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4
안녕하세요
어디 계세요?
잠시만요
여기 남자 옷들은 다 저래요?
한번 입어 보세요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손님 오셨어
자?
[노크 소리]
- 여기 계세요? - 네
주무시네요?
춥다고 하더니
기절했네요
[속삭이는 목소리로] 깨우지 마세요
저, 그...
오늘은 그냥 이거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나가서 차 한 잔 하세요
- 괜찮아요 - 마시는 동안 일어나겠죠
멋지죠, 이런 거?
여자 옷은 근사해요 근데 남자 옷은 왜 그래요?
다 듣겠어요
그럼 이렇게 말할까요?
[잔잔한 음악]
모공이 하나도 없으시네
이럴 땐 눈 감는 게 정답인데
전 이런 게 좋더라고요
이런 색깔이 진짜 예쁘네요
어떻게 이런... 이런 디자인을 만들지?
이것도 너무 예쁘고
색깔도
크으, 참, 무늬도
아가씨
[신음 소리]
[비명]
네가 입고 싶어 했던 옷이잖아
그 옷 입고
내 대신 죽어
[웅장한 음악]
아, 참
언제 끝나세요?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여기저기 민원이 수없이 들어갔답니다
이러다 악덕 건물주로 소문 나겠어요
건물 지어서 자선사업 할 건 아니니까
1층 카페랑
빵집이 뜨면서 우리 건물 가치가 상승한 건데
그런 가게에 월세를 서너 배로 올려달라는 게 어딨습니까?
그건 내쫓자는 거죠
그 자리에
외국계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모르세요, 아버지가
서울시에서 하는 프로젝트 참가자를 보니까
우리한테 도전하듯 들어오는 법인이 있어요
- 그 외국계 대표 법인? - 네
우리 건물이 있는 동네만
일부러 건물을 짓거나 사들이고 있어요
월세를 5년 동안 올리지도 않고
임대도 5년 이상씩 보장을 해준다는데
너
- 이 거지새끼가 누군지 모르겠냐? - 네?
해라네 집에서 거두던 놈 아니냐?
문수
김 박사님 아들요? 설마
눈빛만 봐도 알겠다
얼굴에 화상 흉터가 없잖아요
그놈 맞아
어느 날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이런 돈을 벌게 된 거지?
제가 보기에는 전혀 다른데요?
동명이인입니다
제대로 알아보고 말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흉터는 크게 남을 거 같습니다
연기를 마셔서 기도에도 손상이 좀 있고요
완쾌될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선생님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이 녀석 이거 딱해서 어떡하나 그래, 어?
얼마나 입원을 해야 합니까?
한두 달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문수
그놈이 살아 있었네
빨리 들어와
여기가 주방이고
이건 실내 정원
어때?
죽이지?
이건 이태리 인피리모리 거
뭐 하는 사람인데 이래?
- 아버지가 누구래? - 자수성가한 사람이야
니들처럼 능력은 없으면서
부모 덕에 돈 많은 거 말고
하여튼, 이모는
내가 왜 능력이 없어
대기업 MD 출신에
청담동에서 제일 핫한 편집샵을 가지고 있는데?
알았어, 시끄럽고 주방도 구경해
- 주방도 끝내줘 - 집 넓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 어디로 이사 갔는지 궁금해서
노숙자 된 줄 알길래 내가 와 보라고 했어
여기 그냥 임시로 지내는 데야
이렇게 함부로 찾아오고 이러면 안 돼
- 일루 와, 나가 - 그럴 필요 없어요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집주인이세요?
- 해라 씨 친구분? - 네
잘생기셨네요
우리 해라랑 이모한테
이런 호의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책 떨지 말고 빨리빨리 나와
아이, 근데
왜 두 분이 같이 들어오세요?
해라 씨 일 보러 가는데 같이 갔었어요
- 왜요? - 서울 지리를 잘 모르셔
외국에서 되게 오래 지내셔 가지고 됐지?
아, 그러시구나 외국 어디요?
- 야! - 저희 모임에 한번 나오실래요?
안 그래도 우리 해라가 망쳐놓은 커플 모임이 있는데
다시 모이기로 했거든요, 목요일날
- 같이 갑시다 - 싫어요
- 그럼 내가 모시고 갈까? - 이모!
농담, 농담이다
다녀와, 얘네 친구들 중에 알아두면 좋은 애들도 많잖아
목요일, 다른 약속 잡지 말아요
그럼
남의 집에 와 가지고, 으이!
미쳐, 정말
이봐요
이쁘게 보일라고 평소 안 입던 옷 입었더니 불편하네
왜 남의 말을 무시하는 거예요? 난 가기 싫다는데
[경쾌한 음악]
같이 갑시다
기죽지 않게 해줄게
내가 기죽어 지내는 거처럼 보여요?
네
어, 매워
내가 세입자라고 무시하시나 본데
월세 낼 거예요
얼마예요, 월세?
방 두 개
욕실 두 개, 공동 주방, 드레스 룸
관리비 포함해서 월 300만 내요
50% 할인해 준 겁니다
나도 남산 가이드해준 값 그거 100만원이에요
너무한다, 비싸요
뭐가요?
나 아니었으면 그런 양장점 구경이나 했겠어요?
나도 50% 할인해준 거구만
그럼 친구들 모임 같이 가주는 건 얼마예요?
아, 안 간다니까요
방에서 둘이 뭐 하는 거야?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치, 이모?
어, 여기는 옷방이고
- 저기는... - 해라 씨가 가기 싫은가 봐요
친구분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면 어때요?
아, 그것도 좋죠
안 가도 돼요 이쪽으로 초대했어요
아 그날, 나는 야근 재밌게들 노세요
무슨 소리야? 네가 있어야지
그날은 그럼 너희 커플만 오든가
너무 민폐잖아
아, 오붓하게 그것도 좋겠네요
곤이랑 나만 올게, 그럼
괜찮죠, 그건?
허락한 값 120만원
아, 진짜 너무하네
왜요? 같이 사는 공간에 사람들 막 맘대로 초대하는 거
그거 반칙 아닌가요?
아우, 참
좋아요, 120
그럼 이제 80만원 남았네요?
목요일날 뵙겠습니다
120, 80이 뭐야?
- 가만있어 - 120, 80이 뭐야?
응? 야, 120, 80, 야!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
약소하지만 옷값입니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 알지만
주신 옷을 뻔뻔하게 거절 안 하고 받아둔 이유는요
옷이 주는 이상한 힘 때문이었어요
날 끌어당기면서 처음부터 내 옷이었다고 말하는 느낌
초라한 나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줘요
속할 수 없던 세계에서 내가 빛나고
견디는 일상보다는 내일이 기대되는 삶
이 옷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정말로
이 옷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불쌍한 기집애
동봉한 사진은 코트를 맞춘 날 찍은 사진입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비결이 뭔가요?
말해주면 믿을 수나 있겠니?
퇴근한다, 내일 봐용
언제 다녀간 거야?
어?
아
잘 때 다녀갔어
멋진 남자랑
- 남자? - 어
완전 잘생겼던데?
분위기도 있고
- 몸도 좋고? - 어
나한테 소개해주러 온 거 같지?
어?
이게 나라고?
이게 어떻게 너야?
야, 봐라, 봐, 봐
야, 네 사진 진짜 못 붙이겠더라
그래갖고 형이 딱 포샵으로 힘 좀 줬어, 어때?
그니까 앞으로 운동 착실히 하자, 응?
사랑해, 형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새로운 트레이너 토미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굿모닝, 썰! - 굿모닝
- 마이 네임 이즈 토미 - 나이스 투 미츄, 토미
- 해브 어 나이스 데이 - 해브 어 나이스 데이, 투
안녕하세요
회원님
회원님, 무게 하나 더 늘리셔도 될 거 같은데요?
화이팅!
진짜라니까
집주인이 너무 근사해
난 안 봐도 사기꾼인데 해라 애가 왜 그래?
사기꾼 아닌 거 같던데?
겁도 없이 낯선 남자랑 한 집에서
아, 이 남잔 다르다니까 목요일날 검증해 봐
그 남자 학교 어디 나왔대?
외국 어디 살다 왔는지 알아?
되게 신경 쓰네
해라가 또 당할까 봐 그래?
아니면, 뭐 사랑에 빠질까 봐 걱정되는 거야?
아, 너 아침부터 왜 그래?
안녕하세요 새로 온 트레이너 토미라고...
제 이름이 마음에 안 드셨나 본데요?
운동 열심히 하세요, 회원님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
돈 좀 있다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
우리 해라 같은 애가
정말 없다니까
[코믹한 느낌의 음악]
안녕하세요
가입 상담은 따로 담당하는 분이 있습니다
곧 출근하니까 좀만 기다려 주세요
저는 트레이너 토미입니다
제가 예술적인 잔근육 전문가거든요
트레이너로 절 지정해 주시면 3주 내로 일단
이 바이셉 이두근 그리고 제일 중요한 코어!
똑같은 얼굴로 태어나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네?
[코믹한 느낌의 음악]
저 기억 안 나시죠?
무슨 말씀이신지
중앙지검 특수부 최지훈 검삽니다
- (여자) 어머 - (지훈) 아, 미안
수사 내용은 바깥에서 함구야
[호탕한 지훈의 웃음 소리]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뭐야, 무섭게 - 아!
- 샤론 양장점 아시죠? - 네?
명동이나 남산 근처에 올 일 있으면 들러요
차 한 잔 대접할게요
샤론 양장점?
알람 울릴 때 바로 일어날걸
[메시지 도착 알림]
뭐야?
잠깐 봅시다
왜 하필!
- 굿모닝 - 용건이 뭐예요?
머리가 왜 정수리 부분만 젖어 있어요?
나 바빠요, 용건이 뭐예요?
오늘 한옥 호텔 부지 보러 갔다가
임대 지원자 면접 때문에 많이 늦을 거 같아요
- 그래서요? - 그래서...
궁금해할까 봐
- 얘기했는데 - 뭘?
돈 많고 멋있는 남자가 잘해준다고 해서
들뜰 만큼 막 순진하지 않다고요
멋지다는 말은 없었는데
내가 멋진가 봐요?
[경쾌한 음악]
잘 다녀오세요
애써 감출 필요 없어요
내가 뭘 감추는데요, 도대체?
내가 싫지 않은 거
그 자신감은 돈에서 나오는 겁니까?
재수없네요
진심에서 나오는 겁니다
안녕
야!
쓰읍!
오빠한테 '야'가 뭐니?
야!
오빠한테 '야'가 뭐니?
여기 땅주인이 여자분이라고 했죠?
네,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분입니다
느낌이 좋으면 원하는 가격에 주고
아니면 계약 안 하시겠다고
긴장되는데요?
안녕하세요
[잔잔한 음악]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닙니다, 제가 일찍 온 겁니다
반갑습니다 땅주인 장백희예요
네, 처음 뵙겠습니다 문수호라고 합니다
하 실장이 일을 꼼꼼하게 처리해서 뭐, 굳이 만날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도
계약 전에 한번 뵙고 싶었어요
혹시 예전에 뵌 적 있지 않나요?
뭐, 글쎄요
그때도 초록색 옷이었는데
키가 훌쩍 크셨네
울지 마
넌 반드시 잘될 거야
나는 앞날 일을 조금 볼 수 있거든
네 앞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원하는 모든 걸 이루게 될 거야
자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세상 모든 행운이 너한테로 간다
근사하게 성공해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맞죠, 그분?
맞아요
녹즙 아줌마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
너무 뵙고 싶었어요
다시 만날 거라고 했잖아
저 살면서 힘들 때마다
그때 해주신 얘기 생각했어요
멋진 청년이 됐구나
우리 오늘은 술이나 마시자
100년 넘은 건물 같아요
응, 맞아 107년 전에 싸게 샀어
그 땅은 253년 전에 거저 얻고
말 편하게 해도 되죠?
그럼요
내가 죄를 지어서 늙지 않고 200년 넘게 사는 중인데
널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 덕에
얼마 전부터 나이를 먹기 시작했어
진짠데
자꾸 웃기만 하네
무슨 죄를 지으셨는데요?
나중에 얘기해 줄게
정말 미래를 보세요?
그런 게 어딨니?
그땐 널 위로하느라 이말 저말 다 갖다 붙인 거지
저는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었어요
행운이 계속돼서 겁이 난다고 해야 하나?
모든 일들이 잘됐어요
- 노력도 안 했는데? - 미친듯이 노력했죠
노력한 대로, 내가 바라던 대로
이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잘 풀렸어요, 무서울 정도로
내가 너무 기도를 세게 했나?
우연이었겠지, 마음에 두지 마
행운의 대가로
어쩜 전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안 되지
이번 생에선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아야 해
좋아하는 여잔 있니?
[노크 소리]
- 백희! - 누가 왔나 본데요?
[노크 소리]
[노크 소리]
백희!
[노크 소리]
안에 없어요?
[노크 소리]
[노크 소리]
안에 있는 거 같은데? 문 좀 열어!
[노크 소리]
백희!
[노크 소리]
[신비로운 느낌의 효과음]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
방금 뭐였어요?
동네에
툭하면 들르는 귀찮은 아줌마가 하나 있어
근처에 중앙선이 지나갈 땐
뭐, 그릇도 흔들리고 외풍도 세고
자
다시 만나서 반가워
특별한 분 맞죠?
자주 보자
넌 꼭 친정 식구 같아
저도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습니다
[잔 부딪히는 소리]
아름다운 한옥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연락 받았을 땐
소름이 돋았어
그 땅에 얽힌
옛날얘기 하나 해줄까?
[음산한 느낌의 음악]
[천 찢어지는 소리]
한 남자를 사랑했던
두 여자가 있었어
둘 다 아름답고 강렬했지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
그 남자는 한 여자만 사랑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랑을 드러낼 순 없었지만
두 여자는 명문대감댁 외동딸과
그 집에 사는 여종이었지
- 안녕하세요 - 어, 점복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주인댁 아씨는
판사댁 자제와 혼인을 앞두고
신랑이 될 사람의 얼굴이 궁금했어
정말 이렇게 생겼어?
아니요 제가 조금 못 그렸어요, 아씨
그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는데
분이야, 이것 좀 봐라
나 지금 가슴이 막 콩닥콩닥해
내 신랑 될 분이야
못생긴 남자면 혼례 전에 도망가려고
그 집에 심부름 갔던 점복이한테 그려오게 했다
용모가 수려하시네요
이거보다 잘생겼다고
점복이가 그러네
우리 점복이도 도화서에 갈 수 있음 참 좋을 텐데
도화서가 뭐야?
궁궐에 있는 그림 그리는 데래요
궁궐 행사도 그리고...
아씨?
종년이 서책이나 끼고 잘난 척은!
점복아, 그거 측간에 쓰거라
내 신랑 얘기하고 있는데 도화선지 뭔지가 왜 나오니?
꺼져
귀여움만 받고 자란 아씨는
은근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종년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자기보다 빛났을지도 모를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여종을 말이야
[화롯불 타는 소리]
[잔잔한 음악]
아!
혼례복 준비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던 여종은
그날 달빛의 주인이지
아, 도련님!
대감마님이 아시면 진짜 큰일이 납니다요
평생 짝이 될 사람을 어떻게 혼롓날 처음 본단 말이냐
아, 저쯤 어딘가 보다
도련님, 같이 가요
잠깐만요
받쳐드릴게요
하나, 둘, 셋
[잔잔한 음악]
도련님
아, 씨!
아우, 아우!
도련님, 괜찮으세요?
그니까...
색시 될 분 얼굴을 보신 거예요?
내 평생 저 여인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
엄머, 왜 이래?
아, 알겠어요, 도련님 일단 가요
아, 이러다 대감마님한테 쇤네가 죽습니다, 빨리 가요
빨리요!
네 이년!
이년이 감히!
(동구 어멈) 아씨, 아씨
잘못했습니다, 아씨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옷이 뜯어지는 소리]
동구 어멈, 매타작 좀 준비해
- 아씨! - 동구 어멈!
다시 만들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아씨
네년이 내 혼례복을 부정 타게 해?
신부 측
[떠들썩한 사람들 소리]
신랑 정면
신랑, 신부
괘
[불길한 느낌의 음악]
시댁으로 아씨는 몸종을 데려갔어
그만큼 영특하고 성실한 여종도 없을 뿐더러
신랑의 마음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지
신랑 집이 있던 곳이 호텔 부지인가요?
신랑댁은 당연히 한양 사대문 안이고
그 땅엔 그 남자의 유배지가 있었지
분이야
분이야!
분이야!
나머지 스토리는
다음 시간에
궁금하게 해놓고
이젠 네 얘기 좀 듣자
얼굴에 화상 흉터는 어떻게 없어진 거야?
좋아하는 여자는 있니?
- 다 모였어? - 네
자
오늘 이사회 회의에서 나온 건인데
다음 달 말까지 1억 5천 이상 티켓 발권자 중에
고객 평가 좋은 사람들을 뽑아서
한 달 동안 유럽으로 연수를 보내주기로 했다
유럽요?
유럽! 유럽!
알았어, 알았어
- 그럼 중요한 게 뭐야? - 실적요
그치, 실적이지
예약 취소 안 나게 조심하고
그리고 최종 결정은 본부장이 한다
싫어도 어떡하냐
표정 관리 잘 하고
- 열심이다 - 아, 오셨어요?
열심히 해서 이 팀이 1등 따내
네, 꼭 1등 하도록 하겠습니다
- 정해라 - 네?
너 요즘 옷에 신경 쓴다
남자한테 잘 보일라 그러냐?
- 그럴 리가요 - 검사 남친 있다며?
제가 찼습니다 검사 별거 없더라고요
제가 어때서요?
전 여행 컨설턴트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고객님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설계해 주는 거니까요
맞습니다, 아무나 못 하죠
본부장님 정말 대단하신 거죠
새 루트 개척하시고 또 상품 만드시고
그 어려운 입찰 경쟁 다 이겨 오시고
또 우리 회사 베스트 드레서시잖아요
그 어려운 넥타이 아무나 소화 못 하죠
뭐...
일단 뭐 다들 열심히 하고
이따 회식 때 봅시다
네, 이따 뵙겠습니다
- 부끄러워 - [모두 웃음]
회식 때 한우라서 깜짝 놀랐지?
'본부장님 회식은 역시 다르구나'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마에스 팀 박 차장이
출장에서 좋은 와인을 한 병 갖다 주더라고
고급 와인은 역시 한우 채끝 등심이지
근데 그거 너무 비싸 보이는데
저희는 그냥 소주 마실게요
그래도 한 잔씩 맛은 봐야지
- 자, 건배! - 건배!
- 건배! - 와!
아니 아까 소주잔 와인은 조금 유치하지 않아요?
말이 안 되지
그게 뭐냐? 그게 너무 창피해
법카여도 밥값 30만원 이상이면
그거 감사팀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요?
법카 아니고 개인 카드로 사더라
- 아, 진짜요? - 어
하, 나 진짜, 그 와인 때문에 한우가 엔간히 먹고 싶었나 봐
그래서 그런가 봐
- 그럴 일이었네 - 그러니까 그 비싼 거를
[여기저기 메시지 도착 알림] 뭔데? 왜 난리 났니? 뭐니?
오늘 식사비 엔분의 1로 하면 7만 5백원
그냥 7만원씩만 내 계좌로 입금하면 됨
서울 은행
- 미쳤나 봐 - 헐
- 다 똑같은 문자예요? - 아, 미치겠네
지금은 저 혼자 좋아하고 있어요
예전에도 사랑했고
그래서 미워했고
[속으로] 신의 손길이 두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겠구나
이번 생은 행복해야 해
그래야 우리의 벌도 끝날 거야
나를 내쫓고는 지금 5시간째 저래
어젠 기절하더니
오늘은 버티네
우리 증조할머니도
- 저러다가 돌아가셨는데 - 내 말이
안 하던 짓 하면 큰일 난다던데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
그만해
샤론!
어제 어디 갔었어요?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 있어?
요새 자꾸 악몽을 꿔요
너무 힘들어
어떤 꿈인데?
옛날 일이
매일 밤 꿈에 나와
네가 걔를 인두로 지지고
두 사람 죽이는 꿈?
꼭 그렇게 말을 해야 돼?
보속을 하란 의미겠지
하고 있잖아
하녀처럼, 침모처럼 옷 만들고 있잖아
넌 조선시대 사람이니?
어디서 그런 구닥다리 대사를
심장도 막 들쑥날쑥하고
낮엔 참을 수가 없어서 달려갔었어
짐 싸
- 우리 내일 북경 가자 - 거긴 왜?
청나라 가서 만두 먹고 놀다 오자고
우리 옛날을 추억하면서
악몽이 사라질 때까지
만두 먹고 놀다 오자
응?
[전화 벨소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주말에 정해라 씨랑 같이 갔던 사람인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스타일북에 있던 옷들 주문할 수 있을까요?
선물을 하고 싶어서요
- 그럼요 - 지금 가도 될까요?
내일 오시는 게 좋겠는데요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가겠습니다
[불길한 느낌의 음악]
[리모컨으로 차 문 여는 소리]
여기구먼
건물에 신경 좀 쓰셨네, 어?
백희는 언제 와?
손님 오기로 했는데
정해라 씨랑 같이 온 사람
- 몸 좋은 남자? - 어
1시간 쯤 후에
나중에 오라 그래
무슨 여행을 이렇게 갑자기 떠나냐?
반창고랑 소화제 좀 챙겨 와
아, 몰라! 짜증 나!
- 변비약은? - 그것도
[문 여는 벨소리]
[크게 문 닫히는 소리]
안녕하세요
일이 생겨서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습니다
[잔잔한 음악]
처음 뵙겠습니다 디자이너 선생님 맞으시죠?
[속으로] 목소리
다시 태어나도 목소리는 같아
제가 일찍 와서... 바쁘시면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린 건
전데요
네, 감사합니다
좀 앉으시죠
아니요 일 때문에 오래는 못 있고요
이 책이었던가?
선물할 옷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거
그리고 또...
이거, 이거
응, 이거
- 저희 집은 기성복이 아니라... - 알고 있습니다
최고급 비스포크 매장이라는 거
이 옷을 입을 분의 사이즈가 필요한데요
정해라 씨 사이즈 알고 계시죠?
해라 씨 옷을 만들어 주세요 제일 좋은 옷감으로
옷값은 오늘 다 지불하고 가겠습니다
아니요
완성되면 그때
저희 집은 그렇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은
이쪽으로 주시고요
다음에 오시면
제가 셔츠 한 벌 해드릴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셔츠를 받으셔야 이 옷도 해드릴 겁니다
그럼 무조건 받겠습니다 잘 만들어 주세요
연락드릴게요
네, 바쁘신데 가보겠습니다
당신...
나를 기억 못 하지
여보
아
해라 씨한텐 비밀로 해 주세요
[숙희가 걸어오며 웃는 소리]
다섯 명 저녁을 먹는데 무슨 호텔 팀을 불렀어요?
해라 씨 친구들인데 최고로 대접해야죠
그럼 내가 대문 앞에 서 있다가 맞을까?
[숙희가 멀어지며 웃는 소리]
- 아직 안 왔지? - 응
뭐예요, 그건?
짜잔!
- 초는 생각을 못 했네 - 그쵸?
이런 아이디어랑 초 사온 값해서 20만원
그럼 이제 월세 60만원 남은 거예요
촛대 빌려준 값 30만원
뭐요?
- 초 안 꽂아요, 그럼 - 알았어요, 알았어
초 사온 값 15만원
뭐라고요?
(숙희) 이쪽으로
자아!
손님 오셨습니다
- 뭘 잔뜩 싸왔네 - 안녕하세요
- 안녕 -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문수호라고 합니다
아, 박곤입니다
저는 약혼녀 김영미고요
저희는 부모님들끼리 알아서 어렸을 때부터 친구예요
해라는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한옥 매입하시면서 처음 만나게 되신 겁니까?
아니요, 슬로베니아에서 흑기사로 처음 만났습니다
[크게 웃는 소리]
사업하다 보면 별일 다 있다고 들었는데
그 슬로베니아 아저씨 정말 웃긴다
아니, 그리고 의대를 졸업하고 사업가가 된 것도
정말 재밌어요
그냥 간단한 아이디어를 낸 건데
그 정도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죠
의료기 업체 대표가
아직도 크리스마스에 저한테 선물 보내줘요
감사의 표시를 해야 행운이 계속된다나, 뭐
그래서 제가 감사의 표시를
계속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럼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 거네요?
자매결연 맺은 학교에서 갑자기 장학생을 선발했거든요
그것도 운이 좋았죠
음, 그러면 어릴 때 가서 이렇게 성공하신 거면
외국에서 뭐 인터뷰 한두 번쯤은 하셨겠어요?
이래 봬도 제가 유명인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에 났거든요
그때는 뭘로요?
어릴 때
왼쪽 볼에 화상 흉터가 크게 있었거든요
[불안한 느낌의 음악]
같은 학교 친구 아버지가 의대 교수셨는데
수술 받게 도와주셨어요
세 번의 수술 끝에 흉터를 다 없앴죠
'수학 경시대회 1등 고아 소년이 만난 사랑의 기적'
신문마다 이렇게 기사가 났었어요
그 인연으로 저도 의대에 간 거고요
미국은 학부 때 의대가 없지 않습니까?
학부 때는 화학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화학 박사셨거든요
어느 날 의문의 화제 사건으로 돌아가셨지만
제 얼굴에 흉터도 그때 생긴 거고요
한국에는 왜 오신 겁니까?
거기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었는데
정해라를 만나러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굴에 흉진 고아를
해라네 아버지가 잠시 거두어주셨거든요
은혜 갚으러 왔죠
넌 알고 있었어?
몰랐어
물론 해라네 아버지는
저를 유익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인자한 사업가로도 보이고 싶었고
당신 딸한텐
행복 자각의 기구로 인식시켰고요
해라야
박곤 씨
오늘 제 손님으로 오셨습니다
앉아 계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들어가자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알아봐 주길 바랐어
그날 우리 아빠가 한 얘기 들은 거야?
그래서 말도 없이 사라진 거야?
맞아, 널 저주했어
[잔잔한 음악]
아빠가 이번에 출장간 호텔 옆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었대
그게 뭔데?
크리스마스 장식 파는 시장인데
너무 근사했대
아, 그리고
이런 데도 구경했대
오빠, 우리도 나중에 여기 꼭 가자, 응?
전쟁 나서 헤어지면
우리, 크리스마스 다가올 때 여기서 만나
전쟁이 왜 나냐?
빨리 앉아, 공부하게
[영어 텍스트 읽는 수호]
어머나, 기사님
그림잔 얼굴의 흉터도 안 보여요
나의 기사님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야, 책 보고 똑바로 읽어
너 지금 영어 공부하는 거야 장난 치는 게 아니라
치이!
[쪽쪽 뽀뽀하는 소리]
내가 그 녀석을 거둔 이유는 소꿉장난용이 아니다, 해라야
불 꺼놓고 장난이나 치라고 그놈을 거둔지 아니?
부모 없고 얼굴마저 엉망인 애를 보면서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으란 말이야
공부하기 싫어 꾀가 날 때
엄마, 아빠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
버림받은 그 녀석을 보면서 정신 차리란 말이야, 알아들어?
[애잔한 느낌의 음악]
그때 한마디도 안 하고 서 있는 너 보면서
너도 나처럼 됐으면 좋겠다
'쟤도 나처럼 만들어 주세요'
'저처럼 모든 걸 잃게 해 주세요'
바랐어
너구나
수학 천재
저 아래 2층 집에 살지?
사는 거 아니에요
주말이나 방학 땐 오잖아
녹즙 들어가는 걸로 다 알지, 난
울지 마
넌 반드시 잘될 거야
난 앞날을 조금 볼 수 있거든
네 앞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원하는 모든 걸 이루게 될 거야
그래서 좋아?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보잘것없어진 날 보니까 통쾌해?
- 마음 아팠어 - 닥쳐, 이 나쁜 새끼야
난 너 걱정했어
보고 싶었고
나 매년 거기서 너 기다렸어
11월부터 크리스마스까지
10년 넘게, 그 성에서
그래
성공한 거 축하한다
네 저주가 먹힌 것도 축하하고
오빠 너한테 세 가지 선물하려고 왔어
하나는 옛날에 네가 살던 그 집
내가 다시 찾아줄게
그리고 하나는 어디 가도 기죽지 않고
원하는 거 다 할 수 있는 생활
그거 내가 하게 해줄게
나 사랑하는 사람 있어
못 잊고 있는 사람
거짓말 티 나게 하는 거 옛날이랑 똑같네
옛날 얘기 하지 마!
나 옛날 정해라 아니니까
나 한 달 내로 집 구해서 나갈게
그 전까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돈 많으니까 호텔 가서 지내
해라야
이렇게 으리으리한 건물에
이렇게 거지가 된 날 데려다 놓고 얼마나 속으로 으쓱하고 좋았니?
맞아
으쓱하는 마음 없었다면은 거짓말이야
아주, 거지 소년이 출세했네
뭐, 잘난 척 더 해보시든가
집, 돈 걱정 없는 생활
뭐, 나머지는 뭔데?
그날 내가 빚진 거
[로맨틱한 음악]
그 남자의 마음은 한 사람뿐이었죠
내색할 순 없었지만
- 내가 좋아? - 많이 좋아
달콤한 말 안 믿어
진짜 달콤한 게 뭔지 보여줘?
이모는 언제부터 해라랑 같이 사셨어요?
어릴 때 제가 뵌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37번지에 하는 걸 뺏어 봐
문수호가 가로채 가기 전에
점복이, 자네 글 지금 어디에 있는 겐가?
- 종년 아닙니까? - 똑같은 사람 아닙니까?
야, 분이야! 그대로 도망가!
잡거라! 반드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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