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1
(해라) 이맘때 알프스 남쪽은 정말 근사해요
이 동네는 와인이 또 예술이거든요
가시면 와인 한 잔 꼭 하고 오세요
어? 어머 저기...
저기 잘생긴 선생님
어머, 저기 아버지, 아버지?
- 어디 가세요? - 밥 좀 먹고 오려고요
다 끝났어요, 설명회 듣고 가세요, 네?
아니, 얘기 듣다 말고 어디로 가는거여?
졸려, 배고프면
[사람들 웃음]
[경쾌한 음악]
그리고 또 이 지역은 쭈꾸미랑 꿀이 유명하니까
선물하실 거 조금씩 사 오시고요
그리고 와인 한 병 정도 챙겨 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자,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있는 화장품은
딱 요만큼만이에요 아시죠? 예?
어머니, 이건 뭐예요?
아니, 비행기에서 머리 못 감아요
숱이 많아서 이렇게 큰 거 가져가야 돼요
숱이 많으셔도 비행기에서 감을 수가 없어요
어? 이건 또...
[경쾌한 음악]
나는 김치 없으면 밥 못 먹어
가다가 뺏긴다니까? 부치는 짐에다 넣으시든가요
- 괜찮다니까 - 안 돼요, 진짜
[실랑이하는 소리]
[김치 봉투 터지는 소리]
아! 이거 어떡해, 정말
[힘쓰는 소리]
한번 더, 손!
거기 지금 스티커 안 붙은 거 있나 확인 좀 해 주세요
[서로 인사하는 소리]
네, 다녀오세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건강하세요
드디어 가, 드디어!
- 조심히 다녀오세요 - 아유, 드디어 간다
다녀오세요
[잔잔한 음악]
[학생들이 웃고 얘기하는 소리]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
[자동차 소리]
[바이올린 음악]
[차 문 닫는 소리]
[힘찬 발걸음]
[전화벨 소리]
예, 총괄 영업부 정해라입니다
아, 예, 예
아, 예 아까 전화 주셨던 고객님이시죠?
[바이올린 음악]
호텔로 개조한 고성은
중앙역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고요
고성 근처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광장에는 곧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릴 거고요
[바이올린 음악]
개보수는 좀 했지만
400년 전에 지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요
실제로 중세 때 기사가 살던 성이래요
[바이올린 음악]
지금은 홍콩인가 아시아인 남자가
성의 주인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여기는 거의 오지 않는대요
아, 글쎄요
워낙 부자니까 관리할 부동산이 많겠죠?
[바이올린 음악]
어, 네
무슨 아시아계 마피아다 애꾸눈이다
소문은 파다한데 본 사람은 없나 봐요
그 성엔 전설이 하나 있는데요
[잔잔한 음악]
탑 위에 있는 방에서 희미한 낙서를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잔잔한 음악]
우리 다시 만날 땐
영원히 함께라 믿었건만
(어린 여자) 우리 크리스마스 다가올 때 여기서 만나
아, 예 낙서는 관심 없으시다고요?
제가 그럼 이제 항공편 좀 알아봐드릴게요
다음주는 이제 화, 수, 목, 금 이렇게 가능하실 거 같고요
이스탄불 연결편이 있고요 네, 네
예, 그럼 그걸로 알아봐드릴게요
고성 호텔도 예약 알아봐드릴까요?
그래요, 알아봐 주세요
소문 나쁜 그 성 주인도
지금 와 있으면 재밌겠네요
연락 기다릴게요
[타악기 소리]
[신비로운 음악]
[칼 빼는 소리]
난 죽을 수 없다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
정신 차려라!
그 남자는 네 남자가 아니야
[깊은 한숨 소리]
다음 생애라는 게 있다면
그땐 꼭 좋은 곳에서 태어나거라
이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야 해
[음울한 음악]
자기야
난 오늘도 야근
유럽 항공사 파업한대서 밤새야 할 것 같아
[음료수 여는 소리]
우리 해라 피곤하겠다
나도 아직 검사실이야
일 대충하고 빨리 퇴근해
집에 가면 꼭 문자하고
내일 보자
보고 싶어
나도 많이
[타악기 소리]
[관능적인 느낌의 음악]
[샤워 소리]
[의자에 앉으며 신음]
[초인종 소리]
누구세요?
[병과 나무 부딪히는 소리]
[외국어로 대화]
[병 깨지는 소리]
[외국어로 대화]
조심해요, 다치지 말고
[발걸음 소리]
[한숨 소리]
[외국어로 대화]
[발걸음 소리]
[외국어로 대화]
[긴장감 넘치는 음악]
[외국어로 대화]
[바람부는 소리]
[철갑옷이 떨어지는 소리]
[긴장감 넘치는 음악]
[외국어로 대화]
[긴장감 넘치는 음악]
[외국어로 대화]
[두드리는 소리]
야, 요즘 명품은 다 이런 거냐? 어?
아니, 뭐 붙일 수도 없게 해놨어
요즘 옷핀으로 해논 것도 많더만
언니 같은 사람 때문에 그렇지
한 번 입고 환불하거나 내다 파는 사람
야, 이거 봐봐, 봐봐 이만하면 됐지?
[옷 터는 소리]
어, 떨어졌다, 어떡해
- 더 붙이자 - 야, 이거 네가, 네가 해봐
결재 받고 올게
- 다녀오세요 - 응
[전화벨 소리]
전화, 전화 왔어요
네가 좀 하고 있어봐
예, 안녕하세요 정해라입니다
내가 보내준 옷 입고 왔니?
그거 팔아서 월세 내고 지지리 궁상으로 온 건 아니지?
이따 보면 알겠지
아, 오늘 지명 그룹 장남도 온대
근데?
네 남친도 오는 거지?
당연하지
그 잘난 검사 남친
드디어 보여 주네
야, 너 신혼여행 결정했어?
나한테 해, 내가 잘해줄게
야! 정해라 어딨어?
당장 나오라 그래, 어?
잠깐만
무슨 일이세요?
태공 물산 조 부장님이세요?
너야? 이런!
야!
어머, 왜 이러세요?
야, 너, 나 엿 먹이려고 작정했냐?
마누라 맨날 핸드폰 뒤져보는데
하코네 온천 예약 문자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사모님 아닌 분과 가시는 여행
전 부탁하신 대로 예약 문자 넣지 않았습니다
이거 일본 호텔에서 보낸 거네요
확, 씨!
우리 회사 출장 계약
이제 다른 여행사한테 맡길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어?
- 이런, 씨! - 사과 안 하십니까?
이게 진짜!
저 CCTV 증거 자료로 제출해서
당신 폭행으로 고소할 거야
[문 열리는 소리]
- 헤이, 마르코! - 헤이, 수호!
[외국어로 대화]
[잔 부딪히는 소리]
수호
[외국어로 대화]
[잔잔한 음악]
[외국어로 대화]
근데 아마 날 못 알아볼 거예요
괜찮아?
미친놈 아니야? 애 얼굴을...
니네 안 말리고 뭐 하고 있었니?
저는 말렸는데... [전화벨 소리]
아, 진짜 환장하겠다, 진짜 괜찮아?
- 괜찮아? - 네
여보세요
경찰서요?
최지훈 검사랑 공조 수사 중인데
잠깐 도움 말씀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온 김에 조기성도 고소하고 가면 딱이겠네
[발걸음 소리]
자기야
자기야
무슨 일이야? 오늘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응?
뭐, 게이트 같은 데 연루된 거야?
억울하게?
어? 자기야
야, 차지훈!
[힘찬 발걸음]
[극적인 음악과 해라의 비명]
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에이, 에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
[경찰들이 말리는 소리]
내 돈 8천 내놔 이 나쁜 새끼야
아, 왜 이래요, 진짜?
자기야, 아우, 진짜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진짜
뭐야? 이렇게 빈티 나는 여자 돈까지 뜯은 거야?
이 사람 백수예요
검사 아니라고
[코믹한 느낌의 음악]
이보세요
뭔가 오해가 좀 있으신가 본데
뉴스 많이 나오는 그 중앙 지검 특수부
강재준 검사 아시죠?
설렁탕 집에서 그분이랑 인사하는 거
제가 많이 봤거든요
- 예? 그러니까... - 어머니가...
신림동에서 하숙집을 운영하셔서
친한 법조인이 꽤 있답니다
입술은 왜 그래, 터졌니?
[한숨]
이 상황에서 웃긴 말이지만
나 해라씨 정말 좋아했어
내가 언제 돈 달라고 한 적 있어?
없잖아, 왜 그랬겠어?
사랑해서 그랬지
왜 거짓말했어?
왜 구차하게 가짜 검사인 척했냐고
돈도 없는 나한테
불쌍해서 그랬어
뭐가 불쌍한데?
너의 모든 것이 불쌍해
[재즈풍의 음악]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
어머, 안녕
정 이사님 막내딸
- 아아, 네, 안녕하세요 - 인사했었지
- 어머, 안녕하세요 - 아, 뭐야?
- 결혼 축하드립니다 - 아우, 감사합니다
근데 요즘 그쪽 분위기는 좀 어때요?
아, 제 친구 남친도 최지훈 검사라고
대검찰청 범죄 정보 기획팀? 거기 있대요
그쪽이면... 최고 엘리트시네요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나 총장까지 되겠는데요?
어머, 어머
그건 뭐 봐야 알죠
도착할 때가 됐는데
잠시만요, 잠깐만
잘나가는 검사 남친 생겨서
네가 막 자신감 갖는 걸 보니까 안쓰러웠어
그래서 말할 수도 떠날 수도 없었어
다른 여자들한테 돈 뜯어서 뭐 했어?
아, 뭐 그런 걸 물어봐?
[의자 끄는 소리]
나 자기 정말 많이 좋아했어
따뜻하고, 내 얘기 잘 들어주고
그 무엇보다...
검사라서 더 좋았어
그것 봐
근데 지금은...
자기가 검사가 아니어도 좋아할 수 있을 거 같아
[코믹한 느낌의 음악]
나한테 시간을 좀만 더 줘
그럼 안 돼, 해라 씨 그렇게 살면 영원히 고생해
일단 받은 돈은 돌려주고 구속만 좀 면해 봐, 응?
해라 씨, 나 이제 당신 안 만나
돈 없는 여자 나 싫어
뭐?
[한숨]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해라 씨
앞으로 근사한 남자가 나타나서 사랑한다 그러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왜?
어릴 때 부모 잃고 이모까지 부양하는 여자를
요즘 누가 만나겠어?
[음악 갑자기 끊김]
[책상에 수갑이 긁히는 소리]
아, 그러니까 마음 다잡고 혼자 살 생각 해요
외롭다고 흔들리지 말고
오케이
[잔잔한 음악]
근사한 남자가 당신한테 다가오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그런 놈들은 살인마거나
장기가 필요한 사람이야
[집기 넘어지는 소리]
아,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그동안 즐거웠다
속여줘서 아주 그냥 고마웠고
그래, 그렇게 도망쳐야 해 잊지 마, 해라 씨
[애잔한 음악]
[훌쩍이는 소리]
여기 평당 얼마씩 한다고?
평당 9백만원 선인데 계속 오르고 있답니다
응?
아니, 그지 같은 놈의 동네가 뭐 이렇게비싸?
쳇!
가자
아니, 해라 아니냐?
오늘 곤이랑 영미가 너 만나러 간다고 하던데?
안 갔어?
아, 난 여기 그... 건물 하나 보러 왔다가...
너 얼굴이 왜 그래? 울었니?
버르장머리 없는 게...
지 아빌 아주 똑 닮았어
흠, 가자
박철민 회장은 예상하신 대로 그 동네 일대를 개발하고 있답니다
건물을 계속 사들이고 있어요
수족처럼 부리는 부동산 업자와 은행 지점장이 있고요
대출도 위험할 정도로 받고 있습니다
[음산한 느낌의 음악]
이 사람은 제가 가서 처리할게요
[폭발음과 유리가 깨지는 소리]
아빠!
아저씨, 살려주세요 저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저 안에 계세요 도와주세요!
아저씨, 도와주세요!
[계속되는 폭발음]
아빠!
아빠
[잔잔한 음악]
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 알지?
문 박사님 아들이야
아, 그 수학 천재?
[귀뚜라미 소리]
수호는 이제 주말하고 방학 때마다 여기 와서 지낼 거야
아빠가 후견인을 해 주기로 했거든
오빠가 공부도 도와줄 거야
들어가자
...그래프란의 참조의 식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말한다
기울기가 A이므로 구하는 식의 Y는...
[두드리는 소리]
[한숨] 기울기가...
한 시간만 놀다 와서 풀자, 오빠, 응?
안 돼, 이거 다 하고 나가
[징징거리는 소리]
넌 내가 안 무섭냐?
왜 무서워?
아, 그 흉터?
화상엔 감자를 갈아 붙이면 된대
걱정할 거 없어
넌 성격이 좋은 거니 무식한 거니?
오빠를 좀 존경하는 거지 난 수학 못 하니까
국어도 못 한다며?
치이...
정해라 소재는 여전히 모르는 거죠?
네, 그...
정사장님과 부인 되시는 분은 사망 신고가 돼 있는데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회사도 부도 처리된 게 맞고요 집도 넘어가고...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거 같습니다
개명한 거 아닌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꼭 찾아야 됩니다
[잔잔한 음악]
나 때문에 그렇게 됐을 거야
자기야, 자기야
하루 종일 전화도 안 받고
[한숨]
내가 웬만하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기다렸어
무슨 일이신데요?
아가씨 사정 딱해서 말 안 했는데
다음 달까진 집을 비워줘야겠어
왜요?
이모가 보증금 다 빼간 거 몰랐어?
예?
[물건 뒤지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아우, 이게 뭐다냐?
아니, 너 왜 그래?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얘가 왜 이래?
보증금 꺼내다 뭐 했어?
내가 준 월세랑 생활비 그거 다 뭐 했어?
그동안 너 밥하고 빨래한 값으로 쳐
내 돈 어쨌냐니까?
그리고...
이 대출은 또 뭔데?
말이 이모, 조카지 사실 남이나 마찬가지 아니니?
니네 엄마 이복 동생으로
어릴 때부터 엄청 무시당하면서 자랐어
이모, 이모
이거 반 전세지만 내 재산 전부가 들어갔어
나 아파!
나 이런 약 없으면 잠 못 자는 거 알아, 몰라?
너 연애하기 바빠서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지?
내 돈 내놔
내 돈 내놔! 내놔!
[소리 지르는 해라와 울부짖는 숙희]
집을 계약했어?
너도 지나가다가 같이 봤잖아 시장 옆에 있는...
그 무너진 한옥집 말이야?
재개발된대서 어렵게 계약했는데
지난달에 한옥 보존 집으로 묶였어
난들 이럴 줄 알았겠니?
사람이 살 수도 없는 집을
대출까지 껴서?
재개발되면 로또였다니까
[어이없는 웃음]
[기타 음악]
[약병 소리]
우리 같이 죽자, 이모, 응?
어머, 어머나, 얘!
어머, 얘, 뱉어! 미쳤어?
조금이라도 날 생각했다면 이럴 순 없는 거야
어머, 안 돼! 뱉어! 뱉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모가 제일 잘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머, 얘! 이러지 마, 너 죽어!
뱉어, 뱉어!
이거 먹고 죽자니까
빨리 먹어!
빨리 먹어!
아악! 안 먹어!
[약이 흩어지는 소리와 둘의 비명]
나 죽어!
해라야!
왜 그래, 해라야? 그만해
야, 무슨 일이야? 일어나 그만해, 일어나
이모, 괜찮아요?
뭐야, 이게?
[태그 뜯는 소리]
내 이럴 줄 알았어, 빈티 나게!
너 오늘 왜 안 왔어?
[옷 집어 던지는 소리와 해라의 비명]
[발 구르는 소리와 해라의 비명]
[가쁜 숨소리]
이모, 무슨 일인데요?
[문 닫히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과 가쁜 숨소리]
[모래 밟는 소리]
(곤) 해라야!
해라야, 어딨니?
지랄하네
니네가 뭔데
해라야!
먹고 살 걱정
학비 걱정으로 알바만 하면서 내 20대를 다 보냈어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난 무시당해
[격한 흐느낌]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애잔한 음악]
왜 나한테만 결혼도 못할 거래
[울부짖는 소리]
[구역질하는 소리]
[잔잔한 음악]
[바닥 닦는 소리]
나 이제 죽나 봐
진짜 파노라마 맞구나
[바람 소리]
[울리는 목소리] 해라야
[이명]
[울리는 목소리] 해라야
수호 오빠도 보이고
잠들면 안 되는데, 해라야?
해라야
해라야
[펜 떨어지는 소리]
해라야
- 나가자 - 아, 뭐 하는 거야?
나가자, 한 바퀴 돌고 와서 하자
오빠, 메롱!
[어이없는 웃음]
[달리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
죄송합니다
[불안한 느낌의 음악]
[짓밟는 소리]
울지 마
넌 반드시 잘될 거야
네 옆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원하는 모든 걸 이루게 될 거야
[바람 소리]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신문지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
[불안한 느낌의 음악]
크리스마스 선물로 캐시미어 코트를 맞춰 주시고
복이 많네요, 우리 꼬마 아가씨
샤론 양장점
맞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갑자기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은 망하고
결국 그 코트는 찾지 못했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 코트를 맞춘 뒤에 이 꼴이 됐어
그걸 다시 찾아 입으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불안한 느낌의 음악]
너의 모든 것이 불쌍해
그거 팔아서 월세 내고 지지리 궁상으로 온 건 아니지?
야, 정해라 어딨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아우, 너 이러다 죽어!
[해라의 비명]
성당 지나서...
오른쪽 골목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캐시미어 코트를 맞춰 주시고
복이 많네요, 우리 꼬마 아가씨
[빨라지는 음악]
아직 안 없어지고 있었네
[문 두드리는 소리]
[빗장 푸는 소리]
헉, 어, 어!
분이야!
여보게들! 분이가 살아 돌아왔어 여보게!
분이가 살아 돌아왔다고!
[긴장감 넘치는 음악]
[오르간 음악]
네가 입고 싶어 했던 옷이잖아
그 옷 입고
내 대신 죽어
누구시죠?
저, 안녕하세요
제가 어릴 때 여기서 코트 맞추고 못 찾은 게 생각나서요
죄송합니다
밤 늦게 당황스러우시죠
그런데 오늘 제가...
너무 죽고 싶어서 약을 씹어 먹었다가
어릴 때 여기서 크리스마스날 맞춘 코트가 생각이 나서요
정해라 씨?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네요 말 안 했으면 모를 뻔했어
부잣집 외동딸이 어쩌다 이렇게 초라하고 빈티 나게 된 거죠?
그놈의 코트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그 코트만 찾아 입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맞춘 꽃자주색 캐시미어 코트
기억하세요?
따라오세요
어릴 땐 우유를 드렸던 거 같은데
홍차에 럼을 좀 섞었어요 드세요
[찻잔 놓는 소리]
준비됐으면 가져와요
아, 저기 왔네요
[탱고 느낌의 음악]
이 디자인 맞죠?
입어 보세요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요
제가 14살에 맞춘 건데 이게 어떻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자!
잠깐만
[신비로운 음악]
자, 한번 보세요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뭐가?
너무 예쁘잖아요
근사하네요
내가 마음이 참 좋아
[살짝 웃는 해라]
[계단 내려오는 소리]
타세요
아니요 저는 심야 버스가 있어서요
어머, 어머!
[차 문 닫는 소리]
[차 시동 소리]
해라 씨
코트를 찾으러 온 이유가 있나요?
죽고 싶었는데
이걸 찾아 입으면
인생을 되돌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왜 죽고 싶은데?
그냥 살고 싶은 이유가 하나도 없네요
살고 싶은 이유를 내가 만들어 주면...
내가 원하는 걸 한 가지 줄래요?
그게 뭔데요?
내가 당신이 되게 해줘요
[어이없는 웃음]
아니, 초라하고 빈티 난다고 디스할 땐 언제고...
우리 인생을 바꿔요
내가 당신이 될게요
[바람 소리]
그러세요, 그렇게 합시다
약속 했어요
그럼 뭐 인제부터 내가 뭐 행복해집니까?
막 살고 싶어지고요?
지금보단 좋을 거예요
내가 예쁜 옷도 만들어줄게요
내가 만들어 주는 옷을 입고
마음 풀어요
해라 씨
언니, 언니!
언니, 일어나 봐!
아우, 놀랐잖아! 전화도 꺼놓고
아, 근데 왜케 추워?
보일러도 끄고 잔 거야?
아휴, 세상에, 세상에!
이 약들은 다 뭐야?
진짜 죽을 생각 한 거야?
어젯밤에 남친 만나러 간다더니
뭔 일 있었어?
[비닐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니, 이모는 또 찜질방 간 거야?
냉골로 만들어 놓고 자기만 따뜻한 데서 잤나 봐
헉!
뭐지?
뭐야?
오, 이 코트 뭐야?
이것도 그 돈 많은 친구가 준 건가?
어? 오, 예쁜데?
왜, 뭔데? 어디서 샀어, 백화점?
말도 안 돼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 어서 와
해라야
어제 그 진상 사고당했대
- 조부장요? - 어
새벽에 음주 운전하다가 가로수 들이박아서 입원했대
벌 받은 거지, 뭐 어제 와서 그 난리를 치더니
사람 다쳐서 좀 그렇긴 한...
봐봐, 어유, 많이 나아졌네
일해
오삼불고기 맛있어 많이 달라 그래
어, 그럴게요
- 사무실에서 봐 - 네
오삼불고기 다 떨어졌다
좀 더 받아서 와
- 나 저쪽에 앉아 있을게 - 어, 알았어
오삼불고기 좀 더 주세요
아이고, 다 떨어졌는데
운이 없다, 아가씨가
다른 거 먹어, 다른 것도 맛있어
딴 건 다 풀이잖아요
네, 잘 먹겠습니다
현지에서 전문 포토가 찍어주는 스냅사진
이거 새로운 시장이야
전문 포토그래퍼를 확보해서 우리 회사를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게 하는 거지
- 죄송합니다 - 어
벌써 핫한 포토들이 꽤 있더라고요
파리엔 김바다, 런던엔 현성우
응, 슬로베니아에도 훌륭한 포토그래퍼가 있어
성격이 좀 까칠하고 드...
드러워서 그렇지 사진 실력은 완전 최...
어우, 야 나 왜 이렇게 배가 아프니
- 저도요 - 어?
아까 오삼불고기가 좀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화장실에 사람이 꽉 찼어요
- 어? - 어, 오셨어요?
야, 비상이다
일단...
지금 당장 누구 하나 나가야겠다
어머, 누가 나가...
- 당장은... - 아, 안 되는데...
[경쾌한 음악]
[비행기 엔진 소리]
아, 저 자신 없어요, 팀장님
저 한 번도 외국 나가본 적 없는 거 아시잖아요
알지, 알지, 알지, 근데 어떡하니 지금 너밖에 나갈 사람이 없는데
해라야, 내가 비용 처리해줄 테니 속옷이랑 화장품 필요한 거 다 사
면세점에서 그냥 싹 사, 어? 법카 줄게, 법카 줄게
이스탄불에서 갈아타고
류블랴나에 도착하면 거기서...
[한숨]
나 지금 이거 꿈 아니지?
[경쾌한 음악]
선배님!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 야, 잘했어, 잘했어
회장님, 가자미식해가 왔습니다!
야, 네 덕분에 살았다
근데 이러고 온 거야?
회사에서 바로 오느라고
야, 마트에서 살 거 사고 숙소 가서 쉬고 있어
미팅 스케줄은 한 실장님이 알아서 잡아 주시고요
아무튼 법인 등기 마무리하신 거 수고 많았어요
아, 저기 대표님 그... 정해라 씨 말인데요
제가 법인 우대 관련해서 찾아 보다 발견했는데요
이름은 다른데
어릴 적 사진하고 인상이 좀 비슷해서요
그러니까 그 바다 '해'가 아니고
'은혜' 할 때 혜라입니다
[잔잔한 음악]
아, 혹시 다른 분이신가요?
여보세요?
대표님, 대표님 들리십니까?
수고하셨어요, 한 실장님
제가 찾는 정해라 맞는 거 같습니다
저 팀장님이 그냥 비행기 표 나올 때까지
놀다가 오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그래, 놀라니까 오늘 가서 사진 찍으면서 놀아
2달 넘게 예약이 찬 사람인데 오늘 하루 펑크났대
네가 가서 기분 좋게 해주고 일 좀 잘 만들어 와
저 진짜 자신 없어요 시차 적응도 아직 안 됐고
그 포토만 잡으면 예약 20%는 바로 상승이야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면 선배님이 하세요, 더 잘하실 텐데
오늘 우린 3팀으로 쪼개져서 투어 다녀야 해
아, 몰라, 몰라 나 그냥 잠적해 버릴 거예요
일단 그분부터 잡고 잠적해 오케이?
일할 땐 늘 까만색 가죽 잠바 차림
나름 키크고 훈남이긴 한데
사나운 슬로베니아 여자랑 결혼해서 애가 셋이래
[외국어로 화내는 여자]
[부딪혀서 넘어지는 소리와 비명]
슬로베니아 와이프가 배구선수 출신인데
남편 꼬시려던 여자들 여럿 고막이 나갔대
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잔잔한 음악]
우리 크리스마스 다가올 때 여기서 만나
날씨가... 날씨가 되게 좋네요, 오늘은
처음엔 엄청 까칠한데 흥이 오르면
아주 친절하게 인생 사진 건져준대
그럼 여기서 먼저 한번 찍어볼까요?
제가 좀 이렇게 왼쪽으로 많이 찍거든요
한 이 정도, 한 45도 정도
어떠세요?
누구세요?
예?
정해라입니다
뭐, '마음을 정해라' '메뉴를 정해라'
뭐 이런 거 할 때 정해라요
잘 부탁드립니다
[잔잔한 음악]
혼자 왔어요?
남자친구한테 차였어요, 저
- 잘됐네 - 뭐요?
더 좋은 남자 만날 기회가 생긴 거니까
그 애를 만났어요
가난하고 초라한 여자가 돼서 나타났어요
이거 첫 여행 축하 선물, 받아요
흑기사
그 코트를 입고 난 뒤로 저한테 좀...
이상한 일들이 생기는 거 같아요
왜 거기 서 있고 그래요? 사람 놀라게
그 여자야!
어머, 안 늙은 건가?
대체 왜 저한테 옷을 만들어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불우이웃 돕기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혹시 수호 오빠 기억나?
나는 정해라 씨하고 다시 만날 거 같은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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