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열대야 16
#1. 지환 서재 (15부 씬40)
지환 제수씨한테 하나만 더 부탁할게요. 그친구 아픈 거.. 지금 많이 아픈 거..집사람은 끝까지 몰랐으면 해요. 그친구두 그걸 바라구요.
영심 (?)
지혜 사,살릴 수..있는 바,방법이 정말..없을까요? 정우..이,이렇게 그냥 죽어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정말 없는..건가요?
영심 (엄청난 충격으로 멍하게 서 있다!) ... (모든 사고가 일시정지 되고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2. 1층 거실 (15부 씬47)
영심, 정신없이 뛰어 나가고..
방에서 나오던 민원장, 그런 며느리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민원장 에미야! 에미야!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심, 눈물 범벅인 얼굴로 현관을 뛰쳐나간다.
민원장 (철렁하고) ... (예사일이 아니다!)
#3. 고시원방
눈물로 뛰쳐들어오는 영심!
정우 (놀라고) ... ...
영심 (망연하게 바라보며 그저 눈물만 쉴새없이 흘린다)
정우 (짐작이 되어 철렁하고) ... ...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저) ... ...
영심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 ...
정우 (안간힘으로) 돌아..가요. 돌아..가주면..좋겠어요.
영심 (눈물로 가로젓는) ... ...
정우 나 지금 나가는 길인데.. 사진 찍으러 갈건데.. 문을.. 잠궈야.. 되거든요. (이 앙다물고) 나가줘요. 돌아가줘요.
영심 (그저 가로젓는)
정우 (성큼성큼 나가버린다)
영심 ... ...
정우 (문밖에서) 나와요. 어서요?
영심 ... ...
정우 (지르는) 나와요! 나와요! 나와요 제발!
영심 ... ...
#4. 도로, 달리는 정우 차안 (15부 씬54)
자유로를 달려내려가는 정우.
수많은 한강 다리들을 스쳐지나서 '경부고속도로' 이정표를 확인하며 계속 달려나가는 정우.
그리고 한남대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경부고속도로' 이정표 확인하는 정우.
그러나 정우, 한남대교 진입하기 전에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만다.
정우 (격렬하게 갈등하고) ... ... (힘들어서 핸들에 머리를 파묻는다)
#5. 고시원 앞 (15부 씬55)
늦은밤.. 인적이 끊긴 고시원 앞 골목엔.. 망연하게 앉아있는 영심.
겨울 바람이 연신 얼굴을 때려대는데도 영심, 미동없이 꼼짝도 하지않고, 고집스럽게 앉아있다.
어느순간..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오고..
영심 (천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 ...(정우다!)
정우 (아직도 가지않고 어둠 속에 앉아있는 영심!) ... ... (가슴이 미어지고)
영심 (스르르 일어나고)
정우 (차에서 내린다)
영심 ... ...
정우 ... ...
영심 (글썽이는)... ... (한순간 달려나가 정우를 확 껴안는다)
정우 ... ... (머뭇머뭇 망설이던 손이 영심을 마주 껴안는다)
영심 (정우의 품으로 절박하게 파고들며 더 꽉 껴안는다)
정우 (그런 영심을 꽉 자신의 품안에 품어준다)
영심 ... ...
정우 ... ...
#6. 영심 부부방
어둠속에 망연히 앉아 있는 지환. 아내가 사라졌다. 가..버렸다.
지환 (아마도 아내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
#7. 고시원 앞, 정우 차안 (밤)
젖은 눈으로 앉아 있는 영심과 정우.
영심 ... ...
정우 ... ...
영심 우리 엄마.. 디게 실망하겠다.
정우 왜..요?
영심 나, 남편한테 이혼당하면.. 우리엄마, 나 정우씨한테 다시 시집보내려구, (텅빈 웃음으로) 그럴려구 맘먹구 있거든요. 어젯밤에 우리끼리 계획 다 짜놨는데.. 김치국만 마셨네.
정우 (그저 아픔으로) ... ...
영심 병명이..뭔데요?
정우 미만성 뇌간교종.
영심 그거.. 한국말 맞아요? 꼭 외국말 같다. 하나두 못알아 듣겠어. 이름부터가 맘에 안들어. 듣는 사람 기죽이며 저혼자 잘난체 하는 거 같잖아.
정우 뇌종양의 일종이래요. (머리 톡톡 두드리며 웃음기로)이 안에 암덩이가 수두룩 하대요. 손을 쓸수 없을 만큼. 안믿어지죠? 하나두 안아픈 거 같죠 나?
영심 (두눈을 질끈 감는다) ... (감은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주, 죽나..요?
정우 그렇다네요.
영심 ... ... 아,앞으루 어,얼마나..?
정우 한달쯤? 뭐 그보다 빠를 수두 있구.
영심 (무너져 내리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숨이 안쉬어지는 듯 힘들어하는) ... ...
정우 참 시시한 인생이죠 나. 대단한 게 기다리구 있을 줄 알았는데.. (웃음으로) 이렇게 대단하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영심 ... ... 끝..까지 나한텐 안 알리려구 했어요?
정우 뭐 좋은 일이라구 동네방네 소문을 내요. 머리통 속에 들어있는 암덩이보다 사람들 아는 체 하는 게 실은 더 힘들거든요. 사람들 아는체 하는 통에 죽겠어요 아주. 그래서 사람들 피해 도망가려구 여행 떠나는 거예요.
영심 여행.. 어.. 디루.. 가요?
정우 뭐 여기저기, 발길 닿는대루 내맘대루 내멋대루.
영심 따라..가두..돼요?
정우 (두눈 출렁이고) ... ... 안..돼요. 난 원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여행 못해요. 불편 하구 귀찮구 신경써야 되구, 그런 거 딱 질색이거든요. 마지막 여행인데 혼자 내맘대루 즐기면서 하구 싶어요.
영심 같이..가요. 같이 갈래요 나.
정우 (힘들고) ... ... (화를 내는) 영심씨가 왜요? 도대체 영심씨가 왜요? 그렇게 당하구서두 이래요? 아직두 모르겠어요? 나란 놈이 어떤 놈인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영심씨 아직두 몰라요?
영심 ... ...
정우 나, 영심씨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정말이예요! 그,그냥 나한테 영심씬, 좋은.. 사람이구, 본의 아니게 내가 상철줘서 미안한 사람이귀, 그,그냥 친절한 사람이구, 고마운 사람이구.. 그거.. 뿐이예요. 근데 왜,왜 내가 영심씨랑 영행을 가요?
영심 ... ... 내가..사랑..하니까요..내가.. 정우씨..사랑하니까요..
정우 (무너져내리는) ... ...
영심 ... ...
정우 (화가 많이 난 사람처럼 갑자기 거칠게 차를 몰아서 급하게 출발한다)
영심 ... ...
정우 ... ...
#8. 민원장 저택 대문 앞, 정우의 차안 (밤)
달려와 가파르게 급정거하는 정우의 차.
정우 내려요!
영심 싫어요!
정우 내려요 어서!
영심 싫어요! 안내려요! 안내릴거예요!
정우 (거칠게 내리고,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전밸트 풀어서 영심을 잡아서 끌어내린다)
영심 (끌려나오고)
정우 (집을 가리키며) 영심씨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예요! 알아요? 영심씨가 지켜야할 건 내가 아니라 저기 저 안에 있는 영심씨 가정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가요! 가요 어서! 들어가요오!
영심 (눈물로) 싫어요! 안가요! 정우시 이렇게 두구, 정우씨 혼자두구, 못가요 난! 정우씨 죽어가는데, 정우시 혼자 죽어가는데, 내가 어떻게 저 안에 저 집에 있어요. 옆에 있어 줄게요! 외롭지 않게 정우시 혼자 무섯비 않게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 그렇게 하게 해줘요 제발!
정우 (눈물 흐르고) ... ...
그때 달려오는 민원장의 차.
민원장 (며느리 발견하고) 차 좀 세워.
민원장의 차 멈추어 선다.
민원장, 며느리와 정우를 무거운 표정으로 잠시 지켜보고 있다.
정우 (고통으로) 제발 들어가요.. 제발 들어가요 영심씨이.. 제발이요.
영심 ... ...
정우 (영심의 팔을 낚아채 잡고 대문앞으로 끌고가서 초인종을 누른 후 영심을 대문앞에 밀어주고 성큼성큼 걸어내려 간다)
영심 ... ...
수현 (E) 누구세요? ... 누구세, 언니? 언니야? (하는데)
영심 (뒤돌아 정우를 향해 걸어내려 가는데) ...
영심의 시선에.. 바로 앞에 시아버지가 영심을 응시하고 서 있다!
영심 (움찔 멈춰서고) ... 아,아버님?
민원장 (쏘듯 응시하고만)... ...
정우 (당혹해하며 걱정스런 시선으로 보고있는)
민원장 (정우를 쳐다본다)
정우 (고개를 떨구는)
민원장 (묻듯 영심을 다시 응시한다)
영심 아버..님, 저..그만..지,집을..떠나..려구요. 저..사람이..많이 아,아파요 아버님. 주,죽는데요. 죽을 거래요. 아,앞으루 길어야 하,한달 살수 있대나봐요. 저..저사람한테..가려구요. 저..저사람..떠나는 거..옆에서..지켜주려구요. 호,혼잔 너무 외롭잖아요.. 혼자서는 너무 무섭잖아요.
민원장 ... ...
영심 보,보내..주세요. 저..저사람이랑 갈래요 아버님.
민원장 ... ...
정우 (다가오고 정중하게 목례하고) 데리구..들어가..주십시오. 면목..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원장 ... ... 가봐요.
정우 ... 네. (목례하고, 애써 영심을 외면한 채 내려가 차에 오르고 급하게 떠난다)
영심 저,정우씨! 정우씨! (두눈이 절박하게 쫓는) ... ...
정우의 차 이내 사라지고..
민원장 ... ... 들어가자.
영심 (두눈 저 멀리 정우에게로 향한 채 붙박혀 서 있다)
민원장 (그런 며느리를 감싸서 이끌고 대문으로 향한다)
영심 (유령처럼 그저 이끌려 간다)
#9. 민원장 저택 거실
계단을 다급하게 뛰어내려오는 지환.
지환의 시선에.. 거실 한가운데 아버지에게 잡힌 채 서 있는 아내!
수현과 나여사, 입을 쩍 벌리고 기막혀 하며 지켜보고 서 있는 가운데..
민원장, 며느리가 다시 뛰쳐나갈까봐 영심을 아직도 감싸서 잡고 서 있다.
지환 (할말을 잃은 채 )... ...
영심 (잡힌 채 눈물 흘리며 멍하게 서있다)
민원장 (지환 향해) 데리구 올라가.
지환 (다가가 잠시 아내를 막막하게 보고) ... ... (데리고 올라간다)
수현 몇시야? 잠이 다 깨네. 대체 말두 없이 어디 갔다 온거래? 꼴은 또 왜 저, 설마 또..?
나여사 저물건 어디서 만났어? 어? 어?
민원장 (아무말 없이 그저 소파로 가서 풀썩 앉는다) ... (골똘하게 생각하는 표정이 되고)
#10. 영심 부부방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영심과 지환.
영심 ... ...
지환 ... ... 늦었어. 그만 자자.
영심 미만성.. 뇌간교종, 당신두.. 못고치는 병이야?
지환 (예감했지만 철렁하고) 어떻게.. 알았어?
영심 그병 걸린 사람들은 그냥 죽어야 되는 거야? 두손 놓구 그저 속수무책인 채루 그냥 하루하루 죽어..가는 길밖엔.. 정말 그 방법밖엔 없는 거야?
지환 그친구.. 한테 갔었니?
영심 어.
지환 (불안함과 혹시나 하는 기대로) 근데.. 왜,왜.. 돌아.. 온거니?
영심 짐.. 싸서.. 나가.. 려구. 아주.. 가려구 나. 그래서 아버님 따라 선선히 들온거야.
지환 (화가 나서 홱 쳐다본다)
영심 보내줘. 그사람한테 가야겠어 나.
지환 너 바보니? 바보야? 가면? 가면? 걔 죽을 애야! 걔 얼마 안 있으면 곧 죽는다구! 그자식 죽구나면 너 어쩔건데? 그자식 죽어버리구 나면 어떡할 건데 너는? 너는? 너는 이 바보야?
영심 ... ...
지환 같이 살다가두 죽을 병 걸리면 버리는 세상이야! 고작 한달 그자식이랑 살겠다구 모든 걸 다 버릴거야?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 지켜보는 게 얼마나 고통인데? 언제 죽을지두 모르는 환자 옆에서 간호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데?
영심 ... ...
지환 (눈시울 붉어지고) 다 버리구 가서 그걸 하겠다구? 남은 니 인생 포기하구 가서 그걸 하겠다구? 그 자식 죽어가는 거 하루하루 보면서 너두 같이 죽어가겠다구? 그걸 하겠다는데 나보구 보내달라구? 어? 어?
영심 (서러운 울음으로 애원하는) 보내줘. 보내줘 여보. 나 갈래. 나 갈래. 그래두 나 그사람한테 갈래. 그래두 나 갈래 여보오오..
지환 (암담하고, 두눈을 질끈 감는다) ... ...
영심 (흐느껴 운다) ... ...
지환 (감은 눈에서 고통스러운 눈물이 흐른다) ... ...
영심 (마음 다잡고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서 이 앙다물고) 미안해. 미안해 여보. 당신 힘든거 잘 아는데 나 지금 당신 힘든 거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 평생 당신한테 미안해 하면서 속죄하는 맘으루 살게. (장롱으로 가서 절박하게 트렁크 꺼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지환 (무너져내리는) ... ...
*시간 경과 되고..
영심 (트렁크와 다른 짐가방 양손에 든 채) 법원..에서 봐. 난 낼 당장이라두 괜찮은데. 아니, 낼 바루 했으면 좋겠어. 2시쯤 어때요?
지환 ... ...
영심 낼 2시에 법원 앞에서 만나요. (천천히 걸어나가는)
지환 (고통으로) 오영심! 오영심! 오영시임-!
영심 (멈춰서고)... ...
지환 난 안보이니? 이제 니눈에 난 안보이니? 이제야..이제서야.. 널 바라보구 있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내눈은 안보여? 나.. 나말야.. 나.. 너 사랑해. 사랑한다구..
영심 (놀라고) ... ...
지환 죽어가는 그자식만 니가 필요한 게 아니란 말이야. 나두 나한테두 니가 필요해. 살아있는 나한테두, 니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자식은 고작 한달이지만, 난 20년 30년 앞으루 계속, 죽을 때까지 계속, 니가 필요하다구우..
영심 (몸에서 기운이 쑥 빠지고) ... ...
지환 나한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줘.
영심 ... ...
지환 나, 너.. 니 생살 지지며 타죽을 일밖엔 안남은 위험천만인 불길 속으루 못보내. 널 그런식으루 고통스럽게 그자식이랑 함께 죽어버리게 놔둘 순 없어. 지키구 싶어. 늦었지만 나, 너 지키구 싶어 영심아!
영심 ... ... 죽었어. 이미.. 난.. 죽었어 여보. 그사람.. 죽을병 걸린 거, 그거 안 그순간에, 이미 난 그사람 따라 죽었어. 이렇게 텅 비어버린 껍데기루 당신 옆에 있을 순 없을 거 같아. 그게 얼마나 힘든데..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 난 못해 여보. 낼 2시에 법원에서 봐. (휑하니 빠르게 걸어나간다)
지환 (온몸이 풀썩 꺾이는, 절망인 채로 고통인 채로) ... ...
#11. 아이들 방
컴컴하고.. 잠들어 있는 건호와 지원.
영심, 차마 아이들 곁으로 가지 못한 채 방 한가운데 서서 애끓는 ᄂ심정으로 아이들을 그저 바바보고만 있다. 영심, 오래 그렇게 서 있다.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맘이 약해지고.. 어느 순간 영심, 홱 뒤돌아 뛰쳐나가버린다.
소리를 듣고 건호가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난다. 눈을 비비며 문밖을 쳐다보는 건호.
건호 (누구지?)
#12. 2층 거실
영심, 트렁크를 집어들고 짐가방도 집어들고 눈물로 계단을 내려간다.
#13. 1층 거실
트렁크와 짐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영심을 민원장과 나여사, 수현이 놀란 눈으로 일제히 쳐다본다.
민원장 (놀람이 차츰 노기로 바뀌어 가고) ... ...
나여사 너, 너?
수현 (휘동그래진 채) ... ...
영심 (트렁크와 짐가방 내려놓고 천천히 식구들 곁으로 다가간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너무 많이 부족한 며느리여서 죄송해요. 잘 하구 싶었는데.. 정말 잘 하구 싶었는데.. 아버님 어머님과 시작두 끝두 이렇게 밖에 못해서.. 이렇게 큰 상철 드리구 떠나게 돼서.. 너무.. 너무 죄송해요.
나여사 (얼얼한) ... ...
민원장 (굳은 채) ... ...
영심 내내.. 건강하세요. (차분히 목례하고 트렁크를 집으려는데)
민원장 좀 앉아봐.
영심 ... ...
민원장 뭐해? 앉으라는데? 시애비 말 안들려?
영심 (가서 앉는다)
민원장 애비하구 의논된 거야?
영심 ... ...
민원장 그럼 너 혼자 결정이야?
영심 네.
나여사 허어! 적반하장이 따루 없네. 하두 기가 막히니까 말이 다 안나오네 말이. 아우 심장 떨려.
민원장 심사숙고한 게야?
영심 네.
민원장 두구두구 후회 안할 자신 있어?
영심 (대답을 못하고) ... ...
민원장 사람 감정만큼 중요한 게 없지만 또 사람 감정만큼 믿을 게 못되는 것두 없는 게야. 시시각각 변하는 게 사람 감정이구 세월따라 마모되구 소진되구, 그 어떤 거보다 부침이 심한 게 사람 감정이란 거야. 지금 절실한 것도 세월 지나보면 아무것두 아닌 게 되구, 지금은 아무것두 아닌 거처럼 사소해 봬는 것두 세월 지나보면 소중한 게 되구..
영심 ... ...
민원장 어려운 결정일수록.. 변하지 않는 거, 세월 흐른다구 소진되지 않은 거, 그걸 기준으루 판단하구 선택하면 나중에라두 후횔 줄일 수가 있어. 앞으루 니 감정이야 시간따라 세월따라 수도 없이 변하겠지만, 네 가정은.. 네 가족은.. 영원한 거야. 떠난다구 떠나지는 게 아냐. 평생 괴로울 게구 평생 상처야. 너두 애비두 애들한테두.
영심 ... ...
민원장 마음 돌려. 널 위해서 모둘 위해서 돌려. 그게 수야. 그게 답이야.
나여사 말두 안돼!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당신 며느리 당신 아들 배신하구 우리 뒷통수 치구 젊은 남자랑 바람났다구 지금! 근데 그걸 돌려? 돌린다구 돌려져? 돌린다구 없던 일 되냐구? (영심향해) 나가! 그래 나가! 이 길루 나가서 두번 다시는 우리집에 얼씬두 하지마! 그리고 너어 애들 볼 생각, 꿈에두 , 꿈에서라두 하지말어! 알았어?
영심 ... ...
민원장 지환이가 문제삼지 않으면 나도 문제삼지 않으마. 애비가 덮으면 나두 느이 시어머니두 엎을 게야. 그러니가, (하는데)
영심 (O.L) 그사람을.. 사랑..합니다! 애들아빠가 아니라.. 그사람을 사랑해요!
나여사 뭐, 뭐가 어, 어쩌구 어째? 뻔뻔하게 감히 어디서, 다시 말해봐 너? 지금 한말 다시 말해봐 너?
영심 사랑..합니다.. 그사람을..! 제 남은 인생 다 포기해서 그 사람 남은 날이 덜 외로울 수 있다면, 살아있는 시간만큼이라도 저루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저 기꺼이 제 남은 인생 그사람한테 주구 싶어요.
수현 (중얼) 뭔 소리야? 남은 날..?
영심 가난 때문에 병든 아버지 때문에 늘 전전긍긍 마음 졸이며 사느라 한시두 맘 편히 쉬어보지 못한 그 사람.. 마지막 시간만이라두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제가 그 사람 손이 돼주고.. 그사람 발이 돼주고.. 그사람 맘이 돼주고.. 죽어가면서까지 무서운 암덩이한테 시달려야 하는 불쌍한 그사람.. 덜 무섭게.. 손이라두 잡아주구 맘이라두 잡아주구.. 그렇게 해주구 싶어요.
민원장 ... ...
영심 죄송해요 아버님.. 나중일까지 생각할 여유가 전 없어요. 나중일 생각해서, 나중에 후회할 거 생각해서, 지금 외로운 그사람, 지금 죽어가는 그사람, 저렇게 혼자 둘 수는 없을 거 같아요. 후횔 해야한다면 차라리 후횔 할래요. 벌을 받아야 된다면 차라리 벌을 받을래요. 그럴.. 래요. (천천히 일어나고) 안녕히들.. 계세요. (천천히 걸어나가 트렁크를 집어 드는데)
계단 위에서 눈물로 엄마를 노려보고 있는 건호!
영심 (철렁하고 트렁크를 쿵, 떨어뜨린다) ... (아들이다!)
건호 (증오에 찬 시선으로 엄마를 부들부들 노려본다) ... ...
영심 거, 건호야..! 거,건호야, 저,저기.. 저,저기 어, 엄마가.. (하는데)
건호, 싸늘하게 일별한 후 울면서 뛰어올라간다.
영심 ... ... (그저 멍해지고) ... ...
수현 어떻게? 건호가 다 들었나봐 엄마?
나여사 (두눈을 진끈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민원장 (착찹하고)
영심, 안간힘으로 트렁크를 집어서 들고 천천히 걸어서 거실을 나가고 현관을 나간다.
나여사 (허탈하고) 허어.. 허어..
민원장 (암담한 채) ... ...
#14. 고시원
정우, 맥없이 고통으로 슬픔으로 앉아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정우, 비명을 질러대며 방안의 책이며 자신의 사물들을 마구 집어던진다. 정우, 집어던지고 또 집어던지고.. 정우의 좁은 고시원방이 금새 엉망진창 난장판이 된다. 그리고 그 난장판 한가운데 풀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정우. 살고싶다! 정말 살고싶다! 미치게 살고싶다!
뜨거운 눈물이 정우의 눈에서 쉴새 없이 흘러내린다.
#15. 고시원 밖 (밤)
양손에 짐가방 들고 고시원 정우방을 응시하고 있는 영심.
영심, 결심하고.. 정우 향해 또박또박 한걸을 내뗄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으며 그렇게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16. 고시원 안
정우, 난장판 속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노크소리 들린다.
정우 (?) ...(언뜻 어떤 예감으로 홱 쳐다보는데)
짐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영심!
정우 (착찹하고) ... ...
영심 (방안 광경과 눈물 범벅인 정우 얼굴 때문에 가슴이 아린다) ... ...
정우 (눈물 때문에 다급하게 외면하고) ... ... (싸늘하게) 돌아가요. 아무리 영심씨가 이래두, 나는 영심씨 받아들을 수 없어요. 괜히 힘 빼지 말아요 우리. 다시 데려다 줘요? 이번엔 집안에까지 들어갈까요 나?
영심 그럴 필요 없어요. 나, 어른들께 말씀드리구 아주 나온 거예요. 이제 돌아갈려구 해두 돌아갈 수가 없어요. 어느 시어른들이 바람나 짐싸서 나간 며느릴 다시 받아주겠어요? 나, 갈 데 없어요. 그러니까 정우씨가 나 좀 받아줘요.
정우 정말 왜 이래요? 싫다잖아요? 난 영심씨한테 아무 감정 없다잖아요? 싫다는 사람한테 귀찮게 자꾸 왜 이래요? 나 영심시 싫어요! 귀찮다구요!
영심 (글썽이며)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정우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가고) ... ...
영심 (눈물 훔치고) 싫음 계속 싫어해요! 뭐 귀찮아두 할 수 없어요! 나한테 아무 감정 없다구요? 알았어요! 나두 그럼 지금 이 시간부턴 정우씨한테 아무 감정 안가질게요! 그럼 되죠?
정우 ... ...
영심 난 있을 데가 필요하구 정우씬 친구가 필요하구, 그냥 상부상조해요 우리! 뭐 나랑은 친구두 싫음 그럼 가정부라구 생각해요. 숙식 제공받는 대신 집안일은 내가 할거니까! 좋네! 가정부!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어딜가나 가정부. 주인님, 그럼 저 들어갑니다아!(씩씩하게 들어오고 짐을 쿵, 하고 놓는다) 주인님, 난요 절대루 못나가니까요 뭐 배째시든가요? 자요? 배째요 배째?
정우 (어이없어서 조금 웃는데)
영심 저기요 주인님, 울다가 웃으면 어디 어디에 큰일 난다던데요? 조심 좀 하시죠?
정우 (풋, 웃음 터지고 소리내 웃는다)
영심 (난장판이 된 정우의 방과 그방에 앉아 눈물 머금은 눈으로 웃고 있는 정우가 아프다!) ... ... (짐짓) 방꼴이 이게 뭡니까 주인님? 네? 후우.. 앞으루 오영심 가정부 생활 진짜 험난하겠다! 나와요! 치우게!
정우 (머쓱)..
영심 아 일어나요? 청소하게? 코딱지만한 방 거기 한가운데 턱하니 앉아있음 내가 어덯게 치워요? 절루 저 구석으루 가요 구석으루.
정우 (그저 일어나 가고)
영심 (팔 걷어붙이고 주섬주섬 빠르게 치우기 시작하는)
정우 (그런 영심 바라보며 복잡해지고) ... (욕심도 나고 보내줘야도 되겠고) ... ...
#17. 영심 부부방
컴컴하고..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누워있는 지환.
아내에게서 버림받은 지환, 상처가 깊다.
지환, 누운 채 텅 비어있는 아내의 자리를 깊은 상실감으로 응시하는데..
노크소리가 들린다.
지환 (?) 네. (일어나 앉고 바라보는데)
문이 열리고, 날이 선 눈빛으로 울면서 들어오는 건호.
지환 (놀라고) 민건호? 무슨 일이야 너? 자다가 나쁜 꿈이라두 꿨어?
건호 엄마가 정말.. 우리 엄마가 정말.. 바람.. 났어요? 아빠 말구 다른 남자랑 젊은 남자랑 바람 났어요?
지환 (철렁하고) ... ... 그, 그게 무, 무슨 소리야 너? 누가 그래? 도대체 어디서 그런 소릴 들은 거야?
건호 거실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그러셨어요. 그리구 엄마두.. 엄마두.. 아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 사랑한다구 그랬단 말이예요! 그게 사실이예요 아빠? 정말 그래요?
지환 ... ... 아들, 이리 와봐. 어서.
건호 (다가가 앉고)
지환 (눈물을 닦아주며) 우리 오랜만에 남자 대 남자루 얘기 한번 할까? 대신 지금 하는 얘기는 아빠하구 너하구 만의 비밀이야?
건호 (끄덕이는)
지환 그래 맞아. 엄마, 이제 아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해.
건호 (글썽글썽 다시 치밀어 오르고, 받아들이기 힘든)
지환 근데 바람이 났다느니 하는 표현은 옳지 않아.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야. 그게 아빠면 좋겠는데 아빠가 아니라서 아빠두 맘이 아파.
건호 ... ...
지환 근데 아빠두 얼마전까진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했어. 아빠만 좋아하고 바라보고 있는 엄말, 아빠가 오랫동안 너무 힘들게 했어.
건호 그래두.. 그래두.. 엄마가 아빨 놔두구 어떻게 다른 남자를 좋아할 수가 있어요?
지환 아들, 너 호주 다녀와서부터 실비아 좋아한다구 했지? 근데 너, 아빠가 알기론 호주가기 전까진 니짝꿍 좋아했었어. 아냐?
건호 ... ...
지환 엄마두 너랑 아빠처럼 다른 누군갈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건호 그렇다구 아빠두 나두 집을 나가진 안잖아요?
지환 ... ... 그래.. 그래.. 근데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많이 아파. 어쩌면 죽을 지두 몰라. 그래서 엄마가 병간호 해주러 간거야. 너두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프면 가서 간호해주구 싶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건호 ... ...
지환 기다려..주자 우리. 오랫동안 엄마가 아빨 기다려준 거처럼 이번에는 아빠랑 건호가 엄말 기다려.. 주자. 음?
건호 (받아들이기 힘든 듯 울상인 채로)... ...
지환 (힘들고)
#18. 고시원 방
깔끔하게 치워진 방에 영심과 정우, 조금 떨어져서 앉아있다.
영심 (막상 오긴 왔는데 어색하고 불편하다) ... ...
정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착찹하다) ... ...
영심 (슬쩍 쳐다본다) ... (난감하고) 후우.. (막막하다)
정우 (그런 영심 바라보며 고민스럽고) ... ... (일어나고, 잠바를 집어든다)
영심 왜,왜요? 어디 가려구요?
정우 눈 좀 붙여요. 새벽3시예요 벌써.
영심 정우씬요?
정우 기태네 가서 잘게요. 자요 영심씨. (나가려는데)
영심 정우씨 잠깐만! 잠깐만요!
정우 (뒤돌아본다)
영심 가지..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같이.. 지내려구 온거예요. 정우씨 혼자 안두려구 온건데 가버리면 어떡해요. 그리구 아픈 사람이 가긴 어딜 간다구 그래요? 있어요.. 같이.
정우 ... ...
영심 자, 자요 우리. 뭐 같이 자면 되죠 뭐. 이불 어딨어요? (둘러보고 발견하고 가져다 이부자리를 깐다) 여, 여기서 정우씨 자구, (다른 이불 또 깔며) 난 또 여기서 가구, 뭐 문제 있어요?
정우 ... ...
영심 뭐해요? 안눕구? 자자구요. 아니, 그만 취침하시죠 주인님?
정우 영심씨.
영심 (O.L) 아후 안잡아 먹어요? 안잡아 먹어! 내가 털끝 하나 안 건드릴 테니까 아무 걱정말구 거기 누워서 편하게 자요. 아무렴 뭐 내가 아픈 사람 어떻게 하겠어요?
정우 (어이없는 웃음으로 흘겨보는)
영심 뭐 나한테 아무 감정 없다면서요? 나두 주인님한테 아무 감정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구 자자구요. 같이.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등을 보이고 눕는다)
정우 ... ...
영심 (벌떡 일어나 불을 끄고 다시 들어가 눕는다) 잘자요 정우씨. (눈을 감고)
정우 ... ... (그저 앉고.. 물끄러미 영심을 바라본다)
영심 (눈을 슬쩍 떠서 고개를 살며시 돌려 정우를 엿보는데) ...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정우!) ... (당황, 홱 고개를 다시 돌린다) ... 뭐해요 안자구? 거 참 사람 디게 신경 쓰이게 하네. 익숙해.. 져야죠. 앞으루 줄창 같이 지낼텐데. 그러구 있음 나두 못자니까 누워요 얼른.
정우 ... ...
영심 얼른이요?
정우 (막막한 표정으로 그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영심 향해 등을 보이고 돌아눕는다)
비좁은 고시원방에 그렇게 등을 맞대고 누워있는 영심과 정우..
영심 (떨리고) ... ...
정우 (떨리고) ... ...
영심 (온 신경이 정우 향해 뻗은 채 긴장해 있고) ... ...
정우 (온 신경이 정우 향해 뻗은 채 긴장해 있고) ... ...
영심 (딸꾹딸꾹 갑자기 딸꾹질이 나와서 죽어라 입을 틀어 막는다) ... (그러나 계속 터져 나오는 딸꾹질) ... (죽을 맛인데)
정우 (딸꾹질 하는 영심도 슬프고 영심의 딸꾹질 소리도 슬프다)
*시간 경과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영심과 정우.
영심 ... ...
정우 ... ...
두사람 그렇게 서로에게 등을 보인 채 나란히 누워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F.O)
#19. 민원장 저택 전경 (다음날 아침)
#20. 동 저택 거실 - 주방
엉엉 울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지원.
지원 엄마아아.. 엄마아아.. 엄마아아아..
지혜, 아침준비 하다가 놀라서 뒤돌아본다.
지원, 엉엉 울면서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온다.
지원 엄마아? 엄마아? (엄마가 없는 거 확인하고) 엄마아아아..
지혜 (착찹하고) ... ...
지원 작은엄마, 우리 엄마 못봤어요? 엄마가 없어요! 일어났더니 엄마가 없어요 작은엄마! 엄마 옷두 없구 엄마 가방두 없구.. 오빠가, 오빠가, 많이 아픈데, 열 나구 많이 아픈데, 엄마가 없어요.
지혜 (먹먹해지고) ... (그저 지원이 꽉 껴안아준다) ... (눈물이 흐르고)
지원 오빠가 엄마 이제 안올거래요. 우리 엄마 우리집에 이제 안올거래요. 아니죠? 아니죠 작은엄마?
지혜 아냐.. 그런거 아냐 지원아.. 열밤만 자면 (정우생각으로) 아니 스무밤만 자면 (거의 울음으로) 서른밤만 자면.. 엄마 오실거야. 지원이 보구 싶어서 우리 지원이가 너무 보구 싶어서 꼭.. 그땐 꼭 오실거야. 그땐 꼭.. (입을 틀어막고 흐느껴 운다)
지원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
지혜 울지마.. 울지마 지원아.. 울지마아아.. 울지마아아..
재환 (들어오다 놀라서 보고) 지혜야? 왜 그래? 왜 울어 너?
지혜 (그저 눈물로 가로젓고) ... (가슴을 움켜쥐고 하염없이 운다)
재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
지혜 (가로저으며 그저) 지원이가 울잖아.. 지원이가 울잖아.. 지원이가 지원이가 울잖아 재환씨이..
재환 (?)
#21. 아이들방
지혜, 지원이 데리고 들어온다..
지환, 출근차림으로 열 펄펄 끓는 건호의 체온 재고 약 먹이고 하고 있다.
지환 (걱정스럽고)
지혜 (다가가고) 어디가..? 감긴.. 가요?
지환 몸살이예요.
지혜 (마음이 무겁고)... 출근.. 하셔야죠? 제가 지원이 유치원에두 보내구 건호두 돌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구 아주버님은 출근하세요.
지환 ... ...
지혜 건호, 담임선생님 연락처 좀 주세요. 전화드리구 건호 오늘 하루 학교 쉬게 할게요.
지환 네. 고마워요 제수씨.
지혜 지원아, 머리부터 빗자. (지원이 앉히고 빗 가져다 머리 빗겨준다)
지환 (아픈 아들과 작은엄마 손을 빌리고 있는 딸 차례로 바라보며 막막해진다)
#22. 동 저택 거실
민원장,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고..
나여사, 지치고 힘든 기색으로 거실바닥 걸레질 하고 있다.
민원장 차 한잔 줘.
나여사 (지친 기색으로) 뭘루 줘.
민원장 아무거나 줘.
나여사 (짜증이 밴) 아무거나가 어딨어? 아무거나가? 사람 고민스럽게. 홍차 녹차 모과차 유자차 대추차, 뭘루 줘?
민원장 그래두 난 아무거나야. 고민 좀 해. 에민, 내가 그냥 차 한잔 달라구 그럼, 네 아버님 두말 않구 달려가서, 내 컨디션 맞춰서 시애비 몸상태 따라서 오늘은 대추차 저녁엔 모과차, 그랬어. 관심이구 애정이야. 누구처럼 시키니까 억지루 하는 게 아니구 차 한잔두 맘이라구.
나여사 그 썩을 물건 얘긴 아침부터 왜 또 꺼내고 야단이야? 재수없게.
수현 (출근차림으로 훈이 안고 나오며) 엄마, 훈이 좀! 나 늦었어. 얼른? 클라이언트랑 9시에 미팅있단 말야.
나여사 아, 아니 저기, 나두.. 나가봐야 되는데 곧.
수현 아우 하루쯤 집에 좀 있어 조음. 가만보면 엄마, 손주 넘 안보려구 한다? 다른집 엄마들은 키워두 준대는데? 친정엄마가 돼서 딸이랑 손주한테 너무 하는 거 아냐?
나여사 뭐야? 친정엄마가 뭐 죄졌어? 시집간 딸년 먹여주구 재워주구 게다가 애까지 키워주게? 아우 난 모르니까 니 자식 니가 키워. 베이비시터를 구하든지.
수현 (팩) 엄마! 정말 이럴거유?
나여사 (팩) 너는? 그러는 넌 정말 이럴거야? 느이엄마 갑자기 등꼴 휘는 거 두눈으루 보면서두, 나와서 밥만 달랑 먹구 들어가구, 늙은 에미가 쭈구리구 앉아 지방 청소하는데두 꼼짝두 안하구 앉아서 화장이나 하구, 뭐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두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두 있을 거 아냐?
수현 아후.. 아후.. 그래서 삐지셨수? 치사스럽게 그만한 일루? 고작 집안일 좀 안거들어 줬다구?
나여사 뭐 고작? 치사스러워? 그럼 어디 한번 니가 해봐. 니가? 고작이란 소리가 나오는지. 입에서 단내가 다 나는구만.
지환 (계단에서 출근 차림으로 내려오며) 아침부터 왜들 그러세요?
민원장 든 사람 자린 몰라두 난 사람 자린 금방 표가 나는 법이니까. 앞으루 점점 더 깨달아가겠지. 그동안 누구 덕에 편하게 품위 지키구 살수 있었는지.
나여사 (삐죽) ... ...
수현 (삐죽) ... ...
민원장 좀 앉아. 출근하기 전에 얘기 좀 하자.
지환 (무거워지고)
#23. 아이들방
지혜, 물수건 만들어 건호의 이마에 대어준다. 마음이 무겁고..
지혜 지원아, 옷 입을까? 자아 우리 공주님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 까요? (하는데)
지원 (슬픈표정) ... ...
지혜 왜? 엄마 생각 나서?
지원 (끄덕뜨덕) 엄마가.. 전활 안받아요. 내가 자꾸자꾸 해두 계속계속 전활 안받아요 작은엄마.
지혜 (마음이 아프고) ... ... (그저 안아주며 영심과 정우가 걱정이 된다)
#24. 동 저택 거실
민원장과 지환, 훈이 안은 나여사, 각각 앉아있다.
민원장 어떻게 할 게야?
나여사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이혼수속 밟는 거지.
지환 분가.. 하려구요 아버지.
나여사 뭐어? 부,분가? 분가?
민원장 ... ... 내가 보기에 에민,
지환 (O.L) 기다릴..겁니다. 돌아올거예요. 애들 때문이라두 집사람 돌아올 겁니다.
나여사 돌아오면? 돌아오면? 돌아온다구 그걸 받아줘? 분가까지 해서, 이사까지 해서, 언제 돌아올지두 모르는 바람만 여편네 기다리구 있겠다는 거야 지금? 왜? 왜? 니가 왜에?
지환 사랑하니가요. 애들엄마 사랑하니까요. 애들엄마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가요.
나여사 (깜짝 놀라서) 지, 지환아?
지환 ... ...
#25. 고시원 방
아직 잠들어 있는 영심.
그 영심을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는 정우.
정우,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정우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 ... (이 여자를 어떻게 두고 떠나나?) ... (눈가 젖어오고, 글썽이는 눈으로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영심,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베개에서 고개가 떨어진다.
정우, 가까이로 다가가 베개를 바로해주고 가만히 영심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애틋해지고.. 정우, 머뭇머뭇 애틋한 손길로 영심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보는데..
어느순간 굵은 눈물 방울이 영심의 눈위로 뚝, 떨어진다.
영심 (그 눈물에 눈을 뜨는데) ... ... (눈앞에 울고 있는 정우! 그리고 자신의 눈위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물기!)... 정우..씨?
정우 (외면하고 눈물을 빠르게 숨기며 앉는다) ... ...
영심 (일어나 앉고) ... ... 정우, (하는데)
정우 (O.L)무슨 가정부가 이렇게 게을러요? 지금이 몇신데? 밥 안줘요 밥?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아주. 성질 나는데 그냥 확 해고해버릴까부다.
영심 (다가가 가만히 눈물을 훔쳐주고)... 나 때문에 맘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머리 아픈데 거기다 맘까지, 너무 힘들잖아요. 나,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정우씨.
정우 ... ...
영심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 기쁜일이 있으면 슬픈 일두 있구 좋은 일이 있음 나쁜 일두 생기구. 나지금 슬프기만 한거 아니에요. 이렇게라두 정우씨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기뻐요. 슬프지만 기쁘구 힘들지만 행복하구.. 그럼 된거잖아요.(정우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같이 있어서 기쁜것만 생각해요 우리. 하루하루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행복하게만 지내요 우리. 네?
정우 ... ...
영심 기막히는 거 알아요. 막막하단 것두 알아요. 근데요 정우씨, 캄캄한 산속에서 길을 잃어두 조심조심 한발짝씩 계속해서 더듬어가며 걸어나가야 되잖아요.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두 느린 걸음으루라두 지친 걸음으루라두 계속 걸어나가야 하잖아요. 아직 살아있으니까..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정우 ... ...
영심 정우시 아직 죽은 사람 아니잖아요? 산 사람이구 아직 살아가야 되는 사람이구.. 이젠 가정부까지 떠맡은 사람이구.. 그러니까 벌써 죽은 사람처럼 굴지 말아요. 나, 정우씨랑 살려구 왔지 죽으러 온 거 아니예요! 다른 건 다 받아줘두 그건 나 못받아줘요. 알았어요?
정우 ... ...
영심 알았냐구요?
정우 (그저 끄덕이는)
영심 열심히 살아요 우리? 매일매일 정말 열심히 살아요?
정우 (그저 끄덕이는)
영심 아자 아자 아자! 화이팅! 박정우 오영심 화이팅-!
#26. 대학병원 지환 방
지환,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고 갈등한다.
손목시게를 보는 지환. 시간 1시다. 힘들게 떠올리는..
#27. 지환의 회상 (16부 씬10)
영심 죽었어. 이미..난..죽었어 여보. 그사람..죽을병 걸린 거, 그거 안 그순간에, 이미 난 그사람 따라 죽었어. 이렇게 텅 비어버린 껍데기루 당신 옆에 있을 순 없을 거 같아.. 그게 얼마나 힘든데.. 그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 난 못해 여보. 낼 2시에 법원에서 봐. (휑하니 빠르게 걸어나간다)
#28. 동 병원 지환 방
서랍에는 이혼서류 봉투 들고서 잠시 응시하는 지환. 고뇌하는..
지환, 결심한 듯 이혼서류 챙겨서 밖으로 성큼성큼 나간다.
#29. 가정법원 앞
영심, 법원건물 출입구에 서서 지환을 기다리고 있다.
뒤돌아 법원건물 바라보며 두려운 생각도 들고.. 애써 마음을 단단히 다잡는 영심.
영심, 손목시계를 보면 2시다. 영심, 앞쪽을 쳐다보는데.
계단을 걸어올라 오고 있는 지환.
두사람의 시선, 공중에서 만나고..
영심 (미안함으로) ... ...
지환 (멈춰섰다가 올라가 마주보고 선다) ... ...
영심 (지환의 손에 들려져 있는 이혼서류 응시한다)
지환 (느끼고 비참한 심정이 되고) ... ...
영심 들어..가요. (뒤돌아 천천히 안으로 걸어가는데)
지환 (미동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영심 (뒤돌아보는) 여..보?
지환 (이혼서류 꺼내서 차분히 찢는다)
영심 (!)...
지환 (근처 휴지통에 버리고 온다) ...
영심 여보?
지환 기다릴게. 그자식 보내구 와.
영심 (믿기지가 않은 채) ... ...
지환 가자. 같이 가야할 데가 있어. (먼저 내려간다)
영심 (눈가 젖어오고) ... ...
#30. 아파트 모델하우스 안
아파트 계약을 하는 지환. 옆에서 난감해하는 영심.
직원 여기 계약서에 도장 좀.. 우선 여기부터.
지환 당신이 찍어. 당신 명의루 산 집이야. 자 여기 당신도장 챙겨왔어.
영심 여보?
지환 뭐해? 기다리시잖아?
영심 나 갈래요. (일어나 나가버린다)
지환 (무참하고) ... (뒤따라나가며) 괜찮으니까 대신 좀 찍구 계세요. (달려나간다)
#31. 동 모델하우스 앞
앞서나가는 영심을 잡아세우는 지환.
지환 당신 이렇게 까지 모진 사람이었니? 왜 이렇게 독하게 굴어? 갑자기 왜 이렇게 지독하게 굴어? 보내구 오라잖아. 그자식 보내구 오라잖아.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양볼 해야겠니?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겠어?
영심 ... ...
지환 기다린다구. 내가 내가 당신 기다리겠다구?
영심 기다리지 말아요. 나 안돌아가요. 아니, 못돌아가요. 내가 어떻게 돌아아요 어떻게? 이러지마요. 당신이야말루 갑자기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요?
지환 바루 입주할 수 있대. 담주에 이사할 거야. 이사하는 날 와. 내가 챙긴다구 챙겨두 당신 돌아오면 다시 할거구, 와서 당신이 일러줘. 어디에 뭘 놓아야 되는지.
영심 여보 제발..
지환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을 사람이구 산 사람은 살아야 되잖아. 그자식 죽구 당신 넋놓구 사는 거, 그꼴 나는 못봐. 내가 그자식한테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시간은 그자식 죽을 때까지 뿐이야. 죽구나서까지 그자식한테 나 당신 양보 못해. 영리하게 굴어. 봐준다구. 내가 봐주겠다구.
영심 ... ...
지환 핸드폰 켜놔. 당신이 전화까지 안받으니까 지원이가 불안한가봐. 그리구 건호가.. 많이 아파. 몸살이야. 충격이 큰가봐.
영심 (아연해지고) ... ...
지환 저녁에 내 핸드폰으루 전화해. 애들 바꿔줄 테니까. 안심..시켜줘.
영심 ... ... (가로젓는) 아니, 전화.. 안.. 할래. 여보. 나, 전화 안할거니까 괜히 애들 기다리게 하지말아요. 안해요 나.
지환 (쏘아보는)
영심 정우씨 너무 오래 혼자 놔뒀어요. 걱정돼요. 그만 가봐야겠어요. 이혼서륜 다시 작성해서 보낼게요. 그럼.. (휑하니 돌아서 걸어내려간다)
지환 (그저 망연하게 서 있다)
#32. 고시원 앞
계단에 앉아있는 영심. 아이들 생각으로 몹시 힘이 든다.
영심, 핸드폰을 꺼내서 켠다. 여러통의 음성메시지 도착해 있다.
영심, 확인해보면.. 딸이다.
지원 (F, 엉엉 울며) 엄마아..? 엄마아아..? 전화 좀 받아아. 왜 전화 안받는 거야? 응? (흐느껴 울며 메시지 끊기고)
다음 메시지 확인하면..
지원 (F, 울며) 엄마! 나야 지원이. 핸드폰 잃어버렸어? 아까부터 열 번도 넘게 전화했는데 왜 전화 안받아? 도대체 어디 간거야 엄마? 빨리 좀 와. 어? 오빠 아프단 말이야. 오빠가 하루종일 자꾸자꾸 울기만 한단 말이야. 빨리 좀 와 엄마. 어? 빨리 좀 와아..
영심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고 가슴이 미어진다)
영심, 핸드폰의 아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아이들 얼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33. 고시원 방
책상에 앉아 엽서를 쓰고 있는 정우. 파리 사진이 담긴 엽서가 여러장(12장) 놓여있고.. 정우, 파리 관광책자 펼쳐놓고 뭔가를 확인해가며 엽서를 쓰고 있다. (*아버지한테 쓰는 엽서임)
정우, 책에서 본 정보를 골라 입으로 중얼거리며 아버지 엽서에다 자신이 실제로 본 것처럼 옯기려는데, 두통이 또 시작된다. 인상을 쓰며 힘들어 하는 정우. 양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 대며 고통을 참고 있다.
#34. 고시원 복도
영심, 눈물을 훔치며 기운없이 걸어 들어오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어서 정우방 앞에서 멈춰서고, 심호흡 크게 하고 웃는 연습도 하고, 표정관리 한다.
그리고나서 노크를 하는 영심.
#35. 고시원 방
머리를 감싸안고 힘들어하던 정우, 노크소리에 놀라고 당황해서, 얼른 먹으려던 약봉지 숨겨놓고, 고통을 안간힘으로 참으며 엽서를 스는 체한다.
정우 네 들어..와요.
영심 (들어오고 경쾌하게) 다녀왔습니다아!
정우 (들킬까봐 안돌아보고, 머리가 너무 아파 인상을 쓰며) 왔어요?
영심 야아 너무하네 진짜. 저기요, 아무리 가정부가 왔기로서니 그래두 얼굴 좀 쳐다보구 인사좀 하시죠 주인님? 네?
정우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 ...
영심 네?
정우 (미소 만들어 뒤돌아보며) 친군 잘 만났어요?
영심 (짧은 순간 남편 생각으로) ... (짐짓) 그럼요. 잘 만나구 왔죠. 뭐해요?
정우 뭐 별루.
영심 엽서네? (엽서사진 보고) 파리예요?
정우 예.
영심 누구한테 쓰는 거예요?
정우 아버지..요.
영심 (일순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동작 멈추고) 파리에서.. 보낸 거처럼?
정우 (끄덕이고) 한달에 한장씩 내년에 전해드리라고 동생한테 부택해 놓으려구요.
영심 (먹먹해지고) ... ... (짐짓) 자, 장보러 갈건데 같이 안갈래요? 살 게 꽤 돼서 짐꾼 필요한데.
정우 무슨 가정부가 주인보구 장보거 같이 가달래? 게다가 짐꾼까지?
영심 가요. 얼른. (나가는데)
정우 (감춘 채 두통으로 힘들어한는)
#36. 할인마트
카트 밀며 이코너 저코너 훑으며 장을 보고 있는 영심과 정우.
정우, 머리가 아파서 순간순간 혼자 몰래 힘들어한다.
영심 저녁에 뭐 먹구 싶어요?
정우 (극심한 두통 참으며) 글쎄요.
영심 정우씨 뭐 좋아하는데요? 말만 해요. 뭐든 내가 다 해줄게요. 여태 못먹었던 거 평소에 먹구싶었는데 귀찮아서 안해 먹었던 거, 다, 다 만들어 줄게요 내가. 매일매일 하나씩.
정우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심 왜요?
정우 기분 좋아서요. 말만 들어두 벌써부터 배가 불러요. 새루 들어온 이상한 가정부땜에 큰일이예요. 큰일났어요. 겨우 맘 잡았는데 이러다 죽기싫어지면 어떡하죠? 아무래도 해고해야할까 봐요 그 가정부.
영심 ... ...
정우 (카트 밀고 걸어나간다)
영심 ... ... (뒤따라간다)
시식코너 아줌마가 정우를 불러세운다.
아줌마 총각, 총각, 와서 만두 좀 먹어보구 가요. 엉? 여기 여기 물만두. 맛있어요 아주.
정우 됐어요. 많이 파세요. (카트 밀고 나가고)
아줌마 (정우와 일별하고 이번엔 뒤따라오는 영심을 붙잡는) 애기엄마, 애기엄마, 만두 좀 먹구가. 엉? 새루 나온건데 맛이 아주 기가 막혀요. 엉?
영심 아우 맛있겠다.
아줌마 (집어서 건네는) 맛있지 그럼. 먹어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구 그래요. 자요 먹어봐 애기엄마.
영심 (받아서 먹으며 정우쪽 쳐다보며) 정우씨! 정우씨!
정우 (뒤돌아본다)
영심 (만두 가리키며 먹으러 오라고 손짓)
정우 (그저 웃으며 다가간다)
영심 아줌마, 만두 하나만 더 먹을게요.(집어서 정우에게 건네는) 맛있어요. 먹어봐요.
정우 됐는데..
영심 그냥 하나만 먹어봐요. 정우씨두 맛있음 한봉지 사갖구 가게. 자요.
정우 (받아서 먹고)
아줌마 (두사람 차례로 보고) 아후우 총각인줄 알았더니 애기 엄마 신랑이었어요? 신랑이 참 젊다. 엉? (영심 얼굴을 살피고 정우를 쳐다보고) 아우 신랑 참 좋다 애기엄마! 인물두 좋구 키두 훤칠하구!
영심 (당황스럽고) ...
정우 (당황스럽고) ...
#37. 고시원 길
장바구니를 든 정우와 영심, 나란히 걸어온다.
영심 (무거운 표정) ... ...
정우 (그런 영심을 바라보며 무거워진다) ... ...
영심 우리.. 어디 멀리 가서 지낼까요? 산속두 좋구 바닷가두 좋구.. 그냥 둘이서만 지낼 수 있는 데..
정우 ... ...
영심 ... ...
#38. 고시원 취사공간
아는 체 하며, 또 시험정보를 나누며, 각자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남자고시생들.
저녁 지을 쌀과 반찬거리를 들고 막 들어오던 영심, 멈칫 멈추어서고.. 선뜻 들어가기가 뭐해 잠시 그러고 서 있다.
힐끗힐끗 영심을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묻고 대답하고 눈짓을 나누는 남자고시생들.
영심 (무안하고) ... ... (마음 단단히 먹고) 안녕하세요. (들어가고)
영심, 호기심으로 힐끗거리는 고시생들의 시선 속에 묵묵히 쌀을 씻고 야채를 씻는다.
공부하는 고시원에 살림을 차렸다느니, 유부녀 같지 않냐느니, 불륜 같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계속 불쾌한 소곤거림으로 들려오는 가운데..
영심, 고개를 숙인 채 쌀을 빡빡 씻어대고 있다. 힘이 드는 영심.
#39. 고시원 방
정우, 낮은 비명을 토해내며 극심한 고통으로 머리를 감싸고 쥔 채 엎드리고 앉아 방바닥에 머리를 찧어대고 있다. 찧고 또 찧고.. 안간힘으로 기어가 다급하게 약봉지를 찾아서 급하게 약을 먹는 정우. 더 극렬하게 쪼아대는 머리. 물컵 쓰러지고.. 정우, 몸을 웅크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지른다. 너무 고통이 심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
그때 저녁상을 가지고 들어오는 영심, 그 광경 보고 너무 놀라 잠시 멍하게 보고만 있다.
영심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채) 저, 정우씨.. 정우씨.. (멍하니 상을 놓고 들어간다) 정우씨!
정우 (엎드린 채) 나가요. 나가요 영심씨.
영심 (글썽이며) 야, 약 줘요? 야, 약 줄까요 정우씨?
정우 나가요. 그냥 나가요. 제발 나가요 영심씨. 부탁이예요.
영심 (눈물로 가로젓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오..(흐느끼고)
정우 (참느라고 참는데도 낮은 비명이 새어나오고, 머리통을 부여잡고 어쩔줄을 몰라한다)
영심 (다가가 그저 정우의 머리를 품안에 껴안아주는데)
정우 (밀쳐내고) 나가요! 나가요! 나가라잖아! 나가! 나가! 나가! 제발 나가란 말이야!
영심 ... ...
정우 나가줘요. 얼른이요.
영심 (스르르 일어나 나간다)
#40. 고시원 복도
정우 방에서 쫓겨나와 문앞에 등을 기대고 눈물로 서 있는 영심.
등을 기대고 있는 방문으로 정우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고 정우만큼 고통스런 영심.
#41. 고시원 방
정우, 안간힘으로 기어서 이불을 가져다 뒤집어쓰고 이불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42. 고시원 복도
영심, 속수무책인 채로 가슴이 너무 아파서 양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하염없이 울고 있다. 안에서 정우의 고통에 찬 낮은 비명이 애처롭게 간헐적으로 새어나온다.
정우의 고통에 어쩔줄 몰라하던 영심, 어느순간 어떤 생각에 이끌려 갑자기 고시원 복도를 뛰쳐나간다.
#43. 고시원 앞
정신없이 눈물로 뛰어내려와 어딘가로 다급하게 달려나가는 영심.
#44. 대학병원 지환방
지환, 가운을 벗고 양복상의로 갈아입는데..
문이 와락 열리면서 눈물로 뛰어들어오는 아내!
지환 여보?
영심 ... ...
지환 (다가가고) 무슨 일이니?
영심 (넋이 나간 얼굴로 무릎을 꿇고 앉고 절박하게) 살려줘! 살려줘 여보! 정우씨 좀 살려줘! 정우씨 좀 살려줘 여보! 부탁이야! 부탁이야 여보! 이렇게 빌게. 이렇게 이렇게 내가 빌게. 살려줘. 살려줘. 정우씨 좀 정우씨 좀 살려줘 여보오오...
지환 (고통인 채로) ... ...
영심 (가까이로 다가가 남편의 다리를 절박하게 붙잡고) 당신 의사잖아. 당신 당신분야에서 최고잖아. 어려운 수술 수도 없이 많이 했잖아. 당신이라면 살릴 수 있을 거같애 여보. 어어 당신이라면 정우씨 살릴 수 있을 거야 여보. (남편의 다리를 잡고 매달리며) 살려줘요. 살려줘요 여보. 당신이 정우씨 좀 살려줘요.
지환 ... ...
영심 뭐든 할게요. 살려만주면 정우시 살려만주면 나 뭐든지 할게요. 불쌍해서 못보겠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못보겠어 여보. 너무 아파. 그사람 지금 너무 아파. 어떻게? 그사람 어떻게? 그사람 불쌍해서 어떻게 여보오오..(서럽게 운다)
지환 ... ...
*시간 경과 되고..
탈진해서 축 늘어져 소파에 앉아 있는 영심.
지환, 따뜻한 차를 가지고 들어와 손에 쥐어 준다.
지환, 손수건 꺼내 영심에게 건네는데.. 영심은 멍한 채 받을 생각 않고 앉아있다.
지환, 머뭇머뭇 다가가 아내의 눈물을 제손으로 닦아준다.
영심 (아무 느낌 없이 그저 멍한 채) ... ...
지환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그친구.. 힘들어. 수술.. 불가능한 상태야.
영심 다시.. 검사해봐요. 한번만 더, 마지막으루 딱 한번만 더 검사해봐요.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지두 모르는 일이잖아요.
지환 소용없어.
영심 그, 그럼 수, 술말구 다른 방법은 없어요? 지난번에 병간호 해드린 할머니 보니까 수술은 불가능하다구 해서 수술말구 다른 항암치료 받으시던데, 정우씨두 그렇게 하면 안돼요?
지환 그건 가능해.
영심 네? 가, 가능해요? 치,치료가 치료가 가능해요?
지환 음.
영심 그, 그럼 정우씨 살 수 있는 거예요? 치료받으면 치료가 잘되면 정우씨 사, 살수 있는 거예요? 네?
지환 (가로젓는) 그냥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는 거뿐이야.
영심 어, 얼마나? 얼마나 더 살 수 있는데요?
지환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룔 병행하면 보통 10개월에서 길게는 1년정도. 환자상태에 따라 달라.
영심 해,해요. 해요 여보. 해봐요. 치료 해봐요. 네?
지환 나도 권해봤는데 그친구가 안하려고 해. 치룔 받으면 생명은 연장되는 대신 여러가지 장애가 올수 있어. 언어마비두 오구 반신마비두 오구 의식장애두 오구. 살아 있지만 말두 못하구 움직이지두 못하구 또 생각두 못하구...
영심 (할말을 잃고) ... ...
지환 ... ...
#45. 고시원 앞
영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걸어오고 고시원을 슬프게 올려다본다.
영심,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계단에 앉는다.
영심, 치열하게 고민한다.
#46. 고시원 방
암과 한바탕 사투를 벌인 뒤 탈진한 채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정우.
영심, 들어온다.
두사람의 시선, 처연하게 공중에서 만나고..
영심 (안쓰럽게 바라보고)... ...
정우 (미안함으로 바라보고) ... ... (엷게 미소 지으며) 저녁, 먹어야죠. (문앞에 그대로 놓인 저녁상 바라보며) 영심씨 열심히 만들었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암덩이들 때문에 다 식어버렸네. 미안..해요. 소리 질러서.
영심 ... ... (다가가 앉고) ... ...
정우 ... ...
영심 부탁이..있어요. 정우씨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정우 뭔데요?
영심 치료, 받아요 우리. 방사선치료두 받구 항암치료두 받구,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요 우리.
정우 (무거워지고) ... ...
영심 알아요. 그치료 받으면 말두 못하구 움직이지두 못하구 생각두 못하게 된다는 거. 그래두 치료만 잘 돼면 1년 더 살 수 있대요. 어떤 사람들은 2년씩 3년씩이나 더 산 사람두 있대요. 그리구 또 치료 받는다구 전부 다 장애가 오는 건 아니래요. 정우씬 젊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견길 수 있어요. 의지두 강하니까 그딴 장애같은 건 안올거예요.
정우 ... ...
영심 남편이 정우씨 치료 해주겠대요. 정우씨 하루라두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보겠대요. 그러니까 우리, 한번 해봐요 정우씨. 네?
정우 (그저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 ...
영심 난, 정우씨 말 못해두 괜찮아요. 움직일 수 없어두 괜찮아요. 생각 같은 거 못해두 괘찮아요. 살아만 있으면 돼요. 살아서 내옆에만 있으면 돼요 정우시. 부탁이예요. 치료 받아요. 네?
정우 (슬픔으로 바라보고 있는) ... ...
영심 그럼 일단 정밀검사만 다시 해봐요. 치룔 시작하려면 정우씨 상탤 알아야돼서 검살 다시 해야 된대요. 검사 해보구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땐 나두 아무말 안할게요. 치료하면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는지, 정우씨 지금 상태만이라두 검사해봐요 네?
정우 ... ...
영심 네 정우씨?
정우 ... ... (F.O)
#47. 대학병원 전경 (다음날)
#48. 대학병원 복도
나란히 걸어오는 영심과 정우.
영심 (불안과 떨림으로) ... ...
정우 (착찹함으로) ... ...
영심 (가만히 정우의 손을 잡아준다)
정우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바봄다)
영심 ... ...
정우 ... ...
그 어느 순간 다른쪽 방향에서 걸어오던 지환과 만나는 두사람. 세사람 동시에 멈춰서고..
영심 여..보.
정우 (목례하는)
지환 (차례로 보는) ... (그리고 지환의 시선에 애틋하게 꼭 잡고있는 두사람의 손!) ... (상처받고)... (애써 외면하고) 따라..와요. 바루 검사 시작하도록 하죠. 당신은 내방에서 기다려.(성큼성큼 앞서 걸어 나가는데 한없이 쓸쓸해진다)
영심 (정우 향햐) 가요.
정우 (끄덕이고 천천히 걸어나간다)
영심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정우 (가다가 뒤돌아 엷은 미소로 걱정하지 말라고)
영심 (애틋하게 끄덕이고)
정우 (걸어나간다)
멀리서 그 모습 지켜보고 있는 쓸쓸한 지환.
#49. 정우와 지환의 몽따쥬
- 흰가운을 입은 지환과 환자복을 입은 정우, 나란히 검사실로 들어간다.
- 지환의 주도로 여러 거사를 받는 정우. (8CT, MRI등 알아서 해주세요!)
- 정우에게 검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지환, 열심히 듣고 있는 정우.
- 얘기 도중에 웃임이 나기도 하고.. 정우가 멋쩍게 먼저 웃으면 지환이 싱긋 웃는 그런 모습으로.
- 누워있는 정우.. 정우의 몸상태를 모니터를 통해 체크하고 진단하고 있는 지환.
영심을 사이에 놓고 의사와 환자로 만난 두남자의 그 모습에서 엔딩. -제16회 끝.-
(*지환이 혹시 정우를 살려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하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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