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28
합시다
결혼
결혼이야 원래 하기로 했던 거고
약혼은 왜 생략해요?
약혼 거치고 싶어요?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약혼 생략하는데
우린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래요?
그건 아니죠
약혼 생략하면 주위에서 말 나와요
내가 사고쳤든지 오빠가 사고쳤든지 둘 중 하나니까
구설수에 오르겠네
순서에 맞춰서 약혼부터 해요
뭐, 그래도 상관없고
가세요 그럼
미국 들어가기 전에 연락해요 그럼
네
(혁) 앉아서 쉬라니까? 내가 금방 해
(지안) 같이 해야 빨리 끝나지
고등학교 때 생각난다
(지안) 뭐?
나 청소 당번일 때마다 네가 와서 도와줬던 거?
오, 기억하는군
(지안) 기억이란 게 참 신기해
까맣게 잊고 있었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단추 하나가 생기니까 막 꼬리를 물고 나오네
[잔잔한 음악]
(도경) 다녀왔습니다
(명희) 소라는 어땠니?
잘 만났어?
재밌게 잘 만났습니다
너하고 잘 맞을 거 같으냐?
밝게 잘 컸어요
언제 들어간데? 가기 전에 또 만나기로 했니?
나중에요 어머니
추운 데 있었더니 감기 기운이 올라오네요
약 좀 먹고 쉬어야겠어요
[권투 기합 소리] 이쪽, 라이트, 으이야 [잔잔한 음악]
킥! 햐! 나이스!
원, 투!
라이트!
으짜! 킥!
으짜!
그렇지! [거친 호흡]
[강한 기합 소리]
으악!
(코치) 아, 발이 상당히 맵네
(코치) 남구형
뭔 일 있는 거 아니죠?
하!
[숨을 거칠게 쉰다]
- 저기요 - (종업원) 네
이것 좀
[잔잔한 음악 계속]
[음악 소리 잦아든다]
(혁) 어, 누나, 벌써 청소를 다 했어?
어, 좀 일찍 나왔어
그리고 이젠 너도 나오지 마 나 혼자 할 수 있어
안 그래도 알바생 오면 청소 넘기려고 했지
언제부터 나오기로 했어?
어, 아직 결정 안 했어
커피부터 내려줄게
아메리카노 네 잔
(희) 어
누나
(혁) 왜 빵이 바뀌었어
(희) 어
빵집에서 이제 납품 안 한대
바쁜가 봐
그래?
잘됐어
전에도 말했지만 빵 분위기 바꿔보고 싶었거든
그래도...
[언성 높이며] 내가 알아서 해
[겸연쩍게 웃는다] 허
이젠 나한테 맡겨 봐도 되지 않아?
독립시켜 달라고
알았어
이제 누나 보호자 안 해도 될 것 같네
누나 많이 변했어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니까
너도 목공소에 가서 마실 거지?
응
[기계음]
모닝 커피 배달이요
어우, 선우 실장 마침 잘 왔네
여기 게스트 하우스에서 수납장 주문이 들어왔는데
되도록 오늘 중으로 출고해 달라고 하네요
(소장) 안 바쁘면 조립 좀 해주고 가
조립은 쉬우니까 신입 시켜봐요
(소장) 수납장이 10개라
개수가 좀 많은데
빨리는 못 해도 해볼게요
설명서 어딨어요?
선태
- 설명서 - (선태) 설명서 이쪽에 있어요
[밝은 음악]
(혁) 야, 서지안
네가 이거 포장까지 한 거야?
어, 선물이라며?
땡큐
안녕하십니까?
[지수가 반가워하며] 어, 안녕하세요
(남구) 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주문하신 장미목 도마 드리려고요
(혁) 이건 방장님 거
(혁) 이건 지수 씨 거
어, 저 주문한 적 없는데요
나도 주문한 적 없는데
방장 형님 거 만들면서 같이 만들었어요
이제 빚 갚은 겁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 (남구) 어디 한번 볼까? - (지수) 와!
(지수) 물고기 모양이에요?
(지수) 와, 너무 예쁘다
[놀라며] 어?
(지수) 이니셜도 있어요, JS
이거 제 이니셜이죠?
이니셜을 새기면 더 애착이 가거든요
와, 감사합니다 평생 간직할게요
아니 근데 어째 내 디자인은
정성이 좀 부족해보이네
무슨요, 방장님하고 딱 어울리는고만
[전화 수신음]
저기,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아...
[전화 수신음]
저,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남구) 야, 이거 솜씨 좋다, 손 실장
근데 형님
카페 빵 납품 안 하기로 하셨다면서요
왜 그러신 거예요?
누나한테 물어 봐
누나요?
아니, 카페 사장님이 제 누나인 거 아셨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한숨을 푹 쉬며] 것도 누나한테 물어봐
아이, 지아호
(지호) 누나, 누나 작은누나
왜, 왜, 왜?
[놀라서] 헉
저런 면이 있네
아휴
왜, 왜 빨리 말해
큰누나 돌아왔다
그거 알려주려고
왔어? 언제 왔어? 어디에 있었다니?
그냥 쉬고 왔대
아,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연락 안 된 거고
[한숨 쉰다]
엄마, 아빠 좋겠네 친딸 돌아와서
집엔 안 갔어 무슨 셰어 하우스에 있대
집에를 안 갔다고?
응, 아, 일도 한다던데
홍대 근천가 봐 우리가 마포 쪽에서 만났거든
알았어, 나 지금 오픈 시간이라 일해야 해
나도야, 그럼 우리 쉬는 날 맞춰서 얼굴 보자
작은누나 수고
어
[통화 종료음]
치, 이봐 이렇게 금방 돌아올 건데
아빠는 괜히 오버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통화 연결음]
[전화 안내음]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에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왜 전화를 또 안 받아
[전화 연결 누름]
[전화 연결음]
왜 작은누나?
서지안 왜 또 전화기 꺼놓은 거니?
아, 옛날 번호 안 쓴대
번호 바꿨어
번호를 바꿨다고?
[잔잔한 음악]
[한숨 쉰다]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전화 수신음]
여보세요?
나야, 누군지 알지?
어
나 좀 보자
보자고, 좀
알았어, 퇴근하고 보자
[음악 소리가 잦아든다]
뭐냐?
내 걸 네가 시킨 거야?
바빠서 미리 시켜 놨어 먹어
바쁜데 왜 점심 먹자는데?
궁금해서 널 안 보고는 일 못 할 것 같아서
오늘 아주 중요한 회의 거든
유치한 관음증 있었냐?
뻔한 걸 뭘 궁금해 해?
뭐가 뻔한데?
장소라
예쁘고 쾌활하고 집안 좋고 학벌 좋고 교양 있고
안 좋아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잖아
예쁘냐?
네 사촌하고 찍은 사진 봐놓고 물어
서지안 씨 말이야
예뻐서 좋아했어?
[한숨 쉰다]
[잔에 내려 놓는다]
장난치지 마라
그럴 기분 아니니까
장소라는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지
인정해,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장소라니까
이제 노선 확실해 진거냐?
그래, 이 잔인한 놈아
[껄껄 웃는다]
근데 말이다, 도경아
예쁜 것 빼고
집안, 학벌, 교양 다 그저그런 서지안 씨를
넌 왜 그렇게 좋아했던 거냐?
좋아한 거냐
좋아졌던 거지
그럼 서지안 씨는
지금은 정리 가능해진 거지?
네가 궁금한 게 이거였냐?
장소라하고 어땠는지가 아니라 이거였어?
어, 삐끗했다간
네 25년 지기 베프 인생이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으니까
천국 버리고 지옥 선택하는 놈도 있냐?
[큭큭 웃는다] [전화 수신음]
[장난스럽게] 천국이다
실없는 놈
네, 최도경입니다
지금?
오후에 일정 있는데
(소라) 취소하면 되죠
[살짝 웃는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도경) 아니 스케이트장 앞에서 보자고 해서
설마했는데
늘 설마가 사람 잡죠?
270, 75, 80
사이즈 셋 중에 하나는 맞죠?
여기 빌려줄 텐데
남이 신던 걸 왜 신어요?
오빠, 은근히 의외성 있어서 좋다
270 빼고 나머지 두 개는 환불합시다
그럴 거예요 그런다고 하고 샀어요
(도경) 다행이네
대책 없는 기분파 아니라서
대책 없는 기분파 맞죠 일하는 사람 불러냈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대책 없이 기분 내고 싶었는데?
음...
신데렐라 컴플렉스가 있는 여자들의 판타지죠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와 줄 수 있는 남자
아니, 위 레스토랑에서 친구랑 밥 먹는데
아이스링크 뷰였거든요
사람들 타는 모습 보니까 너무 타고 싶은데
친구랑 탈 순 없잖아요 이 나이에
불러낼 오빠도 있는데
불러내서 왔으니 타는 것까진 해야겠네
[사각사각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소리]
초등학교 때 타고 안 타서 [도경이 웃는다]
(도경) 하나, 둘
무게 중심을 살짝 앞으로
[소리 지르며] 앗!
[두 사람 같이] 앗!
[로맨틱한 음악]
소라 씨 여기저기 욱신거릴 거니까
집에 가서 좀 쉬어요
그 여자
세컨드로 둘 거예요? 정리할 거예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우리 결혼하면 바로 아이 낳아야 하잖아요
적어도 다른 여자 흔적 묻히고 들어오는 건
아니지 않나
몸에든, 마음에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오빠한테 있잖아요
아주 사랑하는 여자
[잔잔한 음악]
[어이없어한다]
원래 넘겨짚는 거 좋아하나
저 그렇게 경솔하지 않아요
어제 오빠 만났을 때
눈빛에서 느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 확인해 봤어요
뭘?
스킨십
저 사실
초등학교 때 피겨 스케이트 선수였어요
잠깐 차 좀 세웁시다
(소라) 어, 아니요 그냥 가세요
[차 깜박이 소리]
차 세우면 진짜 심각해지는 느낌이라
스킨십에 지나치게 절도 있던데요
나하고 스킨십에 거부감 있었어요, 오빠
(소라) 남자가 그 정도면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거죠
난 쇼윈도로 살고 싶진 않거든요
넘겨짚는 게 좀 심한 거 같은데
오빠 오늘도 나한테 계속 소라 씨라고 했어요
그 여자한테도 씨를 붙여요?
[잔잔한 음악 계속]
[문이 열리는 소리]
(기재) 무슨 일이야? 장소라 만난다더니
우리 창립 기념일 이벤트장에서 너 뭐라고 그랬냐?
다시 말해 봐
아, 무슨 소리야?
내가 서지안 쳐다보는 눈빛이 어땠냐고?
네가 그때 뭐라고 그랬잖아
그때?
(기재) 찡그렸다 애잔했다가 웃었다가
넋이 나갔던데
그때 그랬어 너 근데 그건 왜?
내가 정말 그 정도로 그랬냐?
장소라 만나러 가선 왜 달려와서 서지안 얘기를 묻는데?
장소라가 내가 여자가 있단다 사랑하는 여자가
그 여자부터 정리하고 오라더라
그걸 어떻게 알았데?
내 눈빛 보고 내 눈빛에 써있데 여자 있다고
아, 장소라 미국 가서 신내림 받고 왔다니?
그러니까 장소라가 어떻게 안 거냐고?
내가 어때 보였길래
대체 어땠길래 장소라한테 들킨 거냐고
도경아
왜?
너 방금 장소라한테 들켰다고 했다
뭐?
[애잔한 음악]
[한숨 쉰다]
(지수) 왜 물어보지도 않고 내 거 시켜?
내가 뭐 마실 줄 알고
카페 모카야
별 걸 다 기억한다니까
얘기해
입술 닦고
해, 이제
집에는 왜 안 들어가?
네가 하고 싶은 얘기해
나한테 질문하지 말고
질문하러 나왔는데 질문 하지 말래?
나에 대한 건 묻지 마
너하고 상관 있는 거면 대답할게
네가 아닌 거 알고 왜 바로 나한테 말 안 했어?
널 믿지 못했어
네가 알면
그쪽 부모님들 말려 줄 수도 있지만
배신감에 더 난리 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네가 날 때렸던 거 보면 틀린 생각 아니었어
내가 널 때린 건
네가 날 믿지 못해서였어
나한테 먼저 말했으면 둘이 같이 해결할 수 있었다고
우리 엄마, 아빠가
이미 너 대신 날 그 집에 보냈는데?
배신감 안 들었어?
엄마, 아빠 이해했어?
이해했는데 그 집에 들어갔어?
내가 그 집에 간 건 너처럼 돈 때문에 간 게 아니야
더 할 말 남았어?
떠나기 전에 너
나만 만났다며?
왜 나만 만났어?
그날 나만 만났다며?
[슬픈 음악]
어
너만 만났어
왜 나만 만났어?
그게...
이제 와서 궁금해?
그날은 안 궁금했어?
그날은 내가 충격 받아서 정신이 없었잖아
그날은...
너만 만날 이유가 있었어
너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
근데 지금은 아니야
이제 말할 필요 없어졌어
그날 하려고 했던 말이 뭔데?
이제 말할 필요없으니까 안 할 거야
무슨 그런 말이 있어?
더 할 말 있어?
대답 안 했잖아
간다
[다급하게] 언니
언니라고 부르지 마
네가 언니야
알아?
최은석 3월
서지안, 서지수 12월
네가 한참 언니였어
3분 언니인 줄 알고
내가 너하고 같이 산 25년 동안 언니 노릇했는데
사실은 네가 언니야
그러니까 다시는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마
[울먹이며] 연락을 하지 말라고?
내 얘기 한마디 듣기도 전에 내 뺨 때렸을 때
끝낸 거 아니었어?
난 그날 너랑 나 끝이구나
알았는데
(지안) 내가...
해성 딸인 줄 알고 너희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너 나한테 끝이라고 했지
절교라고 했던가?
나는 돈 때문에 들어간 게 아니라니까
네가 뭐 때문에 들어갔던 상관없어
그 애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
너하고 나
이제 아무 사이 아니라는 거
말해주는 거야
남이라고, 이제
[울면서] 알아
알아 나도
[흐느끼며] 그래서 내가 먼저 너희 집 떠난 거야
[떨리는 목소리] 잘 지내, 그럼
[서글픈 음악]
[잦아드는 음악]
[잔잔하고 밝은 음악]
- (거래처) 쭉 들이키세요 - (태수) 한잔하시죠
고맙습니다
어, 하
크
[웃는다]
어휴
[물소리]
아휴
[심호흡한다]
(지안) 어, 되게 비싸겠다
(지수) 어휴, 이거는
[다같이 떠든다] (지수) 너무 예쁘지 않아?
[다같이 즐겁게 떠든다]
(태수) 아, 그러니까 이 사장
(태수) 나도 어음 부도는 처음이야
오늘 결제를 해야
남미 원단 수출 선적한 거 그거 출발할 수 있어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다음 주에 바레인에서 대금 들어오면 바로 갚을게
(지안, 지수) 아빠, 다녀오셨어요
(지수) 아빠, 있잖아, 다음 주에 스키장 가는데 스키복 사주라
나도 보드복 작아졌는데
어 그래, 알았어 사줄게
- (지수) 아싸 - (지안) 감사합니다
[잦아드는 음악]
[나무 두드리는 소리]
(소장) 음, 왜 다시 와?
뭐 빼먹고 갔어?
아니요
어, 이건 조립이 아니네요?
응, 이건 주문 제작
(소장) 일 끝나고 달리 할 일 없을 때
심심풀이로 만들다가
쇼핑몰 특별 코너에 올려 팔면
(소장) 부수입도 챙기고
네
디자인도 하시는 거예요?
응, 디자인은 선우 실장이 하지
심심할 때 이상한 걸 그려가지고는
툭 던진다니까
어, 이거 북미산 호두나무네요
이거 고급 목재잖아요
나무 좀 볼 줄 아는 신입
(소장) 심심하면
이 의자 좌판 사포질 좀 해주겠어?
네
소라 양이 그래요?
[웃는다]
도경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하죠
그럼 소라 양 가기 전에 부부 동반으로 식사하시죠
(지수) 다녀왔습니다
네, 그럼, 도경이 통해 날짜 잡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지수야
(명희) 이리 좀 와서 앉아
내가 너 정말 이해하고
적응할 때까지 시간 주고 싶었는데
도저희 안 되겠다
뭐가요?
어디 길에서 그런 걸 먹어? 스물 여덟이나 먹은 애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요
스트레스 쌓이면 뭐 막 먹거든요
먹어도 집에서 먹어야지
[한숨 쉬며] 너
기본 교양 교육 좀 받자
기본 교양 교육이요?
그동안 네가 살아온 방식을 넌 편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근데 편한 거하고
교양 없는 거하고 혼동하는 것 같아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교양 없는 거예요?
당연하지
어쩜 달라도 이렇게 다르니
차별을 해도 너무 차별해서 키웠어
누가요?
저희 엄마가요?
그래, 양미정
아니거든요
엄마, 저 차별해서 안 키웠어요
어떻게 차별이 안 돼? 친딸이 아닌데
서지안을 너 대신 보낸 거 보면 몰라?
친딸 호강시키고 싶어 그런 거잖아
그건 그랬지만
저 차별해서 키우진 않았어요 정말
진짜 아니에요, 그건
(명희) 내 핏줄이 아닌데 똑같을 수 없어, 인간은
너한테 잘해준 게 아니라 놓아 먹인 거지
너 전문대 보낸 거 보면 몰라?
네 성적은 신경도 안 쓰고
아니라니까 그러세요? 아니라고요
[흥분하며] 우리 엄마가 얼마나 나 공부시키려고 했는데요
내가 머리가 안 좋아서 공부 못한 거예요
네가 왜 머리가 안 좋아?
머리가 안 좋으니까 공부를 못했겠죠
오빠하고 서현이 아이큐가 몇인지 아니?
우리 엄마요
아빠 망하기 전까지 나만 과외 시켰어요
국영수 세 과목
한 달에 50만원씩 150만원씩 과외비 썼어요
나만 시켰어요 내가 공부 못해서
지안이는 원래 공부 잘해서 미술 학원만 다녔고요
레슨은 고 2때부터 시켜준다고 했어요
[의외라는 듯] 사실이야?
(지수) 그거뿐인 줄 아세요?
제가 워낙 먹성이 좋아서요
수입 소시지에 수입 쿠키에 말린 망고까지
항상 안 떨어지게 사다 주셨어요
[울먹이며] 그리고요, 우리 엄마는
지안이랑 나 비교도 안 했어요
언니보다 공부 못한다는 말 한 번도 들은 적 없고요
언니 옷보다 내 옷을 더 많이 사줬어요
[울면서] 뭐든
나한테 더 잘했는데
주어온 게 미안해서 그랬나
[지수가 훌쩍인다]
화나서 갔어도
한 일주일 후에는 연락할 줄 알았는데
핏줄 찾더니
부잣집에서 좋은가 보다 우리 지수
아휴
미친년
내가 미친년이지
[태수가 소리치며] 야, 양미정
더 이상은 날 못 믿겠다고?
돈 잘 벌면 믿고
돈 못 벌면 못 믿는 거냐?
(태수) 당신한테 사업 망하기 전까지 난 없는 거야?
망한 게 불과 10년 전이야 10년 전
[오열하며] 내 자식한테
[큰소리로] 나 같은 가난 대물림하기 싫어서
결혼 안 해
야, 지태 인마
너 가난해지기 전에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냥 편하게 다녔잖아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날마다 죽고 싶었어 내 노력만으로 안 되는 세상이에요
그 세월을 나도 살았어
나도
내 노력만으로 되는 세상이 아니었어, 이놈아
아무도 나오지 마
누구도 나 배웅할 자격 없으니까
지수야
너를 데려와서 미안하다
너를 내 딸로 삼아서 미안해
그래도 25년은 내 딸이었는데
한 번은, 단 한 번은 내 말을 들어줄 수 없었던 거냐?
[한숨 쉬며] 나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노력만 했는데
노력만 했는데
불과 10년인데
양미정
당신한테 24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냐?
[큰소리로] 서지태
너한테 23년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서지안
너한테 17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냐?
지수
너도 그래 인마
살아있는 너보다 죽을 것 같은 지안이를 걱정한 건데
그게 부모 마음인데 이놈아
[울면서] 도대체 뭘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이
[한숨 쉰다]
[혀를 찬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너희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
그래
나 못난 아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지태) 소형 냉장고 하나 사자
(수아) 나도 그 생각했는데
우리 작은 냉장고랑
커피 머신이랑 전기 주전자
이 세 개만 사면
우리 완전히 따로 사는 거랑 마찬가지야
아래층에 안 내려가도 돼
샤워할 때만 빼고
사 그럼
자기 그거 알아?
뭐?
우리 같이 부모 복 없는 사람들은
독해져야 되는 거
장남 컴플렉스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어
(수아) 자기 얘기하는 거 아니야
자기 포함 나 포함
부모 복 없이 태어난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족들 다 신경 쓰다가는
우리 인생 못 살아
그렇긴 한데
받은 사랑이 있고 든 정이 있으니까
독해지기 쉽지 않아
[옅은 한숨]
새삼 느끼는데
자기 부모님 보면
우리 아기 안 낳기로 한 거 정말 잘한 거 같아
그건 동감이야
설거지하고 커피 타다 줄게
설거지 같이 해
[잔잔한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재성) 지수야, 아빤데 좀 들어가도 되겠니?
들어 오세요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자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아직 자진 않았어요
너 내일 빵집 쉬는 날이지?
네
그럼 나하고 데이트 좀 하자
아...
쉬는 날이긴 한데 볼일이 있는데요
점심, 저녁 다 약속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한 끼만 내줘
점심, 저녁?
점심이 낫겠어요
오케이, 빵 좋아하니까 파스타, 피자, 또 뭐가 좋을까?
아무거나 괜찮아요
[새 지저귀는 소리]
(서현) 은석 언니는 아직 자나 봐요
(재성) 쉬는 날이라더라
저한테는
수업 없는 날에도 무조건 8시에는 일어나라고 하셨잖아요
서현이 너
언제부터 그렇게 말대꾸를 했니?
죄송해요
참, 도경아
아무래도 네가 좀 나서야겠어
지수 좀 다독이고 이끌어줘
당장 행동은 못 바꿔도
마음가짐은 해성가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네요
내버려 둬
딸 마음 여는 걸 부모가 해야지 오빠가 하나?
근데 참 그건 어떻게 됐어요?
창립 기념일에 은석 언니 찾았다고 공식 발표하기로 했는데
그때는 서지안 언니 케이스였잖아요
너한테 말을 못했구나
우리 창립 기념일 행사 원래 기념일로 옮기기로 했다
은석이 찾았다는 발표는 없을 거야
원래 기념일이 언제예요?
넌 그것도 모르니?
12월 7일이잖아
[놀라며] 12월 7일이요?
그날 저 졸업 연주회인데요
[긴장된 음악]
그럼 어머니, 아버지 못 오시는 거예요?
오빠도요?
미안하다, 서현아
근데 할아버지 뜻이라 어쩔 수가 없어
끝나는 시간 보고 늦게라도 꼭 가마
그날 소라 언니 어머님하고 뉴월드 어머니도 오신다고
연습 열심히 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분들도 못 오시는 거예요?
우리 가족들이 못 가는데
그분들만 가시라고 하기는 어렵지
미안하다, 서현아
[훌쩍이며] 근데
어떻게 제 졸업 연주회를 잊으실 수가 있어요?
집안에 더 큰일이 있었어
그거 모를 나이니?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속상한 듯 한숨]
(민 부장) 부사장님
이거, 서지안 씨 가방이거든요
지안이 가방이라니요?
서지안 씨가 여기서 나가던 날
가방을 놓고 가셔서 제가 챙겨뒀거든요
가방을 놓고 갔다고요?
[큰소리로] 민 부장!
이 아이 끌어내!
[부드러운 음악]
[한숨 쉰다]
지갑도 없이 나가서 인천에서...
[한숨 쉰다]
네 핸드폰부터 돌려줄게
[낮게 한숨 쉰다]
좋은 아침입니다
(혁) 선태, 오늘 바쁘냐?
(선태) 아, 저 오늘은 18T 집성목 제품들만 주문 받아서 여유있어요
그럼... 소장님
저 서지안 씨랑 외근 좀 다녀오겠습니다
(혁) 오늘 용국 선배하고 부자재 시장 조사 가기로 했었는데
(혁) 형이 어젯밤부터 체해서
여태 아프다네
혼자 갈 수는 없고 같이 다녀오자
신입이 같이 좀 가줘
(혁) 소장님께 허락도 받았겠다
얼른 준비해서 출발하자
그래 그럼
(혁) 바닥 베이스가 좋아야 가구도 빛을 발하거든
(지안) 사업 확장 크게 할 모양이네
고객들이 점점 원하더라고
한곳에서 인테리어 다 했으면 좋겠다고
저 이거, 샘플 준비해주신다고 했는데
네, 실장님 테이블에 갖다 놓았어요
(직원) 방금 보신 것보다 강도가 높은 거예요
아, 원목 느낌의 터치감이네요
[똑똑 두드린다]
단단해서 찍힘이나 충격에도 강한 편이죠
[똑똑 두드린다]
이거 색깔별로 샘플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나무별로 모아 놓으니까 느낌이 색다르다
난 여기에 원목 느낌의 마루나 소품도 추가해 보려고
조명! 조명도 나무로 만들면 예쁘겠다
넌 옛날에도 나무 조명 좋아하더니
내가? 그랬어?
기억 못하네
배고프다 점심 먹으러 가자
[후르륵 먹는 소리]
(혁) 돌아왔네
응?
(혁) 푹푹 잘 먹는 거
(지안) 이 국밥집 국물이 60년된 거야
(지안) 3대째 하는 집이야
할아버지 때부터 단골이라고 아빠가 좋아하셨어
(혁) 3대?
[감탄하며] 야, 나도 내 자식까지 나무 만지면
3대째 목수인데
아 맞다, 아버지 목수하셨다고 했지?
우리 아버지
술독에 쩔어 사는 한물간 목수였잖아
아버지, 지금 뭐 하시는지 물어봐도 돼?
일하셔
(지안) 아...
따로 산다고 했지
(혁) 억지로 누나 시집 보냈거든
그랬다가 누나 결혼 실패하고 돌아오니까
따로 나가셨어
아버지도 혼자 지내보고 싶으시대
나 의지해서 산 거 미안하다고
그렇구나
(민 부장) 아가씨
네
(민 부장) 부회장님이 차를 보내셨습니다
벌써요? 저 머리 말려야하는데
대기하는 거니까 천천히 준비하고 내려오세요
[걸어오는 소리]
아버지가 왜 차를 보냈어요?
어, 점심 먹자고
[한숨 쉬며] 아휴
진짜 너무한다
나한테는 그러신 적 없는데
(조 과장) 어, 창립 기념일 행사 7일로 바뀌었네
(양 대리) 주말에 직원들 쉬게 하려고 일부러 평일로 옮긴 거래요
(이 부장) 경기가 나빠서 축소한 거지
비용 절감 차원에서
[활짝 웃으며] 앗싸, 주말에 쉴 수 있겠다
경민 씨, 왜 이렇게 좋아해?
아, 하정 씨 만나려고
에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럼 그 주말에 나랑 같이 북한산 가실 분?
[코믹한 음악]
(경민) 아 네, 여기 해성 어패럴 마케팅 팀인데요
(경민) 김 팀장님, 그 있잖아요 파일 그거 잘못된 거 같은데요
네, 마케팅 팀입니다
(양 대리) 아, 네 그때 부탁드렸던 그 디자인이요?
(이 부장) 됐어, 혼자 갈 거야
일들 해
여보
(진희) 이상하지 않아?
아니, 아버지가 해성 그룹 40주년 행사에
얼마나 의미를 뒀는데 기념식을 축소해요?
은석이 찾았다는 발표를 안 하려는 거지
왜?
그걸 모르겠어 [한숨]
대체 왜 그러는지
그러고 보니
은석이는 어디 보낸 걸까요?
(진희)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여쭤 봐도
언니랑 똑같이 쉬러 보냈다는 소리만 하시고
장인 어른 속을 누가 들여다 보냐?
백년 묵은 간장독 같은 양반을
슬쩍 기자한테 흘려볼까? [명수가 혀를 찬다]
관둬
지난번 일도 당신 짓인걸
회장님 다 알면서 왜 넘어가 줬는지 몰라?
알아요
한 번 더 까불면 죽는다는 경고
창립 기념일까지 기다려보자
(명수) 뭔지 모르지만
그날이 디데이인 건 확실하니까
[의심스럽다는 듯 한숨 쉰다]
감사합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시켜봤어
골고루 먹어 보자
혹시...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해?
드라마 보면 꼭 이렇게 룸에서 식사할 때
은밀한 얘기하잖아요
누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요
누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는 아니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어서 룸으로 예약을 했다
그게 뭔데요?
배 고프지 않아? 난 좀 시장한데
아, 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음, 맛있네
[호르륵 먹는 소리]
(재성) 우리 집이
많이 불편하고 낯설지?
네
사실은
나도 네가 낯설다
키우지를 않았고
같이 살아보지 못해서 그런가 봐
네
저는 기른 정이 나은 정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낯설어도 네 엄마, 아버지다
네가 낯설지만 넌 우리 딸이야
네
그래서 그 증거를 보여주려고
(지수) 이게 뭐예요?
열어 봐
네 납골함에 있던 것들이야
납골함요?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너 잃어버리고 3년 후에
네가 죽었다고 믿기로 했어
(재성) 어머니 충격이 너무 커서
할아버지 지시로 네가 쓰던 방의 문은 잠겼고
네 사진은 모두 불태우셨다
나 혼자 널 그리워할 장소가 필요했어
그래서 납골함을 만들었어
[나지막히] 네
[덮개를 여는 소리]
(재성) 그리고
(재성) 가끔 네가 그리우면 거길 갔지
해마다 네 생일 3월 17일엔
생일 선물을 들고 갔고
(재성) 7살 딸은 뭘 가지고 싶어할까?
(재성) 여중생이면 mp3를 갖고 싶어하지 않을까?
(재성) 여고생이면
(재성) 슬쩍 화장도 하고 싶겠구나
중학생이면 자기 도장은 하나 있어야겠다
(재성) 스무 살이 넘었으니
(재성) 액세서리를 좋아하겠지
안타까운 건
(재성) 몇 살 때 선물인지 정확히 기억을 못한다는 거야
(재성) 카드는 해마다 썼는데
(재성) '우리 딸'
(재성) '스물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재성) '사랑한다, 아빠가'
은석이를
우리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안에서 꺼내온 거야
[울먹이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먹먹한 목소리] 아무 말 안 해도 된다
널...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만 알면 돼
(직원) 양미정 씨가 매장 운영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출이 좋겠지
그래도 새 점주로 교체하시는 겁니까?
못 하겠다는데 별수 있나?
우리 프렌차이즈 신청한 사람들 중에서 선별해 봐요
알겠습니다
[전화 수신음]
네, 손 여사님
[충격의 효과음]
[매우 놀라며] 네?
(손 여사) 소라도 40주년 창립 기념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네요
[당황하며] 아니
내일 모레 미국 갔다가
졸업식 끝나고 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손 여사가 웃으면서] 최 부사장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손 여사) 이번에 약혼식 올리고 들어가고 싶다네요
(손 여사) 그러니 시댁 행사에 참석하는 건 당연하고요
[더듬으며]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초대장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전화 종료음]
[전화 발신음]
아버지
큰일 났어요
뭐라고?
[긴장 고조되는 음악]
[전화 수신음]
잠깐만
네
[전화 수신음]
네, 회장님
자네 지금 당장 양평으로 와
명희하고 같이
서 씨 아저씨 나이에 원양 어선은 힘들어요
한 번 나가면 몇 달을 배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뭐 나이로 일하나? 체력으로 일하지
뭘 체력으로 하셨나 [혀를 찬다]
근면, 성실에 깡으로 버티신 거지
하여튼 제일 빨리 나가는 게 언제요? 최 실장님
한 달 뒤에요
[전화 수신음]
어, 석두야
너 왜 한국 전화번호냐?
(석두) 어, 나 인천 공항이야
너 보러 나왔다
공, 공항?
(석두) 야, 기껏 물꼬 터놓았더니
너 왜 사업을 안 하겠다는 거냐?
[입을 쩝 다시며]
하기 싫어서
할 이유도 없고
해서 뭐 하냐?
야, 돈 벌면 너 다 써
(석두) 너 사업 잘될 때 룸살롱을 한 번 가봤냐, 뭐했냐
에이, 부질 없는 소리
(석두) 야,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하자
너 한 사흘에 피죽도 한 그룻 못 먹은 얼굴이야, 인마
- (석두) 자 - 너, 너 먹어
야, 네 얼굴 보니까 목이 메어서 밥 못 먹겠다
[웃으며] 야, 이 자식 참
그래
밥 먹는다 그러니까 너도 먹어
[호르륵 먹는 소리]
아후, 얼큰하고 시원하다, 야 좀 먹어라
[태수가 속 아파 한다]
[더듬으며] 석두야, 잠깐만
야, 너 뭐 하고 온 거야?
- 어, 아니 - (석두) 속이 안 좋아?
아니 그게, 빈속에 매운 게 갑자기 들어가서 그런가 봐
아휴
아휴, 진짜 씨
어 왜 그래?
너 그냥 베트남 와라
(석두) 나하고 살자
야, 태수야
석두야
난 왜 태어난 거냐?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그랬거든
인간이 태어나는 데 다 이유가 있다고
쓰임이 있다고
근데 나는
나는 뭐 하려고 태어난 거냐?
지수를 지안이인 것처럼 세울 순 없습니다, 회장님
우리 은석이를 세우는 거야
장수석 부인하고 뉴월드 쪽에서 본 얼굴은 서지안입니다
한 번 본 얼굴이야
멀리서 보면 그게 그 얼굴이지
(노 회장) 엠제이 대연회장에서 기념식하고
외부 손님들 좌석은 제일 뒤로 미루라고 해
그리고 은석이를 단상 위로 올려서
'우리가 찾은 최은석입니다' 하고 인사만 시키고 내려보내
아버지 그건 무리예요
창립 행사는 말씀하신 이유로 축소했다고 하면 됩니다
벌써 유학 보냈다고 하면 되고요
(노 회장) 약혼식을 하고 가겠다는 아이를
창립 행사에 초대를 안 해?
그것도 오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라?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해성가 사람으로 나타나겠다는 거야
(노 회장) 설사 창립 행사를 그렇게 한다고 치자
그 전에 가족들 모임 갖자고 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코앞에다 서지수를 들이댈 텐가?
사실대로 알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딸을 바꿔치기 당했다는 걸요?
사실이잖아
그럼 도경이, 서현이 결혼 다 깨져요
깨질지, 안 깨질지 단정하지 말자고
(노 회장) 깨져
자네 이쪽 사람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모르나?
전문대에, 빵집 종업원에
막노동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
언론사들
찐득이처럼 붙어서
(노 회장) 25년 전 실종 얘기부터 파고들면서 빨아대겠지
사돈 맺어, 안 맺어?
거기다 나
손녀딸을 바꿔치기 당했다
해성 그룹 노양호가
우리 해성 그룹 개망신이야
제 딸입니다
회장님 손녀고요
[고함지르며] 해성 핏줄이야
[노발대발하며] 자네 딸, 내 손녀 이전에 해성 그룹 핏줄이라고
(노 회장) 내가 어떻게 일군 해성 그룹인데
(노 회장) 너희들 실수로 똥물 튕기는 걸
내가 보고만 있을 것 같아?
[한숨 쉰다]
최 부회장 자네
언론사 국장들 만나
(노 회장) 노 대표 자네
저 천둥벌거숭이로 들어온 우리 은석이
책임지고 교육 시켜서
단상에 세울 수 있게 해
[피식 웃는다]
(지수) 이건 몇 살 생일 때 사신 건가?
[흐뭇하게 웃는다]
으짜
(혁)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일 좀 밀렸겠는데
조립은 손에 익어서 속도 붙을 수 있으니까
내가 빨리 해볼게
나도 이거 놓고 빨리 가서 회의해야 해
서지안 씨 좀 만나러 왔습니다
(혁) 이렇게 아무 때나 불쑥
일하는 사람 직장에 찾아옵니까?
6시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왔습니다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릴게
미안한데 나 5분만 쓰고 들어갈게
알았다
주세요
퀵으로 보낼 수도 있는데
들고 왔다
그러게요 왜 그러셨데요?
내가 잘못했다, 지안아
네 말대로 두려워서 그랬어
지레 겁먹은 거였어
(도경) 나는 절대 네 사람이 될 수 없고
될 생각도 없다고 생각했어
네 입에서 오빠 좋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내가 못 버티고 무너질 것 같아서
비겁하게 굴었어
널 다시 만나자마자
이 말부터 해야 했는데
잘못했다고
그 말을 못 했어
또 겁이 나서
지키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겁도 많아져요
잃어버릴까 봐
가지고 싶은 게 많으면
비겁한 걸 용기라고 생각하고요
못 가질까 봐
- (도경) 근데... - 고마워요
가족 문제까지 포함하면
어떤 수모도 당하는 게 당연한 거고
우리 둘...로만 보면
상처 받았던 거 사실이니까
그 사과 고맙게 받을게요
고맙다
사과 받아줘서
안녕히 가세요
(도경) 나...
또 올지도 모른다
아니...
또 올 거 같아
그건 안 되죠
(지안) 이제 진짜 남은 용건 없을 텐데
없어야 하고
[잔잔하고 슬픈 음악]
[드릴 소리]
(도경) 나... 또 올지도 모른다
(도경) 또 올 거 같다
[트럭이 다가오는 소리]
(지안) 오빠는요? 오빠는 꿈이 뭐였어요?
(도경) 사장, 사장, 회장
힘들었겠다
(도경) 나한테 처음 힘들었겠다고 말해준 사람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대로 사는 거
이미 정해져 있는 거
오빠도 불쌍하네
(도경) 처음으로 나를 불쌍해 한 사람
네가 놓치면 안 되는 거를 보여주려고
오빠
야, 야
서지안, 너 진짜!
[맛있어하며] 음
(도경) 나를 변하게 만든 사람
[웃으면서] 아, 하
여기요
[계속 웃는다]
(도경) 그래서
(도경) 사랑하게 된 사람
(도경) 지안아
[트럭의 경적 소리]
[타이어 마찰음]
[급정거하는 소리]
[음악 소리 잦아든다]
(도경) 다녀왔습니다
(명희) 오늘은 소라 안 만났니?
(도경) 네
당신이 얘기하세요
장소라가 마음을 굳혔다는구나
약혼식까지 하고 가겠다고 했다던데, 넌 어떠냐?
전...
장소라하고 약혼 안 합니다
[충격 효과음] [놀라며] 뭐?
뭐?
결혼도 안 합니다
도경아
너 지금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알고 하는 거니?
두 분께 죄송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