 코앞인데 엄마도 뭘 좀 알아야 될 거 아니야
정리되면 말할게
정리?
(미숙) 아, 너희들 정말 크게 싸웠어?
혹시 어른들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어른들은 이미 만나서 오해 다 풀었어
그러니까 너희도 얼른 화해해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자존심 세우고 그러지 말고
너 나은이 이겨서 뭐 할래?
나은이 못마땅해하는 거 아니었어?
아, 내가 무슨 나은이를 못마땅해해?
생각해 보면, 뭐
그날 나은이가 잘못한 것도 없지, 뭐, 쯧
(미숙) 잘하고 있는 애들 괜히 옆에서 흔들어서
문제 만든 내 잘못이고 내가 주책이지, 뭐
갑자기 적응 안 되게 왜 이래?
걱정되니까 그러지
(미숙) 네가 나은이라면 얼마나 죽고 못 사는지 뻔히 아는데
(준형) 뭘 또 죽고 못 살기까지
[미숙이 피식 웃는다]
너 그렇게 연애했어도
엄마한테 소개시켜 준 여자는 나은이 하나뿐이었어
(미숙) 알아?
그뿐인 줄 알아?
만난 지 석 달도 안 돼서 소개해 줘 놓고는
갑자기 결혼한다 그래서 내가 진짜
기함을 했었잖아
어유, 생전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서두르는 거 보니까
'얘들이 무슨 사고라도 쳤나?' 싶었다니까
그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확신이 있었으니까
'나은이랑 결혼할 거다'?
(미숙) 왜?
뭘 보고?
김나은이었으니까
[차분한 음악]
(미숙) 응?
(준형) 김나은이니까
이 여자가 내가 제일 사랑하는 김나은이라서
결혼하고 싶은 거야
평생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주고 싶어서
나은이여서 그랬다고
그 여자가 김나은이어서
[익살스러운 효과음] [숨을 후 내뱉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수찬) 아, 여기서 잘 거야?
그럼 이불 갖다주고
아, 베개도 갖다줘야지
어이구, 베개까지?
참 우리 딸 야무지네, 어?
[웃음]
그럼, 내가 야무지지
아, 신소리 그만하고 얼른 일으켜
(달영) [버럭 하며] 아 빨리 못 일어나?
[나은이 힘준다]
- (나은) 엄마 - (달영) 왜?
나 시집 안 간다
(수찬) 에이
[흥미로운 음악]
(달영) 술을 도대체 얼마나 처먹고 온 거야
(나은) 엄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가 결혼을 안 한다는데
내 결혼이 파투 났다는데
너, 이… [달영의 못마땅한 소리]
(나은) 응?
미안해할 거 없어, 괜찮아
이건 엄마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야
그냥 그렇게 된 거야
[한숨]
일이 그렇게 됐어
우리가
오빠랑 내가
헤어진 거야
어유, 창피해 죽겠어
(달영) 얼른, 얼른 안 들어와?
아, 왜 창피해?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아휴, 난 골이 아프다
[한숨]
미안해, 아빠
내가 진짜 다음에는 더 잘할게
(준형) 다음?
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결혼 준비 한 번 해 봤으니까
내가 다
다음에 더 잘할…
[강조되는 효과음]
[잔잔한 음악]
어?
아휴
[나은이 의아해한다]
[숨을 씁 들이켠다]
[피식 웃는다]
[준형이 픽 웃는다]
[잔잔한 음악]
아니, 그냥 이거…
(준형) 아이,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아, 내가 일어날게, 편하게 앉아
[준형이 혀를 쯧 찬다]
(나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준형) 우리 청첩장 나왔어
그래서 뭐?
- 나은아 - (나은) 그렇게 부르지 마
앞으론 '김나은 씨'라 불러
(나은) 나 오빠랑 편하게 지낼 생각 없으니까
아주 철천지원수 될 거야
아이, 뭘 그렇다고 또 철천지원수까지 돼요, 김나은 씨
그렇게도 부르지 마
(나은) 나 기분 안 좋으니까 그냥 내 이름 부르지 마
아, 대체 어쩌려고 이래?
어쩌기는
오빠랑 결혼 안 한다고
'디 엔드', 끝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다 들었지
(준형) 다음 기회 노리며
다음번엔 더 잘해 보겠다는 얘기도 들었고
(나은) 그럼
뭐든 경력자가 유리한 편이니까
아, 좀
왜요?
아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울먹이며] 나쁜 놈
[헛웃음 치며] 아, 뭐라고?
내가 진짜 오빠 사랑했는데
(준형) 아이…
아, 또 뛰네
(준형) 나은아
김나은 씨
나은아
끝나긴 누가 끝나? 우리가 왜 끝나?
[한숨]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거야?
(준형) 너야말로 어쩌자는 건데?
우리 며칠 전까지 결혼 준비하던 사이야
근데 갑자기 '진짜 사랑했었다'니
왜 과거형인데?
너 혼자 헤어지자고 하고 너 혼자 마음 정리하면
우리 사이가 끝이야?
아, 어떻게 너는 나한테 화가 났다고 해서
헤어질 생각부터 하냐?
둘이서 같이 잘 풀어 나갈 생각을 해야지
내가 헤어질 생각부터 했다고?
아니
(나은) 난 오빠랑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어
근데 피한 건 오빠잖아
그놈의 미안하단 말만 하면서
또 시작이냐며?
지긋지긋하다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해?
같이 있어도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서로 불편해서 어떻게 결혼을 해?
(준형) 아, 그건 불편해서가 아니라
너랑 또 싸우게 될까 봐…
그러니까
(나은) 또 싸우기 전에
더 싸우기 전에 그만하자고
아, 누구 마음대로 그만해?
뭘 그만해?
오빠
난 너랑 못 헤어져
아, 왜?
지금도 사랑하니까
[감성적인 음악]
처음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아니,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준형)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
나는
너 없인 못 살아
그러니까 나은아
우리 이러지 말자
앞으로 잘 맞춰 나가 보자
내가 진짜 잘할게
(주민) 빨리 받아 줘
야밤에 유난 그만 떨고
[주민들이 웅성거린다] [주민의 웃음]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주민의 웃음]
아이고
[한숨]
- (주민) 싸우지 말아, 응? - (준형) 네, 고맙습니다
(수찬) 이제 동네 사람들한테 청첩장 안 돌려도 되겠구먼
동네 사람들 한 방에 다 알아 버렸으니 [수찬의 기가 찬 숨소리]
(달영) 동네 창피해서 진짜, 쯧
[수찬의 웃음] 들어가, 들어가
(수찬) 아이고
(준형) 괜찮아?
속 많이 불편해? 물 좀 사다 줄까?
(나은) 아이, 쪽팔려서 그래 동네 창피해서
[피식 웃는다]
웃지 마
[한숨]
사랑해
(준형) 내가 아직도, 아니
여전히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못 헤어져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앞으로 우리가 안 싸울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엄청 싸울 거야
(준형) 어떻게 안 싸우겠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집에 살게 되는데
아마 엄청날 거야
그런데도 나랑 살겠다고?
나은아
나는 너라서 싸우는 게 아니야
너니까 싸우는 거지
(준형) 싸우더라도 옆에 있고 싶고
싸워서라도 같이 행복해지고 싶은 너니까
사랑해, 나은아
[한숨]
(미숙) 술친구 필요해서 절 부르신 거였어요?
아니요
맨정신에 사과하려니까 민망해서 그래요
아, 사과는 무슨 [달영이 술을 후루룩 마신다]
됐어요, 그냥 사과받은 걸로 칠 테니까 [달영이 술잔을 툭 내려놓는다]
그냥 그만 벌서세요
내가
사부인이 싫어서 날을 세운 건 아니에요
(달영) '시' 자 달린 사람들한테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래요
무슨 시집살이를 얼마나 하셨길래?
다 말하자면 내 입만 아프고, 하여튼
(달영) 내가 그 고생을 해 봐서 우리 딸만큼은
시집살이 당하는 꼴은 못 보겠다 싶어
기세 잡겠다고 오버 좀 했어요
아, 아니, 대체
누가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유, 나은이라면 그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데
함에 달린 가격 태그
[익살스러운 음악]
아, 그거는 그냥 업체 실수라니까요
준형이 걸고 하늘에 맹세?
[미숙의 기침]
(미숙) 어머, 아유 아유, 유치하게 무슨
아유, 나이가 몇인데 하늘에 걸고 맹세는 무슨
[목을 가다듬는다]
일부러 보낸 거 맞죠?
(미숙) 아, 저…
(달영) 내가 그거 보고 느낌이 이상해서 그랬어요
시집살이 전조 증상 같고
아, 그건 솔직히 나은이 때문이 아니라 사부인이…
상견례 날 창난젓 논쟁하면서 나 망신 주니까 그런 거예요
창난젓 사 봤다는 사람한테 창난젓 담아 봤다 그러면은
내가 뭐가 돼요?
[한숨]
[미숙의 난처한 숨소리]
(미숙) 한마디 하려면 하세요, 참
제가 그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으니까요
[숨을 들이켠다]
[편안한 음악]
사부인
우리 나은이 좀 잘 봐줘요
(달영) 사람이 '예쁘다, 예쁘다' 하면
예쁘게만 보이니까
나는 미워해도 되고 나한테는 갑질해도 되는데
우리 나은이만은 이쁘게 봐줘요, 예?
그런 말씀 안 하셔도
충분히 이쁘게 보여요
안사돈 안 닮아서
[웃음]
고마워요, 사부인
우리 준형이도 좀 잘 부탁드려요
[웃음]
[함께 웃는다]
(달영) 자
(미숙) 감사합니다 [잔이 쨍 부딪는다]
[함께 웃는다]
[밝은 음악]
(준형) 자기야
[안전띠를 달칵 채운다]
됐어, 하던 대로 해
나도 양심이 있지
작심삼일은 가야지
[피식 웃는다]
[웃음]
그렇게 웃으니까 좋다
계속 그렇게 웃어 줘라
미안해
(준형) 응?
스튜디오에서 헤어지자고 말한 거
그때 그렇게 뛰쳐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찮아
그날 자기를 그렇게 만든 게 나잖아
(준형) 나 같아도 회사 일에 결혼 준비에 바빠 죽겠는데
상대가 성의도 안 보이고 계속 대충 넘어가려 그러고
그러다가 눈치 없이 엄마까지 개입시켜서
일 꼬이게 만들면 폭발하지
맞다, 어머님
(나은) 괜찮으셔? 아무 말씀 없으셨어?
오히려 자기랑 빨리 화해하라고 등 떠미시던데?
(준형)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야, 그건 오빠한테 그런 거고
나한텐 다르시지
[한숨 쉬며]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갈까?
아니, 이제부터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럼?
[종업원이 물을 조르르 따른다]
이런 일로 만나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종수) 아, 예
제 와이프가 안사돈께 큰 결례를 범한 거 같아서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아이고, 아닙니다
(수찬) 결례는 저희 쪽에서 했는데
사부인께서 또 직접 부동산에 찾아 주셔서
기분 좋게 다 풀었습니다
(미숙) 아휴, 아닙니다
저, 제가 사부인께 결례를 했는데 당연히 찾아뵙고 사과를 드려야죠
아유, 아니에요
아, 제가 성급하게 굴어서 이런 사달이 난 거죠
[멋쩍은 웃음]
우리 그냥 따지지 말고
이번 일은 그냥 '해프닝이다' 생각하고 웃어넘겨요
그래야죠
다 애들 잘되라고 우리가 그런 건데
[달영과 수찬의 웃음]
(수찬) 애들끼리 집을 봤으면은 순리대로 됐을 텐데
중간에 어른들이 끼어서 조금 일이 어렵게 됐네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저희는
씁, 집 문제에 관해선 일절 관여 안 하기로 했습니다
(종수) 아휴, 저희도 그래야죠
앞으로 어른들 손 빌리지 말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집 문제든 인테리어든 다
- (나은) 네 - (준형) 네
[비장한 음악]
[한숨]
아버지, 저 진짜 어떻게 해요?
(준형) 아, 나은이 마음이야 제가 돌릴 텐데
양가 어머님은
[수찬의 한숨]
쩝, 일단
어른들을 한데 다 모아
아니, 그러다가 2차전 벌어지면요?
그럴 일 생기지 않게 사전에 자네 아버지를 만나서
약을 쳐야지
(수찬) 그러면 이제 가족들 다 모인 자리에서
나랑 자네 아버님이 사과를 할 거고
그럼 어머님들이 어떡할 거야?
이 결혼 깨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씁, 그 자리에서 잘 수습될 거야
[안도하는 숨소리]
그러고 나서 이제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면
자네가 한 방을 확 날려
한 방요?
(수찬) 그럼, 인생은 한 방이야
자네가 그때 한 방을 제대로 날리면
일이 잘 마무리될 걸세
우선
결혼 앞두고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하단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은) 죄송해요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저희 둘이 잘할게요
네
그간 저희 일로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하단 말씀 드리면서
꼭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양가 어른들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미숙의 의아한 숨소리]
(준형) 이거 저희 청첩장입니다
그, 부모님들께 제일 먼저 드리고 싶었어서
[경쾌한 음악]
(수찬) 잘 만들었어
(준형) 이렇게 결혼까지 할 수 있게
36년간 잘 키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숙의 벅찬 숨소리]
(나은) 이렇게 결혼까지 할 수 있게
32년 동안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훌쩍인다]
(준형) 앞으로 저희가 잘 사는 모습 보여 드려서
효도하겠습니다
뭐, 효도까진 바라지도 않으니까
(수찬) 싸우지들 말아들
(종수) 그래, 앞으론 잘들 좀 하자
부모님들 소집 좀 그만 시키고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까지 부모들 벌세울 건지, 참
(준형) 네
(준형과 나은) 잘할게요
(종수) 자, 그럼 지난 일 다 털어 버리자는 의미로
우리 한잔씩 할까요?
아, 예 [헛기침]
(종수) 아니, 저기 안사돈부터 먼저 좀
- (달영) 아유 - (수찬) 참
[수찬과 종수의 웃음] (달영) 어머, 감사합니다
(종수) 자, 받으십시오
[수찬과 종수의 웃음]
- (종수) 자, 아유 - (수찬) 아, 예 [잔이 짠 부딪는다]
(수찬) 다 별거 아니야
네 몸 편한 대로 네 속 편한 대로 살아
미안해
왜 자꾸 미안하대?
(달영) 아유, 우리 딸 [달영이 훌쩍인다]
(나은) 엄마 [나은이 훌쩍인다]
(준형) 아니 전세금 올려 달라고요?
(집주인) 결혼식 얼마 안 남았는데 가능할까 모르겠네
(미숙) 너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이러다 식장 들어가기도 전에 쓰러지겠어
[작게] 도망쳐
(항호) 마지막 기회야
(준형) 잘할 수 있겠지?
오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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