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투 헤븐 2
[상구의 한숨] (현창) 조상구 씨
(상구) 변호사?
(현창) 한정우 씨 부탁으로 왔습니다
아이씨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난 들을 말 없다고 전해 주시오
[명함이 툭 떨어진다]
돌아가셨습니다
(현창) 한정우 씨
[상구가 픽 웃는다]
[상구의 웃음]
(상구) 와! 씨
[선글라스를 달그락 꺼낸다]
나오니까 역시
좋네
[상구의 웃음]
[한숨]
(현창) 한정우 씨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은 걸 알게 된 후부터
남은 가족을 위해 법적인 준비를 하셨습니다
한정우 씨에게 남은 가족은 아들 그루 군 한 명뿐입니다
관심 없고
나한테 남긴 유언이 뭐요?
(현창) 한정우 씨는 생전에 만일 자신이 사망할 경우
조상구 씨가 한그루 군의
후견인이 되어 주길 희망하는 유언서를 남겼습니다
후견인?
뭔데?
(현창)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인해
사무 처리 할 능력이 떨어지는 피후견인을 위해
보호자 역할을 하는 후견인을 선임하는 겁니다
어, 뭔 소리야? 애가 몇 살인데?
이제 스무 살입니다
(상구) 아, 스무 살이면 애도 아닌데 무슨 보호자가 필요해?
그루 군은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
(상구) 아
그러니까 나더러 자기 장애인 아들 보모 노릇 해라?
됐시다
난 또 뭐, 알량한 죄책감에
쌈박한 거라도 남긴 줄 알았더구먼
뒈져서도 나한테 엿을 먹이네
(현창) 조상구 씨
조상구 씨!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선수1의 힘주는 신음]
[시끌벅적하다] [선수2의 힘주는 신음]
학교 안에선 운동만 했나 봐?
아시다시피 거긴 절라 심심하거든
언제 다시 시작할 거야?
나 다시 시작한단 소리 한 적 없는데
투견이 싸움 안 하면 뭐 먹고살 건데?
씁, 뭐,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그렇게 여유 부릴 처지 아닐 텐데
간다
(상구) 아
씁, 그, 후견인에 대해서 좀 알아?
후견인은 왜?
아니, 누가 나한테 그런 거 하라고 해서
[웃으며] 누가?
[상구가 담배를 부스럭 꺼낸다]
(마담)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당신 같은 사람한테 그런 걸 하래?
[웃음]
있어, 그런 미친놈이
피후견인 말이야 그 사람 돈은 좀 있어?
아니, 뭐, 있으면 뭐, 있나?
돌봐 줄 그 사람 재산이 있으면
후견인이 그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게
대박인 거지
뭐, 마음대로?
(마담) 나 아는 사람이 어떤 노인네 후견인이 돼서
한 재산 제대로 해 드셨거든
[작은 목소리로] 그래서 좀 알지
[리드미컬한 음악]
(직원) 저기, 저…
(상구) [가쁜 숨을 내뱉으며] 저, 그거
그, 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현창이 콜록거린다]
아, 그, 후견인인지 뭔지 그거 한다고, 내가
[한숨]
- 정말입니까? - (상구) 예
아, 그러니까 그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니까?
[몽환적인 음악]
(현창) 그루 군의 후견인이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부터 그루 군과 함께
그루 군의 집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원만한 동거를 해야 합니다
둘째는 3개월의 동거 기간 동안
한정우 씨와 한그루 군이 함께 하던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의 직원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상구) 한정우가 남긴 재산이 꽤 되나 봐?
아, 변호사님한테 그런 걸 시키는 거 보면
한정우 씨가 남긴 재산이 많은지 적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창) 그루 군이 평생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겠네요
[웃음]
(상구) 야, 재주 좋네
아니, 뭘 해서 그런 돈을 벌었대?
(현창) 정확히는 한정우 씨가 모은 재산이 아니라
돌아가신 한정우 씨 부인이 남긴 유산입니다
이젠 혼자 남은 한그루가 모두 상속받았습니다
[초인종이 울린다]
(나무) 누구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어? 아저씨
나무도 있었구나 그루 별일 없었지?
별일 있어요, 집에 이상한 사람이… [현창이 신발을 탁탁 벗는다]
벌써 왔어? [도어 록 작동음]
많이 놀랐겠구나
뭐야
아저씨도 아는 사람이에요?
들어가자, 들어가서 설명해 줄게
(현창) 그루야, 인사드려
이분은 조상구 씨
그루 삼촌이셔
삼촌?
(현창) 이 친구는 옆집 사는 그루 친구예요
(나무) 아, 안녕하세요, 저는…
내가 네 삼촌이야
(상구) 잘 부탁한다
[상구가 픽 웃는다]
[한숨]
(현창) 아빠한테 동생이 있었어
그래서 아빠가 혹시 그루 곁에 없게 되면
아빠 대신 그루를 돌봐 달라고 삼촌한테 부탁을 했어
전에 아빠랑 이야기했던 후견 계약 기억나지?
저기 조상구 씨가 아빠가 말씀하신 그 후견인이야
그루,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싫으면…
아닙니다
아빠랑 약속했습니다
(현창) [웃으며] 그래?
그럼 이제부터 삼촌이랑 잘 지내봐
(나무) 아, 잠깐만
동생인데 왜 성이 달라요?
씨가 달라
(나무) 예?
아버지가 다르다고
(상구) 한정우 엄마가 우리 꼰대랑 재혼해서
날 낳았거든
(현창) 아참, 조상구 씨는 무브 투 헤븐 신입 사원이기도 하니까
그루가 직장 선배로서 잘 좀 가르쳐 드려, 알겠지?
[한숨] (나무) 신입?
이 아저씨가?
(나무) 아저씨 이렇게 그냥 가면 어떡해요?
갑자기 이렇게 환경이 달라지는 건 그루한테 너무 힘든 일이라고요
나도 어쩔 수 없어 이렇게 갑자기일 줄은 몰랐겠지만
(현창)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건
조상구 씨가 그루의 유일한 친척이라는 거야
(나무) 아무리 유일한 친척이라도 저건 좀 심했잖아요
(현창) 나무야, 저 두 사람
잘 지내는지 잘 좀 지켜봐 줄래?
(현창)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잘 부탁한다
(나무) 어?
아이씨
그래서 네가 그루라는 거지?
(그루) 한그루입니다
(상구) 네 아빠는 뭔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다냐?
(그루) 사람이 태어나서
나무 한 그루만큼만 세상에 도움이 되면
[상구가 컵을 달그락거린다] 좋은 거라고 하셨습니다
나무는 산소도 주고 열매도 주고 땔감도 주고
또 그루터기 같은 휴식도 주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멋진 생명체라고 하셨습니다 [상구가 부스럭거린다]
두, 두 번째?
세상에서 제일 멋진 생명체는
한정우 아들 한그루라고 하셨습니다
[캑캑거린다]
[상구의 헛기침]
(그루) 안 됩니다
- (상구) 안 되긴 뭐가 안 돼? - (그루) 안 됩니다
(상구) 야, 물 한 모금도 아깝다 이거냐?
좋은 말 할 때 놔라
(그루) 안 됩니다, 이건 아빠 컵입니다
아빠 컵은 아빠만 쓸 수 있습니다
[상구의 당황한 신음]
[상구와 그루의 힘주는 신음]
(상구) 하, 병신
[상구가 뚜껑을 툭 던진다]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러냐?
로봇이야?
씁, 근데 그런 거 뭐라고 하던데
Artificial Intelligence
(그루) AI 말씀이십니까?
(상구) 그래, 그거
너 그거 비슷하다는 말 많이 듣지?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이나 언어의 다양한 의미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 그래
어려움이 존나 있어 보인다 벌써부터
[상구가 가방을 탁 든다]
(상구) 여하튼 잘 지내보자
내가 여기 쓰면 되는 거지?
안 됩니다, 여긴 아빠 방입니다
아빠 방은 아빠만 쓸 수 있습니다
[한숨 쉬며] 쯧
(상구) 네 아빠 없잖아, 죽었잖아
죽은 사람은 방이 필요 없어 그러니까 내가 쓴다고
안 됩니다
아나, 이 새끼 진짜 꼴통이네?
야, 네가 뭐, 안 되면 어쩔 건데?
(상구) 야, 한그루인지 한자루인지 똑바로 들어
나도 여기 좋아서 온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우리 어지간하면
서로 노 터치, 응? 돈 터치
3개월만 버텨 보자, 어? 조카님아
나와
- (그루) 안 됩니다 - (상구) 아, 나오라고
(그루)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루의 괴로운 신음]
바닥가오리 동물계 척삭동물문 연골어류강 홍어목 가오릿과
야 [그루가 말한다]
(상구) 야, 너 뭐 잘, 잘못 먹었어?
머리를 왜 자꾸 박아?
야, 이씨 [문이 탁 열린다]
- (나무) 그루야 - (상구) 어, 야, 옆집 [도어 록 작동음]
이,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그루한테 무슨 짓 했어요?
내가 뭐? 아, 아무 짓도 안 했거든?
아빠 방은 아빠만 쓸 수 있습니다
아빠 방에 삼촌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나무) 설마 이 방 쓰려고 했어요?
했다, 왜?
(나무) 하, 진짜 대박 어이없네
그루는요
익숙해진 환경이나 정해진 규칙이 달라지는 걸 못 견딘다고요
그러니까 삼촌이 여기 계실 거면 그루한테 무조건 맞추세요
뭐라는 거야? 씨
(나무) 그루야, 진정해, 어?
삼촌 이 방 안 쓰실 거야
그러니까 진정하자, 응?
그렇죠?
그럼 나 어디서 지내라고?
[그릇을 탁탁 내려놓는다]
[의자를 쓱 뺀다]
[그루가 식기를 달그락거린다]
[한숨]
[그루가 물을 조르르 따른다]
[입소리를 쯧 낸다]
(정우) 그루야
아빠가 계란프라이 하는 거 가르쳐 줄까?
[잔잔한 음악]
혹시 아빠 없을 때 그루가 할 줄 알면 먹을 수 있잖아
아빠가 어째서 없습니까?
아빠 어디 가십니까?
아니
아빠도 가끔은
그루가 해 주는 계란프라이 먹고 싶어서 그러지
[나무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답답한 신음]
한그루 대체 뭐 하고 있어? 걱정돼 죽겠는데
[한숨]
[나무의 한숨]
[나무가 숨을 씁 들이켠다]
[랜턴이 탁 켜진다]
[상구의 힘주는 신음]
[코를 훌쩍인다]
[한숨]
[헛웃음]
[한숨]
[못마땅한 신음]
[조명을 탁 켠다]
[상구가 맥주를 호록 마신다]
[숨을 카 내뱉는다]
[입소리를 쯧 낸다]
(상구) 돈 있고 명 짧은 와이프 만나서
팔자 제대로 고쳤다 이거지?
[픽 웃는다]
[무거운 음악]
(상구) 한정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여기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귀한 아들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상구가 픽 웃는다]
[입소리를 쯧 낸다]
(상구) 아이고
[차분한 음악]
[베개를 툭 내려놓는다]
[쿵 소리가 난다]
[쿵 소리가 연신 난다]
(그루) [머리를 쿵쿵 박으며] 아직도 아픕니다
아직도 아픕니다
아픕니다
거기 누구입니까?
(그루) 죽습니다
아프면 죽습니다
(경비원) 아, 이 시간에 여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예?
- (경비원) 나오세요 - (그루) 죽는 거 싫습니다
- 그만하세요, 예? - (그루) 아프면 안 됩니다
(그루) 아프면 죽습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 (경비원) 그만하시라니깐요 - (그루) 아, 죽는 거 싫습니다
(그루) 죽으면 안 됩니다 아픈 건 싫습니다
[경비원이 만류한다] 아프면 안 됩니다
죽는 거 싫습니다
(경비원) 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예?
(그루) 아픈 건 싫습니다
- (그루) 죽으면 안 됩니다 - 그만하세요
(그루) 죽는 거 싫습니다, 아
(나무) 봐 봐
[나무의 놀란 숨소리]
너 괜찮아?
아, 나하고 같이 오지
나무는 휴관일만 옵니다
다음 휴관일은 아직 멀었습니다
[나무의 한숨]
(수지) 그루가 노랑이 걱정 많이 됐나 보구나
노랑이 많이 아픕니다
많이 아픈데 치료 안 하면 죽습니다
(수지) 치료하는 중인데 좀 더디게 낫는 거뿐이야
아프면 빨리 알아야 합니다
얼른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죽지 않습니다
아빠가 아픈데 그루는 몰랐습니다
아빠는 빨리 치료받지 않아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루) 노랑이도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아빠처럼 죽게 됩니다
(수지) 그래, 아픈데 모르면 치료 못 받아서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노랑이 아픈 거
노랑이가 말 못 해도 그루가 알아서 알려 줬잖아
그러니까 노랑이 절대 안 죽어
거짓말입니다
노랑이도 생명체니까 언젠가 죽습니다
생명이 있는 생명체가 절대로 안 죽는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수지) 그렇지, 하지만
지금 저 상처로 아파서 죽게 하진 않는단 얘기야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약속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지옥 가서 혀가 뽑히는 벌을 받습니다
'신과 함께'에 나왔습니다
[몽환적인 음악]
[코를 드르릉 곤다]
[나무의 놀란 숨소리]
(나무) 이게 다 뭐야?
저기요, 삼촌
아저씨! [짜증 섞인 신음]
[귀찮은 신음]
[상구가 지퍼를 직 연다]
아침부터 졸라 시끄럽네
[나무의 헛웃음]
(나무) 나 무슨 퍼포먼스인 줄 알았잖아 [상구의 하품]
아니, 어떻게 하루도 안 돼서
집 안을 이렇게 개판을 만들어 놓을 수가 있어요, 네?
말했잖아요
그루는요, 자기 규칙대로 익숙해진 환경이 바뀌면 안 된다고요 [상구의 심드렁한 신음]
그럼 뭐, 규칙인지 뭔지 그걸 바꾸면 되겠네
로마에 오면 로마법에 따라야 되는 거 몰라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로마인이 아닌데
(상구) 아, 이건 안다
여긴 너희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는 거
그러니까 그만 좀 댕댕거리고
너희 집으로 가 줄래?
[헛웃음]
아, 나는 좀 더 자야겠다
[나무가 씩씩거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여보세요?
(나무) 아저씨, 아, 그루 삼촌 대체 뭐 하다 온 사람이에요?
제가 지금 어이가 없어서 기절하기 직전이에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저씨 상상도 못 할걸요?
아니, 후견인이라면서요
후견인이면 좀 보호자다워야 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은 보호자가 아니라 무슨 깡패 같아요, 깡패
아, 양아치 있잖아요 완전 생양아치
그루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더 위험하게 할 거 같다니까요?
[씩씩거린다]
(현창) 이제 다 했니?
네?
이제 아저씨가 말해도 될까? [흥미로운 음악]
(나무) 그러니까
3개월 동안 그루하고도 무브 투 헤븐 일도 잘 해내야
정식으로 후견인이 된다는 말이죠?
말하자면 시험이네요?
통과하지 못하면요?
(현창) 두 사람한테 함께 지낼 수 없는 중대한 결격 사유가 생기면
조상구 씨는 해임될 거야 [청소기 작동음]
그건 그루 아빠가 나한테 판단을 맡겼어
(나무) 그럼 아저씨가 당장이라도…
(현창) 그건 안 돼
지금 당장은 두 사람 모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야
특히 그루한테 힘든 일이겠지?
(나무) 아니, 그러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요?
(현창) 그러니까 나무 네가 도와줘야지
두 사람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앞으로 나무 네 보고가 중요하게 작용할 거야
대신 너도 편견 없이 두 사람을 지켜봐 줄 수 있겠니?
[하품]
(그루) 쓰레기는 쓰레기통이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치워야 합니다
양말과 옷은 빨래 통에 넣습니다
다른 사람 물건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입니다
[그루가 지퍼를 직 연다]
빨리 준비하고 가야 합니다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고글을 탁 내려놓는다]
[상구가 코를 훌쩍인다]
[그루가 도구를 달그락 챙긴다]
(나무) 그루야, 뭐 하려고?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현장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루가 도구를 달그락 싣는다] 현장? 무슨 현장?
아, 아빠도 안 계신데 너 혼자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루가 가방을 달그락 든다]
혼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그루가 가방을 탁 내려놓는다]
아빠 계실 때랑 똑같이 하면 됩니다
일?
[담뱃갑을 부스럭 꺼내며] 그, 시체 처리인지 뭔지 그거 말하는 거냐?
유품 정리거든요?
[차 문이 탁 닫힌다]
그거 얘 혼자 할 수 있는 거야? [차 문이 탁 닫힌다]
[상구가 라이터를 탁 켠다] 혼자는 아니죠
오 변 아저씨가 삼촌도 같이해야 한다던데?
(그루) 산정로 51번길 4
11시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나무) 아, 네가 운전하려고?
(그루) 아빠가 안 계시니까 이제 그루가 해야 합니다
(나무) [놀라며]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아, 너 혼자 운전했다가
지난번처럼 또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그루) 그루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삼촌
운전할 줄 알죠?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경적]
[흥미로운 음악]
[타이어 마찰음]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경적]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경적]
아, 비켜라, 좀
[자동차 가속음]
[타이어 마찰음] (상구) 아이, 나와, 좀, 에이
[자동차 가속음] (그루) 신호등, 빨간불
[자동차 경적] 안 됩니다
[겁먹은 신음] [자동차 경적]
[자동차 경적]
[자동차 가속음]
[타이어 마찰음]
[타이어 마찰음]
[타이어 마찰음]
[타이어 마찰음]
[그루의 겁먹은 숨소리] (상구) 여기 맞지?
[상구가 코를 훌쩍인다]
(그루) 제한 속도 위반 9회 차선 변경 위반 35회
정지선 위반 8회, 신호 위반 7회
교통 법규를 어기는 건 명백한 범법 행위입니다
삼촌은 40분 동안 범법 행위를 59회나 하셨습니다
그걸 다 셌냐?
[기어 조작음]
(그루) 이제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무브 투 헤븐"
[그루가 상자를 달그락 든다]
[무거운 음악]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 자 순 자 님의 현장을 의뢰하신 가족분들이십니까?
(철우 처) 네, 맞아요 청소하는 데 얼마나 걸려요?
청소가 아닙니다, 유품 정리입니다
(철우 처) 그러니까 얼마나 걸리냐고요
(그루) 현장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철우 처) 안이 너무 좀 그래서 [철우의 한숨]
우리도 아직 못 들어가 보고 있는데
돌아가신 양반이 혼자 이런 데 계셨어도
돈이 좀 있으셨던 분이거든요?
(철우) 들어가서 왼쪽 두 번째 방인데
통장이나 현금 이런 거 있으면 그것부터 바로 갖다주시오
유품 정리 중에 나온 귀중품
각종 문서와 통장 및 현금 등은
(그루) 사진을 찍어 목록과 함께 반드시 전달해 드립니다
(철우 처) 아니, 나중에 뭐가 어떻게 된 줄 알겠어?
막말로 안 나왔다 그러면 그만이지
우리가 딴 데 안 가고 이 앞에 있을 테니까
들어가서 그거부터 바로 찾아서 들고나오라고요
알았죠?
예?
(철우) 암튼 우린 차에서 기다릴 테니까 [철우 처의 어이없는 신음]
수고 좀 해 주시오
- (철우) 가자고, 씁 - (철우 처) 알았어
(철우) 아, 차에서 기다리면 된다니까 [철우 처가 불평한다]
(상구) 아, 그러니까
청소하다 빼돌릴까 봐 지키고 서 계시겠다?
믿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자기네 손 더럽히기는 싫고?
[픽 웃으며] 웃기시네
[상구가 코를 훌쩍인다]
[코를 연신 훌쩍인다]
[코를 훌쩍이며] 쯧
[콜록거린다]
[그루가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코를 연신 훌쩍이며] 여기가 현장이야?
[무거운 음악]
[상구의 헛구역질]
[구토한다]
[콜록거린다]
[상구의 힘겨운 숨소리]
[연신 콜록거린다] (그루) 괜찮으십니까?
[힘겨운 숨소리]
돌아가신 지 3주 만에 발견되셔서 현장이 많이 오염됐습니다
[힘겨워하며] 야, 너 저게 괜찮냐?
(상구) 하, 씨, 집에선 그렇게 깔끔떠는 놈이
거기는 그루네 집이지만 현장은 돌아가신 분들 집입니다
(그루) 그분들이 정리할 수가 없어서 저희한테 부탁하신 일입니다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그루가 깨끗이 해 드리면 됩니다
삼촌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정리 작업은 저 혼자 하겠습니다
삼촌은 정리 작업이 끝난 후에 배출 작업을 해 주십시오
아이…
[상구의 괴로운 숨소리] (주민1) 들었어?
한 달이나 돼서 발견됐다며
(주민2) [한숨 쉬며] 아들 며느리 다 있으면 뭐 해?
치매 걸린 노인네 저렇게 혼자 두고
1년 열두 달 얼굴 한 번 안 비치더니
(주민1) 아이고, 그러게 말이야
[주민2가 혀를 쯧쯧 찬다] [코를 훌쩍인다]
[차분한 음악]
(정우) 그루야?
긴장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하면 돼
아빠 있을 때랑 똑같이
아빠 있을 때랑 똑같이
(정우) 그래
그럼 뭐부터 하면 되지?
이 영 자 순 자 님
2020년 3월 31일 사망하셨습니다
저희들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러 온 무브 투 헤븐의 한정…
한그루입니다
이제부터
이 영 자 순 자 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펌프질 한다]
[잔잔한 음악]
[코를 들이켠다]
[상구가 콜록거린다]
(철우) 뭐 좀 찾았나?
[철우 처의 다급한 신음]
(철우 처) [놀라며] 여보
통장 있다
어? 이거 뭐야?
아, 노인네
아, 이 돈을 빼서 다 얻다 쓴 거야?
(철우) 아, 쓰레기만 갖다주면 어떡해요?
다 버려요
(상구) 이거 가족들 사진인데…
(철우) 하, 그걸 갖다 얻다 씁니까? [철우 처의 한숨]
(철우 처) 아니, 구석구석 제대로 본 거 맞아요?
현금은, 현금 안 나왔어요, 어?
(철우) 아, 됐어, 가
그러게 내가 올 필요 없다고 했잖아
있습니다
뭐라고요?
방 안에 있습니다
현금
[무거운 음악]
(철우 처) 어디? 아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철우 처의 놀란 신음] [철우의 괴로운 숨소리
세상에
이 노인네 해 놓은 짓 좀 봐
아니, 무슨 생각으로 돈을 여기다 숨겨 둔 거야?
미쳐도 곱게 미치셔야지
어유, 내가 못 살아, 정말
[철우가 콜록거린다]
[철우 처가 장갑을 탁 든다] [철우의 괴로운 숨소리]
뭐 해요? 빨리 안 주워 담고
아, 빨리
아, 진짜
[철우가 장갑을 착착 낀다]
아이, 저기도, 저
아이, 잘 좀 주워 봐
(철우) 아이, 근데 이거 어떻게 쓰지, 어?
은행에서 안 바꿔 줄 거 같은데
당신이 가서 좀 빨아 봐
(철우 처) 내가 이걸 어떻게 해? 당신이 해
(철우) 아, 그럼 버려?
(철우 처) 아, 미쳤어? 이게 다 얼마인데? 허 참
[한숨]
거기
이런 것도 처리할 수 있나?
처리라니? 뭐, 나보고 어쩌라는…
(그루) 오염된 지폐는
전용 화학 약품으로 처리해서 건조시키면 복원됩니다
그다음에 한국은행으로 가져가서
신권 교환을 요청하면 새 돈으로 바꿔 줍니다
(철우 처) 그러니까 이 돈 사용할 수 있게 갖다준다는 거죠?
네
(철우 처) [웃으며] 잘됐네, 자
처리해서 새 돈으로 가져와요
얼마인지 내가 다 세어 봤으니까 속일 생각 하지 말고
[헛웃음]
[철우가 장갑을 착착 벗는다]
[상구의 한숨]
(철우) 수고하시오
[철우가 장갑을 탁 흔든다]
[상구의 짜증 섞인 신음]
(상구) 아유, 쯧
[상구의 한숨]
가족분들 어디 계십니까?
(상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씨
집에 갔겠지
아직 가면 안 됩니다 보여 드릴 게 남았습니다
(상구) 야, 그거 다 쓰레기라고
버리라고 한 거 못 들었어?
쓰레기 아닙니다
(상구) 야, 가족도 안 가져가는 쓰레기를 가져가서 뭐 하려고?
아이, 나 저 자식이 진짜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주택) 그루야 [차 문이 탁 닫힌다]
어, 그루 나왔구나, 야
아, 이짝이 그루 삼촌이시겠구먼
반갑습네다
난 폐기물 트럭 하는 박주택이란 사람이오
아, 조상구입니다 [주택의 웃음]
그루네랑 잘 아시나 봐요?
(주택) 내래 남쪽에 내려와 참 좋은 사람 만났다 했는데
한 선생 기렇게 되고
맘이 많이 안 좋았습네다
그러니까 우리 그루 잘 좀 부탁합네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수다
아이, 그나저나 그냥 청소하는 일인 줄 알았더니 [주택이 적재함을 탁 연다]
보통 일이 아니네요
거, 뭐, 딴 데는 기냥 쓰레기로 치워 버리는데
그루네는 달라요
달라요? 뭐 어떻게 다른데요?
(주택) 그짝도 이제부터 그루 따라 잘 댕겨 보면
뭔 소리인지 알 겁네다
좋은 일 하러 오셨으니 오래 보기요
그루야, 다 된 거네?
야, 야, 그거, 아이고
좋은 일?
[헛웃음 치며] 씨
[주택이 봉지를 툭 싣는다]
(주택) 기카믄 또 봅세다
(상구) 예, 가세요 [주택의 웃음]
[차 문이 달칵 여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아이, 나 저 새끼
[새가 짹짹 지저귄다]
(상구) 쯧, 아이씨
[냄새를 킁킁 맡는다
아이씨, 몇 번을 샤워했는데 이렇게 악취가 계속 나는 거 같냐?
- (상구) 아이씨 - (그루) 악취의 원인 성분은 주로
(그루) 암모니아 메테인싸이올, 황화 수소
[흥미로운 음악] 다이메틸 설파이드 트라이메틸아민
아세트알데하이드, 톨루엔, 자일렌 메틸에틸 케톤 등이 있습니다
암모니아는 화장실 냄새라고도 하는데
그건 인간 배설물의 주성분이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에도 [코를 훌쩍인다]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치즈나 홍어회, 취두부 같은 발효 식품들도
오래 지나면 암모니아 냄새가 강해집니다
현장에서 나는 냄새는
공중화장실의 10배에서 40배 정도에 해당됩니다
(상구) 이씨, 쯧
아, 근데
매번 그 정도로 험악한 건 아니지?
바닥에 액체도 고체도 아닌 것이
쯧, 아이씨
(그루) 체액이 부패한 겁니다
사체에서 흘러나온
혈액과 지방, 죽은 세포들이 흘러나와 녹은 겁니다
인간의 몸에서 체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보통 몸무게의 60% 정도 됩니다
오늘 현장은 날씨가 덥지 않아서 많이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지난번엔 벌레와 구더기가 많이 나와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벌레들은 밖으로 쫓아내지만
구더기는 염산이나 기름으로 태우지 않으면
없애기가 어렵습니다
[헛구역질] [숟가락을 탁 내려놓는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상구가 구토한다]
[한숨]
[한숨]
(나무) 별일 없었죠?
(상구) 그렇게 걱정되면 옆집 너도 아예 취직을 하지 그래?
안 그래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거든요?
뭐, 주택 아저씨 말로는 괜찮았다고 하던데
(상구) 넌 정체가 뭐냐, 대체?
저 녀석 친구라는 뻥치지 말고
그게 왜 뻥이에요?
(상구) 너 같은 애가 저런 모자란 애랑 친구 어쩌고 하는 거
그거 믿으라고?
(나무) 진짜 얼척없네
아니, 그럼 대체 뭐 무슨 사이인 거 같은데요?
아, 그, 있잖아
돌봐 주는 대가가 짭짤한 알바라든가
보모 같은 거
이런 경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나무) 말 나온 김에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루를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루랑 한집에 사는 거
진심 리얼 열라 마음에 안 들어요
아, 왜 정우 아저씨가
삼촌 같은 사람을 불러왔는진 모르겠지만
뭐, 그건 지금 따질 수도 있는 게 아니니까 패스
그러니까 그루한테 잘해요
내가 똑똑히 보고
오 변 아저씨한테 하나하나 다 얘기할 거니까
오케이?
(상구) 자식이 진짜
참고로
나 눈 대박 좋아요
양쪽 다 1.5
저 쥐방울만 한 게 진짜
[차분한 음악]
[지폐를 약품에 찰박거린다]
[몽환적인 음악]
[새가 짹짹 지저귄다]
(철우 처) 이 노인네 해 놓은 짓 좀 봐
아니, 무슨 생각으로 돈을 여기다 숨겨 둔 거야?
(그루) 아빠
뭐 하시는 겁니까?
(정우) 음, 떠나신 분이
무슨 생각을 하셨나 알아보는 중이지
그렇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정우) [살짝 웃으며] 알 수 있지
돌아가신 분은 말씀을 못 하십니다
살아 계셨을 때처럼 목소리로 말씀은 못 하시지
그래서 우리가 대신 읽어 드리는 거야
어떻게 하면 읽을 수 있습니까?
가까이 와 봐
(정우) 이 안에 담긴 물건들을 잘 들여다보는 거야
[차분한 음악]
그럼 조금씩
보일 때가 있어
떠나신 분께서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었던 생각
(그루) 퍼즐 같은 겁니까?
(정우) 그래, 그거랑 비슷한 걸지도
퍼즐은 재밌습니다 문제 푸는 거 자신 있습니다
[픽 웃는다]
[흥미로운 음악]
[순번 알림음]
[ATM 안내 음성] 어서 오십시오
[무거운 음악]
[영수증을 부스럭 꺼낸다]
2019년 10월 2일 5만 원
2019년 10월 4일 5만 원
2019년 10월 7일 5만 원
이 영 자 순 자 할머니를 아십니까?
계좌 번호 154-20756-01-012
이 영 자 순 자 할머니를 아십니까?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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