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3
이쪽으로 오시죠
[잔잔한 음악]
게스트 하우스치고는 좀 이상한데?
또 사고 친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 이쪽으로 - 네
[숙희가 감탄하는 소리]
앉으시죠
[잔잔한 음악]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우리
같이 사는 겁니까?
아니, 어떻게 여기 당신...
내가 할 소리 같은데?
저희 대표님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문수호라고 합니다
(숙희) 안녕하세요
대표님이 이렇게 젊으신 줄은 몰랐는데
아, 낡은 한옥을 사 주셔서 감사해요
저희가 감사하죠
거처 구하실 때까지 편하게 지내시면 됩니다
쓰실 방하고 주방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숙희) 네, 네
이쪽으로
- 우리 만난 적 있죠? - 아,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잖아요
내 방에서 자고 일어난 날 아침에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아, 우리 둘만의 비밀
한국에도 일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전 집 구해지는 대로 빨리 나갈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저기, 그 이름 본명이에요?
네, 왜요?
아니에요
첫사랑 이름하고 똑같아서 놀란 표정인데?
이모, 이모 어딨어?
왜 안 나왔어요?
[잔잔한 음악]
기다렸는데... 안 나올 줄 알았지만
안 나올 줄 알았으면서 왜 기다렸어요?
왜 그랬을 거 같아요?
내일 아침까지 숙제
숙제 검사할 겁니다
가서 쉬어요
{숙희) 해라야, 이리 와 봐
어, 가
해라야, 빨리 와 봐
여기가 네 방이야
내 방도 이만해 끝내주지 않니?
도대체 외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오길래
손님 방을 이렇게 잘 꾸며놓는 거니?
이모, 우리 나가자 딴 데서 지내, 어?
나가긴 어딜?
이리 와 봐
화장실도...
[해라는 끌려가면서 저항하고 숙희는 웃는 소리]
여기, 정원도 끝내줘
여기! 다이닝, 다이닝 룸
있을 거 다 있어!
- (숙희) 그릇들도 다 새거에... - (해랑) 아니야, 안 돼, 하지마
- 엄머머, 명품에... - 만지지 마, 만지지 마
우리가 오면 부끄러워서 못 꺼내겠다
이런 것 좀 쓸데없이 만지고 그러지 좀 마, 제발 좀
너 저 사람이랑 어떻게 알아?
슬로베니아에서 봤어 일 때문에 만난 거야
어머머, 인연이다!
우리 집 구할 때까지 딴 데서 지내자, 빨리 가자
이 좋은 델 놔두고 왜?
나 여기서 지내면 불편하다니까
왜? 슬로베니아에서 뭔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내가 불편해, 어? 가자
그냥 불편한 이유가 뭡니까?
[경쾌한 음악]
아, 그러게 말이에요
방도, 화장실도 다 따로 쓰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나 회사에 볼일 좀 많아서 갔다 올게
야!
회사 간다고 나가서 또 찜질방 같은 데 갈 건가?
왜 따라와요?
보안 장치 문 열어주러 나왔어요
- 자존심 때문인가? - 뭐가요?
집 구하기 전까지 여기서 지내는 게
뭐가 그렇게 싫어요?
어, 이거 자존심이면
내가 신경 쓰인다는 뜻인데
- 이보세요 - 좀 설레네
문 열어주세요, 빨리
- 데려다줄게요 - 됐어요
내일 같이 점심 먹읍시다 회사 앞으로 갈게요
할 얘기도 있고
지금 하세요, 그 할 얘기
내일 봐요
아니, 문 열어주고 가야죠?
안녕
씨, 진짜!
누구...
- 안녕하세요 - 여행사 아가씨구나
이거 저... 오늘내일 공사 때문에 붙인 출입금지인데
일주일 전부터 붙여 놨는데 못 보셨어요?
못 봤는데...
[다리미 스팀 소리]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
저, 이번엔 혼자 왔어요
새벽까지만 좀 있다 가도 될까요?
술이나 한잔합시다
좋죠
이번에도 입어 보기만 하고 안 가져갈 건가?
이건 가져갈게요
저것들도 다
대체 왜 저한테 이렇게 옷을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 얘기했는데 - 이해가 안 돼서
내가 당신한테 전생에 죄를 지었어요
그걸 갚아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전생에 나한테 뭔 짓을 했는데요?
인삼주나 마셔요
와인 좋아하실 것처럼 생겨가지고서는
120년 된 더덕주도 있는데 마셔 봐요
와인보다 100배 좋으니까
[깜짝 놀라며 감탄]
맛있네요
[불길한 느낌의 음악]
(여자) 맛있게 드세요
자, 분이도 한 잔 쭉 마셔, 어?
전생에 뭐 내 남자를 뺏거나 그런 건 아니죠?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당신이 뺏었죠
와우, 전생엔 내가 위너였네
그 남자 멋있었어요?
이 세상 최고
[크게 웃는 소리]
아, 그래서 내가 이번 생은 별 이건가 보다
아쉽네
이번엔 내가 뺏을게요
그러세요
[잔 부딪히는 소리]
그래도 쇳덩이를 멀리한 몸은 아니네
앞으로 바짝 세게 좀 하자
체대 나온 놈이 체력을 길러야지
- 검사는 뭐냐, 검사가 - 아, 참!
운 좋은 줄 알아
트레이너 하나가 유학 가서 마침 딱 한 자리 비었다
우리 클럽은 상위 1%만 다니는 거 알지?
입이 무거워야 해 인맥 넓힐 생각도 하지 말고
으아!
- 자꾸 생각나서 미치겠네 - 뭐가?
그 슬픈 눈빛
제가 요즘 옷이 좀 필요한 관계로 이 옷은 가져갈게요
대신에 월급날 성의 표시는 꼭 할게요
돈은 됐어요
나도 선행을 쌓아야 한다니까
[메시지 도착 알림]
나 합의해서 바로 나왔어
구치소까지도 안 갔으니 걱정 말고
[메시지 도착 알림]
여긴 피트니스 블랙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
미친놈
뭐예요?
절 찬 남잔데요
지금 저한테 문자로 좀 헛소리를 하네요
남자가 있긴 있었네
가지실래요?
사진 있어요?
[웃음] 있죠
사진, 사진이 또 중요하죠
생긴 건 멀쩡해요
자상하고 웃기기도 하고
마음에 좀 안 드세요?
이 두 개 말고 다른 건 없어요?
딴 건 다 제가 헤어질 때 지워 가지고
[강한 바람 소리]
[코믹한 느낌의 음악]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 지금 어딨어요?
피트니스 블랙이라고
부자들만 다니는 스포츠 센터 있잖아요?
거기 다음 주부터 출근할 건가 봐요
정말 내가 뺏어도 돼요?
[웃음] 아니...
아니 정말로 그렇게 막...
마음만 먹으면
어떤 남자든 다 가질 수 있게 되고 막 그런 거예요?
뭐, 그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게 있으니까
저 그럼 부탁이 좀 있는데요
되도록이면 얘를 진짜 막 가슴 찢어지게 가지고 놀아주세요
막 밀당으로 혼을 쏙 빼주시고
한 두 번 정도 가슴 치며 울게 해 주시고
아, 근데 돈은 뺏지 마세요
- 아직 사랑하는구나 - 아니요, 절대 아니죠
얘는 나한테 모멸감을 줬어요
방금 근사한 원피스 디자인 하나가 떠올랐어
다음 주에 가져가
- 이 남자는요? - 그 남자는 당신 옷값
내가 알아서 할게
저 좀만 자고 갈게요
바로 출근해야 해서
이 일대가 개발이 되면서
월세가 적게는 2배에서 4배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작은 가게들이 동네를 띄웠는데 덕분에 쫓겨나는 거죠
자살한 세입자들도 꽤 있고요
거기도 한번 가 보죠
[애잔한 느낌의 음악]
재작년에 경매로 나왔다가 유찰돼서
현재는 비어 있습니다
이거 삽시다
안 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사시던 집주인 분들이 다 안 좋게 돼서 떠났답니다
정해라 씨 부모님도 그렇고요
[잔잔한 음악]
으앙!
- 거기 있는 거 다 보였거든 - 야!
거기 서!
아, 거기 서라고!
아, 정말 예쁘다
그러게, 나도 아파트보단 이런 한옥이 더 좋더라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어
막상 살면 불편할걸?
그럼 편리하게 고쳐서 살지
- 오빠가 고쳐주라 - 내가?
오빤 뭐든지 잘하잖아
그래, 고쳐줄게
약속!
이 근처에 유명한 국숫집 있거든
거기 가서 점심 먹자
좀 전에 무슨 약속을 하고 있었니?
비밀!
해라가 한옥 고쳐달래서 그러겠다고 했어요
아유, 우리 수호가 자격증을 많이 따야겠구나, 응?
아, 그럼 해라는 한옥을 몇 채난 사고 싶은데?
한 열 채?
야아, 해라, 아빠 닮아서 욕심이 많구나, 응?
난 딱 한 채만 고쳐줄 거야
- 열 채 - 한 채
- 아, 열 채! - 아, 한 채
열 채!
그 약속은 지켰는데
네?
한옥 매입한 거 리모델링 신경 좀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 이름이 뭐예요? - 사랑이요
사랑아
- 예쁘죠? - 네
- 갈게요 - 네
잘 잤어요?
점심에 할 인사가 아닌데?
어제 입고 나간 옷이 아닌데?
저 한 시간밖에 못 내요
직장인들 점심시간 빠듯한 거 아시죠?
뭐 먹을래요? 랍스터 크랩?
해물 오케이, 제가 쏠게요
이래 봬도 맛있는 집이에요
그리고 메뉴가 하나라서 빨리 나오고요
숙제는?
안 나올 줄 알았으면서 왜 기다렸어요?
왜 그랬을 거 같아요?
내일 아침까지 숙제
심심해서?
장기가 필요해서
살인마라서?
보험 판매원은 아닌 거 같고
상상하는 수준이 그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피해가는 거예요?
나한테 관심 있어서?
그러길 바라요?
- 오, 맛있겠다 - 맛있게 드세요
그나마 제일 비슷합니다
아니, 나한테 왜 관심 있는데요?
해라 씨가 매력적인 거 왜 몰라요?
외국 생활 오래해서 모르시나 본데
한국에서 가난한 여자 매력적이지 않아요
난 부모님도 없고 학벌도 후지고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내가 본 정해라 씨는
자기일을 열심히 했어요 솔직했고요
우는 게 예뻤고, 아주 많이
매력 뜻 알아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 자꾸 생각나게 하는 이상한 힘
사기꾼이죠?
[사레들린 기침]
사기꾼도, 살인자도 아니고
운이 좋은 사업가입니다
그럼 우리 집 산 거는요?
- 그것도 우연이에요? - 우연이에요
- 그런데... - 근데?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늘 이런 식으로 행운이 따라요, 나는
자, 사리들 해
한창 먹을 땐데
흑기사!
- 오빠 먹어 - 아니야, 너 먹어
우와, 봤어? 진짜 예쁘다
남자도 멋있는 거 같아
서울시 우리 동네 프로젝트에 그 회사는 참가 안 해요?
우리 동네 프로젝트
한마디로 도시 재생 사업인데
이걸 여행사 끼고 같이 하나 봐
서울에 인쇄소 골목 한옥 마을, 수제비 타운
이런 곳에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심어서
관광 상품이랑도 연계를 하자는 거지
- 재밌는데요? - 재밌지?
근데 문제는
우리 팀에서 서너 명이 붙어줘야 할 거 같대
왜 맨날 우리 팀에서만 차출돼요?
아니 우리 그거 뭐야...
패키지 상품 아이디어도 내야 하잖아요
맨날 일 받고 하나 더 하고 받고 하나 더 하고, 쉬지도 못하고
그럼 어떻게 이번에는 못 하겠다고 내가 좀 버텨볼까?
- 네 - 알았어, 내가 힘껏 해볼게
야! 잘돼 가?
- 아, 본부장님 - 오셨어요?
뭐, 일단 우리 동네 프로젝트 다음 주에 발표회인 거 알지?
이 팀도 전부 참석해
아, 저, 본부장님
저희 팀 일 많은 거 아시잖아요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팀이 하시면...
네, 네, 그리고 저희 그...
신상품 패키지 기획안도 작성해야 하는데
- 해라 - 네?
니 짐 뭐이라 했니?
니 짐 내 뉘귄지 아니?
나 이 회사 본부장이야!
야, 똑같지, 응? 똑같지?
[칼 맞은 척 신음]
하겠습니다, 예
예, 저희 사실 그 프로젝트 하고 싶었습니다
- 그치? - 맞아요
그런 프로젝트는 어떻게 아세요?
우리 회사도 참가를 하니까
아니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
10분만 늦게 들어가요
[경쾌한 음악]
젊은 예술가나 소상공인들이
집세 저렴한 데서 가게를 성공시키면
동네가 개발되고 사람들이 몰리죠
그러면 집세가 올라 거기를 떠나야 하고요
아, 요즘 뉴스에 많이 나와요 젠트리피케이션
착한 임대 사업으로 일단 시작하려고요
5년 동안 임대 보장, 월세 동결
근데 서울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건물주가 한다면 하는 거죠
동네에 맞게 어떤 가게를 넣을지
어떻게 경쟁력을 올릴지도 같이 생각하고요
회사 근처에도 이런 골목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낙후된 동네 인심을 콘텐츠도 개발하고요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변화의 씨앗이 되거든요
10분
더 자세한 게 궁금하면 내일 보러 와요
저희도 발표 때문에 가요
오늘 좀 늦을 거 같아요
내 책상에서 일기장 훔쳐보지 말아요
별로 안 웃긴 농담은 하지 말아요
돈 많은 남자가 나한테 관심 있다고 해서 들뜰 만큼
순진하지 않거든요
강아지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 내가? - 네, 아까도 그렇고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데
집에서 봅시다
저기
뭐 할 말 있다 그러지 않았어요 어젯밤에?
- 했잖아요 - 언제?
방금
안녕
언니
저 남자 누구야?
- 집주인 - 어? 집주인?
집주인이 저렇게 멋있어?
- 들어가자 - 응
근데 집주인은 어디 살아?
- 같은 집에 - 같은 집에?
언니 집들이 강추!
언니 남자친구보다 100배는 멋지다
적당히 해
요즘 셰어 하우스 개념으로
상가 공간을 임대하는 방식도 늘고 있어요
그거 다 한때 유행이야
지나가는 거라고
혜화동에 있는 우리 빌딩 옆에도 하나 들어올 건가 봐요
근데 문제는...
월세도 안 올리고
세입자를 도와주는 팀까지 따로 운영을 한다 그러는데
괜히 비교돼서...
그 건물주가 누군데?
뭐, 외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좀 더 알아보려고요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긴장감 넘치는 효과음]
[종소리]
[음산한 느낌의 음악]
[의자가 넘어지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
그 사람이야
난 당신을 좋아하는데
[메시지 도착 알림]
상처받아 아픈 거니?
울지 말고
밥 잘 먹고
나 같은 놈 잊고 지내
응, 그렇지, 강하게 보고
힘 조금만 더 주자
[메시지 도착 알림]
야 인마, 뭐 하는 거야 사진 찍다 말고?
형, 나 5분만
복근에서 쥐가 날라 그래
- 야, 이! - 저 5분만요
오케이
5분만 쉬었다 하시죠
사랑한다고 매달리면 어떡하지?
그동안 슬로베니아에 있었어
상처가 컸네
뭔 상처, 뭔 상처?
- 빨리 와, 인마 - 아아, 아파!
갑자기 이사는 왜 간 건데?
사정이 있어
언니네 집 언제 놀러 갈까?
야, 적응 좀 한 다음에
- 나도 아직 적응 안 된... - 해라 씨
검사 남친?
안녕하세요?
최 검사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네
- 나 먼저 갈게 - 어? 간다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어서 받아
이러다 사진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야!
여긴 왜 온 거야?
아, 걱정돼서 왔지
슬로베니아는 대출 받아서 갔니?
남자 때문에 상처받았다 그러면 안 돼, 이 바보야
진짜 검사라면 상처받았겠지
가짜라서 벌써 다 잊었어
거짓말하지 마
그날 네 눈빛에서 진짜 사랑을 봤어
그날 네가 해준 충고 잊지 않을래
방금 걔 친한 후배지?
아직 날 검사로 알고 있던데
너 아직 나 사랑해 날 지켜준 거다
지랄 염병을 하네
내가 초라해지기 싫어서 말 안 한 거야, 정신 좀 차려!
널 사랑하는 거 같아
돈 필요해서 온 거 아니야 정말...
- 너 좋아하는 거 같아 - 그래서?
캐시미어니?
어, 100%
아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가짜 검사랑 헤어진 거밖에
해라 씨?
해라 씨!
[애잔한 음악]
[숙희의 웃음 소리ㅣ]
역시 성공하는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엄머! 이 옷은 뭐니?
아, 이거 하나 얻었어
아, 이거 대표님께서 전해드리라고
이게 뭐예요?
슬로베니아 사진이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아, 감사합니다
자, 그럼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대표님께서는요
두 분 편하게 드시라고 늦게 들어오실 거 같습니다
아우, 그럼 저희가 더 불편하죠
일도 바쁘시고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사신 거 같은데
사업하긴 좀 힘들지 않으실까요?
고등학생들한테 장학금을 주고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어울렸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 지금 프로젝트에도
여러 명 함께하고 있습니다
관공서나 뭐 힘을 가진 윗분들이나
그쪽으로도 연이 있어야 사업하기 편할 텐데
대표님은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게 잘 풀렸어요
부럽다
해라야!
해라야
이거 붙여 봐
보습력이 그냥 짱이야
야, 근데 저거 정리는 언제 할 거니?
천천히 할게, 피곤해
보기 흉하잖아
내가 알아서 꺼내 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이모
혹시 수호 오빠 기억나?
- 누구? - 아빠 친구 아들 있잖아
아빠가 후견인 해줬었고 여기, 얼굴에 화상 흉터 있고
몰라
니네 엄마가 날 언제 초대라도 했었니?
이모 옛날에 우리 집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어?
그래
너도 나 니네 집 망한 후에 처음 본 거 잖아
근데 난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 친척들한테 들었지 - 친척 누구?
있어
얼굴에 흉터 난 오빤 왜?
모르면 됐어
알아보니까
어릴 때 외국으로 가서 자란 한국 사람이래요
그 유학 갔다 온 철없는 금수저가
깝치다 말겠지
신경 쓸 거 없다
김 비서, 그거 아직 안 됐어?
- 여깄습니다, 회장님 - 뭔데요?
이거 블랙박스 영상
내가 아까 이상한 걸 봤어
아, 여기는 아까 낮에 저랑 같이 지나간 데잖아요
이제부터야
봤지?
네, 커피잔 깨지는 건 봤어요 그게...
- 이상하세요? - 갑자기
이쪽에만 바람이 부는 거 같잖아
뭔가
이상했어
그 옆을 지나는데 소름이 돋더라고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
낮부터 이래요, 계속 자
얘, 나 가봉하러 왔어
일어나
특별한 건 없었고?
낮에 나갔다 와선
그냥 기절... 했는데
죽었나?
그럼 다행이고
옷감이나 보자
시간이 멈춘 곳이 여기 있습니다
이 좁은 한옥 동네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집주인들은 최소한의 보수만 하며
집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재개발은 무산됐죠
[바이올린 음악]
주민들의 실망은 컸지만 오히려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골목에 생경하게 문을 연 작은 카페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고
서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앞으로
낙후된 동네 되살리기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소상공인과 젊은 창업자
그리고 예술가들의 공방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펴고자 합니다
5년 동안 월세를 올리지 않고 내쫓지 않고
함께 살아갈 방향을 모색할 겁니다
언니네 집주인 좀 멋있는 거 같아
앞으로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알았네요 뭐 하시는 분인지
다행이네
- 저, 그리고... - 대한 신문 장정숙 기자입니다
오늘 너무 좋았고요 따로 인터뷰 부탁드릴게요
명함이...
한우 등심에 된장찌개 어떠세요?
오늘 저녁 회식요 24번지에서
24번지?
[속삭이며] 집, 집
알겠습니다
한우, 제가 쏠게요
- 명함 - 네
어때 이거?
이게 더 낫나?
죽은 줄
수의 디자인 생각했는데
어떤 게 더 나아?
더 예쁜 건 없고
- 다 예뻐 - 백화점에 가 볼까?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을 봐야겠어
직구 사이트를 봐 수천 벌이야
직접 가서 만져 봐야 느낌이 오지
응, 올드해, 역시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아, 그럼 청담동 편집샵에 가보든지
어우, 고집은 세 가지고는
[신비로운 효과음]
[코믹한 느낌의 음악]
어떤 게 더 나을까?
(영미) 흥!
뭐, 다신 안 볼 것처럼 악담을 하더니
내 인터뷰 기사 난 거 봤구나?
네가?
이것 봐라
'대기업 MD 출신으로 편집샵 성공'
'트렌드 세터 김영미'
내가 봐도 근사해
실물보단 잘 나왔네
예쁘면 예쁘다고 해
넌 요새 해라한테 옷 엄청 주더라?
- 내가? - 네가 준 거 아니야?
투피스, 원피스, 바지...
디자인도 예쁘고 옷감도 좋던데
나 아닌데?
혹시 샤론 양장점 거 아니야?
아, 맞아 라벨에 그렇게 있었던 거 같다
우리 물건 아니야
걔가 그럼 무슨 돈으로 옷을 산 거지?
디자이너랑 친한 거 같던데
- 해라가? - 응
그 여자랑 나도 콜라보를 해야 하는데
왜, 여자가 좀 재수없어
아니 왜, 지가 디자인 좀 한다고 안하무인인 애들 있...
어머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 여긴 웬일이세요?
저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정해라랑 약속 없이 찾아갔다가 욕먹은 사람
아!
제 샵이에요
아, 소문 듣고 오셨나 보다
아니면 기사 보고 오셨어요?
옷들이...
좀 뻔하네요
[영미가 크게 웃는 소리]
아 뭐,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어 가지고
배가 불러서 그랬을까요?
그래도 제가 보기엔 시크하기만 한데
편하게 구경하세요
커피랑 과일이랑 기념품
엠마 스톤이 입었던 원피스 좀 걸어놔
그리고 지드래곤 스타일리스트 몇 시에 오는지 확인해 보고
아휴, 힘들어 진짜
아이, 씨 안 해, 안 해, 안 해, 안 해!
아유, 이뻐라
어머!
어머, 여기 사람이 있었네?
샤론 양장점
맞다, 그 여자야
어머, 안 늙은 건가?
설마
저기 혹시...
어머님이 샤론 양장점을 하셨나요?
닮으셨네요, 쌍둥이처럼
- 어디 갔어? - 나갔어
뭐야?
선생님?
[경쾌한 음악]
토란, 양파, 감자, 두부는
손질해서 먹기 좋게 깍둑썰기한다
빨리 손 씻고 여기 재료 좀 꺼내줘요
냉장고 위 칸에 보면은 양파랑 고기 있고요
냉동고 위 칸에 멸치 가루 있거든요
아, 그리고 스테이크 소스 찾아봐 줄래요? 여기서?
냉장고
양파
- 그리고? - 양파랑 고기
- 그리고 냉동고에 뭐요? - 멸치 가루
그다음 스테이크 소스
부업으로 포차 하시나요?
어릴 때 불우하게 자랐거든요
나돈데
기숙사 음식 질릴 때 내가 해 먹었어요
부업으로 고깃집 하시나 봐요?
안 웃긴 농담 하지 말아요
귀여우니까
[해라 헛웃음]
이모는? 일부러 내쫓았죠?
아니요?
먹고 있으면 좀 있으면 들어올 거예요
많이 드세요
내가 감사해서 쏘는 거니까
뭐가 감사해요?
응, 그냥...
그날 나 속인 거 빼곤 많은 것들이 감사하죠
- 할 얘기는 뭐예요? - 뭘 거 같아요?
오늘부터 1일?
아니거든요
그럼
일단 이거 한 잔 마시고 얘기할게요
식사하세요
처음 100년은
'내가 왜 이렇게 안 늙지? 이상하다'
그다음 100년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몸부림치다가
그다음 100년은
받아들이는 단계죠
그래서 이번엔
'공부를 좀 해볼까' 하다가도
귀찮고 힘들면
'에휴, 모르겠다 다음 400년째 하지'
그렇게 돼요
인간이 웃기는 존재예요
저기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 블로그 중에
예전의 맛집들에 관한 얘기를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요
조만간 영화로 나오겠네요?
그렇기만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무튼, 역사 전공 후배랑 열심히 찾아 봤는데
그게 완전 허구는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런 상상력은 역사 공부를 통해 얻어진 건가요?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
제가 살면서 본 건데요?
200년 훨씬 넘게 사셨다고요?
네
말죽거리에 있던 뚱뚱이 주모 국밥 생각나지 않니?
맛집들은 19세기가 최고였던 거 같아
그렇게 떠들어대고 싶어요?
우리가 죽지 않는 존재란 걸 알게 되면 어떡해?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
그 나이 먹고도 모르니?
그 사람
여기 있어요
어제 봤어
잘못 본 거 아니야?
그 사람 맞아
세상에 태어나 있었어요
그 사람 네가 죽였어
그 벌을 받아서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있는 거고
사랑해서 그랬어
두 사람은 너 때문에 슬프게 죽었으니까
다시 태어나서 사랑하게 되겠지
날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두 사람 다시 만나선 안 돼요
되돌려 놓을 거야
그 사람과 결혼하면 이 저주가 풀릴 것만 같아
네 저주는 그 여자아이가 풀어
예쁜 옷 여러 벌 해 보냈어요
천 벌은 만들어 줘야지
두 사람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도 해주고
[음산한 느낌의 음악]
어제부터 이래
그 사람을 느낀 날부터
[잔 깨지는 소리]
우린 다시 만나 행복해질 거야
너 그러다 갑자기 늙어서
아흔 살 노파로 500년 살게 된다
그 사람 홀릴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 줘
세상에 그런 게 어딨니?
네가 계산해
선생님
저는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니, 뭘 꼭 내세워야만 해요?
열등감 폭발하는 인생이 바로 접니다
뭘 해도 주눅들어 있고
뭘 해도 돈 걱정이 앞서고 그냥
한 달, 한 달, 한 달 살아가기 바빠요
꿈도 없고
굉장히 성공하신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되시죠?
근데 제가...
아까 낮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아까 선생님 보면서 조금 부끄러웠거든요
나는 뭔가?
못났다고 이렇게 계속 못나게만 살 것인가?
- 내가 왜 선생님이에요? - 이젠...
나도 달라질 것이다
한 잔 주세요
자, 흑기사!
선생님, 나의 흑기사잖아요
지레 겁먹지 말기
이게...
제가 지금, 지금 이 상태에서 현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우리 회사 브레인들만 모였다는
마이스팀에도 지원할 거고요
그리고 저 사진도 배울 거예요
사진 그거 내가 가르쳐 줘야죠
아, 그렇죠
사진을 배워야죠
그리고 저...
집세도 낼 거니까 그냥 그런 줄 알고 받으세요
- 오케이 - 그리고
저 좋아하지 말아 주실래요?
이게 제가 오늘 하려던 말이거든요
날 좋아하면
그냥 흔들지 말고 냅둬요
나 안 좋아해도 그냥 냅두시고요
노력해 볼게요
우리는 급이 달라요
선생님, 내 스타일도 아니고
그리고 나는 또 상처받기 싫거든요
모멸감도 느끼기 싫고요
어떤 놈이야?
모르겠어, 몰라
몰라
해라야
해라야!
엄머, 야, 너 취했어?
피곤해서 쓰러진 거지?
[전화벨 소리]
어머, 어떡해 몇 시야? 나 지각이야?
내가 못 살아, 못 살아
아, 예, 예 안녕하세요, 고객님
아, 예 비행기 자리 났어요
지금 스톡홀름에 계신다 그러셨죠?
아, 제가 지금 메일로 바로 넣어드릴게요
네, 네, 감사합니다
이모, 언제 왔어?
너 식탁에서 눈 감고 있을 때
고기 내가 남겨둔 거 먹었어?
문 대표가 기가 막히게 구워줬지
해라야, 너 이거 좀 봐봐
내가 여기서 사진도 찍었었네
기억 안 나?
안 나지
부모님 돌아가실 때 일들은 기억에서 사라진 게 많아
나 오늘 영미네 가게에서
똑같이 생긴 여자 봤거든
안 늙은 거니?
[애잔한 느낌의 음악]
저는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어요
열등감 폭발하는 인생이 바로 접니다
선생님, 나의 흑기사잖아요
(어린 해라) 수호 오빠!
[어린 해라가 웃는 소리]
그래
나야, 수호 오빠
[전화벨 소리]
뭐 하세요?
[코믹한 느낌의 음악]
책 읽어
넌 뭐 하니?
저도 책 읽어요
어울리지 않게 무슨 책이야?
마사지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누가 귀신 아니랄까 봐
얘!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가끔 근육통 있어
마사진 왜 하는 거니?
이런 거라도 하는 척해야
'그래서 안 늙나 보다' 알 거 아니야
그러게 요새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뭔가 가꾸고 있어야 할 거 같은 예감?
- 해라 씨 - 어머, 깜짝이야! 어머?
어떻게 된 거야? 집도 이사 가고
너 진짜 신고한다
내가 법을 좀 알잖아?
이거 신고해 봤자 안 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아니, 이것만 놓고 올라고 했더니 이사 갔다잖아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사우나 가는 거 아니까
혹시나 하고 기다려 봤지
아휴, 진짜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해, 아휴
그래도 어떡하니?
떠난 후에 알게 된 사랑인데
당장 어떻게 해 달라고 안 해
문자만 보내게 해 줘
나는 검사 남친이 필요했어
웃기지 마, 검사 아니어도 날 사랑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땐 내가 잠깐 미쳐서 그런 거고!
아, 해라 씨
아, 그럼 진짜 검사가 돼서 와
우리 집이 왜 망했는지 우리 아빠는 어떻게 돌아가시고
시신은 어딨는지 같이 조사해 줄 내 편이 필요했어
그래서 나도 8년 만에 법대 졸업한 거고
뭐 물론...
난 생활비 버느라고
로스쿨이나 법대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그랬다고
다신 나타나지 마라
로스쿨 준비할게
[격정적인 느낌의 음악]
검사가 될게
[코웃음]
웃지 마!
나한테 시간을 줘
네 편이 되 줄게, 기다리라고
기다려
- 기다려! - 아, 내가 개냐?
저 성질!
너 그동안 내숭 떤 거니?
아우, 저 비싼 걸
나오셨습니까, 회원님?
아, 네
새로 온 트레이너인가 봐요?
중학교 때 육상으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도 따고
유능한 친굽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인데 잘할 겁니다
어머!
회원님 추천으로 오신 분입니까?
안녕하세요
자주 뵙네요
- 선생님도 여기서 운동하세요? - 그건 아니고
그럼 말씀 나누시고
상담이 필요하면 불러주십시오
여기서 운동하세요, 너무 좋아요
트레이너들도 한국 최고예요
저 사람 같은데
- 토미 - 네, 맞아요
새로 온 트레이너
[신비로운 느낌의 효과음]
[코믹한 느낌의 음악]
저런 걸 전문 용어로...
미친년이라고 하지
미친년 맞는 거 같다
[노크 소리]
이모?
커피 한잔해요
나중에요
쉬는 날 보통 뭐 합니까?
자거나 회사 가죠
쉬는 날?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그래요
오늘은 잡니까?
오늘은...
어머, 어떡해
저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는데
같이 가면 안 돼요?
저 아직 서울에 모르는 데도 많고
그, 저... 양장... 아니
의상실 가는 건데요?
예
그런 데가 있어요?
[깊은 한숨]
나 홍차 좀 갖다줄래?
꿀이랑 우유 넣어서
- 니가 타 드세요 - 야!
농담이야
아우, 눈알 튀어나오겠다
[신발 떨어지는 소리]
[신비로운 분위기의 효과음]
어때?
맛있어, 고마워
[음산한 느낌의 음악]
왜 이렇게 춥지?
근사한데요 이런 데가 남아 있었네
아는 사람들만 오는 거 같아요
남자 옷은 안 만들겠죠?
뭐, 셔츠 정도는 만들지 않을까요?
맞춰 보고 싶은데요?
들어가시죠
천 벌은 만들어 줘야지
두 사람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도 해 주고
문수
눈빛만 봐도 알겠다
그놈이 살아 있었네?
돈 많고 멋있는 남자가 잘해준다고 해서
들뜰 만큼 막 순진하지 않다고요
- 멋지다는 말은 없었는데 - 야!
오빠한테 '야'가 뭐니?
요새 자꾸 악몽을 꿔요
옛날 일이 매일 밤 꿈에 나와
두 사람 죽이는 꿈?
똑같은 얼굴로 태어나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기억 못 하지, 여보?
애써 감출 필요 없어요 내가 싫지 않은 거
.흑기사 ↲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