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백서 6
[리모컨 조작음]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리모컨 조작음] (TV 속 캐스터) 네
[캐스터와 해설 위원의 탄성]
빠른 공에 어깻죽지를 맞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TV 속 해설 위원이 말한다]
(TV 속 해설 위원) 좀 더 붙인다는 게 빠져서
몸에 맞는 공이 나왔네요
(TV 속 캐스터) 예
[TV 종료음]
[언짢은 한숨]
앞으로 이런 일
[비장한 음악] 절대 없을 거야
절대
[밝은 음악]
[미숙이 말한다]
[미숙의 웃음]
(미숙) 그 매장이 저쪽에 있어 [준형이 호응한다]
코인이야, 로또야?
응? 뭐?
나한테만 얘기해 봐
[미숙의 멋쩍은 숨소리]
잠시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이, 뭐, 둘 다 아니면
우리 집이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부자였어?
그, 드러난 것보다 숨겨진 재산이 훨씬 더 많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준형) 아니 이걸 다 함에 넣는다고?
[미숙의 못마땅한 탄성]
언제는 나은이라면, 응?
집 기둥이라도 뽑아다 갖다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 와서 왜 말려?
아니, 나는 엄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식장 때문에 열받아서
나은이한테 우리 집 수준을 보여 주겠다고, 막
[흥미로운 음악]
이거네, 이거야
(준형) 우리 집 수준 보여 주겠다고
지금 함에 무리해 가지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네 엄마를 뭘로 보고?
아, 엄마가 분명히 우리 집 수준 어쩌고…
(미숙) 한마디만 더 해
전부 다 환불해 버릴 거니까
[익살스러운 음악]
아휴, 진짜
[혀를 쯧 찬다]
(직원1) 며느리 되실 분은 너무 좋으시겠어요
[미숙의 웃음]
(준형) 이참에 우리 집안 수준을 보여 주려고
어머니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셨습니다
(미숙) 그만 못 해?
[미숙이 구시렁거린다]
나도 과한 거 아는데
우리 집에 오는 새 식구니까 잘 챙겨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예전부터 '며느리 생기면 해 줘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있었고
또 시집올 때 제대로 대접 못 받으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거 잘 아니까 오버 좀 했다
그런 자기 어미 마음도 모르고
자꾸 못된 시어머니 만들기는, 치
[준형의 과장된 숨소리]
아, 누가 우리 엄마보고 못된 시어머니래?
어디 있어? 데리고 와
내가 다 혼쭐내 줄 테니까, 그냥
아유, 아유, 아유, 아유! [준형이 혀를 쯧 찬다]
(미숙) 능청만 늘어 가지고, 아유 [직원1의 웃음]
아드님이 참 재밌으시네요
(미숙) 아유, 철이 덜 들었어요
[미숙의 웃음]
아, 다 분홍색으로 톤 맞춰서 잘해 주세요
네, 전체적으로 이 톤으로 맞춰서 포장해 드릴게요 [휴대전화 진동음]
[미숙이 흡족해한다]
어, 엄마, 잠깐만
(미숙) 응
(준형) 어, 어, 자기야
(미숙) 아, 저 [준형이 통화한다]
양주하고 스카프는 사돈어른들께 드릴 거니까
특별히 포장 신경 써 주시고요
오복 주머니는 방향 잘 맞춰 주시고
원앙이랑 혼서지 위쪽으로 가게 잘 포장해 주세요
(직원2) 네 [미숙의 웃음]
(미숙) 아, 잠깐만요
[흥미로운 음악]
어, 저…
[어색한 웃음]
태그도 같이 넣어 주세요
마음에 안 들면 교환해야 되니까
네
[보글보글 끓는 소리]
[초인종이 울린다]
(달영) 어, 나은 아빠, 떡 왔나 봐 [수찬이 대답한다]
(수찬) 어
나가요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덜컹 열린다]
[배달원이 말한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문이 탁 닫힌다] 이 떡 어떻게 해?
(달영) 고거 굳으면 안 되니까 요쪽에 놔
(수찬) 어
[수찬의 한숨]
[탁 내려놓으며] 으쌰
(희선) 아유, 그냥 좀 앉아 있어
아, 맞아요, 선배님
아까도 나갔다가 정신 사납게 얼쩡거리지 말고
방에 있으라고 혼났잖아요
아, 그냥 대충하시지, 뭘 저렇게들
(희선) 야, 자식 함 받는 건데 대충 되시겠어?
양가 간단하게 구색만 맞추는 거라서
저렇게 안 하셔도 된단 말이야
근데 너희는 함이 먼저 들어오네?
(희선) 원래 예단을 먼저 보내고
예단의 반을 꾸밈비로 주면서 함이 같이 들어오는 거 아닌가?
나도 인터넷에서 그렇게 봤는데
어머님이 전통적으로 함에 혼서지가 포함돼 있어서
함을 먼저 보내야 한다 하셔서
그런 전통까지 따지는 분이
함을 그냥 구색만 맞출 거 같지는 않은데?
(나은) 아니야 우리 어머님 엄청 심플하신 분이셔
간단하게 하자고 하면 간단하게 하시는 분
저번에 상견례 때
오빠가 우리 둘이 알아서 결혼 준비 한다고 하니까
어머님이 아예 아무 간섭도 안 하시고
우리를 믿고 맡겨 주신댔어
보통 시어머님들이랑 다르지?
(수연) 응
뭐, 아직은 결혼 전이니까
결혼하면 뭐가 달라져요?
달라지지
(희선) 입장이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거든
어떻게요?
(희선) 수연아 [수연이 쩝쩝댄다]
이, 결혼 후에 뭐든 '시' 자가 붙는 순간
국어 수업 듣는다 생각하고 초집중해야 돼
'시'?
[흥미진진한 음악] 국어 수업?
너희 맨날 국어 시간에 뭐 했어?
(희선) 시조 배웠지?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의 숨은 속뜻을 분석할 줄 알아야 되잖아
이 시어머니의 말씀이 딱 시조 같은 거야
어머니 말씀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의 숨은 속뜻을 분석할 줄 알아야
나의 심신이 편안해진다
만약 어머님이 '난 괜찮다, 아가' 하시면
진짜로 괜찮은 건지 예의상의 거절인지
'괜찮지 않으니까 빨리 와서 도와라, 아가' 하는 반어법인지
이거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돼
이 시어른들의 말씀엔 하나하나 다 뼈가 있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 뉘앙스를 잘 읽고 이 행간을 파악할 줄 알아야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나 역시 편안해진다
아, 듣기만 해도 기 빨려요
아니야, 요새 저런 집 잘 없어
(나은) 우리 어머님 엄청 좋은 분이셔
언니도 그만해, 수연이 앞에서
맨날 이런 부정적인 얘기만 듣다가
나중에 수연이 결혼 안 할라
아이…
그래, 뭐, 난 실패했으니까 내 얘긴 흘려듣고
나은이 결혼 스토리를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해
안 그래도 그러고 있었어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수연의 해맑은 웃음]
[수연이 쩝쩝댄다]
[휴대전화 진동음]
[반색하는 숨소리]
준형 오빠 거의 다 왔대
[수연의 놀란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준형의 힘주는 숨소리]
[초인종이 울린다]
- (수찬) 어 - (달영) 어
(수찬) 나가요
[도어 록 작동음]
[종이 잘랑거린다] 어, 들어와
[수찬의 웃음] (달영) [웃으며] 아이고
- (준형) 어머니 - (달영) 어서 와
[달영의 웃음]
[문이 탁 닫힌다] (달영) 자, 자
[종이 잘랑거린다]
(수찬) 그래그래 아이고, 고생했어
[수찬의 웃음]
(준형) 앉으세요, 어머니, 아버지 [수찬과 달영이 호응한다]
[준형이 숨을 내뱉는다] (달영) 아이고
[수연과 희선의 기대하는 숨소리]
(수연) 선배님, 얼른 열어 보세요
뭐가 들어 있을지 엄청 궁금해요
[살짝 웃는다]
[차분한 음악]
[희선의 놀란 숨소리]
(희선) 이거
[강조되는 효과음] 캐리어 로고부터가 간단하지가 않은데?
(수찬) 어? 왜, 비싼 거야?
[희선과 수연의 긍정하는 숨소리]
아, 아니요, 아버님
희선 씨가 농담한 거예요
[준형과 수연의 웃음]
내가 열어 볼게
[나은이 캐리어를 달그락 연다]
[수찬이 힘준다]
[저마다 놀란 숨을 내뱉는다]
[나은의 놀란 숨소리]
[희선과 수연의 놀란 숨소리]
(달영) 아니, 상견례 때 이 예단 예물은
간단하게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 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준형) 어머니가 며느리가 들어오면
해 주고 싶으셨던 게 많으셨나 봐요
그,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그럼 이걸 다 어머님이 직접 준비하신 거야?
[나은의 놀란 숨소리] (나은) 어머니 고생하셨겠다
(준형) 여기, 아버님
(수찬) 어 [수찬의 웃음]
(준형) 그리고
이거는 어머님 거
내, 내 거?
(준형) 네
아이고
[달영의 웃음]
[놀란 숨소리] [익살스러운 음악]
아이고
[벅찬 숨소리] (달영) 아유, 이뻐라
아유, 세련됐다, 어? 어디
자, 어때?
(준형) 너무 예쁘세요 [달영의 웃음]
- (달영) 이뻐? - (준형) 네
(달영) 아이고, 세상에
(준형) 그리고 이거는 아버님 선물
(수찬) 아유, 나한테도?
아이고, 이게
[수찬의 헛기침]
[수찬이 놀란다]
왜, 좋은 거야?
(수찬) 이게 말이야
언제 마셔야 되는지
죽기 직전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술이야
(희선) 이 술 딸 때
저 꼭 불러 달라고 질척거릴 만큼 좋은 술이에요, 어머니
(수찬) 아, 됐어 아껴서 혼자 마셔야, 아이고
(희선) [애교 있게] 아버님
(달영)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호들갑은 혼자 다 떨면서 누구더러
루이가 13살이야
[함께 웃는다]
(수찬) 아유
우리 엄마 아빠 취향까지 다 고려해서
어머님이 신경 써 주신 거야?
[감동받은 숨소리]
(희선) 이러기 쉽지 않은데
진짜 대단하시다
[벅찬 숨소리]
[한숨]
[수연이 숨을 하 내뱉는다]
(수연) 나은 선배님 진짜 대박이죠?
아유, 완전 부러워, 쯧
[수연의 한숨]
(희선) 아유, 이 핏덩이
저게 뭐가 부러워? 저거 다 빚인데
결혼만큼 주고받는 게 확실한 거래도 없어
돈 없으면 노동력이라도 제공해야 되는 게 결혼이야
(수연) 응, 쩝
그러니까 시댁에서 집을 해 주면
그냥 뭔가 며느리들이 제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부담감 [희선의 한숨]
김장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부담감 말씀하시는 거죠?
(희선) 그렇지 [수연의 호응하는 숨소리]
아휴, 저렇게 함을 받으면
나중에 예단으로 그대로 돌려줘야 되는 거거든 [수연이 호응한다]
모르긴 몰라도
나은이 예단 보낼 때 골치 좀 아프겠다
(수연) 아이, 그래도요
며느리 생각해서 저렇게 함 열심히 챙겨 주는
시부모님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쯧
솔직히 나은 선배님 남자 친구도 1%인데
시댁까지 완벽하잖아요
그냥 나은 선배님은 복받은 거예요
[희선의 코웃음]
(희선) 그럼 너도 저런 남자 만나
저도 만나고 싶어요
근데 저런 남자들이 날 안 만나 주잖아요
[수연이 훌쩍인다]
아니, 뭐 없는 건 뭐, 둘째 치고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 [희선이 피식 웃는다]
내 옆에 보지를 못했어
(희선) 그런 남자 보려면 나가서 기회를 잡아야지 [수연의 한숨]
아니, 이런 황금 같은 주말에
직장 선배 함 받는 데는 왜 와 있는 거야, 어?
남자를 만나려면 밖에 나가서 남자 있는 데를 가야지
(수연) 남자 있는 데 가도 안 생기는 사람은 안 생겨요
(희선) 아유
[신호등 알림음] (수연) 아휴, 쯧, 어?
[흥미진진한 음악]
응? 왜요?
(희선) 아, 아니야
어유, 야, 너무 춥다 우리 택시 타고 갈까?
[수연이 긍정한다] 저기 택시, 택시 온다
택시, 택시, 여기요 [수연의 추워하는 숨소리]
[희선이 추워한다]
[수연이 코를 훌쩍인다] 아, 야, 너 빨리 가, 들어가
(수연) 아, 선배님 가는 길에 저희 집 있으니까 [차 문이 탁 열린다]
저 좀 내려다 주시고 그렇게 가시면…
(희선) 아니야, 아니야 나는 반대쪽으로 해서 가야 돼 [수연의 아파하는 신음]
가, 가, 옥수동요, 아저씨, 가세요
(수연) 아이고, 내일 봐…
(희선) 어, 안녕, 잘 가, 가 [차 문이 탁 닫힌다]
[한숨]
아, 갑자기 왜 저래?
[수연의 놀란 숨소리]
대박
[다급해한다]
(나은) 고생했어
(준형) 고생은, 뭘
[휴대전화 진동음]
(수연)
(수연)
(준형) 응? 왜, 무슨 카톡인데?
(나은) 아니, 희선 언니 남자 친구 생긴 거 같다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희선 언니는 정우성급 아니면 안 만나거든
(준형) 어유, 눈이 높으시네
(나은) 못생겨서 꼴값 떠는 거 첫 결혼에서 당했으니까
이제는 얼굴값에 당하고 싶대
[준형의 웃음]
대단한 언니지?
어떻게 보면 내 결혼 도와주고
하소연 들어 주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늘 진심으로 대해 주고 충고해 줘서 고맙지
씁, 민우 녀석도 똑같은 소리를 하던데
민우 오빠가 그걸 캐치했어?
허, 보기보다 속이 깊네
속이 깊기는 어쩌다 한번 걸린 거겠지
함은 마음에 들었어?
아휴, 이게 가격이나 이런 걸 떠나서
날 생각하시면서 하나하나 골랐다는 게 더 놀라워
(나은) 사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선물 고른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잖아
그렇지
(나은) 우리 진짜 어머님 아버님한테 잘하자
[나은의 웃음]
고마워, 오빠
[나은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카메라 셔터음]
(수찬) 아유, 그거 좀 적당히 해
[도어 록 조작음]
[달영의 기분 좋은 웃음] [도어 록 작동음]
[문이 덜컹 열린다] [종이 잘랑거린다]
(나은) 뭐 해?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수찬) 야, 아까부터 네 엄마 난리 났다
(나은) 응?
(달영) 나만 난리인가?
상가 사람들 다 와서 구경하고 싶다고
지금 톡 방에 불났다
본 중에 최고라고
너 시집 잘 갔다고 아주 난리가 났어 [나은을 탁 두드린다]
그렇지? 엄마 좋지?
[나은과 달영의 웃음] (달영) 그럼
우리 어머님 진짜 대단해
(수찬) 그럼 보통 정성이 아니시지
부모인 나도 이렇게는 못 해 줘
(달영) 야, 야, 나은아
너 얼른 저 모피 좀 입어 봐
입은 거 보고 싶다고 아주 야단들이네
[나은과 달영의 웃음]
(수찬) 아이고, 신났어, 신났어
[수찬의 웃음] 그럼, 당연히 신났지
응? 우리 딸이 이렇게 대접받고 시집가는데
[웃음] (나은) 그럼
시어머님이 이렇게 잘해 주는 며느리는 세상에 나밖에 없지
[함께 웃는다]
아휴, 입어 볼까?
아, 따가워
어? 왜, 뭐가 있어?
(나은) 이게 뭐지?
[흥미로운 음악]
(수찬) 어?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아이고
가격 태그를 안 떼셨네?
(수찬) 아이 떼는 걸 깜빡할 수도 있지
물건이 오죽 많아?
(나은) 그럼
(수찬) 아, 당신 지금 뭐 해?
(달영) [달그락거리며]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래
이게 그냥 실수가 아니라니까
그때 상견례 때 준형이 엄마가 그랬잖아
'사파이어 밍크, 다이아 팔찌'
'순금 수저 세트, 명장 자개장'
(수찬) 아, 왜 말을 거기서 끝내?
그다음에 '그거는 필요 없다'
'예물 예단 간소하게 하자'
그 얘기 한 건 기억 안 나?
이게 간소한 거야?
(달영) 아까 희선이 말 들어 보니까
이거 하나같이 비싼 거라던데?
(수찬) 아, 됐고
우리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들어왔다고 신경 써 준
그 마음만 알면 되는 거야
이게 뭐 비싸다, 싸다 그거 따질 필요가 없어, 우린
아이고, 참
(달영) 우리가 그럴까 봐 이렇게 가격표까지 떡하니 붙여 보냈구먼
무슨 소리야?
아니야, 엄마
어머님 그럴 분 아니셔 이거 그냥 실수야
[흥미진진한 음악] 세상에 이런 실수가 어디 있어?
나 어머님 알아, 이러실 분 아니셔
그럼?
(달영) 응? 그럼?
[휴대전화 벨 소리]
[버튼 조작음]
예, 엄마
(미숙) 함은 잘 들어갔어?
아, 그럼
다들 너무 좋아하셔서 보는 내가 다 뿌듯했어
[웃음]
다행이다
(준형) 다들 좋아하는 거 보니까
그때 엄마가 함에 들어갈 물건 고를 때
내가 쫓아다니면서 한 소리 했던 거 후회되더라
엄마의 깊은 뜻도 모르고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됐어
(준형) 아, 그리고 나은이가
따로 찾아뵙고 감사 인사 드리고 싶다고
엄마 시간 언제 되는지 물어보라는데?
어, 그래, 난 언제든 괜찮으니까
나은이 시간 될 때 편하게 오라 그래
그럼 나은이랑 시간 맞춰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
아, 저, 저, 호, 혹시
[망설이는 숨소리]
아, 나, 나은이네서 뭐 다른 말은 없었어?
(준형) 어, 왜?
아휴, 아, 아니야, 됐어
저, 운전 조심히 가, 어
도착하면 카톡 해
어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종료음]
[한숨]
[한숨]
[달그락거린다]
[어두운 음악]
[한숨]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한숨]
[새가 지저귄다]
[하품한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나은) 아, 깜짝이야
아유, 놀랐잖아 왜 방문 앞에 그러고 서 있어?
들어가 봐
(달영) 그, 앉아 봐
아휴
이 돈으로 예단 해
엄마
어차피 너 시집갈 때 주려고 모아 놨던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예단 해 가
[놀란 숨소리]
이걸 다?
여자가 시집갈 때 예단 혼수 못 해 가면
평생 뒷말 듣고 살아
(달영) 그게 얼마나 서러운데
그러니까 애초에 뒷말 나오지 않게
입 떡 벌어지게 예단 해 가
엄마
내가 괘씸해서 잠이 다 안 오더라
남들은 예단 먼저 보내는데
전통 운운하면서 함부터 받으랄 때부터
(달영) 내가 수상하다 했어
응? 함 먼저 보내고
'예단은 그 수준에 맞춰서 보내라' 이거인 거잖아
[달영의 성난 숨소리]
(나은) 엄마, 아, 그건
업체가 가격표 떼는 걸 실수한 걸 수도 있고
뭔가 다른 착오가 있었을 거야
착오는 무슨
(나은) 아휴, 진정하셔
진짜로 의도하신 거면 태그를 한 개만 넣었겠어?
다 넣었겠지
내가 이따가 어머님 뵙고 무슨 상황인지 알아볼 테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응?
[한숨]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은) 그냥 실수겠지?
(희선) 실수…일 수도 있는데
품목이 좀 의미심장하네
품목?
요 태그 달린 물건이 뭐였어?
밍크
이 밍크란 게 알고 보면 진짜 프라이빗한 거거든
(희선)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밍크냐, 세이블이냐 종류도 엄청 많고
원산지나 디자인에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이야
그럼 정말 가격을 알려 주려고
어머님이 일부러 태그를 안 뗀 거라고?
뭐, 좋게 생각하면
계산하기 쉽게 태그까지 같이 보내 주신 거지
[한숨]
진짜 우리 엄마 말대로
'이 수준에 맞춰서 예단을 보내라'?
[한숨]
나머지 물건들은 인터넷 검색하면 가격 쫙 나오니까
거기에 요 가격만 더하면 예단의 기준선이 생길 거야
기준선?
(희선) 원래 그렇게 하는 게 상도거든
[한숨]
우리 어머님 진짜 그러실 분 아닌데
(희선) 인류 최대의 난제지
원래 그런 분이 내 시어머니가 되신 건지
시어머니가 돼서 그런 분이 된 건지
아무도 몰라
며느리는 절대 몰라
[한숨] [태그를 탁 집어 든다]
진짜 어렵구나, 결혼이란 게
[입소리를 쩝 낸다]
결혼은 어렵고 시댁은 더 어렵지 [컵을 탁 내려놓는다]
그래서 내가 빠른 포기를 하고 돌아온 거고
[휴대전화 조작음] (나은) 아, 맞다
언니, 나 함 받은 날 누구 차 탄 거야?
어?
(나은) 수연이가 그러던데
언니 어떤 남자 차 타는 거 봤다고
어, 동생
언니 외동이잖아
사촌 동생
(희선) 어, 야, 사촌 동생이 너희 집 근처에 살더라, 어 [희선의 어색한 웃음]
거짓말이 너무 뻔해서 믿어 줄 수가 없는데
(나은) 누구야, 응?
정우성 미만 잡이라더니 어떤 남자를
언니 설마
정우성 만나?
[휴대전화 진동음]
무슨 말도 안 되는…
어, 오빠
어, 금방 나갈게, 응
(나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 응?
(희선) 정신이 없구먼 정신이 없어
- (희선) 야 - (나은) 아!
(종수) 아이고
아, 빈손으로 오지 뭘 이런 걸 사 들고 와? [나은이 살짝 웃는다]
(나은) 어머님이 과일 좋아한다고 하셔서요
(미숙) 고마워, 잘 먹을게
제가 더 감사하죠, 어머님 아버님
함 잘 받았습니다
마음에 들었어?
네,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좋은 것들 많이 받아서 진짜 좋았어요
[미숙의 흡족한 숨소리] (나은) 어머님 아버님, 잘 쓸게요
(종수) 그래
[종수의 웃음] [미숙을 탁탁 두드린다]
당신이 무리한 보람이 있네
아유, 아유, 나은이 부담스럽게 왜 그런 얘길 하세요?
[미숙의 웃음]
나은아, 우리 무리한 거 아니고
더 해 주고 싶었는데
(미숙) 준형이가 말려서 그거밖에 못 해 준 거야
나머지는 차차 살면서 해 줄게
아니에요, 어머님
이미 충분히 넘치도록 받았어요
(준형) 그래, 엄마가 더 해 줬으면
나은이 부담스러워서 밤잠 설칠걸
[웃음] 그리고
지금부터 나은이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해 주면 돼
아이고
야, 네 엄마도 좀 사 줘 봐
아,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으셔?
음, 그림?
좋은 작품 하나 사서
(미숙) 저쪽 벽에다 딱 걸면 좋을 거 같은데
(나은) 어, 저 벽에 그림 걸기 딱 좋겠네요
(준형) 그럼 되겠네, 하나 사셔
근데 이게 또 내 돈 주고 사려니까
막상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정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선물 받으면 참 좋을 텐데?
[작게] 아빠 있잖아, 아빠
[종수의 부정하는 숨소리] (미숙) 으이구, 치
그림 선물 받으면 좋죠
[비장한 음악] [살짝 웃는다]
(희선) 이 시어른들의 말씀엔 하나하나 다 뼈가 있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 뉘앙스를 잘 읽고 파악할 줄 알아야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나 역시 편안해진다 [말소리가 울린다]
(나은) 나한테 그림 선물 받고 싶다는 뜻인 건가?
나은이 그림 좋아하니?
아, 미술 분야는 잘 모르는데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나중에 배워 보려고요
배우면 좋지
(미숙) [무릎을 탁 치며] 아, 나 과일 좀 깎아 올게
말씀 나누고 계세요
(나은) 저도 가서 도와드릴게요 어머니
(미숙) 아유, 아니야, 됐어 앉아 있어, 아유 [미숙의 웃음]
(나은) 네
[익살스러운 효과음]
[비장한 음악] (희선) 만약 어머님이 '난 괜찮다, 아가' 하시면
진짜로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으니까 빨리 와서 도와라, 아가' 하는 반어법인지
이거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돼
전 가서 어머니 좀 도와드릴게요
(나은) 오빠가 우리 결혼 준비 어디까지 했는지
아버님한테 말씀드려
(준형) 어
[휴대전화 진동음]
(희선) 네가 함 받은 거 다 계산해 보니까 8천 정도야
(나은) 어머님, 제가 뭘 도울까요?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아유, 하긴 뭘 해? 가서 앉아 있어
아, 어머님 혼자 주방에 계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
[웃음]
그러면 거기 앉아서 말동무나 좀 해 줘
(나은) 네
[긴장되는 숨소리]
[사과를 삭삭 깎는다]
아까 그림 말씀하셔서 그러는데
어떤 작가 그림 좋아하세요?
음, 뭐, 두루두루 좋아해
아, 요새는 모네가 제일 좋고
모네요?
왜? 넌 별로야?
아니요, 좋죠, 모네
그럼 살아 있는 작가 중에는 누구 좋아하세요?
어?
아, 그게…
사실은 제가 이번에 너무 좋은 걸 많이 받아서
(나은) 예단 드릴 때 어머님께도 [과도를 탁 내려놓는다]
특별한 걸 드리고 싶거든요
혹시 좋아하는 작가 알려 주시면…
아유, 그런 거라면 더 말 못 하지
아이, 내가 그림 얘기 괜히 꺼냈다
아니에요, 어머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됐어
함은 내가 너 예뻐서 그냥 선물로 주는 거니까
그냥 고맙게 받기만 해, 알았지?
네
(나은) 그럼
예단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칼로 쓱 베는 효과음]
예단?
저희 엄마도 예단에 대해서 고민이 많으시고
(나은) 저도 함을 받고 나니까
어머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데
어머님 취향이나 의향을 알면 제가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예단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네, 힌트 좀 주세요
아, 그러면 [한숨]
아예 답을 알려 줄 테니까 안방으로 가 봐
[긴장되는 음악] 답이요?
(미숙) [사과를 삭삭 깎으며] 응 TV 장 위에 봉투 하나 있거든?
그거 열어 봐 [말소리가 울린다]
(나은) 설마
말로만 듣던 예단 목록?
그럼 가격 태그를 보낸 게
설마…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키보드 조작음]
아, 정신 사납게 그러지 말고 집에 가 잠이나 자
(수찬) 오던 손님도 도로 나가겠어
[버럭 하며] 잠이 와야 자지
(달영)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구먼
아이고, 열불 터질 일도 많다, 씨 [키보드 조작음]
내가 그때 상견례 끝나고 그랬잖아
준형이 엄마 만만치 않다고
[피식 웃는다]
세상 시어머니들도 참 엄청 억울할 거야
뭐?
(수찬) 아니 그렇게 잘해 주는데도, 그냥
도끼눈을 뜨고 트집을 잡잖아, 지금
트집? [키보드 조작음]
(달영) 내가 지금 괜한 트집을 잡는 거야?
아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좋게 생각해
(수찬) 아, 막말로 사부인이 가격표를 보내서
'내가 이만큼 보냈다' 우리한테 알려 주는 거면
우리도 그만큼 보내 주면 되잖아
암튼 사부인이 나은이 생각해서 좋은 거 많이 챙겨 줬으니까
우리도 준형이 생각해서 좋은 거 많이 챙겨 줘
[익살스러운 음악]
(달영) 아유, 혼자 속 편하지
나은이 시집살이할까 봐 누구는 속이 타들어 가는구먼
아유,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무슨 시집살이를 시켜? [키보드 조작음]
(달영) 아이고
예전처럼 험한 일 시키는 것만 시집살이가 아니야
견주면서 이 가시방석에 앉혀 놓는 것도 시집살이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준형이 엄마 보통 아니야
[긴장되는 음악]
[종이가 사락거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미숙) 아유, 나은아
[미숙의 웃음]
너 그거 진짜 예단 목록인 줄 알았구나?
아유
결혼식 전에 신부 관리 받으라고
피부 관리권 끊어 놨는데
깜빡하고 함에 못 넣어서 따로 챙겨 주려고 넣어 놓은 거야
아, 네
(미숙) 예단 때문에 긴장해 있는 게
너무 귀여워서 농담 좀 했는데
며느리 잡겠다, 잡겠어
[나은과 미숙의 웃음]
아… 저, 나은아
혹시 그 함에 들어간 가격 태그 봤어?
가격 태그요?
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너무 신경 쓰여서
말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미숙) 밍크는 왜 호불호가 강한 품목이잖아
개인적으로 밍크를 반대할 수도 있고
또 뭐, 사이즈가 안 맞을 수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집에 모셔 두는 거보다는
마음에 드는 걸로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어… 그냥
태그를 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거든
[편안한 음악]
(미숙) 아, 저, 저, 호, 혹시
아, 나, 나은이네서 뭐 다른 말은 없었어?
(준형) 어, 왜?
아휴, 아, 아니야, 됐어
저, 운전 조심히 가, 어
도착하면 카톡 해
어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종료음]
아, 유치하게 왜 그랬을까?
[한숨]
안사돈 콧대 눌러서 뭐 하겠다고
이 나이 먹고 채신머리없이
[깊은 한숨]
나은이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후회하는 숨소리]
(미숙) 나는 상표 태그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
아휴, 나중에 업체에 확인해 보니까
가격 태그까지 같이 넣었다는 거야
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미숙의 민망한 숨소리]
너무 신경이 쓰여서 막 밤에 잠도 안 오고
(나은) 하, 업체 실수였구나
(미숙) 그게 마음에 걸렸나 보네
아휴, 시어미가 소갈머리 없어서 미안하다
괜찮아요, 어머님 업체 실수일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 그렇게 생각했으면 너무 다행이다
아, 저 혹시
집의 어르신들이 뭐, 기분 나빠하시거나?
아, 전혀요
엄마랑 아빠랑 업체 실수겠거니 하셨어요
아휴, 야, 너무 다행이다
(미숙) 아휴, 내가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던지
두 번 다시 그런 일 있지 않도록
내가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할게
미안해
아니에요, 어머님
[웃음]
예단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지?
네
(미숙) 아, 그냥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준형이 시계나 하나 괜찮은 걸로 해 줘
계 모임 때 나가 보니까
다들 장가갈 때 아들 시계 하나는 챙겨 받더라고
네, 오빠 시계
(미숙) 아, 그리고, 뭐 아버지 서운하시지 않게
작은 선물 하나 정도?
네, 아버님도 챙길게요
[숨을 씁 들이켠다] 아, 혹시 저, 안사돈께서
(미숙) 딸 하나 시집 보내는데
예단 제대로 못 해서 섭섭하다고 생각하시면
아, 그냥 뭐, 간단하게 구색이나 맞추는 정도로 하고
아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예단 준비해, 알았지?
[비장한 음악] 과일 먹자, 응?
[한숨]
(미숙) 무슨 얘기들 하셔요?
(준형) 혼수 얘기
[함께 웃는다] (미숙) 아, 진짜?
- (미숙) 드세요 - (종수) 그래
(미숙) 아이고, 우리 나은이가 맛있는 과일을 사 왔네
(종수) 음, 아주 달다 [미숙의 웃음]
[미숙이 말한다]
(미숙)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예단 준비 해
(희선) 네가 함 받은 거 계산해 보니까 8천 정도야
[경쾌한 음악]
(희선) 새 신부가 결혼 준비 할 시간도 없는데
무슨 시계 오픈 런을 하고 있어?
(나은) 어머님이 예단은 구색을 맞추라고 하셨으니까
다 해야지
(나은) 어? 이건 내가 예물로 사 주기로 한 거잖아
(준형) 내가 이걸 사다니 진짜 대박이지?
(나은) 나한테는 엄청난 의미도 있었고
계획도 있었어
(준형) 나은이가 심기가 불편한 거 같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서
(준형) 아니,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뭐가 미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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