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3
준혁의 방 (밤)
<2부 씬 연결>
준혁 (괴로운 듯 다가서며) 혜린아.....
그 순간 준혁의 뺨을 치는 혜린.
혜린 비겁해....., 정말 비겁하다, 오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준혁 (혜린의 말과 눈빛에 가슴이 무너진다.)
혜린, 다시 한번 준혁의 뺨을 친다. 그대로 뺨을 맞고 서 있는 준혁.
혜린, 절규라도 하듯이 세 번째 준혁의 뺨을 친다. 준혁,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올리는 혜린의 손을 낚아채듯이 잡는 준혁.
그대로 혜린을 포옹하며 입을 맞춘다.
굳은 듯 준혁의 키스를 받고 있는 혜린. 잠시 후, 준혁이 입술을 뗀다.
두 사람, 복잡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준혁, 이내 괴로운 듯 시선을 떨구는데 바로 이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는 두 사람.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시 이어지는 노크소리.
준혁, 긴장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예’하며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순간 안도하는 준혁의 얼굴. 가정부가 시트를 들고 들어선다.
가정부 아직 안 잤지? 시트 놓는 걸 깜빡했지 뭐야.
준혁 아, 예.
가정부, 혜린을 힐끗 본다. 혜린, 시선을 피한다. 이불을 가지고 침대 쪽으로 가려는 가정부를 만류하는 준혁.
준혁 주세요. 제가 할께요.
가정부 응, 그래...
가정부, 준혁에게 이불을 건네주고 방을 나간다.
긴장이 풀린 듯 들고 있던 이불을 털썩 내려놓는 준혁. 혜린, 준혁을 바라본다.
혜린 오빠...
준혁 못할 짓이다...
혜린 !?
준혁 너랑 나 이러는 거..., 정말 못할 짓이라구. (혜린을 본다.)
혜린 !!
준혁 (혜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널 단순한 여동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 그거 인정해.
혜린 .....
준혁 혜린이 너..., 여자로 매력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가만히 두고 보기 힘들만큼. 그런 네가 나 좋다는데 흔들릴 수 밖에 없잖아.
혜린 무슨 말 하고 싶은 거야, 지금?
준혁 마음이 흔들린다고 사랑은 아니라는 거야.
혜린 순간적으로 흔들려서..., 그래서 나한테 키스한 거다, 그 말 하려는 거야?
준혁 마음이 흔들리면 연애하고 그러다 사랑에 빠진다는 거 알아. 그런데 나, 그거 하고 싶지 않아. 진짜로 힘들어지기 전에 멈추고 싶다고, 여기서.
혜린 지금 그게..., 여자한테 입 맞추고 나서 할 소리니?
준혁 아줌마가 쳐다보는 눈길 봤어?
혜린 !?
준혁 종놈의 아들이 주인집 귀한 딸 욕보이다 들킨 기분이야.... 그 기분, 아주 더러워.
혜린 !
준혁 그리고 그 더러운 기분 떨쳐낼 만큼 너에 대한 감정, 절실하지 않아.
혜린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준혁을 본다.)
준혁 미안하다...., 내가 큰 실수 했어. 오늘 일 없었던 걸로 하자.
혜린, 분노와 절망에 찬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준혁의 가슴팍 옷깃을 멱살을 잡듯 움켜쥔다.
혜린 (울먹이는) ...나한테 왜 이러니, 오빠.... 오빠 나 혜린이야. 나 오빠 사랑해, 사랑한 다구.
준혁, 괴로운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혜린의 손을 잡아 가슴에서 떼어낸다.
준혁 나 이거 밖에 안돼는 놈이야. 그러니까 혜린아, 나, 버려!
분노에 찬 혜린, 있는 힘껏 두 주먹으로 준혁의 가슴을 밀쳐버린다. 순간 휘청하는 준혁.
혜린 종놈의 자식? 기분 더럽다구? 그 꼴난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하니? 그래, 너 계속 그렇게 살아봐! 그렇다고 종놈의 자식이 변할 거 같아? 네가 그따위로 생각하는 한 넌 끝까지 그따위밖엔 안돼!
혜린, 거칠게 방문을 열고 나간다.
혜린이 나가자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준혁. 겨우 탁자에 다가가 앉는다.
탁자 위의 재떨이에는 타다 남은 준혁과 혜린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 시선이 가는 준혁. 절망적이고 아픈 시선으로 사진을 본다.
천천히 재떨이에 다가가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재떨이를 쥐자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내던지는 준혁.
오피스텔 건물 앞
종종 걸음으로 건물에 들어가는 은수의 모습.
오피스텔 로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은수.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다가 괜히 출입구 쪽을 두리번거린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문득 다시 한번 출입구 쪽을 보는 은수.
오피스텔 앞에 택시가 멈추고, 태주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은수, 출입구 쪽에 다가가 한 켠에 숨어 태주를 지켜본다.
태주가 입구로 들어서는 걸 보자 다시 재빨리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은수.
태주가 들어서자 은수, 태주 쪽을 돌아보며
은수 아...안녕하세요?
태주 (무뚝뚝한) 어...
은수 퇴근이 늦으시네요.
태주 ....
은수 그 땐 정말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까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
태주 ....
은수 제 동생이 이상한 소리해서 화나신 건 아니죠?
태주 (그제서야 은수를 돌아본다.) 넌 왜 하필이면 모텔에서 일을 하냐? 아직 나이도 어린 애가.
은수 그게..., 오늘로 그만뒀어요! 취직했거든요. 임시직이긴 하지만.
태주 잘했네. 젊은 여자애가 모텔 들락거리는 거 좀 그렇지. 매일 밤늦게 다니는 것도 그렇 고...
은수 모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태주 ?
은수 그 때 그 여자분 엄청 이쁘던데...., 여자 친구 맞죠?
이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안 태주, 버튼을 누르며 은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다. 은수, 아차 싶다.
은수 (당황하는) 아! 누르는 거 깜빡했다.
태주, 대꾸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쪼르르 따라 타는 은수.
엘리베이터 안
은수와 태주, 나란히 서 있다.
태주 너는 내가 애인을 모텔까지 끌고 가서 그냥 혼자 두고 나올 놈으로 보이냐?
은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태주 제대로 된 사내새끼라면 그런 짓 안하지. 그런 건 아주 쪼다 같은 놈 아니면 아주 나 쁜 놈이나 하는 짓이야.
은수 (끄덕끄덕) 예에...
태주 남자 친구 있어?
은수 아뇨.
태주 나중에라도 애인 생겼는데 고 놈이 그런 짓거리 하면 단박에 잘라버려. 희망이 없는 놈이야, 그런 놈은. 매너도 없고, 머리도 없고, 애정도 없다는 거거든. 그건.
은수 그니까 애인이 아니라는 거네요?
태주 (귀찮다는 듯 대꾸도 않는다.)
은수 (태주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본다.)
태주 (은수의 눈길 느끼고) 왜...왜 이래..?
은수 처음 봤을 때부터 어렴풋하게 느낀 건데요..,
태주 ?
은수 분명히 어디서 만났던 거 같아요.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태주 (피식) 낯이 좀 익지?
은수 !! 아저씨도 그렇죠, 그죠?
태주 원래 잘생긴 남잔 다 그게 그걸로 보이는 거야. 얼굴 작고 이목구비 뚜렷뚜렷하고. 텔 레비전에 보면 나같이 생긴 애들 많이 나오잖아. (은수 어깨 툭툭 치며) 그렇다고 또 반하진 말구.
문이 열리자 나가는 태주. 은수, 납득되지 않은 듯 갸웃거리며 따라 나간다.
동, 복도
태주의 오피스텔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미연(1부 첫 씬에 나왔던 태주의 전애인).
다가오는 태주를 보자 그를 향해 전력질주 한다.
미연 태주씨!
미연, 태주가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태주에게로 풀쩍 뛰어 올라 다리로 허리를 감싸고 입을 맞춘다. 갑작스런 상황에 균형을 잃고 몸을 비틀거리는 태주.
아랑곳없이 태주에게 키스를 퍼붓는 미연.
은수,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두 남녀의 열렬한 키스신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다.
비틀거리던 태주, 결국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만다. 겨우 미연을 떼어 놓는다.
태주 (아픈 듯 머리 만지며) 아, 아퍼... 너 미쳤어? 뭐하는 짓이야, 이게!
이때, 아직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는 은수와 눈이 마주치는 태주.
민망함에 짜증이 확 치민다.
태주 뭘 봐! 구경났어?
은수 아...! (꾸벅 고개 숙이는) 안녕히 계세요.
은수, 급하게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지수 오피스텔
허둥지둥 들어오는 은수. 문을 닫고, 아직도 멍한 채 그대로 서서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지수, 은수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의 멍한 눈 앞에 손바닥을 흔들어 보는 지수.
지수 강도 만났니?
은수 .....
지수 귀신한테 홀린 거야?
은수 .....
지수 (버럭) 야, 한은수!
은수, 갑자기 지수를 꼭 부둥켜안는다.
은수 지수야..., 나 기분이 너무 이상해....!
태주 오피스텔
태주의 오피스텔을 둘러보는 미연. 태주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시고 있다.
미연 코딱지가 따로 없구나.
태주 우리 끝난 사이 아니냐? 결혼식 코 앞에 둔 신부가 여긴 왜 왔어?
미연 도망 나왔지. 자기랑 같이 살려구.
태주 .....
미연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역시 사랑 없는 결혼은 안되겠더라구.
태주 (침대에 다가가 옆에 놓인 미연의 핸드백을 들어올린다.) 달랑 핸드백 하나 들고?
미연 태주씨랑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과거 물건 따윈 필요 없어.
태주 아예 옷까지 홀라당 다 벗고 나오지 그랬어?
미연, 밉지 않은 시선으로 태주를 홀겨 본다. 태주, 장난스레 웃으며 미연 옆에 눕는다.
태주 까짓 거 살림 차리지 뭐. (한팔로 미연의 어깨를 끌어 안는다.) 코딱지만한 방에서.
미연 (다정하게 태주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매일 아침 내가 태주씨 밥도 해주겠네?
태주 백원 이백원 콩나물 값 깎으면서 사는 재미 쏠쏠할 거야.
미연 쇼핑은 백화점 세일기간에만 딱딱 맞춰서 하고.
태주 시장, 할인점, 매대표 물건을 애용하는 센스도 키워야지.
미연 (벌떡 일어나) 혹시 아빠가 아파트 한 채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태주 어림도 없어. 호적부터 파실걸.
미연 (다시 태주 품에 안기며) 그럼 어때, 자기가 있는데. 소꿉장난처럼 재밌을 거야.
태주 네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엔 빠진다.
미연 왜?
태주 제일 후지게 시집간 애가 압구정동 피부과 의사라며. 나 쪽팔려.
미연 그러네... 나도 가지 말아야겠다. 그 기집애들 내 꼬락서니 보면 고소해 죽겠다고 엄 청 씹어댈 거야. (아차하는) 미안.., 기분 나빴어?
태주 틀린 소리도 아닌데, 뭘.
미연 (벌떡 일어나며) 아! 역시 난 이기적인 속물인가 봐! 솔직히 자신 없다.
태주 .....
미연 진짜 밥맛이지?
태주 (일어나 냉장고 쪽을 향하며) 나도 너 감당하고 살 용기 없어. 넌 이기적인 여자, 난 용기 없는 남자. 피차일반이니까 비긴 걸로 하자.
미연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태주를 보며 미소 짓는다.) 이래서 태주씨가 좋다니까. 자기 그 런 점 너무 섹시한 거 알아?
태주 (씩 웃으며 미연에게 맥주캔을 던진다.) 진짜 용건이 뭐야?
미연 ...여자 있대. 그 인간.
태주 너도 남자 있잖아.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킨다.)
미연 살림까지 차렸었대.
태주 그래서 약 올라?
미연 내가 그걸 알게 됐다는 게 화가 나.
태주 ?
미연 그런 거 하나 딱딱 못 숨기고, 바보 아냐? 생각하면 아주 돌아버릴 거 같다니까.
태주 네 신랑 순진한가 보지.
미연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거야, 그건. 들키지 말았어야지, 능력 안돼면 들킬 짓을 하지 말던가.
태주 우리처럼?
미연 당연하지.
태주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미연 복수하고 싶어.
태주 복수?
미연 자기가 도와줘야겠어.
태주 !
혜린의 방 (아침)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는 혜린. 이때 윤여사가 들어온다.
혜린, 별 신경 쓰지 않고 화장을 마치자 일어선다. 꽤 성장을 한 차림이다.
윤여사 오늘 무슨 일 있니? 옷차림이 왜 그래?
혜린 (거울 보며 매무새 가꾸며) 이따 아는 선배 결혼식 있어.
윤여사 어이구, 잘한다. 실속 없이 맨날 남의 결혼식이나 쫓아다니구.
혜린 늦을 거예요. 패션쇼 준비땜에 야근해야 하니까. (핸드백 드는데)
윤여사 거기 앉어. 얘기 좀 하자.
혜린 나 출근 늦었어, 엄마.
윤여사 앉으라니까!
혜린 (할 수 없이 앉는다.)
윤여사 준혁이랑은 어떻게 된 거니?
혜린 !
윤여사 말 안할래?
혜린 .....엄마가 보고 들은 대로야. 준혁 오빠한테 청혼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윤여사 둘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단 말야?
혜린 .....
윤여사 준혁이랑 무슨 일 있었지? 그 놈이 너한테 무슨 짓 한 거야, 도대체?
혜린 괜한 억측 좀 하지 마. 그 때 준혁 오빠 하는 말 못 들었어?
윤여사 준혁이는 맘도 없는데 너 혼자 애 닳다가 덥썩 결혼 얘기 꺼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혜린 .....
윤여사 쓸개 빠진 계집애! 어디 남자가 없어서.....
혜린 (발끈하는 눈초리로 윤여사를 본다.)
윤여사 걔가 너한테 가당키나 해? 하고 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이면 왜 그 자식이야?
혜린 준혁 오빠가 어때서? 난 또 잘난 게 뭔데?
윤여사 너 정말 몰라서 이래? 정신 차려. 걔 우리 집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는 애야. 그런 천한 놈을 내 딸 사위로 맞으라고? 미쳤니? 어디 갖다 댈 걸 대야지!
혜린 ! 엄마..., 항상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오빠 봤던 거야? 십오년도 넘게 어머님, 어머 님하는 사람..., 그런 생각하면서 같이 살았어?
윤여사 네 아버지 어거지로 지금까지 거둬냈으면 내 할 도리 다 한 거야. 그것도 넘치도록! 나, 더 이상 걔랑 엮이고 싶지 않다. 도대체 그 속에 뭐가 들어앉아 있는지 알 수 없 는 애, 나 싫어, 불길하고 기분 나뻐!
혜린 실망이다, 엄마. 이 정돈 줄은 정말 몰랐어. 준혁 오빠 그러는 거, 무리도 아니었네!
혜린, 윤여사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방을 나간다.
윤여사 (나가는 혜린을 향해) 정신 차려 이 기집애야! 준혁인, 절대 안돼!
윤여사, 불안하고 화가 치민다.
백화점 앞
고급 세단차가 서고, 운전사가 차문을 열면 준혁과 차회장, 나란히 내린다.
백화점 로비
들어서는 준혁과 차회장. 직원들이 그들을 향해 목례한다.
동, 임원 대회의실
임원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다. 차회장과 준혁이 들어서자 일제히 일어나는 사람들.
단상에 오른 차회장과 준혁.
차회장 여러분들이 아주 반가워할 얼굴을 소개합니다. 이번 이사회에서 영업본부장으로 발령 난 신준혁 상무이삽니다.
준혁 귀국하자마자 막중한 책임을 맡게 돼서 두 어깨가 무겁습니다. 선배님들의 많은 지도 와 도움 부탁합니다.
목례하는 준혁. 임원들 준혁을 향해 박수를 친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임원들을 보는 준혁. 임원들 중 몇몇은 마땅찮은 표정이다.
동, 회장실
회상실에 들어서는 차회장과 준혁. 차회장, 자리에 앉는다.
차회장 한동안 이것저것 말들 많을 거야. 잘난 놈 옆엔 견제하는 놈들 있기 마련이니까. 사실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구.
준혁 각오하고 있습니다.
차회장 든 자린 몰라도 난 자린 안다구..., 그동안 꽤 허전했다.(뿌듯한 시선으로 준혁을 본 다.) 네 놈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아주 든든해.
준혁 .....
차회장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려. 네 능력만 제대로 보여주면 아무 문제없 을 거다.
준혁 예, 회장님.
동, 행사장
<러브러브 페스티발>이라는 현수막이 보이고,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 행사장을 메우고 있다.
속옷에서 화장품, 악세서리까지 연인과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선물용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판매원들은 행사 분위기에 어울리는 악세서리로 치장을 한 모습이다.
큐피트의 화살이 꽂힌 하트 모양의 머리띠를 한 은수는 향수코너에서 물건을 판매 중이다.
한눈에도 닭살 커플로 보이는 남녀에게 커플향수를 권하는 은수.
은수 행사용으로 아주 저렴하게 나왔어요. 잘 어울리는 향으로 세팅돼 있어서 두 분이 함 께 쓰시기 좋거든요. 예..., 그거 샘플 보여드릴까요?
은수, 샘플용 페이퍼에 향수를 뿌리고 커플에게 페이퍼를 내미는데, 그 순간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그들 모습을 보고 만다. 멍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는 은수.
여자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세요?
은수 ! 예?
여자 뭐야.., 기분 나쁘게.
여자, 불쾌한 듯 은수를 째려보며 남자의 팔짱을 끼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은수, 황당하다.
은수 내..내가 뭘 어쨌다구? 이씨...
하지만 그 때부터 은수의 시야에 행사장의 수많은 연인들 모습이 자꾸만 부각되어 보인다.
그들의 다정한 애정행각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태주와 미연의 키스 장면들.
은수, 어떻게든 떨쳐버리려 고개를 흔들고 머리를 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은수 아...! 세상이 다 쪽쪽거린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옆에 있는 향수통을 가져다 직직 자기 몸에 뿌리는데 순간 터져 나오는 재채기.
동, 지하 식당가
직원과 함께 식당가를 돌아보고 있는 준혁.
직원 구매욕구 상승을 위해 쇼핑공간과 식당공간을 혼재시킨 건데, 너무 산만하다는 지적 이 있습니다.
준혁 매출실적은 어떻죠?
직원 약간 상승하긴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닙니다.
이때, 준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준혁, 액정을 확인하고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준혁 예, 어머님...... 예..... (난감한 듯) 저, 지금은... (망설이듯 직원들 쪽을 보고 시계를 보더니) 괜찮습니다.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전화 끊고 직원에게 다가가) 위에 매장 은 이따 오후에 둘러보도록 하죠.
직원 예. 상무님.
준혁,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동, 백화점 일각(창고 근처) 복도 / 엘리베이터 앞 / 지하주차장 물류창고 근처
은수, 물건을 잔뜩 실은 카트를 낑낑대고 끌고 간다. 여전히 요란한 머리띠를 한 상태다.
카트가 몇 번 덜컥거리며 말을 안 듣더니 어느 순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카트를 밀어보고 들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은수 왜 이래, 이거...,어어, ...어떡하지?
주변을 둘러보는 은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 아무도 없다.
이 때, 먼 발치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은수. 할 수 없다 싶다.
은수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돌아보는 남자, 준혁이다. 준혁이 돌아보자 손을 흔드는 은수.
준혁,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자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켜 본다. 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수에게 다가가는 준혁.
은수 좀 도와주시겠어요? 카트가 갑자기 안 움직여서요. 고장 났나 봐요.
준혁 행사장으로 가는 물건입니까?
은수 (놀란) 어떻게 아셨어요?
준혁 (카트를 몇 번 움직여보더니) 고장 난 거 맞네요.
카트 위의 물건들을 들어 올리는 준혁. 멍하니 옆에 서 있는 은수를 보고 남은 물건 가리키며
준혁 들어요.
은수 아, 예.
은수, 나머지 물건을 들고 준혁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다가간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두 사람.
엘리베이터 안
물건을 들고 나란히 서 있는 준혁과 은수.
은수, 갑자기 재채기를 한다. 돌아보는 준혁. 은수, 무안한 듯 웃음 짓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은수 어! 그 때 핸드폰 사신 분이다, 맞죠?
준혁 ?
은수 9층 매장에서 핸드폰 사셨잖아요. 까맣고 얇은 거. 저두 그거 대따 사고 싶었거든요.
준혁 .....
은수 백화점 자주 오시나 봐요. 두 번 씩이나 만나고. 전 여기서 일해요.
준혁 .....
은수 (준혁이 전혀 반응 없자 무안한) 제가 좀 평범하게 생겨서.., 기억 안 나시나 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때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 은수. 이번엔 심하게 발작적으로 한다.
은수 (무안한 듯 준혁을 보며) 이상하게.., 이 향수만 맡으면 자꾸 재채기가 나서요...
준혁 알러지예요.
은수 알러지요?
준혁 담당 매니저한테 다른 상품 매대로 돌려달라고 하세요. 물건 파는 사람이 그 물건에 알러지가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은수 그렇긴 한데..., 그게 어떻게 제 맘대로.
준혁 백화점 입장에서도 좋을 거 없으니까 매니저한테 말하면 들어줄 거예요. 꼭 얘기하세 요.
은수 (왠지 위압감 느끼는) 예...
동, 행사장
준혁과 은수, 물건을 들고 향수 판매대 쪽으로 간다.
준혁, 은수가 가리킨 곳에 물건 내려놓는다.
은수 정말 고맙습니다.
준혁 (가려는데)
은수 (준혁을 잡으며 작은 향수 샘플을 내민다.) 이거 샘플로 나온 건데 여자친구랑 같이 쓰세요. 사랑이 깊어지는 향수래요.
준혁 됐어요.
은수 아니..저...
돌아서 가는 준혁. 바로 그 때 길을 지나던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준혁의 핸드폰이 은수 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핸드폰을 줍는 은수, 밧데리가 떨어져나간 곳에 여자 사진(혜린)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은수, 무심코 사진을 보려는데 준혁, 잔뜩 굳은 얼굴로 은수에게서 핸드폰을 뺏어가듯 채간다.
은수, 황당해서 보면 준혁은 이미 돌아서 가고 있다.
은수 에이, 애인도 있으면서..., (샘플 향수를 보며) 너무 후졌다, 이거지?
백화점 준혁 사무실
윤여사가 앉아 있다. 잠시 후, 준혁이 들어선다.
준혁, 긴장한 얼굴로 윤여사에게 다가가 앉는다.
윤여사 바쁜데 부른 거 아니니?
준혁 괜찮습니다.
윤여사 차 마신다.
윤여사 기획상무이사로 취임했다구.
준혁 예.
윤여사 (약간 비아냥) 역시 회장님 신임이 대단하구나. 친자식이라도 이렇게까진 못할 거다. 준혁 저도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윤여사 당연히 그래야지. 그 마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혁 .....(윤여사의 말투와 시선이 불편하다.)
윤여사 (서류를 내민다.) 이것 땜에 보자고 했어.
준혁 (의아한 얼굴로 서류를 받아 본다.)
윤여사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을 거야. 회사에서도 가깝고, 새로 지은 건물이라 시설도 잘 돼 있고. 남자 혼자 살긴 아주 괜찮겠더라.
준혁 (고개 들어 침착한 표정으로 윤여사를 본다.)
윤여사 사지 멀쩡한데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남의 집에 얹혀사는 거, 너도 좀 그렇잖니. 이 젠 독립 해야지.
준혁 (침착하게) 그렇잖아도 귀국하는 대로 독립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윤여사 잘됐구나, 그럼. 오늘이라도 당장 입주해서...
준혁 말씀대로 저 사지 멀쩡한 성인입니다. 제 한 몸 건사할 능력 있어요, 어머님. (서류를 윤여사쪽으로 밀어내며) 업무 인수받느라 한동안 바쁠 거예요. 바쁜 일 정리 되는대 로 집은 제가 구해서 나가겠습니다.
윤여사 (잠시 준혁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런다고 생각하니?
준혁 .....
윤여사 너와 혜린이가 한 지붕 아래 있는 거, 단 하루도 못 참겠어. 꺼림칙하고 싫고, 불안해!
준혁 .....
윤여사 배은망덕한 자식, 불쌍한 거렁뱅이 새끼 데려다 기껏 사람 꼴 만들어놨더니 감히 내 딸을 넘봐?
준혁 !
윤여사 혜린 아빤 넘어갔을지 몰라도 난 못해.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당장 나가라.
준혁 혜린이 성격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윤여사 ?
준혁 어른들 앞에서 저한테 청혼했던 애예요, 혜린이.
윤여사 !
준혁 제가 독립한 다음에 어른들 눈 없는 곳에서 혜린이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책임 못 집 니다.
윤여사 뭐..뭐라구!
준혁 (서류 다시 밀며) 집은 역시 제 힘으로 구하겠습니다. 더 이상 불쌍한 거렁뱅이 새끼 가 아니니까요. 집 구할 때까진 회사에서 지낼 거니까 마음 놓으세요. 혜린이랑 한 지 붕 아래 있는 일 없을 거예요. (일어선다.)
윤여사 앉아!
준혁 .....
윤여사 내 얘기 안 끝났어! 앉지 못하니?
준혁 (할 수 없이 앉는다.)
윤여사 너한테 그토록 끔찍한 회장님이 왜 한 번도 널 사위로 맞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까..., 그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니?
준혁 !
윤여사 네가 부모 없고, 가진 거 없어서?
준혁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두 사람, 강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본다.
윤여사 네 아버지에 대해서 얼마나 기억하고 있니?
준혁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윤여사 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있니?
준혁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잖습니까.
윤여사 네 눈으로 봤어?
준혁 !!
윤여사 (아차 싶다.) .....
준혁 .....
윤여사 하나밖에 없는 내 딸 혜린이, 양친 부모 사랑 받으며 상처 없이 자란 사람한테 주고 싶은 거, 그다지 큰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남이라면 준혁이 너, 얼마든지 동정하고 보듬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하지만.., 내 딸 상대로는 싫어!
준혁 .....
윤여사 널 친아들처럼 아끼는 회장님도 그건 마찬가지야. 어쩔 수 없이 회장님도 딸 가진 애 비니까.
준혁 .....
윤여사 혜린아빠가 너한테 쏟은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그 분 등에 칼 꽂는 짓은 하지 말아라. 속 깊은 애니까 그 정도 경우는 있을 거라 믿는다.
윤여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준혁, 목석같이 앉아 있다.
잠시 손가락을 까닥거리다가 벌떡 일어나는 준혁.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간다.
동, 복도 /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윤여사.
윤여사를 향해 바쁘게 걸어오는 준혁.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타는 윤여사.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히는 순간,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누르는 준혁.
윤여사, 창백한 준혁의 얼굴을 보자 깜짝 놀란다.
준혁 제가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까?
윤여사 .......
준혁 제 아버지요.
윤여사 !.....내 말에 무슨 오해가 있었나 보구나..... 그런 거 없다.
윤여사, 닫힘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서는 준혁.
불안과 의혹에 빠진 모습이다.
호텔 결혼식장, 신부대기실 (오후)
카메라를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태주. 그 아래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연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두 사람, 영락없는 신랑신부다. 미연, 태주 귀에 대고 속닥거린다.
미연 친구들 단체 사진 찍을 때도 내 옆에 딱 붙는 거 잊지 마.
태주 사진 몇 방으로 네 마음이 풀린다면 그 정도쯤이야.
미연 (카메라맨에게) 아저씨, 한 번 더 찍어 주세요.
미연, 태주에게 밀착된 자세를 취한다. 이때 태주의 손에 쥐어지는 호텔키. 태주, 황당한 듯 미연을 본다.
미연 (카메라 보며) 진짜 복수는 이거야. 첫날밤은 자기랑 함께.
태주 (카메라 향한 채) 들키고 싶어 환장했냐...
미연 (카메라 향해 웃으며) 응, 맞아!
태주 !
미연 아무 일 없을 거야. 체면치레가 중요한 사람이니까.
카메라 플래쉬가 터진다.
미연 속이야 끓겠지, 나처럼. 그래야 공평하잖아.
태주 내가 들어줄 거 같아?
미연 나, 법적으론 아직 싱글이거든?
태주 !
이때, 문이 열리며 미연이 친구 세사람이 들어선다.
친구 안녕하세요! (사이) 어머, 미연아, 너무 이쁘다!
미연 얘들아, 빨리 와, 사진 찍자!
태주,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미연을 보면서 밖으로 나가는데
미연 태주씨!
태주 ? (돌아본다)
미연 ...도와준다고 약속했다. 꼭 지켜!
태주, 나간다.
21. 호텔 현관 입구
혜린 차 도착한다.
혜린, 내려서 주차요원에게 차 키를 맡기고 호텔로비로 들어선다.
22. 동, 결혼식장 로비
신부대기실에서 나온 태주. 호텔 키를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넣고, 하객들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태주 (혼잣말) 조금 받아줬더니 별 짓거리를 다 시키네, 얘가...
착잡한 마음으로 잠시 로비를 배회한다. 식장 입구에서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신랑을 본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는 태주.
다시 신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호텔키를 만지작거리며 신랑을 주시하는 태주.
환한 웃음으로 하객들의 인사를 받고 있는 신랑, 문득 태주의 시선을 느꼈는지 태주 쪽을 본다.
태주,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신랑을 주시한다.
신랑, 태주가 신경 쓰이지만 하객들의 인사를 계속 받고 있는데 잠시 후 신랑에게 다가가는 태주. 신랑에게 악수를 청한다.
태주 축하합니다.
신랑 감사합니다. 어떻게 오셨죠?
태주 신부측이에요.
신랑 예...
태주 첫날밤 치를 방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던데. (호텔키를 꺼내 신랑에게 건네주며) 신 부가 이 방으로 꼭 바꿔달라는데요. (신랑 귀에 대고 속삭이듯) 신랑까지 바뀌면 곤란 하겠죠?
로비에 들어서서 신랑에게 향하던 혜린이 태주를 보고 멈칫한다.
신랑,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태주를 부들부들 떨리는 시선으로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태주를 향해 돌진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태주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신랑. 태주, 갑작스런 공격에 휘청거리지만 다시 공격하려는 신랑에게 주먹을 날린다.
때 아닌 난투극에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주변 사람들 격렬하게 싸우는 두 사람을 떼어놓느라 우왕좌왕한다.
드레스 입은 미연까지 뛰쳐나와 얼굴이 새하얗게 되는 이 모든 소란을 번갈아 지켜보던 혜린, 그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진다.
23. 동, 화장실
세수하는 태주
태주 체면치레 좋아하네. 미친놈, 아예 누워서 침을 뱉어라.....(티슈로 얼굴을 닦으며 거울 을 보다가 얼굴에 난 상처를 보자 짜증이 치민다.) 아, 새끼, 하필 얼굴을....
태주, 잠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바라본다.
태주 강태주! 뭐하는 거냐, 너!
태주 나간다.
24. 호텔 앞 도로 / 혜린의 차 안
차를 운전해 가던 혜린,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태주를 발견한다.
혜린, 그냥 지나쳐가다가 마음이 바뀐 듯 차를 멈춘다.
후진해서 태주 앞에 차를 세우고, 차창 문을 연다. 놀라서 보는 태주.
혜린 타세요.
25. 도로 / 혜린의 차 안
태주 호텔엔 무슨 일입니까?
혜린 결혼식이요.
태주 !
혜린 결혼식은 별 탈 없이 치러졌어요. 하얗게 질린 신부랑 시퍼렇게 멍든 신랑이랑 잘 어 울리던데요.
태주 어느 쪽이죠?
혜린 신랑이요. 아는 선배거든요.
태주 .....
혜린 치고 박고 깨지는 영화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그러잖아요. 정말 그렇더라구요. 라이브라서 그런가, 실감도 더 나고. 우울했었는데 잠시나마 즐거웠어요. 덕분에.
태주 그렇게 좋으면 직접 치고 박고 다니죠, 꽤 잘할 거 같은데.
혜린 그러게요, 참고하죠.
태주 참 취향 독특해.
혜린 그 선배 꽤 점잖은 사람인데, 뭐라고 했길래 그렇게 열 받은 거예요?
태주 .....
혜린 얘기해줘요. 소문 안낼 테니까.
태주 신부한테 받은 호텔키를 넘겨줬을 뿐이에요.
혜린 ...보기보다 도덕심 강하네. 남의 신부는 안 건드린다, 그건가요?
태주 도덕심은 무슨..., 그냥 안 땡기니까... 들켜야 분이 풀린다니 결국 소원풀이 해준 거 죠, 뭐.
혜린 (잠시 사이 두고) 제비랑 다른 점이 뭐예요? 멀쩡한 직장 있는 거 빼고.
태주 !
혜린 새삼 기분 상한 건 아니죠?
태주 차혜린씨.., 초자연산 미인에 쭉쭉빵빵, 그 정도면 섹시하고 매력 있는 편이에요. 하고 다니는 걸 보아하니 꽤 있는 집안 딸인 거 확실하고, 사업체 갖고 있는 거 보면 본인 재산도 어느 정도 있을 거고.
혜린 그래서요?
태주 아무리 좋은 조건에 돈을 뭉탱이로 지고 있어도 난 그 쪽 꼬실 마음 전혀 없거든요. 왜냐, 안 끌리니까. 난 연애를 하는 거고, 연애는 땡겨야 하는 거니까.
혜린 확실히 제비랑은 차별 되네요.
태주 .....
혜린 그 여자 많이 사랑했어요?
태주 네.
26. 오피스텔 건물 앞 / 혜린의 차 안
혜린의 차가 서고 차에서 내리는 태주.
태주 고마워요, 택시 기사 해줘서.
혜린 내가 진 신세에 비하겠어요.
태주, 씩 미소 짓고 돌아서 가려는데
혜린 강태주씨!
태주 ?
혜린 만약 그 신부가 모든 걸 다 버리고 강태주씨를 택했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태주 그럴 일 절대로 없는데요.
혜린 만약에요.
태주 싫어요.
혜린 왜요?
태주 난...., 모든 걸 다 버린 여잔 싫거든요. 가진 여자가 좋지.
혜린 (끄덕끄덕) 다음 회의 때 봐요.
혜린, 창문 올리고 차를 출발시킨다. 태주,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27. 태주의 오피스텔 (밤)
어두운 실내. TV화면에서는 영화가 나오고 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태주, 영화를 보던 중 잠든 모습이다. 이때, 벨소리와 함께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매우 급박한 느낌이다.
뭉기적거리다 겨우 눈을 뜬 태주, 제대로 정신이 들지 않는 듯 TV화면을 응시하다가 다시 쾅쾅거리는 소리가 나자 현관으로 나간다.
문을 열면 사색이 된 은수의 얼굴이 보인다. 은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짜증이 확 치밀어 문을 닫으려는데 은수가 필사적으로 문을 붙잡는다.
은수 아저씨, 큰일 났어요!
태주 왜 또?
은수 집안이 온통 물바다예요. 수도관인지 하수군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요. 좀 도와주세요, 아저씨.
태주 너네 집 수도관 터진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은수 저보단 잘 아실 거 아니예요. 부탁이에요, 아저씨, 네? 물이 멈추질 않아요. 이러다 건 물 전체가 다 물난리 날지도 몰라요.
태주 여기 경비실 아니거든.
태주, 문을 닫으려는데 은수가 필사적으로 태주의 팔을 붙잡는다.
은수 경비실에 알릴 수 없으니까 그러죠. 경비실은 진짜 안되거든요? 아저씨가 좀 봐주세 요. 도와줄 사람 아저씨밖에 없어요. 담부터 귀찮게 안할께요. 한번만요, 딱 한번만. 아저씨...
태주 얘가 진짜...! 놔, 안놔!
은수 (태주의 기세에 잡았던 팔을 놓는다.)
태주 내가 네 머슴이냐? 한밤 중에 자는 사람 깨워 일 시키게? 뻔뻔도 좀 정도껏 해라!
문을 쾅 닫는 태주, 여전히 잠이 덜 깬 얼굴로 거실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문득 맘에 걸리는지 문을 돌아보고는 인터폰을 든다.
태주 경비실이죠? ***호 수도관 터졌대요. 네, ***호요!
리모컨으로 TV를 끄고, 쓰러지듯이 침대에 엎드려 눕는 태주.
잠든 태주의 모습에서
<시간 경과>
웅성거리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는 태주, 여러 번 뒤척이다가 결국 깨고 만다.
태주 아 뭐야.., 시끄럽게
스탠드 불을 켜고 시간을 확인하면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각이다.
냉장고로 다가가 생수를 꺼내 마시는데 거의 빈 병이다. 짜증스럽다.
28. 동, 복도
점퍼를 챙겨 입고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태주. 까치머리에 부스스한 모습이다.
은수네 오피스텔 앞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태주, 그 모습을 무심히 보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한다.
태주 (하품하면서 중얼거린다.) 크게 터졌나 보네.
29. 편의점
카운터에 생수병과 아이스바를 내려놓는 태주.
계산을 하고 나간다.
30. 골목길 / 오피스텔 건물 앞
생수병을 들고 아이스바를 먹으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태주.
한참 걸어가다가 오피스텔 건물 앞에 경찰차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심히 보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는 태주.
경찰에 이끌려 나오는 사람은 분명 은수와 지수다.
맨발에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채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경찰차에 타고 있다.
출발하는 경찰차.
경찰차가 태주 앞을 지나는 순간 태주와 차 안의 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멀어져가는 차를 망연히 바라보는 태주.
31. 경찰서
늦은 밤 취객들과 잡범들로 시끌벅적한 경찰서 풍경.
주변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있는 은수와 지수가 한 쪽 구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 앞에서 조서를 작성하던 형사, 짜증난다는 듯 서류로 책상을 쾅 친다.
겁먹은 얼굴로 형사를 바라보는 은수와 지수. 은수, 책상 밑으로 지수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지수, 불안에 떨고 있지만 억지로 침착하게 대답한다.
형사 그러니까 집주인이 거기 살라고 허락했다, 그 말이야?
지수 (끄덕인다.)
형사 경비실엔 비밀로 하고?
지수 (끄덕인다.)
형사 그 집주인 이름이 뭐야?
지수 .....
형사 뭐냐니깐!
지수 이름.., 모르는데요, 아이디밖에.
형사 아이딘 뭔데?
지수 발광머리 앤.
형사 (조서에 기입하는) 빨강머리...
지수 발광인데요. 지랄발광할 때 발광.
형사, 날 선 눈으로 지수를 바라본다. 지수, 찔끔해서 고개를 숙인다. 불안한 듯 지수와 형사를 번갈아 보는 은수.
형사 열쇠는 우편으로 받고.., 이름도 몰라, 나이, 성별.., 당연히 연락처도 모르겠네..?
지수 (끄덕인다.) 네.
형사 (버럭) 너 지금 장난하냐! 조사하면 다 나와, 솔직하게 불지 못해!
지수 .....
형사 가출해서 길거리 헤매다가 우연히 빈집을 발견했다, 맞지?
지수 아뇨.
형사 얘가 진짜.
지수 발광머리앤이 빌려준 거라니까요!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형사 지랄발광인지, 발광인지 그 집주인 지금 여기 오고 있거든? 그 사람 너 모른대. 자기 집에 사람 살고 있단 말 듣고 완전히 까무라쳤어, 그 사람!
지수 !
형사 이래도 계속 집주인이라고 우길 거야? 빨리 사실대로 불지 못해!
지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파리해진다. 지수의 기색을 살피고 깜짝 놀라는 은수.
은수 (형사에게) 아저씨 왜 애한테 소리를 지르고 난리세요!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졌다구요!
형사 이 아가씨가 정말.., 당신들 무슨 짓 저지른 건지 정말 몰라? 불법가택침입에 전기며, 수도며 마음대로 사용했지. 그거 절도야, 절도! 명백한 범법행위라구!
은수와 지수, 겁에 질리는데 이때, 요란하게 번쩍거리는 치장을 한 중년 부인이 호들갑스럽게 들어선다. 경찰 한명이 은수네 쪽을 가리키자 다가오는 부인
부인 (다가와)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누구야, 얘네들이야? 아 니, 멀쩡하게 생긴 애들이 무슨 짓이야? 니들 집 없어? 니들 집 놔두고 왜 남의 집에 들어와서.....
지수,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쥐며 책상에 고개를 푹 박고 있다.
은수 지수야!
갑작스런 사태에 모두 당황한다.
은수, 의식을 잃는 지수를 잡아 흔들며 울먹이며
은수 앰뷸런스요, 아저씨, 빨리요, 우리 지수 죽어요!
32. 병원 병실 (아침)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지수. 잠시 후 눈을 뜬다.
주변을 살펴보면 침대 옆 의자에 은수가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이마를 대고 있다.
지수, 은수 기척을 살피고 조심스레 일어나 팔목에 꽂힌 주사바늘을 빼려는데
은수(e) 그만 두지 못해!
지수, 돌아보면 초췌한 얼굴의 은수가 지수를 노려보고 있다.
지수, 면목이 없지만 애써 당당하게
지수 나 괜찮거든.
은수 누워.
지수, 할 수 없이 눕는다. 이불을 덮어주는 은수.
지수 요며칠 약 먹는 거 깜빡했어. 당연히 저항력이 약해졌겠지. 그런데 그런 소란을 겪었 으니 몸에 무리가 오는 거 당연하잖아.
은수 그래서?
지수 (다시 일어나려는) 이제 괜찮다는 거지.
은수, 지수의 이마를 눌러 그대로 눕힌다.
은수 나 화 나는 거 억지로 참고 있으니까 건들지 마라.
지수 가끔 약 빼먹을 수도 있지 그거 갖고 웬 난리? 나 진짜 멀쩡해.
은수 군산에 전화해서 엄마 부를까?
지수 치사하게 협박이냐?
은수 (핸드폰 꺼내 버튼을 누르는데)
지수 (핸드폰을 쥔 은수의 손을 잡는다.)
은수 (핸드폰 내려놓으며) 검사 몇 가지 해야된다니까 꼼짝 말고 있어.
지수 또 무슨 검사?
은수 지난번처럼 검사 안하고 또 도망가면 나 진짜 너랑 연 끊는다.
지수 .....
은수 검사받고..., 퇴원은 너 혼자 해야 돼. 나 백화점에 일하러 가야 되잖아.
지수 .....
은수 (걱정되는) 좀 어지러울 거래. 그래도 혼자 집에 갈 수 있지?
지수 그 놈의 검사 맨날 받아봐야 뭐해.
은수 야, 한지수!
지수 (이불 뒤집어쓰고 모로 눕는다.)
은수 (마음이 짠하다. 일어나 가려다가) 너 검사 안받으면 정말 죽을 줄 알어!
지수 퇴원하면 나 감옥 가냐?
은수 발광머리 앤이 그 빤짝이 아줌마 딸이랜다.
지수 (벌떡 일어나) 진짜?
은수 초등학교 5학년이래. 네 소설팬 수준, 역시 참 높더라. (문을 열고 나가는데)
지수 언니.....
은수 (돌아본다.)
지수 미안해. (침대에 눕는다.)
은수, 착잡한 눈길로 지수를 보다가 나간다.
33. 오피스텔 앞/ 로비
출근길의 태주, 몇 걸음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저 멀리 은수가 힘없이 걸어오고 있다.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옷차림으로 추위에 웅크리고 걸어오는 은수, 피곤에 절은 얼굴과 맨발에 슬리퍼가 더욱 처량 맞아 보인다.
은수의 눈치를 보며 걸음을 옮기는 태주. 잔뜩 은수를 의식하지만 은수는 태주를 아랑곳 않고 그대로 지나쳐간다.
태주 (망설이다 돌아보며) 야...
은수, 못 들은 듯 그대로 걸어간다. 은수를 쫓아가 옆에 서는 태주.
은수, 그제서야 고개 들어 태주를 본다. 은수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어색해지는 태주.
은수 왜요?
태주 아니 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색하게 웃으며) 너.., 불법거주자라며?
은수 (얼굴이 굳는다.) 그래서, 재밌으세요?
태주 (금세 웃음을 거둔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은수 아저씨가 신고했다면서요?
태주 신고?
은수 경비 아저씨가 그랬어요. ***호에서 신고 들어왔다구.
태주 신곤 무슨..., 아, 그 아저씨 참 이상한 사람이네! 니네 집 수도관 터져서 물 넘친다며? 건물이 물에 잠길지 모른다고 네가 그랬잖아. 그 말 듣고 가만있을 수 있어? 건물 전 체가 엉망이 될텐데 입주자로서 당연히 연락해야지 경비실에.
은수 아아, 그래서 신고한 거구나.
태주 신고한 거 아니라니까.
은수 신고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 한밤중에 맨발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그 충격으로 우리 지수는 병원까지 실려 갔는데. 아저씨 땜에요! (돌아서 간다.)
태주 쟤..쟤, 왜 저래? 아, 내가 뭘 어쨌다구!
태주, 마음에 걸리는 듯 은수가 간 쪽을 돌아본다.
34. 오피스텔 복도 / 지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주. 지수 오피스텔 앞까지 걸어와 걸음을 멈춘다.
반쯤 열려 있는 오피스텔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대는데 그 바람에 문이 밀린다.
걸레를 들고 물이 흥건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넋 놓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은수의 모습에 멈칫하는 태주.
집기라곤 전혀 없는 을씨년스러운 방 안 풍경 때문에 은수의 모습은 더욱 더 처량 맞아 보인다. 은수,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레질을 하려다가 문 앞에 있는 태주를 본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는 태주.
태주 거짓말이지? 동생...병원에 실려갔다는 거.
은수 .....(무시하고 걸레질을 한다.)
태주 정말 쓰러진 거야?
은수 그게 왜 궁금하세요?
태주 ! .....그거야..., 동네 사람이잖아. 이웃의 불행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지.
은수 그 동네 사람은 도와달랄 땐 문전박대하더니 불행한 일 터지니까 호기심이 발동하나 보죠?
태주 넌 애가 왜 그렇게 삐딱하냐? 난 순수한 맘으로 걱정해주는데.
은수,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하던 걸레질을 한다.
태주, 어색하게 쭈뼛거리고 서 있다가
태주 나..., 수도관에 대해서 아는 거 정말 없거든.
은수 .....
태주 정말이야. 뭐 고치고 그런 거.., 그 쪽엔 완전 젬병이라구.
은수 (태주를 본다.)
태주 내가 못 도와주니까 경비 아저씨 도움이라도 받으라고 연락한거거든, 나는.
내가 니네 사정을 알았냐? 전혀 몰랐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 당연하잖아.
은수 알아요. 저 아저씨한테 불만 없어요. 사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산 우리가 잘못이 죠.
태주 그렇지! 이해 잘하고 있네.
은수 그래두요..., 심정적으로 마음이 좀 상한 건 사실이거든요.
태주 ?
은수 갑자기 물이 막 넘치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아저씨밖에 없었어요. 서울에 아는 사람이 라곤 아저씨 하나니까.
태주 .....
은수 그냥..., 전 아저씬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태주,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은수, 걸레질을 마치고 욕실쪽으로 가려다가 태주를 본다.
태주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은수. 태주 얼굴의 상처가 눈에 띈다.
은수 얼굴은 왜 그러세요?
태주 (상처를 만지며) 몸 좀 풀 일 있었어. 왜, 눈에 많이 띄냐?
은수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요.
태주 ?
은수 아저씨도 심정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시나요?
태주 죄책감?
은수 네.
태주 (고개 저으며) 아니.
은수 (태주를 본다.)
태주 (잠시 은수의 눈을 보다가 고개 끄덕인다.) 조금....., 쪼끔!
35. 병원 정문 앞 / 호영의 차 안
지수, 발장난을 치며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
잠시 후, 태주가 호영의 차를 몰고 그 앞에 선다. 차문을 내리고.
태주 야! 타!
지수 (혼잣말) 정말로 왔네.
36. 도로 / 호영의 차 안
태주가 운전하고 있고, 지수는 조수석에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다.
태주 심장이 얼만큼 나쁜 거냐? 어린 애가 그깟일에 쓰러지기까지 하고.
지수 일부러 그런 거예요.
태주 뭐?
지수 집주인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그 집에 눌러 있으려는 수작.
태주 어...
지수 그러니까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느끼하거든요.
태주 (지수에게 얼굴 내밀며 자기 눈을 가리킨다.) 동정 어렸어?
지수 (잠시 보다가) 원래 생긴 게 느끼하네요.
태주 !
잠시 사이 두고.
태주 가출은 왜 했어?
지수 학교 다니기 싫어서요.
태주 왜?
지수 왕따였거든요.
태주 왜?
지수 뭐가요?
태주 왜 왕따였냐구?
지수 어디나 왕따의 이유는 하나예요. 남과 달라서 재수 없는 거. 나야 다리 길죠, 말랐죠, 얼굴 이쁘죠. 미움 받을만 하잖아요.
태주 니네 언니도 가출한 거야?
지수 걔는 좀 복잡해요. 콩쥐 신드롬이라고 아실라나.
태주 그건 또 뭔데?
지수 계모의 구박에서 벗어나고픈 뜨거운 열망, 팥쥐 동생을 지키고 보필해야한다는 강한 소명의식. 그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예요. 그 여잔.
태주 언닌 콩쥐고 넌 팥쥐.
지수 그렇죠.
태주 아빠도 달라?
지수 같은데 돌아가셨어요.
태주 엄만 뺑덕어멈에..... 니네 언니 고생 많았겠다.
지수 뺑덕어멈은 심청이 계모죠. 심봉사 세컨드.
태주 아, 맞다.
지수 고전에 약하시구나.
태주 (지수를 본다.)
지수 왜요?
태주 너 참 말대답 잘한다.
지수 아저씬 호구조사 참 열심이네요.
태주 !
태주, 지수를 보면, 지수, 딴청 부리듯 창 밖을 본다.
37. 오피스텔 앞 / 호영의 차 안
차를 세우는 태주.
지수, 막 내리려는데 태주가 뒷좌석에 있던 초밥집 쇼핑백을 지수에게 준다.
지수 뭐예요?
태주 밥을 먹어야 약을 먹을 거 아냐.
지수 나 초밥 별론데.
태주 (귀찮다.) 그냥 입에 넣고 삼켜!
지수 (내리려다가) 아저씨 또 회사 가요?
태주 너 땜에 버린 시간 보충하려면 야근까지 해야 되거든.
지수 참, 생색은! (차에서 내린다.)
태주, 열이 팍 오른다.
태주 야, 요즘애들 저거..., 교육이 문제야, 교육... 우리나라 교육제도 문제 있어.
차를 출발시킨다.
지수, 오피스텔 앞에서 초밥봉투를 안은 채 떠나는 차를 보고 있다.
38. 태주의 사무실
업무를 보고 있는 호영의 책상 위에 차키가 던져진다.
호영, 고개 들어 보면 태주가 자기 자리에 앉고 있다.
호영 도대체 뭔 일이냐? 그렇게 무시하던 내 똥차까지 빌려가고.
태주 (사무실 둘러보며) 부장은?
호영 (침체된 사무실 분위기 눈짓하며) 한바탕 폭탄 투하하고 전시회 미팅 나갔어.
태주 역시 운발 좋단 말야. 아예 안 마주치는 게 장땡이지.
호영 너한테도 한방 날리고 갔거든?
태주 ?
호영 패션쇼 기획안, 그 쪽이랑 미팅하기 전에 자기한테 먼저 사전감수 받으랜다.
태주 ! 그렇게 할 일이 없냐. 분명히 부부생활에 문제 있다, 애인한테 채였거나.
태주와 호영, 각자의 컴퓨터를 보며 업무를 본다. 컴퓨터에 시선 둔 채 대화하는 두 사람.
호영 참, 나 재밌는 얘기 들었는데.
태주 뭐?
호영 네가 맡은 그 샤샨지 뭔지 하는 의상실.
태주 응.
호영 거기 오너가 팔레스 백화점 회장 딸이랜다. 그것도 무남독녀 외동딸.
태주 !!.... 정말?
호영 그 백화점 홍보실 직원한테 들은 거야. 그런 집 딸이 왜 따로 옷가겔 내나 몰라, 골치 아프게..... 참, 사람 가지가지야.
태주 한다는 집 딸내미일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다.
호영 경훈이 말이 생긴 것도 기가 막히다며? 수퍼 모델 저리 가라라던데?
태주 형도 얼굴 봤어.
호영 내가 언제?
태주 나한테 폭탄주 부은 애, 기억 안나?
호영 폭탄주?
태주 걔가 걔야.
호영 ! (놀란 눈으로 태주를 돌아본다.)
39. 혜린의 부띠끄 / 사장실
초조한 얼굴로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혜린. 액정에 <준혁오빠>라고 뜬다.
전화기를 귀에 한참 대고 있다가 내려놓는다.
잠시 서성대다가 다시 전화 버튼을 누른다.
혜린 아줌마, 저예요. ......준혁 오빠 아직도 연락 없어요? ....(놀란) 네? 낮에 왔었다구요? .........(점점 심각해지는 얼굴) 네........네...., 그래서 어디로 간대요?.......알았어요...... 저, 엄마한테 내가 전화 했었다는 거 말하지 마세요.
전화 끊는 혜린의 표정이 무척 무겁다.
40. 백화점 행사장
지난번과는 다른 악세서리를 하고 속옷코너에 있는 은수.
몹시 피곤한지 선 채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게슴츠레하게 눈이 떠졌다가 다시 감기는 동작이 반복된다.
손님 (브래지어들을 뒤적이며) 이거 한 치수 작은 거 없어요?
은수 .....
손님 좀 작은 걸로요. ....(반응 없자 은수에게 고개 내밀며) 치수 작은 거 없냐구요?
은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없거든요.
은수, 손님에게 가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황당한 손님.
눈이 감기는 은수, 꾸벅하고 고개가 숙여지는데 바로 이 때 다가오는 매니저의 뒷모습.
매니저 한은수씨!
은수, 번쩍 눈을 뜬다.
41. 동,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은수. 창고 안은 새로 입고된 물건과 기존의 물건들이 섞여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다. 은수, 한숨이 나온다.
은수 차라리 잘 됐어. 졸진 안겠지.
은수,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한다. 한참 정리를 하다가 힘에 부치는지 푹신한 물품에 기대앉는 은수, 은수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42. 백화점 앞 / 혜린의 차 안 (밤) / 주차장
백화점의 화려한 불빛이 하나 둘 꺼진다. 백화점 뒷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직원들.
혜린이 차 안에서 쇼윈도만 남긴 채 불빛이 꺼져가는 백화점을 보고 있다.
43. 백화점 사무실 / 기획실 상무이사실 (준혁의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어둡고 텅 빈 사무실.
사무실 안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스탠드 불빛만 켜 놓은 채 창 밖을 보고 있는 준혁.
쓸쓸한 얼굴이다. 잠시 후, 스탠드를 끄자 사무실 전체가 어둠에 잠긴다.
44. 동, 복도 / 임시 숙소 앞
어두운 복도를 걸어오는 준혁.
임시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준혁이 멈칫한다.
45. 임시 숙소
들어서는 준혁. 굳은 얼굴로 어둠 속을 응시하며 스위치를 올린다.
실내가 밝아지면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혜린의 모습이 드러난다.
작은 침대와 간단한 집기들이 있는 작은 공간 한 켠에 커다란 짐가방이 보인다.
혜린 시시해. 도망쳐서 나온 데가 겨우 여기야?
준혁 (부드러운 어조) 내가 도망을 왜 치는데?
준혁을 돌아보는 혜린. 준혁, 안 쪽으로 들어오며 차를 끓이는 준비를 한다.
준혁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아버님이랑 얘기 된 거였어. 언제까지 너네 집에 있을 순 없잖아. 생각보다 집 구하는 것도 늦어지고, 회사 일도 많아서 아예 며칠 여기 있기로 한 거 야. 뭐할래? 녹차, 홍차, 커피.., 이게 단데. 아, 국화차도 있다.
혜린 미안해.
준혁 .....
혜린 그 날 내가 한 말..., 진심 아니었던 거 알지?
준혁 (가볍게 미소 짓는다.) 알아. 그런데 사과는 하지 마. 진심은 아니라도 사실이긴 하잖 아.
혜린 왜 말을 또 그렇게 하니?
준혁, 차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혜린을 바라본다.
준혁 .....나한테 너, 아주 소중한 사람이야. 너네 집에서 한 식구로 살면서..., 모두들 잘 해 주셨지만 그래도 네가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야. 제멋대로에 성질머린 고약할지 몰라도, 혜린이 너, 아주 괜찮은 애라는 거 알아.
혜린 .....
준혁 그런데 혜린아..., 우리 그냥 거기까지만 하자.
혜린 왜..., 오빠 그 자존심 땜에? 사람들 시선이 그렇게 중요해? 그런 거 잠깐이면...
준혁 나 지금 이 자리 지키고 싶어.
혜린 ?!
준혁 회장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 없어. 회장님 뜻 거슬렀다간 지금 내 인생도 끝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감정놀음에 다 무너뜨릴 순 없잖아. 겨우겨우 내 손에 쥐게 된 거, 여자 하나 땜에 잃고 싶지 않아.
혜린 !.....
준혁 이제 나란 놈 알겠지? 너 강하고 똑똑한 애야. 지금 잠깐 눈 감고 돌아서면 나 같은 거 금방 잊게 될 거야. ....늦었다, 이제 그만...
혜린 우리 같이 자.
준혁 !
혜린 그렇게 야망이 큰 사람이었어? 그럼 엄한 데 머리 쓰지 말고 날 이용해. 나, 팔레스 백화점 회장 외동딸이야. 아주 좋은 카드잖아. 오빠가 생각한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준혁 .....
혜린 (준혁에게 다가간다.) 나 무슨 일 있어도 끝까지 오빠 배신 안 해. 약속할께. 우리 애 라도 먼저 만들자. 떡하니 손주라도 안겨 드리면 아무리 아빠라도 어쩔 수 없어. 자식 이기는 부모 있니?
준혁 !
46. 창고
어두운 창고,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정신없이 잠들어 있던 은수, 잠에서 깨어난다.
정신이 들자 주변을 살펴보고 깜짝 놀라는 은수.
이미 벨소리가 멈춘 핸드폰을 본다. 지수한테 왔던 전화다.
시간은 10시를 지나고 있다. 당혹스럽다.
47. 동, 복도
창고에서 나오는 은수. 어두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복도 한 켠의 열린 문으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본다.
다가가는 은수.
48. 임시 숙소
혜린, 뜨거운 눈길로 준혁을 보며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혜린 얼마나 다행이야.., 내가 오빠 사랑하는 게.
준혁에게 입을 맞추는 혜린.
49. 동, 복도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고 화들짝 놀라며 벽에 몸을 붙이는 은수.
혜린은 등을 돌린 상태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준혁의 얼굴을 알아보고 더욱 놀라는데
50. 임시 숙소
입술을 떼는 혜린,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둘 푸는데, 이때 혜린의 손을 제지하듯 잡는 준혁. 혜린, 준혁을 본다.
준혁, 말없이 혜린의 나머지 단추들을 차례로 푼다.
긴장한 채 준혁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는 혜린.
준혁, 혜린의 블라우스를 젖히자 어깨가 드러난다.
혜린의 뺨과 목과 어깨를 천천히 어루만지는 준혁. 혜린, 준혁의 손길에 몸을 맡기는데
준혁 한 가지 중요한 걸 빠뜨렸어.
혜린 ?
준혁 너랑 내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진짜 이유.
혜린 !
준혁 이제 나..., 널 봐도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아.
혜린 !
모멸감과 절망감으로 싸늘하게 식는 혜린.
준혁, 그런 혜린을 무표정한 시선으로 일갈하고 성큼성큼 방을 나간다.
51. 동, 복도
급히 나오던 준혁,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은수와 그대로 마주친다.
준혁의 고통스런 시선과 은수와 놀란 시선이 마주치는데, 은수, 너무 놀라 말도 안나오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뭔가를 부정하듯 안타깝게 고개와 손을 내저을 뿐이다.
준혁, 말없이 그대로 지나쳐 간다.
은수, 어쩔 줄 몰라 하며 다시 방 안을 보는데, 주저앉아 있는 혜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52. 도로 / 버스 안
버스에 앉아 있는 은수. 심난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
앞 쪽에 앉은 다정한 커플들이 눈에 들어온다. 괜히 한숨이 나온다.
53. 버스 정류장 / 거리
버스에서 내리는 은수. 터벅터벅 걸어간다.
국밥집 앞을 지나는데 문득 허기를 느낀다.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국밥집을 기웃거리는데 이때
태주(e) 너 뭐하냐?
은수, 깜짝 놀라 돌아보면 태주다. 환해지는 은수의 얼굴.
은수 아저씨!
54. 국밥집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은수와 태주. 은수, 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태주 지금까지 잠자다 왔단 말야?
은수 (끄덕) 제가 어젯밤 한 숨도 못 잤잖아요. 하루 종일 졸려 죽는 줄 알았거든요... 아참,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태주 ?
은수 지수 퇴원도 시켜주시고, 밥까지 챙겨주셨다면서요?
태주 그 정도야, 뭐... (국밥을 먹는다.)
은수 (국밥을 먹으려다가 태주를 빤히 보며) 아저씨...
태주 ?
은수 애인이랑은 잘 지내세요?
태주 애인?
은수 그 때 뽀뽀한 사람이요...
태주 어, 걔? 시집갔어.
은수 (놀란) 그 새요?
태주 지금쯤 신혼여행 중일걸.
은수 아저씨 실연당한 거네요.
태주 응.
은수 와..., 이상하다.
태주 뭐가?
은수 하나도 안 슬퍼 보여요.
태주 한 두 번이냐. 이제 면역될 때도 됐지. 내가 감정처리가 좀 깔끔하거든.
은수 .....바람둥이세요?
태주 어떤 게 바람둥인데?
은수 이 여자 저 여자 막 사귀는 거요.
태주 난, 이 여자 다음 저 여자, 그 다음 또 다른 여자.., 그렇거든?
은수 그게 다른 건가요?
태주 알아서 생각해라.
은수 (진지한) 키스.., 많이 해보셨겠네요?
태주 !? 말이라고 하냐. (국밥 먹는다.)
은수 (한숨)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게 참 허무해요.
태주 (은수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뭐가?
은수 그렇게 좋아서 키스까지 하구선.., 왜 금방 헤어질까요? 아저씨 애인도 그렇고.., 아까 그 남자도 그렇구. 눈빛이 분명 싫은 건 아니었는데.
태주 ?
은수 (주변을 힐끗힐끗 살피며 비밀 얘기라도 하듯 몸을 낮춘다.) 제가요..,, 오늘 굉장한 걸 목격했거든요. 창고에서 잠 자다 나왔는데 사방이 깜깜한 거예요... 그런데..
태주 너 또 남들 키스하는 거 훔쳐봤지.
은수 허! 어떻게 알았어요?
태주 그때 내가 알아봤다... 주책 맞게 그런 걸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냐.
은수 내..내가 언제요? 눈 앞에서 하는 걸 어떡해요, 그럼?
태주 그거.., 남 사생활이야. 못 본 척 눈 돌려주는 예의는 있어야 할 거 아냐. 너 자꾸 그렇 게 훔쳐보는 거.., 그거 병이야. 관음증!... 참, 여자들한테 흔한 병 아닌데.., 너 그거 심해지면 병원 가야 돼.
은수 지..진짜요?
태주 하긴.., 그 나이 먹도록 못 해봤으니 남 하는 거라도 보고 싶긴 하겠다.
은수 무슨 소리예요, 이 아저씨가.
태주 너, 연애 한번도 못 해봤잖아.
은수 참 나..! 지금 내 나이가 몇인지 알아요?
태주 그럼 키스도 해봤어?
은수 다...당연하죠! 사람 무시하고 있어.
태주 다행이다. 21세기에 그 나이 먹도록 나비 한 마리 안 꼬였다면 그거 비참하지. 비극 인거지. 하마터면 눈물 날 뻔 했다, 야.
은수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난다.) 우리 그만 가죠!
55.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에 타는 태주와 은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은수 요즘..., 우리나라 말이에요. 급속도로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 같아요.
태주 이제서야?
은수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질 않는다니까요. 특히 남자들. 물건 파는데도 그 앞에 서 쪽쪽거리는 거 있죠? 참나, 여기가 미국이냐구요. 왜 그렇게 밝히는지 몰라.
태주 네가 뭔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남자들 키스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키스는 여자들이 더 밝히는 거야.
은수 뻥치지 마세요.
태주 얘가 남자를 모르네. 어렸을 때 잠깐 호기심으로 좋아할 순 있어. 하지만 나 정도 선 수 단계가 되면 남자들 그거 별로 흥미 없다. 그건 그냥 전초전일 뿐이거든. 남자들이 진짜로 좋아하는 건...
태주, 은수의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자 말문이 막힌다.
은수 남자들이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데요?
태주 그니까.., 좀 더 실질적인....(은수를 보고) 경험도 없는 애 데리고 뭔 소리냐. 관두자.
은수 저 경험 많아요.
태주 아, 그래. 너 경험 많아. 연애도 많이 했고, 키스도 많이 했어. 너 좋단 남자 저기 쫙 줄 서 있다. 됐지? 그만하자.
은수, 약 오르는데, 이때 엘리베이터가 흔들리면서 딱 멈추고 만다. 깜짝 놀라는 은수.
은수 어! 멈췄다!
태주 가끔 이래. 워낙 낡아서. 좀 있으면 움직일 거야.
은수 (버튼을 찾으며) 비..비상벨..
태주 그거 고장 났어.
은수 예?
이때,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가 좀 전보다 더 강하게 쿵하고 흔들거린다.
은수, 화들짝 놀라 ‘엄마야’하며 태주에게 달라붙는다.
은수 추락하나 봐요.
은수와 태주, 얼굴을 가까이 맞댄 상태다. 은수, 태주의 얼굴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왠지 이상한 기분에 화들짝 뒤로 물러선다.
태주 왜 그러냐?
은수 아..아니예요.
은수, 쑥쓰러운지 태주의 시선을 슬슬 피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태주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친다. 은수를 빤히 내려다보는 태주. 은수, 태주의 시선을 느끼고 괜히 어쩔 줄 몰라하다가 태주와 다시 시선이 마주친다.
긴장하는 은수, 시선을 피하는데 갑자기 은수의 허리를 감싸는 태주.
은수, 깜짝 놀라 태주를 본다.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숨이 막힌다.
은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는 태주. 은수, 올 것이 온 거 같다.
잔뜩 긴장한 듯 눈을 꼭 감고, 입술도 꼭 다무는 은수.
태주, 은수의 반응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장난스레 은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는 태주.
태주의 입술이 은수의 입술에 스치는데 은수는 여전히 입에 꼭 힘을 준 모습이다.
태주, 입술을 떼고 은수를 본다.
태주 야.., 입에 힘 좀 빼라.
은수, 태주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본다. 입은 여전히 힘을 준 채 꼭 다물고 있다.
태주 입술 풀라구.
은수 예?
말하는 바람에 은수의 입술이 열리는 순간, 은수에게 키스를 하는 태주.
은수,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곧 눈을 감고 태주의 키스에 빠져든다.
잠시 후, 입술을 떼는 태주, 은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뭔가 묘한 느낌이 드는데,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몸을 뗀다.
은수는 약간 넋이 나간 상태다.
태주 (은수를 힐끗 보고 장난스럽게) 너 키스해봤다는 거 뻥이지? 애가 겁도 없이 선수 앞 에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은수 재밌어요...
태주 ! ..뭐?
은수 재밌다구요.
태주 !! (기가 막힌)
은수 아저씨...
태주 ?
은수 (진지한 눈으로 태주를 보며) 우리 한 번 더 할래요?
황당한 듯 은수를 보는 태주, 진지하고 한편으로 비장하기까지한 은수의 눈빛에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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