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열대야 14
#1. 고시원
두사람, 외면한 채 앉아있다.
영심 나..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어요. 좋아..한다는 말..사랑..하구 있다는 말..
정우 ... ...
영심 난생 첨이었는데 나는..태어나서 첨 들어봤는데 나는..
정우 ... ...
영심 있잖아요 정우씨.. 나는요.. 나는요 정우씨.. 그런 키스도 첨..이었어요.. 나는.. 나는..
나는.. 극장에서 손을 잡은 것두 첨이었구.. 누가 날 위해서 기차에서 뛰어 내려 감기약
을 사다준 것두 첨이었구.. 누가 벗겨진 내신발을 신겨준 것두 첨이었구.. 내기분 풀어
주려구 날 위해 노랠 불러준 사람두 첨이었구..
정우 ... ...
영심 그래서.. 그래서.. 나는.. 나는.. 이걸루 충분하다.. 이걸루 평생 살 수 있겠다..
사람들 얘기처럼 사랑했던 추억만으루두 평생 살 수 있겠다.. 남들한테 들키지 않구
보험처럼 든든한 보험처럼 나만 알게 내 가슴에다 잘 넣어노면 필요할 때마다 연금
타듯 조금씩 조금씩 꺼내서 쓰면 1년 견디고 2년 견디고 그렇게 평생 견딜 수 있겠다..
나두 이젠 그럴 수 있겠다..
정우 ... ...
영심 ... ... 정우씨 진심.. 알구.. 싶어요. 추측 말구 다른 사람 입 통해서 말구.. 정우씨 입으루
직접.. 정우씨 목소리루 직접.. 들어야만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기다리구 있었
어요. 솔직히 말해줘요. 모든 게 다.. 계획..적인 거였나요?
정우 ... ...
영심 말해..줘요. 동서.. 때문에.. 동서한테 복수.. 하려구 날.. 계획.. 적으루 이용.. 한 건가요?
정우 (작정하고 안간힘으로) 네.. 네.. 그래요.
영심 (안간힘으로 끄덕 끄덕) 그렇.. 군요. 그랬..었군요. 내, 내기..두 했나요? 친구랑 날 놓
구, 날 유혹하기루, 정말루 내기.. 두 했나요? 그,그래서 그, 그 사,사진을..
정우 네.. 네..
영심 (안간힘으로 또 끄덕끄덕)... ...
정우 (고통으로 바라보는데)... ...
갑자기 문이 와락 열리면서 뛰어들어오는 나여사와 수현.
나여사와 수현,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으로 영심과 정우를 쳐다보고 있고...
울고 있던 영심도 얼어붙는다.
수현 어,언니?
나여사 너, 너? 너, 너..?
영심 (눈물 가득한 눈이 얼어붙고)
정우 (차례로 보며 놀란 채 얼어붙고)
차라리 두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영심..
#2. 민원장 저택 아이들 방
퇴근차림으로 들어오는 지환, 자고 있는 아이들 침대로 다가가 이불이며 베개를 바로 해 준다. 잠든 아이들 바라보며 더 힘들어지는 지환.
가흔 (E) 다친 데가 니 자존심이야 니 마음이야? 만일 너 지금 아픈 데가 니 자존심이라면 헤
어져 영심씨랑.
지환 (혼란 속에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지원 (꿈결에 울음으로 엄마를 부르며 잠꼬대 한다)
지환 (안쓰럽고, 안아주며 토닥토닥 안정을 찾도록 토닥여 준다. 그 위로 들리는)
가흔 (E) 애정없는 결혼생활 10년이면 충분하잖아. 두사람 참을 만큼 참았고 견딜만큼 견뎠
어. 한계상황에 다다른 거야. 그래서 영심씨두..
지환 (다시 새근새근 편하게 자는 지원을 아픔으로 내려보는, 그 위로 들리는)
가흔 (E) 사람 맘, 맘대루 안되는 거잖아. 사람 감정,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 너랑 나를 봐.
벌써 몇 년이니? 노력해두 안돼잖아. 아무리 애써두 안돼잖아. 영심씨두 마찬가지 였을
거야.
지환 (고통스럽고, 일어나 나가는데)
건호 (E) 엄마.. 왜 안찾아 다니세요?
지환 (움찍 돌아본다) 안 잤니?
건호 전 할머니가 아무리 그래두 아빠가 엄마 찾아오실 줄 알았어요. 아빤 엄마 남편이 잖아
요? 엄마.. 아빠가 지켜줘야 되는 거잖아요? 아빠만 믿구 있었는데.. 아빠만 철썩같이 믿
구 있었는데.. 실망.. 했어요 아빠한테.
지환 ... ...
건호 엄마.. 계속 안 데리구 오실 거예요?
지환 ... ...
#3. 영심 부부방
어둠 속에 퇴근차림 그대로 침대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있는 지환.
가흔 (E) 넌 되는데 영심씬 왜 안돼? 난, 너 사랑하게 놔두면서, 친구라는 이름으루 너 바라보
게 놔두면서 왜 영심씬 안돼는 건데?
지환 (고뇌하는)
가흔 (E) 지난 세월 너 해바라기 하면서 나 힘들었던 거만큼, 니옆에서 영심씨두 나만큼 힘들
었을 거야. 너두 힘들었잖아. 너두 나만큼 영심씨만큼 힘들구 외로웠잖아. 용선 못하겠지만 이해할 순 있잖아? 니맘 같았을 거야. 내맘 같았을 거야. 영심씨두.
지환 (떠올리는)
#4. 지환과 영심의 몽다쥬
-1부 씬36, 음악감상중인 지환 옆으로 억지로 파고들어 간통죄 운운하며 가흔과의 관계를 걱정
하던 영심의 장면.
-4부 씬18, 서재에서 일하고 있는 지환에게 잠이 안온다며 5분만 3분만 1분만 안아달라고 하던
영심 장면.
-4부 씬42, 부딪쳐 넘어진 영심과 가흔.. 아내를 놔두고 가흔에게 달려갔던 지환, 피를 흘리며 참
담하게 넘어져있던 영심의 장면.
-7부 씬29, 가흔의 집.. 기침 가흔과 경쟁적으로 콜록콜록 하다 지환에게 싫은 소리 듣던 영심 장면. 아니면 가흔 부엌에서의 장면.
-4부 씬45, 평생 나한테 맘 안줄거면 옛날에 버렸어야지 왜 날 평생 비참하게 만느냐며 눈믈을 흘리던 영심 장면.
#5. 동 영심 부부방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감싸쥐는 지환.. 그리고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영심의 고백.
영심 (E) 좋아.. 하는 거 같아. 그렇게.. 돼.. 버린 거 같아. 나 요즘.. 그사람.. 땜에 설레구 기쁘
구 슬프구 그리구 맘이 너무 아파.
#6. 지환의 회상(12부 13씬)
영심 이러면 안돼는데.. 내가 이러면 안돼는데 하면서두..자꾸 그사람 생각나구 보구싶구..
만나면 만나서 아프구 못만나면 못만나서 또 아프구.. 그사람이 너무 슬프구 그사람이
너무 안쓰럽구.. 그사람한테 아무것두 해줄 수 없는 내가 그사람한테 아무것두 될 수
없는 내가 또 슬프구..
지환 (온몸에서 기운이 쏙 빠져나가며 풀썩 고개를 떨군다)
영심 그사람이 다정하게 내이름 부르는 것두 슬프구.. 그사람이 나 보면서 웃는 것두 슬프구..
그사람 화내는 것두 슬프구.. 그사람 눈물 흘리는 것두 슬프구.. 어떻게 된게 하루 웬종
일 그사람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지가 않아. 맘이 너무 아려. 나 맘이 너무 시려 여보
#7. 동 영심 부부방
고개를 푹 숙이고 자세를 낮춘 채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지환, 몹시 힘이 든다.
지환, 미동도 없이 오래 그렇게 앉아있다.
*시간경과..
천천히 고개를 돌려 텅빈 침대 아내의 자리를 응시하는 지환.
지환 (한숨처럼 토해내듯) 어디서.. 지내구.. 있는 거니? ... ... 모르겠다. 널 어떻게야 좋을지..
나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지환,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울리는 전화벨.
지환 (저도 모르게 반색하며 다급히 확인하는, 그러나 실망하고) 예 저예요.
나여사 (F) 느이 안식구 지금 데리구 들어가는 중이다. 다 왔어. 애들 안깨게 조심해서 거실로
내려와. 할말 있어.
지환 네? 엄마가 어덯게 그사람 있는 데를..? 애들 엄마가.. 엄마한테 전활..했어요?
나여사 (F) 전화루 얘기할 사안 아니다. 2분 후면 도착이니까 내려와 내려와서 얘기해.
끊자.
지환 (뭔가 불안하고 불길한 예감)
#8. 저택 거실
들어오는 나여사와 수현, 영심을 재환이 맞는다.
재환 어 형수! 야아 드디어 오셨네! 고생했죠? 밖에서 이틀씩이나. 뭐야? 아부지 분부
대루 진짜루 엄마가 형수 찾아서 델구 들온거야? 어? 야아 우리엄마? (하는데)
나여사 (충격으로 얼얼한 채 안간힘으로 몸을 가누며 휘청휘청 거실로 들어간다)
재환 (?) 엄마 왜 저래 누나?
수현 (표독스럽게 영심을 노려본 후 파르르 거실로 들어간다)
재환 (??) 왜들.. 저래요?
영심 (망연한 채) ... ...
재환 (?!)... 들어.. 가요 형수. (가방 받아들고 먼저 들어가는데)
영심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에 그대로 서 있다)
축늘어진 채 놀란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나여사와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는 수현.
재환 (?해서 그녀들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지혜는?
수현 훈이 병원에.
재환 어어. (들어오지 못하는 영심과 두모녀 차례로 보며) 왜들 이래? 무슨 일이야?
나여사 재, 재환아 어, 엄마 무, 물 하, 한잔만. 어, 얼음 띄워서 차, 차게 저, 정신이 버, 번쩍 들
도록 차, 차게 좀 해서 갖구와.
재환 어. (?해서 주방으로)
나여사 (심장 떨려하며) 아, 안 들오구 뭐하니? 들어.. 와.
영심 ... ...
수현 뭐해? 엄마가 언니 들오라잖아? 안들려?
영심 (후들후들 안간힘으로 들어오고, 서서 기다리는)
나여사 아, 앉아.
영심 (소파에 앉으려는데)
수현 뻔뻔스럽게 어딜 앉어? 감히 어딜? 지금 우리랑 마주 앉겠다구? 양심두 없어?
영심 (물러나고 그저 서 있는데)
수현 바닥에 앉아.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구 바닥에 앉아. 지금 엄마가 언니 차 마시자구 부른
거야? 그렇게 사태파악이 안돼? 아님 뻔뻔스러워서 그런 거야.
영심 ... ... (천천히 무릎 꿇고 앉는다)
재환 (나오다가 깜짝 놀라고)... ... (물잔을 가져다 나여사에게 건네며) 왜.. 이래?
나여사 (물 한모금 마시고) 누구야? 그..남자?
영심 ... ...
재환 (어?)
나여사 누구야? 말 해. 두,둘이 어, 어떤 사이야? 너 왜 거, 거기 그남자 방에 이, 있은 거야? 어?
영심 ... ...
나여사 어제..두 있었어? 집 나가서 줄곧 거, 거기서 그.. 남자랑 있었어 너?
영심 ... ...
수현 내가 수상하다 했어. 하루가 멀다하구 집밖으루 나돌아 다닐 때부터 뭐언 일 있지 싶었]
어 내가. 그대두 난 설마 설마 했는데.. 겁도 없이 어떻게 감히.. 다른 사람두 아니구 언니
가 우리한테 어떻게?
영심 ... ...
그때 방에서 나오던 민원장, 수현의 언성에 놀라서 멈춰서고 잠시 지켜본다.
나여사 에미, 너 저,정말 바,바람.. 났어? 아,아니지? 아니지? 그치?
민원장 (움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수현 아니긴 뭘 아냐. 뭐가 아냐? 두눈으루 직접 보구두 그래? 엄마 며느리 바람났어 엄마!
엄마 큰며느리 지금 젊은 남자랑 바람났다구!
민원장 (얼어붙고, 믿을 수가 없어서 며느리를 바라본다)
나여사 하나만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너 혹시, 훈이 다친 날.. 그날두 그럼 그, 그남자 만나러 나갔
던 거냐? 그래서 훈일.. 그래서 우리 훈이가.. 아니지? 그건 아니지 너? 아니지?
영심 ... ...
수현 허어. 맞는가부네. 마,맞나봐. 마,맞나봐 엄마.. 가,가만 안둬. 마,만일 그게 사실이면 나
가만 안있어. 가만 안있을 거야. 어덯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여사 대답해. 왜 대답을 못해? 대답해 얼른. 해 어서. 해. 대답해에-? 대답해 대답-?
영심 ... ...
나여사 (부들부들 노려보다 물잔의 물을 홱 끼얹는다)
영심 (차라리 두눈을 질끈 감는다) ... ...
민원장 (다가오고) 무슨 일이야?
나여사 (멍한 채) 당신.. 며느리 바람났어. 남자랑 있는 거 잡아 온 거야 지금. 남자방에서 남자
랑 같이 있는 거.. 수현이랑 내가 가서 잡아온 거라구 여보. 설마 설마 하면서 갔는데 진
짜루 거기 있는 거야 얘가.. 진짜루 남자랑 있는 거야 당신 며느리가..
민원장 (휘청, 소파를 꽉 잡고 기대어선다)
재환 아버지. (부축하는데)
민원장 됐어. 됐어. (소파에 가 앉는다)
오래된 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계단의 지환, 아내가 절망스럽다.
민원장 사실.. 이야? 느이 시어머니 얘기.. 사실.. 이야 에미?
영심 ... ...
민원장 니가 계속 아무말 않구 있음 꼼짝없이 사실 돼버리는 거야. 아니면 아니라구 말해. 사실
루 굳어버리기 전에 오해 풀어. 누구.. 냐? 같이..있었다는 남자?
지환 (E) 후배예요! 집사람 고향후배!
영심 (어?) ... ...
식구들 일제히 돌아본다.
지환 호텔을 너무 비싸서 가기 그렇구 여관은 무서워서 싫다구.. 차라리 고향후배한테 가 있겠
다구 저한테 전화 왔었어요. 저두 아는 친구예요. 그 친구 아버지 수술을 제가 했거든요
집사람하구 허물없이 지내는 절친한 사이예요. 저랑두 잘 알구요.
민원장 (석연치 않아하며 듣고 있는)
나여사 (긴가민가 듣고 있는)
재환 (입속말로) 고향.. 후배? 그럼 박정우? (형수를 홱 쳐다 본다)
지환 오해.. 예요. 그런 일 없어요.
수현 오핸 무슨 오해? 손바닥으루 하늘을 가려 오빠? 누굴 등신으루 아나? 고향후배 아니라
고향할아버지라두 그 좁아터진 고시원에서 남녀가 같이 지낸다는 게 말이 돼? 걸 오빠
가 허락했다구? 오빠가?
지환 집사람.. 혼자서.. 지낸거야. 그 친군.. 옆방서 지내구.
영심 (지환 때문에 더 힘들고) ... ...
수현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 엄마랑 내가 들이닥쳤을 때 언니 울구 있더라. 얼마나 울었
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울구 있었어. 두사람 엄청 심각해 보였어. 내가 단언하는데 고향
선후배 사이엔 절대루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어.
지환 ... ... 그런 거 아니니까 함부루 넘겨짚지마. 아니야. 아니라구.
수현 오빠야 말루 넘겨짚지마. 언니가 오빠한테 전활 했다구? 허어 그럼 오빠, 언니한테 철저
하게 속은거네! 게다가 뭐 걔 아버지 수술까지 해줬어? 두사람, 완전히 오바갖구 논 모양
이네 그럼! 잘 들어 오빠! 인정하기 싫겠지만 오빠 와이프, 젊은 남자랑 바람났어! 오빠
모르게 목하 열애중이라구 지금!
영심 ... ...
지환 아니.. 예요 아버지. 아니야 엄마. 그런 일 절대 없으니가 오해.. 마세요. 아무튼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제 불찰이 커요.
나여사 너 혼자 덮는다구 덮어지는 문제 아니야. 난 니가 뭐라구 해두 이번 일 사실 확인해야겠
어. 그래야 나두,
민원장 (O.L) 두사람 문제야! 아니라잖아.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무슨 말들이 이렇게 많아. 지환
이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수현 향해)두사람 부부사이 일 니가 느이 오빠보다 더 잘
알아? 나서지마 제발! 그런 시간 있음 니들부부 문제나 신경쓰구 챙겨. 두사람 부부문젠
그냥 두사람한테 맡겨놔! 판단두 결정두 두사람이 하는 거야! 아니래! 그럼 아닌 거야!
더이상 왈가왈부 할 생각, 하지마! 알았어들?
수현 (못마땅)... (영심을 쏘아본다)...
지환 올라가 볼게요.
민원장 (복잡하게 끄덕이며) 올라들 가.
지환 (영심에게 다가가고) 가자. (묵묵히 일으키고 묵묵히 데리고 2층으로 간다)
영심 ... ...
나여사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하며 바라보는)
민원장 (한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아들부부 응시한다, 심상치가 않고)
재환 (바라보며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9. 영심 부부방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있는 영심과 지환.
지환 어쩔려구 이래? 정말 어쩔려구 이러는 거야 당신?
영심 ... ...
지환 ... ... (안타까움으로) 이럴 땐 걔한테 가는 게 아냐. 너, 걔땜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무
리 걔가 좋고 갈 데가 없어도 걔한테는 가는 게 아니지?
영심 ... ...
지환 왜 이렇게 바보처럼 구니? 이런 엄청난 짓 저지를 거면 다른 여자들처럼 좀 영리하게라
두 하지. 계산이라두 좀 하지 이 바보야. 왜 이렇게 다 들키구 다녀? 왜 이렇게 다 흘리
다녀 너?
영심 ... ...
지환 이게 뭐야? 지금 니꼴이 뭐야? 왜 자꾸 너를 벼랑끝으루 몰아가니? 담엔 어떡할 건데?
떨어지구 말거야?
영심 ... ...
지환 헤어져..주면..되겠니? 니가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니가 원하면..
영심 (철렁하고 얼어붙은 채) ... ...
#10. 한강변 (밤)
자전거로 질주하고 있는 정우.
모든 걸 잊으려는 듯 그렇게.. 고뇌에 찬 정우의 눈빛이 고통스럽다.
어느 순간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강을 바라보고 서는 정우.
영심 (E) 나..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어요. 좋아.. 한다는 말.. 사랑..하구..있다는 말.. 난생 첨이
었는데 나는.. 있잖아요 정우씨.. 나는요.. 나는요 정우씨.. 그런 키스도 첨.. 이었어요. 극
장에서 손을 잡은 것두 첨이었구.. 내기분 풀어주려구 날 위해 노랠 불러준 사람두 첨이
었구..
정우 (한줄기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11. 지환 서재
장엄하게 방안이 떠나갈 듯이 울리고 있는 오케스트라 음악..
지환, 음악을 듣고 있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다.
지환, 절망에 찬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그렇게..
#12. 아이들 방
잠든 건호의 얼굴을 애틋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영심. 눈가 젖어오고..
눈물 날 거 같아서 애써 마음 다잡고 베개를 바로 베어주고는 지원의 침대로 간다.
이불을 마구 다 걷어차내고서 자고 있는 어린 딸.
영심, 울음 띈 미소로 이불을 잘 덮어주고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데..깨어나는 지원.
지원 (부스스 눈을 뜨다가 두둔 휘동그래져서) 엄마!
영심 지원..아!
지원 허! 엄마? (벌떡 일어나앉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다시 보는) 진짜루 엄마야? 진짜
야? 이거 꿈 아니지? 진짜지? 진짜지 엄마? 응?
영심 음. 꿈 아니야. (글썽이며) 엄마야.. 그래 엄마야 지원아..
지원 (목을 껴안고 덥썩 안기는) 어디 갔었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아무 데도 안간다
구 했잖아? 대문앞에 있겠다구 나랑 약속했잖아? 왜 이제 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엄마 안오는 줄 알고 엄마 이젠 안오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영심 (눈물 쉴새없이 흐르고) 미안해.. 미안해 지원아.. 잘못했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
엄마가.. 잘못했어..
지원 이젠 아무데도 안갈 거지? 응? 할머니가 야단쳐두 또 야단쳐두 엄마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응?
영심 ... ...
지원 응?
영심 ... ...
지원 응 엄마?
영심 (그저 끄덕이며 딸을 꼭 안는다)...(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F.O)
#13. 민원장 저택 전경 (다음날 이른 아침)
#14. 동 저택 주방
영심, 계단을 내려와 주방으로 들어가고 앞치마를 막 입는데..
어느새 나타난 나여사가 그 앞치마를 홱 빼앗는다.
나여사 올라가. 꼴두 보기 싫으니까 올라가.
영심 아, 아침 .. 져야죠.
나여사 됐어. 그 더런 손으로 짓는 아침, 알구는 더는 못받아 먹을 거 같아. 내가 할거야. 내가 하
면 돼. 그러니가 너는 제발 올라가. 올라가서 아래층으로는 얼씬두 하지마. 조만간 너 거
취문제 결정내릴 때가지 이집에 있되 내눈엔 절대루 띄지마. 알아들어?
영심 ... ...
나여사 얼른 안올라가구 뭐해?
영심 (그저 올라가는데)
나여사 지버릇 개 못준다더니, 천박한 그 천성 세월 흐른다구 어디 가겠어? 만 스물두 안돼 몸
함부루 굴려 남의 아들 인생까지 말아먹은 물건이 오죽 하겠냐구.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눈엔 피눈물이 흐른다는 걸 알아야지. 너 벌써 니 남편 눈에 두번씩이나 눈물 나
게 했다는 거만 알아둬. 기다려. 너두 곧 피눈물을 쏟을 테니까.
영심 ... ...
#15. 동 저택 거실
지환, 나여사 앞에 불려와 있다.
지환 아버진요?
나여사 몰라. 식사두 않으시구 일찍감치 나가셨어. 뭐, 니들 불편할까봐 알아서 피해주신
거겠지.
지환 .... ... 왜 보자구 하셨어요?
나여사 어쩔거야? 앞으루?
지환 오해.. 라구 했잖아요.
나여사 내가 널 몰라? 에미가 돼갖구 아들 속두 모를까봐? 나, 너 속에 들앉아 있구 니 머리끝에
서 있어. 그 물건 안 찾아나설 때 그대 내가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지환 ... ...
수현, 차 쟁반 들고 오고 각각 앞에 놓고 앉는다.
나여사 헤어져. 그만.. 이혼.. 해.
지환 ... ...
나여사 밤새 한숨두 못자구 생각하구 또 생각해보구 내린 결정이야. 아니 그물건 내집에 첨 발
들이든 그 순간부터 줄곧 생각하구 고민했던 거야. 너 할만큼 했어. 분에 넘치게 했어.
낼 모레면 너두 사십이야. 너두 사는 거처럼 한번 살아봐야 될 거 아냐.
지환 ... ...
나여사 저딴 물건 대문에 평생을 허수아비처럼 생기없이 남의 논이나 지키면서 시들어가는 거
더는 못보겠어. 그만 니 행복 찾아. 니들 가정 깬 거 니가 아니라 저 물건이야. 더이상 책
임감 느낄 필요 없어. 애들 걱정 안되는 건 아니지만 니가 행복해야 애들두 행복한 거야.
지환 ... ...
수현 그렇게 해 오빠. 기다..리는 사람두 있잖아. 견우직녀두 아니구 두사람 벌써 몇 년째야.
요즘 세상에 이혼 흉 아니구 재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 내 주위만 해두 태반이야.
언니랑은 오빠 악연인 거 같아. 여기서 끝내.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그만 끝내.
지환 ... ...
수현 이렇게 된 마당에 언니 이집에서 어떻게 살아? 우리두 못받아들이구 철면피 아닌 다음에
야 언니 입장에서두 여기서 우리랑 사는 거 고문이구 고역일 거야. 피차 힘든 일이야 오
빠. 서로 못할 짓이잖아.
나여사 시간 끌거 없어. 빨리 결정해서 수속 밟아 하루라두 빨리 저물건 이집에서 내보내. 나아,
소름 가치구 싫어. 살떨리구 심장 떨리구 이젠 무섭기까지 해 내가.
지환 (일어나고) 제가 알아서 해요. 저한테 맞겨두세요. (2층으로 간다)
수현 도대체 속을 알수가 없네! 누구보다두 결벽증 심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 마누라 외돌 참구
있나 몰라! 당장 이혼하겠다구 그럴 줄 알았는데 난.
나여사 애들 걸려 그렇지. 그 어린 것들 받을 충격 생각하면 제 마음만으룬 못 움직이지. 생각이
깊어 병이지. 불쌍한 놈.. 아프면 아프다구 소리라두 지르든가 부모한테두 체면차리면
문드러진 지 속은 그럼 얻다가 풀거야?
#16. 영심 부부방
지환, 들어오고.. 영심, 그저 침대에서 일어난다.
지환, 장롱으로 가서 옷을 챙겨입으며..
지환 (뒤 안돌아보고)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는 건지.. 생각해보구 말해줘. 시간, 너무 오래 끌
지 말자. 피차 힘들.. 잖아.
영심 ... ...
지환 (자가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는 듯 멈춰서고) 근데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사진을 나한
테 보내구, 또 너 있는 데를 팩스로 수현이한테 알린 걸까? 돈을 요구한 것두 아니구..
도대체 왜 뭣대문에..?
영심 (지혜 떠올리며 참담하다)
지환 뭐 짚이는 거 없어?
영심 ... ...
지환 (긴 한숨)... (나간다)
#17. 운전학원 사무실
상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는 정우.
상관 아니 이게 뭐야? 갑자기 웬 사직서야? 왜에?
정우 유학.. 가요.
상관 뭐어? 유학? 아니 어디루?
정우 프랑..스루 가려..구요.
상관 어어. 야아 잘 됐네 박정우! 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어? 그래 언제 떠나는데?
정우 (먼 데 바라보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원랜 2월에 떠나려구 했는데 앞당겨..
질 거 같아서요. 아무래두.. 그렇게.. 될 거.. 같아서..
상관 축하해! 진짜루 축하해! 어? 야 악수 한번 하자. 자.
정우 (그 손 잡고 악수하는)
상관 (신나게 흔들고 톡톡 두드리며) 잘 살아! 가서 하구싶었던 공부두 맘껏 하고. 어? 꼭 유명
한 건축가 돼서 국위선양도 하고 입신양명두 하구, 어?
정우 (그저 엷은 웃음으로) 네.. 그동안 여러 가지로 감사했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여기
서.. 보낸.. 시간.
상관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우리도 자네 같은 성실한 사람이랑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았
어. 수강생들두 자넬 아주 좋아했구.
정우 그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상관 으응. 잘 가. 몸 조심 하구. 어?
정우 네. 내내 건강..하십시오. (꾸벅 정중하게 인사하고 한없이 슬픈 눈으로 뒤돌아 나간다)
#18. 운전학원 일각
사무실에서 나온 정우, 걸어나가다 멈춰서고..
연습장 안에서 일제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강습용 차들 바라보며 쓸쓸히 미소 짓는
정우.
기태 (멀리서 강습하다가 고함치는) 야 박정우! 너 강습 안하구 뭐해 임마? 도로주행 안나가?
정우 (고함치는) 기태야, 나 사표 냈다아!
기태 뭐 임마?
정우 (더 크게 고함치는) 나아, 사표 냈다 기태야!
기태 뭐? 사표?
정우 (글썽이는 눈으루 고함치는) 나아 오늘 사표 냈다구우! 나아 오늘 사표 냈다구우 임마아!
기태 알았어 임마! 나 지금 강습중이니까 저녁에 만나서 얘기해! 전화할게! (차에 오르고 강습
하는)
정우 ... ...
정우, 삶의 미련으로 혼자 그렇게 서서 글썽이는 눈으로 학원 구석구석을 휘- 둘러본다. 구석구
석 정이 안간 데가 없다. 그리고 그 구석구석에 영심이 있다.
*운전학원에서의 영심과의 장면들이 정우의 추억으로 아프게 흐른다.
#19. 운전학원 앞 기찻길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정우를 막아서는 기차소리.
정우, 멈춰서고.. 쳐다보면.. 저만치에서 꽃기차가 달려오고 있다.
*그 꽃기차와 함게 영심과 정우의 기차여행 장면들도 정우의 그리움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비오는 철길에서 '난 정우씨 죽어버렸는줄 알았잖아요?' 울부짖던 영심의 모습이, 영심
의 절박했던 그날의 절규가, 마지막으로 흐른다.
기차가 사라지고 통행해제가 됐는데도 그 자리를 못박힌 듯 장승처럼 서 있는 정우.
정우 곁으로 바쁘게 오고가는 사람들.. 미동없이 서 있는 정우.
정우의 슬픈 눈이 뭔가를 오래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20. 대학병원 복도 - 지환의 방 앞
고민을 하며 걸어오는 재환.
재환, 지환의 방문 앞에서 서서 잠시 또 망설이다가 마침내 노크를 한다.
#21. 병원 지환의 방
지환 웬일이야 니가?
재환 시간 괜찮아?
지환 음. 앉아.
재환 (앉고)
지환 (앉고, 기척을 읽고는) 뭐 나한테 할말 있어서 온 거 같은데.. 해. 뭔데?
재환 형수.. 때문에..
지환 (움찔) 느이형수.. 뭐..?
재환 에어..질 생각이야 형?
지환 어쩌면.
재환 그러지..마 형. 안 그랬..으면 좋겠어.
지환 왜..? 나 찾아온 용건, 말 해.
재환 혼자 고민 많이 했는데 아무래두 형이 알아야 될 거 같아서.
지환 뭘?
재환 사실은 말야 형.. 사실은.. 박정우 그자식.. 형수가 아니라 지혤.. 좋아해. 대학 때부터 줄
곧 쫓아다녔나봐. 최근에두 그랬고.
지환 뭐?
재환 하두 지혤 괴롭혀서 내가 그자식 경찰서에까지 잡아넣었더랬어.
지환 (멍하고)... ...
재환 아무래두 내 생각엔 그자식이 형수를 이용..한 거 같아. 지혜때문에 지혜한테 나쁜 맘 먹
구 복수나 뭐 그런 거 하려구, 지혜 맘대루 안되니까 손쉬운 형수를 골라서.. 박정우 그
자식.. 형수한테 아무 감정 없어 형. 그냥 복수의 대상으루 갖구 논거야. 순진한 형수 갖
구 지혜한테 복수하려구 형수맘 갖구 농락한 거야.
지환 (충격으로 머릿 속이 텅지는 듯 멍한 채)... ...
재환 식구들한텐 비밀루 해줘. 지혜 입장이 그렇잖아. 안그래두 지혜가 형한테 얘기하지 말라
구 몇 번이고 당부하는 걸, 형수가 걱정돼서 어렵게 하는 거야. 형수, 바람.. 난게 아니라
이용.. 당한거야 형.
지환 ... ...
#22. 민원장 저택 거실
나여사, 전화통 붙잡고 난감해하고 있다.
나여사 아니 싫은 소리 그거 몇마디 했다구 그래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안오는 게 어딧어요? 집
에 지금 밀린 일이 얼만데? 청소구 빨래구 다 그대로예요 그대로오. (사이) 뭐예요? 아
우 됐어요. 무슨 파출부 하나 부리면서 상전 모시듯 떠받들구 나두 그렇게는 못해요. 네
에 됐어요. 그만 끊어요. (홱 끊고) 아우 신경질나서 증말. 이젠 파출부까지 애를 먹이
네. 엉? (일어나고 소매 걷어붙이며)아우 그래. 내가 한다. 내가 하면 되지 뭐. 이 없으면
잇몸으루 살구 콧구멍 막히면 입으루 숨쉬면 되구. (2층 쏘아보며) 그래에 내가 하면 돼
내가!
*시간경과..
청소기로 거실 청소하는 나여사. 아직은 오기로 이것쯤이야 할만 하다는 표정으로..
*시간경과..
넓은 거실 바닥을 쭈그린 채 옮겨다니며 물걸레질 하고 있는 나여사. 헉헉거리고, 허리도 아프
고, 다리도 아프고, 닦아야 될 거실은 너무나 넓다.
나여사 (울상인 채로) 아우 허리야 다리야. 아우 다리에 쥐가 다 나네. (움직이지 못한 채)아우..
아우우..(걸레를 홱 집어던지는) 이게 지금 내가 무슨 꼴이야? 죄는 지가 짓구 벌은 왜
내가 받구 있는 거야? 어? (2층 노려보며) 내려오지 말랬다구 어떻게 코빼기두 안보여?
코빼기두. 집안일이 첩첩인데. (곰곰이 생각하는) 이럴 수야 없지? 내가 왜 저 때문에 이
런 생고생을 하냔 말이야? 누구 편하라구? 안돼지. 이렇게는 못하지 내가.(파르르 쏘아
보며 2층으로 올라간다)
#23. 영심 부부방
영심, 기운없이 누워있는데.. 문이 와락 열리면서 나여사 들어온다.
영심 (황급히 일어나 서고)
나여사 팔자가 아주 늘어진다아. 집안꼴 이지경으루 만들어놓구 다리 쭉 뻗구 누워지니 너는?
후안무치두 이런 후안무치가 없어. 엉?
영심 ... ...
나여사 니들 부부 이혼얘기.
영심 (!)... ...
나여사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깨끗하게 매듭짓자 우리. 알았니?
영심 ... ...
나여사 그리구 너, 이혼도장에 도장 찍을 때까진 이집 며느리야. 며느리로서 의무 다해. 아줌마
어제부터 안오는 통에 집안꼴 엉망이야. 내려와 청소하구 밀린 빨래두 해. 장봐서 저녁
두 짓구. 대신, 될 수 있으면 내눈에 안띄게 움직여.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 해놓구 올라
가구 나 외출하구 나면 내려와 집안일 하구, 저녁 지어놓구 올라가구, 알았어?
영심 ... ...
나여사 알았냐구 묻잖아?
영심 네.
나여사 친정엔 안알려두 되니? 어차피 이혼하면 알게 될텐데 미리 알리지 그러니? 노친네 까무
러치기 전에.
영심 ... ...
나여사 니가 못하면 내가 알려주구. 알려줘? 느이모친한테 내가 꼭 할 얘기두 있는데.
영심 아, 아뇨. 제, 제가.. 지, 직접 말.. 할게요.
나여사 그래? 그래 그럼. 나 지금 나가니까 내려와 청소해.(나간다)
영심 ... ...
#24. 동 저택 거실 - 남해 끝순 방
거실 바닥을 기어다니며 묵묵히 걸레질 하고 있는 영심.
어느 순간 울리는 핸드폰 벨.
영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움찔하고 잠시 미동 없이 앉아 있다가.. 핸드폰 꺼내서 본다.
영심 (다행히 엄마다!) 어, 엄마!
끝순, 메주를 매든지 이불호청을 꿰매든지 하는 모습으로..
끝순 온야. 내다 영심아!
영심 음.
끝순 딴기 아이고 요 메칠 계속 꿈자리가 하도 사나봐가. 혹시 니한테 머슨 일 있나 하고. 별
일 없나? 니?
영심 (목이 메어오는)...음.
끝순 참말로? 니 참말이재?
영심 음.. 음..
끝순 그라문 마 됐고. 그래도 당분간 조심해라. 엉? 나쁜 꿈은 마 여축없다 아이가. 민서방자
테도 조심하라꼬 당부하고. 아아들도 단속 잘하고. 알았나?
영심 음.
끝순 저어기.. 저어기 영심아.
영심 음?
끝순 민서방.. 요즘도 그 첫사랑인가 소꿉친군가 하는 여자 만나나?
영심 ...아, 아니. 안만나.
끝순 나는 또 그기 아인가 하고. 아이문 됐고. 그래도 니 조심 또 조심, 미리미리 항시 조심, 알
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오영심 어?
영심 ... ...
끝순 사람처럼 무서분 동물 없다꼬 은제 으떻게 뒤통수 칠지 모르는 게 이 인간이란 족속이
다. 그카니까 니는 죽으나 사나 죽을 똥 살똥으로 고마 민서방 마음 안변하게 어짜든둥
옆길로 안새게 여우맨치로 단디 해란 말이다. 엉?
영심 (가슴이 미어지고 가슴을 움켜쥔 채) 음.. 음..
#25. 대학병원 지환의 방
지환, 충격인 채로 멍하게 앉아있다.
재환 (E) 아무래두 내생각엔 그자식이 형수를 이용..한 거 같아. 지혜 때문에 지혜한테 나쁜
맘 먹구 복수나 뭐 그런 거 하려구. 지혜 맘대루 안되니까 손쉬운 형수를 골라서.. 박정
우 그자식.. 형수한테 아무 감정 없어 형. 그냥 복수의 대상으루 갖구 논거야. 순진한 형
수 갖구 지혜한테 복수하려구 형수맘 갖구 농락한 거야.
지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박차고 일어나 겉옷을 집어들고 거칠게 방을 나간다.
#26. 병원 주차장 - 지환의 차
어느새 양복상의로 바꿔입은 지환, 가운을 조수석에 던지고 거칠게 차에 올라, 가파르게 출발한다.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지환의 차.
#27. 운전학원 앞, 지환의 차
지환의 차, 성마른 파열음을 내며 달려와 멈춰선다.
핏발 선 눈으로 학원을 노려보는 지환.
지환, 내리고 학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28. 운전학원 안
빠르게 둘러보며 정우를 찾는 지환.
정우의 모습 쉽게 발견이 안돼자 성마르게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는 지환.
#29. 사무실 안
지환, 들어오고.. 창구로 다가간다.
지환 박정우씨, 만나러 왔습니다. 어디루 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직원 박정우 강사 그만 뒀는데요?
지환 네?
직원 그만 뒀다구요.
지환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 분노가 아니 살의가 치밀어 오른다)
#30. 대학병원 복도 - 지환의 방앞
정우, 결심한 바가 있는 듯 굳은 얼굴로 걸어온다.
지환의 방앞에 멈춰서고.. 잠시 지환의 명패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서 있다.
그때 거친 기색으로 운전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던 지환, 자신의 방앞에 서 있는 정우를 먼저 발
견하고 멈춰선다.
지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무서운 분노로 노려보고있다)
정우 ... ... (천천히 다가가 노크를 하려는데)
지환 (한발 먼저 거칠게 문을 열어준다)
정우 (쳐다보는, 흔들림 없는 굳은 표정으로 응시한다) ... ...
지환 (노려보는) ... ...
정우 ... ...
지환 ... ...
#31. 병원, 지환의 방
정우와 지환, 각자의 감정으로.. 숨막히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각각 서 있다.
정우 ... ...
지환 ... ...
정우 (차분하고 아주 담담하게) 어디서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요?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낱낱이 말씀드리려구 찾아온 거니까 처음 만남부터 말씀드리도록 하죠.
지환 ... ...
정우 여름에 만났습니다. 남해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지난번 선생님 말씀처럼 영심
씨, 아니 사모님, 나이답지 않게 순진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의심없구 경계심 없
구, 한마디루 참 대책없는 사람이더군요.
지환 (파르르) ... ...
정우 아시다시피 아버지가 갑자기 뇌종양 선골 받았는데.. 천만다행으로 영심씨가, 아니 사모
님이 선생님을 소개시켜 줬습니다. 알구 지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거 같아서 사모님 친
절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알구..있었습니다. 사모님이 날 좋아하구 있다는 거..
지환 (주먹을 부들부들 움켜쥐는) 결론만 말해. 나한테 하구 싶은 얘기가 도대체 뭐야?
정우 결론.. 이요? 네. 그러죠 그럼. (태연한 척 하나 어쩔 수 없는 떨림으로) 영심씨.. 한테 저
는..아무.. 감정 없습니다!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구,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지환 ... ...
정우 보신 사진 속의 일은, 그날 딱 한번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영심씨한테 강제로 한 겁
니다. 선생님한테 버림받구, 그것도 모잘라, 다른 여자랑 생일파티 하구 있는 남편을 보
구, 이 등신같은 여자가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며 하염없이 울구 있길래, 화두
나구 알 수 없는 오기두 생기구 해서, 장난삼아 충동적으루, 내가 억지로, 내가 강제루,
한 겁니다!
지환 (어! 일순 멍해지는) ... ...
정우 고시원엔 영심씨 혼자 지냈습니다! 전 잠시 들린 거 뿐이었는데 그때 마침 선생님 가족들
이 들이닥쳐서.. 믿으시구 안 믿으시구는 선생님 자유지만, 선생님 부인.. 그렇게 함부
루, 선생님 가족들이 생각하는 거처럼, 그렇게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여자 아닙니다!
지환 ... ...
정우 모르..시고 계시는 거 같아서 알려..드리러 온 겁니다!
지환 ... ... 얘기..끝났어?
정우 네.
지환 그럼 이젠 니가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정우 그러죠.
지환 우리 집사람한테 아무 감정도 없구 둘이 아무 사이두 아닌데 왜 계속 만난 거야?
정우 ... ...
지환 너한테 맘 있다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럼 계속 흔들어 댄거야 너? 말해! 대답해!
정우 ... ...
지환 정말루 너, 우리 집사람갖구 장난질 친거야? 아무 감정두 없으면서, 오직 니 복수를 위해
서, 우리 집사람 희생양 삼아 제물 삼아, 그런 거였어 너?
정우 ... ...
지환 대답해! 대답해!
정우 네..네..
지환 그럼 나한테 보낸 사진두 니가.. 찍은 거야? 그래?
정우 네.. 네..
지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고 달려들어 정우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정우 (휘청하고 몸을 세우는데)
지환 (다시 사정없이 주먹으로 날린다)
정우 (풀썩 고꾸라지고)
지환 (가쁜 숨을 헉헉거리며 안간힘으로 분을 삭히려고 애쓰고 있는데)
고꾸라진 정우, 일어날 줄 모른다.
지환 (어?)... ... (다가가 살피는데)
정우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다)
지환 (얼어붙고)... 이봐? 이봐? 이봐 박정우? 박정우?
정우 (정신을 잃은 채 위태로운 모습으로)... ...
지환 (사색이 되어 서둘러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한다)
#32. 대학병원 복도 - 응급실
지환, 정우 실은 이동침대를 집고 정우와 함게 다급하게 달리고 있다.
정우 실은 이동침대 지환이 이끌어서 응급실로 들어간다.
#33. 응급실 안
의식을 잃고 위험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정우.
그런 정우를 혼신의 힘으로 처치하고 있는 지환.
지환 (간호사 향햐) 바이탈?
간호1 BP 130에 100펄스 90입니다.
지환 인튜베이션. (시행하며) 센트럴라인. (시행하는데)
간호2 선생님 이거.. 좀..
지환 (돌아보면)
약봉지를 들어보이고 있는 간호사.
간호사 보호자한테 연락하려구 가방을 뒤졌는데 이게..
지환 (황급히 받아서 약을 꺼내어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서 홱 정우를 쳐다본다)
정우 ... ...
지환 (약과 정우를 다시 차례로 바라보며 믿을 수가 없는)
#34. 민원장 저택 주방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영심. 다 끓인 국이며 찌개, 반찬들을 하나 하나 상으로 나른다.
식탁엔 맛깔스런 음식들이 한가득 차려지고.. 식구들의 수저를 하나하나 놓기 시작하는 영심. 그
위로 들리는..
나여사 (E) 애비한테 얘기 들었지? 니들부부 이혼얘기.
지환 (E) 내가 어덯게 해주면 되는 건지.. 생각해보구 말해줘. 시간, 너무 오래 끌지 말자. 피
차 힘들..잖아.
영심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는 듯하고)
영심, 마지막으로 식탁보를 잘 덮는데.. 초인종 울린다.
영심, 거실로 나간다.
#35. 동 저택 거실
영심, 모니터 확인하면 지혜다.
영심, 담담한 표정으로 지혜 바라보고 문을 열어준다.
잠시후 지혜 들어오고..
지혜 (영심 발견하고는 움찔 시선을 비켜서 둔다)
영심 저녁 준비해 놨어. 어른들 오시면 찌개랑 국만 데워서 상에 놓기만 하면 돼. 훈이 이유식
두 만들어 놨으니까 아가씨 오면 줘.
지혜 ... ...
영심 그럼 나는 올라가 볼게. (2층으로 향하는데)
지혜 저한테.. 왜 아무말이 없으세요?
영심 (멈춰서고 천천히 돌아본다) 무슨 말?
지혜 형님 고시원에 계신 거 제가 알린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영심 그렇게 해서라두 동서 맘이 풀렸다면 그걸루 됐어 난.
지혜 ... ...
영심 그대신 나, 더 이상은 동서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두 되지? 그럴려구 나.
지혜 (움찔) ... ...
영심 (2층으로 올라간다)
지혜 (그저 할말 없는 표정으로)... ...
#36. 아이들 방
아이들 이불을 다 걷어내고 새 시트를 깔고 있는 영심.
*시간경과 되면..
건호의 책상에 앉아 메모지에다 뭔가를 쓰는 영심.
<아이들 속옷은 옷장 안 첫번째 서랍에, 내복은 두번째 서랍에, 양말이랑 모자, 장갑은 세번재 서
랍에 있어요. 그리고 건호 지나간 학습지는 침대밑 정리상자 안에 있으니까, 학기만 시험 때 꺼
내서 줘요. 지원이는 만화영화 보는 거 너무 좋아하니까 적당히 시간 정해줘서 보라구 해야 돼
요. 안그럼 끝이 없어요. 그리고 건호는 저 알아 잘 하는게 가끔씩 준비물 챙기는데 소흘해요. 알
림장 확인하고 준비물 확인도 꼭 해야 돼요.> 등의 내용이 쓰여지고 있다.
#37. 중환자실
중환자실 램프가 먼저 보이고..
지환,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정우를 심각한 얼굴로 내려보고 있다.
정우의 병을 알아버린 지환, 심정이 복잡해진다.
#38. 저택 주방
민원장과 나여사, 재환과 지혜, 건호와 지원, 식사중이다.
민원장 지원에미는 왜 안보여? 없어?
나여자 흠..
지원 엄마 2층에 있어요 할아버지.
민원장 있는데 왜 안내려와. 저녁 안먹는대?
나여사 배가 안 고픈가부지 뭐. 놔둬. 저 알아 먹겠지.(작게 군시렁) 지가 사람인 거 같음 여길
어떻게 내려와? 벼룩두 낯짝이 있지.
건호 (뭔가 이상한 느낌 감지하고 어두워지는)
지원 제 생각엔요 할아버지, 엄마 아무래도 할머니 무서워서 못내려오는 거 같아요. 할머니가
엄마만 보면 자꾸 소리 지르구 눈 흘기구, 너무 너무 무섭게 하시거든요. 또 쫓아내면 어
떡해요? 배가 안 고파서 안 내려온 게 아니구요 배가 막 고픈데도 할머니가 무서워서 못
내려오는 거예요 할아버지.
민원장 (나여사를 흘긴다) 쯧쯧..
나여사 (끙)
재환 ... ...
지혜 ... ...
#39. 동 저택 거실
수현, 병원에 들고갈 기저귀가방 챙겨서 들고 방에서 나와 소파로 와 앉는다.
수현 아우 피곤해 돌아가시겠다 증말. 병원잠두 하루이틀이지 죽을 맛이야 진짜.
나여사 사흘만 있음 퇴원하잖아. 조금만 더 고생해. 어쩌겠어? 그 어린 걸 혼자 둘 수두 없는 노
릇이구. 그저 첫째두 안정 둘째두 안정이라잖아.
수현 퇴원하구 나서가 더 문제야. 나 출근해야 되는데 아줌마두 없구 당장 어떡해? 엄마가 봐
줄래? 당분간 바깥활동 하지 말구.
나여사 엉? 내, 내가? 스케쥴.. 꽉 찼는데. 곧 연말이잖아. 인사할 때두 많구 원래 우리 일이란
게 이맘 때가 젤 바쁘잖아. 특히 원장인 나는.
수현 그럼 어떡해? 나두 일 꽉 밀려있는데.
나여사 아줌마 빨리 구해볼게 내가.
수현 아우 낯선 사람 손에 맡기기 진짜 싫은데. 안정이 젤 중요하다는데 그 사람들이 그런 거
신경이나 써 어디? 아우 죽겠네 증말.
지혜 (보온병 혹은 음식통 들고 와서 건네며) 이거 훈이 이유식 만들었다구 형님이 전해 드리
래요.
수현 그래?(못마당한 얼굴로 받아서 가방에 넣으며) 병주구 약주는 것두 아니구 누가 이런 거
만들어 달, (하다가) 저기 엄마!
나여사 음.
수현 오빠 이혼, 조금만 늦추자 우리.
나여사 어?
수현 훈이 다 나을 때까지만, 적어두 기브스 풀 때까지만 어? 그때 이혼해두 안늦잖아. 아무
리 생각해봐두 훈이 맘놓구 맡길 사람 언니밖에 없어. 엄마두 이번 달 내내 왕 왕 집비울
텐데 근본두 모르는 낯선 아줌마랑 우리 훈이랑 하루종일 둘이 서만, 아우 생각만 해두
나 끔찍해. 그래갖구 안정이 찾아지겠냐구.
나여사 (생각하는 얼굴 되고)
수현 엄마가 오빠한테 잘 말해서 이혼을 하더래두 좀만 더 있다가 하라구 해줘. 어? 언니 당
장 집 나가면 엄마두 불편 하잖우?
지혜 (어이가 없다!)
#40. 2층 거실
퇴근차림으로 올라오는 지환.
지환, 문 앞에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오래 서 있다.
#41. 영심 부부방
영심, 커다란 트렁크에다 자신의 짐을 차곡차곡 싸고 있다.
들어오는 지환, 그 모습 발견하고 얼어붙는다.
지환 ... ...
영심 (쳐다보고 일어나며) 왔어..요?
지환 이게 니가..내린 결정..이니?
영심 이혼서류 준비되면 전화 줘요. 일전에 말한 수미라는 친구네 가 있기루 했어요. 내 얼굴
보는 거, 당신한테 고역이잖아요. 어차피 나가게 될 거, 하루라두 빨리 당신이라두 편하
게 해주구 싶어요.
지환 ... ...
영심 애들.. 말인데요.. 염치없지만.. 애들.. 내가.. 키우면 안될..까요?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렵
겠지만 자리 잡히는 대루 애들 내가.. 데려.. 가구 싶은데. 애들 클때까지만요. 애들 아직
엄마 손 필요한 나이구 당신은 너무 바쁘잖아요. 안될..까요?
지환 ... ...
영심 역시..안돼..겠죠? (긴 장문의 메모지 집어서 건네며) 이거..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적은 거
예요. 이건 당신꺼 이건 애들꺼. 상세하게 써놨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거 보구 찾으
세요.
지환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시울 붉어지고)
영심 (화장대 서랍에 넣으며)그럼 여기다 놔둘게요. (다시 앉아서 짐을 싸는)
지환 ... ... 이 등신아, 골라두 왜 하필 그런 놈이야? 눈두 없니 넌? 나이가 몇살인데 사람 보
는 눈이 그렇게두 없어? 왜 그런 놈이야? 왜 그딴 놈밖에 못 골라 왜?
영심 ... ... 저녁은.. 먹었어요? 밥.. 차릴까요?
지환 ... ... (눈물 나올 것 같아서 홱 나가버린다)
영심 ... ...
#42. 중환자실
여전히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있는 정우.
그런 오빠 손을 잡고 '오빠'를 목놓아 부르며 서럽게 울고 있는 명숙.
옆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기태.
명숙 오빠! 오빠아! 눈 좀 떠봐 어? 이게 뭐야? 혼자 이게 뭐냐구우? 이런 법이 어딨어? 이러
는 법이 어딨어어? 눈 떠! 눈 떠 오빠! 제발 눈 좀 떠보란 말이야아.
기태 (눈시울 붉어진 채) 나쁜 자식! 깨어나기만 해봐. 내손에 죽을 줄 알아 너 임마?
#43. 지환 서재
책상에 골똘히 앉아있는 지환.
지환,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와 죽어가는 아내의 남자 사이에서 속수무책인 채로..
#44. 영심 부부방
트렁크를 들고 방안을 휘- 한번 돌아본 후 두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마음 단단히 다 잡아먹고 방안을 나가는 영심.
#45. 2층 거실
영심, 방을 나오고 애들 방쪽으로 시선을 준다. 애들 방으로 가려다 마음 약해질 것 같아서 애써
도리질 하고는 계단으로 향하는데..
영심의 손을 홱 낚아채서 돌려세우는 지환.
영심 (놀라서 쳐다보고)
지환 (절실함으로)가지마.
영심 (?)... ...
지환 가지..마.
영심 여,여보..?
지환 (그저 트렁크를 빼앗아서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간다)
영심 (?!) ... ...
#46. 영심 부부방
영심, 들어오면.. 트렁크를 열어서 영심의 짐을 빠르게 풀고 있는 지환.
지환, 어쩐지 화가 많이 나 있다.
영심 여보..
지환 (가파르게 짐을 풀며 안쳐다보고) 끝내두 내가 끝내구 이혼을 해두 내가 해. 내가 한다
구 내가. 당신한텐 그런 자격, 없어. 그러니까 내가 나가라구 하기 전까진 이 집에서 한
발자국두 나갈 생각 하지마.
영심 ... 여보 난.. 난 있잖아 여보, (하는데)
지환 (O.L) 애들 생각은 안해? 애들이 받을 충격 상처 고통, 생각 안하냐구? 애들 먼저 생각하
자. 그래 애들 먼저 생각해 우리. 내가 받은 고통두 니가 받은 상처두, 애들 먼저 생각하
구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생각하자. 그러자 우리.
영심 ... ... (F.O)
#47. 민원장 저택 전경 (다음날 아침)
#48. 영심 부부방
영심, 침대시트 바로잡고 있는데..
지환, 들어오고.. 장롱으로 가서 옷을 꺼내려다 말고..
지환 넥타이..골라줘.
영심 (?)... ... (그저 가서 골라서 건넨다)
지환 (화장대 앞으로 가서 넥타이 맨다) 손수건 줘.
영심 (손수건 꺼내서 건넨다)
지환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넥타이 마저 매며)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 하지마. 당분간은 집
에만 있는 게 좋겠어.
영심 ... ...
지환 답답해서 가구 싶은 데 있으면 나한테 말해. 함께 가.
영심 (놀라는)... ...
지환 갔다올게. (나가다가 문득 무슨 생각으로 멈춰서고) 핸드폰..줘.
영심 (?) 핸드폰은 왜요?
지환 취소하구 새번호 받아올 거야. 줘.
영심 여보..?
지환 어딨니?(눈으로 찾는)
영심 (그저 거내서 건넨다)
지환 (받아들고) 힘들겠지만 잊는 거부터 시작해보자. (나간다)
영심 ... ...
#49. 중환자실
정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지환.
어느 순간, 의식이 돌아오는 듯 기운없는 머리를 기운없이 흔드는 정우..
정우 (마스크 한 채 선명하지 않은 소리로) 영심씨.. 영심씨..
지환 (어! 깨어나고 있다!) 박정우시! 내말 들립니까? 내말 들려요?
정우 영심씨..
지환 (아직 못알아 듣고 미스크를 떼내며) 지금 뭐라구 했어요? 박정우시, 다시 한번 다시 한
번 말해봐요. 자 어서.
정우 (아직 무의식인 채로 도리질하며) 영심시.. 아니예요.. 아니예요 영심씨.. 그게 아니예요..
(무의식인 채로 한줄기 눈물이 흐르는)
지환 (얼어붙고)
#50. 커피전문점
고개를 푹 떨군 채 앉아있는 기태.
지혜, 막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휘- 둘러보고는, 기태를 발견하고 걸어온다.
지혜 기태..씨?
기태 (고개를 든다) 오셨..어요?
지혜 (앉으며) 무슨..일이예요? 기태씨가 절 다 보자구 하구? 왜요? 정우한테 무슨일 생겼어
요?
기태 (무겁게 끄덕이는)
지혜 (?) 표정이.. 왜.. 무슨..일인데요 정우?
기태 (울먹이는) 죽는..대요. 그자식 죽는..대요 지혜씨!
지혜 네? 죽다뇨? 누가요?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전 통 알수,
기태 (O.L) 정우요. 정우 죽는대요. 그 자식 그 나쁜 자식 뇌종양이래요.
지혜 네? 뭐라..구요..(충격으로 멍한 채) ... ...
기태 정우 어떡해요? 그 불쌍한 자식 어떡해요? 그 나쁜 자식 어떡해요 지혜씨?
지혜 ... ...
*시간경과..
기태는 가고 없고..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앉아있는 지혜
어느 순간 천천히 일어나고 비틀비틀 걸어나가는데.. 지혜, 풀썩 커피숍 한가운데 주저 앉고 만
다.
일어날 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지혜.
손님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가운데..
커피숍 한가운데,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오열하고 있는 지혜.
#51. 중환자실 밖 - 안
망연하게 걸어와 멈춰서는 지혜.
지혜, 차마 들어갈 엄두 나지 않아서 그저 유리창을 통해 중환자실 안의 정우를 바라보는데..
지혜의 시선에.. 생명감 없는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는 정우.
지혜, 이끌리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52. 중환자실 안
들어오던 지혜, 지환을 발견하고 멈춰선다. (지환은 지혜 향해 등을 보인 채로)
지혜, 되돌아 나가려는데.. 그녀의 발을 붙잡는 정우의 목소리.
정우 비밀루.. 적어두 내가 죽을 때까진 비밀루.. 아뇨 아뇨. 끝까지 끝까지 비밀루 해 주세요.
영심씨한텐 난, 유학간 걸루.. 그런 걸루..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지환 (복잡하고) ... ...
지혜 (가슴이 미어지고) ... ...
정우 나 죽을 병 걸린 거 알면 영심씨.. 나 죽어버린 거 알면 그 여자.. .. 살아있는 그 여자 내
가 두번 죽일 수는 없잖습니까? 나 때문에 망가진 그 여자 또 다시 망가뜨릴 순 없잖습니
까?
지환 ... ... 그럼.. 병.. 때문에.. 일부러.. 일부러 거짓 .. 말을 한.. 거예요?
정우 ... ...
지환 박정우씨. 나, 박정우씨 진심.. 알구.. 싶어요.
정우 곧 죽어버릴 내 진심이 뭐가 중요해서요. 내 진심따윈 잊어버리세요. 내 진심보단 살아있
는 사람들의 진심이.. 계속 살아나갈 사람들의 진심이.. 중요.. 하죠.
지환 ... ...
정우 영심씨한테 저.. 상처만 줬습니다. 너무 큰 상처만 남기고 더나게 됐습니다. 그 상처.. 휴
안지게.. 두고 두고 흉 안남게.. 선생님이 치료해주십시오. 그 불쌍한 여자 버리지 말구
제발 버리시지 말구.. 따뜻하게 선생님이 보듬어 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정말 부탁..
드립니다 선생님..
지환 ... ...
지혜 (그저 망연한 표정으로 유령처럼 나간다)
정우 ... ...
지환 ... ...
영심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모습 길게..
#53. 시간경과 몽따쥬
-2004년 12월 달력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거리에 등장한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 구세군 남비들.. 종소리들..
-식사 준비를 해놓고, 식탁보를 올려놓고, 2층으로 올라가는 영심.. 식물인간 같다.
-어둠 속에 오두마니 앉아있는 영심.. 그런 아내를 문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지환.
-고시원 방에 누워 혼자서 죽어가고 있는 정우.. 병색이 짙어진 핼쓱한 모습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 혼자 앉아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영심과 지환, 정우의 모습이 각각 차례로 보
여진다.
#54. 민원장 저택 대문 앞 (밤)
핼쓱한 정우, 영심의 집을 그리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55. 아이들 방
아이들과 영어로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있는 지환.
영심, 들어오고.. 건호의 책가방과 준비물을 확인하는데.
지환 (아내의 기척 살피며) 당신두.. 같이.. 해.
건호 (뜻밖이라는 표정) 엄마, 영어 못하잖아 아빠?
지환 영어루 안하면 되지.
지원 맞어. 엄마 일루 와. 우리랑 같이 하자. 어?
영심 아냐. 아빠랑 해. 엄만 오빠 준비물두 챙겨야 되구 빨래두 다려야 되구 할 일이 많아.
지환 (어두워지는)
건호 참! 엄마, 내일 교통지도 엄마 차례야! 7시까지 학교루 오래. 장소랑 담당선생님 연락처
랑 거기 적어놨어.
영심 음. (찾아서 확인하는)
지환 (복잡한 표정으로 아내를 응시하고 있는)
지원 (영어로) 뭐해? 아빠 차례야. 얼른 해.
지환 어어. (시선을 거두고 다시 게임을 한다)
영심 (생기 사라지고 풀기 물기 다 마른 모습으로 건호의 책가방 챙겨주고 있다)
#56. 동 저택 대문 앞 (밤)
하염없이 영심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
정우, 근처 난간으로 가서 걸터앉고.. 힘이 드는 듯 고개를 풀썩 떨군다.
정우, 그렇게 몸을 숙인 채 고개를 떨군 채 영심의 집앞에 앉아 있다.
그런 정우의 모습 위로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다.
#57. 영심 부부방
지환, 세수를 하고 난 후의 모습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오고..
영심, 외투를 입고 있다.
지환 참, 교통지도 있다구 했지?
영심 셔츠랑 넥타이랑 내놨어요. 입구 가요. 다녀올게요.(나가는데)
지환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내가 태워줄게.
영심 아니예요. 바로 요 앞인데 무슨 차를 타구 가요. 오랜만에 바깥 공기두 쐬구 싶구 산책삼
아 걸어갈래요.
지환 그럴래?
영심 (끄덕이는) 갔다 올게요. (나간다)
지환 (어떤 불안함으로) ... ...
#58. 동 저택 대문 앞
밤새 그러고 있은 듯 고개를 떨군 모습으로 그대로 앉아있는 정우.
정우, 하늘을 보면 벌써 아침이다.
정우, 일어나고 마지막으로 영심의 집 한번 더 쳐다보고 천천히 걸어내려가는데.. 정우의 귀에
한순간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던 기대감으로 멈추어 서는 정우.
정우, 천천히 뒤돌아보는데..
정우의 시선에.. 대문을 닫고 돌아서 걸어나오고 있는 영심!
정우 (영심을 보는 그 순간 눈물이 핑 돈다) ... ...
영심 (정우 존재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걸어나온다)
정우 (몸을 감출 마땅한 데가 없어 그저 몸을 돌려 영심 향해 뒷모습으로 선다)
영심 (고개 떨군 채 바닥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정우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영심.
정우, 가슴이 무너지는 데.. 영심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정우를 지나 걸어내려 가고 있다.
정우 (눈물로 영심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러나 정우 존재 모른 채 점점 멀어져 가는 영심.
#59. 학교 앞 횡단보도
횡당보도에 깃발을 들고 서서 신호 바뀔 때마다 아이들 향해 수신호 해주고 있는 영심.
영심, 생기라곤 하나 없는 식물인간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영심의 시선, 오직 신호등만 향하고
있다.
영심의 깃발 신호로 우르르 건너가는 들굣길의 생기 넘치는 아이들..
횡단보도 건넛편에서 그런 영심을 슬픔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우.
식물인간 로봇처럼 서있는 영심, 옆으로 어느 순간 건호가 와서 선다.
건호 엄마!
영심 (그제야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쳐다본다) 건호야! 옷이 이게 뭐야? 엄마가 파카 내놓구
왔는데. 못봤어?
건호 봤어. 근데 그거 내 스타일 아니야. 색깔두 후지구. 뚱땡이 같단 말이야.
영심 (그저 엷게 웃고는 머플러를 풀어서 아들의 목에 잘 매어준다)
그 모습 엷은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정우.
신호 바뀌고..
건호 엄마 안녕! (손을 흔들며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영심 (건호 향해 손을 흔들며 아들의 동선을 쫗아 따라가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정우!)...(!)...(두눈 출렁이고)...
정우 (자신을 알아본 영심!) ...(그저 응시한 채 서 있다)
영심 (눈물이 차 오르고)
정우 (눈물이 차 오르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영심과 정우, 그렇게 눈물로 서로를 향해 서 있다.
-제 1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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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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