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투 헤븐 5
(남자) 야!
[간호사1의 겁먹은 신음] 가만있어! 씨
아, 빨리 오라고! 씨, 야
몰핀, 타진, 펜타닐 가져와
빨리 갖고 와! 씨발, 씨 [간호사1의 겁먹은 신음]
- (남자) 가만있어 - 진정하세요, 환자분, 우선
(수현) 어깨의 그 상처부터 치료를 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제가 의사니까 치료부터 하시…
(남자) 다 필요 없고 약이나 내놔
갖고 와! 가만있어
(수현) 알겠습니다, 약 드릴 테니까 우리 간호사부터 놔주세요
(남자) 네 말 어떻게 믿어?
가만있어
[약병을 달그락 건넨다]
(수현) 제가 약을 드리러 다가갈 테니까 그때 놔주세요, 그럼 괜찮죠?
[남자의 떨리는 숨소리] [긴장되는 음악]
일로 와, 가만있어
가만있어 [간호사1의 긴장한 신음]
[간호사1의 비명] [남자의 당황한 신음]
[사람들의 놀란 신음]
[남자와 수현의 힘주는 신음]
- (남자) 놔, 이 새끼야 - (수현) 진정하세요
[남자의 힘주는 신음] [수현의 놀란 신음]
[수현의 힘겨운 신음] [경비원들이 남자를 탁 제압한다]
[남자의 힘겨운 신음] (경비원) 움직이지 마, 가만히 있어
[무거운 효과음]
[놀란 신음] [차분한 음악]
[무거운 효과음]
[비명]
[힘겨운 신음]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긴장되는 음악]
[날카로운 효과음]
(관중) 인간 살인 병기 [관중의 말소리가 울린다]
그런 거 본 적 없지?
그냥 주먹 한 방에 선수 하나 저세상 보낸다니깐, 그냥, 어?
완전 괴물 [나무가 창을 쾅쾅 두드린다]
(나무) 그루야, 도망가 [나무의 목소리가 울린다]
너 위험하다니까!
도망가, 한그루 너 위험하다고
한그루!
[부드러운 음악]
[새가 짹짹 지저귄다]
(미란) 어떻게 경찰이 됐어? [준영의 웃음]
- (미란) 야, 너 제복 잘 어울린다 - (준영) 감사합니다
(미란) 한나무, 이리 와 봐
[나무가 지지대를 탁 내린다]
야, 준영이가 순찰 돌다가 일부러 인사까지 하러 왔잖아 [나무의 어색한 웃음]
아무튼 외모면 외모 예절이면 예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 어? [미란과 준영의 웃음]
(준영) 아니에요, 근처에 왔다가 마침 여기 나와 계신 거 보고
- 겸사겸사 인사드린 건데요 - (미란) 에이
(미란) 솔직하게 대답해도 돼
궁금한 거 못 참아서 왔잖아
옛날부터 준영이 네가 우리 나무라면 [준영의 웃음]
어, 꼼짝 못 한 거 내가 다 아는데
야,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 야, 뭐, 응? [나무가 미란을 툭 친다]
뭐?
가만있어 봐
아, 혹시 몇 년 동안 못 봤다고
그새 둘이 내외하는 건 아니지, 어? [준영과 미란의 웃음]
- 진짜 그만 좀 해 - (미란) 왜?
(준영) 아, 실은 며칠 전에…
박, 박준영, 아유 그나저나 되게 오랜만이다, 어?
(나무) 이게 얼마 만이더라, 한…
어, 3년? 어? 어, 어, 3년 [준영의 의아한 신음]
[웃으며] 아유, 신입인데 이러고 있어도 되나, 어?
[준영을 탁 밀며] 엄청 되게 대박 많이 바쁠 텐데
어? 안 바빠?
(준영) 그렇게 등 안 떠밀어도 나 가 봐야 돼
준영아
자주 와, 어?
(미란) 다음에 올 때는 경찰서 사람들하고 같이 와
그럼 아줌마가 인심 팍팍 쓸게
(준영) [감탄하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 (미란) 가 - (준영) 네
그루네서 일하는 거 비밀이야
새 나가면 죽는다
너 하는 거 봐서
- 어머니 - (미란) 응?
[준영의 웃음]
또 올게요
(미란) 그래, 고생해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뭐, 뭐, 뭐, 뭐, 뭐?
(나무) 우리 집 앞에만 비가 내렸나, 어?
우리 오 여사님이 얼마나 침을 흘렸으면
아주 국지성 호우가 따로 없네 국지성 호우가
가자, 그루야, 데려다줄게
(미란) 데려다주긴 뭘 데려다줘? 엎어지면 코 닿는 데를
뭐, 그루가 제 집 하나 못 찾을까 봐
너 그렇게 맨날 끼고 다니면서 쟤 맨날 데려다주냐?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하루 삼시 세끼
그루 집 가 가지고 밥 차려 주고 밥 먹이고
네가 무슨 엄마야?
왜, 네 아비하고 어미한테 그런 상을 한번 차려 줘 보지
그럼 너 유엔에서 상을 줘
- 어유, 됐어, 그만 좀 해 - (미란) 저, 씨
- (나무) 그루야, 가자 - 윤나무!
(미란) 너 지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당황한 신음]
(그루) 나무 아줌마 나무 그루네에서 밥상 안 차립니다
어?
(그루) 밥은 매일 아빠가 차려 주고 나무는 먹기만 했습니다
지금도 그루가 차려 주는 밥상 나무는 먹기만 합니다
설거지도 그루가 다 합니다
나무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화 푸시고 나무랑 싸우지 마십시오
[전화벨이 울린다]
[버튼 조작음] (상구) 무브 투 헤븐입니다
(기사) 돈 더 드리면 지금 당장 올 수 있나요?
뭐라고요?
(기사) 저희가 좀 급해서요
[상구의 탄성]
언제나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무브 투 헤븐입니다
(나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문이 달칵 열린다] 아…
네, 지금 바로 가능합니다 [문이 탁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버튼 조작음] [파리가 왱왱거린다]
[수화기를 달그락 내려놓으며] 의뢰야, 지금 당장 와 달래
[파리가 연신 왱왱거린다]
엄마야!
아씨, 벌써 파리가 돌아다녀
[놀란 신음]
(상구) 에프킬라 사야겠다
[나무의 한숨]
[몽환적인 음악]
"원 마을 타운하우스"
(기사) 가구와 전자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버려 주시기 바랍니다
- (나무) 그냥 다 버려요? - (기사) 네
(기사) 아드님 물건 보시면 더 괴로우시다고
그렇게 부탁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무) 네
[나무의 놀란 숨소리]
와, 씨, 진짜
(상구) 어?
회계는 제 담당이거든요?
야, 얼마인지 다 세어 봤다 삥땅 치지 마라
(수현 모) 애 짐 정리하는 게 뭐 그렇게 급한 일이라고
[수현 모가 훌쩍인다]
이렇게 사람을 몰아세워요?
내가 어련히 알아서 천천히 다…
(수현 부) 천천히 언제?
[수현 모의 한숨]
당신 수현이 셔츠 하나 안 버리고 끼고 있을 사람인 거
내가 모르나?
내 핑계 대지 말아요
이거 다 그 애 들어온다는 소식 때문인 거 아니까
(기사) 저쪽 침실부터 해 주시면 됩니다
(나무) 네
[나무가 지퍼를 직 연다]
[상구의 한숨]
[그루가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나무가 지퍼를 직 닫는다]
정수현 님
(그루) 2020년 5월 12일 사망하셨습니다
저희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러 온
무브 투 헤븐의 한그루
아, 윤나무
(상구) 조, 조, 조상구
(그루) 입니다
지금부터
정수현 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상구가 입소리를 쩝 낸다]
삼촌과 나무는 이쪽부터 정리해 주십시오
(나무) 응
(상구) 이건 죽은 사람이 의사라는 거지?
(나무) 이렇게 젊고 잘생긴 데다 의사였는데
아, 게다가 외아들이라던데
부모님 충격이 얼마나 크실까?
죽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니까
(상구) 아, 죽어서도 젊고 잘생기고 의사인 게
사람 차별하잖냐
누가 언제 차별을 했다고…
(상구) 아니라고?
역시 아까워
(나무) 그래요
했네요, 차별
[픽 웃는다]
"피아노 트리오 1번 브람스"
[잔잔한 음악]
[출입증을 달그락 든다]
[여권을 탁 든다]
[봉투를 툭 놓는다]
(수현 모)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허락해 줄걸
(수현 부) 누구 아들인데
어떤 집안인데 그걸 허락하나? [수현 모가 울먹인다]
(수현 모) 애가 죽었는데
아직도 체면 그딴 게 더 중요해요?
저, 저기… [수현 모가 훌쩍인다]
유족분들께서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놀란 숨소리]
그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수현 모) 그런 걸 왜 물어요?
(그루) 고인께서 그분 앞으로 편지를 남기셨으니
전해 드려야 합니다
(수현 부)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말고 당신들 시킨 일이나 해
갑시다 [무거운 음악]
[당황한 신음]
타 버리면 안 됩니다
[그루의 힘겨운 신음]
(나무) 왜, 왜, 왜, 무슨 일이야, 어?
(그루) 안 됩니다, 안 됩니…
(나무) 야, 야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루의 아파하는 신음] 아, 다 뎄잖아, 그루야
[나무의 한숨]
(상구) 또라이인 줄 알았지만 완전 상또라이네
네가 사람이지, 로봇이야? 얻다 손을 지져?
아, 삼촌!
(상구) 또라이 아니라며
존나 똑똑하다며 [나무의 한숨]
똑똑한 놈이 불 속이 자기 손 지지면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
그걸 얘가 몰라서 이랬겠어요?
다 타 버렸습니다
정수현 님이 사랑하는 분께 남긴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루) 그분께 전해 드려야 하는데 그분이 읽으셔야 하는데
다 타 버렸습니다
(나무) [한숨 쉬며] 됐고, 너 손부터 치료해야 돼
이걸 두고 그냥 갈 순 없습니다 가져가야 합니다
(상구) 아이, 다 타 버려서 재밖에 안 남았는데
뭐 어떡하라고?
(상구) 아이, 계속 쳐다본다고 재가 다시 편지로 변하냐?
아, 부모가 오죽하면 다 버리라고 했겠어?
[허망한 목소리로]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허락해 줄걸'
[근엄한 목소리로] '누구 아들인데'
'어떤 집안인데 그걸 허락하나?'
뭐야?
(그루)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구) 아니, 사진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녹음기도 되는 거였냐?
아유, 칭찬이야, 칭찬
그러니까 이거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부모가 반대를 해서 헤어진 거
그러다가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 거고
그래서 의사 선생이 사랑했던 여자를
(상구) 또 너희가 찾겠다는 거 아니야, 아으
[상구가 혀를 쯧 찬다] (나무) 아, '너희'라니요
'너희'가 아니라 '우리'죠
삼촌도 무브 투 헤븐 직원이잖아요
[상구의 헛웃음]
아니, 이건 무슨 유품 정리가 아니라
완전 뭐, 심부름센터야
(상구) 돈 찾아 줘, 사람 찾아 줘 택배까지 해
야, 이러다 밥까지 떠먹여 주겠다 [나무의 헛웃음]
[상구의 못마땅한 신음] (나무) 아, 말은 바로 해야죠
솔까 그루가 다 한 거지 왜 갑자기 삼촌이 다 한 척?
삼촌은 그냥 따라만 다녔잖아요
야, 내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까짓것 다 해, 내가, 인마
(나무) 음, 그럼 해 봐요 이거 누군지 알아내 봐요
삼촌이 찾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 같은 거 지지지 말고
깔끔하게
[탁 치는 효과음] (상구) 딱밤 어때?
[흥미로운 음악]
[총이 철컥 장전되는 효과음]
[총성 효과음]
아, 싫어요
[상구의 장난스러운 웃음]
옆집 너 안 어울리게 이런 거 무서워하는구나? [나무의 당황한 신음]
아이, 무서워하긴 누가…
아, 이 나이에 유치하게 무슨 딱밤이에요
(나무) 깔끔하게 5만 원 빵
- 5만 원? - (나무) 응
딴소리하기 없기다?
(상구) 좋아, 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손가락을 딱 튀기며] 답 나왔네
아, 음악하는 여자잖아 이런 거 죄 모아 놓은 거 보면
(나무) 원래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 다 모으거든요?
집에도 보니까 뭐 이런 음반 같은 것도 엄청 많던데
그건 뭐야?
(그루) 스토퍼입니다
(상구) 스토퍼? 뭐 하는 건데?
(그루) 첼로 연주자들이
악기를 고정할 때 사용하는 기구라고 합니다
[상구의 호응하는 신음]
그러면 첼로리스트?
- '첼로리스트'? - (나무) 어
- 첼리스트 아니야? - (나무) 아, 첼리스트
[상구의 웃음]
(나무) 아, 진짜, 첼리스트
[흥미로운 음악]
[밝은 효과음]
(그루) 첼리스트
여기 있습니다
- (그루) 이분? - (나무) 이 사람? [상구가 지목한다]
(상구) 아, 이 사람이지
- (나무) 왜요? - (상구) 아, 생긴 걸 봐
(상구) 이 사람이랑 어울리잖아
(나무) 그렇게 따지면 이 사람이랑 더 잘 어울리죠
그냥 누가 봐도 커플인데
(상구) 무슨 소리야 이 사람이랑 더 잘 어울리지
(그루) 정수현 님은 내일 저녁
이분들의 연주회에 가려고 하셨습니다
공연장에 가면 그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차분한 음악]
(상구) 5월 16일이면 내일 맞네
"서울체스터"
(안내원) 리허설 중이라 단원들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한데
진짜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요, 네? [안내원의 한숨]
(안내원) 단원분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서 만나시죠
(나무) 아니, 몇 번을 말씀드려요 저희가 연락처를 모른다니까요?
아, 연락처를 알면 저희가 왜 이러고 있겠어요, 네?
(안내원)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무의 한숨]
(그루) 화장실에 가고 싶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습니다, 급합니다
[나무와 상구의 당황한 신음]
[한숨]
(상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그루) 그루는 굼벵이 아닙니다
(상구) 아, 화장실 말이야
네 꼼수 덕분에 여기 들어온 거 아니야
- (그루) 꼼수 아닙니다 - (나무) 뭐?
(그루) 정말로 급해서 그랬습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함께 당황한다]
(상구) 어?
[나무의 다급한 신음]
(나무) 김소미 씨? [흥미로운 음악]
(상구) 아, 저기, 혹시 그
- (상구) 제니퍼 송 씨? - (단원1) 어, 네
- 정수현 님 친구분이세요? - (단원2) 네?
- 아니요 - (나무) 아니세요?
(나무) 죄송합니다
정수현 씨를 아십니까?
정, 아니요, 몰라요
- 모르세요? 아, 진짜요? - (단원1) 네, 죄송합니다
죄, 죄송해요
아나, 진짜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세면대 물이 솨 흘러나온다]
(나무) 찾았어요?
(상구) 아, 아, 없어, 못 찾겠어
[나무의 한숨] (상구) 여기 없나 본데?
아, 하, 하이, 예 [나무의 난처한 신음]
아, 그…
[영어] 다니엘라 씨인가요?
(단원3) 네
(상구) 정수현 씨를 아시나요?
[세면대 물이 솨 흘러나온다]
[물이 뚝 끊긴다]
[물이 뚝 끊긴다]
[상자를 달그락 든다]
(상구) [한국어] 아이, 거의 다 찾아본 거 아니야?
야
(나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화장실에서 잠든 줄 알았네
찾았습니다
아, 그래, 우리도 찾았지
(나무) 음, 근데 셋 다 아니래
정수현 님 애인은커녕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니까
아닙니다
여기 계십니다, 첼리스트입니다
(상구) 아, 이 첼리스트들은 아니라고 했다니까
정수현 님이 사랑하신 분은 바로
이분입니다
[흥미로운 음악] (상구) 아이, 정, 정, 정말?
이 사람이라고?
(그루) 이언 박
이 사람입니다
"수현"
'수현'
스케줄은 그대로 가고요
(매니저) 그럼, 조금만 쉬고 있어 [픽 웃는다]
(그루) 정수현 님
정수현 님을 아십니까?
[옅은 한숨]
아니요, 그런 사람 모릅니다
아이, 죄송합니다
(상구) 야, 지금은 일단 가자, 응
(그루) 정말 모르십니까?
정수현 님
[옅은 한숨]
전에 알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랑은 상관없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무) 일단 가자, 어? 가자, 가자, 가자
(그루)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번 알았던 사람이
다시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겁니까?
(상구) [이를 악물고] 야, 그, 세상을 살다 보면
- (상구) 복잡하고 미묘한 게 있어 - (나무) 어
(상구) 그러니까 가서 삼촌이 설명해 줄게
뭐 하자는 겁니까?
내가 정수현이랑 알든 모르든
당신들이랑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그루) 정수현 님
2020년 5월 12일 사망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상구) 야, 삼촌이 빨리 가자고 했잖아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늦었어, 빨리빨리 가
- (나무) 어, 가자, 죄송합니다 - (상구) 실례했습니다, 네
- (나무) 네, 죄송합니다 - (상구) 빨리 가, 빨리 가, 가
(상구) 뭐, 이렇게… [도어 록 작동음]
[차분한 음악]
[이언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초조한 숨소리]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여보세요?
네, 그, 저…
응급실 정수현 닥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떨리는 숨소리]
[상구의 한숨]
(상구) 너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훅훅 들어가면 어떡해?
이제 다 끝났어, 그만 가
(나무) 여기까지 왔는데 연주도 안 듣고 그냥 가요?
(상구) 연주? 이걸 듣고 가겠다고?
야, 옆집 너 상당히 안 어울리는 취미를 가졌다?
(나무) 하, 안 어울리긴
제가 클래식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상구의 비웃음]
(그루) 지금은 전할 수 없습니다
연주가 끝난 후에 전해 드려야 합니다
(상구) 뭐?
야, 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하잖아, 죽든 말든
정수현 님이 전하려 했습니다
정수현 님 대신 무브 투 헤븐이 하는 겁니다
(상구) 아이, 그래서 다 같이 이걸 듣고 가겠다고?
아유, 됐어 그냥 너희들끼리 가서 들어, 그냥
(매니저) 그래, 이언이 사라졌다고
일단 경찰에 신고 좀
빨리 찾아야 돼
공연? 사람을 찾아야 공연을 하지
[문이 달칵 여닫힌다]
(나무) 아니, 지금 분명히
이언이 사라졌다고 한 거 맞지?
(상구) 아이, 정수현 모른다더니만 뭐야, 이제 와서
찾아야 합니다
(상구) 야, 야, 그루야
- 그루야 - (상구) 아이, 저… [무거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나무) 갑자기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걸 테니까
어, 나라면
뭐,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했던 추억이 있다거나
뭐, 그런 의미 있는 데 갈 거 같아요
(상구) 뭐, 행복했던 추억?
아이,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씨
(나무) [한숨 쉬며] 생각, 생각, 생각
어, 그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
(상구) 어?
(상구) 아, 그럼 뭐 연주회장 같은 데 아니야?
(나무) 연주회장?
[한숨 쉬며] 연주회장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상구) 아, 그럼 클럽?
(나무) 장난해요, 지금?
삼촌 같으면 이 상황에 클럽에 가겠어요?
(상구) 아, 가, 갈수도 있지, 뭐, 왜
아닙니다
(나무) 어?
정수현 님이 그분과 처음 만난 곳은
[상구의 의아한 신음]
[상구의 헛기침]
[사이렌이 울린다] [타이어 마찰음]
[무거운 음악]
[가쁜 숨소리] [응급실이 분주하다]
[울먹인다]
[떨리는 숨소리]
[부드러운 음악]
(간호사2) 아이씨
[간호사3의 옅은 웃음]
(간호사3)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수현) 왜요, 뭔데? [간호사3의 신난 신음]
(간호사2) 올 크리스마스도 수현 쌤이 당직 설 거라고
내기하던 중이었거든요 [수현의 웃음]
와, 어떻게 사람이 한 치도 예상을 못 벗어나요? [전화벨이 울린다]
재미없게
죄송하네요, 뻔한 인생이라서 [간호사3이 수화기를 달그락 든다]
[사이렌이 울린다] (간호사3) 환자 들어옵니다, 교통 사고래요
(수현) 무슨 사고죠?
(구급대원) 교통 사고 환자분 의식이 없습니다
이동 시간이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수현) 바이탈 체크하고 기도 삽관 준비해주세요
(의사) 알겠습니다
(간호사4) 선생님, 다리에 출혈이 심합니다 [이언이 영어로 말한다]
- (수현) 네, 가 보셔도 됩니다 - (구급대원) 네
(이언) [영어] 이봐요
- 이보세요! - (수현)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어떻게 진정을 해요?
(이언) 당신은 그 악기가 어떤 건지 모르잖아요
그래도 진정하셔야 돼요
[이언의 힘겨운 신음] 첼로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깐요
내 첼로 먼저, 내 첼로 먼저!
[한국어] 조용! [이언의 한숨]
(수현) [영어] 당신부터 치료할 겁니다
첼로보다 당신이 먼저예요
내일 당신의 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이언) 젠장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잔잔한 첼로 연주가 들린다]
(수현) 저기
괜찮아요?
[픽 웃는다]
[한국어] 그냥 한국말로 하세요
[픽 웃는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럭저럭
무사한가 보네요 그 목숨보다 소중한 악기
무서운 닥터 덕분에
한 곡 들을 수 있을까요?
음…
[첼로를 툭 친다]
[영어] 그러죠
크리스마스니까
[수현이 픽 웃는다]
[감미로운 첼로 연주]
[무거운 음악]
[사람들의 박수]
[이언이 숨을 씁 들이켠다]
(이언) [한국어] 음…
형, 이 겨울에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손이 좀 차
(수현) [웃으며] 왜 그래?
[웃음]
- 다 봐 - (이언) 아무도 신경 안 써
- (수현) 봐, 다 봐 - (이언) 아무도 안 봐
[수현의 옅은 웃음]
[수현이 픽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이언) 형, 나 거기서 핸드폰 좀
[수현의 힘주는 신음]
[수현이 휴대전화를 탁 든다]
(수현) 이거 뭐야?
"샌프란시스코 음악 재단"
"박이언 님께 축하드립니다"
된 거야?
왜 말 안 했어?
형, 아직 나 생각 중이야
(수현) 무슨 생각 중이야 샌프란시스코인데 안 갈 거야?
당연히 가야지
어, 하지만…
(수현) 우리 언제 가면 돼?
나 일단 휴가부터 좀 써야겠다
어, 과장님이 난리 치긴 할 텐데
지금까지 안 쓴 휴가 반만 써도 한 두 달은 쉴 수 있을 거야
- 진짜? - (수현) 당연하지
우리 뭐부터 할까? 거기 날씨 좋지?
(수현) 나 영화 보면서 그, 골든게이트 진짜 가 보고 싶었는데
음식은 맛있어?
거기 날씨도 되게 좋지?
어, 그리고 또 뭐 할… [차분한 음악]
[웃으며] 나 너무 관광객 같아?
(이언) 형, 정말 갈 거야?
거짓말하는 거 같아?
가자, 형, 우리 가자
가서 형 하고 싶은 거 다 해
[픽 웃는다] (이언) 형이 좋으면 나도 진짜 좋아
그러니까 가자
잘됐다
[무거운 음악]
[이언의 힘겨운 숨소리]
[이언의 한숨]
[한숨]
[픽 웃는다]
(이언) 어, 형, 빨리 왔네?
들어가자
- 이언아 - (이언) 어?
뭐야, 형, 짐 다 부친 거야?
형
안 갈 생각이구나?
[한숨]
그래, 나도 같이 남을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얼마나 바라던 기회인지 잊었어?
형
형 부모님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바뀌시지 않을 거야
알아
그래서 결정했어
원하시는 대로 결혼하려고
아, 형, 왜 그래? [수현이 팔을 탁 뿌리친다]
그러니까 넌 샌프란시스코로 가
(수현) 가서
행복하게 살아
(이언) [수현을 탁 잡으며] 아, 형, 잠깐만, 잠깐만
아, 형, 진짜 왜 이래?
(수현) 이게 나야
비겁하고 용기 없는 거
그냥
너 때문에 잠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거야
솔직하게 말해 줘라
(이언) 형, 날 사랑하긴 했어?
[한숨]
[수현의 떨리는 숨소리]
대답해
말해
아, 뭐라고 좀 말이라도 좀 해 봐, 형
[수현의 한숨]
[한숨]
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
형 같은 사람
그냥 처음부터 마주치지 말았어야 해
정수현
지금부터 당신이랑 나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야
잘 가
[이언이 흐느낀다]
(이언) 진심이 아니었어
내가 많이 미안해
(상구) 저기
(나무) 이언 씨?
많이 괴로우시겠지만
그만 진정하시고 공연장으로 돌아가셔야죠
이런 모습 정수현 씨는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한숨]
[한숨]
(이언) 당신들 도대체 뭡니까?
(나무) 저희는 정수현 님의 유품 정리를 맡은 사람들이에요
[이언의 헛웃음]
(이언) 유품 정리?
정수현 님이 사랑하는 분에게 남기신 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워 버리셨습니다
[뚜껑을 탁 든다]
(나무) 그렇지만 남은 것도 있어요
[이언이 상자를 탁 든다]
[이언의 떨리는 숨소리]
[이언이 상자를 툭 내려놓는다]
(그루) 정수현 님은 모레 샌프란시스코로 가려고 했습니다
[차분한 음악]
[한숨]
[상자를 달그락 든다]
그 안에 있었습니다
정수현 님이 쓰신 편지
'너를 만나 처음으로 내일을 살고 싶어졌고'
'너를 위해'
'어제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수현) 너를 만나고 처음으로 내일을 살고 싶어졌고
널 위해
어제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이제 다신 비겁하게 숨지 않으려고
죽는 날까지 지금 잡은 손 놓지 않을게
나 정수현은 당신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아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사실 병원에서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늦어서 미안하다
사랑해
[잔잔한 첼로 연주]
[관객들의 박수]
(이언) [영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제겐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항상 다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혼자였을 때 절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잔잔한 음악]
여기서 약속할게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내가 죽을 때까지요
고마웠어요
[감미로운 첼로 연주]
[퍼즐을 탁 집는다]
"산호섬"
[한국어] 다 했네
(상구) 왜, 뭐 문제 있어?
퍼즐을 다 풀었는데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정수현 님은 훌륭한 분입니다
이언 님도 멋진 분입니다
그런데 왜 부모님이
두 분의 사랑을 반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구가 숨을 들이켠다]
(상구) 뭐, 남들처럼 평범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던 거겠지
사랑을 못 하는 게 부끄럽지
사랑을 하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까?
(상구) 뭐, 부모들은
자식이 남들과 다르면 무조건 걱정하게 돼 있다더라
네 아빠도
너 때문에 속 꽤나 썩었을걸?
아닙니다
아빠는 한 번도 그루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그루가 말을 안 해서 아이들이 놀릴 때도
(그루) 그루가 수업 시간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학교를 못 다니게 됐을 때도
아빠는 모두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아빠는 그루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잘못한 게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언 님이 부럽습니다
[차분한 음악]
아빠도 그루한테 해 주고 싶은 말 잔뜩 있었을 텐데
그루는 하나도 못 들었습니다
이언 님은 이야기도 듣고 선물도 받았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럽습니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수철) 형, 나 할 얘기 있어
[무거운 음악] (상구) 응? 뭔데?
(수철) 별거는 아닌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 줄게
[퍽 소리가 울린다]
[쿵 소리가 울린다]
[캑캑거린다]
[심전도계 비프음]
(상구) 일어나, 이 새끼야
내 말 안 들려?
일어나라고
너 이렇게 만든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잠이 처오냐?
일어나
일어나서 죽여 보라고, 새끼야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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