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6
한국, 병원 로비 (낮)
은수, 준혁이가 걸음을 멈추고 편의점 가판대에 놓인 신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을 본다. 가까이 다가가는 은수, 준혁이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깜짝 놀란다.
주간지 표지 가득 태주와 혜린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
<재벌2세 디자이너 차혜린, 연인과 극비 뜨거운 밀월여행>
사진은 남국의 해변에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는 태주와 혜린의 모습이다.
너무 놀라 완전히 굳어버린 은수와 준혁.
동남아, 호텔 리조트 / 한국, 병원 로비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혜린. 풀에서 나와 환하게 웃으며 일광욕 중인 태주에게 다가간다.
다정하게 포옹하며 입을 맞추는 혜린과 태주.
여전히 어딘가에서 몰래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느낌이다.
패션잡지의 모델이나 된 듯 다정하고 행복한 포즈를 취하는 혜린과 태주.
혜린과 태주의 모습과 준혁과 은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교차 된다.
동남아 리조트 로비
서로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로비에 들어서는 태주와 혜린. 수영복에 가운 차림이다.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탄다.
동,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떼는 태주와 혜린.
혜린, 객실층 버튼을 누르자 뒤이어 태주도 다른 버튼을 누른다.
혜린은 어딘가 초조한 표정이다.
태주 마사지 할 건데, 넌?
혜린 됐어.
태주 여기까지 왔는데 마사지 정돈 받아보지 그래? 피부 관리도 할 겸.
혜린 .....
태주 사진발도 신경 쓰일 거 아냐,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렇게 자신 있어?
혜린 (태주를 본다.) 당신이나 피부 관리 잘 하셔!
태주, 피식 웃는다. 엘리베이터 문 열리자 나가는 태주.
혜린, 무표정한 얼굴로 가는 태주를 보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동, 마사지실
마사지실에 들어서자마자 서빙을 받으며 가운을 벗는 태주.
침대에 눕는다.
태주의 몸에 오일이 뿌려지며 마사지가 시작되고, 태주는 나른한 듯 달콤한 얼굴로 휴식에 젖는다.
동, 스위트룸
컴퓨터 앞의 혜린, 인터넷에 오른 태주와 혜린의 밀애장면 사진들을 확인하고 있다.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착잡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신경질적으로 컴퓨터를 닫는다.
혜린의 집, 거실
차회장, 신문을 보고 있다. 거실로 나온 윤여사, 차회장의 모습을 보자 부아가 치미는 듯 잠시 노려보다가 차회장이 들고 있던 신문을 잡아챈다.
차회장 (몹시 역정 내는) 뭐하는 짓이야, 이게!
윤여사 당신 신문에 코 박고 있는 거 꼴도 보기 싫어서 그래요, 왜요!
차회장,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신문을 집으려는데 윤여사 냉큼 신문을 밀어 놓으며 차회장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윤여사 우리 혜린이 어떡할 거예요? 당신 지금 신문이나 보고 있을 때 아니잖아. 천지사방에 난리가 났는데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할 거 아니예요, 액션을!
차회장 독이 오를 대로 바짝 오른 애야. 제정신도 아닌 놈 상대로 뭘 해?
윤여사 혜린이 당신 딸이예요! 제정신 아니라고 하나밖에 없는 딸 저렇게 내버려둘 거예요! 억지로라도 끌고 와서 머리를 빡빡 깎아놓던가! 우리 딸 인생 어떡하냐구요!
차회장 독기는 빠질 때 되면 빠져. 독기 빠지면 제 풀에 꺾이기 마련이고.
윤여사 안 그러면요! 저러다 그 이상한 놈이랑 정말 결혼이라도 한다고 나서면 어떡하냐구 요!
차회장 그렇게 제 자식을 모르나?
윤여사 !?
차회장 혜린이 그 놈, 누구보다 영악하고 똑똑한 애야. 지 손해 볼 짓 절대 하지 않아!
차회장 안방으로 들어간다. 윤여사, 열불이 가라앉지 않는다.
준혁의 사무실 (밤)
어두운 사무실. 책상의 스탠드 불만 켜져 있다.
심각한 얼굴로 인터넷의 혜린과 태주 사진을 보는 준혁.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번호를 보고 혹시나 멈칫한다.
준혁 여보세요.
혜린(f) 나야, 혜린이.
준혁 ! (긴장한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동남아, 스위트룸 베란다
통화 중인 혜린.
혜린 오빠답지 않게 흥분도 할 줄 아네? 나도 당황스러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 유명세라는 게 정말 무섭긴 무서운 건가봐. (창을 통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소파 로 가는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한다.) 나는 둘째 치고 나랑 함께 있는 사람이 이 일 땜에 아주 곤란하게 됐어. 그래서 그 사람 일로 오빠한테 부탁 좀 하려고.
창너머로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태주가 보인다.
준혁의 사무실
전화를 받고 있는 준혁. 싸늘하게 굳어진다.
준혁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동남아, 스위트 룸 베란다
통화 중인 혜린. 창 너머의 태주는 태평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혜린 오빠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야. 꼭 들 어줄 거라고 믿어.
혜린, 전화를 끊는다.
준혁의 사무실
전화를 끊는 준혁. 마음이 복잡하다.
PC방
은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잔뜩 몰두해 있는 얼굴이다.
검색창에 <재벌 디자이너 밀월> <차혜린> 등을 치면 각종 블로그의 글들과 기사들이 뜬다.
그 중 몇몇은 삭제된 것도 있다.
은수, 태주와 혜린의 사진을 찾는다. 다정한 그들의 포즈를 뚫어져라 보는 은수.
성공한 재벌가 디자이너로 차혜린을 소개한 기사들도 본다.
유난히 선명하게 나온 태주와 혜린의 사진을 넋을 잃고 보고 있는데
지수(e) 내 또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은수, 돌아보면 어느 틈에 지수가 다가와 있다.
지수 지겹지도 않냐? 맨 날 똑같은 거 뭣 하러 계속 보는 거야?
은수, 귀찮다는 듯 벌떡 일어나는데 그 바람에 은수의 가방이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잡지책이 나온다. 지수, 혜린과 태주의 표지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가 막히는데 은수 재빨리 잡지책과 가방을 들고 나간다.
지수 병이다, 병! (속상하고 걱정된다.)
지수 오피스텔
은수, 경진에게 머리를 맡긴 채 멍하니 앞에 놓인 거울을 보고 있다. 은수 머리에 퍼머기구가 늘어날수록 지수는 점점 더 걱정스럽다.
지수 아무래도 은수 쟤, 더 불쌍한 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엄마 사람 머리 처음 만지는 거라며? 그게 과연 마네킹털이랑 같을까?
경진 (천연덕스런) 그러니까 이런 기회에 실습도 해보고 좋잖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 연에는 이 방법이 최고야.
지수 (기가 막힌다.)
경진 그 놈 사귄다는 여자가 유명 디자이너에 재벌 2세라며? 얼굴도 배우 뺨치게 이쁘더 라. 그런 여자가 옆에 있는데 은수 같은 애가 눈에 들어올 리 있었겠어?
지수 이제 염장까지 지르냐?
경진 상처 극복의 첫 단계는 냉철한 현실인식이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 들여야 상처도 빨리 아무는 거거든. (거울 속의 은수를 보며 단호한 얼굴로) 은수 너, 잘 들어. 넌 처음부터 게임도 안돼는 거였어. 네가 그 여자보다 집안이 좋니? 배운 게 있니? 아니면 인물이 앞서니? 몸매가 되니? 한마디로 쨉도 안되지. 아쉬워할 것도, 미 련 둘 것도 없다구. 그러니까 싹, 잊어버려!
여전히 무표정한 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은수의 얼굴.
新 태주 오피스텔 (다른 날, 낮)
창의 블라인더를 걷어내는 혜린.
빛이 들이치며 실내의 모습이 드러난다. 널찍한 공간에 심플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현관 쪽에는 금방 여행에서 돌아온 듯 여행가방들이 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실내를 둘러보는 태주.
혜린 어때, 맘에 들어?
태주 ...그런대로. 돈 좀 썼겠어.
혜린 물론.
혜린, 옷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쪽 장롱문을 열면 남자 양복이 줄지어 걸려 있다.
혜린 이쪽은 정장이야. (서랍들 열며) 와이셔츠는 여기. 여긴 정장에 맞는 양말들. 이쪽은 벨트와 타이. 양복, 셔츠, 타이 색깔은 어울리는 것끼리 순서대로 배치한 거니까 흩뜨 리지 말고 그대로 입어. 어줍잖은 센스 부린다고 엉망으로 만들지 말라구.
태주 .....
혜린 (다른 쪽을 연다) 캐쥬얼이랑 실내복이야. 청바지랑 면바지. 상의는 이쪽. 여기 이 쪽 은 시계랑 각종 악세서리... 일주일에 두 번 세탁소에서 사람 올 거야. 옷 제대로 다림 질해서 입어. 옷 구깃구깃한 것처럼 꼴불견도 없으니까. (태주에게 자 동차 키를 던진다.) 차는 지하 2층 A-37번 칸에 주차되어 있어.
태주 (혜린이 던진 키를 받는다.) 얘기 끝났어?
혜린 대강은.
태주, 마땅찮은 듯 옷장으로 다가가 열어 놓은 장 안의 옷들을 쭉 훑어본다.
이때, 혜린의 전화벨이 울린다. 액정의 준혁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 혜린. 태주, 못마땅한 얼굴로 소파에 앉는다.
혜린 시간 칼 같이 맞추네? 도착은 오전에 했어.....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 그 때 봐, 그럼. (전화 끊고 코트와 핸드백을 챙기고 태주에게 다가간다.) 뭐해?
태주 ?
혜린 나 데려다 줘야지.
백화점 사무실 (다른 날, 낮)
우스꽝스런 퍼머 머리의 은수, 정장차림에 인턴사원 명찰을 달고, 책을 잔뜩 쌓아 들고 걸어간다. 직원1의 책상에 가지고 온 책들을 내려놓는 은수.
은수 (쪽지를 내밀며) 이 책은 안들어왔다는데요.
직원1 어.., 알았어요. 고마워요.
은수 (가려는데)
직원1 어제 맡긴 서류는 오늘 중으로 정리되는 거죠?
은수 네, 거의 다 해가요.
자리에 앉는 은수,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직원2가 서류뭉치를 은수의 책상 위에 놓는다.
직원2 5장씩 복사! 지금 당장 좀 해줘요!
은수 네.
분주하게 서류를 들고 복사기 쪽으로 가는 은수.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주와 혜린, 지나가는 사원들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없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사무실 쪽으로 걸어간다.
동,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서는 태주와 혜린.
복사를 하는 은수 옆을 지나 준혁의 방으로 향한다. 업무를 보다가 힐끗거리는 직원들.
은수는 복사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복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은수.
여직원 은수씨, 상무님 방에 손님 왔어! 차 좀 들여가 줘요.
은수 네.
동, 준혁의 사무실
태주 안녕하십니까.
준혁, 자리에 앉은 채 태주와 혜린을 번갈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파 쪽을 가리킨다.
준혁 앉아요.
태주와 혜린 앉고, 뒤이어 준혁 앉는다.
준혁 (혜린에게) 여행은 어땠어?
혜린 우리야 천하태평하게 지냈지 뭐. 와보니까 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더라.
준혁 많이 놀랬겠네.
혜린 별로. 나쁜 짓 하다 들킨 비행청소년 기분 정도?
준혁 (태주 보며) 강태주씨라구요?
태주 네. 전에 한번 뵈었었죠. 패션쇼에서.
준혁 기억나요.
태주 (빙긋이 웃는다.)
준혁 (본다.)
태주 솔직히 오기 전에 긴장했거든요. 얻어맞을 각오까지 했었습니다.
준혁 맞을 짓이라도 했다고 생각했나요?
태주 아뇨. 단지 여동생 둔 오빠 입장에선 때리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친 오빠처럼 같이 자란 사이라고 들었거든요.
이때, 은수가 차 준비를 하고 들어선다. 세 사람, 은수가 들어온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태주 계속 말을 잇는다.
태주 꽤 오픈된 분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며칠 여행하는 거 자 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재수 없게 기자한테 걸리는 바람에 시끄러워졌을 뿐이지.
태주가 등지고 있어 보지 못했다가 뒤늦게 태주 목소리에 놀란 은수가 쟁반을 떨어뜨리고 만다. 그 바람에 은수에게 집중되는 세 사람의 시선.
은수 죄송합니다...
은수, 당황한 채 쪼그리고 앉아 떨어뜨린 그릇들을 수습하는데 은수 목소리에 놀란 태주, 긴가민가하며 은수 쪽을 유심히 보다가
태주 한은수.., 너 한은수 아니야?
은수 (고개 들지 않고 깨진 컵을 쟁반에 담는다.)
태주 네가 왜 여깄는 거야?
혜린 아는 사람이야?
태주 어, 전에 옆집 살던 애.
깨진 조각을 주워 담는 은수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순간 깨진 조각에 손을 베이고 만다.
준혁, 은수의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혜린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리적거리니까 그만 나가줄래요?
은수 !
혜린 차는 됐으니까 그건 나중에 와서 치워요.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은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준혁을 본다.)
준혁 그렇게 해요.
은수, 목례하고 나간다. 태주, 신경 쓰이지만 애써 무심한 척 한다.
동, 준혁의 사무실 밖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오는 은수. 아직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상처의 피로 얼룩진 손을 내려다보는 은수.
동, 준혁의 사무실
혜린과 태주, 준혁
혜린 (준혁 보며) 본론 들어가자. 내가 말한 거, 결정했어?
준혁 아직.
혜린 결정도 안 내리고 우리 이 자리에 불렀단 말야?
준혁 명색이 사람 들이는 건데 만나는 봐야 하잖아.
혜린 만났으니까 이제 됐네, 그럼. 결정된 거지?
준혁 (혜린 무시하고 태주에게) 여기서 일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 있어요?
태주 백화점 관련 이벤트가 제 주된 업문데 가끔은 마을 경노잔치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도 했었죠. 이벤트 회사엔 워낙 다양한 일이 들어오니까요. 이제는 전문성을 살리고 싶 어요. 그게 이윱니다.
혜린 이왕 백화점으로 옮길 거, 다른 데보단 우리 백화점이 낫잖아. (다정하게 태주의 손을 잡는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한 식구 될 사람이니까.
준혁 (침착한) 결혼할 생각인가 보지?
혜린 응.
준혁 그 결혼 무산되면 어떻게 되는데?
혜린 (짐짓 책망하듯) 오빠...
준혁 (태주에게) 그 때는 회사도 그만 둘 건가요?
태주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별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혜린이나 저나 공과 사가 분 명한 편이라서요. 연애하다 헤어진다고 원수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준혁 .....
혜린 꽤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붙잡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의상실로 스카웃하려다 거절당 했어, 난.
준혁 (태주에게) 먼저 나가 있어요.
태주 ?
준혁 혜린이랑 얘기할 게 있어서요.
태주 (혜린이쪽 힐끗 보고) 네, 그렇게 하죠. (일어선다.)
혜린 (태주의 손을 놓지 않으며 다정하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태주, 혜린에게 다정하게 웃어주고 준혁에게 눈인사를 하고 나간다.
태주가 나간 뒤, 혜린과 준혁 서로 팽팽히 바라본다.
준혁 너 지금 뭐하는 거니?
혜린 뭐가?
준혁 몰라서 물어?
혜린 사랑에 빠졌을 뿐이야. 뭘 더 설명해야 돼?
준혁 .....
혜린 믿지 않았었는데 정말 그런 게 있더라구.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게.
준혁 저 남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거야?
혜린 (짐작했던 거지만 짐짓 마음 상한 듯) 혹시 뒷조사라도 했어?
준혁 물론.
혜린 그런 치사한 짓도 하니?
준혁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혜린 그래서?
준혁 외형적인 조건은 둘째 치고, 사생활도 꺼림칙해. 너랑 어울리는 상대 아니야.
혜린 꼭 어울리는 상대랑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 오빠가.
준혁 .....솔직히 못 믿겠어. 다 거짓말로 느껴져.
혜린 왜, 내가 오빠보다 훨씬 못한 상대랑 연애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아니구?
준혁 그런 생각하면서 상대 골랐니?
혜린 ! (찔린다.)
준혁 아니면 그런 말 같잖은 소리 집어쳐.
혜린 .....
준혁 네 여행, 기자까지 대동하고 갔던 거 맞지?
혜린 !
준혁 일부러 사진 찍게 하고 기사 내고 인터넷에까지 올린 거 알아.
혜린 눈치 빠르네.
준혁 네가 허술했던 거지. 그런데 나보고 그걸 믿으라구?
혜린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다고 생각하는데? 설마 오빠 보란 듯이 그랬을까봐?
준혁 !....
혜린 날 너무 애로 보는 구나..... 이제 그러지 마!
준혁 .....
혜린 나, 태주씨 사랑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다시는 어이없이 놓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랬어. 아무도 내 사랑 방해 못하게 지키려구.
준혁 .....
혜린 이제 믿을 수 있겠어?
준혁 (혜린이가 불안하고 걱정되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할만한 일 아니야, 이건. 위험한 짓 하지 마.
혜린 다른 남자 사랑하는 게 위험한 짓이니?
준혁 정말 사랑하는 거야?
혜린 응.
준혁 그 남자도?
혜린 (잠시 준혁을 바라보다가)...사랑 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알게 해 준 남자야.
준혁 !
혜린 그래서 나 지금, 무지 행복해.
준혁 !
동, 사무실 복도
복도 한 켠에 서 있는 태주. 자꾸 어딘가 마음이 쓰이는 듯 갈피를 못 잡고 서성이다가 결국 사무실 쪽으로 간다. 업무를 보고 있는 직원들을 살피는 태주.
컴퓨터 작업에 열중인 은수를 발견한다.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며 몇 번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꺼낸다.
동, 사무실 / 복도
업무를 보고 있는 은수, 베인 손가락엔 밴드를 붙이고 있다. 잠시 후 핸드폰이 진동한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한 은수, ‘강태주’를 확인하고 몹시 당황한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받는다.
태주(f) 아주 열심이네? 네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거 보니까 꽤 신선해 보인다.
은수,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복도에 서 있는 태주와 시선이 마주치는 은수.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태주 왜 그렇게 정색해? 반갑지도 않냐? 오랜만에 보는 거 같은데.
은수 .....
태주 (약간 망설이다가) 그동안 잘 지냈어?
은수 !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태주 또 술 먹고 옆에 사람 괴롭히고 그런 건 아니지?
은수 .....
태주 알바 거의 끝나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사무실 쪽으로 들어온 거야? 재주도 좋 다, 너.
은수 .....
태주 왜 아무 말도 없어? 나 혼자 계속 독백하게 할래? .......(기다려도 은수가 말이 없자) 어쨌든 앞으로 얼굴 자주 볼 거 같다. 나도 여기서 일하게 됐거든.
은수 !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태주를 본다.)
태주 왜, 싫어? 그 새 내 얼굴도 보기 싫어졌냐?
은수 (시선 돌린다.)
태주 근데 너 머리 꼴은 그게 뭐냐?
은수 !
태주 솔직히 말해 봐, 너 그거 야매로 한 거지?
은수 (발끈해서 태주 쪽을 노려본다.)
태주 (실실 웃는) 그 머리에 그 표정 참 가관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 야. 요즘에 그런 뽀글 파마 하는 애가 어딨냐? 촌스럽게. 돈 벌어서 뭐해? 젊은 애가 외모에도 좀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너 그러고 다니다 어디 연애나 제대로...
화가 치민 은수, 전화를 확 끊어버린다.
태주 어? 야..야.. (은수 쪽 보며) 저게 진짜...
태주, 다시 전화 버튼 누르려는데 이때 준혁의 방에서 혜린이 나온다.
전화기를 넣는 태주. 혜린 활짝 웃으며 태주에게 다가가고 태주도 다정하게 웃으며 혜린이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은수의 시야에 손을 맞잡는 두 사람의 손이 부각되어 보인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무너지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은수.
준혁의 방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긴 준혁.
괴롭고 골치 아픈 듯 돌아서는데 문득 은수가 떨어뜨린 깨진 컵들에 시선이 간다.
은수네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 / 복도 (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지수, 학원가방을 메고 걸어 나온다.
몇걸음 걸어가던 지수, 뭔가 느낌이 이상한 듯 뒤의 기척에 신경을 쓴다. 뒤 복도 안 쪽에서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다. 발걸음 속도를 줄였다가 빨리 했다가를 반복하는 지수.
이때다 싶은 순간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멀찍이 있던 꼬마애(슬비)와 눈이 마주친다.
단발 길이 정도의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라 언뜻 여자아이로 보인다.
지수 (손가락질 하며) 너!
그 순간, 슬비 뒤돌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계단 쪽으로 도망간다. 지수, 재빨리 슬비를 쫓아간다.
동, 계단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슬비,
‘야, 너 거기 서지 못해! 야!’ 소리를 지르며 슬비를 쫓아가는 지수.
동, 로비
로비쪽으로 뛰어나오는 슬비, 그 순간 뒤쫓아온 지수에게 꽉 잡히고 만다.
지수, 가슴에 통증을 느낀 듯 가슴을 움켜쥐고 슬비를 노려본다.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지수 너 뭐야! 왜 며칠째 사람 졸졸 쫓아다니는 거야?
슬비 .....(쳐다보기만)
지수 집 앞에서 잠복까지 하질 않나... 너.., 꼬마 변태지?
그 순간 슬비, 자신을 꽉 잡은 지수의 손을 물어버린다. 지수, 꽥 소리 지르고 그 틈에 달아나는 슬비. 지수, 쫓아가며
지수 야, 너 거기 안서!
동, 오피스텔 건물 앞
슬비를 쫓아 나온 지수, 몇걸음 뛰어가다가 때마침 걸어오던 은수와 부딪힌다. 슬비는 온데간데 없다.
지수 언니, 봤어? 봤어? 요만한 꼬맹이!
은수 (반응 없이 그냥 걸어간다.)
지수 (은수 쫓아 걸으며) 머리 곱슬곱슬해서 여기까지 오고, 눈 땡그란 애. 정말 못봤어?
은수 (전혀 관심 없다.)
지수 (슬비가 사라진 쪽을 보며) 아, 기분 되게 찝찝하네. 어린 게 벌써부터 미쳤나? 근데 여자야, 남자야?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은수를 보고) 야, 같이 가!
은수를 쫓아가는 지수.
오피스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앞에 짐을 들고 있는 호영이 서 있다. 옷가지와 간단한 살림 도구들을 챙긴 짐들이다. 로비에 들어서는 은수, 뒤이어 지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지수 언니 같이 가자니까! (혼잣말) 왜 또 심통이야?
호영, 소리가 나자 돌아본다. 무심히 고개 돌리려다가 의아한 눈으로 다가오는 은수를 다시 보는 호영. 은수, 호영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있다.
호영 저 혹시...?
은수 .....(반응 없다.)
호영 아닌가?
지수, 은수를 힐끔거리는 호영을 본다.
이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세 사람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 안
호영과 은수, 지수.
호영, 계속 은수를 힐끗거린다. 지수, 그런 호영이 신경 쓰인다.
호영 (혼잣말) 분명히 맞는 거 같은데...
지수 (호영 보며 경계하듯) 왜 자꾸 우리 언니 쳐다보는 거예요?
호영 예? 아니 뭐.....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 은수에게) 그 때 팔레스 백화점에서 마사지 모델하시지 않았어요?
은수 ?
호영 저요 그 때 태주랑 같이 있던...
태주라는 말에 은수, 멈칫하는데 바로 이때, 쿵하고 멈추는 엘리베이터, 호영 화들짝 놀란다.
은수 역시 놀란다.
호영 어, 뭐야, 이거!
지수 가끔 이래요. 워낙 낡아서.
<인터컷 3부 54씬>
태주 (O.L.)워낙 낡아서. 좀 있으면 움직일 거야.
은수, 태주가 떠올라 울컥한다.
호영 (벨 쪽을 더듬으며) 비..비상벨
지수 그거 고장인데.
<인터컷 3부 54씬>
태주 (O.L.) 그거 고장 났어.
엘리베이터가 좀 전보다 더 강하게 쿵하고 흔들거린다.
은수, 화들짝 놀라 ‘엄마야’하며 태주에게 달라붙는다.
호영, 엘리베이터 벽에 딱 달라붙는다.
호영 (울상인) 정말 괜찮은 거야? 이거 추락하는 거 아니야?
이때, 울음을 터뜨리는 은수. 지수와 호영, 갑작스런 은수의 울음에 당황한다.
지수 야, 왜 그래? ...뭐야, 창피하게! 언니!
은수의 울음 더욱 서러워진다. 주저앉아 우는 은수.
어쩔 줄 몰라 하며 은수를 바라보는 지수와 호영.
은수네 오피스텔
지수, 은수 머리에 퍼머 푸는 약을 바르며 빗질하고 있다.
지수 맘에 안 들면 말을 하지, 울긴 왜 울어? 네가 말 못하는 갓난애야? 의사표현 방법이 그렇게 없냐구?
경진 (막 세수를 마친 듯 거울 앞에서 크림을 바르며) 기집애가 진득한 맛이 없어. 아, 일 주일만 지나면 괜찮다니까 그 새를 못참아? 일류미용사가 해도 파마는 처음엔 다 이 상한 거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지수 그만 좀 해. 엄마가 자꾸 그러니까 언니가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앓이 하고 있는 거 아냐?
경진 넌 왜 꼭 중간에서 날 팥쥐엄마로 만드니? 왜 자꾸 네 언니랑 날 이간질 시키는데!
지수 (귀찮다는 듯) 아, 미안, 실수! (은수에게) 아까 그 아저씨 있지, 엘리베이터.
은수 .....
지수 태주 아저씨 친구라더라. 태주 아저씨 살던 집으로 이사 온거래. 언니도 본 적 있다던 데, 기억 안나?
은수 .....
지수 친구라는데, 두 사람 분위기 너무 다르지 않아? 완전 극과 극이야. 아까 그 아저씨 는...
은수 엄마, 우리 언제 이사가요?
경진 !!!
은수 군산 가게 정리한 돈 금방 들어온다면서요? 아직 안들어왔어요?
경진 어..., 그러게. 곧 들어오겠지 뭐.
은수 그게 언젠데요?
경진 곧.
은수 그러니까 곧이 언제쯤이냐구요?
경진 아니 얘가, 뭘 그렇게 눈 부릅뜨고 따지니? 들어올 때 되면 들어오겠지. 왜, 내가 가 게라도 날렸을까봐!
은수 그럼 내일부터 집 알아볼께요.
경진 !! 뭐?
은수 미리 알아봐놓고 돈 들어오는대로 계약하면 일이 빠르잖아요.
경진 얘 얘! 됐어. 돈 들어온 담에 천천히 해도 돼.
은수 빨리 이사 가야돼요. 이 집, 주인 들어서면 언제 쫓겨날지 모르잖아요.
경진 얘..얘는 누가 이런 집 들어온다구. 걱정하지 마, 이 집 나가려면 한참 멀었어.
은수 (버럭) 나 여기서 살기 싫단 말예요!
경진/지수 !!
은수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순 없잖아요. 우리도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야죠. 빨리 이사가요, 엄마!
이때, 급하게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수 누구야, 이 시간에? (현관으로 향하는데)
경진 (불안한 듯 다급히) 잠깐!
지수 ?
경진 열어주지 마.
지수 왜?
거칠게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는 등 소리가 시끄러워진다. 불안해하는 은수, 지수, 경진.
여사(e) 야, 지경진!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문 열지 못해! 야, 지경진!
지수 엄마 부르는 소리잖아. 문 부서지겠다!
경진 (다급한) 은수야. 나 없다 그래, 서울도 안 왔고 한번도 본 적 없다구, 알았지?
은수 ?!
동, 복도
서너명의 사람들이 은수네 집 앞에 몰려 있다.
중년의 여자(여사)와 좀 더 젊은 여자들 둘이다. 모두들 화려한 차림새다.
여사가 악에 받힌 듯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다.
여사 야, 너 정말 안 나올 거야? 이럼 내가 물러설 줄 알아! 내 돈 떼먹고 다리 뻗고 살 줄 알았냐구!
이때, 열리는 문. 은수가 고개를 내민다.
은수 저희 엄마 군산에 계시는데요, 무슨 일이세요?
여사 군산 좋아하네!
여사와 사람들 은수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은수 오피스텔
들어서는 사람들.
여사 (둘러보더니) 사는 꼬락서니 하고는... (사람들에게) 얘들아, 찾아라!
여자들, 투덜거리며 화장실이며 짐들이며 집안 이곳저곳을 거칠게 쑤신다.
‘살림 한번 기막히다.’ ‘좁아 터져서 숨을 데나 있어?’ ‘돈 나오긴 글렀네. 그대로 감옥에 쳐넣는 게 장땡이겠어.’
은수 이러지 마세요. 보면 몰라요? 우리 엄마 진짜 없다니까요!
여사,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뒤돌아 열린 현관문을 본다. 여사의 시선에 긴장하는 은수와 지수. 여사,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닫는다. 문 뒤쪽에 슬리핑백이 서 있다.
은수와 지수, 불안한 얼굴로 보는데 슬리핑백 지퍼를 여는 여사.
경진의 얼굴이 드러난다.
경진 (애써 웃으며) 형님..! 오랜만이야.
동, 복도
경진을 끌고 가는 여사와 사람들. 지수와 은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쫓아가고 있다. 때아닌 소란에 오피스텔 사람들이 문을 열고 힐끔힐끔 쳐다본다. 호영도 문을 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경진 정말 금방 연락하려고 했다니까! 내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수? 형님 돈을 떼먹게?
여사 시끄러, 내가 또 네 년 말에 넘어갈 줄 알아? 돈이고 뭐고 너 같은 건 당장에 깜빵에 쳐 넣어야 돼! 이리 와! 경찰서로 가!
경진 (싹싹 빌며) 갚을께. 꼭 갚는다니까. 여기 우리 큰애. 이번에 아주 큰 회사 들어갔거 든. 팔레스 백화점 형님도 알지? 큰 회사라 대출도 받을 수 있어. 월급도 차압 들어가 면 되구! 그리고 또.. (은수에게) 너 적금 든 것도 있지?
은수 ! 네? 엄마 그건..
경진 그 적금통장 형님 줄께. 다 갚을 수 있다니까. 이렇게 다 해결되는데 뭣하러 경찰서엘 가냐구!
은수 오피스텔
은수, 통장을 뒤로 꼭 쥐고 있다. 경진, 위협하듯 은수를 본다.
여사와 여자들은 한심하다는 듯 모녀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지수는 불안한 얼굴이다.
경진 이리 내. 당장 내놓지 못해!
은수 (필사적인) 안돼요, 이건. 엄마도 알잖아요. 이게 어떤 돈인지! 이 돈에 손대면 안돼는 거잖아요, 엄마!
경진 누가 그냥 달래? 내가 나중에 다 채운다니까! 엄말 못 믿니? 이리 내. 이리 주라니 까!
은수 엄마!
경진 네 에미 수갑 차고 깜빵 갈까! 그럼 속 시원하겠어!
경진, 은수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장을 뺏어내 여사에게 내민다.
경진 여깄어요. 형님, 우선 이것만, 응?
여사 (통장보고 기가 막힌) 너희들 이거 갖고 싸웠니? 3백 40만원? 참 나. 이걸로 날 달 래보시겠다?
경진 일단은 그거 받으시구, 얘 월급도 있다니까.
여사 (은수에게) 월급이 얼마나 되는데?
은수 인턴이라... 얼마 안 돼요.
여사 (황당하다. 경진에게) 허! 인턴주제에 대출? 차압? (버럭) 야! 너 장난해!
경진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월급 타는 족족 형님 다 드린다니까? 얘가 얼마나 착실한데! (울먹이는) 형님도 알다시피 나도 피해자잖아. 내가 일부러 그랬수? 그 천 하에 나쁜 놈 꼬임에 홀딱 넘어가는 바람에 이 모양 이 꼴로...
여사 아, 시끄러! 네 년 신세한탄 들으러 왔니? (은수를 본다. 누그러진) 큰딸이라구?
은수 네.
여사 (유심히 보더니) 좀 일어나 봐.
은수 예?
경진 (순간 눈이 반짝한다.) 아, 일어나라면 냉큼 일어나!
은수 (일어난다.)
여사 돌아봐.
은수 왜요?
경진 (위협하듯) 얘!
은수 (어색하게 제자리서 한바퀴 돈다.)
여사 쟤 머린 왜 저래?
경진 새롭게 스타일링 중이야. 풀면 더 예뻐. 애가 머릿결 하나 끝내주거든!
여사 (동료들 돌아보며) 가자. (일어서며 경진에게) 나 좀 잠깐 봐.
여사, 무리들과 나가고 경진, 따라 나간다.
지수 그놈의 연하남 땜에 가게까지 다 날린 게 틀림없어. (은수 보며) 이사 가는 거 날아간 거지?
은수 .....(절망적이다.)
지수 돈은 언제 그렇게 모았냐?..... 바보같이 그 얘긴 엄마한텐 왜 한 건데? 엄마한테 한두 번 뜯겨?
은수 .....(멍하다.)
지수 야...! 언니...(은수 눈앞에서 손 흔든다.) 충격이 너무 큰 거야?
이때 경진이 어두운 얼굴로 들어온다.
지수 어떻게 됐어? 은수는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본거래?
경진 (무시하고 은수에게 통장 던진다.) 집어넣어라.
은수 (놀란 눈으로 본다.) 어..엄마!
경진 (은수 눈길 피하며) 내가 아무리 바닥까지 갔어도 어떻게 그 돈까지 손 대겠어? 아깐 얼결에 그 형님 달래려고 그런 거야.
지수 뭐야? 그럼 돈도 안주고.., 엄마 감옥가기로 했어?
경진 은수 너...(뭔가 말하려다가 한숨쉬고) 아니다, 됐다.
은수 ?
경진 (이불 뒤집어쓰고 돌아누우며) 아이구 내 팔자야, 허구헌 날 내 인생 왜 이 모양이 냐... (표정이 어둡다.)
은수와 지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서로를 본다.
백화점 사무실 / 마케팅 팀 (다른 날)
태주, 일동에게 인사한다.
태주 안녕하십니까? 함께 일하게 된 강태줍니다.
부장 아이비프로에서 3년간 근무한 친구라 다들 안면은 있을 거야. 개중에는 이미 같이 일 해 본 사람도 있을 거니까 서로들 금방 적응할 거고. (태주에게) 그럼 수고 좀 많이 해줘요.
태주 예.
자리에 앉는 태주. 옆에 앉은 동료가 태주에게 아는 척을 한다.
동료 강태주씨랑 나란히 앉아서 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태주 잘 부탁합니다. 김대리님.
동료 (약간 빈정대듯) 부탁은 무슨, 내가 부탁드려야할 처지 아닌가?
태주 .....
동료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다 도와줄테니까. (태주 어깨 두드리며) 잘 지내보자구.
동, 사내 자료실
서가를 돌고 있는 태주. 백화점 이벤트 관련 지난 자료철들을 찾고 있다.
자료철을 빼내는데 그 틈 사이로 여자 얼굴이 언뜻 보인다.
태주, 옆의 자료철도 빼낸다. 은수다. 은수, 무심코 고개 들다가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사라져 버린다. 태주, 빠른 걸음으로 서가 끝으로 걸어가 가는 은수를 붙잡는다.
태주 왜 사람 보고 도망가냐? 뭐 찔리는 거 있어?
은수 도망 안 갔는데요. 나 지금 책 찾고 있는 거뿐이에요.
태주 머리 풀었네. (장난스레 웃는) 내 말이 맘에 걸렸구나?
은수 (무시하고 책 찾는 시늉한다.)
태주 사실 그 머리도 나름 귀엽긴 했는데. 개성도 있어 보이고. 그냥 소신 있게 쭉 밀고 나 가지 그랬어?
은수 .....(열 받는다.)
태주 너, 인턴사원이라며?
은수 .....
태주 공채로 들어왔다는 거 아냐, 그럼?
은수 .....
태주 그거, 너랑 좀 안 어울리는 거 알아?
은수 !
태주 너랑 시험이랑 이미지가 영 안 맞거든... 너 여기 다닌다니까 주변 사람들 많이 놀래 지?
은수 (화가 치민다.)
태주 어쨌든 보기보다 제법이다. 아주 능력 있어. 너.
은수 내가 공채로 들어온 게 그렇게 신기해요?
태주 어.
은수 (노려본다.)
태주 (은수의 눈초리에 당황한) 왜 그래?
은수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요?
태주 아니.
은수 근데 왜 사람 무시하고 난리예요?
태주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래?
은수 난 공채로 회사에도 못 들어갈 애로 보인다는 거잖아요!
태주 너 무슨 자격지심 있냐?
은수 자격지심이야 아저씨가 있겠죠! 낙하산(강조) 주제에 잘난 척 하기는!
태주 !
은수, 돌아서 간다.
동, 복도 / 엘리베이터 앞
걸어가는 은수. 태주 쫓아온다.
태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은수 낙하산이요.
태주 나 경력 특채로 들어온 거거든.
은수 그러니까 낙하산이죠.
태주 누가 그런 소리 해?
은수 다요. 입 달린 사람들은 다 쑤근거려요.
태주 !.....낙하산도 실력인 거 알아? 회사 오너 딸 아무나 사귈 수 있는 거 아니거든.
은수 맞아요. 나 같으면 절대 못할 짓이에요.
태주 !?
은수 할 게 없어 여자 이용해서 낙하산을 타요? (태주를 똑바로 보며) 아저씬, 자존심이 너 무 없는 거 같아요!
태주 !
은수, 재빨리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막 타려는데 뒤쫓아온 태주가 거칠게 은수를 잡는다.
태주 야, 너 말 다했어!
태주,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준혁과 눈이 마주친다.
은수도 준혁을 보자 놀란다. 태주의 손을 뿌리치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은수. 태주, 멍하니 있는데
준혁 안 탈 건가?
태주,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동, 엘리베이터 안
은수와 태주, 준혁과 직원 한명이 있다. 불편한 분위기다.
준혁 ...(은수를 본다.)
은수 ?
준혁 병원에서 결과 나왔어요?
태주 !? (무슨 소린가 싶다.)
은수 네..
준혁 뭐래요?
은수 별 이상 없대요. 제가 그랬잖아요. 별 일 없을 거라구.
준혁 (피식 웃으며) 은수씨 말대로 정말 굉장한 머리네.
은수 .....
준혁 결과는 언제 나온 거예요?
은수 며칠 전이요.
준혁 진작 알려주지 그랬어요. 걱정했잖아요.
은수 ...죄송해요. 그냥 별 거 아닌 거 같아서...
준혁 신세 지고도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언제 한번 시간 내요.
은수 네?
태주 !
준혁 식사라도 하자구요.
은수 아.., 그럴 거 까진...
준혁 아무 때나 시간 정해서 말해줘요. 그럼 내가 은수씨 시간에 맞출테니까.
은수 .....
준혁 수고해요.
준혁,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준혁과 은수의 대화 도중 내내 신경 쓰였던 태주. 준혁이 나가자 참았던 질문을 한다.
태주 무슨 얘기야, 둘이?
은수 .....
태주 저 사람이랑 친해?
은수 .....
태주 야, 네가 어떻게 신준혁 상무랑...
은수 왜요, 난 저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돼요? 나 같은 건 상무님이랑 얘기도 못하 냐구요!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내리는 은수. 태주, 따라 내리며 불쾌한 시선으로 가는 은수를 보는데 이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백화점 일각 휴게실 또는 찻집
호영, 두리번거리다가 먼발치로 태주가 오는 것을 보자 표정이 밝아진다.
팔 들어 손 흔드는 호영. 태주, 역시 밝게 웃으며 다가와 앉는다.
태주 웬일이야, 여긴? 행사 있어?
호영 응, 조그만 사은행사. 네 놈 이렇게 보니까 기분 좀 이상하다. 나 이제 외주사 직원으 로 너한테 잘 보여야 되는 거냐, 그런 거냐, 응?
태주 (웃는다.) 이사는 잘 했어?
호영 가구야 그대로 있고 옷가지만 갖고 들어간 건데, 뭐. 근데 그 건물 좀 이상하더라. 나 첫날부터 엘리베이터에 갇혔잖아.
태주 가끔 그래, 그거.
호영 나 걔도 봤다. 너 이웃사촌.
태주 !
호영 걔땜에 얼마나 놀랬는지. 그렇잖아도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이제 죽나 싶었는데 그 여 자애까지 빽빽거리고 우는 거야.
태주 ! 울어?
호영 어, 엘리베이터 멈추니까 갑자기 앙!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폐쇄공포증 있나 보더 라. 그 엘리베이터 빨리 고쳐야지 사람 잡겠어, 야.
태주 .....(맘에 걸린다.)
호영 일하긴 어때?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아니고 좀 껄끄럽진 않아?
태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동, 사무실 복도 / 사무실
착잡한 얼굴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태주. 사무실로 들어서려다가 멈칫한다.
은수가 복사기 앞에서 종이가 걸린 듯 낑낑대고 있는 것.
태주, 외면하고 지나치려는데 상무실에서 나와 걸어오던 준혁이 은수를 보고 다가간다.
걸음을 멈추는 태주. 다른 직원들 모두 관심 없이 지나치는데 은수에게 다가가는 준혁이 신경쓰인 것.
은수 역시 준혁이 오자 당황하는데 준혁, 능숙한 솜씨로 걸린 종이를 빼낸다.
준혁 걸렸다고 무조건 잡아당기지만 말고 여기 롤을 살살 돌리면서 빼내요.
은수 네, 고맙습니다. 상무님. (하던 복사를 계속 한다.)
준혁, 돌아서 나오다가 태주와 눈이 마주친다.
태주, 순간 당황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몇 걸음 옮기다가 맘에 걸린 듯 태주를 돌아보는 준혁.
혜린의 의상실
작업 중인 두세명의 직원.
혜린, 가봉된 의상을 체크하며 한 직원에게 지시하고 있다.
혜린 여기 시접이 잘못된 거 같은데. 패턴 뜬 거랑 비교 좀 해봐요.
직원 네, 선생님.
혜린 작업해보니까 어때? 원단이 이게 괜찮을까 몰라...
이때, 문이 열리고 싸늘한 인상의 윤여사가 들어선다. 직원들 긴장한다.
혜린 (침착하게 직원들에게) 잠깐 나가들 있어요.
직원들 나간다. 혜린에게 다가오는 윤여사. 혜린을 노려보며 당장 따귀를 때릴 듯 손을 쳐든다. 동요 없이 담담하게 윤여사를 보는 혜린. 윤여사, 차마 때리지는 못한 채 팔을 든 채로 부들부들 떠는데
혜린 (의자 쪽으로 가며) 이쪽에 앉아, 엄마.
윤여사, 손을 내리고 자리에 앉아 흥분 때문에 가뿐 듯 숨을 몰아쉰다.
혜린, 물을 따라 윤여사에게 내밀자,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윤여사.
윤여사 몇날 며칠을 잠도 못자고 생각해봤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전생에 뭔 죄를 지었 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진 죄가 많다고해도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이럴 수는 없 어!
혜린 미안해, 엄마.
윤여사 미안한 줄 알면 당장 집에 들어와! 이 기집애야.
혜린 싫어.
윤여사 너 정말 이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혜린 집에 간다고 아빠가 들여보내주시겠어? 그 사람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거 아니니까 걱 정하지 마. 여기 의상실에서 지내는 거 편해.
윤여사 무릎 꿇고 싹싹 빌어. 하나 밖에 없는 딸인데 아빠가 설마 내치시겠니? 아빠 아니면 이 엄마가 들여보내줄께. 나 그 정도 힘 있어!
혜린 정식으로 그 사람 인정해 줄 때까지 집에 안 들어가.
윤여사 미쳤어! 얘가! 어떻게 그런 놈을... 너, 엄마 아빠랑 연이라도 끊을 작정이니?
혜린 그건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야. 엄마랑 아빠가 결정할 문제지.
윤여사 혜린아! 너 왜 이러니, 정말. 딴 사람처럼 왜 이래!
혜린 날 너무 몰아쳤잖아. 더 이상 못 참겠어, 나.
윤여사 몰아치긴 뭘 몰아쳤다 그래! 얘, 못 참을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나! 일은 지가 저질 러 놓고 왜 되려 엄한 사람...
혜린 그만 돌아가세요. (일어나는데)
윤여사 (일어나 혜린이 잡으며) 혜린아, 혜린아! 이 엄마가 뭘 어떻게 해줄까. 어떻게 해야 네 가 정신 차리겠니? 이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혜린아.
혜린 한 번 놓쳤으면 됐어.
윤여사 뭐?
혜린 나, 이번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안 놓칠 거야. 내 마음 절대 안 바뀌어!
혜린, 나가려는데 윤여사,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귀찮은 듯 돌아보고 그냥 나가려다가 혜린, 윤여사에게 다가가 윤여사를 흔든다.
혜린 엄마.., 엄마, 일어나. 나한테 이런 거 안 통한다는 거 알잖아.
윤여사 .....
혜린 엄마, 엄마! (진짜로 정신 잃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거칠게 흔든다.) 엄마, 정신 차려! 엄마.
윤여사 (눈을 번쩍 뜬다. 멍하니 혜린을 본다.) 나 정말 기절했던 거니, 그런 거야?
혜린 .....
윤여사 나도 이제 맛이 갔나보다. (울먹이는) 다 너 때문이야, 이 기집애야!
혜린 .....
백화점 앞 (밤)
퇴근하는 직원들 사이로 서성이고 있는 경진의 모습이 보인다.
입구 쪽을 열심히 보고 있는 경진.
은수(e) 엄마!
돌아보면 은수가 있다.
은수 무슨 일이에요? 여기까지?
근처 칼국수 집
은수, 충격 받은 듯 경진을 본다.
은수 선불금이라뇨?
경진 그러니까... 아, 그 형님이 당장 돈을 안주면 기어이 감옥에 넣겠다잖아.
은수 그래서.., 선불금 받고 날 술집에 판 거예요?
경진 술집이라니! 얘가 큰일 날 소릴 하고 있어! 너 이 엄말 뭘로 보는 거니? 아무리 내 속 으로 낳은 딸 아니라고 내가 널 술집에 팔 인간으로 보여!
은수 .....
경진 (달래듯) 그냥 서빙만 하는 거야. 서빙만. 여기 칼국수 나르는 거랑 똑같아.
은수 그런데서 왜 돈을 그렇게 많이 주는데요?
경진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다행히 그 때 형님이 널 예쁘게 봐서 소 개해 준 거야. 그 일 하고 싶어 안달인 애들이 줄을 섰다더라, 얘.
은수 .....싫어요, 엄마. 나 그런 일 하기 싫어요.
경진 난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지수 수술비까지 몽땅 털리지 않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단 말야!
은수 !
경진 네 말대로 그 적금 날릴 수 없는 거잖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딸년 수술비까지 날리 는 에미는 될 수 없잖니. 사정사정해서 그 통장 겨우 빼낸 거란 말야!
은수 .....
경진 내가 내 배 부르려고 돈놀이 했니? 꽃 피지도 못하고 골골거리는 우리 지수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불쌍한 내 새끼 하루라도 빨리 병 고쳐주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거잖 야.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구!
은수 .....
경진 은수야, 우리 지수를 생각해서라도 딱 한번만 눈 감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 야. 페이도 센 편이라 몇 달만 꾹 참으면 그깟 선불금 갚고도 남는댄다.
은수 백화점 끝나고 밤에 다른 아르바이트 할께요.. 그 아줌만테 열심히 벌어서 갚겠다고...
경진 이미 돈까지 넘겨준 마당에 날더러 어쩌라구! 너 정말 이 에미 험한 꼴 당하는 거 보 고 싶어서 이래!
은수 .....
경진 (한숨쉰다.) 그래, 내 인생이 이렇지 뭐. 스물다섯에 애 딸린 홀아비한테 발목 잡혀. 3 년도 안돼 청상과부로 배다른 새끼까지 떠안아. 없어도없어도 나처럼 복 없는 년도 없을 거다. 그래도 나, 단 한번도 은수 너 버릴 생각 안 해봤다. 왜? 그래도 내 새끼니 까. 우리 지수랑 피를 나눈 피붙이니까.
은수 .....(마음이 흔들린다.)
경진 어린 두 딸 데리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고생고생 했더니만...., 까짓 거 몇 년 살다 나오지, 뭐.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무서울 게 뭐 있어? 그래, 네 에미 감옥 간다. 무시무 시한 범죄자들 들끓는...
은수 정말 서빙만 하는 거예요?
경진 !?
은수 정말이죠?
고급 레스토랑
걸어 들어오는 태주와 혜린, 태주, 기가 막히다는 듯 혜린을 본다.
태주 너네 부모님을 만나라구?
혜린 사랑하는 여자가 당신 땜에 부모까지 등지게 생겼는데 그럼 가만히 있을 거야?
태주 .....
혜린 우리 부모님께 머리 굽혀 사죄하고 날 집에 들여보내.
태주 .....참 나. 왜 그렇게 인생 복잡하게 사냐? 집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냥 네 발로 들어 가.
혜린 당신, 우리 부모님한테 점수 따게 하려는 거야.
태주 나 점수 안 따도 되거든.
혜린 따야 돼.
태주 !?
혜린 부모님한테 정식으로 인정받을 거야, 우리 관계.
태주 그런 거 없이도 목적 달성에 별 문제 없는 걸로 아는데? 뭣하러 골치 아프게...
혜린 두루뭉술한 거 싫다고 했잖아. 이왕 시작한 거 완벽해야 돼... 당신이랑 내가 결국 부 모님까지 설득하는 거 보여줄 거야.
태주 보여줘? 누구한테?
혜린 ! (당황스럽지만 티 내지 않고) 몰라서 물어?
태주 (미심쩍은 듯 잠시 혜린을 보다가 이내 별 생각 없는 듯) 매스컴이 애 다 버려놨네. 사람들 너한테 그렇게까지 관심 없거든. 피곤하게 좀 살지 마. 건강에 안 좋아.
혜린 .....
태주 그렇게 완벽완벽 부르짖다가 진짜로 결혼까지 가는 거 아니냐, 우리?
혜린 (황당한) 뭐?
태주 (혜린을 보며) 정말로 나 좋아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넘 어가려는 거 아니야?
혜린 참, 꿈도 야무지다.
태주 꿈이라기엔 악몽에 가깝겠지.
혜린, 참고 시선 돌리다가 준혁이가 입구로 들어서는 것을 본다.
준혁을 보자 혜린의 마음이 동요된다. 태주를 보는 혜린.
혜린 내 옆에 앉아.
태주 ?
혜린 연인이잖아, 우리.
태주 뜬금없긴. 싫어.
혜린, 일어나 태주 옆에 앉는다. 태주,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 혜린을 보는데 태주에게 입을 맞추는 혜린. 마침 종업원의 안내로 홀에 들어선 준혁, 혜린과 태주의 키스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는다.
태주, 입술을 떼다가 준혁과 눈이 마주친다. 혜린을 밀어내며 일어나는 태주.
태주 오셨습니까?
준혁 (애써 침착한 얼굴로 다가와 앉는다.)
혜린 (돌아보며) 늦는다면서 빨리 왔네.
준혁 (혜린의 시선 피하며) 좀 서둘렀어. 이따 약속 있어서.
혜린 (당돌한 시선으로 준혁을 보며) 명색이 오빠한테 대접하는 자린데 웬만하면 약속 취 소하지 그랬어?
준혁 (혜린 보며) 중요한 약속이야.
<시간 경과>
식사하는 세 사람. 준혁, 혜린을 대하는 태도가 왠지 딱딱하고 어색하다. 혜린, 그런 준혁의 눈치를 차린 듯 더욱 시선을 맞추며 말한다.
혜린 오빠한테 정말 고마워. 오빠마저 우리 편 아니었으면 나 정말 힘들었을 거야.
준혁 .....
혜린 태주씨 회사 들어온 거 아빠 아직 모르시지?
준혁 곧 알게 되시겠지.
혜린 괜찮겠어?
준혁 설마 날 내쫓기야 하시겠어?
혜린 생각보다 배짱 좋네. 내가 협박했다고 해. 내가 뭘 했다고 해도 더 이상 놀라시지도 않을테니까 맘껏 나한테 뒤집어 씌워.
준혁 (태주에게) 팀원들이랑은 괜찮아?
태주 첫날이라 아직 잘 모르죠.
준혁 사내에서 말들 많은 거 알지?
태주 .....
준혁 경력직이라고 해도 그다지 내놓을 만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것 땜에 불만 가진 사람들 꽤 있어. 내 입장도 그래서 난처하고.
태주 .....(기분 상한다.)
준혁 책잡히지 않도록 열심히 하란 얘기야. 오너 딸 빽으로 들어왔다는 소리야 어쩔 수 없 다 치고, 능력 없단 소리까지 들으면 혜린이나 나나 다 같이 망신이니까.
태주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형님도 많이 도와주십쇼. 회사 내에서 기댈 사람은 형님 밖에 없잖아요.
준혁 (태주를 본다.) 내가 왜 강태주씨 형님이지?
태주 촌수가 그렇잖아요. 혜린이 오라버니 되시니까.
준혁 벌써 결혼이라도 했나? 너무 앞서가지 마.
태주 반말하지 마세요, 그럼.
준혁 !?
태주 얼굴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말 듣는 거, 귀에 거슬리거든요.
준혁 자넨 내 부하직원이야.
태주 부하직원한테 모두 반말합니까?
준혁 경우에 따라서. 할만한 사람한텐 해.
태주 내가 할만한 사람입니까?
준혁 그래.
태주 몇 년생이에요?
준혁 너보다 많으니까 억울해할 거 없어.
태주 (발끈하는) 나이 몇 살 많다고...
혜린 뭐하는 거니, 두 사람! (태주에게) 반말 하면 그냥 들어. 하겠다는 데 어쩔 거야. 자기 도 오빠가 듣기 싫어하는 형님 소리 하면 되잖아. (태주와 준혁 보며) 공평하게 서로 듣기 싫은 소리하라구, 둘 다! 됐지?
태주 .....(억누른다.)
혜린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난리야, 정말.
준혁 이만 가볼께.
혜린 벌써?
준혁 (시계 보며) 늦었어. (혜린과 태주 보며) 데이트 잘해.
준혁 간다.
태주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왜 진작 얘기 안했냐?
혜린 (본다.)
태주 너네 오빠 열라 재수 없다는 거.
태주, 벌떡 일어나 나간다.
혜린, 기가 막힌 듯 가는 태주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진다.
비밀 클럽 대기실
몸매가 드러나는 야한 복장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지거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은수 역시 유니폼을 입고 화장기 있는 얼굴로 구석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 원피스의 푹 파인 가슴께를 억지로 올려 입은 모습이다.
깔끔한 인상의 관리자인 듯한 여자가 들어온다.
관리 다들 서둘러. 오늘 손님들은 vip 중에서도 초특급이야. 긴장들 바짝 하라구. (둘러보 다가 은수를 본다.) 하정언니 소개로 온 사람이 아가씨야?
은수 네?.....네..
관리 (은수를 쭉 훑어보더니) 일어나 봐.
은수 ? (일어난다.)
관리, 은수의 원피스 가슴 부분을 쑥 끌어내린다. 은수, 화들짝 놀라 다시 올리려는데
관리 (강압적인) 괜히 물 흐리지 마.
은수 ..... 근데 저기...
관리 ?
은수 정말 서빙만 하는 거 맞나요?
관리 그거야 본인하기 나름이지. 재주껏 해 봐.
은수 ?! 그게 무슨...
관리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선 단단히 자물쇠 채우는 거 알고 있지?
은수 네.
관리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입조심이나 잘해. (립스틱 내밀며) 더 칠해. 조명 받으면 그 정도는 티도 안나니까.
은수, 립스틱을 받는다. 관리 나간다.
동, 클럽 앞
속속들이 도착하는 고급차. 젊고 부유해 보이는 남녀들이 차에서 내리고, 파킹맨들이 차를 끌고 간다. 준혁의 차가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는 준혁.
동, 클럽 홀
넓은 홀에 당구대와 뮤직 스테이지, 곳곳에 테이블들이 있다.
당구를 치는 사람들, 몇몇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사람들, 한쪽에선 탭댄스 시범을 보이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등 자유로운 사교클럽 풍경이다.
그들 사이를 유니폼의 아가씨들이 술과 안주 등을 서빙하고 때론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들어서는 준혁, 안내를 받으며 한 쪽 구석에 마련된 바 쪽으로 간다.
바에는 준혁의 친구들 4명이 이미 모여 한잔 하고 있다.
모두들 고급스러운 양복 차림이다.
친구1 야, 신준혁! 오랜만이다, 자식아!
준혁 벌써들 모인 거야?
친구2 의리 없는 자식. 귀국했으면 했다고 신고했어야지. 왜 이제야 얼굴 내미는 거야?
준혁 미안해. 들어오자마자 정신없이 바빴어.
친구3 드디어 팔레스 백화점 접수했다며? 실질적인 경영자라고 소문 파다하던데?
준혁 아무리 소문이라도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 아니야?
친구3 그만큼 끝발은 있다는 거잖아.
준혁 여긴 그대로네.
친구4 우리도 한동안 뜸했어. 너 귀국환영회한다고 특별히 신경 쓴 거다, 자식아.
준혁 여전히 난 이 분위기 적응이 안 된다.
친구1 다들 모였으니까 슬슬 시작하지. 오랜만에 몸 한번 풀어 보자구.
일어서는 일동. 안내를 받으며 홀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한다.
동, 복도
준혁과 친구들 복도를 걸어간다.
이때, 끝 쪽 방에서 푸드카트를 밀며 나오는 은수. 다가오는 무리들에게 조심스레 목례를 하며 걸어간다. 준혁, 은수를 보고 순간 놀라지만, 곧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뒤늦게 그런 준혁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은수.
준혁, 은수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다.
동, 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서빙하는 은수. 준혁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무겁다.
동, 밀실
준혁과 친구들,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블에 둘러 앉아 포커를 치고 있다. 모두들 꽤 몰두한 모습이다.
친구1,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듯 초조한 얼굴이다. 결국 모두 잃고 마는 친구1.
친구1 기권!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쪽에 앉는 친구1, 몹시 불쾌한 얼굴로 테이블에 차려진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푸드 카트를 밀며 은수가 들어온다.
친구1의 테이블에 샐러드와 양주 등을 내려놓는 은수.
포커 테이블쪽으로 향하다가 준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준혁과 일행들은 게임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은수, 마음을 다잡고 포커 테이블의 재떨이 등을 교환하고 간단한 다과들을 내려놓는다.
준혁, 은수와 잠깐 눈이 마주치지만 전혀 모른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카드에 열중한다.
은수, 겨우 일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친구1 야, 너 이리와 봐.
은수 ? (다가간다.)
친구1 (샐러드 가리키며) 여기다 뭐 넣었어?
은수 네?
친구1 멀쩡한 샐러드에 왜 닭고기가 들어 있냐구!
은수 ! 그..그거야 닭가슴살 샐러드니까...
친구1 이것들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내가 샐러드 가져오랬지, 닭가슴살 가져오랬어! (샐러드 접시를 던진다.)
포커 테이블의 준혁과 친구들. 돌아보진 않아도 대충 상황을 알고 있는 눈치다.
친구2 저 새끼 또 시작이다.
친구3 아, 저 놈 성깔하곤. 꼭 끝이 저렇다니까.
준혁 .....
은수 저 여기 주문에는 분명히...
친구1 (은수의 뺨을 친다.) 이게 어디서 땍땍거리고 말대꾸야!
은수 (아픔보다는 놀람과 공포가 크다.)
이때, 준혁이 따면서 판이 끝난다. 아쉬움과 실망 섞인 함성을 내는 일동들.
모두들 은수와 친구1에는 관심 없는 눈치다.
친구1 가서 정실장 불러와.
은수 죄송합니다. 제가 금방 다른 걸로 가져올께요.
친구1 너 뭐야! 왜 사람 말을 안 듣고 계속 대꺼리야!
은수 그게 아니라...
친구1 이게 자꾸 사람 열 받게 하네! 당장 안 불러와! (은수를 밀친다.)
은수,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나는데 이때 은수를 뒤에서 잡아주는 준혁.
은수, 돌아보고 깜짝 놀라는데 준혁은 냉정한 표정으로 은수의 가슴팍에 돈다발을 던지듯 내민다. 반사적으로 돈을 받는 은수. 친구들, 준혁의 행동에 휘파람을 부는 등 야유를 시작한다.
친구2 야, 신준혁 웬일이냐! 미국 갔다 오더니 인간 변한 거야!
친구3 긍정적인 변화다. 계속 그렇게 가 봐!
친구4 자식, 나름 취향 있었잖아?
준혁, 친구들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은수의 손을 잡고 나간다.
얼떨결에 끌려 나가는 은수.
동, 클럽 앞 / 준혁의 차 안
파킹맨이 준혁의 차를 입구에 대놓는다. 클럽 입구로 나오는 준혁과 은수.
준혁 (조수석 문을 열며) 타요.
운전석에 오르는 준혁. 은수, 멍하니 하란대로 조수석에 탄다.
은수 어디 가는 거예요?
준혁 몰라서 물어요?
은수 네?
준혁 (은수를 본다.) 내가 준 판돈 받았잖아요.
은수 !? 이..이거요? 이게 왜요?
준혁 판돈 받은 여잔 그날 밤 그 남자 여자 되는 게 여기 룰인 거 몰라요?
은수 ! 그게 무슨..... (뜻을 알아챈다. 확 두려움과 모멸감이 든다.) 그..그런 게 어딨어요? 난 몰라요, 그런 거. 이거 드릴께요. 난...
준혁 (짜증스럽다는 듯) 장난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예요?
은수 돌려드릴께요. 아깐 얼떨결에 받은 거예요. 돌려드리려고 했어요. 제가 이걸 왜 받아 요? 그 무서운 아저씨 땜에 얼어 있어서... 갑자기 상무님이 오니까 이제 살았구나 싶 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단 말예요! 저 아니예요, 정말..
준혁,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두려움에 떠는 은수를 보자 순간 마음이 짠해진다.
하지만 곧 냉정을 찾고 시동을 거는 준혁.
은수 상무님, 왜 이래요. 아니라니까요, 내가 잘못했어요. 상무님!
준혁 벨트 매요!
준혁, 거칠게 차를 출발시킨다.
서해안 고속도로 / 준혁의 차 안
달리는 준혁의 차.
준혁,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고 은수는 자포자기 상태로 있다. 비참한 기분이다.
비행장 / 준혁의 차 안 (새벽녘)
비행장에 들어서 멈추는 준혁의 차. 준혁, 차 안에 있던 모포를 은수에게 내밀며.
준혁 내려요.
은수 여기가 어딘데요?
준혁 비행장이요.
은수 여긴 왜 온 건데요?
준혁 비행장에 뭐 하러 와요? (내린다.)
은수 !?
비행장 / 비행기 안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린다. 준혁과 은수가 탄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모포로 상체를 싸고 있는 은수, 잔뜩 심각한 얼굴로 아래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창공 / 비행기 안
아침이 밝아오는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날이 밝아지면서 서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점점 풍경에 도취되는 은수.
좀 전의 우울함은 잊은 채 은수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준혁의 얼굴도 부드러워진다.
은수, 골똘히 생각에 잠겨 밖을 보다가
은수 사람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비행기예요.
준혁 ? (본다.)
은수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게 공중에 뜨는 걸까요? 아무리 첨단과학이라도 비행기의 신기 함은 따라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전.
준혁 .....인공위성이나 우주선도 댈 게 아니죠.
은수 맞아요! 그건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전혀 실감이 안 나거든요!
준혁 이륙하는 순간이 제일 짜릿해요. 비행기가 기울면서 땅에서 둥 뜰 때, 지금도 가 끔 현실인가 놀랄 때가 있어요.
은수 와, 진짜 신기하다!
준혁 ?
은수 상무님이랑 저랑 똑같은 생각 하는 거요,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준혁 (웃는다.)
호영의 오피스텔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바닥에 잠들어 있는 태주. 겨우 핸드폰을 끄며 잠에서 깨어난다.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쓰며 주변을 보면, 호영은 침대에 반 걸쳐 잠들어 있고, 소주병과 안주들이 바닥에 굴러다닌다.
태주,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는데 호영, 태주의 기척에 잠이 깬다.
호영 아, 자식 왜 벌써부터 설쳐대?
태주 나 어제 여기 몇 시에 왔어?
호영 12시 다 돼서. 술이 떡이 돼서 온 놈이 또 얼마나 마셔대던지. 네 놈 상대하다가 내 속도 다 버렸다. 야.
태주 눈 더 붙여. 나 간다.
태주, 나가고 호영은 다시 잠든다.
호영 오피스텔 앞
나오는 태주, 엘리베이터로 향하다가 문득 은수네 오피스텔을 본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태주.
도로 / 준혁의 차 안
달리는 준혁의 차. 준혁 망설이듯 은수 쪽을 힐끗 본다.
준혁 .....강태주랑 이웃에 살았었다면서요?
은수 !?...네.
준혁 병원에서 같이 기사 봤을 때 아는 사람이란 얘기 왜 안했어요?
은수 ...안 물어보셨잖아요.
준혁 (잠시 사이 두다가) 강태주랑 어떤 사이예요? 구체적으로.
은수 ! 왜 그런 걸 물으시는데요?
준혁 궁금해서요.
은수 .....(준혁을 본다.)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
준혁 (본다.) 은수씨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니라 강태주한테 관심 있어요. 알고 있겠지만 집 안 일로 얽혀 있거든요.
은수 아, 예..... (잠시 생각하다가) 집안에서 반대가 심한가요?
준혁 그럼 환영하겠어요?
은수 결혼 못할 수도 있는 거예요?
준혁 왜요, 못했으면 좋겠어요?
은수 !..... 아니 왜, 뭘 물어보면 대답은 안하고 꼬리 잡는 질문만 하세요?
준혁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미안해요, 꼬리 잡는 질문만 해서.
오피스텔 앞 / 준혁의 차 안
준혁의 차가 멈춘다.
은수, 내린다. 뒤따라 내리는 준혁. 이때, 막 오피스텔 건물에서 나오려던 태주가 은수와 준혁을 본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추는 태주.
준혁 괜찮겠어요? 밤 새 한숨도 못자고 출근하는 거?
은수 하룻밤 정도야, 뭐. 제가 체력이 좀 강하거든요.
준혁 (시계 보더니) 한 30분이라도 눈 붙여요. 아무래도 좀 다르니까.
은수 네.
준혁 이따 사무실에서 봐요. 그럼. (차를 타려는데)
은수 저기요... (웃으며) 비행기 재밌었어요.
준혁, 씩 웃고는 차를 타고 떠난다.
은수, 떠나는 준혁의 차를 보다가 돌아서는데 한 켠에 삐딱하게 서 있는 태주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놀라는 은수와 그런 은수를 냉랭한 시선으로 보는 태주에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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