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13
(남자1) 근데 넌
의원이 왜 되고 싶냐?
누굴 고쳐 주려고?
- 우리 엄니요 - (남자1) 뭐?
우리 엄니 같은 사람들요
[옅은 헛기침]
[숨을 씁 들이켠다]
침 쓰는 법 가르쳐 주랴?
네!
(남자1) 침 갈 때 쓸 물은
꼭 저기 앞산에서
꼭 새벽 샘물로 길러 와야 써
[놀란 탄성]
[아파하는 신음]
(남자1) 각을 딱 잡고
[바가지를 탁 내려놓는다] 거기에 맞춰서 날을 세우는 게 중요혀
[침을 쓱쓱 간다]
(남자1) 이놈아, 각도!
[남자1의 호통] (어린 허임) 어휴, 깜...
[어린 허임의 놀란 숨소리] (남자1) 각도, 이놈아!
[남자1의 못마땅한 신음] [어린 허임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1) 각도가 중하다고, 인마!
이걸로는 무나 찌르면 딱 맞겄다
(남자1) 쯧, 하긴 뭐
네놈 마음 각이 비뚤어졌으니 될 리가 있냐?
침 가는 김에 네놈 마음 부지런히 갈아!
(남자1) 의술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여
의원이랑 침이 마음적으로 먼저 하나가 돼야 한다, 이 말이여
의원이 삿된 마음을 품으면 침이 알겄어, 모르겄어?
[힘주는 신음]
[허임의 힘주는 신음]
[탄성]
(남자1) 명심혀
침도 의원도 마음 각이 딱 잡혀야 하는 거여!
[웃으며] 집에 오니 좋으냐?
[웃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이제 이곳에서 터를 잡고 열일해 보자꾸나 [잔잔한 음악]
[허임의 웃음]
[허임이 손을 쓱쓱 비빈다]
(천술) 왜 다시 기어들어 왔어?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왔습니다요
네놈이 있어야 할 곳?
- 게가 여기여? - (허임) 네, 여기입니다요
[허임의 웃음] [천술의 콧방귀]
누구 마음대로?
어디에 있든 의원 노릇만 제대로 하면 된다 하시지 않았습니까요
그 의원 노릇 제대로라는 게 뭔데?
궁궐이든 초가든 배고픈 사람이든 배부른 사람이든
살리면 기쁘고 고치면 좋은 그게 의원이지요
[허임의 웃음]
스스로 풀라고 한 저의 숙제
여기서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어르신
[고민하는 신음]
(허임) 너는 왜 내게 왔느냐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야?
[한숨]
(연경) 어, 환자 아직이지?
그래, 지금 출발해
어
[휴대 전화 조작음]
[감성적인 음악] (재하) 그 사람
언젠가 돌아갈 사람이야
아니, 돌아가야 될 사람이야
어, 연경 처자!
[허임의 웃음]
(허임) 처자, 아, 출근하시오?
아, 왜 이리 일찍 나가시오?
조반도 좀 먹고 천천히 가지
환자가 기다려서 가 봐야 돼요
(허임) [한숨 쉬며] 환자가 기다리는구나
환자가 기다리는데 그럼 가 봐야지
[허임의 웃음]
내 그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살짝 웃는다]
아니, 왜 밥이 없어?
엊저녁에는 가득했는데 이게, 누가 먹었나?
허허
(허임) 이거 가져가서 드시오
이게 뭐예요?
주먹밥이오
그때 보니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내 솜씨를 좀 부려 보았소
[살짝 웃는다]
(허임) 보아하니 늘 조반을 거르는 것 같던데
장시간 공복은 오장육부의 기능을 틀어지게 해서 매우 안 좋소
매일 아침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이리 챙겨 줄 것이오
매일 아침?
매일 아침은 장담은 못 하겠고 주에 한 번...
[밝은 음악] 주에 한 번?
사, 사흘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그, 그까, 그까짓 거 뭐, 그냥
내 연경 처자를 위해서 이 주먹밥을 매일 만들어 드리리다
매일 아침
매일 아침
(허임) 어, 매일...
주, 주먹밥, 매일 아침
[허임의 멋쩍은 웃음]
뭐, 이까짓 거 뭐
(연경) 이제 그만 들어가 봐요
뭐 잊은 거 없소?
내 새벽부터 그대를 위해 이리 애를 썼는데
[살짝 웃는다] 뭐가 있을까?
어휴, 심쿵해라
여기 사람들이 이걸 모닝 키스라고 하더이다
모닝 키스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그럼 어찌하는 것이오?
빨리 퇴근하고 싶게
[허임의 놀란 신음]
하루 종일 생각나게
(병기) 아니, 철수 씨가 누구냐고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재숙) 아, 진짜, 뭔 상관인데요?
[익살스러운 음악] - (병기) 어, 씨, 깜짝이야 - (재숙) 어, 연경아, 지금 출근해?
어, 언니? 어
[중얼거린다] [멋쩍은 웃음]
[허임의 헛기침] [연경의 어색한 웃음]
왜 저렇게 놀라? 지금 출근하냐고?
지금, 지금 출근, 지금 출근하지
굿 모닝이니까
'좋은 아침이니까' 한글을 생활화하자고
[허임과 연경의 멋쩍은 웃음]
처자, 환자가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소? 빨리 출근해야...
환자가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 되겠다
[연경의 멋쩍은 신음] [병기의 신음]
[허임이 중얼거린다]
[자동차 시동음]
아이참
[허임의 놀란 탄성] [병기의 신음]
어휴, 미안하오, 아휴...
[익살스러운 효과음]
[당황한 신음] 왜들 이렇게 보시오?
[익살스러운 효과음]
[쓱쓱 닦는 효과음] 나 아무것도 안 했소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소이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허임이 중얼거린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오늘 날씨가 레알 좋군
[웃음]
왜들 그러시오?
우리가 밤새 생각을 좀 해 봤지
했죠, 생각, 밤새
어? 밤새웠어요, 재숙 씨? 어, 간에 안 좋은...
[익살스러운 효과음] (재숙) 흥
쌩하니 갈 땐 언제고
그, 그래 놓고 훅 들어와?
그, 쌩하게 가긴 누가
잠시 출타했다가 돌아온 것뿐이오
(허임) 갔다 왔더니 혜민서도 엉망이고 마당 청소를 어찌했는지
이 먼지가 이렇게, 이렇게 이게 뭐요, 이게!
(병기) 이렇게 청소했어요 이렇게 했어, 이렇게, 이렇게
어, 그러고 보니까 먼지가 왜 이렇게 큰 게 있대요?
어, 이거 먼지 봐
[병기와 허임의 힘주는 신음]
- (허임) 에이, 아유 - (병기) 아, 왜 이래
[병기의 힘겨운 신음] (허임) 멍청아, 왜 그래, 사람 서운하게
어머, 저 사람 지금 서운하다 그랬어요, 우리한테?
네, 그랬어요
(병기) 에이, 이럴 때가 아니죠 [허임의 놀란 신음]
적반하장도 모르고 진짜 원래 그런 사람이라니까요
아이, 그, 이왕 굴러들어 온 거 좀 잘 좀 봐주시오
[병기의 신음] (허임) 내가 빈손으로 왔겠소?
(병기) 빈손도 아니오? [병기의 웃음]
(허임) 사랑하니까
(병기) 사랑하니까, 그게 뭐요?
[따뜻한 음악] [병기의 들뜬 신음]
(허임) 아, 이거, 우리 연경 처자도 아직 못 앉아 본 거요
내 월부로 사 왔단 말이오, 이거
(병기) 고맙소이다, 짱이다, 이거 진짜 너무 좋다, 이거
뭐야, '숙취 해소 모드'? 뭐야?
어제 또 술? 간도 안 좋은...
[병기의 한숨] 철수 씨, 원샷
(재숙) 한 잔 더!
그동안 뭐 했소이까? 간도 못 고치고
두 분 사이도 못 고치고, 멍청아 [병기의 헛웃음]
(병기) 우리 되게 친해졌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근데 철수 씨가 누구야? 철수 씨는 누구예요?
철수 씨 누군지 알아요? 누구야, 철수 씨
허, 편의점 알바, 걔?
[병기가 중얼거린다]
(허임) 어찌 이곳은 변한 게 하나도 없소이까
(병기) 아이, 잠, 잠, 잠, 잠든 거예요 재숙 씨? 5분 만에, 응?
철수가 누구냐고!
그래서 좋소이다
(연경) 남자 62세, TA로 상행 대동맥이 파열돼
(연경) 얼마 전에 치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중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바이털도 다 정상인데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황 교수) 뭐 시저나 다른 건 없었고?
네, 시저 없었고 랩도 다 좋습니다
[한숨 쉬며] 한 2, 3일 더 지켜봐
(연경) 네
[긴장되는 음악]
(황 교수) 수술 잘됐을 땐 아주 기분 신났지?
야, 회복 가능성 낮다는 게 뭔 말인지 이제 알겠냐?
혼자 아주 소신 있는 의사인 척 나대더니만
아주 꼴좋다, 아주, 쳇
내가 너 때문에 체면 구긴 거 생각하면...
아이고, 정말, 씨, 쯧
그래도 수술 잘했어, 너
[이연의 한숨]
환자가 깨어나야 수술을 잘한 거지
뭐, 혹시 못 깨어나도 난 너 인정
뭘 그렇게들 눈 동그랗게 뜨고 뭐, 참
이, 이건 아니지?
[만수의 헛기침]
[무거운 음악]
[성태의 한숨]
그래서 거길 다시 기어들어 갔다고?
네, 원장님
아, 이 자식 봐라, 이거
[명훈과 수석의 웃음]
(수석) 자, 그럼 이제 우리 신 원장만 믿겠습니다
(명훈) 아, 예, 예, 그럼요 제가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명훈의 웃음]
[헛기침]
[명훈의 웃음]
[차 문이 달칵 열린다] (명훈) 그럼 살펴 가십시오
[명훈의 웃음] [차 문이 탁 닫힌다]
[자동차 엔진음]
(명훈) 아이고, 마 원장님, 이제 나오십니까? [성태의 옅은 웃음]
[명훈의 웃음] (성태) 예
한데 조 수석이 웬일로?
(명훈) 아, 예 [명훈의 웃음]
이사장 발표를 코앞에 두고 제게 천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절 밀어주시겠다니
어젯밤 꿈자리가 좋더니만 [명훈의 웃음]
근데 민 회장님 댁에선 무슨 사고를 치셨길래...
[헛기침]
[명훈의 웃음] [성태의 헛기침]
씁, 아참
씁, 그 한방 테마파크인가 뭔가 말씀을 하시던데
저더러 그 자리를 좀 가 보라고 하시더군요
근데 제가 오늘 시간이 날까 모르겠습니다
(명훈) 그럼 일 보십시오
[명훈의 웃음]
[흥미진진한 음악]
(할머니1) 아이고
변기, 잘 있었어? 아이고
(병기) 할매, 변기가 아니라 병기라니까 이응이에요
(할머니1) 아이고, 변기
(재숙) 아이고, 할머니들 오셨어요?
[문이 드르륵 열린다]
[웅장한 음악]
예까지 오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허임) 혜민서 한의사 허봉탁
여러분들의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치료에 만전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할머니1) 뭐라 카는 겨?
(할머니2) 자는 뭐꼬?
[익살스러운 효과음] [허임의 웃음]
[발랄한 음악] (천술) 아따, 미친놈
너 또 약장사 하냐?
아, 약장사 안 합니다
비켜!
(꽃분) 봉탁아!
아, 엄니, 왔소?
[허임의 웃음] (할머니1) 아이고, 자가...
(허임) 우리 봉식이도 왔는가?
- (허임) 엄니! - (꽃분) 아이고
- (할머니2) 얘가 봉탁이라고? - (허임) 엄니!
(허임) 엄니! [할머니들의 웃음]
(할머니1)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우야노
[할머니들의 웃음] 어, 어, 엄니
[웃음] [돼지 울음]
어휴, 야, 야, 야
- (허임) 아, 엄니, 엄니, 엄니 - (꽃분) 응?
[허임과 할머니들의 웃음]
- 오셨는가? - (꽃분) 아유, 개않노?
- (꽃분) 아이고, 뭐고... - 이제 다 나으셨는가?
아휴, 그럼, 이제 나았다
[허임의 웃음] 아주 이제 다 나았다 아이가
- 엄니 - (꽃분) 응, 응, 그려, 그려
[허임의 아파하는 신음] [꽃분의 걱정스러운 신음]
엄니, 아, 엄니, 엄니, 아파 [꽃분의 웃음]
얼마 전에
다친 한 아이를 만났어요
근데
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이 손에 든 게 없으니까
더는 제가 의사가 아니더라고요
[차분한 음악]
근데 그때
메스 하나로 총에 맞은 한 아이를 살렸어요
[살짝 웃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 같은 일인데
기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대 말대로 동생을 살리고자 하는 오라비의 마음이
스스로를 살린 게 아니겠소?
'의원의 기술보다 나은 것은'
'살고자 하는 병자의 마음이다'
'사람의 몸이 가진 생명력과 치유의 힘을 키우려면'
'먼저 병자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연경) 의술은 이렇게나 많이 발전했는데
더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래서
믿어 보려고요
그 사람처럼
환자분의 의지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쾌한 음악] [꿀꿀거린다]
(할머니1) 내가 소싯적에
장구를 아, 기가 차게 잘 쳤어 아이고
이따만한 장구를 어깨에다 메고 [할머니2의 신음]
덩실덩실하면
온 동네 총각들이 다 헤벌레
[허임과 할머니1의 웃음]
아이고, 근데 그 좋던 장구도 이제는 못 친다 [할머니2의 신음]
- (할머니1) 어깨가 아파 갖고 - (허임) 아휴, 가만있어 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르신
(할머니1)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허리도 아프고
(허임) 아, 그러면 허리에 먼저... [할머니1의 신음]
아이고, 무릎도 아프다
(할머니1) 발목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아이, 그럼 도대체 어디에 침을 놔야 되는 거요? [할머니1의 웃음]
맥을 짚었을 땐 크게 이상은 없으셨는데
(재숙) [흥얼거리며]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다 꽂아요 [허임의 놀란 신음]
[할머니1의 웃음] (허임) 어휴
(천술) 아휴, 가만있어, 가만있어 [허임이 구시렁거린다]
됐다, 됐어, 아이고
어디 보자 [천술의 힘주는 신음]
[천술의 힘주는 신음]
그래서 우리 몸이 인생의 이력서라는 말이 있는 거여
아, 살다 보면 뭐 이리 치이고 저리 퍼지고
이런 것들이 그냥 우리 몸에 다 남아설랑은 [잔잔한 음악]
이렇게 아우성을 치는 거라고, 어?
이런 게 어떤 사람한테는 훈장이고
또 어떤 사람한테는 이게 설움이고
그러니 뭐, 뭐, 어떡하겠어, 응?
그냥 그래도 살살 달래 가면서 살아야지
하모, 그래야지 [천술의 웃음]
[할머니1의 웃음] (천술) 아이고, 자
[천술의 생각하는 신음]
자, 침 들어간다
저...
(허임) 어르신
그래도 오늘 제가 한의사로 첫선을 뵈는 날인데
저한테도 좀 기회를 주십시오
- 그, 그럼 그럴래? 어 - (허임) 예
자...
아이고, 시원타
(허임) 시원하십니까? [할머니1의 웃음]
[허임의 웃음] (할머니1) 아이고
[웃음] (허임) 다 됐습니다
[함께 웃는다] (할머니1) 이거 발도
- (할머니1) 침 잘 맞고 간대이 - (허임) 예, 들어가세요
[함께 웃는다]
[꽃분이 중얼거린다] [할머니1의 힘주는 신음]
[허임의 웃음]
[천술의 생각하는 신음]
(천술) 여기가
병만 고치는 데인 것 같지?
저 양반들한테는 그냥 침 몇 번 맞고 가는 데가 아니여
마음을 보듬고 설움을 나누고 그러는 데여
어르신
어르신도 치료를 좀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장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이게 뭔 헛소리여?
아, 늙은이가 그럼 뭐, 뭐, 뭐 어디 한 군데 삐끗거리는 데 없으려고
제가 제대로 진맥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놈아, 진맥을 짚어도 내가 네놈보다 수천 번은 더 짚었어
내 병은 내가 잘 아니께 너는 신경 끄고 네 일이나 잘혀!
[힘주는 신음]
(천술) 경이한테는 아무 말 말아!
괜히 입 뻥끗하는 날이면 그날로 그냥 내쫓아 버릴 테니께
[천술의 헛기침]
[무거운 음악]
[한숨]
"혜민서한의원"
(성태) 자네 민 회장 댁에서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리하지 않았다면 저를 놓아주셨겠습니까?
그새 내가 베풀어 준 은혜를 잊은 거야?
[웃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을 일깨워 주신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껏 여기가
이 구닥다리 한의원이 자네가 갈 길이라고?
의술 팔아 번 돈 쌓아 놓고 있어 봐야
뭐, 그닥 행복하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면허증은?
(성태) 내가 경찰에 고발하면 자네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걸 만들어 주신 원장님도 무사하시진 못하실 텐데요
그만 돌아가십시오
(성태) 그러고 보니 [성태의 한숨]
내가 아직 가르쳐 주지 않은 게 하나 있구먼
돈과 힘
그게 얻기는 어려워도
그것에 밟히기는 쉽다는 거
[의미심장한 음악]
"허임 저술"
허임이라, 허임
(남자2) 허 선생님 사직서 내고 혜민서한의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숨]
(교수) 야, 최연경
그 대동맥 박리 환자 안 깨어났다며?
그러게 왜 의학적 근거와 수치를 무시해?
펠로우 달면 뭐 하냐?
네 정신 상태가 인턴인데
교수가 되고 과장이 돼도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이 할 겁니다, 교수님
[탄식]
얘 아직 정신 못 차렸네 [휴대 전화 진동음]
(민재) 네
대, 대동맥 박리 환자 깨어났다고요?
[극적인 음악] [민재의 기쁜 신음]
[웃으며] 네, 네, 일단 알겠습니다, 네
와, 그럼 이건 기적인가?
아, 교수님, 그럼...
[민재가 인사한다]
환자분
제 얘기 들리세요?
팔 좀 들어 보실게요
이번엔 다리요
[연경의 벅찬 숨소리]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보호자) [울먹이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연경이 탁 토닥인다]
제가 환자를 살린 게 아닙니다
가족분들을 사랑하는 환자분의 마음이
스스로를 살린 겁니다
(보호자) 네?
어쩜 이렇게 말씀도 이쁘게 하시는지
(연경) 앞으로 과의 협진도 좀 남아 있고요
그럼 몇 차례 수술을 더 받아야 될지 잘 모릅니다
마음 단단히 드셔야 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호자)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보호자의 안도하는 숨소리]
[탄성]
[우두둑 소리가 난다]
[아파하는 신음]
알려 줘야지
이 기쁜 소식을 나눠야지
[연경이 살짝 웃는다]
[한숨]
아, 맞아, 휴대폰이 없지, 이 사람
(이연) 왜, 남친 연락이 안 돼요?
선생님
요즘 부쩍 사람 놀래네
이것도 사랑의 힘인가?
네?
따라와요
예
[멋쩍은 웃음]
병가 신청서
선생님
(이연) 그 몸으로 장시간 수술했으니 안 아픈 게 이상하지
아, 저 괜찮아요, 선생님
의사 생활 하루 이틀 하다 말 거면 그러든가
아이...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환자 경과도 지켜봐야 되고요
[잔잔한 음악] [다가오는 발걸음]
[차트를 탁 내려놓는다] 그 환자 좀 전에 주치의 바뀌었다
[만수가 차트를 사락 넘긴다] 뭐야, 누구로?
강만수 선생이라고 있어 아주 유능한 의사지
[함께 코웃음 친다]
(연경) 진짜...
야, 강
야, 너만 의사냐?
나도 의사야
뭐, 하긴 네 눈에 누군들 의사로 보이겠냐
하여간 자기만 의사야, 자기만, 쯧 안 그래요?
그래요
[연경이 살짝 웃는다]
[만수가 차트를 사락 넘긴다] 하, 진짜
[펜을 탁 집는다]
[웃음]
유재하
뭐 해, 여기서?
뭘 매번 물어봐, 알면서
[피식 웃는다]
- 퇴근하는 길? - (연경) 응
며칠 병가 냈어
조금 아프다고 병가 낼 사람은 아니고
그 사람 만나러 가나 봐?
(연경) 응
어떻게 하려 그래?
후회하지 않겠어?
후회할 수도 있지
그래도
그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잖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보려고
[살짝 웃는다]
[풀벌레 울음]
(연경) 씁, 왜 이렇게 조용해?
벌써 다 퇴근들을 하셨나
짠...
[의미심장한 음악]
어디 갔지?
허봉탁 씨
[다급한 숨소리]
(천술) 아이, 어, 왔어? [연경의 가쁜 숨소리]
오늘은 일찍...
할아버지, 그 사람은요?
그 사람 어디 있어요?
(천술) 으, 응?
[다급한 숨소리]
[허임의 웃음] (허임) 복만아
내 너를 위해 볶음밥이라는 걸 만들었다
그때 밥을 나눠 준 게 고마워서 주는 것이니
괘념치 말고 맛있게 잘 먹거라
[허임의 웃음]
아이고
[허임의 장난스러운 신음]
복만아 [개가 낑낑거린다]
[감성적인 음악] 복만이
어, 연경 처자!
연경 처자
[허임의 놀란 신음]
[연경의 신음]
[허임의 신음]
[허임의 놀란 신음]
(허임) 아, 처자, 괜찮소? 아, 괜찮으시오?
아이, 그, 하필 다친 곳으로
아, 대관절 왜 그랬소? 아, 어찌 그랬소이까?
당신 미쳤어요?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그러다 땅에 머리라도 부딪쳤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연경) 조심
조심, 또 조심
길거리 다닐 때도 조심하고 차 탈 때도 조심하고
여긴 사방이 다 위험한 것투성이니까
그냥 길거리 걸어 다닐 때도 천천히, 어?
천천히
[탁탁 토닥인다] 쉿...
잊었소?
내 두 번 다시
그대를 혼자 두지 않겠다 약조하지 않았소?
앞으로는 조심, 또 조심할 것이오
피치 못해 가게 되더라도
바로 돌아올 것이니
두 번 다시 그런 걱정은 마시오
[훌쩍인다]
(연경) 누가 걱정을 했다 그래
[훌쩍인다]
(천술) 짠
이런, 어이
(허임) 아, 어르신, 고기를 줬다 뺏으십니까?
내 고기 내 맘이다
[문이 달칵 열린다] [천술의 못마땅한 신음]
(허임) 어! 왔소?
오늘 석 반찬이 고기요, 고기
[허임과 연경의 웃음]
고기구나 [허임의 웃음]
(천술) 같이 한 술 안 떠?
떠야 되는데
[흥미진진한 음악]
[웃음]
그럼 고기 먹은 지도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허임과 천술의 웃음]
(허임) 이쪽으로 앉으시오 이쪽으로 앉으시오, 고기요, 고기
(천술) 내가 얼른 다 퍼 오마, 오
[천술의 웃음]
(천술) 어디를
내 고기 내 맘이다
[천술의 웃음]
[웃음]
그래도 오늘 밥맛이 참으로 좋습니다요
[허임과 천술의 웃음]
[허임의 웃음]
[웃음]
넌 뭘 먹고 쟤를 다 줘?
[천술의 못마땅한 신음] (허임) 얼마 안 덜었습니다, 요만큼 던 건데
(천술) 고기가 꽉 찼구먼!
(허임) 이 밥이 높아 가지고
고기가 이렇게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요
(천술) 너 혼자 처먹을 거야?
[한숨]
[허임의 한숨]
[한숨]
야심한 시각도 아닌데 벌써 자나?
[한숨]
(허임) [작은 목소리로] 연경 처자!
연경 처자!
뭐 해요?
(허임) 아이, 잠이 안 와서
잘됐다, 할아버지 주무세요?
(허임) 그런 것 같소
선물요
아, 이, 이게 무엇이오?
휴대폰요
[허임의 들뜬 신음]
(허임) 아, 내 그렇지 않아도
처자하고 아무 때고 연락이 안 돼서 애가 타던 참이었는데
아이고, 고, 고맙소이다
한데 이거
번호를 따야 할 터인데
[휴대 전화 조작음]
[부드러운 음악] [휴대 전화 조작음]
[허임의 수줍은 웃음]
'내 껌딱지'?
[허임의 웃음]
(허임) 참으로 좋소이다
[휴대 전화 조작음]
저기요
다 버리고 나온 거 후회 안 해요?
돈 좋아하잖아요
아휴
나 안 좋아하오
그럼 내가 조선에서 본 건 뭔데요?
아...
내 울분과 허기진 마음
그리 살아온 내 세월이었소
의원으로 그런 시대를 살며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버텨 내기 위해선
뭐라도 필요했던 것 같소이다
한데 아무리 돈을 모아도
그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지 않더이다
[허임의 웃음]
내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배가 부르오
소소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것하며
이게 다 그대 덕분이오
(연경) 치
그 돈 찾겠다고 주막에서 나 버리고 내뺄 땐 언제고?
어허, 그 오해...
[작은 목소리로] 그, 오해요, 내 오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럼 그 와중에 거길 왜 갔는데요?
아니, 그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처자를 안전한 거처에 두려면 돈이 필요할 수도 있어서
[답답한 신음] 그건 오해요, 그건
치, 쯧
그래요, 뭐, 오해라 치죠
아, 치긴 뭘 치오
아, 난 진짜 억울하오 오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허임) 그건 진짜 처자가 잘못 알고 있는 거요
알았다고요
알았어요
[한숨]
'내 껌딱지'
[함께 웃는다]
참으로 고맙소
[휴대 전화 조작음]
[허임의 웃음]
(천술) 봉탁아!
(천술) 봉탁아! [한숨]
간만에 잠 좀 푹 자려 그랬더니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한숨]
[리드미컬한 음악] [웃음]
[허임의 웃음]
(허임) 입이 매우오
자, 실시!
천지가 개벽할 일이오
깨끗하게 닦습니다
아, 아, 알겠, 알겠습니다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쭉 합니다 [허임이 달그락 설거지한다]
알겠습니다!
아, 이게 무슨 말이야
(허임) 오른손을 들고 이곳을 두드려 주시오
이곳을 두드리면 막힌 혈이 순환되어 원기가 충만해진다오
자, 반대
이제 손뼉을 마주치고 치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오장육부가 튼튼해진다오
(병기) 둘이 엄청 건강 생각하는구나
[연경의 웃음] 어떻게, 이렇게 한다고?
어, 왜, 연경아, 어디 아파? 왜, 왜 그래? [연경의 웃음]
왜, 아픈 거 아니야? 아유
(허임) 자, 이제 서로를 이제 안아 주시오
야, 이 멍청아 [병기의 의아한 신음]
- (재숙) 아유 - (연경) 멍청아! [병기의 신음]
[함께 웃는다]
[허임의 놀란 신음]
[소란스럽게 떠든다]
[문이 달칵 열린다] (남자3)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남자3의 힘겨운 신음]
[환자의 거친 숨소리] [병기의 다급한 신음]
[병기의 놀란 신음]
[환자의 거친 숨소리]
(남자4) 신혜 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신명훈 원장이 선출되었음을 공표합니다
[무거운 음악]
[성난 숨소리]
[저마다 대화한다] (여자1) 이사장님, 축하드립니다
(명훈) 아이고, 감사합니다
(황 교수) 축하드립니다
[명훈의 웃음]
[명훈의 탄성]
어이구
[성난 숨소리]
- 차 대기시켜 - (비서) 네, 원장님
[병기의 힘주는 신음] [환자의 거친 숨소리]
[연경의 다급한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혹시 이 환자분 천식 앓고 있어요?
- 천? - (병기) 처, 천식
아, 맞아요, 천식
기관지가 좁아져서 숨을 못 쉬고 있어요
급성 천식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
(연경) 환자분
숨 크게 쉬세요
[숨을 들이켠다]
한 번 더요
[숨을 들이켠다]
호흡해 보세요
[환자의 심호흡]
일시적으로 기관지를 좀 넓혀 놨는데
그래도 언제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서
구급차 불러야 될 거 같아요
응, 얼른 119 전화해라
(남자3) 병원, 안 된다
우리 가면 안 된다
그러다가 또 언제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요
불러야 돼요, 불러 주세요
(남자3) 안 된다, 잡힌다
그럼 우리 집에 가야 된다
[환자가 연경을 탁 붙잡는다]
대체 왜들 저러는 거요? 병원을 안 가겠다니
불법 체류자라서 그래요
[병기의 한숨]
(남자3) 안 돼요, 안 된다
[천술의 한숨]
(허임) 연경 처자, 환자는 자격이 필요 없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이게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하면
내가 해 봐도 되겠소?
[의미심장한 음악]
우리하고 겉모습은 다르나 오장육부는 비슷할 거 아니오
[환자의 거친 숨소리]
[맥박 효과음]
아프지 않을 것이오
처자, 무릎 좀 올려 주시오
[긴장한 숨소리]
아, 괜찮소
이제 이곳에 침을 놓을 것이오 [긴장되는 음악]
자칫하면 폐를 찌를 수 있으니 절대 움직이면 안 되오
- 두 선생님도 좀 도와주시오 - (병기) 아, 예
(병기) 자, 재숙 씨, 베개 더 깊숙이
자, 자, 이렇게
자, 움직이지 마
천돌혈
(천술) 제일로 위험한 혈 자리지
저건 저놈이나 되니까 하지 아무나 못 해
[긴장한 숨소리]
괜찮소
[살짝 웃는다]
[안도하는 숨소리] [극적인 음악]
[영어] 괜찮아
[한국어] 잘 참았소
이제 뜸을 놓고 약재의 김을 쐬어야 하니
조금만 더 참으시오
나 참을 수 있다
[웃음]
[웃음]
(환자) 다 나았다
선생님이, 다 나았다
친구 살려 줘서 고맙습니다
[천술의 웃음]
(허임) 여기 약제입니다, 가서 드십시오 [남자3이 인사한다]
(환자) 우리 가족인데
돈 계속 보내 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술의 웃음] (천술) 그 녀석들, 이쁘다
[천술의 웃음]
[병기의 탄성]
정말 감사합니다
(천술) 잘들 가시게
- 어르신 - (천술) 응?
저 어디 좀 다녀와야 될 데가 있습니다요
뭐?
어허, 참, 아니, 몸도 성치 않으면서
(허임) 집에서 쉬라는데 당최 말을 안 듣고
내가 예측을 불허하는 여인인 거 잊었어요?
아이, 뭐, 근데 처자가 내 껌딱지도 아니고
[연경이 살짝 웃는다]
[자동차 경적]
재하야
[잔잔한 음악]
[허임의 한숨]
(재하) 둘이 같이 어디 가나 봐?
(연경) 어쩐 일이야?
[한숨 쉬며] 그냥 뭐, 나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한번 해 보려고
아, 왜 그쪽 마음이 여길 온단 말이오?
그쪽은 조선으로나 돌아가시죠
안 간다니까
어디 가는 길?
- 의료 봉사 - (재하) 그래?
나도 오늘 오후 진료 없는데 같이 가도 돼?
- 안 되지 - (재하) 아, 데이트도 아니고
의료 봉사면 의사가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데, 데이트?
걱정 마, 누나 나도 그렇게 눈치 없는 놈 아니니까
나도 뭐 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쯧, 따라와, 그럼
처자, 갑시다
(재하) 누나
내 차로 가자
누나 아직 환자인 거 몰라요?
쯧, 하긴, 운전을 해 봤어야 힘든 줄을 알지
괜찮아
가자
치 [차 문이 탁 닫힌다]
[허임의 다급한 신음]
처자, 타시오
[재하의 헛기침] [차 문이 탁 닫힌다]
[차 문을 탁 닫는다]
[노숙자들의 기침]
[노숙자들이 대화한다]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아니, 내가 뭐, 내가 왜?
- 진짜? - (재하) 뭐, 내가 뭐...
(노숙자1) [술 취한 목소리로] 어? 야, 너희 조용히 안 해? 이씨, 확
(허임) 어, 왕초 어른!
(노숙자1) 누구...
[허임의 웃음] [놀란 탄성]
투입
[노숙자1의 웃음]
[허임의 웃음] 아이고, 그날은 그렇게 도망치더니만 뭐 하러 왔대?
그, 그때 배 아프시다는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 그 친구?
[허임과 노숙자1의 웃음]
갔어 [허임의 놀라는 신음]
가, 가, 가, 갔다면, 혹...
갔다고
저리로
[노숙자2의 신음]
[노숙자1의 웃음]
저, 어르신
아, 뭐야, 누구세요?
아, 저 한의사입니다
제가 맥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허임) 똑바로 누워 보시겠습니까?
[힘주는 신음]
[노숙자2의 아파하는 신음]
그간 위통으로 고생 좀 하셨겠습니다
아휴, 지금도 아파 죽겠어요
제가 몇 군데 침을 좀 놓겠습니다
(노숙자2) 아...
[허임이 지퍼를 직 연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흥미진진한 음악]
(노숙자2) 아따, 며칠 죽을 것처럼 아팠는데
아휴, 이거 한결 낫네요
[허임과 노숙자2의 웃음] 다행입니다
아참
매일 꾸준하게 복용하십시오
먹기에 간편하게 돼 있어서 번거롭지 않을 겁니다
아휴, 고맙습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예?
[노숙자1의 웃음]
(노숙자1) 야, 저 친구 이제 아주
완전히 딴사람이 돼서 나타났네 그래
[노숙자1의 웃음]
(허임) 아, 한데 여기에 계신 분들은 왜 가족하고 집에 계시지 않는 겁니까?
아, 그, 그냥 뭐, 그냥, 저...
못 가고 못 만나는 거지
[어두운 음악]
(성태) 민 회장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뭐, 정 그러시다면
그, 지난번에 허봉탁이라는 친구 말입니다
아, 예
씁, 우리 집안에 침을 좀 놔 줬으면 하는
환자가 있어서요
[노숙자3의 아파하는 신음]
관절에는 무리가 없는 것 같은데
근육이 결려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콜록거린다]
[노숙자4의 힘겨운 숨소리]
[노숙자4의 한숨] (노숙자1) 이봐, 이봐
여기가 저, 개나 소나 손목 잡는 데인 줄 알아?
야, 일로 와 봐 [재하의 놀란 신음]
이 사람이 이게
- (재하) 허 선생, 도와, 도와주시오 - (노숙자1) 아니
- (재하) 허 선생, 허 선생 - (노숙자1) 야, 좀 봐 봐
[노숙자1이 말한다] [웃음]
- (재하) 허 선생! - 잠시만
[노숙자1이 다그친다] [웃음]
잠시만요
- (노숙자1) 너 오늘... - (허임) 어르신, 어르신
(허임) 아, 왕초 어르신, 어르신
유재하 선생님이라고 능력 있는 한의사입니다
믿고 맡기셔도 될 듯합니다
아이, 진작 얘기하지 [노숙자1의 웃음]
별거 없소이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오
- (재하) 예 - 긴장 푸시고
(노숙자1) 풀고, 응
[재하의 긴장한 숨소리]
[노숙자4가 콜록거린다]
기침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노숙자4의 한숨]
한참 됐어요
이 코도 막히고 가래 때문에 갑갑하고요
씁, 후비루 같은데
입 좀 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콜록거린다]
[헛기침]
콧물이 앞으로 나와야 되는데
뒤로 넘어가서 목에 자극을 주는 것 같습니다
[콜록거린다]
씁...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노숙자1) 야, 야, 야, 야, 야, 야, 야
[밝은 음악] 날아, 날아, 날아!
[소란스럽다] 야, 야, 야, 야
(허임) 빨리 뛰시오, 빨리 뛰시오!
아휴, 빨리 뛰시오!
(노숙자1) 야, 야, 야, 야!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아이씨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재하) 아니, 근데 우리 왜 뛰는 겁니까?
(허임) 아, 나도 모르오
저번에 어르신이 뛰길래 뛰는 거요
(연경) 아니, 왜 뛰는지도 모르고 뛴다는 말이에요?
(허임) 어르신은 언제나 옳소이다
일단 가고 봅시다 [허임과 연경의 웃음]
저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 효과음]
- (허임) 눈에 쓴 게 무엇이오? - (연경) 선글라스
[허임이 중얼거린다]
(허임) 어? [함께 웃는다]
처자, 어디 있소?
아이, 여기 있네, 처자 여기 있네
조선에도 아낙들이 가끔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데
예쁘다
[연경의 웃음]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어서
[웃음]
(허임) [웃으며] 바다다
[갈매기 울음] [허임의 신난 탄성]
[함께 가쁜 숨을 내뱉는다]
(허임) 바다다, 바다 [허임의 웃음]
(연경) 바다 처음이에요?
(허임) 씁, 아니, 제주에서 마의 생활을 해서 처음은 아니오만
십수 년 만에 이리 와 보니 참으로 좋소이다
데려와 줘서 고맙소
[허임의 웃음] 바닷가에 오면 이렇게 하는 거예요
[연경의 신난 탄성]
[갈매기 울음]
이거 봐 봐요
(허임) 응? 이게 무엇이오?
하트
아, 그 소녀가 가르쳐 주던 하트 아니오
하트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더이다
심장하고
누구를 좋아하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잖아요
그래서 하트는 심장이자 사랑이란 뜻도 있어요
남을 좋아하는 마음
이야, 씁, 여기선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나 보오
나도
[허임의 놀란 신음]
잠깐만 기다리시오 [연경의 웃음]
내 금방, 내 금방!
[허임의 들뜬 신음]
더 크게!
저쪽도, 저쪽도
아직 오지 마, 저쪽도
[허임의 힘주는 신음] (허임) 이리 와 보시오
보시오
[허임과 연경의 웃음]
이거 큐피드의 화살?
큐피... 그게 무엇이오? 저건 침인데
(연경) 아, 침이구나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오
내 심장에 대침을 꽂아 넣던 그 순간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오
[로맨틱한 음악]
[허임의 옅은 신음]
[연경의 웃음]
나 남자랑 바닷가 오면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오?
나 잡아 봐라!
아, 근데 대관절 그대를 왜 잡아야 하는 거요?
안 와?
하, 가겠소 [웃음]
[연경의 탄성]
[연경의 놀란 신음]
[기계 작동음]
(연경) 와, 1등!
[기계 작동음]
[입바람을 후 분다]
[함께 웃는다]
(허임) 처, 처, 처자도
(아이1) 윤아야
(아이2) 음, 맛있다
(아이1) 그래, 많이 먹어
- (여자2) 윤호도 많이 먹어 - (아이1) 네
[풀벌레 울음]
[잔잔한 음악]
(남자5) 약재를 내주기는커녕 있는 약재도 다 쓸어 갔으니 이거야 원
(남자6) 전란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약재가 다 떨어졌으니 참으로 큰일이네
(의원1) 그래서 월령의로 나갈 건가?
(의원2) 미쳤나?
장수며 관리들도 죄 백성들 버리고 줄행랑치는 판에
(허준) 그는 좋은 의원이었고 이 땅에 꼭 필요한 의원이었다
그를 다시 돌려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최연경 선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가 지저귄다]
(노숙자2) 우리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자네는 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할머니2) 수고하세요, 예 [허임의 웃음]
- (할머니2) 아이고 - (허임) 아이고
(허임) 내일도 또 오십시오
(할머니2) 아, 예, 예, 수고하이소, 예 [허임이 호응한다]
(할머니3) 수고하셨습니다
(허임) 내일 또 오십시오, 또 오십시오 [할머니4가 인사한다]
[허임의 웃음] 저기, 저...
[노숙자2가 중얼거린다] [노숙자1의 헛기침]
저, 저, 저요, 저
(천술) 이게 누구여? [노숙자1의 멋쩍은 신음]
예, 저...
아이고, 이거 김 씨네!
(노숙자1) 예 [함께 웃는다]
어, 왕초 어른! [함께 웃는다]
(허임) 아이고, 박 씨 어른도 오셨습니까?
[함께 웃는다]
아이, 그, 어찌 몰라보게 이렇게...
[노숙자들의 멋쩍은 웃음] (노숙자1) 이거 뭐...
[함께 웃는다]
[노숙자2의 탄성]
[노숙자1의 헛기침] - (노숙자1) 아이고, 저, 영감님 - (천술) 응?
(노숙자1) 야, 이 한의원이 아주 그냥 아주 옛날스럽고
어, 아주 보기 좋네요 [함께 웃는다]
자네들은 아주 그냥 신수가 훤하군그래
(노숙자1) 아, 신, 신... [노숙자들의 멋쩍은 웃음]
몇 달에 한 번씩 쉼터에서 왜 옷이 오잖아요
아이, 그래도 저, 명색이 영감님 한의원 오는데 그래도 이렇게 [멋쩍은 웃음]
나한테 예의 갖출 게 뭐 있다고
[웃음] 그래도 참 보기는 좋구먼
[함께 웃는다]
한데 두 분이서 예까진 어쩐 일로
(허임) 혹 다른 편찮은 분이 계신 겁니까요?
(노숙자1) 아, 그, 저...
나, 나, 나, 나, 나
아니, 왜, 어, 어디가 안 좋아?
어, 어저께 저, 그
돼지고기 김치찌개하고 소주를 먹었는데
(노숙자1) 체했는지 그냥 속이 더부룩하고 아주 그냥 죽겠어서요
(천술) 아이고
잘 오셨습니다
그래, 어여 올라와 [노숙자2가 중얼거린다]
(노숙자1) 예
[노숙자1의 한숨]
[맥박 효과음]
(허임) 씁, 체한 거 같진 않은데
[노숙자1의 의아한 신음] 체하면 맥이 활하고 배가 단단하게 굳어 있어야 하는데
왕초 어른은 순한 맥에 배가 부드럽고 유연합니다
그럼 위장 쪽엔 별 이상이 없다는 얘기인데
(노숙자1) 네? 아이, 아니라니까요
아, 지금도 그냥 속이 더부룩하고 그냥 죽겠다니께
(천술) 쯧
뭐여?
시방,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거여, 뭐여?
아, 그런 게 아니옵고
그럼 제가 배가 좀 편안해지도록 몇 군데 침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노숙자1) 응?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 저, 침은
우리 저, 영감님한테 맞으려고
[웃으며] 아니, 저, 허봉탁 선생을 저 안 믿는 게 아니고
그동안에 저, 맞은 가닥이 있어서 그래
[노숙자1의 웃음]
그래? 그래, 그럼
[천술의 힘주는 신음] (노숙자1) 아이고
[천술의 힘주는 신음]
(천술) 어허, 아니, 왜 이리 긴장을 해?
침 한두 번 맞아 보는 것도 아니고
[긴장한 신음]
[의미심장한 음악] - (천술) 이 힘 빼 - (노숙자1) 예, 예
[옅은 신음]
(노숙자1) 아이고, 사, 사, 사, 사, 살살 좀 놓지
[아파하는 신음]
아이고, 이쪽...
[옅은 신음]
[아파하는 신음]
[아파하는 신음]
[노숙자1의 거친 숨소리] [천술이 숨을 하 내뱉는다]
(천술) 좀 저, 누워 있다가 나와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천술의 힘주는 신음]
(천술) 아이고
(허임) 왕초 어른
얼굴빛이 안 좋은 게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말을 더듬으며] 아, 아니, 괜찮, 괜찮아
영감님, 저 갑니다
- (천술) 그려, 잘들 다녀가게 - (노숙자1) 예
(천술) 몸조리 잘하고 [멋쩍은 웃음]
(노숙자1) 가자고
박가야, 나 왜 이러냐?
[노숙자1의 어지러운 신음]
[어지러운 신음]
[천술의 놀란 신음] 왕초 어른!
(노숙자2) 김 씨, 김 씨! [당황한 신음]
(천술) 이 사람이
아이고, 이 사람, 이거 왜 이러나 이거 봐, 어이! [노숙자1의 괴로운 신음]
정신 차려 봐!
[노숙자1의 괴로운 신음] [구급차 사이렌이 들린다]
아니, 이게 어찌...
아이고
(구급대원) 나와 주세요, 나와 주세요
[노숙자2의 다급한 숨소리]
(노숙자2) 여기서 침 맞고 이렇게 됐어요
(형사) 아, 이분 또...
워머, 이런, 또 이 양반이네
(노숙자2) 아, 저, 이 사람 말고 저 사람요!
(형사) 아, 영감님
툭하면 가짜 약재상 멱살 잡아끌고 오던?
저 영감님한테 침 맞고
[괴로운 신음] (노숙자2) 이렇게 됐어요!
(노숙자1) 아이고, 가슴이 답답해요
아니오,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형사가 수갑을 찰칵 꺼낸다]
아, 긴 얘기는 서에 가서 나누기로 하고
시방, 일단은
(형사) 영감님을 업무상 과실치상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허임) 이보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 (허임) 놓으시오, 어르신 - (형사) 자
포졸 나리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형사) 아유, 자, 갑시다
(허임) 포졸 나리, 어르신!
(구급대원) 한 시간 전에 쓰러졌고 바이털 사인 양호합니다
[노숙자1의 신음]
무슨 환자예요?
(구급대원) 의료 사고인 것 같습니다
[노숙자1의 신음] (간호사) 아, 이게 뭐야?
뭐가 꽂힌 거예요?
- 침이네요? - (구급대원) 네
한의원에서 침 맞고 쓰러졌답니다
(구급대원) 이따 형사분 오실 겁니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예, 예
의식은 아직 있는데
(연경) 엑스레이부터 찍고 심장 초음파 좀 준비해 주세요
네
어떤 돌팔이가
[천술의 한숨]
어떻게
어떻게 또 이런 일이
[아파하는 신음]
아이고
(허임) 업무, 그, 그게 무슨 말이오?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한 죄요
실수라니, 아니, 우리 어르신이 무슨 실수를 했단 말이오?
침을 잘못 놨다잖아요, 이짝이
분명히 그 영감님이 침놨어요
제가 봤어요
[어두운 음악]
하면 어르신은 어찌 되는 것이오?
(형사)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네요
5, 5년 금고면...
[한숨 쉬며] 그 영감님 감옥 가실 수도 있다고요
[노숙자1의 신음]
[놀란 숨소리]
침 끝이 심장을 찔렀네요
심장 주변에 피도 좀 고여 있고요
[휴대 전화 진동음]
- 혈압 체크 좀 다시 해 주세요 - (간호사) 네
네, 언니
(재숙) 연경아, 원장님 경찰서에 끌려가셨어
뭐라고요?
내 분명히 어르신이
침을 정확하게 찌르고 뽑는 것을 보았소
아, 왜 사람 말을 믿지 않소?
나가요, 원래 사람 말을 잘 믿어요
근디 두 사람 말이 서로 다른디
한쪽 말만 믿어 주면 되겄습니까?
그, 그, 그, 침은 어르신이 찌른 게 아니오
아,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니라 하지 않소이까?
그 영감님 손 떨어요
침놓을 때 손 떠는 거 내가 봤어요
(재숙) 원장님 잡혀가셨다고
환자한테 침을 잘못 놔서 심장을 찔렀다고 [심전도계 경고음]
(간호사) 환자 갑자기 왜 이래, 환자분! [감성적인 음악]
환자분, 환자분! [간호사의 놀란 숨소리]
(재숙) 그 환자 잘못되기라도 하면 원장님 어떡하니?
(천술) 나는 괜찮아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면 안 돼
(허임) 어르신은 내가 지킬 것이오
(재하) 그 사람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성태) 그 일만 한다면 더 이상 자네를 찾지 않겠네
(연경) 그 사람 위험한 일을 하러 갔어 막아야 돼
(연경)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요
(재하)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허임의 절규]
(재하) 당신은 그만 돌아가세요
(연경)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돼요?
(허임)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계시오
내 금방 다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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