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4
(허임) 아이, 어쩌자고 여길 다시
하, 이러면 안 되는데
아이고, 내가 여길
아, 이 여인까지 달고
아이, 정신을 좀... [호랑이 울음]
[긴장되는 음악] [허임의 놀란 신음]
[연경의 힘겨운 신음]
(연경) 아유, 머리야
[으르렁거린다]
[허임이 중얼거린다]
(연경) 뭐야?
(허임) 빨리, 빨리빨리
(연경) 뭐야?
여기 어디야? [허임의 다급한 숨소리]
[작은 목소리로] 지금 그럴 때가 아니오
[허임의 당황한 탄성]
[허임의 다급한 신음] (연경) 뭐 해요, 지금?
아,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치워요
[허임의 다급한 신음] [연경의 비명]
(허임) 아니, 그, 빨리
[연경의 놀란 신음] 자, 뛰시오!
[연경의 가쁜 숨소리] (허임) 조금만 빨리
[연경의 다급한 신음]
[허임의 다급한 신음]
[어두운 음악] [연경의 힘주는 신음]
[허임의 다급한 신음] [연경의 놀라는 신음]
[허임이 콜록거린다]
뭐예요?
왜 이래요?
[허임의 거친 숨소리]
(연경) 아, 왜 이러냐고요
뭐야, 여기 어디야
아, 뭐야, 여기 어디예요?
[신비로운 음악]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연경) 뭐야?
민속촌이야?
여기 어디예요?
그쪽이랑 나랑 왜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저기...
아, 잠깐만
분명 조금 전에 응급실에 있었는데
호출받고
[소란스럽다]
(간호사) 선생님, 여기 와 주세요
[환자1의 괴로운 숨소리]
[삐 소리가 울린다]
[연경의 거친 숨소리]
그쪽이에요?
나 뒤에서 껴안은 사람?
왜요?
왜 날 껴안았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리고 기절한 나를
그쪽이 여기로 데려왔어요?
(허임) 아, 그,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오긴 좀 멀리
뭐야
나 납치당한 거야?
아, 납치라니
아유, 그, 납치라니 당치 않소, 내가...
[연경의 놀라는 신음] (허임) 아유, 내, 내, 내 미쳤다고, 내가
아휴, 아니오
아니, 잠깐 기절한 거 같은데 벌써 아침이면...
오하라 수술
지금 몇 시야?
[흥미진진한 음악] 여섯 시, 여...
뭐야, 이거 멈춘 거야?
뭐야, 이건 또 왜 안 돼
[헛웃음]
아니, 얼마나 멀리 왔으면 휴대폰이 안 터져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요!
아, 그, 조선이오, 조선
(허임) 빌어먹을 놈의 한양!
[헛웃음]
그놈의 조선 소리
[연경의 헛웃음]
(허임) 아휴, 어딜 가시오? 아이...
당신, 진짜 수상해
(연경) 어, 뭐, 하긴 처음부터 쭉 일관되게 수상했지
따라오지 마요
그게 그렇게 그 혼자 막 갈 데가 아니라...
에헤! 씨
(허임) 거, 잠깐 멈춰 보시오!
거, 갈 때 가더라도 앞뒤 분간은 하고 가야 할 것 아니오
(연경) 아저씨 [행인의 놀라는 신음]
말씀 좀 여쭐게요 혹시 여기가 어디예요?
[당황한 신음]
[흥미진진한 음악] (연경) 그러니까
행정 구역상으로 여기가 어디냐고요
강원도나 전라도, 뭐...
아, 여기, 저, 저...
한양인디
아니, 그, 서울이 여기서 멀어요?
[당황한 웃음]
서울이 어디요!
(연경) 아, 제가 휴대폰이 안 터져서 그러는데 혹시
폰 있으시면 좀
[당황한 신음] (연경) 아참, 여기 안 터지지
아, 저, 여기 큰길 쪽으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뭐, 버스나 택시 다닐 만한 데요
어허, 당최 나 처녀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겄네
[허임의 호탕한 웃음]
(허임) 아, 그, 너무 괘념치 마시고 가던 길 쭉 가시오
의원이셔?
(행인) 야, 야, 야, 이 처자
에이, 어?
(허임) 이, 이 처자?
(행인) 아니, 요즘 그, 도성 안에서
웬 미친년 하나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저기요, 아저씨
내가 잘 보살필 터이니 가던 길 가시오, 그래
[혀를 끌끌 차며] 아이고, 부모가 얼마나
(행인) 애간장이 녹을꼬, 거
애쓰시오 [허임의 웃음]
- (허임) 조심히 가시오 - (행인) 참...
[연경의 헛웃음] (허임) 아유, 그
아니, 거, 어디 가서 봤다는 소문은 내지 마시고!
[허임의 웃음]
[연경의 헛웃음]
뭐, 미친년?
(허임) 그 미친년 소리는 들리고 한양이란 말은 못 들었소?
(연경) 들었죠, 하
그러니까, 뭐, 한양?
[헛웃음 치며] 미치긴 저 아저씨가 미쳤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이리 복장 터지는 말인지 몰랐소, 진짜
어디 맘대로 해 보시오, 쯧
(허임)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든
[흥미진진한 음악] [허임이 소리친다]
[연경의 헛웃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 지금?
허, 참
내 어쩌자고 여길 다시...
아, 하필 그 여인까지 데리고, 씨
(허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씨
- (남자1) 마누라 - (여자1) 예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무거운 음악]
(상인1) 한양 땅에서 가장 솜씨가 좋다는
갖바치가 만든 가죽신이에요!
아, 아이고, 놔, 이거
뭐야, 너 뭐야, 너?
저리 가, 야, 야, 저리 가!
저리 가!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야바위꾼) 저리 가!
[사람들의 비명] (여자2) 예뻐, 예뻐
[여자들의 비명]
미쳤나 봐
(상인2) 닷 냥이 비싸다니!
이게 임금님께 진상하는
조선 팔도 최상품 명주라니까
- (남자2) 그냥 네 냥 반 푼에 주시오 - (상인2) 아휴, 안 돼!
(남자2) 아, 옆집은 네 냥이라는데
(허임) 아, 그, 조선이오, 조선 빌어먹을 한양!
(행인) 아, 여기, 저, 저, 한양인디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남자3) 뭐야, 이 여자?
꼴이 왜 이래?
(남자4) 아이고, 얘들아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남자3) 아, 이년이 그 소문난 그년이네
야!
너 미친년이지, 어?
(남자3) 아, 아니, 근디 이거 미친년들이 정말 예쁘다던데
(파발꾼) 파발이오!
[말 울음] 파발이오!
비키시오!
[긴장되는 음악] 파발이오!
[말 울음]
[말 울음]
[거친 숨소리]
하마터면 교통사고 날 뻔했네
여긴 119도 없는데
[살짝 웃는다]
[부드러운 음악]
괜찮소?
어디 다친 데는 없소?
그 말도 없이 달리는 요상한 그, 수레 같은 건
여기 사람들의 머리털을 보고 좀 놀랐소이다
그런 죄를 지으면 여기선 어떤 형벌을 받소이까?
곤장 백 대?
유배를 가거나 참형을 당하기라도 한답니까?
곡절은 알 길이 없으나 이곳에 오기 전 한양에 살던 조선 사람이었소
[헛기침]
(허임) 그, 확인 끝난 거 같으니 이만 갑시다
(허임) 자
(허임) 좀 진정이 되었소?
금세 될 리가 있나
내 겪어 봐서 아는데
그게 눈으로 보고 머리로 안다고 한들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가 않소
[허임의 웃음]
하, 말도 안 돼
암, 말이 안 되지
나만 해도 이게 처음엔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죽었나
(허임) 하면 여긴 저승인가
아, 뭐, 꼬집어도 보고 때려도 보고 별 지랄 발광을 다 해 봐도
이 마음으로 이게 그렇게...
[연경의 비명]
[익살스러운 음악]
[허임의 헛기침]
[연경의 거친 숨소리]
서울에서 평양도 아니고 한양?
이게 논리적으로 말이 돼?
내가 왜 갑자기 조선 왕조 500년에...
이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 글쎄
이게 말로 따질 일이 아니라니까
대체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내가 뭘, 내가 뭘!
어, 그거네, 어?
나 뒤에서 껴안은 거
그거 나 여기 끌고 오려고 그런 거네 그렇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참으로 억울하오, 응?
뒤에서 안은 건 기억나고 내 비명 소리 못 들었소?
내 그때 참으로 아파 가지고 내 죽을 뻔했소
[철근이 푹 꽂힌다] [비명]
[의미심장한 음악]
[의아한 신음]
[놀라는 신음]
난 불사의 몸인가?
(연경) 이봐요
내 말 안 들려요?
아, 왜, 뭐
말하시오
(연경) 다시 돌아가는 방법
알죠?
하, 제발 안다고 말해 줘요, 응?
몰라요?
[헛웃음]
아니, 어떻게 몰라요?
본인이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데
그, 본인이 워낙 경황없이 당한 일이라
[헛웃음]
아니, 무슨 남자가 이렇게 대책 없고 무책임해?
하, 이보시오
그걸 알면 나야말로 지금 당장...
당장 뭐요?
[살짝 웃으며] 당장 가요?
어, 당장 가 보시오 난 따로 가 볼 데가 있으니
[연경의 당황한 신음]
지금 나 여기 두고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
아, 지금 내 코가 석 자요
(연경) 아, 이봐요, 잠깐만요, 저기요!
[다급한 신음]
저기요!
나한테 왜 이래요
여기 온 게 내 탓이에요?
그럼 내 탓이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시종일관 수상한 사내를 뭘 믿고?
[고양이 울음 효과음]
책임져요
[경쾌한 음악] 아니, 내가 왜?
(연경) 아니, 어쨌든 내가 그쪽 때문에 여기 오게 된 거고
그러면 나를 잘 데리고 있다가
무사히 돌려보낼 책임과 의무가
그쪽한테 있는 거거든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내가 여기 다친 데도 치료해 줬잖아요, 응?
다 나을 때까진 의사인 내 책임, 응?
책임, 응?
[허임의 헛기침]
(허임) 치료해 준 건 기억나고
때리고 팔 비틀고 찬 데 또 차고
그건 기억 안 나시오?
[허임의 성난 신음]
[멋쩍은 웃음]
[고양이 울음 효과음]
[놀라는 숨소리]
(연경) 내가 밥도 사 줬잖아요, 응? [허임의 당황한 신음]
무려 닷 냥짜리 [허임의 멋쩍은 신음]
비싼 밥, 응?
내가 혹 달고 다닐 처지가 아니라니까
[연경의 어색한 웃음]
[낑낑거리는 효과음] [허임이 살짝 웃는다]
[집중하는 신음]
[헛기침]
[한숨]
옷을 지어서 입나
거 아직 멀었소?
(연경) 한복이 처음이라 그래요
이게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응?
(연경) 간 거 아니죠?
안 갔소, 아직은
[아름다운 음악]
[헛기침]
[헛기침]
(허임) 무슨 여인네가 옷고름 하나 맬 줄 모르시오? 그...
그, 그, 거기, 그...
이, 이, 이거
빼서, 그렇죠
그렇지, 그렇지
아, 돌, 바, 반대로 돌리시오, 반대로
아니, 아니, 아니, 그...
이렇게 해서 이쪽으로 넣고
이렇게
[답답한 숨소리]
[한숨]
[헛기침]
[허임의 헛기침]
이곳은 조선이오
입고 있는 의복의 감이며 빛깔에 따라
사람이 될 수도
개가 될 수도 있는
아휴, 그, 오해는 마시오
주변에 이런 옷들밖에 없어 가지고
참, 오해는 무슨
[헛기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오시오
[허임의 헛기침]
왜 저래, 겁나게?
[허임의 헛기침]
[긴장되는 음악]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연경의 신음] (남자5)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씨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울먹이며] 제 손자 놈이 감히 귀한 집 아씨께
아휴, 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놈아!
(아이1)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남자5가 흐느낀다]
저 죽이지 마세요
[아이1의 울음] [남자5의 떨리는 숨소리]
(연경) 아기야
[아이1의 울음]
[연경이 살짝 웃는다]
[남자5의 놀라는 신음] 이것 봐라
(연경) 이거 사탕이라는 건데
아니
사당원이라는 건데
이거 울지 말라고 주는 거야
누나 괜찮으니까 친구들이랑 가서 나눠 먹어, 응?
[남자5가 흐느낀다]
(연경) 울지 말고
아휴,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남자5의 놀라는 신음]
(남자5)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아씨
가자, 어서
아이고, 아, 예,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씨 놀음 잘하셨소?
이만 갑시다
왜 저래
[다급한 신음]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남자6) 설마 한양까지 밀고 오는 건 아니겠제?
- (남자7) 뭐가? - (남자6) 어떡한디야
(남자6) 짐이라도 싸야 되는 거 아니여?
(남자7) 왜구가 한양까지 올라오겠어?
우리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남자6) 아, 그래도 어떻게 될지 알아
단단히 대비를 해야지 [익살스러운 음악]
(허임) 아이, 뭐 저렇게까지...
어허, 참
[놀란 숨소리]
(연경) 저런 방이 붙는구나
저 얼굴 누구랑 닮은 거 같은데
[허임의 다급한 신음]
한가로이 저잣거리 구경할 때가 아니지 않소
(허임) 따라오시오
[딱새가 캑캑거린다]
어? 어, 저거 허임인데?
(딱새) 허임이 맞는데, 어
[탄성]
아우야!
[작은 목소리로] 저기가 어디예요?
혜민서요, 저건 뒷문이고
(연경) 그쪽이 그, 일하는 데가 어디라고 했더라? 헤...
혜민서요, 헤라가 아니고 혜민서
(연경) 근데 왜 이렇게 몰래 가요?
뭐 죄지은 거 있어요?
(허임) 어허, 사람을 어떻게 보고, 쯧
나 그런 사람 아니오
[허임의 헛기침]
일단은 갑시다
[흥미진진한 음악]
여기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 발각될 염려가 없소이다
내 잠시 다녀올 터이니 예서 기다리시오
(연경) 혼자요?
같이 안 가고?
혼자 두고 안 갈 테니 걱정 마시오
[어색한 웃음]
아니, 걱정은 누가 무슨
알았으니까 다녀와요
[헛기침]
[의미심장한 음악]
[한숨]
하라 수술해야 될 시간에 내가 왜 여기 있니
[한숨]
[사이렌이 울린다]
(하라 모) 수술 시간에 수술할 의사가 이게 안 나타나는 게
이, 이게 말이 돼요?
[황 교수의 헛기침]
그럼 우리 하라 수술은요?
또 미뤄지는 거예요?
아휴, 그럴 리가요
(황 교수) 우리 하라 양 상태도 불안정한데 미뤄지면 안 되죠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저도 같이
[한숨]
[의미심장한 음악] (연경) 대신 약속한 건 꼭 지켜
살리겠다는 약속
[하라 모의 한숨]
얘는 또 수술 중인가, 응?
어째 이리 전화를 안 받아 그래? 아이고
[힘주는 신음]
가만있어 봐
근데 그놈은 어딜 간 거야?
아니, 감시를 하랬더니만 그새 쫓아내면 어떡해 그래?
어제 그렇게 가 놓고 전화 한 통이 없냐
[애잔한 음악] [한숨]
뭐야, 웬 꽃?
(재하) 예쁘지, 마음에 들어 하겠지?
나 주는 거 아니고?
쩝, 아닌데?
이번엔 또 어떤 여자인데, 어?
누굴 꼬시려고
[헛웃음 치며] 꼬시긴 누가
내가? 천하의 유재하가?
그냥 알아서 막 넘어오는데
(연경) 아유 [재하의 웃음]
(재하) 웃었다
[피식 웃는다]
웃으니까 이쁘다
너 일로 와, 어?
[재하의 의아한 신음] (연경) 헤드록이나 한번 맞아, 너
- (재하) 알았어, 알았어, 누나... - (연경) 어? 안 되겠다, 어?
[피식 웃는다]
그래, 이제 시작인데 뭐
[어두운 음악] (비서) 경찰서에 남아 있는 기록은
이름 허가임, 나이 서른 그게 전부랍니다
나머지 신원은 파악된 게 없답니다
허가임?
어떻게 풀려났대?
저쪽 병원 흉부외과 최연경 선생이 신원 보증을 하고 데려갔답니다
연경이가
알았어, 나가 봐
[의아한 숨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허가임이라 [문이 탁 닫힌다]
[익살스러운 음악]
[중얼거린다]
[작은 목소리로] 막개야, 막개야!
막개야!
막...
저놈이 귀를 먹었나
(막개) 허 의원님
허 의원님 일어나셨습니까?
막개야, 이놈아
아, 참봉, 참봉, 허 참봉 나리 그만 일어나십시오!
[익살스러운 효과음] 내 그리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저놈의 새끼, 저거
너, 이씨
(막개) 간밤엔 또 어디서 주무셨대요
[문이 달칵 열린다] 아이,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기별이라도 해 줄 것이지
사람 애간장 다 녹여 놓고 [문이 탁 닫힌다]
하여간 오기만 해 봐 내가 아주 다리몽둥이를 그냥
(허임) 그 다리가 이 다리냐?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게 왜 네 다리야! 우리 참봉 나리 다리...
[막개의 놀라는 숨소리]
- (막개) 참봉 나리! - (허임) 쉿, 쉿
[막개의 힘주는 신음] [허임의 신음]
(허임) 아니, 그럼 관군이 쏜 게 아니면 누가 쏜 건데?
(막개) 그건 저도 모르죠
아, 근데 화살을 두 대나 맞고 물에 빠졌다던데 멀쩡하시네요?
(허임) 응, 그러니까 [막개의 의아한 신음]
(허임) 응? 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 서른 평생 살면서 은혜를 베푼 적은 많아도
쯧, 누구한테 원한 산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고것은 난 모르겄고
하여간 의원님이 그렇게 내뺀 후에...
(허임) 어허
내빼긴 누가 내빼?
의원님이 그렇게 토낀 후에
(막개) 내의원이 완전히 쑥대밭이 돼 가지고
눈에 불 켜고 의원님 찾는다고 난리, 난리
잡히면 죽을까?
[부정하는 신음]
당장은 아니고
뭐, 죽더라도 딴 데 가서 죽을 것 같던데
딴 데? 딴 데 어디
모르셨어요?
(막개) 아, 왜 모르실까?
의원님 내빼고 난 다음 날
지금 왜적이 쳐들어와서 온 나라가 난리가 나 있는데
왜적?
[어두운 음악] 하면 전란이 터졌단 말이냐?
[사람들이 소란스럽다] [말 울음]
(파발꾼) 파발이오!
[헛기침]
그래서 그렇게 거리가, 참
참, 또 있다
눈에 불을 켜고 의원님 찾는 사람
[의미심장한 음악] 나를? 또 누가?
(연경) [한숨 쉬며] 아니, 왜 이렇게 안 와?
(진오) 뉘시오?
(허임) 아, 유진오가 왜 나를...
우리가 그렇게 막 안 보인다고 찾아다닐 사이는 아닌데
(막개) 응, 그렇죠, 아니죠
근데 의원님이 내빼고 난 다음 날
[무거운 음악] 예? 혜민서로 가라니 그게 무슨 말씀...
너도 알다시피 허 의관 자리가 비어 있지를 않느냐
(찬성) 언제까지고 자리를 비워 둘 수도 없는 노릇
해서 널 보내기로 내의원에서 결정이 났다
(막개) 그날부터 혜민서는 아침에 와서 발자국만 찍고
온종일 향춘각에 틀어박혀서 술주정에 신세 한탄에, 어휴
화상도 그런 화상이 없답니다
내가 그런 천한 것들 피고름이나 빼자고
의원이 된 게 아니다
이러려고 내가 허구한 날 약재나 달이고 산 게 아니란 말이다!
[진오의 거친 숨소리] (기생) 나리
그자의 시신을 발견 못 했다 하지 않사옵니까
그래, 시신
(진오) 그렇지, 그놈이 보통 질긴 놈이 아닌데
그리 쉽게 죽었을 리가 없지
여봐라!
그날로 사람들 쫙 풀어서 찾는다고 난리, 난리
아니, 의원님 잡아다 앉혀 놓으면 자기는 빠져나갈 줄 알고
지금쯤 발자국 찍으러 올 때가 됐는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뉘신데 여기 계시냐 묻지 않소?
[연경의 긴장한 숨소리]
(연경) 소녀, 이곳에 침 맞으러 온 환자... [익살스러운 음악]
병자이옵니다
병자라
여염집 규수가 이런 천한 곳에 올 리는 만무하고
(진오) 얼굴이 반반한 걸 보아하니 기녀더냐?
향춘각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혹 새로운 년이냐?
[헛웃음]
(진오) 아니면 운종가의 은월각?
좀 멀리 매월당?
말해 보거라, 어느 기방 소속이더냐?
(연경) 아니에요, 기생 아니라고요
[헛웃음 치며] 그런 데 다니는 게 뭐 자랑이라고
아, 그리고 나 알아요?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에 욕이에요?
쯧, 사과하세요
[연경의 한숨]
사과하라는 말 안 들려요?
잘못했소
무례를 범했다면 용서하시오
[한숨]
그럼 소녀
이만 가 보겠사옵니다
[살짝 웃는다]
[의미심장한 음악]
[가쁜 숨소리]
아니, 뭐, 여기서는 툭하면 다 기생이래
[헛웃음]
아, 조선에서까지 이놈의 인기는, 쯧
(남자8) 허 의원님은 오늘도 감감무소식이네
- (남자9) 그러게 말이야 - (남자10) 그려 [밝은 음악]
(남자9) 사람들, 환자들이 저렇게 많이 몰려오는데
[남자9의 한숨] (남자8) 아이고, 살아는 계시는지, 원
[힘주는 신음] (막개) 또 내빼시게요?
아, 그럼 여기서 그냥 잡혀?
전쟁에 끌려가서 개죽음당할 게 뻔한데
아...
그럼 저도 얼른 짐 챙겨서... [허임의 만류하는 신음]
네가 왜 따라와?
아, 나 따라다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넌 여기서 의술이나 배우고 있어
(허임) 내 잠잠해지면 다시 기별할 터이니
[막개의 다급한 신음]
(막개) 꼭 기별 주셔야 합니다
이놈 기다립니다
[애잔한 음악]
(허임) 그래
아!
그 아이는 어찌 되었느냐?
그 아이, 누구...
연이요?
그, 혹...
[숨을 들이켠다]
(권지) 막개 이놈!
[경쾌한 음악] 너 또 여기 있지!
너 지금 몇 시인데 아직 게서 그러고 있는 게야?
썩 안 나올래?
[개운한 신음] [방귀를 뿡 뀐다]
[몽환적인 음악] [괴로운 숨소리]
[살짝 웃는다]
[허임의 힘주는 신음]
[괴로운 숨소리]
[경쾌한 음악]
[아파하는 신음]
[괴로운 숨소리]
[숨을 하 내뱉는다]
뭘 처먹은 게야!
(권지) 아니, 주인도 없는 방을 맨날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고
야, 이놈아, 그런다고 허임 그 양반이 퍽이나 알아주겠다
아이, 그렇죠, 그 양반...
아이, 뭐, 그 나리가 뭐 알아주는 나리는 아니죠
[익살스러운 음악] (막개) 어찌나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지
[막개의 멋쩍은 웃음]
(권지) 아, 빨리 나와, 바빠 죽겠어!
(막개) 예 [권지의 헛기침]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연경) 금방 온다던 사람이 왜 이렇게 안 와
(남자11) 아, 이보게, 자네 어찌 이러는가, 어?
정신 좀 차려 보시게! 응?
(아이2) 아버지
아버지, 어찌 이러셔요, 아버지!
아버지
(남자11) 이보시오, 병자가 쓰러졌소!
[문을 쿵쿵 두드리며] 문 좀 열어 주시오!
이보시오, 문 좀 열어 주시오 [아이2가 흐느낀다]
의원님을 좀 불러 주시오!
이보시오, 병자가 쓰러졌소
아, 문 좀 열어 보시오!
병자가 쓰러졌소 아, 문 좀 열어 보시오!
의원, 의원을 불러 주시오!
[무거운 음악] 이보시오, 병자가 쓰러졌소
[새가 지저귄다] [진오의 한숨]
그 여인, 침 맞으러 왔다더니 그냥 갔나
[문이 삐걱 열린다]
[한숨]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천한 것들
[진오가 혀를 끌끌 찬다]
"혜민서"
(남자11) 아니, 나오라는 의원님은 안 나오시고 웬 아씨가
[어두운 음악]
(아이2) 아버지
(남자11) 혹시 의녀시오?
제가 병자를 좀 보겠사옵니다
[남자11의 다급한 숨소리]
[환자2의 괴로운 숨소리] - (아이2) 눈 좀 떠 보세요, 아버지 - (남자11) 얘야, 일어나 봐라, 응?
[환자2의 괴로운 숨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사람들이 술렁인다]
(연경) 기흉
[한숨]
이대로 두면 환자 곧 사망합니다
응급 처치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아니, 저 여인 저기서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의 의아한 신음]
[사람들이 술렁인다]
어허, 그...
멋대로 약조를 어긴 건 그대요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날카로운 효과음]
(남자12) 뭐여, 지금 사람 몸에 칼을 대려는 거여?
이 여자 미친 거 아니오?
(남자11) 아니, 그쪽 의녀 맞아?
아니지, 혹시 왜놈 첩자 아니여?
[사람들이 호응한다]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여자3) 허, 어떡해
(허임) 미쳤소?
지금 장난하시오?
조용히 뒤로 물러나 계시오
[흥미진진한 음악]
[환자2의 괴로운 숨소리]
(남자12) 워메, 허 의원님이여
허 의원님이랑께!
[사람들이 기뻐한다] (남자11) 아유, 아이, 허 의원님이 맞네
(남자12) 아이, 허 의원님 어디 갔다 이제 오셨대요
어허, 조용!
(허임) 폐가 공기의 압박을 받고 있어 숨이 차고 흉통이 심한 것 같소
병자에게 시침을 좀 해야겠소
병자를 잠시 일으켜 주시오
[허임의 힘주는 신음]
[환자2가 심호흡한다]
[사람들의 놀라는 신음] (아이2) 아버지
[사람들이 기뻐한다]
(남자12) 역시 우리 허 의원님이여!
[남자12의 웃음]
의원님이 왜 저기...
[허임의 힘주는 신음] [잔잔한 음악]
어쩌시려고요
막개 넌 병자를 안으로 옮겨 방에 눕히고
(허임) 의녀에게 돌옷을 진하게 달여 먹이라 이르거라
네, 의원님
(남자12) 아이고, 지금까지 어디 계시다 이제 오셨대요
지들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디
(남자13) 아휴, 오늘은 그 허 의원님이 봐 주시는 거죠?
또 어디 안 가시는 거죠?
혜민서 의관 허임 오래 자리를 비워 송구합니다
암요, 암요
의원 된 자로서 어찌 병자들을 두고 발길을 돌리겠습니까
[사람들이 호응한다]
(허임) 근데 제가 긴 출타 중에 이제 막 돌아와서
제 행장을 풀지 못한 터라
채비를 하고 다시 나올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호응한다]
[허임의 떨리는 숨소리]
제정신이오?
대체 어쩌자고 거기서 나서시오, 나서길
아, 그럼 의사가 돼서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만 있어요?
여기가 어디인 줄 잊었소?
여인네가 남정네 몸에 함부로 손만 대도 경을 치는데
감히, 감히 칼...
[허임의 한숨]
예서 그런 걸 꺼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감이 안 잡히냐는 말이오
당신은요?
그때 왜 그랬는데?
클럽 앞에서 사람 쓰러졌을 때
병원에서 오하라 쓰러졌을 때 [차분한 음악]
그때 왜 달려들었는데?
[한숨]
그 덕에 거기서 미친놈 취급을 받았고
여기서는 내가 죽게 생겼소
(허준) 그놈이 벌써 왔단 말이냐? [무거운 음악]
- (검은 사내) 네? - 제 발로 왔을 리는 없고
하, 그놈 거기서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한데 웬 여인과 같이 온 것 같습니다
여인? 여인이라니?
언뜻 양반집 규수 차림새이긴 하나
행동거지로 봐서는 아닌 것도 같고
여인과 같이 왔다?
(진오) 내 뭐랬느냐 그놈이 살아 있다 하지 않았느냐
요 손가락, 열 손가락 하나 상하지 않게 고이 데려와야 된다
(충호) 네, 나리
[진오의 한숨]
허임이
내 네 이름이 이리 반가울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구나
"주막"
[문이 달칵 열린다] (주모) 아이고, 아주 그냥 더럽게 쓰고 그냥
어휴, 그냥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게 누구야
- (주모) 허 의원님 아니시오? - (허임) 쉿, 쉿, 쉿!
(주모) [작은 목소리로] 그래, 그렇지
그렇게 쌓아 놓고 억울해서 눈 못 감지
어허, 말을 해도 꼭
- (주모) 뭘? - 아는 척하지 마
(허임) 아는 척하지 마 [주모가 중얼거린다]
[허임의 헛기침] (주모) 어?
- (주모) 아니, 근데 - (허임) 아니야, 아니야
이 아씨는 뉘시래요?
그 아씨에게 주막이 뭔지는 아냐고 여쭤봐 주시게
(주모) 예?
(연경) 잘 아니까 걱정 마시라고 답해 주게
(주모) 응?
[익살스러운 음악] 하도 예측을 불허하는 여인이시라
(허임) 같이 다니다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예서 쉬고 계시라 전해 주시게
왜, 아예 버리고 가시지?
라고 전해 주게
그렇지 않아도 고심 중이라고 전해 주게
[연경의 황당한 웃음]
뒤끝이 만리장성!
이라고 전해 주게
[주모의 멋쩍은 웃음]
(주모) 아니, 진짜 이 양반들이 진짜 날 놀리나, 그냥, 참 나
[허임의 헛기침] [주모의 힘주는 신음]
(주모) 어이, 아씨
[문이 달칵 열린다]
들어오셔
들어와, 응
이봐요, 미쳤어요?
(연경)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허임의 아파하는 신음]
(허임)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연경) 이런 미친 새끼
억울했겠네
(주모) 아씨 [문이 달칵 열린다]
자
저 주문 안 했는데요
(주모) 어, 이거 [주모의 힘주는 신음]
허 의원님이 가시면서 한 상 잘 차려 올리라고
뭐, 신세 갚을 게 있다나 뭐라나
아, 이 말을 꼭 전해 달라던데?
(주모)
(연경) 밥 샀으니까 이걸로 어제 일은 퉁 [잔잔한 음악]
아니, 근데 허 의원님하고는 무슨 사이시래요?
(주모) 아, 좀 뭐, 그렇고 그런 그런 사이인가?
(두칠) 주모, 주모 안 계시오!
(주모) 아, 진짜, 중요할 때
예, 예, 갑니다요
이거 드시고 계세요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그러게
어떤 사이인가
(주모) 그래, 뭘로 드릴까?
- (두칠) 여기 탁배기 네 사발하고 - (주모) 응
(두칠) 국밥은 세 개만 주시오
[딱새의 의아한 신음] (주모) 예
얼른 대령할 테니까 잠깐만 계시오
아니, 사람이 네 명인데
성, 봤으면 뒤를 밟아야지
거기서 나한테 오면 나보고 어쩌라고
어휴, 갑갑해 죽겄네, 정말, 씨
성 오늘 밥 먹을 자격 없으니께 굶어
언능 너한테 알려야 쓰겄다 생각이 먼저 드는 걸 어째?
(딱새) 내 몸이 하나인 걸 어째?
그렇다고 밥을 뺏고 지랄이야
아이고, 엄니
(두칠) 아이고, 엄니, 아휴
아, 이 쥐새끼 같은 놈, 씨 [어두운 음악]
그려, 이것은 하늘이 내게 준 기회제
그 개잡놈의 새끼
이번에 내 손에 제대로 뒈지는 거야
[한숨]
[쓸쓸한 음악] 그때 의원님 가시고 난 뒤에 아이가 그만 혼절해 가지고
아비가 손도 못 대게 하고 업고 갔는데
아마 죽었을 거라고 다들...
[한숨]
[의미심장한 효과음]
[연경의 신음]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파하는 신음]
[연경의 거친 숨소리]
(주모) 아씨
[다급한 숨소리]
왜요, 왜, 왜?
(주모) 아니,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시지 왜 나오신대요?
[익살스러운 음악] 아, 왜요, 왜, 왜?
괜찮으세요?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뭐, 화장?
뒷간요, 뒷간
오, 뒷간, 뒷간? 어
(주모) 아, 요강 단지 뒀는데
아, 그냥 기왕 나오신 거 일로 일로, 일로 돌아가시면 돼요, 요, 요
저, 혹시 물티슈...
뭐라는 거야
[멋쩍은 웃음]
아니요, 고맙습니다
아, 예, 예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괴로운 신음]
(주모) 아휴, 바로 여기인데 이건 좀 벗고 가지, 그냥
[딱새의 의아한 신음]
(주모) 아, 그냥 요강에다가 좀
[의미심장한 음악] 아이고, 저
어, 봤는데?
(딱새) 허임이랑
여인, 어!
- (두칠) 확실혀? - (딱새) 화, 확실혀
(딱새) 허임이 저 여자
요로코롬 해 갖고 데려가는 거 내가 봤어, 어
옷도 딱 저 옷이었어
[문이 달칵 열린다] (두칠) 밥 먹어
[딱새가 살짝 웃는다] 아, 허임 이 새끼
이제 너 꼬리 밟혔다
[파리가 윙윙 날아다닌다]
[난감한 한숨]
[연경의 힘주는 신음] [풍덩 소리가 난다]
(두칠) 아씨
우리 쪼까 얘기 좀 할라요?
(연경) 누군데 내 앞을 막아서느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이냐?
아, 별건 아니고
그 개잡놈 지금 어디 있소?
개잡놈?
그것이 누군데?
아, 허임이 그놈!
돈 많고 높으신 양반네들한테는 슬슬 기고
(두칠) 돈 없고 불쌍한 병자들은 나 몰라라 하는
그 개잡놈의 새끼 말이여
[헛웃음]
이봐요
당신이 뭔데 말을 막 해요, 응?
(연경) 그 사람은 혜민서에서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훌륭한 의원인데
치 [두칠의 헛웃음]
[두칠의 어이없는 웃음]
[딱새의 헛웃음] (두칠) 완전 환장하겄네
이 아씨가 뭘 잘 모르시네
순진한 혜민서 병자들이
'아이고, 허 의원님, 허 의원님' 하니께
아씨도 깜빡 속아 분 모양인디 말이여
고놈의 새끼가 얼마나 낮 다르고 밤 다른
두 얼굴의 개잡놈의 새끼인지 한번 들어 보실라요?
[의미심장한 음악]
내 너희들이 많이 그리웠다
[흡족한 웃음] (두칠) 그놈이 그런 놈이라고
돈만 밝히는 개잡놈!
[헛웃음]
말도 안 돼
그다음 날로
그 행랑채 병자 저세상 가 버렸소
(두칠) 평생을, 평생을 뼈 빠지게 종노릇하다가
의원 손길 한 번 못 받고
피눈물 흘리면서 그렇게 눈감았다고
아시겄소?
아이씨
아, 긴말할 거 없고
딱 보아 하니께 귀한 집 그, 아씨인 거 같은데
괜히 흉한 꼴 보기 싫으면 고놈 간 곳 빨리 대시오
난 몰라요
(연경) 그냥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만...
(두칠) 아! 정말 이 자식이
말로 하면 안 되겠구먼
얘들아, 뭐 하냐, 아씨 뫼셔라
[긴장되는 음악] - 아이고, 왜 이래, 아유, 왜 이래! - (딱새) 일로 와
- (딱새) 들어와 - (주모) 왜 이래, 진짜
[노비들의 당황한 신음]
(주모) 아, 이 인간들이 그냥!
(딱새) 아, 요 아씨가 보통 아씨가 아니네
(두칠) 그래 봤자 아씨지
뭐 무예를 하겄어, 무기를 쓰겄어?
아, 시간 없어, 얼른 잡아! [주모의 당황한 신음]
[딱새의 의아한 신음]
오지 마, 오면 쏜다
- (두칠) 뭐여, 이게? - (딱새) 뭐여, 저...
(두칠) 뭐여?
(연경) 아줌마, 눈 감아요
[노비1의 힘주는 신음]
[연경의 비명] [노비들의 비명]
[웅장한 음악]
[노비들의 비명]
[연경의 다급한 숨소리]
[연경의 신음]
[연경의 거친 숨소리]
[차분한 음악]
- 너 괜찮니? - 네
[연경의 힘주는 신음]
어디 다친 데 없어?
- 괜찮아요 - (연경) 어
[긴박한 음악]
(주모) 내가 일러 주는 대로 쭉 가시오
거기 가면 허 의원님이 있을 거요
[새가 지저귄다] [긴장되는 음악]
(허임) 아이, 깜짝이야
아이, 처자가 여긴 왜, 어떻게 알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쫓아와요
쪼, 쫓아오긴 누가...
(노비2) 어, 어, 저, 저, 저 저기, 저기 있다, 저기
(두칠) 저 자식이 [딱새의 다급한 신음]
(두칠) 거기 있는 거 아니께 문 열어
좋은 말 할 때 문 열어, 이 새끼야!
[문이 쿵쿵 흔들린다] 거기서 조신하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소?
(허임) 당최 말을 안 듣고
(연경) 아, 근데 혜민서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병자들이 기다린다고?
(허임) 지금 병자가 대수요?
- (허임) 내가 죽게 생겼는데 - (두칠) 문 열어, 이 새끼야!
(두칠) 좋은 말로 할 때 문 열어, 이 새끼야!
얼른 문 열어, 이 새끼야!
[기합]
[연경과 허임의 놀라는 신음]
(두칠) 아, 쥐새끼 같은 놈
참말로 쥐새끼마냥 여기 숨어 있었네
하여튼 우리 허 의원, 최고야, 최고
[두칠의 웃음]
(허임) [헛기침하며] 그래그래, 그, 수고가 많다
병판 나리께서는 쾌차하셨고?
(두칠) 아따, 엄청시럽게도 받아 처드셨네
참봉 녹봉이 쥐꼬리만 하다더니
밤마다 그러고 마실 댕긴 보람이 있었구먼?
참봉?
(두칠) 그랑께 허 참봉 나리께서
요거를 챙기려고
아씨까정 버리고 혼자 토끼셨구먼
(허임) [말을 더듬으며] 그, 무슨, 오해다
아니, 그건 오해요
[어색하게 웃으며] 나 진짜 그럴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오해요
(두칠) 하긴, 임금님 능멸한 죄로 관군들한테 쫓기는 판에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제
의원도 사람 새끼인디, 안 그렇소?
어허, 그, 무슨, 그, 오해라니까!
오해요
(두칠) 근데 그렇게는 안 되겄소
나가 우리 엄니한테 약조한 게 있거든
울 엄니 눈감으면
허임이 네놈 모가지 영전에 바치겄다고
그럼 그 행랑채 병자가
[어두운 음악]
[허임이 소리친다] [기생들의 비명]
(허임) 이리 오너라!
이 자식이
우리 엄니 내팽개치더니 저 지랄을 하고 있네, 씨
찢어 죽일 놈의 새끼...
(딱새) 아우야! [두칠의 성난 숨소리]
아우야!
아, 왜!
엄니
엄니가 뭐?
엄니가 지금
네가 양반네들 뒷구녕 빤 돈으로
(두칠) 기생 끼고 술 처마시는 동안
침 한 방 못 맞고 돌아가신 불쌍한 우리 엄니
네 모가지로 피눈물은 닦아 드려야제
안 그러냐?
가져와
뭐 하냐?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허임의 놀라는 신음]
(두칠) 내 손에 더러운 네놈 피는 묻히기는 싫고
시커멓게 탄 목도 목은 목이니께
아씨한테는 참말로 미안하게 됐소
근데 뭐 어쩌겄소?
잘 가시오
그라고 조금 있다 우리 엄니 만나면
나가 너무 보고 싶어 한다고 꼭 전해 주고
잘 가라
개잡놈의 새끼야!
[어두운 음악]
[연경의 다급한 숨소리]
(허임) 이보오! [문을 쿵쿵 두드린다]
두칠아, 두칠이 이놈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허임과 연경의 당황한 신음]
- (연경) 저기요, 아저씨! - (허임) 이보오!
[문을 쿵쿵 두드린다] (허임) 두칠아, 이보오!
- (허임) 문 여시오! 에이씨 - (연경) 저기요!
[두칠의 웃음]
뭐여?
[긴장되는 음악]
안에 든 자가 허임이 맞느냐?
관군은 아닌 것 같고 왜 묻소?
(허임) 밖에 누구 없소이까!
[허임의 다급한 신음] [연경의 힘주는 신음]
(연경) [문을 쿵쿵 두드리며] 이봐요, 저기요, 아저씨!
(허임) 두칠아, 문 열거라, 두칠아!
- 문을 부숴라 - 잠깐!
그쪽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허임 이 새끼는 내가 먼저 잡았는디
(충호) 뭐 하느냐, 열어라!
[충호 부하들이 대답한다] (두칠) 너희들은 뭐 하냐, 막아야지!
[소란스럽게 싸운다]
(딱새) 이놈의 새끼!
[연경의 다급한 신음] 염병, 씨
(연경) 저기요, 사람 살려요!
어떻게 좀 해 봐요
내가 뭘 어떻게...
그러면 여기서 이대로 죽어요?
난 그렇게 못 해요
어떻게 남자가 옷고름 맬 줄이나 알지
(허임) 뭐 하시오, 뭐 하시오! [연경의 다급한 숨소리]
[연경의 힘주는 신음]
[연경의 힘주는 신음]
[소란스럽게 싸운다]
(두칠) 날 죽이고 문 열어!
[연경의 비명]
[소란스럽게 싸운다]
(두칠) 꼭 막아야 돼야 [노비들의 거친 숨소리]
우리 엄니 약조 지켜야제!
(딱새) 오야, 아우야, 걱정 말거라
내가 막아 줄게!
[노비들의 기합]
[연경의 힘주는 신음]
[무거운 음악]
[허임의 당황한 신음]
아, 안 돼
[힘주는 신음]
[다급한 신음]
안 돼, 안 돼...
[허임의 다급한 신음]
[허임의 다급한 신음] (허임) 안 돼, 안 돼
(연경) 미쳤어요? 당장 그만 안 둬요?
[연경의 힘주는 신음] 어떤 돈인지 아시오?
(허임) 비키시오!
[연경의 아파하는 신음]
(연경) 당신 뭐 하는 사람인지 잊었어?
의사한테 손이 생명인 거 몰라요?
저 돈보다 당신 손이 더 중요하다고!
[거친 숨소리]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극적인 음악]
[허임의 비명] [연경의 놀란 신음]
[두칠의 기합]
[두칠의 아파하는 신음]
[충호의 힘겨운 신음]
뭐야, 어디 갔느냐!
[두칠의 거친 숨소리]
(두칠) 어디 갔어?
어디 갔어?
분명히
분명히 내가...
이 개잡놈의 새끼 어디 갔냐고!
어디로 사라졌냐고!
(연경) 아, 머리야
[거친 숨소리]
여기 서울이야?
[감격한 숨소리]
돌아온 거야?
[연경의 기뻐하는 탄성]
[놀란 신음]
[연경의 거친 숨소리] (허임) 아이, 여긴 어디요?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것이오?
[허임의 다급한 신음]
(연경) 그걸 나한테 물어요?
서울이에요, 서울
서울이야!
거기 두 분, 괜찮으세요?
아, 저, 저희 좀 꺼내 주세요
[흥미진진한 음악]
(연경) 아, 왜 돌아와도 이런 데...
[연경의 한숨] (허임) 그래도 돌아온 게 어디요
자, 조금씩 힘을 내 봅시다 [연경의 힘주는 신음]
[연경의 괴로운 신음]
[허임과 연경의 힘주는 신음]
아, 내 골반
[중얼거린다]
오, 아스팔트
아, 미세 먼지
[휴대 전화 벨 소리]
[거친 숨소리]
돼
어, 민재야!
(민재) 오하라가 선배 올 때까지 수술실 안 들어가겠다고 버텨 가지고
지금 난리 났거든요?
[허임의 놀라는 신음]
[타이어 마찰음] (허임) 나도 데리고 가시오, 나도
나도 데리고 가시오, 응?
나, 나도 데리고 가시오
병원에서도 연락 두절이어서 핸드폰 위치 추적 좀 해 볼까 해서요
[헛웃음]
아니요,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허임) 아, 그, 잠깐 멈추시오!
[차분한 음악] 그 소녀, 꼭 살리시오
[한숨]
이것이 무엇이냐?
(충호) 광에 남아 있던 것인데
허임과 함께 있다 사라진 여인이 신고 있던 신발 같습니다
여인?
허임 그자가 여인과 같이 있었단 말이냐?
혜민서에서도 같이 있는 걸 목격한 자들이 있습니다
혜민서
[어두운 음악]
찾아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구나
(검은 사내) 그 여인이 떨어뜨리고 간 물건입니다
한데 안에 든 것들이...
하면 그곳의 여인을...
하, 이놈이 어쩌자고
[긴장되는 음악]
[연경의 다급한 숨소리]
내의원이 완전히 쑥대밭이 돼 가지고
눈에 불 켜고 의원님 찾는다고 난리, 난리
허임이 네놈 모가지 영전에 바치겄다고
[한숨]
다신 안 돌아간다
[허임의 놀란 숨소리]
그래
이제야 알았다
내가 이곳에 온 연유를
천출도
전란도 없는 이곳에서
이뤄 보지 못한 꿈을 마음껏 펼쳐 보라는 하늘의 뜻이다
[흥미진진한 음악]
(허임) 이제부터 저기가
나의 궐이다
(허임) 실력이 뛰어나면
여기 한의사가 될 수 있소?
(환자3) 아이씨!
(연경) 꿈 한번 꾼 거야, 별거 아니야
(명훈) 어떡하긴
그 녀석을 빨리 찾아내서 잡아 처넣어
(허임) 방금 뭐라 했소?
(연경) 여기 당신 같은 의사 필요 없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의사 하면 안 되지
(허임) 이리 오너라!
어르신, 저 왔습니다요
(하라) 그 아저씨랑 어디 갔다 온 거죠?
(연경) 그거 내 옷 [허임의 놀라는 신음]
(허임) 두고 보시오
내 그대 도움 없이도 이곳에서 보란 듯이
번듯한 의원으로 살아 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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