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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빛 내 인생 26

 

[진지한 음악]

 

[심각한 음악]

 

[큰소리로] 지안, 지안아!

 

[태수가 숨을 가쁘게 쉰다]

 

[태수가 더듬으며] 사,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재성이 태수를 친다] [태수의 신음 소리]

 

[더듬으며] 연... 연락을

 

연락을 왜 안 했어?

 

살아 있었으면 살아 있었다고 연락을 좀 하지

 

이놈의 자식아

 

[기운 없이] 죄송해요

 

연락이라도 한 번 하지

 

난 매일 너한테 전화하고

 

문자하고 음성도 남기고 그랬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한숨 쉰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어디 있었어? 이 동네에 쭉 있었던 거야?

 

그런 얘기 안 하고 싶어요

 

죄송해요

 

지, 지금은 그럼 어디에 있어?

 

왜 이 동네 있는 거야?

 

이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을 했다고?

 

그럼 서울에 쭉 있었던 거야?

 

네

 

[낮게 한숨 쉰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빠... 아빠가

 

잘못했다

 

(태수) 너한테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보내 놓고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고

 

시간만 되돌릴 수 있으면

 

[깊은 한숨 쉰다]

 

너 그렇게 떠나보내 놓고

 

수도 없이 후회했어

 

아버지

 

(태수) 어, 그래

 

(태수) 너는

 

(태수) 아무 잘못이 없어

 

우리한테 속아서 갔잖아

 

그런데 왜 그 짐을 혼자서 다 지려고 그래

 

알았으면 알았을 때 말을 하지

 

(태수) 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그래

 

[슬퍼서 울컥하며]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아버지 그만요

 

어, 어, 그래

 

일단 집에 가자, 가서

 

집에 안 가요, 저

 

들어 가기 싫어요

 

뭐?

 

혼자 지내고 싶어요 지금이 좋아요

 

집에를 안 간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혼자 지내도 될 나이라고 생각해요

 

지안아, 저, 지안아 아빠

 

이제 사업 시작했어

 

(태수) 첫 계약도 따내고

 

저, 저, 돈도 받았어

 

첫 단추 잘 끼었으니까 아빠만 열심히 하면

 

너 이제 고생 안 시킬 수도 있어

 

그래서가 아니에요

 

어, 그래, 그래

 

엄마, 아버지 얼굴 보기 힘들겠지

 

(태수) 얼마나

 

화나고 실망했겠냐 네가

 

그래도

 

풀어야지

 

화내고 분풀이를 하더라도

 

얼굴 보고 풀어야지

 

그러면서

 

엄마, 아버지 속 얘기도 한번 들어주고

 

가족인데

 

응?

 

너한테

 

속죄할 기회는 한 번은 줘야지

 

제가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풀어야 하는 거예요?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같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같이 있기가 힘든데?

 

(지안) 엄마, 아버지 얼굴을

 

제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황하며] 그, 그래도

 

기회는 한 번은 줘야지

 

기회는 줘야지

 

저는 인제 혼자 있고 싶어요 가족 없이

 

(지안) 죄송해요

 

그냥 당분간

 

저 좀 내버려 두세요

 

전화는, 전화는

 

받을 거지?

 

저 핸드폰 안 써요, 이제

 

[구슬픈 음악]

 

[낮게 길게 한숨 쉰다]

 

서지안이

 

아직 연락이 없다고요?

 

그날 이후 사라져서 아무도 소식을 모른대

 

[놀란 듯 숨을 몰아쉰다]

 

사람 써서 찾아봐야겠어

 

뭐하러요?

 

(도경) 그럼 라이프 스타일 숍 론칭 준비는

 

기획 팀에서 전담하는 겁니까?

 

(직원) 네

 

레이아웃 정해지면 다시 보죠

 

(도경) 서지안 씨가 다닐 만한 좋은 회사 공채가 있어서

 

(도경) 서지안 씨 대신 지원서를 냈습니다

 

(도경) 서지안 씨한테는 말했는데

 

(도경) 핸드폰이 없다고 해서 선우혁 씨 번호를 적었습니다

 

(도경) 혹시 서류 전형 합격 전화가 오면

 

(도경) 서지안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도경) 덧붙이자면

 

(도경) 꼭 가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에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깊은 한숨]

 

(혁) 알겠습니다

 

(혁) 연락 오면 전달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바로 답을 해?

 

[혀를 찬다]

 

이 자식 이거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거 맞아?

 

지안이 옆에 두고 싶어서 전달 안 하는 거 아니야?

 

[기계 작동 소리]

 

[잔잔한 음악]

 

[현관문 닫히는 소리]

 

[구슬픈 음악]

 

[기계 작동 소리]

 

(선태가 큰소리로)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소장) 어

 

[사포질 소리]

 

(소장) 말단!

 

자네도 퇴근해

 

아...

 

네

 

[사포질 소리]

 

(혁) 쉴새 없이 일을 주세요 잡생각 안 들게

 

잠깐

 

이, 저, 사포질 좀 해주겠나

 

(지안) 네

 

- (지안) 이건 뭐예요? - (소장) 응, 좌식 화장대야

 

응, 내가 심심풀이로 완제품 내는 게 몇 개 있거든

 

(소장)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네

 

[방의 불을 켠다]

 

(미정) 이 양반이

 

웬일로 일찍 잠을 다 자네

 

(미정) 무슨 옷을

 

이렇게 개어 놓고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지태 아버지

 

[안타까운 목소리로] 어지간히 피로가 쌓였나 보네

 

(미정) 어우, 지태야

 

아버지 한 번 들여다봐 줘

 

깨지 않고 계속 주무시기만 해

 

(지태) 언제부터 주무시는데요?

 

어제 퇴근하고 왔더니 벌써 주무시고 계셨어

 

(수아) 그러실 만 하죠 피로 많이 쌓이셨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저렇게 맥 없이 오래 자는 양반이 아니거든

 

아휴, 겨우 하룻밤이에요 쉬게 두세요

 

아, 알았어 아침 먹어

 

생각 없어요

 

(수아) 다녀 오겠습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

 

아침 차렸는데...

 

[한숨 내쉰다]

 

(희) 그만하고 커피 마시자

 

(혁) 어

 

[숨을 후 내쉬며 앉는다]

 

[커피 마시며] 음, 좋다

 

지안 씨는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곁을 안 주더라

 

내버려 둬

 

그러는 게 좋긴 한데

 

너도 신경 안 쓰던데

 

그러기로 약속했거든

 

그래

 

어떨 땐 그 누구의 관심도

 

버거울 때가 있어

 

[가게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혁) 아, 맞다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아니요, 없는데요

 

그럼 내가 밥 사기로 한 거 오늘 어때요?

 

[수줍게] 아, 좋아요

 

(혁) 그럼 먹고 싶은 거 정해놔요

 

점심 시간에 빵집 앞으로 갈게요

 

[활짝 웃는다]

 

[지수가 신나서] 방장님!

 

저 오늘 점심 나가서 먹어요 선우 실장님이 그때 그랬잖아요

 

밥 먹기로 한 거?

 

[아주 신나서] 네, 그거 오늘 먹재요

 

(남구) 좋겠네

 

(남구) 몇 개월 만에 겨우 밥 한 끼 같이 먹게 돼서

 

[들뜬 목소리로] 뭐 먹을지 저보고 정하래요 아, 뭐 먹지?

 

오래 걸리는 거

 

네?

 

(남구) 밥 먹고 올 때까지 젤 시간 많이 걸리는 거 먹으라고

 

[부끄러워하며] 어머! 아이

 

거기 사장님은 어떠시던가?

 

아, 별로요

 

별로야?

 

저한테 대하시는 게 별로라고요

 

근데 방장님은 사장님 언제 좋아하시게 된 거예요?

 

[숨을 내쉬며] 1998년

 

[옛스러운 음악]

 

3월 5일에

 

네?

 

내 이름이 왜 강남구인지 알아?

 

부모님이 엄청 재밌는 분이셨나 봐요

 

몰라

 

재밌는 사람인지

 

무서운 사람들인지

 

왜요?

 

(남구) 내가 살던

 

보육원 원장님 성이 강 씨였어

 

그래서 내 이름은 강남구

 

그 뒤로 강서구, 강동구

 

나보다 먼저 들어온 형은 강원도더라고

 

어머

 

보육원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가야 하거든

 

(남구) 생활 자금 300만 원 받아가지고

 

학교 옆 호떡 팔던 아줌마한테

 

반죽을 배웠지

 

(남구)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딱 5번 먹어봤어

 

기가 막히게 맛있더라고

 

5번요?

 

야, 이 호떡 팔면 대박 나겠다

 

(남구) 그러고선 간식거리는 여대생들이 좋아한다길래

 

무작정 미라 여대 앞으로 갔어

 

- (손님) 호떡 하나 주세요 - (남구) 아, 예

 

- (남구) 여기 있습니다 - (손님) 고맙습니다

 

[당황해서] 아이구

 

[계속 당황하며] 아유

 

(남구) 분명히 나는 맛있었는데

 

(남구) 왜 서울 사람들은 맛 없어 하지

 

(남구) 날마다 본전도 못 챙기고

 

(남구) 파리만 날리는데

 

(여학생1) 저희 호떡 세 개 주세요

 

- (남구) 아, 네네 - (희) 아, 춥다

 

(남구) 어떤 여대생이 친구들하고 왔어

 

(여학생2) 아 호떡 맛이 왜 이래?

 

[여학생들이 궁시렁댄다] [희가 그만하라며 눈치 준다]

 

(희) 호떡 주세요

 

(남구) 아 그러더니 3일을 계속 와서 호떡을 먹는 거야

 

잘 먹었습니다

 

(남구) 그러더니 4일째 되는 날 와서는

 

몇 살이에요?

 

아...

 

스무...살이요

 

음

 

그럼 동생이네

 

(희) 얘, 반죽에 옥수수 가루하고 찹쌀 가루를 섞어 봐

 

그럼 반죽이 고소해지고 식어도 부드러운 식감이 유지돼

 

(희) 그리고 설탕소에는 대추하고 감을 갈아서 넣으면

 

단맛의 향도 진해져서

 

더 맛있어

 

(남구) 시키는 대로 했더니

 

(남구) 엄청 맛있어 지더라고

 

그래서 장사가 잘된 거예요?

 

(남구) 당연히 잘됐지 맛있어 지니까

 

근데 그 다음부터 그 누나가 안 오는 거야

 

왜 안 오셨을까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시식도 좀 부탁하고 싶고

 

그렇게 2주일을 꼬박 기다렸는데

 

- (손님) 감사합니다 - (남구) 네에

 

(남구) 네, 어서 오세요

 

[다급한 듯 더듬으며] 어어, 저, 누나!

 

어, 잠시만요

 

(남구) 저

 

[희가 알아보며] 아

 

(남구) 이거 알려준 대로 만든 거예요

 

[희가 놀라며] 아, 진짜?

 

[감탄하며] 오우, 진짜 맛있다! [웃는다]

 

[희가 맛을 음미하며] 음

 

[활짝 웃는다]

 

나라는 놈한테

 

그렇게 밝고 환하게 웃어 준 사람

 

처음이었어

 

난 엄마가 없었으니까

 

그럼 혹시

 

그분이 카페 사장님이신 거예요?

 

[낮은 한숨 쉬며] 아

 

카페 사장님이

 

방장님 첫사랑이셨구나

 

첫사랑 아니거든

 

그럼요?

 

(남구)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니까

 

유일한 사랑이지

 

그럼 사장님 때문에 결혼도 안 하신 거예요?

 

인테리어 부자재까지 들어가면 직원 더 뽑아야 한다니까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직원부터 뽑아요?

 

선배 계신데

 

(용국) 야, 난 동업자 겸 투자자야

 

그것도 투자금 회수할 때까지만 동업하기로 했던

 

[커피잔 내려놓는 소리]

 

그래서

 

투자금 회수했으니까 이제 빠지시겠다?

 

[작게 웃는다]

 

아니 그건 아니고

 

좀 이렇게 살살 가자 이 얘기지

 

일단 시장 조사나 하고 얘기하죠 직원 뽑는 건 [전화 수신음]

 

(용국) 뭐 그럽시다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여보세요?

 

(원더풀 테크) 서지안 씨 핸드폰 아닌가요?

 

예?

 

(도경) 혹시 서류 전형 합격 전화가 오면

 

(도경) 서지안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원더풀 테크) 원더풀 테크 인사 팀입니다

 

(원더풀 테크) 인사 담당자입니다

 

아, 예

 

[기계 작동 소리]

 

(소장) 목공반 때가 언젠데

 

손이 아주 재다

 

우리 선태보다 두 배 속도야

 

아휴

 

쟤가 그런 애예요

 

조소과 가려던 애니까

 

(소장) 원래

 

몸이 기억하는 기술은

 

세월이 지나도 안 잊어버리긴 하지

 

무아지경 물아일체십니다?

 

근데 왜?

 

(혁) 원더풀 테크라고 너 서류 전형 통과했다고

 

면접 연락 왔더라

 

(혁) 전화해 달래

 

이게 너한테 왔어?

 

(혁) 최도경 씨가 내 전화번호 적었다고 하더라고

 

응?

 

알았어, 고마워

 

(혁) 나 점심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 점심 잘 챙겨 먹어라

 

(지안) 응, 참, 혁아

 

너 혹시

 

우리 아빠 본 적 있어?

 

있지

 

목공반에 오셔서 한턱 쏘셨을 때

 

(혁) 근데 그건 왜?

 

아니야, 점심 맛있게 먹어

 

어

 

[기계 작동 소리]

 

[메시지 수신음]

 

(혁) 원더풀 테크에서 연락이 와서 지안이에게 전달했습니다

 

(혁) 더 이상 연락은 사절입니다

 

나도 더 이상 연락 안 하고 싶다

 

아이고 참

 

[얕은 한숨]

 

[차가 서서히 멈춘다]

 

[운전석 문 닫는 소리]

 

(지수) 오셨어요?

 

왜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안에 있어도 되는데

 

아, 방장님이 일을 빨리 끝내주셔서요

 

- (남구) 어, 왔어? - (혁) 아, 예

 

선우 실장, 나 오늘 반죽 비법수 만들 거니까

 

서지수 일찍 오면 안 되거든

 

(남구) 늦게 와, 늦게 어, 안 와도 돼

 

- 천천히 올게요 - (남구) 그래, 응

 

[문 닫고 차 출발하는 소리]

 

(남구) 그래, 가버려

 

[귀엽다는 듯] 으이구, 참

 

어이, 좋네

 

(희) 앉아요

 

(남구) 싫어요

 

왜요?

 

이렇게 밖에서 당신 얼굴 보니까

 

좋아서

 

나이 들더니 넉살만 늘었어요?

 

(희) 넉살은 늘고

 

철은 안 들었네

 

[재밌다는 듯] 칫

 

철 들면 무겁기만 하지 뭐

 

[다그치듯] 제발요

 

(희) 제발

 

그만해 줘요, 남구 씨

 

알아

 

나

 

남구 씨가 왜 우연히 만난 척 했는지

 

(희) 우연히 만나서

 

왜 날 다 잊은 사람처럼 무시했는지

 

알면서 뭘 그만하래

 

고마워요

 

하지 마

 

날 우물에서 꺼내줘서

 

(희) 근데 그랬으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예전처럼 팔팔거리게 만들어줬으니까

 

거기까지만 해요

 

(희) 이제부터는

 

잘 살게요

 

- 나랑 같이... - (희) 나는!

 

과거를 잊고 싶어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

 

모든 과거를

 

(희) 그 중에서도

 

남구 씨하고의 과거는

 

예쁜 추억으로 남겨두게 해줘요

 

못됐다, 참

 

[한숨 쉰다]

 

그래

 

나 못된 사람이야

 

(희) 그때도 그랬잖아

 

내가 얼마나 못되게 모질게 그랬는데

 

왜 그건 다 잊고 나는 못 잊어?

 

[희가 슬퍼하며] 바보 같이 난 또렷이 기억하는데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내가 얼마나 염치없었는지 기억하는데

 

난 안 돼요

 

남구 씨하고는

 

(희) 날

 

좀 봐줘요, 남구 씨가

 

안 그럼

 

내가 떠날 수밖에 없어

 

[살짝 흥분해서] 야

 

네가 날 좀 봐줘

 

(남구) 너 떠나고

 

잘 살기를

 

행복하기를

 

그럴 거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았어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고

 

아무런 재미도 없고 재미도 없이

 

친구 하나 없이

 

나 정말 불쌍하지 않냐?

 

불쌍해

 

가요

 

- 그래 그러니까 - (희) 그래서 안 돼!

 

불쌍하고 가여워서 안 돼

 

(희) 절대

 

[살짝 흐느끼며] 안 돼, 난

 

[훌쩍인다]

 

(희) 부탁해요

 

다신

 

오지 말아줘요

 

[남구의 떨리는 숨소리]

 

(지수) 어우 어떡하지?

 

줄이 너무 기네요

 

(혁) 진짜 맛집인가 보네

 

(혁)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지수) 아, 인터넷 검색했어요

 

(지수) 제가 국수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집 국수가 튀기지 않은 생면으로 만들어서 더 맛있대요

 

(혁) 아, 그래요

 

저도 국수 좋아하는데

 

아 정말요? 저 밀가루로 만든 거 다 좋아해요

 

우동, 스파게티 짜장면, 짬뽕

 

또 뭐 있지?

 

어, 냉면, 떡볶이 칼국수도 좋아하고

 

그러니 빵을 만들겠죠

 

아, 그 중에서 빵을 제일 좋아하긴 해요

 

[귀엽다는 듯] 참

 

[같이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다]

 

[둘이 동시에] 맛있다

 

[같이 어색한 듯 웃는다]

 

[경쾌한 음악]

 

이제 힘든 일은 지나갔어요?

 

네?

 

오늘은 기분 좋아보이길래

 

아, 아직요

 

지금처럼 까먹고 있을 때면 기분 좋고요

 

생각 나면 안 좋고 그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심난할 때 일을 하죠

 

잡생각 안 들게

 

그래서 전 빵집에 있을 때가

 

그래서 제일 행복해요

 

[지수가 작게 웃는다]

 

전공이 치위생이죠?

 

[놀란 듯] 음?

 

실장님 저 기억하는 거예요?

 

치과에서?

 

아, 네

 

[겸연쩍은 듯] 그날 아주 인상 깊어서

 

[부끄러운 듯] 아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되게 안 좋게 기억했겠어요

 

빵 좋아하는 사람이 치위생과는 왜 갔어요?

 

처음에는 하려고 갔죠

 

저는 원래 대학 안 가려고 했거든요

 

근데 저희 언니가 거기 원서 넣은 거예요

 

취업 잘된다고

 

언니가 현실적이시네

 

근데 적성에 안 맞았구나

 

실습 나가서 알았어요

 

제가 비위가 강하거든요

 

근데 충치 심한 사람 입속하고 목젖까지

 

완전 트라우마 생겼어요

 

그런 거 알면서 치과에서 일했어요?

 

음, 치위생사는 안 했죠

 

저 데스크 알바만 했었어요

 

그날은 간호사님이 갑자기 맹장 터져서

 

원장님이 딱 하루만 부탁하신 거예요

 

아, 그랬구나

 

(지안) 다녀왔습니다

 

(소장) 말단 주려고 볶음밥 시켰는데

 

(소장) 이놈이 모르고 먹어버렸네

 

(선태) 아휴, 죄송해요

 

(소장) 짬뽕 괜찮겠어?

 

난 매운 걸 못 먹어서

 

(지안)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살자고 먹는 건데

 

먹는 걸 소홀히 하면 쓰나

 

감사합니다

 

늙으니까

 

자식뻘만 보면

 

내 자식 같아서 잔소리를 하게 돼

 

[슬픈 음악]

 

[목에 걸려 기침한다]

 

[계속 기침한다]

 

[세면대 물소리]

 

[흐느끼며 기침한다]

 

[물 세기를 약하게 줄인다]

 

[조용히 흐느낀다]

 

(혁) 아휴

 

내가 사기로 했는데 왜 미리 계산을 해요?

 

(지수) 아, 전에 화장대도 조립해 주시고

 

저 쓰러졌을 때도 신세졌잖아요

 

나는 지수 씨 인천에 두고 갔는데

 

아...

 

(혁) 내 빚은 그대로 남았네

 

아, 다음에 다시 사야겠다

 

다음이요?

 

내가 빚지고는 못 살거든요

 

아...

 

[작게 싱긋 웃는다]

 

[전화 수신음]

 

응, 기재야

 

(기재) 서지안 씨 면접 안 온다고 전화왔단다

 

면접을 안 본다고 했다고?

 

(기재) 엉

 

(기재) 결과 보고 했으니까 알아서 해라

 

(기재) 끊는다

 

[한숨 쉬며] 그래, 알았다

 

[통화 종료음]

 

면접을 안 봐?

 

얘가 도대체 뭐 하려고 이래?

 

저 실례합니다

 

나가서 얘기 좀 하자

 

면접 안 간다고 했다면서?

 

네

 

왜 안 간다고 한 거야?

 

왜 안 가겠다고 했는지 말할 이유 없는데요

 

(도경)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건 진짜 서류 전형이고

 

네가 될 만해서 넣은 거고 네 조건, 네 능력으로 통과한 거야

 

알고 있습니다

 

회사 지원서는 수십 번 내봤으니까

 

근데 왜 면접을 안 가?

 

대답해라

 

가기 싫으니까

 

내가 대신 지원했다고 했을 때 싫다고 안 했잖아

 

좋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뭐?

 

생각해 보겠다고 했죠

 

생각해 본 결과가

 

서류 전형 통과했는데 면접 안 가는 거야?

 

목공소에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제대로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알았어요

 

이제 하고 싶으신 거 다 했죠?

 

서지안, 너 왜 이러니? 왜 이러는 거야?

 

차라리 화를 내 내가 알아, 너 화낼 만 해

 

차도경 씨

 

(지안) 나한테 신경 쓰는 거

 

되게 어이없는 거 알죠?

 

(도경) 아니

 

이게 왜 어이없어?

 

네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봐

 

네가 이러고 있는 거 그냥 두고 볼 수 있나

 

한때 동생이어서 신경 쓰이고

 

죄 없이 혼자 마음 고생한 게 신경 쓰이고

 

마음 쓰인다고 하셨죠

 

그래

 

(지안) 동생이 아닌 거 알았을 때

 

우리는 서로 입장 때문에 서로 딜을 했고

 

그래서 노력했고

 

그랬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그랬으면

 

거기가 끝인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은

 

내가 미안한 게 있으니까

 

미안할 이유 없다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잘못했고

 

제 부탁 들어주셨어요

 

저 많이 봐주셨어요

 

부회장님이 미리 알고 계셔서 계획이 틀어졌어요

 

그날이

 

부사장님하고 저의 마지막 날이었던 거예요

 

네가 이상하잖아 아주 많이 이상하잖아

 

무슨 상관인데요?

 

몇 번을 말해요?

 

무슨 상관이세요?

 

[한숨 쉰다]

 

너 참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는 구나

 

저는 부사장님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까요

 

(지안) 상관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든

 

상관 안 하는 게 맞습니다

 

더 이상 볼 일 없으니까

 

더 보고 싶지도 않고요

 

[한숨 쉰다]

 

그래

 

알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깊은 한숨 쉰다]

 

식은 커피 대신 맥주 한 잔 할래?

 

아니, 일하는 중인데

 

면접은 왜 안 간 거야?

 

혹시 최도경 씨가 너 서류 전형에 손 쓴 거 같아서?

 

아니

 

이제 그런 거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조금이라도 괜찮은 회사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어딘가

 

어떡하든 대기업에 지원서 넣고 면접 보고 그러는 거

 

그래 봤자니까

 

아버지 사업 망하고 미대 포기하고 나서

 

내 힘으로 성공하고 싶었어

 

그게 대기업 가는 거밖에 없더라고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지안) 진작에 중견 기업 갔으면 바로 취업할 수 있었는데

 

남들 보란 듯이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월급 많이 받고 싶어서 아둥바둥했던 거지

 

그래서 재벌 딸이라고 했을 때

 

바로 간 거야 아닌 줄도 모르고

 

다시 말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재벌이라서 간 거야

 

(지안) 네 말처럼 가난한 부모였으면

 

그렇게 바로 며칠 만에 갔을까?

 

내가 진짜 딸이었어도

 

나를 키워준 부모가 가난하면

 

그렇게 바로 버려도 되나?

 

나는 그런 애였던 거야

 

그거 자포자기처럼 들린다

 

이제 그런 것도 상관없어 내 주제 파악했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게 좋아

 

이러고 있는 게 좋아

 

(기재) 안 먹냐?

 

생각 없다

 

넌 할 만큼 했고

 

책임질 생각 없으면 깨끗이 돌아서라, 이제

 

듣자 하니 서지안 씨도 입장 정리한 거 같으니까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하지?

 

지안이가 하는 말 틀린 게 없는데

 

생기 잃고 무섭게 드라이해진 걔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아

 

좋아한다는 말을 되게 형이상학적으로 한다

 

그거하곤 달라

 

좋아하는 마음 있는 거 알아 나도

 

그렇다고 뭘 더 해 볼 생각 있는 거 아니야

 

음, 아, 장소라 다음 주에 온다

 

알아

 

만날 거냐?

 

만나야지

 

해성 그룹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군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내 길이야

 

그건

 

[문 열며] 으싸

 

[놀라며] 응?

 

뭐야?

 

[긴장된 음악]

 

(지수) 내 방 물건들 어딨어요?

 

(민 부장) 사모님 지시로 다 버렸습니다

 

버렸다고요?

 

어디에 버렸어요?

 

분리 수거차가 벌써 다 가져갔을 거예요, 아가씨

 

[숨을 다급하게 쉰다]

 

[수거차가 출발한다]

 

[지수가 큰소리로] 저기요!

 

저기요!

 

(지수) 저기요!

 

(지수) 저기요!

 

(도경) 지수야!

 

아니, 무슨 일이야?

 

[조수석 문이 열린다]

 

(지수) 차 좀 돌려주세요

 

(도경) 어

 

(민 부장) 말릴 틈도 뛰쳐나가셨습니다

 

(명희)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네

 

(민 부장) 부사장님

 

(명희) 도경아

 

(도경) 오다가 만났습니다

 

지수야

 

그걸 기어이 찾아왔니?

 

네, 제 물건이니까요

 

(명희) 네 방에 넣어둔 거 못 봤어?

 

널 위해서 훨씬 좋은 것들로 사다놓았는데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올려다 주겠습니다

 

[낮은 한숨 쉰다]

 

(도경) 민 부장한테 사람 보내라고 할게 그때 정리시켜

 

(지수) 됐어요 제건 제가 알아서 해요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에요?

 

(도경) 별 일 아니야 [서현이 윽하며 코를 막는다]

 

(서현) 방에서 이상한 냄새나던데

 

(명희) 쓰레기 함에 들어갔던 것들을

 

민 부장 내일 다 꺼내서 싹 세탁해

 

아니, 지수 내려오라고 해

 

언니 내려오는데요

 

그건 또 뭐예요?

 

(지수) 제 방에 있던 것들이에요

 

태그도 다 그대로던데 내일 환불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너 입을래?

 

아니요, 전 남의 것 안 입어요

 

앉아라

 

지수야

 

네

 

내가 지금은 널 지수라고 불러도

 

넌 원래 최은석이야

 

최은석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자랐어야 했어

 

근데 그렇게 안 자랐잖아요

 

그래

 

그래서 정말 미안하고 마음 아프단다

 

네가 지금 이러는 게

 

제가 이러는 거요?

 

제가 어떤데요?

 

(명희) 누가 뭐래도 넌 우리 집안사람인데

 

우리 집에서 우리다운 세팅이 필요해

 

우린 남들하고 다른 사람들이니까

 

뭐가 다른데요?

 

해성 그룹이잖아요

 

아...

 

남들보다 돈이 엄청 많은 거요?

 

[다그치듯] 그렇게 노골적인 단어는 쓰는 게 아니야

 

교양 없어 보이잖니

 

최서현

 

이 집에서는 노크하고도

 

들어오라는 허락까지 받아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며?

 

그럼요 그건 기본 에티켓인데

 

그럼 방주인 허락도 없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니?

 

(지수) 그리고

 

남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대는 건 교양 있는 거예요?

 

(지수) 저 살던 집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언니 옷 빌려 입을 때도

 

꼭 허락받고 빌려 입었었거든요

 

[기막힌 듯] 너 지금 어디서 누구하고 비교를

 

이상해서 그래요 상식적으로 너무 이해 안 돼서요

 

어떻게 제 물건을

 

제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버릴 수 있으세요?

 

[언성을 높이며] 좀 전에 말했잖아

 

우리 집안사람다운 세팅을 위해서야

 

전 최은석 되려고 여기 들어온 거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누가 될 건데?

 

이미 서지수로도 살기 싫다고 왔잖아 너

 

(명희) 너도 좀 노력해주면 안 되겠니?

 

(명희) 널 잃어버리고 반 미쳤던 날 생각해 주면 안 되겠어?

 

그 잃어버렸던 세월 동안

 

못 해줬던 걸 해주고 싶은 엄마 심정

 

모르겠니?

 

[문 열리는 소리]

 

(명희) 우린 너 때문에 너 하나 생각해서 양미정, 서태수

 

경찰에 신고 안 하고 용서해줬다

 

가게도 계속하게 해줬어

 

네 형제들도 손끝 하나 안 건드렸어

 

널 키워준 사람들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놀라서] 경찰서라니요?

 

우리 엄마, 아빠를 경찰서에 보내려고 했어요?

 

지태, 지호까지 뭘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요?

 

널 데려다 키웠고

 

바꿔치기 했어 엄연한 범죄야

 

내 엄마, 아빠예요

 

널 키웠지만 네 엄마, 아빠는 아니야

 

[큰소리로] 내가 네 엄마야

 

낳았다고 엄마는 아니에요

 

잃어버린 건 이쪽 책임 있어요 분명히

 

지안이를 나 대신 보낸 거요

 

그게 1년이 됐어요? 2년이 됐어요?

 

(지수) 더구나 언니가 곧 말하려고 했는데

 

[흥분하며] 어떻게 경찰서에 보낼 생각을 해요?

 

우리 엄마, 아빠를!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우리 엄마, 아빠한테 화낼 자격은 나밖에 없다고

 

[큰소리로] 잃어버린 책임 있으니까

 

[언성 높이며] 너 왜 이렇게 어리석니? 정신 차려!

 

(명희) 네 엄마, 아빠는 우리야

 

넌 우리 집안 혈육이야 우리 핏줄이야!

 

(지수) 혈육이 뭐가 중요해요? 같이 살아야 가족이지

 

[흥분하며] 이 집 부모님은 나한테 아저씨, 아줌마 같거든요

 

[기막힌 듯 숨을 몰아 쉰다]

 

(지수) 처음 보는 사람들이잖아요

 

(명희) 그렇게 남처럼 굴 거면

 

[큰소리로] 적응할 노력조차 안 할 거면 나가!

 

알았어요

 

나갈 테니까 방 구해주세요

 

[황당해하며] 뭐? 방?

 

자식 낳은 부모는

 

성인 될 때까지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 저한테 돈 한 푼도 안 들였잖아요

 

엄마 가게요? 그거 얼마짜리인데요

 

지금까지 나 키운 돈보다 많아요?

 

[서현이 작게 읊조리며] 어머, 어머

 

방만 구해주세요 내일 당장 나갈 테니까

 

[놀라서 더듬으며] 쟤가, 쟤가...

 

[한숨 쉰다]

 

[구슬픈 음악]

 

[코를 훌쩍인다]

 

(지수) 이거야, 엄마

 

(지수) 1년 전에 신상으로 나왔을 때 내가 찜해 놓은 거야

 

이월 상품으로 50% 세일이래

 

너 대학생 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꾸며주고 싶었는데

 

이월 상품밖에 못 사주고

 

미안해

 

아빠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아니야, 엄마 나 이거 마음에 든다니까

 

무늬가 특이하다

 

너는 참 보는 눈도 남 달라

 

(지수) 그치 엄마? 내가 좀 남 달라

 

(지수) 남 다른 양 여사 닮아서

 

(미정) [귀엽다는듯 웃으면서] 아휴

 

20% 할인 받아서 21만 3천...

 

(미정) 왜 20%예요? 현수막에 50%라는데

 

50% 코너는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건 20%예요

 

[미정이 아쉬워하며] 아...

 

지안이 것도 사야 하는데

 

음, 엄마, 나 이거 1년 전부터 진짜 갖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계산해 주세요

 

(미정) 지안이 거는 재킷으로 사야겠다

 

엄마 고마워 진짜, 진짜 잘 입을게 [미정이 웃는다]

 

[훌쩍이며] 엄마

 

[문 두드리는 소리]

 

(도경) 지수야, 오빠다

 

(도경) 들어가도 될까?

 

아니요, 들어오지 마세요

 

[훌쩍인다]

 

[한숨 쉰다]

 

[미정이 놀라며] 아니

 

이 양반이 또 자네

 

나가지도 않고 계속 자는 거야?

 

지태 아버지

 

지태 아버지

 

응

 

당신 왜 이렇게 잠을 자요?

 

내버려 둬 그냥

 

이번에 소라양 나오면 만난다고 했어요

 

네, 그러는 게 좋죠

 

도경이한테 전화하라고 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통화 종료음]

 

[낮은 한숨]

 

[전화 수신음]

 

[크게 놀란다]

 

[당황하며] 아, 아버지

 

어떻게 한국 휴대폰으로 전화하셨어요?

 

(민 부장) 회장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호되게 꾸짖듯]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민 부장) 회장님, 오셨습니까

 

[노 회장 한숨 쉰다]

 

(노 회장) 여기저기 알리고 수선 떨 거 없다

 

(민 부장) 네, 알겠습니다

 

민들레야

 

네, 회장님 [노 회장이 한숨 쉰다]

 

너 이 집안 사람 다 됐다?

 

[당황하며] 무슨 말씀이신지

 

(명희) 아버지

 

(노 회장)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

 

(노 회장) 따라 와

 

[긴장된 음악]

 

[은행 창구 벨소리]

 

(지태) 안녕히 가십시오

 

(지태) 과장님께 허락 받았어 점심 먹고 가도 돼

 

(수아) 그래?

 

그럼 더 볼 수 있다고 부동산에 전화해야겠다

 

너랑 밥 먹으려고 아양 떨었어

 

(수아) 밥은 방 보고 먹는 걸로

 

(부동산 중개사) 신혼 부부가 살기에 이만한 집 없습니다

 

풀옵션에 외부인 차단 출입구까지

 

- (수아) 집은 따뜻해요? - (부동산 중개사) 아휴, 그럼요

 

이 아파트는 지역 난방이라

 

보일러 안 틀어도, 예 따뜻한 물이 나와요 [중개사 웃음]

 

난방비는 적게 들겠다

 

(부동산 중개사) 그 원래 지역 난방이 편하고 경제적이죠

 

여러모로 아까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응, 그렇긴 한데

 

사진에 보던 것보다 좀 좁네요

 

(부동산 중개사) 역세권에서 이만한 집 구하기 힘들어요

 

날도 쌀쌀한데 왜 여기서 먹재?

 

(지태) 부실하게 샌드위치

 

(수아) 종일 사무실에만 있었더니 너무 답답해서

 

좋잖아, 전망도 좋고

 

전철 몇 정거장 더 타고 좀 넓은 데로 알아봐야겠어

 

뭐 하러 차비를 더 써?

 

난 저 집도 좀 비싸다 싶은데

 

2,000만 원에 80이?

 

더 싼 데가 없던데 뭐

 

한 달에 80만 원이면

 

[놀라면서] 1년에 960? 2년이면 2천 가까이 된다

 

지호 학원비로 나가던 100만 원 안 나가니까 괜찮아

 

어쨌든 2천만 원이 2년 만에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무래도 분가하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

 

안 돼

 

(지태) 우리 집에선

 

우리가 마음 편히 못 살아

 

그러면 내 펀드 깨고

 

전세 자금 대출받아서 전셋집 구하는 건 어때?

 

네 펀드를 왜 깨? 수익률도 마이너스라면서

 

월세가 너무 아까우니까 그렇지

 

아깝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근데

 

우리 신혼 생활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

 

아무리 눈치 안 본다고 해도

 

집안 공기가 무겁잖아

 

그런데 너 두는 거 싫어

 

자기가 싫은 게 아니고?

 

뭐?

 

숨쉬기 갑갑해 하는 건 자기지 내가 아니야

 

내 핑계는 안 댔으면 좋겠어

 

넌 아니라고?

 

내가 갑갑한 건 갑갑해 하는 자기를 보는 거야

 

정신적으로 부모한테 독립 못 한 자기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회사에 와서 노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미정) 일찍

 

나가셨다고 해서요

 

(재성) 회사까진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미정) 들키고 나서 지금까지

 

매출 모아 놓은 거예요

 

(미정) 도저히 이 돈을 쓸 수가 없어서

 

들고 왔습니다

 

이럴 거면 처음에 가게는 왜 받았습니까?

 

부회장님

 

가게 새 주인 오실 때까지

 

직원으로 월급 안 받고 정말 열심히

 

가게 잘되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지안이 족쇄 좀 풀어주세요

 

(미정) 지수가 원한다니 자수도 못 하겠고

 

지안이 볼모로 돈 버느니

 

죽는 게 낫겠어요

 

서태수 씨한테 이미 얘기 전했는데 말 안 하던가요?

 

무슨 말씀을?

 

그런 앙심 없이

 

처음에 우리 딸 키운 값으로 가게 계속하시라고 했는데

 

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이가 계속 잠을 자서요

 

서태수 씨를 만난 게 이틀 전인데요

 

(미정) 네

 

그저께 퇴근해서 와보니까 자고 있더니

 

지금까지 계속 자거든요

 

어디 아픈 건 아닙니까?

 

아니요, 열도 없고 깨우면 깨는데

 

자꾸 내버려 두라고 해요

 

[한숨 쉬며] 지안이는 돌아왔습니까?

 

아니요

 

[깊은 한숨 쉰다]

 

[전화 연결음]

 

(고 박사) 웬일이야? 바쁜 놈이 대낮에

 

고 박사

 

나 요즘 왜 이러냐?

 

외롭다

 

(재성) 화도 나고

 

(재성) 허무하고

 

(재성) 허하고 그래

 

(고 박사) 또

 

(재성) 마음이 이렇게 헛헛할 수가 없다

 

[재성이 어이없어하며] 야

 

나 막 눈물도 나려고 그래

 

(고 박사) 또

 

그러다

 

울컥울컥 화도 나고

 

갱년기라 그래

 

갱년기?

 

뭐...

 

다른 일 있는 것 아니고?

 

(고 박사) 너처럼 감정 잘 참고 인내하는 놈이 그 정도면

 

(고 박사) 평상시와는 다른

 

널 건드리는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야, 너 지금 나 환자로 대하는 거냐?

 

나 친구로 차 한잔하러 온 거야

 

온 김에

 

환자하고 가

 

환자하려면 너한테 다 털어놓아야 하잖아

 

너

 

무슨 일이 있기는 있구나 너?

 

다음에

 

[잔기침하며] 흠

 

(재성) 참

 

사람이 2박 3일 이상 안 깨고 계속 잘 수가 있어?

 

아니, 누구 얘긴데?

 

그냥 아는 사람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계속 잔다는대

 

뭐 대뜸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무의식이 깨고 싶지 않을 때

 

그런 경우가 있어

 

깨고 싶지 않다고?

 

깨면

 

뭐,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다른 현실이 있다든지

 

너무 고통스러울 때

 

(고 박사) 잠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고 박사) 드물게 있어

 

그래?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재성) 회장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오신 겁니까?

 

너희들 부부 사고 쳤다며?

 

[호통치며] 서지안이 내 손녀가 아니라면서?

 

이 사람한테 듣고 오신 겁니까?

 

명희가 하와이에 온다고 했다잖아?

 

일도 없이 갑자기

 

(노 회장) 노명희가 그럴 앤가?

 

이거 무슨 일이 터졌구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이 터졌어

 

그래서 내 퇴원하자마자 나 혼자 날아왔어

 

다 말씀드린 거야?

 

(노 회장) 자네 이 와중에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가?

 

대형 사고야

 

대형 사고는

 

무조건 수습이 먼저야

 

대책, 대책!

 

대책을 어떻게 세우셨습니까?

 

[선태가 큰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안) 들어가세요 [기계 소리가 시끄럽다]

 

[기계 작동 소리]

 

[기계 작동 소리 계속]

 

[기계 작동을 멈춘다]

 

(지안) 지금 하시는 건 뭐예요? 처음 보는 사이즈인데

 

(소장) 음, 선우 실장 쇼핑 몰에서

 

인테리어 부자재까지 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이거 욕실의 수납장 샘플로 만들어 보려고

 

네

 

(소장) 오늘 늦게 퇴근할 거면

 

하나 만들고 가

 

제가요?

 

아니 어제 나 도우면서 봤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소장) 어?

 

마감재 전까지만 해 봐요

 

네

 

[낮은 한숨 쉰다]

 

[익살스런 음악]

 

(유 비서) 제가 가서 전달하고

 

수령증 받아 와도 되는데

 

아니야, 아냐

 

(도경) 내가 갈게

 

유비, 내가 미친 거 같지?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뭡니까?

 

걱정, 책임감

 

도의적 배려?

 

[한숨 쉰다]

 

불길하다 진짜

 

[기계 작동 소리]

 

[잔잔한 음악]

 

[두드리는 소리]

 

[탁탁 두드리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드릴 소리]

 

[사포질하는 소리]

 

[낮은 한숨 쉰다]

 

[망설이며 한숨 쉰다]

 

(수아) 아직도 주무시네

 

[한숨 쉬며] 안 되겠다

 

깨워봐야겠어

 

(지태) 아버지

 

(지태) 아버지

 

(수아) 아버님

 

(수아) 어디 편찮으세요?

 

[지태가 한숨 쉬며] 아버지

 

(지태) 좀 일어나 보세요 저하고 병원 가요

 

[기운 없이] 괜찮아

 

아, 좀 일어나세요 지금 며칠째 정상이 아니잖아요

 

괜찮다고

 

(지태) 수아야 아버지 좀 일으켜 봐

 

[태수를 일으키며] (지태) 아버지, 아휴

 

(지태) 일어나세요, 병원 가게

 

냅둬

 

아휴, 일어나세요, 좀

 

[큰소리로 역정 내며] 무슨 상관이야, 네가!

 

[충격의 효과음]

 

[소리치며] 무슨 상관이냐고, 네가?

 

[한숨 쉬며] 아휴, 왜 안 와?

 

[놀라며] 어휴, 지안아

 

[지안과 도경 번갈아 한숨 쉰다]

 

(지안) 남의 이름 막 부르시는 분

 

(지안) 여기서 뭐해요?

 

날 기다릴 리는 없고

 

너 기다린 거야

 

그럴 리가?

 

얼굴만 알지 다시 볼 이유 없는 사인데

 

[봉투를 꺼내는 소리]

 

(도경) 이거 전해주려고

 

(도경) 핸드 앤 프린팅 공모에서

 

네가 그린 오리 그림이 1등으로 당선됐거든

 

그 상금 전해주려고

 

그래요?

 

그래, 아니면 뭐 하러 왔겠어?

 

난 그 그림 공모에 안 냈는데

 

내가 올렸어 귀엽게 잘 그렸길래

 

참, 쓸데없는 짓 잘하신다니까

 

[타이르듯] 화 좀 그만 내라

 

말귀도 못 알아들으시고

 

화난 거 아니면 왜 빈정대?

 

어이없어서 빈정대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최도경 씨?

 

(지안) 해성 어패럴은 직원이 최도경 부사장 한 명인가?

 

부사장이 공모에 내지도 않은 퇴직 직원한테

 

공모 당선금을 주러 오시네

 

수령증이 필요해서 왔을 뿐이야

 

(도경) 마케팅 다른 직원 보냈으면 좋았겠니?

 

너 이런 꼴 보이기 싫어서 내가 온 거야

 

줘요 그럼, 상금

 

1등이구나

 

그렇더라

 

난 관여 안 했다

 

근데 왜 5백만 원이에요

 

회사에서 주는 거면 세금 4.4% 떼고

 

478만 원이어야 하는데

 

[도경이 당황하며] 아, 그...

 

왜 자꾸 핑계 만들어서 나 보러 오지?

 

아직도 나 좋아하나? 그거 곤란한데

 

앞서 가지 마

 

앞서 가긴요

 

내가 머무는 집까지 알아놓고 숨어서 기다리잖아

 

(지안) 의심 받기 싫으면 의심 받을 행동하지 마요

 

안 보고 싶댔잖아 왜 자꾸 오는데?

 

네가 걱정돼서 그냥 못 있겠어 신경 쓰여 죽겠다고

 

아휴, 또 그런다

 

왜 그렇게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자꾸 흘리죠?

 

실수는 한 번이면 되는 거 아닌가?

 

[타이르듯] 지안아

 

감정에 대한 책임은 두려우면서 마음은 쓰이나 보네 그때처럼

 

내가 뭐 하잘까 봐 겁나서는

 

그때 겁먹었지? 내가 좋아한다고 할까 봐

 

(지안) 내가 미쳤어요?

 

당신 집안 어떤 곳인지 아는데

 

설마 재벌 3세가 잠시 흔들린 감정 끄트머리 잡고 매달리게?

 

(지안) 혼자 착각하고 안 해도 될 말 해가면서

 

미리 삼십육계 줄행랑친 비겁한 사람이 당신이야

 

인정한다

 

내가 비겁했어

 

그랬던 사람이 날 신경 써?

 

어디서 신경 쓰는 척이야?

 

그날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미안하면 오지 말라고

 

나 신경 쓰지 말라고요

 

네가 지금 정상이 아니잖아

 

뭐라고요?

 

취직도 안 하고 집에도 안 가고

 

바닷가에서 허드렛일 하고 있고

 

(도경) 또 여기서 나무나 자르고 있고

 

(도경) 자포자기로 보여

 

그래서 신경이 쓰여

 

내가 신경 쓰이는 거 보기 싫으면 집으로 가

 

(도경) 너희 아버지가

 

널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당장 네 아버지 모시고 너 있는 데 데리고 오고 싶었어

 

너 죽었을까 봐 걱정하시는 분한테

 

무사하다고만 전했어

 

[나지막히] 그게

 

너였어?

 

[긴장감 고조]

 

[흥분하며] 우리 아버지한테 나 이 동네 있다고

 

말한 게 너였어?

 

[언성 높이며]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뭔데? 네가

 

[소리치며] 네가 뭔데 나서? 네가 뭔데 아는 척이야?

 

[광분하며] 네가 뭔데 아버지한테 내가 이 동네 있다고 말해?

 

네가 뭔데!

 

[놀라며] 지안아?

 

너하고 쌓인 인연 때문에

 

찾아온 너 만나주고 변명 들어줬는지 알아? 아니!

 

통과 의례한 거야 네가 어떤 인간인 줄 아니까

 

[계속 흥분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면서

 

다른 사람 감정 따윈 무시하고 찾아올 거니까

 

하고 싶은 변명 다할 때까지 올 거니까

 

[소리치며] 그게 최도경다운 짓이라고 생각할 걸 아니까!

 

내가 안 간 건데

 

내가 안 만나고 싶은데 왜 네가 만나게 해? 네가

 

[울부짖으며] 네가 뭔데 내 인생에 끼어들어? 다 끝났는데!

 

[놀라며] 지안아

 

최도경 너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 앞에

 

그 얼굴

 

두 번 다시 안 보고 싶으니까

 

[구슬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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