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7
1. 준혁의 오피스텔 복도
꾸러미 주변을 둘러보는데 뒤따라 들어오는 은수.
은수 상무님, 오늘 특별행사 준비 때문에 많이 늦으신다고 했어요.
혜린 (돌아본다. 의심쩍은) 누구죠? 주인도 없는 집에 여기 왜 있는거예요?
은수 일 때문에...상무님 일 돕고 있는데요.
혜린 (멈칫한다.) 우리..본 적 있죠?...혹시 태주씨 이웃에 살았다는...
은수 네.
혜린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예요? 근데 왜 여기서 일해요?
은수 상무님이 개인적으로 진행하시는 일이라서요.
혜린, 은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핸드폰 버튼 누른다. 하지만 준혁의 전화기는 꺼져있다.
은수, 그 사이에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혜린 거칠게 핸드폰 닫으며 소파에 앉는다.
혜린 (잠시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가) 마실 것 좀 줘요.
은수 (반사적으로 일어서려다가 멈춘다.)
혜린 마실 것 좀 달라니까요.
은수 직접 갖다 드세요.
혜린 !?
은수 저 이집 주인도 아니고 손님 접대하러 온 사람도 아니거든요.
혜린, 못마땅하지만 할 수 없이 냉장고로 가 음료수를 꺼내 마신다. 일하는 은수를 찬찬히 보다가
혜린 직원이라면서 그 쪽은 같이 야근 안해요?
은수 저는 인턴사원이라 다섯시면 퇴근이거든요.
혜린 아무도 없는데 혼자 들어와 있으라고 했단 말예요, 오빠가?
은수 거의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상무님은 항상 퇴근시간이 늦으시니까요/
혜린 !
은수, 책상 서랍을 열어 뒤져가며 서류를 찾는다. 혜린, 아무 거리낌 없이 준혁의 책상 서랍을 뒤지고
필기도구 등을 쓰는 은수를 보며 점점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3. 백화점 지하 주차장
끼익 소리를 내며 거칠게 들어서는 혜린의 차. 혜린, 급히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4.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방
준혁, 난감한 얼굴로 혜린을 보고 있다.
준혁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혜린 그러게 누가 전화기를 꺼놓으래?
준혁 ....
혜린 설명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준혁 사람 필요했고, 사무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 집에서 하라고 한 거야.
혜린 남자로 바꿔, 그럼
준혁 뭐?
혜린 사람들 말 나기 좋아. 여자 인턴사원이 혼자 사는 남자 간부집에 들락날락하는거,
누가봐도 정상으로 안보여
준혁 비정상으로 보라 그래, 그럼.
혜린 뭣하러 일부러 사람들 눈길 끄는 짓 하는 건데? 오빠답지 않잖아.
이상한 꼴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게 좋아?
준혁 나한테 그런 말 할 입장 아니잖아, 너.
혜린 !
준혁 그냥 무시하고 신경 끄면 되는거지? 나도 그렇게 할께.(일어서는데)
혜린 그 여자랑 어떤 사이야?
준혁 ? (돌아본다)
혜린 그 여자 인턴직원이랑 무슨 사이냐구.
준혁 비약이 너무 심하다, 너.
혜린 오빠, 본인 없을 때 자기 공간에 누가 들어오는 거 유난히 못 참아했던 사람이야.
오빠 없을때 나, 오빠 방 들어갈 엄두도 못 냈어. 잘못해서 책꽂이에 책 한권 비뚤어
지기라도 하면 금방 알아차리고 싫은 티 팍팍 냈었으니까.
준혁 ....
혜린 그런데 열쇠 번호까지 알려주며 마음대로 들락거리게 하고 있어, 그 여자한테.
이래두 비약이니?
준혁 응, 비약이야. 내가 까다로운 성격인 건 인정해. 그런데 우선시하는 일이 있을 때
그 정도 까탈은 참을 수 있을 만큼 어른 됐어, 이젠.
혜린 그럼 사람을 왜 못 바꾸겠다는 건데!
준혁 한은수씨가 할 일이야.
혜린 단순한 자료정리라며? 아무나 하면 어때서?
준혁 나한테 필요한 사람은 한은수니까.
혜린 !
준혁 (잠시 혜린을 노려보더니) 내 일이고, 누구한테 일을 맡기느냐는 내가 결정해. 쓸데없이
내 일에 끼어들지마.(일어나 책상쪽으로 향하며) 얘기 끝났으며 나가. 나 일해야 돼!
혜린, 열 받은 채 준혁을 노려보다가 나간다.
5.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서류를 살펴보며 복도를 걸어오는 태주,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는데
이때 씩씩대고 오던 혜린. 태주와 마주친다.
태주 여긴 무슨 일이냐?
혜린 (그제서야 태주를 알아본다. 그냥 지나쳐 가려다가 생각난 듯 다시 태주를 보며)
한은수라는 여자, 안다고 했지?
태주 !
혜린 어떤 애야, 걔?
태주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혜린 준혁 오빠 집에 그 여자가 있어.
태주 ! 뭐?
혜린 회사 일 끝나고 밤마다 거기서 아르바이트 한대.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니, 그거?
태주 ! (충격이다)
6. 동, 지하 주차장 / 혜린의 차 안
혜린,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려다가 멈춘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이 안된다. 번화 버튼을 누른다.
혜린 나예요. ..사람 좀 알아봐 줘요. 이름은 한은수, 팔레스 백화점 인턴직원이라는 거
밖에 몰라요. .....뭐든지요, 되도록 빨리.
전화를 끊는 혜린, 몹시 초조한 얼굴이다.
7. 동, 사무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태주. 아무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태주.
8. 준혁의 오피스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은수. 잠시 후 핸드폰이 진동한다. 보면 태주다.
당황하는 은수. 망설이듯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결심한 듯 핸드폰을 연다.
태주(f) 지금 뭐하냐?
은수 ........!
9. 백화점 일각 / 준혁의 오피스텔
통화중인 태주와 은수
태주 여보세요? 야, 왜 암말도 안해?
은수 왜 전화했어요?
태주 전화 좀 하면 안돼? 넌 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도끼날부터 세우냐?
은수 용건이 뭐냐구요?
태주 거기 신준혁 집이지?
은수 !
태주 거기서 일한다며?
은수 ... 그런데요?
태주 홍길동이 따로 없어요. 밤낮으로 아주 바쁘시겠어? 돈을 쓸어 모으겠다, 너.
사람이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다 쓸래?
은수 (기분 나쁘다.) 그 얘기하려고 전화한 거예요?
태주 언제 끝나?
은수 왜요?
태주 할 얘기 있으니까 끝나고 좀 나와.
은수 지금 얘기하던지 내일 회사에서 얘기하세요.
태주 너 언제부터 그렇게 튕겼냐?
은수 나 바빠요. 늦게까지 일해야 된단 말예요.
태주 늦게가 몇신데?
은수 .....
태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애가 겁도 없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는 왜 드나드는데?
그것도 밤늦게까지.
은수 무슨 소리예요?
태주 남자는 다 늑대라는 기본 상식도 몰라? 아무리 개폼 잡아도 신준혁 그 자식도
사내새끼 맞거든. 너 그렇게 어리숙하게 있다가...
은수 이 아저씨가 정말! 사람들이 다 아저씨 같은 줄 알아요?
태주 좋은 말 할때 좀 알아 먹어라?
은수 아저씨가 뭔데 상무님에 대해 함부로 말해요!
태주 !
은수 상무님, 그런 지저분한 소리 들을 사람 아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엄한 사람 모욕하지 마세요!
은수, 전화 끊는다. 하지만 곧 다시 진동하는 핸드폰. 역시 태주다.
은수 , 화가 난 듯 핸드폰 배터리를 빼버린다.
10. 백화점 일각
신호음이 멈춰버리자 화가 난 듯 전화를 끊는 태주. 발걸음을 옮기는데 먼발치로 직원 몇몇과 퇴근하는 듯한 준혁의 모습이 보인다. 결음을 멈추고 준혁을 보는 태주. 준혁과 태주의 시선이 순간 마주친다. 준혁,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고 직원들과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태주, 기분이 나쁘다.
11.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작업한 내용을 프린트로 뽑고 있다. (국내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 현황 분석, 개발도상국의 GMP, 소비 형태 분석 및 해와 유통산업진출 성공사례, 특히 인도의 유통시장 규모/경제활동 인구/중산층 비율/소매시장품목구성/쇼핑몰 증가추이 분석 etc.) 시간은 어느덧 열시가 넘고 있다. 프린트로 뽑은 서류들을 정리해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하는 등 퇴근 준비를 하는 은수.
12. 준혁의 오피스텔 근처 / 준혁의 차 안
도로에서 오피스텔 앞으로 들어가는 준혁의 차. 준혁, 핸들을 돌리려다가 걸어가는 은수를 발견한다. 은수를 쫓아가 클랙션을 울리는 준혁. 은수, 준혁의 차를 돌아본다.
13. 도로 / 준혁의 차 안
은수와 준혁
은수 전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준혁 집에 데려다주려는 거 아니예요.
은수 ?
준혁 (웃는) 식사했어요?
은수 네.
준혁 또 먹을 수 있죠?
은수 네?
준혁 난 굶었거든요. 배고파요, 많이.
14. 레스토랑
꽤 고급스런 분위기의 양식당이다. 은수, 와인을 꼴짝꼴짝 마시며 테이블 위에 놓인 대여섯장의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다. 문제의 건물 사진들이다.
은수 아무것도 없이 이 사진들만 달랑 배달된다구요?
준혁 (끄덕)
은수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준혁을 본다.)
준혁 ?
은수 이 건물이 도대체 뭘까, 궁금해 죽겠죠?
준혀 네
은수 조금 있으면 건물 가격이랑 위치 정보가 오지 않을까요?
준혁 ! 무슨 말이에요?
은수 부동산 광고요.
준혁 광고?
은수 호기심 만빵으로 부풀려 놓은 다음에 이 건물에 대한 정보를 푸는 거예요.
광고전략중에 그런게 있다고 들은 거 같거든요.
준혁 미스테리 기법을 이용한 호기심 유발과 기대감 상승효과라, 참신하네요.
은수 다른 가설도 있는데.
준혁 ? 또 있어요?
은수 잊혀진 여자요.
준혁 !?
은수 아득한 옛사랑 같은거요. (준혁을 본다.) 옛사랑이라고 하긴 너무 젊은가?
준혁 얘기해 봐요. 재밌을 거 같아요.
은수 (사진 가리키며) 소중한 추억의 장손데 상무님은 기억에 없는 거예요.
상무님을 사랑했던 여자는 상무님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사진을 계속 보내는 거구요.
준혁 (웃는다.) 나는 잊어버린 여자 따위 없는데.
은수 잊었으니까 기억 못하는 거죠.
준혁 그런가.
은수 그래서 잊혀진 여자가 젤 불쌍한 거라잖아요.
준혁 말 되네요. (사진 챙긴다.)
은수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 ...전혀 도움 안됐죠?
준혁 그냥 은수씨 생각을 듣고 싶었어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요. 재밌었어요.
은수 사실 오리지날은 아니예요.
준혁 ?
은수 그 비슷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거든요. 남자가 엄청 바람둥이라 만났던 여자들을 제대로 다 기억도 못하는 거예요. 여자가 계속 편지를 보내는데 하나도 기억 못하는거 있죠?
준혁 나쁜 놈이네.
은수 (혼잣말 하듯) 네... 무심한 것처럼 잔인한 것도 없지요.
은수, 남은 와인을 쭉 들이킨다. 준혁, 은수의 잔을 채워주며
준혁 천천히 해요. 꽤 독해요, 와인도.
은수 저도 꽤 해요, 술은. 웬만해선 끄떡도 안하거든요.
술을 마시는 은수. 준혁, 그런 은수를 바라본다.
15. 도로 / 준혁의 차 암
대리운전자가 운전을 하고 준혁과 은수 뒷좌석에 앉아 있다.
은수, 속이 안 좋은 듯 불편해 보인다. 은수의 기색을 살피는 준혁.
16. 은수네 오피스텔 근처 도로
준혁의 차가 도로 옆에 서고 은수와 준혁이 내린다.
준혁 많이 안 좋아요?
은수 (가슴 쓸어내리며) 거의 다 왔거든요. 바람 쐬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괜찮을 거예요.
상무님은 여기서 가세요.
준혁, 차의 운전자에게 뭐라 말하자 곧 떠나는 차. 은수, 의아한 듯 보면
준혁 가깝다면서요. 같이 걸어요.
은수 전 진짜 괜찮은데...
준혁 나도 바람 좀 쐬려구요.
먼저 발걸음을 옴기는 준혁. 은수 쫓아간다.
17. 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 태주의 차 안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지루한 얼굴로 앉아 있는 태주.
태주 (시계 보며) 얘는 왜 이렇게 안와...
이때 차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려본다. 준혁의 차가 길 한 켠에 멈추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고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의아한 듯 보는 태주.
18. 은수네 오피스텔 근처 골목길
준혁과 나란히 걸어가는 은수.
은수 ...그 여자분한텐 왜 그러셨어요? 그때 창고 옆방에서요.
준혁 !
은수 상무님, 대하면 대할수록 그렇게 모진 사람으로 안보이거든요. 내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준혁 ...아니니까요.
은수 ?
준혁 아닐 땐 모질게 하는 게 나아요. 그래야 상처가 적으니까.
은수 .....아닌거 같지 않았는데...? 저 그때 상무님 얼굴 봤어요.
준혁 (당황한 듯 은수를 본다. 이내 시선 돌리며 당혹스럽게 웃는다.)
은수 ! 죄..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 했나봐요.
준혁 마음에 있어도 욕심낼 수 없는 게 있어요.
은수 .....
준혁 어쩔수 없는 거잖아요. 그럴 땐.
은수 .....
19. 은수네 오피스텔 앞 길 / 태주의 차 안
걸어오는 준혁과 은수. 은수, 발이 접질러지는 바람에 몸이 갸우뚱한다. 준혁, 은수를 잡아주려는데
은수 (만류하며) 취한 거 아니예요. 돌에 걸린 거예요.
준혁 누가 뭐래요?
은수 소주 세병을 마셔도 음주측정에 안 걸릴 수 있어요, 전.
준혁 (웃는다)
은수 정말인데. 저 금을 따라 한 줄로 똑바로 걸을 수 있거든요. 볼래요?
은수, 길바닥의 금을 따라 한줄로 걷기 시작한다. 준혁, 그런 은수를 따라 걸아간다. 차 안의 태주, 은수와 준혁을 보자 긴장한다. 신경 쓰이는 듯 시끄러운 라디오를 꺼버린다. 아슬아슬하게 몇 번을 기우뚱하면서도 용케 걸어가던 은수, 갑자기 균형을 잃으며 넘어지려는데 준혁이 잡아준다.
두 사람, 얼굴이 맞닿는다. 준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은수.
은수 보고 싶지 않아요?
준혁 ?
은수 마음에 둔 사람이라면서 보고 싶지 않나요?
준혁 괜찮아요. 이젠.
은수 얼마가 지나면 괜찮아지는 건데요?
준혁 .....
은수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어디어디까지만 가면 괜찮을 거다.....
그러면...거기까지 한달음에 달려갈텐데.
준혁 눈 꼭 감고 그냥 돌아서요.
은수 ?
준혁 인연은 여기까지다. 수십번 수백번 마음에 새겨요. 그러다보면... 희미해져요.
안타까운 시선으로 준혁을 바라보는 은수.
차 안의 태주, 굳은 얼굴로 준혁과 은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20. 백화점 근처 식당 (다른 날)
호영과 태주,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호영은 식성 좋게 먹고 있고 태주는 영 밥맛이 없다.
호영 (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너 발 넓잖아. 정말 생각나는 데 없어?
태주 (건성인) 없어.
호영 이상하네.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해? 지수 걔 말이 네가 지은 죄가 있어서
자기 부탁이라면 꼭 들어줄 거라던데.
태주 뭐?
호영 (태주 유심히 보며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나...
지수 걔가 네 얘기 하는데 눈에 불꽃이 다 일더라.
태주 아, 그 쬐그만 게. (더 먹기 싫다는 듯 숟가락 놓는다.)
호영 어린 것이 돈벌이가 급하다잖아. 걔네 사정이 진짜 딱하긴 하거든.
얼마 전엔 빚쟁이들까지 몰려와서 야, 난리도 아니었어.
태주 !.....
호영 그 엄마란 사람이 완전 트러블 메이컨가봐. 걔네 언니 있지, 은수씨.
그 엄마 뒤치다꺼리 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대요.
태주 .....
호영 얘기 들어보니까 좀 안됐어. 며칠 전에도 백화점에서 한번 봤는데 얼굴이 시름에 푹 절었 더라구. 원래 이미지는 명랑소녀였잖아. 사람이 그렇게 달라 보일 수 있는거냐?
태주 .....
호영 지수 걔가 좀 되바라진 감은 있지만 지 언니 생각 하는 건 아주 끔찍해. 그래서 자기도
꼭 일을 하고 싶다는거야. 내 보기에 재주는 확실히 있어. 색깔이 약간 컬트라 그렇지
나름대로 유머도 있고 위트도 있고 잘만 다듬으면 말야...
태주, 호영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21. 혜린의 의살실 앞 주차장 / 태주의 차 안 (밤)
태주의 차가 도로를 지나 혜린의 의상실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잠시후 의상실에서 나오는 혜린, 태주의 차에 올라탄다. 혜린, 차에 타자마자 태주를 살펴보더니
타이를 매만지고 헤어스타일까지 만져 주려는데 태주, 머리를 살짝 피한다.
태주 나 꼭 가야 되는 거야, 거기?
혜린 다른 동창 모임 같은 덴 가자고 안할께. 하지만 오늘 이건 단순한 친구 모임이 아니야.
비슷비슷한 집안들끼리 모이는 일종의 사교활동이거든.
내 애인이니까 당신도 일단 그 일원부터 돼야지.
태주, 할 수 없다는 듯 굳은 얼굴로 차를 출발시킨다.
22. 도로 / 태주의 차 안
태주 여전히 굳은 얼굴로 운전하고 있다. 혜린은 혜린대로 생각에 빠져 있다.
혜린 (창가에 시선 둔 채) 준혁 오빠가 술집 여자랑 사귈 타입이라고 생각해?
태주 그런 거에 무슨 타입이 있어? ... 갑자기 그건 왜?
혜린 한은수 걔, 술집 나가던 애래.
태주 !! 뭐..?
혜린 몰랐어? 옆집에 살았었다며.
태주 누가 그런 소리 해? 잘못 안거야.
혜린 얼굴만 알던 사이라면서 뭘 그렇게 확신해? ... 비밀클럽 같은 데도 나갔었나 봐.
준혁 오빠랑 거기서 만났고, 오빠가 거기 선불금 돌려주고 빼내 준거래.
태주 ! (충격이다.)
혜린 신준혁, 정말 안하던 짓 한다... 아무리 노는 거라도 어느 정도 수준은 맞췄어야지.
천박하게 뭐애... (태주 보는) 남자들 혹시 그런 쪽에 이상한 로망 같은 거 있니?
태주 (기분 상한) 너는 어떤데?
혜린 ?
태주 너도 이상한 로망 같은 거 있어서 나 같은 놈 고른거야?
혜린 (기가 막힌 듯) 왜 얘기가 거기로 흘러?
태주 나도 너랑 수준 안 맞기는 그 쪽이나 매한가지잖아.
혜린 경우가 다르지 이건. 진짜로 연애할 때 설마 당신 같은 남자 고를 리 있겠어?
태주 ..... (치민다)
혜린 (스스로 다독이는) 하긴, 오빠도 진지한 건 아닐테니까.
마음 허하니까 잠시 바람이나 쐬는 기분으로...
태주 왜 그렇게 오빠 연애문제에 신경 쓰는데?
혜린 당연하잖아. 내 오빤데.
태주 언제는 친동기간이고 뭐고도 없다며? 너 가끔 정신 왔다갔다 하니?
혜린 뭐!
태주 나보고 신준혁 뭉개버리라고 할 땐 언제고 왜 그렇게 안절부절이냐구!
혜린 (본다.) 그걸 진담으로 들었어? 태주씨 보기보다 순진하다?
태주 !
혜린 준혁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젊은 나이에 그 자리 앉고도 딴지 거는 사람 아무도 없는 거 보면 몰라? 우리 아빠가 왜 아들 운운하면서 탐내는데! 뭉개랜다고 뭉갤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 퍽이나 당신 능력에?
태주 (폭발 직전이다.)
혜린 당신이 하도 기죽어 있으니까 보기 딱해서 던진 말이었어.
설마 그 소릴 진심으로 들을 줄은 몰랐네. 그렇게 앞뒤 분간 없어?
태주, 거칠게 차를 세운다.
혜린 뭐야, 왜 이래?
태주 내려!
혜린 삐졌니?
태주 .....
혜린 약소 시간 늦었어.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빨리 출발해.
태주 안 내려!
혜린 이봐, 강태주씨, 오늘 중요한 약속이라고 얘기했지?
태주 잘난 너나 잘난 것들끼리 모여서 잘 놀아! 난 니들 면상도 보기 싫으니까!
태주, 차에서 내린다. 황당한 듯 보는 혜린. 태주, 저만치 걸어가 택시를 잡기 시작한다.
태주가 여러 시도 끝에 택시에 올라타 떠날 때까지 혜린,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보고 있다.
23. 도로 / 택시 안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 택시. 몹시 어둡고 초조한 얼굴의 태주.
기사 손님, 어디까지 가시는지 말씀을 하셔야조. 언제까지 무작정 달리기만 합니까.
태주, 말없이 핸드폰 꺼내 버튼을 부른다.
태주 나야, 형. ...한은수 어머니 일하는 데 좀 알아봐 줘. 볼 일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얘기해 줄께. 응.
전화 끊는 태주.
24. 미용실
꽤 붐비는 미용실. 경진, 머리카락을 비로 쓸어 담고 있다.
25. 미용실 밖
창을 통해 경진을 보고 있는 태주.
어떡할까 망설이며 서성이는데 마침 고개를 드는 경진과 눈이 마주치고 만다.
놀란 듯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날 찾아왔냐는 듯 태주를 보는 경진.
태주, 긴장한 표정으로 경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26. 은수네 오피스텔 복도
몹시 피곤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가는 은수.
때마침 지수가 호영의 오피스텔에서 나온다.
은수 넌 왜 거기서 나와?
지수 언니! 굿뉴스야, 굿뉴스! 나, 알바자리 구했다 !
은수 ?
27. 은수네 오피스텔
은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은수 정말 힘든 일 아니야?
지수 일주일에 한번 A4용지 한 장도 안되는 꽁트 쓰는 건데 뭐.
어린이 신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글이 드디어 지면에 실린다는 거 아냐.
은수 공부하면서 그런 일 하는 것도 보통 일 아닐텐데. 신경 많이 쓰다 무리라도 가면...
지수 밤새 소설도 썼는데 뭐? 대신 이제 소설 쓰는 건 딱 끊을거야. 됐지?
은수 돈 안 벌어도 되니까 무리는 하지 마.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건지 알지?
지수 돈 벌려는 게 아니라 꿈을 키우는 거라니까. 자라나는 새싹 꿈 좀 꺾지 마세요, 언니야.
이때, 욕실에서 나오는 경진. 은수를 보자 괜히 찔끔한다.
은수 다녀왔어요.
경진 그래....왔니? 많이 피곤해 보인다?
은수 아니예요. (욕실로 가려는데)
경진 은수야, 잠깐만...
은수 ?
경진 이리 앉어. 얘기 좀 하자.
은수 (앉으며) 무순 일 있어요?
경진 (가방에서 돈 봉투를 꺼내 내민다.)
은수 뭐예요, 이건?
경진 이 돈 갖다 주고, 이제 그 일 그만해라.
은수 !
지수 뭐야, 갑자기 돈이 어디서 났어? 엄마 돈 빌려줄 사람 이제 씨도 말랐다고 했잖아.
경진 (은수 손을 잡으며) 나도 사람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이 에미 땜에 고생하는 너 보면서 내 속이 속이었겠니?
은수 (의아하다.)
지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경진을 본다.)
경진 밤마다 눈이 쾡해가지고 오는 널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알아?
겨우겨우 아는 사람 끌어 모아 마련한 거니까 이제부턴 밤늦게 일하는 거 그만둬라.
은수 저 괜찮은데요, 엄마.
경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그동안 얼마나 축났는지 알아?
얼굴이 아주 못 보겠어, 반쪽이야, 반쪽.
은수 그 일 힘들지 않아요, 상무님도 잘해주시구요. 대신 이 돈으로 우리, 집 구해요. 이 정도면 월세방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거 아니예요. 지수 공부도 해야하는데 쪽방이라도 따로 방 하나 있으면 좋고...
경진 아, 됐어. 집 얘긴 그만 하고 이거 주고 빨리 거기서 나오기나 해.
은수 정말 괜찮다니까. 내일부터 집 알아볼께요.
경진 얘가 왜 말을 안들어? 이 돈 집 구할 돈 아니라잖아!
은수 엄마!
경진 (뜨끔하는) 너 일하는거 안쓰러워서 힘들게 구한 거라니까. 왜 그렇게 내 맘을 모르니?
지수 평상시 엄마랑 달라도 너무 달니까 그렇지. 나도 리얼리티가 전혀 안 느껴지거든. 뭔가 따로 숨겨진 진실이 있는 거 아이야?
경진 (지수 노려보며) 저 놈의 입 저거 저거... (평소 말투 나오는) 어쨌든 당장 그 일 그만 둬!
은수 그만큼 보수 세고 편한 일자리 없어요. 놓치기 아까운 자리 왜 그만 두라는 건데요? 한푼이라도 아쉬운 우리 형편에 조금이라도 벌어야죠.
경진 아, 그 집이 강태주 그놈 처남 되는 사람 집이라며!
은수 !
경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다 큰 계집애가 남사스럽게 왜 들락거려!
은수 누...누가 그래요?
경진 그거 알아서 뭐하게? 따지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은수 혹시 .. 그 아저씨 만났어요?
경진 !
지수 맞다, 맞다. 아까 호영이 아저씨가 엄마 어디서 일하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경지 (지수 노려본다.)
은수 ! 그럼 이돈...
경진 (에라 모르겠다 싶은) 듣고 보니 그 사람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겠더만!
어마어마한 집 딸이랑 엄청난 반대 무릅쓰고 결혼하려는데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 운 거 당연하잖아. 그런데 네가 눈치 없이 주변 어슬렁거리면 신경 안쓰이겠어?
둘이 꼭 뭔 일이 있었던 건 아니래도 워낙 그쪽 집안이 대단하니까, 워낙 고고하니까,
혹시라도 책잡힐까 얼마나 노심초사하겠니? 그래도 역시 있는 집 사위 된다니까 배포하난 크더라. 이자도 필요 없대. 여유 있을 때 아무 때나 갚아도 된댄다, 마다할 이유 없잖아. 그 쪽 좋고, 이 쪽도 좋은 일인데.
은수 그래서 그 사람이 이 돈을 줬다구요?
경진 우리 딱한 사정도 있고, 자기 상황도 그거 땜에 불편해지고 그러니까
방법은 이거다, 그런거지.
은수 .....
경진 얘, 어떻게 알았는지 너 거기 나갔던 거까지 알고 있더라구,
아주 마음이 안좋았었나 보더라. 나한테 신신당부하더라구.
은수 !... 그..그거까지 알아요?
은수, 절망스럽다. 그대로 땅에 거져버릴 것만 같다. 멍한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경진 어쨌든 다들 좋자고 하는 거니까 너도 강태주 그놈이랑 연결될 만한 건 다 끊어.
자꾸 보면 애만 끓지 득 되는 거 있어?
은수, 봉투를 챙겨 든다.
경진 얘, 뭐하는 거야? 어디 가나, 너?
은수 돌려줄 거예요.
경진 아, 뭣하러!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돈을 왜 돌려줘?
은수 엄마 나 죽는 거 보고 싶어요!
경진 !
은수 나, 죽으면 죽었지 이 돈 절대 못 받아요!
은수, 경진의 만류를 물리치고 나간다.
경진 아니 쟤 왜 저래! 무슨 애가 저렇게 미련퉁이야! 이자도 안받겠다는데!
아무 때나 갚아도 된다는데!
지수도 속상한 듯 경진을 외면해 버린다.
28. 동 오피스텔 앞 길
봉투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가는 은수. 이젠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는다.
비참하고 참을 수 없이 화도 치민다.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는 은수,
인터넷 연결을 누르는 손이 부르르 떨린다. 인터넷으로 사원명부의 태주 주소를 확인한다.
29. 태주 오피스텔 건물 앞 / 태주의 차 안 (밤)
차 안의 혜린, 전화를 하고 있다. 끈질기게 들고 있지만 상대방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면 11시가 넘는 시각이다.
혜린, 다시 태주에게 전화 버튼을 누른다. 잠시 신호음을 듣고 있는데 앞 쪽을 보고 멈칫한다.
은수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 은수, 오피스텔 건물을 확인하고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혜린, 다가오는 은수를 보고 핸드폰을 끊는다. 차에서 내려 은수에게 다가서는 혜린.
혜린 한은수씨? 어떻게 또 이런데서 보네요?
은수 .....
혜린 한번 만나려고 했는데 잘됐어요. 나랑 잠깐 얘기 좀...
은수, 혜린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혜린을 지나 직진해 걸어간다.
혜린, 황당해서 돌아보면 태주가 택시에서 막 내리고 있다. 태주, 몇 걸음 옮기다가 은수와 마주친다.
태주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은수, 봉투 속의 돈다발을 꺼내 봉투와 함께 태주 얼굴에 던져 버린다. 태주 얼굴에 맞고 흩어지는 지폐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경악하는 혜린.
분노의 시선으로 태주를 노려보는 은수와 당혹스런 태주
은수 당신 뭐야, 네가 뭔데 날 비참하게 만들어! 네가 뭔데 날 동정하냐구!
태주 야.. 애 이래 너... 진정해.
은수 한번 휘저어 놨으면 됐잖아! 내가 뭘 어쨌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람 비참하게 짓이겨놓는 거야, 이 나쁜 자식아!
태주 !
은수 내가 아무리 하잘 것 없어도, 아무리 우습게 보여도 사람한테 이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거 다 죄 받아요!
강한 시선으로 태주를 노려보고는 가는 은수.
혜린, 경악에 찬 모습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겨우 감정을 억누르고 망연히 서 있는 태주에게 다가간다. 태주, 혜린을 보자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시선 돌리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혜린 그냥 갈 거야?
태주 (본다.)
혜린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눈짓하며) 안 주워? 아깝잖아. 돈?
태주, 그렇잖아도 안 좋은 기분에 혜린의 빈정거리는 눈빛을 보자 확 치민다.
차가운 눈길로 혜린을 노려보고는 그대로 혜린을 밀치고 가버리는 태주.
30. 태주의 오피스텔
태주, 심난한 얼굴로 술을 따르고 있다. 문 열리는 신호음과 함게 혜린이 들어선다.
태주, 혜린이 들어오던가 말던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소파 쪽으로 가서 앉는다.
혜린 재벌이라고 돈 찍어내며 사는 거 아니야. (태주 앞 탁자에 봉투를 집어던진다.)
폼 잡는 것도 좋지만 챙길 건 챙겨야지.
태주 .....
혜린 아까 차에서는 내가 좀 심했던 거 같아서 사과하러 온거였거든.
그런데 그럴 필요 전혀 없어져 버렸네..... 그렇지?
태주 .....
혜린 당신 꼴 아주 우습게 됐다구
태주 (못마땅한 눈길로 혜린을 노려본다.)
혜린 (경멸하듯 여유 있는 시선으로 맞받아 본다.)
태주 (상대하기도 싫다.) 야, 너 니네 집에나 좀 가라!
태주, 주방으로 가 다시 술을 따른다.
혜린 (태주에게 다가오며) 난 당신 사생활에 관심 없어. 특히나 지난 여자문제 따위는.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내 일에 영향을 끼친다면 얘긴 달라져.
태주 여자 문제 같은거 아니니까 신경꺼.
혜린 속 내용이야 어찌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태주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태주를 똑바로 보며) 겉보기에는 충분히 구질구질하고 쉰 냄새나는 신파 맞거든.
못 봐주겠더라, 아주. 잘난 척 폼이란 폼은 다 잡더니, 뭐니 너?
태주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혜린 별 것도 아닌 일에 시간 낭비 하면서 따지기도 귀찮고, 오늘 일은 없었던 거로 해줄께.
하지만 이번 한 번 뿐이야.
태주 .....
혜린 주변 정리 하나 제대로 못하고 너저분하게 질질 흘리고 다니는 꼴,
다시는 내 눈에 띄게 하지 마.
태주 .....
혜린 (태주에게 다가서며 태주의 옷깃을 움켜쥐단.) 당신은 지금 나랑 사랑에 빠졌잖아.
다른 여자랑 질척거리고 아웅다웅할 여유 당연히 있을 리 없지.
(몸을 떼며 차갑게) 앞으로 행동거지 잘하란 얘기야!
혜린, 나간다. 태주, 불쾌한 듯 시선 돌린다.
31. 백화점 화물차 전용 지하 주차장 (다은 날, 낮)
화물트럭에서 물건 상자들을 내리는 사람들. 용역인원들도 있고, 양복 차림의 사원들도 있다.
태주도 그들 사이에서 카트에 물건 싣는 일을 하고 있다.
32. 동, 화물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에 화물 카트를 싣는 태주와 직원1. 꽤 힘든 노동으로 지친 모습들이다.
태주 행사 때마다 이러는 건 아니죠?
직원1 이거는 약과야. 큰 행사 땐 사은품 나르다가 날 밤 샐때도 있어.
태주 (못 믿겠다는 듯 본다.)
직원 노가다가 따로 없지.
33. 동, 사은품 행사장
옮겨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사은품 안내 전단지와 탁자 등을 배치하느라 어수선하고 분주한 분위기다.
물건들을 지고 오기도 하고 카트로 옮겨 오기도 하는 직원들과 알바생들.
구석에서는 그 물건들을 종류별로 쌓아놓느라 정신이 없는 은수를 포함한 몇몇이 있다.
화물카트를 끌고 온 태주. 물건상자들을 옮기다가 은수를 발견한다.
짐을 정리한 은수는 상자 숫자를 파악하며 기록하고 있다.
자꾸 은수가 신경쓰이는 태주, 적당하게 기회를 봐서 짐 옮기는 척 하며 은수 쪽으로 다가간다.
은수, 태주를 보고 차갑게 외면한다.
태주 (은수를 힐끗거리며) 이제 열 좀 가라앉혔냐?
은수 (인상 구겨지며 일에 몰두하는)
태주 (은수가 대답 없자 은수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어?
은수 (확 째려본다.)
태주 아직두야? 난 정말 너 이해 못하겠다. 그게 그렇게 길길이 화낼 일이야?
은수, 앞에 놓인 짐상자들을 태주쪽으로 확 밀어버린다. 그 바람에 발을 부탖치고만 태주, ‘아야’하며 겨우 아픔을 참는다. 은수, 아랑곳없이 몸을 돌려 다른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태주, 은수를 쫓아간다.
태주 우연히 네 딱한 사정 알게 됐구,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
그게 잘못된 거야? 그게 그렇게 큰 죄냐구!
은수 .....
태주 어려울 땐 도움 받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거 가지고 나를 짓이기네 휘젓네
호들갑 떠는 건데? 그런게 자존심인줄 알아? 야, 그딴데 자존심 세워봤자...
은수 그렇게 동정심 많으신 분이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냥 지나치고 사는데요? 나 도울 여력 있으면 그 사람들이나 도와요. 그럼 잘했다고 칭찬받을 테니까.
태주 그 사람들이랑 너랑 같냐?!
은수 !...(본다)
태주 넌 내가 아는 애잖아. 아는 사람부터 도와야지, 나 그렇게 오지랖 안 넓거든.
은수 (기가 막힌) 강대리님이랑 아는 사이라서 참 영광이네요.
태주 말끝마다 비비 꼴래?
은수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날 도와주니 마니 하는 거 하지 말아줄래요?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돌아서려는데)
태주 신준혁 도움은 받으면서 내 도움은 왜 못 받겠다는 건데?
은수 !
태주 신준혁 도움 받고 그거 땜에 그 집에서 일하는 거라며. 그거는 자존심 안상하나 보지?
은수 네, 하나도 안 상해요. 고맙기만 해요.
태주 내가 하는 건 불쾌하고 신준혁 하는 건 고맙다?
은수 네.
태주 너 사람 차별하냐?
은수 (기가 차다는 듯 본다.) 난 가끔 아저씨 머리 속에 뇌가 들어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태주 ! 뭐?
은수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는 거에요?
태주 지금 나한테 머리 비었다는 소리 하고 있는 거야, 너?
은수 아니면 가슴 속에 심장이 비어 있던지요.
태주 !
은수 상대방 기분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 단 한 번도 헤아려본 적 없죠, 아저씬?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가벼울 수 있는 건데요? 뭐가 그렇게 큰 죄냐구요? 머리도 가슴도 텅텅 빈거, 그게 아저씨 큰 죄에요!
(자리 떠난다)
태주 (황당한) 뭔 소리야... (확 신경질 나는)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쟤!
태주, 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무지 나쁘고 찜찜해 죽겠다.
34. 백화점 사무실 내, 회의실
혜린과 중년의 매입부 팀장이 마주 앉아 있다.
혜린 왜 안된다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네요. 나도 신인 디자이너예요.
신인이 신인 디자이너를 위한 입점 콘테스트에 참가하겠다는 게 뭐가 잘못됐죠?
팀장 차사장님의 샤샤는 이미 브랜드 입점이 결정돼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잖습니까.
그런데 굳이..
혜린 그러니까 진행중인거 중단하라잖아요. 난 내 브랜드를 공정하게 입점시키고 싶어요.
내가 이 백화점 회장 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내 브랜드가 입점되는 거,
영 재미없고 싫다구요. 불편한 특혜예요, 그거.
팀장 .....(난감하다)
혜린 (가방 챙기며) 그럼 결정된 거죠?
팀장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콘테스트를 총괄하시는 분이 상무님이시라
먼저 상무님 결제를 받아야 합니다.
혜린 준혁오빠 방에 있죠?
팀장 상무님은 지금 외근 중이십니다.
혜린 오늘 중으로 오빠랑 얘기 끝내 놓을테니까 그 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결정된 걸로 하고 일 진행시키라구요, 아셨죠?
팀장 .....
35. 동, 복도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혜린. 이때 서너명의 인턴사원 무리들이 재잘거리며 맞은 편에서 오고 있다. 그들의 명찰을 보고 인터사원임을 알아챈 혜린. 잠시 망설이다가
혜린 저기요... 혹시 한은수씨 어딨는지 아세요?
36. 사은품 행사장
행사장 세팅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물건들은 모두 옮겨졌는지 사원들과 알바생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은수를 포함한 몇몇 직원이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다. 행사장에 들어서서 은수의 모습을 찾는 혜린. 은수에게 다가간다.
혜린 한은수씨?
은수 (고개 들어 보고 놀란다.)
37. 백화점 내 커피숍
은수와 혜린, 마주 앉아 있다. 차를 가져다주는 종업원.
은수 할 얘기 빨리 하세요. 저 일하러 가야해요.
혜린 태주씨 일, 대신 사과할께요.
은수 !
혜린 우리 태주씨가 가끔 그렇게 충동적인 데가 좀 있어요. 앞뒤 생각 않고 그때 기분에 따라 일을 저지르는 통에 나도 가끔 곤란할 때가 있죠
은수 .....
혜린 그 때 일도 마찬가지예요. 은수씨 딱한 사정 알고 순간 동정심이 솟구쳤던 모양이에요.
동정도 좋지만 상대방 자존심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참 어리석었죠. 미안해요.
나쁜 의도는 아니었으니까 마음 상했다면 푸세요.
은수 그걸 왜 그 쪽이 사과하는데요?
혜린 당연하죠. 내 약혼자 허물인데.
은수 .....
혜린 그런데... 한은수씨도 그 날 너무 한거 알아요?
은수 ?
혜린 내가 그 사람 약혼자라는거 뻔히 알면서 내 앞에서 그렇게까지 하는건 경우가 좀 아니죠.
은수 !
혜린 하마터면 오해할 뻔 했잖아요.
은수 무슨 오해요?
혜린 뻔하죠.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었나 하는 오해.
은수 .....
혜린 물론 그 오해는 금방 풀렸어요. 태주씨 말 들어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구요.
은수 !
혜린 문제는 한은수씬데... 원래 그렇게 남의 사소한 호의에 과민반응 하는 편인가요?
은수 무슨 말이에요?
혜린 앞으로 그렇게 요란하게 행동하지 말라구요. 직장도 같은데 우리 태주씨 입장이 난처해지 잖아요. 나도 마찬가지구요. 은수씨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남한테 피해주는 건 자제해야죠.
은수 .....내가 일부러라도 그랬다는 거예요?
혜린 물론 원인제공은 태주씨가 했죠. 그래서 좀 전에 사과했잖아요.
그런데 한은수씨도 잘 한건 없단 얘기예요.
은수 .....(분하다)
혜린 (입구 쪽을 보고) 어, 여기야 !
커피숍에 들어선 태주, 혜린에게 향하다가 앞에 은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은수 역시 태주의 등장에 불편하다. 혜린, 두 사람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태주 무슨 일로 부른 거야?
혜린 부탁할 거 잇어서. 계속 서 있을 거야?
태주, 혜린 옆에 앉으며 속이 타는 듯 무심코 혜린이 마시던 쥬스를 벌컥벌컥 마신다.
은수, 혜린의 컵을 마시는 태주의 자연스런 행동에 불편한 듯 시선을 피하고 혜린은 은수 앞에서
보여진 친밀한 느낌이 내심 통쾌하다. 혜린, 태주에게 자동차 키를 내민다.
혜린 오다가 은행에 잠깐 들었는데 글쎄 그 사이에 차가 견인돼 버린 거 있지?
자기가 좀 찾아다 주라구.
태주 (차 키를 받으며 난감한 듯 본다.)
혜린 (다정하고 애교있게) 나 오늘 도저히 짬이 안나서 그래.
내일 하루 종일 외근이라 차는 꼭 필요하고. 해줄거지?
태주 (할 수 없다는 듯) 견인소가 어딘데?
혜린 **동. 역시 자기 밖에 없다!
은수 (혜린과 태주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괴롭다.) 저기요, 얘기 다 끝난 건가요?
혜린 (은수를 보며) 내 얘기는 대충요, 은수씨는 할 얘기 없어요?
은수 차 값은 누가 내나요?
혜린 내가 낼께요, 내가 얘기하자고 부른 거니까.
은수 계산 잘하고 가세요. 그럼. (일어서서 나간다.)
혜린 (기가 막힌 듯 가는 은수를 본다.) 허!
태주 (혜린을 본다)
혜린 왜?
태주 쟤랑 무슨 얘기 한거야?
혜린 신경 쓸 거 없어. 여자들끼리 얘기니까.
태주 언제 수다까지 떨 정도로 쟤랑 친해졌냐?
혜린 준혁오빠 일 땜에 얘기 좀 했어. 하지 말라고 말린 순 없으니 입단속이라도 해야 할거
아냐. 이상한 소문나니 전에.
태주 (기분 상한다.) 너네 오빤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알고 있냐?
혜린 (본다.)
태주 작작 좀 해라, 좀!
태주, 테이블 위에 놓인 자동차 키를 챙기지 않고 벌떡 일어나 나간다.
38. 서울 모처 보 빌딩 앞 / 주차장
준혁의 차가 낡은 빌딩 앞에 다가와 선다.
기다리고 있던 남자 (이하 정보)가 준혁의 차에 다가가고 준혁이 내린다.
준혁 (건물을 보며) 이 건물인가요?
정보 예. 사진 속에 잡혔던 이정표를 근거로 전국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겨우 찾았습니다.
(들고 있던 사진들을 보여준다.) 저 쪽에서 찍은 겁니다. 이정표 잘린 것과 건물의 각도, (원본 사진을 내밀어 비교하며) 원본 사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준혁 어떤 건물입니까?
정보 작은 사무실들이 입주하고 있는 평범한 오피스 건물입이다. 건물주는 부동산 업자로
이 건물을 소유한지는 8년정도 됐답니다. 재정상태고 뭐고 특이한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준혁, 그동안 배달받았던 사진들과 건물을 대조해 보며 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을 문득 멈추는 준혁, 건물을 올려다 본다. 건물의 옥상이 까마득히 보인다.
준혁 더 조사해 봐요.
정보 네?
준혁 (계속 건물에 시선 둔 채) 이 빌딩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아보라구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준혁.
건물 옥상을 아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이때 준혁의 핸드폰이 울린다. 혜린이다.
39. 동, 백화점 사무실 복도 / 동, 사무실
혜린 글쎄, 오늘 내로 꼭 얘기해야 된다니까.오빠만 바쁜거 아니야. 나두 바뻐.
늦어도 좋으니까 의상실로 와. 올 때까지 기다릴께.
전화를 끊으며 사무실로 들어서던 혜린, 태주가 창 밖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전에 보지 못한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태주에게 다가가는 혜린, 낯선 태주의 분위기에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잇는데 이때 태주가 돌아서는 바람에 두 사람이 마주친다.
혜린 (자동차 키를 태주에게 내민다.) 차는 의상실 주차장에 갖다 놓으면 돼. 아무 때나
오늘 중으로만 해줘. 내일 출근은 아빠기사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태주 .....(키를 받아들고는 말없이 지나치려는)
혜린 고마워, 부탁 들어줘서.
태주, 대꾸 없이 지나쳐 자리로 돌아간다. 발걸음을 옮기던 혜린, 문득 걸음을 멈춘다.
업무를 보는 태주를 돌아보는 혜린, 뭔가 찝찝하다.
40. 혜린의 의상실 작업실 (밤)
의상 작업 중인 직원들. 혜린도 한 쪽에서 작업중이다 잠시 후, 김실장이 들어온다.
김실장 선생님, 상무님 오셨는데요.
혜린 (입구 쪽으로 나오며) 다들 그만 퇴근해요.
혜린 나간다.
41. 동, 혜린의 사무실
준혁과 혜린, 마주 앉아 있다.
준혁 그 콘테스트는 인지도 없는 업체 중 가능성 있는 브랜드를 발굴해서
입점하기 위한 자리야. 너는 자격 요건이 안돼.
혜린 그 취지가 맘에 들어. 콘테스트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실력 가린다는 거잖아.
나, 연줄에 빽 써서 백화점 입점했다는 말, 듣기 싫거든.
준혁 너 그렇게 자신이 없어?
혜린 자신 있으니까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거 아니야?
준혁 눈 가리고 아웅이다. 네가 차혜린인거 모르는 사람 있어, 백화점에?
혜린 이미 매입부 팀장안테 결정된 걸로 하고 일 진행시키라고 했어.
준혁 내 직원한테 네가 명령까지 내리니?
혜린 어차리 오빠도 오케이 할 거잖아. 결론 뻔한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니?
아니면, 아빠한테 말할까?
준혁 (못마땅하지만 할 수 없다 싶다.) ... 얘기 끝난 거지? (일어서려는데)
혜린 더 있어.
준혁 (본다.)
혜린 기분이 어때?
준혁 무슨 기분?
혜린 ... 아빠가 태주씨랑 나, 이대로 놔두고 있는 거 보고 있는 기분이 어떠냐구.
준혁 (말없이 혜린을 본다.)
혜린 (팽팽한 시선으로 준혁을 본다.)
준혁 그런 건 왜 물어?
혜린 궁금해서
준혁 너도 짐작하고 있을 거 아냐?
혜린 오빠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
준혁 ... 씁쓸해. 나는 절대 안된다더니 강태주는 일단 보류라니까, 당연하잖아. 나도 사람인데.
혜린 그말, 후회하고 있다는 걸로 들어도 돼?
준혁 .....
혜린 오빠랑 나도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결국 허락 받아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거 맞지?
준혁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혜린 아직 늦지 않았어.
준혁 !
혜린 오빠 아직 기회 있다구.
준혁 (긴장된 시선으로 잠시 혜린을 보다가) 네 잘난 약혼자가 지금 이 소리 들으면
큰일 나겠다. (일어서서 입구 쪽으로 가려는데)
혜린 (따라 일어선다.) 농담한는 거 아니야. 사람 감정 칼로 무 베듯 잘라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오빠 원하면 나, 강태주 버릴 수 있어!
준혁 ! (돌아본다)
혜린 (간절한 시선으로 보는) 오빠만 마음 바꾸면 태주씨에 대한 감정,
지금이라도 당당 접을 수 있다구.
준혁 그럼... 버려! 강태주.
혜린 !
42. 견인소 / 혜린의 차 안
견인소 사무실에서 나오는 태주. 직원의 안내에 따라 혜린의 차를 찾아 간다.
혜린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로 사무실에서 받은 서류를 접어 썬바이저에 끼워 넣는데 이때 뭔가가 뚝 떨어진다. 무심코 집어 썬바이저에 끼우려다가 멈칫하고 들여다보는 태주. 사진이다.
잘 보이지 않자 자동차 실내등을 켠다. 혜린과 준혁이 다정한 포즈로 찍힌 사진을 확인하는 태주.
화가 난다기 보다 기가 막히다.
43. 도로 / 혜린의 의상실 주차장 / 혜린의 차 안
굳은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태주.
혜린(e) 준혁 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젊은 나이에 그 자리 앉고도 딴지 거는 사람 아무도 없는 거 보면 몰라? 우리 아빠가 왜 아들 운운하면서 탐내는데 ! 뭉개랜다고 뭉갤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 퍽이나 당신 능력에?
44. 백화점, 브랜드 입점 콘테스트 행사장 (다른 날, 낮)
작은 규모의 간이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넓은 홀에는 심여개 안팎의 각 브랜드별 패션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작은 패션 박람회 분위기다. 부스는 각 브랜드의 미니매장 형식으로 꾸며지느라
부산하다. 의상세팅, 디스플에이, 브랜드를 강조한 인테리어 등.
혜린도 chatchat 부스에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있다.
혜린 쇼에 나갈 의상들은 다 챙긴 거죠? 여기 스커트는 이게 단가?
여기 스카프는 다른 색으로 좀 바꿔요.
옆 부스의 참가자들, 혜린의 부스를 힐끗거리며 자기네들끼리 떠든다.
참가1 이들 중에 세 팀만 입점되는 거라고 했지?
참가2 응. 그런데 한 자리는 이미 찼어.
참가1 무슨 말이야?
참가2 (샤샤를 힐끗거리며) 쟤네들, 샤샤. 여기 백화점 딸 거라잖아.
쟤네는 이미 내정된 거 아니겠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참가1 정말?
참가2 잘나신 분이 왜 우리 같은 평민들 싸움에 끼어드는지 몰라.
경쟁률만 높아져서 우리 머리골만 터지게.
혜린,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자 불쾌해진다. 못마땅한 눈길로 참가자들을 보면 시선 피하는 참가자들. 이때,, 실내 방송이 나온다
안내 안내방송 드리겠습니다. 현재 행사 준비작업 중이신 참가 브랜드의 대표자들께서는 지금 즉시 *층 회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주최측에서 급히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대표자 여러분들, 지금 즉히 회의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요하는 사람들. 혜린, 무대 쪽에서 준비 중이던 태주에게 다가간다.
혜린 무슨 일이야?
태주 (냉랭하게 쳐다보지도 않는) 귀 먹었어? 전달 사항 있다잖아.
태주, 먼저 앞장서 간다. 혜린, 태주가 왜 저러나 싶다.
45. 동, 복도 / 회의실 앞
은수, 상기된 얼굴로 빠른 걸음으로 가는 준혁을 쫓아가며 이야기중이다
은수 제가 왜 그걸 해야되는데요. 저보단 상무님 하시는 게 낫지 않아요?
훨씬 권위도 있고, 신뢰도 갈 거 아니예요.
준혁 내가 하게 되면 행사 목전에 두고 주최측에서 일방적으로 방침 바꾸는 거 밖에 안돼요.
당연히 뒤에 잡음도 생길거구요. 하지만 인턴사원의 깜짝제안이라고 하면 상황은 훨씬
부드러워져요. 강제성이 없어지니까요.
은수 아무리 그래도 저는 그런 자리 싫은데요. 자신 없어요, 전.
준혁 나한테 말한 그대로 하면 돼요. 은수씨 아이디어잖아요. (걸음을 멈추고 신뢰와 힘을 실어 주는 눈길로 은수를 보는) 잘 할수 있어요, 은수씬.
은수 .....
걸어가는 준혁, 은수, 준혁을 쫓아간다.
46. 동, 회의실
혜린을 포함한 10여명의 각 브랜드 대표자들과 태주를 포함한 마케팅팀 직원들이 회의석상에
앉아 있다. 브랜드 대표자들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서로 웅성인다. 혜린이를 힐끗힐끗 보며
자기네끼리 속닥이는 사람들도 있다. 혜린, 그들의 눈치가 불편하다.
이때, 문이 열리고 준혁이 들어선다. 뒤이어 들어오는 은수. 준혁과 은수가 나란히 들어오는 것을
보자 혜린과 태주의 얼굴이 굳는다. 단상 위에 올라사는 준혁.
준혁 안녕하십니까. 이번 행사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영업기획팀의 신준혁입니다. 갑작스레
여러분을 이렇게 모시게 된건 이번 콘테스트에 관해서 저희 인턴사원이 우연히 내놓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해 드릴까 해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꽤나 솔깃했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알고 싶어서요.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은수씨.
긴장한 모습으로 단상에 오르는 은수. 태주와 혜린, 역시 긴장한 시선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꾸벅) 인턴사원 한은수라고 합니다. ...이번 입점 콘테스트의 취지는 브랜드의 자본력이나 인지도, 영업능력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만으로 평가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선입견을 버린, 백지 상태의 공정한 평가라는건데...오늘 아침
행사에 참가하는 브랜드 명단을 보면서 저는 과연 그 기본 취지를 살릴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은수의 말에 긴장하는 분위기의 대표들. 특히 혜린의 신경이 곤두선다.
은수 요즘은 정보의 홍수시대라 꼭 대형 브랜드가 아니라도 인터넷이나 잡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소규모 업체들이 꽤 있는데 오늘 명단에서 바로 그런 브랜드들을 발견했거든요.
이미 그 브랜드에 관한 정보와 이미지가 서 있는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이나 고객평가단들이 처음의 추지대로 공정한 평가를 하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콘테스트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생가해봤습니다.
웅성이는 대표들. 혜린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태주, 의외의 은수 모습에 긴장한 표정이다.
준혁, 참가자들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내심 만족스럽다.
은수 참가 브랜드 모두 자신의 브랜드명을 노출시키지 않는 겁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운
부스의 광고물을 모두 삭제하고 제품에 붙은 브랜드 라벨도 제거하고, 각 브랜드에는 이름 대신 고유 번호를 주는 겁니다. 심사위원이나 고객평가단들은 브랜드 이름이 아닌 바로
그 번호를 보면서 심사하게 되는거죠. 이상이 오늘 제가 상무님께 드린 제안입니다.
은수, 목례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온다.
대표 뭡니까, 그럼. 블라인드 방식으로 결정된 겁니까?
준혁 단지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고 소개하는 것 뿐입니다, 저희는. 결정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 업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오늘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할 겁니다. 의견이
수렴되니 않은 갑작스런 방침 변경은 저희 주최측에서도 부담스런 일이니까요.
혜린 모두들 원하는 거 같은데 나만 동의하면 되겠네요. 그럼.
모두의 시선이 혜린에게 향한다.
혜린 아주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공정한 콘테스트를 원하는 입장이라 저로선 환영할만한 방식이죠. (은수 쪽을 보며)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한 업체를 타겟으로 한
느낌이 들어 조금 불쾌는 하네요.
은수 그건 샤샤의 과민반응인 거 같은데요.
혜린 ! (은수를 본다)
은수 샤샤가 이곳에 모인 다른 브랜드에 비해 인지도나 자본력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도리스나 미우같은 캐쥬얼 브랜드의 인터넷 인기도 무시못할 정도는 되거든요. 샤샤를 타 겟으로 했다는 오해는 풀어주세요. 전 단지 가장 공정한 방법을 생각해 본거 뿐이니까요.
업체 대표들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의견을 나눈다.
혜린, 은수와 준혁을 노려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있다.
태주, 혜린과 준혁 은수의 모습을 착잡하고 복잡한 눈길로 바라본다.
47. 몽타쥬
- 입접행사장 : 브랜드 홍보 포스터들을 떼어내는 부스들. 의상에 부착된 브랜드 라벨을 제거하고
비치된 업체 카달로그들도 차례로 제거되는 모습. 부스에 설치된 고객평가단표가 브랜드 명이
아닌 숫자가 명시된 것으로 바뀌는 모습.
- 탈의실 : 패션쇼를 준비하는 모델들. 모델들에게 나눠지는 숫자 명찰들. 입은 의상에 명찰을 부착하는 모델들의 부산스런 모습.
- 입점행사장 : 옅은 조명 아래 간이 무대에서 간결한 패션쇼가 진행되고, 심사위원석에 준혁을 포함한 간부직원들이 앉아 있다. 홀에는 패션쇼를 감상하는 고개들도 있고, 직워들 안내(태주포함)를 받으며 부스를 돌며 옷을 살펴보고 고객평가단에 기입해 함에 넣는 고객들도 있다.
홀 한켠에서는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는 혜린의 모습이 보인다.
간이 패션쇼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준혁, 어느 새 혜린이 다가와 있다.
혜린 나랑 얘기 좀 해.
48. 집기실 창고
각종 행사도구와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찬 꽤 넓은 규모의 실내 창고다.
구석에서 혜린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준혁을 노려보고 있다.
혜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이러고도 작정하고 개망신 준게 아니라구?
준혁 네가 원하던 대로 됐잖아.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입점하고 싶다며.
혜린 지금 그 말 하는 거 아니잖아. 꼭 그런 식으로 해야했어? 사람들 다 모인 자리에서
낄 자리 아닌데 골치 아프게 끼어든 나, 어떡해서든 해결하려는 티 팍팍 내면서 그렇게
망신 줬어야 했냐구.
준혁 그렇게 찔리 거면서 첨부터 왜 콘테스트에 들어오겠다고 한건데?
혜린 그걸 몰라서 물어?
준혁 백화점 오너 딸이라서 받는 특혜, 받기 싫다구? 그런데 너 지금 이러는 것도
백화점 오너딸이라는 빽 믿고 월권하고 있는 거라는 거 알어?
혜린 !
준혁 네가 무슨 권리로 우리 일 결정권에 관여하는 건데? 우린 우리 기준이 있고, 방식이 있어. 우리 백화점에 입점하고 싶으면 더 이상 군소리 말고 우리 방식에 따라 !
혜린 그래서 그런거야? 앞뒤 모르고 설쳐대는 나, 따끔한 맛 주려고 그 쇼를 한거야?
준혁 (달래듯) 오늘 아침에 한은수씨랑 얘기하다가 우연히 나온 의견이야. 그냥 놓치기 아까워 서 행사전에 급히 회의 소집했던 거구. 일부러 너 망신 주려고 한거 아니니까 오해 좀 풀어
혜린 일개 인턴사원이 아침에 던진 말이 그날 오후에 의사결정사항이 됐다?
너네 백화점 인턴사원 파워 굉장히 세구나?
준혁 뭐!
혜린 도대체 왜 자꾸 한은수를 싸고 도는 거냐구!
49. 입점 행사장
은수, 각 부스를 돌면서 꼼꼼히 제품들을 살펴보고 수첩에 뭔가 노트하고 있다.
고객에게 평가서 기입방법을 안내해주던 태주, 돌아서다가 은수와 마주친다
태주 퇴근 안하냐? 인턴이 이 시간까지 왜 있어?
은수 .....
태주 오늘은 알바 안가? 너 투잡족이잖아.
은수 입점 행사기간 동안은 끝까지 참관해보라고 했어요.
태주 누가? 상무님이?
은수 .....
태주 상무님 말씀 참 잘 들어요. 그 상무님은 한은수씨 말씀 참 잘 듣고.
아주 깨가 쏟아진다. 도대체 둘이 무슨 사이냐?
은수, 태주를 확 노려보고 가려는데 어느 틈에 태주가 은수의 손목을 붙들었다.
태주 이유가 뭐야? 그렇게 신준혁이랑 딱 붙어 다니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은수 유치하게 좀 굴지 말아요.
은수, 뿌리치고 가버린다.
50. 물품실
행사용 물품들 몇가지를 챙기는 은수.
51. 의상실, 혜린의 사무실
준혁과 혜린
준혁 마음에도 없는 남자랑 어울려 다니면서 억지로 웃고 있는 너, 더 이상 도저히 못 봐주겠어. 나한테 하는 화풀이, 부모님한테 하는 반항, 이쯤이면 충분해. 그러니까 그만둬.
혜린 오빠 열 받게 하려고 내가 지금 강태주랑 연극하고 있다는 거야? 착각이 너무 심하다.
그거 어느 나라 왕자병이니? 나는 너 아니면 다른 남자랑 연애도 못해!
준혁 그래, 연극 아니라고 치자. 니들 정말로 연애하는 거 맞다고 쳐. 그래도 강태주는 아니야.
혜린 뭐?
준혁 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작자야. 헤어지고 다른 남자 찾아.
혜린 너 정말 웃긴다? 네가 싫다고 버린 여자한테 남자까지 골라주려고 하니, 이제?
준혁 강태주 버리겠다고 먼저 입 뗀 건 너잖아!
혜린 !
준혁 도대체 네가 어디까지 갈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 잘 기억해 둬.
일 더 커지기 전에 멈춰. 결국 다치는 건 너니까.
혜린 !
52. 도로 / 혜린의 의상실 주차장 / 혜린의 차 안
굳은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태주.
53. 동, 좁은 복도
물품들을 들고 걸어오는 은수, 멈칫한다.
태주가 벽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 있는 것.
태주 나 궁금한 거 못 참는다고 했지?
은수 (가려는데 태주가 발로 길을 막는다.)
태주 가만히 보면 너 아주 보통이 아니야.
은수 뭐요?
태주 순진한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처세에 꽤 능한 거 같다구 너. (은수를 찬찬히 보며)
볼수록 새로운 발견이다. 이래서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거라니까.
은수 강대리님, 그렇게 심심하면 저기 쓰레기라도 좀 주우시죠.(가려는데)
태주 (막는다.) 신준혁이 너한테 조금 호의를 보이니까 이거구나 싶은 거야?
은수 비켜요.
태주 정말 걱정되서 그러는데... 너 설마 신데렐라 콤플렉스 같은 거 있는 건 아니지?
은수, 확 밀치려는데 이때 지나가는 직원. 태주, 어색하게 은수에게서 몸 떼며 자리 비켜준다.
직원이 지나가자마자 은수를 끌고 근처에 있는 창고로 들어가는 태주.
54. 집기실
태주에게 끌려 들어오는 은수.
은수 이거 놔요, 왜 이래요!
구석에 있던 준혁과 혜린, 소란에 돌아보고 깜짝 놀란다. 태주와 은수는 준혁과 혜린을 보지 못한다.
태주 당장 신준혁 집에서 일하는 거 그만 둬. 자꾸 튕기지 말고 내가 빌려주는 돈 받아.
그 돈 받아서 신준혁 주라구.
은수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예요? 왜 내 일에 상관인데요?
태주 상관 좀 하면 어때서? 상관하는데 무슨 자격증이라도 필요하냐? 너야말로 왜 이러는데? 밤마다 혼자 사는 남자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좋아? 그 짓 안할 수 있는 방법 있는 데
왜 굳이 하겠다는 거야?
은수 (어이없다는 듯 본다)
태주 너.. 정말 응큼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거냐?
은수 뭐라구요?
태주 신준혁이 네 얘기 좀 들어주니까 뭐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인가 보지? 야.. 아서라.
신준혁이 미쳤냐. 너 같은 애 상대하게? 너 형편 어렵다니 그런 헛꿈 꿔보는 거
이해는 하는데 신데렐라 그거 아무나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은수 왜 안돼는데요? 나는 왜 안돼요?
태주 (기가 막힌 듯 웃는) 야...
은수 아저씨는 되는데 나는 왜 안돼냐구요? 아저씨도 지지리 궁상 쪽방에서 살다가
여자하나 잘 물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태주 !
은수 아니예요? 명품 양복에 명품 구두, 외제 승용차까지 끌고 다니죠?
아저씨도 부자 애인 만나 인생 달라졌는데, 나는 왜 못해요?
태주 얘가.. 야, 너 왜 이렇게 흥분해?
은구 그래요, 나도 아저씨처럼 상무님 한번 꼬셔보려구 그래요. 그 사람 부자잖아요.
나도 그런 부자 남자 확 물어버리죠, 뭐. 그런 부자 애인 사귀면 나도 아저씨처럼
근사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부자 남자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맞아요. 나 아주 신났어요. 어떻게 해서든 나도 그런 남자 잡아서...
은수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린다. 태주 뒤로 다가오던 혜린과 눈이 마주친 것.
뒤이어 준혁이 있는 것을 보자 정신이 아득하다. 태주, 은수의 안색이 변한 걸 보고 뒤를 돌아본다. 혜린과 막 눈이 마주치려는 순간, 사정없이 태주의 뺨을 치는 혜린. 놀라는 은수.
태주, 싸늘한 얼굴로 혜린을 노려본다. 어쩔 줄 몰라하는 은수에게 준혁이 다가간다.
태주, 준혁까지 보자 혜린을 보는 눈빛이 더 험악해진다
이때, 은수를 끌고 나가는 준혁. 혜린, 태주의 시선에 지지 않고 태주를 노려보고 있다.
혜린 경고 했지?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안봐준다구.
태주 .....
혜린 네 애인은 나고, 네 약혼자도 나야. 그런데 어디서 되도 아닌 계집애랑 연애수작이야 !
대가를 받았으면 받은 만큼 제대로 해. 내가 널 왜 선택했는지 똑똑히 파악해서
행동하라구. 계속 이딴 식로 하면...
태주 나 짜를거냐?
혜린 ! 뭐?
태주 여자애랑 얘기 좀 나눴다고 너야말로 웬 호들갑인데? 여자들이랑 말도 섞지 말고 살까? 그런건 계약 조건에도 없잖아.
혜린 네가 그 여자랑 그냥 얘기 한 거라구?
태주 어, 평상시 대화방식이 그래, 걔랑은! 너, 지금 별 것도 아닌 거에 혼자 열 받아 있는 거거 든. 왜냐? (가까이 다가가며 혜린의 눈을 들여다 본다.) 네가 오매불망 못 잊는 신준혁이 너 아닌 한은수를 보고 있는 거 같으니까!
혜린 !
태주 그래서 불안하고 화나고 미치겠지. 나 끌어다 연극까지 했는데 신준혁 마음을 잡을 수
없으니 그 화풀이 지금 나한테 하고 있는 거잖아, 아니야?
혜린 .....(몹시 당황스럽다)
태주 (거칠게 혜린의 어깨를 붙든다.) 사람 기분 아주 제대로 더럽게 만드는 재주 있어, 너!
오빠 동생 연애싸움에 이 강태주를 이용하시겠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치사하고 꼬질꼬질 한 역할, 싫거든. 안 그래도 슬슬 신물이 나던 차였는데 차라리 잘 됐어.
관둬. 아쉬울 거 하나 없으니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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