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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세라세라 5

호텔 스위트룸 ()

혜린과 태주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긴장한 혜린의 얼굴을 보고 태주비웃듯이 씩 웃는다.

 

태주 괜히 센 척 폼 잡지 마나 이런 거 재미없어.

 

태주돌아서려는데 순간 태주를 잡아끌며 입을 맞추는 혜린.

태주잠시 멈칫하지만 곧 혜린의 키스를 받아들인다.

깊게 포옹하며 키스하는 두 사람잠시 후 키스를 마치고 서로를 바라본다.

 

혜린 여자 있어요?

태주 왜 묻죠?

혜린 헤어져요.

태주 .....

혜린 헤어져요당장.

태주 나한테 빠졌어요?

혜린 설마요.

태주 그건 다행이네요.

혜린 약혼자가 필요해요.

태주 .....

혜린 전에 호텔에서 봤었다고 했죠겨우 세 번 만난 남자랑 결혼하라고 끌려 나간 자리였 어요. ...다신 그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태주 .....정략결혼은 죽어도 싫다?

혜린 네.

태주 다른 이윤 없고?

혜린 그 이유 하나면 충분하잖아요내 약혼자 역할을 해줘요.

태주 내가 왜 그런 짓을 하죠?

혜린 대가는 충분히 할께요.

태주 뭘 얼마나 충분히요?

혜린 .....원하는 걸 말해봐요.

태주 (피식 웃는다.) 기간은?

혜린 진짜 약혼자가 생길 때까지.

태주 만약 안 생기면?

혜린 ?

태주 평생 진짜 약혼자가 안 나타나면 어떻게 돼냐구요그 쪽 하는 걸 보면 아주 가능성 없는 얘기도 아닌 거 같은데.

혜린 (참는다.) 구체적인 기간을 정하죠그럼일단 일년으로 해요그리고 그 다음에...

태주 입을 맞추길래 당연히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결국 그건 아니었네요.

혜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연인으로 보여져야 해요가족친구세상 모두가 깜빡 속을 만큼.

태주 그래서 키스했어요?

혜린 남한테 그럴싸하게 보이려면 내 느낌도 중요하니까요.

태주 참 대담한 아가씨네그래소감은요?

혜린 이렇게 제안하는 거 보면 몰라요나쁘지 않았어요.

태주 (혜린을 잠시 보다가) ...어떡하나..., 난 별로였는데.

혜린 !....

태주 별 느낌 없는 여자랑 약혼자 행세하는 거 재미없을 거 같은데요.

혜린 재미는 없어도 안전은 하겠죠샛길로 빠질 염려는 없으니까.

태주 긴장감도 없죠심심한 건 딱 질색인데.

 

두 사람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혜린 .....거절인가요?

태주 내 본능이 no라고 하는데요.

혜린 원하는 걸 말해요내 약혼자만 돼준다면...

태주 (단호한그럴 일 없어요대가가 뭐가 됐든.

혜린 !

태주 난 본능에 충실한 놈이거든요어쨌든 솔직하게 용건 말해줘서 고마워요.

혜린 .....

태주 덕분에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네요호기심은 확실히 채웠으니까. (가려다가 다시 돌 아보며그 부모속 참 많이 썩겠어요!

 

태주씩 웃고는 방을 나간다문이 닫히자 혜린맥이 풀린다.

혜린의 쓸쓸한 눈길이 핸드폰에 닿는다.

핸드폰을 집어 드는 혜린버튼을 눌러 준혁의 이름을 찾는다.

핸드폰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결국 핸드폰을 내던지고 마는 혜린.

 

국밥집

소주잔을 들고 쏘아보듯 보고 있는 은수꽤 얼큰하게 취한 얼굴이다.

테이블 위에는 두 병 정도의 소주병이 있다.

 

은수 (잔을 들이킨 후미친놈.

 

다시 잔을 채우려다가 소주병을 들고 그대로 꿀꺽꿀꺽 삼킨다.

새삼 주변을 돌아본다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을 몽롱한 시선으로 보다가

 

은수 눈에는 눈이에는 이미친놈엔 미친년...

 

뭔가 결심한 듯한 은수의 얼굴.

 

경찰서 앞

은수야무진 표정으로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바로 경찰서다.

은수단단히 마음먹은 듯 씩씩대며 경찰서로 들어간다.

 

도로 택시 안 오피스텔 앞

택시를 타고 있는 태주한가로운 표정으로 흥얼거리고 있다.

 

태주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리는 태주오피스텔을 향해 몇 걸음 내딛는데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경찰 두 명과 이야기하던 경비가 태주를 가리킨다.

 

경비 아저기 오시네요.

 

태주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보는데 태주에게 다가오는 경찰들.

 

경찰1 강태주씨 되십니까?

태주 (의아한..., 그런데요?

경찰1 (신분증 내밀며서에서 나왔습니다.

태주 !

 

경찰서

경찰1, 서류를 뒤적이고 있다그 앞에 앉아 긴장된 얼굴로 경찰1을 보는 태주.

 

경찰1 (서류 보며한은수씨라고 알죠?

태주 !!

경찰1 알아요몰라요?

태주 ...알아요..

경찰1 (태주 보며왜 그런 짓을 했어요?

태주 뭘요?

경찰1 정말 몰라서 물어요?

태주 아사람 다짜고짜 끌고 와서 무슨 소립니까나 지금 영문도 모른 채 여기 앉아 있는 거거든요?

경찰1 한은수씨가 강태주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어요.

태주 서..성추행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경찰1 우리말 몰라요성추행상대방을 성적으로 희롱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태주 제가 미쳤어요왜 그딴 짓을 합니까?

경찰1 2007년 1월 *일 23시 50분 경현재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동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한은수씨를 강제로 포옹하고 입 맞춘 사실이 있죠?

태주 !!!

경찰1 있어요없어요?

태주 .....

경찰1 아껴안고 뽀뽀했냐구안했냐구!

태주 .....했어요.

경찰1 (서류에 체크하며일단 혐의는 인정...

태주 혐의는 무슨절대 강제로 한 거 아니거든요!

경찰1 아가씨도 원해서 한 거다?

태주 그게...(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아시잖습니까키스할 때 물어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1 애인이에요?

태주 예?

경찰1 한은수씨가 애인이냐구요?

태주 아뇨.

경찰1 성추행 맞네그럼.

태주 형사님은 꼭 애인이랑 키스합니까?

경찰1 그럼 애인이랑 하지 누구랑 합니까나 애인 없어서 키스 못한지 3년도 넘었걸랑요?

태주 환장하겠네.....한은수 불러줘요대질심문만 하면 금방 다 밝혀질 거예요.

경찰1 그건 어차피 나중에 다 할 거고.., 오늘은 일단 신고 들어왔으니까 아저씨 조서부터 작성해야 되거든요지금부터 하나도 남김없이 불어요신속정확정직알죠?

태주 (미치겠다.)

경찰1 (서류 보며사건 당일 피해자 한은수와 만난 게 동네 포장마차 앞에서 23시경맞 아요?

태주 네.

경찰1 그 시간에 국수는 왜 먹자고 했어요?

태주 ?! 배고파서요.

경찰1 그 아가씨한테 흑심 있었던 건 아니고?

태주 이웃끼리 국수도 같이 못 먹습니까?

경찰1 하긴이웃끼리 국수 먹는 거야.., 그런데 이웃끼리 뽀뽀까지는 좀 그렇잖아?

태주 그 때 상황이 좀 그랬던 거뿐이거든요.

경찰1 상황 얘기라면 들었어요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다면서요?

태주 그렇죠.

경찰1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겠다단 둘이 있겠다갑작스런 상황에 여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겠다범행하기 딱 좋은 상황이네!

태주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이 사람이 범행이라니사람 뭘로 보는 거야지금!

경찰1 (역시 벌떡 일어나 버럭뭘로 보긴성추행범으로 본다?

태주 !

경찰1 야성추행범안 앉어!

태주 (기세에 눌려 앉는다.)

경찰1 좋게 말하니까 어디서 큰 소리야.., 이봐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하고 비겁한 짓이 뭔 지 알아약한 여자한테 못된 짓 하는 거야사내새끼가 치사하게 할 짓이 없어서 그 런 짓을 하나?

태주 .....제가 이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요.

경찰1 뭔데?

태주 정말로 키스를 원한 건 제가 아니라 그 여자였거든요.

경찰1 뭐?

태주 한 번 더 하자고 하더라구요난 정말 하기 싫었구요다음 날엔 나보고 사귀재요내가 미쳤습니까걔랑 사귀게걔 그것 땜에 열 받아서 지금 나 엿 먹이는 거예요저 정말 억울하거든요형사님도 남자니까 이해할 거 아닙니까.

경찰1 진짜 치사한 새끼네이거!

태주 ?

경찰1 (점점 흥분하는너 같은 놈들 땜에 대한민국 남자들이 욕먹는 거야잘못을 했으면 순순히 인정을 하든가아니면 차라리 뻔뻔스레 발뺌을 하던가도대체 네 놈은 뭐야(태주의 멱살까지 잡는다.) 그 날 이후로 피해자는 악몽에 시달리며 잠도 못 잔댄다엘리베이터만 보면 심장이 벌렁거려 숨도 못 쉰대한 여자한테 그런 상처를 주고도 모자라 엄한 누명까지 씌우냐이 천하에 나쁜 놈아!

태주 (돌아버리겠다.)

 

태주네 오피스텔 복도 지수 오피스텔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주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지수 오피스텔을 향해 걸어간다.

거칠게 벨을 누르며 사정없이 문을 두드린다.

 

태주 야문 열어한은수문 안 열어!

 

잠시 후 얼굴을 내미는 지수태주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지수 (태주를 제지하며오늘은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걸요제 정신 아니예요.

 

태주아랑곳 않고 지수를 밀치며 들어간다.

 

지수 오피스텔

실내로 들어오는 태주.

태주가 들어오든 말든 상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은수몇 병의 소주병이 바닥에 굴러다니고쥐포과자 등 술안주도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태주다짜고짜 은수가 먹던 술병을 채간다.

 

태주 너 뭐야미쳤어?

은수 네나 미친년이에요.

태주 그래서, (술병 집어 던지며미친년 발작으로 경찰에다가 신고한 거야!

 

지수끼어들고 싶지 않은 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 볼륨을 높힌다.

 

은수 발작이 아니라 용긴데요옳은 일을 할 용기.

태주 너 성추행이 뭔지나 알고 이러는 거야?

은수 아저씨가 한 짓이 그거라는 거 정도는 알아요.

태주 야내가 언제 널 성추행 했다 그래!

은수 했어요.

태주 그게 어떻게 성추행인데?

은수 장난으로 여자한테 그런 짓 하는 거그게 성추행 아니면 뭐예요?

태주 그래그렇다고 치자그럼 넌 그렇게 당한 게 좋아서 한 번 더하자고 졸라댔냐?

은수 내가 언제요?

태주 ?

은수 시커먼 남자랑 엘리베이터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는데겁먹는 거 당연하잖아요너무 무서워서 저항도 못한 거뿐이거든요.

태주 뭐이런 게 다 있냐? (은수의 팔을 잡아 거칠게 끌어 올리며너 진짜 생사람 잡을 래?

은수 (지지 않고 태주를 노려본다.) 이거 놔요아파요.

태주 너 꽃뱀이야?

은수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은수실랑이 끝에 거칠게 태주의 손을 뿌리치고 오피스텔을 나간다.

 

태주 야어디가!

 

태주지수와 눈이 마주친다태주방안에 어질러진 술병을 돌아보고

 

태주 저걸 다 쟤 혼자 마신 거야?

지수 ? (이어폰 뽑고 태주가 보던 술병들을 본다.) 전작도 있었나봐요경찰서 가기 전에제 정신에 그 짓 했겠어요?

 

태주씩씩대며 나가고 지수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오피스텔 앞 길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은수.

취했지만 꽤 단단한 자세로 터벅터벅 걸어간다태주잰 걸음으로 뒤따른다.

 

태주 야어디가?

은수 경찰서요.

태주 거긴 왜?

은수 신고하러요.

태주 또 뭘 신고할 건데?

은수 가택 침입에 폭행미수.

태주 폭행?

은수 방금 치려고 했잖아요팔에 멍도 들었어요볼래요? (팔을 걷어 부치려는데)

태주 미친 거냐취한 거냐?

은수 나 술 엄청 세요. (가려는데)

태주 (은수 팔을 끌며야 야이리와그냥 얌전히 들어가 자라오늘은.

은수 (태주의 팔을 뿌리친다.) 경찰서 간다니까요. (돌아서 가려는데)

태주 (은수를 잡는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은수 .....

태주 딱지 맞았다고 꼬장 부리는 거야이러면 내가 널 사귀어 주기라도 할 거 같아?

은수 아니요.

태주 그럼 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

은수 아저씨가 감옥에 갔으면 좋겠어요!

태주 !.....내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다고 감옥까지 가야 되냐그 때 일은 사과도 했잖아다 끝난 거 아니야!

은수 (울분과 슬픔에 찬 눈빛으로미안하다고 하면 다예요?

태주 .....

은수 미안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예요그건.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거그거 진 짜 나쁜 짓이라구요... 더 이상 피해자가 없도록 아저씨 감옥 보낼 거예요.

 

은수돌아서 가는데 태주가 은수의 손을 잡는다.

잠시 태주에게 손이 잡힌 채로 시계추처럼 주변을 비틀대며 빙빙 도는 은수.

태주은수를 잡아끌자 마주보는 자세가 되는 두 사람.

은수의 얼굴은 어느 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태주 야...

은수 아저씨가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태주 !.....

은수 안 그러려고 하는데..., 그냥 잊어먹으려고 하는데.....(분한 듯 손톱을 문지르며손톱 끝까지 다.., 아저씨로 사무친 거 같아..... 잊어먹어지지가 않아요.

태주 .....

은수 그래서 나..., 너무 억울해요.

 

은수기운이 빠진 듯 고개를 푹 수그린다은수의 정수리가 태주의 가슴에 닿는다.

태주난감한 듯 잠시 있다가 손가락으로 은수의 정수리를 눌러 머리를 들어 올린다.

젖혀지는 은수의 얼굴.

 

은수 억울해...., 너무 억울해....

 

태주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는 은수의 머리그대로 툭 태주의 어깨에 떨어진다.

태주착잡하다.

 

지수 오피스텔 (아침)

잠들어 있는 은수의 귓가에서 울리는 요란한 알람 소리.

소리를 피해 은수가 뒤척이자 알람시계를 들고 있는 지수가 은수를 쫓아가며 알람시계를 귀에 댄다겨우 눈을 뜨는 은수멍청히 눈을 깜빡이다 정신을 차린다.

 

지수 너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냐?

 

은수지수를 물끄러미 보다가 지수가 들고 있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은수 아늦었다!

 

벌떡 일어나는 은수재빨리 욕실로 달려간다.

 

복도 엘리베이터 앞

머리도 제대로 정리 못하고 급하게 나오는 은수복도를 뛰어가는데 뒤쫓아 나온 지수휴대폰을 들고 핸드폰!’ 소리 지른다.

은수급히 되돌아와 휴대폰을 채가듯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해간다.

막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린다겨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은수

 

은수 고맙습니...

 

말을 멈추는 은수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은 태주인 것.

 

태주 안 타빨리.

 

은수멍하니 태주를 보다가 홱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 쪽으로 간다.

 

태주 야어디가한은수!

 

비상계단 오피스텔 로비

당황한 얼굴로 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은수불안한 듯 뒤를 돌아본다.

별 기척이 없자 안심한다.

 

은수 이사 가고 싶다...., 정말 쪽팔려 못 살겠다.....

 

은수터벅터벅 걸으며 코너를 도는데 그곳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태주.

 

태주 정신 돌아왔냐?

 

놀란 은수태주를 외면하고 잰 걸음으로 지나쳐 간다.

 

오피스텔 로비 골목길

고개는 약간 수그린 채 여전히 잰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은수.

태주그런 은수 옆을 쫓아 걸어간다.

 

태주 눈도 못 쳐다보는 거 보니 기억은 다 하나보지?

은수 .....

태주 보기보다 참 맹랑한 애야.

은수 .....

태주 기어이 날 감옥에 넣으시겠다구?

은수 .....

태주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은수 .....

태주 세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무고죄라는 것도 있어이렇게 생사람 잡다간 네 가 감옥 가는 수가 있다구.

은수 .....이따 점심시간에 경찰서 가서 취소할 거예요.

태주 확실히 멀쩡해지긴 했구나.

은수 어젠 제가 미쳤었나 봐요.

태주 네 입으로 미친년이라고 하긴 하더라.

은수 .....

태주 술이 떡이 되도 주제파악은 확실하던데그건 맘에 든다.

은수 .....

태주 너 알콜 중독이지?

은수 아뇨.

태주 작작 좀 마셔알콜중독 심하면 정신분열까지 가는 거 알지미치는 거그거 별로 어 려운 거 아니거든넌 특히나 정말 조심해야겠더라.

은수 어쩌다 한 번 마신 거거든요.

태주 네 몸에서 냄새나는 건 알아?

은수 ?

태주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향수라도 뿌리지 그랬어무슨 여자애가.....(코 앞에서 손을 흔 들며냄새.., 그러고 어떻게 물건을 팔래?

은수 이 아저씨가 진짜...!

태주 ?

은수 실컷 쫓아다니면서 말 시키더니 왜 이제 와서 냄새난다고 난리예요냄새나면 말을 시키지 말든가아예 숨을 쉬지 말든가!

태주 야진짜 냄새난다니까?

 

은수홱 돌아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간다은수를 쫓아가는 태주.

 

버스 정류장

은수열 받은 얼굴이다태주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그런 은수를 보고 있다.

태주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 하다가 결국 태주를 돌아보는 은수.

태주시선을 피하지 않고 은수에게 다가온다의아한 듯 보는 은수.

 

태주 저녁에 시간 있어?

은수 !!

태주 시간 있냐고?

은수 그건 왜요?

태주 전에 저녁 사주기로 하고 국수로 때웠잖아신세 진 사람한테 그 정돈 인사가 아니지내가 원래 성격이 깔끔하거든.

은수 .....

태주 바쁜가 보지그럼 할 수 없고.

은수 안 바빠요.

태주 (본다.)

은수 저 시간 많아요.

태주 (피식 웃더니전화할께.

 

태주말을 마치자마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다태주가 탄 버스가 떠나고그때까지 멍하니 있던 은수조금씩 정신이 드는지 얼굴에 미소가 번져 간다.

얼굴 전체로 퍼지는 미소활짝 웃는 은수하늘을 뛰어 오를 듯 신이 난다.

 

몽타쥬

매장 활기차게 일하는 은수의 모습손님들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상품 설명도 열심이다일하는 중간 중간 핸드폰을 확인한다.

화장실 삐친 머리를 물로 열심히 다듬는 은수얼굴도 이리저리 살펴보고가슴이 설렌다.

매장 매장을 지나다가 악세서리 코너에서 손님이 머리핀을 꽂아보는 걸 보는 은수손님머리핀을 놓고 가고그것이 맘에 들었던지 은수가 머리핀을 머리에 꽂아본다거울을 보며 흐뭇한데 가격을 보고 놀라는 은수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머리핀을 내려놓는다.

 

복도 엘리베이터 앞

상품을 옮기는 은수.

두세명의 판매원들이 엘리베이터 옆 한 켠에 부착된 게시판을 보고 있다판매원들 지나간 후 은수도 무심코 게시판 앞을 지나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다시 게시판 앞으로 가는 은수. <인턴사원모집공고>가 붙어 있다.

<팔레스 백화점 특별 인재 발견 프로젝트학력나이 상관없이 오직 당신의 능력과 끼만 평가한다>는 문구와 함께 특수 평가 부문에 아이디어 기획안이라고 적혀 있다.

반짝거리는 은수의 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메모하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액정을 확인하면 강태주라고 떠 있다.

설렌 마음으로 전화 받는 은수.

 

은수 아저씨! ...아뇨.., 괜찮아요짐 옮기던 중이었어요..., ...

 

이때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준혁이 일행들과 사무실 쪽으로 향해 간다.

 

준혁의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준혁비서가 그의 뒤를 따르며 전달사항을 브리핑한다.

 

비서 대진유통 정상무님 측에서 내일 정찬 약속 확인전화 왔었구요해외명품팀에서 신규 브랜드 입점에 대한 기안서가 올라왔는데되도록이면 내일 오후까지 검토하셨으면 한답니다영업기획팀 간부회의는 내일 오후로 확정됐구요.

준혁 (자리에 앉아 책상 위의 우편물들을 대강 살피며시간은요?

비서 오후 4십니다.

준혁 그 때 뭐가 있었던 거 같은데.

비서 마케팅팀 업무보고로 잡혀 있었는데오전으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준혁 알았어요.

 

비서의 브리핑을 받으며 우편물을 점검하던 중건물 사진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을 보는 준혁.

건성으로 쓱 보고 다른 우편물들을 본다.

비서가 목례하고 나간 뒤뭔가 맘에 걸린 듯 사진이 들어 있는 우편물을 다시 살펴보는데 이때 준혁의 핸드폰이 울린다보면 혜린이다.

 

혜린의 부띠끄 혜린의 사무실

통화 중인 혜린.

 

혜린 오늘 나 뭐하는지 알아?

 

백화점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준혁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진다.

 

준혁 선볼 거라는 얘기 들었어.

혜린(f) 어떻게 할까?

준혁 뭘?

혜린(f) 그 사람이랑 결혼할까?

준혁 !.....그건 네가...

 

혜린의 부띠끄혜린의 방

 

혜린 네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란 소린 하지 마날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사람은 오빠 니까.

 

준혁의 사무실

준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혜린(f) 그러니까 오빠 뜻에 따르겠다구.

준혁 감당할 수 있어?

혜린(f) 밥 먹고 숨만 쉬면 목숨이야 부지하는 건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준혁 결혼해그럼.

 

혜린의 사무실

 

혜린 !..... 진심이야?

준혁(f) 나한테 뭘 기대했니더 이상 네 문제에 나 끌어들이지 마.

혜린 너...., 정말 치사한 새끼다.

 

혜린전화를 끊는다야속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준혁의 사무실

몹시 괴로운 얼굴로 전화기를 내려놓는 준혁.

 

고급 호텔 커피숍 ()

커피숍 내부 풍경커피숍에 들어서는 혜린종업원의 안내로 맞선남에게 다가간다.

혜린이가 오자 일어서서 맞는 맞선남꽤 준수한 용모에 야무진 인상이다.

자리에 앉는 두 사람.

 

맞선남 기대 이상인데요이 정도 미인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혜린 흔히 얼굴값하게 생겼다고들 하죠.

 

두 사람마주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혜린 말이 씨가 된다고 그에 걸맞는 스캔들도 있었구요유학시절에 남자랑 동거했었단 얘 긴 들으셨죠?

맞선남 !.....(당황하지만 이내 냉정을 찾고 담담하게...

혜린 역시 소문 빠르네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선남 뭘요동거요?

혜린 나처럼 과거 가진 여자요.

맞선남 추억도 없고 과거도 없는 건 열정도 없다는 거죠열정 없는 여잔 매력 없어요나무 토막 같아서.

혜린 내 과거까지 맘에 들어 하는 맞선 상댄 처음인데요.

맞선남 맘에 든다기 보단 이해한다는 게 더 맞겠죠.

헤린 그 놈의 스캔들 땜에 웬만한 재벌가에선 나 같은 거 쳐다보지도 않아요덕분에 요즘 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선보는 상대들이 죄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뿐이더라구요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그리 이해심들도 많은지여자 과거를 문제 삼는 남자는 한명 도 없던데요.

맞선남 한번만 눈감으면 출발선이 달라지니까요.

혜린 ?

맞선남 아무리 잘났으면 뭐합니까개천에서 허우적대다 시간만 갈 텐데요요즘처럼 촌각을 다투는 시대에그거 엄청난 손해죠.

혜린 솔직하시네요.

맞선남 상대가 다 까고 나오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해봤자 나만 우스워지잖아요.

혜린 좋아요까놓고 묻죠팔레스 백화점이 그렇게 탐나세요?

맞선남 개천도 벗어나고 옵션으로 아름다운 아내까지 얻을 수 있는데 금상첨화죠.

혜린 기분은 나쁘지 않네요.

맞선남 차혜린씨꽤 자유분방한 아가씬 거 같은데..,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는 약속도 할 수 있어요.

혜린 무슨 뜻이죠?

맞선남 아내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구요난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스타일이거든요.

혜린 놀고 싶으면 맘껏 놀아라남편 자리만 내놓고?

맞선남 .....(긍정의 미소)

혜린 (웃으며너무 적나라하시다.

 

엘리베이터 앞 로비

커피숍에서 나온 혜린과 맞선남이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맞선남 대단한 집 아가씨라 긴장했었는데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어요말이 통하는 사람 만나는 거 쉽지 않은데 말예요혜린씬 어때요?

혜린 지금까지 본 맞선 중에 젤 재밌었어요.

 

뿌듯한 미소를 짓는 맞선남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혜린과 맞선남나란히 올라탄다.

 

엘리베이터 안 로비

맞선남과 혜린.

 

맞선남 한 번 보고 이렇게 마음에 들기는 처음이에요그만큼 잘 통한다는 건가... 밤새 얘기 를 나눠도 지치지 않을 거 같은데요.

 

혜린맞선남이 교묘하게 몸을 밀착시키는 것을 느낀다불쾌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맞선남 (혜린의 귀에 속삭이듯어때요룸에서 한 잔 하는 거.

혜린 .....

맞선남 서로 마음도 잘 맞는 거 같은데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 잔 괜찮잖아요.

혜린 글쎄요.......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혜린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혜린 엄마가 선보라고 한 남자가 나더러 오늘 밤 같이 자자는데 어떻게 해야 돼? .....그러 게 소문 나쁜 딸그만 좀 내돌리라니까남자들이 대놓고 덤벼들잖아.....나도 더 이상 이 짓하기 싫어엄마. (전화 끊고 똥 씹은 얼굴이 된 맞선남을 본다.) 우리 엄마가 당 신이랑 자지 말래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혜린나가는데

 

맞선남 소문대로 완전히 막 나가는 여자구만.

혜린 (돌아본다.) 막 나가는 여자한테까지 거절당한 기분은 어떠세요?

맞선남 .....(잔뜩 열 받아 노려본다.)

혜린 주젤 알고 덤벼니깟 게 감히 어딜 넘보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돌아서 로비 쪽으로 걸어가는 혜린씁쓸하고 왠지 비참한 기분이다.

 

준혁의 사무실

어두운 사무실책상 위 스탠드만 켠 채로 업무를 보고 있는 준혁.

핸드폰이 진동하지만 '혜린이라고 뜬 액정을 보고 무시한다.

끈질기게 계속 진동하는 핸드폰준혁결국 받는다.

 

준혁 어.., ...많이 바빠.....아니기다리지 마.

 

전화를 끊는다괴롭고 착잡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 혜린의 차 안

차 안에 있는 혜린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주차장 안의 차들이 점점 줄어든다.

거의 텅 빈 주차장에 그대로 있는 혜린.

잠시 후준혁이가 나온다차에 올라타는 준혁을 바라보고 있는 혜린.

준혁의 차가 출발한다.

잠시 후혜린도 뒤따라 출발한다.

 

도로 혜린의 차 안 준혁의 차 안

준혁의 차를 쫓고 있는 혜린.

준혁룸미러로 혜린의 차를 알아차리지만 모른 척 한다.

계속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준혁을 쫓고 있는 혜린.

준혁과 혜린의 차가 한적한 도로로 접어든다.

혜린도 준혁이 알아차린 것을 느낀다모른 척 하는 그가 야속하고화가 치민다.

참다못한 혜린갑자기 요란하게 클랙션을 울리며 준혁의 차를 추월해 앞 쪽에 급정거한다.

뒤이어 준혁도 급정거한다.

혜린룸미러로 뒤에 선 준혁의 차를 본다차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이때 차선을 바꿔 차를 출발시키는 준혁.

떠나는 준혁의 차를 야속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혜린.

룸미러로 멀어지는 혜린의 차를 보는 준혁의 마음도 무겁다.

망연히 차 안에 앉아 있는 혜린역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걸 절감한다.

 

퓨전 레스토랑

은수와 태주마주 앉아 식사 중이다.

 

태주 경찰에단 뭐라고 했어?

은수 애인이랑 싸워서 홧김에 그랬다고...

태주 ?

은수 그게 젤 간단하잖아요.

태주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냐?

은수 애인이라고 한 거요?

태주 성추행.

은수 원래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든 하게 돼 있어요.

태주 그렇게 억울했어?

은수 .....

태주 정말 내가 좋은 거야?

은수 네.

태주 왜?

은수 (심각한 얼굴로 태주를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태주 잘 생겨서 반한 거지?

은수 전 아저씨가 그렇게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태주 !

은수 아저씨보다 잘 생긴 사람 많이 봤거든요.

태주 그래너 눈 높다.

은수 아무리 아저씨가 좋아도 객관성을 잃진 않아요.

태주 (내심 기분 상한 듯 스푼을 툭 내려놓는다.) 넌 자존심이 너무 없는 거 같애!

은수 저 자존심 강한 편인데요.

태주 자존심 강한 애가 남자한테 대놓고 좋다고 이러냐?

은수 좋은 걸 좋다고 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요?

태주 어일반적으로 그래.

은수 그럼(생각하는)..., 내 자존심 보다 아저씨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강한 거예요.

태주 참 별종이다.

은수 근데요지금 이거 데이튼가요?

태주 ?

은수 우리 지금 데이트 하는 거냐구요?

태주 니 좋을대로 생각해라.

은수 (단호한데이트예요.

 

태주은수를 본다은수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오피스텔 근처 길

나란히 걸어가는 태주와 은수.

태주생각에 잠긴 얼굴이다은수그런 태주를 힐끗힐끗 살펴본다.

 

은수 무슨 생각하세요?

태주 .....

은수 네?

태주 머리 복잡해조용히 좀 해라.

 

은수태주의 손을 본다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태주의 손을 맞잡는다.

은수를 돌아보는 태주.

 

은수 남자랑 데이트하게 되면 꼭 하고 싶었어요.

태주 (절레절레넌 너무 적극적이야...

 

어쨌든 태주가 손을 빼지 않자 내심 기쁜 은수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든다.

 

태주 야흔들지 마팔 아퍼.

은수 우리 그냥 사귀어요아저씨.

태주 .....

은수 내가 아저씨 타입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요한 번 사는 인생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태주 .....

은수 네?

태주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난 한 여자 오래 못 사귀어체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오 래 못 가거든그게 안돼.

은수 (태주를 본다.)

태주 네가 정말로 날 사귈 마음이 있으면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야우린 오래 못 갈 거라 는 걸나중에 징징 짜고 매달리는 거나 딱 질색이거든..... 자신 있어?

은수 다른 여자 사귈 때도 그런 말 하세요?

태주 보통은 다 눈칫밥 통밥으로 알아먹지넌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전혀 모를 거 같 아서 하는 말이야.

은수 저도 아저씨 오래 사귈 마음 없어요.

태주 !?

은수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해요나두 연애 많이 하고 싶거든요.

태주 바람직한 생각이다.

은수 그럼.., 나랑 사귀는 거예요?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 네?

태주 (피식 웃음이 터진다.)

 

은수신이 났다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든다바로 이 때

 

경진(e) 한은수너 은수 아니니?

 

깜짝 놀라 돌아보는 은수경진(은수모)이 짐가방을 잔뜩 들고 서 있다.

 

은수 엄마!

 

은수에게 다가오는 경진은수와 태주의 맞잡은 손을 본다.

 

은수 얘가 얘가.., 동생 돌보라고 서울 보내놨더니 밤늦도록 남자랑 연애질이니!

 

은수재빨리 태주의 손을 놓는다.

 

지수 오피스텔

태주와 은수나란히 앉아 있다태주를 찬찬히 보고 있는 경진.

지수는 구석에서 경진의 가방을 풀고 있다가방 속에서 나오는 각종 미용재료들과 가발마네킹 머리지수도대체 뭔가 싶다.

 

경진 나이는 얼마?

태주 스물여덟입니다.

경진 직업은?

태주 이벤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경진 아버님은 무슨 일 하시죠?

태주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경진 어머니는요?

태주 더 일찍 여의었구요.

경진 (과장스레 안됐다는 듯어머나...! 쯔쯔쯔... 고아란 말이야어떡하니...

태주 이미 성인인데 고아라는 건 좀 그러네요.

경진 (마땅치 않다.) 형제는요?

태주 저 하납니다.

경진 홀홀단신외로운 인생이네.

태주 인생이란 게 원래 외로운 거죠어차피 다 혼잔데.

경진 (김 빠지지만 한 가닥 희망을 갖고집은 좀 있는 편이었나요?

태주 예?

경진 그러니까..., (눈짓하며있잖아요...

태주 (알아듣는아아.., 굳이 따진다면 없는 쪽인 거 같은데요.

경진 그래도 물려받은 재산은 좀 있을 거 아니야아들도 딱 하난데?

태주 재산이 뭐 있겠습니까초등학교 선생이 벌면 얼마나 번다구요.

경진 (실망이다지수를 보고 버럭지수 얘넌 뭘 그렇게 뒤적거리고 있니!

 

지수깜짝 놀라 가방에 주섬주섬 물건들을 넣는다.

경진못마땅한 듯 은수를 본다.

 

경진 이래서 딸자식은 밖으로 내돌리는 게 아니라니까아픈 동생 돌볼 생각은 안하고나 이도 어린 계집애가 벌써부터 사내랑 히히덕거리고 다니질 않나...

지수 나 갓난 애기 아니고은수 쟤도 결코 어리지 않거든착각에서 좀 벗어나지?

경진 넌 입 다물지 못해! (태주에게그래..., 우리 애랑은 얼마나 깊은 사이예요?

은수 엄마!

태주 !...얕은 사인데요.

경진 그건 다행이네. (은수에게은수 너여자는 남자 하나 확실하게 골라야 인생이 달라 지는 거라고 내가 했니안했니넌 이 엄마 사는 거 보면서 느끼는 것도 없니어디 서 저런...

지수 은수 처지에 저 정도면 봉 잡은 거 아닌가인정할 건 인정하지?

경진 (버럭얼굴 뜯어먹고 살거야! (못마땅한 듯 태주를 보며인물만 좋으면 뭐하나여자 눈물이나 빼놓지 하나 쓰잘 대가리 없는 거!

태주 저...,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너무 늦었는데요.

경진 가 봐요얕은 사이라니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네.

태주 예그럼. (일어나며안녕히 계십쇼.

 

태주나간다은수태주와 경진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하며 태주를 따라간다.

 

지수 어렵게 연애 한번 하겠다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소금을 뿌리냐?

경진 싹수 노란 놈이야.

지수 엄마가 사귀던 아저씨들보다 훨 낫구만.

경진 (아픈 곳을 찔린 듯 눈을 부라리고 째려본다.)

지수 팔쥐엄마 티너무 내니까 그러지!

 

지수수건을 걸쳐 메고 욕실로 들어간다.

 

복도

태주의 뒤를 따라가는 은수.

 

은수 기분 나빴죠정말 미안해요아저씨화 많이 났어요?

태주 너 연애 못 할만 하다무서워서 누가 덤비겠냐.

은수 말은 저렇게 해도 우리 엄마속은 나쁘지 않아요친해지면 재밌기도 해요.

태주 (돌아보며보는 눈은 있으신 거 같더라.

은수 예?

태주 내 인물 하난 확실하게 인정하시잖냐.

은수 그래도 좋은 거 하난 있어서 다행이네요.

 

태주오피스텔 문을 여는데

 

은수 (용기내어아저씨!

태주 (돌아본다.)

은수 다음 월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태주 그건 왜?

은수 백화점 쉬는 날이거든요.

태주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은수 (태주의 반응에 기쁜...., 그게...(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태주 생각해보고 연락해.

은수 네...

태주 자라그럼가서.

은수 네!

 

태주들어간다은수설렌다.

 

도로 호영의 차 안 (다른 날)

달리는 호영의 차호영운전 중이고 태주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

 

호영 그 여자 말야너랑 친하냐?

태주 누구?

호영 짜식시침 떼기는지금 만나러 가는 그 디자이너.

태주 별로.

호영 패션쇼장에서 보니까 꽤 친해보이던데?

태주 일로 만난 사람 친해봤자지관심 있어?

호영 아니 뭐..., 소문이 진짠가 싶어서.

태주 소문이라니?

호영 사생활 장난 아니라던데재벌가에 유명한 남자 난봉꾼은 있었어도 여자들 얘긴 없었 잖냐차혜린 그 여자가 첫 스타트랜다.

태주 (웃는다.)

호영 진짤까그렇게 막 노는 애로는 안 보이던데.

태주 연예인들 루머나 마찬가지지 뭐신문 방송에 얼굴 몇 번 나가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 내리는 거야입에 오르다 보면 부풀려지기 마련이구.

호영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

태주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만나서 물어보던가.

호영 (괜히 무안해진다.)

 

이때문자 알림벨이 울린다확인하는 태주은수로부터 온 문자다. <생각났어요유람선 타고 싶어요.> 문자를 보고 피식 웃는 태주.

 

태주 촌스럽기는간만에 유람선 타게 생겼다.

호영 그새 또 여자 생겼냐?

태주 난 왜 이렇게 여자들이 환장하나 몰라.

호영 (못마땅한 눈길로 태주를 째려본다.) 이번엔 또 어떤 앤데?

태주 알 거 없어.

호영 새끼가끔 저렇게 재수 없게 비밀주의야.

태주 별 영양가 없는 애야.

호영 영양가 없는 애 사귀면 그게 강태주냐?

태주 허구헌 날 밥만 먹고 살 순 없잖아가끔 떡볶이도 먹어주고짜장면도 먹고빈대떡 도 부쳐 먹어줘야지. (문자를 찍는다.)

 

호영못마땅한 눈길로 태주를 째려본다.

 

백화점면접 대기실

정장 차림으로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는 은수이때문자가 들어온다.

<O.K.> 밝아지는 은수의 얼굴.

면접을 마친 지원자들이 상기된 얼굴로 나오고 호출된 지원자들이 들어간다.

초조한 눈길로 그들을 보는 은수.

 

면접장

지원자가 유창한 영어로 아이디어 기획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준혁을 포함한 서너명의 면접관들 앞에 은수와 지원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준혁지원자를 주시하다가 힐끗 은수를 본다은수기죽은 얼굴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원자 (영어캐쥬얼 명품 전략은 패션 트랜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젊은이들의 소 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세계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이태리프랑 스일본 등의 캐쥬얼 유명 브랜드를 한 공간에 입점 시켜국제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추구하는 20대 젊은이들의 소비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자신들을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 20대들의 소비패턴은 백화점의 매출을 신장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면접1 좋아요특히 영어실력이 좋네요. (면접관들에게다른 질문 없으십니까? ...그럼 다 음한은수씨.

은수 (긴장한.

면접1 (서류를 살펴보더니 별 탐탁찮은우리 백화점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뭐죠?

은수 제가 지금 여기서 알바를 뛰고 있는데요백화점에 다니다 보니까 계속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래서...

면접2 (빈정거리는계속 다니고 싶으면 계속 알바생으로 뛰면 되겠네...

은수 (웃으며조금 있으면 알바 끝나는데요.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면접1 일 끝나면 뭘 할까 하다가 채용 공고 보고 그냥 지원했다는 건가요?

은수 네.., (당황한아뇨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면접2 지금 근무시간일텐데일 하는 중간에 면접은 어떻게 온 겁니까?

은수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면접2 (건성자신 있는 게 뭐 있어요이것만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은수 .....(지원자를 힐끗 보고영어 같은 거 말인가요?

면접2 뭐아무거나노래도 좋고춤도 좋고뭐든지 해봐요.

 

은수벌떡 일어난다잠시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을 풀어서 앞머리를 묶어 이마를 드러내게 만든다이어 마빡이 동작을 하며 노래를 시작하는 은수.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면접관들황당한 듯 바라본다.

 

은수 너희들내가 누군지 알아내가 말이여 마빡이여마빡이골목대장 마빡이를 뭘로 보고... 여깄는 사람들한국 사람이 한국말만 하면 됐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꼬부랑 말은 왜 씨부렁댄대내가 말이여머리털은 없어도 이 마빡이 힘은 엄청나거든이 마빡이의 대머리 힘을 직접 구경해 볼텨? (바로 앞쪽의 심사위원 책상에 머리를 쿵하 고 박는다.)

 

면접관들생각보다 큰 소리에 긴장한 시선으로 은수를 주시한다하나도 안 아픈 듯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던 은수눈앞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하필이면 머리를 박은 책상의 심사위원 머리가 대머리였던 것심사위원은수를 노려보며 어색하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은수아득하다전체 분위기가 썰렁한 것을 눈치 챈다기가 잔뜩 죽어 자리로 돌아가 앉는 은수이제 모든 게 다 끝났다 싶다이마의 머리를 푸는데

 

준혁 백화점에 계속 다니고 싶은 이유가 뭐죠?

은수 네?

준혁 (은수를 보며왜 그런 생각을 했냐구요?

은수 (준혁의 질문에 조금 용기가 솟는다.) ..,그건... 백화점만 가면 필요 없는 물건들까 지 죄다 갖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예전에는 그 이유가 무조건 비싸고 좋은 물건들 만 있기 때문에 내 눈이 돌아가나보다 했거든요그런데 직접 일해 보니까 꼭 그것만 은 아니더라구요.

준혁 (유심히 은수의 이야기를 듣는다.)

은수 백화점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골라내고골라낸 그 물건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참 재밌고 매력 있는 일이다 싶어서그래서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싶어졌습니다.

면접1 기획안 얘기를 해보죠내놓은 기획안 제목이 <no brand multi shop> 이네요설명 해보세요.

은수 저는 백화점 하면 떠오르는 게 딱 두 가지브랜드 제품과 비싸다는 거거든요그래서 백화점에서 옷을 살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동대문 시장도 많이 간다지만사실 보통 눈썰미가 아니고서는 그 복잡한 데서 제대로 고르는 것도 힘들구요.

물건을 쉽게 고를 수 있는 백화점의 잇점과 시장 상품의 가격적 잇점을 합친 거그게 바로 노브랜드 멀티샵입니다눈썰미 좋은 전문 코디네이터가 시장 물건 중에서 우수 한 상품들을 선별해서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하는 거죠.

면접2 결국 백화점에 시장을 하나 차리자는 건데백화점 질이 떨어질 거란 생각은 안드나 요?

은수 요즘 시장 물건이 얼마나 괜찮은데요디스플레이와 인테리어만 받쳐준다면 유명 브 랜드 제품 못지않게 고급스런 느낌을 줄 걸요고객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좋고백화점 입장에선 비싸다는 선입관 때문에 시장만 돌던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 어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같은데요.

면접1 저가의 상품들은 백화점 전체 매출엔 별 도움이 안될텐데요고급 상품들의 판매량 저하라는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은수 짧은 제 판매경험으로는 물건 값이 싸면 사람들은 하나 살 거 두개 사는 경향이 있어 요게다가 브랜드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브랜드만 사게 돼 있구 요노브랜드 매장이 생겼다고 해서브랜드 제품 판매가 적어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 습니다.

면접2 (혼잣말처럼백화점이 시장판처럼 득실거리게 되는 거 아니야이러다간 VIP들이 다 떨어져 나갈텐데.

은수 백화점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사람이 많아야 물건도 많이 팔리죠VIP들이야 어차피 명품관에 갈텐데별로 상관없을 거 같은데요.

준혁 수고했어요두 분 모두면접 마치겠습니다.

 

서류에 체크하는 면접관들은수와 지원자 일어나 나간다.

 

고급 중식당 ()

태주와 호영나경김실장과 직원한명이 앉아 있다종업원이 음식을 갖고 들어와 서빙한다.

 

호영 야.., 업무보고회라고 해서 책상머리에서 서류만 날리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런 근사 한 대접까지 받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김실장 패션쇼가 성공적으로 끝난 게 다 여러분들 덕이라고 선생님께서 특별히 신경 쓰신 거 예요.

나경 이렇게 객들만 불러놓고 혜린인 언제나 오는 거야?

김실장 인터뷰가 많이 늦어지시나 봐요좀 전에 곧 출발한다고 연락왔으니까 금방 도착하실 겁니다.

나경 (먹으며 태주를 본다.) 그나저나 난 태주씨랑 이런 자리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태주 그러게 말입니다.

나경 사람 인연이란 게 참 묘하죠그 날 밤 그 요란 떤 것만 생각하면...., 그러구서도 같 이 일한 거 보면 혜린이나 태주씨나 참 대단해요.

태주 그냥 일인데요.

나경 그냥 일이라고 하기엔 혜린이가 보통 까탈인가요다 끝났으니까 하는 말인데 나 이 번 일 하면서 혜린이한테 완전히 질려버렸다니까이 모델은 이래서 싫다저 모델은 뭐가 어떻다.., 일류 유명 디자이너도 그렇게까진 안하지나나 되니까...

혜린(e) 일류 디자이너도 아닌 게 건방지게 까탈 피웠다그 말 하고 있는 거야지금?

 

일동돌아보면 혜린이가 일어서려는 직원들을 손짓으로 만류하며 들어선다.

 

나경 그래너 없는 김에 뒷담화 좀 깠다.

혜린 (자리에 앉으며그 까탈 안 피웠으면 패션쇼 그 정도로 성공하지 못했어. (태주와 호 영에게미안해요좀 늦었어요.

나경 별 차이 없었을 걸다른 사람들 눈엔 그 정도 미묘한 차이야 그게 그거거든.

혜린 미묘한 차이가 명품을 만드는 거 몰라나 뭐든 짝퉁은 싫어언니.

나경 어련하시겠니. (태주에게이 까탈 상대하는 거 힘들지 않았어요?

태주 (혜린을 보며그래도 딱 부러지는 맛은 있잖아요.

혜린 (태주를 본다.)

나경 하긴그렇긴 하지. (혜린에게무슨 인터뷰 하고 온 거야?

혜린 여성잡지.

나경 그러다 연예인 데뷔하는 거 아니니여기 저기 네 얼굴 많이 나오더라?

혜린 얼굴마담 노릇 하는 거니까장사 하려면 별 수 있어?

나경 매출 급상승이라며차혜린 이러다 재벌 2세 아니라 원조 재벌 되겠다.

혜린 (웃는다.)

나경 참나 패션쇼에서 신준혁 봤어경황이 없어서 아는 척도 못했는데 언제 들어온 거 니?

혜린 (약간 경직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조금 됐어.

나경 기집애 그런 뉴스 있으면 미리미리 얘기 해줬어야지.

혜린 .....

나경 먼발치에서 보긴 했지만여전히 근사하던데아직도 싱글이래혹시 미국에서 애인 사귀었다거나...

혜린 (화제 돌리고 싶다태주에게식사는 어때요입에 맞아요?

태주 .., 맛있네요.

나경 왜 갑자기 태주씨를 챙기니?

혜린 우리 패션쇼 일등 공로자니까당연히 챙겨야지. (태주에게많이 들어요. (호영에게이대리님두요수고 많으셨어요.

호영 예.., 뭐 저야...

나경 나한테도 한마디 해줘야 되는 거 아니니?

혜린 언니야 어련히 잘 먹을까.

 

클럽

스테이지에서 한껏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나경과 호영김실장과 직원나경과 호영꽤 유쾌하게 호흡이 맞는다.

테이블에는 혜린과 태주가 마주 앉아 있다춤추는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태주.

혜린은 술을 마시고 빈 잔에 술을 따르다가 태주의 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본다.

 

혜린 한 잔 하죠.

 

태주잔을 들자 술을 따라주는 혜린.

태주술을 마시면서 다시 스테이지 쪽에 시선을 두는데 그런 태주를 잠시 바라보던 혜린.

 

혜린 재밌어요?

태주 뭐 분위기 괜찮은데요.

혜린 사는 게 재밌냐구요?

태주 ? (혜린을 본다.)...재미없을 것도 없죠재밌어요.

혜린 비결이 뭐예요?

태주 ...그 쪽은 재미없어요?

혜린 별로요.

태주 비결이 뭐예요?

혜린 .....

태주 모자란 거 없는 사람인데 재미없을 이유 없잖아요당연히 재밌어야지.

혜린 그런가요?

태주 그냥 그럭저럭 살지 그래요현재를 즐기면서.

혜린 .....

태주 깊이 생각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맡기라구요아등바등 해봤자 인생 별 달라지는 거 없거든요.

혜린 .....무슨 뜻이죠?

태주 정략결혼이니 뭐니 너무 고민할 것도 없단 얘기예요심각하게 생각하면 뭐든 심각하 게 흐르기 마련이니까정략결혼이 뭐가 어때서요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 쌓고 애 낳고 사는 건 다 똑같은데.

혜린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태주 다 마음먹기 달린 거죠.

혜린 .....

태주 정 못 견디겠으면 연애를 좀 해보시던가.

혜린 그러면 인생이 즐거워지나요?

태주 당연하죠.

혜린 어떻게 확신하죠?

태주 사랑의 기쁨이라고몰라요만고불변의 진리거든요?

혜린 꼭 기쁘기만 하겠어요?

태주 (피식 웃는너무 깊게만 안가면 돼요뭐든 지나친 건 다치니까.

혜린 그게 비법인가요?

태주 네.

 

태주다시 스테이지 쪽으로 시선을 둔다혜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느닷없이

 

혜린 그렇게 살다 죽을 거예요?

태주 (황당한 듯 혜린을 본다.) 재수 없게 갑자기 왜 죽는 얘깁니까?

혜린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요.

태주 참 나...., 그럼 이렇게 살다 죽지 저렇게 살다 죽을라구요?

혜린 ...부럽네요.

태주 ?

혜린 (옅은 미소진심이에요.

 

혜린자리에서 일어나 스테이지로 간다.

태주별 싱거운 소리 다한다는 표정으로 가는 혜린을 보다가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간다.

스테이지의 혜린일행들과 어울려 춤을 춘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던 태주춤추는 그들을 힐끗 보고는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무대를 돌아본다.

일행과 떨어져 있는 혜린이가 홀로 춤에 취해 있다어딘가 쓸쓸함이 감도는 그녀의 춤이 조금씩 태주의 시선을 잡는다한 남자가 혜린에게 다가와 춤을 춘다혜린남자에게 관심도 없지만 그의 비비적거림에도 별 저항이 없다순간혜린의 공허한 시선과 태주의 시선이 닿는다.

그대로 시선 돌리며 춤에 열중하는 혜린.

태주걸음을 멈춘 채로 춤추는 혜린을 주시한다.

 

도로 혜린의 차 안

늦은 밤한적한 도로를 혜린의 차가 달리고 있다.

생각에 잠겨 창 밖을 보고 있는 태주.

대리운전자가 운전을 하고 있고뒷좌석에 혜린과 태주가 나란히 앉아 있다.

혜린은 술에 취한 듯 잠들어 있다.

잠든 혜린의 머리가 스르르 태주 어깨로 미끄러진다.

잠시 멈칫하는 태주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에 잠긴다.

 

수입차 전시장 수입차 안 (다른 날)

전시된 수입차를 돌아보고 있는 태주.

진지한 눈길로 전시된 차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좀 떨어진 장소에서 혜린이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혜린태주 쪽을 돌아보면 태주전시된 차 중 한대에 올라타고 있다.

차 안의 태주운전석을 조절해서 맞춰보고계기판과 기타 인테리어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태주의 핸드폰이 진동한다꺼내보면 은수의 전화다.

바로 이때 차 문을 여는 혜린.

 

혜린 어때요맘에 들어요?

태주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넣으며 차에서 내린다.) 여자랑 자동차는 직접 부대껴보지 않 으면 알 수가 없죠. (차문 닫으며이렇게 봐서 뭘 알겠어요?

혜린 직접 부대껴봐요그럼. (자동차 키를 던진다.)

태주 (자동차 키를 받는다.) ?

혜린 24시간 시승기회예요산길이든 계곡이든 실컷 부대껴보고 결정하라구요그럼 된 거 죠?

태주 .....

 

백화점행사장

은수실망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손님이 오자 물건을 판매하는 은수하지만 마음은 온통 전화를 받지 않는 태주에게 가 있다.

 

지수 오피스텔 ()

어두운 방지수는 침낭에 잠들어 있고경진도 그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은수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슨 소리를 들은 듯 귀를 쫑긋 세운다소리 죽여 현관 쪽으로 가는 은수.

조심스레 문을 연다.

하지만 낯선 남자가 술이 취해 달그락거리며 문을 여는 것일 뿐이다.

 

태주 오피스텔 앞 (아침)

오피스텔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는 은수.

 

은수 아저씨아저씨!

 

은수문에 있는 구멍에 눈을 들이대고 안을 들여다본다.

이때학원을 가기 위해 나오던 지수가 은수를 보고 다가가 머리통을 친다.

 

은수 아야.

지수 뭐하냐?

은수 지수야뭔가 좀 이상한 거 같아.

지수 뭐가?

은수 아저씨어제부터 계속 연락도 안되고집에도 안 들어왔나 봐벌써 출근했을 린 없 잖아.

지수 하루쯤 외박할 수도 있지.

은수 혹시 집안에 있는 건 아닐까목욕탕에서 미끄러졌다든지.., 갑자기 심장..., 혼자 사는 사람들 가끔 그렇게 발견되잖아... 경비 아저씨한테 말해 볼까?

지수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은수 전화를 안받는단 말야.

지수 그럼 회사에 전화해 보던가출근은 할 거 아냐.

은수 .....

지수 (가려다가 돌아본다.) 설마 그 아저씨 직장도 모르는 거야?

은수 .....

지수 니들 정말 사귀는 거 맞냐?

은수 응.

지수 혼자 헛꿈 꾸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엘리베이터로 향하며사귀는 사이에 직장도 모른대요코 앞에 살면서 연락도 안된대요생판 남이랑 뭐가 다르냐고요.

 

은수멍하니 가는 지수를 본다.

 

지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돌아보며안 타?

 

은수여전히 멍한 채 걸어간다.

 

백화점 사무실 (마케팅팀)

은수초조한 얼굴로 직원과 얘기 중이다.

 

은수 지난 번에 메이크업쇼 주관했던 이벤트 회사요그 회사 전 화번호만 알면 돼요!

직원 글쎄 그 쪽 담당자가 지금 없다잖아요나중에 오라니까요.

은수 담당자가 없으면 기록이라도 있을 거 아니예요정말 급하단 말예요아니 아저씨는 무슨 직원이 회사 거래처가 어딘지도 몰라요!

직원 (은수의 기세에 황당한 듯 본다.)

 

백화점 일각 (비상구와 같은 한적한 곳)

긴장한 얼굴로 통화 중인 은수.

 

은수 네강태주씨요핸드폰 연락이 안돼서 그러는데요지금 자리에 계신가요? .....! 월차요혹시 그럼 어디...(전화가 끊겼다.) 여보세요여보...

 

은수전화를 끊는다새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서해안 고속도로 수입차 안

신나게 차를 몰고 있는 태주.

 

서해안 바닷가 수입차 안 (저녁 무렵)

태주차를 멈추고 시동을 끈다.

의자를 뒤로 당겨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꽤 만족스러운 듯 태평하고 흐뭇한 얼굴로 바다 풍경을 바라본다.

 

몽타쥬

오피스텔 건물 앞 () : 코트를 입고 추위에 떨며 서성이고 있는 은수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보다가 실망한다.

(e)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녹음하세요.

은수(e) 아저씨지금 어딨어요전화는 왜 안 받아요? ...제발 연락 좀 해요답답해서 미칠 거 같단 말예요설마... 안좋은 일 있는 건 아니죠?

 

태주 오피스텔 앞 () :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은수어느 덧 꾸벅꾸벅 존다.

은수(e)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로 사라진 거예요나랑 한 약속은 기억하고 있어요그 약속 까지 안 지키면..., 나 정말 아저씨 용서안할 거예요!

 

한강 선착장 근처 (다른 날저녁)

유람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선착장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은수.

초조하게 서성이던 은수의 시선이 한 곳에 박힌다.

먼발치로 태주가 두리번거리며 오는 것을 발견한 것.

반가우면서도 울컥하는 은수, ‘아저씨’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태주에게 뛰어간다.

 

은수 아저씨!

 

태주를 와락 껴안는 은수태주 갑작스런 포옹에 당황하는데

 

태주 야....

은수 죽은 줄 알았어요아저씨 죽은 줄 알았단 말예요!

태주 (은수를 떼어내며나 멀쩡히 살아있거든오버 좀 하지마라챙피하게!

은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태주 (선착장 쪽을 보고배 출발한다.

 

태주은수 손을 잡고 뛴다.

 

선착장

헐레벌떡 도착하는 태주와 은수.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이미 배가 떠나고 있다태주옆의 매표소 쪽으로 간다.

 

태주 다음 배는 몇 시죠?

매표 지금이 막밴데요.

 

망연히 떠나는 배를 보고 있는 은수에게 다가가서는 태주.

태주난감한 얼굴로 은수를 본다은수태주를 돌아본다.

 

레스토랑

한강이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은수와 태주테이블엔 차가 놓여 있다.

은수시무룩한 얼굴이다.

 

태주 그만 좀 뿔어 있지유람선 그거 하나도 재미없다니까한강 구경하고 싶은 거라며여기서도 잘 보이잖아실컷 봐.

은수 아저씨..., (태주를 본다.) 빚졌죠?

태주 뭐?

은수 출장 갔었다는 거 다 핑계고 사실은 빚쟁이한테 쫓기느라 연락두절 됐던 거 아니예 요?

태주 (기가 막힌 듯 웃는다.)

은수 솔직히 말해도 돼요괜찮아요.

태주 상상력도 풍부해요너 물건 팔지 말고 예술가 하지 그러냐?

은수 회사에선 출장이 아니라 월차라고 했단 말예요!

태주 그 사람이 착각한 거라니까내가 거짓말을 왜 하냐귀찮아서라도 나 그런 거 못해.

은수 그러면 미리 간다고 말해주는 게 정상이잖아요사귀는 사이 아니라도 친구한테라도 그렇게 해요안 그래요?

태주 ...그래.

은수 근데 왜 말도 없이 갔어요?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 (긴장한다.)

태주 머리가 좀 복잡했어생각할 게 많았거든.

은수 무슨 생각이요?

태주 (잠시 머뭇거리다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너랑 나.

은수 !?

태주 사실 둘이 무슨 일 있었던 것도 아니고새삼스레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긴 한데 어 찌됐든 마무리는 해야 할 거 같아서 이 자리 나온 거거든.

은수 무슨 말 하는 거예요지금?

태주 없었던 걸로 하자구.

은수 !

태주 사람 마음이란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냐네가 하도 좋다니까 잠깐 받아줄까 했었 는데역시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건 아닌 거 같아.

은수 .....

태주 그러니까 앞으로 연락 안 된다고 줄줄이 메시지 남기지도 말고무슨 일 생겼나 걱정 하지도 마.

은수 사귀기로 한 거...., 그만 두자는 거예요지금?

태주 응.

은수 싫어요.

태주 ?

은수 이런 게 어딨어요아저씨랑 나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별로 만난 적도 없어요.

태주 그러니까 차라리 다행이지여기서 끝나는 게.

은수 !

태주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네 감정도 별로 안 깊을 거 아냐.

은수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태주 알아연애 한 두 번 해봐?

은수 .....

태주 사람 좋아하는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옅어지게 되어 있어별로 깊은 감정 아니면 그 속도로 더 빠르겠지생각보다 빨리 잊게 될 거야.

은수 쉽게 말하지 말아요.

태주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다 경험에서 하는 소리거든?

은수 .....나 어떤 점이 싫은데요?

태주 나 너 안 싫어해.

은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태주 없어.

은수 근데 왜...

태주 여자로 안 느껴져.

은수 !

태주 남녀 사이에 연애가 안된다면 이유는 그거 하나야.

은수 !.....그럼... 그 땐 왜 그랬어요?

태주 (지겨운또 왜 키스했냐구?

은수 왜 사귄다고 했냐구요?

태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네가 날 좀 귀찮게 했냐?

은수 .....귀찮아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태주 어.

은수 !

 

두 사람 사이에 한참동안 침묵이 흐른다.

 

은수 알았어요... 없었던 걸로 해요.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 미안해요아저씨 귀찮게 해서.

태주 .....

 

도로변 길 택시 안

늦은 밤한산한 길.

은수와 태주어색한 분위기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태주 속상하다고 술 먹고 다니지 마주사도 유별난 애가 또 사고 치면 어떡하냐.

은수 아저씨 안 괴롭힐 테니까 걱정 마세요.

태주 (피식 웃는그럼 다행이고. (은수를 본다.) 곧 좋은 사람 생길 거야너 엄청 사랑해 주는 사람.

은수 .....

태주 너도 잘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거든네 매력 발견하는 놈 나타나겠지.

은수 덕담 고맙긴 한데요그만 할래요?

 

약간 민망해진 태주마침 택시가 지나가자 손을 들어 잡는다.

 

태주 (택시 문 열며!

은수 먼저 가세요.

태주 왜?

은수 아저씨랑 저헤어진 거잖아요나란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태주 뭘.., 그런 걸 따지냐그냥 타너무 늦었잖아버스도 끊겼어.

은수 싫어요.

태주 애가 왜 이렇게 촌스럽게 굴어?

은수 저 촌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돼서 그래요.

태주 고집 부리지 말고 타라?

은수 싫어요.

태주 (괜히 화가 난다.) 알았어너 맘대로 해!

 

태주택시에 올라탄다운전사에게 행선지를 말하자 곧 택시가 출발한다.

백미러로 은수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태주괜히 기분이 나쁘다.

시선을 돌리는 태주뭐든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이다.

은수멀어지는 택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지수 오피스텔

지수가 문을 열자 들어서는 은수.

 

은수 다녀왔습니다.

경진 (통닭을 뜯다가넌 지금이 몇 신데 이제야 기어들어오니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 도 해야될 거 아냐!

 

은수대꾸 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경진 쟤 좀 봐들은 척도 안하네서울 오더니 너 눈에 뵈는 게 없니?

은수 죄송해요담부턴 일찍 들어올께요.

지수 엄마 미용실에 취직했대지금 축하 파티 중와서 통닭 먹어.

은수 .....(반응 없다.)

지수 참태주 아저씨 나타났더라알아?

은수 응... 만났어.

지수 (통닭 뜯으며근데 왜 지금 들어와아저씨는 아까 들어오는 거 같던데.

은수 .....

지수 둘이 싸웠어?

은수 .....

지수 야?

경진 (지수에게 왜 묻냐는 듯척 보면 몰라대판 하고 들어온 얼굴이잖아.....아무리 그래 도 늦은 밤에 길바닥에 여자 혼자 놔두고 저만 딸랑 들어오는 놈은 또 뭐니은수 너이 엄마가 아니라고 했지남자라면 이골이 나도록 봐서 아는데 그 놈은 영 싹수 가 노래인정머리까지 없으니 황도 그런 황이 없네그런 놈은 하루라도 빨리...

은수 안 만날 거예요이제.

지수 헤어졌어?

은수 어.

지수 불안불안 하더라니.

경진 잘했네담부턴 좀 제대로 골라남자는 무조건 돈이야돈 있는 남잔 여자 인 생을 바꿔주거든네가 가진 게 있어재주가 있어남자라도 잘 잡아야 할 거 아니니이리와 통닭이나 뜯어라.

지수 근데 엄마취직까지 했으면 서울에 완전히 짱 박는다는 거네그치?

경진 당근이지.

지수 그럼 군산 식당은 어떻게 되는데정리는 다 하고 온 거야?

경진 (찔끔한다화제 돌리려 은수에게너 통닭 안 먹을 거야?

지수 식당 정리했으면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집 구할 수 있는 거지?

경진 야한은수! (은수 끌어다 앉힌다.) 아 좀 먹으라니까! (통닭을 은수에게 내밀며옛다강태준지 뭔지 이게 그 놈이다 생각하고 쫙쫙 씹어쫙쫙실컷 씹다보면 스트레스가 싹 풀릴 거다.

은수 (할 수 없이 통닭을 집어든다.)

지수 거 참 이상하네군산 얘기만 나오면 왜 자꾸 화제를 돌리는 거지?

경진 내가 언제? (은수에게너 정말 안 먹을 거니?

은수 (통닭을 입에 가져가는데 눈물이 뚝 떨어진다.)

지수 (의심 가득한엄마솔직히 말해봐얼마 전에 사귀던 그 7살 연하 아저씨랑은 어떡 하다 끝난 거야다른 아무 일 없이 그냥 깨끗이 채이기만 한 거정말 맞아?

경진 (지수 머리통 치며이 기집애가 왜 지 에미 사생활에 간섭이야?

지수 뭔가 수상하니까 그렇지갑자기 보따리 싸들고 서울 온 것도 그렇고미용일 그렇게 싫다면서 미용실에 취직한 것도 그렇고... 혹시 또 남자한테 돈 떼인 거 아니야!

경진 (버럭기집애야 오두방정 좀 그만 떨지 못해!

 

바로 이때 은수의 흐느낌 소리가 높아지는 바람에 지수와 경진의 시선이 은수에게 향한다.

은수울음소리를 삼키려 우걱우걱 통닭을 입안에 때려 넣는다.

입 안 가득 통닭을 넣은 채 오열하는 은수.

지수와 경진은 할 말을 잃은 채 그런 은수를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백화점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업무를 보고 있는 준혁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선다.

준혁에게 서류철을 내미는 비서.

 

비서 인턴사원 합격자 명단입니다.

준혁 (서류를 받아 한 쪽에 두며발표는요?

비서 지금 개별 통보 중이라고 합니다이벤트 팀에서 10주년 기념행사 무대 세팅이 끝났 다고 연락왔는데요사전에 둘러보시겠다고 하셨다면서요?

준혁 시간 날 때 혼자 돌아보겠다고 얘기해 줘요신경 쓰지 말라고.

비서 예알겠습니다.

 

비서목례하고 나간다준혁보던 업무를 본다.

 

이벤트 홀

커튼 뒤 무대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은수.

빵을 꺼내 입에 물며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찍고 있다. <지수야나 합격했대믿어져?>

잠시 후지수에게 요란한 축하 문자가 들어온다.

문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은수하지만 곧 은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맛없이 빵을 우걱우걱 씹는 은수순간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쓱쓱 닦아도 연이어 떨어지는 눈물.

홀에 들어서는 준혁.

의자배치와 홀 인테리어 등을 둘러본다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무대 커튼 자락이 눈에 띄게 흐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가가 커튼 자락을 제대로 펴는 준혁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커튼을 열고 무대로 들어선다.

 

준혁 거기 누구죠누구 있어요?

 

준혁구석으로 들어가다가 바닥에 엉켜 있는 전선줄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는다.

겨우 균형을 잡고 발을 빼고 걸어가는 준혁천정에 달린 조명등이 위태롭게 움찔하지만 알아채지 못한다.

준혁의 소리에 깜짝 놀란 은수벌떡 일어나 나오다가 준혁과 마주친다.

 

준혁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은수 (급히 눈물 닦으며..저기...

 

순간준혁의 머리 위 조명등이 급강하하는 걸 보는 은수.

반사적으로 준혁의 몸을 밀쳐내지만 은수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조명등이 은수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깜짝 놀라는 준혁머리를 감싸고 있는 은수를 본다.

 

준혁 괜찮아요?

은수 (준혁을 본다.)

준혁 머리괜찮냐구요?

은수 (손을 떼며 멍한?

 

병원 CT 촬영실

CT 촬영하는 은수.

 

로비

촬영실에서 나오는 은수기다리고 있던 준혁이 일어선다.

 

준혁 다 끝났어요?

은수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럴 거 까진 없었는데요저 정말 멀쩡하거든요.

준혁 당장은 괜찮아도 모르잖아요다른 데도 아니고 머린데.

은수 제 머리가 얼마나 딴딴한데요저 박치기 왕이에요예전엔 벽돌 깨부순 적도 있어요.

준혁 (가려다가 은수를 돌아본다진지한왜 그런 짓을 하죠?

은수 (괜히 민망하다.) 어렸을 때 장난친 거죠.... 지금은 안 그래요.

준혁 .....(걸어간다.)

은수 (함께 걸으며어쨌든 괜히 돈만 버린 거 같아요검사비 대따 비싸던데...

준혁 검사비가 문제예요큰 일 날 뻔 했어요아까.

은수 .....제 머리 딴딴하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준혁 내 머린 그렇게 안 딴딴해요.

은수 ?

준혁 고마워요은수씨 덕분에 살았어요.

은수 뭐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준혁 한은수씨한테 큰 신세 졌어요잊지 않을께요.

은수 .....

준혁 아까 거기선 뭐하고 있었어요?

은수 점심이요.

준혁 (은수를 본다.)

은수 가끔 거기서 먹거든요조용하고 아무도 없어서.

준혁 앞으론 그러지 말아요외부인 들어가는 장소 아니예요거기.

은수 네... 저 인턴사원 합격했어요그 때 면접장에서 되게 떨렸었는데 상무님이...

 

은수준혁이가 걸음을 멈추고 편의점 가판대에 놓인 신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을 본다가까이 다가가는 은수준혁이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깜짝 놀란다.

주간지 표지 가득 태주와 혜린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

<재벌2세 디자이너 차혜린연인과 극비 뜨거운 밀월여행>

사진은 남국의 해변에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는 태주와 혜린의 모습이다.

너무 놀라 완전히 굳어버린 은수와 준혁.

 

동남아호텔 리조트 한국병원 로비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혜린풀에서 나와 환하게 웃으며 일광욕 중인 태주에게 다가간다.

다정하게 포옹하며 입을 맞추는 혜린과 태주.

여전히 어딘가에서 몰래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느낌이다.

패션잡지의 모델이나 된 듯 다정하고 행복한 포즈를 취하는 혜린과 태주.

혜린과 태주의 모습과 준혁과 은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교차 된다.

화면 가득 충격에 휩싸인 은수의 얼굴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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