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13
[비밀스러운 음악]
[서고장의 힘주는 신음]
(서고장) 응?
팀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찾아 볼 이가 있어서
옥황 회장님의 결재는 맡으셨습니까?
다른 사자의 명부 열람은 결재가 꼭 필요한 건가?
(서고장) 네, 개인 정보법은 주마등에서도 철저하니까요
내 명부가 좀 보고 싶은데
(서고장)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고장) [한숨 쉬며] 이상하네요
팀장님의 바로 직전의 삶은 보실 수 있으나
전전 생의 삶은 록이 걸려 있네요
록이 걸려 있다고?
(서고장) 흔한 일은 아닌데
이걸 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옥황 회장님뿐입니다
어째서?
회장님이 직접 하신 거니까요
(서고장) 전 그럼 이만
잠깐
(중길) 나 말고도 록이 걸려 있는 사자가 있는가?
잠시만요
(서고장) 한 명이 더 있네요
구련 팀장
[한숨]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달칵 열린다]
"주마등"
새로 발령받아서 왔습니다
전보윤입니다
(중길) 오랜만이구나
드디어 주마등의 직원이 된 것이냐?
저를 기억하십니까?
겉모습이 바뀌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감격한 숨소리]
제가 어렸을 때 죽어서 기억 못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너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야
난 인도한 모든 사람을 기억하니까
(보윤) 연수원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있으면
망자분들이 불편해하신다고
어른의 모습으로 있으라고 하더군요
근데 이 머리색을 불편해하지는 않으실까요?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중길) 혹
오늘이 그 사람의 기일인가?
네, 맞습니다
[한숨]
한 많은 삶의 끝에서
(중길) 너를 만나게 된다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터이니
잘 인도하거라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픽 웃는다]
(보윤) 팀장님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시라는 거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차분한 음악]
유복희 씨를 만나러 간다고? [새가 지저귄다]
(련) 네, 오래전부터
저희 리스트에 올라와 있던 사람인데
최근 들어 수치가 높아졌어요
[한숨]
위관 팀과 인도 팀은 떼어 내려야 떼어 낼 수가 없구나
이번 일은
인도 팀 신입 차사와 함께 하려무나
인도 팀이요?
왜 그래야 되는데요?
이영천 씨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될 거다
(옥황) 너희 팀은 자살 예정자를 구해야 하고
인도 팀 신입은
사망자를 인도하게 될 거야
[한숨]
그 신입이 인도할 사람은
최준웅의 전생과 관련된 자다
(련과 옥황) - 네? -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문이 달칵 열린다]
응, 왔구나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보윤) 와, 구련 팀장님이시군요
- 날 알아? - (보윤) 그럼요
주마등에서 제일 유명 인사시잖아요
(보윤) 신입 사원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신데요
악명이겠지
(련) 아무튼
알겠습니다
(옥황) 응
[문이 달칵 열린다]
[준웅이 중얼거린다]
[련의 한숨]
(련) 여기 인사들 해
인도 팀의 신입 차사
우리랑 일 진행 같이 할 거야
(준웅) 야, 신입이라니, 응?
[흥미로운 음악]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죠, 예?
[준웅의 헛기침]
(보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준웅) 아, 예, 그
예, 보윤 씨? 예
회사 생활이 좀 어렵긴 한데 그냥, 그냥
편하게 해요, 편하게, 예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요
네, 감사합니다
위기관리 팀에도 좋은 분들이 많네요
[보윤의 웃음]
[헛웃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일하자
네!
(륭구) '유복희, 91세'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남편과는 사별했습니다
음
별다른 문제 없이 유복하고
손자, 손녀와도 사이가 좋은데요?
그런데 왜…
그, 혹시 이번에 인도하실 분은 어느 분이세요?
"사자 명부"
(보윤) 이정문 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무거운 음악]
유복희 씨를 간절하게 만나고 싶어 해요
두 분이 어떤 관계이시길래…
[한숨]
(련) 유복희 씨
(륭구) 걱정 마세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륭구) 소녀상은 저희 팀원들이
깨끗하게 닦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한숨]
(복희) 오랫동안 찾고 있는
어린 시절 동무가 있어요
그저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라며
윤이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윤이가
위안부가 됐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어떻게 아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 손자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 중인데
(복희) 일제 강점기에 관심이 많아요
일본군 위안부 사진을 인쇄해서 모아 놓은 걸
우연히 보게 됐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 [복희의 한숨]
사진 속의 어린 소녀들 중
제 동무가 있더군요
몰라볼 수가 없었어요
내가 선물해 준 목도리를 하고 있으니까
생각지도 못했어요
윤이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을 줄은
그래서 소녀상을 볼 때면
우리 윤이가 생각나서
[비가 쏴 내린다] (복희)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서
비가 오면은 비 맞지 말라고 우산 씌워 주고
비 맞지 마
(복희) 나쁜 놈들이 낙서라도 하면
깨끗하게 지워 주고
그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복희가 훌쩍인다]
[복희의 한숨]
제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은
(복희) 두 분은
저승에서 오신 사자님들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다
(련) 어떻게 아셨어요?
[살짝 웃는다]
(복희) 이 나이쯤 되니 감이 발달했는지
남이 모를 법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리고 두 분의 기운부터가…
하지만 저희는
(련) 당신을 데리러 온 건 아닙니다
네?
사람들이 제 수명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희의 임무거든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준비를 하시면서
[놀란 숨소리]
(련) 남은 삶을 정리하고 계셨더군요
[놀란 숨소리]
그걸 어떻게…
윤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가요?
윤이
우리 윤이 살아 있나요?
(복희) 아니면은…
죽은 지 오래예요
[절망하는 숨소리]
(련) 여기 이분
[훌쩍인다]
이정문 씨를 만나 보시죠
지금까지
유복하게 남부럽지 않게 살아서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곳으로 윤이를 보낸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복희) 전 그분을 만날 자격이 없어요
윤이에게도 그분에게도 죄를 지었으니까요
더 크게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륭구)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이정문 씨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심전도계 비프음]
(련) 윤이를 기억하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힘겨운 숨소리] 아주 강한 의지로
살아 계시고 있어요
[놀란 숨소리]
만나 보시고 결정하시죠
[떨리는 숨소리]
[한숨]
(준웅) 아, 진짜, 속상하게
아니, 얼마나 미쳐야지 여기다 낙서를 할 수 있는 거예요?
한국인이 쓴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같은 편한테 맞는 돌이 더 아프니까
[준웅이 입바람을 호 분다]
[준웅이 손을 쓱쓱 비빈다] (보윤) 추우세요?
그러게 외투는 왜 벗어서
아, 그
(준웅) 조금 추워 보여 가지고
(준웅) 아, 근데 보윤 씨는
인도 팀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박중길 팀장님 좀 무섭지 않아요?
제가 박중길 팀장님을 처음 뵌 게
일제 강점기였는데
(보윤) 그때는 암담 그 자체였어요
나라가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짓밟혔으니까요
아, 근데 저승도 나라별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보윤) 맞아요
그때는 주마등도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일본 사자들의 웃음] [어두운 음악]
(일본 사자1) [일본어]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일본 사자2) 완전 똑같은데?
(일본 사자1) 그렇게 살고 싶었으면
대일본 제국에서 태어났어야지!
(일본 사자2) 그렇지 미련한 조센진들 [일본 사자1의 웃음]
[한국어] 어머니와 누이가 보고 싶습니다
(아이) 고향 땅을 한 번이라도 밟게 해 주세요, 제발
(일본 사자1) [일본어] 시끄러워! [아이의 신음]
(여자1) [한국어] 뭐 하는 겁니까? 아직 어린 아이를
왜 우리가 일본 저승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일본 사자1) [일본어] 닥쳐!
나라도 없는 놈들에게
고향이 어디 있고 저승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조센진들, 버르장머리하고는…
(남자1) [한국어] 얼어 죽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왜놈들아!
[일본어] 벌레만도 못한 조센진이 제국의 사자를 모욕해?
(일본 사자1) 죽어서까지 고통을 겪고 싶은 게냐?
[저마다 놀란다]
[한국어] 왜 우리가
죽어서까지 너희를 따라가야 되냐고!
[일본어] 그래
(일본 사자1)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마
모두 영혼까지 베어 주마!
[기합] (중길) [한국어] 멈추거라!
[긴장되는 음악]
(일본 사자1) [일본어] 웬 놈이냐!
(일본 사자2) 잠깐! 저자는 망자가 아니다!
(일본 사자1) 망자가 아니라니?
[한국어] 조선 저승 인도 관리부의 차사 대장
박중길이다
(중길) 불필요한 싸움은 원치 않으니
저들을 순순히 내놓거라
[일본어] 웃기지 마!
(일본 사자1) 너희들의 나라는 이제 없다고!
[사자들이 소란스럽게 싸운다]
[일본 사자1의 기합] [일본 사자1이 놀란다]
[한국어] 그대들의 수장에게 전하라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중길) 조선의 망자는 조선의 사자가 데려갈 것이며
더 이상의 관용은 없을 거라고
비키거라
[칼이 달그락 떨어진다]
[중길의 거친 숨소리]
[탁]
조선의 영혼은 나를 따라오너라
[저마다 기뻐한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에요
그분 때문에 차사가 됐거든요
[호응한다]
그런 분이 왜 우리 위관 팀은 싫어하실까요?
뭐, 글쎄요
그분 나름의 사정이 있겠죠?
[입소리를 쯧 낸다]
이쪽입니다
[긴장한 숨소리]
[한숨]
[심전도계 비프음]
[복희의 걱정스러운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복희의 떨리는 숨소리]
[한숨]
[옅은 신음] [복희의 떨리는 숨소리]
[정문의 옅은 신음]
[정문의 옅은 신음]
[무거운 음악]
[놀란 숨소리]
(정문) [힘없는 목소리로] 윤이…
윤이 고향 친구분 맞죠?
하, 고마워요
내 이름은
이정문입니다
기다렸어요 [한숨]
(정문) 어
윤이가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고향에 친한 언니가 있었다고요
제가 윤이를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당신이요?
네
[한숨]
(정문) 이리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신 같은 눈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몇 안 됐습니다
[한숨]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죄를 지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사정을 말해 봐야 변명에 불과할 텐데…
[한숨]
아닙니다
(정문) 자기들이 지은 죄를 감추려고
그 흔한 변명 한마디를 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문의 한숨]
괜찮아요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한숨]
(어린 복희) 어디 한번 볼까? [윤이의 기대하는 소리]
- (어린 복희) 짜잔 - (윤이) 언니 것처럼 나오려나 [윤이와 어린 복희의 감탄]
(복희) 윤이는
제 친자매와 다름없던 동무였습니다
한 살 터울이었던 저와 윤이는
(복희)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어요
집안 형편이 보다 유복했던 제가 학교에 다녀오면은
늘 오늘은 뭘 배웠냐며 묻고는 했죠
아
우리들 중 윤이가
유일하게 일본어를 알았어요
(정문) 그게 다 당신 덕분이었군요
비극의 시대였지만
철모르던 윤이와 저는 행복했어요
(복희) 함께 웃고 떠들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새가 지저귄다] - 요렇게 해서 요렇게 - (어린 복희) 그렇지, 그렇지
[잔잔한 음악] - 그리고 - (윤이) 응
- (윤이) 오 - 이거는 이렇게
- (윤이 부) 윤이야! - (윤이) 아
(윤이) 어? 아빠! [윤이의 웃음]
(윤이 모) 복희 왔구나?
[윤이가 반가워한다] - 안녕하세요 - (윤이 모) 어
(윤이 부) 감자 좀 캐 왔는데 삶아 줄게
좋아 [사람들의 웃음]
(윤이 부) 그래
- (어린 복희) [놀라며] 맛있겠다 - (윤이) 맛있겠다 [윤이와 어린 복희의 웃음]
- (어린 복희) 으, 뜨거워, 으 - (윤이) 어유, 뜨거워
(어린 복희) 으, 뜨거워!
- (윤이) 아, 뜨거워 - 윤이 한번 먹어 봐
- (윤이) 어 - 자, '아'
(어린 복희) 어때, 맛있어? [긍정한다]
[함께 웃는다] 그렇게 맛있어?
언니, 먹어 봐
(복희) 하지만
그렇게 평화로웠던 날도 잠시 [함께 웃는다]
윤이 아버지께서 몸져누우셨습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셨죠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서 한 광고를 보게 됐습니다
윤이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어린 복희) 일본에 있는 공장에 취업도 시켜 주고 [윤이가 호응한다]
집도 제공해 주고 또 돈도 많이 준대 [윤이의 탄성]
키노시타 선생님께도 여쭤봤는데 괜찮은 곳이라 하셨어
정말? [어린 복희의 웃음]
고마워, 언니
(어린 복희) 이 정도 가지고 뭘
- 여기 보면은 - (윤이) 응
(어린 복희) '집 제공해 준다' [윤이가 호응한다]
[어린 복희가 설명한다] (복희) 바보같이 아무 의심 없이
윤이에게 그런 제안을 했어요
이제 이거 줘, 내가 들게
[한숨]
(윤이) 어?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이거 언니가 제일 아끼던 거잖아
[픽 웃으며] 너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어린 복희) 배고플 땐
언니가 준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이 벌어서 꼭 돌아올게
[한숨]
보고 싶을 거야
나도
[울먹이며] 잘 지내야 돼
[윤이가 살짝 웃는다]
(복희) 시간이 지나
(복희) 해방이 되고
또다시 전쟁을 겪고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까지 왔습니다
운이 잘 풀려 순탄히 잘 살아왔죠
막연히
윤이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생각했어요
(영상 속 학순) 말하기가 너무 너무 벅차서
말을 못 하겄어요
뭐가 뭔지도 몰르고
강제로 끌고 들가 갖고
자기 욕구만 채울라고 그냥 발가벳기 갖고
자기 마음대로 거시기 하다가…
아니, 저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할미는 그 시절에 살았어도
저런 걸 들어 본 적이 없어
- 할머니 - (복희) 어
그렇지 않아요
(복희) 응?
아…
(복희) 어느 위안부 피해자가 용기를 내 [무거운 음악]
세상에 고백했을 때에도
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논문 때문에 모아 둔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사진에서
[놀란다]
윤이를 발견했습니다
[울먹인다]
그날부터 저는
[복희 손자가 말한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아휴, 세상에
[마우스 조작음] (복희) 그렇게 진실과 마주하게 되니
죄책감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윤이가
[울먹이며] 그렇게 모진 수모를 겪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도 전부
저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복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윤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요
[복희가 훌쩍인다] [호응한다]
(정문) 윤이는
참 밝은 아이였어요
[일본군이 저마다 대화한다]
[한숨]
(정문) 언제나 희망을 놓지 않던 아이였죠 [잔잔한 음악]
(윤이) 이쁘다
(정문)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분명히 봄은 온다고
늘 밝게 웃으며 말하던 아이였어요
[어두운 음악]
(어린 정문) 이상한 곳 아닐 거야
그래, 3년만 일하면 돼, 3년만
[탁탁 물어뜯는 소리]
(소녀1) 저 안 갈래요 저 내려 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안 될 거 같아요
저 엄마 보고 싶어요!
(소녀1) 감사합니다
[소녀1이 털썩 쓰러진다]
[총성] [어린 정문의 비명]
[어린 정문의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음악]
[일본어] 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코웃음]
(정문) [한국어] 나도
트럭에 탄 아이들도
우리가 가는 곳이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는 거를
직감했습니다
[소녀들의 비명] [소란스럽다]
[문소리가 탁탁 난다] (일본 군인1) [일본어] 이 녀석, 빨리 움직여!
들어가! [어린 정문의 거친 숨소리]
이봐
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정문) [한국어] 그들은 옷을 갈아입히고
긴 복도를 따라 있는 방에다
한 명씩 집어넣었죠
[통곡한다]
[가슴을 탁탁 친다]
[소란스럽다]
[일본군의 탄성]
[일본군의 웃음]
(일본 군인2) [일본어] 굉장했어!
[개울물이 졸졸 흐른다]
[한국어] 왜?
무슨 일 있어?
(소녀2) 이상해
나 달거리를 안 해
[어두운 음악]
[문이 벽에 쿵 부딪는다]
(일본 군인3) [일본어] 팔 걷어! [달그락거리는 소리]
천황 폐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군인들이 죽어 가고 있다
조선인을 치료할 의무는 없다
(정문) [한국어] 모두가 그 아이를 걱정했지만
[일본 군인3이 일본어로 소리친다] 다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괜히 간호하다가 맞기라도 할까 봐
공포부터 앞서더군요
우리는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으니까요
하반신만 멀쩡하면 [밤새 울음]
죽기 직전까지 군인을 받게 하고
죽으면은
야산에 갖다 버리면 되는 소모품
[잘박거리는 소리]
(소녀2) 그만 가, 들키면 어쩌려고
(정문) 그때 [윤이가 말한다]
먼저 나서서 그 아이를 간호하기 시작한 아이가
윤이였습니다
(일본 군인4) [일본어] 어이, 거기 너! [문이 탁 열린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윤이가 털썩 쓰러진다] [일본 군인4의 성난 숨소리]
죽고 싶어? 어디서 허튼수작이야!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윤이) 번거로우실 것 같아
[잔잔한 음악] 제가 대신 하는 거예요
혹시 이 아이가 죽는다면
제가 처리해 놓을게요
[픽 웃는다]
(정문) [한국어] 그 뒤로도
군인에게 간호를 들킬 때마다
매 맞기가 일쑤였지마는
윤이는 간호를 멈추지 않았어요
혼자 하면 힘들어, 같이 하자
(정문) 결국 다른 아이들도
이내 하나둘 나서기 시작했지요
[어두운 음악]
[발걸음이 울린다] [심장 박동 효과음]
(어린 정문) 오지 마
(일본 군인5) [일본어] 야
[문이 탁 닫힌다]
네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알아?
그건 네가 조선인이기 때문이야
[일본 군인5의 비열한 웃음]
[놀란 숨소리]
[무거운 음악]
[거친 숨소리]
(정문) [한국어] 꿈에서도
일본군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했습니다
[떨리는 숨소리]
(윤이) 정문 언니
언니
언니!
[어린 정문과 윤이의 힘주는 신음]
(어린 정문) 내놔
내놓으라고!
[나뭇가지가 툭 떨어진다] [어린 정문의 놀란 숨소리]
[무거운 음악]
너 뭐야?
왜 날 방해해?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대체 네가 뭔데!
[흐느끼며] 나 진짜 살고 싶지가 않다고
[가슴을 탁탁 친다]
(정문) 그 별거 아닌 행동이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어린 정문) 짜증 나
이번엔 진짜 성공할 줄 알았는데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미안해, 언니
(정문) 제 한 몸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며 챙기는 것도
죽으려던 나를 살린 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죽지 마
(윤이) 짐승만도 못한 삶이라도
그래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참고 기다리다 보면
분명 언젠가는…
(어린 정문) 쓸데없는 희망 품지 마
너나 나나 병이라도 걸리면
총 맞아 죽기밖에 더 해?
[한숨]
[어린 정문의 한숨]
(윤이) ♪ 아리랑 아리랑 ♪
♪ 아라리요 ♪
(정문) 군인에게 맞아 팔이 부러졌는데도 [윤이가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을 부르며 웃는 모습을 볼 때는 [잔잔한 음악]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싶기도 했죠
(윤이) 언니
이게 뭔지 알아?
치, 보여 줘야 알지
(윤이) 짠, 봉선화씨
복희 언니라고
아주 친한 언니랑
봉선화 물 들이면서 놀았던 기억이 나서
이거 심으려고?
그러고 싶은데
걸리면 또 맞겠지?
[웃음]
(어린 정문) 으이그, 이 바보야 [윤이가 놀란다]
고향에 돌아가면 아주 질리도록 심을 수 있는데
뭘 아쉬워해
잘 갖고나 있어
(정문) 하지만 [웃음]
알았어
(정문) 그런 윤이의 희망에 전염되어 버린 건지
어느 순간부터 [웃음]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게 되더군요 [웃음]
[일본군의 웃음] [차분한 음악]
(일본 군인6) [일본어] 이봐
(일본 군인7) 너도 예쁘네
[일본군의 웃음]
(일본 군인6) 야 뭔가 아쉽단 말이야
(일본 군인7) 그 정도면 됐어
(일본 군인6) 내일 다시 해야겠어 이 정도로는 안 될 거 같아
(일본 군인6과 일본 군인7) - 다음엔 그림을 그려 볼까? - 그래
[일본군의 웃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 정문의 한숨] [윤이가 흐느낀다]
(어린 정문) [한국어] 너도 울긴 우는구나?
그만 울고 거기 앉아
언니
빨리
[윤이의 힘겨운 숨소리]
[윤이가 훌쩍인다]
나도 당해 봐서 아는데
(어린 정문) 그냥 두면 곪아
닦아 줄게
언니
[당황한다]
(정문) 내일이 되면은 [어린 정문이 말한다]
누군가 우리를 구하러 와 주지 않을까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을 품고
힘든 나날을 버텨 냈습니다
[확성기에서 일본어가 흘러나온다]
(어린 정문) 진짜야?
(윤이) 응, 내가 들었어
언니도 알잖아
요즘 들어 다들 심상치 않다는 거
군인들이 증거 인멸 하려고 우리를 다 죽일 거야
[어린 정문을 탁 잡으며] 그러니까 도망가자
지금 아니면 진짜 죽어
[문들이 삐거덕 열린다]
[어두운 음악]
(윤이) 빨리 나가자
(일본 군인8) [일본어] 이쪽이다
절대 놓치지 마라
(일본군) 네
(일본 군인9) 이쪽에는 없어
(일본 군인10) 찾아
[일본 군인11이 일본어로 말한다] (일본 군인12) 이쪽이다
[한국어] 언니
내가 가서 시간 끌게
(윤이) 먼저 가, 응?
(어린 정문) 안 돼 안 돼, 윤이야, 안 돼
같이 가
됐어
이러다 잡혀
(윤이) 나밖에 일본어 못 하잖아
길 잃었다고 거짓말 칠 거야
그러니까 먼저 가
(어린 정문) 윤이야
[잠방거리는 소리]
[걱정스러운 숨소리]
[우지끈거리는 소리]
(윤이) [일본어] 저기
[무거운 음악] (일본 군인13) 이거 봐라 조선 여자애 아니야?
(윤이) 제가 길을 잃었어요
살려 주세요
그럴까?
(일본 군인13) 이봐!
(정문) [한국어] 우리는…
나는…
[일본 군인13의 힘주는 신음] [윤이의 비명]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퍽퍽 때리는 소리]
[윤이의 힘겨운 신음] [흐느낀다]
(소녀3) 언니, 빨리 가자
(정문) 살고자 하는 욕망이 대체 뭔지
두려움이 대체 뭔지
우리는 그대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정문) 아…
아, 그…
나 좀 일으켜 줄 수 있을까요?
아, 네
[레버 조작음]
[옅은 신음]
[복희의 힘주는 신음] [정문의 옅은 신음]
(정문) 아유
고마워요
[정문의 옅은 신음]
[한숨]
[무거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정문) 신발이 다 해지도록 오랜 시간을 걸어
도착한 고향 집에는
(어린 정문) 엄마
아빠
(정문) 아무도 없었습니다
[울먹거린다]
부모님은
제가 끌려간 곳을 알게 된 후
병을 얻어 [흐느낀다]
세상을 떠나셨죠
[사람들이 대화한다]
(여자2) 뻔뻔스러워, 그냥 아주
(남자2) 어린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유 [남자2가 혀를 쯧쯧 찬다]
(남자3) 아니 아, 여기가 어디라고 와? 하, 참
(여자3) 아유, 뻔뻔해라, 뻔뻔해!
(정문) 고향 사람들에게 받는 경멸의 눈빛
비수처럼 날카로웠던 말들은
일본군의 발길질보다도 아프더이다
내 과거를 누가 알까 봐 두려워
내 평생을 혼자 살았습니다
(정문) 그렇게 묻어 두고
숨어서 살았어요
(영상 속 남자4) 그 이후로는 이제 혼자 쭉?
(영상 속 학순) 예
그짓말하고는 못 살아요, 나는 솔직해요
나는 이렇게 위안부로 갔던 사람이라고
(정문) 처음에는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왜 세상에 우리를 알리나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에
또다시 상처를 받을 것 같았거든요
(영상 속 남자5) 일본 정부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영상 속 사람들)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정문) 나를
우리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수없이 많아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울먹인다]
더는 내 과거를 부끄러워하지도
감추지도 않기로요
[정문이 훌쩍인다] 왜냐하면은
[문이 철컥 여닫힌다] 나는 피해자니까요
[잔잔한 음악]
[한숨]
내가 [복희가 훌쩍인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정문)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을 하고
스스로 명백히 밝히는 거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거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우리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정문) 뭐 '유감이다', '위로한다'
이렇게 에둘러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딴 식으로
수백만 번을 사죄를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훌쩍인다]
나는 내 목숨이 살아 있는 한
(정문) 그 사실을 내 끝까지
[정문의 힘겨운 숨소리]
(정문) 밝히는 목소리를 낼 겁니다
그것만이
희생당한 우리 소녀들
[일본 군인13의 힘주는 신음] [윤이의 비명]
[흐느낀다]
[퍽 때리는 소리] [윤이의 힘겨운 신음]
[총성] 윤이를 대신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한숨]
(정문) 유복희 씨
내가 아는 윤이는요
만약에 복희 씨를 만난다면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겁니다
[흐느낀다]
그리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
네
(정문) 그러니 이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한숨]
어
[복희가 훌쩍인다]
[정문의 힘겨운 숨소리]
(준웅) 보윤 씨, 무슨 일 있어요?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은데
이제 가실 시간이 되었어요
(보윤) 마지막이라도 편히 가셨으면 하는데…
복희 할머니도 걱정이네요
(준웅)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련) 그리운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 주면 돼
(준웅) 그게 누군데요?
안 됩니다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하는 건…
(련) 알아
사칙 위반이라는 거
근데 죽은 자가 아니라
사자라면?
[차분한 음악]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련)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예?
저를요?
[잔잔한 음악]
오늘 밤 이정문 씨를 인도할 사자입니다
(륭구) 그 전에
유복희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요
복희 언니
[복희의 의아한 숨소리]
[웃음]
(보윤) 오랜만이야
(복희) 아, 서, 설마
너 윤이니?
맞아, 윤이
[놀란 숨소리]
(보윤) [울먹이며] 맨날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전 씨 아저씨 딸 윤이
[놀라며] 아니
네가 어떻게…
[일본 사자1의 기합] [일본 사자1이 놀란다]
(중길) 그대들의 수장에게 전하라
조선의 망자는 조선의 사자가 데려갈 것이며 [긴장되는 음악]
더 이상의 관용은 없을 거라고
비키거라
[차분한 음악]
조선의 영혼은 나를 따라오너라 [칼을 쓱 넣는 소리]
[저마다 기뻐한다]
[밤새 울음]
(윤이) 차사님
왜 그러느냐?
(윤이) 저 같은 어린아이도
차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래야만 하는 연유가 있느냐?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을 텐데
[살짝 웃는다]
환생을 하면 언니들을 잊어버리겠죠?
그러고 싶지 않아요
(윤이) 영원히 기억하고
언니들의 마지막을 제가 인도해 주고 싶어요
(중길) 그대 정도의 총명함이라면
차사 시험은 무리 없이 통과할 거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네
(윤이) 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윤이가 살짝 웃는다]
[잔잔한 음악] [복희의 떨리는 숨소리]
역시 언니는 날 알아볼 줄 알았어
[흐느낀다]
(복희) 널 다, 다시 만나다니…
미, 미, 미안해, 미안해
윤아,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날 용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흐느낀다]
난 언니 용서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언니를 용서할 필요가 없으니까
(보윤) 잘못한 건 언니가 아니잖아
언니가 행복하게 살아 줘서 진심으로 기뻐
그러니까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잘 살아 줘
이제 정문 언니 만나러 가자
(복희) 응
최준웅
(련) 너도 들어가
들어가 보면 알아
네
[한숨]
절 데불러 온 사자님이시죠?
(준웅) 네
내가 어떻게 지금 거길 가요?
(정문) 내 이 두 눈으로
그놈들이 사죄하는 거를
똑똑히 지켜보겠노라고
먼저 간 언니들, 동무들
우리 윤이한테 약속을 했는데요
그리고 거기 가면
저승에서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요
아,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혼자 짊어지시지 않으셔도 돼요
[차분한 음악] (준웅) 할머니께서 짊어지신 짐
앞으로 살아갈 저희가
대신 짊어질게요
(정문) 그러고 보니
그분을 똑 닮았네요
네?
(정문) 몇십 년이 흘러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긴장되는 음악]
[호루라기가 삑삑 울린다]
(일본 군인14) [일본어] 거기 서, 저쪽이다
(일본 군인15) 여자들을 놓치지 마!
(일본 군인16) 번거롭게 할래? [소녀들의 비명]
(일본 군인15) 간신히 잡았다 이 못된 게!
(일본 군인16) 이 자식이?
[일본 군인16의 힘주는 신음] (소녀4) [한국어] 잘못했어요!
[소란스럽다]
[일본어] 조센진
[일본 군인13의 기합] [총성]
[긴장되는 음악] (일본 군인15) 웬 놈이냐!
[독립군의 기합]
[소란스럽게 싸운다] [칼이 쨍쨍 부딪는 소리]
[총성]
[바람이 솨 분다] [어린 정문의 떨리는 숨소리]
[무거운 음악]
(독립투사) [한국어] 죄송합니다 저희가 많이 늦었습니다
가시죠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안도하는 숨소리]
(어린 정문) 감사합니다
저희를 구해 주셔서
나라를 위해 싸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린 정문이 흐느낀다]
(독립투사) 이깟 군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진 않습니다
여러분들처럼 강인하게 버텨 주신 분들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는 거죠
[흐느낀다]
"조센삐"
가시죠
[훌쩍인다]
그분도 우리를 보고
(정문) 지금 사자님처럼 그렇게 울었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기억이 안 나서
(준웅) 근데 제가
이렇게 소리칠 거예요
[잔잔한 음악]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그러니까 힘드셨던 삶
이제 더는 꽉 붙잡고 계시지 않으셔도 돼요
다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하게 쉬세요, 할머니
(정문) 아…
[준웅이 훌쩍인다]
윤이예요, 할머니
(준웅)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정문) 어?
윤이라니요?
아니, 저, 저 목도리는…
[흐느끼며] 저, 정문 언니
(정문) 어?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해
(보윤) 그때 난 얼굴도 매일 부어 있었고
사자가 된 후에 어른의 모습이 되었으니까
정문 언니
이거 기억나?
내 몸에 이 낙서들이 새겨진 날
그때 나 혼자 울고 있을 때
(어린 정문) 너도 울긴 우는구나?
나도 당해 봐서 아는데
그냥 두면 곪아
닦아 줄게
[보윤이 흐느낀다]
(보윤) 언니가 핏방울 하나하나
깨끗하게 닦아 줬잖아
어, 그래, 어
(정문) 우리 윤이가 맞구나
아이고, 우리 윤이 맞아, 그래
[정문이 흐느낀다]
미안하다
그때 널 그렇게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흐느낀다]
얼마나 모진 꼴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나는…
나 내 선택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싸우느라고
힘들었지?
많이들 도와줬어
(정문) 언니들, 동무들
윤이 네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힘든 줄 모르겠더라
그때나 이때나
우리는 함께했지?
맞아
(보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지
언니
준웅 씨 말대로 혼자서 짐 다 짊어질 필요 없어
다 내려놔도 돼
이제는 편히 쉬어도 돼
[복희가 오열한다]
복희 언니, 그만 울어
언니는 아직 시간 많이 있으니까
그때 웃으면서 다시 보자
언니
가자, 이제
따뜻한 봄이 있는 곳으로
[준웅이 흐느낀다] [정문의 옅은 숨소리]
"우울 수치"
[태블릿 피시 조작음]
(남자6) 할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여자4) 힘드셨던 기억 다 잊으시고
좋은 곳에서 행복하세요
[한숨]
(남자7) 에라이 [음 소거 효과음] *신들아
위안부들 싹 다 자기 발로 간 거야
뭐야, 이 미친놈들
(남자7) 노망난 노인네 증언만 믿고
무슨 진정한 사과 어쩌고, 어?
(준웅) 미친 새끼 아니야, 쯧
(남자7) 온갖 행사 동원해 이용해 먹고
노인네들 죽으면 또 시체 팔이, 감성팔이하고
나라 꼴 잘 돌아간다
(남자8) 정치인들 심란하겠네
써먹어야 되는데 하나둘씩 죽어 나서
(륭구) 한심한 인간들
됐어, 이런 것들은 여기 와서 벌받을 거야
[달그락거리는 소리]
[훌쩍인다]
[차분한 음악]
꼭 기억할게요
꼭
[새가 지저귄다] (옥황) 그대에게
[잔잔한 음악] 미안하고 또 고맙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와 줘서
하지만 아직 이승의 숙제는 풀리지 않았다
남겨진 이들이 걱정이 되지는 않던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은
세상의 망각과 진실의 왜곡을 원하겠지요
(정문) 하지만 괜찮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고 있는 한
우린 절대 지지 않을 테니까요
(옥황) 그래
진실은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네
전보윤 차사에게 특별한 휴가를 주었네
(옥황) 모두 함께 고향에 다녀오면 좋겠지
[기쁜 숨소리]
[살짝 웃는다]
[소녀들의 반가운 숨소리]
- (윤이) 언니! - (소녀3) 정문 언니!
(정문) 어, 윤이야!
[함께 기뻐한다]
근데 너희들 살 좀 올랐다?
- (윤이) 아, 뭐래, 진짜 - (소녀2) 어디가 쪘다는 거야 [소녀3이 툴툴거린다]
(정문) 이뻐, 이뻐
[소녀들의 애틋한 소리]
(윤이) 오랜만이야
그럼 나도 한번 볼살 올리러 가 볼까?
[윤이의 탄성] - (소녀2) 가자, 가자 - (정문) 가자
(정문) 조심조심
(윤이) [웃으며] 가자 [소녀들의 웃음]
[새가 지저귄다] (정문) 이쁘네
청혼하는 거야? [소녀들의 웃음]
이게 뭐야, 너무 못했는데?
(소녀3) 아, 이쁘게 해 줄게
(정문) 너 맨날 말만 그러더라 [함께 웃는다]
(윤이) 가만있어 봐
- (소녀3) 어, 됐어, 됐어 - (윤이) 푼다, 이제
(윤이) 아, 아, 가만히 있어 봐 [함께 웃는다]
(정문) 알겠어, 도와줄게
- (윤이) 짠! - (소녀2) 완전 잘했다, 근데
[소녀들이 감탄한다] (정문) 이게 뭐야
[즐겁게 대화한다]
하지만 여기가 남았어 [함께 웃는다]
[감성적인 음악]
(준웅) 팀장님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절대 말 안 해 주실 거 같아서요
(옥황) 련이의 상처를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구나
[소란스럽다] (남자9) 국경을 넘은 오랑캐들이 노략질을 하니
도와 달라는 전갈입니다
(련) 살아야 한다
살아만 있으면 반드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야
(남자10) 들었어? 종사관 나리 안방마님 얘기
(남자11) 오랑캐 놈의 씨를 가졌대
고작 너 하나 목숨이
(여자5) 가문의 명예보다 값지겠느냐
선택하거라
명예롭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남의 손에 죽을 것인지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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