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26
[진지한 음악]
[심각한 음악]
[큰소리로] 지안, 지안아!
[태수가 숨을 가쁘게 쉰다]
[태수가 더듬으며] 사,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재성이 태수를 친다] [태수의 신음 소리]
[더듬으며] 연... 연락을
연락을 왜 안 했어?
살아 있었으면 살아 있었다고 연락을 좀 하지
이놈의 자식아
[기운 없이] 죄송해요
연락이라도 한 번 하지
난 매일 너한테 전화하고
문자하고 음성도 남기고 그랬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한숨 쉰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어디 있었어? 이 동네에 쭉 있었던 거야?
그런 얘기 안 하고 싶어요
죄송해요
지, 지금은 그럼 어디에 있어?
왜 이 동네 있는 거야?
이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을 했다고?
그럼 서울에 쭉 있었던 거야?
네
[낮게 한숨 쉰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빠... 아빠가
잘못했다
(태수) 너한테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보내 놓고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고
시간만 되돌릴 수 있으면
[깊은 한숨 쉰다]
너 그렇게 떠나보내 놓고
수도 없이 후회했어
아버지
(태수) 어, 그래
(태수) 너는
(태수) 아무 잘못이 없어
우리한테 속아서 갔잖아
그런데 왜 그 짐을 혼자서 다 지려고 그래
알았으면 알았을 때 말을 하지
(태수) 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그래
[슬퍼서 울컥하며]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아버지 그만요
어, 어, 그래
일단 집에 가자, 가서
집에 안 가요, 저
들어 가기 싫어요
뭐?
혼자 지내고 싶어요 지금이 좋아요
집에를 안 간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혼자 지내도 될 나이라고 생각해요
지안아, 저, 지안아 아빠
이제 사업 시작했어
(태수) 첫 계약도 따내고
저, 저, 돈도 받았어
첫 단추 잘 끼었으니까 아빠만 열심히 하면
너 이제 고생 안 시킬 수도 있어
그래서가 아니에요
어, 그래, 그래
엄마, 아버지 얼굴 보기 힘들겠지
(태수) 얼마나
화나고 실망했겠냐 네가
그래도
풀어야지
화내고 분풀이를 하더라도
얼굴 보고 풀어야지
그러면서
엄마, 아버지 속 얘기도 한번 들어주고
가족인데
응?
너한테
속죄할 기회는 한 번은 줘야지
제가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풀어야 하는 거예요?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같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같이 있기가 힘든데?
(지안) 엄마, 아버지 얼굴을
제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황하며] 그, 그래도
기회는 한 번은 줘야지
기회는 줘야지
저는 인제 혼자 있고 싶어요 가족 없이
(지안) 죄송해요
그냥 당분간
저 좀 내버려 두세요
전화는, 전화는
받을 거지?
저 핸드폰 안 써요, 이제
[구슬픈 음악]
[낮게 길게 한숨 쉰다]
서지안이
아직 연락이 없다고요?
그날 이후 사라져서 아무도 소식을 모른대
[놀란 듯 숨을 몰아쉰다]
사람 써서 찾아봐야겠어
뭐하러요?
(도경) 그럼 라이프 스타일 숍 론칭 준비는
기획 팀에서 전담하는 겁니까?
(직원) 네
레이아웃 정해지면 다시 보죠
(도경) 서지안 씨가 다닐 만한 좋은 회사 공채가 있어서
(도경) 서지안 씨 대신 지원서를 냈습니다
(도경) 서지안 씨한테는 말했는데
(도경) 핸드폰이 없다고 해서 선우혁 씨 번호를 적었습니다
(도경) 혹시 서류 전형 합격 전화가 오면
(도경) 서지안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도경) 덧붙이자면
(도경) 꼭 가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에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깊은 한숨]
(혁) 알겠습니다
(혁) 연락 오면 전달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바로 답을 해?
[혀를 찬다]
이 자식 이거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거 맞아?
지안이 옆에 두고 싶어서 전달 안 하는 거 아니야?
[기계 작동 소리]
[잔잔한 음악]
[현관문 닫히는 소리]
[구슬픈 음악]
[기계 작동 소리]
(선태가 큰소리로)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소장) 어
[사포질 소리]
(소장) 말단!
자네도 퇴근해
아...
네
[사포질 소리]
(혁) 쉴새 없이 일을 주세요 잡생각 안 들게
잠깐
이, 저, 사포질 좀 해주겠나
(지안) 네
- (지안) 이건 뭐예요? - (소장) 응, 좌식 화장대야
응, 내가 심심풀이로 완제품 내는 게 몇 개 있거든
(소장)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네
[방의 불을 켠다]
(미정) 이 양반이
웬일로 일찍 잠을 다 자네
(미정) 무슨 옷을
이렇게 개어 놓고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지태 아버지
[안타까운 목소리로] 어지간히 피로가 쌓였나 보네
(미정) 어우, 지태야
아버지 한 번 들여다봐 줘
깨지 않고 계속 주무시기만 해
(지태) 언제부터 주무시는데요?
어제 퇴근하고 왔더니 벌써 주무시고 계셨어
(수아) 그러실 만 하죠 피로 많이 쌓이셨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저렇게 맥 없이 오래 자는 양반이 아니거든
아휴, 겨우 하룻밤이에요 쉬게 두세요
아, 알았어 아침 먹어
생각 없어요
(수아) 다녀 오겠습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
아침 차렸는데...
[한숨 내쉰다]
(희) 그만하고 커피 마시자
(혁) 어
[숨을 후 내쉬며 앉는다]
[커피 마시며] 음, 좋다
지안 씨는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곁을 안 주더라
내버려 둬
그러는 게 좋긴 한데
너도 신경 안 쓰던데
그러기로 약속했거든
그래
어떨 땐 그 누구의 관심도
버거울 때가 있어
[가게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혁) 아, 맞다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아니요, 없는데요
그럼 내가 밥 사기로 한 거 오늘 어때요?
[수줍게] 아, 좋아요
(혁) 그럼 먹고 싶은 거 정해놔요
점심 시간에 빵집 앞으로 갈게요
[활짝 웃는다]
[지수가 신나서] 방장님!
저 오늘 점심 나가서 먹어요 선우 실장님이 그때 그랬잖아요
밥 먹기로 한 거?
[아주 신나서] 네, 그거 오늘 먹재요
(남구) 좋겠네
(남구) 몇 개월 만에 겨우 밥 한 끼 같이 먹게 돼서
[들뜬 목소리로] 뭐 먹을지 저보고 정하래요 아, 뭐 먹지?
오래 걸리는 거
네?
(남구) 밥 먹고 올 때까지 젤 시간 많이 걸리는 거 먹으라고
[부끄러워하며] 어머! 아이
거기 사장님은 어떠시던가?
아, 별로요
별로야?
저한테 대하시는 게 별로라고요
근데 방장님은 사장님 언제 좋아하시게 된 거예요?
[숨을 내쉬며] 1998년
[옛스러운 음악]
3월 5일에
네?
내 이름이 왜 강남구인지 알아?
부모님이 엄청 재밌는 분이셨나 봐요
몰라
재밌는 사람인지
무서운 사람들인지
왜요?
(남구) 내가 살던
보육원 원장님 성이 강 씨였어
그래서 내 이름은 강남구
그 뒤로 강서구, 강동구
나보다 먼저 들어온 형은 강원도더라고
어머
보육원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가야 하거든
(남구) 생활 자금 300만 원 받아가지고
학교 옆 호떡 팔던 아줌마한테
반죽을 배웠지
(남구)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딱 5번 먹어봤어
기가 막히게 맛있더라고
5번요?
야, 이 호떡 팔면 대박 나겠다
(남구) 그러고선 간식거리는 여대생들이 좋아한다길래
무작정 미라 여대 앞으로 갔어
- (손님) 호떡 하나 주세요 - (남구) 아, 예
- (남구) 여기 있습니다 - (손님) 고맙습니다
[당황해서] 아이구
[계속 당황하며] 아유
(남구) 분명히 나는 맛있었는데
(남구) 왜 서울 사람들은 맛 없어 하지
(남구) 날마다 본전도 못 챙기고
(남구) 파리만 날리는데
(여학생1) 저희 호떡 세 개 주세요
- (남구) 아, 네네 - (희) 아, 춥다
(남구) 어떤 여대생이 친구들하고 왔어
(여학생2) 아 호떡 맛이 왜 이래?
[여학생들이 궁시렁댄다] [희가 그만하라며 눈치 준다]
(희) 호떡 주세요
(남구) 아 그러더니 3일을 계속 와서 호떡을 먹는 거야
잘 먹었습니다
(남구) 그러더니 4일째 되는 날 와서는
몇 살이에요?
아...
스무...살이요
음
그럼 동생이네
(희) 얘, 반죽에 옥수수 가루하고 찹쌀 가루를 섞어 봐
그럼 반죽이 고소해지고 식어도 부드러운 식감이 유지돼
(희) 그리고 설탕소에는 대추하고 감을 갈아서 넣으면
단맛의 향도 진해져서
더 맛있어
(남구) 시키는 대로 했더니
(남구) 엄청 맛있어 지더라고
그래서 장사가 잘된 거예요?
(남구) 당연히 잘됐지 맛있어 지니까
근데 그 다음부터 그 누나가 안 오는 거야
왜 안 오셨을까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시식도 좀 부탁하고 싶고
그렇게 2주일을 꼬박 기다렸는데
- (손님) 감사합니다 - (남구) 네에
(남구) 네, 어서 오세요
[다급한 듯 더듬으며] 어어, 저, 누나!
어, 잠시만요
(남구) 저
[희가 알아보며] 아
(남구) 이거 알려준 대로 만든 거예요
[희가 놀라며] 아, 진짜?
[감탄하며] 오우, 진짜 맛있다! [웃는다]
[희가 맛을 음미하며] 음
[활짝 웃는다]
나라는 놈한테
그렇게 밝고 환하게 웃어 준 사람
처음이었어
난 엄마가 없었으니까
그럼 혹시
그분이 카페 사장님이신 거예요?
[낮은 한숨 쉬며] 아
카페 사장님이
방장님 첫사랑이셨구나
첫사랑 아니거든
그럼요?
(남구)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니까
유일한 사랑이지
그럼 사장님 때문에 결혼도 안 하신 거예요?
인테리어 부자재까지 들어가면 직원 더 뽑아야 한다니까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직원부터 뽑아요?
선배 계신데
(용국) 야, 난 동업자 겸 투자자야
그것도 투자금 회수할 때까지만 동업하기로 했던
[커피잔 내려놓는 소리]
그래서
투자금 회수했으니까 이제 빠지시겠다?
[작게 웃는다]
아니 그건 아니고
좀 이렇게 살살 가자 이 얘기지
일단 시장 조사나 하고 얘기하죠 직원 뽑는 건 [전화 수신음]
(용국) 뭐 그럽시다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여보세요?
(원더풀 테크) 서지안 씨 핸드폰 아닌가요?
예?
(도경) 혹시 서류 전형 합격 전화가 오면
(도경) 서지안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원더풀 테크) 원더풀 테크 인사 팀입니다
(원더풀 테크) 인사 담당자입니다
아, 예
[기계 작동 소리]
(소장) 목공반 때가 언젠데
손이 아주 재다
우리 선태보다 두 배 속도야
아휴
쟤가 그런 애예요
조소과 가려던 애니까
(소장) 원래
몸이 기억하는 기술은
세월이 지나도 안 잊어버리긴 하지
무아지경 물아일체십니다?
근데 왜?
(혁) 원더풀 테크라고 너 서류 전형 통과했다고
면접 연락 왔더라
(혁) 전화해 달래
이게 너한테 왔어?
(혁) 최도경 씨가 내 전화번호 적었다고 하더라고
응?
알았어, 고마워
(혁) 나 점심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 점심 잘 챙겨 먹어라
(지안) 응, 참, 혁아
너 혹시
우리 아빠 본 적 있어?
있지
목공반에 오셔서 한턱 쏘셨을 때
(혁) 근데 그건 왜?
아니야, 점심 맛있게 먹어
어
[기계 작동 소리]
[메시지 수신음]
(혁) 원더풀 테크에서 연락이 와서 지안이에게 전달했습니다
(혁) 더 이상 연락은 사절입니다
나도 더 이상 연락 안 하고 싶다
아이고 참
[얕은 한숨]
[차가 서서히 멈춘다]
[운전석 문 닫는 소리]
(지수) 오셨어요?
왜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안에 있어도 되는데
아, 방장님이 일을 빨리 끝내주셔서요
- (남구) 어, 왔어? - (혁) 아, 예
선우 실장, 나 오늘 반죽 비법수 만들 거니까
서지수 일찍 오면 안 되거든
(남구) 늦게 와, 늦게 어, 안 와도 돼
- 천천히 올게요 - (남구) 그래, 응
[문 닫고 차 출발하는 소리]
(남구) 그래, 가버려
[귀엽다는 듯] 으이구, 참
어이, 좋네
(희) 앉아요
(남구) 싫어요
왜요?
이렇게 밖에서 당신 얼굴 보니까
좋아서
나이 들더니 넉살만 늘었어요?
(희) 넉살은 늘고
철은 안 들었네
[재밌다는 듯] 칫
철 들면 무겁기만 하지 뭐
[다그치듯] 제발요
(희) 제발
그만해 줘요, 남구 씨
알아
나
남구 씨가 왜 우연히 만난 척 했는지
(희) 우연히 만나서
왜 날 다 잊은 사람처럼 무시했는지
알면서 뭘 그만하래
고마워요
하지 마
날 우물에서 꺼내줘서
(희) 근데 그랬으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예전처럼 팔팔거리게 만들어줬으니까
거기까지만 해요
(희) 이제부터는
잘 살게요
- 나랑 같이... - (희) 나는!
과거를 잊고 싶어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
모든 과거를
(희) 그 중에서도
남구 씨하고의 과거는
예쁜 추억으로 남겨두게 해줘요
못됐다, 참
[한숨 쉰다]
그래
나 못된 사람이야
(희) 그때도 그랬잖아
내가 얼마나 못되게 모질게 그랬는데
왜 그건 다 잊고 나는 못 잊어?
[희가 슬퍼하며] 바보 같이 난 또렷이 기억하는데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내가 얼마나 염치없었는지 기억하는데
난 안 돼요
남구 씨하고는
(희) 날
좀 봐줘요, 남구 씨가
안 그럼
내가 떠날 수밖에 없어
[살짝 흥분해서] 야
네가 날 좀 봐줘
(남구) 너 떠나고
잘 살기를
행복하기를
그럴 거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았어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고
아무런 재미도 없고 재미도 없이
친구 하나 없이
나 정말 불쌍하지 않냐?
불쌍해
가요
- 그래 그러니까 - (희) 그래서 안 돼!
불쌍하고 가여워서 안 돼
(희) 절대
[살짝 흐느끼며] 안 돼, 난
[훌쩍인다]
(희) 부탁해요
다신
오지 말아줘요
[남구의 떨리는 숨소리]
(지수) 어우 어떡하지?
줄이 너무 기네요
(혁) 진짜 맛집인가 보네
(혁)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지수) 아, 인터넷 검색했어요
(지수) 제가 국수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집 국수가 튀기지 않은 생면으로 만들어서 더 맛있대요
(혁) 아, 그래요
저도 국수 좋아하는데
아 정말요? 저 밀가루로 만든 거 다 좋아해요
우동, 스파게티 짜장면, 짬뽕
또 뭐 있지?
어, 냉면, 떡볶이 칼국수도 좋아하고
그러니 빵을 만들겠죠
아, 그 중에서 빵을 제일 좋아하긴 해요
[귀엽다는 듯] 참
[같이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다]
[둘이 동시에] 맛있다
[같이 어색한 듯 웃는다]
[경쾌한 음악]
이제 힘든 일은 지나갔어요?
네?
오늘은 기분 좋아보이길래
아, 아직요
지금처럼 까먹고 있을 때면 기분 좋고요
생각 나면 안 좋고 그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심난할 때 일을 하죠
잡생각 안 들게
그래서 전 빵집에 있을 때가
그래서 제일 행복해요
[지수가 작게 웃는다]
전공이 치위생이죠?
[놀란 듯] 음?
실장님 저 기억하는 거예요?
치과에서?
아, 네
[겸연쩍은 듯] 그날 아주 인상 깊어서
[부끄러운 듯] 아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되게 안 좋게 기억했겠어요
빵 좋아하는 사람이 치위생과는 왜 갔어요?
처음에는 하려고 갔죠
저는 원래 대학 안 가려고 했거든요
근데 저희 언니가 거기 원서 넣은 거예요
취업 잘된다고
언니가 현실적이시네
근데 적성에 안 맞았구나
실습 나가서 알았어요
제가 비위가 강하거든요
근데 충치 심한 사람 입속하고 목젖까지
완전 트라우마 생겼어요
그런 거 알면서 치과에서 일했어요?
음, 치위생사는 안 했죠
저 데스크 알바만 했었어요
그날은 간호사님이 갑자기 맹장 터져서
원장님이 딱 하루만 부탁하신 거예요
아, 그랬구나
(지안) 다녀왔습니다
(소장) 말단 주려고 볶음밥 시켰는데
(소장) 이놈이 모르고 먹어버렸네
(선태) 아휴, 죄송해요
(소장) 짬뽕 괜찮겠어?
난 매운 걸 못 먹어서
(지안)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살자고 먹는 건데
먹는 걸 소홀히 하면 쓰나
감사합니다
늙으니까
자식뻘만 보면
내 자식 같아서 잔소리를 하게 돼
[슬픈 음악]
[목에 걸려 기침한다]
[계속 기침한다]
[세면대 물소리]
[흐느끼며 기침한다]
[물 세기를 약하게 줄인다]
[조용히 흐느낀다]
(혁) 아휴
내가 사기로 했는데 왜 미리 계산을 해요?
(지수) 아, 전에 화장대도 조립해 주시고
저 쓰러졌을 때도 신세졌잖아요
나는 지수 씨 인천에 두고 갔는데
아...
(혁) 내 빚은 그대로 남았네
아, 다음에 다시 사야겠다
다음이요?
내가 빚지고는 못 살거든요
아...
[작게 싱긋 웃는다]
[전화 수신음]
응, 기재야
(기재) 서지안 씨 면접 안 온다고 전화왔단다
면접을 안 본다고 했다고?
(기재) 엉
(기재) 결과 보고 했으니까 알아서 해라
(기재) 끊는다
[한숨 쉬며] 그래, 알았다
[통화 종료음]
면접을 안 봐?
얘가 도대체 뭐 하려고 이래?
저 실례합니다
나가서 얘기 좀 하자
면접 안 간다고 했다면서?
네
왜 안 간다고 한 거야?
왜 안 가겠다고 했는지 말할 이유 없는데요
(도경)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건 진짜 서류 전형이고
네가 될 만해서 넣은 거고 네 조건, 네 능력으로 통과한 거야
알고 있습니다
회사 지원서는 수십 번 내봤으니까
근데 왜 면접을 안 가?
대답해라
가기 싫으니까
내가 대신 지원했다고 했을 때 싫다고 안 했잖아
좋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뭐?
생각해 보겠다고 했죠
생각해 본 결과가
서류 전형 통과했는데 면접 안 가는 거야?
목공소에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제대로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알았어요
이제 하고 싶으신 거 다 했죠?
서지안, 너 왜 이러니? 왜 이러는 거야?
차라리 화를 내 내가 알아, 너 화낼 만 해
차도경 씨
(지안) 나한테 신경 쓰는 거
되게 어이없는 거 알죠?
(도경) 아니
이게 왜 어이없어?
네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봐
네가 이러고 있는 거 그냥 두고 볼 수 있나
한때 동생이어서 신경 쓰이고
죄 없이 혼자 마음 고생한 게 신경 쓰이고
마음 쓰인다고 하셨죠
그래
(지안) 동생이 아닌 거 알았을 때
우리는 서로 입장 때문에 서로 딜을 했고
그래서 노력했고
그랬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그랬으면
거기가 끝인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은
내가 미안한 게 있으니까
미안할 이유 없다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잘못했고
제 부탁 들어주셨어요
저 많이 봐주셨어요
부회장님이 미리 알고 계셔서 계획이 틀어졌어요
그날이
부사장님하고 저의 마지막 날이었던 거예요
네가 이상하잖아 아주 많이 이상하잖아
무슨 상관인데요?
몇 번을 말해요?
무슨 상관이세요?
[한숨 쉰다]
너 참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는 구나
저는 부사장님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까요
(지안) 상관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든
상관 안 하는 게 맞습니다
더 이상 볼 일 없으니까
더 보고 싶지도 않고요
[한숨 쉰다]
그래
알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깊은 한숨 쉰다]
식은 커피 대신 맥주 한 잔 할래?
아니, 일하는 중인데
면접은 왜 안 간 거야?
혹시 최도경 씨가 너 서류 전형에 손 쓴 거 같아서?
아니
이제 그런 거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조금이라도 괜찮은 회사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어딘가
어떡하든 대기업에 지원서 넣고 면접 보고 그러는 거
그래 봤자니까
아버지 사업 망하고 미대 포기하고 나서
내 힘으로 성공하고 싶었어
그게 대기업 가는 거밖에 없더라고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지안) 진작에 중견 기업 갔으면 바로 취업할 수 있었는데
남들 보란 듯이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월급 많이 받고 싶어서 아둥바둥했던 거지
그래서 재벌 딸이라고 했을 때
바로 간 거야 아닌 줄도 모르고
다시 말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재벌이라서 간 거야
(지안) 네 말처럼 가난한 부모였으면
그렇게 바로 며칠 만에 갔을까?
내가 진짜 딸이었어도
나를 키워준 부모가 가난하면
그렇게 바로 버려도 되나?
나는 그런 애였던 거야
그거 자포자기처럼 들린다
이제 그런 것도 상관없어 내 주제 파악했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게 좋아
이러고 있는 게 좋아
(기재) 안 먹냐?
생각 없다
넌 할 만큼 했고
책임질 생각 없으면 깨끗이 돌아서라, 이제
듣자 하니 서지안 씨도 입장 정리한 거 같으니까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하지?
지안이가 하는 말 틀린 게 없는데
생기 잃고 무섭게 드라이해진 걔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아
좋아한다는 말을 되게 형이상학적으로 한다
그거하곤 달라
좋아하는 마음 있는 거 알아 나도
그렇다고 뭘 더 해 볼 생각 있는 거 아니야
음, 아, 장소라 다음 주에 온다
알아
만날 거냐?
만나야지
해성 그룹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군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내 길이야
그건
[문 열며] 으싸
[놀라며] 응?
뭐야?
[긴장된 음악]
(지수) 내 방 물건들 어딨어요?
(민 부장) 사모님 지시로 다 버렸습니다
버렸다고요?
어디에 버렸어요?
분리 수거차가 벌써 다 가져갔을 거예요, 아가씨
[숨을 다급하게 쉰다]
[수거차가 출발한다]
[지수가 큰소리로] 저기요!
저기요!
(지수) 저기요!
(지수) 저기요!
(도경) 지수야!
아니, 무슨 일이야?
[조수석 문이 열린다]
(지수) 차 좀 돌려주세요
(도경) 어
(민 부장) 말릴 틈도 뛰쳐나가셨습니다
(명희)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네
(민 부장) 부사장님
(명희) 도경아
(도경) 오다가 만났습니다
지수야
그걸 기어이 찾아왔니?
네, 제 물건이니까요
(명희) 네 방에 넣어둔 거 못 봤어?
널 위해서 훨씬 좋은 것들로 사다놓았는데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올려다 주겠습니다
[낮은 한숨 쉰다]
(도경) 민 부장한테 사람 보내라고 할게 그때 정리시켜
(지수) 됐어요 제건 제가 알아서 해요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에요?
(도경) 별 일 아니야 [서현이 윽하며 코를 막는다]
(서현) 방에서 이상한 냄새나던데
(명희) 쓰레기 함에 들어갔던 것들을
민 부장 내일 다 꺼내서 싹 세탁해
아니, 지수 내려오라고 해
언니 내려오는데요
그건 또 뭐예요?
(지수) 제 방에 있던 것들이에요
태그도 다 그대로던데 내일 환불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너 입을래?
아니요, 전 남의 것 안 입어요
앉아라
지수야
네
내가 지금은 널 지수라고 불러도
넌 원래 최은석이야
최은석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자랐어야 했어
근데 그렇게 안 자랐잖아요
그래
그래서 정말 미안하고 마음 아프단다
네가 지금 이러는 게
제가 이러는 거요?
제가 어떤데요?
(명희) 누가 뭐래도 넌 우리 집안사람인데
우리 집에서 우리다운 세팅이 필요해
우린 남들하고 다른 사람들이니까
뭐가 다른데요?
해성 그룹이잖아요
아...
남들보다 돈이 엄청 많은 거요?
[다그치듯] 그렇게 노골적인 단어는 쓰는 게 아니야
교양 없어 보이잖니
최서현
이 집에서는 노크하고도
들어오라는 허락까지 받아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며?
그럼요 그건 기본 에티켓인데
그럼 방주인 허락도 없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니?
(지수) 그리고
남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대는 건 교양 있는 거예요?
(지수) 저 살던 집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언니 옷 빌려 입을 때도
꼭 허락받고 빌려 입었었거든요
[기막힌 듯] 너 지금 어디서 누구하고 비교를
이상해서 그래요 상식적으로 너무 이해 안 돼서요
어떻게 제 물건을
제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버릴 수 있으세요?
[언성을 높이며] 좀 전에 말했잖아
우리 집안사람다운 세팅을 위해서야
전 최은석 되려고 여기 들어온 거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누가 될 건데?
이미 서지수로도 살기 싫다고 왔잖아 너
(명희) 너도 좀 노력해주면 안 되겠니?
(명희) 널 잃어버리고 반 미쳤던 날 생각해 주면 안 되겠어?
그 잃어버렸던 세월 동안
못 해줬던 걸 해주고 싶은 엄마 심정
모르겠니?
[문 열리는 소리]
(명희) 우린 너 때문에 너 하나 생각해서 양미정, 서태수
경찰에 신고 안 하고 용서해줬다
가게도 계속하게 해줬어
네 형제들도 손끝 하나 안 건드렸어
널 키워준 사람들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놀라서] 경찰서라니요?
우리 엄마, 아빠를 경찰서에 보내려고 했어요?
지태, 지호까지 뭘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요?
널 데려다 키웠고
바꿔치기 했어 엄연한 범죄야
내 엄마, 아빠예요
널 키웠지만 네 엄마, 아빠는 아니야
[큰소리로] 내가 네 엄마야
낳았다고 엄마는 아니에요
잃어버린 건 이쪽 책임 있어요 분명히
지안이를 나 대신 보낸 거요
그게 1년이 됐어요? 2년이 됐어요?
(지수) 더구나 언니가 곧 말하려고 했는데
[흥분하며] 어떻게 경찰서에 보낼 생각을 해요?
우리 엄마, 아빠를!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우리 엄마, 아빠한테 화낼 자격은 나밖에 없다고
[큰소리로] 잃어버린 책임 있으니까
[언성 높이며] 너 왜 이렇게 어리석니? 정신 차려!
(명희) 네 엄마, 아빠는 우리야
넌 우리 집안 혈육이야 우리 핏줄이야!
(지수) 혈육이 뭐가 중요해요? 같이 살아야 가족이지
[흥분하며] 이 집 부모님은 나한테 아저씨, 아줌마 같거든요
[기막힌 듯 숨을 몰아 쉰다]
(지수) 처음 보는 사람들이잖아요
(명희) 그렇게 남처럼 굴 거면
[큰소리로] 적응할 노력조차 안 할 거면 나가!
알았어요
나갈 테니까 방 구해주세요
[황당해하며] 뭐? 방?
자식 낳은 부모는
성인 될 때까지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 저한테 돈 한 푼도 안 들였잖아요
엄마 가게요? 그거 얼마짜리인데요
지금까지 나 키운 돈보다 많아요?
[서현이 작게 읊조리며] 어머, 어머
방만 구해주세요 내일 당장 나갈 테니까
[놀라서 더듬으며] 쟤가, 쟤가...
[한숨 쉰다]
[구슬픈 음악]
[코를 훌쩍인다]
(지수) 이거야, 엄마
(지수) 1년 전에 신상으로 나왔을 때 내가 찜해 놓은 거야
이월 상품으로 50% 세일이래
너 대학생 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꾸며주고 싶었는데
이월 상품밖에 못 사주고
미안해
아빠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아니야, 엄마 나 이거 마음에 든다니까
무늬가 특이하다
너는 참 보는 눈도 남 달라
(지수) 그치 엄마? 내가 좀 남 달라
(지수) 남 다른 양 여사 닮아서
(미정) [귀엽다는듯 웃으면서] 아휴
20% 할인 받아서 21만 3천...
(미정) 왜 20%예요? 현수막에 50%라는데
50% 코너는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건 20%예요
[미정이 아쉬워하며] 아...
지안이 것도 사야 하는데
음, 엄마, 나 이거 1년 전부터 진짜 갖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계산해 주세요
(미정) 지안이 거는 재킷으로 사야겠다
엄마 고마워 진짜, 진짜 잘 입을게 [미정이 웃는다]
[훌쩍이며] 엄마
[문 두드리는 소리]
(도경) 지수야, 오빠다
(도경) 들어가도 될까?
아니요, 들어오지 마세요
[훌쩍인다]
[한숨 쉰다]
[미정이 놀라며] 아니
이 양반이 또 자네
나가지도 않고 계속 자는 거야?
지태 아버지
지태 아버지
응
당신 왜 이렇게 잠을 자요?
내버려 둬 그냥
이번에 소라양 나오면 만난다고 했어요
네, 그러는 게 좋죠
도경이한테 전화하라고 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통화 종료음]
[낮은 한숨]
[전화 수신음]
[크게 놀란다]
[당황하며] 아, 아버지
어떻게 한국 휴대폰으로 전화하셨어요?
(민 부장) 회장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호되게 꾸짖듯]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민 부장) 회장님, 오셨습니까
[노 회장 한숨 쉰다]
(노 회장) 여기저기 알리고 수선 떨 거 없다
(민 부장) 네, 알겠습니다
민들레야
네, 회장님 [노 회장이 한숨 쉰다]
너 이 집안 사람 다 됐다?
[당황하며] 무슨 말씀이신지
(명희) 아버지
(노 회장)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
(노 회장) 따라 와
[긴장된 음악]
[은행 창구 벨소리]
(지태) 안녕히 가십시오
(지태) 과장님께 허락 받았어 점심 먹고 가도 돼
(수아) 그래?
그럼 더 볼 수 있다고 부동산에 전화해야겠다
너랑 밥 먹으려고 아양 떨었어
(수아) 밥은 방 보고 먹는 걸로
(부동산 중개사) 신혼 부부가 살기에 이만한 집 없습니다
풀옵션에 외부인 차단 출입구까지
- (수아) 집은 따뜻해요? - (부동산 중개사) 아휴, 그럼요
이 아파트는 지역 난방이라
보일러 안 틀어도, 예 따뜻한 물이 나와요 [중개사 웃음]
난방비는 적게 들겠다
(부동산 중개사) 그 원래 지역 난방이 편하고 경제적이죠
여러모로 아까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응, 그렇긴 한데
사진에 보던 것보다 좀 좁네요
(부동산 중개사) 역세권에서 이만한 집 구하기 힘들어요
날도 쌀쌀한데 왜 여기서 먹재?
(지태) 부실하게 샌드위치
(수아) 종일 사무실에만 있었더니 너무 답답해서
좋잖아, 전망도 좋고
전철 몇 정거장 더 타고 좀 넓은 데로 알아봐야겠어
뭐 하러 차비를 더 써?
난 저 집도 좀 비싸다 싶은데
2,000만 원에 80이?
더 싼 데가 없던데 뭐
한 달에 80만 원이면
[놀라면서] 1년에 960? 2년이면 2천 가까이 된다
지호 학원비로 나가던 100만 원 안 나가니까 괜찮아
어쨌든 2천만 원이 2년 만에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무래도 분가하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
안 돼
(지태) 우리 집에선
우리가 마음 편히 못 살아
그러면 내 펀드 깨고
전세 자금 대출받아서 전셋집 구하는 건 어때?
네 펀드를 왜 깨? 수익률도 마이너스라면서
월세가 너무 아까우니까 그렇지
아깝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근데
우리 신혼 생활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
아무리 눈치 안 본다고 해도
집안 공기가 무겁잖아
그런데 너 두는 거 싫어
자기가 싫은 게 아니고?
뭐?
숨쉬기 갑갑해 하는 건 자기지 내가 아니야
내 핑계는 안 댔으면 좋겠어
넌 아니라고?
내가 갑갑한 건 갑갑해 하는 자기를 보는 거야
정신적으로 부모한테 독립 못 한 자기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회사에 와서 노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미정) 일찍
나가셨다고 해서요
(재성) 회사까진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미정) 들키고 나서 지금까지
매출 모아 놓은 거예요
(미정) 도저히 이 돈을 쓸 수가 없어서
들고 왔습니다
이럴 거면 처음에 가게는 왜 받았습니까?
부회장님
가게 새 주인 오실 때까지
직원으로 월급 안 받고 정말 열심히
가게 잘되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지안이 족쇄 좀 풀어주세요
(미정) 지수가 원한다니 자수도 못 하겠고
지안이 볼모로 돈 버느니
죽는 게 낫겠어요
서태수 씨한테 이미 얘기 전했는데 말 안 하던가요?
무슨 말씀을?
그런 앙심 없이
처음에 우리 딸 키운 값으로 가게 계속하시라고 했는데
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이가 계속 잠을 자서요
서태수 씨를 만난 게 이틀 전인데요
(미정) 네
그저께 퇴근해서 와보니까 자고 있더니
지금까지 계속 자거든요
어디 아픈 건 아닙니까?
아니요, 열도 없고 깨우면 깨는데
자꾸 내버려 두라고 해요
[한숨 쉬며] 지안이는 돌아왔습니까?
아니요
[깊은 한숨 쉰다]
[전화 연결음]
(고 박사) 웬일이야? 바쁜 놈이 대낮에
고 박사
나 요즘 왜 이러냐?
외롭다
(재성) 화도 나고
(재성) 허무하고
(재성) 허하고 그래
(고 박사) 또
(재성) 마음이 이렇게 헛헛할 수가 없다
[재성이 어이없어하며] 야
나 막 눈물도 나려고 그래
(고 박사) 또
그러다
울컥울컥 화도 나고
갱년기라 그래
갱년기?
뭐...
다른 일 있는 것 아니고?
(고 박사) 너처럼 감정 잘 참고 인내하는 놈이 그 정도면
(고 박사) 평상시와는 다른
널 건드리는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야, 너 지금 나 환자로 대하는 거냐?
나 친구로 차 한잔하러 온 거야
온 김에
환자하고 가
환자하려면 너한테 다 털어놓아야 하잖아
너
무슨 일이 있기는 있구나 너?
다음에
[잔기침하며] 흠
(재성) 참
사람이 2박 3일 이상 안 깨고 계속 잘 수가 있어?
아니, 누구 얘긴데?
그냥 아는 사람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계속 잔다는대
뭐 대뜸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무의식이 깨고 싶지 않을 때
그런 경우가 있어
깨고 싶지 않다고?
깨면
뭐,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다른 현실이 있다든지
너무 고통스러울 때
(고 박사) 잠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고 박사) 드물게 있어
그래?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재성) 회장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오신 겁니까?
너희들 부부 사고 쳤다며?
[호통치며] 서지안이 내 손녀가 아니라면서?
이 사람한테 듣고 오신 겁니까?
명희가 하와이에 온다고 했다잖아?
일도 없이 갑자기
(노 회장) 노명희가 그럴 앤가?
이거 무슨 일이 터졌구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이 터졌어
그래서 내 퇴원하자마자 나 혼자 날아왔어
다 말씀드린 거야?
(노 회장) 자네 이 와중에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가?
대형 사고야
대형 사고는
무조건 수습이 먼저야
대책, 대책!
대책을 어떻게 세우셨습니까?
[선태가 큰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안) 들어가세요 [기계 소리가 시끄럽다]
[기계 작동 소리]
[기계 작동 소리 계속]
[기계 작동을 멈춘다]
(지안) 지금 하시는 건 뭐예요? 처음 보는 사이즈인데
(소장) 음, 선우 실장 쇼핑 몰에서
인테리어 부자재까지 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이거 욕실의 수납장 샘플로 만들어 보려고
네
(소장) 오늘 늦게 퇴근할 거면
하나 만들고 가
제가요?
아니 어제 나 도우면서 봤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소장) 어?
마감재 전까지만 해 봐요
네
[낮은 한숨 쉰다]
[익살스런 음악]
(유 비서) 제가 가서 전달하고
수령증 받아 와도 되는데
아니야, 아냐
(도경) 내가 갈게
유비, 내가 미친 거 같지?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뭡니까?
걱정, 책임감
도의적 배려?
[한숨 쉰다]
불길하다 진짜
[기계 작동 소리]
[잔잔한 음악]
[두드리는 소리]
[탁탁 두드리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드릴 소리]
[사포질하는 소리]
[낮은 한숨 쉰다]
[망설이며 한숨 쉰다]
(수아) 아직도 주무시네
[한숨 쉬며] 안 되겠다
깨워봐야겠어
(지태) 아버지
(지태) 아버지
(수아) 아버님
(수아) 어디 편찮으세요?
[지태가 한숨 쉬며] 아버지
(지태) 좀 일어나 보세요 저하고 병원 가요
[기운 없이] 괜찮아
아, 좀 일어나세요 지금 며칠째 정상이 아니잖아요
괜찮다고
(지태) 수아야 아버지 좀 일으켜 봐
[태수를 일으키며] (지태) 아버지, 아휴
(지태) 일어나세요, 병원 가게
냅둬
아휴, 일어나세요, 좀
[큰소리로 역정 내며] 무슨 상관이야, 네가!
[충격의 효과음]
[소리치며] 무슨 상관이냐고, 네가?
[한숨 쉬며] 아휴, 왜 안 와?
[놀라며] 어휴, 지안아
[지안과 도경 번갈아 한숨 쉰다]
(지안) 남의 이름 막 부르시는 분
(지안) 여기서 뭐해요?
날 기다릴 리는 없고
너 기다린 거야
그럴 리가?
얼굴만 알지 다시 볼 이유 없는 사인데
[봉투를 꺼내는 소리]
(도경) 이거 전해주려고
(도경) 핸드 앤 프린팅 공모에서
네가 그린 오리 그림이 1등으로 당선됐거든
그 상금 전해주려고
그래요?
그래, 아니면 뭐 하러 왔겠어?
난 그 그림 공모에 안 냈는데
내가 올렸어 귀엽게 잘 그렸길래
참, 쓸데없는 짓 잘하신다니까
[타이르듯] 화 좀 그만 내라
말귀도 못 알아들으시고
화난 거 아니면 왜 빈정대?
어이없어서 빈정대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최도경 씨?
(지안) 해성 어패럴은 직원이 최도경 부사장 한 명인가?
부사장이 공모에 내지도 않은 퇴직 직원한테
공모 당선금을 주러 오시네
수령증이 필요해서 왔을 뿐이야
(도경) 마케팅 다른 직원 보냈으면 좋았겠니?
너 이런 꼴 보이기 싫어서 내가 온 거야
줘요 그럼, 상금
1등이구나
그렇더라
난 관여 안 했다
근데 왜 5백만 원이에요
회사에서 주는 거면 세금 4.4% 떼고
478만 원이어야 하는데
[도경이 당황하며] 아, 그...
왜 자꾸 핑계 만들어서 나 보러 오지?
아직도 나 좋아하나? 그거 곤란한데
앞서 가지 마
앞서 가긴요
내가 머무는 집까지 알아놓고 숨어서 기다리잖아
(지안) 의심 받기 싫으면 의심 받을 행동하지 마요
안 보고 싶댔잖아 왜 자꾸 오는데?
네가 걱정돼서 그냥 못 있겠어 신경 쓰여 죽겠다고
아휴, 또 그런다
왜 그렇게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자꾸 흘리죠?
실수는 한 번이면 되는 거 아닌가?
[타이르듯] 지안아
감정에 대한 책임은 두려우면서 마음은 쓰이나 보네 그때처럼
내가 뭐 하잘까 봐 겁나서는
그때 겁먹었지? 내가 좋아한다고 할까 봐
(지안) 내가 미쳤어요?
당신 집안 어떤 곳인지 아는데
설마 재벌 3세가 잠시 흔들린 감정 끄트머리 잡고 매달리게?
(지안) 혼자 착각하고 안 해도 될 말 해가면서
미리 삼십육계 줄행랑친 비겁한 사람이 당신이야
인정한다
내가 비겁했어
그랬던 사람이 날 신경 써?
어디서 신경 쓰는 척이야?
그날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미안하면 오지 말라고
나 신경 쓰지 말라고요
네가 지금 정상이 아니잖아
뭐라고요?
취직도 안 하고 집에도 안 가고
바닷가에서 허드렛일 하고 있고
(도경) 또 여기서 나무나 자르고 있고
(도경) 자포자기로 보여
그래서 신경이 쓰여
내가 신경 쓰이는 거 보기 싫으면 집으로 가
(도경) 너희 아버지가
널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당장 네 아버지 모시고 너 있는 데 데리고 오고 싶었어
너 죽었을까 봐 걱정하시는 분한테
무사하다고만 전했어
[나지막히] 그게
너였어?
[긴장감 고조]
[흥분하며] 우리 아버지한테 나 이 동네 있다고
말한 게 너였어?
[언성 높이며]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뭔데? 네가
[소리치며] 네가 뭔데 나서? 네가 뭔데 아는 척이야?
[광분하며] 네가 뭔데 아버지한테 내가 이 동네 있다고 말해?
네가 뭔데!
[놀라며] 지안아?
너하고 쌓인 인연 때문에
찾아온 너 만나주고 변명 들어줬는지 알아? 아니!
통과 의례한 거야 네가 어떤 인간인 줄 아니까
[계속 흥분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면서
다른 사람 감정 따윈 무시하고 찾아올 거니까
하고 싶은 변명 다할 때까지 올 거니까
[소리치며] 그게 최도경다운 짓이라고 생각할 걸 아니까!
내가 안 간 건데
내가 안 만나고 싶은데 왜 네가 만나게 해? 네가
[울부짖으며] 네가 뭔데 내 인생에 끼어들어? 다 끝났는데!
[놀라며] 지안아
최도경 너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 앞에
그 얼굴
두 번 다시 안 보고 싶으니까
[구슬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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