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1
날씨도 좋고
(허임) [웃으며] 잘 갈린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허임의 탄성]
우리 대침 이제 개운하냐?
[웃음]
그래, 그래, 그래
내가 네 마음 다 안다
[웃음]
[신난 탄성]
어이구, 우리 구침이들
(허임) 때 빼고 광냈더니 아주 인물들이 훤칠한 것이
[웃음]
오늘도 잘해 보자꾸나
[신난 탄성]
잘 갈렸다, 오늘 아주
(막개) 어휴, 침만 훤칠하면 뭐 합니까? [놀란 신음]
의원님이 이 모양인데
[막개의 놀란 신음] (허임) 아휴, 씨, 깜짝 놀랐잖아
어휴, 진짜
어휴, 우리 참봉 나리 간밤에 또 얼마나 해 드셨길래
어, 내가 너 그리 참봉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느냐, 응?
네가 이 대침에 찔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막개의 힘주는 신음]
[막개의 놀란 신음] (허임) 이런, 씨
[허임의 기합] (막개) 참봉
참봉, 참봉 나리! [허임의 당황한 신음]
얼른 때 빼고 광내고 나오십시오
막개 네 이놈, 너
내 그리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씨
이리 안 와!
[발랄한 음악]
자, 자, 시작해 봅시다!
(사람들) 네!
(막개)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웅장한 음악]
예까지 오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혜민서 의관 허임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치료에 만전의 노력을 기하겠나이다
[사람들이 호응한다]
(권지) 에헤, 자, 자, 자, 자, 자, 자, 자!
줄을 서시게!
줄을 서라니까!
하, 보자
(권지) 상태가 중하니까 이쪽으로!
(남자2) 아이고, 감사합니다, 권지 어른
(권지) 다음
[남자3의 한숨]
[환자1의 힘겨운 숨소리]
별거 아니니까 이쪽으로
(남자3) 아이고, 어르신
제발 허 의원님께 치료받게 해 주십시오
야, 이봐, 빨리 이쪽으로 가게!
(환자1) 저기, 저기, 내가 숨이... [남자3의 다급한 신음]
(권지) 다음
(연이 부) 저기, 왜 다들 저 방으로 가려는 겁니까?
아까 못 보셨소?
허 의원님이 저 방으로 들어갔잖소
아이, 그럼 혹 아까 그분이 그 유명한...
- 응 - (연이 부) 어휴
(연이 부) 저리 젊으신 분이
(막개) 소문 듣고 오셨구나? [연이 부의 놀라는 신음]
아이고, 예, 예
이놈이 지리산 자락서 짐승만 잡고 살다가 이제서 왔어요
아휴, 멀리서 오셨네
이참에 잘 새겨들으시오
의술은 나이가 아니오
실력이오 [리드미컬한 음악]
(막개) 우리 허 의원님
맥을 짚었다 하면
[맥박 효과음] 몸속 오장육부 기와 혈의 움직임이 화공 그림 그리듯이
촤륵 그려지는 것이
(허임) 심장의 심한은 심한데
신장이 신수가 허약해 서로 간에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하루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구나
귀신같이 아픈 곳을 콕콕 짚어 내는 재주는 기본이오
(막개) 다음으로 병자 몸을 쓱 보기만 해도
침놓을 혈 자리가 꼭 껴 있는 애교점맹키로
콕콕 찍히는디
거기다가 단번에 정확히 팍!
[사람들의 놀라는 탄성]
(막개) 찔렀다, 멈췄다 좌로 돌리고 우로 돌리고
뽑고 뽑고
또 그 침놓는 손길은 어찌나 정교하고 부드러운지
꼭 학이 우아하게 날갯짓하면서
부리로 먹이를 콕콕 쪼는 것 같고
결론적으로다 허 의원님이 손댔다 하면
오래 걸릴 병도 빨리 낫고
다 죽어 가던 병자도 벌떡 일어난다 이것이오
(남자4) 아, 근데 왜 여적 꼬래비 참봉이여?
[닭 울음 효과음]
방금 뭐라 했소?
(남자4) 아니, 내 말은 그 훌륭한 의원님이
여직 10년이 되도록 궐에 가지 못하고
만년 참봉을 하시는가
[살짝 웃으며] 그것이 안타깝고 좀 마음이 좀 그래서...
어, 고것은... [문이 달칵 열린다]
(환자2) 고맙습니다, 허 의원님!
[경쾌한 음악] [사람들의 의아한 신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남자3) 아이고, 아버지! [문이 달칵 열린다]
허 의원님, 허 의원님!
(막개) 우리 허 의원님 또 원정 나가시네
(의원1) 이보게, 정신 좀 차려 보시게!
이, 이보게
[환자1이 캑캑거린다]
이게 어찌 된 겁니까?
(의원1) 글쎄, 폐부가 부은 것 같아
탕약을 처방했는데 그걸 마시더니 갑자기 이러네
당최 원인을 모르겠으니 원...
[긴장되는 음악] [맥박 효과음]
[환자1의 괴로운 신음]
[맥박 효과음]
[환자1의 괴로운 신음]
(허임) 여기다
폐옹이 생긴 것 같소
즉시 뜸 뜰 재료를 준비하고
막개, 넌 반듯하고 긴 나뭇가지와 대나무, 지푸라기를 구해 오너라
네, 의원님
아버지
[흥미진진한 음악]
(허임) 나뭇가지
지푸라기
대나무
[의원들의 힘주는 신음]
통증이 심하겠지만 허리를 똑바로 세워 주십시오
(의원1) 이건 기죽마혈?
(의원2) 나도 책에서만 보던 거라
[편안한 숨소리]
(의원1) 다행히 병자의 숨소리가 편안해졌네
그, 그럼 우리 아버지 이제 산 겁니까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오 [어두운 음악]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해 보겠소
(남자3) 네?
해 주십시오, 의원님
우리 아버지 좀 살려 주십시오
[환자1의 괴로운 신음]
[숨을 후 내뱉는다]
(의원1) 이보게, 죽은 건가?
죽었어요?
- 우리 아버지 죽었어요? - (허임) 조용!
[허임이 침을 퉤 뱉는다]
[괴로운 신음]
[편안한 숨소리] [평온한 음악]
[남자3이 울먹인다]
(의원1) 병자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네 [남자3의 놀란 신음]
원, 세상에
(남자3) 어, 살았어요?
우리 아버지 살았어요?
아이고, 의원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고, 아버지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남자5) 죽어 가던 사람이 살아났어!
(남자6) 역시 허 의원님이야!
(막개) 이제 우리 허 의원님만 믿고 아무 걱정 마십시오
(연이 부) 아이고, 예, 예
(막개) 우리 이쁜 아기 앞으로 더 이뻐지겠네?
연이야, 이제 살았다
이제 살았어!
대침, 이 녀석, 잘했다
[웃음]
(연경) 메스
[심전도계 비프음]
흉부외과 펠로우 최연경 카디악 탐포네이드 시작합니다
[긴장되는 음악] 스프레더
시저
석션!
(연경) 찢어진 데가 어디지?
어디야
찾았다
(연경) 우심실입니다
프라이머리 클로즈하겠습니다
파이브 프롤린 프렌치 수처 준비해 주세요
관상 동맥
관상 동맥을 건드리지 않는다
(남자7) 어, 죽이는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 전화 진동음]
어, 민재야
(연경) 그래서 지금 환자 상태가 어떤데?
(남자7) 위아래가 아주 물이 제대로 올랐네
같이 가
오빠 것도 확인시켜 줄게
어휴, 죽이는데?
(연경) 아, 이거 오늘 피를 아주 제대로 보겠네
가슴도 갈라야 돼?
[우드득거리는 효과음] [남자7의 아파하는 신음]
칼 잘 드는 거로 준비해라
[남자7의 놀라는 신음]
별것도 아닌 게
어, 아니야, 뭐 좀 확인하느라고
근데 강은?
오늘 당직 강만수 아니야?
(연경) 당연한 걸 뭘 물어, 그럼 안 가?
5분 안에 가니까 환자 도착하면 체스트 찍고 랩 체크해 놔
[한숨]
[민재의 한숨]
(이연) 그렇다고 간만에 도파민 분출하러 간 사람을 부릅니까?
환자 어디 있어?
- 어, 선배! - 환자 어디 있냐고 [민재가 휴대 전화를 툭 내려놓는다]
(민재) 아, 여기 있습니다
[긴장되는 음악]
[환자3의 힘겨운 숨소리] [심전도계 비프음]
(민재) 혈압 계속 떨어져 70에 50 맥박 130입니다
- 엑스레이 - (민재) 엑스레이 여기 있습니다
- 심장 초음파 - (민재) 네
황 교수님은?
수술 끝나고 들어가시면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민재의 한숨]
수술방 잡고 마취과 연락해, 응급이야
(민재) 근데 수술은 누가...
내가
[휴대 전화 벨 소리] (황 교수) 아이씨
아나
이게, 이게 간땡이가 부었나, 이게, 씨
야, 전화하지 말라는 소리 못 들었어?
남자 25세 TA 환자로
사고 시 가슴에 운전대를 들이받았답니다
심장 초음파상으로 심낭에 피가 고여 있는 게 보이고
혈압 유지가 안 됩니다
야, 너, 너 지금 뭐 하냐?
(연경) 급하게 수술해야 될 거 같은데
[옷을 탁 잡아당긴다] 지금 못 오시죠?
제가 할까요?
야, 야, 야, 안 돼!
야, 오늘 당직 강만수 아니야?
근데 왜 네가 전화를 해?
무단 외출 했답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휴대 전화 조작음]
[통화 종료음] 아이!
뭐? 무단 외...
아, 이 새끼가 이게 미쳤나, 이거
[심전도계 비프음]
(의사1) 최 선생, 요즘 수술방 출입 금지 아니었어?
그 황 교수 VIP 환자 심기 건드렸다며
(연경) 방금 풀렸습니다
오랜만에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황 교수가 안전벨트를 달칵 채운다] (황 교수) 아휴, 유별나, 유별나
계집애가 이거 뭐 엔간히 나대야지, 씨, 쯧 [통화 연결음]
야, 강만수!
너 이 자식아, 지금 어디야, 도대체?
(민재) 선배, 진짜 하실 거예요?
(의사1) 환자 상태가 좀 불안한데?
(연경) 카디악 탐포네이드 시작합니다
메스
(의사2) 가뜩이나 황 교수님한테 미운털 박혀 있는데
아휴, 어쩌려고 저러냐
(이연)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 아니다
(의사2) 아니, 아무리 수술이 좋아도 그렇지
뭘 저렇게까지 목숨 걸고...
목숨 살리려면 목숨 정도는 걸어 줘야지
(연경) 피 주세요
(의사1) 자, 피 들어갑니다
(연경) 탭
이리게이션
석션
우심실 두 군데가 찢어졌어요
파이브 제로 프렌치 수처 준비해 주세요
- (연경) 컷 - (민재) 컷
- (연경) 컷 - (민재) 컷
(의사1) 깔끔하네, 역시 우리 최 선생이야
[민재의 탄성]
(민재) 선배, 진짜 존경합니다
그런 의미로 닫는 건 제가...
(연경) 잠깐만
(민재)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심장 박동 효과음] 잘됐는데?
[심장 박동 효과음] [심전도계 경고음]
[긴장되는 음악] (연경) 심실세동이야
- (연경) 제세동기 - (민재) 네?
(연경) 제세동기, 정신 안 차려?
(의사1) 혈압 떨어지고 있어
수혈량이 많아서 전해질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민재) 이리게이션
(연경) 20줄 차지
샷 [제세동기 작동음]
30줄 차지
샷 [제세동기 작동음]
(연경) 돌아와라
돌아와, 제발
(연경) 돌아와라
[황 교수의 다급한 숨소리]
[물이 솨 나온다] 야, 어디까지 진행됐어?
(황 교수) 야, 뭐야, 어? 뭐 어떻게 된 거야?
우심실 두 군데를 리페어한 후 갑작스러운 심실세동이 발생했고
방금 전 조치 마쳤습니다
[황 교수의 한숨]
[심장 박동 효과음]
(의사1)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최 선생이 훌륭하게 잘 해냈습니다
[황 교수의 헛기침]
[황 교수의 한숨]
[만수의 다급한 신음]
[황 교수의 헛기침] (만수) 저,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막 찾아다 놓고...
(황 교수) 종 쳤다, 벌써 [만수의 가쁜 숨소리]
네, 종요? 뭔 종?
너 새 됐다고, 이 새끼야!
[만수의 아파하는 신음]
사내새끼가 번번이 계집애한테 발리기나 하고, 씨
네가 내년에 전임 강사 자리 한번 뺏겨 봐야 정신을 차리지, 네가?
[만수의 한숨]
(황 교수) 대체 내가 널 뭘 보고 밀어줘야 되냐?
실력에서 달리면 더 기를 쓰고 하든가, 어?
뭐든 저 최연경이 반만이라도 좀, 어?
아이고, 이런 한심한 새끼
[놀란 신음] [황 교수가 혀를 찬다]
[휴대 전화 진동음] 아휴
[헛기침]
아, 예, 사모님
(황 교수) [살짝 웃으며] 예, 예, 아이고, 아닙니다
예, 예
(보호자1) 아이고, 선생님 저, 우리 아들 수술 끝났습니까?
수술 잘된 거죠?
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보호자2의 한숨] (보호자1) 정말요?
아유, 아유, 선생님, 고맙습...
[보호자1의 당황한 숨소리]
(연경) 아...
중환자실로 옮겨서 하룻밤 경과를 지켜본 후에
내일 입원실로 옮길 예정입니다
- (보호자2) 아, 예 - (연경) 그럼
[안도하는 한숨] [잔잔한 음악]
[작은 목소리로] 예스
복만아! [개가 멍멍 짖는다]
(연경) 우리 복만이 잘 있었어?
아이, 누나가 바빠서 같이 놀아 주지도 못하고 [개가 헥헥거린다]
미안하다, 응?
누나
오늘도 사람 살렸다
오늘도 살리고
내일도 살릴 거고
잘했지, 응?
잘했다고 칭찬 좀 해 줘라, 좀, 응?
[연경의 웃음]
[잔잔한 음악]
(학생 연경) [울먹이며] 할아버지
우리 엄마 병원 데리고 가자, 어?
이거로 안 되잖아
엄마 못 살리잖아
- 엄마 병원 데리고 가자 - (천술) 어허
그, 계속 이렇게 방해할 거면 나가 있어!
[천술이 구시렁거린다] [학생 연경이 흐느낀다]
[천술의 힘주는 신음]
[학생 연경이 흐느낀다]
[연경 모의 힘겨운 숨소리]
[한숨]
쯧, 2층에 불이 안 꺼지네
[개가 멍멍 짖는다]
[천술의 힘주는 신음]
(시종) 물렀거라!
[어두운 음악] 물렀거라!
(두칠) 비켜요, 비켜, 비켜, 비켜!
훠이
[시종의 헛기침]
(시종) 네가 허임이냐?
(허임) 무슨 일이시오?
(시종) 네가 침을 잘 놓는다기에 병판 대감께서 친히 예까지 오셨다
(권지) 병판이면 그 성질 포악하기로 유명한 자 아니뇨?
백성들 등골 빼 먹는 걸로도 악명이 자자하죠
저 뒤로 서시지요
(시종) 감히 대감님을 저 뒤에 세우겠단 말이냐!
(허임) 그게 불편하시면 다른 데서 잠시 쉬시다가 오시든지요
지금은 보시다시피 병자가 밀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헛기침]
(시종) 아니, 이놈이!
[시종이 씩씩거린다]
[헛기침]
(병판) 네 이놈!
네놈이 감히 내게 저런 천것들 뒤로 가라 했느냐?
네놈이 정녕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모양이로다
어인 말씀을요
누구보다 백성의 아픔을 내 것처럼 여기시는 훌륭한 분을
[병판의 헛기침]
네놈이 위아래도 몰라보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천출은 천출이로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내 오늘 일은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마
그만 가자
(두칠) 예 [병판의 헛기침]
비켜, 비켜요, 얼른, 얼른
[두칠의 내쫓는 기합] (시종) 물렀거라!
[헛기침]
[종이 뎅 울린다]
(남자8) 엄마, 벌써 폐문 시간인 겨?
어쩐디야
(연이 부) 폐문요?
그럼 치료 시간이 끝났단 말입니까?
(남자8) 예
아니, 그럼 우리 연이는 어쩐디야
[환자4의 의아한 신음]
(환자4) 어째 그러십니까, 의원님?
왜, 왜 침을 놓다 말고...
종 쳤소
[종이 뎅 울린다]
(환자4) 네?
(환자4) 아이고, 아이고... 아유, 아유, 의원님, 의원님
[익살스러운 음악] 아, 그렇다고 침을 놓다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요?
[허임이 살짝 웃는다]
의원 된 자로서 어찌 병자들을 두고 발길 돌리겠습니까
아, 예
(허임) 하나
여러분들은 걸어서 예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저 밖에는 이곳에 올 기력조차 없는 위중한 병자들이
참으로 많사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후 시간은 양보를 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 밖에 있는 병자들도
여러분들의 깊은 배려에 크게 감동할 것입니다
(허임) 그럼 내일 다시 오십시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권지의 헛기침]
저, 멀리서 왔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사람들의 탄식]
[산새 울음]
[무거운 음악]
(병판) 네 이놈
네놈이 어지간히 뒤탈이 두려웠던 모양이로다
세상모르고 까불더니
왜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더냐?
세간에 자자한 명성대로
나라를 근심하시고 백성을 아끼시는 어진 대감님의 마음을
새삼 느꼈습지요
네놈이 정녕 간땡이가 부었구나
담낭이 허한 증세는
(허임) 흔히 지나치게 학문에 전념하는 학자나
밤낮으로 정사에 매진하시는
대감님 같은 분들께 주로 나타나는 병증이온데
네놈이 어찌 그걸...
(병판) 네 이놈!
[맥박 효과음]
(허임) 몸 전체의 맥이 떠 있고 활한 것으로 보아
소인, 간의 음허증으로 판단하였나이다
[헛기침]
듣던 대로 제법이로다마는...
(허임) 신장의 합수혈인 음곡
간장의 합수혈인 곡천을 함께 보하는 침법을 쓰면
머지않아 쾌차하실 것이옵니다
아니, 그리 간단하단 말이냐
(병판) 하면 이 밤중에 네 발로 여기를 찾아온 이유가...
백성을 내 몸처럼 아끼시는 분이라고는 하나
어찌 그런 누추한 곳에서
천한 것들과 함께 치료를 받으시게 하겠습니까?
마땅히 따로 뫼시는 게 국록을 받는 의관 된 자의 도리이지요
[헛기침]
(허임) 혜민서에는 좋은 약재가 없어
약재청에 들러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장복하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웃음]
[호탕한 웃음]
[웃음]
[허임의 웃음]
[허임의 개운한 신음]
(두칠) 허 의원님! [허임의 놀라는 신음]
[두칠의 멋쩍은 웃음]
뉘, 뉘시오?
저는 이 댁 노비, 두칠이라고 합니다요
(허임) 오냐, 그래, 수고가 많다
(두칠) 의원님!
오늘 낮에 혜민서에서 진짜로 멋지셨습니다요
제가 완전 반, 반...
제가 사내를 좋아하는 그런 건 아닌디
어쨌든 의원님 최고였습니다요
[두칠의 웃음] (허임) 그, 그래, 고맙다
(두칠) 저, 의원님 [허임의 놀라는 신음]
저, 저기, 저 행랑채 방에
병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요
(두칠) 실은 이놈 엄니인디
몇 달 전부터 영 운신을 못 하시더니
지금은 정신까정 막 오락가락하십니다요
저희 같은 것들은
주인 허락 없이 혜민서도 마음대로 못 가는 처지라서
의원님도 대감마님 서실에 어쩔 수 없이 오셨겠지만서도
이왕 여기까지 오신 거 우리 엄니...
- 두칠아, 두칠아 - (두칠) 예, 예
너 내가 쥐꼬리만 한 녹봉 받고 하루에 병자를 몇이나 보는 줄 아느냐?
[어색한 웃음]
수십, 어쩔 땐 백 명이 넘는다 [두칠의 탄성]
조선 팔도에 어찌나 소문이 퍼졌는지
이 허임에게 침 한번 맞아 보겠다고 몰려들 드는데
하면 그게 돈이 되냐?
[허임의 웃음]
말로만 때우지
조선 제일의 의원님이 어쩌고저쩌고 좋은 꽃 노래도 한두 번이지
너 같으면 지겹겠느냐, 안 지겹겠느냐?
[허임의 웃음] (두칠) 의원님, 의원님, 잠시만요, 아유
지겹겠지요
압니다요,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오신 김에
불쌍한 우리 엄니 침 한 방만
침 한 방만 딱 놔 주시면 안 되겄습니까요?
[두칠의 어색한 웃음]
너 돈 있냐? [익살스러운 음악]
(두칠) 예?
낮에 그만큼 했으면 밤에 딴짓도 좀 하고 그래야지
나도 사람인데
(허임)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침만 놨더니
사지가 쑤신다 이놈아, 쯧
이런 찢어 죽일 놈의 새끼가...
(두칠) 야, 이 새끼야! [허임의 놀란 신음]
너 천출이라며
같은 천출끼리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이런 법이 어디 있냐, 이 새끼야
너, 우리 엄니 살려 내기 전까지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가
알겄냐?
- (두칠) 딱새 형! - 어
가서 몽둥이 좀 가져와
어, 어
(허임) 야, 제발 이러지들 좀 마라
아, 나 사지 쑤신다니까
새끼가...
[허임의 힘주는 신음] [두칠의 신음]
[두칠의 힘주는 신음]
(두칠) 이 새끼가 정말 [두칠의 힘주는 신음]
[두칠의 아파하는 신음]
(허임) 내 원래 애들한테 이런 거 잘 안 시키는데
[두칠의 아파하는 신음] [허임의 힘주는 신음]
(두칠) 이 새끼
[두칠의 아파하는 신음]
아, 발
발 밟았다고, 이 새끼... [허임의 놀란 신음]
[두칠의 아파하는 신음]
(두칠) 막아, 못 가게 막으라고!
얼른 막아!
(딱새) 오야, 오야
걱정 말거라
내가 잡을게
[허임의 놀란 신음]
[딱새의 아파하는 신음]
[몽둥이가 탁 떨어진다] [딱새의 신음]
(두칠) 이런! 씨 [딱새의 아파하는 신음]
저런 개잡놈인 줄도 모르고, 씨 [문이 탁 닫힌다]
허임이 너 이 새끼
우리 엄니 죽으면
너는 내 손에 뒈지는 거여!
(두칠) 알았냐!
[한숨]
거, 대상 나리 댁이 어느 쪽인가
이쪽이군
(대상) 아
일단 단아부터 치료토록 하시지요
(대상) 그걸로 말이냐?
설마 그걸 목구멍에 쑤셔 넣진 않겠...
쑤셔 넣다니요
살짝 찌르기만 할 겁니다
자, 아
(함께) 아
턱 조금만 드시고
- 아 - (허임) 자, 이제 들어갑니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대상이 캑캑거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허임) 조금만 기다리시오
[양반1의 겁먹은 신음]
[양반1의 아파하는 신음] (허임) 오, 쭉
[허임의 웃음]
[양반1의 비명]
(허임) 의원은
병자의 속사정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지요
[살짝 웃으며] 그것이 은밀한 경우에는 더더욱요
[양반2의 비명]
[허임의 웃음]
(기생1) 아, 이 오빠 진짜 [허임의 즐거운 신음]
근데 나리
그리 고고한 양반네님들도
침 앞에서 벌벌 떠는 거 보면
천한 백성들과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제아무리 신분이 높다 한들
그들도 오장육부를 가진 인간이오
(허임) 병나면 자신의 목숨을 내 손에 맡기는 처지인 건
천한 백성과 매한가지인 것을
아, 이만하면 참으로 공평한 세상 아니더냐?
(기생1) 그럼요 [허임의 웃음]
(허임) 그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로다 [기생들의 웃음]
[허임의 즐거운 신음] (기생2) 아니, 한데
그리 밤마다 다니는 거 겁도 안 나십니까?
(허임) 이리 와 봐라
내가 누구냐
이래 봬도 아비가 악공이요 어미가 노비인 천한 몸이다
이런 천한 몸에게 '나 침 맞고 병 나았소'
이렇게 떠벌릴 양반이 거, 있겠느냐, 없겠느냐
(기생1) 있을 리가 있사옵니까? [허임의 웃음]
- (기생2) 없지요 - (허임) 없어
(허임) 절대 그럴 수 없다
[기생들의 웃음]
(허임) 아, 어이!
내의원 의관님들
[허임의 웃음]
(의관1) 참봉 주제에 이런 델 들락거리는 걸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구먼
(의관2) 워낙에 고관대작들만 상대하니
웃전들도 알면서 쉬쉬한다고 하지 않는가
(의관1) 어허, 대체 저자의 침구술이 어느 정도길래
(진오) 이제 겨우 서른 문턱인 자가 의술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뭣 모르는 혜민서 천것들이 추어 주니
그저 잘난 척하고 다니는 게지요
(허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허임의 웃음]
유 봉사 나리, 오랜만에 뵙습니다
혜민서 말단 의관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코를 훌쩍인다] (진오) 아, 하긴
허구한 날 천것들 피고름이나 빼고 있자니
계집들 분 냄새가 그립기도 하겠지
[웃음]
저도 약재청 나리님을 이런 데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요
[웃음]
아, 그, 하긴
(허임) 몸에 찌든 약재 냄새를 빼는 데는
이만한 데가 없지요
[허임의 웃음]
(의관2) 어허, 이보게, 참봉!
[허임이 방귀를 뿡 뀐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허임) 쥐꼬리만 한 참봉 녹봉 아껴 술을 했더니
속에 탈이 났나 봅니다
[허임이 방귀를 뿡뿡 뀐다] 모처럼 즐기다들 가십시오
아, 오늘 모주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요
[허임의 웃음] [허임의 신음]
[허임의 웃음] (의관2) 저런 개차반을 봤나
명색이 의관이라는 자가...
천한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의미심장한 음악]
[산새 울음]
[문이 탁 닫힌다]
[개구리 울음]
[힘주는 신음]
그대들은 타고난 입을 놀려 업을 쌓고
이 몸은 갈고닦은 재주로 재물을 쌓고
공명정대한 세상
다 함께 잘 살아 보세나
[웃음]
[몽환적인 음악]
[놀란 신음]
너는 아까 낮에 혜민서에 왔었던...
어휴,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다
[산새 울음]
(허임) 아휴, 아이고, 몰라, 씨
쯧
뭐,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세상 별거 있나
[한숨]
에이, 잠도 안 오고, 쯧
[코를 드르릉 곤다]
[의미심장한 음악]
[흥미진진한 음악]
(만수) 오하라, 15세
TOF 환자로 생후 6개월 때 수술받은 이력이 있고
폐동맥 판막 삽입 수술 예정돼 있습니다
현재 약간의 부정맥 소견 보이고 있습니다
(황 교수) 최연경
TOF 판막 수술에 대해서 설명해 봐
- 네? - 판막 수술, 몰라?
선천성 심장병인 활로 4징 중
폐동맥이 협착된 환자의 경우
(연경) 돌 전에 폐동맥을 넓혀 주는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을 한 후 판막 역류가 생기는 경우
우심실이 커지고
혈액 순환이 효과적으로 안 되기 때문에
폐동맥 판막 삽입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인공 판막으로는 조직과 금속 두 가지가 있고...
(황 교수) 됐고
이 수술, 네가 맡아
[황 교수의 헛기침]
전달받으셨죠?
오늘부터 우리 최연경 선생이 하라 양 맡을 겁니다
아주 유능한 의사니까 아무 걱정 마십시오
(만수) 어... 교수님?
[살짝 웃는다]
(만수) 어젯밤에 사모님이요? 왜요?
난들 아냐?
오하라 걔가 그냥 콕 찍어서 바꿔 달랬다는데
너 걔한테 밉보인 거 있냐?
와, 그 계집애 내가 자기 비위를 얼마나 맞춰 줬는데
내가 어제도 자기 찾느라고...
그럼 어떻게 해요?
이사장님 쪽 VIP라면서요
아, 어떡하기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지
(황 교수) 바보냐?
'내 점수 못 딸 바에는 상대 점수 깎는다', 몰라?
최연경이 걔가 어디 삐딱한 환자나 보호자한테
고분고분 비위 맞춰 줄 애냐, 걔가?
안녕? 아...
나 최연경, 반갑다
(여자1) 하라야, 새 주치의 선생님께 인사드려야지, 응?
[살짝 웃는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안정 취하게 해 주시고요
(연경) 오후에 간단한 검사 하나 있을 거고요
핸드폰도 너무 오래 하면 안 좋으니까 적절하게 조절해 주세요
(여자1) 네
(연경) 점심 맛있게 먹고
오후에 보자
[연경의 한숨]
[어두운 음악]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비명]
(환자5) 놔, 놔, 놔!
야, 이년아! 무슨 검사를 또 해, 어?
아이고, 나 이런
(이연) 검사 한 번 갈 때마다 저 난리네요
(환자5) 넌 시끄러워!
(이연) 간호사들이 뭔 죄
(환자5) 놔! 이런 싸가지, 이걸...
(보호자3) 아, 여보
네년은 또 뭐야?
차트 줘 보세요
(환자5) 아이고, 의사 년이세요?
의사면 의사답게 좀
의사라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환자분 살리려고요
(연경) 정확한 진단만이 정확한 치료를 결정하고
그러려면 정확한 검사가 선행돼야 합니다
환자분은 세 가지 검사를 더 받으셔야 되고요
(환자5) 뭐, 뭐, 뭐, 뭐, 세 가지?
이년이 미쳤나, 이거, 어?
내가, 내가 너희들 속 모를 줄 알아?
이 종합 병원 오면 쓸데없이
이 검사, 저 검사 검사받다 환자는 죽어나고
너희들은 떼돈 벌고! 어?
- (환자5) 야, 짐 싸, 짐 싸! - (보호자3) 여보, 제발요
(환자5) 내가 그냥 다니던 한의원에 가서 침이나 맞자고 그랬잖아!
침 좋죠
침으로 고칠 수 있는 질환이 얼마나 많은데요
근데 환자분은 아니거든요
침 믿다가 큰일 날 수도 있어요
야, 야, 네, 네, 네가 침에 대해 뭘 안다고 나불대?
좀 알아요, 제가
살고 싶으세요?
그럼 그냥 여기 계세요
(하라) '살고 싶으세요?'
[헛웃음]
어디 얼마나 대단하신가
(여자1) 저, 선생님
선생님 보셔서 아시겠지만
쟤가 요즘 종일 저렇게 핸드폰만 보고
아니면 계속 짜증만 내고 제가 감당이 안 돼서요
사춘기인 데다가 수술 앞둔 스트레스가 겹쳐서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전의 주치의 선생님은
남자시다 보니까 말씀드리기가 뭐했는데
(여자1) 선생님은 여자시고 하니까
언니처럼 잡고 얘기를 좀 해 봐 주시면 어떨지...
저 언니 아니고 의사고요
그리고 그 부분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네?
전 수술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고
뭐, 원하시면
정신과나 전문 심리 상담사를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정신...
[새가 지저귄다]
[익살스러운 음악]
[종이 뎅 울린다]
종 쳤소
[한숨]
아니, 나리
(허임) 아, 얘는 온다더니 왜 안 와
내 보란 듯이 약조 지켜 주려 했더니만
(막개) 의원님, 의원님!
허 의원님, 허 의원님!
[막개의 기합] [허임의 놀란 신음]
허 의원님, 그, 왜적 왜적이 쳐들어온대요, 왜적이
왜 이리 호들갑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허임) 어허, 내일은 오려나?
(막개) 아니, 내일 누가...
왜적이 내일 온대요?
속을 알 수 없는...
아이, 몰라도 돼, 씨
(막개) 아휴, 이번엔 진짜인 거 같은데
아이, 오늘 편전에서도 대판 싸움 나고
임금님이 막 머리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난리가 나...
(허임) 내의원 나리들, 꽁지 좀 빠지셨겠구먼
[피식 웃는다]
[한숨]
아이, 몰라, 오든 말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씨
어휴, 씁, 아, 왜 상관이 없을까
왜적인데
전란이라
[긴장되는 음악]
(의원1) 저 어르신
허준 영감 아닌가?
듣자 하니 너의 침구술이 대응할 자가 없을 정도라 하더구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허준) 하나 물어보마
침구 치료가 심한 편두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막개) 임금님이 막 머리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 난리
오히려 약보다 낫다고 봅니다
어째서?
첫째는 부작용이 적고 치료 시간이 짧지요
둘째, 두통이라는 것은
경혈의 막힘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더 빠른 효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침을 잘못 놓으면
약으로 인한 부작용보다 훨씬 위험해질 수 있다
또한 근본적인 치료라고는 볼 수 없지
약제를 써서 병을 누르고 몸을 보하며 다스릴 것이 있고
침구를 써서 기를 다스려 치료해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편두통의 경우 후자다?
(의원1) 자네는 몰랐나?
의과 시험에 장원한 허임을 이곳으로 발령 보내
10년 내내 처박아 둔 거며
그사이에 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번번이 틀어진 거 그거 다
허준 영감 때문이잖아
(의원2) 뭐?
(의원1) 모르긴 몰라도 허임 저자
속으로 영감한테 칼 댓 개는 갈았을 걸세
무엇보다 약은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싼 반면
(허임) 침구는 침과 뜸 재료만 있으면 되니
가난한 민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의술이지요
가난한 민초들을 위한 의술이라
(허준) 그걸 아는 놈이 밤마다 그러고 다닌다?
(허임) 그 사실을 안들 영감이 뭘 어쩌시겠습니까
하면 주상 전하의 경우는 어떠하냐
(진오) 허임 그자가 주상 전하께 침을 놓는다는 말입니까?
(찬성) 어휴, 그리되었다
그리 그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더니만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허준 영감도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게지
궐 안에 그만한 침구 실력을 가진 의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그자를...
숙부님께서는 안 막으시고 무얼 하셨습니까?
이놈이...
그러면 네놈은 대체 뭘 한 게야!
(찬성) 그 천한 놈이 그리 이름을 날리고 다닐 동안
기껏 약재청이나 지키고 있던 놈이 뭐 할 말이 있다고!
[찬성의 성난 신음]
[한숨]
그놈의 허임, 허임
[새가 지저귄다]
[의미심장한 음악]
(허준) 네가 이번에 전하의 병증을 치료해 낸다면
내의감이나 전의감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마
지겨운 참봉 꼬리표도 떼게 되겠지
또한 어쩌면 전하께서 계속 널 곁에 두려 하실지도 모를 일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네 목이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할 터
그쯤은 돼야 조건이 공평하지 않겠느냐
(허임) 또한 제게 미안했다는 말을
꼭 하셔야 할 겁니다
자, 이 역사적인 순간을 [손뼉을 탁 친다]
[손을 쓱쓱 비비며] 누가 함께할 것이냐
[웃음]
이건 내 침통이 아닌데
남의 것이 잘못 들어왔나
[의미심장한 음악]
(허임) 어허, 그놈들
인물들이 훤칠한 것이
(막개) 의원님, 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요
오냐, 오냐, 그래, 나가마
[허임의 한숨]
(연이 부) 의원님!
허 의원님!
제 딸 좀 살려 주시오
얘가 요 아침에 인나 보니까
이렇게 제대로 숨도 막 못 쉬고
축 늘어져 가지고 이렇게 영 힘을 못 씁니다요
(의관3) 어허! 허 의관은 궐에 들어가야 하니 다른 의원에게 가 보게
아니요!
제 딸 아이는 허 의원님밖에 못 살리십니다요
(연이 부) 그간 잘 본다는 그 수많은 의원들 다 찾아가 봤지만
다들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 쳐다보는 것처럼 고개만 저서 대고
이 바보 같은 놈이, 못난 아비가 이제야 알았어요
(의관3) 이 사람이 그래도!
서두릅시다
(연이 부) 아이고, 의원님
제발 제 딸 좀 살려 주시오, 예?
(의관3) 어허, 주상 전하를 기다리시게 할 셈이오?
[못마땅한 신음]
[연이 부의 떨리는 숨소리]
(연이) [힘겨운 목소리로] 아버지
[애잔한 음악] 왜 또 여기 왔어요
그냥 가요
그냥 가요, 아버지
(연이 부) 아이고, 얘가 지금 뭐라는 거여
그, 그냥 가면 너 죽어, 이것아
아이, 예, 예, 여기, 여...
제가 약값은 준비했습니다요
그게 이놈이 이거 어제 벌겠다고
이 미련 떨다가
[연이 부의 떨리는 숨소리]
(연이) 가요
(허임) 그 성치 않은 몸으로 예까지 혼자 온 것이냐
치료를 위해 온 것이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오거라
내 너를 제일 먼저 치료를...
치료해 주지 마세요
어?
내일 우리 아버지가 또 나 데리고 여기 올 거예요
그래도 치료해 주지 마세요
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세요
어차피 나 죽을 건데
그럼 빨리 죽을래요
그래야 우리 아버지 살 수 있어요
[긴장되는 음악] (연이 부) 아이고, 의원님, 어찌 그냥 간대요!
우리 연이 좀 살려 주시오!
연이야, 어쩔까
아이고, 어쩔까
(허임) 태양
한 치 깊이로 침을 찔러 최대한 기를 끌어당긴 후
천천히 뽑는다
풍지
침과 기의 흐름을 일치시켜 빠르게 깊이 찌른 후
세 번에 걸쳐 천천히 뽑는다
열결
표면에 살짝 찌른 후 우측으로 돌려 보하고
다시 한 치 깊이로 찔러 보한 후
이 각을 기다렸다 천천히 침을 뽑는다
[연이 부가 흐느낀다]
[하늘이 우르릉거린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긴장되는 음악]
[의미심장한 효과음]
(찬성)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그, 그, 그것이...
[선조의 성난 숨소리]
(허준) 그 침통이 허임에게 나타났다
하면...
(금군1) 죄인이 도주했다
[무거운 음악] 죄인이 도주했다!
[가쁜 숨소리]
(금군1) 죄인이 도주했다!
[긴박한 음악] [허임의 놀란 신음]
[금군2의 기합] [말 울음]
[다급한 신음]
(금군3) 비켜!
[다급한 신음]
(금군2) 비켜, 이랴, 잡아라!
[허임의 놀란 신음]
(금군2) 잡아라!
[다급한 신음]
[무거운 음악]
[가쁜 숨소리]
말도 안 돼
[의미심장한 효과음]
[선조의 성난 숨소리]
내가...
이 허임이...
[허임의 떨리는 숨소리]
그게 어떤 기회인데
[긴장되는 음악] [말 울음]
[허임의 놀란 신음]
[허임의 놀란 신음]
[말 울음]
[아파하는 신음]
[극적인 음악]
이게 무슨 소리야, 환자가 사라지다니?
그게, 홀터 점검하러 왔더니...
(여자1) 아, 어떡해
사모님 오실 시간 됐는데
어머니 아니셨어요?
[한숨 쉬며] 네
(하라 모) 이게 무슨 소리야? [여자1의 놀란 신음]
애가 사라지다니!
이번에 바뀌었다는 주치의야?
(연경) 네, 그렇습...
[여자1의 놀란 숨소리]
(민재) 아, 사모님 [하라 모가 씩씩거린다]
대체 병원에서 환자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수술 전날 애가 사라져?
(하라 모) 네가 그러고도 의사야?
[하라 모의 한숨]
아, 나 이렇게 헐렁한 계집애인 줄 알았으면 내가...
당장 찾아와
내 딸 잘못되면 너
의사 생활 끝인 줄 알아
[하라 모의 거친 숨소리]
[가쁜 숨소리]
[허임이 캑캑거린다]
[괴로운 숨소리]
[가쁜 숨소리]
[놀란 신음]
[놀란 신음]
어, 뭐야, 살았어
어, 오장육부 다 멀쩡해
- (허임) 여기... - (남자9) 괜찮아요?
(남자9) 괜찮아요?
[의미심장한 음악]
(남자10) 119 불러드릴까요?
[놀란 신음]
(허임) 아이, 누구야
누구야, 저 사람들은?
여긴 어디야?
아니, 여, 여, 여긴 어디야?
[자동차 경적]
[사람들이 저마다 말한다]
[오토바이 엔진음]
[자동차 경적]
[신호 알림음]
[거리가 소란스럽다]
[기침한다]
"모전교"
[차분한 음악]
[캑캑거린다]
(허임) 차림새는 다르나
분명 조선 사람
조선의 글자
저것도 글자인가?
아이, 배고파
[의미심장한 음악]
그래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했다
[리드미컬한 음악]
(남자11) 아
(허임) 말씀 좀 묻겠소
[남자12의 놀란 신음]
[한숨]
경천동지할 세상이로다
대체 여긴 어디란 말인가?
[차분한 음악] 궐에서 나와 개천까지 내처 달려온 후
물에 떨어진 곳이 모전교
거기서 혜민서까지는 채 5리가 되지 않는 거리
[생각하는 신음]
(허임) 씁, 어허, 여기가 조선 땅이 맞는다면
이 분명 이쯤 어딘가...
(여자2) 네? 혜민서요? 그게 뭐예요?
(남자13) 서울요
(여자3) 2017년요
[가쁜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흐느낀다]
[의미심장한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클럽 보보"
(여자4) 왜, 어디 안 좋아?
[남자14가 기침한다] 왜 그래?
자기야
어머!
자기야, 자기야! [남자14가 연신 기침한다]
자기야, 정신 좀 차려 봐 여기 좀 도와주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아, 자기야!
자기야, 눈 좀 떠 봐, 어?
자기야, 여기 좀 도와주세요
자기야
[흐느끼며] 자기야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죽으면 안 돼, 자기야
(여자5) 어머, 뭐 하시는 거예요?
- (여자6) 뭐야 - (여자5) 뭐예요?
[여자4가 흐느낀다] [남자14의 괴로운 숨소리]
누구세요?
(허임) 아, 그...
의원이오, 병자 좀 잠시 보겠소
(여자7) 뭐 하는 거야? 뭐야?
(여자8) 뭐 하는 거야?
[남자14의 괴로운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맥박 효과음]
(허임) 폐맥이 크고 왕성하다
폐실증
폐장이 공기의 압박을 받고 있어 숨이 차고 흉통이 심한 것이니
몇 군데 시침을 좀 하겠소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사람들) 침
(직원) 침 이만해
[긴장되는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이봐요, 미쳤어요?
(민재) 누구... [허임의 놀란 신음]
(허임) 내가 저 여인의 남친이오
(민재) 누님 잠든 사이에 누님 남친 소문 쫙
(연경) 대체 어디 있니, 그 또라이?
(연경) 영업이든 작업이든 때와 사람을 봐 가면서
오케이?
[허임의 아파하는 신음] (허임) 하, 그 듣도 보도 못한 의술에
여인도 의원이 되는 경천동지할 세상이라
(허임) 혜민서요, 헤라가 아니고 혜민서
- (연경) 알아요 - (허임) 내 얘기를 믿어 주는 것이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