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관 구해령 6
[뻐꾸기 울음]
전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신시가 다 되어서요
저...
오늘 일은
감사했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넌 입시를 하였고 난 서책을 보았고
감사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던 거 같은데?
(이림) 그럼 가 보거라
(해령) 예
혹시 다음에도 또 울고 싶은 날이 있거든
여길 찾아와
언제든 방을 비워 줄게
그, 아까 보니 눈물을 참는 얼굴이 못생겨서 하는 말이다
남들한테 들키면 창피할까 봐
예?
(이림) 조심히 가거라
넘어져서 또 울지 말고
(해령) 마마...
[잔잔한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림의 조용한 웃음]
[서리1의 못마땅한 헛기침]
(서리1) [침을 퉤 뱉으며] 아유...
"예문관"
(홍익) 양반 체면에 이게 다 뭡니까?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장군) 아이, 시끄럽다
홍익이는 한성부로 가고 치국이 넌 승정원으로
(홍익) 예 [홍익과 치국의 힘겨운 숨소리]
(장군)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빨리 들어가, 이 원수야!
- (홍익) 이 원수야 - (치국) 이 원수야, 씨
(홍익) 비켜, 비켜
[치국의 한숨] [홍익의 힘겨운 신음]
(경묵) 어이구, 저기 오셨네
우리 예문관의 자랑
주옥같은 신입 사관 구해령
[경묵이 손뼉을 짝짝 친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길승) [한숨 쉬며] 뭐긴 뭐야?
서리들 건드린 죗값이지 [문이 달칵 열린다]
죗값요? [은임의 힘겨운 숨소리]
(은임) 예문관 권지가 단골리에 대한 상소를 썼다고
그새 소문이 났나 봅니다
해서, 예문관 서리들이 죄다 급가 내고 [해령의 한숨]
퇴궐을 했지 뭡니까?
[은임의 힘겨운 신음]
할 일이 너무 쌓여서 집에도 못 가게 생겼어요
[아란의 속상한 신음]
[해령의 한숨]
(해령) 제가 상소를 올린 건 이조 서리들에 대해서입니다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예문관 서리들이...
(시행) 너한테나 아무 상관 없는 이조 서리들이지, 어?
서리가 대대손손 물려주고 물려받고 하는 직업인 거 몰라?
네가 밥줄 끊으려고 했던 그 단골리 아무개가
여기 예문관 서리들한테는
큰아버지고 육촌 형님이고
하다못해 사돈의 사돈은 된다고, 쯧 [해령의 당황한 숨소리]
(경묵) 이래서 무식한 것들한테는
나뭇가지 하나 쥐여 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쑤신 게 벌집인지 남의 똥집인지도 모르고
어휴, 속 터져, 씨
(해령) 저, 서리들 일은 모두 제게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너 혼자 어느 세월에?
검은 머리 파뿌리 돼서 퇴궐하려고?
구 권지 혼자서는 힘듭니다, 주십시오
(우원) 안 된다
[의미심장한 음악]
너로 인해 시작된 일이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
(아란) 아, 민 봉교님
아무리 그래도 그 많은 걸 어떻게 구 권지 혼자 다 합니까?
(은임) 차라리 저희 권지들이 나눠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궁문 닫히기 전까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상소를 올린 건 구해령 권지지 너희들이 아니다
아무도 도와줄 생각 하지 말거라
상소?
예
마마 소설에 딴죽 걸 때부터 심상치가 않더라니
(삼보) 진짜로 머리가 이게 어떻게 됐나 봅니다
품계도 없는 권지 주제에 상소가 웬 말입니까?
그것도 단골리를 갖다가, 쯧
쓸 수도 있지 뭐 그런 거로 사람을 울리기까지...
네?
해서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이냐?
(삼보) 안 좋다마다요 [삼보가 혀를 쯧쯧 찬다]
나인 없이 돌아가는 내전 없고
서리 없이 돌아가는 외전도 없는 법인데
예문관 서리들이 싹 다
등을 돌려 버렸으니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가 혀를 쯧쯧 찬다]
저는 길어야 보름 잡습니다
낮에는 선진들 원한에 시달리고
밤에는 야직에 시달리다가
사직서 내는 그날까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보름
그래도 그 여인 성격에...
(박 나인) 그리 쉽게 그만둘 거 같지는 않습니다
- (이림) 그렇지? - (박 나인) 아마 잘리겠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열흘 봅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 어, 그, 아니라니까?
더러운 꼴 보기 전에 그만둔다니까?
- (박 나인) 내기하실래요? - (삼보) 돈 걸어?
- (삼보) 닷 푼? - (박 나인) 한 냥?
- (최 나인) 한 냥 하시죠 - (삼보) 한 냥, 한 냥, 두 냥?
[애잔한 음악]
[해령의 힘겨운 신음]
[해령의 힘겨운 한숨]
[해령의 힘겨운 신음]
"직필"
[까치가 깍깍 운다]
[피곤한 한숨]
[하품]
[피곤한 숨소리]
(해령) 뭐지?
내가 이걸 언제 다 했지?
[문이 달칵 열린다]
(아란) 구 권지!
살아는 계십니까?
(해령) 예
(은임) 힘드실까 봐 서둘러 왔더니
밤사이 대체 뭘 하신 겁니까?
(해령) 왜, 왜요?
(아란) 거기 구 권지 얼굴에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해령) 예? [익살스러운 음악]
[당황한 숨소리]
(해령) 어머, 뭐야, 이게?
귀신도 아니고 누가 대체 이런 거를...
'참새 작'?
아, 이건 또 무슨 뜻이래?
아, 무서워 죽겠네, 진짜, 아휴
뭐야, 이게, 아...
[거울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의아한 한숨]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가 코를 드르렁 곤다]
[삼보가 계속 코를 곤다]
(최 나인)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피곤한 신음]
알려고 하지 마라
아주 뜨거운 밤을 보내셨으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삼보의 하품]
[새들이 짹짹 지저귄다]
[이림의 답답한 신음]
[브레이크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가 코를 훌쩍인다]
[삼보의 아파하는 신음]
한 시진이나 지났다
오늘은 또 왜 또 뭐가 문제라서 입시에 늦는 것이냐?
그거 아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요
아이, 늦으면 늦나 보다 하시면 될 일이지
뭘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십니까?
태양 빛이 이리 따가운데
예문관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니 그냥 늦는 게 아닌 거 같아 그런다
어젯밤 너도 보질 않았느냐?
사람 하나 야직시키고 일거리 이만큼씩 쌓아 둔 거
(삼보) 남이야 일거리를 이만큼씩 쌓아 놓든 막 이만큼씩 쌓아 놓든
마마께서 뭔 상관이십니까, 그게?
왜 상관이 없느냐? 구해령은...
[익살스러운 음악]
그...
구해령은 매화에게 불구대천지원수인데
불행한 일 생기면 가장 먼저 비웃어 줘야지
[이림의 멋쩍은 헛기침]
도와줄 거 다 도와주셔 놓고 무슨...
(이림) 산책
산책을 좀 해야겠다
예, 차라리 어디 걷다가 오십...
[익살스러운 효과음]
산책을 어디까지 하시게요?
[흥미진진한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의 웃음]
자, 보시지요
평화롭고 고요한 거
별일 없는 거 확인하셨으니까
이제 돌아가시지요, 어? [삼보의 웃음]
[이림이 삼보를 탁 잡는다]
'구밀복검'
겉으로는 이래도
안에선 무슨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대낮 궁궐 이 한복판에서
무슨 놈의 무시무시한 일요?
협박, 폭행, 살인 미수
구해령 해고, 이런 거! [삼보의 의아한 신음]
(삼보) 아휴, 참...
안 되겠다
살짝 들어가서 보고 오자
[흥미진진한 음악] 구해령이 뭘 하고 있는지 멀쩡히 붙어는 있는지
(삼보) 아이, 아니
큰일 날 일 마십시오
예문관은 사초를 보관하는 관청입니다
이리 알짱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상하...
[삼보가 웅얼거린다]
[반짝이는 효과음]
(삼보) 응?
[이림의 넋 나간 웃음]
[삼보의 다급한 신음]
마마
지금 그 표정은 뭡니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림의 멋쩍은 헛기침] (삼보) 마마, 혹시...
(경묵) 거기!
(경묵)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삼보) 아이...
글쎄 이분이
(시행) 이분이?
(삼보) 그러니까 이놈이
아직 궐 지리를 잘 모르는지 예서 헤매고 있지 뭔가?
해서 내가 이, 길을 알려 주던 참이네
[삼보의 어색한 웃음]
아유, 이 띨띨한 놈 [삼보의 웃음]
[이림의 웃음]
[삼보와 이림의 웃음]
(시행) 그렇다고 코딱지만 한 궐내 각사를 헤매?
어디서 왔는데?
- 예? - (시행) 아, 어디 소속 누구냐고!
(이림) 난 저기...
(삼보) [재채기하며] 승정원...
[경쾌한 음악]
(이림) 승정원, 승정원에서 왔습니다
(시행) 승정원?
혹시 제갈 주서가?
(이림) 예, 그...
제갈이가
(시행) 카, 내 이럴 줄 알았어, 어?
아, 제갈탁 그 자식이 싸가지는 없어도 의리는 있다니까, 어?
[시행과 삼보의 웃음]
가자, 가자, 가자 네 할 일이 산더미다, 산더미
어떻게, 힘은 좀 쓸 줄 알고?
- (삼보) 아, 잠깐만, 이거 지금 - (이림) 네
(삼보) 지금 어디 가, 어디... 아니
- (이림)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 (시행) 아, 좋네 [삼보의 당황한 신음]
- (시행) 아버지 뭐 하시니? - (이림) 씁, 어, 앉아 계실 겁니다 [삼보의 당황한 신음]
(시행) 어, 앉아 계셔?
[삼보가 웅얼거린다]
[삼보의 당황한 신음]
(이진) 쉬어야겠다
반 시진은 아무도 들이지 말거라
(상선) 예
[이진의 지친 한숨]
[이진의 못마땅한 한숨]
(이진) 경연이 길어졌으니 여사는 들 필요 없다 했을 텐데
나가 보거라
(사희) 저하께 저하의 할 일이 있듯
제게도 제 할 일이 있습니다
해서 기어코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뜻이냐?
여사 보기를 돌 보듯 하시던 저하십니다
오늘도 그리하시면 됩니다
[사희가 필기구를 달그락거린다] [이진의 못마땅한 한숨]
(이진) 넌 왜 여사가 되었느냐?
내내 궁금했던 것이다
너 같은 여인이 왜 이런 궂은일을 선택했는지
무슨 뜻입니까?
넌 모든 걸 가지지 않았느냐?
(이진) 아비의 품계가 낮다고는 하나 인사권을 쥐었으니
육조 판서 권세가 부럽지 않을 터
한양에만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이 다섯 채
팔도 곳곳에서 해마다 거두는 쌀이 만 석이 넘고
네게 혼담을 청한 가문이 수십은 된다 들었다
한데 왜 그 평탄한 삶을 제쳐 두고 여사가 되었지?
무엇을 더 갖고 싶어서?
[애잔한 음악]
(사희) 아홉 채입니다
한양에 남몰래 첩실에게 해 둔 집이 네 채가 더 있습니다
친지의 이름으로 해 둔 땅도 족히 팔천 마지기는 되니
해마다 거두는 쌀은 만오천 석이 넘어가지요
하나
그중 어느 것도 제 것은 아닙니다
네 것이 아니다?
정랑의 권세라고 해 봤자
제힘으로 승차할 능력도 없는 한심한 자들이
잠시 알랑거리는 것뿐이니
부질없는 찰나의 영화와도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진의 한숨] (사희) 그 많은 집과 땅들 또한
계집인 저 대신 얼굴도 모르는 양자에게
언젠가 모두 넘겨질 것입니다
해서 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사가 되었습니다
[옅은 한숨]
"예문관"
(해령) 저, 상소 받아 왔습니다
[해령의 놀란 신음] [흥미진진한 음악]
(해령) [작은 소리로] 나리,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먹 갈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해령) 아니, 그러니까 왜 마마께서 여기서...
(경묵) 야, 너 승정원 서리 처음 보냐?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승정원 서리요?
(경묵) 그래, 승정원 이 서리
제갈 주서님이 보내 준 예문관 일일 머슴
머슴이라고요?
(시행) 야, 인마 너는 무슨 먹을 하루 종일 갈아?
- (시행) 이거나 사간원에 주고 와 - (이림) 예
엄마...
(이림) 근데 사간원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
[해령의 당황한 숨소리]
너 미친놈이니?
(해령) 저, 이 서리, 이 서리, 이 서리
이 서리, 이 서리, 이 서리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해령) 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승정원 이 서리라니요?
저, 일단 빨리 도망가십시오
저,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일은 그냥 깨끗하게 잊어 주시고
일단 들어가셔서...
싫다
일손이 더 필요하다면서?
내가 없으면 네가 서리 일도 해야 하지 않느냐?
아, 저야 원래 서리 취급 받는 신세고요
마마께서 왜 이런 곤욕을 자처하시냐는 말입니다
곤욕이 아니다
이런 경험 나름 신선해, 흥미로워
[이림의 옅은 웃음]
흥미롭다고요?
예술 하는 자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 법
혹시 모르지 않느냐?
오늘의 이런 개고생이
훗날 서리와 여사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태어날지
[잔잔한 음악]
그러니 너도 오늘 하루만큼은 나에 대해 함구했으면 한다
씁, 하면
제가 마마를 서리로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키지 않느냐?
(해령) 이 서리, 같이 감세
어허, 이 사람 참...
(해령) 이 서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못마땅한 숨소리]
(경묵) 장계를 받아 오랬더니
걸레짝을 만들어 와?
눈은 대체 왜 달고 다니냐?
뭐, 얼굴이 밋밋해서 뚫어 놓은 구멍이야, 어?
(이림) 거, 말씀이 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
[이림의 아파하는 신음]
(해령) 죄송합니다
[이림의 괴로운 신음]
[은임의 미심쩍은 숨소리]
(은임) 아무리 봐도 도원 대군마마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대군마마께서 미쳤다고 여기서 저러고 계시겠습니까?
(아란) [웃으며] 그냥 좀 닮은 거겠지요
[밝은 음악]
대군마마 [이림의 옅은 웃음]
그래도 날 챙겨 주는 건 역시 너밖에 없구나
(장군) 잠깐만, 이게 어디 갔지?
(길승) 뭐가 어디로 갔는데?
(장군) 쓰고 있던 시정기가 없어졌습니다
좀 전까지 여기 분명히 있었는데, 아이...
(시행) 너 정신 나갔냐, 그걸 잃어버리게?
야, 너희도 빨리 찾아봐!
(함께) 네
[흥미진진한 음악] (시행) 아이, 참...
[장군의 걱정스러운 한숨]
시정기라는 게 뭔데 이 사달인 것이냐?
이 서리는 정말 조정 일은 하나도 모르십니까?
왜 그 사초랑 승정원일기랑
이것저것 관청 기록들을 엮은 문서입니다
그거 아무도 보면 안 되는 거라서 지금 이 사달이 난 거고요
문서라면 혹 종이 여러 장을 이어 붙인...
(해령) 네, 그렇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걸 어찌 아십니까?
(시행) 야!
헷갈릴 게 따로 있지
이거랑 이거랑 어떻게 구별을 못 해, 응?
시정기는 시정기처럼 생겼고 장계는 장계처럼 생겼잖아
내가 홍문관에 '저 장계 좀 갖다 놔' 그랬지
언제 '저 시정기 좀 갖다 놔' 그랬어, 어?
시정기, 시정기, 장계, 장계
시정기, 장계, 장계, 시정기!
(경묵) 더 혼내 주십시오, 더
김 수찬님이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지
시정기 뭐, 다른 데로 흘러가기라도 했으면
[헛웃음 치며] 저희 다 관복 벗을 뻔했습니다
[시행의 화난 숨소리]
[시행의 힘겨운 신음]
(시행) 안 되겠다
- (시행) 안 검열 - (홍익) 네?
(시행) 김 검열이랑 얘네 데리고 미담 취재 좀 갔다 와
하여튼 이것들은 머리를 쓰면 안 돼요
몸으로 때워
저, 갔다 오라니
어디를요? 궁 밖을요?
그러면 뭐, 궁 안에서 미담 찾으리?
나가서는 제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시행) 적힌 대로 묻고 듣는 대로 적어 오세요
알았죠?
예
(시행) 참 맑다, 맑아 [밝은 음악]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해령의 재촉하는 신음]
[이림의 감탄하는 신음]
[해령이 타박한다]
(주모) 걔 부모가 몹쓸 병에 걸려 가지고 아, 둘 다 죽어 불었어
아, 그래가 동네 사람들이 걔 불쌍하다고
쌀도 대 주고 땔감도 대 주고 했는디
[주모의 옅은 웃음]
이보시오, 이보시오!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어?
(이림) 술맛이 궁금해서...
- (해령) 이 서리! - (주모) 이런 염병!
(주모) 아, 그 입 댄 거를, 어 처드러워서 누구더러 팔라고?
(해령) 어, 잠깐만요, 참으세요
제가, 제가, 제가 살게요 제가, 얼마입니까?
[주모가 씩씩거린다] 얼마입니까, 예? 얼마죠?
(주모) 줘 봐요
[흥미진진한 음악] [주모의 못마땅한 신음]
(심마니 처) 자... [심마니 처의 웃음]
산신령님이 이 사람 효심에 감동받은 게 분명하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쾅 내리치더니만 [심마니의 웃음]
그냥 바위가 쫙 갈라지는 거야
그랬더니 그 밑에 자그마치 백 년 된...
- 도라지? - (심마니 처) 도라...
맞네, 도라지!
(이림) 이거 산삼이 아니라 도라지다 [이림의 옅은 웃음]
- (심마니) 야 - (심마니 처) 잡아, 잡아
[해령의 놀란 신음] (심마니) 네가 산삼을 봤냐? 네가 산삼을 알아?
- (심마니 처) 잡아, 저놈 잡아! - (심마니) 아유, 이 우라질 놈
- (심마니 처) 저놈 잡아라! - (해령) 죄송합니다 [심마니의 못마땅한 신음]
(양반) 아주 캄캄한 그 숲속에서
호랑이 안광을 보는 순간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이림) 이거
아무리 봐도 청나라에서 파는...
(해령) 이 서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해령) 이거 좀 드세요
아유, 하루 종일 누가 묻지도 않은 거 떠들어 대느라고
배가 많이 고프실 텐데
[이림이 웅얼거린다] [해령이 손을 탁탁 턴다]
[해령의 못마땅한 신음]
한마디만 더 하면 떼 놓고 갑니다
[해령이 혀를 쯧 찬다]
어허
[해령의 재촉하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림의 못마땅한 신음]
(대장장이) 어, 예, 딱 이 얼굴입니다요
아이고, 어쩜 제가 기억하는...
(대장장이) 나리, 꼭 그분을 찾아 주셔야 합니다
[대장장이의 웃음]
(홍익) 이보게
[홍익의 한숨]
(대장장이) 예
(홍익) 미담을 확인하러 왔네
자네가 그 3년 전에
웬 여인의 의술 덕분에 죽다 살아났다는 그 대장장이인가?
그 얘기라면 방금 왔다 가신 나리께 다 말씀드렸는뎁쇼?
방금 왔다 가신 나리?
(대장장이) 예, 절 살려 주신 분을 찾아 포상을 내리신다기에
해서 제가 요것도 보여 드리고
아, 저, 용모도 알려 드리고 했는데
우리 말고 누가...
용케 한눈 안 팔고 잘 계셨네요?
(이림) 네가
'이 서리,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랬으니까
이쁘시네, 말도 잘 듣고
[헛기침하며] 그, 이번에도 허탕이었느냐?
하, 네, 아, 아무래도 저는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습니다
마마께선 먼저 들어가 보시지요
곧 해가 진다
남은 일이 이리 많은데 어찌 너 혼자...
아유,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예문관의 그, 뭐, 공공연한 원흉?
딱 고런 처지라서 미담 하나라도 건져 가야 하거든요
- 궁궐 가는 길은 아시죠? - (이림) 모른다
궐 안에서만 살아 봤지 밖은 영 낯설어서
그러니 네가 날 좀 데려다 다오
일 다 끝나고 너 집에 갈 때쯤
아, 하면 제가 지금 모셔다드리고...
다음은 어디라고 했지?
어, 마마!
(해령) 아이고, 이거라도 주십시오 제가 들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진짜? 아...
[해령의 어이없는 웃음]
(귀재) 의금부에서 죽은 자와 흉터가 일치합니다
[긴장되는 음악] 이 계집입니다
- 서두르거라 - (귀재) 예
[대문이 쾅쾅 울린다] [풀벌레 울음]
누구십니까?
[대문이 쾅쾅 울린다]
(재경) 웬 놈들이냐?
(귀재) [당황하며] 장령 나리
대감의 명으로 사람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여긴 내 절친한 벗의 집이네
누굴 찾는지는 몰라도 이곳에는 없네
혼자 계신 겁니까?
퇴청이 늦는다 하여 먼저 와 기다리는 중이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이제 괜찮습니다
[애절한 음악]
날 어떻게 찾았지?
(모화) 대답해, 여태 내 뒤를 밟았던 것이냐?
내가 뭘 하는지 내내 감시하고 있었어?
누이
누이
[모화의 다부진 숨소리]
오늘 내가 널 죽이지 않는 건
(모화) 한때나마 혈육처럼 아끼고 어여뻐했던 정 때문이다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그땐 지체 없이
네놈의 숨통을 끊을 것이니
(해령) 어, 분명 이쯤 어디일 텐데
마당에 배나무가 있는
서른세 칸짜리 기와집
[해령의 고민하는 숨소리]
- 근데 이상하지 않으냐? - (해령) 예?
아까부터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
아, 그야 시간이 늦어 그렇죠
다들 인정 전에는 집으로 들어가니...
(해령) [놀라며] 통금
마마, 저, 궐로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림) 넌 사관이니 좀 늦게 다녀도 괜찮지 않...
(해령) 아, 여사한테 범야물금체가 어디 있습니까?
빨리 따라오십시오
[흥미진진한 음악]
[해령의 다급한 숨소리]
(순라군1) 번도! [해령의 놀라는 신음]
[딱따기가 딱 울린다]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해령) 저, 마마
갑자기 나타나서 우릴 구해 줄
익위사나 운검 안 데려오셨습니까?
(순라군2) 번도! [해령의 좌절하는 한숨]
[딱따기가 딱 울린다]
그러면 혹시 대군마마가 알고 지내는
포도청이나 한성부 관원은...
[이림의 부정하는 신음]
[좌절하는 숨소리]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이림) 통금을 어기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느냐?
쉿, 쉿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원래는 장이 열 대인데
마마께선 호패가 없으시니 아마 그보다 훨씬 더...
[순라군2가 '번도'를 연신 외친다] 제가 나가서 시선을 끌 테니
마마께선 궐로 도망가십시오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내...
'월야밀회'를 쓸 때 들었던 얘기인데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이거 말씀이십니까?
(순라군2) 번도! [딱따기가 딱 울린다]
(해령) 마마
저의 무엄함을 용서하십시오, 대군마마
[감성적인 음악]
[심장 박동 효과음]
(순라군2) 이야,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순라군1) 거, 청춘 남녀 피 끓는 건 알겠는데
아, 귓구녕은 좀 열고 다니시오
인정 넘은 지가 언젠데
(해령) [쑥스러운 투로] 예, 죄송합니다
(순라군2) 하여튼 이, 젊은것들은 대담혀 [순라군2의 웃음]
(순라군1) 그러게
가자
[순라군들이 흥얼거린다]
천만다행이지 않습니까?
(해령) 이제 놓으셔도 되는데
[이림의 당황한 신음]
그럼 난 이만 궐로 돌아가 보겠다
이미 도성 전체를 순라군이 돌고 있을 겁니다
궐까지는
너무 멉니다
[힘겨운 숨소리]
[비밀스러운 음악]
[어린 모화의 힘겨운 숨소리]
(어린 재경) 누이, 모화 누이 [어린 모화의 안도하는 숨소리]
- (학생1) 역시 모화, 해낼 줄 알았어 - (학생2) 정말 잘했어
[학생들이 저마다 말한다] - (학생3) 못할 줄 알았는데 - (학생4) 우와
(학생5) 모화야, 정말 잘해, 너...
[벅찬 웃음]
[괴로운 신음]
[힘겨운 신음]
(설금) 아씨, 응?
지금 대체 몇 시인 줄 알고...
[설금의 당황한 신음]
[해령의 헛기침]
(설금) 아니, 뭐...
아이, 지금 남자랑...
[설금이 웅얼거린다]
(해령)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오라버니 들으신다
(설금) 어찌 조용할 수 있겠습니까? [해령의 아파하는 신음]
지금 아씨랑 웬 사내가...
설마? [설금의 헛웃음]
여태까지 이분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럼 어제... [설금의 놀란 신음]
어제 외박하신 것도 그래서?
둘이? [익살스러운 효과음]
(해령) 그냥 동료야, 동료, 어?
그, 같이 외근 나왔는데 시간은 늦고
댁까지는 너무 멀고 그래서
[설금의 장난스러운 웃음]
야, 가자
나 오늘 네 방 가서 좀 자야겠다
(설금) 잠시만요, 아씨
쓰읍... [익살스러운 음악]
아, 어디 보자
[설금의 만족스러운 신음]
쩝 [설금의 만족스러운 웃음]
[설금의 살피는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해령의 난감한 숨소리]
(설금) 아씨, 잘 보십시오
매우
잘생기셨습니다 [설금의 웃음]
뭐?
인구 700만 조선에서 기적과도 같은 얼굴이라고요
(설금) 얼굴로 열리는 과거가 있다면 장원 급제
얼굴로 매겨지는 품계가 있다면 정1품
이런 사내는 다른 여인이 발견하기 전에
하루빨리 낚아채셔야 됩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발을 쾅 구르며] 너 지금 그게 무슨 헛소리하는 거야, 진짜?
(해령) 설금아, 제발 우리 그냥 조용히 나가면 안 될까?
(설금) 어머나, 이걸 어찌해야 쓸까나? [해령의 놀란 신음]
어, 제 방은 지금 호박을 말리느라
저 하나밖에 누울 자리가 없는데
그럼 광주댁...
거기도 마찬가지고요
- 그럼 다른 방은... - (설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행랑채에 있는 모든 방이 호박으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설금의 웃음]
어떻게, 쓰읍...
이부자리는 하나만 깔아 드리면
될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요? [키스 효과음]
[설레는 음악]
[설금의 신난 웃음]
[해령의 옅은 한숨]
[불편한 숨소리]
[해령이 연신 뒤척인다]
[이림이 콜록댄다]
추우십니까?
아니다
괜찮다
예
목이 말라서
예
[해령의 헛기침]
[해령의 한숨]
[이림이 물을 꿀꺽 마신다]
[이림이 연신 물을 꿀꺽 마신다]
[이림이 연신 물을 꿀꺽 마신다]
[해령의 불편한 숨소리]
[이림이 숨을 하 내뱉는다] (해령) 저, 마마
그, 아무래도 저는
나가서 자야겠습니다
마마께선 여기서 편하게 주무십시오
(이림) 밤공기가 차다
행랑에 빈방도 없다면서 어딜...
(해령) 아, 저는 그...
뭐, 마당이든 대청이든 이렇게 발만 뻗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또 제가 그 잠버릇이 아주아주 많이 고약해서
이, 막 코도 막 컥 심하게 골고
막 이렇게 욕도 하고
물건도 막 아무 데나 집어 던지고 이러거든요?
[멋쩍게 웃으며] 아마 마마께 폐가 될 겁니다
[이림이 피식 웃는다]
[이림의 옅은 웃음]
왜 웃으십니까?
너도 날 불편해하는 게 다행이다 싶어서
내가 나가서 자마
(이림) 이대론 누구도 잠들 수 없을 듯하니
아휴, 안 됩니다
마마께서 어찌 저 때문에...
기러기의 뜻이다
헤아리지 말거라
[문이 달칵 열린다]
그래, 뭐, 참새가 기러기의 뜻을 모르는 건 당연하니
참새?
[잔잔한 음악]
[피곤한 신음]
[이림의 피곤한 신음]
[이림의 불편한 신음]
[불편한 신음]
[피곤한 한숨]
[이림의 불편한 신음]
[이림의 개운한 신음]
[이림의 옅은 웃음]
[나른한 신음]
"참새 작"
[초조한 한숨]
[해령의 초조한 숨소리]
[해령의 당황한 숨소리]
[해령의 옅은 웃음]
[멀리서 개들이 왈왈 짖는다]
(해령) 아휴, 이게 미쳤나, 이게...
아휴
[새가 짹짹 지저귄다]
[설레는 웃음]
아씨
미래의 서방님
[밥상을 달칵 내려놓는다]
[흥미진진한 음악]
(설금) 어?
뭐야, 이 밋밋한 방은?
하여간 쓸데없이 조신한 인간들
아이고, 이불은 뭐 이렇게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쁘게도 갰어?
쯧, 아휴...
[이림의 개운한 신음]
(삼보) 아이고, 송구합니다, 마마
아유, 자
어제 밤새도록 들어오지 않는 마마를 기다리고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더니
손발이 다 그냥 덜덜덜덜덜 떨리지 뭡니까?
너 얼굴에 베개 자국 남았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삼보의 멋쩍은 신음]
(삼보) 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다 들었습니다
외사 나갔다가 여사랑 사라진 거
여인한테 빠져서 눈에 뵈는 게 없으신 건지
원래 그렇게 그냥 발라당 까지신 건지
아무리 혈기가 왕성해도
대군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가 있고 지조가 있지요
어쩜 하루 만에 천리만리를 달리십니까?
(이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무 일 없었다
아무 일 있을 만한 사이도 아니고
누굴 바보로 아십니까?
(삼보) 이팔청춘이 함께 밤을 보내면서
어떻게 아무 일도 없을 수가...
(이림) 있지
대군과 사관이라면
[이림의 피곤한 신음]
정녕 그 여인이 마마께는
사관일 뿐입니까?
[설레는 음악]
[경묵의 지친 한숨]
[저마다 한숨을 쉰다]
[다가오는 발걸음]
(시행) 아, 다들 왜 이렇게 처져 있어? 빨리빨리 좀 하자
어이, 어이, 이거 신시까지
이거 유시까지
이거 한 시진 내로
아유, 정신없다, 정신없어
(장군) 아이, 진짜, 우리가 무슨 글 쓰는 가축도 아니고, 씨...
[장군이 혀를 쯧 찬다]
(장군) 양 봉교님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서리들 사태 해결해 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급가 내고 퇴궐하겠습니다
(시행) 뭐?
[흥미진진한 음악]
(시행) 일 키우지 마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다, 어?
(장군) 우리끼리 밤낮없이 바빠 죽겠으면 뭐 합니까?
일거리는 해결하기가 무섭게 밀려들어 오고
여기저기서 '예문관 일 똑바로 해라' 욕하느라 성화인데
오죽하면은 승정원 서리가 하루 만에 도망을 가겠습니까?
(시행) 자기들이 안 나오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어?
내가 뭐, 집에 쳐들어가 가지고 보쌈이라도 해 와?
(길승) 양 봉교님 사과 한 번이면 될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 권지 상소는 핑계고
이참에 자기들 자존심 좀 세워 보려나 본데
그 장단을 맞추려면
한림들 수장인 양 봉교님이 맞춰 주셔야지요
야,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홍익) 손 대교님 말씀이 맞네
눈 딱 감고 돌아와 달라고 싹싹 빌다 오십시오
무릎 꿇는 거 제가 많이 해 봐서 아는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
[밝은 음악]
(시행) 뭐야, 이 분위기?
너희 나한테 왜 이래?
(우원) 제가 하겠습니다
그자들이 원하는 것이 체면 세우기라면
제가 가야 성에 차지 않겠습니까?
(시행) 그래, 어?
우리 같은 것들이 백날 가서 빌어 본들 뭐 하니?
좌상 아드님이 무릎 한번 싹 꿇어 주시면은
그보다 더 좋은 술자리 자랑거리가 없어요
가문의 영광이야, 아주, 응?
(해령) 저, 그럼
저도 가게 해 주십시오
저로 인해 시작된 일이니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담판을 짓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래
[사람들이 시끌벅적하다] [가야금 연주가 흘러나온다]
[서리들의 불편한 헛기침]
(우원) 자... [서리2의 불편한 숨소리]
조촐하게나마 준비했네
마음껏 드시게
[서리들의 신난 숨소리] [서리2의 헛기침]
(서리2) 그러게 말입니다
조촐하기 짝이 없어서
영 젓가락 갈 곳이 없습니다 [서리2의 헛웃음]
(해령) 아, 박 서리는 평소에 밥상을 대체 어찌 차려 드시는 겁니까?
뭐, 누가 보면 금이라도 씹어 드시는 줄 알겠어요
[서리들의 헛기침]
씁, 하면 내 상을 다시 내오라 하지
(서리2) 아니, 뭐, 됐습니다
이왕 차린 거 먹어는 드리지요
아, 들게 [서리들이 대답한다]
(서리3) 아, 이 잡채가 이거 아주, 씁...
예문관엔 언제쯤 돌아올 생각인가?
(서리2) 글쎄올시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과한지
머리로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도통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서리3의 웃음]
(서리3) 발이 천근만근입니다 [서리들이 웃는다]
원하는 것이 있다
뭐, 난 그렇게 들리는데?
(서리2) 민 봉교님께서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하십니까?
우리 사이에 원하고 말고는 무슨...
[서리들의 웃음]
그저 저희한테
작은 성의를 보여 줬으면 하는 거지요
[서리들의 웃음] [서리2의 헛기침]
(해령) 이보세요, 박 서리!
(서리2) 참
그 전에 저 건방진 계집 버르장머리부터 좀 고쳐야겠습니다
(서리4) 뭐 해, 어서 무릎 꿇지 않고?
어서!
[기가 찬 웃음]
(우원) 어이!
앉거라
예?
넌 잘못한 것이 없어
그러니 사과할 필요도 없다
(서리2) 어, 민 봉교님
계속 그리 나오시면은
가자 [서리들의 헛기침]
(서리2) 뭡니까, 그게? [우원의 한숨]
예문관 서리들 치부책일세
[비밀스러운 음악]
(서리2) 치, 치, 치, 치, 치부책?
(서리3) 아니, 치, 치, 치, 치부책이라니요?
아니,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서리5) 우리한테 무슨 그런 게... [서리들이 껄껄 웃는다]
(서리3) 치부책이라니...
(서리2) 허풍이 심하십니다, 그려 [서리들의 웃음]
치부책이라니요
어, 한낱 서리들한테 치부 같은 게 어디 있다고
[서리들의 어색한 웃음]
(해령) 아...
아, 그래서 그동안 박 서리 뒤를 밟으라고 시키신 겁니까?
[익살스러운 음악] [해령의 놀란 숨소리]
아니, 이렇게 뒷돈 받은 거 죄다 기록하시려고요?
세상에...
(우원) 이것이 자네들에게 보이는
내 성의일세
뭐, 어떻게 이거로도 부족하겠는가? [해령의 한숨]
[서리들의 헛기침]
(서리3) 아...
[서리2의 헛기침]
(서리2) 약조한 겁니다 이 일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해령) 민 봉교님 말씀은 중천금입니다
맘 편히 믿으시고 출근할 준비나 하시지요
[서리2의 초조한 숨소리]
민 봉교님 그렇게 안 봤는데
노름꾼 기질이 있으십니다?
저 치부책 말입니다
펼쳐 보니 먹물 한 점 없는 깨끗한 빈 책이던데
어쩜 그리 거짓말을 잘하십니까? 낯빛 하나 안 변하고
저자들의 치부를 알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적어 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잔잔한 음악] [호응하는 신음]
한데
아까 저에게 하신 말씀 말입니다
진심이셨습니까?
진심으로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원) 쓰읍...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어찌 잘못이라 하느냐?
난 그리 생각하지 않아
한데 그날 왜 저에게...
옳은 일에도 책임이 따르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스스로 깨닫길 바랐다
넌 폐나 끼치는 계집이 아니라는 걸
[우원이 코를 훌쩍인다]
[시행이 흥얼거린다] [장군의 힘겨운 신음]
(길승) 아유, 아유, 이제 좀 살겠네
(시행) 이게 바로
봉교의 연륜이라는 거다
이 자슥들아, 어? [홍익의 옅은 웃음]
내 말대로 민 봉교 보냈더니 일사천리로 결론 나는 거 봐
괜히 내가 거기 갔으면 어쩔 뻔했어?
(홍익) 양 봉교님 지혜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홍익과 시행의 웃음]
(시행) 자, 이제 이 아수라장은
서리 놈들 죗값으로 남겨 두고
우리는
주막으로 간다
(장군) 혹 양 봉교님이 쏘시는 겁니까?
그래, 오늘은 내 이 녹봉 거덜 나게 한번 죽어 보자고
[장군의 신난 함성] (치국) 예, 예!
[한림들이 저마다 환호한다]
[시행의 신나는 탄성]
(아란) 양 봉교님
(경묵) 뭘 따라와?
선진들끼리 오붓하게 술 마시는 자리인데
(은임) 예? 고생은 저희도 같이했는데요?
(시행) 아, 그럼 계속 고생해 서고 청소도 좀 해 놓고, 응
우리는
(함께) 주막으로 간다
[한림들이 환호한다]
[멀어지는 발걸음]
[아란이 씩씩거린다]
(아란) 어유, 진짜, 씨...
(박 나인) 마마, 예문관 권지
구해령 들었사옵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설레는 음악] (이림) 구해령?
(이림) 사관이 대군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 왔느냐?
입시할 시간도 아닌데 이리 불쑥?
(해령) 전 오늘 도원 대군마마가 아니라
승정원 이 서리를 보러 온 겁니다
인사를 해야 하거든요
(이림) 인사?
(해령) 감사 인사 겸 작별 인사입니다
어제는 도와주셔서 고마웠고
서리들 일은 잘 해결됐으니
이제 더 이상 예문관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서리
[아쉬운 한숨]
왜 아쉬운 기색이십니까?
어제 그리 고생을 하셔 놓고?
(이림) 고생이어도 좋았거든
사람들 속에 섞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고
내게도 할 일이 있고
그런 적은 처음이라 즐거웠었다 어제 하루
(해령) 그래도 마마께는 소설이 있지 않습니까?
금서 조치가 지나간 지도 꽤 되었고
제가 세책방 가 보니까 다른 염정 소설들도 많이 나왔던데
이쯤에서 매화가 짠 하고 돌아와야죠
기다리지 마라
이제 매화 소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니
예? 왜요?
쓰기 싫어졌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나도 궁금해
내가 왜 붓을 놓아야만 했는지
왜 다시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는지
설마...
어명입니까?
[멋쩍은 웃음]
너한테는 잘된 일 아니더냐?
내 글을 그리 싫어했는데?
그렇다고 너무 기뻐하진 말거라 서운해진다
아니요
저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마마께 소설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습니다
[아련한 음악] 그리 소중한 걸 잃어버리셨는데
제가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마마의 글씨를 본 적 있습니다
곧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니 써 주십시오
대군께서 신하에게 글씨를 하사하시는 겁니다
[피식 웃는다]
무엇을 쓰셨습니까?
한참을 마음에 담아 뒀던 시가 있는데
선물이라면 이게 좋겠다 싶어서
[호응하는 신음]
(해령) 아, 대체 무슨 시길래...
(이림) 잠깐!
한 번만 더 읽어 보고
[해령의 옅은 한숨]
[해령의 헛기침]
[옅은 한숨]
[아련한 음악]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시라 써 준 것이다
(이림) 다른 마음 있어서가 아니야
정말 내가 순수하게 이 시를 좋아해서...
마마, 아니, 제가 시 하나에 무슨 오해를 한다는 겁니까?
(해령) [한숨 쉬며] 자, 어서 보여 주십시오
씁, 마마
정말 수상하십니다?
이러니까 제가 더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이림) 내가, 내가 생각을 잘못한 거 같다
다른 글을 써 주마
혹시 좋아하는 문장 있으면...
[경쾌한 음악]
[당황하며] 다른 글 써 준대도?
(해령) 전 꼭 그걸 받고 싶다고요
자, 이리 주십시오
아, 마마, 진짜 치사하게 그러실 겁니까?
아, 진짜...
아, 아이, 진짜, 마마
빨리...
(삼보) 대군마마!
[삼보의 다급한 숨소리]
지금, 지금...
지금 주상 전하께서...
[긴박한 음악]
[삼보의 겁먹은 신음] [해령의 놀란 신음]
[애절한 음악]
(삼보) 도원 대군마마께서는 두창을 앓으신 적이 없사옵니다
(이림)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바마마
그 명을 거두세요
(이태) 아비이기 전에 이 나라의 국왕입니다
아비가 아니라서는 아니고요?
(해령) 제가 두창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대비 임씨) 지금 도원을 지킬 수 있는 건 그 아이밖에 없어
(익평) 모화라, 분명 대비가 모화라 했는가?
(사희) 대군마마를 보낸 건 저하가 아니십니다
무엄하다
(우원) 평양 감영에 계셔야 될 평안도 관찰사께서
왜 여기 해주에 내려와 계신 겁니까?
(승훈) 조정으로 올라간 장계는 모두 거짓입니다
저희 백성들을 살려 주십시오
(해령) 모르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이림) 지금 당장 평안도로 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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