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4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밤)
<3부 엔딩 연결>
은수, 쑥스러운지 태주의 시선을 슬슬 피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태주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친다. 은수를 빤히 내려다보는 태주. 은수, 태주의 시선을 느끼고 괜히 어쩔 줄 몰라하다가 태주와 다시 시선이 마주친다.
긴장하는 은수, 시선을 피하는데 갑자기 은수의 허리를 감싸는 태주.
은수, 깜짝 놀라 태주를 본다.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숨이 막힌다.
은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는 태주. 은수, 올 것이 온 거 같다.
잔뜩 긴장한 듯 눈을 꼭 감고, 입술도 꼭 다무는 은수.
태주, 은수의 반응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장난스레 은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는 태주.
태주의 입술이 은수의 입술에 스치는데 은수는 여전히 입에 꼭 힘을 준 모습이다.
태주, 입술을 떼고 은수를 본다.
태주 야.., 입에 힘 좀 빼라.
은수, 태주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본다. 입은 여전히 힘을 준 채 꼭 다물고 있다.
태주 입술 풀라구.
은수 예?
말하는 바람에 은수의 입술이 열리는 순간, 은수에게 키스를 하는 태주.
은수,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곧 눈을 감고 태주의 키스에 빠져든다.
잠시 후, 입술을 떼는 태주, 은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뭔가 묘한 느낌이 드는데,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몸을 뗀다.
은수는 약간 넋이 나간 상태다.
태주 (은수를 힐끗 보고 장난스럽게) 너 키스해봤다는 거 뻥이지? 애가 겁도 없이 선수 앞 에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은수 재밌어요...
태주 ! ..뭐?
은수 재밌다구요.
태주 !! (기가 막힌)
은수 아저씨...
태주 ?
은수 (진지한 눈으로 태주를 보며) 우리 한 번 더 할래요?
황당한 듯 은수를 보는 태주, 은수는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한 눈빛이다.
은수 (다그치듯) 예?
태주 ...(당황한 채 절레절레)...싫어...
은수 .....왜요?
태주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그냥 싫어!
순간, 움직이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태주, 예상치 못한 은수의 반응에 당황스럽다 못해 짜증이 치민다. 은수는 태주의 단호한 거절에 무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태주가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약간 겁먹은 듯한 얼굴로 태주의 뒤를 따르는 은수.
태주, 자신의 집 앞에 멈춰 서서 열쇠로 문을 여는데, 은수는 복도 한가운데에 망연히 서서 그런 태주를 바라보고만 있다. 서운함과 혼란이 가득한 은수의 얼굴은 길 잃은 아이마냥 안쓰럽다.
태주, 문을 열다가 힐끗 은수 쪽을 본다. 은수의 쓸쓸한 눈빛에 순간 멈칫하지만, 금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태주.
은수, 텅 빈 복도에 커다란 눈만 깜빡이며 멍하니 서 있다. 그래도 일생의 첫키슨데 서글프다.
태주 오피스텔
방에 들어와 신경질적으로 자켓을 벗고 넥타이를 푸는 태주.
태주 쟤, 뭐야? 저거 좀 덜 떨어진 거 아니야!
꽤 목이 탔던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태주 에이씨..., 왜 꼭 내가 당한 기분이지...!
오피스텔 옥상층 (아침)/ 쓰레기장
농구하는 태주.
동 옥상층
오피스텔 옥상에서 농구하는 태주, 땀을 닦는데 마침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은수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태주, 은수를 못 본 척 하며 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뒤늦게 태주를 돌아본 은수, 화들짝 놀라 ‘어, 저...저기요...’하며 아는 척 하려는데 태주는 이미 오피스텔로 들어간 뒤다.
은수, 태주를 쫓아가고 싶은 마음에 헐레벌떡 쓰레기를 버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옥상 층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에 타는 태주. 이때 은수가 복도로 들어선다.
막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와 버튼을 누르는 은수.
문이 열리자 은수와 태주의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어색하게 목례하려는데 태주는 순간적으로 외면하고 만다. 무안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은수.
엘리베이터 안
나란히 서 있는 은수와 태주.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태주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거울을 들여다보는 등 딴청을 부리고 있고, 은수는 그런 태주의 태도에 점점 화가 치민다.
고개 돌려 태주를 확 째려보는 은수. 태주, 거울 속으로 은수를 보고 당황해서 돌아보는데
은수 (버럭) 왜 화를 내고 난리예요! 내가 뭘 어쨌다구!
태주 (갑작스런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은수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뭘 어쨌다고 아저씨가 화를 내요!
태주 내가 무슨 화를 냈다 그래?
은수 지금 내고 있잖아요!
태주 얘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지금 소리치고 있는 거 너거든!
은수 사람 봐도 못 본 척 하고, 인사해도 모른 척 하고..., 그거 화내는 거 아니예요?
태주 (능청스럽게 우기는) 인사 했어! 아까 고개 끄덕이는 거 못 봤냐?
은수 .....키스는 아저씨가 한 거잖아요.
태주 !
은수 아저씨가 저질러 놓구 왜 아저씨가 꽁하는 건데요?
태주 (할 말이 궁하자 외면한다.)
은수 왜 암말도 안 해요?
태주 뭘?
은수 왜 꽁하고 있냐구요?
태주 나 하나도 안 꽁해! 뭘 꽁해?
은수, 태주를 찬찬히 노려본다. 태주, 은수의 시선을 피한다.
은수 왜 그랬어요?
태주 ?
은수 키스.., 왜 한 거예요?
태주 .....(은수 본다.)
은수 (비장한) 나, 좋아하세요?
태주 (기가 막히다는 시선으로 은수를 본다.) 너, 너무 무리한다. 그러지 마. 정신건강에 안 좋아.
엘리베이터 문이 내리고 태주, 내린다.
동, 복도
태주를 따라 내리는 은수, 태주를 졸졸 따라간다.
은수 왜 그런 건데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예요. 그런 거 그냥 아무한테나 막 하는 거 아니 잖아요?
태주 (걸음을 멈추고 은수를 본다.)
은수 (야무진 시선으로 태주를 본다.)
태주 정말 몰라?
은수 몰라요.
태주 너 한번도 못해봤잖아. 해보지도 못한 주제에 해봤다고 박박 우기는데, 안쓰러워 눈 뜨고 볼 수가 있어야지. 내가 그런덴 또 마음이 약하거든.
은수 ! ....그래서요?
태주 불쌍한 너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너한테 미지의 세상을 열 어준 거지, 됐냐? (돌아서려는데)
은수 그러니까..., 장난친 거예요?
태주 뭐 또 그렇게까지..., 그냥 순수한 동정심이라고 해두자. (피식 웃는다.)
은수, 얄밉게 웃는 태주를 야속한 듯 보다가 말없이 돌아선다. 어깨가 축 쳐져 있다. 태주, 맘에 걸리는 듯 은수의 뒷모습을 보다가
태주 어차피 너도 좋았잖아. 한 번 더 하고 싶다며, 그런 거 보면 어지간히 좋았던 거 아냐, 너도.
은수 (분노로 입을 앙다물며 걸어간다.)
태주 운 좋은 줄 알아. 한방에 그렇게 뿅 가게 하는 거, 그거 아무 놈이나 못하는 짓이거든. 나나 되니까 그렇게 단박에...
태주가 말을 이을 사이도 없이 은수, 돌아서서 태주를 향해 돌진하여 태주의 가슴에 퍽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박는다.
비틀거리며 가슴을 움켜쥐는 태주, 아픔보다는 놀람이 더 크다.
태주 너 미쳤어?
은수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노려보며) 나쁜 놈!
은수, 돌아서 간다. 태주, 황당한 듯 은수를 보며
태주 저..저게..., 대가리에 벽돌을 박았나., 으으..아프다....!
지수 오피스텔
지수, 밥을 푸다가 주걱을 들고 밥알을 살펴본다. 몇알을 먹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밥통을 휘젓는다. 설익은 듯 전혀 찰기가 없다. 끓고 있는 국을 맛본다. 맛이 이상한지 조미료를 넣고 다시 맛을 본다. 영 맛이 아니다. 지수, 불만스런 얼굴로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구석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기계적으로 쓱쓱 닦고 있다. 국자를 든 채 은수에게 다가가는 지수.
지수 뭐가 그렇게 서럽냐. 지단 박치기로 날려줬다며. 응징했으면 된 거 아냐.
은수 .....(울기만)
지수 아, 그만 좀 울어!
은수 우는 거 아니야. 그냥 눈에서 물이 나는 거 뿐이야.
지수 어쩌다 고렇게 요상한 증상이 생겼을까나...
은수 (신경질적으로 눈물 쓱쓱 닦으며) 아, 왜 안 멈추는 거야, 신경질 나 죽겠어, 진짜!
지수, 한심하다는 듯 은수를 보다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더니 입술을 쭉 내밀고 은수의 입에 입을 맞춘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은수.
은수 야, 뭐하는 거야!
지수 (인상 쓰며 손으로 입을 쓱 문지른다.) 아, 거 기분 대따 불쾌하네!
은수 ?
지수 피를 나눈 자매도 이렇게 찝찝한 짓을 생판 모르는 남이 단지 장난(강조)으로 했다 구? 그게 말이 돼?
은수 !? 뭐?
지수 단순히 입술만 부딪힌 것도 아니라며. 설왕설래...(역겹다는 듯) 어후..., 미치지 않고 서야 그게 장난으로 할 짓이라고 생각하냐?
은수 무슨 소리야?
지수 그 남자, 튕기는 거야!
은수 !
지수 너, 희망이 있는 거라구. 맘이 있으니까 입을 맞추고, 맘이 있으니까 튕기는 거지.
은수 헛소리 하지 마.
지수 (설득하는) 내가 말 안했는데, 그 아저씨 이미 우리 집 호구조사까지 다 끝냈어. 날 붙잡고 귀찮을 정도로 꼬치꼬치 묻더라니까? 관심 없으면 그랬겠어?
은수 거짓말.
지수 정말.
은수 !
지수 나 똑똑한 거 알지? 승산 있어, 분명히!
은수 .....(곰곰히 생각하는)
지수 튕기는 거야, 그 인간 인물값 하는 거구, 그 인물에 그 까탈, 애교로 봐줘야지. 사실 네 처지에 그 정도 꽃미남 감지덕지잖아.
은수 내 처지가 어때서?
지수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 끄덕이며 위로하듯 은수의 어깨를 두드린다.) ..... 어쨌든 용 감한 자만이 미남을 쟁취할 수 있다! 알지? 밀어붙이는 거야, 기냥!
은수 (영 헷갈린다.)
지수 고민 끝났으면, (국자 내밀며) 국 간 좀 볼래? 배고파 죽겄다!
은수 !?
창공 / 준혁의 비행기 안 (이른 아침)
하늘을 가르는 경비행기. 준혁이 비행 중이다.
준혁, 간밤의 일을 떠올린다.
<인터컷>
혜린을 애무하다가 멈추는 준혁.
준혁 이제 나..., 널 봐도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아.
그때 당시 혜린의 모멸감 어린 표정을 떠올리는 준혁의 마음도 어둡다.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조종대를 잡는 준혁.
하늘을 나는 준혁의 비행기와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풍경들.
팔레스 백화점 매장
전화통화를 하며 매장에 들어서는 태주,
반대편에서는 은수가 물품을 들고 오고 있다.
태주 어, 지금 도착했어. 준비는? 알았어. 금방 올라갈께.
태주가 전화를 끊는 순간 은수와 태주, 좁은 통로에서 딱 마주치고 만다. 뜻밖의 마주침에 당황하는 두 사람.
아침의 일 때문에 껄끄러운 듯 태주, 시선을 돌리며 그냥 지나가려는데 두 사람, 한번 두 번 거푸 세 번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결국 서로 마주하고 만다.
은수, 먼저 용기 내어 말을 꺼낸다.
은수 아저씨...
태주 (본다.)
태주 여긴 웬 일이세요?
태주 (퉁명스런) 볼 일 보러! (가려는데)
은수 저..저기...
태주 ?
은수 아침에..., 욕해서 죄송해요.....욕까지 하는 건 아니었는데...
태주 (약간 누그러진) 알면 됐고... 넌, 여기서 일해?
은수 네, 그런데 아저씬 무슨 일로...
이때 갑자기 뭔가를 본 듯 화들짝 놀라는 은수, 냅다 태주의 옷깃을 움켜쥐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민다.
태주 (당황한) 야, 야, 뭐하는 거야!
은수 (애원하는) 아저씨, 잠깐만요. 제발이요.
은수, 태주의 어깨 너머를 본다. 준혁의 모습이 보인다. 직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고, 그들의 설명을 듣기도 하는 준혁. 준혁이 지날 때마다 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매장 직원들.
백화점 직원, 그것도 꽤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준혁의 모습에 은수는 당황스럽다.
태주 (은수를 떼어내려 애쓰며) 이거 놔, 안 놔?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은수 잠깐이면 돼요. 잠깐만.... 만나면 절대 안돼거든요.
태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은수, 준혁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화들짝 놀라 태주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태주의 만류에도 은수는 필사적으로 붙어 있다.
준혁, 무심히 태주네 쪽을 힐끗 보고는 그냥 지나쳐간다.
고개 들어 준혁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는 은수. 바로 이때 태주가 거칠게 은수를 떼어낸다. 태주, 구겨진 옷깃을 툭툭 치면서 질렸다는 듯 은수를 본다.
태주 난, 이제 네가 무섭다! (돌아서 간다.)
은수 아..아저..
안타까운 눈길로 가는 태주를 보는 은수.
동, 이벤트 홀 대기실
메이크업 중인 모델들의 분주한 모습들.
한 켠에서 화장품 회사 직원과 대화 중인 태주, 대화를 마치고 목례하고 나간다.
동, 이벤트 홀
쇼가 시작될 시간이 임박한 듯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이고 있고, 완전히 세팅이 끝난 무대에서는 호영이 마이크를 시험하고 있다. 홀에 들어선 태주, 스탭 몇 명에게 뭔가 지시를 하고, 호영에게 다가간다.
이때 막 준혁을 포함한 백화점 관계자들이 들어선다.
호영 (태주가 다가오자) 아, 사람 긴장하게 만드네. 별 큰 행사도 아닌데 백화점 애들까지 들이닥치고 난리다.
태주 (호영 말에 관심 없다. 시계 보며) 곧 시작이야. 정리 다 된 거지?
이때, 스텝이 헐레벌떡 다가온다.
스텝 팩모델 한명 안왔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호영 ! 뭐? (태주 보며) 모델 확인 안했어?
태주 했는데, 방금. (스텝에게) 거기 5명 없어요?
스텝 6명 필요한 거 아니예요?
태주 ! 5종세트 아니었어?
호영 이 자식아, 정신 어따 두고 다니는 거야? 6종세트잖아, 천연팩 6종! (무대 보며) 이제 곧 시작인데. 아, 클났네.
태주 (핸드폰의 전화번호 찾으며) 아, 흥분 좀 하지 마! 애 하나 더 보내달라면 될 거 아냐!
핸드폰을 누르고 귀에 대는 태주. 하지만 상대방의 응답이 없다.
호영 안 받어? 야, 쟤네들 알아 봐. 우리 끝장이야!
태주 (다른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조용히 좀 해라! 세상 끝나냐!
홀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조명이 켜진다. 웅성이던 주변, 조용해지고 대형스크린에 광고화면과 함께 음악이 흐른다.
호영 어떡하냐, 이거. 내가 서야 되는 거 아냐...
초조하게 전화기를 들고 있던 태주, 갑자기 시계를 보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급히 홀을 나간다. 그런 태주를 망연히 보는 호영.
동, 매장 / 에스컬레이터 근처 속옷 매장
매장을 뛰어 다니며 판매원들을 둘러보는 태주.
한 판매원을 붙잡고 은수 복장의 특징(머리띠나 각종 악세서리)을 손짓으로 설명하는 태주, 태주에게 뭐라 알려주는 판매원.
급히 뛰어가는 태주.
동, 행사장 / 속옷 특설 행사 대매장
행사장에 들어서는 태주. 은수와 비슷한 복장을 한 판매원들을 둘러보며 은수를 찾는다.
손님에게 막 물건을 내주는 은수.
은수 예쁘게 입으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이때, 숨을 헐떡이며 은수 앞에 다가서는 태주. 은수, 깜짝 놀라 본다.
은수 아저씨!
태주 (숨 헐떡이는)
은수 웬일이세요?
이때, 옆에 있던 동료, 은수에게 다가와
동료 나 먼저 먹고 올께. (지갑을 챙긴다.)
은수 네.
태주 넌 언제야, 점심?
은수 ...한시 반인데요. 왜요?
태주 (막 가려는 동료를 붙잡는다.) 오늘 점심은 이따 한시 반에 하시죠.
동료 네?
태주, 뭐라 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은수의 손을 잡아끌고 간다.
동, 백화점 일각
은수, 태주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멈추려하지만 힘이 역부족이다.
은수 이거 놔요, 왜 이래요, 아저씨.., 아저씨!
은수, 기둥(또는 기타 잡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 팔로 기둥을 꼭 감싼다. 은수가 끌려오지 않자 걸음을 멈추는 태주,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설명을 해야 될 거 아녜요.
태주 시간 없거든. (은수의 손을 끌며) 가면서 얘기하자.
은수, 태주의 손을 뿌리치며 양 팔로 기둥을 꼭 끌어안는다.
은수의 단호한 모습에 태주, 할 수 없다는 듯
태주 30분에 3만원.
은수 !?
태주 세상에 이런 고수익 알바가 어딨냐, 그래도 이웃사촌이라고 생각해서 구해준 거니까 고마운 줄 알고 가! (은수의 팔을 끌고 가려는데)
은수 (안타까운) 정말로 고맙긴 한데요, 저 할 수가 없는데요....
태주 뭐?
은수 아무리 돈도 좋지만 아까 그 언니요... 무지 황당하고 화났을 거예요. 미리 양해도 안 구하고 그렇게 갑자기.., 사람 예의가 그게 아니잖아요.
태주 야...
은수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셨는데, 정말 죄송해요. 저도 꼭 하고 싶은데.., 가야되거든요. (급히 서두르며) 안녕히 가세요.
태주, 가려는 은수를 막아선다. 은수, 의아한 듯 본다.
태주 웬만하면 그냥 하지 그래. 1시간도 아니고 30분에 3만원이라니까. 아깝잖아.
은수 첨부터 없던 돈인데 아까울 게 뭐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양보할께요.
태주 (버럭) 야, 그냥 순순히 좀 해라!
은수 (놀라 본다.)
태주 (누그러진 어조로) 지금 막 쇼가 시작인데, 모델 한 사람이 비었어. 아주 급해. 그래 서... 내가 좀 곤란하거든.
은수 저 땜에 일부러 신경 쓴거라면서요...
태주 ...부탁할께. 좀 도와줘. 3만원 적으면 5만원 줄께.
은수 .....
태주 7만원 .......(은수 반응 없자 결심한 듯) 10만원 쏜다!
은수 저녁 사주세요.
태주 !?
은수 아저씨가 나..., 오늘 저녁 사주라구요,... 그럼 할께요.
은수, 긴장한 시선으로 태주를 본다. 태주, 은수를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태주 알았어! (은수 팔목 잡고 뛰는데)
은수 (뛰어가며) 먼저 약속부터 정해야죠!
태주 퇴근 후, 백화점 정문 앞! 늦었어! 빨리 뛰어!
태주와 은수, 급히 뛰어간다. 은수, 내심 신났다.
동, 이벤트 홀
무대에만 조명이 켜진 채 쇼가 진행되고 있다. 대형 모니터로 무대에 있는 사회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사회자 자, 다음은 퓨어스킨 최고의 야심작, 천연퓨어팩! 철저하게 유통기한제로 시판될 이 제품은 전문 피부샾에서 한 시간 동안 받는 마사지와 동일한 효과를 단 20분으로 경 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입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진행되는 동안 은수를 포함한 여섯명의 팩 시범 모델들이 미용가운을 걸치고 무대 한 켠에 등장한다.
긴장한 은수,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는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데, 문득 맨 앞 귀빈석에 앉은 준혁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다. 어쩔 줄 몰라하며 급히 시선을 내리는 은수.
사회자 지금 이 앞에 여섯명의 모델이 나와 계신데요, 앞으로 20분 후, 팩을 도포한 얼굴면 과 도포하지 않은 얼굴면의 차이를 여러분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 다!
사회자가 진행하는 동안 무대 위의 여섯 명의 모델(은수 포함) 얼굴에 팩이 발라진다. 얼굴 한쪽면 절반 부분만 바른다. 모델들에게 차례로 조명이 비춰진다.
카달로그를 만지작거리며 무료한 듯 무대를 보던 준혁, 은수의 얼굴에 조명이 비춰지는 순간 준혁이 멈칫한다. 은수, 준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시선을 얼른 피한다.
홀 뒤쪽 구석에 서서 무대를 보고 있는 태주, 잠시 후 호영이 다가와 태주 옆에 선다.
호영 누구냐, 쟨?
태주 이웃사촌.
호영 (태주를 본다.)
태주 왜?
호영 아니.., 이웃사촌치곤 꽤 귀여워서...
무대의 조명이 바뀌면서 메이크업 쇼를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진다.
사회자 자, 퓨어팩의 효과를 기다리는 동안 막간을 이용한 메이크업 쇼가 이어지겠습니다.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색감과 올봄 유행하게 될 메이크업 팁을 경험할 수 있는 시 간이죠. 자, 시작합니다!
음악과 함께 메이크업쇼가 진행된다. (팩모델들을 비추던 조명은 꺼진 상태다.)
다양한 분위기로 메이크업한 모델들이 무대에 나와 선을 보이고 있다.
모델들에 맞춰 최근 메이크업 동향을 설명하는 사회자의 멘트가 깔린다. (차후 추가)
호영, 화려한 모델들 모습을 넋이 빠져 보고 있는데, 태주는 은수가 신경이 쓰이는 듯 자꾸 팩모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무심한 얼굴로 무대를 보던 준혁, 문득 시선을 돌리다가 은수를 본다.
은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는 준혁.
은수,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듯 발을 꼬무락거리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다. 한편, 태주도 은수의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챈다.
태주 쟤 왜 저래? 쟤 좀 이상하지 않아?
호영 (여전히 모델들에게 시선 향한 채) 뭐가, 잘만 하고 있는데, 얼굴, 몸매 아주 훌륭하구 만.
안되겠는지 재빨리 무대 쪽으로 가는 태주.
아무렇지 않은 듯 모델들 주변을 서성이다가 은수에게 다가간다.
태주 (낮게) 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은수 !..아..아저씨!
태주 돌아보지 마! ...무슨 문제 있어?
은수 아파요.., 얼굴이.., 따가워 죽겠어요....
태주, 사람들 눈치 채지 않게 은수의 팩을 살짝 뜯어본다. 표정이 변하는 태주.
태주 조용히 일어나서 따라 나와.
은수 ! 네?
태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태주, 천천히 걸어간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은수, 태주 말대로 조용히 일어나 태주를 뒤따라 걸어간다. 그들 모습을 보는 준혁. (태주는 조명 밖 어두운 곳에 있어 얼굴이 잘보이지 않는다.)
동, 복도 / 작은 분장실
복도로 나오는 태주와 은수.
태주, 나오자마자 은수를 거칠게 끌고 구석으로 간다.
은수를 벽에 밀치는 태주. 은수, 태주의 기세에 깜짝 놀라는데, 재빨리 은수의 얼굴 팩을 뜯어내는 태주.
밝은 곳에서 보니 은수의 한쪽 얼굴은 말이 아니다. 얼굴 가득 붉은 반점이 가득하고 부어 올라 있다. 기가 막히는 태주.
태주 이 지경 되도록 참고 있었냐?
은수 왜..., 왜요? 이상해요? 예?
태주 (화가 치미는) 너!
은수 ?
태주 너 바보야? 아니면 이 행사 완전히 망치려구 일부러 작정한 거야?
은수 !
태주 저기 사람들이 이 꼴 봤으면 어떻게 됐겠어! 누가 이 화장품 사서 쓰고 싶겠냐구!
은수 .....
태주 네가 지금 무슨 짓 한 건지 알아? 화장품 회사 하나 완전히 말아 먹을 뻔 했어. 신상 품이고 뭐고 다 날아갈 뻔...
은수 그냥 자리에만 꼭 붙어 있으면 된다구,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태주 너 머리 없어? 그렇게 상황판단이 안돼? 앉아 있으랬다고 그 꼴 되도록 앉아있는 바 보가 어딨어!
은수 내 얼굴이 어떤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지금도 모르겠는데. 원래 그렇게 아픈 건 줄 알았어요. 참고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구요.
태주 참을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참아!
은수 아저씨 곤란해질까봐 그런 거예요! (참았던 눈물이 뚝 떨어진다.)
태주 !
은수 (울먹이며) 도와달라면서요? 중요한 일이라구..., 그래서 난 그냥... 아저씨 도와주려 고..., 아파도 꾹 참고 있었단 말예요!
태주 .....(버럭) 야, 왜 울어, 얼굴 덧나잖아!
은수 일부러 아저씨 일 망치려고 그런 거 아니예요.
태주 누가 일부러 그랬대!
은수 방금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태주 야, 울지 말라니까!
은수 (버럭) 아, 눈물이 나는 걸 날더러 어쩌라구요!
태주 얼굴 망치려고 아주 환장했구만. (손수건을 꺼내 은수 얼굴에 가져가는데)
은수 (거칠게 태주의 손을 밀치며 노려본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 얼굴도 아니잖아 요!
태주 !
은수 (꾸벅) 죄송합니다. 일 망쳐 드려서.
은수, 돌아서 간다. 태주, 가는 은수를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동, 화장실
세수하는 은수.
은수 도와달랄 땐 언제고...., 성질부리고 난리야, 내가 뭐 일부러 그랬나?
고개 들어 거울을 본다. 한 쪽 얼굴이 엉망이 된 것을 보니 속상하다.
은수, 덧난 쪽을 한 손으로 가린다. 다시 성한 쪽을 가려본다. 번갈아 해보다가 한숨을 푹 쉰다. 거칠게 미용가운을 벗다가
은수 (걱정스런) 괜히 화냈나, 좀 참을 걸..... 그래두 약속은 지키겠지?
모델 에이전시
단순한 조명 아래 모델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시범워킹하고 있다.
무대 아래에는 혜린과 나경이 심각한 얼굴로 모델들을 지켜보고 있다.
잠시 후, 워킹이 끝난 후 음악소리 멈추고 불이 켜진다.
나경, 혜린을 본다.
나경 어때? 신인들 치고 꽤 괜찮지?
혜린 신인치고 괜찮은 거, 나 딱 질색인데. 변명처럼 들려. 실력 없는 초짜들을 위한 변명.
나경 무슨 말이니? 내가 직접 고른 애들이야, 얘. 널 위해서 특별히.
혜린 다른 건 몰라도 시선 처리 어색한 건 용서가 안돼. 신경 써 준 건 고마운데, 이번 건 정말 아니다, 언니.
나경 .....
혜린 (옷과 가방 등을 챙기며 일어선다.) 내일 한 번 더 오디션 볼께. 그 때도 이 정도 수준 이면, 나, 언니한테 일 못 맡겨.
나경 얘, 혜린아.
혜린 내일 봐, 그럼.
나가는 혜린. 나경, 기가 막힌다.
혜린의 부띠끄 / 회의실
태주, 김실장, 혜린, 그 외 두세명의 사람들이 회의석상에 앉아 있다.
몹시 굳은 얼굴로 기획서를 보고 있는 혜린, 잠시 후 고개를 들어 좌중을 본다.
태주를 제외한 직원들, 혜린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챈 듯 긴장한 표정이다.
혜린 강태주씨, 우리가 그 쪽한테 의뢰한 건 패션쇼 기획안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태주 네, 특히 브랜드 홍보를 중점으로 해달라는 요구였죠.
혜린 .....나와 팔레스 백화점의 관계는 어떻게 알았죠?
태주 비밀인가요?
혜린 .....(태주를 노려본다.) 그러니까 요지는 내가 재벌가 사람이라는 걸 내세워서 사람들 의 관심을 끌어 모아라, 그거네요?
태주 재벌 2세라면 다들 관심 집중이니까요. 사장님에 대한 정보를 조금만 흘려도 언론은 알아서 달려들 거고, 패션쇼는 자연스레 홍보가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샤샤’라는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각인될 거구요.
혜린 .....
태주 미모의 재벌2세 디자이너 차혜린, 그 자체가 흥행성이 높으니까 그것을 최대한 이용 하자 그겁니다. 이보다 더 좋은 브랜드 마케팅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혜린 김실장님.
김실장 !? 네, 사장님.
혜린 제이엔에 연락해서 미팅날짜 잡으세요.
김실장 ! 네?...(난감한 눈으로 태주를 본다.)
혜린 강태주씨, 서로 시간 낭비만 한 거 같네요. 우리랑 마인드가 너무 다르니 어쩔 수 없 죠. 이번 일은 다른 업체한테 맡겨야겠어요. (서류 정리한다.)
태주 !! 뭐요? 지금 와서 업체를 바꾼다구요?
혜린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은 해드릴께요.
태주 이런 경우가 어딨습니까?
혜린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보고 얼굴마담 돼서 신작로 나가 춤추라구요? 난 그렇게 천박하고 치졸한 놀음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혜린, 나간다. 부아가 치미는 태주.
직원들, 어색한 분위기로 서로 눈치를 보며 서류 등을 챙기는데 태주, 벌떡 일어나 나간다.
동, 주차장 (밤)
나오는 혜린. 차에 탄다. 시동을 거는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리고 태주가 올라탄다. 화들짝 놀라는 혜린, 태주임을 알아보자 화가 치민다.
혜린 뭐하는 짓이에요!
태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뭘 얼마나 고고한 방법으로 사람들 주머니를 털려구 요? 재벌 2세가 됐든 뭐가 됐든 결국 다 같은 장사꾼 아닙니까?
혜린 내려요.
태주 싫어요. (안전벨트 맨다)
혜린 정말 이럴 거예요?
태주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 방법 아니면 얘기할 기회 없을 거 아니예요?
혜린 (거칠게 차를 출발 시킨다.)
태주 어디 가는 겁니까?
혜린 경찰서요. 경찰이 끌어내면 내리겠죠.
태주 뭣하러 공권력 낭비합니까? 얘기 끝나면 있으라고 해도 그냥 내릴 거예요. 그만 빡하 게 굴죠, 좀!
혜린 .....
도로 / 혜린의 차 / **대교
태주 도저히 이해가 안가요. 바로 눈 앞에 쉬운 길이 있는데 왜 굳이 딴 길로 가겠다는 거예요?
혜린 난 디자이너예요. 내가 만든 옷으로 승부하고 싶지 내 배경 이용해서 성공을 사는 짓 따윈 하고 싶지 않아요.
태주 .....참 나! 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허영입니까?
혜린 !
태주 이미 당신은 실력이 아니라 배경을 이용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보통 사람 같으 면 실밥 뜯고 가위질이나 하고 있을 시간에, 첨부터 디자이너로 시작한 거 맞죠?
혜린 .....!
태주 (혼잣말 하듯) 돈 많은 아버지가 부띠끄 하나 떡하니 차려주니까 가능한 일이지... 근 데 왜 이제 와서 배경 따윈 이용하기 싫다는 거야..
화가 치민 혜린, 거칠게 차선을 바꾸며 차를 갓길에 세운다.
태주를 노려보는데, 태주, 전혀 굴하지 않고
태주 다 가진 사람은 그깟 허영심 같은 거 안 키워도 될텐데,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혜린 글쎄요. 돈 많은 유한마담 섹스 파트너라면 그 심정 이해할 만도 할 텐데요.
태주 ! .....(불쾌하지만 억누른다.) 나 좋아해요?
혜린 (기가 막힌) 뭐요?
태주 아니면 사생활 공격 좀 그만 하죠. 지겹거든요. 게다가 왜 엉뚱하게 왜곡하고 부풀리 기까지 합니까.
혜린 당신은 내 앞에서 허영심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태주 알았어요. 안해요!
혜린 얘기 다 끝났나요?
태주 있어도 이제 하기 싫어요.
혜린 내려요, 그럼.
태주 (안전벨트 풀다가) 역시 온실 속에서 예쁘게 잘 자란 공주님이에요, 차혜린씨.
혜린 ?
태주 현실감 없는 당신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죠. 집안 도움 없이 정말로 실력으 로 성공했단 말 듣고 싶으면 쓸데없는 허영에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다 벗고 뛰어요. 배경이 됐든, 실력이 됐든, 외모가 됐든, 당신이 팔 수 있는 모든 걸 다 팔라구요.
알았어요?
혜린 !.....
태주, 차에서 내린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보는 태주의 안색이 변한다. 까마득하게 긴 대교의 중간지점인 것.
혜린의 차를 돌아보는데, 그 순간 쌩하고 떠나 버린다.
태주 아씨, 다리나 좀 건너고 내려주지!
난감하지만 방법이 없다.
강바람에 몹시 추운 듯 깃을 세우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조깅하듯 뛰기 시작하는 태주.
태주 인정머리 없기는. 가다 펑크나 나라. 아예 전봇댈 들이 받아라! .....아! 춥다!
태주, 속력을 내어 뛰어 간다.
몽타쥬 (밤)
- 혜린의 차 안 :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긴 채 운전하는 혜린.
- 도로 : 택시를 잡느라 우왕좌왕하는 태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자 짜증스럽다.
- 백화점 앞 / 준혁의 차 안 : 폐점한 백화점 대형 쇼윈도우 앞에서 추위에 떨며 서성이고 있는 은수. 무료한지 바닥의 금을 보며 혼자 땅금밟기를 하며 펄쩍펄쩍 뛴다.
차를 몰고 백화점을 빠져나가던 준혁, 신호에 걸려 있다가 은수를 발견한다.
펄쩍펄쩍 뛰다가 이내 지쳤는지 계단으로 가 힘없이 주저앉는 은수. 그런 은수를 무심히 보다가 차를 출발시키는 준혁. 은수, 기대어린 표정은 간데없고, 멍하니 지친 표정이다.
도로 / 택시 안
택시 안의 태주. 피곤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있다가
태주 저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태주의 오피스텔 앞
택시에서 내리는 태주. 이때, 귀가하던 지수가 태주를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지수 어라!
태주 (돌아본다.) 지금 오냐?
지수 우리 언니는요?
태주 (돌아서려다가 멈칫한다.) ? 언니?
지수 데이트 한다고 전화 왔던데..., 우리 은수 어따 버리고 왔어요?
태주 !? (아차 싶다)
도로 / 버스 안
시무룩한 얼굴로 버스에 앉아 있는 은수.
잠시 후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귀찮은 듯 핸드폰을 꺼낸다. 모르는 번호가 떠 있다.
은수 여보세요. !! (의아한) 아저씨? .....(퉁명스런) 버스 안이요. 집에 가고 있는데요......근 데 내 전화번혼 어떻게.....
은수, 전화가 끊겼는지 황당한 얼굴로 전화를 내려놓는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은수. 잠시 후 전화기를 본다.
전화기를 들어 최근 수신 번호를 보는 은수,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망설이다가 저장 버튼을 누른다. ‘강태주’라고 입력하는 은수.
어느 덧 은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오른다.
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내리는 은수. 몇 걸음 가다가 멈칫한다. 태주가 있는 것.
은수 어!
태주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쏘다니냐? 설마 지금까지 나 기다리다 온 건 아니 지?
은수 .....(기가 막힌 듯 태주를 본다.)
태주 (은수의 얼굴 보고) 어? 많이 괜찮아졌네. (은수 얼굴에 손을 대며) 어떻게 했냐?
은수 (화난 듯 태주의 손을 뿌리치며 앞장서 걸어간다.)
태주 (은수 따라가며)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야, 너 인내심 진짜 대단하다!
은수 .....
태주 (은수 따라 걸으며) 나 오늘 진짜 최악이었거든. 하는 일마다 다 꼬여가지고 정신 하 나도 없었어.
은수 .....
태주 야, 어쩌다 잊어버릴 수도 있지, 뭘 그러냐?
은수 (치미는 얼굴로 본다.)
태주 너 그 백화점 팩마사지 사건, 그 책임 내가 다 썼지. 패션쇼 하나 맡은 것도 완전히 날아가게 생겼지. 나 지금 제정신 붙어 있는 것도 아주 용한 거야.
은수 .....
태주 (은수를 멈춰 세우며) 야, 이렇게 기다린 거 보면 몰라?
은수 .....
태주 미안하다구... 근데 나도 너 기다리느라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거든?
은수 (잠시 태주를 보다가) 나, 배고파요.
국밥집
은수가 잔에 술을 따른다.
태주의 잔에 혼자 잔을 부딪치고는 원샷하는 은수.
태주 정말 좀 하나 보네. (은수의 빈 잔을 채워준다.)
은수 왜 키스했어요?
태주 ! 또 그 소리냐? 이미 끝난 얘기 왜 또?
은수 이유가 진짜로 궁금해서요. 어떻게 그런 걸...., 장난으로 해요? 그게 말이 돼요?
태주 (국밥 먹으며) 세상에 안 될 일이 뭐 있어.
은수 (주변을 살펴보더니 구석에 앉은 젊은 여자를 발견한다.) 증명해 보세요.
태주 ?
은수 저 여자요...., 장난으로 할 수 있다면서요.
태주 멀쩡한 사람 미친놈 만들래?
은수 저한텐 왜 미친놈이 됐는데요?
태주 !....., 제발 그만하자.
은수 (소주를 마신다. 잔을 내려놓고) 제가요..., 원래 성격이, 속에 있는 거 다 말해버려야 되는 그런 성격이거든요.
태주 그거라면 이미 질릴 만큼 잘 알고 있거든.
은수 우리 사귀죠.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사귀어요. 나랑.
태주 (소주를 마신다.) 너, 키스해줄 남자가 궁한가 본데.., 그런 건 다른데 가서 알아볼래?
은수 (생각에 잠긴다.)
태주 (꽤 오래 말이 없는 은수를 살핀다.) 야..야...뭐해? (은수 반응 없자 탁자 치며) 워!
은수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 말고는 키스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태주 ! ....너랑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은수 네.
태주 그건 네 생각이지.. 넌 말야.., 내 타입에서 멀어도 너무 멀어. 여러 가지 조건도 그렇 고 생긴 것도 그렇고, 성격까지 별나잖냐.
은수 .....
태주 연애는 어울리는 사람끼리, 감정이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거든.
은수 (울컥하지만 참고) 그런데 키스는 왜 했어요?
태주 또 그 소리!...., 미안하다, 내 실수다. 다시는 안 그럴께! 됐냐?
은수, 벌떡 일어나 나간다.
태주 애 참 골 때리네. (술을 따라 마신다.)
골목길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은수. 화가 난 듯 뚱한 얼굴이다.
걸음을 멈추고 망연히 서 있는 은수.
은수 미친놈.
순간 은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혜린의 부띠끄 작업실
완성된 의상을 정리하고, 마네킹의 옷을 가봉하는 등의 작업을 하는 혜린과 김실장, 여직원.
혜린, 의상을 정리하다가 마음이 잡히지 않는 듯 손길을 멈춘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작업실을 나간다.
동, 복도
작업실에서 나오는 혜린. 뭔가 결심을 한 듯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혜린 강태주씨? 나, 차혜린이예요.
36. 이벤트 회사 복도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전화받는 태주.
태주 그런데요?.... (씩 웃는다.)
37. 호텔 패션쇼장 (다른 날, 낮)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흐르고 무대 위에 패션쇼가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취재진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고, 관중들의 열기도 뜨겁다.
홀 뒤 켠에서 이어폰을 낀 채 뭐라 지시하는 태주.
38. 동, 탈의실
한 무리의 모델들이 들어와 급히 의상을 갈아입는다.
바쁘게 모델들의 의상들을 점검하는 혜린과 김실장의 모습.
39. 동, 현관(패션쇼장 입구)
준혁, 안내원을 따라 패션쇼장으로 들어간다.
40. 패션쇼장
패션쇼장에 들어서는 준혁. 안내원의 안내로 VIP석에 자리 잡는다.
무대 조명이 바뀌면서 패션쇼의 피날레가 진행된다.
잠시 후, 사회자의 안내 멘트와 함께 등장하는 혜린.
혜린을 향해 플래쉬가 터지고, 혜린 함박웃음으로 관중들에게 인사한다.
뒤 켠에서 무대 위의 혜린을 보고 있는 태주.
무대 위의 혜린, 자리에 앉아 있는 준혁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시선 잠시 복잡하게 얽히지만, 혜린, 침착하게 무대 인사를 한다. 박수치는 준혁과 태주.
41. 동, 칵테일 파티장 (밤)
바자회 겸 칵테일파티가 진행되고 있다. 모델들과 패션 관계자들의 모습 보인다.
혜린 잡지 인터뷰 몇 개 하고, 방송 한 두 번 나갔더니 우리 아빠 날 완전히 딴따라 취급이 에요. 그래도 구경은 오실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안 오시네요.
태주 집안이 꽤 보수적인가 봐요.
혜린 괜히 똥 폼 잡는 거죠.
태주 꼭 남 말 하듯 하시네.
혜린 (태주를 본다.) 내가 똥 폼 잡고 있는 걸로 보여요?
태주 네.
혜린 (발끈하는데)
태주 (피식 웃으며) 농담이에요. 차혜린씨 잘 할 거예요. 처음에 길길이 뛰다가 결국은 내 제안 받아들인 거 보면 알 수 있어요. 자존심 굽힐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업가로 희망 있는 거죠.
혜린 웬일로 칭찬을 다해요?
태주 좋은 날인데 이 정도 립서비슨 해야죠.
혜린 서비스까지 해주고 고맙네요.
태주 천만에요.
이때, 혜린의 얼굴이 굳는다. 태주, 돌아보면 어느 새 준혁이 다가와 서 있다.
준혁 축하해. 회의 때문에 좀 늦었어.
혜린 (태주에게) 우리 오빠예요. (준혁에게) 오늘 쇼 담당하신 분이야.
태주 (준혁에게 손 내밀며) 강태줍니다.
준혁 (태주와 악수하며) 신준혁입니다.
태주 외가쪽이신가 봐요. 성이 다른 걸 보면.
혜린 좀 더 복잡해요. (피식 웃으며) 있잖아요, 출생의 비밀 같은 거.
태주 역시 재벌가라 다르네요! (웃으며) 말씀 나누세요.
태주, 자리에서 빠진다.
혜린과 준혁,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혜린 엄마는 아빠 무서워 여기 발걸음도 못했는데, 그래도 오빤 용감하다?
준혁 동생이 하는 일인데 와보는 거 당연하잖아.
혜린 친동생처럼 잘 살피라는 아빠의 특명이 있었겠지. 아빠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 는 사람이니까, 오빠.
준혁 아버님이랑 상관없이 온 거야.
혜린 설마. 아빠 땜에 그런 식으로 날 내팽개친 사람 말을 믿으라구?
준혁 너랑 무슨 일이 있었든 널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 넌 내 가족이야. 누구보 다 좋은 오빠 되고 싶은 거, 내 진심이야.
혜린 (확 치민다.) 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니? (준혁을 노려보며) 차라리 말을 말던가. 더 재수 없어! (가려는데)
혜린 (준혁을 돌아본다.) 지금 자리 지키고 싶다 그랬지? 혹시 내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오빠 밀어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준혁 !.....
혜린 내가 백화점에 관심 없는 걸 다행으로 알아, 아직까지는... 그런데 내 미래의 남편까 지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알아? 오빠, 빛 좋은 개살구라구. 언제든지 아 웃될 수 있어.
준혁 (피식 웃는다.) 열심히 네 남편 도울께. 그래도 아웃시킨다면 할 수 없고.
혜린 장난해?
준혁 (진지한) 죄 지었잖아. 네 마음 아프게 한 거.
혜린 !
준혁 짓밟고 싶으면 마음껏 짓밟아... 분이 풀릴 때까지, 네 성에 차도록, 마음껏 해.
혜린 .....내가 못 할 거 같아?
준혁 다 달게 받을게. 네 마음만 풀린다면.......먼저 간다.
돌아서 가는 준혁. 혜린, 야속한 듯 가는 준혁을 노려본다.
들고 있던 술잔을 비우고, 새 술잔을 받아 쥐는 혜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는 척 마는 척 하고 구석의 한가한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문득 먼 발치에 있는 태주의 모습이 들어온다.
혜린, 태주를 새삼스런 시선으로 주시한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순간 혜린과 시선이 마주친다.
혜린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42. 동, 호텔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태주가 내린다.
복도를 따라 걷는 태주. 룸 앞에 멈춘다. 벨을 누르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벨을 누르려다가 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태주.
잠시 멈칫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43. 동, 스위트 룸
방에 들어서는 태주, 주변을 돌아보다가 한 곳을 보고 다가간다.
혜린이가 창가에 서서 술을 마시고 있다. 왠지 초조해 보이는 얼굴이다.
태주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긴장하는 혜린.
태주 긴히 할 얘기라는 게 뭡니까?
혜린, 급히 표정을 수습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본다.
혜린 왔어요? 한잔 할래요?
혜린, 미니바로 가서 술을 따른다. 태주, 혜린의 모습을 유심히 본다.
태주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주 은밀하고 중요한 얘기 같은데요.
혜린 .....(차분하게 술을 따라 태주에게 내민다.)
태주 무슨 얘기죠?
혜린 은밀하고 중요한 얘기 맞아요.
태주 기대되네요.
혜린 (자리에 앉는다.) 제안 하나 하려구요.
태주 .....
혜린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 부띠끄가 아직 규모가 작아서 영업이나 마케팅 쪽이 부실한 건 알고 있죠?
태주 그래서요?
혜린 강태주씨가 책임지고 맡아줬으면 해요.
태주 (피식 웃는다.) 스카웃 제읜가요?
혜린 네.
태주 조건은요?
혜린 현재 받는 보수에서 30퍼센트 더 드릴께요.
태주 약하네요.
혜린 .....40퍼센트요. 그 이상은 힘들어요.
태주 싫어요.
혜린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만족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쪽에서 패션 전문으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강태주씨한테 책임을 일임할 거니까 귀찮은 상사 잔소리도 없을 거구요. 일하는 건 지금 회사보다 훨씬 편할 거예요.
태주 .....(듣는 둥 마는 둥이다.)
혜린 (할 수 없다는 듯) 좋아요. 원하는 조건이 뭐죠?
태주 날 여기로 부른 진짜 용건이 뭔지 알고 싶어요.
혜린 !?
태주 이상하잖아요. 저 아래에선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방까지 잡아놓고 파티장에서 사람 끌어낸 거.
혜린 .....뭔가 단단히 오해하셨네요. 이 방은 어젯밤부터 잡아둔 거예요. 호텔에서 패션쇼 치를 때, 그 전 날 호텔방 잡아놓고 밤새 준비하는 경우 많아요. 여러모로 편리하니 까.
태주 아아...
혜린 굳이 강태주씨를 여기까지 부른 건 이런 얘기 파티장에서 할 순 없는 거잖아요.
태주 .....
혜린 강태주씨 회사 사람들도 있고, 우리 직원들도 있고, 그 외 이 쪽 관련된 사람들 눈이 천지에 깔렸는데, 스카웃 얘기 하기는 좀 그렇죠. 물론, 잠시 다른 곳에 불러내서 얘 기할 순 있겠지만, 여기만큼 안전하진 않아요.
태주 설명이 길면 구차해진다는 건 알고 있죠?
혜린 !?
태주 (혜린을 똑바로 본다.) 너무 길어요. 변명이.
혜린 !.....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죠?
태주 짐작 하실 텐데요.
혜린 .....내가 유혹이라도 하려고 당신을 불렀다는 건가요?
태주 .....(말없이 당돌한 눈빛으로 혜린을 본다.)
혜린 (태주의 뜻을 알아채고 화가 치미는) 무례하군요.
태주 이 정도 무례야 피차간에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거 같은데요.
혜린 당장 나가요!
혜린 벌떡 일어나는데, 태주가 혜린의 팔을 강하게 끌어 잡는다.
태주 진짜 용건이 뭐가 됐든..... (고개 숙여 혜린의 귀에 낮게) 차혜린 너, 충분히 오해 받을 짓 하고 있는 거야, 지금!
혜린 !
놀라고 긴장된 시선으로 태주를 보는 혜린. 태주, 천천히 고개 들어 혜린을 본다.
강한 시선으로 마주 보는 두 사람.
태주 난 내 맘대로 해.
혜린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네요. 기대했던 거랑 다르다고 이렇게 대놓고 화를 내다니. (태주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태주 (더욱 강하게 혜린의 팔을 잡아끌며) 착각하지 마! 나, 너 하나도 안 아쉽거든.
태주, 거칠게 혜린의 팔을 놓고 바로 가서 술을 새로 따른다.
혜린, 잠시 그런 태주의 모습을 말없이 보다가.
혜린 왜 온 거예요? 전혀 생각 없다면서.
태주 .....
혜린 이상하잖아요. 그런 오해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무슨 생각으로 온 거죠?
태주 (피식 웃는다.) 저 여자가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차혜린이 날 유혹한다면 어 떤 방식으로 할까. 그런데 혹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그럼!... (혜린을 돌아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구요. 대답을 알려면 방법이 없잖아요.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혜린 .....
태주 내가 원래 호기심이 아주 강하거든요.
혜린 참 재밌는 사람이에요, 강태주씨.
태주 짧은 인생, 신나고 재밌게 살다 죽자가 내 인생 모토예요.
혜린 질문 하나 해도 돼요?
태주 하지 말라면 안할 건가요?
혜린 내가 유혹했다면요?
태주 !
혜린 강태주씨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내가 정말로 유혹했다면, 어떻게 했겠어요?
태주 (잠시 생각하며 돌아본다.) 거 참 나도 궁금하네.
혜린 .....
태주 호기심은 많아도 상상력은 영 없는 편이라 실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엔 도저히 모르겠 는데요.
혜린 .....
태주 (혜린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직접 부딪혀 보지 그래요? 정말로 궁금하다면..... 열 마 디 말이 무슨 소용입니까. 한번 땡겨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걸.
두 사람,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긴장한 혜린의 얼굴을 보고 태주, 비웃듯이 씩 웃는다.
태주 괜히 센 척 폼 잡지 마. 나 이런 거 재미없어.
태주, 돌아서려는데 순간 태주를 잡아끌며 입을 맞추는 혜린.
태주, 잠시 멈칫하지만 곧 혜린의 키스를 받아들인다.
깊게 포옹하며 키스하는 두 사람 모습에서
국밥집
소주잔을 들고 쏘아보듯 보고 있는 은수. 꽤 얼큰하게 취한 얼굴이다.
테이블 위에는 두 병 정도의 소주병이 있다.
은수 (잔을 들이킨 후) 미친놈.
다시 잔을 채우려다가 소주병을 들고 그대로 꿀꺽꿀꺽 삼킨다.
새삼 주변을 돌아본다. 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을 몽롱한 시선으로 보다가
호텔 스위트룸 (밤)
깊게 포옹하며 키스하는 두 사람, 잠시 후 키스를 마치고 서로를 바라본다.
혜린 여자 있어요?
태주 왜 묻죠?
혜린 헤어져요.
태주 .....
혜린 헤어져요, 당장.
태주 나한테 빠졌어요?
혜린 설마요.
태주 그건 다행이네요.
혜린 약혼자가 필요해요.
태주 .....
혜린 전에 호텔에서 봤었다고 했죠? 겨우 세 번 만난 남자랑 결혼하라고 끌려 나간 자리였 어요. ...다신 그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태주 .....정략결혼은 죽어도 싫다?
혜린 네.
태주 다른 이윤 없고?
혜린 그 이유 하나면 충분하잖아요. 내 약혼자 역할을 해줘요.
태주 내가 왜 그런 짓을 하죠?
혜린 대가는 충분히 할께요.
태주 뭘 얼마나 충분히요?
혜린 .....원하는 걸 말해봐요.
태주 (피식 웃는다.) 기간은?
혜린 진짜 약혼자가 생길 때까지.
태주 만약 안 생기면?
혜린 ?
태주 평생 진짜 약혼자가 안 나타나면 어떻게 돼냐구요? 그 쪽 하는 걸 보면 아주 가능성 없는 얘기도 아닌 거 같은데.
혜린 (참는다.) 구체적인 기간을 정하죠, 그럼. 일단 일년으로 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
태주 입을 맞추길래 당연히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건 아니었네요.
혜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연인으로 보여져야 해요. 가족, 친구, 세상 모두가 깜빡 속을 만큼.
태주 그래서 키스했어요?
혜린 남한테 그럴싸하게 보이려면 내 느낌도 중요하니까요.
태주 참 대담한 아가씨네. 그래, 소감은요?
혜린 이렇게 제안하는 거 보면 몰라요? 나쁘지 않았어요.
태주 (혜린을 잠시 보다가) ...어떡하나..., 난 별로였는데.
혜린 !....
태주 별 느낌 없는 여자랑 약혼자 행세하는 거 재미없을 거 같은데요.
혜린 재미는 없어도 안전은 하겠죠. 샛길로 빠질 염려는 없으니까.
태주 긴장감도 없죠. 심심한 건 딱 질색인데.
두 사람,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혜린 .....거절인가요?
태주 내 본능이 no라고 하는데요.
혜린 원하는 걸 말해요. 내 약혼자만 돼준다면...
태주 (단호한) 그럴 일 없어요, 대가가 뭐가 됐든.
혜린 !
태주 난 본능에 충실한 놈이거든요. 어쨌든 솔직하게 용건 말해줘서 고마워요.
혜린 .....
태주 덕분에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네요. 호기심은 확실히 채웠으니까. (가려다가 다시 돌 아보며) 그 부모, 속 참 많이 썩겠어요!
태주, 씩 웃고는 방을 나간다. 문이 닫히자 혜린, 맥이 풀린다.
경찰서 앞
은수, 야무진 표정으로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바로 경찰서다.
은수, 단단히 마음먹은 듯 씩씩대며 경찰서로 들어간다.
도로 / 택시 안 / 오피스텔 앞
택시를 타고 있는 태주. 한가로운 표정으로 흥얼거리고 있다.
태주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리는 태주. 오피스텔을 향해 몇 걸음 내딛는데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경찰 두 명과 이야기하던 경비가 태주를 가리킨다.
경비 아, 저기 오시네요.
태주,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보는데 태주에게 다가오는 경찰들.
경찰1 강태주씨 되십니까?
태주 (의아한) 예..., 그런데요?
경찰1 (신분증 내밀며) 서에서 나왔습니다.
태주 !
경찰서
경찰1, 서류를 뒤적이고 있다. 그 앞에 앉아 긴장된 얼굴로 경찰1을 보는 태주.
경찰1 (서류 보며) 한은수씨라고 알죠?
태주 !!
경찰1 알아요, 몰라요?
태주 ...알아요..
경찰1 (태주 보며) 왜 그런 짓을 했어요?
태주 뭘요?
경찰1 정말 몰라서 물어요?
태주 아, 사람 다짜고짜 끌고 와서 무슨 소립니까? 나 지금 영문도 모른 채 여기 앉아 있는 거거든요?
경찰1 한은수씨가 강태주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어요.
태주 서..성추행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경찰1 우리말 몰라요? 성추행, 상대방을 성적으로 희롱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태주 제가 미쳤어요? 왜 그딴 짓을 합니까?
경찰1 2007년 1월 *일 23시 50분 경,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동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한은수씨를 강제로 포옹하고 입 맞춘 사실이 있죠?
태주 !!!
경찰1 있어요, 없어요?
태주 .....
경찰1 아, 껴안고 뽀뽀했냐구, 안했냐구!
태주 ...해..했어요.
경찰1 (서류에 체크하며) 일단 혐의는 인정...
태주 혐의는 무슨, 절대 강제로 한 거 아니거든요!
경찰1 아가씨도 원해서 한 거다?
태주 그게...(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아시잖습니까? 키스할 때 물어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1 애인이에요?
태주 예?
경찰1 한은수씨가 애인이냐구요?
태주 아뇨.
경찰1 성추행 맞네, 그럼.
태주 형사님은 꼭 애인이랑 키스합니까?
경찰1 그럼 애인이랑 하지 누구랑 합니까? 나 애인 없어서 키스 못한지 3년도 넘었걸랑요?
태주 환장하겠네.....한은수 불러줘요. 대질심문만 하면 금방 다 밝혀질 거예요.
경찰1 그건 어차피 나중에 다 할 거고.., 오늘은 일단 신고 들어왔으니까 아저씨 조서부터 작성해야 되거든요. 지금부터 하나도 남김없이 불어요. 신속, 정확, 정직, 알죠?
태주 (미치겠다.)
경찰1 (서류 보며) 사건 당일 피해자 한은수와 만난 게 동네 포장마차 앞에서 23시경, 맞 아요?
태주 네.
경찰1 그 시간에 밥 왜 먹자고 했어요?
태주 ?! 배고파서요.
경찰1 하긴, 이웃끼리 밥 먹는 거야.., 그런데 이웃끼리 뽀뽀까지는 좀 그렇잖아?
태주 그 때 상황이 좀 그랬던 거뿐이거든요.
경찰1 상황 얘기라면 들었어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다면서요?
태주 ! 예, 그렇죠.
경찰1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겠다, 단 둘이 있겠다, 갑작스런 상황에 여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겠다, 범행하기 딱 좋은 상황이네!
태주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 이 사람이 범행이라니! 사람 뭘로 보는 거야, 지금!
경찰1 (역시 벌떡 일어나 버럭) 뭘로 보긴? 성추행범으로 본다! 왜?
태주 !
경찰1 야, 성추행범! 안 앉어!
태주 (기세에 눌려 앉는다.)
경찰1 좋게 말하니까 어디서 큰 소리야.., !
태주 (돌아버리겠다.)
태주네 오피스텔 복도 / 지수 오피스텔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주. 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지수 오피스텔을 향해 걸어간다.
거칠게 벨을 누르며 사정없이 문을 두드린다.
태주 야, 문 열어! 한은수! 문 안 열어!
잠시 후 얼굴을 내미는 지수. 태주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지수 (태주를 제지하며) 오늘은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걸요. 제 정신 아니예요, 쟤.
태주, 아랑곳 않고 지수를 밀치며 들어간다.
지수 오피스텔
실내로 들어오는 태주.
태주가 들어오든 말든 상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은수. 몇 병의 소주병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쥐포, 과자 등 술안주도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태주, 다짜고짜 은수가 먹던 술병을 채간다.
태주 너 뭐야! 미쳤어?
은수 네. 나 미친년이에요.
태주 그래서, (술병 집어 던지며) 미친년 발작으로 경찰에다가 신고한 거야!
지수, 끼어들고 싶지 않은 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 볼륨을 높힌다.
은수 발작이 아니라 용긴데요. 옳은 일을 할 용기.
태주 너 성추행이 뭔지나 알고 이러는 거야?
은수 아저씨가 한 짓이 그거라는 거 정도는 알아요.
태주 야! 내가 언제 널 성추행 했다 그래!
은수 했어요.
태주 그게 어떻게 성추행인데?
은수 장난으로 여자한테 그런 짓 하는 거, 그게 성추행 아니면 뭐예요?
태주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럼 넌 그렇게 당한 게 좋아서 한 번 더하자고 졸라댔냐?
은수 내가 언제요?
태주 ! 뭐?
은수 시커먼 남자랑 엘리베이터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는데, 겁먹는 거 당연하잖아요. 너무 무서워서 저항도 못한 거뿐이거든요.
태주 뭐, 이런 게 다 있냐? (은수의 팔을 잡아 거칠게 끌어 올리며) 너 진짜 생사람 잡을 래?
은수 (지지 않고 태주를 노려본다.) 이거 놔요, 아파요.
태주 너 꽃뱀이야?
은수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은수, 실랑이 끝에 거칠게 태주의 손을 뿌리치고 오피스텔을 나간다.
태주 야, 어디가! 야!
태주, 지수와 눈이 마주친다. 태주, 방안에 어질러진 술병을 돌아보고
태주 저걸 다 쟤 혼자 마신 거야?
지수 ? (이어폰 뽑고 태주가 보던 술병들을 본다.) 전작도 있었나봐요. 경찰서 가기 전에. 제 정신에 그 짓 했겠어요?
태주, 씩씩대며 나가고 지수,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오피스텔 앞 길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은수.
취했지만 꽤 단단한 자세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태주, 잰 걸음으로 뒤따른다.
태주 야, 어디가?
은수 경찰서요.
태주 거긴 왜?
은수 신고하러요.
태주 또 뭘 신고할 건데?
은수 가택 침입에 폭행미수.
태주 폭행?
은수 방금 치려고 했잖아요. 팔에 멍도 들었어요, 볼래요? (팔을 걷어 부치려는데)
태주 미친 거냐, 취한 거냐?
은수 나 술 엄청 세요. (가려는데)
태주 (은수 팔을 끌며) 야 야, 이리와, 그냥 얌전히 들어가 자라, 오늘은.
은수 (태주의 팔을 뿌리친다.) 경찰서 간다니까요. (돌아서 가려는데)
태주 (은수를 잡는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너?
은수 .....
태주 딱지 맞았다고 꼬장 부리는 거야? 이러면 내가 널 사귀어 주기라도 할 거 같아?
은수 아니요.
태주 그럼 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
은수 아저씨가 감옥에 갔으면 좋겠어요!
태주 !.....내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다고 감옥까지 가야 되냐? 그 때 일은 사과도 했잖아. 다 끝난 거 아니야!
은수 (울분과 슬픔에 찬 눈빛으로) 미안하다고 하면 다예요?
태주 .....
은수 미안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예요, 그건.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거, 그거 진 짜 나쁜 짓이라구요... 더 이상 피해자가 없도록 아저씨 감옥 보낼 거예요.
은수, 돌아서 가는데 태주가 은수의 손을 잡는다.
잠시 태주에게 손이 잡힌 채로 시계추처럼 주변을 비틀대며 빙빙 도는 은수.
태주, 은수를 잡아끌자 마주보는 자세가 되는 두 사람.
은수의 얼굴은 어느 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태주 야...
은수 아저씨가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태주 !.....
은수 안 그러려고 하는데..., 그냥 잊어먹으려고 하는데.....(분한 듯 손톱을 문지르며) 손톱 끝까지 다.., 아저씨로 사무친 거 같아..... 잊어먹어지지가 않아요.
태주 .....
은수 그래서 나..., 너무 억울해요.
은수, 기운이 빠진 듯 고개를 푹 수그린다. 은수의 정수리가 태주의 가슴에 닿는다.
태주, 난감한 듯 잠시 있다가 손가락으로 은수의 정수리를 눌러 머리를 들어 올린다.
젖혀지는 은수의 얼굴.
은수 억울해...., 너무 억울해....
태주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는 은수의 머리, 그대로 툭 태주의 어깨에 떨어진다.
태주, 착잡하다.
지수 오피스텔 (아침)
잠들어 있는 은수의 귓가에서 울리는 요란한 알람 소리.
소리를 피해 은수가 뒤척이자 알람시계를 들고 있는 지수가 은수를 쫓아가며 알람시계를 귀에 댄다. 겨우 눈을 뜨는 은수. 멍청히 눈을 깜빡이다 정신을 차린다.
지수 너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냐?
은수, 지수를 물끄러미 보다가 지수가 들고 있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은수 아, 늦었다!
벌떡 일어나는 은수, 재빨리 욕실로 달려간다.
동, 복도 / 엘리베이터 앞
머리도 제대로 정리 못하고 급하게 나오는 은수. 복도를 뛰어가는데 뒤쫓아 나온 지수, 휴대폰을 들고 ‘야, 핸드폰!’ 소리 지른다.
은수, 급히 되돌아와 휴대폰을 채가듯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해간다.
막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린다. 겨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은수
은수 고맙습니...
말을 멈추는 은수,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은 태주인 것.
태주 안 타? 타, 빨리.
은수, 멍하니 태주를 보다가 홱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 쪽으로 간다.
태주 야! 어디가? 야, 한은수!
비상계단 / 오피스텔 로비
당황한 얼굴로 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은수.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본다.
별 기척이 없자 안심한다.
은수 이사 가고 싶다...., 정말 쪽팔려 못 살겠다.....
은수, 터벅터벅 걸으며 코너를 도는데 그곳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태주.
태주 정신 돌아왔냐?
놀란 은수, 태주를 외면하고 잰 걸음으로 지나쳐 간다.
오피스텔 로비 / 골목길
고개는 약간 수그린 채 여전히 잰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은수.
태주, 그런 은수 옆을 쫓아 걸어간다.
태주 눈도 못 쳐다보는 거 보니 기억은 다 하나보지?
은수 .....
태주 보기보다 참 맹랑한 애야, 너.
은수 .....
태주 기어이 날 감옥에 넣으시겠다구?
은수 .....
태주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은수 .....
태주 세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무고죄라는 것도 있어. 이렇게 생사람 잡다간 네 가 감옥 가는 수가 있다구.
은수 .....이따 점심시간에 경찰서 가서 취소할 거예요.
태주 확실히 멀쩡해지긴 했구나.
은수 어젠 제가 미쳤었나 봐요.
태주 네 입으로 미친년이라고 하긴 하더라.
은수 .....
태주 술이 떡이 되도 주제파악은 확실하던데? 그건 맘에 든다.
은수 .....
태주 너 알콜 중독이지?
은수 아뇨.
태주 작작 좀 마셔. 알콜중독 심하면 정신분열까지 가는 거 알지? 미치는 거, 그거 별로 어 려운 거 아니거든. 넌 특히나 정말 조심해야겠더라.
은수 어쩌다 한 번 마신 거거든요.
태주 네 몸에서 냄새나는 건 알아?
은수 ?
태주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수라도 뿌리지 그랬어. 무슨 여자애가.....(코 앞에서 손을 흔 들며) 아, 냄새.., 야, 그러고 어떻게 물건을 팔래?
은수 이 아저씨가 진짜...!
태주 ?
은수 실컷 쫓아다니면서 말 시키더니 왜 이제 와서 냄새난다고 난리예요? 냄새나면 말을 시키지 말든가, 아예 숨을 쉬지 말든가!
태주 야, 진짜 냄새난다니까?
은수, 홱 돌아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간다. 은수를 쫓아가는 태주.
버스 정류장
은수, 열 받은 얼굴이다. 태주,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그런 은수를 보고 있다.
태주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 하다가 결국 태주를 돌아보는 은수.
태주,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은수에게 다가온다. 의아한 듯 보는 은수.
태주 저녁에 시간 있어?
은수 !!
태주 시간 있냐고?
은수 그건 왜요?
태주 전에 저녁 사주기로 하고 국밥로 때웠잖아. 신세 진 사람한테 그 정돈 인사가 아니지. 내가 원래 성격이 깔끔하거든.
은수 .....
태주 바쁜가 보지? 그럼 할 수 없고.
은수 안 바빠요.
태주 (본다.)
은수 저 시간 많아요.
태주 (피식 웃더니) 전화할께.
태주, 말을 마치자마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다. 태주가 탄 버스가 떠나고, 그때까지 멍하니 있던 은수, 조금씩 정신이 드는지 얼굴에 미소가 번져 간다.
얼굴 전체로 퍼지는 미소. 활짝 웃는 은수, 하늘을 뛰어 오를 듯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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