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13
[종이를 스륵 꺼낸다]
[무거운 음악]
(강태) [울먹이며]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그 빌어먹을 나비 때문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바닥을 기면서 살아왔는데
(강태) 근데 그 나비가
어떻게 그 여자 엄마일 수가 있어?
문영이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괴롭지 않게
아무 상처도 안 받고
남의 감정 따위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속이 텅 빈
깡통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엄마랑
형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무거운 음악]
우리 간다
늦게라도 마음 바뀌면 오든지
[한숨]
(문영) 네가 준 이 망태 덕분에
[잔잔한 음악] 난 이제 악몽을 안 꿔
너, 오빠, 그리고 망태
나한테 이런 가족이 생겨서 너무 좋아
PS, 망태는 다시 돌려줘, 내 거야
[한숨]
(사진작가) 여자분은 의자에 앉아 보실게요
네, 남자분은 옆에 서 계시고
자, 좋습니다
남자분, 조금만 더 옆으로 붙으실까요?
- (상태) 예 - (사진작가) 아, 네, 좋습니다
(사진작가) 자, 여기 보시고
조금 밝게 웃어 주세요
밝게, 자
[잔잔한 음악] 자, 앞의 카메라 보시고, 찍겠습니다
- (사진작가) 자, 하나, 둘 - (상태) 어?
잠깐, 잠깐, 잠깐, 잠깐만, 잠…
내, 내, 내 동생, 내, 내 동생
(상태) 어…
내, 내 동, 내 동생 내 친동생, 친동생, 예
[상태의 신난 신음]
[부드러운 음악]
아… [한숨]
아직
안 늦었지?
안 오면 합성하려 그랬는데 [상태가 중얼거린다]
그럴까 봐 온 거야
(상태) 와, 엄청 멋있어 엄청 멋있어, 엄청, 어
이거, 이거 얼마야, 십, 십만 원?
- (강태) 형도 멋있어 - (상태) 어, 나도 멋, 멋, 멋있어
(상태) 와, 와, 왁스, 왁스 발랐네, 왁스?
내 거, 내 거 발랐어? 어?
(사진작가) 세 분 같이 촬영하실 거면
나란히 앞에 보고 서 보실게요
(상태) 예, 우리 셋이, 셋이 같이 해, 같이
우리 가, 가, 가족사진이에요 가족, 가족사진, 가족
(사진작가) 남자분들 여자분 옆에 조금만 붙을게요
네, 가족사진이니까 즐겁게 자, 가겠습니다
자, 찍겠습니다
웃으시고
네, 갈게요
자,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문이 달칵 여닫힌다]
다녀왔습니다
(승재) 어? 오셨어요, 대표님?
(상인) 오, 승재
야, 근데 너 어디 가?
아, 문자드렸잖아요
저 오늘 두 작가님 모시고
미술 도서관으로 자료 조사 나간다니까요
야, 인마, 내가 문자를 어떻게 봐?
네가 전화기 꺼 놓으라고 나한테…
(상인) 아, 따가워
[작은 소리로] 방에 주리 언니요, 주리 언니
(상인) [작은 소리로] 어, 쉿, 쉿, 쉿
작전이 나름 먹히고 있는 거 같아요
어, 그래?
그러니까 언니가
'선본 거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절대 먼저 얘기하지 마세요 알았죠?
왜?
그, 뭐, 송혜교 닮은 분이랑 선까지 봤다고 네가 구라까지 쳤다면서
아, 그냥 시키는 대로 아닥하세요
저 나가 봐야 돼요
- 가 볼게요 - (상인) 어, 야, 조심히 다녀와
[문이 달칵 여닫힌다]
오케이, 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상인) 주리 씨
저 들어가도 될까요?
네
[상인의 어색한 웃음]
잘 다녀왔다는 보고차, 예
피곤하실 텐데 얼른 쉬세요
[숨을 들이켠다]
오늘 오프신가 봐요
네
그, 저희 어머니께서 그, 뽕잎나물이랑
그, 고들빼기를 좀 챙겨 주셔 가지고 제가 들고 왔는데
(상인) 그, 식전이시면 어떻게, 같이…
아, 전 먹었어요, 가서 드세요
네
[상인이 숨을 들이켠다]
저 선봤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네, 알아요
아, 송혜교를 엄청 닮았거든요
(상인) 근데 제 이상형이라 가지고 이 첫 만남부터
분위기가 아주 그냥 화기애애하게…
(주리) 대표님
저 내일 교육이어서 이거 오늘까지 공부 다 해야 되는데
아, 예
아, 죄송합니다, 예
열공! 파이팅!
[상인의 웃음]
[한숨]
아이고, 씨
이놈의 경박한 주둥이
아휴, 쯧
아, 망했다, 씨
[쓱쓱 메모한다]
[포스트잇을 탁 내려놓는다]
씨…
고문영 그건 약속을 무슨 개똥으로 아나
[익살스러운 음악] [승재의 비명]
(문영) 괜찮아
뒷담화를 까야 속병이 안 나지
무병장수해, 승재 씨
네
아, 안녕하세요
아트 디렉터 유, 유승재 씨, 예
(승재) 와, 슈트 입으셨네요?
엄청 멋있어요
[흥미진진한 음악]
(강태) 형이 오고 싶다는 데가 여기야?
(상태) 아, 여기, 여기 미, 미술, 미술 도서관
여기 그, 그림책 엄청 많아, 엄청, 어
(승재) 저, 저, 저 따라오세요
- (상태) 예 - (승재) 이쪽, 이쪽요
[승재가 말한다] (문영) 너
앞으로 이거 입지 마
- 왜? - (문영) 별로야
보호사복이 훨씬 잘 어울려
아, 그래?
몇 벌 더 사 볼까 했는데
정장이 의외로 편하네
보기엔 무척 불편해, 입지 마
알았어
그럼 너도 이런 옷 입지 마
보기 무척 불편하니까
(문영) 에이씨
야! 입지 말라면 입지 마
확 찢어발겨 버린다?
어? 입지 마!
[책을 읽는다]
- 이 작가가요 - (상태) 네
(승재) 그, 일러스트 쪽에서 엄청 유명하거든요?
요새 이런 유의 화풍이 애들 사이에서 인기…
(상태) 도, 도서관에서는 조용
그게 에티켓이지, 어?
[발랄한 음악]
[작은 소리로] 아시다시피 그, 고문영 작가님 글이
(승재) 완전 잔인하고 세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 우리 문상태 작가님의
어떤 따스하고 순수한 감성이 녹아 있는
어, 마치 봄 햇살의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거리고
어, 막 간질간질한 느낌의
파스텔 톤 계열의 화풍으로
어, 고 작가님의 그, 센 글을 중화시켜 주시면…
거절합니다
사, 사양합니다
왜요?
(상태) 그, 중, 중화시키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이지, 맹탕
그, 누가, 누가 먹어, 그거, 어?
개, 개도 안 먹지
아, 개멋있어
네가 봄날의 개라며?
내가 왜?
네 친구 재수인가 재미인가
걔가 그러던데?
(문영) 넌 절대 속을 안 보여 주고
혼자만 끙끙 앓는 애라고
그게 봄날의 개잖아
둘이 만났어?
(문영) 네가 대체 뭐 때문에 빡이 친 건지 물어보려고 집에 불렀지
피자 열 박스에 총알같이 날아오더구먼
(강태) 그래서?
뭐래?
더 알려고 하지 말래
(문영) 네 속 알아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접기로 했어
이제 하나도 안 궁금해
고문영
나
누굴 지키고 보호하는 일
너무 지겹고 지쳤어
(강태) 그러라고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억지로 하는 일이었어
[차분한 음악]
근데?
이제 그거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 목표로 삼아 보려고
가족을 목숨 걸고 지키는 거
생각해 보니까
꽤 멋지고 근사한 거 같아
누구든 건들면
절대 가만 안 둬
뺏어 가면
찾을 때까지 쫓을 거야
내가 지켜 낼 거야, 꼭
그 가족에
나도 있어?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가족이지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요
[선해의 헛웃음]
(선해)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기 올 건데?
하, 어, 한번 와 봐
[어두운 음악] 내가 그냥 확 죽어 버리면 되니까
[선해가 전화기를 달그락거린다]
[선해가 씩씩거린다]
이 사람한테 다시 전화 오면은
앞으로 유선해 죽었다고 전해 줘요
[선해의 거친 숨소리]
(민석) 유선해 님, 유선해 님
저랑 같이 간만에 산책 가실래요?
(행자) 누구 전화인데 그래?
또 그 사람요
유선해 님 아버지
(차용) 와, 양심 없다
딸이 귀신 들렸다고 무당집에 보냈다면서요, 엄청 어릴 때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그런 아버지면 나라도 만나기 싫지
여태 남처럼 살다가 왜 이제 와서
- 선별 간호사 - (별) 네?
(행자) 환자들 가정사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면 돼, 안 돼?
한쪽만 보고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거 아니야?
부모들한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네
[별의 헛웃음]
그래, 내가 죄인이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상인) 네
[문이 철컥 열린다]
어유, 어머, 어머니 [순덕의 웃음]
[순덕의 힘주는 신음]
(순덕) 아니, 왜 저녁을 안 먹어?
(상인) 아, 예, 그, 저…
- (순덕) 응? - 아, 이쪽에 좀, 좀
- (상인) 좀 앉, 앉으세요 - 어, 어
[순덕의 힘주는 신음] (상인) 아, 제가 좀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예
[칙칙 분사된다] (순덕) 아이고, 괜찮아
속이 비면 잠도 안 와, 이거라도 먹어
(상인) 잘 먹겠습니다
다 큰 남자가 동화책 읽으니까
엄청 순수하고 멋있어 보이네
[순덕의 웃음] 아, 아닙니다, 그…
제가 해야 될 일인데요, 뭐
- (상인)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 응, 먹어
와…
와, 진짜 맛있다 [순덕의 웃음]
아, 저, 사실은
배가 엄청 고팠는데
쪽팔려서 밥 먹으러 못 갔거든요
뭐가 쪽팔려?
[순덕의 웃음]
(순덕) 아이고, 송혜교?
아이고
아, 그런 뻥을 왜 쳐?
[한숨]
그러니까요, 그냥
제 입을 확 박음질해 버리고 싶더라니까요
[웃음]
아이고, 참
내가 힌트 하나 줘?
힌트요?
우리 주리가
제 아빠를 나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많이 의지했거든
[잔잔한 음악] (순덕) 그런 아빠가 일찍 죽고 나서
자기 혼자 아들 노릇 내 남편 노릇까지 다 하느라
누구한테 기대는 법을 잘 몰라
든든한 아빠가 여태 살아 있었으면
나도 믿는 백 있다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해 버리고
속병도 덜 났을 텐데
힘들 때 그저
마음 푹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그거면 되지 않을까?
아!
아, 아, 예, 예
아, 예, 예
집이다, 집
두, 두, 둘리 봐야지, 둘리, 둘리 두, 둘리 봐야지
(강태) 형, 그림책 서재에 둘게
(상태) 어
- 옷 잘 걸어 놔 - (상태) 어
(문영) 나중에 가족사진 나오면 저기다 걸어야겠다
칙칙했던 분위기가 확 살겠네
이참에 인테리어나 새로 싹 바꿔 볼까?
그 방도 남자 둘이 쓰기엔 너무 좁단 말이지
그래서 방을 바꾸자고?
굳이 뭐 하러
네가 내 방을 같이 쓰면 되지
- 합방하자 - (강태) 싫어, 안 돼
왜?
너희 부모님이 쓰던 방이잖아
그게 뭐?
고문영
(문영) 응?
내가
다른 데 가서 살자 그러면 갈래?
(문영) 왜?
(강태) 갈 거야?
또 도망가야 돼?
오빠가 나비 꿈 꿀 때 됐어? 어?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내가 그 나비 확 찢어 죽여 줄게
(문영) 너 알지?
나 나비 잡는 킬러인 거
아니야, 그런 거
[차분한 음악]
만약
나비가 나타나도
절대 죽이지 마
넌 그러면 안 돼
(문영) 왜?
내가 또
겁먹고 도망치면 어떡할래?
쫓아가 잡아야지
잡아서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거야
[함께 웃는다]
오케이, 알았어, 약속할게
손가락 걸어
도장도 찍고
그 도장 말고
[TV에서 만화 소리가 흘러나온다]
(상태) '에이, 네가, 네가 뭔데?'
'왜 화, 화를 내!'
'네 이빨은 더해'
'누가 내 이빨 봐 달랬냐?'
'자꾸 거품 튀기지 마, 푸!'
[상태의 웃음]
[강태의 힘주는 숨소리]
(상태) 어?
볼에 왜 연, 연지 곤지가 찍혔지?
(강태) 어?
아, 그…
뜨거운 물로 샤워해서 그런가?
(상태) 부, 부끄러워?
[따뜻한 음악]
보, 볼이 빨갛고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면서 내 눈을 피하면
[멋쩍은 웃음] 부끄, 부끄러운 건데
너 부끄러운 짓 했어?
아니
(강태) 어…
좀, 좀
뽀뽀했어? 뽀뽀?
어, 사, 살짝
(상태) 어…
싸, 싸우는 거보다 뽀뽀하는 게 나아, 어
싸, 싸우지 마, 혼나
그럼 형은
내가 좋아, 문영이가 좋아?
(상태) 어…
나는
난 고, 고, 고길동이 좋아, 나는
[만화 속 캐릭터들이 싸운다]
쟤들 왜 싸워?
어, 두, 두, 둘리 둘리 볼 때 말 시키지 마, 그게 예의야
(필옹) 아, 이제 곧 완성이네
(상태) 네, 아,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괘, 괘, 괜, 괜찮아,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귀, 귀 괜찮아?
어, 상태 군 덕분에 엄청 좋아졌어
[웃음]
(필옹) 자, 책 반납
(상태) 아
이거, 이거, 이거 재밌, 재밌죠, 재밌죠?
(필옹) 어, 그래서 아예 내용을 통째로 다 외워 버렸어
어, 어, 어디가 제일 어디가 제일 좋아, 어디가 제일?
[따뜻한 음악] (필옹) 아
'잊지 마'
'잊지 말고 이겨 내'
'이겨 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 (필옹) '어린애일 뿐이야' - '어린애일 뿐이야'
이 부분
(상태) 나도, 나도 거기가 제, 제일 좋아 거기가 제일 좋아, 이겨 내
잊, 잊, 잊지 마, 이겨 내 이겨 내, 이겨 내
거기가 제일 좋아, 어
(필옹) 그…
나비 그리는 연습은 계속하고 있어?
(상태) 예
여, 여…
연, 연, 연습장에 아…
조금, 조금씩, 조금씩
아, 그렇구나
그럼
(필옹) 여기에 나비가 날아드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가 여기서 나가는 게 더 빠를까?
문
우리 둘 중에 문을 더 빨리 찾는 사람이 더 빠르지
- 아, 그렇지 - (상태) 어
얼른 그 문 찾아서 같이 나가자
(상태) 예
[떨리는 숨소리]
(주리) 유선해 님
유선해 님?
[떨리는 숨소리]
(주리) 유선해 환자 조짐이 이상해 계속 주무시기만 하네?
환자랑 마지막 대화 언제 했어?
어제 낮에…
설마
아무래도 곧 그분이 오실 거 같네
(차용) 그분? 어떤 분요?
(주리) 작년엔 간필옹 환자가 그분 때문에 고생 엄청 많이 하셨는데
그러게요
꼭 그렇게 한 명씩 콕 찍어서 졸졸 따라다니잖아요
아, 그분이 누군데요?
설마
귀, 귀신?
'내가'
[의미심장한 음악]
(지왕) '내가'
여기 '내가'는 도희재인 거고
[의아한 숨소리]
이 쪽지는
나비의 경고장인 거네
네 [지왕의 의아한 숨소리]
(지왕) 이 많은 쪽지에 뭐가 쓰여 있었으려나?
(강태) 같은 디자인의 새 메모지는 전혀 없었어요
그렇다는 건
쪽지를 본인이 쓴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거겠죠
(지왕) 씁, 병원에서 나던 구린내가 이거였나?
그렇다면 일단 이 병원 사람들 아무도 믿지 마
나도 믿지 말고
일단 상태 군도 당분간 병원에 혼자 두게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형
오늘 나 끝날 때까지 병원에서 기다리지 말고
- 곧장 집으로 가 - (상태) 어
(강태) 핸드폰 항상 잘 챙기고
혹시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상태) 나 응애응애 아기 아닌데 갑자기 왜, 왜 그러지? 어?
아니, 그냥 내가 걱정이…
(상태) 나 거, 겁쟁이 아닌데, 어?
이, 이, 이거 봐 봐 이, 이, 이거, 어?
[잔잔한 음악] 나 이렇게 나, 나비도
여, 열심히 연습하는데, 나비도 열심히 연습하는데, 어?
간필옹 아저씨보다도 문도 먼저 찾을 거야, 먼저
그리고 나 이제 도, 도망 안 가 도망 안 갈 거야
와…
그럼 이제 형이 우리 지켜 주는 거야?
당연하지, 나도
나는 이제 동생이 두, 두, 둘이나 되는데
내가 형이고 오빠니까 지켜 줘야 돼, 지켜 줘야 돼
든든하게 지켜 줘야 돼, 응
[휴대전화 진동음]
응
밥은?
(문영) 방금 먹었어, 너는?
난 형이랑 먹었지
너
일할 때 승재 씨나 이 대표님 불러서 같이 있으면 안 되나?
글 쓸 때 옆의 누가 걸리적거리는 거 싫어
(강태) 문은 잘 잠갔지?
또 아무나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말고
[옅은 웃음]
좋다
- 뭐가? - (문영) 내 걱정 해 주는 거
앞으로 네가 걱정할 짓만 골라 해야겠다
[옅은 웃음]
[헛웃음]
[강태의 한숨] (여자) 오빠, 오빠
(문영) 오빠?
어떤 년이야! 어?
(강태) 아, 아,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글 써
[통화 종료음]
에이씨
분명 어린애 목소리였는데
[아이 목소리로] 여기 어디예요?
여기는 괜찮은 병원이죠
아, 또 병원
저 또 맞아서 실려 왔어요?
[어두운 음악]
(선해) 응?
[숨을 들이켠다]
근데 누구 닮았는데
(강태) 아…
저는 문강태 보호사라고 해요
저는 성진 국민학교 1학년 2반 13번 유선해입니다
- (강태) 1학년이면 여덟 살? - (선해) 네
(선해) 근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여기 있었네, 아유, 한참 찾았어요
쉬, 쉬,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언니가 알려 줄게요, 가요
(선해) 응
아, 나 저 오빠 알았다 박남정 닮았다, 박남정
잘생겼네?
해리성 정체감 장애야
다른 인격이 나오는 거?
(주리) 응
어렸을 때 학대받은 충격으로 해리가 왔어
[아파하는 숨소리]
아파
(선해) 아파
[어두운 음악]
(주리) 그 당시엔 부모가 애를 무작정 때려도
가정 교육이고 훈육이다
그러면서 다들 넘어가 주던 때잖아
엄연히 아동 학대인데도
[함께 웃는다] (선해) 우리 뭐 하고 놀지?
(주리) 결국 자기방어 기제로 다른 인격이 만들어진 건데
부모는 애한테 귀신에 씌었다면서
동네 무당집에 수양딸로 팔아 버렸어
그럼
진짜 무당이 아니야?
신내림을 받은 게 아닌데 점괘가 맞을 리 없잖아
(주리) 원장님이 점 보러 갔다가 오히려 상담해 주고
입원까지 시키게 된 거지
(강태) 음…
[응급 벨이 울린다]
- 별 씨, 원장님 콜 좀 해 줘요 - (별) 네
[어두운 음악]
원장님, 203호 고대환 환자요
[심전도계 비프음]
(지왕) 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일단 안정실로 옮기는 게 좋겠다
(민석) 네, 알겠습니다
[행자의 한숨]
[한숨]
[문이 덜컥 열린다]
[문이 덜컥 닫힌다]
(상태) 다녀왔습니다!
(문영) 오빠, 잠깐만
(상태) 어
고, 고문영, 어?
잘 다녀왔, 왔어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지, 인사를
(문영) 일할 땐 내가 갑이야
(상태) 어, 그, 내, 내 작, 작업 노트, 그거
(문영) 얘가 자아를 잃어버린 소년이야?
(상태) 어
(문영) 얘가 감정이 없는 깡통 공주고?
(상태) 어
그리고, 그리고 걔, 걔가 박스에 갇혀 사는 아저씨
어때, 어때, 마음에, 마음에 들어?
아니, 전혀, 다시 해
왜…
왜 다시지, 왜?
(문영) 생긴 게 다 마음에 안 들어
봐, 목이 다 돌아갔잖아 왜 다 뒤통수야?
뒤, 뒤통수 아니고 얼굴, 얼굴이야, 얼굴
이 시꺼먼 게 얼굴이라고?
눈, 코, 입은 다 어디 갔어 뭐, 졸라맨이야?
표정이 없잖아, 표정이
동화는 메시지가 반 캐릭터가 반이라고
내 주옥같은 글에 이따위 얼굴 없는 표정을 그리…
어려워
[차분한 음악]
표, 표정, 표정 그리는 거
나는 너무
어, 어려워, 어려워
얼굴 카드 있잖아
분노, 짜증, 행복
(문영) 뭐, 그런 거 보고 따라 그리면 되지 않나?
따, 따라, 따라, 따라 그리면 진짜 문상태 그림이 아, 아니지
(상태) 어
진짜, 진짜 내 게 아니지, 그건
(문영) 음…
그럼 다시 공부해
오빠 관찰 잘하잖아
맨날 동생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지 말고
남들 표정도 잘 관찰해 봐
그래서 문상태표 얼굴 카드를 만들면 되지
다음 주까지 숙제야
[상태의 시무룩한 신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달칵 열린다]
- 퇴근해? - (강태) 예
잠깐 얘기 좀 할까?
[강태가 캐비닛 문을 탁 닫는다]
(행자) 어…
고대환 환자 말인데
아무래도 며칠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
아…
(행자) 원장님이 따로 고 작가한테 연락하시겠지만
자기랑 더 친하니까
이렇게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게 미리 언질을 주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한숨]
아, 좀 더 버티실 줄 알았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네
아, 몇 년 간호한 나도 이런데 딸은 오죽하겠어?
옆에서 위로 좀 해 줘
예
저, 주리 씨!
(상인) 아, 저, 차를 안 가지고 가셨길래
아, 그러면 뭐 이때쯤 오시겠다 싶어서
제가 마중 나왔죠, 뭐, 하하
저한테 뭐 따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요, 예
근데 왜 갑자기 마중을…
(상인) 그…
뭐, 밤도 늦었고, 그…
아, 그, 집 앞 골목의 가로등 몇 개가 나갔더라고요, 예
씁, 그리고 여기는 안전 지킴이 아주머니도 안 계시고
[웃으며] 뭐, 때마침 주리 씨 생각도 나고
그, 저 선본 거 뻥입니다, 예
[흥미진진한 음악]
근데요, 그, 저희 아버지 때문에 매달 선보러 가는 건 진짜고요
그, 제가 늦둥이라 가지고
우리 아버지 연세가 지금 아흔
아니, 저, 아, 아흔하나인가 두, 둘, 둘인가, 저…
암튼 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굉장히 늙어 계셨고요, 그…
진짜
송혜교가 이상형이세요?
어유, 아니요, 전혀요
그, 제 이상형은
뭐랄까
힘들 때 그저
마음 푹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힘이 들 땐
저한테 막 기대기도 하고
(상인) 투정도 마음껏 부리고
근데 그게 또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마치
든든한 아빠가 여태 살아 있었으면
딸처럼
딸…
변태세요?
아니요, 주리 씨
아, 제가 아버지처럼 이렇게 듬직하게
그런 남자가… [한숨]
주리 씨!
[노크 소리가 들린다]
(강태) 바빠?
(문영) 바빠도 너랑 놀 시간은 있지
- (강태) 스토리는 나왔어? - 대충
(강태) 아, 그래서 그 셋은
각자 잃었던 걸 찾게 되는 건가?
지금 나더러 엔딩을 까라는 거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나도 궁금해
(문영) 아까 너한테
'오빠, 오빠' 했던 그 어린 년은 누구야?
아, 너보다 열세 살 많은 환자분
어쩐지
목소리가 참 영하더라
동화 낭독 시켜도 되겠어
[함께 살짝 웃는다]
[강태의 헛기침]
고문영
(문영) 응?
너희 아버지
- 아무래도… - (문영) 알아
오 원장한테 연락 왔어
잠깐이라도 의식 있을 때 만나 보라고
[문영의 헛웃음]
웃겨
[무거운 음악] 부모는 죽을 때 되면
다들 무슨 면죄부라도 받나 봐
(문영) '당신 죄를 사하노라'
자식한테 그딴 말을 꼭 들어야 눈을 감나?
너
나중에 안 아플 자신 있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강태) 속엣말을 털어놔야 속병이 안 난다며
앞으론
아버지한테 말할 기회가 없어
그래도 괜찮아?
상관없어
할 말도, 후회할 것도 없어
(문영) 어렸을 때
정말 싫어하는 동화가 있었어
[어두운 음악] [심전도계 비프음]
(문영) '장화홍련'
난 거기 나오는 아빠가 너무 싫었어
[잔잔한 콧노래가 들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선해의 떨리는 숨소리]
(문영) 계모한테 자식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 나가는데도
아빤 모른 척 방관만 하잖아
괴롭히는 사람보다
방관하고 방치하는 사람이 더 나빠
(문영) 장화, 홍련은 결국
아빠가 죽인 거야
- (선해) 싫어, 아빠 싫어 - (선해 부) 아, 선해야, 선해야!
- (별) 아버님, 이러시면 안 돼요 - (선해 부) 어? 제발!
- (선해 부) 선해야, 제발 - (선해) 아빠 싫어, 싫어
아빠 한 번만 살려 줘라, 어?
(선해 부) 제발, 선해야!
어? 제발…
(지왕)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무거운 음악]
따님이 거부하는데도
자꾸 이렇게 억지로 간 이식을 요구하면
저희도 경찰 부릅니다
[선해 부의 거친 숨소리]
(선해 부) 저
우리 선해 아비예요
아, 그것도 친아비요
그래서
자식한테 간 맡겼어요?
- (지왕) 이런, 씨… - 아, 저
(선해 부) 한 번만 부탁합니다, 예?
저 이번에 이식 못 받으면요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
딸이 엄마한테 맞아 죽을 뻔할 때 당신 뭐 했어요?
수수방관했잖아
결국 아픈 애를 귀신 씌었다고
[탁자를 퍽 차며] 무당집에 갖다 버렸잖아!
[지왕의 성난 숨소리]
그땐 걔가 하도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지왕) 아니, 자그마치 30년을 나 몰라라 살아 놓고 이제 와서…
정 살고 싶으면 나 말고
당신 딸한테나 가서 무릎 꿇으셔
아파
(선해) 아파
[선해의 아파하는 숨소리]
아, 배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아…
아파서 잠이 안 와
아빠한테
도와 달라고 얘기해 본 적 있어요?
안 도와줘
맨날 모른 척해
[선해의 겁먹은 신음]
선해야
아빠가 여기 다신 못 오게 내가 쫓아 줄까요?
(강태) 아니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할 동안
내가 옆에서 지켜 줄까요?
지켜 주세요
(선해 부) 선해야
아빠 싫어
(선해) 엄마가 나 때릴 때
아빠 그냥 나가 버렸잖아
[선해가 울먹인다]
내가 계속 아빠 불렀는데 [슬픈 음악]
아빠 그냥 가 버렸잖아
나 안 지켜 주고
나는 나 때린 엄마보다
아빠가 더 미워
나 귀신 안 들렸는데
무당 할머니 집에 버리고
계속 기다렸는데
아빠만 계속 기다렸는데
[흐느끼며] 아빠 너무 미워
아빠 너무너무 미워
[흐느낀다]
[어린 선해가 흐느낀다]
(강태) 앞으론 아버지한테 말할 기회가 없어
너
나중에 안 아플 자신 있어?
짜증이 난다
[재수의 심호흡]
아씨, 개짜증 나, 씨, 아씨, 쯧
[재수가 씩씩거린다]
[흥미진진한 음악]
씨…
어, 재, 재…
재수, 재, 재수 없다
아, 재수 없어, 씨
[씩씩거린다]
[그림을 쓱쓱 그린다]
[종이를 사락 넘긴다]
어, 저…
화, 화, 화, 화가 난다
[바닥을 탁 치며] 아, 개빡치네! 진짜, 씨
[씩씩거린다]
아니, 왜 다, 다, 다 똑같지? 왜 다 똑같지?
(상태) 소, 소리만 지르고 다…
(재수) 아니, 나 형님 숙제 도와주다가
구, 구안와사 올 거 같아, 어?
- 아… - (재수) 아씨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예!
(상태) 아… [재수의 당황한 신음]
(승재) 작가님, 저 찾으셨어요?
(상태) 예, 안녕하세요
어, 저…
[문이 철컥 닫힌다] 내가, 내가 다, 다, 다음 주까지
수, 숙제를 해야 되는데
표정 공부를 해서 그, 그림을 그려야 되는데
아트 디렉터 유승재 씨가 좀 도와주십시오
[작은 소리로] 하지 마요
네, 그럼요
저, 뭐, 어떻게 해 드릴까요?
(상태) 예,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 (승재) 네 - (상태) 고맙습니다, 어…
아, 루, 룩 앳 미, 룩 앳 미
이 세상에서 가장
그, 사, 사랑스러운 표정을 좀 지어, 지어 주세요
- 사랑스러운 표정? - (상태) 예
[익살스러운 음악]
어, 귀여워
(상태) 어, 너무 어려워, 이상한데
사랑, 사랑스러운 걸로 부탁드립니다
[당황스러운 신음]
아, 좀 쉬, 쉬었다 할게요
- (상태) 아, 너무 어려워 - 죄송해요, 작가님
- 수고하셨습니다 - (간호사) 네 [휴대전화 진동음]
어
지금?
[캔 맥주를 탁 내려놓는다]
나한테 술 마시자고 할 줄 몰랐다
강태가 나이트 근무라
꿩 대신 닭이지, 닭
[잔잔한 음악]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아버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웃음]
이러려고 너 불렀어 나 속병 안 나려고
그럼 나 오늘 취하면 안 되겠다
- 주리야 - (주리) 응?
만약에
내가 너희 엄마 딸로 태어나고
(문영) 네가 우리 아빠 딸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넌 아마
우리 엄마한테 벌써 맞아 죽었을걸? 싸가지 없어서
[쿡 웃는다]
맞네
[무거운 음악]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순덕) 주리 늦는다고 좀 아까 전화 왔어 술 한잔하고 온다고
술요?
아, 그렇게 함부로 마시면 안 될 거 같은데
저, 누구랑요?
- 문영이 - (상인) 아유
(상인) 그 둘은 절대 안 돼요
(순덕) 놔둬
친구끼리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게
나 예전에 함바집 할 때
주리가 자기 친구라고 처음 나한테 데리고 온 애가 문영이였어
[잔잔한 음악] 그 빼빼하고 조그만 애가 고봉밥을 먹더라고
꼭 뜨신 밥 한 끼 못 먹은 애처럼
걔 집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씁…
그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뭐 겪었다는 거밖에는
[한숨]
[심전도계 비프음]
[옅은 신음]
깨셨어요?
물 좀 갖다드릴까요?
(대환) 제가
너무 큰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구할 사람이 없네요
[무거운 음악]
제가
아내를 죽였습니다
누구를 죽여요?
그 여잔
사람을 죽이고도
콧노래를 불렀어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희재가 콧노래를 부른다]
[잔을 탁 내려놓는다]
(의사) 교모세포종입니다
악성 뇌종양이라 생존율이 낮아요 [대환의 괴로운 신음]
종양이 커지면서 점차
인지 장애나 기억 장애도 같이 올 겁니다
[대환의 괴로운 신음]
[희재가 콧노래를 부른다]
[문이 덜컥 열린다]
(대환) [술 취한 목소리로] 아유,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희재) 아주 좋지
[웃음]
[지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대환의 탄성]
(라디오 속 기자) 어젯밤 8시경
성진시 오지군에서 40대 여성 A 씨가 [대환의 힘주는 탄성]
목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사건 당시 현장에는 A 씨의 아들 B 군이 함께 있었으나
현재 극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어 [어두운 음악]
정확한 목격 진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성진 경찰서는 타살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새로 구한 아줌마
오늘은 왜 안 왔어?
(희재) 이젠 못 와
[긴장되는 효과음] [희재가 혀를 쯧 찬다]
그러게 왜 주제넘게 굴어
[희재의 웃음]
[긴장되는 음악]
(대환) 너지?
네가 그렇게 했지?
네가 그 여자 죽였냐고!
걱정 마, 아무도 몰라
[차분한 음악]
(대환) 내가
죽으면
문영이는
내 딸은
너 같은 괴물이 될 거야
그러니까 제발
[쿡 웃는다]
[웃음]
[어두운 음악] [희재의 웃음]
죽어, 이 괴물아 [희재의 놀란 신음]
[긴장되는 음악]
[거친 숨소리]
그때
분명히 죽였는데
수간호사님
- 혹시 무슨… - (행자) 어, 아니야
(대환) 문영이
문영이가
그걸
다 봤어
내가
그 여자를 죽일 때
그 어린게
다 봐 버, 다 봐 버렸어
[어두운 음악]
[대환이 울먹인다]
[대환이 흐느낀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자물쇠를 잘그락 잠근다]
[어두운 음악]
(어린 문영) 아빠, 어디 갔다 와?
(대환) 어
잠이 안 와서
저수지에 낚시 갔다 왔어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차분한 음악]
(대환) 문영이는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딸까지 죽이려고 한 겁니까?
아니
문영이도
제 엄마처럼
괴물이 될까 봐 무서웠네
(대환) 그래서 그런 거야
그 앤
죄가 없어
내가 죄인이지, 내가
[어두운 음악]
[흐느낀다]
난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
(문영) 그래서 말을 잘 듣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지
그래야 미움을 안 받으니까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어
딱 한 명만 빼고
(문영) 그 애랑 같이 도망가고 싶었는데
엄마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아빠는?
네 곁에 없었어?
엄마가 자기 방식대로 날 길렀을 때
아빠가 날 위해 해 준 건
딱 한 번
동화책을 읽어 준 게 다야
동화책
(문영) 근데 주리야
나는 그 딱 한 번의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아
(행자)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고 작가
참 잘 컸네
[부드러운 음악]
[심전도계 정지음]
[비가 쏴 내린다]
나 좀 그만 쳐다봐
지금 슬픈 얼굴이야?
아니
이쁜 얼굴
(상태) 스, 슬픈 거 창피한 게 아닌데
안 슬퍼
(상태) 아닌데, 아니, 아닌 거 같은데
(강태) 형
(상태) 아닌 거 맞는데
갈까?
(문영) 배고파
- (강태) 뭐 먹고 들어갈까? - (상태) 나 짬뽕
(문영) 싫어
강태가 해 준 메추리알에 밥 먹을래
(강태) 그거 순덕 아줌마가 해 준 거야
(상태) 어, 순덕 아줌마 메추리알 엄청 맛있어
우리 강태도 찌개 엄청 잘해
어, 반찬은, 어휴…
완전 맛없어
[차분한 음악]
(대환) '깊은 숲속 어느 성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태어났어요'
'딸을 무척 사랑했던 왕은'
'공주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축하 파티도 해 주고'
'열두 명의 마법사를 초대했죠'
그럼 나도 공주님이네?
숲속의 성에 사니까
그럼!
(대환) 우리 딸 공주님 만들려고
아빠가 여기에다가 이런 엄청난 성을 지은 건데?
[대환의 웃음]
자
'그래서 온 나라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지만'
'초대받지 못한 나쁜 마법사는'
(대환) '너무 화가 나 공주의 생일 파티를 망치기 위해'
'당장 성으로 향했답니다'
(재수) 그래도
아프다가 돌아가셨어도
오래 사셨으니까
호상 아닌가?
(순덕)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어?
모든 죽음은 다 슬프지, 아이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거는
문영이 옆에 그 두 형제가 있어서
좀, 좀 마음은 놓입니다
아이고
한동안 병원 분위기가 축 처져 있겠네
제일 오래 입원했던 환자가 돌아가셨으니까
아무래도 다들 우울해하지
[휴대전화 진동음]
(순덕) 어, 강태야
어
그래, 가지러 와
상복 입은 애한테 이런 농 치기는 조금 그런데
너 꼭 너희 신랑 먹이려고 친정집 냉장고 터는
얄미운 딸내미 같아
[강태와 순덕의 웃음]
[순덕의 힘주는 신음]
너는 괜찮아?
[따뜻한 음악] - 저요? - (순덕) 응
난 이상하게 너만 보면 괜찮냐고 묻고 싶어
괜찮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이렇게
행복하려고 애써도 되나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순덕) 부모한테 미안해서 자기 행복 포기하는 자식이
천하의 불효자식이지
효도한다 생각하고
앞으로 실컷 행복해져, 으쌰
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문영) 잘 나왔지?
(강태) [살짝 웃으며] 응
마음에 들어
(문영) 나
이 집 팔까?
(강태) 왜?
그냥
이제 뭔가 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
나쁘지 않은데?
[옅은 웃음]
이 집 팔아서
이 대표한테 출판사 하나 차려 주고
(문영) 남은 돈으로 캠핑카를 사는 거지
오빠도 벽에 나비만 그리면 미션 끝이니까
이참에 너도 병원 확 때려치워
그리고 우리 셋이 목적지 없이 놀러 다니자
그래, 꼭 그러자
[옅은 웃음]
(강태) 그럼 이왕 돈 쓰는 김에
나 비싼 슈트 좀 몇 벌 사 주고
세렝게티 여행도 보내 주고
막 호텔 스위트룸 같은 데서도 재워 주고
[부드러운 음악] 그냥 아예
네가 나 평생 먹여 살리면 안 돼?
[옅은 웃음]
어디 어울리지도 않는 제비 코스프레야?
[함께 웃는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뭘?
진짜 네가 원하는 거
(문영) 문강태의 장래 희망
(강태) 음…
아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없는 거야, 아닌 거야?
나
학교 다니고 싶어
[잔잔한 음악]
야간도 괜찮아
학교?
학교…
- 안 돼 - (강태) 왜?
CC 하자고 들러붙는 년들 때문에 안 돼
정 다니고 싶으면 그냥 사이버대 다녀
[웃음]
그러는 넌
왜 동화 작가가 됐어?
나?
내가 동화 속 세상을 제일 잘 아니까
(문영) 난 아빠가 지어 준 이 성에서
진짜 공주님이었거든
원래 공주들의 삶은
참 다 힘들어
엔딩만 좋아
염병
원래
엔딩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함께 웃는다]
(상태) 오늘, 오늘은 나비 꼭 그, 그릴 거야
나 그, 그릴 수 있어
- (강태) 기대할게, 형 - (상태) 어
(문영) 나 수업 끝나면 기다릴 테니까 같이 가자
(강태) 그래
[상태가 중얼거린다] (필옹) 드디어 그렸네
[필옹의 웃음]
- (필옹) 어? - (상태) 안녕, 안녕하세요!
(필옹) 상태 군
드디어 문을 찾았네, 축하해
- 무, 문? - (필옹) 어
저거, 그림
그림, 그림?
[상태가 흥얼거린다]
(상태) 안녕하세요!
어… [어두운 음악]
어, 저…
어, 저거, 저거
저거, 저거, 어, 저거, 저거 내가, 내가 아, 안 그렸는데, 저거
저거…
저거, 어, 어떡해, 저거, 어떡해, 저거
저거 우리,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죽인 아줌마 옷에
묻은 나, 나비, 그…
어, 나비! 나비!
저 나비… [상태가 중얼거린다]
(희재) 나비가 고대 그리스어로
프시케야
그 프시케가 어떤 단어의 어원인 줄 아니?
사이코 [말소리가 울린다]
[희재가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어때?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나비인데
엄마 예뻐?
(상태) 왜, 왜…
[어두운 음악] 왜 저, 왜 저, 저 나, 나비가 저…
왜 저 나비가 저기 있지, 저기?
[상태가 울먹인다]
저 나비가
저…
저 나비가 우리 엄마 죽였…
저 나비가 우리 엄마 죽였는데
[상태가 울먹인다]
아니야
(상태) 나비가 우리 엄마 죽였는데
나, 나 저거 안 그렸는데
무, 문영아 [상태가 중얼거린다]
아니야
아니야
(상태) 내가 안 그린 건데, 내가 안 그린 건데
내가 안 그렸는데
지워, 지워, 지워, 나비 지워, 지워
내가 안 그렸는데, 안 그렸는데 [떨리는 숨소리]
아니지?
어?
아니지?
문영아
제발
[울먹인다]
아니라고 말해
아, 아…
제발
문영아
아니라고 말해!
[문영의 울음]
['클레멘타인' 콧노래가 들려온다] [긴장되는 음악]
[의미심장한 음악]
[감성적인 음악]
(강태) 문영인
저한테 그냥 고문영이에요
(문영) 그 돌연변이 나비는 하나밖에 없어
(문영)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강태) 형, 나 좀 무서워
(상태) 내가, 내가 지켜 줄 거야 내가 형이고 오빠니까
내가 보, 보호자야, 보호자
(문영) 나한테 빨리 와
엄마
(지왕) 정말 미안하네
- (문영) 세우라고, 세우라고! - (상인) 문영아, 문영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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