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 3
[리드미컬한 음악]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사진작가)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살아야 돼
아니다
'널 죽여야 내가 산다'
자, 갑시다, 프로페셔널하게, 자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좋았어, 오케이
더 강렬하게
좋아요, 오케이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사진작가) 씁, 혜준 씨
그, 표정을 쪼끔 풀까요?
- 아, 예 - (사진작가) 자연스럽게
- 혜준이 얼굴 한번 눌러 주세요 - (진주) 네
- 고맙습니다, 괜찮아? - (진주) 네
좋은 친구 두셨어요
원래 해효 씨 단독 인터뷰였거든요
아…
- (해효) 이제 다시 시작하죠 - (사진작가) 네, 갈게요
(해효) 헤이, 요
(사진작가) 자, 갈게요, 카메라 보면서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아이, 좋아, 좋아요
(해효) 야, 지훈이 제대했다
애들 모이기로 했는데 이따 같이 가자
- 이따 몇 시? - (매니저) 옷 갈아입자, 이걸로 입어
(해효) 이거 입으면 안 돼?
(매니저) 에이, 감독님 만나는데 너무 양아치 같은데?
(혜준) 뭘 입어도 해효가 양아치처럼 보이지는 않지
(해효) 그렇지? 이 형이 가끔 오버라니까
[해효의 웃음]
혜준이도 같이 갈까 감독님 만나는 데?
(매니저) 자, 얼른 옷이나 입어
(혜준) 그래, 옷이나 입어라, 난 간다
[문이 달칵 열린다] (해효) 이따 8시다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못 갈 거 같아
약속 있어?
아니, 가기 싫어졌어
- (해효) 왜? - (혜준) 말하기 싫어
(해효) 너 요즘 왜 사춘기 때도 안 하던 짓을 하냐?
왜 말하기가 싫어?
전에도 나중에 얘기해 준다고 안 했잖아
네가 날 위해 애써 주는 거 알아
- 알면 잘해라 - (혜준) 근데
[한숨 쉬며] 그게 오늘은 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안에서부터 뭔가가 치민다
[웃으며] 그래, 우리가 싸운 지 오래되긴 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내 문제야
내가 오늘은 소화가 안 돼
자존감 엄청 떨어져 있거든
감독님 같이 만나자고 해서?
아니면 화보?
[차분한 음악]
둘 다 받고 아빠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달칵 열린다]
(애숙) 오셨어요?
(이영) 재미없어
(이영) 공도 안 맞고, 비즈니스는 해야 되고 [도어 록 작동음]
[흥미로운 음악] (애숙) 언제는 제일 재밌는 게 골프라면서?
나 지금 혼자 있어?
(이영) 리액션 좀 해
(애숙) 제일 재밌는 게 골프라면서요?
(이영) 재밌긴 재밌지
재밌는 것도 계속하면 지겨워
(애숙) 재밌는 거 지겹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나 같으면 감사하면서 살 거예요
자기랑 나랑 같니?
(이영) 해효하고 혜준이가 친구라고 우리가 친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
제가 나이도 더 어린데 무슨 친구예요?
(애숙)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아이, 그렇다고 뭘 그렇게 딱 선을 그어?
따라와 봐
(이영) [달그락거리며] 이거
이거
이거
(애숙) 매번 이런 식이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이영) 이건 안 되겠지?
(애숙) 주세요, 줄여 입으면 돼요 [이영이 호응한다]
(이영) 이거 버리는 거 아니야 싫증 나서 안 입는 거야
(애숙) 버리는 거라도 괜찮아요
[이영의 옅은 웃음]
혜준 엄마는 이런 데 콤플렉스 없어 좋아
나 같으면 싫을 텐데
싫을 게 뭐 있어요?
내 돈 주고 사는 옷보다 훨씬 좋은데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고
혜준이 때문에 속상하겠다
(이영) 지금 군대 가면 이쪽 일하곤 빠이빠이잖아
(애숙) 여기 혜준이가 왜 나와?
(이영) 하필 우리 해효랑 붙었다 떨어져서
우리 해효가 마음이 좀 그런가 봐
걱정 안 해요, 우리 혜준이는 저 알아 하겠죠
(이영) 말은 그렇게 해야 되겠지, 이해해
(애숙) 이해를 어떻게 하겠어요?
사는 처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내가 얼마나 공감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
옷 잘 입을게요
뭐야?
아니라는 거야?
(이영) 하,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
(여자) 이게 뭐가 잘해 주는 거예요?
하, 드레스 입으면 달라질 거라고 하더니
뭐가 달라진 거야?
이게 무슨 신부 화장이에요?
아, 신부님
같이 의논해서 정한 거잖아요
자연스럽고 기품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왜 내 말에 토 달아요?
(여자) 나 오늘 결혼해요
(정하) 죄송합니다, 다시 해 드릴게요 [여자의 한숨]
눈을 더 강조해 드릴까요?
[잔잔한 음악]
[쓱쓱 닦는다]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레버를 내린다] [물이 솨 흘러나온다]
[물이 뚝 끊긴다]
[휴대전화 조작음]
(수빈) 이거라도 보면서 대리 만족 고, 고
(혜준) 진주 쌤한테 이겨
한 번은 이겨야 되지 않겠냐?
이렇게 밀어주는데 지면
너 바보
바보 맞아, 나
[헛웃음]
(민재) [웃으며] 안녕하세요
저기, 사혜준 매니저 이민재라고 합니다
- 아, 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민재) 드시면서 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사혜준 매니저 이민재라고 합니다
다음번 영화 제작 때도 꼭 불러 주세요
(민재) 그때는 더 잘하겠습니다
괜찮았는데 인지도에서 밀렸어요
뭐야?
누나 우리 집 앞에 오는 거 취미 들였냐?
나 많이 생각했어 밀라노 갔다 온 후에
뭔데 이렇게 심각해?
매니저가 돼 줄게
- 누나? - (민재) 군대 한 번만 더 미루자
(민재) 지금 너한테 2년의 공백기는 치명적이야
결정했어
(민재) 네가 왜 오디션에 떨어졌는지 알아?
감독이 처음에는 널 더 밀었었는데
해효 SNS 팔로워 수가 너보다 훨씬 더 많아서 뽑았대
인지도에서 밀린 거야 실력에서 밀린 게 아니라
[잔잔한 음악]
인지도도 실력이야
나 한 번만 믿고 해 보자
(민재) 내 나이 40 넘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 같아
(혜준) 미안해, 누나
(민재) 야, 인생에서 한 번쯤은 끝까지 가 봐야 되지 않겠냐?
(혜준) 조심해서 가 [민재의 답답한 신음]
(민재) 혜준아
나 명함도 팠다?
(혜준) '짬뽕엔터테'…
- 진짜 짬뽕이야? - (민재) 진짜 짬뽕이야, 내 인생은
날 이렇게 잘 설명해 주는 이름이 없다니까?
그럼 짬뽕에는 나 말고 누가 있어?
너 말고 누가 있겠니?
그럼 누나도 이제 접어
(혜준) 잠깐 삐끗한 거야, 생각이
- (민재) 안 접어 - (혜준) 그럼 접지 마
누나 인생이니까 누나가 결정한 대로 살아
(혜준) 난 빼고
혜준아
(민재) 혜준아, 혜준아!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네 인생한테!
어유, 멍청이, 진짜, 어유!
[못마땅한 신음]
[휴대전화 진동음]
(정하)
[잔잔한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혜준)
[휴대전화 조작음]
(정하)
(혜준) 왔냐?
(정하) 아, 바짝 붙으면 어떡해?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혜준) 보면 어때서?
너 이상한 생각 하냐?
하, 아, 무슨 이상한 생각?
그리고 너 손버릇이 안 좋다?
(정하) 그 손가락은 뭐지? 비난하는 건가?
(혜준) 비난이 아니라 가리키는 거지, 널
가리키면서 얘기하면 안 돼?
돼
(정하) 여긴 자주 와?
(혜준) 우울할 때마다 오는 장소 중 하나야
(정하) 우울해?
(혜준) 우울해
(정하) 나도 우울한데
(혜준) 고맙다
왜 우울하냐고 묻지 않아서
(정하) 왜 우울한데?
[함께 웃는다]
(혜준) 뭐 마실래? [정하의 웃음]
(정하) 밖에서 보면 다 행복해 보인다?
(혜준) 내가 안에 들어가서 마시자고 했잖아
행복해 보인다 그랬지 '행복할 거다'라고 안 그랬다
[혜준이 물병을 탁 내려놓는다] (정하) 나와서 사 마시는 커피, 돈 아까워
너무 비싸
내가 산다고 했잖아 네 돈 아니고 내 돈
(정하) 내 돈이나 네 돈이나 막 쓰는 거 극혐
넌 돈 얘기를 참 야무지게 잘한다
보통 잘 못하지 않냐?
씁, 돈은 똥 같은 거야
왠지 말하기 껄끄럽지만 문제 생기면 죽는 거
왠지 그 말은
경험에서 나온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사무실이 분주하다]
하, 와, 또 이러네
[통화 연결음]
김 팀장님, 경영 지원실 안정하인데요
어, 10월 8일 장모갈비에서 쓰신 97,000원 영수증이 없는데요
법인 카드 3만 원 이상은 무조건 주셔야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마감이라 안 돼요 영수증 찾아 주세요, 빨리
어떻게 이렇게 남의 돈에 책임감이 없냐?
- (실장) 안 주임 - (정하) 아
(실장) 그, 김 팀장 영수증 그냥 비용 처리 해 줘
아이, 실장님까지 왜 그러세요?
윗사람이 까라면 좀 까라
나 때는 말이야 윗사람이 얘기하면 '네' 했어
[흥미로운 음악] (실장)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하) '라테는 말이야'가 나온다면
[실장이 잔소리한다] 넌 이제 조용히 듣기만 하라는 뜻이다
(혜준) 라테는 말이야
쇼 서고 돈 못 받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냐?
(혜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돈을 밝혀?
라테는 말이야
제시간에 퇴근할 생각조차 안 했어
(정하) 너희들은 어떻게 칼퇴근이냐?
애사심이라고는 1도 없어
라테 진짜 잘 팔아
우리는 나중에 후배들한테 라테 파는 선배는 되지 말자
동감
(혜준) 근데 자꾸 '라테, 라테' 하니까 라테 마시고 싶지 않아?
마시고 싶어
(혜준) 안으로 들어가서 마실래?
돈 아까워서 싫어?
소신 따위는 개나 줘 버릴래
[피식 웃는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하) 너 묻었어 [컵을 탁 내려놓는다]
너도 묻었어
아… [혜준이 피식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의아한 신음]
(혜준) 어, 할아버지
(영상 속 민기) 어? 이거 왜, 왜, 왜 왜 이렇게 돼 있지?
[통화 종료음]
[휴대전화 조작음] [함께 웃는다]
[통화 연결음]
(영상 속 민기) 야, 그, 전화비 많이 나올까 봐 딱 끊었는데
다시 걸면 어떡해?
공짜야, 영상 통화 30분 있어
내 얼굴 안 보고 싶어?
(영상 속 민기) 보고 싶어, 왜 안 들어와?
(혜준) 들어갈게
(영상 속 민기) 그, 내 일 좀 알아봤어?
알아보고 있어, 아, 성격 되게 급해
(영상 속 민기) 나의 하루는 너의 하루보다 짧다
[웃으며] 재촉 좀 하지 마
(혜준) 아, 여기 내 친구 정하
(정하)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안녕
(민기) 아유, 이쁘네
(혜준) 요즘 그런 말 하면 안 돼, 실례야
(정하) 아니야, 괜찮아
좋아요, 예쁘다는 말
(영상 속 민기) 내가 태어나서 이쁘다는 말 싫어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그건 너희 할머니도…
아이, 할머니 얘기는 하면 최소 30분인데?
(영상 속 민기) 알았어, 끊을게
안녕!
(정하) 네, 안녕히… [통화 종료음]
아, 끊으셨네 [혜준과 정하의 웃음]
너 할아버지 닮았나 봐 진짜 잘생기셨다
키도 커, 옛날 어른치고
- 보여 줄까? - (정하) 응
(정하) 봐 봐
[부드러운 음악]
너무 바짝 아니냐?
(정하) 아…
어, 미안 [정하의 어색한 웃음]
[정하의 놀란 숨소리]
배우 하셔도 됐겠다, 왜 안 하셨어?
못 하셨어
(혜준) 사기도 많이 당했고
사람을 잘 믿거든
사람을 잘 믿는 건 좋은 거잖아
속이는 사람이 잘못된 거지
너 은근 잘 가르친다? [정하가 피식 웃는다]
미안
근데 뭘 알아보라 하신 거야?
(혜준) 일자리
되겠냐?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알아보면 되겠냐?
그렇지
[웃음]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친구1) 어, 왔어?
- (친구2) 하이 - (해효) 헬로
- (친구3) 오랜만이다 - (해효) 잘 지냈어?
(친구4) 혜준이는 안 달고 왔냐?
'달고 왔냐'가 뭐냐?
(친구4) 네가 맨날 우리 모임에 데리고 나오니까
오늘은 좀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
뭔 얘기?
(친구4) 우리 회사 화장품 모델 아빠한테 너로 강력 추천 했어
아빠도 좋대
(친구5) 하이, 미필자 [해효가 피식 웃는다]
(해효) 야, 너만 가냐? 나도 곧 갈 거야
(친구5) 먼저 태어난 게 형이잖아
먼저 갔다 오면 갑이지
[친구5의 웃음]
술 한잔 따라 봐라
하, 그러세요?
(해효) 형님들
- (해효) 한잔 받으십시오 - (친구5) 음, 그래
[친구들의 웃음] (해효) 진짜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아유, 잘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어
그동안 너무 억눌려서 그래
그건 그래
(해나) 행복해
(진우) 나도
따라 하지 마
언제는 따라 하라며?
치…
우리는 너무 늦게 시작했어
네가 너무 어렸잖아
(해나) 오빠가 딴 여자들하고 연애하느라 바빴지
(진우) 아, 또 그 소리
그래도 너랑 처음이야
(해나) 나도 처음이야
헤어지는 거 결정하고 만나는 연애
그래
뭐든 처음은 설레는 거다
그러고 더 애틋한 거 같지 않아?
아니
(진우) 네가 원한 거야
나중에 헤어지지 말자고 울고불고 매달려도 진짜 짤없다, 너?
[헛웃음]
원해나 인생에 울고불고는 없어
- (애숙) 저 가요 - (이영) 어!
(이영) 이거 이번에 우리 해효 들어가는 영화인데
대박 날 거 같아, 너무 재밌어
아, 네
(애숙) 누가 물어봤나?
(이영) 해효 의상하고 대본 연습도 같이 해 줘야 되고
할 일이 너무 많아, 내가
요즘 애들 혼자서도 다 잘해요
이 영화에 들어가게 된 거 해효 힘으로만 된 줄 알아?
(이영) 요즘은 부모가 자식한테 온 평생이야
그런 세상은 죽은 세상이죠
부모가 온전히 커버해 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요?
지금 내가 틀렸다는 거야?
(애숙) 그럼 내 자식이 나처럼 살 거라는 말에 찍소리도 못 하면
내가 왜 살아요?
다른 의견도 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잘못된 의견은 바꿔야지
쉽게 설명해 줄게
혜준이가 내 아들이었으면
이번 오디션 합격자는 혜준이가 됐을 거야
인생 관 뚜껑 덮을 때까지는 모르는 거예요
[잔잔한 음악] (애숙) 이번 합격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
나중에 보면 알겠죠
지금 악담해? 우리 해효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거야?
잘못된 의견이라고 하시니까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잖아요
왜 이렇게 똑똑해졌어, 갑자기?
(애숙) 얘기를 안 할 뿐이었거든요
얘기해 봤자 이해 못 할 게 뻔하니까
[휴대전화 진동음] [애숙의 힘겨운 숨소리]
(애숙) 전화 왔어요!
(이영) [놀라며] 어머, 어머, 어머!
[이영의 다급한 신음]
아줌마!
[이영의 난감한 신음]
어떡해
어, 이거 악어가죽이라 물 묻으면 안 된다고요!
악어는 물에 사는데 왜 물 묻으면 안 돼요?
[익살스러운 음악] 하, 아유, 휴지나 빨리 갖다줘요
(이영) 됐어요, 됐어!
[도어 록 작동음]
[한숨]
[문이 달칵 여닫힌다] (어린 해효) 다녀왔습니다
(이영) 어, 왔어?
(어린 해효) 어?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니'?
어, 오랜만이다
(이영) 아는 사람이야?
(어린 해효) 혜준이 어머니셔 아, 혜준이 알잖아, 엄마도
(이영) 아, 혜준이?
[어색한 웃음]
혜준이 어머니?
[다가오는 발걸음]
[문이 달칵 열린다] (이영) 이 옷 이따 갈 때 수거함에 버려요
(애숙) 네, 어, 멀쩡한데요?
(이영) 요즘 누가 옷을 해질 때까지 입어?
(애숙) 제가 가져도 돼요?
뭐 하려고요?
(이영) 허, 내가 알아서 뭐 해? 마음대로 해요
(애숙) 아, 이쁘다
(어린 혜준) 엄마!
(애숙) 어? [애숙의 웃음]
왜 나와 있어?
어, 전에 사고 싶다는 농구화 사 줄게
앗싸, 엄마가 일하니까 인심이 좋아졌네?
- 아, 좋아? - (어린 혜준) 좋아
엄마 해효네 집으로 일 다녀 [차분한 음악]
- 충격받은 거야? - (어린 혜준) 놓친 거야
일 계속 다닐 거야
월급 받아서 너무 좋아
왜 지금 말해?
3개월 해 보니까 계속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전에는 관둘지도 몰라서 말 안 했어
[애숙의 멋쩍은 웃음]
(애숙) 엄마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어
치우고 정리하는 거 좋아하잖아
근데 널 생각하면 마냥 좋을 수가 없어
엄마가 네 친구 집에서 일한다고 네 친구한테 열등감 가지면
이 일 관둘래
내 아들 마음 상하게 하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아
(어린 혜준) 엄마는
내가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네?
그럼
근데 엄마 인생하고 네 인생은 다른 거야
내 인생 때문에 네가 기죽을 이유 없어
어떻게 할까?
생각 좀 해 볼게
[새가 지저귄다]
(애숙) 많이 기다렸어?
일하다 보니까 좀 늦어졌어
[애숙의 힘주는 신음]
생각 끝났어?
엄마 어떻게 할까요?
생각해 보니까 엄마 인생하고 내 인생하고 다른데
내가 왜 엄마 일을 선택해 줘야 돼?
(어린 혜준) 내 인생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웃으며] 야, 네 인생이 뭐가 골치가 아파, 벌써?
나도 열여섯 살이야, 생각이 많아
(어린 혜준) 내년이면 고등학교 가는데
우리 집은 가난하고
어쨌든 엄마 인생이니까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
[잔잔한 음악]
사혜준 짱
(애숙) 생각 많은 것도 마음에 들어
사람이 생각을 하고 살아야지
우리 아들 최고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엄마 호강시켜 줄게
[웃으며] 엄마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다 밀어줄게
[웃음]
(애숙) 거짓말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사기를 치냐?
어떻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형편은 나아지지가 않니?
우리 아버지가 부자였으면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됐어
[한숨]
나쁜 년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아버지 원망하는 거야?
[떨리는 숨소리]
보고 싶어
[울먹이며] 엄마 보고 싶은데
살아 있으면 내가 진짜 잘해 줄 건데
[훌쩍인다] [헛웃음]
[한숨]
진짜 주책이다
왜 혼잣말을 해?
[헛웃음]
왜 살수록 엄마를 닮아 가냐?
[애숙이 흐느낀다]
[드릴 작동음]
(민기) 이야, 진짜 너 손재주가 좋다
어쩜 이렇게 뚝딱 잘 만드냐?
그러니 부모 뒷받침 없이 네가
아, 이렇게 일가를 이루고 살잖아
아버지, 오버야
(민기) 거, 기왕 해 주는 거 빨리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영남) 아, 내가 놀아? 내가 아버지처럼 노는 사람이야?
(민기)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어, 그, 결론적으로는 고맙다는 거지
어, 야, 야, 어미다
어, 어서 와라, 어 [문이 달칵 여닫힌다]
(영남) 일찍 좀 다녀, 지금 몇 시야?
(애숙) 내가 놀아?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마
야, 너 애가 왜 그러냐?
(민기) '지금 몇 시야!' 그게 할 소리야?
늦게까지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해심이 넘쳐, 아주 아, 나한테도 좀 그래 보지
너한테도 그러거든? 네가 삐딱하게 받아서 그렇지
지금 내 탓 하는 거야?
아니, 고마워, 문짝 달아 줘서
[민기가 혀를 쯧 찬다]
(영남) 참
[애숙이 귀걸이를 탁 내려놓는다]
[애숙이 귀걸이를 탁 내려놓는다]
(영남) 무슨 일 있어?
아, 말을 해, 그래야 알지!
뭐가 문제야?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오늘 당신 아작 나
[익살스러운 음악]
알았어
(영남) 나 나가? 여기 있어?
알았어, 나가든지 여기 있든지 알아서 할게
어, 어디 가?
알았어
[한숨]
내가 참아야지
참아야지
[빗방울이 톡톡 떨어진다]
(정하) 어? 비 오네?
(혜준) 그러네
(정하) 나 비 오는 거 싫어해
(혜준) 잠깐 있어
(정하) 일기 예보 찾아봤는데 비 안 온다 그랬어
비는 왔고 너한테 우산이 있어
너는?
난 여기서 바로 버스 타면 돼
우리 동네는 비 안 온대
신기해
(정하) 같은 서울에서도 비 오는 데 있고 안 오는 데 있고
[우산이 펄럭 펴진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야?
[잔잔한 음악]
(혜준) 비 맞잖아
(정하) 내가 안 맞으면 네가 맞잖아
(혜준) 그러라고 사 온 우산이야
[정하의 웃음]
(정하) 멘트가 심상치 않아
여자 많이 만나 봤나 봐?
(혜준) 많이 안 만났는데
한번 만나면 길게 만나는 편이야
지금까지 두 번 연애했어, 한 사람하고
(정하) 디테일하게도 말한다, 누가 물어봤나?
(혜준) 너 남자는 사귀어 봤냐?
(정하) 야, 나도 사귀어 봤지
[헛기침]
(혜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데?
짧게 많이 만났어, 난 싫증을 잘 내거든
상처받을까 겁난 게 아니라?
아니라고는 말 못 해
(정하) 아유, 쯧, 별말을 다 하네
나도 네가 편해
[부드러운 음악]
내가?
속 얘기를 툭툭 던지니까 나도 경계심이 풀어져
(혜준) 우리는 돈도 텄잖아
돈 얘기 트기 쉽지 않다?
비 오는 날은 왜 싫어?
(정하) 세상에 혼자 있는 거 같아
(혜준) 오빠가 비 오면 전화할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
(정하) 우아, 닭살, 어, 느끼해
[웃으며]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야, 야!
[정하의 가쁜 신음]
[정하의 웃음]
(정하) 끝까지 우산 쓰고 오네?
난 어떤 순간에도 이성적이거든
비 맞으면 춥잖아
씁, 연기를 잘하려면 감성적이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네 연기가…
안 되겠다, 너
어, 미안해
아, 내가 연기에 대해서 뭘 알겠니?
(정하) 아이, 내가…
(혜준) 도움 될 거야, 아주 작은 거라도 [부드러운 음악]
[의미심장한 효과음]
(혜준) 아예 얼굴을 싸 줄까?
(정하) 아, 내, 내, 내가 할게
- 네가 해 - (정하) 어
[다가오는 엔진음]
(혜준) 난 저거 타야 돼
조심해서 가라 [버스가 끼익 멈춘다]
빨리 가, 네가 가야 내가 타지
어, 알았어
[휴대전화 진동음]
어, 엄마
아직 입금이 안 됐어 어련히 알아서 붙일까 봐
비 와서 정류장에 있어
누가 우산 살 줄 몰라?
(정하) 혼자 있는 듯 누군가와 함께 있는 느낌
너무 좋다
[새가 지저귄다]
[휴대전화 진동음]
[혜준의 헛기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어, 형
지금 입금 들어온 거 확인했는데 잘못 보냈나 봐
너무 많이 들어왔어
(디렉터) 선생님께 감사해라
이번 쇼 잘했다고 특별히 챙겨 주라고 하셨어
[통화 종료음]
[한숨]
[난감한 신음]
정하 선생님한테 베이스 받으면 기분이 좋아
(정하) 아, 감사합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칭찬받으면 기분 좋아요
(모델) 거, 뭐가 늦어?
난 예순다섯에 모델 일 시작했는데
(정하) 그럼 얼마 안 되신 거예요? 모델 하신 지
인제 13년째
(모델) 지금 일흔여덟
[웃으며] 우아
(모델) 아니, 뭘 그렇게 놀라요?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되는데
(진주) 100살까지도 하실 거예요
시니어 모델은 계속 수요가 있거든요 [모델이 호응한다]
홍삼 광고니까 파워풀하면서도 신뢰감 주는 분위기로 가기로
감독님이랑 얘기 끝냈어요 [밝은 음악]
(민기) 그, 내 일 좀 알아봤어?
(혜준) 알아보고 있어
(정하) 배우 하셔도 됐겠다, 왜 안 하셨어?
[민기가 그릇을 탁 내려놓는다]
(민기) 어? 지금 부르려 그랬는데
야, 타이밍 굿이네
(혜준) 타이밍 굿이지?
아, 그래
[혜준의 탄성]
네 엄마가 김밥 했다
(혜준) 아유, 손 많이 간다고 안 해 주더니
군대 간다고 잘해 주나 보다
야, 너 군대 가면 나 어떡하냐? 너 보고 싶어서
18개월만 기다려
(민기) 너한테 18개월이
하, 나한테는 18년이야
노, 노, 할아버지 청승맞아, 마음에 안 들어
(혜준) 우리 모토가 뭐야?
'차별받고 구박받아도 우리는 웃는다'
(민기) 그래, 웃으면 복이 온다 [혜준의 웃음]
국 내가 데웠어, 맛있어
아, 우리 할아버지 금손이지
손이 닿기만 하면 뭐든 잘되지
와, 잘한다, 내 새끼
[혜준과 민기의 웃음]
나만 바라보지 말고 연애해
연애는 네가 해, 할아버지 일하고 싶어
좋은 소식 있을 거 같아
구해 놨어, 벌써? 어디인데?
아직 몰라, 만나서 얘기해 봐야 돼
[의아한 숨소리]
누구 만나는데?
[차 문이 달칵 열린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해효) 잘 있었냐?
(정하) 응? 웬일이야?
드라마 촬영 있어서 메이크업하러 왔다
(정하) 응, 좀 기다려, 진주 쌤 오실 거야
오신다
너한테 할 거야
그건 안 돼
- (진주) 오셨어요? - (원장) 어서 오세요
(진주) 예약 안 하고 오셨네요?
네, 정하한테 하려고요
(해효) 얘는 안 된다고 하는데 왜 안 돼요?
그건 규정상 안 되는데요?
(진주) 정하 씨는 아직 어시스트예요
(해효) 규정이 고객 만족보다 우선인가요?
물론 고객이 우선이에요
(원장) 안 쌤이 해효 씨 맡아
전 아직 급이 안 되는데요
(원장) 급은 올리면 되지
규정은 바꾸면 되고요
- (원장) 우선 샴푸부터 - (스태프) 이쪽으로 오세요
(진주)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원장) 진주 쌤이 왜 고객한테 선택받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되는 거 아닌가?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하가 손을 쓱쓱 문지른다]
(해효) 완전 촉촉하다, 푸석푸석했었는데
[해효의 한숨]
[잔잔한 음악]
[헛기침]
(해효) 너 잘하는구나? 베이스 하는 거 보니까
[정하가 화장품을 달그락거린다]
역시 난 촉이 좋아 안 해 보고도 알잖아
(정하)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손님
[숨을 흡 참는다]
- (정하) 뭐 해? - (해효) 움직이지 말라며
[피식 웃는다]
(정하) 숨은 쉬셔도 됩니다, 고객님
[숨을 하 내뱉는다]
[립 브러시를 딸깍 연다]
이제 좀 풀렸냐? [부드러운 음악]
(정하) 내가 뭘?
(해효) 찬바람 쌩쌩 날린 거 누구야? 얼어 뒈질 뻔했다
[당황한 웃음]
그런 말도 쓸 줄 알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로 날 안다고 생각해?
(정하) 관심이 없어서 많이 파지도 않았어, 넌
승부욕 돋게 하네?
(해효) 네가 날 제대로 알면 나한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정하) 아, 그러세요? 무지 겁나네요
전 평생 원해효 씨를 제대로 알지 않을 겁니다
(해효) 음…
사혜준 씨만 알고 싶으신가요?
(정하) 아니요, 이미 알 만큼 압니다
진짜 좋아졌겠다?
(해효) 내가 혜준이 잘 알잖아
전에도 진짜 좋았어, 팬이잖아
(해효) 그러니까, 만나고 나서 더 좋았겠다고
맞아, 더 좋아
마음까지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야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지, 웬 노력?
(정하) 덕질이 아름다운 건 현실이 아니라서야
환상과 현실이 만나면 엉망진창 돼
엉망진창 되면 재밌겠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수빈) 어, 안녕하세요 - (혜준) 정하 쌤 어디 있어요?
(수빈) 아, 저기요
[함께 웃는다]
(원장) 오늘 마음에 들었어요?
배려해 주셔서
제가 하고 싶은 사람하고 할 수 있어서 감사드려요
(원장) 제가 더 감사하죠
안 쌤도 잘했어
[원장의 웃음]
(혜준) 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해효) 너야말로 여기서 왜 나오냐?
(혜준) 숍에 왜 왔겠냐?
(원장) 두 분 엄청 친하신가 봐요
언제부터 친구예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원장) 그럼 집이 한남동이겠네요?
(혜준) 네
(원장) 음, 다 부잣집 도련님들이구나?
요즘은 연예인도 집안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옛날에는 소년 소녀 가장들이 많았는데
한남동이라고 다 부자 아니에요
(원장)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돼요
아, 차 뭐 마실래요?
(혜준) 아이스아메리카노 돼요?
(원장) 되죠 [원장의 웃음]
- (정하) 아, 제가 갈게요 - 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원장) 내가 지금까지 낄끼빠빠를 잘해서 사랑받는다?
[원장의 웃음]
(해효) 애들이 너 보고 싶어 하더라 [리시버 알림음]
넌 뭐 했냐?
나도 가 봐야겠다, 이따 봐
쟤 만나러 온 거야?
어, 드라마 촬영?
어, 다음 주면 촬영 다 끝나
[휴대전화 진동음]
(해효) 어, 누나
(혜준) 고맙습니다
(해효) 아, 누나 부탁이면 웬만하면 하는데
예능 출연은 회사랑 얘기해 봐야 돼요
최세훈 감독님 영화 들어가게 돼서
[웃으며] 아, 뭘 벌써 대박? 해 봐야 알지
응, 고마워
전에 예능 출연하면서 알던 작가 누나인데 이번에 메인 돼서
그때는 두 번째였거든
어어
(해효) 그, 남자 아이돌들 몇 명하고 여행 가는 프로 만드나 봐
[혜준이 호응한다] [다가오는 발걸음]
(매니저) 야, 지금 뭐 하냐?
늦었어, 전화해도 안 나오고
- (해효) 아, 미안 - (매니저) 혜준이도 있네?
(매니저) 뭐, 일 들어가?
아니
근데 숍에 왜 왔어?
(해효) 가자, 형
혜준아, 촬영 끝나고 전화할게
어
(혜준) 기막힌 일자리라는 게 뭐야?
(정하) 성질 급하시네
[흥미로운 음악]
[정하가 키보드를 달칵 누른다]
[정하가 키보드를 탁탁 누른다]
[정하의 당황한 신음]
(정하) 이게 아닌데
[정하의 헛기침]
[정하의 당황한 웃음]
어, 왜 이게 자꾸 나오지?
[정하가 키보드를 탁탁 누른다] [정하의 웃음]
응, 이거다
"시니어 모델"
[정하의 당황한 신음]
[정하의 헛기침]
(정하) 너무 바짝 아니야?
[옅은 웃음]
(혜준) 어쩌라고?
(정하) 평생 꿈이 연예인 되시는 거였잖아
지금 그 꿈에 가장 접근할 수 있는 건 이거야
아, 누가 우리 할아버지 꿈 이루어 준대?
심심풀이로 일할 수 있는 데를 구하는 거야
(혜준) 일흔한 살이야
여든 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모델들 많아
(정하) 그 연세에 그런 피지컬을 갖고 있다는 거 자체가 재능이야
(혜준) 안 돼, 이건
(정하) 할아버지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네 선에서 자르는 건 아니라고 봐
너 되게 재밌다
재밌다는 말 처음 들어 칭찬으로 들을게
(혜준) 화를 참 차분하게 내네?
(정하) 내 생각이 네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어
그렇다고 그렇게 어이없어하는 건 아니지 않아?
(혜준) 시니어 모델들 많이 봤어
근데 한 번도 할아버지를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 없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더 모를 수 있어
여기서 등잔 밑이 왜 나와?
[흥미로운 음악] (정하) 음…
응, 사람은 변하잖아
전의 그 사람이 지금 그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거야
뭐 그렇게 딱히 와닿는 설득은 아니다
(정하) 음…
그럼 이건 어때?
입으로는 할아버지를 위하면서
마음으로는 무시한 거 아닐까? [혜준이 잔을 탁 내려놓는다]
- 선 지켜라 - (정하) 선은 넘으라고 있는 거야
[피식 웃으며] 그래도 이건 아니야
너 설득되고 있어
아니거든?
어디 가?
정리할 게 있어서
넌 몇 시까지 일해?
"짬뽕엔터테인먼트"
[초인종이 울린다]
(민재) 누구세요?
[도어 록 작동음]
[웃음]
가관이다
[당황한 신음]
[당황한 신음]
[민재의 다급한 신음]
[도어 록 작동음]
(민재) 아…
잠깐만
그, 여기 앉아
뭐, 병 주고 약 주러 왔냐?
빵 주러 왔어, 누나 좋아하는 앙버터
뜯어 주지
[입소리를 카 낸다]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별걸 다 한다, 이제
[민재의 만족스러운 신음]
(민재) 뭐야?
(혜준) 돈 들어왔어, 전에 무대 섰던 거
- (혜준) 생각보다 엄청 많이 줬어 - (민재) 근데?
(혜준) 전에 이태리 갈 때 비행기랑 에어비앤비 누나가 다 냈잖아
[돈을 쓱쓱 꺼낸다]
(민재) 군대 간다며, 너 써
어차피 받으려고 한 거 아니야
이건 아니죠
나 너한테 충고 한마디 해도 돼?
하지 마, 충고 진절머리 나
넌 너무 야망이 없어
아이, 결국 누나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물었어?
(민재) 아니, 방향은 잘 잡았어
신분 상승의 답은 연예인이야
성공하면 단기간에 건물도 사고, 집도 사고
얼굴 비치기만 해도 돈 주고
아, 뭐, 성공이 별거야? 어?
(혜준) 하고 싶은 일 하고, 맛있는 거 먹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오늘이 즐거우면 되는 거야
(민재) 갖고 태어난 거 없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돼
나아지지 않아, 보통 그걸
서른이 넘어서 깨달아
20대는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환상도 갖거든?
똑똑한 애들은 20대에도 깨달아
'이룰 수 없는 꿈보다는 돈을 벌자'
근데 넌 그 꿈에서 아직도 못 헤어 나오고 있어
[차분한 음악] 왜 네 인생의 기준이 최세훈 감독이야?
아, 그 감독님 훌륭해
그렇지만 그 감독님도 틀려 네가 맞을 수 있어
남은 시간 1초까지 다 쓰고 수건 던져
갔다 와서 다시 시작하면 돼
그때 누가 널 기억할까? 지금도 잘 모르는데
(혜준) 설명할 수 없지만 안에서부터 뭔가가 치미는 그거
그게 뭔지 알았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혜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멋지다
(기자) 좋은 친구 두셨어요
원래 해효 씨 단독 인터뷰였거든요
혜준이도 같이 갈까 감독님 만나는 데?
- (매니저) 뭐, 일 들어가? - (혜준) 아니
근데 숍에 왜 왔어?
(혜준) 갔다 와서 다시 시작하면 돼
그때 누가 널 기억할까? 지금도 잘 모르는데
(혜준)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는 걸 좋은 성품이라고 속였다
이제 후련하다
(혜준) 다 끝난 거야?
(정하) 연락도 없이 막 오는 거야, 인제?
(혜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정하) 여기서?
(혜준) 씁, 머리 좀 잘라 줄래? 바리캉으로
(정하) 하, 뭐야, 7세 미만 아가들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한숨]
군대 가
- 언제 가는데? - (혜준) 열흘 후에
(정하) 하, 근데 왜 벌써 잘라?
(혜준) 속세에 미련이 남아서
치, 누가 보면 출가하는 줄 알겠네
(정하) 복무 기간도 줄지 않았어?
(혜준) 자기가 안 간다고 아주 쉽지?
(정하) 쉽지, 내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열흘이나 미리 갈 필요는 없지 않아?
머리가 빡빡이면 아무래도 자연히 떠오르잖아
- 그러네? - (정하) 그렇다니까?
(혜준) 설득력이 낮보다 좋아졌다?
(정하) 학습 능력이 좋아, 내가
틈새 자기 자랑도 잘하고
자기 자랑이 아니라 팩트지
(정하) 이제 집에 가, 수빈이 있어
(혜준) 너 해효 팬 맞아?
(정하) 응, 맞아
나 거짓말하는 사람 되게 싫어해
[밝은 음악] 셋, 둘, 하나
(정하) 맞아, 네 팬이야!
쟤 뭐야?
그냥 저러고 가는 거야?
[한숨]
[정하의 난감한 신음]
(해나) 엄마, 집에 메이플시럽 없어?
- (이영) 있을 텐데? - 찾아도 없어
엄마 3부 다이아 귀걸이 귀에 딱 붙는 거, 네가 가져갔니?
- 아니 - (이영) 하, 어디 갔지?
(해나) 어디 있겠지, 메이플시럽 어디 있냐고
(이영) 어디 있겠지! 그걸 왜 나한테 찾아?
(해나) 핫케이크 먹어야 된단 말이야!
(이영) 아, 정말 귀걸이 어디 갔어? [해나의 못마땅한 신음]
아, 시원하다
(애숙) 이런 맛에 산다
(경미) 아, 너무 예쁘다 해나는 나랑 취향이 맞아
어, 근데 사이즈가 안 맞아 [경미의 웃음]
(애숙) 진리 줘
(경미) 진리 이런 거 안 입잖아 이거 조카 갖다줘야겠다
(애숙) 응, 여기 바지도 있어, 입으려면 입어
아, 해효 엄마 옷은 내 스타일 아니야 올케 갖다줄게
(애숙) 그래, 그럼
[휴대전화 진동음]
(애숙) 네
내 귀걸이 못 봤어? 다이아 3부짜리인데
- 제자리에 있겠죠 - (이영) 제자리에 없어
(애숙) 얻다 놓으셨어요?
- 하, 기억이 안 나 - (해나) 메이플시럽!
메이플시럽은 어디 있어?
오른쪽 냉장고 세 번째 칸에 있어요
고마워요, 아줌마!
너만 해결되면 다냐?
(이영) 아, 어디다 뒀지?
저, 화장실 거울 앞이나 파우더 룸 거울 앞에 한번 보세요
알았어요
[통화 종료음]
(경미) 어유, 씨, 맨날 얻다 뒀는지 몰라 가지고 전화질이야
관둬, 그 집 아니어도 언니 갈 데 많잖아
그 집, 처음 이 일 시작할 때 일 배운 데야
거기서 일 배워서 지금 그걸로 밥 먹고 살게 됐잖아
- (애숙) 고마운 마음이 있어 - 미운 마음도 있고?
미운 게 아니라
비교가 돼서 힘들어
언니, 그 집하고 비교하면 언니가 너무 힘들어져
나랑은 비교 시도도 안 해
근데 자식은 너무 힘들다
(경미) 하, 우리 때는 부모님이 낳아 주기만 해도
부모님 은혜에 감사해야 된다 그랬는데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어
- 한잔 따라 봐 - (경미) 네
(경미) 언니 술 마시면 매력 있어 평상시에는 너무 바람직해
[경미의 웃음]
[문이 달칵 여닫힌다]
- (장만) 어, 형수님 와 계시네? - (애숙) 오셨어요?
- (장만) 네, 어 - (경미) 왔어?
- (경미) 오빠도 한잔 드실 거죠? - (영남) 아, 그럼
(장만) [흥얼거리며] 자
참, 혜준이는 그 영화 오디션 어떻게 됐어요?
(경미) 아, 맞는다!
(경미) 자기 눈치가 그렇게 없냐?
붙었으면 말 안 했겠냐? 하, 진…
[잔잔한 음악] [영남의 헛기침]
[영남의 헛기침] [장만의 멋쩍은 웃음]
[풀벌레 울음]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애숙) 혜준이 오디션 떨어지고 군대 가는 거 왜 얘기 안 했어?
(영남) 당신만 자식 사랑하냐?
나는 뭐, 좋아서 혜준이 닦달하는 줄 알아?
(애숙) 닦달하는 건 알아?
(영남) 쯧, 내가 살아왔잖아
살아 봤으니까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 엄마 - (이영) 왜?
- (해효) 엄마는 친구 없냐? - (이영) 없어
아, 그럼 이모랑 놀아 왜 나만 따라다녀?
[이영의 힘주는 숨소리]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매니지먼트하는 거야
아, 엄마가 이러면 나 이미지 망가져
(해효) 마마보이 같잖아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
알았어, 전략적으로 엄마가 물러날게
말 잘 들어, 이럴 때는
나도 마마보이는 딱 질색이야
멜로 하려면 그런 이미지는 안 돼
내가 이래서 엄마를 미워할 수 없다니까?
날 미워했어?
(이영) 너 무의식이라도 엄마한테 그런 마음 먹으면 안 돼
슬퍼진단 말이야
빨리 여자 친구 만들어야겠어
(해효) 나 숍 가야 돼
(이영) 숍에 여자 친구 있어?
아이, 엄마는 말을 띄엄띄엄 들어
나도 숍 가야 돼 진주 쌤한테 예약할게
나 그분한테 안 해
그럼 누구한테 해?
안정하
아직 어시 아니야?
아니야, 급 올랐어
그래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
(이영) 싹싹하고 야무지긴 해
그렇더라
[피식 웃는다]
[민기의 힘주는 숨소리]
(혜준) 음, 뭐야, 어디 가?
(민기) 어, 친구들 만나러
야
이게 낫냐, 이게 낫냐?
이거
야, 어쩜 생각이 나랑 이렇게 똑같냐?
(민기) 나도 이게 더 마음에 들었어
- 할아버지 - (민기) 어?
할아버지 모델 할 수 있어?
- 모델? - (혜준) 응, 모델
하지, 못 할 게 뭐 있냐?
[유쾌한 음악]
[피식 웃는다]
왜 웃어? 너 걸어 봐
(혜준) 아 [혜준이 컵을 탁 내려놓는다]
씁, 할아버지 인제 봤더니 허리가 꼿꼿하네?
살아 있네
(민기) 살아 있지, 그럼!
내가 네 나이만 됐어도 모델 하고도 남았어
[민재가 중얼거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 안녕하세요, 김 PD님 - (김 PD) 어유, 바로 받으시네?
[웃으며] 아, 저, 전화기 옆에 있었거든요
그, 사혜준 씨 스케줄 체크 좀 하려고요
왜요?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초급 과정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직원) 아, 여긴 시니어 모델 대상이에요
알아요, 우리 할아버지가 할 거예요
(직원) 그러세요?
그러면 이거 하나 작성해 주세요
[휴대전화 진동음]
(민재) 전달할 물건이 있어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민재의 탄성]
(민재) 이거 완전 꿀조합이다, 자몽이랑 벌꿀
(혜준) 뭐 이렇게 서론이 기신가?
[숟가락이 댕그랑 떨어진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전달할 물건이 뭐야?
(민재) 다섯 신 중에 두 신 옆에 서 있는 거고
세 신은 대사 있어, 캐릭터는 확실해
[혜준이 대본을 사락 넘긴다] 작은 역이지만 네가 해 줬으면 좋겠대
- (민재) 나 간다 - (혜준) 그냥 가?
(민재) 그럼 뭐 해?
뭐 더 설득하고 막 하라고 밀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꺼져
[밝은 음악]
[숟가락을 탁 내려놓는다]
(영남) 아유, 덧방 엄청 했다
(장만) 그래?
(인테리어 실장) 20년 된 건물이에요
이 위에 또 덧방 할 수 있나?
(영남) 아유, 그럼 너무 좁아지는데?
(장만) 철거하면 비용이 올라가지
(인테리어 실장) 무조건 싸게 해 달라니까 덧방 해요
(장만) 우리하고는 상관없지
(영남) 한번 얘기해 봐요
그래도 싼 게 좋다면 그렇게 하고
너무 좁기는 해, 커피숍 하기에
(영남) 여기 이거 싹 걷어 내고 천장도 뜯어내고
슬래브 구조 형태로 노출시키면 훨씬 좋을 텐데
(인테리어 실장) 오, 클라이언트랑 얘기하고 올게요
(영남과 장만) 예
(영남) 이, 레벨링 작업도 다시 해야 돼
(장만) 배수, 급수 설비, 전기 배선, 도장
사람 더 붙여야겠어
(영남) 창민이랑 호철이만 있으면 돼
이, 봐, 여기
(영남) 고기 좀 사 갖고 들어가야겠다 먼저 들어가
(장만) 왜, 경준이 주려고?
(영남) 혜준이, 이제 군대 가는데 잘 먹여야지
[장만의 웃음]
(장만) 아유, 나도 우리 애들 먹이게 삼겹살이나 사야겠다
아저씨
[문이 탁 닫힌다]
- 왔어? - (혜준) 응
[혜준이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애숙) 할 얘기 뭔데?
[웃음]
알았어?
[옅은 한숨]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어
떨어졌다며?
다른 역인데 재밌어 다섯 신밖에 안 되는데
하고 싶어
(애숙) 그거 하자고 미뤄? 그거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혜준) 아이, 뭐가 꼭 달라져야 되나?
[한숨]
엄마는
이제 네가 그만 상처받았으면 좋겠어
(애숙) 포기하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야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영남) 나 왔어
어! [문이 탁 닫힌다]
- (애숙) 아, 그건 뭐야? - (영남) 자
(영남) 불고기 해 먹자
야, 너 아빠 알은척도 안 해?
서로 눈 마주쳤잖아
(영남) 아유, 새끼가, 이게 싸가지가 없어
군대 가면 사람 돼서 오겠지
[한숨]
아빠
(영남) 응
나 영화 출연하기로 했어
(영남) 아이, 저런 미친놈이! [울리는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긴장되는 효과음]
(혜준) 아빠가 고기를 던진다는 건
막장 드라마다
[흥미로운 음악] (영남) 아니, 간신히 마음 접었나 했더니
- (영남) 또 변덕 부리지 - (애숙) 아, 아니야
(영남) 또 바람이 들어 가지고, 아주 그냥!
아빠가 내 인생 살아 줄 것도 아니잖아
(영남) 뭐, 뭐? 아, 이것 좀 놔 봐!
말로만 잘되라고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거 좀 하게 놔둬
(영남) 아니, 저, 며칠 새엔가
어떤 놈이 또 바람을 집어넣은 거야!
아, 이거, 아, 이거 안 놔, 이거!
[애숙의 힘주는 신음]
[애숙의 가쁜 숨소리]
놨다
뭘 놨다는 거야?
당신을 놨다는 거야
[리드미컬한 음악]
- 할 거야 - (민재) 앗싸!
(혜준)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누나가 함께하는 거야
끼어들지 마
(정하) 내 싸움이야
(민기) 이제 꽃길만 걷는 거야
(영남) 뭘 시작해, 아버지가!
말도 하지 마!
(혜준) 내 덕질을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정하) 왠지 치유받는 느낌이었어
[정하의 웃음] (혜준) 평소보다 업돼 있는 거 같다?
주사 있어 [혜준의 다급한 신음]
(정하) [술 취한 목소리로] 난 내 일을 충실히 다 했어
재밌으니까
(혜준) 너 믿어
(정하) 나도 너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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