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백서 3
[비장한 음악]
[숨을 후 내뱉는다]
(준형) 너 지금 뭐 하냐?
기습 번트
[비장한 음악] (준형) 야, 볼 카운트가 투 스트라이크인데
누가 기습 번트를 해?
모두가 예상하지 못할 때 하는 게 바로 프로야
아, 지랄하지 말고 그냥 쳐서 1점 내
(준형) 이렇게 방망이 길게 잡고 딱 치면 바로 안타인데
친구, 자네는 기습 번트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겠지만
나는 아닐세
안 좋은 추억?
(민우) 나은 씨한테 경제권 이야기 하면서
기습 번트 시도했다가 아주 두드려 맞고 두 손 들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두들겨 맞기는 무슨
기습 번트가 작전 실패인 걸 알고
전략을 변경한 거지
(준형) 야, 그리고 그 일이랑 야구랑 같냐? 이씨
[민우의 비장한 숨소리]
같지
야구나 인생이나 다 같은 거야
(민우)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거고
넌 나은 씨와 싸우는 중이고
난 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고
[민우의 황홀한 숨소리]
(준형) 저, 선생님, 취하셨어요?
[민우가 살짝 웃는다]
내 자신에게 취했지 [민우의 황홀한 숨소리]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민우) 그리고
이 타석 위에서 너의 충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내 자신을 믿고 내 경기에 임할 뿐
[쪽 뽀뽀하는 효과음]
[게임 속 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게임 속 심판)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속 캐스터) 지켜보며 삼진당합니다
(준형) 선생님, 공 지나갔어요
[철퍼덕 앉는다]
아, 뭘 또 이렇게 좌절까지 하고 그래?
아, 뭐, 언제는 잘 쳤어?
[탁탁 두드리며] 일어나
아니거든, 이거 나 운동하기 전에 뭐, 스트레칭하는 거거든?
(민우) 자, 봐, 아유, 씨 [경쾌한 음악]
이렇게 이렇게 [민우가 힘준다]
아휴, 씨
(준형) 아유, 더러워
[민우의 아파하는 신음]
비켜
(민우) 아이씨, 참
[버튼 조작음] [커피 머신 작동음]
[커피 머신 알림음]
[직원들의 웃음]
(직원) 아유, 김 대리님 결혼하신다면서요?
[나은이 멋쩍어한다] 아, 축하드려요
(나은) 고마워요
(과장) 이제 김 대리 결혼 준비 시작하면
엄청 바빠지겠네?
회사 일에는 피해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피해 좀 입혀도 돼
회사에 그렇게 충성할 필요 없어
이래 놓고 선배님 자리에 없으면 제일 뭐라고 하실 거 같은데요?
(과장) 당연하지, 어?
부하 직원은 갈궈야 제맛인데
[함께 웃는다]
그래서 김 대리 집은 어디로 얻기로 했어?
네?
아이, 김 대리 이제 겨우 상견례 했어요, 과장님
아, 내가 너무 앞서갔나?
[웃음]
(과장) 아이, 근데 결혼 준비란 게 또 별거 없어
결국에는 둘이 살 집 구하는 거라서
집 문제만 해결되면 결혼 준비 8할이 끝나거든
집 문제는 감사하게도 시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전세로 얻을 거 같아요
[직원들의 탄성]
(나은) 아직 어디로 얻을지는 얘기 안 해 봤고요
[과장의 생각하는 숨소리]
(과장) 전세 얻을 돈이면
신랑 신부 돈 합쳐서 대출받고 집 사는 게 훨씬 낫지
응, 신랑 될 사람 연차도 있으니까
돈도 꽤 모아 놨을 거 아니야?
돈이요?
그래
[익살스러운 음악] [아쉬운 탄성]
(과장) 우리 남편이 결혼 전에 돈만 잘 모아 놨어도
진작에 집 샀을 텐데
예? 무슨 일이?
[픽 웃는다]
우리 남편이 결혼 전에 나한테 그렇게 돈을 잘 쓰더라
(과장) '그래서 모아 놓은 돈이 좀 있나 보다' 했는데
결혼하고 까 보니까 완전히 개털인 거야
이 인간이 월급 받아서 다 나한테 쓴 거지
나한테 쓴 거라 뭐라 말도 못 하겠고
[씁쓸한 웃음]
그래서
내가 결혼하자마자 통장이랑 공인 인증서부터 뺏었잖아
[과장의 웃음]
(직원) 아니, 결혼 전에 그걸 전혀 모르셨어요?
어, 몰랐어
(수연) 아니, 저, 보통 결혼 전에
그, 서로 얼마 모았는지 경제 사정 다 오픈하고
그, 그러고 시작하는 거 아닌가?
(직원) 보통 그렇게들 하죠
저 결혼할 때도 남편이랑 '너 얼마 모았냐? 나 얼마 있다'
'그럼 이 돈으로 결혼식엔 얼마 쓰고'
'나머지는 집에 보태자' 이랬는데?
김 대리님도 그렇죠?
네?
네
아닌가 봐요
(과장) 아니네, 아니야
(수연) 남자 친구분이랑 여태까지
돈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다고요?
(희선) 아니, 결혼 준비를 하면서
어떻게 돈 얘기를 안 할 수가 있어? [수연의 기가 찬 한숨]
아이, 그게
우린 연애 때도 돈 얘기 따로 안 했거든
그럼
남자 친구분의 경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거예요?
얼마를 모았는지는커녕
얼마를 버는지도 잘 모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나은) 게다가 우린 집 문제도 쉽게 해결돼서 [수연의 한숨]
뭐, 돈 얘기 할 타이밍도 없었고
아, 그럼 넌 준형 씨가 얼마를 모았는지
결혼 비용으로 얼마를 쓸 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결혼 준비를 하려고 했단 말이야?
뭐, 자세히 생각은 안 해 봤지만
오빠가 집 해 오니까 난 국룰대로만 하자 싶었지
(수연) 국룰?
남자가 집 해 오면 여자가 혼수 하고
예단은 집값의 10% 뭐, 이런 룰이 있거든
그럼 결혼식 비용은요?
눈치껏?
[흥미로운 음악] 상황 봐 가면서?
[희선의 어이없는 숨소리]
아니, 결제할 때마다 눈치 싸움 하게?
아니면 '이 카드로 해 주세요' '이 카드로 해 주세요'
이렇게 몸싸움하면서? [수연이 호응한다]
[나은의 한숨] (희선) 그 꼴 나기 싫으면
당장 가서 말해
그래야겠지?
(희선) 그럼
결혼이랑 돈은 자동차랑 기름 같은 거야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야 굴러가듯이
결혼도 돈을 태워야 진행이 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가서 얘기해
알았어
[비장한 숨소리]
오빠
(준형) 응?
(나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흥미로운 음악] '오빠, 돈 얼마 있어?'
아니야, 이건 좀
'회사 다니면서 벌어 놓은 돈 많아?'
'오빠, 얼마 벌어?'
이건 너무 직설적이고
(준형) 왜?
어?
무슨 말 하려던 거 아니었어?
어, 그…
아이, 뭔데 그래? 편하게 얘기해 봐
어, 그, 그게, 그
돈…
돈?
돈 많이 모아 놨다고, 내가
[리드미컬한 음악]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은
나 직장 생활 한 지 8년 넘었잖아
(나은) 그래서 모아 놓은 돈 많다고
[헛웃음]
아, 자랑하는 거야?
아이, 자랑은 아니고, 그
우리 이제 박람회장 가잖아?
(나은) 그러니까 가서 오빠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돈 많으니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재밌어하는 웃음]
(준형) 난 또 무슨 얘길 한다고
오케이
내가 자기만 믿고
오늘 플렉스 제대로 한번 해 볼게
[기분 좋은 웃음]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준형) 자기야 우리 진짜 결혼하나 봐
(나은) 어?
(준형) 여기 오니까 뭔가 이제 본격적이다 싶어서
결혼하는 것도 실감 나고
(나은) 그래
돈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말하고
지금 여기 둘러보는 데 집중하자
(준형) 어? 자기야, 저거 봐 봐
자기, 이 침대 좀 봐 봐
어유, 이거 진짜 편하다
안 그래도 나 이거 봤었는데
아, 진짜?
(준형) 어유, 이거 진짜 편하다
아, 이래서 시몬스 시몬스 하는구나?
여기 바로 계약할 수 있죠?
(점원1) 아, 네, 가능합니다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
- (준형) 네 - (나은) 잠깐만, 오빠
저희 좀만 더 둘러보고 올게요
(점원1) 아, 그러세요
(준형) 왜?
[나은의 반색하는 숨소리]
(나은) 오빠, 이거 봐 봐, 대박 [준형의 탄성]
(준형) 이 부케 완전 자기 스타일이네
(나은) 완전 러블리하다 너무 예쁘다
(점원2) 안녕하세요, 신부님
네? 아…
[나은의 웃음]
혹시 이런 부케는 가격대가 얼마 정도 해요?
(점원2) 아, 너무 예쁘죠?
저희가 경력 10년이 넘는 웨딩 전문 업체라
아무래도 가격대가 조금은 있는 편인데요
그래서 얼마인데요?
[점원2의 난처한 웃음]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준형) 그래, 들어가서 들어보자
뭐, 자기가 마음에 든다는데 가격이 무슨 상관이야?
(점원2) 그럼요 신부님 맘에 드는 게 최고죠
(나은) 저기, 죄송한데요
저희가 지금 막 와 가지고 좀만 더 둘러보고 올게요, 네
[준형의 멋쩍은 숨소리]
(나은) 오빠, 우리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둘러보자
(준형) 왜? 부케 마음에 드는 거 아니었어?
마음에 들어도 다른 데도 둘러보고
가격 비교도 해 봐야지
가격 비교?
에이, 그냥 맘에 들면 해
(준형) 오면서 자기 돈 많이 모아 놨다고 자랑했잖아?
그건…
오빠가 결혼 비용에 부담 느낄까 봐 내가 그런 거고
부담? 전혀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비용에 부담을 느끼면 안 되지
아, 그래?
내가 오빠 경제 사정을 잘 모르니까
[익살스러운 음악] (나은) 아, 오빠
주변에 보니까
결혼 앞두고 서로 경제 사정 오픈하고
같이 예산 세우고 하던데
우리도 그렇게 할까?
예산?
응
글쎄, 난 별로
왜?
(준형) 아니, 예산을 딱 정해 놓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거 같아서
뭘 할 때마다 계속 가격에 신경 써야 하니까
스트레스받을 거 같기도 하고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예산을 세워 놓으면 효율적으로 돈을 쓸 수 있잖아
나은아
(준형) 이거는 우리의 한 번뿐인 결혼식이잖아
나는 효율적인 거보다 후회 없이 하고 싶어
아, 그건 나도 그래
후회 없이 최대한 가성비 좋은 쪽으로 잘 골라서…
(준형) 가성비가 좋다는 건 가격 대비 좋다는 거잖아?
그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어차피 결혼 준비는 업체별로 큰 차이는 없대
(나은) 그러니까
최대한 가격 대비 좋은 걸로 골라서 결정하면 만족할 거야
아니지
(준형) 가격은 추후에 고민하면 되고
최대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야지
아… 이거 한번 보시죠
어유, 이거 사진 죽인다
자기야, 우리 신혼여행 몰디브로 갈까?
(나은) 아까 그냥 오빠는 얼마를 모았길래
후회 없이 하자고 하는 거냐면서 바로 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익살스러운 음악]
[나은의 한숨]
(준형) 몰디브가 비싸서 그런가?
[입소리를 씁 낸다]
아, 내가 또 얘길 들어 봤는데
이 몰디브가 막상 가면 할 게 없대
(준형) 패스
그러면 액티비티가 넘쳐 나는 칸쿤!
[한숨]
으로 가자는 건 아니고
뭐, 이거 발리, 하와이
뭐, 여기저기, 뭐, 잘 따져 보고 결정을 해야지, 음
[어색한 웃음]
야,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이 팸플릿만 냅다 얻어 왔다고?
야, 폐지 주우러 멀리도 갔다 왔다, 진짜
아니, 분위기가 약간 묘하더라고
갑자기 나은이가 실속 따지면서 돈에 신경 쓰니까
나도 괜히 눈치 보여 가지고
뭘 하자고 하기가 약간 애매하더라
[한숨]
나은 씨가 갑자기 왜 그랬을까?
(항호) 그거야
이건 연애가 아니라
[익살스러운 음악] 결혼이니까 그런 거지
[항호가 커피를 후루룩 마신다]
이제 네 돈, 내 돈 따질 게 아니라
살림을 합쳐야 될 단계니까 그런 거라고
[입소리를 쩝 낸다] 우리 와이프도
결혼 준비 시작하자마자 딱 그랬거든
[항호의 웃음]
이렇게 돈돈거리는 여자인 줄 알았으면
결혼을 안 하는 거였어
(민우) 아휴, 참 아련하시네요
되돌리고 싶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유, 행복하게 잘 사시면서 왜 이러세요?
(항호) 아니야, 잘 사는 게 아니야
나 이렇게 힘들어 가지고 부어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
우리 와이프 돈타령에 스트레스받아 가지고
매일 이렇게 온몸이 부어요
[민우의 콧바람]
[민우의 어색한 웃음]
웃어?
아니요
[입소리를 쩝 낸다] 야, 서 주임 너 와이프 될 사람이랑
뭐, 돈 관리는 누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아직 거기까지 얘기해 본 적은 없어요
(준형) 결혼 준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래? [걸어가는 발걸음]
어, 야, 일한아, 일로 와 봐
(일한) 왜, 왜, 왜, 왜, 왜?
- (항호) 야, 서 주임 - (일한) 어?
(항호) 아직 경제권 안 넘겼대
(일한) 그래? 아이고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얘기 잘 들어
(항호) 자, 서 주임 지금부터 네가 지켜야 될 건
딱 두 가지야
뭘까?
[흥미로운 음악]
믿음과 사랑
(일한) 아멘
아니야
정조와 신의?
아니야
조선 시대야?
- 사랑과 정력 - (일한) 아이고, 진짜
[항호의 헛웃음] (민우) [웃으며] 아니
아이, 그럼 뭔데요? 그 지켜야 될 두 가지가?
[항호가 입소리를 씁 낸다] (항호) 잘 들어
이 지켜야 될 두 가지는 바로
경제권과
(함께) 공인 인증서
- (항호) 그렇지 - (일한) 그렇지, 응
(민우) 공인 인증…
에이, 겨우 그거 가지고
(항호) 겨우? 야, 겨우라니!
이건 단순히, 어? 통장이 누구한테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생활 전반의 주도권이 달린 문제야
야, 너 이거, 이런 거 이거 백날 봐 봐야 뭐 하냐, 어?
결혼식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어
(일한) 물론 안 하면 제일이지만
근데 경제권이 넘어가잖아?
(항호) 그러면
[흥미진진한 음악] 너의 인생이 바뀌어
물론 결혼을 안 하면 인생이 안 바뀌지만
(항호) 경제권이 넘어가잖아?
그러면 사람이 이 푼돈에 목숨을 걸게 되고
되게 쪼잔해져
그리고 삶이
되게 피폐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일한) 봐 봐, 이 피폐해져 가지고
[항호의 괴로운 숨소리] 이렇게 막 이렇게 막 부은 거, 어?
봐 봐, 이 부어 가지고, 이거 [놀라는 효과음]
이거 살 아니야, 근데?
- 아이, 부은 거야 - (일한) 부은 거야?
[민우의 웃음]
웃어?
아니, 아유, 선배님들 그러면은 경제권은 알겠는데
공인 인증서는 왜 나오는 거예요?
(항호) 아이, 답답하네
경제권이 넘어가잖아?
그다음 타깃이 바로 공인 인증서야
(일한) 자, 잘 들어
이 공인 인증서까지 넘기게 되면은
이 모든 경제 활동이 탈탈 털려
그러면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되거든, 응?
자, 서 주임, 이것만 명심해
이 경제권과 공인 인증서 이 두 가지는 무조건 지켜야 된다
(민우) 이야, 이래서 공인 인증서는 꼭 지키라고
나라에서 캠페인을 하는 건가?
[민우의 웃음]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냐?
- (준형)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 (민우) 야
야, 넌 그래서 공인 인증서 안 지킬 거야?
(준형) 선배들이 농담한 걸 가지고 너 혼자 진담으로 듣고 있었냐?
야, 넌 그걸 농담으로 들었냐?
선배들은 경제권 사수 이, 혈서까지 쓸 기세였는데
뭐래?
야,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하면 진지하게 좀 처들어, 씨
(민우) 아이, 쯧, 야
너 공인 인증서가 있으면
카드 내역이랑 통장 내역이랑 다 확인 가능하잖아, 그렇지?
응
그럼 네가 돈을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또 어떻게 썼는지
다 나은 씨가 확인 가능하고, 그렇지?
알면 어때? 이상한 데 쓰는 것도 아닌데
야, 이상한 거 쓰는 데 아닌데 눈치는 보이겠지
- 뭐? - (민우) 네가 아까 그랬잖아
아까 박람회장에서 살짝 나은 씨 눈치 보였다고
(민우) 그렇게 계속 눈치 보다 보면 어떻게 되겠냐?
[익살스러운 음악]
스트레스받겠지
스트레스받겠지?
그렇게 계속 스트레스받다 보면 어떻게 되겠냐?
힘들어서 붇겠지, 어?
아까 저, 저, 저 인간처럼, 저
(민우) 아휴, 너 그러니까 얼굴 믿고 자만하지 마
너 그거 한순간에 훅 간다, 진짜 아휴, 참
아이고
[흥미로운 음악]
(준형) 예산?
예산을 세워 놓으면 효율적으로 돈을 쓸 수 있잖아
(준형) 나는 효율적인 거보다 후회 없이 하고 싶어
아, 그건 나도 그래
후회 없이 최대한 가성비 좋은 쪽으로 잘 골라서…
가격은 추후에 고민하면 되고
최대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야지
(준형) 이렇게 다른데
나중에 경제권을 한 사람이 갖게 되면?
[나은의 찌뿌둥한 탄성]
(수연) 저, 그, 선배님
이게 몸을 푸셔야 될 게 아니라
입을 푸셔야 될 거 같은데?
[수연의 재밌어하는 웃음]
그냥 결혼하고 난 뒤에 얘기할까?
[희선이 못마땅해한다]
(나은) 아, 어차피 결혼해서 생활비 때문에라도
오빠가 먼저 돈 얘기 꺼낼 거 아니야?
(수연) 뭐, 그것도 좋죠, 응
(나은) 그렇지?
(수연) 그럼 이제 남자 친구분이
이제 모은 돈을 싹 다 그 결혼식 비용으로 써 버리고
이제 무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죠
그럼 차라리 편지를 써 볼까?
야, 그것도 좋다
원래 말하기 힘들 때는 편지 쓰는 게 최고지
(희선) 편지 시작을 이렇게 해 봐
어떻게?
'이 편지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돼서…'
[나은의 못마땅한 탄성]
아, 둘 다 왜 그래, 정말? 나 정말 진지한 거 안 보여?
아, 우리가 답답해서 그러지
그냥 가서 어른답게 맞다이를 떠
[발을 동동 구르며] 언니 거기서 맞다이가 왜 나와?
(수연) 아, 근데
진짜 뭐,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 그냥
뭐, 돈 얼마나 모았는지, 어?
월급은 얼마나 되는지 결혼식 비용으로 얼마나 쓸 건지
뭐, 그것도 물어보는 게 좀 불편해요?
아, 그게 차라리 저번에 내가 말했을 때 그냥
(나은) 바로 마무리 지었으면 괜찮았는데
아, 연속해서 내가 또 말하려니까
자꾸 돈돈거리는 거 같아서
(수연) 씁, 전혀 아닌데
(나은) 생각해 봐, 어?
오빠는 '결혼 한 번뿐이니까'
'네 마음에 드는 거로 해라' 이러는데
난 거기서 가격 대비 어쩌고, 어? 모아 놓은 돈이 어쩌고 이러니
내가 너무 계산적으로 보이지 않아?
아, 그게 왜 계산적인 거야? 그게 야무진 거지
[한숨]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어
자, 빨리 짐 챙겨
[나은의 한숨] (수연) 가요
(희선) 입 풀어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준형이 컵을 탁 놓는다]
[꿀꺽 삼킨다]
[컵을 탁 놓는다]
- 나은아 - (나은) 오빠
(나은) 어?
먼저 말해
아, 별건 아닌데
(나은) 오늘 검색하다가 봤는데
결혼 준비 할 때 제일 큰 문제가 돈이래
어? 나도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진짜?
(준형) 우린 이런 것도 잘 맞네
(나은) 아, 신기하네
난 오빠가 돈 얘기 할 줄 몰랐는데
어, 아까 선배들이랑 얘기하는데 경제권 얘기가 나와서
(준형) 씁, 나도 자기랑
이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했지
경제권?
결혼 후 돈 관리를 누가 하냐 뭐, 이런 거?
(준형) 응
(나은) 뭐야
설마 지금 결혼 후 경제권 얘기를 하려는 거야?
결혼 비용에 관한 얘기도 안 했는데?
나은아, 너 주식 해?
- 아니 - (준형) ETF는?
(나은) 들어는 봤어
(준형) 채권 투자는?
(나은) 그것도 어디서 들어 봤어
아, 그럼 따로 재테크는 안 해?
하지, 은행과의 쿨 거래
(나은) 원금 손실 없는 적금 위주로 한다고
오빠는?
나는 투자를 많이 하지
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좋은 기업을 찾아 놓으면
(준형) 은행 이자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오, 오빠 되게 달라 보인다 경제 전문가 같아
(준형) 에이, 뭐 이런 거 가지고
[나은의 웃음] (나은) 잘됐다
그럼 오빠가 그 분야를 잘 아니까
오빠가 우리 집 재테크 담당하면 되겠네?
[긴박한 음악] 그러지 말고
각자 관리하는 거 어때?
각자?
자기랑 나랑 재테크 성향이 이렇게 다른데
(준형) 굳이 합쳐서 관리하는 거보다
각자 관리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흥미진진한 음악]
어…
(준형) 사실 재테크도 그렇지만
결혼하고도 각자 개인적으로 필요한 돈이 있을 텐데
음, 한 사람이 도맡아서 돈 관리 하다 보면
서로 돈 때문에 부딪힐 일이 많을 거 같아서
그렇긴 하지
(준형) 지금껏 자기도 나도 알아서 잘 관리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하자, 어때?
[익살스러운 음악]
어, 그럼…
왜?
아, 아니야
각자 관리하는 거 좋다고 응, 좋아
[나은과 준형의 웃음]
[흡족한 웃음]
[컵을 탁 놓는다]
[어색한 웃음]
[휴대전화 조작음] [흥미진진한 음악]
(준형) 경제권 사수했습니다
- (민우) 오 - (항호) 그렇지!
(일한) 나이스!
(항호) 우리 회사 앞의 고깃집인데 일로 와, 마시자
(나은) 우리 경제권 각자 관리하기로 했어
(수연) 경제권이요? 갑자기?
(희선) 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돈 얘길 하러 가서 경제권 뺏기고 돌아오는 건 무슨 상황이야?
(수연) 기세 좋게 싸우러 갔다가 본전도 못 찾고
KO당한 상황인 거죠
(나은) 몰라, 나도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종이 잘랑거린다]
(나은) 다녀왔습니다 [나은이 신발을 탁탁 벗는다]
(달영) 응
[한숨]
[코를 훌쩍인다]
[쉭 소리가 난다]
(달영) 너는 가방에 맥주도 넣고 다녀?
[나은의 개운한 숨소리] (나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엄마 것도 있지요
[의아한 웃음]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으며] 남들은 결혼 앞두고 살 뺀다고 난리인데
우리 딸은 술살 못 쪄서 난리네?
[맥주 캔을 쉭 딴다] [달영이 힘준다]
목이 타서 그래
속이 타는 거 같은데?
(나은) 아빠는?
[달영의 개운한 숨소리]
(달영) 아, 집에 없으면 어디 술 마시러 나간 거지
입 아프게 뭘 물어?
[코를 훌쩍인다] [캔을 탁 놓는다]
[속상한 숨소리] [꿀꺽 마신다]
왜 그래?
준형이하고 싸우기라도 했어?
아니
그럼?
그냥
결혼 준비 시작하니까 좀 어려워서
(나은) 하고 싶은 얘기도 못 하겠고, 쯧
에이, 됐어, 나도 이제 몰라
여기서 더 말하면 나만 치사해질 거 같아
치사?
[달영의 웃음] (달영) 뭔지는 몰라도
연애 때 치사한 거는 치사한 것도 아니야
(나은) 응?
(달영) 이제 결혼해 봐라
내 입으로 말하자니 치사하고
가만히 있자니 속 뒤집어지는 일들이 계속 생기지
근데 그 상황에서 제일 열받는 게 뭔 줄 알아?
뭔데?
그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네 아빠는 하나도 몰라
이 마누라 속은 뒤집어지고 있는데
아빠는 왜 몰라?
내가 치사스러워서 말을 안 하니까
그런 거 있잖아
내가 말하기 전에 눈치껏 먼저 말 꺼내 줬으면 좋겠고
(달영) 알아서 해 줬으면 좋겠는 거
근데 내가 말을 안 하니까 네 아빠 절대 모르더라
당연히 말을 해야…
[익살스러운 음악] 알지
(달영) 그럼, 말을 해야지
응? 치사스럽다고 마른미역 물에 불리듯이
혼자 꾸역꾸역 불리고 있으면
그거 아무도 몰라 내 속만 불어 터지지
[맥주를 꿀꺽 마신다]
[키보드 조작음]
(항호) 이 어려운 걸 네가 해내는구나
- (항호) 짠 - (일한) 짠, 아이고
(일한) 전요, 서 주임이 이거 해낼 줄 알았습니다
아, 아, 축하, 축하, 축하 받아, 받아 [민우가 호응한다]
(준형) 아유, 왜들 이러세요? [민우가 호응한다]
상의하에 합리적으로 결정한 건데
(민우) 야, 야, 그래도 축하한다 서준형, 짠 해
(항호) [우물거리며] 아니야 네가 축하할 일이 아니야
네가 뭘 안다고 축하를 해?
여자도 없는 주제에
아이, 나 진짜
아, 구박하실 거면 뭐, 소개팅부터 해 주고 하세요
아시죠? 잔소리는 입금부터 구박은 소개팅부터
[피식 웃는다]
너 웃지 마, 이 새끼야 네가 제일 나빠!
(민우) 이 새끼 자기는 결혼하면서
나 소개팅 한 번도 안 시켜 주고, 이씨
아니야, 결혼하지 마
결혼, 그, 뭐 좋은 거라고 하려고 해?
넌 그냥 혼자 살아
아니요, 전 꼭 결혼할 겁니다
그래서 영원한 내 편 만들 거예요
(항호) 아니야, 내 편이 아니야
[젓가락을 달그락 던진다] 내 편은, 니미, 씨
야, 가문의 원수도 나한테 그렇게 하진 않겠다고
생각 들게 하는 게 와이프야
아이, 자꾸 왜 이러세요?
형수님하고 잘 사시면서
아니야, 잘 사는 게 아니야
(항호) 아주 그냥 눈만 마주치면 돈돈거리는데
그럴 때 정말 귀신 같다니까
정말 막 소름 돋아, 막… 아씨!
아유, 놀라라 아유, 와이프 닮았어
아이, 소름 돋았네, 진짜
[함께 웃는다]
- (항호) 아유, 소름 돋았어 - (준형) 아이
(항호) 야, 애들만 아니었으면 진작 갈라섰어, 너 알지?
(일한) 알죠, 알죠, 저는, 음
(항호) 야, 서 주임 너도 결혼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어? 네 와이프 될 사람도 돈돈거린다며?
아니, 돈돈거리는 게 아니라
경제 개념이 저보다 확실하단 의미였어요
(일한) 아이, 뭐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항호) 아니야 덮어 치나 메치나야
(일한) 그래요?
[항호와 일한이 말한다]
아이, 아이, 아이
(민우) 아유, 저한테는 이런 얘기 재미없으니까
우리 뭐, 주식 얘기나 해요
- (일한) 주식? - (항호) 주식은
[아파하는 신음] (항호) 아니야
지금 주식 얘기 할 때가 아니야
지금 서준형 인생이 걸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 주식 얘기 할 때야?
네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 아니야
야, 얘기 들어 보니까 서준형 와이프 될 여자도, 응?
결혼 전부터 돈돈거리는 거 보면
보통이 아니야
결혼하잖아? 그땐 눈이 돌아가
그래 갖고 내 눈을 지갑으로 봐
(준형) 아이, 진…
그만하시죠, 듣기 거북한데
[민우의 멋쩍은 숨소리]
(일한) 아이 거북해하지 말고 들어, 어?
너 지금 듣기 싫지? 너 결혼만 해 봐라
1년 안에 우리 찾아와 가지고
뭐, '선배님 말이 맞았어요' 뭐, '결혼 괜히 했어요'
너 그러고 하소연하는 데
내가 그냥 여기 있는 소주 내가 10병 건다, 내가
(항호) 아니야, 10병이 아니야
20병 걸어도 돼
- (일한) 아, 그래요? - (항호) 어
(일한) 어, 그래, 어차피, 뭐
- 후회하잖아, 후회하잖아? - (일한) 아, 알지, 나도
아, 두 분 진짜!
(민우) 야, 서준형
야
[준형이 달그락거린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여기 제가 계산할게요
야, 야, 인마
아이씨, 데리고 올게요, 아이
(일한) 진짜 가는 거야?
(항호) 인마
(민우) 야, 너 그렇게 가면 어떡해? 씨
아유, 씨, 미친놈 같아
[민우가 숨을 하 내뱉는다]
야, 선배들 술 좀 마셨잖아
그냥 주정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니! 내가 미친놈 같다고
뭐?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나은이한테 프러포즈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고 있냐? 씨
(준형) 아, 대체 자기들이 나은이에 대해 뭘 안다고
'돈돈거리네', '보통 아니네' 이딴 소리는 지껄여?
야, 그냥 선배들은 별 뜻 없이 얘기한 거니까
(민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아씨, 진짜 현타 오네, 이씨
(민우) 야, 다들 집에서 큰소리 못 치는 거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나와서 이러는 거
그냥 넘어가
뭐, 힘들어서 얼굴이 부어?
저거 부기 아니야
(준형) 처먹는 거 봤지?
아, 존나게 처먹더라 아이, 돼지 새끼
아이씨
저런 선배들한테 휘둘려서
경제권이니 뭐니 이러고 있고, 진짜
[성난 숨소리]
[차분한 음악]
아휴, 씨
(민우) 야, 어디 가?
어디 가? 야, 서준형
인마, 저거…
저 새끼 저거 그냥 가면 어떡해, 저거?
그럼…
왜?
아, 아니야
각자 관리하는 거 좋다고 응, 좋아
[나은과 준형의 웃음]
[착잡한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나은) 어, 오빠
보고 싶다
(나은) 지금?
어, 지금 자기 집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20분만 있다 내려와
(나은) 오빠
늦은 거 아는데
잠깐만, 잠깐만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
(나은)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지금 오빠 집 앞인데
우리 집?
우리 집에 언제 왔어?
아니, 올 거면 나한테 전화를 하지
오빠 집에 두고 갈 게 있어서
(준형) 아, 그럼 집에 먼저 들어가 있어
내가 집으로 바로 갈게, 어
[통화 종료음]
오빠 술 많이 마셨나?
[도어 록 작동음]
[도어 록 작동음]
[가쁜 숨소리]
[도어 록 작동음] 깜짝이야
자기야
(나은) 오빠
집에 간 줄 알았잖아 어디 갔었어?
여명 사 왔지
(나은) 오빠 술 많이 마신 거 같아서
괜찮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오빠
(항호) [술 취한 목소리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군지 아냐?
[일한이 웅얼거린다] (민우) 누군데요, 누군데요?
(항호) 유하 감독
(일한) 유하가 뭐야, 누구야? [민우가 묻는다]
(항호)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잖아
[일한의 웃음]
(민우) 아이, 알았어요, 가요 가방 다 챙겼으니까 가세요 [항호와 일한이 술주정한다]
아유, 아, 왜 이렇게 무거워?
- (민우) 왜요? - (종업원) 돈 내고 가세요, 돈
아, 아직 계산 안 했어요?
(종업원) 네, 계산 안 하셨어요 18만 원
(항호) 이 새끼가 계산을 하고 먹었어야지 [민우의 아파하는 신음]
이 새끼, 무전취식을 한 나쁜 새끼 이 나쁜 새끼
저 씹새끼, 진짜, 이씨
[준형이 음료를 꿀꺽 마신다]
선배들 얘기에 휘둘렸다고?
경제권을 각자 관리하는 건 내 의견이 맞는데
말하는 타이밍이…
[생각하는 숨소리]
아니야
[준형이 컵을 탁 내려놓는다]
(준형) 변명 그만할게
내가 생각이 짧았어
[옅은 웃음]
자기랑 충분히 상의한 후에 결론을 내렸어야 했는데
나 혼자 먼저 결론을 내린 다음에 자기한테 가서
자기 생각을 잘 듣지 않았던 거 같아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나도 경제권은 각자 갖는 거 찬성이니까
어?
(나은) 아, 오빠 말대로 우린 재테크 성향이 너무 다르잖아
근데 합치면 서로 부딪힐 거 같아
각자 관리하되
경제 상황만 투명하게 공유하기로 하자
어때?
오케이
좋아
[나은과 준형의 흡족한 웃음]
[흥미로운 음악] (준형) 그나저나 자기는 이 밤중에 우리 집에 왜 왔어?
(나은) 아
이거 주려고
이게 뭐야? [부스럭거리는 소리]
'김나은의 자산 상황 보고서'?
재능 낭비도 다양하지?
간단히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불이 붙어서
[웃음]
이게 얼마야? [종이를 사락 넘긴다]
(준형)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우아, 자기 부자네
자랑할 만하네
[준형의 웃음]
아, 사실 그때 자랑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나은) 오빠가 얼마 모았는지 궁금했는데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속앓이하다가
그런 말이 나와 버린 거야
얼마를 모았는지
얼마를 우리 결혼식 비용에 쓸 건지
서로 알아야 진행이 쉬울 거 같아서
그러네
이 이야기도 안 해 보고 내가 경제권 얘기 먼저 꺼냈네
맞아, 오빠 제대로 속도위반했어
내가 다른 쪽으로 속도위반을 했어야 되는데
아유, 진짜, 장난 그만 치고
오빠, 말해 봐
(나은) 오빠 그동안 얼마 모았어?
1억?
2억?
진짜야?
장난이지?
(준형) 눈 튀어나오겠네
[웃으며] 장난이야
아, 뭐야?
내가 다음 주 내로 정리해서 알려 줄게
알았어
그리고 나은아
(나은) 응?
[편안한 음악]
우리 이제 부부 될 사이인데
그런 이야기도 편하게 못 해서 혼자 속앓이하면 어떡해?
뭔가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을 거니까
혼자 끙끙대지 말고 뭐든 다 말해
(준형) 난 네가 혼자 속앓이하는 게 더 마음이 안 좋아
알겠어?
알았어 [웃음]
(준형) 이리 와
(나은) 아, 지금 몇 시지?
[나은의 놀란 숨소리] 11시다, 나 가야 돼
안 돼, 이왕 늦었으니까 오늘 자고 가
안 돼
우리 아빠 기다리는 거 알잖아 나 가야 돼, 응?
(준형) 안 돼, 오늘 자고 가
(나은) 아이, 안 돼, 나 가야 돼
미안
[준형과 나은의 웃음] (준형) 오케이, 알았어, 알았어 잠깐 기다려
같이 가, 나 옷만 갈아입고 나올게
(나은) 알았어
(준형) 응
[멀어지는 발걸음]
[문이 탁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의미심장한 음악]
(나은) 미친
[경쾌한 음악]
(나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됐고
됐어, 쿨해지자, 김나은
(나은) 남자는 결혼하면 철든다고
연애 때처럼 돈을 쓸 수 없다는 거 오빠도 잘 알 거야
(준형) 그래서 난 최대한 자기한테 집중되도록 선택
(민우) 프러포즈한 지 얼마나 된다고 또 이벤트냐?
(나은) 아무래도 영 이상해
(나은) 갑자기 왜 이렇게 야근이 많아졌어?
(준형) 내가 뭘 했을까, 요즘에?
(나은) 축제는 끝났고 전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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